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2/05/18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의회주의/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 좌파의 투쟁

투표하지 말자!

photo_2021-01-05_19-25-46.jpg

 

1948년 이탈리아 선거

 

1945년 4월 25일 북부 이탈리아의 독일군은 연합군에 항복했다이날은 이제 이탈리아의 '민족해방'을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이 승리한 결과라기보다 반()파시스트 파르티잔의 헌신으로 신화화한 이탈리아의 국경일이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PCInt)은 1943년 전쟁에서 모든 제국주의 동맹에 반대하는 유일한 조직으로 결성되었다. 1945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비밀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이탈리아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은 전쟁의 위협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주축국이 패배하면서 제국주의 경쟁은 이제 스탈린의 소련과 트루먼이 이끄는 미국 사이의 '냉전'으로 옮겨갔다톨리아티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I)이 전쟁 후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통합 정부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살레르노 전환'에도 불구하고미국은 이탈리아가 코뮤니스트들에게 넘어갈 것을 두려워했다물론 그 코뮤니스트는 톨리아티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스탈린주의자들을 의미했다이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마셜 플랜(유럽 국가들을 복구하기 위해 130억 달러가 할당됨)을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의 첫 번째 민주 선거(1948년 1월 1일 헌법이 발효됨)에서 CIA는 데 가스페리(De Gasperi)의 기독교 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돈을 쏟아부었다아래의 전단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은 투표함에서 대리인이 싸운 이 냉전 투쟁이다.

 

당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게 선거는 도전이었다. 73개 도시와 읍에 있는 지부와 수천 명의 당원으로 당은 빠르게 성장했지만아직은 다양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일부는 1919년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의 입장으로 돌아가 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를 원했다하지만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없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지만선거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전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당은 반()의회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가당은 이미 1946년 지방선거에 선전 목적으로 참여했지만국회의원 선거가 더 큰 문제였다참여의 결정적 요인은 후보자를 내세운 정당이 모든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나 공청회에서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공공 플랫폼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에 체제 전체를 공격 할 수 있었다다음 전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의 목표는 여전히 반()의회적이었다핵심 구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실제로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술적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선거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지만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의회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이점을 결코 찾지 못했다반대로그 이후의 모든 선거 문서가 보여주듯이정치 체제에 대한 자본주의 언론의 지배가 증가한다는 것은 오늘날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단은 또한 1948년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이 이탈리아의 계급의식 상태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대부분 톨리아티의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의 계급 협력을 통해여전히 대부분 자본주의적 환상의 지배 아래 있으며이를 뒤집기 위한 투쟁이 길고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그 당시에는 그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어려울지 예측할 수 없었다. 1948년 4월 선거에서 유권자의 92.2%가 참여했고 자본주의 이탈리아의 전후 재건이 진행 중이었다.

 

2015년 5월 1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photo_2021-01-05_19-25-48.jpg

 

투표하지 말자!

 

어떠한 정당이나 그들의 전선에도 투표하지 말자!

그것은 전쟁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승리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다시 한번 의회민주주의는 여러분에게 대표를 선출할 자유를 주고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할 준비가 된 사람 중에서 선택할 자유를 준다그들은 어제는 파시스트 국가의 원칙과 제도 아래서 그랬고지금은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과 제도로 선거를 하는데모두 자본주의 국가의 원칙과 제도 아래 시행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이야기는 독점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인 승리의 전진에 대한 이야기이다그것은 지금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를 위한 영구적인 전쟁의 이야기가 되었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와 통일된 정치적 혁명 세력으로서의 물질적 파괴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세계 대학살의 문을 여는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암흑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의 이해관계가 자본주의와 그것의 경제정치 조직의 이해와 반대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전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가 아직 파산하지 않은 것이 경제와 그 이상의 지속적인 부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역사와 과학은 그것을 분명히 부정한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는 계급의 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의식을 파괴함으로써 필멸의 위기를 극복한다계급 내부에서 발생하는 정치세력이 타협과 협력의 관행에 현혹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자본주의는 바로 그 생산체제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고내부 모순으로부터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쇠퇴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더욱 명확해지는 징후를 통해 알고 있다만일 자본주의가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폭력속임수전쟁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과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떼어내어 제국주의와 전쟁의 대의에 확고히 연결된단순히 조작된 대중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자본주의 승리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거 투쟁에서 현재 정치세력의 동맹이 전쟁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배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서 입증되었다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 준비와 연계된 기회주의에 휩싸여 정치 현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선거운동 축제마저 전쟁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오늘날 데 가스페리(기독민주당)나 톨리아티(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에 대한 투표는 더 거대한 의회민주주의나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권력 장악을 위한 투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오직 경제노동국가의 살아있는 권력이 영-미인들의 의회민주주의의 진짜 전쟁 또는 러시아의 인민민주주의의 전쟁으로 몰아가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한마디로 말해서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제국주의 강도의 승리를 위한 총알받이로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여러분이나 노동자들에게 인민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즉 러시아와 미국스탈린과 트루먼 사이에는 역사적인 대척점이 없다고 말한다진정으로 역사적이고 살아있는 대척점은 자본의 독재 사이의 대립이지만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장한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두 당이 선전의 기초로 만든 문구와 선동적인 주장으로만 가득한 강령에 속지 말아야 한다주택고용 문제에 관한 것이든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든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를 압박하는 이 괴물 같은 국가 조직을 통합하는 결과를 초래할 구조 개혁에 관한 것이든 말이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은 투표할 것이고한편으로는 실직으로 인해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한 빵 조각을 얻을 기회를 잃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투표할 것이다한편으로는 그것이 일상생활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투표할 것이다.

 

혁명가로서 우리의 의무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투표하지 말자전쟁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승리를 위해 복무할 정당과 후보에 투표하지 말자.”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부르주아 진영의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있는 전쟁 정당과 그들의 전선에 연대하지 말자.

 

그들은 4월 25일의 대중운동을 이용해 파시스트든 반()파시스트든 부르주아지의 공장재산을 방어하는 무기로 만든 것에 대한 공동 및 개별적 책임이 있다또한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숙청과 사면에 대한 책임그리고 그들 모두는 계급 협조임금 삭감국가와의 화해의 의식적인 창조자이기 때문에 열악한 임금과 실업에 대해 공동 및 개별적인 책임이 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 여러분!

 

우리 투쟁의 상징, 10월 러시아혁명의 상징레닌은 부르주아 의회에 대한 투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부활의 신호즉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혁명적 계급의식의 부활을 나타내는 행동을 요구했다.

 

모든 전쟁 정당과 전선을 타도하라!

부르주아지 의회의 속임수를 타파하라!

제국주의 양 진영의 인민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전쟁을 타도하라!

프롤레타리아혁명 만세!

 

1948년 4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 집행위원회

 

<출처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5-05-01/don-t-vot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2012~2022년 한국 선거

2012~2022년 한국 선거

 

photo_2021-01-04_01-43-31.jpg

 

(2022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진보/보수 프레임공정과 능력세대/성별 분할지역주의민족주의 등)가 이슈의 용광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이처럼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이슈를 잠재우는 블랙홀 역할이 기본이다게다가 부르주아 정파 사이의 진흙탕 싸움(후보자/가족 비리 의혹 공방)으로 정치 무관심이라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결국 이번 선거판도 노동계급의 현실을 철저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그동안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하지만,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른바 진보좌파 운동세력은 실패한 선거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사회주의(?)좌파 공투본민중경선비판적지지 흐름 등이 그것이다물론 그들이 반복하는 낡은 선거전술은 이미 실패로 끝났음이 증명되었다.

 

이른바 좌파단위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 체제 전환을 위한 사회주의·좌파 대통령 선거·지방 선거 공동투쟁본부를 제안했다그러면서 소수 재벌과 자산 불로소득자를 위한 경제를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로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경제위기와 노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더 많은 이윤·더 많은 소비를 하며 더 많은 노동·더 많은 자연 수탈로 지탱되는 자본주의를 필요한 만큼 계획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더 적은 노동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체제 전환이 사회주의 정치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를 필요한 만큼 계획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자고 주장한다. 10년 전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 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라고 비판했다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개혁이라는 점을 스스로 시인했다.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선거에서의 공약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최종 목표와 코뮤니스트혁명의 전망을 가질 때만 노동계급의 무기가 된다. ‘자본주의 전복-노동자 자기 권력 쟁취라는 핵심 과정을 빠트린 채 사회주의 간판으로 후보를 내고 체제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희화화에 기여할 뿐이다.

 

한편민주노총 일부에서는 노동자민중의 대선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노동자민중경선을 추진하고 있고일부 민족주의 계열과 전직 관료 집단에서는 공개적인 이재명 지지나 비판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이 역시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구태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맑스주의자를 자임하는 일부 엘리트주의 학자와 사회단체에서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면서 윤석열 지지를 주장한 것이다타락과 혼돈으로 치닫는 부르주아 정치판만큼이나 노동자 운동 내부도 혼란스럽다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선거 자체다그 안에 노동자 정치가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노동자 운동 내 모든 선거참여 시도는 실패한 선거전술의 반복이다그들 중 이른바 좌파는 다른 세력과 다르게 사회주의 정치를 대중화시키겠다고 나섰지만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뮤니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 간판으로 급진적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투쟁으로 바꿔 말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군소정치 세력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수차례 증명되었음에도 선거철만 되면 선거주의자들의 고질병이 재발한다선거주의는 운동의 퇴조와 전망 부재에 처한 활동가들의 조급성과 결합하여 노동자 운동 내부로 급속히 확산된다그것은 온갖 합리화와 이합집산의 과정을 통해 본래 목적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부르주아 정치의 대안이라는 환상을 확산시킨다물론 이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넘어선다는 명분으로 또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포섭되면서도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며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하지만 그것은 부르주아 잔치판의 들러리로서 노동자 투쟁에 혼란만 가져다 줄 뿐이다.

 

사람들의 대대적인 변화는 반드시 코뮤니스트 의식의 이러한 대대적인 공조 속에서 확인되는데왜냐하면 그러한 변화는 단지 하나의 실천적인 운동즉 혁명 속에서만 실행 가능해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한 까닭은 혁명이 단지 지배계급을 전복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을 전복한 계급이 오직 혁명 속에서만 스스로 낡은 체제의 모든 썩은 것을 쓸어 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맑스)

 

노동계급의 미래는 다른 계급이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의 정치적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노동계급 스스로 투쟁하고 개척해야 한다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강화해주는 부르주아 정치 참여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와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통해서만 진정한 노동자 정치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따라서 선거 시기 부르주아 서커스 쇼에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선거 참여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은 계급투쟁 속에서 자신이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하나의 계급임을 깨닫는다물론 투쟁만으로는 계급의식이 발전하지 않는다그것은 작업장부문지역민족국가를 넘어 연대하고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여 투쟁하는 국제주의 원칙이 노동자 의식에 자리 잡아야 가능하다계급의식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꾸준한 실천과 성찰이 필요하다노동자투사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의 만남토론실천이 그것을 앞당길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의 계급투쟁 조건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운동 속에서 그동안 투쟁을 패배로 이끈 낡은 운동과의 단절과 새로운 운동 창출을 요구하고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주의라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 투쟁이 직접 만나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자.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선거주의와 단절하자!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만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

 

2022년 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이 글은 코뮤니스트」 14호에 실린 글을 보완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photo_2021-01-07_14-46-45.jpg

 

(2020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다시 꺼내든 낡은 당 건설 노선 비판 -

 

노동자의 주변에는 항상 자신들이 노동계급을 대변하거나 지도하는 세력이라 자임하는 정파와 파벌이 득세하고 있다여기에는 소수이지만노동계급의 해방과 사회주의를 실천한다는 세력도 일부 포함된다그들은 항상 "노동계급이 역사와 혁명의 주체이고...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해야만 노동해방에 이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하지만 그들이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과 권력 장악 이후까지 일관되게 노동계급을 권력과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지아니면 반대로 계급을 대리하거나 이용하는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에는 사회주의/혁명 세력을 자임하면서 반()자본주의사회변혁노동해방사회주의자 등을 내걸고 노동자 운동에서 이른바 좌파 블록을 형성한 세력이 존재한다이들이 좌파 블록으로 모인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온갖 폐해를 끼치며 기득권을 누려온 다수파 운동(이른바 자민통으로 지칭되는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엄밀히 보면 자기 운동의 최종목표와 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한 운동의 퇴보에 기인한다이들은 쇠퇴기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 개혁을 넘어선 혁명적 이행전략을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그러나 현실 투쟁에서는 사회주의와 무관한 실천만을 하면서 대외적으로 급진적 구호와 기회주의적 전술을 섞어 자신들의 조합주의/노동자주의/선거주의 실천을 합리화하고 있다이렇듯 좌파의 정체성은 단지 다수파 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적 기질과 줄서기로 드러낼 뿐이다.

 

이들 좌파 중 다수는 혁명적 이행전략인 노동자(평의회권력 창출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소수파 운동의 한계 속에서도 현실에서 혁명적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면서 전략적 과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계급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장기적 전망에서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한 실천즉 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자기 조직화로 나아가는 장기적 목표를 향해 꾸준히 실천하지 않고단기적이고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공동전선의 일종인 좌파 블록이 정치노선과 전략적 목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대부분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형성되는 경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욱이 이들이 개량주의 세력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입당 전술과 노동자 공동전선은 오히려 개량주의 세력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고 혁명 세력과 함께한다는 환상을 유포 시켜그들의 본질을 가려주고 입지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이러한 동맹은 자신들이 다수파를 장악하지 않는 한 그들과 함께하는 내내 개량주의 노선을 묵인하게 된다. 결국개량주의 세력과의 동맹을 옹호하는 전술의 결말은 노동자들이 그것으로부터의 단절하는 시간을 지연할 뿐이다더욱이 이러한 전술의 남발로 인한 이합집산과 분열의 반복은 노동자에게 정치 운동의 신뢰를 잃게 할 뿐 아니라현장 투쟁에서 단결을 실질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들은 자신이 계급의 전위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과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자만에 빠져온갖 현장 투쟁에 개입하면서 투쟁의 목표와 원칙을 훼손하거나 계급의식 발전과 자기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와 운동의 발전에 복무하지 않고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 정세에 조급하게 개입하는 운동이장기적 전망이나 운동의 본질에 접근하는 투쟁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급의 전위란 자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전위는 계급투쟁 과정에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분을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매우 길고 힘든 계급의식 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퇴조-상승의 모든 기간에운동의 최종목표를 명확히 하고 (코뮤니스트혁명 강령을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방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혁명적 소수의 신뢰와 영향력이 노동계급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주요한 투쟁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계급의 전위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하늘에서 떨어진 전위(혁명조직)가 노동계급을 혁명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계급 안에 혁명적 부분(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위가 존재하는 것이다따라서 혁명당(조직)은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계급 안에서 계급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 강령을 방어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계급 주위에서 전위 역할을 한다는 세력들은계급투쟁 개입을 노동자 투쟁을 대리하거나 자신들이 투쟁의 배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들은 공동전선이라는 외피를 쓰고 상층중심의 공동전선(투쟁), 입당 전술노동자 후보/선거연합계급연합노동자정부 등의 혼란스러운 전술을 남발하고 있다이러한 공동전선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공동전선의 상대에 따라 강령의 수준을 낮추고 전술의 원칙을 바꿔가면서 계급의식을 혼란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아직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부르주아의 책략에 눈을 감는 상태에서혁명조직의 책무는 혁명의 최종목표를 보다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알려 행동을 촉진하는 일이지자신의 정치를 부르주아 대중 정치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당 건설 경로에서도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적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고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코뮤니스트 노동자가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혁명적 주체를 형성하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이들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조급한 정세 대응에만 매달리거나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지속해서 후퇴시켜왔다.

 

이제는 반성 대신 생존을 위해, ‘사회주의/좌파 대선후보를 통한 당 건설이라는 이름만 바뀐 낡은 전술을 들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그것은 정치 노선이 불분명한 의회주의 제도권 소수 정당과 (사회주의혁명 노선을 포기한()제도권 소수 정당이 결합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로 표현되었다이들 중 한 축은 9년 전에 선거주의 세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다른 한 축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위로부터의 대선 투쟁(후보전술)을 통해 그리고 실패한 진보정당 운동과 야권연대에 대한 반()정립 운동을 통해 투쟁 동력과 당 건설 주체를 확보하여 당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거짓을 유포했다결국공동전선을 통한 단계론적 계급정당 건설 노선이 선거 전술과 혼합되어 타락하는 운동 세력의 유일한 생존전략이 되었었다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도 없이 이들은 더욱 우경화하여 사회주의 좌파 후보’ 간판을 내걸고 부르주아 제도권 정당으로 향하는 최악의 생존 전략을 채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이제라도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을 포기하고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로 전향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신의며운동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들이 향하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비판은 아래 글로 대신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가능한 최고의 정치적인 외피이다. ... 자본은 ... 그 권력을 매우 공고하게 확립하는데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또는 어떤 정당의 변화도 이를 흔들 수 없다." (레닌국가와 혁명)

 

"민주주의선거는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권력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정치 무대이다실제로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공공의 의견"을 매스미디어부터 시작하여 학교종교 제도로 모양 짓는 도구를 통제한다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것도 아니다모든 제도적 결정은 자본가들의 경제적 필요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따라서 국가의 관리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들이다.

 

이러한 제도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며이 제도들이 진실로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보유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인 수단인 한 그러하다.

 

다양한 제도권 정당들은 지배하는 자와 그 반대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기만적인 게임을 수행한다. ‘끼리 대립 뒤에는 종종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있을 뿐이거나더 단순하게는 더 안락한 제도권 의석에 앉으려는 서로 다른 정치인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 체제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최선의 경우에도 정당은 관리에 있어서 환상에 불과한 차이를 제안할 뿐이다보다 인간적인공정한더욱 민주적인’ 얼굴의 자본주의 등의회에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자칭 코뮤니스트 정당들 또한 진정한 혁명적 강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그들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제도적인 경로라는 환상만을 확산시킬 뿐이며대부분 언제나 (이른바 급진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라도지역 기관들에서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한다.

 

따라서 우리의 약속은 선거에서 대중 투표를 목표로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건설이 아니다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정당이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에서의 당 건설과 같다더욱이 진공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진흙탕(부르주아 선거판)에 빠져버리는 것은그동안 진공상태에서 운동을 해왔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혁명의 승리는 계급의식이 혁명 강령에 근접했을 때 현실화한다이때 당과 계급은 차이는 가장 가까워지며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당프롤레타리아 대중정당으로 현실화한다따라서 계급의식이 정체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일상시기에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혁명과는 거리가 먼 개량주의 당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또한강령에 입각한 혁명적 실천에 기반을 두지 않고 (다수의 비활동 당원을 포함한 채노동조합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모아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의 일을 대신하거나 관료적으로 관리하는 대리주의 당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건설할 당은 선거가 아니라 계급전쟁을 준비하는 당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독립한 계급 정당이다자본주의 쇠퇴기끝 모를 위기의 시기노동계급에 필요한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하는 세계혁명당임을 명심하자.

 

2020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형로

 

이 글은 코뮤니스트」 12호에 실린 글을 보완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