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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적)을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뿌리는 '부르주아지의 독재'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단지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의 꼭두각시 인형극에 불과하다. 그들은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선거는 부르주아지의 (의회/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인을 선출할 자유를 양보하는 순간이다. 그들이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줄 세력/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적 신비화를 지지하고, 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독재를 돕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계급은 4년,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지 의회/대통령 선거의 사기극에 맞서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다시 제기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히 무관심과 정치적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혁명당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대통령 선출이나 의회 다수파 장악을 통한 정권장악의 길은 결코 임금노동의 착취를 폐지하지 못하며, 지속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권리”마저도 쟁취-유지 못할 것이다. 오직 계급투쟁의 확산만이 자본이 잠시나마 노동자에게 일부를 양보할 수 있게 한다. 프롤레타리아혁명만이 착취 없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에 대한 질문」,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반(反)노동자 악법을 만든 주역들이 규칙을 정한 자본주의 선거에서
노동자는 승리할 수도, 권력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노동자는 선거에서 차악이냐 차선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고 위기를 전가하는 세력에 권력을 바치는 "선거냐"
노동자를 살리고 스스로 권력을 갖는 "투쟁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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