보는거작은연못

결론을 알고 있는 평화로움이 숨막혔다.

영화는 설명이 적고 불친절하다. 위기감은 뜸을 들이지 않고,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역사를 화면에 담는 데에는 어떤 게 필요할까?

어떻게 담아야 잘 담은 걸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떠올라 격해졌다.

 

 

근데,

왜 연못에 고래가 뛰노는걸까?

2010/04/01 00:20 2010/04/01 00:20

지나간다이랜드총선후보전술 & 이중의적

http://www.vop.co.kr/A00000201323.html

 

 

한통계약직 투쟁을 담은 '이중의 적'을 봤다.

참, 뿌리깊다.

모든 투쟁에 걸쳐있다.

노동자를 배신하는 노동자들을 관료주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현장파는 배신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배신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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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일이 하나 기억난다.

통학버스 계약 문제로 학교와 학생과 통학버스 노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같이 학내 비정규직 조직을 선거 목표 중 하나로 걸었던 사람들이 너무 쉽게, 통학버스 지입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불안정화 시키는데 합의하려 했었다. 비용절감을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현실은 쉽게 착간된다. 누구의 시선도 올곧지 않다.

2010/03/26 08:39 2010/03/26 08:39

지나간다갚아야할 것

요즘, 파주 영화를 많이 떠올리며 산다.

난 돌아보면, 갚아야할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나를 지지해주거나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계속 안좋으니, 어제는 한 교수님이 동방까지 찾아와서 침을 놔주고 갔다. 요즘의 활동에 대해 묻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참 고마운 분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만치 관심을 가지는 일이 있나 떠올려봤는데, 당장 관심이 절실할 부모님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살고 있다. 너는 무엇으로 갚을 거냐고 묻는데,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런 직접적인 게 아니더라도, 내 삶 전체는 누군가에게 항상 기대어 있다. 이사를 하면서 전에 살던 집을 정리하는데, 찬장과 냉장고에 한두번 먹다 남은 음식재료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모두 유통기한이 훌쩍 넘어 버릴 수 밖에 없었는데, 내 필요 이상으로 가져다 놓은 욕심이 한심했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은 대개 이런 식일 거다. 난 다른 이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을 갈취하며 살고 있다. 내가 사다 먹지 않았어도 어느것은 창고 속에서 썩었을테니,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일상적인 관계들 속에서 주고받는 것도 적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혹은 반성하며, 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인과의 그물 속에서 살아가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원인이 될텐데, 나는 어떤 자욱을 남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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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지난번에 그 선생님에게 소식지를 드렸었는데, 어제 코멘트 하기를, 내용은 20년전이랑 그대론데, 샤방하게 보이려 무진장 애쓴 게 보인단다. ㅋ 그 노력이라도 보여서 다행이다.

2010/03/26 08:37 2010/03/26 08:37

풀하우스 - 스티븐 제이 굴드

개체의 대표값을 정하기 위해 평균값을 선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최빈값, 중간값, 평균값을 구분해야 한다. 대칭적 분포에서는 세 값이 일치하지만 기울어진 곡선에서는 그렇지 않다. 또한 당연히 최대값은 개체를 대표할 수 없다.

 

개체의 분포에서 오른쪽 꼬리를 분리시켜 특정한 속성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 오른쪽 꼬리는 전체 분포 속에서 읽혀야 하고 그 속성은 전체에서 분리되어 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전체 분포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세계를 '풀하우스'라고 이름짓고 있다. 따라서 '진보'는 기존에 있던 개체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아니라 전체 개체의 분포가 함께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는 진보와 동의어가 아니다.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진보를 향한 내재적인 경향 같은 것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개체의 평균 복잡성은 전체적으로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분포가 왼쪽 벽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빼먹으면 오른쪽으로의 분포 확장이 어떤 경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최소복잡성의 왼쪽 벽 바로 옆에서 박테리아 형태로 시작된 생명은 지금도 같은 위치에 남아있다. 무작위적인 운동의 결과인 오른쪽 꼬리는 전체 개체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의 효과(굴드는 결과와 효과를 구분한다)이다.

그래서 굴드가 요약한 걸 옮기면,

1. 생명은 왼쪽 벽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2. 초기 박테리아 형태의 장기적인 안정성

3. 생명이 성공적으로 팽창해 감에 따라 분포 곡선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갈 수 밖에 없다.

4. 분포 전체의 꼬리에 불과한 최대값으로 분포 전체의 성질을 규정하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경향이다.

5. 원인은 벽과 변이의 확장이다.

6. 한 시스템에 진보를 슬그머니 끌어들이는 방법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험상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7. 오른쪽 꼬리에만 주목하는 편협한 시도를 결해한다고 해도, 전반적인 진보에 대한 절망을 제거했으면 하는 심리적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원하는 결론, 즉 인간처럼 의식을 가진 생물이 지배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진화의 결과라는 결온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문화에서의 진화와 다윈적 진화는 서로 다르다.

- 문화는 어떤 방향성을 축적할 수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문화에는 계통의 융합과 라마르크적 유전이 작용한다. 문화의 진화와 다윈의 진화를 서로 섞어 쓰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인식을 심는다.

 

변이와 다양성을 그 자체로 존중하라.

 

정해진 중력의 법칠을 따라 이 행성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생물종들이 진화해 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 갈 것이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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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에서

- 부분으로 전체를 규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경계(하이젠베르크의 '분과 전체')

- 단속평형론

- 도킨스와 굴드의 논쟁 : 삼각소간spandl은 원형 돔을 설계할 때 아치가 만나는 부분에 생긴 삼각형 공간을 말하는데 보통 장식적인 구조물로 꾸며 메워진다. 따라서 삼각소간은 건축상의 부차적 산물이다. 현재 장식적 용도로 훌륭하게 쓰이고 있으나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생긴 것은 아니다. 굴드의 생각에 따르면 생물의 뇌도 삼각소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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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를 진보로 동일시하고, 인간을 진화의 목적지로 상정하는 태도는 사실 얼마나 같잖은가? 총개체수로 보나, 총량으로 보나, 역사로 보나, 영향으로 보나 인간은 박테리아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굴드는 이런 목적론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관념론과 투쟁하는 유물론자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알튀세르가 떠오른다. ㅋ 이 책과 함께 존 벨라미 포스터 등이 쓴 다윈주의와 지적설계론 논쟁을 읽고 있는데, 포스터는 결정론에 굴복하기 보다는 신의 간섭을 택하겠다고 까지 말한다. ㅎㅎ 목적도 기원도 없는 역사.

 

다윈 200주년이라는데, 진화론에 관심이 생겨 이런저런 책들을 들춰보고 있다.

2010/03/24 14:31 2010/03/24 14:31

지나간다우분투

ㅎㅎ

 

나도 우분투 깔았음

 

 

2010/03/23 16:43 2010/03/23 16:43

지나간다어떤 글을 읽다

중경삼림을 좋아해 1년에 한 번씩은 봤다는 내용을 보고,

전체 내용과는 전혀 동떨어지게,

난, 1년 내내 영화 한편 못본 해도 있는 걸,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이어 생각해보니, 나의 투정들은 또 얼마나 배부른가?

2010/03/20 23:28 2010/03/20 23:28

지나간다몸도 안 좋고

의욕도 떨어지고.

오늘 혈액검사, 내시경예약을 하고 왔다.

당췌 살 수가 있어야지 -

기능적인 문제래도 답답할 것 같고

기질적인 문제라면 무섭고

.....

.

 

해야할 거리가 주어지면, 그냥저냥 하고 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

해야할 거리가 있는데, 안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고.

 

현자 투쟁에 지역에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몇 번 집회에 참석했지만, 있는 듯 마는 듯 하는 내 존재감에 어떻게 하는 게 연대일지 고민하게 한다.

있는 듯 마는 듯 하는 건 나에게도, 그/녀 들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나 여기 있어요~ 알아달라는 건 아니긴 한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2010/03/20 23:12 2010/03/20 23:12

듣는거딱 중간 - 아침

하루는 길어
우리가 생각 하는 것 보다 길어
하지만 하루 안에 무언가를 하긴 힘들어
어째서?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걸까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어

왼쪽과 오른쪽을 가끔 헷갈리는 바람에 혼이 나
면허증 사진을 볼 때마다 딴 사람 같아
이상해

명절 때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게 무서워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되지` 라는 소리를
듣는 게 무서워

변하지 못하는 것과
변하는 것 중
어느 쪽에 서야만 할까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 걸까
어느 쪽에 서야만 할까



아직까진 중간인 상태로 있는게 중요해

 

//

 

목소리 너무 좋아.

가사도 좋아.

멜로디도 좋아.

다 내 얘기야.

 

목소리 흉내내고 있으니까, xx이 막 욕한다.

내 듣기에는 그럴듯한데 말이지.

 

2010/03/17 20:21 2010/03/17 20:21

지나간다오가는

사람들이 가슴졸이게 한다..ㅋ

모든 게 내 탓인마냥

어쩔수 없지..

 

당장 4월, 5월 계획이 안세워져..

그나저나, 내년엔 뭐하지?

그 이후엔?

 

학교를 다시 가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살기 싫기도 하고-

2010/03/16 15:29 2010/03/16 15:29

보는거파주

포스터에서 풍기는 느낌이 좋아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다 보고 나니 조금은 밍숭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다.

 

여러 글 들에서 미리 보아 이미 알고 있던 대사, 처음엔 멋져보여 시작했고... 자꾸 해야할 게 생긴다는..

누구는 강박에 빠진 좌파의 자화상이라고 얘기하지만, 강박없이 자유로운 삶이란 애초에 존재할까? 무슨 이상을 대는 것 보다 차라리 솔직하지 않을까. - 정말, 자꾸 해야할 게 생기는 걸.

 

영상을 보는 내내 두근거렸다.

둘은 서로 도망가고 있던걸까.

 

중식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려 할 때, 다른 누구를 다치게 했고, 그 죄책감 부채감을 이고 살아간다.

결혼은 욕망을 부정하려는 도피처였을까. 하지만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는)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또 누구를 다치게 했다. 그 사람은 그것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지지 않아도 될 부채일까? 그래서 그것은 골방에 갇혀 세상의 정의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의 폐쇄적인 자의식일까? 되려 보지 않으려고 눈감아버린 인과의 끈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감독은 어느 쪽의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은모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가? 그 의도는 명확하지만 언제나 꺼풀은 씌여있다. 자신이 그 의도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을 분명히 의식했을 때는, 오히려 도망치는 걸 선택한다. 둘 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지만, 어느 쪽도 그것을 그대로 내보이지 못한다. 감독은 그것을 인정하고 내보이는 것 또한 해피엔딩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고 영화 첫머리에서 잘라말한다.

 

개인의 욕망을 삭제하고 이상을 박제화 시킨 운동(유령들의 운동..)에 상대적으로, 욕망을 긍정하라는 류의 담론이 유행한다. 감독은 둘 사이에서 답을 고르는 것 같지는 않다. 인과의 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꼬여있는 실타래 속에서 개개인의 노력은 무력한가? 노력하면 만날 수 있는걸까. 애초 만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모든 걸, 자신이 떠안는 중식은 가엾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안타깝다. 그가 노력한 만큼, 그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만큼 받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모두에게 솔직하면, 세상이 좀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결코 감당할 수 없을 일이 있을까.. 서로 기대면 어느 것이든 조금은 수월치 않을까..

 

2010/03/15 03:35 2010/03/15 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