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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19년 _ 10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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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19년 _ 10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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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복간 2호」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2

  •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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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항상적이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1인터내셔널은 상승기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2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그리고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사회주의를 참칭하였고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자 계급을 억압·착취하였다더구나 1989년 동구블록과 스탈린 체제의 몰락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의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대적할 폭이나 의식그리고 능력은 지니지 못했다. 2003년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1989년 이래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기가 되었다노동자의 투쟁은 주로 중심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2005년 보잉과 뉴욕교통), 독일(2004년 다임러와 오펠, 2006년 봄 의사, 2007년 봄 독일 텔레콤), 영국(2005년 3월 런던공항), 프랑스(2006년 CPE 반대 투쟁)가 있고주변부 국가로는 두바이(2006년 봄 건설노동자), 방글라데시(2006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벌어진 세계의 계급투쟁은 이집트 두바이알제리베네쥬엘라페루터키그리스핀란드불가리아헝가리러시아이태리영국독일프랑스미국 등 전 세계로 확대되었으며, 2009년부터 심화되는 대공황과 국가 부채재정악화로 인한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공격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의 공세적 투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미국 월가의 점령 투쟁아프리카의 민주화투쟁중국인도에서의 노동자 투쟁은 쇠퇴기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40년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생활표준에 대한 공격특히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렸다.

둘째점점 야만의 형식을 취하는 군사갈등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가시적 위협은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반자본운동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혁명을 벗어나게 하려는 부르주아지가 숨긴 항체이다.

셋째스탈린주의와 20여 년 전 그 몰락 이후의 부르주아 캠페인이 만든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지금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린이였다.

 

그런데 4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왔다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그 마약을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마찬가지였다이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이다그것은 또한 전 세계 노동자의 가난제국주의 전쟁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50여 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한 번 야만인가 문명인가’, ‘코뮤니즘의 물질적 필요성을 말하는 역사적문명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자본주의 쇠퇴의 객관적 법칙과 조건이 생산권력역사의 주체인 노동계급과 만나 서로 침투하는 계급투쟁을 전개하는데 코뮤니스트의 역사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코뮤니스트는 맑스주의 원칙 중에서도 국제주의의 원칙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자본주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국주의 전쟁과 파시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해방투쟁에 왜 참여하지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왜 그것을 지지해야하는가의 문제야말로 민족해방” 투쟁에 대해 가져야 할 관점이다국제주의는 공산주의 초석 중의 하나이다그것은 1848년 이래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는 노동자 운동 속에 잘 확립되어 왔고 공산주의 선언의 마지막 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 담겨져 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민족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었다그들의 전반적인 전망은 세계시장의 분석과 미래의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가 지구적 인간 공동체세계적인 생산자 연합이라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상승기에 글을 썼고그 시기는 부르주아지가 봉건적 지배의 족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진보적이고 혁명적 계급이었다그들의 시대에 자본주의적 상품관계는 생산력의 진보적 발전의 유일한 기반이었다그 당시 혁명가들의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한 것은 이러한 관점 때문이다이 시기에 민족전쟁에 대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를 구별시킨 두 가지가 있다.

 

첫째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시기에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민족자결에 대한 추상적 권리를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이해했다는 점이다그러므로 그들은 심지어 노동자가 절대주의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지의 투쟁을 지지할 때에도 부르주아지로부터 엄격한 정치적 독립을 프롤레타리아트가 유지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맑스와 엥겔스와 같이 레닌도 민족해방투쟁이 부르주아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하게 보았다그러나 레닌은 러시아와 식민지 국가에서 봉건제를 전복하고민족독립을 성취하는 부르주아지의 임무는 완수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룩셈부르크의 비판으로부터 민족자결권의 구호를 유지하는 볼셰비키의 입장을 방어했다반면 룩셈부르크에게 제국주의는 단순히 후진국가에 대해 선진자본이 저지른 강도적인 형식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관계의 총체성의 표현이었다그 후 스탈린주의 관료주의는 세계자본에 내재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이 되는 것과 달리 러시아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종속되는 세력으로그 착취의 도구였다.

 

2차 세계대전을 경과하면서 식민지에서 민족운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화했다.

 

첫째전쟁 후 몇 년 간 비교적 평화적인 탈식민지화의 경향이 있었다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폭력적인 민족운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옛 식민종주국은 재빨리 민족” 독립에 동의했다대영제국의 평화적” 해체는 가장 적절한 보기이다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식민지 국가들이 스스로 자본주의적이며 지구적 자본의 확대재생산의 기반으로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한국베트남중동 등에서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후 세력 균형의 산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인류의 가장 기본적 필요에 부응할 수 없는 무능력과 구식민지 지역의 극단적인 사회적 해체 때문이었다이 전쟁에서 제국주의는 직접 서로 부딪치지 않았고 지역갈등이 강대국”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매개 구실을 했다이는 지역 부르주아지가 항상 강대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이다지역 부르주아지는 그들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있고 제국주의적이다자본주의 쇠퇴 시대에 모든 민족국가는 제국주의 권력이다.

1960년대에는 제3세계주의와 민족해방 신화의 전성기였다좌파와 자유주의자는 베트남 전쟁을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베트남 인민의 영웅적 투쟁으로중국을 세계의 피억압민중의 성채로카스트로벤 벨라 등에 대한 숭배로 나아갔고모든 세대의 학생과 심지어 노동계급의 전투파까지도 이러한 신화에서 자양분을 얻고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연대운동을 전개했다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 신화로부터 제국주의가 준 돈을 받고 면제되었으며3세계 인민의 등 뒤에서 세워진 자본주의 번영의 혜택을 즐겼다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주요 혁명세력이 아니었다혁명의 주동력은 훈련된 게릴라 군대가 이끌고 도시에서의 새로운 혁명전위(노동자가 아닌 학생흑인여성)와 연대함으로써 후진국 농민과 빈민대중의 봉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는 이러한 모든 신화가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라는 빛에 의해 무자비하게 노출되었다역사적으로 파산된 세계질서의 위기는 두 개의 주요계급으로부터 두 가지 기본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경쟁하는 민족국가와 제국주의의 블록으로 나누어진 부르주아지는 세계 전쟁으로 내몰린다사회적 부의 생산자인 노동계급은 자신의 생활표준을 방어하는 투쟁즉 전쟁을 향한 움직임을 막고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간다이렇게 두 계급의 분리되는 경향은 70년대에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허위와 환상을 흔들어 놓았다.

 

세계자본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떠한 새로운 독립적 자본주의도 나타날 수 없다또한 민족해방은 불가능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환상은 거의 사라졌지만 두 가지 다른 형태로 국제주의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반세계화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주의의 복원을 통한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이다반세계화운동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선전과 같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① 자본주의는 유일한 가능한 체제이고 그 개혁이 유일한 대안이다.

② Attac과 같은 조직의 운동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잘 규제된 자본주의가 사악한 금융자본을 몰아내면 인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③ 위기는 신자유주의 탈규제화와 산업자본으로부터의 투자수익률 15% 요구하는 금융자본의 독재의 결과이다.

④ 내핍금융 불안불경기는 부르주아지 내의 새로운 힘의 균형의 결과에 불과하다

 

모든 반세계화 운동 세력의 중심 기조는 세계자본주의에 근본적 대안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흐름은 반미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빈곤화되는 농민도시 빈민노동자의 밑으로부터 혁명적 분출을 기반으로 한 남미의 민중주의적 경향이다한 국가 내에서의 미국 자본과 민족 자본의 대립에 근거한 국유화 등의 조치는 세계자본 내에 경쟁하는 자본의 분파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계자본주의의 운동과 위기모순쇠퇴를 이해한다면 100년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경험한 오류를 다시 되풀이하는 엄청난 장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열어갈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비타협적인 자발적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일이다.

계급의 투쟁을 엇나가게 하고 자본의 분파와 연결시키는 모든 세력 (노동조합이건좌파당이건민족해방전선이건)으로부터 독립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세력들과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오늘날 노동계급에게 열린 유일한 전선은 자본에 대항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전선이다이런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에서 차악은 없다자본주의의 위기가 국제적인 것처럼 노동계급의 투쟁도 국제적이다.

 

둘째세계적 내전으로 길을 여는 일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중심 자본주의의 쇠사슬을 끊을 때까지무기력하게 기다리도록 제3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저주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민족해방전선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이러한 견해는 지구적 사회관계로서의 자본을그리고 하나의” 세계 계급으로서의 노동계급을 이해하지 못한다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선진국에서 일어나든3세계에서 일어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어느 곳에서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확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세계적 내전의 시기를 연다는 것이다여기서 내전은 권력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되자마자 프롤레타리아트는 죽을 때까지 자본과의 투쟁을 시작함을 의미한다그것은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 계급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고려라는 전반적 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군사적” 확장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무장된 프롤레타리아트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혁명 투쟁을 촉구하지만 테러를 사용하지 않는다어떠한 경우라도 핵과 세균전쟁을 사용할 수 없다.

 

셋째세계의 인류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옛 노동자운동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민족 선구자 뒤에서 실현될 수 있고 세계 공동체는 사회주의 경제의 점진적 융합 과정으로 창조될 수 있다는 혼란스런 생각이 가능했다그러나 러시아 경험은 일국 사회주의 건설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공산주의가 결정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자본주의는 모든 곳에서 결정적으로 파괴되어야만 한다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 건설될 수 없다.

 

 

4. 결론에 대신하여

 

ICC는 최근 기관지 국제평론」 161호 (2018년 6)에 제국주의 긴장에 관한 보고서를 게재하면서 현 자본주의의 쇠퇴기 해체의 특성을 제국주의 긴장의 진화과정으로 진단하고 있다첫째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세계 경찰에서 자신만을 위한 주요 선전자로 변화하는 점둘째중국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대결을 회피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점셋째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와 호전적인 수사가 부상하고 있는 점넷째유럽연합이 분열화를 향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 해체국면의 특성을 1930년대의 파시즘의 재등장으로 보거나 신파시즘(Neo-Fascism)으로 부르는 일부 입장과 견해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이는 이미 1930년대에 파시즘과 민주주의를 대립적 본질로 보고 반파시즘 투쟁을 민주주의 투쟁으로 동일시했던 오류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1934년 12월 오토리노 페론(Ottorino Perrone)은 파시즘민주주의코뮤니즘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다른 기관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보면서 이론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와 노동계급 사이에는 환원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가 있다고 규정한다. (비타협」 2018. 7월 2. 23또한 그는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당과 조직을 자본주의 편에 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반대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파시스트의 승리로 이끄는 노선이었지 프롤레타리아트의 방어와 승리로 이끄는 노선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윗글 28)

 

코뮤니스트 좌파는 부르주아 좌파가 분석했던 방식으로 파시즘을 분석하지 않았다그들은 이탈리아독일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국가권력의 침략을 혁명적 계급투쟁의 패배 결과와 완결로 설명했다이 시기 부르주아는 파시즘을 정부의 한 형식으로 수용했으며 파시즘스탈린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자본주의테러 그리고 제국주의 블록에 의한 대량파괴의 현실을 완벽하게 숨기려는 깃발 아래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였다파시즘은 1917 ∼ 23년 혁명적 물결 이후 반혁명에 한정되어 있는 현상이다오늘날 정부 형식으로 파시즘은 의제에 올라 있지 않다트럼프주의 같은 경향을 신파시즘으로 부른다면 이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억압하는 국가의 부속물로 설명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좌파와 맑스주의 인본주의Fredo Corro 2017. 9월 참조)

 

그러나 포퓰리즘은 쇠퇴기 자본주의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의제에 올라있다. ICC는 22회 대회의 국제계급투쟁에 대한 결의 (2017년 4)에서 포퓰리즘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코뮤니스트」 2018 7. 157 -8)

 

최근의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이 모든 요인들 - 2008년의 경제적 붕괴전쟁의 충격테러리즘 그리고 난민 위기 에 의해 성장했고 체제 해체와 사회의 두 주요한 계급들 모두 인류에게 미래를 위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농축된 표현으로 나타났다지배계급의 관점에서는 70년대 개방경제위기의 출발에서부터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특히 전후 호황을 지배했던 케인즈주의 정책이 소진됨을 의미했다. (중략포퓰리스트 정책의 본질은 부르주아 사회의 불평등의 정치적 행정적 그리고 법적 공식화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해결책 (계급 없는 사회)을 내놓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포퓰리스트의 반동적 정책은 존재하는 위선적인 가짜 평등을 노골적이고 솔직한“ 불법적 차별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뮤니스트의 확실한 전망을 하기란 쉽지 않다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국면으로 보이는 해체의 국면에서 코뮤니스트의 자세를 다음 문항으로 대신한다.

 

 

 

 

시간은 더 이상 노동계급의 편이 아니다그러나 그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실제로 오늘날에는 1917년 이후뿐만 아니라 1918 - 19년의 투쟁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되찾아야만 한다이 작업을 혁명가들에게 계급의 실제 운동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로 드러난 전망을 분석하고 이러한 이론적 노력의 바탕 위에 코뮤니스트로서 입장의 첨단에 설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답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의 끈질긴 작업이 필요하다”(윗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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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복간 2호」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1

  •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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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2006년 10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에서 발표한 나의 논문 「자본주의 쇠퇴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에서 나는 자본주의 쇠퇴이론이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중심적 이론으로 앞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의 기초가 되며 공산주의 전망을 여는 열쇠라고 보고 좌익공산주의 내의 자본주의 쇠퇴에 관한 논쟁을 정리하고 있다. 물론 이 논쟁은 1990년대 말부터 2005년까지의 논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글의 잠정 결론으로 나는 더 공개적인 논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토론 주제를 제기한 바 있다.1)

     

    첫째, 자본주의 쇠퇴 이론과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 사회건설의 핵심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경제이론의 양적 기준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따라서 유물론에 철저하게 기초하면서 총체성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경제 메커니즘과 계급투쟁의 변증법적 통합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넷 째, 부르주아지의 저항능력이나 기술발전의 힘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는 부적절하다.

    다섯째, 쇠퇴와 자본의 실질적 지배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여섯째,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에 대한 인류학적, 문화적 연구가 쇠퇴와 관련되어 폭넓게 연구되어야 한다.

    일곱째, 자본축적에서 포드주의, 포스트포드주의의 이분법을 넘어 쇠퇴시대의 울트라 포드주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덟째, 맑스주의 핵심과 그의 이론적 간극과 빈틈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 이후에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나 대립되는 지점, 보기를 들어 이윤율 경향적 저하 법칙과 시장포화론 사이의 대립을 맑스 안에서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최근 논쟁을 정리하고 최근까지 자본주의 위기의 역사를 쇠퇴의 마지막 단계로 보는 근거와 그에 기초한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을 분석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그와 같은 전망 아래에서 한국의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도 간략하게 모색하고자 한다.

     

     

    2. 자본주의의 위기와 쇠퇴에 관한 논쟁의 역사 개괄

     

    로자 룩셈부르크가 1913년 「자본의 축적」을, 헨릭 그로스만이 1929년에 「자본의 축적과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출간했는데, 룩셈부르크는 시장의 부족을, 그로스만은 이윤의 부족을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았는데 안톤 판네쿡은 1934년 「자본주의 붕괴론」에서 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의 이론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는 순수하게 경제적 이유만으로 몰락하지 않고 노동계급의 의식적 행위를 통해서만 끝장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을 전공한 판네쿡은 맑스주의자로서 뿐만 아니라 수학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기반으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강조하여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본주의, 위기, 궁핍화,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통일체로서 자본주의를 붕괴로 이끈다고 보았으며 자본주의가 몰락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점점 노동자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고 투쟁하게 만듦으로써 노동자가 자본주의 자체를 전복하는 의지와 힘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판네쿡의 이와 같은 혁명의 주체로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에 대한 강조는 그 당시 제2인터내셔널과 사회민주주의당을 지배하고 있었던 “엥겔스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발본적 사회비판을 자연과학의 방법과 잘못 등치시킴으로써 맑스의 탐구방법을 전환시킨 엥겔스주의는 자연의 변증법을 정교화 시키는 과정에서 유사신비주의적인 헤겔의 교조로 퇴행시켰다고 비난받았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자본의 욕구로 통합시킨 제2인터내셔널은 노동계급의 정치사에서의 어떠한 연속성도 거부했다. 이 당시 엥겔스는 자본주의 중심부를 싸고 있는 비자본주의국가에 대한 정복이 가속화되면서 자본주의가 스스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았다. 다시 말해 엥겔스는 지구의 비자본주의 영역의 정복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이 자본주의의 중심인 유럽으로 그 발전의 위험을 되돌림으로써 혁명의 성숙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문명을 야만으로 빠지도록 위협하고 있다고 보았다.2)

     

    19세기 마지막 수십 년 동안의 커다란 제국주의의 팽창은 극적인 성장률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시기는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생활표준이 개선되면서 예기지 못한 번영과 진보의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는 유리한 객관적 조건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으로 조직된 노동자 운동의 영향력 증가의 덕이었고 개량주의의 출현의 기반이기도 했다. 이는 다른 형태로 수정주의, 개량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자본주의 쇠퇴(몰락)이론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레닌, 홀랜드의 호르터와 판네쿡, 미국의 부딘(Louis Boudin, 「The Theoretical system of Karl Marx(1907)」, 로자 룩셈부르크 (「Sociel Reform or Revolution(1900)」의 수정주의 비판이 그것이다. 이 둘은 위기 극복과는 거리가 멀게 카르텔과 신용을 통한 자본의 “조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응이며 이는 더 크고 많은 파괴적 수단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증가시킨다고 보았다. 특히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쇠퇴의 위기의 새벽이 어떠한 형태를 취할지라도 자본주의의 파국적 몰락의 전망 없이는 사회주의가 단순한 유토피아라고 주장했다.3)

     

    2.1. 좌익공산주의 내부의 자본주의 위기 논쟁

     

     

    이윤의 부족과 시장의 부족에 대한 판네쿡의 비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좌익 공산주의 내에서의 자본주의 위기 논쟁(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의 대립으로부터 이어지는)을 「국제공산주의흐름」과 「국제공산주의경향(또는 「공산주의노동자조직(CWO))」과의 논쟁(2006년 이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국제공산주의흐름」과 「혁명당국제서기국(IBRP)」과의 논쟁은 1977년 좌익 공산주의의 통합 흐름이 실패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국제공산주의흐름」은 「국제평론」 12호(1978)의 “「공산주의노동자조직(CWO)」에 대한 ICC의 대답”, 「국제평론」 13호의 “맑스주의와 위기이론”, 「국제평론」 16호의 “경제이론들”, 「국제평론」 19호의 “제국주의에 대하여”, 「국제평론」 22호의 “위기이론들”, 「국제평론」 82호의 “IBRP의 쇠퇴개념과 전쟁의 문제”, 「국제평론」 83호의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 IBRP에 대한 답변”, 「국제평론」 84호의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 이론들: IBRP에 답하여”, 「국제평론」 121호(2005)의 “혼돈으로의 전락”에 그 논쟁을 실었다. 자본주의 쇠퇴와 관련된 2005년까지의 논쟁은 이미 나의 글(각주1참조)에서 정리한 바 있다. 그 이후 논쟁의 촉발은 「공산주의노동자조직」의 「혁명적 전망」 27호(2005년 11월)에 실린 글 “자본주의 쇠퇴기에서의 전쟁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국제공산주의흐름」의 비판 글이 「국제평론」 127호(2006, 4th Quarter, 10-17쪽)에 “CWO에 대한 답변: 자본주의 쇠퇴기의 전쟁(1부)”에 실리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 논쟁의 목적은 공산주의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이행하기 위한 기초로서 인류사회의 진화에 대한 맑스주의의 분석을 재확인하고 발전시킬 필요성 때문이었다. 「혁명적 전망」이 전쟁에 뒤이은 번영은 전쟁의 효과가 이윤율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국제평론」은 거부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세계전쟁이 자본주의 생존에 필수적이었고, 19세기의 10년 주기의 위기를 대체했다고 보는, 다시 말하여 자본주의 위기분석을 이윤율 저하 경향에만 기초하고 있는 「공산주의노동자조직」의 입장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국제평론」 127호(2006년 4th Quarter)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4)

     

    첫째, IBRP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모순에 대한 맑스의 분석을 매우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폴 매틱(1904-81) 5)의 영향을 받은 IBRP의 접근방법은 자본주의의 쇠퇴, 위기,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 파멸의 중요한 표현 중의 하나인 전쟁의 뿌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전쟁이 자본주의 파탄의 마지막 보기이고 자본주의 경제모순의 악화의 표현일지라도 경제위기와 전쟁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번영이 전쟁 중에 일어난 파괴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자본주의 생존에 대한 전쟁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이론이 노동자 운동의 전통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CWO의 분석은 평의회주의자 폴 매틱의 「맑스와 케인즈」에서의 경제주의적 분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자본주의 쇠퇴기에서의 전쟁의 합리성에 대한 생각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반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자본주의 생존에 대한 전쟁의 경제적 필요성의 기초는 사회적 진화에 대한 이해로부터 계급투쟁을 완전히 제거시키는 조야한 유물론이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노동자 운동에서 중심위치를 차지했지만 그것은 IBRP가 주장하듯이 자본주의 생존에서의 경제적 역할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쇠퇴기를 열었기 때문이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분열의 뿌리였던 세계전쟁이 노동자 운동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었고, 바로 그 참상 때문에 첫 번째 세계적인 혁명 물결(1917-23)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은 스탈린주의를 거부한 모든 공산주의 그룹들에 대한 정치적 시험대였기 때문이며, 제국주의 전쟁은 인류의 생산, 역사, 문화적 자산 등의 모든 유산과, 그리고 그 주요구성요소인 노동계급과 전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전쟁이 노동자 운동의 중요한 문제였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제국주의적 이유 때문이었다.

     

     

    이 글에서 ICC는 맑스와 CWO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쇠퇴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쟁의 뿌리라는 CWO의 주장에 대해 ICC는 맑스를 따라 이 법칙이 자본주의 역학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두 가지 행위 중의 하나로만 개입한다고 본다. 맑스는 항상 축적의 순환을 완결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충분한 이윤을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하는 상품은 팔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맑스는 둘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만 생산하는 행위는 파는 행위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했으며 부르주아 정치경제학과 반대로 생산이 자동적으로 자신의 시장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생산과 시장이 다르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잉여 노동의 추출(생산의 첫 번째 행위)은 사회의 생산력에 의해 제한되는 반면, 이 잉여노동의 시장에서의 실현(판매되는 두 번째 행위)은 사회의 소비력에 의해 제한받기 때문이다 (Capital Vol.III. Section III, “Exposition of the Internal Contradictions of the Law”). 그런데 CWO/IBRP 는 첫 번째 행위에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환원시키고 있는데, 이는 폴 매틱을 따라 생산 그 자체가 자신의 시장을 생기게 한다는 해석 때문이다.

     

    사실 CWO/IBRP의 이러한 입장은 리카르도, 세이, 밀 같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견해로 맑스가 한 세기 전에 비판한 바 있다. 사회의 소비력의 한계는 사회적 소비가 다소 좁은 한계 내에서 감소하는 것으로 분배의 적대적 조건에 기초하고 있다.6)

     

    이는 착취에 기초한 기존의 모든 생산양식과 같이 자본주의는 잉여노동의 전유에 대한 적대적 계급 사이의 갈등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피착취자의 소비자의 힘을 제한하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이고 영구적인 경향은 사회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모순, 즉 점증하는 생산의 사회적 차원과 사적 전유 사이의 모순을 나타내는 또 다른 보기이다.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은 생산의 다른 비용처럼 최소화해야 할 비용으로 보이지만 전체로서의 자본주의 기능이라는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임금의 총량은 개별자본가가 그의 생산의 출구를 반영하는 시장인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에 노동자를 연결시키는 구체적 관계는 임노동이다. 자본은 임노동을 전제로 하며 임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임노동은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이윤율 저하 경향과 경쟁에 의해 박차를 가하는 체계로서 항상적으로 임노동의 착취를 한계점까지 밀어붙이고, 가치법칙의 적용면을 확장하여 끊임없이 축적하고, 지불 능력이 있는 시장을 확장한다. 이러한 동학 내에서 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즉 이윤의 총량을 보상하고 증가시키기 위해 대량생산을 통해 개별 자본가가 매 상품마다 이윤율 하락을 보상하기 위해 밀어붙인다. 그러나 임노동은 생산이 점점 사회적 성격을 가정하고 전 세계로 확장되지만 잉여생산물은 아직도 사적으로 전유되는 모순적 관계이다.

     

    “과잉생산은 구체적으로 자본생산의 보편적 법칙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즉 생산력에 의해 정해진 한계까지 생산하는 것, 다시 말해 시장의 실제적

    한계나 지불능력이 뒷받침한 필요에 대한 고려 없이 주어진 자본의 양으로 최대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7)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는 수요의 상대적 제한을 통한 과잉생산위기의 불가피성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한편으로 개별자본가에게는 이윤율 하락을 보상하기 위해 생산을 증진시킬 필요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이 맞부딪힌 장애물, 즉 이윤율 저하 경향이 가져다 준 잉여가치의 불충분성 이전에 발생한 생산의 출구에 필요한 시장의 상대적 축소를 통한 위기의 발발을 말하고 있다. 과잉생산의 위기는 자본의 이윤과 위기(이윤율)와 분배(지불능력이 있는 시장의 부족) 모두에서 위기로 나타난다. 이윤율 하락의 동학이 과잉 생산의 위기를 가져오지만 CWO는 맑스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ICC는 비판한다.

     

    첫째, 임노동의 모순적 차원을 무시한다는 점.

     

    둘째, 임노동 관계에 놓인 사회적 모순을 보는 대신 이윤율 저하를 과잉생산위기의 유일한 기제로 보고 자본주의 쇠퇴와 제국주의 전쟁을 포함한 자본주의의 모든 경제적 모순의 시작과 끝으로 보는 점.

     

    셋째, 지불능력이 있는 시장의 차원을 이윤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생산의 확대와 축소에만 의존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반면 ICC는 맑스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모순에 대한 동일한 분석을 한다고 보고 있다.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제국주의는 확장의 역사적 과정의 마지막 장일뿐이다.’ 라는 두 사람의 입장이 같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살아있는 실재를 구체화했다는 점, 맑스가 보지 못한 1880년대 이후 제국주의 특징적 모순에 대한 이해를 했음을 보다 높이 사면서 그녀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제국주의 사이의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 고리를 분석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간에 쇠퇴기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ICC가 비판의 근거로 삼고 있는 IBRP/CWO의 「혁명적 전망」 37호(2005)는 폴 매틱의 「맑스와 케인즈」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ICC를 비판한 바 있다. “역사의 유물론적 개념에서 전체로서의 사회적 과정은 경제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물질적 삶의 모순들은 이데올로기적 삶을 결정한다. ICC는 가장 인과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 역사의 전(前)시기는 끝났고 새로운 시기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요 변화는 자본주의 토대의 기본적 변화 없이 일어날 수 없다. ICC는 생산 영역의 분석으로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순수한 추측인지를 인정해야 한다.”(135쪽)

     

    ICC는 이어지는 비판 글에서 IBRP/CWO의 입장을 맑스의 분석 방법에 기초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8)

     

    IBRP가 잊고 있는 것은 맑스주의가 유물론적 분석 방법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변증법적 분석방법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쇠퇴의 어떤 시기도 경제적 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데 로마제국의 쇠퇴나 봉건제의 쇠퇴에서 보듯이 하부구조에서의 봉쇄의 산물로서 위기는 쇠퇴의 진입 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양적 수준에서 위기가 나타나기 전에, 1차 세계대전으로 이끄는 지배계급 내의 갈등의 격화를 통해, 국가가 전쟁을 위해 경제를 통제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의 배신과 자본진영으로 넘어간 노동조합을 통해,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전복할 능력을 보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를 통해, 그리고 노동계급의 사회적 봉쇄를 목표로 한 최초의 조치들의 도입을 통해,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의 질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자본주의의 쇠퇴이다. 쇠퇴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1913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제적 위기의 이윤율에서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 정치적 원인의 총체성에서 발견된다.

     

    그 당시 혁명가들인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판네쿡은 경제적 요인을 지적했지만, 경제적 위기와 이윤율 저하를 전쟁의 원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IBRP의 주장은 가치절하와 대량파괴의 결과로 전쟁 중에 일어났고, 이는 전후 경제성장과 이윤율 상승의 기초였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전후시기에 자본주의 전체 역사에서 최악의 경제성과 뿐만 아니라 세계무역도 정체했다. 산업생산지수는 1913년 100에서 1929년 102로 정체한 반면 국민총생산에서의 국방비의 비율은 0.19%(1929-32)에서 1933이후 3.3%로, 1938년에는 28%로 급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재앙이었다. 경제적 수준에서는 세계의 부의 3분의 1이 파괴되었고, 사회적 수준에서는 극도의 빈곤으로 몰아넣은 노동력의 착취로, 정치적 수준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투쟁을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조직인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의 배신이 있었고, 인구의 수준에서는 2천만의 병사가 죽거나 부상당했고, 전쟁 후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이 죽었다. 이를 IBRP는 ICC가 전쟁을 자본주의 생존을 위한 경제적 기능으로 보지 않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혁명적 전망」, 37호)하지만 전쟁이 전후 경제에 재생효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볼 때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고 ICC는 비판한다.

     

    또한 이 글은 이윤율 하락이 위기, 전쟁, 그리고 재건을 설명하는데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윤율 수준과 진화가 전쟁을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 ICC는 왜 3차 세계대전이 1930년대 후반에 발발하지 않았는지를 IBRP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윤율이 1965년부터 하락하고 있고, 이는 1914년과 1940년보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윤율 수준과 진화가 전후 번영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전후 특별한 이윤율 증가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이윤성으로 복귀한 것은 군사 분쟁과 전쟁에 의한 파괴에 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윤율 수준이 1929년 공황과 1930년대 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IBRP의 주장과는 반대로 1928년은 그 이전 20년 동안의 경제성장보다 높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IBRP는 축적순환이 이윤율이 너무 낮을 때 봉쇄되고 지체되며 고정자본의 가치절하와 재생을 허용하는 전쟁의 파괴 이후에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대립에 의한 이윤율 상승과 새로운 기술혁신에 의한 고정자본의 가치하락으로 이윤율 소생을 말하고 있는 일면적 경제주의적 분석의 명백한 한계와 오류를 ICC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ICC의 반박에 대해 IBRP/CWO는 그들의 기관지 「혁명적 전망」 43호(2007) “자본주의와 그 위기의 동학: ICC에 대한 답변”에서 ICC를 재반박하고 있다.9)

     

    이 글은 다음과 같이 ICC의 기본입장을 비판한다. ICC는 가치법칙에 대한 맑스주의의 이해에서 자본주의 실질적 운동에 대한 전망을 하지 않고 추측보다 못한 주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가 있으니 혁명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고 노동계급을 붙들어 매는 유일한 길은 부르주아지의 선전이었다는 구세주적인 견해를 지니게 된다고 본다. 보기를 들어 1930년대 후반 경제위기에서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의 생활표준을 공격하여 계급투쟁이 고조될 때 부르주아지는 선거의 방식으로 “반대하는 좌파”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했다고 ICC는 주장하는데, CWO는 이러한 주장은 넌센스이며 부르주아지는 좌우를 막론하고 공격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정부를 필요로 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세계 인구의 절반이 한 쪽에서는 매일 일 파운드로 사는 상황을 만드는 반면, 극소수가 인류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수억 불 가치의 돈을 통제하는 체제인 자본주의는 어떠한 객관적 표준으로 보나 비합리적이라는 ICC의 주장이 법칙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자본주의가 가치 법칙의 분석을 통해 이해될 수 없다면 맑스주의 이론에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반문한다.

     

    CWO는 ICC의 「국제평론」 127호(2006), 128호(2007)에 실린 글을 평가하면서 적대적 논쟁을 넘어 ICC와의 공통점을 부각시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

     

    첫째, ICC가 자본주의 모순이 체제 내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맑스의 시장에 대한 입장과 룩셈부르크가 방어하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CWO는 ICC의 경제이론의 근거는 1920년대 「빌랑」에 실린 국제공산주의 좌파의 가장 출중한 이론가 중 하나는 미첼에서 온 것이며, 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시장을 찾을 수 없다는 룩셈부르크의 이론이었다. 그리고 ICC는 항상 맑스의 「공산주의 선언」에서 “재생산의 유형”으로 위기가 온다는 인용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공산주의 선언」은 맑스가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작동방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하기 전에 쓰여졌다고 CWO는 설명한다. 즉, ICC의 주장은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공헌(1859년)」 이전에 나온 저작에서 나타난 시대에서 비합리적 현상으로 보이는 과잉생산의 위기를 인정한 위기의 원인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ICC는 「자본」 3권에서 자본의 진정한 족쇄는 자본-임노동 관계라고 하면서 유명한 문단을 인용한다. “모든 실재 위기의 가장 최종적인 원인은 생산력을 발달시키려고 하는 자본주의의 경향에 대비되는 대중의 빈곤과 제약된 소비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절대적인 소비력이 그들의 한계가 될 것이다”(Lawrence & Wishart, 1934, 484쪽). 시장에 대한 ICC의 강조에 대해 CWO는 이를 이윤율의 문제로 바라본다.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적은 노동자가 있거나 너무 많은 생산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수 있는데 필요한 이윤을 창조하기에는 너무 적은 생산적인 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상품을 수익성 있게 팔기에는 너무 커다란 생산력이 있다.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다시 말해 불변자본에 대비한 가변자본의 감소는 이런 관계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다.” (「혁명적 전망」 37호, 2005년, 17쪽)

     

    다른 말로 왜 시장이 어느 순간에 확대될 수 있고 다른 순간에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하는 것은 오직 가치관계의 변화 때문이며 시장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실체가 아니라 확장을 위한 수익성의 문제에 의존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CWO는 ICC가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을 임노동관계에 내재적이라고 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과 “대중의 빈곤과 제한적 소비” 사이의 연결고리를 토론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ICC가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1911)」의 중심 체계와 고리를 끊는 신호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두 번째로 CWO는 룩셈부르크가 맑스주의로부터 벗어났음을 지적하고 있다. 맑스가 자본주의에서 상품이 일어날 축적의 전제조건으로서 어떻게 순환되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준 「자본」 2권 “자본의 순환과정”에서 오류를 발견했다고 룩셈부르크는 주장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놓인 곳을 보여주자고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자본주의 체제를 말하고 있을 뿐인 「자본」 1권의 방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면서 CWO는 이러한 단순재생산은 교육적인 목적이며 현실에서는 모든 자본축적은 확대재생산 조건 하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맑스는 부문1과 부문2 사이의 일시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야기되는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중심적인 모순, 즉 역사적 모순은 유통과정에서 발견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는데 룩셈부르크는 이런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본의 모순은 생산과정에서 일어난다고 한 맑스의 분석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으로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붕괴이론을 찾으려 했으며 누구를 위하여 확대재생산이 일어나야 하는가를 질문함으로써 맑스주의에서 일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룩셈부르크는 경쟁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본질적 요소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부가되는 요소쯤으로 인식한 것 같다고 CWO는 비판하면서 「자본축적」 25장에서 1부문과 2부문 사이의 관계를 논할 때 경쟁을 배제하는 포괄적인 접근을 선택하고 잉여가치가 동일한 부문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실현될 수 없다고 가정한다. 더욱이 그녀는 부문 간 자본의 이동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적 경쟁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맑스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을 한다고 비판한다.

     

    셋째, CWO는 가치 관계가 자본주의 위기의 열쇠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ICC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대중의 빈곤과 제한적 소비”로 본다고 주장한 것을 자신들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맑스의 하나의 가능한 해석이지만 로자 룩셈부르크 이론의 틀에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ICC가 맑스의 위기이론의 과잉 생산주의적 해석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룩셈부르크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CWO는 ICC에 동의할 수 없는데 이는 ICC가 머릿속에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ICC가 「자본」 3권과 「잉여가치학설사」를 인용하지만 과잉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선행원인이라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혁명적 전망」 43호(2007년)은 ICC와 동의하는 한 문장이 “이윤율 하락 경향을 매시기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CWO와의 근본적 차이는 ICC가 30년 동안 그들의 정치적 교의에 갇혀 유물론적 방법을 결여했고 이는 「국제평론」 128호와 129호에서 보여주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이러한 논쟁이 어떻게 이윤율 하락 경향 법칙이 자본주의 위기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생성과 쇠퇴의 배후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긍정적인 토론의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이후 두 진영의 논의는 좁혀지지 않고 한 단계 진전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코뮤니스트 노동자조직(CWO)」 기관지인 ‘Aurora'는 2018년 여름(44호)에서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낮은 이윤이라는 세계 자본주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본가가 성장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축적의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이는 기존의 자본 전체를 가치 절하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20세기에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두 번 발생했는데 자본을 파괴하고 평가절하함으로써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한 견해는 북미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의 기관지 「비타협 (Intransigence)」(2018년 7월 2호) 권두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유일한 교훈은 자본의 어떠한 분파도 자본주의 쇠퇴기에서 진보적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CC)」는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를 해체(deconstrction)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코뮤니스트 좌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68년 이후 코뮤니스트운동 부활의 초기 단계에는 자본주의 쇠퇴라는 주제가 수많은 지지자를 설득시켰고 부활한 코뮤니스트 좌파의 강력한 기반을 제공했다. 오늘날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코뮤니즘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새로운 이들의 다수는 쇠퇴라는 개념을 부정할만한 온갖 종류의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하는 「해체」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ICC는 다소 세계에서 동떨어져 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른 그룹들은 모두에게 자유로운 제국주의 사이의 새로운 시기의 다음과 같은 주요 특성을 받아드린다. 다시 말해 그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무시무시한 민족주의와 같은 심각하게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의 귀환, 자연과 사람의 관계위기 등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주요한 징후를 인정하는 다른 그룹들은 존재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급 간 세력균형의 교착상태로부터 비롯되었다거나,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 쇠퇴의 질적 변화의 표현이라거나, 이러한 모든 단계와 시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없이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22회 국제 코뮤니스트 흐름(ICC) 대회 ; 국제 계급투쟁에 대한 결의(2017. 4월), 「코뮤니스트」 7호(2018) P145∼146)

     

    이와 같은 입장 차이를 정리한 글은 ICC의 on line forum '쇠퇴에 대해 다시 한번 :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이행체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세계혁명」(ICC 영국지부 기관지) 2018년 가을 381호 3쪽에 실렸다. 이 토론에서 한 토론자는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일면적 견해 즉, 자본주의 착취가 시장의 ‘법칙’에 따라 기능하고 자본가는 이러한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기계와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해체’는 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 사유재산의 창출과 실행)의 의지와 행동에 기초하고 있고 유지되므로 자본주의는 계급 사이의 사회관계라는 ICC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의 심화되는 해체는 부르주아지가 이윤을 착복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의 조치(프롤레타리아 스스로의 파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쟁과 지구의 파괴 등)를 통해 이윤을 회복시키기 위해 세계를 날려버릴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토론자는 재앙의 축적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2.2. 최근 40년의 공공연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쇠퇴의 징후들

     

     

    위의 논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과학적 이론은 잉여가치의 추출과 그 실현과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잉여가치 추출의 과정에서는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 그리고 잉여가치 실현의 과정에서는 시장 포화의 한계 법칙이 위기의 기본이 된다. 이 두 가지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틀이 요구된다. 지금의 위기는 잉여가치 실현의 막다른 골목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는 독립적이지만 상호의존적이다. 따라서 쇠퇴에 대한 인식은 위기의 순간(보기를 들어 1929년 대공황)과 위기를 지금의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1914년 이래 쇠퇴의 상태에 있음과 자본주의가 자랑하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괄목할 성장률이 사실은 자체 재생산의 조건 창출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 체제의 죽음의 고통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서 위기에 따른 입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파국론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해 어느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새로운 천년 왕국이 올 것이라는 묵시록이나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의 주장이다. 이러한 파국론이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 밑에서 신음하는 무산자들을 미몽에 빠뜨렸고 그러한 비과학적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다. 또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내뱉는 낙관론이다. 이 낙관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자치를 내장하고 있고 투기를 근절시키면 경제는 잘 운영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입장보다 더욱 세련되고 지배적인 입장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규정하고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 비바람이 그치고 순수한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특히 이러한 세 번째 입장이 이른바 “사회주의 진영”에까지 파고들어와 계급투쟁을 희석시키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일어났던 광경이며 20세기와 21세기 자본주의 위기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논리가 되어버렸다. 이는 상승기에 있고 무한히 확장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였고 맑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이 위기를 과잉생산의 전염병으로 불렀다. 그런데 과잉생산의 경향은 기아, 가난, 실업을 가져왔지만 상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상품, 너무 많은 산업, 너무 많은 자원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경쟁을 통해 무정부체제로 끌고 가는 자본주의의 기능인데 새로운 임노동과 상품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9세기는 위기의 순간을 건강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이해했다.

     

    20세기에는 1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이러한 상승기의 자본주의가 마감을 하고 전지구가 임노동과 상품의 생산관계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를 1919년 코민테른은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시기로 규정하였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세계시장의 쟁탈과 통제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갔으며, 다른 한편에서 나타난 과잉생산경향은 19세기와 달리 세계경제를 불안정과 파괴의 반영구적인 위기로 종속시키는 만성적인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30%의 실업자를 만든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인 1차 세계대전과 1929년 세계대공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한쪽에 경제의 국가화를 통한 (국가)자본주의(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와 다른쪽에 부르주아지와 국가 관료주의가 결합한 자유주의 국가를 형성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자본주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는 25년 동안 재건과 부채 증가에 힘입어 예외적인 번영을 했으며, 정부 관료, 노조 지도자, 경제학자, 자칭 ‘맑스주의자들’까지 자본주의가 결정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호언장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 파운드화의 평가절하, 1969년 인플레이션 위기, 1973년 오일 쇼크, 1974-75년의 경기 후퇴, 1979년 인플레이션 위기, 1982년 부채 위기, 1987년 월스트리트 위기, 1989년 경기후퇴, 1992-93년 새로운 경기후퇴로 인한 유럽통화의 혼란, 1997년 아시아의 ‘호랑이’와 ‘용’의 위기, 2001년 미국의 ‘신경제위기’, 2005년 서브프라임 위기, 2008년 리만브라더스 등 금융위기, 200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총체적 위기로 현재 자본주의는 해체와 파국에 직면해 있다.

     

    이미 오래전 케인즈주의 해법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연장시키는 사이비 해법일 뿐이고 맑스가 예측한 자본축적의 모순적 경로를 막아내는 해법이 아님을 폴 매틱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10)

     

    “선진 공업국 내에서의 ‘번영하는’ 조건의 긴 기간에도 불구하고, 자본생산이 경제에의 국가개입을 통하여 내재적 모순을 극복했다는 가정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개입 스스로 자본생산의 위기의 지속성을 가리키고 있고 정부가 결정한 생산의 성장은 사적 기업경제의 계속되는 쇠퇴의 분명한 징표이다.”

     

     

    그러나 「맑스와 케인즈」에서의 매틱의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분석은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가치법칙을 쇠퇴의 표현으로 왜곡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구 블록의 완전히 국가화된 국가는 더 이상 가치 법칙에 종속되지 않고 위기를 향한 경향에 종속된다고 주장한다.

     

    후에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지부가 된 미국의 「국제주의」 그룹은 매틱의 이러한 결점을 인식하고 “국가자본주의와 가치법칙: 「맑스와 케인즈」에 대한 응답”이라는 글을 1970년대 초 「국제주의」 제2호에 실었다. 이 글은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매틱의 분석이 그가 여러 곳에서 방어한 쇠퇴의 개념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가 사회주의가 위기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매틱이 주장한 대로 그것이 생산력의 자동제어와 발전에 더욱 유리하다면, 또한 스탈린주의 체제가 제국주의적 추동을 따르도록 떠밀리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물질적 기초는 사라지고 쇠퇴 시대에 의해 제기된 역사적 대안은 불분명해졌을 것이다.” 11)

     

    「국제평론」의 이 글은 소멸하는 체제의 대차대조표를 경제적 수준, 군사적 수준, 생태적 수준, 그리고 사회적 수준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2)

     

    1. 경제적 수준에서

    1914년 이래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일반적 개관은 어떠한 기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상승하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을 피할 수 없는 체제의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있다.

    - 1914 – 1923: 1차 세계대전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국제적 물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새벽을 선언하다.

    - 1924 – 1929: 짧은 경기 회복. 호황은 주로 미국에 제한된다.

    - 1929: 미국 자본의 풍부한 확장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깊고 넓은 공황을 재촉하는 장관의 추락으로 끝난다. 19세기 초의 순환적 위기의 경우 같은 생산의 자생적 부활은 없다.

    - 1945 – 1967: 국가 지출의 주요 발전(본질적으로 부채를 통해 금융조달되고 생산성의 예기치 못한 성과에 기초한 케인즈주의 수단)은 제3세계의 상당부분을 배제한 채, 그 이전의 어떤 것과도 다른 성장과 번영의 시기를 위한 조건으로 만든다.

    - 1967 – 2008: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 특히 70년대의 질주하는 인플레이션과 80년대의 대량실업에 의해 시행되었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위기는 지구의 어떤 시기와 부분에서 다른 시기와 부분보다 더욱 ‘공공연’하다: 자본 운동과 금융 투기에 대한 제한의 제거: 노동력이 싼 지역에의 전반적 산업재배치: 신기술 발전과 무엇보다 국가, 기업, 가계를 위한 사실상 무제한적 신용에의 의존은 거대 이윤이 소수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지는 ‘성장’거품을 만든다. 광란적인 공업성장은 중국 같은 국가에서 일어나며 신용카드 소비자주의는 중심자본주의국가에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 2008- :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 국가가 지난 40년동안 적용한 ‘해법들’, 무엇보다 신용에의 의존이 그것들을 부지런히 실천해 왔고, 지난 시기 잘못된 신념을 지녀왔던 정치인, 금융인과 관료들의 눈앞에서 촉발한 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도달한다. 신용을 통한 가공시장의 창조는 화폐가치를 파괴하고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면서 역사적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2. 군사적 수준에서

     

    제국주의 전쟁은 국지전이건 세계대전 이건 더 이상 공공연한 전쟁의 국면에 제한되지 않는, 자본주의 스스로를 파괴하는 경향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3. 생태적 수준에서

    자연 세계의 오염과 파괴는 처음부터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해 있었지만 지난 세기 동안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지구의 마지막 구석구석까지 쉬지 않고 점령하면서 더욱 광범위하게 뿌리박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공기, 땅, 바다, 강, 그리고 숲의 약탈은 자연 자원에 값싼 노동 그리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잔인한 국가 경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의 형태로 온 생태적 파국은 자본주의의 묵시록의 새로운 기수가 되었고, 연이은 국제정상회의는 부르주아지가 그를 해결할 가장 기본적인 조치도 취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4. 사회적 수준에서

     

    40년 위기동안 자본주의는 대량실업 강제라는 직접적인 임금삭감과 복지국가를 분해하는데 비교적 조심스러웠다. 그리스 같은 국가들에 지금 떠맡기는 야만적인 긴축조치는 어디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나 올 수 있는 조짐이다.

    노동계급이 1960년대 말 투쟁을 부활할 때 혁명의식을 발전시키는 능력은 그들이 거쳐 온 반혁명 – 노동자의 세대가 그들 자신의 전통과 조직을 깊이 의심하도록 만든, 스탈린주의가 ‘프롤레타리아’ 의상을 입고 스스로 보여준 반혁명 – 트라우마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스탈린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사기성 짙은 등식은 80년대 말 스탈린체제가 몰락할 때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능력, 즉 노동계급의 자기신뢰를 더욱 침식하면서 극점까지 몰아갔다. 이처럼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 쇠퇴의 산물은 계급의식을 망쳐놓는 부르주아지 모든 분파에 의해 사용되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위기가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단계에 들어섰음은 인류의 파멸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험에서 이윤율 하락과 시장포화로 임계점에 다다랐음은 이미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지금은 야만으로서의 자본주의와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계속>

     

     

    <주>

     

    1. 더 자세한 것은, 오세철 “자본주의 쇠퇴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 「좌익공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 오세철 편저, 빛나는 전망, 2008, 262-278쪽을 볼 것

     

    2. 엥겔스, Nikolai Danielson에게 쓴 편지, 1892년 9월 22일

     

    3. 「국제공산주의흐름」, “자본주의 쇠퇴이론과 수정주의에 맞선 투쟁”, 「국제평론」, 2010, 여름호, 13-17쪽

     

    4. 「국제공산주의흐름」, “CWO에 대한 답변: 자본주의 쇠퇴기의 전쟁(1부)”, 「국제평론」 2006년 4th Quarter, 10-17쪽

     

    5. 14세부터 스파르타쿠스 청년운동의 투사인 그는 1920년 KPD를 떠나 KAPD(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에 가입했으며, 1926년 미국으로 왔다. IWW에 가입하고 소규모 평의회 공산주의 그룹에 가입했으며 「Living Marxism(1938-40)」과 「New Essays(1942-3)」의 편집자를 지냈다.

     

    6. Karl Marx, 「Grandrisse」, The Pelican Marx Library, 1973, 410쪽

     

    7. Karl Marx, 「Theories of Surplus」, vol.2, Lawrence & Wishart, 1969, 534쪽

     

    8. 「국제공산주의흐름」, “CWO에 대한 답변: 「이윤율 저하 경향과 자본주의 쇠퇴로의 진입(2부)」, 「국제평론」, 2007, 1st Quarter, 128호, 9-16쪽

     

    9. IBRP/CWO, “자본주의와 그 위기의 동학: ICC에 대한 답변(1)”, 「혁명적 전망」 43호, 2007.

     

    10. 폴 매틱, 「맑스와 케인즈: 혼합 경제의 한계」, Merlin Press, 1969, London, 14장 “혼합경제” 152와 163쪽

     

    11. ICC,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 자본주의 쇠퇴가 종착역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평론」, 2012, 1st Quarter, 148호, 22쪽

     

     

     

     

    12. 윗 글, 2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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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복간 2호」 계급투쟁 100년과 노동자계급의 험난한 길

계급투쟁 100년과 노동자계급의 험난한 길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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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반혁명

 

1. 현재 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맑스주의 방법의 본질은 계급투쟁의 관점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계급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그것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당면한 정세를 계급투쟁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새로운 세계의 주인으로서 착취사회 전복을 위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매번 성공하지는 못했다인터내셔널은 상승하는 자본주의 능력 때문에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그리고 코민테른(인터내셔널)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사회주의를 참칭하였고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2. 1차 제국주의 세계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러시아와 유럽에서 혁명 물결을 넓혀나갔고세계 노동자계급에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역사적 과제를 최초로 시도하게 했다이는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1917년 10월 혁명으로 입증되었다또한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신의 국가(조국)를 지지해서 노동자계급 간 상호 살육을 묵인방조함으로써 사회배외주의로 전락하고만사회민주주의 본질을 명확히 폭로하였다이로써 제인터내셔널 다수당들은 파산을 맞이하였고새로운 유형의 혁명 정당코뮤니스트당의 시기가 열렸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의 고립과 유럽혁명 실패 그리고 관료주의 반혁명 공세이에 맞선 좌파의 패배, 1927년의 마지막 혁명 물결(1926년 베를린 총파업, 1927년 상하이봉기)의 비극적 패배는노동자계급이 세계 곳곳에서 펼친 장기간의 혁명투쟁과 패배의 시대를 마감했다. 1930년대에는 이미 혁명 물결의 마지막 파고가 소멸하고 말았다반혁명 과정은 코민테른 소속 당에 세계혁명이 아닌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했고또한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게 했다.

 

코뮤니스트당은 민족수호의 정당이 되어 버렸고파시즘과 스탈린주의 테러는 혁명운동이 최고점에 도달했었던 나라에서 가장 극심했으며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또 다른 제국주의 대학살(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혁명적 소수는 추방과 탄압과 옥죄는 고립에 처해야만 했다계급 전체가 사기 저하와 부르주아 전쟁이데올로기에 침식되어 있었기 때문에혁명가들은 계급투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이러한 반혁명 경험은 혁명가들에게 국가··계급 사이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도록 요구했다.

 

3. 1920년대 중반 국제적인 혁명의 물결이 패배한 이래 노동자계급에 이른바 사회주의코뮤니즘(공산주의그리고 맑스주의라는 용어보다 더 왜곡되고 남용된 것은 없다이전 동구권 스탈린주의 체제와 현재의 중국쿠바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사회주의나 맑스주의의 표현이라는 주장은 양 진영의 지배계급이 영구화시킨 가장 큰 거짓이다.

 

1935년에서 45년까지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동안에는 반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수호와 함께 사회주의 조국의 수호라는 거짓이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살육에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데 이용되었다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 아래 두 개의 거대한 제국주의 블록 사이 경쟁이 지배적이었던 1945~89년 사이에 훨씬 더 강력하게 이용되었다동구 블록에서는 러시아 자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구블록에서는 제국주의 충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이용되었다특히 서구블록에서는 소련 전체주의에 맞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허위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면서 노동자계급 의식을 왜곡했다이것은 결국 동구 블록이 붕괴하자 사회주의의 패배’ ‘맑스주의의 파산’,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종말이라는 가장 큰 악선전으로 이어졌고혁명운동의 침체로 이어진다이러한 부르주아의 선전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세력은 청산주의 세력이고스탈린주의 체제를 방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에 봉사한 세력은 이른바 좌익을 자임하는 세력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이데올로기 왜곡은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맑스주의 연속성과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혁명가들의 기대와 달리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옹호자들은 여전히 운동 사회 내부의 주류이거나 영향력을 가졌지만맑스주의를 혁명적으로 계승하려는 옹호자들은 더욱 억압받거나 소수로 전락하여 영향력 없는 세력으로 주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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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혁명의 세 가지 흐름과 공범 관계

 

4. 맑스주의와 적대하는 반혁명은 세 개의 흐름이 있었다노동자계급의 의식에 깊은 상처를 낸 그들은 스탈린주의파시즘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다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는 이러한 세 가지 흐름을 다음과 같이 특징짓는다.

"스탈린주의 정권은 완전한 전쟁 경제모든 반대의 격멸무시무시한 착취율광범위한 강제 수용소 등의 기조를 세웠다그러나 수십 년 후 삶과 죽음에서 스탈린주의의 가장 최악의 유산은 그들이 10월 혁명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가면을 썼다는 것이다자본을 국가의 손에 집중시키는 것이 사회주의인 것인 양제국주의 확장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 양 세계에 팔려나갔다. 10월 혁명의 기억을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때는 많은 노동자가 이런 사회주의 조국이라는 신화를 믿었지만스탈린주의 정권의 진정한 본질이 계속 폭로됨에 따라 더 많은 이들이 혁명에 대한 모든 사상에 등을 돌렸다스탈린주의가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전망노동계급 혁명이 높은 수준의 사회 조직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가한 피해는 막대하다스탈린주의가 구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끌어내리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국제 계급 운동의 패배와 무엇보다도 정당을 타락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 7국제 계급투쟁에 대한 결의, ICC)

 

"지배계급그리고 중간계급에 버림받은 이들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운동의 변절자들로부터 출발한 운동인 파시즘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가장 강력한 분파가 받아들였는데이는 그들의 필요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쇄하고 전쟁 동원을 완수하는 것 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파시즘은 부르주아 사회의 표면 아래에 있는 비합리성의 어두운 힘을 해방하는 근대적 기술 사용에 특화되어 있었다특히 나치즘은 독일에서 더욱더 파괴적인 패배의 산물이었는데중세적 대학살을 안정화산업화시키고결국 자기-파괴를 향한 광적인 행진으로 타락한 대중들을 끌고 가는 등 비합리성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노동계급은 전체적으로 파시즘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생각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나반대로 반파시즘의 유혹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 뭉치자는 주요한 호소 에는 훨씬 취약했다그러나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전례 없는 공포는 스탈린주의 강제수용소 못지않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확신 – 곧 코뮤니즘의 전망 – 에 대한 타격이었다." (같은 글)

 

선진 산업화 국가에서 부르주아 지배의 주요한 형태인 민주주의는 이러한 전체주의적 형태에 대해 적으로 자신을 포장했는데사실은 혁명적 노동자 운동을 끝장낼 때스탈린주의 정권과 전쟁에서 연합하여 히틀러 독일을 상대할 때에는 파시즘 지지를 방해하지 않았다그러나 민주주의는 전쟁 중에 무너져 버린 파시즘이나, (중국과 기괴한 북한 정권의 경우를 제외하고경제 위기의 압박과 자본주의 세계 시장과 이를 국가 조례 등으로 회피하려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경쟁할 수 없는 무능력함으로 무너져 버린 파시즘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적 전체주의의 형태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민주주의는 그 경쟁자들에 비해 오래 살아남았고이제는 서구의 오랜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남은 유일한 경기가 되었다오늘날까지2차 세계대전 시기 파시즘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할 필요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경한 것이며자본주의의 정면 뒤에 지배계급의 독재가 있다는 주장은 음모론으로 기각된다.” (같은 글)

스탈린주의파시즘민주주의는 서로 적대하고 경쟁하지만프롤레타리아계급을 지배하고 탄압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노동자 권력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코뮤니스트 혁명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반혁명 세력이라는 점에서 공범이다.

 

레닌의 사망과 스탈린의 집권그리고 일국사회주의 선포 등 일련의 과정은 러시아 혁명을 패배로 몰아갔다혁명의 실패 이후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제도는 자본주의의 한 가지 변형일 뿐이었고 반혁명의 첨병이었다그 제도가 불과 몇 년 전 소비에트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맹렬히 싸운 세계 여러 나라의 부르주아계급으로부터 열렬한 지원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1934년에는 실제로 이와 같은 부르주아계급이 레닌이 설립 당시 도적들의 소굴로 묘사했던 국제연맹에 소련이 가입하는 것에 동의한다그것은 1917년의 볼셰비키를 야만인으로 보았던 세계 여러 나라의 지배계급이 스탈린을 존경할만한’ 인물로 인정한 상징적인 일이 되었다제국주의자들이 스탈린을 자신들 동료의 일원으로서 인정한 것이다.

그 후로 전 세계의 부르주아계급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사람은 바로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수많은 코뮤니스트와 혁명가들이었다.

스탈린이 비인간적인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강제 수용소에서 수많은 코뮤니스트와 노동자농민을 처형한 것은 이와 같은 세계 부르주아계급과의 공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그 후로도 미국과 유럽의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아시아와 중동남미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자신들이 필요하다면 독재자와 학살자들을 기꺼이 지원하며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독재세력의 공범 역할을 해왔다오늘날에도 여전히스탈린주의의 여러 범죄를 가장 극단적이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자신은 오히려 민주주의 미덕의 모델로 자칭하는 세력이 바로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코뮤니스트」 4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산한 제도이다, 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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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부활과 한계

 

5. 노동자계급에 암흑기였던 1930~40년대에는 맑스주의와 국제주의적 입장을 지키고 있던 혁명적 소수도 급격히 감소한다종전(終戰)은 새로운 혁명을 등장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노동자계급보다 먼저 학습한 부르주아지가 독일 도시에 융단 폭격을 했고, 1943년 북부 이탈리아의 대대적 파업을 진압했다결국종전은 노동자계급의 패배를 심화시켰다게다가 전후 경제는 더 심각한 불황에 돌입하지 않았고미국의 지도력 아래 자본주의는 진정한 확장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암흑기에 혁명적 소수는 두 가지 길을 걷는다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여전히 대중을 지도하기 위해 혁명적 원칙을 포기하는데노동자계급을 배신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속으로의 "프랑스 전환(French turn)" 회귀반파시즘으로의 투항 등이 그것이다그것은 어떠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 연속성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갖지 않는다이와는 반대로 빌랑(Bilan) 주변의 이탈리아 좌파는 당시의 임무를 명확히 정의했다첫째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행진에 직면해서국제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배신하지 않을 것둘째혁명 물결 특히러시아혁명 실패의 대차 대조표를 만들 것그리고 미래의 계급투쟁 부활시 나타나게 될 새로운 코뮤니스트당에 이론적인 기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합한 교훈을 끌어낼 것 등이다스페인에서 전쟁은 당시 혁명가들에게 특히 혹독한 시험이었다많은 혁명가는 반파시즘의 나팔 소리에 사로잡혀서 그 전쟁이 양 진영 모두에 있어서 제국주의적이며다가오는 세계대전의 총연습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하지만 빌랑(Bilan)은 꿋꿋이 나서서 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이 양쪽 진영 모두를 비판했듯이파시스트와 부르주아 공화파 양자 모두에 대항한 계급투쟁을 호소했다.

 

6. 전후 재건 시기는 부르주아계급 내부에서그것이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확실히 극복했다는 그리고 1929년의 지독한 위기는 이제 추억에 불과하다는 또 다른 환상을 낳았다그러나 1960년대 말 경제위기 재발의 첫 징후들이 나타나 자본주의 세계를 흔들면서 이 환상은 사라져갔다그리고 위기 재발과 더불어 전쟁의 새로운 위험이 나타났다. 1939년의 독일처럼 1960년대 말의 소련은 자신의 주요한 제국주의적 경쟁자에 의해 군사적으로 포위당하고승리한 전쟁의 성과물에 의해서만 보상될 수 있는 엄청난 비용의 전쟁 무기를 부담해야 했다세계적으로 강력한 두 개의 제국주의 세력의 군대와 대리자들이 민족해방이라는 수많은 충돌 속에서 서로 싸웠고독일에서는 핵전쟁이라는 세기말적인 위협을 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력의 축적을 가진 철의 장막’ 양쪽에서 대치했다.

 

하지만 제국주의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그 대답은 프랑스에서의 1968년 5월 사건에 있다. 1968년 프랑스는 9백만 이상의 노동자 파업으로 나라 전체가 완전히 정지했고 그것은 역사상 가장 큰 파업이었다프랑스에 이어 1969년의 이탈리아, 1970년과 1976년의 폴란드의 노동자폭동, 1973년 영국의 광산노동자 파업그리고 코르도바 산업 지역의 통제권을 사실상 노동자들이 행사했던 1969년 5월 아르헨티나까지계급투쟁의 물결은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 모두에서그리고 미소 제국주의 블록을 나누는 철의 장막 양측 모두에서 세계의 산업 지역을 휩쓸었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각성과 더불어소수로 전락한 기존 혁명그룹의 발전과 새로운 그룹의 출현 속에서 정치의식이 고양되었다새로운 정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세대 간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혁명가들이 과거 계급투쟁과 연결을 시도하면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입장을 재발견하게 된다판네쿡호르터, KAPD(독일 코뮤니스트 노동자당), 로자 룩셈부르크보르디가가 재출간되었다그들은 또한 반혁명에 의해 단절된 국제적 유대를 복원한다분명히이들은 극소수였고 계급투쟁에 대해 어떠한 중대하고 직접적인 영향력도 갖지 못했다하지만 그들은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그리고 특히 반혁명과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이 진행하는 한 과정의 전조를 나타냈다새로운 세대는 전후의 붐과 경제 위기의 시작과 맞닥뜨려 미래를 위한 커다란 희망을 품은 투쟁의 물결 속에서 대응하였다.

 

7. 68투쟁 10년 후인 1979계급투쟁의 고조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1945년 이래 최초로 소련이 자신의 블록 외부직접적인 영향력 밖의 국가를 침공한 것이다소련은 경제 위기에 의해그리고 그보다 더 강한 경쟁자 미국에 맞서 세계 2위의 제국주의 권력으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무기생산의 엄청난 무게에 눌려 점점 쇠퇴해가고 있었다. 1914년과 1939년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권력 중에서 더 약한 자가 다시 한번 세계를 전면전의 위험에 빠트렸는데이번에는 배후에 핵전쟁의 위협을 안고 있었다이에 세계는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노동자계급의 반응이 어떠할 것인가? 1970년대 투쟁으로 열었던 혁명을 향한 진로가 뒤집힐 것인가부르주아계급이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에 대한 자신의 해법즉 세계대전을 벌일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1980년 폴란드 노동자들의 장대한 투쟁이 해주었다폴란드 노동자들은 미소 두 블록 사이의 결정적인 대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 노동자계급에 속했다하지만 그들은 소련 블록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든 아니면 미국 블록의 민주주의’ 국가든 상관없이 민족국가의 이해를 위해 노동자계급 자신의 이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노동자평의회와 같은 기초 위에 투쟁과 자신의 조직을 발전시킨 폴란드 노동자들은 확실히 바르샤바 조약의 군대로 끌려가서 전쟁에 동원될 생각이 없었다이렇게 1980년의 폴란드 투쟁은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을 막았다하지만 역사는 중단되지 않았고노동자계급이 계속 지배계급의 위기 전개에 저항하고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미결로 남았다결국, 1980년대에 계속된 평탄하지 않은 계급투쟁의 발전은 노동자계급이 패배하지 않았고 세계대전으로의 길은 닫힌 채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이러한 투쟁의 물결은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과 광주민중항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유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8. 1980년대는 1930년대와는 달리 계급투쟁의 강력함이 지배계급 그들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해법’, 즉 제국주의 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했다또한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 조건 방어를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했고 사회주의 조국의 수호나 민주주의의 수호의 깃발 아래 자신을 편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자본주의 내부에서 그들의 존재를 즉각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는 투쟁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대부분 노동자는 1960년대와 재건기의 조건으로의 회귀가 가능했기 때문에 자본가계급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임금인상을 위해또는 해고에 반대하여 파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부르주아계급의 공격이 이런저런 국가수반(예를 들어 마가렛 대처나 로날드 레이건 같은 반동들’)의 신자유주의와 같은 나쁜 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과소평가했다그래서 198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하나의 난관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부르주아계급은 전쟁으로 나갈 수 없었고프롤레타리아계급은 혁명적인 공세를 개시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난관의 결과로서냉전은 1914년이나 1939년의 그것과 같은 전면적인 제국주의적 대학살에 의해서가 아니라두 개의 제국주의 블록 중 하나의 붕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종결되고 결국 제국주의 경쟁자의 부재로 인해 다른 블록의 해체를 가져왔다.

이에 뒤이은 시간은 노동자계급에 심각한 혼란의 시기가 되었다스탈린주의의 붕괴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눈앞에서 스탈린주의 체제의 약점과 부패와 후진성이 폭로되자 (그것이 과장되고 편파적이었어도세계 전역에서 승승장구하던 부르주아계급에 사실상, “이것이야말로 너희들이 코뮤니즘을 건설하려 할 때 얻게 될 현실이다또는 대안적으로 코뮤니즘은 멋진 이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소련을 한번 보아라라고 떠드는 거대한 캠페인을 벌이도록 했다. ‘코뮤니즘의 패배에 대조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의 승리였다부르주아계급은 자본주의는 완벽하지 않을지 모르나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이고 자본주의의 영향력에 대항해서 투쟁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선전했다.

 

이러한 요소가 수많은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이 계속 표현됨에도 왜 1990년대가 명백한 계급투쟁과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 그리고 맑스주의자의 운명 모두에 심각한 퇴조를 나타내는지를 설명한다프롤레타리아혁명과 국제주의의 깃발을 여전히 높이 들고 있는 이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스탈린주의 하수인들로 그리고 기껏해야 회복할 수 없는 과거에 사로잡힌 몽상가들로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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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깊어지는 위기노동자계급의 험난한 길

 

9. 2003년 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대규모 분출은 1989년 이후의 계급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나타낸다그것은 1968년 이래 가장 긴 퇴조기 이후 노동자들의 전투성 회복에서 첫 번째 중요한 단계였다물론 1990년대에 이미 이러한 전투성의 간헐적인 표현이 있었다하지만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운동의 동시성은 계급투쟁의 진화를 보여주었다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2003년 투쟁의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노동자들의 연금에 대한 국가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점이다부르주아계급은 1970년대 대량실업의 도래에 대해 일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복지대책으로 대응했는데그것은 오늘날 국가부채의 엄청난 증가의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는 대량실업과 더불어 어떻게 절대적 빈민화가 폭발하는지를 보여주었다프롤레타리아계급에 그 직전의 패배가 없었다면, ‘자본축적의 일반적이고 절대적인 법칙은 그것의 반대편인 혁명의 법칙이 될 만큼 위험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다노동자계급은 역사적 기억이 있다계급 정체성의 상실에도 악화하는 위기로 인해 이 기억이 서서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대량실업과 사회적 임금의 삭감은 이제 1930년대의 기억을전면화된 불안정과 빈곤화의 영상을 환기했다.

 

10.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2003년 이후 노동자계급에 1930년대의 기억을 강력하게 그리고 직접 환기해주는 데에는 불과 4~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최대의 자본의 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 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다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무능과 끝 모를 혼란을 보여주는 위기는아프리카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유럽과 남미의 노동자 투쟁북미와 아시아의 노동자 투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다위기에 빠진 지배계급은 온갖 교묘한 금융적인 술책과 함께 위기의 부담을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그것은 2008년 이래 임금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사회적 복지를 통한 간접적인 공격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쇠퇴하는 자본주의 위기와 파국의 진행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하기도 하지만노동자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시킨다그것은 장기 실업 계층과 불안정(비정규직고용 노동자 사이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11. 1930년대 대공황이 패배한 노동자계급의 사기를 더욱 악화시킨 것처럼 2007~2008년의 금융위기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그동안의 금융화’ 과정은 금융기관과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수많은 프롤레타리아는 채무자가 되었고신용 경제의 전례 없이 세련되고교활하고 불안정한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에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더욱이 복지국가의 해체와 국가부채 증가재정 불안은 그것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공공부문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이제 신분처럼 고착되었고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빚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프롤레타리아를 훈육하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이른바 금융과 유로 위기는 1989년 이후 계급의식계급 정체성과 전투성의 장기간의 심각한 퇴조에 치료 약이 되는 대신 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특히일반 프롤레타리아트 계층에서의 연대 상실의 치명적인 효과는 심각하게 증대했다특히우리는 희생양 현상이 사회의 잘못이 무엇이든 간에 세계의 모든 악이 투영된 사람을 비난하는 현상을 보고 있다그러한 생각은 대량학살로 가는 문을 연다오늘날 포퓰리즘은 매우 충격적이지만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사회관계 속에 퍼져 있는 문제의 유일한 형식은 아니다노동계급의 일터에서그리고 삶에서 그것은 협력을 약화하고원자화그리고 상호 의심과 약탈의 발전을 부추긴다.”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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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12. 1968년의 대대적 투쟁 이후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을 계속해오고 있지만현재는 방어적이고 경제적인 투쟁마저 힘에 겨운 상황이다한국의 촛불 투쟁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다여기에 더해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급투쟁 성과물이 사라지고 있다평의회적인 토론사상투쟁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노동자/프롤레타리아/소수자 연대와 대중총회국제주의 실천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의 부재 등.

이제는 계급의 미래(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전망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한 걸음도 발전시킬 수 없다계급 운동이 지역과 민족을 넘어 국제적 수준으로 나아가야 하고경제적 수준에서 정치적 수준으로 발전해야 하고방어적 투쟁에서 공세적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코뮤니즘의 목표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그 모든 주장이 구호에만 그치도록 계급 운동이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공장에서 농성장에서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주의의 삶 자체이지만 그것을 넘어설지에 대한 보장은 없다하지만 아무리 한계가 있더라도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지그리고 현재의 질서와 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조직적 수단과 계급의 무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변했지만아직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다노동자계급 분열과 분할은 지금까지 부정적인 역할을 했지만혁명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으로 유효하다불안정 노동과 만성적인 실업빈곤의 증가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회시스템의 붕괴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세대에게 비참함을 안겼다하지만 동시에 족쇄 이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현실도 안겼다쇠퇴하는 자본주의는 더는 개선되거나전쟁과 빈곤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거나친환경적이 되거나최소한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다거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자본주의 사회 억압에 고통받는 사회계층의 근본적 욕구 사이에는 어떤 대립도 없다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결코 이기적인 운동이 아니라오히려 엄청난 다수의 이해를 위한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의 기초이다.” (코뮤니스트선언)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최종 목표와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에 고통받는 사회계층의 근본적 욕구는 코뮤니즘으로 일치한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착취와 빈곤과 전쟁의 야만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코뮤니스트 혁명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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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은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벌이는 모든 전쟁에 반대합니다우리의 입장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선택은 분명하고 일관되어야 한다고 했던 이전 세대 혁명가들의 유산입니다.

 

100년 전 코뮤니스트들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기 위해 모였습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대회는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물결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켰습니다우리는 미국 사회주의노동당」 보리스 라인슈타인이 한 말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 시대에 자본주의 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방어전에서도 자국 정부를 지지할 정당한 이유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전쟁은 단 하나뿐입니다그것은 사회적 전쟁사회 혁명입니다.”

 

지난 1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과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ACG)이 개최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모임 요청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모임에서는 상황에 대한 논의와 앞으로 실천계획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논의한 후참가조직이 지지하고 그들 매체에 발표할 수 있는 성명서 초안을 작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은 이 자리에서 초안을 작성하도록 위임받았습니다여기에 100년 전에 채택한 우리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옛 동지들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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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

 

세계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심화되는 위기로 우리를 전쟁이 만연한 세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오늘날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전쟁이 우리 노동자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반면지배계급의 다른 무리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대부분 전쟁은 제국주의 강대국의 고객(의존국사이에 벌어집니다그것은 무역전쟁 개시와 함께 더 넓은 세계분쟁의 전조인 제국주의 대리전입니다전쟁으로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입니다그것은 몇몇 미치광이 또는 나쁜 자본가 대표들 때문이 아니며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 입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 지지자들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세계적 생산 체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모두의 요구를 직접 충족시키기 위한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 체제를 지향합니다이것은 세계적인 노동자평의회 체제를 통해 노동자계급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될 것입니다이윤을 위한 생산과 민족국가 체제는 없어질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의한 지구 파괴는 중단되어 복원으로 뒤바뀔 것이고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조직하고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과 그것을 성취할 방법에 대한 생각을 확산시켜야 합니다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이 과업을 위해 혁명가로 구성된 국제적인 정치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의 필수적인 출발점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고지배계급이 요구하는 전쟁을 포함한 그들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모든 전쟁은 자본 일부분의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입니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은 지배계급 한 부분뿐만 아니라 가난질병재난에 의해 서서히 또는 전쟁에 의해 빠른 속도로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죽음파괴 그리고 비참함을 가져다주는 완전히 부패한 체제에 맞서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습니다이른바 민족해방이나 반제국주의’ 전쟁은 단지 위장된 제국주의 전쟁일 뿐입니다우리는 의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처럼 거짓 혁명의 늪에서 기생하는 자본의 좌파에 있는 어떤 지배계급 꼭두각시들과도 공동전선을 만들지 않습니다그들은 모두 지배계급 체제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평화와 전쟁에서 모두 그 체제를 지지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부르주아 전쟁 도발과 긴축정책에 맞서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전면화시키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은 위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에 가입하여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을 위한 계급투쟁에 참여하여 선전물 제작 배포 운반에 함께 할 것을 요청합니다.

 

조직에 가입하거나더 토론하거나메일링리스트에 추가하거나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그룹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다음으로 연락하십시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  email: uk@leftcom.org, website: leftcom.org

또는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ACG) :  email: info@anarchistcommunism.org, website: anarchistcommunism.org

 

2019년 3월 26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03-26/no-war-but-the-class-war-nwb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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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네쿡 - 노동자평의회] 현장점거

현장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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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건으로 더 향상된 노동조건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투쟁이 출현했다그것은 바로 현장점거이다이는 대체로 연좌파업이라고 불리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작업을 멈추기는 하지만 공장을 떠나지는 않는다연좌파업은 이론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이론은 단지 후에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줄 수 있을 뿐이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에서 실업은 너무 일반화되었고 지속적이었기에 직장을 가진 일부의 특권자들과 실업 대중 간의 일종의 계급 적대로 전개될 정도가 되었다그리고 임금삭감에 대항한 정규적인 파업은 불가능해졌다왜냐하면 파업노동자에 의해 텅 빈 작업장은 작업장 밖에 있는 대중으로 즉시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더 나쁜 노동조건 하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작업장을 점거함으로써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붙박여 있는 것과 결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현장점거가 벌어지자 연좌파업은 보다 발전된 투쟁 형태의 표현으로서 더 자세히 고찰해볼 가치가 있는 특성을 보여주었다그것은 더욱 견고한 단결의 형태를 증명했다이전의 파업 형태에서 노동 공동체는 작업장을 떠나면 해체되어버렸다즉 노동자들은 거리와 집으로 흩어져버렸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느슨한 개개인으로 분리되었다하나의 몸체로서 토론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거리와 광장 같은 회의 장소에 집결해야 했다그러나 종종 경찰과 당국은 이를 방해하고 심지어는 금지하려고 애를 썼다이에 노동자들은 법률적 목적을 위한 합법적 수단을 통해 싸우려는 의식을 통해 자신이 그러한 공간을 사용할 권리를 요구했다노동조합 활동의 합법성은 대중 의견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커져가는 대자본의 권력이 국가 당국을 능가함으로써 모든 공회장과 광장마저도 자신들이 점유하려고 할 때 이러한 합법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며만약 노동자들이 싸우려면 그러한 공간을 점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했다미국에서 모든 대규모 파업은 일반적으로 거리와 회의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경찰과의 계속된 투쟁을 동반했다작업장이라는 적당한 장소에 모일 수 있는 권리를 얻음으로써 연좌파업은 앞서와 같이 노동자들이 집회 장소를 두고 골치를 썩을 필요로부터 해방시켜줬다동시에 이러한 파업은 파업파괴자들이 파업노동자의 장소에 침입하기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참으로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이는 완강한 투쟁을 필요로 하였다작업장의 소유자로서의 자본가들은 파업노동자에 의한 현장점거를 그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그리고 이러한 법률적 판단을 통해 그들은 경찰에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청했다마치 파업이 형식적 법률과 충돌하는 것처럼실제로 엄격한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현장점거는 형식적 법률과 충돌한다그리고 사실 고용자들은 규칙적으로 자신의 투쟁 무기로 이러한 공식적 법률에 호소했고 법률은 파업노동자들을 계약 위반자라는 오명을 씌우고 고용주에게는 작업장에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권리를 부여했다하지만 파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법률적 논리에 맞서 파업은 투쟁 형태로 지속되었고 발전해갔다.

 

  실제로 형식적 법률은 자본주의의 내적 현실을 표현해주지 않으며 단지 중간계급과 법률적 견해의 유착이라는 자본주의 외적 형식만을 표현해줄 뿐이다자본주의 실제는 평등하게 계약하는 개개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투쟁하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노동자의 권력이 너무 작아 공식적 법률에 대한 중간계급의 견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계약 파괴자로서의 파업노동자들은 해고되어 다른 사람들로 대체되었다그러나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그러한 장소를 획득하게 되자새롭고 진실한 법률적 착상이 나타났다예컨대 파업은 위반이나 중지가 아니라 단지 노동조건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노동계약을 일시적으로 보류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법률가들은 이러한 관점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사회는 이를 실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현장점거가 필요하거나 노동자들이 이를 수행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투쟁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주장되었다자본가들과 법률가들은 현장점거를 소유권의 침해라고 떠들어댔다그러나 노동자에게 현장점거는 재산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그들의 소유권의 효과를 보류시키는 것일 뿐이었다즉 현장점거는 현장을 탈취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단지 자본가에 의한 처분권을 순간적으로 보류시킨 것일 뿐이었다싸움이 해결된 이후에는 자본가는 주인이 될 것이고 예전처럼 논의의 여지가 없는 소유자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현장점거는 그 자체 이상의 무엇이다즉 지평선에서 비치기 시작하는 여명처럼 희미한 미래의 발전 모습이 떠올랐다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줬다그들은 현장조직으로써 견고한 상호결속이 나타났고자연적인 통일체는 단일 개별자로 용해되지 않았다여기서 노동자들은 작업장과 자신의 친밀한 연관을 의식하게 되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이제 그들이 해고될 때까지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명령하는 그러한 사람의 건물이 아니었다노동자에게 기계가 있는 작업장은 그들이 운용하는 생산적 기구이자 단지 그들의 노동에 의해 사회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만들어내는 기관이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즉 작업장은 작업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작업장의 법적 소유자들주주들에게보다는 노동자에게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었다공장에서 노동자는 그곳이 그들의 삶그들의 생산적 노동의 중심이자 공장을 살아있는 기관사회의 총체의 요소로 만들어주는 집합체로서의 노동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키워갔다이때 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가 전적으로 생산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인류의 부를 소비하고 남용하며 전 지구를 황폐화시키면서 명령만 하는 자본가 같은 무가치한 외부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막연한 감각이 생겨났다. 그리고 힘든 투쟁을 거치면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작업장이 조직화 및 공동행동의 단위로서그리고 아마도 그 기반이자 본거지 및 힘의 중심이자 투쟁의 목표로서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노동자와 작업장의 자연적인 관계와 비교할 때 자본의 명령은 인위적이고 외적인 지배로서 나타나며아직은 강력하기는 하지만허공으로 사라져버릴 그런 것일 뿐이었다반면 성장하는 노동자의 장악력은 땅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이처럼 현장점거에서 작업장이 노동자의 소유가 되고작업장 모두가 조화로운 단위를 형성하며작업장을 통해 해방을 위한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식의 성장 속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의 단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안톤 판네쿡노동자평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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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쿠바 국가자본주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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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쿠바 국회에 사유재산 존중토지 상속권 유지외국인 투자 인정 등이 포함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같은 해 12월 통과 되었다처음 개정안에는 공산주의가 삭제되었지만 마지막에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한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개헌 국민투표는 2019년 2월 24일에 실시되었으며투표 참가자 784만여 명 중 681만여 명에 해당하는 86.85%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물론 이 개헌은 쿠바 혁명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었고쿠바가 초국적 투자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헌법적 표현에 불과하다그동안 쿠바의 고립은 미국이 유지하는 경제 블록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증폭되어 왔다.

 

쿠바는 최근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 정부 위기로 보건서비스 및 문맹 퇴치 활동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 80년대 소련 위기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도 쿠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이에 쿠바 정부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쿠바 헌법 개정은 새로운 걸 가져오지 않는다자본 투자자 집단 모집과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한 과정 또는 조치만을 조정할 뿐이다호메로 아코스타 국가평의회 서기는 기회주의자나 거짓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원칙의 틀 안에서 전면적인 개혁에 직면해 있다"라면서 쿠바가 "사회주의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며헌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예정된 변화를 의원들에게 먼저 보여 주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그들이 "시장 법칙의 객관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쿠바의 국가 자본주의는 민간 기업가에 대한 과세로 재정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다그것은 민간 기업(국가 또는 초국가적투자 상품 수요를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입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이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화폐 재통일 및 통화 평가 절하를 위한 배급 카드를 제거하는 경로를 설명해준다쿠바 경제에 숨겨져 있거나 묻혀있는 민간 상업 활동은 점점 더 강력하게 번창하고 있다이것은 쿠바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이 "더 새롭고 기능적인 유형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부르던 것이다국가는 수십 년 동안 "애물단지(white elephants)"였던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고 국제 시장 모든 경쟁력에서 벗어난 제품으로 인해 파산한 성장가능성 없는 회사들을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른바 "좌파"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쿠바의 자본주의로 복귀"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그러나 사실 자본주의가 결코 쿠바를 떠난 적이 없다자본 축적은 국가에 의해 중앙 집중화되었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쿠바가 그렇게 많이 선전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늘날 쿠바 부르주아 정부는 국가자본주의를 개혁할 뿐이며경제 정책은 자본주의 세계 위기 영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월 20달러월 10달러의 연금에 맞닥뜨린 봉급생활자들의 요구는 구체화되고머지않아 정치 투쟁으로 변할 것이다쿠바에서도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 혁명 목표를 재발견하고 계급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당(The Communist Party)」 12호,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참고자료>

 

쿠바카스트로체 게바라그리고 억압

 

1931-33년 임시 대통령 쎄스페데스에 쿠데타를 일으킨 바티스타는 1940년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1952년 다시 쿠데타로 집권한 뒤지방 인민사회당의 지지를 받았다쿠바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도시와 농촌 사이에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1958년 하바나에는 성매매 여성이 11,500명에 달했으며 부패가 극심했다.

 

멕시코에서 7월 26일 운동(M-26)이라는 게릴라를 결성한 카스트로는 1958년 11월 7일 체 게바라와 함께 하바나로 진군하여 1959년 1월 8일 수도에 입성한다. 5개월 동안 바티스타 지지자 6백여 명이 처형되었는데광장에서 로마식 공개 처형으로 이루어져 전체주의적 테러의 양상을 띠었다혁명 직후 카스트로는 뉴욕 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에 관심이 없다승리 후에 고향 마을로 가서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1976년까지 대통령령으로 지배했으며 정적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었고혁명 동지들을 교체했고, 1976년 소련 모델의 헌법을 제정했다.

 

노동자는 억압받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1962년 8월 설탕 노조 지도자인 살바도르가 체포되고, 12년 동안 수감되었다교육과 예술 분야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지속되었는데, 1961년 9월 17일 131명의 신부가 국외로 추방되었다산업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체 게바라는 쿠바에 소련 모델을 이식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혁명의 숭앙자였다. 1960년 쿠바에 노동수용소를 창설한 사람은 카스트로가 아니라 체 게바라였으며 새로운 인간의 숭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쿠바 청년을 군사화한 기술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쿠바 혁명의 주력부대인 게릴라와 그 지도자인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신화를 벗겨볼 필요가 있다게릴라 부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며 그들이 내건 맑스주의는 그들이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반()양키저항의 편리한 덮개에 불과하다이 게릴라 그룹은 결코 농민 봉기의 표현이 아니었고노동계급의 봉기는 더더욱 아니었다그것은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가 다른 분파를 전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군사적 표현이었다카스트로의 게릴라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어떤 민중봉기도 없었다피착취계급과 빈민은 권력을 쥔 새로운 주인에게 환호할 뿐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바티스타 군대의 약한 저항에 대항하여 게바라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로 카스트로를 무색하게 할 만큼의 용맹스러운 게릴라처럼 보였다. ‘혁명 법정을 통해 이른바 민중적 정의를 실현하면서 체는 우리는 총살했고아직도 총살시키고 있으며 필요한 한 계속해서 총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이는 무력에 의해 다른 분파를 제압하는 부르주아지 분파의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카스트로 민족주의 정권은 재빨리 자격을 갖춘 공산주의로 치장했다다른 말로 하면 카스트로 정권은 소련이 이끄는 제국주의 진영으로 나아갔다주요 군사요원과 민간인이 있고 동구 블록 국가의 비밀 활동이 있는 섬 쿠바의 스탈린주의화는 1962년 미사일 위기로 그 정점에 달했다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데 여기서 그는 아낌없이 소련을 찬양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사상의 자유가 지배하는 곳”, “자유의 모국이라고그는 또한 모든 사람이 열정에 차 있고 모든 사람이 근무시간을 넘어 일하는특별한’ 북한과 마오의 중국을 찬양하고 이어서 동구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가 특별하다그들의 삶의 체제발전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삶과 발전 체제를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추켜세웠다.

 

체 게바라에게서 소련과 그 블록은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진영이었고, ‘하나여러 개의 베트남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국제주의적” 표어가 아니라 러시아 블록에 우호적인 민족주의적 슬로건일 뿐이었으며미국에 대한 증오였다. “민족해방은 인민의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이념적 신비화였다노동계급이나 다른 피착취계급 어느 것도 이러한 전쟁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었다워싱턴의 비밀활동과 각종 마피아가 통제하는 부패한 바티스타 독재로부터 스탈린주의 블록으로 넘어간 쿠바는 민족해방투쟁의 비극적인 축약되었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어하는 국제주의 정도를 벗어난 쿠바의 길은 부르주아 방법인 테러와 국가 자본주의다시 말해 자본주의 착취의 가장 잔인하고 전체주의적인 표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주의와 다른 변동(마오주의로부터 카스트로주의까지)의 공통적 특징 중의 하나는 대중의 뇌 속에 의식을 주입하는 지식인이 이끄는 혁명의 주체를 신화적 빈농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이다이러한 사이비 혁명가들의 저술 속에서 누구도 계급 권력기관인 소비에트를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어떠한 참조도 발견할 수 없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중은 주장하는 것처럼 양떼처럼 행동하는 … 같은 유형의 요소의 합이 아니다지도자들기본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주저하지 않고 따르는 것은 옳다.” 피상적으로 보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다대중은 비길 데 없는 열정과 규율로 정부가 정한 과업을경제문화국방스포츠 분야에서 수행한다 … 일반적으로는 주도권은 피델로부터혁명적 지도부로부터 나온다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민에게 설명된다.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1965)

 

쿠바에서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주요기관 중의 하나는 놀랍게도 노동조합이다쿠바노동조합총연맹(CTC)은 이미 미국식의 노동조합이었으며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부패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었다쿠바 지도부는 이들은 1960년에 관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모형에 기반을 둔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으로 재빨리 전환시켰다카스트로 정권의 첫 번째 결정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책임을 지게하고 회사에서 파업 금지를 강제하는 것이었다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미제국주의 반대와 쿠바 인민의 방어로 정당화되었다쿠바에 있는 미국회사에서 임금 삭감에 대항하는 파업 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카스트로 정권의 지도자들은 파업 노동자를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게바라는 다른 누구보다 더 과감한 민족주의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지도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아직도 카스트로주의라는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열대지역 변종의 대표이기도 하다.

 

볼리바르 혁명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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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스트 노동자 선언

2019 메이데이코뮤니스트 노동자 선언

 

촛불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

 

자본에 맞서거짓 평화에 맞서 계급전쟁을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노동존중을 내걸었던 자본가 정부가 가면을 벗어던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공약(公約)은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거짓임이 드러났다.

 

같은 자본가 정권으로 적폐청산의 대상이자 노동탄압의 상징이었던 이전 정권과 경쟁하듯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박근혜와 함께 처벌받고 청산되어야 마땅한 재벌과 자본가 단체들은 언제 우리가 자본가 세상에서 고개 숙이고 숨죽이며 살았냐면서 반격에 나서고 있다그들은 어느새 한 몸이 되어 더는 물러설 곳도 추락할 곳도 없는 노동자들을 향해 비열한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친자본 정책 전환은 본질적으로 보수 세력과 자본가계급의 압력이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 정부의 본색을 드러낸 것 뿐이다노동존중은 애초 관심조차 없었기에 정책을 전환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러한 거짓선전을 할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의 기반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이었고여기에는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포섭된 다수의 노동자가 존재한다이러한 세력은 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인 위기 상황에서 개량의 물적 토대가 제한적이고첨예한 계급대립 상황에서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지배계급 편에서 노동자계급을 포섭하는 데 주력한다.

 

지금은 조직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이 약해져 있고계급 내부 분열이 공고화되었기 때문에노동자들을 최대한 밀어붙여 양보를 얻어낼 것이다이것은 희생과 양보의 크기를 두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면서 포섭해나가는 자본의 전형적인 위기 전가 방법이다여기서 위기 유포(희생 강요)와 사회적 타협(경사노위)은 상호보완성을 가진 자본가계급의 유용한 무기다이에 맞선 노동자의 무기는 투쟁을 강화하는 것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사회적 타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노동자에게 절대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쟁 회피의 다른 말인‘ 교섭과 투쟁 병행’ 노선은 단결과 투쟁의 힘을 무너뜨려 결국 타협에 매달리게 할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탄생에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심화시킨 치명적인 위기를 떠안고 출발했다하지만현 정부가 어떠한 특별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그것이 노동존중의 가면을 쓰던적폐청산의 가면을 쓰던한반도 평화의 가면을 쓰던그 해결책을 기존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아야 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미가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체제 보장/한반도 평화/제국주의 세력 개편은 평화의 문제, ‘민족의 문제, ‘체제의 문제로 포장되어 있지만실제로는 경쟁하고 대립하는 지배계급 내부의 사활을 건 싸움이다따라서 시간도내용도절차도 모두 그들의 방식대로 진행되며오직 노동자계급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에서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여기서 노동자계급이 국제적이고 독자적인 관점을 갖지 않는다면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지배계급 간의 전쟁에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과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지배계급이 주도하는 평화는 계급전쟁을 종식하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번영은 이윤 획득과 계급 불평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일 뿐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갈수록 깊어지는 위기를 다음 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구걸하게 될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다위기를 극복하는 것도노동자계급의 힘을 되찾는 것도자본가 정부와 촛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촛불 이전에 더 잘 싸웠다독재정권에서도노동자 투쟁이 불법일 때도 훨씬 잘 싸웠다노동자의 방식으로노동자의 자리에서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해서 투쟁했기 때문이다조합주의와 관료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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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다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을 지속해서 공격할 뿐 아니라 생태파괴를 통해 지구 생명체의 미래까지 점점 더 위협해가고 있다또한그것은 우리를 전쟁과 야만으로 이끌고 있다오늘날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전쟁은 노동자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지만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이러한 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가짜 사회주의·사민주의 진보좌파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부상을 촉진하면서 노동자들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자본주의는 이제 인류에게 평화롭고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오히려 부르주아지는 수천만의 프롤레타리아가 서로 학살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인류의 생존 고통이 커지는 동안 그들은 치명적인 무기 생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다자본주의 존재는 노동자계급과 인류의 생존그리고 이 지구 자체의 존립과도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그것은 몇몇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며지도자의 선택 문제를 넘어선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 이다.

 

노동자의 주적은 부르주아 국가에 있다그 적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이다하지만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고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는 모든 국가민족정치 세력 또한 우리의 적이다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모든 민족주의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여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는 것이다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계급전쟁뿐이다.

 

모든 착취와 억압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를 위해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조직할 때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강화하고 전면화할 코뮤니스트당으로 집결해야 한다.

 

자본에 맞서

자본가 정권에 맞서

제국주의 전쟁과 거짓 평화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전쟁계급전쟁을!

코뮤니스트당 건설을!

 

 

2019년 메이데이

투쟁하는 코뮤니스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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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4주기 : 마지막 거리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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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선생 4주기

     

    기억과 추모

     

     2015년 6월 26일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 

     

    제가 런던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을 때 박사 논문이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이에요. 지금 상황과 딱 맞는 얘기이에요. 맑스는 ‘자본주의가 언제 망할까?’ 에 대해, 공황이 주기적으로 자꾸 발생해서 자본주의가 형편없는 경제체제, 사회체제, 정치체제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질 때 결국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이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자본주의가 경기가 좋을 때는 자본주의의 나쁜 면(진짜 속성)이 잘 안 나타나는 데 지금 이렇게 불황이 오고 공황이 오고 이럴 때는 ‘자본주의는 이런 사회구나’라고 분명히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확신하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사실 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이렇게 어려울 때 우리 노동자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본가들도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 세계 시장이 자꾸 좁아지니까 자기들도 어떤 식으로든 탈출해야 하는데 탈출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러니 서로가 싸움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가 하는 것 봐요. 엉터리 짓만 자꾸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자본가들도 그런 식의 엉터리 짓만 하다가 스스로 망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주)재능교육 여기도 정신이 빠진 거죠. 이 단계까지 누구한테 손을 벌리고 누구한테 동정을 사든가 방법이 하나도 없다고요.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고 돈을 가지고 권력을 사고 권력에 영향을 주고 뇌물을 주고 정치적으로도 막강하죠. 금방 알잖아요. 경찰이 와서 자본가들 말만 듣죠. 그것은 법원에도 다 마찬가지예요. 법원에 가면 돈이 있으면 전부 무죄가 되는 판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싸워 왔지만 조금만 더 싸우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자본가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가들이 이처럼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하면서 점점 더 자기들의 적대세력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박근혜 그 형편없는 사람이 자꾸 악수 두는 것 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노동자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임금수준을 낮춥니다. 노동자는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먹고 살 수 없다고 가만히 죽을 수는 없죠. 저항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면 자본가계급과 기존의 세력들은 이것을 극복하려 노동자계급과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고 조직되지 못하게 압박을 가하고 억압을 가합니다. 그게 사실 히틀러와 같은 파쇼정권입니다. 파쇼가 그런 데서 나온 겁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1933년 대공황이 일어난 때입니다. 자본가들이 자기의 힘으로는 해결을 못 하니까 그런 히틀러와 같은 깡패를 대통령에 앉히고 총통에 앉히고 이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죠. 지금 다른 나라도 똑같아요.

     

    미국에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 된다고 선거운동 했을 때는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흑인이 대통령 되는 게 처음 있는 일이고 그때는 오바마가 말도 참 잘했죠. 그러면서 부시가 하는 정책은 전부 다 거꾸로 하겠다고 했죠. 전쟁 종식시키겠다! 민주주의 하겠다! 빈부격차 없애겠다! 이런 소리 다 했다고요. 그런데 대통령 딱 되니까 마음이 확 달라졌죠.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 무슨 얘기냐 하면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 자기 혼자 똑똑해도 소용없습니다. 사회 전체를 자본가계급이 잡고 있으면 대통령이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사실 오바마는 진보적 색채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아니 띨 수도 없죠. 자본가계급에 계속 밀려가고 있습니다. 전쟁을 끝냈습니까? 전쟁을 계속하고 있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민주정부를 세워서 모든 사람 잘살게 한다고? 무얼 잘 살게 해. 전부 거짓말이죠. 나는 오바마나 박근혜나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가 대통령 되려고 선거 운동할 때 ‘경제민주화’가 어떻고, ‘복지’가 어떻고 말을 얼마나 잘했나요? 금방 대통령 되자 전부 없어졌잖아요! 사기꾼들이예요! 원래 사기꾼들이예요! 거기에다가 사태를 점점 악화를 시키죠. 세월호도 그렇죠. 메르스도 그렇죠. 형편없는 정부라고요……

     

    여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정부를 타도해야 하는데 이런 정부가 사실은 타도가 잘 안 되는 것이 미국도 마찬가지죠. 미국도 한 번 보세요. 부시 정부 때 중앙정보부 세력이 엄청나게 커서 다른 나라 가서 전부 정보를 조작해서 그 정보 가지고 여러 사람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반대가 나고 데모도 심해지면 그때는 전화나 이메일을 도청하여 무슨 약점이 없나 찾아내서는 미리 잡아서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이 단계가 미국으로서 참 문제가 많은 것이 미국이 베트남전쟁이 끝난 것이 1975년에요. 베트남 전쟁에서 지죠. 미국이 진다고요! 세계에서 그렇게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군사적으로 부강하고 이런 나라가 어떻게 해서 베트남에서 가서 베트콩하고 호지명한테 지느냐고요. 돈 많고 무기 많고 그렇다 해도 질 수 있다는 것이 금방 나타나는 것이에요. 지금 이라크도 마찬가지죠. 이라크군하고 미군이 가서 IS군하고 싸우고 있는데 이라크군이든 미군이든 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무기가 전부 IS군으로 넘어가잖아요.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고요. 이런 식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 나아가요.

     

    또 하나 제가 볼 때는 우크라이나가 말이 안 되는 것이 우크라이나 지금 쿠데타를 한 놈들이 뭐냐면 옛날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 놈들에게 무기 주고 돈 주고 그전에 소련이랑 가까운 친러 세력 대통령 쫓아내잖아요.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죠. 기존의 세력이 자기들의 양심도 없고 정치적으로 세력도 잃어가고 이데올로기로써 남을 설득 못 하는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굉장히 커요. 이걸 알아야 해요. 경제적으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투자가 안 되는 것이죠. 큰 기업들이 이윤이 나면 원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투자를 해야지요. 새로운 기계 도입하고 규모를 확대하고 노동자 고용하고 기술 개발하고……, 이런 식으로 해야지 그 기업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원료도 사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아서 생활필수품 사서 이러면 경제가 자꾸 확대되는 거예요. 원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경제를 잡고 있는 사람은 자본가죠. 자본가가 투자를 안 하면 시장이 꽉 막히는 거예요. 투자를 안 하면 시장이 막히면 상품이 안 팔리면 경제가 죽는 거예요.

     

    자본가들이 백억 이윤이 나왔으면 그중에서 50%를 무엇을 하느냐면 자기회사 주식을 산다고요. 자기회사 주식을 왜 사냐면 주식을 사면 주식 가격이 올라가잖아요. 주식가격이 올라가면 그 회사의 주주들이든지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팔면 큰 이윤을 얻고 주식가격이 올라가니까 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전부 또 그 주식 살려고 오니까 그 주가는 자꾸 올라간다고요. 지금 자기 회사의 주식 사는데 이윤의 50%를 쓴다고요. 그래서 주식값이 자꾸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건데. 주식가격이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회사가 바뀌는 게 뭐가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든지 주식을 투기하는 사람들만 자꾸 배를 불린다고, 주식 투기하고, 주식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은 전부가 비생산적인 사람들이예요. 아무것도 생산 안 한다고 먹고 노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에게 재산이 그곳으로 전부 간다고요.

     

    그래서 알다시피 10년 전부터 보면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얘기하는데 빈부 격차가 심한 것 중에서 돈을 가장 잘 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주식에 투자하고 은행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새로운 세상에는 놀고먹는 썩어빠진 놈들, 투기꾼 전부 없애야 해요. 방향은 그렇게 갑니다.

     

    그다음 40%가 어디로 가느냐면 40%를 떼서 주주한테 배당을 많이 해요. 투자가가 자기 회사 주식 사지 않으면 자기회사 주주들에 배당 많이 준다고, 배당 많이 주면 밖으로 다른 사람들은 ‘저 회사가 잘 되니까 배당을 많이 주는구나.’ 그러면서 그 회사 주식을 많이 사려고 하죠. 그러면 자꾸 주식값이 올라간다고요. 공황이 시작된 게 보통 2008년이라고 하는데. 2008년에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고 주식 값이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데 2009년 중반쯤 되면 주식값이 바닥을 넘어 자꾸 승승장구한다고요. 그래서 자본가들 얘기하는 것은 ‘아!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살아나긴 뭐가 살아납니까? 주식값만 자꾸 올라가면 뭐해요. 여러분이랑 아무 관계없는 데. 돈 좀 있다는 중산층들은 주식가격 올라간다고 해서 주식 사서 홀딱 망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진다는 걸 알아야 돼요.

     

    나머지 이윤이 난 10%를 가지고 새로운 기계 도입하고 노동자 고용한다고 하는데 10%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고요. 지금은 이렇게 보면 돼요. 지금 기업들이 임금도 낮아지고 일을 무자비하게 많이 시켜 이윤을 엄청나게 얻습니다. 이윤이 많이 났는데도 그것이 생산적으로 공장을 확대한다든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준다든지 교육을 한다든지 새로운 기계를 가져온다든지 이런 데는 한 푼도 안 쓰고 노는 사람들, 쓸데없는 사람들, 필요 없는 사람들만 자꾸 부유하게 한다고요. 사회가 망할 징조가 딱 되어있는 것에요. 아시겠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지금 그런 상황이 유럽에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 1980년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이에요. 신자유주의라는 게 뭐냐면 자본가들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면 그래서 자본가가 잘살면 보통 사람들도 거기에서 나오는 국물, ‘국물 먹고 보통 사람들도 잘살 수 있다.’ 그런 주장인데. 말이 안 되는 주장 이예요. 그 사람들이 새로운 생산을 해야지. 생산을! 일자리를 만들어야 내야 소득을 만들어내야지. 지금 이렇게 해서 무슨 국물이 생기냐고요.

     

    그리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리스도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절에 정부가 긴축해서 일하는 사람 수 줄이고, 그 사람들 임금 깎고, 못사는 사람들한테 돈 주는 것 그거 깎고, 자꾸 깎아 버리면 시장이 확 망하는 거예요. 시장이 죽어가는 데 뭘 할 수 있겠어요. 이번 연초에 그것에 반대해서 좌파연합이 집권했습니다. 집권했으면 유럽의 독일, 영국, 프랑스 많이 있잖아요. 그 나라들이 그리스를 도와줘 경기가 나아지도록 해야 할 건데 그걸 완전히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리스 잘못 하다가는 국가 부도나고 그럼 유로존에서 또 EU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자꾸 만들려고 궁지에 몰아가는 거예요. 지금 이 상황이 절대적으로 호전될 기미가 하나도 없고 전쟁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나토에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많이 보내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 있다. 자꾸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러시아하고 전쟁하겠습니까? 전쟁하면 자기들이 다 죽지요. 러시아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유럽 다 죽고 미국 다 죽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을 우리나라 같은 이런 데에 일으키려고 해요. 자기들은 아무 손해도 없이 전쟁하는 사람들한테 무기나 팔아먹고 이렇게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 봐요. 군인이라는 놈들이 전부 부정과 부패로 가짜배기 무기로 돈 먹고 이런 놈들이 어디 있어요. 뻔히 알잖아요. 북한이 엄청나게 개발한 것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엉터리 무기를 자꾸 사 와서 자기 주머닛돈만 벌려고 하니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요. 대통령이라는 사람 머리가 없어요. 그렇게 하면 북한이랑 전쟁하지 말고 ‘우리끼리 잘 지내자!’ 이렇게 해야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돈을 국방비에 엄청나게 쳐다 넣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박근혜 들어오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졌다고요. 국가재정 규모자체도 굉장히 줄어들고 돈 자체가 서민들에게 쓰이는 것, 교육에 쓴다든지 기술개발에 쓴다든지 문화에 쓴다든지 노동문제 쓰든지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무슨 사건이 일어나던지 세월호, 메르스 보다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정신을 차려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내가 2, 3년 전에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은 소련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 맑스가 원래 이야기한 거예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란 어떤 사회냐면 여러분들이 이 회사를 전부 차지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돼서 여러분들이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서 집단적인 이성을 통해서 이 회사를 바로 운영하는 나가는 것. 모든 회사가 그런 식으로 된다면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사라지는 거예요. 사라진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물적, 인적 자원으로도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거예요.

     

    자꾸 그런 얘기하잖아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2만 달러예요. 2만 달러면 1인당 2천만 원이예요. 모든 사람이 갓난아기, 노인까지 합쳐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면 1년에 2천만 원을 쓸 수가 있다는 거예요. 한 가족이 4명이라고 하면 한 가족이 8천만 원을 쓸 수 있다. 12개월로 나누면 660만 원 되더라고. 4인 가족이 세금 다 떼고 순소득으로 한 달에 660만 원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정도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라고요. 한 달에 660만 원을 순소득으로 세금 다 제하고 받는 사람이 그리 많아요? 없지요. 나도 안 돼요. 처음부터 소득분배가 엄청나게 불균등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소득만 균등하게 해도 모두가 살 수 있고, 자살 안 할 수 있고, 굶어 죽는다는 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박정희 이후부터 굉장히 우리 노동자계급이 희생했는데, 지금 엄청나게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낸 건데. 그게 언제까지 계속 갈수 있냐고요. 계속 안 가기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이 회사의 주인이고, 자본가계급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는 그 체제를 없애야 해요. 그 체제를 없애지 않으면 어찌할 수가 없어요. 이 사람들이 주인이니까 건물을 가지고 있고, 기계를 가지고 있고, 돈을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고, 우리한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몇 시간 일해라. 너희는 비정규직이다 자꾸 이러는 거예요.

     

    자본가들의 재산이 늘어난 것은 결국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 이예요.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한 그 덕으로 돈을 자꾸 버는 거예요. 이제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갖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맑스가 생각한 아이디어예요. 기본적 아이디어.

     

    모든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내가 이것을 강의하고 강연할 때도 많이 이야기하고 학교에서도 많이 얘기하는데. 이게 그럴듯하잖아요. 왜 그러냐면 우리의 경험이 가르쳐준다고요. 거기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자꾸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자꾸 얘기해요. 사민주의가 뭐냐면, 좀 사람이 양심적이고 그래서 그 사람이 법도 굉장히 공정한 법을 만들어 내고 경찰도 공정하고, 정보기관도 공정하고, 법원도 공정하고, 깨끗한 사람이 들어오면 소득분배를 공정히 하면 모두 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느냐? 자꾸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게 엉터리예요! 그게 안 된다고요. 자본가계급이 재산을 가지고 있는 한 소유주가 그놈인 한 안 되는 거예요.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주어야 하는데 안 내주잖아요. 삼성 전부 그런 거예요.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잖아요. 삼성은 자기 멋대로 한다고요. 그놈들 없애야 하잖아요. 없애려면 맑스가 얘기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그런 상태의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노예로 살아간다고요. 맑스가 ‘자본주의에서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들은 임금노예다.’ 이랬어요. 임금에 딱 매여 있잖아요. 임금 못 받으면 죽잖아요. 그게 임금노예야. 자유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임금노예 상태에도 벗어나서 공장을 전부 차지하고, 함께 경영을 하고 모두가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일할 마음이 확 나는 거야. 자율적으로 능동적으로 엄청나게 일을 해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 같이 하는 일이니까 피곤하지도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모쪼록 여러분 투쟁이 그리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수행,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 

     

     

     

    *2015년 6월 26일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은 김수행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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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4주기 : 기억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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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선생 4주기

    기억과 추모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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