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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투쟁위원회’의 필요성에 대하여
국가의 전체주의적 편재성과 고도로 발달한 사회 통제가 특징인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에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상설 대중 조직은 더는 노동자의 물질적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대부분 노동조합은 노동자 파업을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완전한 부르주아 정치 기관이 되어, 자본주의 국가에 편입되었다. 국가에 편입된 노동조합은 사회 평화의 주요 집행자가 되었다.[1] 그러나 노동자의 관점에서 투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자본이 전가한 위기 비용 외에도,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희생, 즉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위기의 여파뿐만 아니라 전쟁 준비로 인한 해로운 영향으로도 고통받고 있다. 이는 캐나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는데, 연방 정부는 대부분의 부처 예산을 삭감하는 동시에 군대, 국경 보안 및 법 집행 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렸다.[2] 여러 나토(NATO) 회원국에서 정부 대표들은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 생활 조건 악화를 강요하겠다고 공공연히 발표하고 있으며, 징병제에 대한 논의도 증가하고 있다.[3] 마크 뤼테(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의 발언은 특히 이를 잘 드러낸다. “국방비 지출을 늘리면 다른 우선순위에 대한 지출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감소 폭은 크지 않다." 정말 작다. 노동자들, 특히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희생이 "최소한"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그에 따른 군사화는 또 다른 제국주의 진영의 주요 축인 중국과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수산업 생산에 투입되는 자원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다수 노동자가 겪는 가장 잔혹한 일상생활의 측면들을 완화하는 데 사용되지 못하는 자원이다. 우리가 본래 싸우려는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우리에게 무자비한 계급전쟁을 선포했기에 투쟁의 도구를 준비하고 반격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이 개인의 의식 수준과 관계없이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국가 어디에서든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조합은 우리의 투쟁을 억제하고, 와해시키고, 방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따라서 대대적 투쟁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비록 그러한 투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더라도, 투쟁이 시작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조합의 방해 책략에 무방비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가장 투쟁적이고 의식 있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동료 노동자들과 주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노동조합의 공격에 저항하고 그들의 책략에 반대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사회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 즉 코뮤니스트 의식이 노동계급 내에서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전쟁 준비가 초래하는 해로운 영향에 맞서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투쟁 의식이 더 강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파업이 시작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모든 주도권을 노동조합에 넘겨줘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조직화할 수 있다. 이는 새롭고 더 “급진적인” 노동조합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투쟁위원회는 노동자 투쟁의 역동성과 당면한 필요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 또한, 투쟁위원회를 투쟁 중인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모으는 기능을 하는 초기 형태의 총회나, 그러한 총회의 위임을 받은 파업위원회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투쟁위원회는 미래의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투쟁적이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소수의 노동자를 한데 모은다. 특히 그들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노동조합이 준비한 분열과 방해 책략에 맞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 전단 배포, 파업 연설, 선전전, 집회 및 시위 참여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조직한다.
- 다른 사업장이나 지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접촉하고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 심지어 실업자까지도 투쟁을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쟁위원회는 1960년대 후반과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수없이 생겨났다. 이탈리아(1970년대의 Coordinamenti), 프랑스, 스페인, 로테르담 항만 노동자 등[4]의 사례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노동자 투쟁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제하는 것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전쟁 준비를 명분으로 퍼붓는 부르주아지의 공격과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의 대대적인 파업을 조직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투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에서 발생할 대립에 대비하는 여러 대응책 중 하나이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첫째, 이러한 위원회는 전쟁을 위한 희생을 거부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둘째, 파업과 투쟁을 지역적으로 확대, 통일, 전면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러시아/나토에 대한 방어, 민족 해방, 민주주의와 조국 수호, 또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을 자기 계급의 이익에 반(反)하는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꾸며낸 그 어떤 허황된 구실이든 간에, 모든 계급 협조를 거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서 자발적인 선택 과정을 통해 모인 투쟁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러한 투쟁위원회는 노동조합이 내세우는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 즉 전쟁을 위한 희생 거부, 민족주의 거부, 그리고 공동의 요구를 위한 파업의 통일과 전면화를 통해 행동에 나서는 데 신중하거나 주저하는 동료들에게 투쟁의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투쟁위원회의 범위는 단일 사업장의 구성원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파업 운동은, 아래로부터의 파업을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는 비합법적인 비공인 파업뿐이다. 따라서 투쟁위원회는 특정 도시나 대도시권 내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투쟁위원회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활동을 자신의 사업장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자기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투쟁 가능성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노동계급이 직면한 일반적인 상황(구매력의 감소, 노동 강도의 심화, 사회 복지의 전반적인 악화)은 모든 사업장에서 동일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오직 자신의 사업장에서만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할 생디칼리즘적 일탈이다. 계급 갈등은 근본적으로 단일 사업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차원에서 나타난다. 이를 사업장으로 축소하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투쟁위원회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2022년 4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이 요청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 우리가 참여한 배경이 되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했다. “우리는 이 운동이 국제주의를 중심으로 혁명 세력을 재결집하려는 시도라고 보지 않는다. 이는 초기 단계의 침머발트 회의도 아니며, 당을 위한 투쟁의 순간도 아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 운동은 전쟁 준비가 야기하고 앞으로 더 심화할 공격에 맞선 전반적인 프롤레타리아 동원에 부응해야 한다. 이는 단지 프롤레타리아 재집결의 첫 번째 시도일 뿐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유형의 투쟁위원회가 ‘자발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침략에 대한 1차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저항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5]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의 지속적인 진전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방식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맥락과 쟁점을 결정짓는다. 투쟁위원회나 다른 조직 형태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가입 여부나 정치 조직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을 반드시 고려하고 투쟁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이 이러한 위원회에 대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6]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은 “국제주의자들”을 결집하\시키는 것이 위원회의 목적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토론토와 몬트리올 위원회를 활동적이고 여전히 기능하는 투쟁위원회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위원회들은 비록 대부분 고립되고 분산된 형태였지만, 지난 3년간 전개된 다양한 노동자 투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정치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노동계급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위원회는 12종류 이상의 전단을 배포하고, 여러 차례 공개 집회를 개최했으며, 다양한 피켓 시위에 참여하여 가장 투쟁적인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노동조합 정책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연락망과 회의 망을 구축했다.


만약, 캐나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투쟁위원회의 원칙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대규모로 실행된다면, 이는 노동계급에 중요한 정치적 진전을 의미하며, 부르주아지의 전쟁 도발 계획을 실질적으로 저지할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기 위해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을 멈추거나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원회들과 코뮤니스트들에 이는 단순히 노동자들에게 “전쟁 기계 파괴”나, 무기 생산과 같은 “전략적”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촉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행동도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주요 원칙은 계급적 파업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노동계급 전체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원칙들이 실행된다면, 노동자들은 당면한 투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전쟁으로의 행진을 저지하며, 혁명 전 단계의 상황을 조성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당면한 요구와 인류를 전례 없는 파멸과 몰락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역사적으로 낡은 체제를 극복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과제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이 실현되려면 계급 협조의 거부, 파업의 통일 및 전면화의 필요성, 그리고 전쟁 희생의 거부가 공장과 지역의 노동자선봉대에 의해 채택되고 전파되어야 하며, 이들은 투쟁위원회 또는 다른 어떤 조직 형태로든 조직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 진영과 미래의 세계혁명당은 소수 세력(투쟁위원회)의 투쟁 흐름이 나타나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안 되며, 그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초기부터 참여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투쟁위원회 결성을 촉구하거나, 더 나아가 주도적으로 결성해야 한다.
2025년 12월
스타브로스(Stavros)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주>
[1] 실제로 노조 지도부도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 자동차노조(CAW)의 전 회장 버즈 하그로브(Buzz Hargrove)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조는 파업을 일으키는 것보다 막는 경우가 더 많다. 노동자 4명 중 3명은 고용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훌륭한 노조는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 (...) 노동조합은 해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노동자 저항의 형태(낮은 생산성, 결근)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만약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노동계의 이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한다면, 파업을 막는 데 그토록 효과적인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버즈 하그로브, 『사랑의 노동: 더 인간적인 캐나다를 만들기 위한 투쟁』)
[2] https://budget.canada.ca/2025/report-rapport/intro-en.html
[3] https://www.economist.com/europe/2025/06/04/germany-is-building-a-big-scary-army
[4] 스페인의 코미시오네스 오브레라스(Comisiones Obreras, 현재 CCOO 노조)와 이탈리아의 코미타티 데 바시(Comitati de Basi, 현재 COBAS)는 인위적으로 조직을 유지하며 사실상 새로운 노조로 변모하기 전에는, 원래 진정한 투쟁위원회였다.
[5] 「혁명인가 전쟁인가」(Revolution or War) 30호, NWBCW 투쟁위원회에 대하여
http://www.igcl.org/No-doubt-we-shall-have-to-draw-up
[6] <역자 주>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서 노동계급에 관한 내용은 ”자본주의 위기 이후: 시위와 폭동 - 그리고 독립적인 계급 표현의 필요성” 참고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7-22/in-the-wake-of-the-capitalist-crisis-protests-and-riots-and-the-need-for-an
자기조직화에 관한 내용은 ”유일한 탈출구: 오직 우리 자신의 힘!” 참고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5-03/the-only-way-out-your-own-strength
<출처> 「혁명인가 전쟁인가」(Revolution or War) 32호
https://igcl.org/On-the-Need-for-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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