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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코르쉬 「레닌과 코민테른」
칼 코르쉬 소개
칼 코르쉬는 그람시, 루카치와 더불어 서구 3대 맑스주의자다. 1920년대 볼셰비키 당사와 역사를 암송하는 이들에게, 칼 코르쉬는 불편한 인물이다. 코르쉬는 1920년대 독일코뮤니스트당 안에서 「코뮤니스트 정치」지를 중심으로 분파활동을 했는데, “자본주의는 안정화되지 않았고, 주체적인 혁명정치를 위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독일코뮤니스트당은 ‘의회주의 백치’ 태도를 버리고, “노동자평의회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또한 코르쉬는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회귀했으며,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혁명정치와 관련해서 타협을 거부하던 코르쉬와 소련이 주도하는 코민테른은 당연히 갈등관계에 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스탈린이 직접 나서서 1926년 7월 중앙위원회 총회 자리에서 코르쉬를 초좌파(ultra left)로 맹공을 퍼부었다. 예상되는 정치 수순으로(!), 코르쉬는 독일코뮤니스트당에서 축출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 소수파는 재정 문제가 중요한데, 코르쉬 그룹이 발간한 「코뮤니스트 정치」는 코르쉬가 받는 국회의원 월급으로 근근이 발간을 이어가다, 1928년에 발간을 중단한다.
코르쉬 그룹은 노르웨이 좌파 코뮤니스트, 이탈리아 보르디가 그룹과 국제적 관계를 맺고, 레닌과 노동조합 논쟁을 벌였던 러시아 노동자 반대파 (worker’s opposition) 실리아프니코프를 지지했다. 트로츠키가 주도한 좌파 반대그룹(the left opposition)에는 반대했다. 1933년 나찌가 집권하자 코르쉬는 정치적 망명길에 나서는데, 이로써 고독한(?) 사상투쟁을 벌였던 정치조직 활동은 중단된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걸쳐 좌익공산주의자로 활약하면서 코르쉬가 굳게 믿었던 맑스주의 혁명이론은 ‘프롤레타리아 실천과 의식’이었다. 우리가 흔히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을 통일적으로 얘기하지만, 코르쉬가 볼 때 최초의 계기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즉 실제 혁명운동에서 주어 진다. 예를 들어, 혁명이론은 지도부나 이론가들에 의해서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표현’이어야 한다. 요컨대 ‘노동자를 위한 혁명’일지라도, ‘노동자가 나서지 않는 방법’이라면 코르쉬는 거절하는데, 이러한 그의 고집은 노동자평의회 강조로 이어진다. 코르쉬에게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안에서 직접 정립되며, 부르주아 사회 제도, 생활양식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조한다. (남궁원, “혁명적 코뮌, 칼 코르쉬”, 「코뮤니스트」2호, 2013)
코르쉬와 레닌주의
1920년대 독일코뮤니스트당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동안, 코르쉬에게 소련과 레닌주의는 주요한 논점이 되었다. 레닌과 소련에 관한 그의 입장은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이라는 복합체의 양가성을 반영하기에 크게 모순적이다. 개략적으로 코르쉬의 입장은 세 단계로 분류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레닌주의와 소련에 전심전력하여 집착하는 것으로 두드러지는 열광적인 레닌주의의 시기이다. 이 입장은 나중에 자신이 편집자로 있는 코뮤니스트 저널인 인터내셔널에 발표한, 1924년 코민테른 세계대회에서 코르쉬가 한 연설인 「레닌과 코민테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코르쉬는 진정한 혁명정치를 위한 토대로서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옹호하고 레닌주의가 일련의 모든 정치적, 이론적 과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레닌의 유산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상속하여 보존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현재 상황에 레닌의 ‘정신’을 그것의 이론과 실천 속에서 역사적 현실로서 한층 발전시키는 것”은 코민테른 전체의 의무였다.
코르쉬는 “자신의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기능 속에서 죽은 레닌을 살아있는 레닌주의자들의 크고 강력한 집합체로써” 대체하는 임무를 제안했다. 레닌주의를 전유하고 발전시키는 이 기획은 “세계역사상 이러한 형태로 당 앞에 제기된 적이 결코 없는 아주 거대한 임무”로 서술된다. 코르쉬의 레닌주의에 대한 온갖 집착의 지표로서, 레닌주의를 소련 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이론으로 역사화시키려고 한 독일코뮤니스트당 이론가인 탈하이머와, 반면에 레닌주의와 소련의 모델이 세계혁명운동에 대한 일반적 타당성을 담지한다고 본 코르쉬의 논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르쉬는 “치고 올라오는 코뮤니스트적 수정주의의 쇄도에 맞서 방어벽”을 요청하면서 결론짓고, 레닌주의에 대한 총체적 헌신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방법, 이론, 전략으로서 옹호한다. 코르쉬의 철저한 레닌주의의 배경은, 작센과 튀링엔의 노동자 정부에 대한 폭력 탄압과 뒤이은 코뮤니스트당 불법화 이후 1923년 독일 연합전선의 붕괴였다. 코르쉬에게 이 경험은 무너져가는 독일 운동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더 성공적인 레닌주의 혁명 이론과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의미했다. 이러한 계획으로, 새로운 역사적 사건들이 정직하고 헌신적인 혁명가 코르쉬가 자신의 레닌주의를 근본적으로 묻도록 강제하여 결국 레닌주의와 결별하기 전까지, 코르쉬는 이후 몇 년 동안 헌신적인 레닌주의자가 되었다.
레닌 및 소련과 관계맺는 코르쉬의 두 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소련과, 다음에는 레닌주의 자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발전과 관련된다. 이 전환의 배경은 독일코뮤니스트당이 코르쉬를 제명하고 그가 좌익반대파의 선봉으로 이동한 것이다. 코르쉬는 혁명적 레닌주의 이론과 소련 및 독일코뮤니스트당 내 스탈린주의자들의 점증하는 반혁명적 실천 사이의 모순을 주목했다. 코르쉬가 표명하는 스탈린주의와 소련 비판의 입장은 코르쉬가 믿기에 순수히 레닌주의적이고 혁명적이었던 소련과 독일 운동 내 좌익반대파 세력들과의 자기 동일시였다(당시 코르쉬에게 “레닌주의적임”과 “혁명적임”은 동의어였다). 그는 레닌주의의 퇴보와 반혁명적 퇴행으로 이어지는 스탈린과 그 동맹자들 속에 구현된 기회주의, 개량주의 세력들의 승리를 우려했다. 이 입장은 「소련에서의 10년의 계급투쟁」이라는 소론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코르쉬는 양자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라는 교의에 이론적 정식화의 근거를 두는, “러시아 국가의 필요성”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요성” 사이에 발전하는 모순을 보았다. 이것은 세계혁명운동이 소련의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것과, 그리하여 자율적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붕괴를 의미했다(우리가 상기할 것은, 처음에 코르쉬는 소련의 이해관계와 세계혁명운동 사이에 어떤 모순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좌익반대파 세력의 패배와 함께, 레닌주의는 더 이상 혁명적 실재가 아니라 소련, 코민테른, 독일코뮤니스트당의 반혁명적 정책을 정당화에 쓰이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제 코르쉬는 레닌 자체를 비판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이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좌익반대파 시기의 초기에도 코르쉬가, 스탈린주의를 레닌주의의 퇴보라고 비판한, 여전히 신실하게 믿는 레닌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좌익반대파의 분열 및 패배와 함께, 동일시할 수 있는 어떤 혁명적 레닌주의 세력도 더 이상 없었고, 그리하여 레닌주의와의 날카로운 결별의 필요만이 남았다.
다음 글은 코르쉬가 열광적인 레닌주의자였던 시기, 1924년 코민테른 세계대회에서 코르쉬가 한 연설문이다.
<편집자 주>
「레닌과 코민테른」, 인터내셔널, 1924.6.2. 이 선집에 로이 제임슨이 「Lenin and the Comintern」으로 번역함.
레닌과 코민테른
Ⅰ
제5차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세계대회 의제의 첫 번째 항목은 “레닌과 코민테른. 레닌주의의 기본 원칙들과 선전”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레닌주의 정신에 대한 대회의 헌신만을, 그리고 진정한 레닌주의 정신 속에서 그들 앞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참가자들의 널리 인지될 수 있는 의지의 선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중유럽과 서유럽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지난해 투쟁의 초점에 관여하고 이후 의제에 등장하는 특수한 문제들이, 의제의 두 번째 항목을 차지하는 경제적 상황의 분석 이전에 처음부터 주의되어야 한다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명백하게도 중유럽, 서유럽 및 아메리카의 코뮤니스트들의 모든 임무들 가운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현 발전시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레닌이 우리에게 배정한 임무, 즉 “노동계급의 가장 중요한 계층의 다수파를 획득하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는 오직 레닌주의 정신 속에서만 진실로 해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레닌이 급진주의에 관한 고전적 저술(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의 말미에 아주 인상적인 방식으로 러시아 볼셰비키의 역사와 유럽 당의 경험에서 그 유래를 찾았던, 정확히 “[몇 가지]결론”의 정신 속에서다. 이른바 공동전선 전술이 있은 지 4년 후, 그 때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레닌이 4년 전에 표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1924년 오늘날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현대 코뮤니스트의 주요 임무”는, “대중을 현실의 결정적인, 마지막으로 위대한 혁명투쟁으로 이끌, 아직 완전히 혁명적이지 않은 척도와 방법의 구체적인 계획을 발견하고, 깨닫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주의자들의 이 주요한 실천적 임무의 해결은 의제에 관한 모든 일련의 항목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특히 단독적인 하나의 항목이 아니며, 이러한 의미에서만 그 해결은 “레닌주의의 기초와 선전”을 말하는 이 첫 번째 항목과 더불어 다른 모든 임무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 해결은 다음과 같이 귀착된다. 오늘날 코민테른 전체는, 코민테른의 위대한 창설자이자 지도자인 V. I. 레닌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자신이 레닌의 유산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상속하여 보존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현재 상황에 레닌의 ‘정신’을 그것의 이론과 실천 속에서 역사적 현실 즉 레닌주의로서 한층 발전시키는 것을 기꺼이 할 수 있음을, 이제 처음으로 보여줄 수 있고 또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코민테른은 그의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기능 속에서 죽은 레닌을 살아있는 레닌주의자들의 크고 강력한 집합체로써 대체해야만 한다.
“레닌과 코민테른”을 5차 세계대회의 의제로 설정하면서, 집행위원회는 이 위대한 임무(세계 역사상 이러한 형태로 당 앞에 제기된 적이 결코 없는 아주 거대한 임무)의 이행을 위하여, 레닌의 자연적인 주요 상속자인 러시아 볼셰비키당뿐만 아니라 우리의 위대한 코뮤니스트당의 다른 모든 지부들, 즉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도 이론적, 실천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한 대회 자체는 이 길을 따라 첫 번째 중대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대회의 임무는 확실하고 완전하며 상세하게, “레닌주의의 선전”(의제에서 유일하게 불확정적으로 지시된)의 슬로건을 코민테른 전체에 타당한 방식으로 정식화하는 것일 터이다. 또한 그들의 상황과 발전 상태에 따라 인터내셔널의 각 지부에 특히 중요한 개별 임무들을 지적하는 것과, 이 모든 임무들의 해결을 실행해야 할 더 큰 지도 원칙들을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5차 세계대회의 의제에서 첫 번째 항목의 중요성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레닌주의의 선전”을 구성하는 다방면의 부분적 임무에 대한 더 자세한 규정과 함께, 대회는 오직 (우리가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기술적 측면에 따라서 “레닌주의”의 물음에 관한 입장을 가질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물음의 이 기술적 측면 또한 너무나도 큰 중요성을 지닌다. “레닌주의의 선전”은 위대한 코뮤니스트의 “혁명의 조직”이라는 총체적 임무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그리고 물론 이 선전의 임무를 정확히 이행하는 것은, 아직 국가권력을 획득한 적이 없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즉, 따라서 이미 합법화된 모든 유럽과 아메리카의 지부들이지만, 아마도 처음에는 불법적 조건 하에 있었을 지부들)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소련에서보다 훨씬 더 곤란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러한 나라에서, 대체로 그 임무의 이행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최고기관인 세계대회를 통해서 더 정확한 설명과 규정을 요구하는, 전적으로 서로 다른 형식들(각 나라의 특수한 상황에 정확히 일치하는)을 띠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다소 기술적인 이 물음들은 결코 문제의 핵심을 포함하지 않는다.
실제로 볼셰비키 이론의 방법 그 자체는 “레닌과 코민테른. 레닌주의의 기초와 선전”이라는 문제를 포함시킴으로써 그 의제에 관하여 제기된다. “레닌주의의 기본원칙들”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모든 지부에서 이러한 원칙에 근거한 레닌주의적 선전 체계의 발전을 해명함으로써, 볼셰비즘의 이론가인 레닌이 맑스의 혁명적 방법을 “복원”하고 그것을 이른바 통일된 제2 인터내셔널 맑스주의자들의 곡해와 혼란에 맞서 대립시킨 그 형식에서 맑스의 혁명적 방법을 공통된 토대로 삼아 코민테른 전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하나의 견고한 통일체로 용해되어야 한다. 우리의 혁명적 볼셰비키 이론의 방법만이 아니라, 의제의 세 번째 항목인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프로그램도 “레닌주의”의 문제에서 토론에 부쳐진다.
Ⅱ
제5차 세계대회가 극도로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극도로 어려운 임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레닌주의의 방법론적 기초를 예리하고 정확하게 정식화하여 이 기초 위에 방법적이고 체계적인 레닌주의 선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내에서 이데올로기적 통합과정은 코민테른의 모든 지부들과 집단들이 그 본질적 특징이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의 이론적 방법에 헌신하게끔 하는가?
이 점에서 그 임무의 급진적인 해결에 거의 여지를 주지 않는 막대한 곤란들이 발생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직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다양한 지부들 특히 독일코뮤니스트당에서 “유일하게 타당한 맑스 이론의 방법”인 “레닌주의”에 대한 단일한 헌신을 전혀 말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방법인 “레닌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본질적인 특징들 속에 서로에게서부터 출발하는 몇 가지 시각들이 존재한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조직에 속하고 자신의 실천적 정치학 속에서 “레닌에 따라” 행동할 각오가 된 수많은 지도적인 다른 맑스 이론가들은 “과학적 맑스주의”가 복원된 “그” 방법인 레닌의 방법의 원리를 이론에서 거부한다. 그들은 레닌주의적 방법을 현시기(즉, 국제적 범위와 유럽 및 아메리카의 국가적 범위에서 아직 정치적 권력의 장악 시기로 대표되지 않는 시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투쟁의 실천적, 정치적 목적을 충족하는 하나의 방향설정 방법으로서 인정하지만, 가장 구체적이고 진정한 유물변증법의 방법으로서, 즉 혁명적 맑스주의가 복원된 방법으로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타당한 방법은 독일코뮤니스트당의 창설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방법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룩셈부르크주의적 방법뿐만 아니라 레닌주의적 방법도 편향적이라고 선언하고 오직 과학적 성숙 시기의 칼 맑스가 적용한 방법만을 진정한 맑스의 방법으로 인정하기를 원한다. 이 짧은 소론에서 레닌주의적 방법(하나의 방법으로서, 혹은 과학적 맑스주의의 “그” 방법으로서)에 대한 이 무조건적 적대자들과의 제대로 된 논쟁을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과제는 가능한 한 큰 규모의 코뮤니스트 이론계의 집단작업으로 이 저널의 다음 호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볼셰비키의 정치적 실천과 (레닌에 의하여) 혁명적 맑스 이론이 복원된 형태가 불가분하게 응집된 통일체를 정립한다는 관측에 만족하자. 그런데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코뮤니스트당의 역할에 관하여, 어떻게 이 통일체를 제2차 세계대회의 결의에 관한 코뮤니스트적 입장인 “실천적 정치가”로서, 그러면서도 동시에 유물변증법의 룩셈부르크에 특유한 형태로 경제발전과 프롤레타리아계급투쟁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과학적 맑스주의자”로서 간주하게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레닌이 “복원하여” 한 발 더 나아간, 인간의 감각 활동과 실천 자체를 그것의 객관화된 현실 속에서 이해하는, 맑스의 완전한 “유물론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만 “당 역할의 볼셰비키판이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실천적 측면에서 레닌주의적 변증법만큼 거의 “유물론적”이지는 않은 룩셈부르크주의적 변증법의 입장에서 보면, 당 역할의 레닌주의적 설명에는 언제나 “주관주의”의 고통스러운 잔재가 있다. 그러나 어쨌든, 룩셈부르크주의적 맑스주의자와 레닌주의적 맑스주의자가(여기에는 세 번째로 룩셈부르크의 더 나아간 발전도, 순수하고 완전한 맑스주의로서 맑스 방법의 레닌주의적 복원도 인정하지 않는 맑스주의자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제5차 세계대회에서 공동으로 동의할 수 있는 “레닌주의의 기본원칙”에 관한 해결과, “레닌주의적 선전”의 체계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전체의 동일한 이 이론가들에게 압도적 동의를 얻은 코뮤니스트적 프로그램이 불만족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존속할 것이라는 점은 아주 분명해 보인다. 맑스 이론의 룩셈부르크주의적 방법과 레닌주의적 방법 간의 관계에 대한 완전한 해명은 “레닌주의의 기본원칙과 선전”의 결정에 불가결한 전제들로 구성된다.
룩셈부르크주의자와 레닌주의자 사이의 갈등과 상관없이, 오늘날 이론적 방법으로서 레닌주의의 본질 문제에 관한 일반적 동의는 부재하거나, 더 강하게 말하면 오늘날 이 동의는 이전보다 훨씬 덜 존재한다. 그리고 맑스주의 코뮤니스트당의 방법론적 의식이 당의 실천 외부에, 혹은 그 어떤 의미에서도 그 상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 혁명적 실천 자체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기 때문에, 격렬한 위기의 결과로서 볼셰비키 실천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쓰라린 분파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버렸을 때, 레닌주의의 이론적 방법 문제도 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야만 한 것도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금 레닌주의적 변증법의 방법의 결정에 있어 현재 착수된 시도(다양한 측면에서 착수된) 속에서, 오늘날 실제로도 코민테른 내부의 전술 및 다른 실천적, 정치적 문제에 관한 투쟁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모든 분파들을 발견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새로운 코뮤니스트 저널 노동자문헌(Arbeiterliteratur)의 1/2권에 나온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부 문제들에 대한 레닌의 유물변증법 적용에 관하여”라는 탈하이머 동지의 소론은 이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Ⅲ
탈하이머 동지는 레닌이 맑스와 동일한 대담성과 통찰 및 엄밀성과 더불어 적용한, 자신에 의하면 동일한 유물변증법의 맑스주의적 방법일 뿐인 레닌주의적 방법을 해명하고자 한다. 그는 세 가지 구체적인 물음들, 즉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 농업 문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전쟁 문제의 전개를 통해 이것을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에 관한 절은 레닌이 국가의 소비에트적 형태를 노동계급 독재의 “마침내 발견된 정치적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새로운 유형”, 그러니까 일탈하는 이 유형의 “종, 변종, 형태”의 가능성이 포함되는 국가의 유형으로서만 특징지었다는 언급으로 맺는다. 농업 문제에 관한 절은 레닌이 이 문제를 다룸으로써 “유물변증법적 방법의 각별히 교훈적이고 엄밀한 적용”을 부여했다. (탈하이머의 묘사에 따르면, 이 적용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혁명 문제의 핵심,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권력의 이전을 수호하고자, 이전 볼셰비키적 농업 프로그램의 경직된 모든 요구들을 기각하도록,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생활”의 과정 속에서 실례(example)의 힘의 결과 즉 실천적 고려의 결과로서, “저절로” 될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도록 용인했다는 사실에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절에서 탈하이머 동지는 레닌이 민족 문제를 취급한 것을 “구체적 변증법적 분석의 진정한 모델”로서 특징짓는다. 레닌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애국주의의 허위를 비판적으로 무효화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전쟁 중인 유럽에서일지라도 특정한 조건하에서 제국주의 전쟁으로부터 민족주의 전쟁으로의 전화는 확실히 “개연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았음” 또한 강조하였다.
우리는 탈하이머 동지가 이 중요하고 어려운 세 문제들에 대한 레닌의 해결책을 평가할 때의 흠모로부터 한 치라도 뒤로 물러서고자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 즉 레닌이 탈하이머 동지가 묘사한 이 문제를 취급하면서 맑스주의 유물론적 방법 적용의 그토록 “각별히” 교훈적이고 엄밀한 실례들을 어느 정도로 부여했는가라는 이 문제를 아주 신중하게 제기해야 한다. 예컨대, 농업문제에 대한 레닌주의적 접근에서 유물변증법적 방법의 각별히 교훈적이고 엄밀한 사용은 무엇에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칼 맑스는, 그들이 스스로 “즉시 그들에게 고유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혁명적 활동의 내용과 소재(material)를 발견하는 데까지, 즉 적을 때려눕히고, 전쟁 요구에 의해 주어진 수단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행위 결과를 진척시키는 데까지 상승하게 되자마자 혁명적 계급의 역량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고유한 임무의 상위에 있는 이론적 작업에 착수하지 않는다.”(프랑스에서의 내전, 디츠 판, 31쪽) 러시아 혁명의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은 투쟁의 한복판에서, “그 자체로부터” 생활 속에 그리고 이 생활의 일부인 혁명적 계급투쟁 속에 보급되는 동일한 권리를 지니고서, 내재적, 무의식적, 그리고 자연적인 변증법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변증법적 방법을 여기에, 정확하게는 그가 (맑스와 말하기 위해) “이론 작업의 착수를 거부하는” 데에 적용하는가? 레닌은 그것에 의하여 “각별히 교훈적”이고 “각별히 엄밀한” 형식으로 변증법을 적용하는가?
오히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그와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이라는 역사적 과정의 견지에 따라 온전히 파악되어야 하는 고도로 발전한 유물변증법이, 그 물질적 생활 현실의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이 확실히 변증법적으로 진행하지만 그 진행 과정의 특정 지점에서 변증법론자에 의해 파악될 수 없는, 그 한계에 다다르는 상태에 정확히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한계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기 위한 맑스주의 방법의 엄밀한 이론의 요구조건에 속한다. 하지만 이 속에서 맑스와 레닌의 “유물변증법”의 현실적 핵심을 정확히 알고자 할 때 그것은 이미 과도하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방식으로, 탈하이머 동지가 레닌의 맑스주의적 방법 적용의 두 다른 선택된 실례를 분명히 진정한 유물론에 속하지만 결코 형이상학적 방법론에 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한다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가장 내적인 본질, 즉 일반적으로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유물론의 주요 특징과 핵심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가 세 가지 실례들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한 맑스 레닌주의적 방법의 본질 왜곡 외에도, 탈하이머 동지는 더 나아가 그의 소론의 서문 및 산발적인 언급에서 똑같이 왜곡된, 이 방법의 본질에 관한 일반 이론을 추가한다. 그는 맑스뿐만 아니라 레닌의 유물변증법적 사유의 결과들이, 그 사유가 유래하고 그 사유에 대해 결정되는 순간적인 경험영역의 범위를 넘어설 때, 전혀, 결코, 어떤 형태로도 일반적으로 타당할 수 없다는 캐리커처[풍자적 모방] 속에서, 진리는 항상 구체적이라는 맑스의 기본 원칙을 과장한다. 마치 맑스(예컨대, 미하일로프스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와 레닌(예컨대, “어떤 형식으로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중요성을 언급할 수 있는가?”라는 부제의 “급진주의”에 대한 소개
에서)이 그들의 유물변증법 연구의 결과들을 그러한 일반적 중요성을 지닌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아주 엄밀하게 구별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이미 알려진 현재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 도달하려는 것만을 부여하는 “유물변증법적” 방법의 가치는 무엇인가? 혹은 더 나아가, 탈하이머가 표현하는 것처럼, 한편으로 이론적 반성(!), 즉 특수한 시대의 분석이자,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시대일 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위한 지침들일 뿐인, 역사적 결과들만이 초래되는가?
사실 탈하이머 동지가 만들고 맑스 레닌주의 유물변증법으로부터 변형된, 이 새로운 방법은 유물변증법과 더 이상 아무 관계도 없다. 맑스와 레닌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순수한 경험과 실천의 역사과학의 방법으로서 아주 “물질적으로” 파악하려는 그의 노력에서, 탈하이머 동지는 이미 유물변증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버렸고, 완전히 비변증법적인 역사주의, 실증주의, 실용주의를 달성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로자 룩셈부르크가, 인간 실천에 관한 그녀의 견해에서 온전히 유물론적으로 되지 못하여, 이 점에서 헤겔 변증법론자로 남게 된 반면에, 이에 반해 탈하이머 동지는 헤겔 변증법의 잔재와 함께 동시에 맑스주의 과학의 방법론의 모든 변증법적인 것을 축출해버렸다. 탈하이머의 입장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역사적 과정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역사적 행동으로서 구체적으로 함축하는, 맑스의 유물변증법적 방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고립된 역사적 사실성의 순전히 수동적, 이데올로기적인 “반영”으로 변형된다.
실제로 이러한 맑스 레닌주의적 변증법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곡해는 맑스, 엥겔스, 레닌 및 다른 이들이 얻은 모든 성과를 이러한 방법에 의하여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맑스 레닌주의적 연구 방법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이러한 경향이 어디서 유래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아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탈하이머가 수백 번 반복한 예로 들자면, 소련 국가는 가능한 종과 변종이 있는 단지 하나의 유형으로서 레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오직 이러한 성과들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고자 할 때만, 맑스 레닌주의적 방법론의 성과들을 이토록 평가절하할 수 있다. 소비에트 국가를 가능한 형태들의 다수성이 있는, 단지 하나의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유형으로 보는 견해는 “레닌주의”의 이론가들이 평의회 독재의 “엄격한” 형태(레닌에 따르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그” 사회주의적 형태의 “그” 시초인)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고, 예컨대 작센 “노동자정부”처럼, 이 “유형”의 다양하고 가능한 “종, 변종” 및 퇴화에 이르도록 만든다. 또한 다른 모든 맑스주의와 레닌주의 이론의 “성과”도 마찬가지다. 그 성과들이 모두 특유한 역사적 전제에 구속되고, 단지 특수한 시간과 장소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순수한 “역사의 산물”이라면, 새로운 관계 하에서, 새로운 경험과 변화된 정치적 요구에 반해서, 이전의 맑스주의의 “성과”이 타당성을 상실할 것이고, 그 “성과”는, 이제 이 새로운 상태가 유물변증법의 “레닌주의적” 적용을 위하여 그 속에 “반영된”, 새로운 지식과 지침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거나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맑스와 레닌의 혁명적 변증법적 유물론을, 더 이상 변증법적이지 않으므로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은(역으로도,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으므로 더 이상 변증법적이 않은), 순수하게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과학과 실천으로 변형시키면서, 탈하이머 동지는 실제로 경향 상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 대신에 기회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방법을 매력적인 “레닌주의”의 외피 아래 둔다.
Ⅳ
우리가 이처럼 상세한 설명으로써 레닌주의적 방법에 관한 탈하이머의 견해를 다룬 것은, 단지 탈하이머 동지가 제5차 대회의 “프로그램의 문제”에 관한 두 번째 연설자로서 지명되어서, 그로 인해 대회에서 그가 방법론으로서 레닌주의의 본질 문제에 있어서 특별히 주목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하게, “레닌주의의 기본원칙”을 결정하려는 시도, 특히 제5차 세계대회에서 레닌주의적 방법의 본질의 고정하려는 시도가 단지 현재의 거대한 난관에만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어떤 위험에도 구속된다는 것을, 자세하고 명확하게 전형적인 실례로써 제시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 위험은 그것이 정확히 외관상 순수하게 이 이론적인 영역에서 여전히 전혀 인정되지 않고, 관찰되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분파들의 실천적 투쟁으로부터 아주 거리가 먼 한에서는 오히려 더 큰 것이다. 최근 존경 받는 “레닌주의”의 혁명적 깃발 아래 다양한 수정주의적, 개량주의적, 기회주의적, 청산주의적 금제품을 혁명적 코뮤니스트의 이론과 실천에 밀수해 들어오려는 시도들이 있다. 가장 내적인 토대에서 탈하이머가 지금 정식화한 레닌주의적 방법의 이론은 단지 그릇된 정치적 실천의 그릇된 이론을 의미할 뿐이다. 기회주의와 개량주의의 공동전선 전술이 라이프치히 당대회 이후 독일에서 적용된, 선동과 대중동원의 혁명적 방법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탈하이머와 그의 가까운 동지들의 “레닌주의적” 방법도 혁명적 레닌주의의 순수한 방법과, 즉 레닌이 복원하고 완성한 혁명적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과 관계가 있다. 이 입장의 근본을 해명하는 데서, 제5차 세계대회는 코뮤니스트 정치의 다른 모든 즉각 실천적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레닌주의의 기본원칙 문제와 프로그램의 문제에서 치고 올라오는 코뮤니스트적 수정주의의 쇄도에 맞서 특별한 방어벽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 부정적 기능의 이행에 의하여, 이 대회는 그 본질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행동의 이론적 의식에 다름 아닌, 레닌이 복원한 혁명적 맑스주의 과학의 완성된 방법의 위협적인 붕괴를 강력하게 저지할 수 있다. 코민테른 발전의 현국면에 있어서, 방법으로서 레닌주의의 본질을 긍정적[실정적]으로 고정하는 것은, 코뮤니스트 정치의 전시기에 타당한, 최종적인(궁극적인) 코뮤니스트 프로그램의 고정하는 것만큼이나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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