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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민족해방전쟁의 불가능성

  •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민족해방전쟁의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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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지금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즉 우리가 전쟁 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치더라도, 전쟁이 일단 일어난 마당에 적이 나라를 침략한 마당에 그러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어 적에게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독일인을 러시아인에게, 프랑스인과 벨기에인을 독일인에게, 세르비아인을 오스트리아인에게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사회주의의 원칙인 민족자결권은 각 민족이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지킬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말하지 않았던가? 제 집이 불타고 있으면, 방화범을 가려내는 것보다는 우선 그 불을 꺼야하지 않는가? “불타고 있는 집”이라는 주장은 여기 저기에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태도에서 큰 역할을 했다. 중립국가들에서도 그것은 학설을 만들었다. 즉, 네덜란드로 넘어가서는, 배에 물이 새고 있으면 우선 그 구멍을 막아야하지 않는가?라고.

     

    확실히, 외부의 적에 항복하는 민족은 내부의 적에 항복하는 당만큼이나 수치스럽다. 그런데 “불타고 있는 집”의 소방관들은 단지 한 가지를 잊었다.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조국 방어는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의 명령 아래 포탄받이 역할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먼저 그러한 “침략”과 관련해서, 이것이 정말 마치 대단한 마법사가 축출하고 마비시켜버린 마냥 나라 안의 모든 계급투쟁이 그 앞에서는 꼼짝없이 사라져버릴 정도의 그런 공포의 화신이란 말인가? 부르주아 애국주의와 계엄령의 경찰이론에 따르면, 모든 계급투쟁은 국방이라는 이해관계로 볼 때 하나의 범죄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의 방어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약화시키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아우성에 공식적인 사회민주당은 위축되었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의 현대 역사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침략은 지금 그려지듯 그러한 공포중의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적”에 대항해 우선적으로 활용되는 효과적 수단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부르봉왕가와 귀족들이 자코뱅에 대항해 그러한 침략을 나라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오스트리아의 교권 국가적 반혁명이 1849년 로마에 대항해 프랑스의 침략을, 부다페스트에 대항해 러시아의 침략을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프랑스에서 “질서의 당”이 1850년 국민회의를 길들이기 위해 코사크인의 침입을 가지고 위협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1871년 5월 18일 쥘 파브르, 티에르등과 비스마르크 사이에 체결된 그 유명한 조약을 통해서, 포로가 된 보나파르트 군대를 석방하고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코뮌 진압을 직접 지원한다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던가? 45년 전에 칼 맑스에게는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민족전쟁”은 속임수임을 폭로하기에 이러한 역사적 경험만으로도 충분했다.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파리코뮨의 몰락에 대한 그의 연설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는 엄청난 전쟁이 있은 뒤 승리한 군대와 패배한 군대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를 격퇴하기 위해 연합한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은 비스마르크가 믿는 것과는 달리, 부상하는 새로운 사회를 최종적으로 억눌렀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철저한 파편화를 증명한다. 낡은 사회가 여전히 행할 수 있던 최대로 영웅적인 도약은 민족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오직 계급투쟁을 밀어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계급투쟁이 내전으로 불붙자마자 한켠으로 비켜서 버리는 순전한 정부의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계급투쟁은 이제 더 이상은 어느 한 민족국가의 군복 아래에 자체를 숨길 수가 없다. 민족국가 정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항해서는 하나이다!”i[강조 –R.L.]

     

    침략과 계급투쟁은 그래서 부르주아 역사에서는, 공식적인 전설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대립항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수단이자 표현이다. 지배계급에게 있어 침략이 계급투쟁에 대항한 효과적 수단이라면, 떠오르는 계급에게는 항상 가장 첨예한 계급투쟁이 침략에 대항한 최선의 수단임이 증명되었다. 근대의 문턱에 이미, 도시들의 수많은 내적 변화와 대외적인 적대관계로 점철된 도시의 역사, 특히 이탈리아 도시들, 호엔스타우펜왕가ii에 대항해 100여 년 동안 싸웠던 밀라노, 플로렌스의 역사는 이를 보여주었다. 내부적인 계급투쟁의 위력과 격렬함 때문에 외부에 대항한 그 공동체의 방어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한 투쟁의 존재가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충돌에 저항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고 막강한 불꽃을 제공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고전적인 예는 프랑스대혁명이다. 1793년 프랑스에서는 그 심장인 파리가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때 연합된 유럽의 해일에 직면한 프랑스와 파리는 사방으로부터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가는 위험과 적의 침략에 맞서 전례없는 투쟁으로 위대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적들의 새로운 연합에 맞서 마르지 않는 투쟁의지의 새로운 기적으로써 타격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은 거대한 계급대립 상태에서 사회 내부 역량들이 무제한적으로 방출된 덕분이었다. 오늘날 한 세기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적들의 세계에 맞서 그러한 대립의 가장 첨예한 표현만이, 파리 민중의 독재와 그 가차없는 과격함만이 갓 태어난 부르주아 사회를 방어하고 공고히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단과 역량을 국가의 지반으로 다져낼 수 있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왕조의 계략, 귀족들의 매국적 음모, 승려계급의 획책, 방데봉기iii, 장군들의 배신, 60개의 현과 지방수도들의 저항에 맞서, 그리고 유럽 왕당파연맹의 연합군대와 전함에 맞서. 수 백년이 증명하듯이 민중의 자의식, 희생정신과 도의적 역량을 흔들어 일깨우는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항해 나라를 지키는 최선의 보호와 방어는 계엄령이 아니라 가차없는 계급투쟁이다.

     

    그와 동일한 비극적인 오류가 사회민주당이 민족자결권을 이 전쟁에서 그들 태도의 근거로 거론할 때 일어났다. 사회주의는 각 민족에게 독립과 자유의 권리, 지속적인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러한 민족자결권의 표현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진정한 조롱일 것이다. 이 나라들 가운데 어느 나라에서 지금까지 민족이 그 나라의 국가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현존의 형식과 조건을 결정했는가?

     

    독일민족의 자결권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라 주장하든 간에, 1848년 민주주의자들이,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선구자인 맑스, 엥겔스 그리고 라살레가, 베벨과 리프크네히트가 예고하고 옹호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는 대독일 단일공화국iv이다. 이러한 이상을 놓고 3월의 투사들은 비엔나와 베를린의 바리케이트 위에서 피흘렸고, 이 강령의 실현을 위해 맑스와 엥겔스는 1848년 프로이센이 러시아 차르와 전쟁을 하도록 강제하려 했다. 이 민족 강령의 성취를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조직화된 부패 더미”, 즉 합스부르크왕정의 해체였고, 프로이센 군사정권의 폐지와 독일 내의 20 여개에 해당하는 난장이 왕국의 폐지였다. 독일혁명의 실패로, 즉 독일 부르주아지가 그 자신의 민주주의적 이상을 배반함으로써 비스마르크의 통치가 초래되었고, 자칭 독일제국이라는, 하나의 프로이센식 투구아래 20 여개의 작은 나라를 거느린 대프로이센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독일은 3월 혁명의 무덤 위해, 독일민족의 자결권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터키의 유지라는 목적 이외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지와 프로이센 군사왕정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번 전쟁은 3월의 희생자들과 독일의 민족강령을 다시 매장하는 것이다. 1848년 애국자들의 상속자인 사회민주당이 “민족자결권”이라는 깃발을 손에 들고 이 전쟁에 나서는 것은 정말 역사의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니면 설마 지구상의 네 지역에 식민지를 소유하고 두 지역에서 식민지 만행을 저지른 제3 공화국이 프랑스민족의 “자결권”의 표현이란 말인가? 아니면 인도를 소유하고 남아프리카에서 500만 유색인 인구에 대한 100만 백인의 지배체제를 가진 대영제국이 그렇단 말인가? 아니면 터키가, 차르제국이 그렇단 말인가? 식민지의 주인 종족이 인류이고, 지배계급이 민족이라고 보는 부르주아 정치가들이나 이러한 식민지 소유국가에서 대해 일종의 “민족자결권”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민족이 그 국가적 존재를 다른 민족들의 노예화에 기초한다면, 이 말의 사회주의적 의미에서는 어떤 자유로운 민족국가도 없다. 왜냐하면 식민지 민족도 그 국가의 민족에 속하고 그 국가의 구성요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평등한 민족에게 그 권리를 인정하는데, 오직 국제 사회주의만이 그러한 민족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사회주의가 있고서야 민족의 자결권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 구호도 다른 모든 구호와 마찬가지로 기성세력의 성스러운 약속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이고 변화를 유발하며 능동적인 정치를 위한 일종의 지표이자 자극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존속하는 한, 특히 제국주의적 세계정치가 국가들의 내적, 외적 삶을 결정하고 형성하는 한, 민족자결권은 평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전쟁 시기에도 그 실행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오늘날의 제국주의적 환경에서 민족방어전쟁이란 도대체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결정적인 역사적 환경을 도외시하며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나라의 고립된 관점에 따라 좌우되는 모든 사회주의 정치는 이미 사상누각인 것이다.

     

    우리는 독일이 그 적대자들과 오늘 이렇게 충돌하게 된 배경을 이미 제시해 보았다. 이때, 현 전쟁의 원래 추동력과 내적 연관을 더 자세히 조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우리당의 제국의회 원내분파와 우리당 언론의 입장표명에서 독일의 존립, 자유와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독일 제국주의가 자체의 세계정치적 목표를 통해 지난 몇 십 년동안 준비해온 그리고 1914년 여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외교가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초래한 예방적인 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이 확고하게 포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대전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정치에 대해 갖는 이 전쟁의 의미를 전반적으로 평가함에 있어 공격과 방어의 문제, 즉 “책임자”를 찾아내는 문제는 완전히 사소한 것이다. 자기방어가 독일에게 가장 덜 그럴듯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면, 프랑스와 영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방어”하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 지위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정치적 지위, 독일이라는 도전자의 공격으로 위협당한 제국주의적 소유자로서의 오랜 지위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주의의 침략이 세계 대화재를 확실히 점화했다면, 그것에 덧붙여 프랑스 제국주의는 모로코를 집어 삼킴으로써 그리고 영국 제국주의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랍지역을 약탈하려 함으로써 그리고 인도에서의 강제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모든 방책들을 통해서, 러시아 제국주의는 콘스탄티노플을 겨눈 발칸정책을 통해서 연료를 한조각 한조각 끌어 모아 쌓아올렸다. 군사적 무장경쟁이 그러한 재앙의 발발에 추동력으로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것들은 모든 국가들의 경쟁이었다. 그리고 독일이 1870년 비스마르크의 정책을 통해 유럽의 경쟁적인 군무장에 초석을 놓았다면, 프랑스의 정책은 그 이전 제2 제국의 정책을 통해 장려되었고 그 뒤에는 제 3공화국의 군사적 식민주의적 모험정책에 의해,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팽창에 의해 지원되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특히, 프랑스정부와 전체 국민은 1914년 6월에 전쟁 의도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민족방어”의 환상에 빠져들어갔다. 조레스는 전쟁 전야에 브뤼셀의 민중의 집에서 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 “프랑스에서는 오늘날 모두가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조건없이 평화에 찬성한다”고 증언했다. 그 사실은 완전히 맞고, 그래서 그 범죄적 전쟁이 자신의 나라에 강요되었을 때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느낀 분노를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세계전쟁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의 전쟁이 탄생한 역사는 1914년 7월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필연성으로 한 가닥, 한 가닥 짜여진 제국주의 세계정치의 촘촘한 그물망이 5대륙을 감싸게 된 그 몇 십년을 거슬러 오라간다. 이 그물망은 그 뿌리를 경제발달의 지각 저 깊은 곳에 두고 있고 그 외부의 가지들은 어슴프레하게 동터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손짓하는 현상들의 엄청난 복합체이다.

     

    제국주의 정치는 어떤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 발전에서 특정 성숙도의 산물이다. 그것은 국내에서부터도 국제적인 현상이자 그 모든 상호관계들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그로부터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분할될 수 없는 전체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오늘날 전쟁에서의 “민족방어”의 문제가 평가될 수 있다. 민족국가, 민족적 통합과 독립, 그것은 지난 세기 중부 유럽 부르주아 대국의 성립에 쓰인 이데올리기적 간판이었다. 자본주의는 작은 나라들의 난립을, 경제 정치적 분립을 견딜 수 없다.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되도록 거대하고 내적으로 폐쇄된 영역을 필요로 하며, 사회의 욕구들을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상승시키고 현대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메커니즘이 기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정신문화를 요구한다. 자본주의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세계경제로 완전히 성장할 수 있기 전에는 한 국가의 닫힌 국경 안에서 그러한 폐쇄적 영역을 만드려 했다. 이러한 기획은 봉건적 중세로부터 넘겨받은 정치적 민족적 체스판 위에서 오직 혁명적 방법으로만 실행될 수 있었기에 프랑스에서만 대혁명 안에서 실현되었다. 유럽의 기타 지역에서는, 부르주아 혁명 일반이 그러하듯 도중에 짜집기가 되어버렸다. 독일제국, 지금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터키의 오늘날까지의 존속, 러시아제국 그리고 대영제국은 그 점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들이다. 민족적 강령은 상승하려 애쓰는, 국가 내에서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 부르주아 계급지배가 중부 유럽 대국들 안에서 진정으로 자리잡고 그 안에서 필요한 도구들과 조건들을 창출해 낼 때까지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제국주의는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 강령에 있어 민족적 연관성을 전혀 참작하지 않고 국경 너머로 팽창함으로써, 그러한 낡은 부르주아-민주주의적 강령을 무덤 속에 완전히 파묻어버렸다. 민족의 문구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내용, 그것의 기능은 정반대로 전도되었다. 즉, 그것은 이제 제국주의적 노력의 빈약한 구실로서만, 제국주의적 경쟁의 투쟁구호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민중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포탄받이의 역할로 동원될 수 있는 유일하게 최후의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현재 자본주의 정치의 전반적 경향은 이때 막강하고 우세한 법칙으로서 개별 국가의 정치를 지배한다. 경제적 경쟁이 개별 기업가의 생산조건을 강제적으로 결정하는 듯이.

     

    잠시, 사회민주당의 정책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 “민족전쟁”이라는 허상을 점검해 보기 위해서, 오늘날의 국가 중 어느 하나의 경우 전쟁이 그 출발점에서 실제로 순수하게 민족방어전쟁으로서 시작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그렇게 해서 특히 군사적 성공은 타 지역의 점령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획득에 관심을 둔 매우 영향력 있는 자본주의 그룹이 존재하는 경우, 전쟁이 진행됨과 더불어 팽창의 탐욕이 일깨워지고, 전쟁 시작 당시에는 맹아로만 존재하거나 수면상태에 있던 제국주의의 경향은 전쟁 진행과 더불어 스스로 마치 온실 속에서처럼 성장하여 그 전쟁의 성격, 목적 및 결과를 결정하게 된다. 게다가, 지난 몇 십 년 이래 국가의 정치적 관계를 지배하는 군국주의 국가 사이의 동맹체제로 인해, 모든 교전국은 전쟁의 진행과 더불어 처음에는 순수한 방어의 측면에서 나선 동맹국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그 전쟁에 연루되고, 이로써 불가피하게 세계정치의 제국주의권과 접촉하게 되며 새로운 제국주의권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 영국은 일본을 끌어들였고, 전쟁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확대하여 중국의 운명을 현안으로 만들었으며, 일본과 미국 사이의 경쟁, 영국과 일본 사이의 경쟁을 부추겼고, 장래의 충돌에 새로운 연료를 쌓았다. 그렇게 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 터키를 전쟁에 끌어 들였고, 이로써 콘스탄티노플문제, 전체 발칸의 문제, 근동아시아의 문제가 청산을 위해 직접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세계대전은 이미 그 원인과 출발점에서 제국주의적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이러한 결과들이 초래된 이상 지금의 조건 아래서 그것은 완전히 기계적으로,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적 세계분할과정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음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 전쟁은 거의 그 첫 순간부터 이미 그러한 분할과정으로 되어버렸다. 맞서 투쟁하는 진영 사이의 역량의 끊임없이 흔들리는 균형으로 인해, 그러한 각 진영은 순수하게 군사적인 관점에서라도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대립 발생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중립국들도 격렬한 민족적- 및 국가적 이권찾기를 통해 고삐에 매어 둘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루마니아에서, 그리스와 불가리아에서, 한편으로 독일-오스트리아가, 다른 한편으로 영국-러시아가 한 “제안”을 보라. 이른바 그 “민족방어전쟁”은 매우 의외적으로 작용하여 심지어는 관여되지 않는 국가에서도 소유상태와 권력관계를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방향은 명백하게 팽창하는 쪽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 전쟁이 비록 “민족방어전쟁”으로 시작되었다하여도, 각 교전국이 상대편의 식민지를 점령하거나 적어도 그 안에서 소요를 유발하려 함으로써 순수하게 군사적인 견지에서라도 그 식민지들이 전쟁에 함께 이끌려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들 수 있다. 영국이 독일식민지를 징발한 것 그리고 독일이 영국식민지와 프랑스식민지에서 “성스러운 전쟁”을 불붙이려던 시도를 한번 보라. 바로 이러한 사실 자체는 동시에 오늘날의 그 어떤 전쟁도 자동적으로 제국주의적 세계대화재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당의 제국의회 의원과 편집진의 머리 속에 아른거리는 소박하고 유덕한 애국적인 방어전쟁이라는 개념 자체는 순전한 허구로서, 전체에 대한 그리고 그 세계적 연관성에 대한 그 어떤 역사적 이해도 결여하고 있다. 전쟁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이른바 지도적인 정치가의 엄숙한 선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의 정직한 의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회와 그사회의 군사조직 각각의 역사적 상태이다.

     

    순수한 “민족방어전쟁”이라는 도식은 첫눈에 아마도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 알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위스는 하필이면 민족국가가 아니고 게다가 오늘날 국가의 전형도 아니다. 그 “중립적인” 현존과 풍부한 민병대 자체는 주변을 둘러싼 군사대국의 잠재적 전쟁상태의 부정적인 열매에 불과하고 그 나라가 그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동안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한 중립성이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어떻게 순식간에 짓밟히는 지를 벨기에의 운명이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약소국의 상황을 보게 된다. “민족전쟁”의 예를 보여주는 정말 고전적인 표본은 바로 오늘날의 세르비아이다. 만약 어느 국가가 모든 외적 형식적인 특징을 통틀어서 민족방어권을 가진다면 그것이 곧 세르비아이다. 오스트리아에 의한 합병으로 민족적 통일성이 끝장나고, 오스트리아에 의해 전쟁을 강제당한 채 세르비아는 어느 면으로 보나 자기 민족의 존립과 자유와 문화를 걸고 진정한 민족방어전쟁을 하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 원내분파가 그들의 입장표명과 더불어 정당했다고 친다면, 베오그라드 의회에서 전쟁에 반대해 항의하고 전쟁차관을 거부했던 세르비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말로 자기 나라의 생사의 이해관계에 대한 배반자들이 되는 셈이다. 사실 세르비아의 랍췌비취와 카츨레로비취는 국제사회주의의 역사에 황금글씨로 자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진정한 연관에 대한 예리한 역사적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자신의 민족의 계몽에 가장 훌륭한 공헌을 했다. 세르비아는 물론 형식적으로만 민족방어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왕가와 지배계급의 경향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국경에 구애됨이 없는 팽창을 지향하고 이를 통해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세르비아의 그 경향은 알바니아해안을 향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세르비아는 알바니아의 등 뒤에서 이탈리아와 진정 제국주의적 경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는 세르비아의 외부에서, 즉 강대국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의 배후에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세르비아 자체는 세계정치라는 커다란 체스게임에서 체스말의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커다란 연관성과 전반적인 세계정치적 배경을 도외시하고 세르비아에서의 전쟁을 판단하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자체만 분리해서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젊은 발칸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아주 정당하게 민족국가라는 오래된 민주주의적 강령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발칸을 제국주의적 세계정치의 초점이자 경쟁지역으로 만든 실제적인 역사적 연관성 속에서는 발칸전쟁들도 객관적으로 전반적 대결의 파편 하나에 불과하며, 치명적인 필연성으로 오늘의 세계대전을 초래한 사건들의 불운한 사슬 중 하나의 연결고리에 불과할 뿐이다. 국제 사회민주당 역시 발칸전쟁에 대한 어떤 도덕적 정치적 동조로 결연히 거부하고 그 전쟁의 진정한 외양을 폭로한 점에 대해 바젤에서 발칸 사회주의자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 사회민주당은 그 당시 이미 오늘날 전쟁에서 독일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갖게될 태도를 미리 심판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작은 국가들은, 예를 들어 네덜란드도 그 발칸국가들과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 “배에 물이 새면, 무엇보다 먼저 새는 곳을 막을 궁리를 해야 한다.” 작은 네덜란드에서 이 순수한 민족방어, 나라의 존재와 독립의 방어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 수 있겠는가? 홀란드 민족의 그리고 그 지배계급 자체의 의도를 놓고 보면, 물론 순수한 민족방어가 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 인식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어느 한 나라의 주관적 의도에 따라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치적 상황의 총체적인 복합체에서 국제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한다. 네덜란드도 원하든 원치 않든 오늘날 세계정치와 외교라는 톱니바퀴 전체에서 작은 톱니 하나에 불과하다. 이점은 네덜란드가 이 세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실제로 휘말려 들어간다면 당장 분명해질 것이다. 네덜란드가 전쟁을 치른다면 저절로 그것의 현재 소유물의 유지를 지향하게 될 것이고, 북해연안의 플랑드르민족의 방어와 민족독립성은 구체적으로 동인도제도에 있는 말레이에 대한 그 자체의 지배권과 착취권을 방어하는 것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즉, 네덜란드의 군사주의는 의지할 데 없이 혼자서는 세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호두껍질처럼 산산조각나고 말 것이다. 네덜란드는 또한 원하든 원치 않든 투쟁하는 대국들의 공범의 하나가 될 것이고, 이러한 측면으로도 순수하게 제국주의적 경향들의 담지체이자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오늘날 제국주의의 역사적 환경은 다시 각국들에서 전쟁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오늘날에 민족방어전쟁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카우츠키도 몇 년 전인 1907년 라이프치히에서 그의 팸플릿 『애국주의와 사회민주당』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애국주의가 두개의 완전히 다른 것이고, 바로 정반대의 현상이라면, 그래도 그 두 종류의 애국주의가 심지어 하나의 전쟁에서 공동으로 작용하도록 함께 흘러들어갈 수 있을 그런 상황이 존재한다.

     

    한 민족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적 독립과 자주성에 있어, 다른 민족에 의한 어떤 종류의 억압과 착취라도 극복하고 방지하는 데서 똑같은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한 노력들로부터 싹트는 민족투쟁이 일어났을 때 항상 프롤레타리아트의 애국주의는 부르주아지의 애국주의와 합치되었다. …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세력이 된 이래, 즉 국가에 더 큰 동요가 일어날 때마다 지배계급에게 위험스런 그러한 세력이 된 이래에는, 1871년 파리코뮨과 러시아-터키 전쟁 뒤 러시아 테러리즘이 보여주듯이 전쟁 끝에 혁명발생의 위협이 있게 된 뒤에는, 전혀 자립적이지도 통일되지도 않은 또는 충분히 그렇지 않은 그러한 나라의 부르주아지 마저도 그들의 민족적 목표가 정부의 전복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다면 그 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민족의 자립과 위대함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혁명을 증오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폴란드의 자립을 포기했고, 이미 한 세대 전에 멸망에 들어서는 듯 보였던 오스트리아와 터키 같이 케케묵은 국가구조가 존속하도록 했다.

     

    이렇게 유럽의 문명화된 지역에서 민족투쟁은 혁명이나 전쟁의 원인이길 멈추었다. 그곳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나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그러한 민족문제는 앞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뒤에야 해결될 수 있다. 그때에는 그러한 문제들이 국제적인 연대 덕분에, 오늘날의 착취와 억압사회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제로 투쟁이 일어날 때 더 이상 그런 문제에 전념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온 힘을 다해 다른 문제를 다뤄야 한다.” (12-14쪽)

     

    “그 동안에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와 부르주아 애국주의가 제 민족의 자유의 방어를 위해 단결하게 될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든다.”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차리즘과 단결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약화되었기에 서유럽의 자유에 더 이상의 위험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르주아 애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가 단결할 수 있을, 민족 자유의 방어를 위한 전쟁은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다.”(15/16쪽) [강조-R. L.]

     

    “아직 19세기에만 해도 몇몇 자유주의적 민족이 그 이웃에 맞서 전쟁으로써 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러한 대립이 이제 중단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오늘날의 군사주의가 중요한 민족 이해의 쟁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윤의 쟁취를 위해 적용됨을 보았다. 정작, 그 누구로 부터도 위협받지 않는 자기 민족의 독립성과 신성불가침의 확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이윤의 촉진에 기여하는 해외정복의 강화와 확장을 위해서. 오늘날 국가의 대립은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가 가장 결연히 맞싸워야할 그러한 전쟁을 더 이상 초래할 수 없다.” (23쪽) [강조 – R. L.]

     

    그 모든 것들로부터, 오늘의 이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실천 행동과 관련해서 도대체 어떤 결론이 얻어질 수 있는가? 이 당은 설마,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라서, 이 국가가 사회주의적 민족자결권과 민족적 이상v에 부합하지 않아서, 그래서 우리는 이와 무관하고 그러므로 적에게 나라를 희생시킨다고 선언해야 했을 것인가? 수동적으로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사회민주당과 같은 그러한 혁명당의 행동 지침이 될 수 없다. 지배계급의 지휘 아래 기존의 계급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아니라, 그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마다 지배계급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회초리를 때리는, 그 위기를 그것 자체 이상으로 몰아가는 독립적 계급정치를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로서 사회민주당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전쟁에 민족방어라는 허구적인 외투를 입혀주는 대신에 바로 그 민족의 자결권과 민족방어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때이다. 그것들을 제국주의전쟁에 맞서 혁명의 지렛대로 이용해야 한다. 민족방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민족이 방어를 스스로의 손으로 담당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민병이다. 이는 국민 가운데 모든 성인남자의 즉각적인 무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전쟁과 평화에 대해 민중이 결정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더 나아가서는 모든 정치적 권리박탈의 즉각적인 폐지를 의미한다. 최대의 정치적 자유가 민족방어의 기초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한 민족방어대책을 선언하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민주당의 첫 번째 과제였다. 40여 년 동안 우리는 민중과 지배계급에게, 조국을 진정으로 방어하고 패배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민병뿐임을 증명해왔다. 그리고 이제 첫 번째의 커다란 시험대에 오른 지금, 우리는 국방을 완전히 자명하다는 듯이 상비군들의 손에, 지배계급의 회초리 아래 있는 포탄받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우리의 제국의회의원들은 조국의 진정한 방어에 대한 ‘열렬한 희망’과 더불어 이러한 포탄받이를 전쟁터까지 동행했다. 그럼으로써, 프로이센의 왕립 상비군이 국가의 가장 위급한 순간에 그 진정한 구원자라고 그냥 인정해 버림으로써 우리의 정치 강령의 축인 민병을 그들은 깨끗이 희생시켜버렸다. 우리가 40년 동안 해온 민병에 대한 선동의 실제적인 의미를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다. 그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교조적-유토피아적 변덕으로 만들어버렸으면서도 확실히 이의원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깨닫지도 못했다.1*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거장은 조국방어를 다르게 이해했다. 1871년 프롤레타리아트가 프로이센 점령하의 파리에서 무기를 손에 들자, 맑스는 그 행동에 열광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낡은 정부 권력의 중심이자 소재지, 그리고 동시에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중심인 파리가, 그 파리가, 제국 체제로부터 넘겨받은 낡은 정부권력을 재건하고 영구화하려는 티에르와 그의 건달호족의 시도에 대항해 무장봉기를 했다. 파리는 오직 점령의 결과로 군대가 없어지고 그 대신 주로 노동자로 이뤄진 민중군이 창설되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이제 하나의 지속적인 제도 속에 변화시켜야 했다. 코뮌의 첫 번째 법령은 상비군을 금지하고 이를 무장한 민중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뮨이 프랑스 사회의 모든 건강한 인자의 진정한 대표자였다면, 그래서 진정한 민족정부였다면, 그래서 그것은 동시에 노동자정부로서, 노동해방의 용감한 선구자로서 그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국제적이었다. 2개의 프랑스지방을 독일에 합병한 프로이센 군대의 눈앞에서 코뮌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프랑스에 합병했다.”(인터내셔널대회 연설)vi [강조 - R.L.]

     

    그리고 우리의 노련한 거장들은 오늘의 이 전쟁과 같은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던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92년, 큰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맡을 정치의 윤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와 프랑스가 독일을 침략하는 그런 전쟁은 독일에게 생사가 걸린 투쟁일 것이고, 그 민족적 존재는 오직 혁명적 조처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부는 강제되지 않는 한 혁명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정부가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거나, 비상시에는 심지어 이 정부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당, 즉 사회민주당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가 1793년에 우리에게 보여준 위대한 모범을 잊지 않았다. 1793년의 10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차르의 정복욕과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국수주의적 조급함이 독일사회주의자들의 의기양양하지만 평화스런 전진을 가로막는다면, 이들은, 확신해도 좋다, 오늘날의 독일프롤레타리아들도 100년 전 프랑스의 상퀼로트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그리고 1893년도1793년에 필적될 수 있을 것임을 전세계에 증명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면 콘스탕씨의 병사들이 독일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라마르세예즈vii의 가사로써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뭐라고, 이 낯선 군대가 우리에게 비열한

     

    폭력을 우리 집 안에서 행사한다고?viii

     

    요컨대, 평화는 약 10년 안에 독일사회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한다. 전쟁은 2년이나 3년 안에 그 당의 승리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완전한 폐허를 초래할 것이다, 적어도 15년에서 20년에 걸친 폐허를.”ix[강조 - R.L.]

     

    이 글을 쓸 때 엥겔스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옛날의 그 차르제국을 눈앞에 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뒤 거대한 러시아혁명x을 경험했다. 게다가 그는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공격에 직면한 침략당한 독일의 진정한 국가방어전쟁을 생각했다. 진정한 투사들이 그 발전속도를 대부분 과대평가하곤 했듯이, 그는 결국 독일에서 상황의 성숙과 사회혁명에 대한 전망을 과대평가했다. 그의 상세한 설명으로부터 특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엥겔스가 사회민주당 정치의 의미에서 국가방어를 프로이센-융커체제의 군사정부와 그 총사령탑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자코뱅주의자들의 모범을 따른 혁명적 행동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큰 역사적 위기에서 자신의 나라를 방어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 제국의회분파의 중요한 실책은 바로, 그것이 1914년 8월 4일에 “우리는 우리 조국을 위험의 순간에 외면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말을 부인한데 있다. 그것은 가장 최대의 위험의 순간에 조국을 외면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조국에 대한 제일의 책무는,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의 진정한 배경을 보여주는 것, 이 범죄가 조국을 뒤덮는데 사용된 애국주의적이고 외교적인 거짓말의 직조물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독일민족에게 승리는 패배만큼이나 불운한 것이라고 큰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 것, 계엄령을 통한 조국의 결박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 민중이 즉각적으로 무장할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결정할 필요성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민중대표가 정부를 주의 깊게 통제하고, 민중이 민중대표를 통제하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전쟁기간동안 민중대표 상임회의를 힘차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민중만이 자기 나라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정치적 권리박탈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와 터키, 즉 유럽반동을 유지하려는 전쟁의 제국주의적 강령에 대항해, 1848년의 애국주의자와 민주주의자들의 오래된 진정한 민족강령을, 맑스와 엥겔스와 라쌀레의 강령을, 대독일 단일공화국의 구호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그 나라에 내세워야 했을, 진정 민족적이고 진정 진보적이었을 그 깃발이었다. 독일의 최상의 전통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정치와도 일치했을 깃발이었다.

     

    세계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순간은 결연한 정치적 실행, 포괄적이고 대규모의 입장표명, 나라의 탁월한 방향설정을 명백히 요구했고, 이를 제시할 소명을 가진 것은 오직 사회민주당뿐이었다. 그러기는 커녕 그 순간에 발언했던 노동자계급 의회대표들의 처참하고 전례는 패배가 결과되었다. 사회민주당은 그 지도자들 덕분에 틀린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정책도 펼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관을 가진 특별한 계급당으로서 완전히 스스로를 배제해 버렸고, 나라를 아무 저항 없이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의 불운에 그리고 내부에서는 군홧발 독재의 끔찍한 불운에 희생시켜버렸으며, 게다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말았다. 제국의회 원내분파의 선언은 국방을 위한 수단만을 승인했다고 말하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은 거부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정반대가 진실이다. 이러한 ‘방어’를 위한, 즉 군사왕정의 군대가 자행하는 이러한 제국주의적 인류 학살을 위한 수단은 사회민주당이 승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민주당의 손에 전혀 달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수당으로서 이것은 부르주아 제국의회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빈틈없는 다수에 대립해 있었다. 자발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사회민주당의 제국의회 원내분파는 오직 한가지만을 성취했다. 그것은 전쟁에서 전국민의 단합의 과시, 당쟁중지의 선언, 즉 계급투쟁의 중단,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반대정치의 해체, 그러니까 전쟁에 대한 도덕적인 동반책임이었다. 그 수단을 자발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이 전쟁수행에 민주주의적 조국방어라는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조국방어의 진정한 조건들과 과제들과 관련해 대중을 오도하도록 지원하고 확증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제국의회의원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제국주의 전쟁 진영으로 가도록 만든 조국의 이해관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연대 사이의 그 중대한 딜레마, 그 비극적인 대립은 순수한 환상이자, 부르주아-민족주의의 허구이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의 계급이해와 국가이해들 사이에는 평화 시와 마찬가지도 전쟁 시에도 완전한 조화가 존재한다. 즉, 양자 모두는 계급투쟁을 정력적으로 전개할 것과 사회민주적 강령을 강력하게 대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당은 전쟁 반대를, 그 요구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했을까? 대대적 파업xi을 선언해야 했을까? 아니면 병사들의 복무거부를 권유해야 했을까? 보통은 이렇게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한 질문에 긍정으로 답하는 것은 당이,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혁명을 만들 것이다’고 결정하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혁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대한 민중운동들이 당관할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기술적 처방으로 획책되는 것도 아니다. 작은 음모자 서클은 어느 특정일 특정 시간에 쿠데타를 ‘준비할’ 수 있고, 몇 십 명의 추종자들에게 필요한 순간에 ‘개시’ 신호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적 순간에 대중운동은 그와 같은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이끌어질 수 없다. ‘가장 잘 준비된’ 대대적 파업이라도 경우에 따라서 당장, 당 수뇌부가 그것에 ‘신호’를 내리면, 한심하게 실패하거나 시작되자마자 무너질 수 있다. 큰 민중시위와 대대적 파업이 그 어떤 형식이든 실제로 발생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수많은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심리적 요인들이다. 계급대립 각각의 긴장이며, 대중의 계몽수준이고 그 투쟁기운의 성숙도이다. 그런데 그러한 성숙도는 전혀 예측될 수 없고 그 어떤 당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잘 규율 잡힌 당이 평화 시에 ‘관할 부서’의 박자에 맞춰 깔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잘한 과시적 행동과 역사의 대위기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이다. 역사적 순간은 항상 그에 상응한 민중운동 형태를 요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전에는 몰랐던 투쟁수단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당의 지시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민중의 병기고를 정리하고 풍부하게 한다.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이 계급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로서 제공했어야 하는 것은 기술적 성격의 한심한 지시나 처방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과제와 이해관계에 관한 정치적 구호, 정치적 명료함이었다. 러시아혁명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대중운동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그 발생을 명령하고 또 그 비용을 계산하여 치른다는 의미에서 대대적 파업을 지도하는 것이 그 혁명시기 자체라면, 그렇다면 그 대신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그것을 지도하는 것은 사회민주당과 그 지도기관의 몫으로 돌아온다. 사회민주당은 대대적 파업의 기술적인 측면 때문에, 그 메커니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대신 혁명시기의 한가운데에서 정치적 지도를 떠안을 사명이 있다. 투쟁에 구호와 방향을 제공하는 것, 그 어느 시기, 그 어느 순간에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하는, 막 방출되기 시작한 그리고 활동하는 세력의 총합이 실현될 수 있도록 또 어떤 투쟁 위치에서도 그 결연함이나 강도에 있어 사회민주당의 전술이 결코 실제의 권력관계보다 수준 이하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계보다 훨씬 더 앞서감이 표현되도록 그렇게 정치투쟁의 전술을 세우는 것, 이것이 대대적 파업 시기에 ‘지도xii’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지도는 어느 정도는 저절로 기술적인 지도로 변화된다. 사회민주당의 일관되고 결연하며 전진을 도모하는 전술은 대중 속에서 안정감과 자신감과 투쟁기운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동요하고 허약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과소평가하는 것에 기반을 둔 전술은 대중을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첫 번째 경우에는 대대적 파업이 ‘저절로’ 그리고 항상 ‘제때에’ 일어나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이와 달리 지도부가 대대적 파업을 직접 권유하는 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xiii

     

    행동의 외적이고 기술적인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치적인 내용이 문제라는 점은, 예를 들어 의회 연단은, 만약 사회민주당 대리자들이 이러한 위기에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와 임무와 요구사항을 소리 높혀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서 활용하기만 했다면, 유일하고 자유로우며 계속 경청되고 국제적으로 주목될 수 있는 위치로 민중을 일깨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잘 보여준다.

     

    사회민주당의 이러한 구호에 대해 대중이 그들의 행동을 통해 무게를 실어주었을까? 아무도 그점에 대해 성급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 의회의원들은 전쟁차관을 승인하기 전에 프로이센-독일군대의 장군들로부터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패배는 배제되어 있다는 이상한 확약을 사전에 받아두지 않고도 ‘맹신하며’ 자신을 전쟁에 끌어들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가? 군대에게 해당되는 것은 혁명군대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사전에 승리의 확신을 요구하지 않고도 전투가 있는 곳에서는 전투에 임한다. 최악의 경우는 당의 목소리에 가시적인 작용이 전혀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 최대의 박해는, 1870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에게 그랬듯이, 아마도 우리 당의 용감한 태도에 대한 포상일 것이다. 1895년 이그나츠 아우어는 세당기념식에 관한 그의 연설에서 말하기를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당은 어떤 위험도 개의치 않고 자체의 원칙을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만약 이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끝장일 것이다!”xiv

     

    노장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언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흐름이 엄청난 나이아가라폭포의 속도와 힘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정말로 작은 일이 아니다.

     

    나이든 동지들에게는 아직도 가장 깊은 ‘민족 치욕’의 해인 1878년의 사회주의자 사냥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때 수 백만의 사람들은 사회민주당원들을 1870년에  조국배반자이자 철천지원수로 여겨졌던 것처럼 이제 살인자와 야비한 범죄자로 보았다. ‘인심’의 그런 폭발들은 그 엄청난 자연력으로써 당황시키고, 마비시키며, 우울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다. 더 높은 힘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떤 의혹도 배제된 진정 거대한 힘 앞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반대자도 없이. 그것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이 사람들 속에, 공기 속에, 도처에 존재한다.

     

    그러나 1878년의 폭발은 그 강도나 격렬함에 있어서 1870년의 그것과 전혀 비교될 수가 없었다. 닥치는 대로 내리치고 깨부수는 인간 격정의 이러한 대폭풍 뿐만 아니라, 게다가 완전하고 가장 무서운 활동을 수행하는 군사주의의 무시무시한 도구들, 그리고 접촉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회전하는 강철톱니바퀴 사이의 우리들, 우리 둘레를 빙빙 돌며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강철 팔 사이의 우리. 그러한 풀려난 유령의 자연력 외에도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완성된 살인기술 메커니즘. 그리고 모든 것이 가장 난폭하게 작동했다. 모든 보일러가 터질 듯이 가열되어 있었다. 이때 개별적인 힘이, 개별적인 의지가 어디에 있는가? 특히 한 줌의 소수에 불가하고 민중 자체에 그 어떤 확고한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당은 겨우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필요한 조직이 갖춰지기도 전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시험에 빠졌었다. 사회주의자 몰이사냥이 일어났을 때는, 즉 우리의 적에게는 치욕의 해이자 사회민주당에게는 영광의 해였던 그해에는, 우리는 이미 폭넓게 가지를 친 매우 강력한 당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든든한 배경을 가졌다는 의식으로 힘을 얻었고 이성을 가진 자라면 그 누구도 당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다.

     

    이렇듯 그때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했는가? 해야될 일은 해야만 했다. 그때에는, 이를 악물고 당당히 맞서자고 말했다.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여하튼, 베벨과 나는… 한순간도 그 경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퇴각할 수 없었고, 의연히 제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올 테면 와봐라 하고.”xv

     

    그렇게 그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그때 적들로 가득 찬 세상에 맞서 그들이 동원했던 그 도덕적 힘으로 독일사회민주당은 40년을 살아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되었을 텐데. 처음에는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명예가 구제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 참호 속에서 밤낮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흐릿한 정신적 혼란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일생에 가장 충실한 것이었던, 국제적이고 민족해방적인 사회민주당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섬광을 담고 죽어갔을 거라는 것 외에는. 그러나 우리당의 용감한 목소리는 국수주의적 도취에 대한 그리고 군중의 몰지각에 대한 강력한 제동기로 작용하여 계몽된 민중이 그러한 혼망에 빠지지 않도록 막았을 것이고, 제국주의가 민중을 중독시키고 우둔하게 만드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사회민주당에 대항한 바로 그 십자군원정이 민중을 가장 빨리 깨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쟁이 계속 진행되면서 끊임없는 잔혹한 대량학살에 대한 참회가 모든 나라에서 커질수록, 전쟁의 제국주의적 말발굽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피에 굶주린 투기꾼의 장바닥 같은 소란이 더 염치없어질수록 그 만큼 모든 생동적인 사람들, 진솔한 사람들, 인간적인 사람들, 진보적인 사람들이 사회민주당의 깃발 주위로 모여들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사회민주당은 그 전반적인 소용돌이, 붕괴와 파멸 속에서 마치 거세게 출렁이는 바다 위의 바위처럼 인터내셔널의 드높은 등대로 남아 있었을 테고, 그것을 향해 곧 모든 다른 노동자 당도 방향을 잡았을 텐데. 독일사회민주당이 1914년 8월 4일까지 전체 프롤레타리아 세계에서 향유했던 거대한 도덕적 권위는 이러한 전반적인 혼미 속에서도 단기간에 변화를 초래했을 텐데. 그렇게 해서 평화기운과 민중의 평화에로의 압력이 모든 나라들에서 떠올랐을 것이고, 대량학살의 종식이 가속되고, 희생자 수가 감소되었을 텐데. 그렇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의 등대지기로 인류의 해방자로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라쌀레의 제자들로서 부끄럽지 않았을 애국적인 일일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독일사회민주당의 위기 [유니우스 팸플릿]」(Die Krise der Sozialdemokratie [Junius-Broschu're]), 1915년 4월)

     

    <주>

     

    1* 뮌헨의 당 기관지는 8월 6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민주당 제국의회 원내분파가 지금 한 목소리로 전쟁차관을 승인한 것, 독일제국의 방어를 위해 나선 모든 이들에게 승리의 열렬한 염원을 함께 빌어준 것은, 그렇게 해서 그것은 일종의 ‘전술적인 행보(taktischer Zug)’가 아니었다. 그것은 파렴치한 침략에 맞선 국방의지보다는 오히려 계급지배의 표현처럼 보였던 체제 대신에 민중군대(Volksheer)을 국방을 위해 내세울 준비가 되어 있던 한 당의 태도에서 나오는 전적으로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보였던 이라니!! –『새시대』에서는 심지어 오늘의 전쟁을 곧바로 ‘민족전쟁(Volkskrieg)’으로, 상비군을 ‘민중군대(Volksheer)’로 승격시켰다(1914년 8월/9월의 제 20호와 23호를 참조.) – 사회민주당의 군사저술가 휴고 슐츠는 1914년 8월 24일의 전쟁보도에서, 합스부르크 군대 안에 ‘살아’ 있다는 ‘강력한 민병정신(Milzengeist)’에 대해 칭찬했다!

     

     

    29.6.-Soldatenmissbrauch_Der-Wahre-Jacob_Sozialdemokratie1914-712x1024.jpg

    i Karl Marx, “Der Bürgerkrieg in Frankreich,”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17, S.360/361

     

    ii Hohenstaufen

     

    iii Vendée 봉기, 프랑스대혁명당시 프랑스의 방데지역에서 왕당파와 카톨릭 승녀의 주도 하에 농민이 일어킨 반혁명봉기. 혁명정부에 의해 유혈진압되었다.

     

    iv Die einige großdeutsche Republik

     

    v nationale Ideal (민족적 이상), 원저에는 ideale Nation(이상적 민족)으로 되어 있다.

     

    vi Karl Marx, “Der Bürgerkrieg in Frankreich(프랑스 내전),”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17, S.338, 346

     

    vii La Marseillaise 프랑스 국가

     

    viii Quoi, ces cohortes étrangères

    Feraient la loi dans nos foyers!

    Wie, soll dies fremde Heer uns schnöde

    Gewalt antun am eignen Herd?

     

    ix Friedrich Engels,“Der Sozialismus in Deutschland(독일에서의 사회주의),”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22, S.255/256

     

    x 1905년의 러시아혁명을 말함

     

    xi Massenstreik

     

    xii Leitung

     

    xiii R. Luxemburg, Massenstreik, Partei und Gewerkschaften(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Hamburg 1907. In: Rosa Luxemburg Gesammelte Werke, Bd.2, Berlin 1972, S.133/134

     

    xiv I. Auer: Sedanfeier und Sozialdemokratie, S.6

     

    xv W. Liebknecht: Der Hochverratsprozeß wider Liebknecht, Bebel, Hepner vor dem Schwurgericht in Leipzig vom 11. bis 26. März 1872(1872년 3월 11일부터 26일까지 라이프치히 배심재판소에서 이뤄진 리프크네히트, 베벨 헤프너에 대한 대반역죄 재판), Berlin 1894, S.8~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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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민족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민족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미-중 제국주의 패권 다툼과 직접 연결되었듯이한반도(동아시아혁명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성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따라서 민족문제민족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입장은 무엇보다 명확하고 단호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체제라서 자본주의 타도는 한 국가한 지역의 혁명으로는 불가능하며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국제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민족 또는 국가별로 분열시키고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난다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 노동자계급에게 자신을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다시 말해 부르주아 중 한 편 또는 제국주의의 다른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화하는 제국주의 대결 속에서아직도 민족독립(민족자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자들에 맞선 코뮤니스트 투쟁 구호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혁명적 패전주의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것’ 이다.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격돌과 전쟁에 대한 노동자계급 태도도 마찬가지다모든 민족주의를 거부하고제국주의 전쟁과 평화주의 환상을 동시에 반대하며노동자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을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여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아래는 민족주의제국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가진 국제조직(ICC, ICT)의 문서이며국제적 수준에서 우리와 원칙을 같이하기에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 공통의 입장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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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민족해방신화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를 그들의’ 조국과 동일시하도록 노력한다대대로 우리는 일자리” 위험에 처해 있고만약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자리를 잃는다는 말을 들어왔다정확히 똑같은 메시지가 전 세계 노동자에 강요된다.

 

전쟁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육할 것과 우리 계급의 형제자매를 학살할 것을 강요한다민족이란 관념은 부르주아 지배를 위한 결정적인 버팀목이다민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특징을 위장하며 마치 기존의 질서가 사람들의 공동 이익 표현인 듯이 나타난다민족주의는 항상 자신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항복을 의미한다제국주의 시대에특정한 민족 발전 가능성’ 및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과업이라는 개념은 사실무근이며 모든 의미에서 반동적이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흔히 이러한 투쟁은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은 많은 국가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기에 사실이다하지만 이 소수는 그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의 살육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이러한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다르다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성공적인 독립투쟁’ 이후새롭게 해방된 국가’ 조차 세계 경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 요구의 외부에서 발전할 수 없다우리는 맑스가 어느 정도 독립투쟁을 지지했고또한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웠다고 한없이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계적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답하고자 한다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새로운 기술 및 기계를 만드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창기에 글을 썼다이러한 배경에서맑스와 엥겔스는 봉건적이고 전()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의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자본주의의 상승 국면에서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위한 여지가 여전히 있었고그와 더불어자본주의의 미래에 무덤을 파는 역할을 할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위한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독립을 위한 여지는 제한된 경계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그것은 레닌이 아니라이 사실(제국주의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도 불구하고)을 더욱 잘 이해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이후 계속된 자본주의 발전은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입장의 정확성이 더 분명해졌다레닌은 식민지 국가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토대를 동요시키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결과로서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탈식민지화는 경제 강대국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많은 경우에오래된 식민지 독립은 미국이 오래된 식민지 강대국을 이겼던 것처럼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투쟁 결과였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정치소개)

 

 

민족해방의 반혁명적 신화

 

민족해방과 새로운 민족국가 형성은 결코 프롤레타리아의 특정 과제가 아니었다지난 세기 혁명가들이 특정한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했을 때그것은 단지 부르주아 운동에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 자명했고그런 만큼 그들은 이러한 운동을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그들이 이러한 운동을 지지한 이유는민족국가가자본주의 상승기에는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가장 적합한 틀을 표현했기 때문이고()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제한적인 잔재 파괴를 통한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 세계수준의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조건 성숙 과정에서 한 걸음 진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진입과 더불어민족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전체와 더불어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틀이 되어버렸다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국가마저도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오늘 상황에서신생국가의 법률상 성립은 어떠한 진정한 진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제국주의 블록으로 분할된 세계에서 각각의 민족해방투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실상은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이때 노동자와 농민은 강제로 참여하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든 상관없이 단지 총알받이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이는그것이 제국주의의 뿌리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동시에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그리고 이러한 분쟁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국가는 스스로 제국주의적으로 되어야만 하는데그 이유는 쇠퇴기에는 어떤 국가도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제국주의적 정치를 펼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족해방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은 단지 하나의 제국주의 지배자를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로 대치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특히 이른바 신생의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훨씬 더 국유화된 자본을 통한 착취의 강화체계화 및 군국주의화를 의미한다체제의 야만성 표현으로서국가자본은 해방된 민족국가를 일종의 거대한 강제수용소로 전환한다여러 단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이른바 제삼 세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러한 투쟁은 계급투쟁을 위한 어떤 발판도 제공하지 않는다이러한 투쟁은 항상 그 민족 자본을 위해 노동자를 애국적인’ 신비화 이름으로 동원함으로써이러한 국가에서 종종 매우 격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일종의 차단기로 작용한다지난 50년간의 역사는, ‘민족해방투쟁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주장과는 달리선진국에서도 후진국에서도 노동자의 투쟁에서 동인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전자도 후자도 그러한 투쟁을 통해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으며노동자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어떤 한 진영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충돌 속에서이러한 투쟁을 무조건’ 또는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든 입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국수주의자들의 행동만큼이나 범죄적이다그래서 그것은 코뮤니스트 활동과는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국제코뮤니스트 흐름」  강령)

 

 

제국주의

 

예전 소련과 그 동맹국은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을 구성했다그 블록의 몰락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 경쟁 산물인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명백한 전환점을 기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축적 과정에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지구적 위기로 자본 집적과 집중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말하자면 모든 국가가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부분이 되고 그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했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약한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 정책이 아니다그것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부 지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이 과정은 어떠한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지에 어떠한 민족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토착 부르주아지는 국제 자본가계급의 부분이며 전통적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인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에 걸려든다.

 

지구적 전쟁재건위기라는 지긋지긋한 순환을 가진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자 더 높은 문명형식(코뮤니즘)의 가능성이 역사적 의제로 제기되었다이는 1차 세계대전의 유혈과 폐허에서 나온 유럽과 세계 혁명 물결의 첫 부분으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1917년 10월 혁명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그러나 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그들 자신의’ 국민국가를 지지해서 프롤레타리아 상호 살육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후 봉기가 분출하는 동안 사회주의 이름으로 혁명을 철저히 억압한 제인터내셔널 대다수 당의 파산으로도 극적으로 입증했다오늘날 우리는 10월 혁명 이전 시기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과 이후 정치조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강화되는 동안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또는 절대왕정에 저항하는 운동은 유럽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결집하는 틀을 제공했으며이는 나중에 거대한 노동조합과 당 조직의 형성을 촉진했다이러한 기관에서 노동계급은 현존하는 부르주아 사회정치 관계의 틀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독자적인 계급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동시에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이 인정을 받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생활의 확립된 부분이 되었다주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결코 맑스주의 정치적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사회주의당은 맑스가 예측했던 혁명이 구체화하지 않은 채 미래 어느 날 성취될 먼 목표로 남았다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그들이 목표로 투쟁해야 할 빛나는 미래로 남았지만실천에서 그들의 전술을 규정한 전략 목표는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점점 더 의회선거, 8시간 노동단결의 자유 등이 되었다.

 

1914년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와 하나 되면서 노동계급 운동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했다이는 코뮤니스트들을 제인터내셔널(1889-1914) 동안 대중운동을 지배했던 사이비 개량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나뉘어 떨어져 나왔다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코민테른의 창설은 맑스주의 원리의 승리를 보여주었다이제 코뮤니스트 활동은 오로지 새로운 사회 건설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강령)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오로지 방어할 어떤 국가적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은 운동으로만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운동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모든 전쟁에서직접 전선의 군인으로서 또는 민간인으로서또는 국가적인 이해를 위해 더 힘들게 일하고 덜 먹도록 요구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서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전쟁의 단순히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다1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은 1917~18년의 대대적 파업과 봉기였다오직 혁명 물결이 좌절되었을 때자본주의는 제2의 세계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그리고 1960년대 말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했을 때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사실현재 충돌이 지금의 형식을 띠는 주요 이유는자본주의가 오늘날 거대 자본주의 권력 사이의 공개적인 충돌로 노동자계급을 용병으로 만들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우리를 착취하는 체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자본주의가 전쟁 속으로 질주하는 바로 그 근원경제적 번영을 전개할 수 없는 무능력그것의 위기 은 증가한 착취실업 및 사회적 비용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에 대한 끝없는 공격을 가한다전쟁을 향한 행진은 이러한 공격을 더욱 가속할 것이고피착취계급에 훨씬 더 큰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그래서 경제 위기에 대항한 불가피한 투쟁은 또한 전쟁에 대항한 투쟁이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단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것은 공격적이고 혁명적인 투쟁전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계급전쟁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그 투쟁만이 자본주의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제국주의 전쟁과 국경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인류를 이끌 수 있다.

 

착취자들과 어떠한 연대도 반대한다그들이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그들의 국적이 어디이거나 상관없이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연대를 위하여!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평화주의 환상들에 대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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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관점

 

자본주의의 전복은 하룻밤에 완료될 수 없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한 국가 혹은 영토에서 지배계급을 전복하자마자코뮤니즘을 향한 이행기는 시작된다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극복하고 파괴하는데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데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향한 첫발을 시작하는 데 정치권력을 사용해야 한다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한 혁명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하지만 국제적인 체제로서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될 수밖에 없다사회주의는 단 하나의 국가 혹은 영토에서 건설될 수 없다이른바 노동자국가’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선 정치적 범주이다그런데도 노동자국가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노동일의 단축의료 및 교육제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개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직접생산을 시도할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대책은 사회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자본가들이 위기를 어느 정도까지 다루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 지형에 유지하고 고립시키는 한그들의 지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전 세계 자본주의 상품생산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가치법칙의 강권은 유지된다고립된 파업 또는 공장점거가 한시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환경에 적대적인 노동자국가는 장기간 생존할 수 없다세계 자본주의가 군사적 수단으로 혁명적 실험을 파괴할 것인지세계 자본주의가 혁명적 실험을 엄청난 경제적 압력 아래에 둘 것인지아니면 두 가지 모두 인지이다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체제(볼셰비키 러시아에 관한 것으로서)는 자본주의의 환경 아래서 부르주아 국가와 경쟁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이것은 머잖아 자본의 축적을 두고 경쟁적인 투쟁을 하고 어떠한 사회주의의 전망도 차단한다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체제 및 코뮤니스트 세계당 최고의 우선 과제는 국제적으로 혁명 확장과 강화이다오직 자본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타도할 때만이 사회주의를 향한 진정한 단계에 착수할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정치소개)

 

 

정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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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민족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민족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미-중 제국주의 패권 다툼과 직접 연결되었듯이한반도(동아시아혁명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성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따라서 민족문제민족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입장은 무엇보다 명확하고 단호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체제라서 자본주의 타도는 한 국가한 지역의 혁명으로는 불가능하며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국제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민족 또는 국가별로 분열시키고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난다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 노동자계급에게 자신을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다시 말해 부르주아 중 한 편 또는 제국주의의 다른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화하는 제국주의 대결 속에서아직도 민족독립(민족자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자들에 맞선 코뮤니스트 투쟁 구호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혁명적 패전주의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것’ 이다.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격돌과 전쟁에 대한 노동자계급 태도도 마찬가지다모든 민족주의를 거부하고제국주의 전쟁과 평화주의 환상을 동시에 반대하며노동자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을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여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아래는 민족주의제국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가진 국제조직(ICC, ICT)의 문서이며국제적 수준에서 우리와 원칙을 같이하기에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 공통의 입장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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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민족해방신화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를 그들의’ 조국과 동일시하도록 노력한다대대로 우리는 일자리” 위험에 처해 있고만약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자리를 잃는다는 말을 들어왔다정확히 똑같은 메시지가 전 세계 노동자에 강요된다.

 

전쟁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육할 것과 우리 계급의 형제자매를 학살할 것을 강요한다민족이란 관념은 부르주아 지배를 위한 결정적인 버팀목이다민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특징을 위장하며 마치 기존의 질서가 사람들의 공동 이익 표현인 듯이 나타난다민족주의는 항상 자신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항복을 의미한다제국주의 시대에특정한 민족 발전 가능성’ 및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과업이라는 개념은 사실무근이며 모든 의미에서 반동적이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흔히 이러한 투쟁은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은 많은 국가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기에 사실이다하지만 이 소수는 그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의 살육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이러한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다르다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성공적인 독립투쟁’ 이후새롭게 해방된 국가’ 조차 세계 경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 요구의 외부에서 발전할 수 없다우리는 맑스가 어느 정도 독립투쟁을 지지했고또한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웠다고 한없이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계적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답하고자 한다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새로운 기술 및 기계를 만드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창기에 글을 썼다이러한 배경에서맑스와 엥겔스는 봉건적이고 전()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의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자본주의의 상승 국면에서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위한 여지가 여전히 있었고그와 더불어자본주의의 미래에 무덤을 파는 역할을 할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위한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독립을 위한 여지는 제한된 경계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그것은 레닌이 아니라이 사실(제국주의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도 불구하고)을 더욱 잘 이해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이후 계속된 자본주의 발전은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입장의 정확성이 더 분명해졌다레닌은 식민지 국가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토대를 동요시키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결과로서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탈식민지화는 경제 강대국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많은 경우에오래된 식민지 독립은 미국이 오래된 식민지 강대국을 이겼던 것처럼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투쟁 결과였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정치소개)

 

 

민족해방의 반혁명적 신화

 

민족해방과 새로운 민족국가 형성은 결코 프롤레타리아의 특정 과제가 아니었다지난 세기 혁명가들이 특정한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했을 때그것은 단지 부르주아 운동에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 자명했고그런 만큼 그들은 이러한 운동을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그들이 이러한 운동을 지지한 이유는민족국가가자본주의 상승기에는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가장 적합한 틀을 표현했기 때문이고()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제한적인 잔재 파괴를 통한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 세계수준의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조건 성숙 과정에서 한 걸음 진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진입과 더불어민족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전체와 더불어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틀이 되어버렸다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국가마저도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오늘 상황에서신생국가의 법률상 성립은 어떠한 진정한 진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제국주의 블록으로 분할된 세계에서 각각의 민족해방투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실상은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이때 노동자와 농민은 강제로 참여하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든 상관없이 단지 총알받이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이는그것이 제국주의의 뿌리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동시에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그리고 이러한 분쟁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국가는 스스로 제국주의적으로 되어야만 하는데그 이유는 쇠퇴기에는 어떤 국가도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제국주의적 정치를 펼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족해방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은 단지 하나의 제국주의 지배자를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로 대치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특히 이른바 신생의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훨씬 더 국유화된 자본을 통한 착취의 강화체계화 및 군국주의화를 의미한다체제의 야만성 표현으로서국가자본은 해방된 민족국가를 일종의 거대한 강제수용소로 전환한다여러 단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이른바 제삼 세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러한 투쟁은 계급투쟁을 위한 어떤 발판도 제공하지 않는다이러한 투쟁은 항상 그 민족 자본을 위해 노동자를 애국적인’ 신비화 이름으로 동원함으로써이러한 국가에서 종종 매우 격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일종의 차단기로 작용한다지난 50년간의 역사는, ‘민족해방투쟁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주장과는 달리선진국에서도 후진국에서도 노동자의 투쟁에서 동인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전자도 후자도 그러한 투쟁을 통해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으며노동자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어떤 한 진영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충돌 속에서이러한 투쟁을 무조건’ 또는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든 입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국수주의자들의 행동만큼이나 범죄적이다그래서 그것은 코뮤니스트 활동과는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국제코뮤니스트 흐름」  강령)

 

 

제국주의

 

예전 소련과 그 동맹국은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을 구성했다그 블록의 몰락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 경쟁 산물인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명백한 전환점을 기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축적 과정에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지구적 위기로 자본 집적과 집중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말하자면 모든 국가가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부분이 되고 그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했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약한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 정책이 아니다그것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부 지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이 과정은 어떠한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지에 어떠한 민족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토착 부르주아지는 국제 자본가계급의 부분이며 전통적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인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에 걸려든다.

 

지구적 전쟁재건위기라는 지긋지긋한 순환을 가진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자 더 높은 문명형식(코뮤니즘)의 가능성이 역사적 의제로 제기되었다이는 1차 세계대전의 유혈과 폐허에서 나온 유럽과 세계 혁명 물결의 첫 부분으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1917년 10월 혁명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그러나 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그들 자신의’ 국민국가를 지지해서 프롤레타리아 상호 살육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후 봉기가 분출하는 동안 사회주의 이름으로 혁명을 철저히 억압한 제인터내셔널 대다수 당의 파산으로도 극적으로 입증했다오늘날 우리는 10월 혁명 이전 시기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과 이후 정치조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강화되는 동안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또는 절대왕정에 저항하는 운동은 유럽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결집하는 틀을 제공했으며이는 나중에 거대한 노동조합과 당 조직의 형성을 촉진했다이러한 기관에서 노동계급은 현존하는 부르주아 사회정치 관계의 틀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독자적인 계급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동시에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이 인정을 받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생활의 확립된 부분이 되었다주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결코 맑스주의 정치적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사회주의당은 맑스가 예측했던 혁명이 구체화하지 않은 채 미래 어느 날 성취될 먼 목표로 남았다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그들이 목표로 투쟁해야 할 빛나는 미래로 남았지만실천에서 그들의 전술을 규정한 전략 목표는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점점 더 의회선거, 8시간 노동단결의 자유 등이 되었다.

 

1914년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와 하나 되면서 노동계급 운동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했다이는 코뮤니스트들을 제인터내셔널(1889-1914) 동안 대중운동을 지배했던 사이비 개량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나뉘어 떨어져 나왔다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코민테른의 창설은 맑스주의 원리의 승리를 보여주었다이제 코뮤니스트 활동은 오로지 새로운 사회 건설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강령)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오로지 방어할 어떤 국가적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은 운동으로만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운동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모든 전쟁에서직접 전선의 군인으로서 또는 민간인으로서또는 국가적인 이해를 위해 더 힘들게 일하고 덜 먹도록 요구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서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전쟁의 단순히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다1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은 1917~18년의 대대적 파업과 봉기였다오직 혁명 물결이 좌절되었을 때자본주의는 제2의 세계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그리고 1960년대 말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했을 때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사실현재 충돌이 지금의 형식을 띠는 주요 이유는자본주의가 오늘날 거대 자본주의 권력 사이의 공개적인 충돌로 노동자계급을 용병으로 만들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우리를 착취하는 체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자본주의가 전쟁 속으로 질주하는 바로 그 근원경제적 번영을 전개할 수 없는 무능력그것의 위기 은 증가한 착취실업 및 사회적 비용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에 대한 끝없는 공격을 가한다전쟁을 향한 행진은 이러한 공격을 더욱 가속할 것이고피착취계급에 훨씬 더 큰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그래서 경제 위기에 대항한 불가피한 투쟁은 또한 전쟁에 대항한 투쟁이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단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것은 공격적이고 혁명적인 투쟁전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계급전쟁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그 투쟁만이 자본주의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제국주의 전쟁과 국경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인류를 이끌 수 있다.

 

착취자들과 어떠한 연대도 반대한다그들이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그들의 국적이 어디이거나 상관없이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연대를 위하여!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평화주의 환상들에 대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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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관점

 

자본주의의 전복은 하룻밤에 완료될 수 없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한 국가 혹은 영토에서 지배계급을 전복하자마자코뮤니즘을 향한 이행기는 시작된다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극복하고 파괴하는데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데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향한 첫발을 시작하는 데 정치권력을 사용해야 한다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한 혁명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하지만 국제적인 체제로서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될 수밖에 없다사회주의는 단 하나의 국가 혹은 영토에서 건설될 수 없다이른바 노동자국가’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선 정치적 범주이다그런데도 노동자국가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노동일의 단축의료 및 교육제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개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직접생산을 시도할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대책은 사회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자본가들이 위기를 어느 정도까지 다루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 지형에 유지하고 고립시키는 한그들의 지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전 세계 자본주의 상품생산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가치법칙의 강권은 유지된다고립된 파업 또는 공장점거가 한시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환경에 적대적인 노동자국가는 장기간 생존할 수 없다세계 자본주의가 군사적 수단으로 혁명적 실험을 파괴할 것인지세계 자본주의가 혁명적 실험을 엄청난 경제적 압력 아래에 둘 것인지아니면 두 가지 모두 인지이다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체제(볼셰비키 러시아에 관한 것으로서)는 자본주의의 환경 아래서 부르주아 국가와 경쟁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이것은 머잖아 자본의 축적을 두고 경쟁적인 투쟁을 하고 어떠한 사회주의의 전망도 차단한다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체제 및 코뮤니스트 세계당 최고의 우선 과제는 국제적으로 혁명 확장과 강화이다오직 자본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타도할 때만이 사회주의를 향한 진정한 단계에 착수할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정치소개)

 

 

정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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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의 2년 반

  •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의 

    2년 반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단상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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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이 글은 문재인 정부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글은 아니다. 더 본격적인 분석과 비판 그리고 우리 운동(코뮤니스트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둘, 이 글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청과 중앙청 등지에서 시위했던 고등학교 3학년 그 시절부터 2019년인 지금까지 59년 동안 군부독재이건 부르주아정권이건 역대정권의 퇴진이나 타도를 위한 투쟁을 회고하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셋, 이 글은 또한 이른바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함께한 운동세력(학생운동, 민중운동, 지식인운동, 문화운동, 시민운동 등)에 대한 광범위한 관찰을 기반으로 정리한 몇 가지 단상임을 밝힌다.

     

    넷,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분석틀을 진보-보수 또는 좌-우로 구분하는 방법은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틀 자체가 부르주아 분석 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맑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보수나 좌-우는 자본주의 체제 동전의 양면이며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정권은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지 진보 또는 좌에 위치한 권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제 단상의 범주를 이데올로기(코뮤니즘), 경제(자본주의) 그리고 정치(자유주의, 민족주의)로 나누고 문재인 정부의 2년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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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촛불이 매개 되어 10년의 이른바 ‘적폐’가 정권교체의 문을 열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다양한 형태의 제국주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국가와 민족도 자유로울 수가 없고 남과 북도 예외일 수 없다. 남, 북, 미 그리고 세계의 공통화두는 평화와 번영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글과 말을 보면 이 두 마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평화는 계급전쟁을 종식시키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번영은 이윤과 계급불평등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일 뿐이다. 갈라진 남, 북이 표면적이고 가시적 적대를 넘어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 부분 집합으로 나아가는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를 상상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어도 이 과정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통합과정일 수밖에 없다.

     

    여섯, 이렇게 볼 때 북한은 개혁, 개방을 통해 점진적으로 국가자본주의로 공고해지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연합, 연대할 것이다. 아직도 사회주의 건설을 말하는 형용모순이 존재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삼척동자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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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이 효과는 남쪽의 우리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직도 보수주의 부르주아들이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특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력을 ‘좌파’, ‘빨갱이’,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이념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러한 대립이 허위이며 지금이 그런 대립을 주장할 마지막 기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두 가지 형태의 부르주아 세력은 자본주의의 양면이며 보완적 관계임을 깨닫게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이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혁명적 실천이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념적 재편 과정에서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존재했던 ‘진보’, ‘자유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 등의 개념이 정리되면서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이념과 실천이 성숙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덟,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비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노동’에 가깝다. 노동, 자본, 국가의 통합구조를 안착시키려는 시도가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미완성이기는 하나 장기적으로는 형성될 전망이다.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적대와 대립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기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가 국가이고 부르주아지와 동맹하는 계급이다. 여기에 노동계급마저 부르주아지 편에 선다면 그 기구는 부르주아지의 단일기구이다. 계급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반민주주의 국가임을 문 정부 스스로 천명하고 있다.

     

    아홉, 경제정책의 구체적 모습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법제화에서 드러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은 이 착취체제와 이를 규정하는 법을 반대하고 없애려는 투쟁을 몇 백 년 해오고 있다. 메이데이가 노동시간의 단축 투쟁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원칙을 계층사이의 이해로 조정하고 노동시간을 변형근로제로 후퇴시키는 문정부의 모습을 보며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자들은 어떠했는가? 반노동으로 나아가는 정부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집권한 지 1년이 되자 그 실체가 드러났고 노동계급은 정권퇴진운동을 벌였다. 어느 정권도 예외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노동자는 어디 있는가? 노동운동은 여전히 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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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마지막으로 정치권력의 행태를 짚어보자. 부르주아 정치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삼권 분립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영역의 분리, 기능의 독립성으로 체제의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고 보는 견해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골격이다. 코뮤니스트는 이러한 분리를 반대하고 평의회에 기반을 둔 대중(노동자, 병사 등)과 지역의 선출된 권력을 프롤레타리아 민주권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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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를 둘러싼 부르주아 정치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여야를 불문하고 자유주의, 보수주의를 불문하고 그 권력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386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민주화운동세력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독재와 싸운세력으로 우리사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에 공헌한 세력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세력은 앞으로 부르주아 의회에 진출할 예비세력으로 그들의 전임자들과 유사하다.

     

    이들의 부류는 대학, 언론, 사법부, 노동 등에 몸담았다가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동질성을 기반으로 부르주아지의 사적, 개인적 인간관계로 문재인 정부에 가담했다고 본다. 이들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보수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부르주아지에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2년 동안 청와대, 정부, 의회, 법원, 언론기관 등에서 보이는 이른바 엘리트(교수, 판사, 정부관료, 청와대, 언론가, 시민운동 활동가, 노동조합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를 떠받드는 소부르주아 세력의 실체이다.

     

    앞으로 2년 반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이 보수주의 부르주아 세력과 언제, 어디서나 연대하고 연합할 수 있는 세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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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혁명조직의 기능에 관한 보고서

  • 혁명조직의 기능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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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코뮤니스트당(세계혁명당) 건설과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 수립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출범 6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혁명조직 운동을 평가하고 현실에서의 코뮤니스트당 건설 전망을 밝히기 위해 “혁명조직” 관련 글을 연재합니다.

    코뮤니스트 7호의 「혁명당과 노동계급」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의 「혁명조직의 기능에 관한 보고서」를 소개합니다.

     

     

    혁명조직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보고서는 1982년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총회에서 채택되었다. 「국제평론(IR)」 다음 호에서 두 번째 보고서, ‘혁명조직의 구조와 작동 양식에 관하여’를 실을 것이다.

     

    1. ICC는 창립 이래, 전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새로운 도약에 국제 혁명조직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다. 그 투쟁에 비록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일지라도 개입하여 혁명가 그룹 사이에서 토론의 구심점을 형성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또한, ICC의 존재가 필요하고 공상적이지도 않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ICC는 자체 기능이 계급 내부의 심오한 요구에 부응한다는 신념으로, 여전히 무책임성과 미성숙으로 강하게 드러나는 혁명 환경의 딜레탕티즘(제대로 모르고 좋아하는 어설픈 전문가주의)과 과대망상증에 대항해 싸워오고 있다. 이 신념은 어떤 종교적인 신앙이 아니라 맑스 이론의 분석법에 기반을 둔다. 혁명조직의 출현, 혁명조직의 역할, 형태, 목적과 원칙의 근거는 맑스 이론의 틀을 벗어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론 없이는 진정한 혁명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

     

    2. ICC가 최근에 겪은 분열은 조직의 치명적인 위기로 여겨질 수 없다. 본질에서 그것은 혁명조직이 나타나는 계급 운동의 조건과 발전노선, 이해할 수 없었던 무능력의 표현이었다:

     

    - 혁명을 향한 경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 지역적인 것이 아니다.

    - 위기와 투쟁의 폭이 필연적으로 혁명적 시기를 즉시 펼쳐내지는 않는다.

    - 조직화의 필요성은 우발적이거나 지역적인 요구가 아니라, 코뮤니즘이 전 세계적으로 승리할 때까지의 역사적 시기 전체를 총괄한다.

    - 결과적으로, 혁명조직의 과업은 장기적인 토대에서 이해해야 하고, 조직의 진정한 위험인 당면주의(맞닥뜨린 국면에 조급/당면하게 대응)적 조급함에 따른 모든 인위적인 지름길로부터 조직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3. 혁명조직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항상 귀결되었다:

     

    - 아나키스트와 평의회주의 시각에서 조직은 노동자 각각의 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개인의 순전히 우연적인 집합체로 환원된다.

    - 전통적인 보르디가주의는 계급을 당과 동일시하면서, 계급의 총괄 조직의 기능과 더불어 혁명조직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4. 혁명조직의 필요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여전히 크다. 반혁명으로(1980년대 당시 폴란드에서처럼) 어떤 조직화한 혁명분파도 부재했던 곳에서 거대한 투쟁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 필요성은 없어지지는 않는다.

     

    - 19세기에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계급이 된 뒤, 혁명가들을 조직하는 것은 결정적인 요구였고 지금도 그렇다. 역사상 사회 변혁의 잠재력을 자체에 품은 모든 계급은 그 역사적 목표의 승리로 이끌 투쟁의 목표와 방법에 관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목표는 이론적으로 (강령) 그리고, 실천적으로 (활동)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전반적인 목적을 옹호하는 정치조직을 출현시키는 것이다.

    - 계급의 내부에서 출현하고 계급의 영구적이고 일부인 혁명조직은 모든 자연적인 분할(지리적이고 역사적인)과 인위적인 구분(직업 분야, 생산현장)을 초월하며 부정한다. 그것은 계급 내부에서 통일된 의식 발전을 향한 영구적 경향을 표현한다. 모든 즉각적인 구분을 반대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한다.

    -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을 탈선시키고 파괴하려는 부르주아지의 체계적인 시도에 직면해서 혁명조직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해로운 효과에 대항한 투쟁에서 결정적인 무기이다. 그 이론(코뮤니스트 강령)과 계급 내부에서의 투쟁 활동은 자본주의의 선전이라는 독(毒)에 대항한 강력한 해독제이다.

     

    5. 코뮤니스트 강령과 투쟁 활동 원칙은 혁명조직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모든 조직의 초석이다. 혁명이론 없이, 어떤 혁명적 기능, 즉 이 강령의 실현을 위한 어떤 조직화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맑스주의는 항상 모든 당면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인 편향을 거부해 왔다. 이러한 편향은 코뮤니스트 조직의 역사적 역할을 왜곡하고 부정하는데 봉사한다.

     

    6. 혁명조직은 계급의 한 기관이다. 기관은 생명체의 살아있는 구성요소를 의미한다. 그 기관이 없다면 계급의 삶에서 치명적인 기능의 하나가 없는 것이라서 언제라도 위축되거나 마비될지 모른다. 그래서 계급이 필요로 하는 기관을 불가피하게 창조해냄으로써 재탄생하고, 성장하고, 확장된다.

     

    7. 이 기관은 계급의 즉각적 충동에 복종하는 것에 국한된 단순한 생리학적 부속물이 아니다. 혁명조직은 계급 일부이다. 이것은 계급에서 분리되지도 않고, 계급과 같지도 않다. 그것은 계급 존재와 의식 사이의 매개체도 아니고, 계급의식의 총체도 아니다. 그것은 계급의식의 특별한 형식으로서, 가장 의식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계급의 총체가 아니라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 활동적인 부분을 포괄한다. 계급이 곧 당이 아니듯이 당도 곧 계급이 아니다.

     

    8. 계급 일부로서 혁명가의 조직은 그 부분(투쟁가)의 합도 아니고 사회학적 계층(노동자, 피고용자, 지식인)의 연합체도 아니다. 그것은 그 생명체의 최적화된 작동을 보장함으로써 그 구성 세포들의 유일한 기능인 하나의 생명체로서 발전한다. 그것은 개인이나 특정 범주에 그 어떤 특권도 부여하지 않는다. 계급과 마찬가지로 혁명조직은 하나의 집합체로 나타난다.

     

    9. 혁명조직이 완전하게 꽃필 수 있는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혁명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같다.

     

    - 국제적인 차원 : 프롤레타리아트와 마찬가지로 혁명조직은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민족국가 틀을 돌파함으로써 태어나고 살아간다. 자본의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모든 나라에서 계급투쟁의 국제주의를 옹호한다.

    - 사적 차원 : 혁명조직은 계급의 가장 진보된 분파로서 계급에 대해 역사적인 책임을 갖는다. 과거 노동자 운동의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의 기억을 사수하기에 그것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반적 역사적 목표의 가장 의식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요인이 바로 계급과 그 정치조직에 그들의 단일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10. 혁명조직의 활동은 오직 통일된 단일체로서 이해해야 하며, 그 구성요소는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다:

     

    - 이론적 활동, 이 활동의 수행은 항시적인 노력이어야만 하고, 그것은 결코 최종적으로 고정되거나 완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필수적이며 대체할 수 없다.

    -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투쟁에의 개입 활동. 이것은 조직 최상의 실천이며, 이때 이론은 선전과 선동을 통해 투쟁 무기로 변환된다.

    - 기관의 발전과 강화, 그리고 조직의 성과를 가져오는 조직 활동 없이는 양적 발전(새로운 구성원)은 질적 발전으로 바뀌지 않는다.

     

    11. ICC 안에서 표현된 많은 정치·조직적 몰이해의 보기는 ICC가 처음에 채택한 이론적 틀을 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몰이해는 자본주의 쇠퇴이론과 이 이론의 실천적인 함의를 우리의 개입 활동에 동화시키는 것이 빈약했던 점에 기초한다.

     

    12. 혁명조직이 근본 본성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기능의 속성은 자본주의의 상승기와 쇠퇴기 사이에 질적으로 변경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 뒤이은 혁명의 격동기에는 혁명조직의 특정 존재 형태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한편, 19세기에는 오직 맹아적으로 출현했던 다른 형식을 발전시켰다.

     

    13. 자본주의 상승 주기는 혁명적 정치조직에 하나의 특정한 과도적인 형태를 부여했다.

     

    - 혼합형태. 협동조합, 노동조합 그리고 당이 같은 조직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맑스의 노력에도 그 조직의 정치적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노동조합 투쟁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 대중조직의 형성. 이것은 특정한 사회적 범주(청년, 여성, 협동조합주의자)의 중요한 분파를 포괄하거나 심지어는 특정 나라에서 노동자계급 대다수를 포괄함으로써 혁명조직의 원래 기능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 느슨한 형태를 사회주의 조직에 부여했다.

    -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즉각적인 개량의 가능성은 사회주의 조직 활동의 장을 이동시켰다.

    「코뮤니스트 선언」에 확인된 코뮤니즘이라는 더 광범위한 전망을 넘어, 즉각적이고 점진적인 투쟁이 우선권을 차지했다.

     

    14. 혁명의 객관적 조건 미숙은 조직적으로 결합하여야 할 임무의 전문화, 즉 조직 기능의 원자화를 가져왔다.

     

    - 이론적인 임무는 전문가(맑스주의 학파, 직업적인 이론가)에게 맡겨졌다.

    - 선전과 선동 임무는 항구적인 노동조합과 의회 대표자(’직업 혁명가’)가 맡게 되었다.

    - 조직 임무는 당의 임금을 받는 직원이 책임졌다.

     

    15. 그 대다수가 이제 막 시골 지역이나 수공업장에 도착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미성숙과 그때 겨우 형성된 민족국가 틀 내부에서 자본주의 발전은 혁명조직의 진정한 기능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 정치적, 조직적 전통 없이 여전히 종교적인 신비화 영향 아래, 독립적 생산자로서 그들의 예전 조건에 대한 향수에 갇힌 채 프롤레타리아화한 대중의 거대한 성장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고 교육하는 작업에 지나친 역할을 부여했다. 조직 기능은 여전히 문화가 부족하고, 이전의 유아기 환상으로 고통받는 한 계급에 의식을 주입하고 ‘과학’을 주입하는 것으로 여겼다.

    - 산업화한 나라의 틀 내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은 사회주의의 국제적 성격을 가려버렸다(국제사회주의보다는 ‘독일사회주의’나 ‘영국사회주의가’ 더 많이 거론되었다). 제1 그리고 제2 인터내셔널은 단일하고 집중화된 세계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국가 분파들의 하나의 연방체로 작동했다.

    - 조직 기능은 국가적인 것으로 보였다. 각 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사회주의’ 국가의 연합된 연방체로 장식되었다.(카우츠키)

    - 조직은 ‘민주적인’ 사람들의 조직으로 보였고, 그 임무는 선거에서 사회주의 강령을 위해 민중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16. 이 역사적 시기의 과도기 성격은 당과 계급 사이의 관계를 왜곡했다. 혁명가의 역할은 참모부를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지휘인 것 같았다. 계급의 주요한 미덕은 규율, 지도자에 대한 복종으로 여겨졌다. 어느 군대나 마찬가지로 그것은 목적(대리주의)의 완수를 위해 심지어는 투쟁방법(노동조합주의)의 완수를 위해 위임된 ‘우두머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당은 ‘전체 민중’의 당이었고,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승리였다. 당의 계급 기능은 민주주의 이념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당 기능의 이러한 퇴행에 대항해서 제2 인터내셔널의 좌파와 초기 제3 인터내셔널이 싸웠다. 코민테른이 인터내셔널의 몇몇 낡은 개념(대중당, 전선주의, 대리주의)을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오늘날 혁명가들은 결코 모범의 미덕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조직 기능에 대한 이러한 왜곡과 단절이 바로 역사적인 쇠퇴 시기 부과한 매우 중대한 요구이다.

     

    17. 전쟁에 뒤이은 혁명 시기는 혁명가의 기능에 심오하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의미했다.

     

    - 조직은, 규모가 축소되었거나 발전된 당이거나 상관없이, 혁명을 준비하거나 조직할 임무를 더는 갖지 않았다. 혁명은 계급 전체의 행위였다.

    - 계급의 투쟁가를 준비하고 지도하는 것은 교육가도 참모부도 아니다. 계급은 혁명 투쟁 속에서 자신을 교육하고 ‘교육가’ 자체도 계급에 의해 “교육되어야” 한다.

    - 그것은 더는 특정 그룹(청년, 여성, 협동조합주의자 등)의 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18. 혁명조직은 그래서, 비록 계급 단일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는 아닐지라도, 즉각 단일한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더 넓은 단일성 즉, 그것을 탄생시킨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단일성이다.

    그것은 더는 국가 규모가 아니라 세계 규모로, 다른 ‘국가’ 분야를 배출하는 하나의 총체로서 부상한다.

    그 강령은 동방이나 서방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모든 나라에서 같다. 불균등한 자본주의 발전과 전(前)자본주의 아나키즘의 산물로서 국가적인 ‘특이성’이 오늘날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때문에 강령의 단일성이 부인될 수는 없다. 강령은 전 세계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19. 혁명의 객관적 조건 성숙(프롤레타리아트의 결집, 더 단일화되고, 더 좋은 질, 지적 수준이나 성숙도에서 이전 세기 그것보다 우월한 계급의식의 더 커다란 균일성)은 혁명가들의 조직 형태와 목표 모두를 심오하게 변화시켰다.

     

    (가) 그 형태에 있어서

    - 혁명조직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제한된 소수지만 더 의식적이며, 그 강령과 정치적 활동으로 선택된다.

    - 혁명조직은 19세기에 비해 훨씬 더 개인적이지 않으며, 투쟁가 대중을 지휘하는 지도자 조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유명한 지도자와 위대한 이론가의 시기는 지났다. 이론 작업은 진정 집합적인 임무이다. 수백만 ‘무명의’ 프롤레타리아 투사들과 마찬가지로 조직 의식은 개개인의 의식이 통합되고 초월함으로써 하나의 단일한 집합 의식으로 발전한다.

    - 그 기능 양식에 있어서 그것은 국가 지부의 병립에 불과했던 제1 그리고 제2 인터내셔널과는 반대로 더 집중화된다. 혁명이 오직 전 세계적 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시기에 혁명조직은 혁명가들의 재조직화를 지향하는 전 세계적인 경향의 표현이다. 이러한 집중화는, 1921년 이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퇴행적인 견해와는 반대로, 혁명가들의 전 세계적인 활동을 특정한 한 나라의 당이 흡수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가들의 전 세계적인 활동이 많은 나라에서 존재하며 그 중 어느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관해 지배적이지 않은 그러한 단일체가 스스로 활동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에 대한 단일체의 우선성이 부분의 삶을 조건 짓는다.

     

    (나) 그 방법에 있어서,

    - 전쟁과 혁명의 역사적 시기 혁명조직에 그 진정한 최종목적, 즉 코뮤니즘을 더는 장기적 목표로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세계혁명을 위한 대투쟁 안에 직접 뛰어들어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전면에 떠오른다.

    - 러시아 혁명이 보여주듯이, 혁명가는 그들이 요구할 어떤 권리도 특권도 갖지 않고 계급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단지 출현하고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은 계급을 대체하지도 않고 계급을 대신해 권력을 획득하지도 국가권력을 장악하지도 않는다.

    - 혁명가의 근본 역할은 혁명 이후까지 계급의 모든 투쟁에 개입하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성숙을 촉진하는 그들의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완수하는 것이다.

     

    20. 반혁명의 승리, 국가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혁명조직의 존재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고 그들의 개입 범위를 축소했다. 이렇게 심오한 후퇴 시기에 이론 기능은 개입 기능을 초월했고, 혁명원칙 보존에 결정적임을 증명했다. 반혁명 시기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 작은 써클, 핵 또는 극소수로, 계급으로부터 고립된 채 혁명조직은 혁명을 향한 새로운 역사적 시기가 열린 후에만 발전할 수 있었다.

    -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새로운 조직원을 영입’하는 것은 숫자라는 신기루에 원칙을 깨뜨리고 조직 기능 손실을 준다. 그래서 가입하는 이들은 강령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면서 자발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 조직 존재는 맑스주의 이론의 틀에 따라 굳건히 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철저하고 이론적이며 정치적이고 투쟁적인 선택에 따른 양적인 손실은 질적인 이득을 낳는다.

    - 과거보다 더욱더, 혁명조직은 50년간의 반혁명의 지배로 강화된 자본주의의 엄청난 압력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의 미약한 역량이 저항할 수 있는 특권적 위치이다.

    이 때문에, 비록 홀로 존재하지는 않을지라도 계급에 의해 생겨난 혁명조직을 결연히 보존하고 강화하며 세계 규모로 혁명가들을 재조직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21. 반혁명 시기 종결은 혁명조직의 존재 조건을 변화시켰다. 혁명가들의 재조직화 발전에 유리한 새로운 시기가 열렸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기는 여전히, 당의 출현에 필수 조건이 진정한 질적 도약을 통해 충분한 조건으로 아직 전환되지 않은 중간시기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 동안, 우리는 사상 투쟁과 공동 행동을 통해 결국에는 서로 융합함으로써 하나의 세계당 건설을 향한 경향을 나타낼 혁명가 그룹의 발전을 보게 될 것이다. 이 경향의 실현은 혁명을 향한 노정이 열리는 것과 혁명가들의 의식에 달려 있다.

    비록 1968년 이래 특정 단계가 도달되었을지라도, 비록 혁명 환경 내부에 선택이 이뤄졌을지라도, 당의 출현은 계급투쟁의 발전이 느리고 혁명 진영이 아직 미성숙한 상황에서 자동적이지도 않고 자발주의의 결과물도 아니다.

     

    22. 사실, 1968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재기 이후 혁명 환경은 새로운 시기를 감당하기에 매우 미약하고 미성숙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혁명 시기 동안 그 흐름에 대항에 투쟁했던 예전의 코뮤니스트 좌파의 약화 또는 소멸은 혁명조직의 성숙에 부정적인 요소였다. 천천히 재발견되고 재동화된 코뮤니스트 좌파의 이론적인 성과보다도 훨씬 더 조직적 성과(유기적 연속성)가 부재했는데, 이러한 성과물 없이는 이론은 죽은 글귀로 남는다. 혁명조직의 기능, 심지어 필요성조차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종종 오해되었다.

     

    23. 이러한 유기적 연속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68시기 이후 출현한 인자들은 학생운동과 그것에 의해 대변된(모든 것을 의문시하고, 모든 것을 폐기하는) 논쟁주의의 압도적인 압력에 취약했다.

     

    - 이것은 일상생활과 자아실현에 관한 개인주의 이론을 대변했다.

    - 맑스주의를 하나의 ‘학문’으로 또는 사적인 기풍으로 바라보는 학습 써클의 아카데미즘.

    - 노동자주의가 좌익주의의 압력에 굴복했음을 은폐하는 행동주의/당면주의.

     

    계급투쟁의 느리고 불균등한 걸음걸이에 직면한 학생운동의 환멸과 해체는 모더니즘이라는 형태로 이론화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 운동은 가장 덜 확고하고 덜 진지한 인자들을 걸러내고 자신을 정화했다. 그런 인자들에게 투쟁주의는 휴일의 소일거리이거나 소외의 극치였다.

     

    24. 특히 폴란드 이후, 위기가 더 넓고 넓은 계급 분출로 향한 길을 열어낼 것을 충격적으로 확인했음에도, ICC를 포함해서 혁명조직들은 모더니즘과 아카데미즘만큼이나 위험한 또 다른 위험이자 개인주의와 딜레탕티즘(제대로 모르고 좋아하는 어설픈 전문가주의)과 쌍을 이루는 당면주의(맞닥뜨린 국면에 조급/당면하게 대응)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오늘날 혁명조직은 이것을 결정적으로 일소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이러한 재앙들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25. 최근에 ICC는, 쁘띠 부르주아적 조급함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고 1968년 5월의 혼란스러운 정신의 최종 전형인 당면주의의 재앙적인 결과로 고통받았다. 이러한 당면주의의 가장 충격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다.

     

    (가) 행동주의, 이것은 개입에 나타났고 자발주의 개념인 ‘신규모집’ 안에 이론화되었다. 조직은 인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강령을 기반으로 한 엄격한 선택을 통해 조직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이 잊히었다. ‘수적인’ 발전은 단순한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계급과 그것이 배출해 내는 인자의 성숙 결과이다.

    (나) 지역주의, 이것은 특정한 개입에서 표면화되었다. 우리는 ICC 내의 특정 인자가 그들의 지역적인 지부가 마치 개인의 소유물이자 자동적인 실체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부는 전체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국제조직의 필요성조차도 부정되거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국제조직은 일종의 ‘허세’로, 기껏해야 지부 간의 느슨한 ‘연결고리’ 정도로 치부되었다.

    (다) 경제주의, 오래전에 레닌이 대항해 싸웠던 그 경제주의는 계급투쟁의 전 세계적 틀 속에 각각의 파업을 통합해 내기보다는 그것 자체로만 바라보는 경향 속에 나타났다. 종종 우리 조직의 정치적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혁명가들을 노동자를 위해 봉사하는 투쟁의 ‘심부름꾼’이나 ‘기술자’로 여기어 결국에는 장래 투쟁의 물질적 준비만을 옹호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라) 추종주의는 혁명조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의 마지막 구체화로서, 우리 자신의 깃발을 숨긴 채 파업을 단순히 따라가려는 경향의 형태를 띠었다. 노동조합주의의 모든 숨겨진 형태를 분명하고 비타협적으로 고발하는데 주저함이 있었다. 운동과 함께 머물며 더 많은 즉각적인 반향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든지 계급에 의해 인정받기 위해서 원칙을 외면하였다.

    (마) 노동자주의는 이러한 혼란스러움의 최종적인 종합이었다. 좌익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인자들은 조직 내부에 ‘노동자’와 ‘지식인’, ‘지도부’와 ‘풀뿌리 단위’가 존재한다고 선동적으로 주장했다.

    몇몇 동지들이 조직을 떠난 것은 당면주의가 매우 심각한 병임을 보여주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조직의 정치적 기능과 그 이론적 강령적 기초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26. 이 모든 전형적인 좌파적 편향은 조직 강령 안 이론적인 불충분성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이론적 틀의 빈약한 적용을, 특히 자본주의 쇠퇴론의 빈곤한 적용을 반영하는데, 자본주의의 쇠퇴는 혁명조직에 열린 활동과 개입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27. 이 때문에 ICC는 정치분석에서 당면주의로밖에 귀결될 수 없는, 그 어떤 강령적 틀의 포기에 완강하게 반대해야 한다. ICC는 다음과 같은 위험들에 대항해 결연히 싸워야 한다.

     

    - 경험주의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경험주의의 경우, 당면한 사건과 현상에 집착함으로써 기회주의의 영원한 원천인 ‘특정한’ 경우라는 낡은 개념이 초래된다.

    - 피상성의 모든 경향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이 경향은 관행성이나 정신적인 게으름의 형태를 취한다.

    - 이론 작업에 대한 특정한 불신이나 주저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이론의 ‘회색’은 개입이라는 ‘장밋빛’에 반대 항에 놓여서는 안 된다. 이론은 맑스주의 전문가에게 맡겨진 어떤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집합적인 심사숙고의 산물이자 이러한 사색 과정에 모든 이의 참여 산물이다.

     

    28. 우리의 이론적 조직적 성취를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주의의 유아기 형태인 딜레탕티즘의 다음과 같은 흔적들을 없애야 한다.

     

    - 방법이 없이 단기적으로 조금씩 일하는 것.

    - 수공업자의 딜레탕티즘의 표현으로, 개별적으로 일하는 것.

    - 미숙하거나 인위적인 경향을 구축하는 정치적인 무책임성.

    -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것

    조직이 투쟁가의 일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쟁가는 일상 투쟁을 유지해서 조직의 폭넓은 작업에 스스로 발 딛는다.

     

    29. 자본주의 쇠퇴기에 혁명조직의 기능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은 1980년대라는 결정적 시기에 우리 자체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다. 혁명이 조직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혁명적 소수들이 하나의 계급 기관으로 존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조직문제와 극복되어야 할 몰이해가 존재한다.

     

    30. ICC 존재는 오직 맑스주의 방법의 재습득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는데, 이 방법이 사건을 이해하고 개입하는데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다. 조직의 모든 작업은 오직 장기적인 기반 위에서만 이해되고 발전할 수 있다. 방법 없이, 집합적인 정신 없이, 모든 투쟁가의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당면주의 조급함을 배제할 수 있는 불굴의 자세 없이는 그 어떤 진정한 혁명조직도 존재할 수 없다. ICC는 그 존재가 장래의 투쟁에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인,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창조한 그러한 기관의 하나이다.

     

    31. 지난 19세기와는 달리, 혁명조직의 임무는 더 난해하다. 구성원 모두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조직은 여전히 반혁명의 마지막 영향으로부터 고통받고, 그 시기 동안 전진과 후퇴로 표시되는 계급투쟁의 결과로 고통받는다.

    반혁명의 기나긴 밤 질식할 것 같고 파괴적인 분위기 안에서 살 필요는 더 없을지라도, 현재의 활동이 계급투쟁에 그리고 세계적 규모의 대중 운동 발생에 유리한 시기에 활동하고 있을지라도, 조직은 계급 운동이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시기에 올바르게 퇴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혁명조직은 혁명의 순간이 올 때까지, 계급을 엄습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사기 저하의 물결에 대항해 결연하게 투쟁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 가장 결정적인 임무는 조직의 통일성, 그 원칙과 기능을 방어하는 것이다. 스스로 위축되어버리는 약점 없이 저항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미래의 승리를 위한 조건을 준비하는 길이다. 혁명이론을 대중이 파악할 수 있으려면 당면주의 편향에 대항한 처절한 투쟁이 필요하다.

     

    당면주의 잔재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여, 코뮤니스트 좌파에 의해 보존되고 풍부해진 맑스주의의 생생한 전통을 다시 품어 조직이 역사적 임무를 감당할 수 있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배출된 대체 불가능한 도구임을 실천 속에서 보여줄 것이다.

     

     

    보론

     

    전면화된 투쟁과 혁명운동의 시기에 혁명가의 활동은 직접적이고 심지어 결정적인 영향을 갖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노동자계급은 이때 숙적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계급이 자체의 전망을 강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신비화와 자극에 항복하여 부르주아지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 계급은 회합이나 총회에서 투쟁 속도를 늦추고 그것을 이탈시키려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는 부르주아지 대리인들이 자행하는 사보타지와 훼손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운동에 분명한 정치적 방향성을 유지하고 계급의식 균질화 과정을 가속하는 임무를 가진 혁명가들이 있다는 것은 독일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서 보였듯이 힘의 균형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레닌이 4월 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듯이 이 영역에서 볼셰비키가 행한 근본적인 역할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당이 노동자 대리인 소비에트에서 소수이고, 부르주아의 영향 아래에 놓인 채 이 영향을 프롤레타리아트에 확산시키는 모든 기회주의적 쁘띠부르주아적 인자들의 블록에 비해서 잠정적으로 미약한 소수임을 인정하라… 노동자 대리인 소비에트가 혁명정부의 유일한 형태이고 그래서 이 정부가 부르주아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한 노동자 대중들의 요구들에 근거해서 그들의 전술 오류를 인내심 있고 체계적으로 노동자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임을 그들에게 설명하라." (테제4)

     

    지금부터 ICC 존재와 현 임무 실현은 미래 임무에 부응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준비를 표현한다. 전면화된 활동의 시기에 혁명가들이 그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은 현재 활동이 조건 짓는다.

     

    1) 이러한 역량은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조직적 숙련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일관적이고 분명히 규정된 입장은, 그것을 옹호하고 유포하며 심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보기를 들어 독일의 혁명가들과는 달리 어떻게 볼셰비키가 (1905년부터 1차대전까지) 계급의 경험을 고려해서 그들의 입장을 발전시키고 조직을 강화하는 역량으로 인해 계급의 혁명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틀 안에서, 코뮤니스트 그룹의 근본적인 목적 중의 하나는 일반적으로 정치투쟁 초기의 특징인 활동과 조직의 수공업적인 수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 임무, 즉 개입, 출판, 유포, 토론 및 근접한 인자들과의 교류를 발전시키고 체계화하며 정규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중점적인 급선무이어야 한다. 이것은 특수한 기관 그리고 그것이 다양한 세포들의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균형 잡힌 신진대사를 갖는 단일체로써 활동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능규칙을 요구한다.

     

    2) 지금부터, 혁명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투쟁의 발전과 더불어 출현하는 정치 그룹, 토론 써클, 그리고 노동자그룹에 있어서 국제적인 정치적 재조직화의 일관된 축을 표현한다. 간행물을 가지고 있고 개입하는 국제 코뮤니스트 조직이 존재함으로써 이 그룹은 입장과 경험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고 그들 입장의 혁명적 일관성을 발전시키며 어떤 경우에는 국제 코뮤니스트 조직에 가담할 수도 있게 된다. 만약 그러한 축이 없다면, 그러한 그룹은 (예를 들어 행동주의, 지역주의 및 협동조합주의 등을 통해) 분산되고 낙담하고 퇴행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투쟁이 발전하고 혁명적 대결의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이 역할은 계급투쟁에 따라 생겨나는 인자들과 관련해서는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점점 더 노동자계급은 숙적과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부르주아 권력을 즉각 전복할 수 없는 시기에조차도 충격은 격렬하며 계급투쟁의 결과에 결정적일 것이다. 이 때문에 혁명가들은 그들이 가진 어떤 수단을 활용해서라도 계급투쟁 안에 개입해야 한다.

     

    -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진 모든 잠재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그러한 투쟁을 가능한 한 멀리 추진하기 위해서.

    - 모든 문제가 분명하게 제기되고, 일반적인 정치적 전망의 틀 안에서 최대한 많은 교훈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 1982년 1월.

     

    2005년 1월 17일, 인터내셔널 리뷰 (IR)

     

    <원문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specialtexts/IR029_functi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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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건설/혁명조직 관련 글>

     

    혁명당과 노동계급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25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31

     

     

    다시 혁명조직의 기본을 말하다.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5845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3 : 노동계급과 혁명조직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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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를 즉시 중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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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를 즉시 중단하십시오.

 

2차 가해는 정당한 방어권이 아니라 성폭력의 연장이거나 또 다른 성폭력입니다.

 

2차 가해는 성폭력 사건의 정상적 해결 방법이 아니라 사건의 해결을 방해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행위일 뿐입니다.

 

2차 가해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는 인간 존엄성 침해 행위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2차 가해는 용인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즉시 2차 가해를 중단하십시오.

 

성평등을 실천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

 

 

 

 

 

<2차 가해에 대한 제 단체의 규정>

 

‘2차 가해'라 함은 사건 이후 가해자나 그 주변인3자가 피해자가 원치 않는 접촉이나 합의 시도 및 사건접수자 또는 제3자가 피해자를 부당하게 추궁하고 특정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고의적으로 사건 해결을 지연시키거나 은폐축소하는 행동 등으로 피해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민주노총 성폭력폭언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

 

 

2차 가해란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직간접적인 또 다른 가해와 고통을 주는 일체의 언행(언어적인 폭력정신적인 협박이나 물리적 강압집단적인 따돌림괴롭힘피해자 신변 공개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자의 과거 경력이나 행동성격 등을 문제 삼는 행위 등)을 하거나 피해자와 조직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포함하며본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코뮤니스트 반()성폭력 규정

 

 

2차 가해라 함은 성폭력 사건 이후 가해자 또는 가해자 이외의 자가 언어적인 폭력정신적인 협박이나 물리적 강압집단적인 따돌림괴롭힘피해자 신변 공개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자의 과거 경력이나 행동성격 등을 문제 삼는 행위 등으로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말하며 본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노동당 당규 제5호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사건 처리에 관한 규정

 

2차가해라 함은 사건을 묵인방조하거나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사건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인 또 다른 가해를 하거나권리를 침해하는 일체의 언행을 하거나피해자와 당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사회변혁노동자당 제3호 당규 성차별성폭력 근절 및 예방에 관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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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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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의식

     

    우리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정교화하고 레닌의 실천과 이론 작업으로 확인되었으며, 제3 인터내셔널의 처음과 두 번째 회의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형성에서 다시 확인되었던 혁명 이론의 습득물을 견지한다. 협상위원회(Committee of Entente) 내부의 이탈리아 좌파는 이러한 입장을 방어했고,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랐다.

     

    1.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므로, 필요의 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하는 결정적인 단계를 완수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2.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점진적으로 강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다. 과거 지배 계급에 맞선 새로운 계급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존재는 부르주아지 권력을 점진적으로 사라지도록 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의 권력은 점차 절대적인 것이 되고, 시민 사회의 가장 깊은 층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3. 여타 계급에 맞서는 결정적인 적대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계급의 존재 그 자체에서부터 구체적으로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의식, 코뮤니스트 의식이 나타난다.”

     

    4. 부르주아 권력을 혁명적으로 전복할 가능성이 역사적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생산 양식과 사회적 관계의 내적 모순의 폭발을 더는 통제할 수 없는 위기의 시기 동안이다.

     

    5. 이 혁명은 “필연적이다. 지배 계급이 다른 방식으로는 전복될 수 없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계급 전복이 수년간 쌓인 모든 거름 위에 올라타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하는 데 적합하게 되는 것은 혁명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맑스) 그리고 “코뮤니스트 의식의 대규모 생산과 대의명분 그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간이 거대한 규모로 변화해야만 하며, 그 변화는 실천적인 움직임, 혁명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맑스)

     

    6. 앞선 시기 동안, 그리고 혁명적 과정이 일어나는 그 시기 동안, 코뮤니스트 의식은 노동계급과 다른 계급 내부의 소수 개인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 그리고 계급 적대의 객관적 성격으로부터 비롯되고, 지속해서 다시 언급된다. 코뮤니스트 의식은 이러한 객관적 상황으로부터 그 힘과 유물론적 본질을 끌어내며, 따라서 이는 전체 계급의 유산이다.

     

    7.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운동과 강령의 표현으로써, 코뮤니스트 의식은 맑스주의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의될 수 없다. 반대로, 코뮤니스트 의식은 사회적, 경제적 실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바로 그 실재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혁명 의식은 귀족계급 지배의 외형에 반대하면서 하나의 착취하는 계급(부르주아지)을 다른 착취 계급으로 대체할 필요에 기초하는 반면, 코뮤니스트 의식은 오늘날 사회와 모든 그 이전 사회의 계급적 성격 그 자체에 반대한다. 그 목적은 계급 구분 그 자체이다. 그것은 적절한 단어의 의미에서 마지막 이론이 아니라, 명백히 마지막 혁명 이론이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코뮤니스트에게 이 국가들은 계급 적국의 국제적 노선에 완전히 편입된 국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에서 나타난, 혁명적 맑스주의와 완전히 갈라선 이데올로기들이 고전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조차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8. 계급과 코뮤니스트 의식의 관계는 계급과 미래의 계급 독재의 실천과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매우 역동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객관적인 사회적, 경제적 모순에 기반을 둔다. 계급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의 역사를 만들 준비가 될 때까지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의 마음과 심리 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9. 맑스주의에 맞지 않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 이론에 단호하게 거부하고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혁명 과정 바깥에서 코뮤니스트 의식이 성장할 수 있고 일반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관념의 우월성이라는 관념론적 원칙에 기초하며, 현실에 대한 불가능한 비전을 내세우며, 코뮤니스트의 피할 수 없는 의무로부터 떼어놓고 그들의 일을 방해하면서 잠재적 혁명가들을 속일 수 있을 뿐이다.

     

    10. 러시아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과정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부터 시작된 평의회코뮤니스트 운동은 근본적으로 반(反)맑스주의적인 테제를 채택했고, 코뮤니스트 운동에 적합하지 않고 그에 반대하는 관점에 도달했다.

     

    11. 평의회코뮤니스트 운동에 가까운 또 다른 입장 또한 거부해야 하는데, 오직 혁명 과정만이 코뮤니스트 의식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를 ‘혁명의 필요에 대한 의식’으로 환원하여 고도로 조직된 부르주아지 세력에 반대하는 조직된 투쟁을 포기했다. 이 입장의 옹호자들은 혁명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보존과 두 제국주의 블록 중 하나의 헤게모니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12.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코뮤니스트 의식, 전체 원칙, 테제의 계승, 그리고 코뮤니스트 혁명 이론과 견해가 한 번에 주어지는 어떤 것, 운동의 어느 역사적 단계에서 그다음 단계로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관점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 주변에 있는 이들은 코뮤니스트 의식이 계급과 자본에 종속된 상태에서 계급이 객관적으로 겪어야 하는 경험에 코뮤니스트 의식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테제와 입장이 계급이 사는 실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변화 속에서 계급투쟁 성격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필수적인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모든 변종은 부르주아의 민족적 코뮤니스트 정당 이론에도 계급 사회의 기본적인 본질을, 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계급이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배받는 계급이며 여전히 그렇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혁명가의 조직: 당

     

    1. 혁명으로 향하는 기간 동안, 그리고 심지어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코뮤니스트 의식은 소수가 갖고 있는데, 그러니까 오직 소수만이 갖고 있고 이러한 의식에 기반을 두고 행동한다. 이것은 논쟁할 필요가 없는 진실, 구체적인 사실이다. 이 소수는 계급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 위기에 빠져있는 기간 동안 실천적인 운동, 혁명 – 계급 내에서 대중의 코뮤니스트 의식이 성숙하는 유일한 방법 - 을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도구를 갈고 닦을 의무가 있다. 모든 의미에서 혁명적 소수의 조직은 당이다.

     

    2. 당은 테제, 원칙, 그리고 코뮤니즘을 위한 모든 투쟁 표현의 유산을 계급에 돌려줘야 하는 영속적 책무가 있다. 코뮤니스트 의식은 노동계급이 자신이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당은 계급과 그 의식의 관계가 자본주의 존재의 전 역사를 통해 표현되는 매개체이며,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가는 이행의 시기에서도 바로 그러할 것이다.

     

    4. 노동계급의 권력 획득, 그러므로 전 사회 혁명의 시작은 오직 자본주의의 위기 동안, 그리고 계급이 혁명가들의 원칙과 강령 속에서 그 자신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인지할 때, 즉 부르주아지 국가에 대한 공격 동안 당과 그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때에만 가능하다.

     

    5. 당-조직의 기복은 계급의 삶의 기복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당-조직은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정치적 수준에서 최고의 지배력을 발휘할 때 그 심각한 퇴조의 시기에는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계급 사이 객관적인 적대가 사라질 리 없는 것처럼, 이 적대를 먹고 자라는 코뮤니스트 의식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가들의 조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점까지 축소될 수는 있다. 계급의 패배가 일반 혁명가들에게 공포와 환멸로, 따라서 코뮤니스트 의식 수준에 대해 혼동과 착란으로 이어졌을 때 특히 그러하다. 이는 1948년 전후 이탈리아에서 확인되었다. 이 시기 스탈린주의의 결정적인 승리3) – 이는 계급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자신을 얽매는 사슬을 벼리게 했다. – 는 통일된 조직,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당 구성원의 분리를 일으켰는데, 이 조직은 1943년 스탈린주의의 깊은 침체로부터 계급의 잠재적인 각성에 대한 반응으로 결성된 것이었다.

     

    6. 당을 자처하는 여러 조직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의 연속성과 그 당을 보호할 투사의 필요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제3 인터내셔널과 소비에트 권력이 그들이 판단하기에 타락의 순환을 완료하기 전인 1921년 레그혼(Livorno)에서 설립된 당에 대해 프랑스와 벨기에의 좌익 분파의 동지들의 책무였다. 이것은 스페인에서의 전쟁에 소련이 반혁명의 대리인으로서,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한 세력으로서 참전했을 때 완성되었다. 그러자 혁명의 연속성 방어는 새로운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에서 구체화 되었는데, 이 조직은 이전 시기의 경험과 노력을 모두 집대성한 테제와 강령을 중심으로 재결합되었다. 이 당이 이후 2개의 경향으로 나눠진다는 사실4)과 그들 중 하나가 종종 공개적으로 반혁명적(우리는 Invariance를 생각하고 있다)5)인 그룹과 조류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1943년 강령의 기반에 대한 완전한 소멸이나 배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7. 프롤레타리아트 세계당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 ‘민족적’ 당의 지도로 어떤 국가에서 혁명적 격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과거 역사적 경험과 제국주의 초국가적 집중의 성장은 혁명가들이 반세기 동안 혁명가의 코뮤니스트 의식으로 표현되는 이론적 체계적 강령의 기반 위에 국제 정당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자본의 초국가적 성격, 다시 말해 모든 국가에서 부르주아지가 가지는 똑같은 계급적 이해는 역시 초국가적 성격의 프롤레타리아 이해에 대응한다. 한 나라에서 승리한 혁명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적극적인 연대 없이는 오래 유지할 수 없고, 그것은 방어 수준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혁명적 공격에서도 그러하다. 세계혁명당은 중요한 전략적 계획 실행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세계당은 자본에 대한 총체적 공격에 집중하고 있어, 혁명이 처음 터져 나온 나라에서의 전술은 이 계획에 부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8. 이것은 국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당이 가질 관점이다. 프롤레타리아 이해와 당 전략의 초국가적 성격은 당의 집중화된 조직에 반영될 것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별개일 수 없는 도구인데, 왜냐하면 객관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계급의 계속 진행되는 발전을 오직 당만이 체계적, 정치적 강령으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계급은 극단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거나, 심지어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 없이도 쉽게 파벌주의 및 코포라티즘 - 둘 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다 - 의 먹이가 될 것이다. 당이 그 중심 입장, 연방제의 원칙이 아니라 중앙집중주의의 원칙에 따라 단단하게 재결합하고 조직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계급이 다양한, 종종 모순적인 경험을 당에 보내더라도 당이 그것을 통일된 강령으로 정교화시켜 다시 계급에 돌려줘야 하는 것처럼, 당 자신도 그 안에서 전투적 활동 경험과 전략적, 전술적 입장이 주변적인 것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다시 중심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다.

     

    계급과 당

     

    당이 오직 혁명 직전에만, 심지어 혁명 동안에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당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왜곡시킨다. 만약 계급이 혁명적 공격을 수행할 역량이 있다면 - 당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요소의 개입 없이 특정 수준의 정치적 동질성을 계급 내에서 이룰 수 있다면, 당은 그 자체로 잉여인 것이다. 만약 계급이 그 투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특정 순간 당으로 ‘스스로 무장’한다면, 당은 의식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작전상의 도구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 유명한 평의회주의자들의 이론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왜 좌익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혁명의 수행에 당이 필연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당 구성을 연기하는 그런 개념과 싸워야만 하는지 그 이유이다. 그것은 당(어떤 동지들은 당보다는 혁명가 조직이라 표현하길 좋아한다)의 실천적인 책무를 과소평가한 데 기반을 둔다. 우리는 당의 필수적인 책무 중 하나가 가능한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경험과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정교화한 노동계급 해방의 강령을 계급에 되돌려 줄 수 있는 도구로 당이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당은 계급 내에서 계급 일부로 행동한다.”라는 공식은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디에 있든 전투적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일부이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결정적인 입장과 당의 총체적인 방향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당이 그 안내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고 전제할 때 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당이 계급의 소수라는 일반적 상식과 배치되는 대중적 존재감을 어디서나 가질 만큼 수적 성장을 겪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한 이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당과 계급 사이를 이어주는 기관이 혁명적 공격의 시기 전후 모든 기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혁명적 원칙은 분명히 후천적으로 획득한 혁명적 원칙이다. 이 기관은 당이 강령과 방향성에 대한 영향력을 가능한 확대하기 위해 사용한다. 계급은 경제적 수준에서, 또는 누군가는 계약적 수요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움직이고 투쟁한다. 오직 혁명가만이 이러한 투쟁의 한계로 계급을 해방할 수 없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코뮤니스트들은 자신을 노동자 대중과 구분하는데, 이는 방어적 투쟁에서 전체 계급과 함께 싸울 때조차 혁명가들이 이러한 투쟁의 한계를 비판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선전하는데 이용한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코뮤니스트들은 계급의 투쟁을 부르주아 국가를 공격하는 정치적 전략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들은 전체 체제가 위기일 때, 그리고 투쟁이 전면화되었을 때 프롤레타리아트 공격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향하기 위해 사용할 도구를 준비해야만 한다.

     

    만약 혁명으로 나아가는 시기에 당이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갖추지 못한 채 계급 내에서 활동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당은 그 근본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당은 혁명가의 조직으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상황이 객관적으로 좋을 때, 당은 준비되지도 않고 계급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계급이 무장해제된 채로 방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당이 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은 계급투쟁의 성숙도, 그리고 계급 내의 혁명가들과 부르주아 좌익의 실제 관계와 물론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것은 사용할 도구의 종류가 당의 강령에 정확하게 예상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증거는 우리 강령이 예견했던 ‘국제주의자 공장 그룹’인데, 이것은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한때(예를 들어 1945년에서 1948년까지)는 매우 중요했던 우리가 그 형성에 공헌하고자 하는 국제당 강령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그들의 책무는 특정 동지들이 믿는 것처럼 단순히 ‘경제적 수준에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당의 총체적인 정치적 원칙을 당에 전파하고, 계급에 동조하는 계층을 단단하게 하며, 미래 혁명 투쟁의 참고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상황에서의 어려움, 낮은 수준의 계급의식은 이런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지점을 강령에서 놓치고 좀 더 나은 시기로 미룬다면, 우리는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우리의 의무를 수행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이 오랜 시간 동안 전투적으로 존재해 옴으로써만 개발할 수 있는 핵심 그룹과 경험이 부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이 계급과 혁명을 위한 작업과 동시에 스스로 갖춰야 하는 도구 가운데, 공장 그룹의 네트워크는 제일 급하고 중요하지만, 비록 혁명가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과 좋지 않은 정치적 상황 탓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외 다른 것도 반드시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6) 다른 한 편, ‘청년 코뮤니스트’ 같은 다른 조직은 부르주아 사회와 혁명적 운동 내에서 이전 단계의 산물로 간주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제는 불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당의 중앙 조직과 계급을 진정으로 연결하는 도구 없는 계급 정당은 없다는 원칙을 확인한다. 이 주장을 과소평가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은 당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1. 계급과 그 당의 변증법적 관계는 권력 쟁취 기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적 ‘반(半)-국가’의 건설 시기 동안 사라지거나 질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둘 다 계급이 그 목적에 집중되고 통일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2. 프롤레타리아 ‘반(半)-국가’는 러시아 혁명의 경험 동안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발견한 평의회 형태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실천적 혁명적 운동으로 수행되는 점진적 계급의 소멸은 코뮤니스트 의식의 대량 생산, 그리고 결과적으로, 당의 점진적 소멸을 동반할 것이다.

     

    3. 당은 “노동자 국가”라는 구조와 그 자신의 구조를 동일시하지 않고, 정치적 안내라는 자신의 역할을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깨달을 때까지 수행할 것이다.

     

    4.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이 이행기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필요는, 노동자평의회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노동자 국가도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 없이는 혁명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없다는 명백하고 근본적인 주장의 긍정에서 시작한다.

     

     

    <주>

     

    3) 1928년 소련에서 스탈린주의는 명백하게 승리했었지만, 이것은 스탈린의 충복, 톨리아티(Togliatti) 아래 재결성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이 전후 시기 이탈리아의 사회적 평화를 건설하는데 돕는 과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4) 이것은 1951-2년,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당(코뮤니스트 투사)에서 분리된 보르디가와 보르디가주의자들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분리된 두 경향의 조직적 차이를 개괄할 것이지만, 그 분리에 대한 자세한 것은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의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서 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Invariance”는 보르디가주의자 진영에서의 첫 번째 분리(1966년 일어났지만, 그 후로 더 많이 발생했다)였고, 보르디가가 실제로 살아있을 때 발생한 유일한 분리였다. 자크 카마트(Jacques Cammatte)가 지도했으며, 보르디가주의자들을 ‘활동가주의’라며 비판했다. 결국, 카마트는 혁명을 이룰 희망 없이, 모든 정치적 조직은 ‘소음’이고 노동계급은 ‘자본을 위한 계급’이라고 결론 내렸다.

     

    6) 이것은 38년 전에 작성된 글이며 그 이후 지난 30년 동안 노동계급의 재건 또한 우리 이탈리아 동지들이 ‘지역’ 그룹이라고 부르는 지역을 조직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CWO는 이라크 전쟁 시기 “전쟁이 아니라 계급 전쟁”과 같은 주제에 대해 싸웠던 그룹과 함께 자체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는 이것을 ‘계급을 조직하는’(ICC가 1978년 이야기한 것처럼) 시도가 아니라 혁명가들을 조직하고 계급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혁명적 정치 조직 또는 당은 이 문서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단순히 선전하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일 수 없다.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 당(코뮤니스트 투사)

    197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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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8월 28일

    CWO 재발행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6-08-28/the-revolutionary-party-and-the-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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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혁명당과 노동계급

혁명당과 노동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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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가 요청한 제2회 국제회의의 문서, 코뮤니스트 투사의 국제주의자들이 “혁명 조직의 역할과 구조”에 관해 쓴 글을 출간한다. 우리는 이 문서를 영어로 출간한 적이 없었다.1) 그러나 우리는 올해 후반에 있을 회의에서 정점에 달할 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내부의 혁명당 역할과 구조에 관한 토론 일부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 문서는 당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는 일련의 문서 중 첫 번째이며, 그 배경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기 위해 서문을 작성한다.

 

(적어도 러시아 혁명의 실패 이후) 중요하고 가장 난처한 문제 중 하나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소수의 역할과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각 세대는 이러한 문제에 매번 새롭게 직면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문제에 적절히 맞서기 위해서는 과거 투쟁과 과거 프롤레타리아 세대의 진정한 성취를 고려해야만 한다. 1970년대 초반 자본주의 전후 호황의 마지막에 뒤따라 만들어진 다른 좌익공산주의 조직처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의 선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는 스탈린주의 소련이 보여준 바와 같은 러시아 혁명 실패의 유산에 대한 거대한 의심의 시기였으며, ‘모든 정당은 부르주아적’이라는 오토 륄레(Otto Rűhle)의 관점이 많은 공감을 얻던 시기였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사회민주당은 몰락했고, 제3 인터내셔널에 의한 세계 혁명의 포기와 함께 소련에서 정당주의가 출현했다. 이러한 사건은 대중 정당이든 ‘전위’ 정당이든 노동계급에 뭔가 줄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싹 쓸어 없애버린 것처럼 보였다. 소련이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사실 국가자본주의의 독특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전적으로 거부한 이들에게는 당의 문제 전체가 문제였다. 그랬던 만큼, 그 시기는 평의회주의와 ‘자발성’ 숭배가 막대한 영향력을 발취했다.

 

그러나 노동계급 혁명의 진정한 성격은 끈질기게 돌아와 혁명가들의 앞을 막아선다. 역사상 다른 적대 계급이나 피지배계급과는 달리 노동계급은 지킬 어떤 형태의 재산도 없다. 그야말로 재산이 없는 계급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는 달리, 과거 체제 아래에서 이런 법을 없애거나 저런 특권을 제거한다고 해서 점증하는 이득을 얻을 수가 없다. 노동계급의 유일한 ‘재산’은 노동하는 능력(그리고 착취 계급을 위해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능력)뿐이며, 유일한 무기는, 안톤 판네쿡이 언급하듯이, ‘의식과 노동계급 조직’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직면한 문제가 있다. 만약 아래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

 

“지배계급의 이념은 모든 지배적 이념의 시대에 존재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적 세력으로서의 계급은 동시에 지배적인 지적 세력이다. 물질적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동시에 지적 생산 수단도 통제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지적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생각의 이념은 (지적 생산 수단을 가진 이들의 그것에) 종속된다.”

 

어떻게 노동계급은 그러한 지배로 벗어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우선 해결할 수 없는 체제의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경제 위기와 체제의 존속이 ‘시민 사회 안에 있지만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증가하는 착취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이 계급은 때때로 광범위한 봉기의 형태를 띠는 집단행동으로 착취에 함께 뭉쳐 저항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 대처한다.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착취의 대안을 위한 학교이다. 그러나 투쟁의 과정에서 일부의 노동자들(일부 노동자는 아니지만, 체제를 간파할 수 있고 노동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데 일상적인 게릴라전을 넘어선 뭔가가 더 필요하다는 깨달음, 의식에 도달한다. 그들은 체제, 그 자체를 넘어서는 정치적 강령의 필요를 인식한다. 그러나 계급 내에서 소수인 탓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자신을 조직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이 생산한 의식에서 획득한 모든 것과 자신을 통합할 수 있는 조직, 당을 만드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무엇이 있는가?

 

프롤레타리아 당의 성격, 역할, 그리고 구조의 문제가 이제 제기된다. 그리고 그것은 짧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맑스는 처음에 국제노동자연합 또는 제1 인터내셔널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 규칙에서 그는 핵심 요소를 제기했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책무이다.” 이를 통해 맑스가 의도했던 바는 (평의회주의자들이 이것을 잘못 해석하듯이) 노동자들은 당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노동계급은 모든 부르주아 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신의 정치적 조직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1 인터내셔널은 바쿠닌(Bakunin)과 프루동(Proudhon)의 추종자들과의 논쟁으로 찢어졌고 진정한 세력으로서 10여 년 만에 사망했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민족(국가) 정당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한 걸음 후퇴한 사회민주당이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지가 미디어를 통제하고, 대중에게 접근할 방법이 대부분 효과적이지 못할 때의 노동계급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사회민주당은 수백만의 운동으로 성장하였고, 자본주의가 선거 때문에, 또는 적어도 평화적인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과거 지배의 잔존물을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았던(5 테제를 보라) 혁명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그리고 특정할 수 없는 미래로 연기되었다(이른바 최대 강령이 되었다).

 

사실은 계급 내에서 코뮤니스트 의식의 저장소로서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사회민주당 내의 진정한 혁명가들의 존재는 민족주의적, 제국주의적 개념들로 뒤섞여 버려 실제로는 노동계급을 자본주의로 통합시키고 있는 ‘운동’을 위장하는데 이바지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른바 제2 인터내셔널의 광범위한 다수 사회민주당이 그들 ‘자신의’ 정부의 음모를 지지하고 노동계급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내모는데 찬성 투표를 던진 1914년에 이르러서야 명백하게 밝혀졌다. 전쟁 이후 혁명적 물결이 있었던 시기에는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진정으로 국제적인 첫 번째 시도를 억압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계속함으로써 사회민주당은 자본주의에 두 번째 봉사했다. (특히)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대중을 새로 만들어진 코뮤니스트당을 따르는 대중에게 반대하기 위해 동원했고, 러시아 밖에서의 혁명의 패배를 확정 지었다. 이것은 다시 고립된 러시아에서 반혁명의 최종 승리로 이어졌다. 이 반혁명은 최초에 혁명을 이끌었던 바로 그 당에 의해서였다.

 

볼셰비키는 사회민주당 가운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반대한 몇 되지 않는 당 중 하나이며, 결과적으로 러시아 혁명적 계급 운동 내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전쟁은 죽음, 빈곤, 그리고 기아에 가까운 상황을 가져왔고,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서 혁명이 의제로 떠올랐다. 볼셰비키당은 이후 스탈린주의자들(그리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신화가 묘사하듯이 규율이 잘 세워진 집단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당은 혁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활발한 논쟁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하여 중요한 지점은, 1914년 당시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았지만, 더욱 광범위한 노동계급 안에 있었으며, 차리즘과 전쟁에 반대하는 명확한 입장을 대표한다고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볼셰비키당이 자본주의 규칙을 대체할 역량이 있는 진정한 노동계급의 실체로서 소비에트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냄으로써 표현되었다. 이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볼셰비키당은 결합점이 되었다.

 

그리 논쟁이 많이 되지 않았던 점은 다가올 혁명에서 당의 역할과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 주요한 목표는 당이 성장하여 권력을 잡도록 충분한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가정되었다. 간략히 하자면, 당이 계급을 대표하고, 따라서 혁명을 당의 이름으로 수행한다는 사회민주당의 입장을 대체로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양한 색조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가 전-러시아 최고위원회 소비에트로 권력을 넘겨주는 대신 전복되었을 때, 새로운 정부, 인민 위원 평의회가 그 위에 서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혁명가 좌익이 여기서 손을 뗀 다음에는 그것이 유일한 당 정부가 되었다. 따라서 당은 국가가 되었고, 당과 국가 사이의 분리가 사라졌다. 그 시기 이것이 혁명뿐만 아니라 혁명당에 대한 개념에 대해 위험할 것이라고 인식한 이는 거의 없었으며, 특히 혁명이 고립되자 명백해졌다.

 

러시아 혁명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루었고 계속 다루겠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 조직에 대해 짧은 언급을 간단하게 하고자 한다. 러시아 혁명은 당, 혁명적 소수 또는 그 외 당신이 그것을 지칭하든 어떤 이름이든 그것은 혁명을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은 혁명 전부터 계급 안에 존재했고, 혁명의 처음부터 참여했다. 그 영향력은 구성원에 그치지 않고 발휘되었다. 당은 전진할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했고, 혁명 과정을 중단시키려 하는 모든 이들을 비판했다. 심지어 봉기를 지도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봉기를 지도했을 수도 있지만, 봉기는 혁명이 아니며, 일단 계급 대중이 혁명적 경험을 스스로 쌓게 되면 봉기는 궁극적으로 그들만이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이들은 계급 수준의 기관들(평의회, 또는 소비에트, 지역 위원회 등)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주의가 법령의 공포로 이루어질 수 없고, 오직 자신들의 혁명적 소수, 당이 제안한 강령을 받아들인 계급 대중의 의식적인 자기활동에 의해서만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잡한 문제이며 우리가 앞으로 몇 달간 다룰 많은 문제를 제기하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혁명 이전의 대중 정당은 과거에 속한다는 것이다. 1914년 사회민주당의 붕괴는 이를 보여주었고, 1921~2년 혁명적 파도가 사그라지자 코민테른이 사회민주당과 통일 전선을 형성하려는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를 했을 때도 그러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1930년대부터 계속 사회민주당에 ‘위장가입’을 하고 그들을 혁명적 경향으로부터 제거하는 오류를 반복했다. 인테사(Intesa)위원회의 강령은 통일전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모든 상황에서 임기응변과 전술적 조작이 당의 기반을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 당과 대중의 관계는 대부분 객관적 상황에 의존하기 때문이다.”2)

 

혁명가들의 첫 번째 책무는 상황이 어떻든 혁명적 관점을 방어하는 것이고, 거짓된 (그리고 기만적인) 바탕 위에 조직을 건설하려는 이런저런 기회주의적, 단기적 방침을 쫓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짧은 글이 진정으로 국제적인 국제주의자 계급당의 설립에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위한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CWO(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주>

 

1) 원 번역은 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이 1978년 11월, 코뮤니스트좌파 그룹(Groups of the Communist Left)의 제2회 국제회의 팸플릿 1권: 준비 문서로 출간했다. 이 번역은 레프트콤 웹사이트(leftcom.org)의 이탈리아어 부분의 글을 번역한 판이다.

 

2) 우리의 팸플릿 “Platform of the Committee of Intesa 1925 – 파시즘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좌파 싸움의 시작.”을 보라. 자세한 것은 뒤표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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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6-08-28/the-revolutionary-party-and-the-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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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19년 _ 9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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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2019년 _ 9호가 나왔습니다.

     

                   □ 가격 :  12,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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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메이데이, 코뮤니스트 노동자 선언

촛불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

 

자본에 맞서거짓 평화에 맞서 계급전쟁을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노동존중을 내걸었던 자본가 정부가 가면을 벗어던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공약(公約)은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거짓임이 드러났다.

 

같은 자본가 정권으로 적폐청산의 대상이자 노동탄압의 상징이었던 이전 정권과 경쟁하듯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박근혜와 함께 처벌받고 청산되어야 마땅한 재벌과 자본가 단체들은 언제 우리가 자본가 세상에서 고개 숙이고 숨죽이며 살았냐면서 반격에 나서고 있다그들은 어느새 한 몸이 되어 더는 물러설 곳도 추락할 곳도 없는 노동자들을 향해 비열한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친자본 정책 전환은 본질적으로 보수 세력과 자본가계급의 압력이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 정부의 본색을 드러낸 것 뿐이다노동존중은 애초 관심조차 없었기에 정책을 전환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러한 거짓선전을 할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의 기반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이었고여기에는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포섭된 다수의 노동자가 존재한다이러한 세력은 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인 위기 상황에서 개량의 물적 토대가 제한적이고첨예한 계급대립 상황에서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지배계급 편에서 노동자계급을 포섭하는 데 주력한다.

 

지금은 조직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이 약해져 있고계급 내부 분열이 공고화되었기 때문에노동자들을 최대한 밀어붙여 양보를 얻어낼 것이다이것은 희생과 양보의 크기를 두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면서 포섭해나가는 자본의 전형적인 위기 전가 방법이다여기서 위기 유포(희생 강요)와 사회적 타협(경사노위)은 상호보완성을 가진 자본가계급의 유용한 무기다이에 맞선 노동자의 무기는 투쟁을 강화하는 것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사회적 타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노동자에게 절대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쟁 회피의 다른 말인‘ 교섭과 투쟁 병행’ 노선은 단결과 투쟁의 힘을 무너뜨려 결국 타협에 매달리게 할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탄생에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심화시킨 치명적인 위기를 떠안고 출발했다하지만현 정부가 어떠한 특별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그것이 노동존중의 가면을 쓰던적폐청산의 가면을 쓰던한반도 평화의 가면을 쓰던그 해결책을 기존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아야 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미가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체제 보장/한반도 평화/제국주의 세력 개편은 평화의 문제, ‘민족의 문제, ‘체제의 문제로 포장되어 있지만실제로는 경쟁하고 대립하는 지배계급 내부의 사활을 건 싸움이다따라서 시간도내용도절차도 모두 그들의 방식대로 진행되며오직 노동자계급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에서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여기서 노동자계급이 국제적이고 독자적인 관점을 갖지 않는다면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지배계급 간의 전쟁에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과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지배계급이 주도하는 평화는 계급전쟁을 종식하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번영은 이윤 획득과 계급 불평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일 뿐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갈수록 깊어지는 위기를 다음 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구걸하게 될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다위기를 극복하는 것도노동자계급의 힘을 되찾는 것도자본가 정부와 촛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촛불 이전에 더 잘 싸웠다독재정권에서도노동자 투쟁이 불법일 때도 훨씬 잘 싸웠다노동자의 방식으로노동자의 자리에서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해서 투쟁했기 때문이다조합주의와 관료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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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다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을 지속해서 공격할 뿐 아니라 생태파괴를 통해 지구 생명체의 미래까지 점점 더 위협해가고 있다또한그것은 우리를 전쟁과 야만으로 이끌고 있다오늘날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전쟁은 노동자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지만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이러한 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가짜 사회주의·사민주의 진보좌파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부상을 촉진하면서 노동자들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자본주의는 이제 인류에게 평화롭고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오히려 부르주아지는 수천만의 프롤레타리아가 서로 학살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인류의 생존 고통이 커지는 동안 그들은 치명적인 무기 생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다자본주의 존재는 노동자계급과 인류의 생존그리고 이 지구 자체의 존립과도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그것은 몇몇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며지도자의 선택 문제를 넘어선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 이다.

 

노동자의 주적은 부르주아 국가에 있다그 적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이다하지만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고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는 모든 국가민족정치 세력 또한 우리의 적이다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모든 민족주의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여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는 것이다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계급전쟁뿐이다.

 

모든 착취와 억압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를 위해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조직할 때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강화하고 전면화할 코뮤니스트당으로 집결해야 한다.

 

자본에 맞서

자본가 정권에 맞서

제국주의 전쟁과 거짓 평화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전쟁계급전쟁을!

코뮤니스트당 건설을!

 

 

2019년 메이데이

투쟁하는 코뮤니스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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