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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2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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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뿌리는 '부르주아지 독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적)을 갖는다. 반면에 다수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의 노예, 즉 임금 노예이다. 따라서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양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중립적이고 계급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기관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국가는 계급 통치의 기구이며, 그 기능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 즉 노동계급을 임금 노동의 사슬로 묶어 부르주아지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누가 부르주아지를 대신하여 국가를 운영할지 결정한다. 선거 제도는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부르주아지는 독재를 위한 이상적인 정치적 외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계속 의지해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권을 통해 '다수' 또는 '국민'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착각을 만든다. , 자본주의 국가가 실제로 중립적인 기관이라는 착각, 유권자가 단순히 주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진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만든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누구든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지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줄 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누구에게 투표하든 자본주의적 요구가 승리한다. 보기를 들어 경제 위기 때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긴축과 해고 등을 요구했고,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모든 정부는 자본주의 요구에 따랐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 의회)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무엇이었나?

 

이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어떤 영원한 반()정치적 '순수주의'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인 의회의 역사적 발전에 근거한다.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각 단계에서 노동자 운동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회는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전임자인 봉건 귀족에 대항하는 핵심 무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자들은 정치 과정에서 명백히 배제되어 투표하거나 후보를 낼 수 없었다. 따라서 초창기 노동계급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 중 일부는 정치적 대표성(영국의 차티즘 등)을 포함했다. 지배계급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인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와 같은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새롭게 제공되는 공간을 활용하도록 장려했다. 맑스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처럼 거대한 관료 체제와 군사 기구가 없는 일부 국가에서는 의회를 통한 평화적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이 보여주듯) 다른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은 혁명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노동계급은 단순히 기성 국가기구를 접수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맑스, 프랑스 내전, 1871)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한 후 새로운 기관을 건설해야 한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주의 국가들이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면서 실제 정치권력은 점점 더 의회에서 벗어나 관료주의 복합체와 상비군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국가 복합체 내에서 부르주아 의회는 자본주의 통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토론장과 위원회로 위축되었다.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의회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2 인터내셔널의 혁명 세력에게 의회와 선거 참여는 전술적이고 선동적인 것이었다. 선거 출마는 혁명가들이 선거 유세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거나, 의회 연단에서 연설과 시위를 하거나, 의회 면책을 이용해 혁명가들을 기소로부터 보호하는 등 선전을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17년 혁명 물결이 발발한 후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이를 정확히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즉시 제기되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평의회’, 일명 소비에트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대안을 찾았다. 부하린이 작성하고 제3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에서 채택한 테제는 국가 체제로서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지 통치의 민주적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 국가기구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파괴하고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지역 소비에트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인식했다. 동시에 그들은 혁명적 상황에서도 의회 연단을 여전히 유용한 선전 도구로 여겼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혁명적 의원들이 '적진에 들어가 지뢰를 매설'하고 '의회 담장 뒤에서 대중이 의회를 폭파하도록 돕는' 군사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코뮤니즘은 미래 사회의 국가기구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기구로서 의회를 부정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위해 의회를 사용할 가능성을 부정한다. 의회 파괴를 자신의 임무로 규정한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오직 분쇄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것이 [그 기구들의] 이용과 관련하여 제기될 오직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길이다. (...)

 

코뮤니스트당은 이 의회 체제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의회 분쇄를 의회 안에서 돕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3차 인터내셔널 첫 4개 대회 테제, 결의와 선언, 1920)

 

반면,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로 대표되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의회가 전술적 문제라는 부하린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혁명이 임박하고 노동계급 당면 임무가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 기구를 파괴하고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일 때, 혁명가들이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더 중요한 일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빼앗아 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 기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맑스주의 원칙으로 민주주의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구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킨다. (...)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킨다. 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진다. (...)

 

1 인터내셔널은 선동, 비판, 선전하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했다. 그 뒤 제2 인터내셔널에서 의회주의의 해악적 영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개량주의와 계급협조를 가져왔다. (...)

 

언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활용할 수는 없다. 언론, 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이다.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이다. 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 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

 

착취계급에서 피착취 계급으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불러온다. 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혁명적인 직접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 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한다. (...)

 

코뮤니스트혁명의 대의는 바로 착취계급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을 요구한다." (아마데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920)

 

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로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 의회에 들어가면 연설을 통해 선동할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들을 믿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은 이제 의회 선거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한다. (...)

 

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다. 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 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배신자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이다. (...)

 

모든 나라 인민이 그런 것처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다. 두 가지 전술이 있다. 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이다. 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 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갈라처(영국)의 지지 발언, 위의 글)

 

코뮤니스트좌파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등도 원칙적으로 부르주아 의회 참여를 완전히 거부했다. 이들 모든 분파는 노동자들이 자기 정치를 포기하고 자신의 적()인 부르주아 정당의 약속, 즉 자본가 식탁에서 더 많은 빵 부스러기를 뜯어내겠다는 약속에 넘어가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 노동계급은 투쟁을 통해 그 부스러기를 직접 가져갈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좌파가 선거 참여가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마지막으로 선거에 참여한 것은 1948년이었다. 이탈리아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투표하지 말자라는 구호 아래,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참여했을 뿐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냉전의 경계가 형성되고 노동자들은 각각 (스탈린주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과 기독교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두 제국주의 블록, 소련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선거 자체는 제국주의 갈등의 한 장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 선거는 도전이었다. 73개 도시와 읍내에 있는 지부와 수천 명의 당원으로 당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은 다양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주요 정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부는 1919년 보르디가의 기권주의분파의 입장으로 돌아가 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없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선거 문제는 전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1948년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결정적 요인은 후보자를 내세운 정당이 모든 도심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나 공청회에서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공적인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에 체제 전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아래 전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의 목표는 여전히 반()의회적이었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 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투표하지 말자”, 19484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집행위원회)

 

실제로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가장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술적 문제로 남아 있으므로 선거 참여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의회 선거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장점을 결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선거에 대한 자본주의 미디어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 이후의 모든 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미디어와 자본(선거비용)이 선거 자체를 더 지배하게 되어, 노동자들을 자본의 경쟁 영역으로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이러한 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거대한 물량 공세 앞에 작은 선전의 효과도 초라해진다),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만 강화할 뿐이다.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계급투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선거에서 자본가계급은 우리에게 온갖 장밋빛 공약과 미래를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임금 노예와 전쟁만을 제안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자본가 편에 서서 싸우도록 속이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대안은 노동자민주주의이다. 노동계급은 위대한 투쟁 역사에서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특히,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수백만, 수천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과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열었고. 1905년에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었다. 심지어 기차 승객들도 달리는 열차에서 모든 승객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자주적으로 투쟁을 조절-통합하고 자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노동자의 대표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위임받은 내용에 반드시 따라야 하며, 유권자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대표와 함께 대체 대표를 선출했고, 탄압 시기에는 대표가 체포되었을 때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노동자 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계급의식이 발전하여 세계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계급투쟁이 혁명적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지배계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노동계급은 자기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여 생산과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기 권력을 갖게 되며, 사회는 계급 철폐와 인간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주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노동자 민주주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초로 성공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한 나라(러시아)에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경험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의 노동계급은 혁명에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으로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계급이 아닌 민주 시민이나 애국하는 국민으로서 투표하도록 길들어졌다.

 

여전히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며, 그것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의회와 자본주의 권력의 모든 기구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선출한 사람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구를 만들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이형로

 

 

이 글은 <코뮤니스트 정세토론회> "선거 이후 위기와 노동계급의 대안" 발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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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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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이어 또 하나의 선거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지방 권력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측면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본질에서 같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치에서는 중앙정치보다 계급적이기도 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노동자들에게 전혀 특별한 것이 없지만, 부르주아 거대 양당이 여야가 바뀌어 서로에 대한 심판(내란 세력 청산, 정권 견제)을 주장하고 있고,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대변할 세력을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장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투표는 속임수일 뿐이다. 우리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업자이든 퇴직자이든 현재의 선거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난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수많은 약속을 해왔다. 노동자들이 조금 더 참고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생활과 노동조건은 좋아질 것이라 약속했었다. 말 그대로 4년 후, 8년 후 변화된 상황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빠지는 쪽으로의 변화였지, 개선이 아니었다. 끝 모를 경제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은 노동자민중에 고통만을 안겨 주었고, 이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부자도 정치인도 아닌) 우리가 치러야 했다. 복지와 연금은 줄어들고, 주거와 생활비용은 비싸져만 가고, 상시적인 해고 위협과 불안정한 일자리, 장기적인 실업,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다수의 노동자가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 허락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약속한 변화의 전부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그리고 1991년 부활하여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치러진 지방선거 이래 30여 년이라는 기간,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거나 누구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 투쟁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노동 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노동자를 팔아 정치판에 뛰어들어 엄청난 재정적, 인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투쟁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환상과 좌절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를 ‘서커스’나 ‘환상’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며, 투표행위로 자신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 즉,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서만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강화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무대에서는 원래 무대의 주인인 ‘대중’이 아니라 무대의 설치 관리자인 ‘국가권력’이 이를 주도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 그들이 정한 순서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대중들도 무대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차려놓은 서커스 공연에 곡예사로 참여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킨다거나 후보를 내세워 투쟁의 구심을 세우겠다는 발상 역시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도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노동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시킨다. 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계급은 작업장, 회사의 동료들과도 투쟁 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 자본가를 포함한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이나 정치인을 자신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 즉,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으니 따르라’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그런데 왜 의회 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 또는 자칭 혁명 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거나 선거 전술을 사용하는 것일까? 정말 선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합법적인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연단이 선거시기에는 열리기 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환상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선거 참여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레닌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선거에 대한 입장과 1930년대 트로츠키의 투항 전술이 ‘혁명적 의회주의’, ‘선거 전술’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1) 이른바 ‘선거 전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현재까지도 전혀 시정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논쟁의 본질은 의회 전술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상황과 그에 따른 적용 문제, 즉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 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 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 코뮤니스트 좌파들의 반(反)의회 혁명 전략의 대립이었다. 당시 서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계급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反)의회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과거의 논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선거 전술과 의회의 혁명적 이용이 가능해지려면, 현재의 부르주아 선거제도에서 의회 제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연단을 열 수 있어야 하며, 의회제도의 활용이 계급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의 경험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혁명적인 의원단’은 의회를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없으며, 설사 그러한 전략이 있는 정당이었더라도 부르주아 정치에 적응하면서 타락하여 결국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물론 이들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혁명적 경험이 아닌 타락의 경험만을 갖게 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와 민주주의는 ‘혁명적 의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애국가를 강요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철의 원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의회제도의 활용은 바로 이런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놀아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투표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그리고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투쟁을 위한 대중총회, 파업위원회(2)를 구성하여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노동계급의 미래는 노동계급 스스로 일어서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에 누가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과 선거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동원되거나 힘을 낭비하지 말고, 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의 쟁점을 걸고 파업을 위한, 연대를 위한, 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 고립되거나 장기간 투쟁으로 지쳐있는 우리의 노동자 투쟁에 하나의 계급으로 연대하자.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선거에 끼어들어 이용당하지 말고, 계급의 요구를 내걸고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를 건설해 투쟁하자! 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면서 파업을 위한, 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대중총회, 파업위원회 건설!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2026년 5월 (재발행), 2022년 5월 발행

 

 
 
<주>
1. 「코뮤니스트」22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참고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7146
 
2.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2025년 조기대선: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참고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45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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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파업 철회의 주요 의미

삼성전자 노조 파업 철회의 주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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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가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예정되었던 18일간의 파업을 철회했다. 대신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대상 투쟁 지침을 통해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파업은 5월 2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약 4만 8천 명의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 파업은 인공지능(AI) 및 메모리 칩 생산을 포함한 삼성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었다.

 

이번 합의는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의 현재 진행 상황이다. 지난 4월 23일, 4만여 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성과급 인상, 성과급 투명화, 그리고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했다. 우리는 이전 기사에서 이 분쟁의 모순을 명확히 설명했다. 삼성은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생활비 상승, 인플레이션 압박,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여파에 직면해 있다. 전쟁과 위기는 직장 밖에서만 머물지 않고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파업 철회는 또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 정부,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파업이 확산하고 위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통속이 되었다.

 

삼성의 전략: 분열, 지연, 제한

 

삼성은 노조의 요구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이번 갈등을 통제 가능한 임금 협상 범위로 제한하려 했다. 특별 수당과 일회성 성과급을 제안했지만, 성과급 제도화에는 반대했다. 삼성은 노동자들이 갈등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갈등이 협상 테이블과 법적 절차, 그리고 제한된 안건에 대한 투표의 범위 안에 머물기를 바랐다.

 

삼성은 또한,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들을 분리하려 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에게는 메모리 사업부가 흑자를 내고 있어 상황이 특별하다고 설명했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의 노동자들에게는 같은 요구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회사의 수익성 높은 부서의 노동자와 수익성이 낮은 부서의 노동자 사이에 분열을 조장한다.

 

이러한 분열은 자본에 유리하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신이 속한 부서의 이익 분배만을 위해서 싸운다면, 그들은 계급의 구성원이 아닌 특정 부문의 일원으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수익성이 좋은 메모리 사업부의 노동자들은 더 큰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하청·비정규직, 물류, 청소, 경비, 다른 전자 공장 또는 기타 부문처럼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에 속한 노동자들은 투쟁에서 소외될 수 있다.

 

정부의 역할

 

이번 갈등에 이재명 정부도 개입했다. 정부의 중재는 중립적인 개입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국가 전략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였다. 삼성은 평범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의 수출, 반도체 생산,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국가적 위상을 지탱하는 핵심 기업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파업이 초래할 경제적 위험을 경고했다. 수출, 공급망, 그리고 국가 경제에 미칠 막대한 피해를 언급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국가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둔갑시켰다.

 

파업 금지 조치에 대한 위협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긴급 조정권 발동을 검토했다. 긴급 조정권은 공익이나 국가 경제를 명분으로 파업을 중단시키거나 유예할 수 있는 조치이다. 법원 또한 반도체 생산 현장 내에서의 파업 행동을 제한했는데, 특히 안전 보호 시설 및 제품 변질 방지와 관련된 작업에서 쟁의행위가 금지되었다.

 

이는 중요한 지점이다. 파업 금지법은 계급투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내부의 중요한 무기다. 이는 노동자들의 행동이 생산, 이윤, 국가의 이익을 위협할 때 사용된다.

 

파업 금지법의 위협은 투쟁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한 기업 내부에만 머무르는 파업은 고립될 수 있다. 하나의 법적 범주 안에 머무르는 파업은 제한될 수 있다. 공식 노조 경로에만 의존하는 파업은 저지되거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투쟁을 확대한다는 것은 다른 부문, 즉 하청·비정규직, 물류, 다른 전자 공장, 운송, 에너지, 교육, 돌봄 및 기타 부문의 노동자들에게까지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투쟁이 확산할수록 한 기업의 법적 문제로 축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언론과 ‘국가 이익’이라는 담론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번 파업 가능성을 삼성, 반도체 산업, 수출, 그리고 국가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다루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언론은 종종 자본과 국가의 언어를 사용한다. 언론은 파업이 기업, 투자자, 수출, 공급망에 어떤 손실을 끼칠지 묻는다. 하지만 물가 상승, 노동 시간 연장, 스트레스, 불안정이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인 보도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는 삼성 노동자들이 생산을 방해하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국가 경제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명분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연대를 막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국가 수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가, 주거, 식량, 교통, 돌봄, 그리고 안전한 삶을 위한 임금으로 살아간다. 언론이 국가를 위해 삼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이익 분배 요구의 한계

 

노조의 이익 분배 요구는 노동자들의 진정한 분노를 반영한다. 노동자들은 삼성의 막대한 이윤을 보면서 "왜 주주와 경영진만 혜택을 보는가?"라고 묻게 되었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익 분배 요구에는 심각한 약점도 있다. 이는 노동자들을 자기 회사나 업종의 성공에만 얽매이게 한다. 삼성이 큰 이익을 내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자기 몫을 요구한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은 나눌 것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간병 노동자, 교육 노동자, 운송 노동자, 또는 소규모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요구를 하면 자본가는 "우리 업종은 수익성이 나쁘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는 투쟁의 확장성을 약화하고. 업종·부문을 초월한 노동자의 단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또한, 노동자들이 ‘자기’ 회사의 성공을 위해 다른 회사들과 경쟁에 나서게 만든다. 삼성 노동자들과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서로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어느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하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자신의 생활 조건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이다.

 

따라서 더 광범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전체 노동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요구가 필요하다. 보기를 들어,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 더 안전한 작업 환경,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등한 권리, 해고 금지, 무급 초과근무 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쟁 자체에 대한 노동자 총회의 통제권이다.

 

이러한 요구는 수익성이 높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모두에서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재무 상태에 좌우되지 않으며, 전체 노동자의 필요에서 출발한다.

 

파업 철회의 의미

 

파업 철회가 갈등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갈등이 생산 현장과 파업 위협의 단계에서 잠정 합의안에 대한 투표 단계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 지도부는 이를 책임감 있는 성과로 포장할 수 있다. 삼성은 이를 사회적 평화로 포장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국가 경제 보호로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통제권을 더 확보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분노가 안전한 (노조) 협상 채널로 되돌려진 것인가?

 

4월 평택 집회는 대규모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노조 협상가들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조직적으로 정돈된 노조 행진의 위험성도 보여주었다. 진정한 투쟁의 발전은 노동자 자신들의 총회, 선출 및 소환할 수 있는 대표자(대의원), 부서 사이 직접적인 토론, 그리고 삼성 외부 노동자들과의 연대일 것이다.

 

삼성, 정부, 언론이 파업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확장되지 않는 힘은 언제든 억누를 수 있다.

 

결론

 

삼성 노동자 투쟁은 단순히 성과급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전쟁 준비, 인플레이션, 세계 시장경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삼성은 AI 칩 호황에 발맞춰 규율 있는 노동자를 원한다. 정부는 수출과 국력을 위해 안정적인 생산을 원한다. 언론은 파업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기를 원한다. 노조는 책임 있는 교섭 주체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익성이 높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사이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계급적 연대에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고 투쟁을 제한하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정규직·비정규직, 작업장·부문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

 

한국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동지들이 제안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담고 있다.(1)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반도체 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만이 자본의 분열 정책과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생존권 위기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삼성 노동자와 다른 전자산업 노동자 사이, 그리고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파업 금지법의 위협은 이 문제를 더 시급하게 만든다. 정부가 국가 경제를 명분으로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사업장이나 법적 틀을 넘어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해답은 기업 성과급을 위한 좁은 투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공유하는 요구를 위한 더 광범위한 투쟁이다.

 

파업은 철회되었다. 투표 결과가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더 깊은 교훈이 있다. 방어적 투쟁은 하나의 사업장, 하나의 노동조합, 하나의 이익 분배 방식에 갇히면 그 효력을 잃게 된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확장하고, 스스로 조직하고,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투쟁으로 만들 때 비로소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2026년 5월 20일

프레도코르보(fredocorvo)

 

<주>

1.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삼성 노동자 투쟁 :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위해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48514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5/20/samsung-workers-strike-called-off-key-im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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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삼성 노동자 투쟁 :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위해

삼성 노동자 투쟁 :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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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을 앞두고 자본, 정부,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한편이 되어 노동자들에게 비난과 협박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공격에는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의 재앙 속에서 코스피 8,000시대를 연 이재명 정부와 주주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은 정해진 틀 안에서 제한적이고 합법적인 투쟁을 하는 노동자를 향해 ‘과도한 요구’, ‘막대한 피해’를 주장하며 전 사회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자본가 경제 6단체는 “결정적 시기에 감행되는 대규모 파업은 글로벌 공급망 내 신뢰 훼손, 고객사 이탈, 국가 신용도 하락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비난했고, 주주단체는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와 파업 예고가 기업 가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소송 계획을 밝혔다. 이에 이재명 정권도 윤석열 정권 못지않게 삼성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긴급 조정권 발동’을 위협하며 자본의 편을 들고 있는데. 이는 최근 실적이 좋은 다른 업종으로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언급한 뒤 사용자 측은 태도를 바꾸어 후퇴한 안을 내놓았다. (1)

 

하지만, 그동안 삼성의 위기와 막대한 (사회적) 피해 원인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경영진에 있었다. 삼성은 수십 년간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짓밟고 최소한의 저항마저 탄압해 왔으며, 족벌 체제와 막대한 부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 왔다. 그동안 생명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유해 물질에 중독되어 백혈병과 각종 희귀암에 걸렸고, 지금도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성과급 요구가 과도하다고 비난하는 삼성은, 2023년 반도체 부문 적자를 이유로 성과급을 0%로 책정하면서도 경영진 1,000여 명에게는 총 1,75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처럼 삼성은 세계의 자본가계급과 마찬가지로 실적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기후 위기·전쟁 등으로 다수가 고통받을 때도 막대한 부를 축적해 왔고,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희생의 대가였다.

 

“삼성이 지금까지 성공해 온 이유와 토대 자체가 불의와 불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 온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급 등으로 많이 부풀려져 있지만, 사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업계는 임금수준과 복지, 과도한 노동 등의 노동조건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고, 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산업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 잡는 과정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강도의 착취와 노동자 통제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소리소문없이 대규모 해고를 일상적으로 자행하기 때문에 삼성에 40대 중반 이후의 노동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2)

 

현재의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은 ‘고액’의 성과급이라는 이유로 온갖 공격을 받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은 삼성 전체 노동자와 수십만 명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착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정부의 세제 지원 및 공공자원 사용 혜택과 세계적인 반도체 업계 AI(인공지능) 인프라 붐으로 인한 메모리 칩의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 덕분에 가능했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본질적으로 세계적인 거대기업 삼성의 막대한 이윤과 그 분배를 둘러싼 계급 분쟁이자, 수십 년간 정당한 권리와 요구를 무시당했던 노동자들의 반발 성격이 크다. 그리고 노사 모두 호황 이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투쟁이다.

 

“삼성은 현재의 호황에서 이익만 얻는 것이 아니다. AI 붐이 식거나 주문이 변동할 위험, 과잉 투자가 과잉 생산으로 이어질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자본 내부에는 두 가지 우려가 생겨났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AI 호황이 지속하고 군사 또는 전략 기술 관련 수요가 증가하여, 삼성이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엄격한 업무 규율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호황이 꺾이고 이익이 감소하여, 경영진이 위기라는 명목으로 해고, 성과급 삭감, 또는 더 엄격한 노동 통제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그 대가는 결국 노동자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3)

 

여기서 계급적 관점이 명확해진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번 파업은 (독점적인) 이윤추구와 (세계적인) 경쟁력 강화에 저해되는 요소라서, 이후 생산 구조 변화와 노동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노동계급 관점에서는 임금 인상 투쟁을 통해 노동 및 생활 조건 개선을 쟁취하는 것과 (미래의 투쟁에서) 세계적인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이윤과 생산 통제권에 대한 도전, 나아가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른 생산과 분배를 의제로 삼을 기회가 된다.

 

삼성 노동자 투쟁의 의미와 과제

 

첫째, 삼성 노동자 투쟁은 (자본가·부유층의 막대한 부의 축적과는 이중잣대로) 성과급 액수가 과도하다고 비난받고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받는 임금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성과급 분쟁에서 배제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 그리고 자본의 분열 정책을 깨트리는 문제이다.

 

둘째, 현재의 노동조합 투쟁이 과거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 투쟁의 길을 밟고 있지만, 무노조 경영이 어려워진 삼성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본격적인 대립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 투쟁은, 성과급 액수만이 과도하게 부각해 있지만, 사실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어떻게 작용할지가 더 중요하다. 이는 자본주의 위기에서 벌어질 수많은 개별 투쟁이 기업과 부문을 넘어 생존권 쟁취를 위한 계급적 투쟁으로 확산할지, 노동계급 분열을 더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미리 보여 줄 것이다.

 

셋째, 현재의 노동조합으로는 투쟁의 확산도 계급적 단결도 이룰 수 없다.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명시적으로 배제했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조건을 강화하려 할 뿐 자신들의 투쟁을 전체 반도체 산업 노동자와 연결된 투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는 노동자들이 거대 자본에 맞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준다는 노동조합의 틀에 갇혀 그들의 통제(투쟁 관리) 아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투쟁은 관료화된 지침에 의한 형식적인 파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연대를 통한 전면적인 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급적 연대에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고 투쟁을 제한하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정규직·비정규직, 작업장·부문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반도체 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만이 자본의 분열 정책과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생존권 위기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 계급적 연대 강화!

반도체 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 건설! 생존권 투쟁 전면화!

 

2026년 5월 20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주>

1.「매일노동뉴스」, 삼성전자 사후조정 시작, “긴급조정” 올라탄 사측 역주행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339

2. 「코뮤니스트」 7호, 삼성공화국-최고 권력과 싸우는 투사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5813

3. 프레도코르보(fredocorvo), 한국: 삼성, 이윤, 규율, 그리고 노동조합 시위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4/26/south-korea-samsung-profit-discipline-and-the-union-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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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성, 이윤, 규율, 그리고 노동조합 시위

한국: 삼성, 이윤, 규율, 그리고 노동조합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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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삼성에서 발생한 노동 쟁의는 인도와 아이티에서 일어난 대규모 투쟁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이 쟁의는 빈곤에 허덕이는 국가에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아니고, 광범위한 민중 봉기의 형태를 띠지도 않았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 중 하나인 삼성에서 벌어지는 노동 쟁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 원인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그 뿌리는 같다. 노동자들의 삶에 가해지는 압박의 증가, 기업의 막대한 이윤, 그리고 에너지 위기, 군사화, 제국주의 경쟁이 빚어낸 세계적 위기가 바로 원인이다.

 

4월 23일, 삼성전자 노동자 수천 명이 평택에 있는 회사 반도체 공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AP 통신에 따르면 노조 관계자는 약 4만 명의 조합원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성과급 인상, 성과급 투명화,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했으며, 협상 결렬 시 5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시위는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을 사상 최고치인 57조 2천억 원으로 전망하고, 반도체 업계 전반이 AI(인공지능) 인프라 붐으로 수혜를 입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한편, 언론은 중동 전쟁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 브롬 등의 원자재 공급 차질을 초래하면서 업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

 

이러한 모순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내는 것을 보면서도 경영진한테는 한계, 신중함, 불확실성에 대해 듣는다. 노동자 관점에서 이 갈등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으로 생활비가 상승하는 가운데, 삼성은 호황을 누리지만, 노동자의 임금과 성과급은 왜 계속 압박을 받아야 하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삼성의 사례는 인도와 아이티의 파업과 같은 세계적 흐름의 일부이다. 전쟁과 위기는 직장 밖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계급적 압력의 형태로 되돌아온다.(2)

 

하지만 갈등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삼성은 현재의 호황에서 이익만 얻는 것이 아니다. AI 붐이 식거나 주문이 변동할 위험, 과잉 투자가 과잉 생산으로 이어질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 로이터 통신은 이달 초 삼성이 AI 데이터 센터 수요에 힘입은 메모리 칩의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 덕분에 사상 최고 실적 전망을 내놓았다고 보도하면서도, 중동 전쟁으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자본 내부에는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두 가지 우려가 생겨났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AI 호황이 지속하고 군사 또는 전략 기술 관련 수요가 증가하여, 삼성이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엄격한 업무 규율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호황이 꺾이고 이익이 감소하여, 경영진이 위기라는 명목으로 해고, 성과급 삭감, 또는 더 엄격한 노동 통제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그 대가는 결국 노동자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3)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대규모 대중 시위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조직적으로 시위를 조직하여 질서 있게 행진을 이끌고, 공인된 교섭 당사자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회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임금과 성과급에 대한 노동자들의 진정한 분노를 표출하는 동시에,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피켓과 구호를 외치며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모습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의해 조직되고 대표되는 모습으로 비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능력을 단순히 시위 조직 능력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직접 주도하는가, 아니면 협상과 압박이라는 틀 안에서 주로 관리되는가이다.

 

이 문제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성은 수십 년 동안 독립적인 노동조합 결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로이터와 연합뉴스는 2024년 삼성의 주요 노조가 임금 및 복리후생 협상이 결렬되자 단기 파업에서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회사의 오랜 ‘무노조 경영’ 모델에 대한 역사적인 도전이었다.  (삼성의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짓밟히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가 유해 물질에 중독되어 백혈병과 각종 희귀암에 걸렸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지금도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은 2023년 반도체 부문 적자를 이유로 성과급을 0%로 책정하면서도 경영진 1,000여 명에게는 총 1,75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삼성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긴급 조정권 발동을 위협하며 자본의 편에 서고 있는데. 이는 최근 실적이 좋은 다른 업종으로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역자>)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삼성에서 발생하는 모든 노동 쟁의는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신감과 경험을 얻고, 모든 결정을 노동자가 직접 내리는 총회를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를 포함하여 <역자>) 조직해, 노동조합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분노를 제한적인 교섭과 절제된 상징적 행동으로 이끄는 안정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계급적 관점에서 볼 때, 핵심은 삼성 경영진과 노동조합 지도부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익은 세계적 경쟁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삼성의 이익과는 다르고, 노동 쟁의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것이 역할인 노동조합의 이익과도 다르다.

 

인도, 아이티 노동자 투쟁과의 연관성이 명확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극명하게 다르다. 인도의 광대한 산업 지대에서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노동시간,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투쟁했다. 아이티에서는 섬유 노동자들이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임금에 맞서 싸웠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기술 대기업의 성과급과 보상 문제가 당면 과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 이면에는 같은 토대가 깔려있다. 자본이 노동의 상대적 몫을 줄이는 동안 전쟁, 인플레이션, 세계 시장 위기는 노동자들의 삶에 더욱 큰 압박을 가한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다를지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선택은 단순히 임금 협상이나 회사와의 분쟁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속박된 채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지키고 생산 계급으로서 스스로 대안을 구축해 나갈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러한 대안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경영진에 대한 수동적인 신뢰, 노동조합의 중재에 대한 수동적인 신뢰를 넘어, 자신들이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2026년 4월 26일

프레도코르보(fredocorvo)

 

<주>
1. https://apnews.com/article/korea-samsung-union-strike-ai-38e7a5030d3688850d3e8d8baf240f58

2. https://apnews.com/article/korea-samsung-union-strike-ai-38e7a5030d3688850d3e8d8baf240f58

3. https://www.reuters.com/sustainability/sustainable-finance-reporting/samsung-flags-eight-fold-jump-q1-profit-ai-chip-demand-drives-up-prices-2026-04-06/?utm_source=chatgpt.com

4. https://www.reuters.com/technology/samsung-electronics-union-south-korea-declares-another-strike-2024-07-10/?utm_source=chatgpt.com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4/26/south-korea-samsung-profit-discipline-and-the-union-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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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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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겪는 문제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난 이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성장률 하락’(즉, 이윤율 하락)의 결과에 직면해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담률(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년 넘게 감소해 왔다. 국민건강보험(NHS), 학교 예산, 사회 복지 혜택, 연금 등 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된 자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공공 서비스가 삭감되었다. 국제 시장에서 투기하는 금융 자본주의 기업들이 공공시설을 운영하면서 강과 해안은 하수 오염으로 더러워지고, 결국 우리는 더 높은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영국개혁당(Reform)이나 영국독립당(UKIP) 같은 극우 세력의 거짓말에 귀 기울이면 오직 “영국이 망가졌다”라는 생각만 들게 된다. 그들에게 원인은 간단하다. 모든 것은 이민자와 난민 탓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소영국주의자들(1)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장한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반(反)이슬람, 반(反)이민 성향의 우파 세력은,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이 이끄는 영국수호동맹(EDL)이 ‘왕국 통합’(Unite the Kingdom)으로 변모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손쉬운 동원력, 일론 머스크 같은 재벌들의 막대한 재정 지원과 공개적인 지지에 힘입어, 로빈슨 일당은 지난 3월 런던 중심가에서 수만 명의 “극우 활동가”들을 동원했던 시위를 5월 16일 다시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도발이다. 5월 16일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건국과 1948년 자신들의 땅을 잃은 사건, 즉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규탄하는 전통적인 시위를 벌이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 런던 경찰청은 팔레스타인 측이 매년 제출해 온 행진 허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로빈슨 일당이 런던 중심가를 마음대로 활보하도록 허락했다.

 

선의의 “반(反)파시스트”들과 현 체제가 개혁 가능하다고 믿는 많은 이들은 이미 지난 3월 런던에서 열린 극우 세력에 맞선 대규모 시위를 다시 한번 준비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극우 인종주의자들에 맞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들을 만들어낸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은 특정 정치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전환할 수 있다(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데 가장 유리한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오늘날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의 편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도, 러시아 편도 아니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지만, 그렇다고 이란 국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자지구, 서안지구, 레바논에서 자행되는 시온주의자들의 팽창주의 학살도 지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가 우리에게 빈곤, 극심한 불평등, 그리고 야만적인 전쟁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이를 끝낼 때이다.

 

 

2026년 5월 8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역자 주>

1. 소영국주의자(Little Englander)는 18~19세기 제국주의 팽창에 반대하고, 영국 본토(잉글랜드)의 내실을 기하며 식민지의 독립을 옹호했던 고립주의적 정치 성향을 말한다. 대영제국 건설보다는 영국 자체의 이익과 평화를 우선시한 사상으로, 대외 팽창을 지지했던 '대영제국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8/more-than-a-fight-against-the-far-right-we-need-a-fight-against-capitalism


<참고할 글>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反)파시즘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652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975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인종주의적 분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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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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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선택적 전쟁’의 여파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란을 “극도로 강력하게” 타격하면 “매우 빠르게” 끝낼 수 있다는 그의 끊임없는 허세는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전 세계 사람들(수년간 이슬람 정권에 저항해 온 이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에게는 끔찍한 소식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비료 부족은 이미 기후 변화로 가뭄에 직면한 아프리카 농민들이 올해 작물을 파종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이는 광범위한 기근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유가 상승은 이미 치솟고 있던 생활비에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유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에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2008년 은행 구제금융 이후 수년간 긴축 정책을 펼쳐왔는데, 물가 상승으로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자의 고통이 더 커질 전망이다.

 

노동당은 14년간의 보수당 정권 시기 경제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 덕분에 202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물가 급등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올해 3분기 인플레이션을 3.5%로 예측한 것은 이미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수치로, 이제는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부 부채는 평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채 발행 금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출, 특히 복지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예상된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당에 대한 반대표가 쏟아지는 자리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점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기존 양당 모두 수십 년간 지속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한 정당뿐 아니라 두 개의 ‘신생’ 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2018년 브렉시트 당으로 출발해 현재 크리스토퍼 하본(Christopher Harborne) 같은 재벌들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6명의 의원을 보유한 패라지(Farage)의 ‘영국개혁당’(Reform UK)은 의회 내 ‘우익 포퓰리즘’을 대표한다. 좌파 진영에서는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가 이끄는 녹색당이 2월 26일 고튼 앤 덴튼(Gorton and Denton) 보궐선거에서 '생태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워 승리하며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공약은 "노동자들을 초부유층과 대기업에 맞서게 한다"라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2026년 4월 3일). 이 과정에서 녹색당은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이끄는, 내분으로 얼룩진 ‘좌파 노동당 재출발(당신의 당)’ 진영의 지지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사실상 전 지구적 체제 위기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10일 완료된 잉글랜드 136개 지방의회 선거 개표 결과 영국개혁당은 총 1,453석을 확보했다. 반면 집권 노동당은 1,496석을 잃어 1,068석에 머물렀고, 영국 양당 체제의 다른 한 축인 보수당도 563석이 줄어 801석에 그쳤다. 녹색당은 550여 석을 확보했다. 전체 득표율도 개혁당이 압도적인 1위고, 뒤이어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순으로 나타났다. 개혁당은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도 96석 중 34석을 차지해 웨일스당(43석)에 이은 제2당으로 올라섰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17석을 확보해 스코틀랜드국민당(SNP·58석)에 이어 공동 제2당이 됐다. 개혁당이 웨일스·스코틀랜드 의회에 자력 입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역자>)

 

자본주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끝없는 호황과 불황의 순환을 반복하는 자본주의는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세계 경제가 보유한 막대한 물질적 부는, 그 부를 창출하는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 즉 세계 노동계급이 통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국경 구분에 관심이 없고, 환율 투기(환 투기)에도 관심이 없으며, 무책임한 대표들이 쫓겨날 염려 없이 몇 년간 자리를 지키는 의회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역 사회(아래)에서부터 정상(위)까지 직접 민주주의 기구를 만드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자본주의는 이윤율 위기를 주기적으로 겪는데, 부채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을 통한 파괴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즉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은 누구를 동원해서 싸우고, 죽고,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게 할까? ... 이 세상의 부유층은 아닐 것이다.

 

부유층(재벌) 한 명당 점점 더 가난해지는 수백만 명의 임금 노동자들이 있다.

 

• 2025년에도 가장 부유한 50명이 보유한 4,680억 파운드(947조 원)는 가장 가난한 50%가 보유한 4,660억 파운드를 계속해서 웃돌고 있다. (이퀄리티 트러스트)

• OECD 38개국 중 영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9위이다. 상위 20%가 국가 소득의 36%를 차지하고 국가 전체 부의 63%를 소유하지만, 하위 20%는 소득의 8%와 전체 부의 0.5%만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통계청)

• 70만 명이 넘는 대학 졸업생이 실업 상태에 놓여 실업 수당을 받고 있다(이는 현재 룩셈부르크 인구보다 많은 수치다). 한편, 매년 80만 명이 대학을 졸업한다. 정부는 “젊은 세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 2025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영국 내 16세에서 24세 인구 중 약 12.8%(89만 1천 명, 전 분기 대비 1만 1천 명 증가)가 교육, 취업, 훈련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NEET)였다.

 

1978년 영국의 실업자 수는 160만 명에 달해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5~6% 사이였다. 이후 실업률은 대체로 이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25년 4분기 영국의 ‘조정된’ 실업률은 5.2%로, 독일(3.9%)과 미국(4.5%)보다는 높았으나 프랑스(7.9%)보다는 낮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규칙대로 행동하는 한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다.

 

이제 많은 노동자가 이 체제의 지속적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는 데 지쳤다. 의사나 대학 강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조차 임금, 업무량, 취업 기회, 고용 불안 등을 이유로 파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일반 임금 노동자 처지에 놓인 것을 보여준다. 호텔 청소 노동자와 기타 직원, 철도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등 수많은 이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끝이 없다. 노동조합들은 파업 열기를 식히고 냉각기를 두어 노동자들을 서로 고립시키고 있으며, 노조별로, 업종별로, 심지어 사업장별로도 고립시키고 있다.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현재 상황만으로는 주식 시장이 붕괴하거나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정한 위협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위기를 거듭해 온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전쟁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순전한 경제 위기와 더불어, 그로 인해 더 악화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환경 위기다. 이는 기후 변화 그 이상의 문제이지만, 자본주의가 지구에 가하는 치명적인 파괴행위를 막기 위한 미약한 시도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지구의 필수 자원을 둘러싼 치열해지는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더 시급한 문제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오직 국제 노동계급만이 이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할지 알려주거나 반(反)파시스트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직면한 이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서 벗어날 길, 즉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의 세계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전망이다. 이 지구에 남아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전 세계 인류가 존엄과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너무 늦기 전에 이 길에 동참하자!

 

2026년 5월 6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6/here-in-the-uk-there-s-no-escaping-the-capitalis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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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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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부르주아지가 미국을 국내외에서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이끌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바이든의 정책이 중국을 비롯한 여타 경제·제국주의 경쟁국에 비해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직면한 어려움과 쇠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정책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을 내세운 트럼프의 당선은 자본과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이라는 세계 자본주의 모순의 극적인 심화를 반영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을 파괴할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과정을 더 가속할 것이다.

 

취임식 당시 기술 기업들은 트럼프의 지시에 따랐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MAGA 규범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분위기 전환"을 선언하는 데 열심이었다.[1] 미국 부르주아지는 트럼프와 MAGA가 미국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추세를 반전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의 예상은 맞았을까?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이미 몇 가지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약점은 대선 직후 치러진 특별 선거에서 트럼프의 선거 연합이 승리하지 못한 것과 대법원이 그의 초기 관세 계획을 무효로 한 데서 나타났다. 게다가 MAGA의 고립주의 기조는 예멘의 후티 반군,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 그리고 캐나다와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NATO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팽창주의 의제로 빠르게 대체되었다.[2]

 

트럼프주의의 모순이 MAGA 운동의 지속성을 위협한다는 징후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나타났다. 국경 순찰대의 "총사령관"이자 트윈 시티(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작전 책임자인 그렉 보비노(Greg Bovino)는 르네 굿(Renee Good)과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 국경 정책 총괄 책임자이자 트럼프 행정부 내 비교적 온건파였던 톰 호먼(Tom Homan)으로 교체되었다.[3] 3월 5일에는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노엠(Kristi Noem) 역시 트윈 시티 사건과 국토안보부(DHS) 예산의 사적 사용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인 후 해임되었다.[4] 이 사건은 처음에는 시카고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 발생했던 다른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이러한 살인 사건으로 트럼프의 인기는 더욱 떨어졌고, 그와 ICE(이민세관집행국)에 대한 항의 운동이 더 거세졌다. ICE는 텍사스 ICE 시설에서 루이스 구스타보 누녜스 카세레스(Luis Gustavo Núñez Cáceres)를 살해하는 등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살해 사건들의 여파와 상황은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미국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고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긴축 재정과 전쟁의 시기에 희생양을 만들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와 같은 인물들은 이상화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낙원을 약속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생활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생활비 상승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전쟁으로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리될 수 없다.[5] 트럼프가 최근 "우리는 이민자들과 전쟁 중이다"라고 발언한 것은 단순히 인종차별적인 선동이 아니라, 반(反)이민 정책과 전쟁 준비가 현재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6]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정책들은 역효과를 낳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종차별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이러한 정책들은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지속적인 부상에서 알 수 있듯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주의의 가장 큰 실패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했다. 마두로 체포에 고무된 듯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 작전’을 감행했다. 즉각적인 승리를 기대했던 미국은, 최근의 불안정한 휴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순식간에 중동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하고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위협까지 가했던 전쟁에 휘말렸다. 이란은 미국, 이스라엘, 걸프 지역 목표물에 대한 보복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해상 패권 신화를 깨고 석유 달러를 약화함으로써, 이란은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분쟁에서 분명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란 전쟁은 처음부터 이미 대중적 지지가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언뜻 보기에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처럼 보일 수 있다. ICE(이민세관집행국)가 도시와 동네를 급습하여 미국 내 이민자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행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ICE 반대 시위는 단순히 '왕은 없다‘(No Kings) 운동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온건한 행진에만 그치지 않고, 시위대와 ICE 및 국토안보부(DHS) 요원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로도 특징지어진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미국 여러 도시의 주민들은 이주 노동자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ICE 요원들과 대치했고, 종종 호루라기를 불거나 ICE 요원과 피해자들 사이에 직접 개입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정부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려는 이러한 미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최근 우리가 기억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노동계급의 투쟁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신호이다.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이러한 시위의 한계는 연방 정부의의 대립이 전적으로 강제 추방 문제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이란 전쟁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여파는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부르주아적 '왕은 없다’(No Kings) 시위는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반(反)트럼프 ‘왕은 없다’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운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반(反)트럼프 민주주의 운동이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점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트럼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함한 미국 지배계급 전체가 추구하는 전쟁으로 향하는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진정하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다.[7] 시위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오히려 시위는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 분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를 통제하고 부르주아지가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를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에 가깝다.

 

미국 부르주아지가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반발을 어떻게 이용하려 하는지 이해하려면,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이른바 ‘총파업’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파업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사람들의 불만을 표출하도록 조직한 좌파 집회였다. 시위 참가자들이 파업하지 않은 지하철을 타고 시위 현장에 갈 수 있었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노동조합들은 겉으로는 이 행사를 지지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합원들에게 파업을 촉구하지는 않았다.[8] 계급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였지만, 이 운동의 상당 부분은 사실 과거의 반(反)파시스트 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사회, 정치, 국제적 측면에서 점점 더 많은 실패와 명백한 무능력을 드러내면서, 미국 부르주아지는 이미 트럼프에게 정책 수정을 강요하거나,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그를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러한 초기 단계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통해 미국의 전쟁 기계에 직접 도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불만”을 민주주의·반(反)트럼프 구도로 계속해서 왜곡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를 ‘왕은 없다’(No Kings) 시위와 같은 무력한 배출구로 유도할 것이다. 미국에는 최근 이러한 사례가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투표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더 많은 미국 노동계급을 그들이 이길 수 없는 불공정한 게임으로 끌어들였다.[9] 이러한 부르주아의 승리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선거 정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환상과 코뮤니스트 좌파의 약점 때문에 발생했다. 시위대가 연방 요원들의 업무를 더 어렵게 하거나 전쟁을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와 명백히 결별하고 계급투쟁을 벌여야 한다.

 

미국의 이란 개입으로 인해 연료와 식료품 가격이 치솟고 노동 및 생활 여건이 현저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생활 및 노동 조건에 대한 추가적인 악화, 구매력 상실, 사회 복지 혜택 삭감 등 어떠한 추가적인 희생도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으로서, 파업과 거리 시위, 그리고 지역 투쟁의 확대와 전면화를 통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반격의 첫걸음이며,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과 재앙을 타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가 발전시켜야 할 혁명적 투쟁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지배적인 세력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을 역전시키고 저항하는 데 있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에게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2026년 4월 10일

프레드(Fred)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전쟁인가 혁명인가」 33호

 

<주>


사진 : 픽사베이

[1] https://www.aei.org/op-eds/the-vibe-shift-hits-hollywood/

[2] 그린란드와 캐나다에 대한 트럼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발언은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화를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

[3] https://www.vox.com/politics/477197/tom-homan-cbp-dhs-ice-bovino-noem-trump-minneapolis.

[4] https://www.npr.org/2026/03/05/nx-s1-5667546/kristi-noem-homeland-security-fired.

[5] https://www.nbcnews.com/politics/donald-trump/trump-says-not-possible-us-pay-medicaid-medicare-daycare-re-fighting-w-rcna266381.

[6]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global-trends/trump-declares-us-is-at-war-in-terrifying-seven-word-statement-about-alien-enemies/articleshow/119124668.cms?from=mdr.

[7] https://www.cnn.com/2026/03/28/us/live-news/no-kings-protests-03-28-26.

[8] https://www.wsws.org/en/articles/2026/01/30/pzgh-j30.html.

[9] https://www.nbcnews.com/politics/elections/voter-registration-surged-during-blm-protests-study-finds-n1236331

; https://bsky.app/profile/vickyacab.bsky.social/post/3md7ogi6cmc2k.

「약탈의 옹호」(In Defense of Looting)의 저자인 아나키스트가 BLM 운동이 조 바이든 후보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처>
https://igcl.org/The-Wheels-are-Coming-off-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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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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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해고되었다. 이는 군수 산업을 제외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를 반영한다. IT(유비소프트, 오라클, 캡제미니, IBM), 자동차 산업(애스턴 마틴,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보쉬 및 굿이어와 같은 모든 하청업체), 유리 산업(아크, 베랄리아), 소매업(오샹, 제니퍼), 금융 서비스업(네덜란드의 ABN 암로, 암호화폐 업계의 블록), 물류(아마존, UPS, 지글러), 언론(라 트리뷴,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하이네켄, SEB, 에라스틸, 랑세스, 바스프)가 모두 영향받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생산 공정에 도입되면서, 특히 IT 분야에서 수만 명의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이 실직 상태에 놓였고, 단기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게다가 전 세계 공무원들의 감원도 더해질 전망이며, 트럼프와 머스크는 몇 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Milei)가 '전기톱' 긴축 정책으로 공무원들을 해고했던 사례를 앞장서서 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교육 제도 또한 앞으로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자본주의 전체를 강타하는 구조조정에서 어느 나라 경제도 벗어날 수 없다. 중국 역시 실업 통계가 불투명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독일은 오랫동안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던 산업 부문이 더는 중국에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기계, 화학, 자동차 등 가장 대표적인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대규모 감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과 오펠(Opel)뿐만 아니라 보쉬(Bosch), 아우모비오(Aumovio)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 산업 하청업체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바스프(BASF)는 행정 서비스의 일부를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이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며, 화학 기업 랑세스(Lanxess) 역시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유럽 산업의 중심에서 나온 이 모든 조치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결과다. 독일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주로 시간제이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숙련되고 생산성이 높고 보수가 좋았던 정규직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끝이 없다. 심지어 유엔조차 전 세계적으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해고는 각국 정부의 사회·보건 정책 긴축과 실업자에 대한 감시 강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려고 노동 시장 규제를 더 완화하여, 일일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하고, 휴가 분할 사용을 허용했다. 한편, 벨기에는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제한할 예정이어서, 일부 실업자들은 소득원을 자동으로 잃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변동 금리 학자금 대출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제도로 인해 최근 젊은 졸업생들이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젊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청년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며, 청년 6명 중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다. 청년 실업은 정부의 주요 현안으로 점점 더 부각하고 있으며, ‘35세의 저주’(나이에 따른 해고) 현상과 맞물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해체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모든 공격은 지난 15년여 동안 자본주의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경제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금융 위기(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및 국가 부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 그리고 세계 경제가 전쟁의 소용돌이(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등)로 끌려 들어가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세계정세, 급증하는 군사비 지출로 특징지어지는 전시 경제,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의 관세 인상,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역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그리고 점점 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환경 파괴 비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

 

반면, (군수 산업을 제외한) 세계 경제의 침체가 점점 더 뚜렷해짐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한계가 부각하고 있다. 만성적인 과잉생산, 국가 경제 관리 정책의 한계, 그리고 경쟁국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부르주아지를 점점 더 자멸적인 전략으로 내몰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모든 안전장치와 대책, 즉 시장 개방, 관세 제한, 공통 표준 개발, 조정된 통화 정책 시행과 같은 최소한의 공조 정책들을 모두 해체하고 있다. 과잉생산은 분명히 대규모 해고 사태를 초래하는 현재 진행 중인 위기의 원인이다. 보기를 들어, 중국은 자국의 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결국,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세계 시장과 경쟁국에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의 해체가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근시안적인 국가 정책의 가속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책을 둘러싼 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 심화, 비이성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책(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관세 전쟁과 같은), 그리고 자신들의 특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르주아 분파들의 이념적 맹목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영향을 완화할 만한 일관된 경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해체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상당히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잔혹하고 지속적인 위기의 심화는 매우 심각하다. 부르주아 정치에서 진지하고 포괄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들에서 보이는 파괴는 아마도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겠는가?

 

이러한 공격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기는, 아직 일자리를 가진 운 좋은 노동자들을 점점 더 잔혹하게 착취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냉혹하게 방치되는 경제 체제의 위기이다. 과잉생산은 모든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이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노동계급이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겪는 이 야만적인 현실은, 부르주아지가 그들에게 전쟁, 무자비한 착취, 그리고 비참함 외에는 어떤 희망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멀고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그러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임금 노동, 사유재산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 경제적 요구, 파업, 투쟁 조직을 위한 집회, 거리 시위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점차 자신들의 “힘”인 단결, 연대, 자기 조직화 필요성, 그리고 운동의 목표에 대한 성찰을 재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위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될 진정한 미래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지만, 투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노동계급의 동맹으로 남을 것이다.

 

2026년 4월 9일

HD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 : AP=연합뉴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801/inexorable-descent-crisis-reveals-historic-failure-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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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일으킨 이란과 중동 전역에서의 전쟁은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미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더 심화하고 있다. 이는 주로 전쟁 준비와 현재 진행 중인 전쟁, 특히 이란과 중동에서의 전쟁 때문이다.

 

치명적인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지옥 같은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최강대국 미국 자본주의를 필두로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으로 향하는 속도와 행보를 가속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푸틴, 이 두 사람만 보더라도, 각각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주의 강대국이 스스로 선택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시대의 상징이다. 트럼프의 헛소리는 히틀러가 생전에 쏟아냈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리고 대부분 불길한 그의 기행들은 그 부조리함에서 무솔리니를 능가한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무거운 의미와 비극을 담고 있다. 전쟁의 시기는 무르익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것이라도 국민들은 민족주의적이고 증오에 찬 수사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 강대국들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무력을 동원해 경제적, 정치적, 제국주의적 조건과 지시를 강요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의 자본과 부르주아지는 배가 침몰하기 전에 몇 안 되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심연을 향해 질주하는 이 행진을 멈출 수 있을까?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대응은 결코 평화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겪은 세계대전은 자본의 모순이 극에 달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는 자본, 생산력,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이러한 과잉 생산물을 흡수, 즉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 경쟁을 통한 시장 쟁탈전은 군사력, 제국주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화된 전쟁을 통한 대량 파괴로 이어진다. 전쟁의 논리에 맞서는 일은 평화라는 ‘이상’을 내세워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화란 전쟁 준비 과정의 한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교착 상태와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에는 그뿐만 아니라 다가올 전쟁, 즉 준비해야 할 전쟁, 그리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전쟁,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며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란, 우크라이나에서 피의 강을 흐르게 하는 바로 그 전쟁의 대가까지 치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급격히 둔화하고, 물가가 폭등하며, 해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1] 요컨대, 노동계급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대가까지 치러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봉쇄가 투기꾼, 즉 자본가들, 트럼프, 푸틴, 그들의 추종자들, 나아가 이란의 신정주의자들과 혁명수비대를 부유하게 하고, 그들이 가장 파렴치한 부패와 가장 추악한 사치에 빠질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한 실질적이고 잠재적으로 효과적인 저항은 오직 계급 사이의 물질적·역사적 대립,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을 착취하고 제국주의 세계 재분할의 이득을 챙기는 부르주아지와 지배계급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며 참호로 내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대립이라는 맥락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주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날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을 저지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인도에서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2], 이란 전쟁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에 미치는 물질적 결과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길이다. 임금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수십 년에 걸쳐 악화했고, 전쟁 발발을 앞두고 더 악화하고 있으며, 이란 전쟁의 결과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희생양 삼아 서로를 부추기고 있다

 

오늘의 구호: 전쟁을 위한 희생을 거부하자!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투쟁을 벌이자! 자본주의 국가와 민족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단결을 거부하자!

 

내일의 구호: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 타도!

 

2026년 4월 22일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혁명인가, 전쟁인가」 편집팀

 

<주>

 

사진 : 로이터=뉴스1

 

[1] 투기 거품이 겹겹이 쌓여 광범위한 부채와 연관된 금융 위기의 위험성은 말할 것도 없다. 사모 신용 거품이 가장 먼저 터질 수 있다. 불안해하는 채권자들은 이를 관리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석유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걸프 국가들은 유동성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 자산(주식, 채권, 국채)을 매각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으로 몰려드는 공황 상태가 발생하여 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는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2] 「혁명인가, 전쟁인가」 33호의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직면한 인도 노동계급 투쟁의 물결” 참조. https://igcl.org/Wave-of-Working-Class-Struggles-in

 

<출처>
https://igcl.org/How-to-Resist-and-Halt-the-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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