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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최근 중동에서 벌어진 학살은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행진의 일부이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진 학살은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행진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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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은 국내 및 국제적 동기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1. 이스라엘 정부와 결탁한 부패하고 무능한 기구로,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서 큰 불신을 받는 마흐무드 압바스(일명 아부 마젠)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NA)를 제거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가와의 싸움에서 독점적인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이다.

2.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진행 중인 협상을 보면서 PNA도 참여했던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이 열어놓은 길을 훼손하기 위해서이다. 아브라함 협정은 수니파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의 협정이었기 때문에 하마스는 고립감을 느꼈고, 리야드와 카타르로부터 더는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보다 일반적으로, 하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 국가(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사이의 협정과는 대조적으로 아랍 전선(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에 아랍 국가들을 참여시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일종의 '거룩한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이렇게 비중 있는 행동은 이란과 아야톨라(ayatollahs), 즉 반(反)유럽, 반(反)나토, 반(反)미제국주의 전선에 달려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화염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방" 제국주의와 "동방" 제국주의가 벌이는 전쟁의 대학살 속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란은 이 지역을 이스라엘과의 전쟁터로 만들어 최대의 적(敵)인 이스라엘을 약화시키고,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지만, 역사적 동맹국(러시아, 중국, 북한)이 지역 전략에서 테헤란을 지원하도록 만드는 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방 언론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야만성을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 지배계급이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자행한 차별, 억압, 폭력은 그들이 이스라엘 시민일지라도 "잊거나" 경시한다. 최근 네타냐후 정부의 주요 파트너인 종교적 극우파의 영향으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하마스는 원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의 파타(Fatah)와 PLO의 "좌익" 무장 조직에 맞서기 위해 텔아비브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탈레반과 ISIS의 경우(둘 다 당시 미국의 "후원"을 받음), 제국주의 "마법사"는 자신이 만든 "괴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으며, 현재 적군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그 개는 자신에게 먹이를 준 사람들의 손을 물고 있다.

지배계급은 항상 "민족-국가" 노선을 따라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문을 분열시키고 반대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이는 나치즘이 극단적으로 취한 관행이다. 팔레스타인 출신 노동계급은 가장 잔인하고 "원시적"인 형태로 억압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착취당하고 있으며, 이른바 "민주적"이라는 이스라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전 세계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일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정부가 물, 전기, 가스의 공급을 자주 차단하고, 의료 서비스가 극도로 열악한 야외 감옥으로, 한마디로 대다수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에서 시달리며 사는 곳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도 이스라엘 노동계급이 존재하며, 현재 전쟁으로 인해 민족주의와 전쟁 선동 중독에 더욱더 노출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에서는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이 아야톨라(ayatollahs) 제국주의 손에 넘겨질 정도로 이슬람주의 선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독(毒)을 주입 받았다.

따라서 양측의 노동계급은 이른바 "성전"을 수행하거나 "민주주의"라고 믿는 것을 수호하기 위해 무방비 상태의 주민을 학살하도록 내몰리고 있으며,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 착취, 피를 통해서만 지배를 영속시킬 수 있는 반대편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을 학살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탄압과 공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이슬람 부르주아지 세력인 하마스의 희생자 수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부르주아지보다 하마스가 덜 살인적이거나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본가를 의미하는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은 항상 임금 노동자에 대한 전쟁이다. 평상시에는 직장에서 당연하게 착취당하고 다치고 죽임을 당하지만, 자본가 사이의 갈등, 위기, 경제적 이해관계가 무기로만 해결할 수 있는 전시에는 훨씬 더 많은 착취와 대량학살이 자행된다.

모든 전쟁은 자신이 노동계급의 편이라고 주장하는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민족 자결권이라는 명분으로 어느 한 편의 자본가 분파를 지지하기 위해 줄을 서는 전쟁은 사회민주주의가 노동계급을 대변한다는 환상을 폭로한다. 그들은 현시대에 민족해방을 위한 진보적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 어떠한 새로운 국가도 노동계급을 위한 또 다른 감옥일 뿐이며, 세계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가 그 억압의 과실을 세계 부르주아지의 다른 분파와 공유하지 않고 '자신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억압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하마스가 저지른 학살을 은근히 기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의 살인 논리를 공유하는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 국가가 자행한 파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반영하는 태도이며, 둘 다 똑같이 범죄이다.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의 치명적인 오류에 대한 지지는 타락한 제3 인터내셔널(스탈린-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이 낳은 조직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부문과 심지어 국제주의자라고 거짓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현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이에 대한 또 다른 증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계급의 모든 부문이 부르주아지와 그 국가, 제국주의 동맹에 대항하여 계급을 구성하는 부분의 '민족적' 기원과 관계없이 계급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주장은 훨씬 더 타당하다.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같은 상황에서는 계급단결을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이든 반동적이든,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자본주의의 한 분파나 다른 분파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모든 자본가는 노동계급의 숙적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자들을 위해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며, 그들의 국가-제국주의적 목적을 위해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전쟁에 맞서 싸우기 위한 첫 번째 기본적인 단계이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혁명적 원칙은 항상 유효하기 때문에, 우리는 " 자신의" 자본가들부터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이 투쟁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 즉 부르주아 사회에 연료를 공급하는 착취가 일어나는 작업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공의 적인 자본가와 거짓 친구, 즉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투쟁을 체제의 법적 틀 안에 가두어 질식할 정도로 약화시키는 '좌파' 정당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노동자들만 지지하고 이스라엘 노동계급을 무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들은 후자가 이스라엘 정부의 극단적 민족주의 정책의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자와 후자의 충돌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은 내부 저항을 다룰 때 가장 악랄한 통치자 중 하나인 아야톨라 제국주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본가 무리의 손아귀에 있다. 따라서 두 노동자 집단 모두 임금 노예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전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자본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의 논리에 갇혀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세계 노동계급은 자신이 당한 물질적 격변(구조조정, 세계화, 불안정화 등)과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구소련의 국가 자본주의 붕괴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타격으로 인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대안은 실제로 존재한다. 국지적 전쟁이 일반화된 전쟁으로 발전하거나 마찬가지로 이미 임박한 기후 재앙을 통해 인류를 파괴할 위험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한 대안이다.

노동자 대중이 두려움과 체념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계급투쟁의 길을 다시 찾는다면, 오늘날 소수의 혁명적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더욱 전투적이고 계급의식적인 부문과 성장하고 결합하여 이 피비린내 나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적 도구인 세계혁명당, 새로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건설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성명

2023년 10월 11일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10-11/the-latest-butchery-in-the-middle-east-is-part-of-the-march-to-generalised-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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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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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면서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보았습니다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수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그러나 그들 중 문제를 해결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하지만 제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피상적 상태에 머물렀습니다긴 인류사에서 이런 고민을 한 것이 제가 처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코뮤니스트를 읽었습니다그동안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이 명쾌히 정리되며 수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한국의세계의 인민들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어쩌면 코뮤니스트가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 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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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동절을 기념하여 몇 자 적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 태동한 맑스의 사유 체계가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을 인식하고 나니그의 분석력과 해석력사고의 깊이예측력그리고 그것을 문자화된 언어로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력논리력 등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그의 존재 이후로이 시대를 이해하고 살아감에 거대한 마일스톤 같은 존재인 듯싶다현재의 사상가들활동가들그리고 문인들을 비롯한 여러 예술가뿐 아니라평범한 개인에 이르기까지맑스에 기대어아니시대의 유산인 그의 사상에 기대어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둥지를 틀고사유의 영역은 확장되고 가지를 뻗어나가문화는 꽃을 피웠다.

 

나는 맑스주의 활동가 아버지 슬하의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이로써 그의 사유는 내게 친숙한 것이었고당연한 거였다그런데도체제 교육에 훈련된 나는 성인기가 되어 세상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이해하려고 다시공부해야만 했다나의 지난 청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체득(?)하고이를 이론화한 맑스 행적을 쫓는 데 있었다물론현재도 그 연장선에 있다. 10여 년 전 감행한 멕시코행에서 내가 인식한 것은거대한 자본즉 국가 자본과 세계화된 자본의 큰 흐름과 현재 내재하는 모순이었다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는 현실 하부에얼마나 많은 노동이 집약되어 있으며피지배계급 고통의 눈물이 응고되어 있는가를 가슴에 담았다때문에나는 더는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뜻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현실을 돌아본다우리는 유럽과는 다르게식민 시대를 겪었고부르주아 혁명조차 겪어보지 못했으며분단된 국토와거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힘의 논리에 파묻혀있다자존심 상하지만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맛보지 못했다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체제 굴레의 최전선에 놓여있다노동자이건자본가이건정치인이건학생이건수감자에 이르기까지이러한 자본주의 논리 아래 숨을 쉬고일상을 살아간다최악이지 않은가우리 미래가일촉즉발예측불가인 것은 당연하다누구도 예외는 없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현대 사회에서 인간은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도록 훈련된 생명체에 불과하다현대 사회에서 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곧 내가 얼마나 자본화된 존재인가를 인식한다는 것과 같다자본 없이는 이제인간은 살지 못한다그러나 우리는 자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얼마나 아이러니한가이 지점에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문제 의식을 느끼고더 바람직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그들이 바로 우리가 아니겠는가그러나 사실세상 대부분은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인정하지 않는다오히려 낙오자문제자로 낙인을 찍으려 한다당연하다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자본화된 이데올로기에서 살고 있다이 점에서우리는 너무도 외롭다인간적으로 외롭고의기소침해지기도 쉽다그러나 기억해야 한다명심해야만 한다역사 속에 우리 같은 이들이 있었음을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지금 인류가 이만큼이라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우리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느끼고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물질이 자본화되었다그리고 인류조차 물질화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개인주의파편화된 세계전쟁혐오 범죄 등 기이한 사회적 현상이 그 방증이다인간이 언제부터 물질만능주의이었던가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피조물이 아니었던가자본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물질이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오히려 인간을 옥죄고 있다자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잉여가치의 부산물이기 때문이고인간은 거기에 끊임없이 봉사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유일한 길은 그 사슬을 끊는 것이다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달걀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만큼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까다롭고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우리는 해야 한다애정을 갖고집중해야 한다그리고 연대해야 한다노동자는 연대해야 살 수 있다체제 전복에 노동자의 단결은 필수다우리는 뭉쳐야만 한다그래야 우리는 이 지독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다시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얻는 것이다

 

독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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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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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금요일 밤의 유령(Péntek esti kísértetjárás)'이라는 단체가 자신이 주최하는 공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혁명적 패전주의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간결하게 정리한 답변을 공유합니다.

 

 
1. 오늘날 혁명적 패전주의는 동지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나요?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혁명가들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전면에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답변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으로'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적인 체제이며, 전쟁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세계와 자원을 재분할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사적 해결책을 선호합니다. 전쟁이 가져오는 자본의 파괴는 또한 체제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배계급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편익 동맹(alliances of convenience)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 프로젝트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국) 지배계급이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약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졸에 불과하며, 전시에는 자신의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도구로 이용하고, 전쟁 후에는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따라서 민족 해방, 민족의 자결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역사적 모순이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에 계급전쟁으로 맞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는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2. 자본주의 전쟁을 치르는 나라와 평화로운 나라에 혁명적 패전주의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선동, 선전, 계급투쟁 개입 등 국제주의 활동은 평화 시보다 전쟁 시에 훨씬 더 어렵습니다. 따라서 국제주의자들은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조직화해야 합니다.
 
전쟁 시와 평화 시에 할 수 있는 일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더 넓은 노동계급에 대한 혁명적 기준점으로서 국제주의 조직의 필요성은 변함없습니다. 우리 정치 경향의 역사는 몇 가지 보기를 제공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 망명지와 감옥에서 우리의 정치적 위 세대는 서로 연락했고, 때가 되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을 결성하여 1943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파업에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조직은 전쟁 중 양대 제국주의 블록에 반대하기 위해 결성된 유일한 조직이었으며, 분명히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반하지 않은 소수의 조직이었습니다.
 
3. '거품'이 가득한 운동 진영 환경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혁명적 패전주의가 오늘날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반적인 관행이 될 수 있나요?
 
특히 거의 한 세기 동안의 스탈린주의 반(反)혁명과 자본주의 구조조정에 직면하여 40년간의 계급 후퇴 이후에는, 우리가 갑자기 마술 지팡이를 흔들며 대중을 끌어모을 수 없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긴축에 반대하는 파업에서 노동계급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좌파(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사회민주주의적 거짓에 반대하는 소규모 조직으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혁명적 노동자들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1915년 침머발트 좌파의 반전(反戰) 메시지가 그랬듯이, 지금은 우리의 메시지가 노동계급에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 위기의 직간접적인 결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노동계급과 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이든, 기후 변화든, (역사적으로 다른 점이 있든) 노동계급만이 자기 노력으로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이해하는 모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쓸모없는 논쟁을 벌이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합니다. 우리는 미래의 계급 운동에 생활수준 저하와 지구 생명 자체에 대한 위협 모두에 대한 일관된 대응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함께 조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이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국제주의자들로 구성된 지역 위원회의 구성을 장려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 긍정적으로, 그리고 전체 노동계급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선례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는 공동 활동의 출발점으로 다음 다섯 가지 원칙을 제안했습니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국가 자본, '덜 악한' 국가, 또는 구성 중인 어떤 국가도 지원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재산, 화폐와 이윤을 위한 생산은 자유롭게 연합한 세계 생산자들로 대체된 사회를 위해.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벌어질 전쟁으로 인해 노동계급에 가해지는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맞서기 위해.
•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투쟁을 위해, 자주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와 노동자평의회의 구성을 위해.
•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결집을 위해.
 
이미 존재하는 이러한 위원회는 노동계급이 투쟁하는 모든 곳에서 시위와 피켓라인(파업 시 직원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파업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노동자의 대열)에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성공을 기대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 많은 좌절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이미 우리 자신의 정치적 경향의 좁은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도달했으며, 이것이 시작입니다.
 
4. 우리의 메시지를 프롤레타리아트에 '외부에서' 전달해야 하나요? 아니면 우리 자신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로서 위치 짓고 둘러보면서, 상호 관계를 형성하여 조직해야 하나요?
 
혁명가는 외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노동계급 출신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생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물론 "지배계급의 사상은 모든 시대의 지배 사상이다"(칼 맑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에는 직장과 공동체에서 필연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고립되어 물러서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계급투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에 함께 모여 더 넓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혁명적 관점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투쟁에 개입하여 당면한 요구를 코뮤니즘의 역사적 강령과 연결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코뮤니스트는 계급 '외부'가 아니라 계급 내부의 혁명적 요소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코뮤니스트 사상을 표현하려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문해력이 매우 낮았던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자의 대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다른 사회계급에서 온 개인에게 그 임무가 종종(항상은 아니지만) 맡겨진곤 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장벽이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5. 코뮤니즘 없이 혁명적 패전주의를 말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국제 사회경제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노동계급의 혁명만이 전쟁 없는 세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혁명적 패전주의는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을 의미하며,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더 넓은 노동계급에 혁명적 관점을 제공하고, 전쟁 추진과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공격 사이의 연관성을 폭로하고, 계급투쟁의 자기 조직화를 장려하는 것 등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4년 6월 10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원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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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국제주의에 관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공개회의 : 대차대조표

국제주의에 관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공개회의 대차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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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부터 3월에 걸쳐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동지들이 (맨체스터런던버밍엄에서세 번째 공개회의를 진행했는데, (NWBCW 리버풀 공개회의셰필드의 급진적 도서 박람회두 행사에서 발표회가 있었다세계의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여이번 회의 토론의 각 주제는 전쟁의 촉발국제주의 의의마지막으로 혁명 과업에 중점을 두었다.

 

발표회

 

이번 회의를 위해 여러 가지 발표회가 마련되었으며각각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논점을 강조하였다그 모두를 재현하는 대신지금부터 우리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범세계적 분쟁을 내포한 주요한 단계로 요약된다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주된 희생자들은(군복을 입었든시민이든노동자였다추측으로는오십 만여 명의 사망자와 사상자를 내고수백만 명이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으며전쟁과 징병을 피해 도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달 동안 전 세계 언론에서는 2023년 10월 7일에 발발한 가자지구의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덮어버렸으며현재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과 일부 외국인이 약 1,200명 사망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어린이 1만여 명을 포함해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상태이다.

 

두 전쟁 모두수십 년에 걸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의 결과다평화는 있을 수 없고탈진해서야 잠깐 멈출 뿐이며훗날 재개될 분쟁을 위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전쟁은 체제 위기의 징후다전후 거품이 꺼지고 난 후, 50여 년 동안 지배계급은 성장률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왔지만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그들은 전 세계 노동자 착취를 확대했고생산을 저임금 경제로 옮겼으며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하여 무모한 투기를 조장하고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안겼다.

 

그 어느 것도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이제 경쟁하는 지배 계급은 그들의 경쟁상대로부터 이윤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직접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그 결과 경쟁이 격화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뉴스에 나오는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일 수 있지만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경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인민공화국 건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49년까지 최대 경제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반대로 미국은 전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전의 우월한 입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가자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타협할 여지가 없다최근 미국은 중국을 자기 주요 경쟁국으로 여긴다는 것을 비밀스럽게 여기지 않았다심지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논의할 때조차도 미국은 러시아만큼이나 중국을 공격한다그리고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조정자 역할을 강구 하면서도여전히 반항적인 지방으로 간주하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비난한다.

 

세계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략적 분열을 심화했다. 35년여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은 자신의 적국즉 러시아중국이란에 제재를 가해왔다이로써 이들 세 국가는 편의상 반미동맹으로 결속했으며지난 두 해 동안 더욱 밀접해졌다.

 

한편으로 미국은 독일 같은 나토 회원국들을 상대로 부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또 헝가리와 터키 같은 나토 회원국이 시간을 끌었음에도전쟁은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외의 국가들은 불편하게 제국주의적으로 얽히는 것을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아프리카나 남미의 어떤 국가도 서방의 제재 체제에 동참하지 않았으며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스라엘의 대()가자 전쟁에 비난을 퍼붓는 데 앞장섰다미국의 우월성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개입으로 인한 참담한 결과로 타격을 입었다인도는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석유를 구매함으로써 러시아를 돕고 있다.

 

범세계적 무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2022년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연간 전 세계 군비 지출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모두 비슷한 군비 경쟁이 선행되었다.

또한식량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노력과 필수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불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자본주의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없애고 있다.

 

최근 몇 개 월간 상황은 상당히 악화했다가자의 학살에는 미국 및 나토 국가들이 영토 내(주둔 군사의 증원(심지어 중국에서도 전함을 보냈다)이 동반되었다.

 

전쟁은 예멘으로 확산했다비록 보편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후티 민병대 정부는 사실상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후티는 팔레스타인 지원 아래홍해의 선박을 공격했으며이스라엘에 미사일드론 공격까지 벌였다이에 대응하여미국과 영국은 예멘을 폭격했다단기적으로 홍해와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면서 상업용 선박이 덜 위험한 항로를 찾게 되면 유럽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이는 당연히 노동계급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영국에서도 징병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지난 수십 년 동안 징병제를 폐지한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징병제 재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물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데 관심이 없다.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모두민족주의 흐름에 맞서는 단체가 있었다그들은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투쟁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그러한 정신으로우리 정치적 대선배들은 1943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을 설립노동자에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가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전쟁을 막고또 막으라.”라고 촉구했다.

 

전쟁은 일단 발발하면그것에 반대하기란 힘든 일이다특히 자신이 직접 겪는다면 더욱 그러하다때때로 생존하는 것조차 힘들다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가자와 이스라엘에서벌써 전쟁을 거부하고비난하고폐기 처분한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모든 종류의 거부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함을 지지하면서도평화주의와 자유주의인도주의에 근거한 개인적 행위들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개별적 행위들이 아무리 영웅적이고자기희생적이고위험을 감수한 것이라 할지라도전쟁의 원인은 없어지지 않는다. IDF(이스라엘 방위군)에 징집되기를 거부한 이유로 감옥으로 보내진 이스라엘 청년의 사례, “대량학살에 개입되기를 거부하면서 저항하며 자살한 미국인 이등병 사례로는 전쟁 체제를 멈출 수 없다.

 

노동자들은 국가적 원인 모두를 거부해야 한다그들은 우리를 억압자들과 엮고우리 계급의 동지들에서 분리하기 위해 존재한다우리는 반드시 국가인종종교가 아닌 계급에 근거하여 통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일부로서 우리는 노동계급에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전 세계적으로 계급이 겪고 있는 공격을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위기와 연결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세계혁명이라는 혁명적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으로위원회의 설립을 지지했다.

 

토론

 

전반적으로 각각 소그룹 논의 중에 토론이 자유롭게 형성되었으며우리의 관점은 토론 중 수용되었다참석자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국제코뮤니스트당(ICP),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모임(ACG), 혁명적아나키스트모임(RAG), 연대연합(SF), 영국사회당(SPGB), 늙은두더지모임(OMC)의 동지들과 그 외에 현존하는 모든 조직뿐만 아니라 여러 개인이었다아나콤네트워크(ACN)에서는 참석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소식을 전했다당연히 토론에서는 특정 의견이 분분했는데이번에 그중 일부는-논의의 확장을 시사하는 까닭에-집중할 가치가 있다.

 

맨체스터에서의 주된 이견은 ICC 동지들에게서 나왔다그들은 본 발표에 대해서 동의하면서도(특정 용어에 대해서만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NWBCW의 주장에는 반대했다오직 코뮤니스트좌파만이 진정한 국제주의를 상징하며, ‘좌파아나키스트와 함께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 언급되었다우리는 물론전쟁에 직면했을 때 혁명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경향 내에서 발생한 혼란이 증명하듯우리가 속한 경향인 코뮤니스트좌파가 이 문제에 가장 분명한 견해를 지닌다는 점에는 동의한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뮤니스트좌파만이 국제주의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코뮤니스트좌파의 단독 독점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우리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코뮤니스트좌파 외부의 다양한 그룹과 개인들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NWBCW 위원회는 이를 인식하고 세계 상황의 심각성에 대응하여 진정한 국제주의자들 모두 더 넓은 노동계급에 대안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단순히 성명서에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경우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위원회에서 ICC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우리가 자체 간행물에서 밝힌 것처럼 표면적으로 '국제주의자'라는 선언 뒤에는 전쟁 중인 진영 중 하나에 대한 지지나 기껏해야 '선택적(파트타임국제주의'가 숨어 있기 때문에 '코뮤니스트'든 '아나키스트'든 실제로는 '좌파'를 배제할 목적이 있었다.

 

리버풀에서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가 제시한 이견의 핵심은본 발표에 대해서는 원칙상 동의하면서도그런데도 우리는진정한 노동계급 활동의 부재 속에서, ‘덜 나쁜 것을 고르도록 강요당했다그러나 실제로이러한 입장은 방어주의로 해석되거나혹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했듯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들은 평화의 시간에는 단결하고전쟁에서는 서로를 죽인다.” 혁명가 과업은 국제주의자 메시지가 당장은 아무리 인기가 없더라도그것을 보전하는 것이다전쟁이 노동계급에 사상자를 내면서결국 그들은 그토록 비참함과 유혈낭자(流血狼藉)를 양산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안을 찾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일련의 사건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진정한 노동계급 활동의 부재는 당연히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걸림돌이다. - 그러나 코앞의 전쟁에서 국제주의를 포기하는 것은그러한 활동을 개시하는데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도기적 요구로서 자결(自決개념을 옹호한 영국의 젊은 학생 커플이 있었다. (아마도 트로츠키주의 배경에서 온 듯하다.)역사를 통틀어 우리는 자결(自決)에 대한 국가적 움직임의 수많은 사례를 보아왔다어떤 것은 성공적이었으나 어떤 것은 그렇지 못했다그것의 여파는 노동계급 활동을 강화하지도, 민족주의 독약을 사라지게 하지도 않았다사실 그것은 종종 정확히 반대로 흘러가국제주의가 그룹이 활동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내곤 했다종국에는 모든 과도기적 요구와 마찬가지로심지어는 자결(自決)에 대한 비판적 지지조차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시도로서 자본가 분파의 지지를 의미한다또한참석한 ICC는 블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또 가까운 시일에 전쟁이 발발할 리 없으며, ‘패배하지 않은’ 유럽의 노동계급은 전쟁에 동화될 리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전망은 틀린 것이며 거의 아나키스트적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ICC의 이러한 장황한 주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그 모든 도피에도 수십만의 노동자들이(징병제와 전쟁 경제를 통틀어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더욱이 늙은두더지집단(Old Moles Collective)의 한 동지는전쟁이 발발하는 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초반에 발생했던 것처럼 블록이 완전하게 형성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윤율 하락이 전쟁의 동인(動因이면에 감추어진 동력인가에 대해 몇 가지 의문 사항들이 있기는 했지만국제주의와 관련하여 버밍엄에서 우리가 직면한 의견 불일치는 없었다그러나 경제적 분석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비논리성-특정한 세계적 지도자의 광기 등등.-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한편자본주의 체제의 활동 그 자체는 전반적 충돌의 선결 조건이다이것은 개별적 자본가들 모두가 비밀스럽게 전쟁을 바라고 그리하여 그다음 경제 부흥(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을 가져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러나 낮은 이윤율은 격렬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여기에는 절박한 군사적 조치를 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발표에 내재한 기저 질문의 다른 측면은 세계 전쟁이 실제로 어떠할 것인지에 관한 것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것이다전쟁의 동인 둘 혹은 그 이상의 거대한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을 야기할 것인가혹은 인간애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끔찍할 것이기에전 지구적으로 지엽적인 충돌 지속이 계속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셰필드에서 우리는 한 교사가 작성한 기고문에 대해 들었다.-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처음 입장을 새롭게 되새기면서전쟁이 지속할수록 한쪽 혹은 다른 한쪽의 승리(이 경우그들은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덜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가 아닌 다른 결과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이 참가자는 그들 노동 현장에서의 절망적 사례를 이야기했다그들이 가르치는 어떤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이제 서로 인사할 때, “슬라바 우크라이니라는 민족주의적 경례를 사용한다우리는 반복하여 언급할 수밖에 없다국제주의가 인정받지 못할 때국제주의를 저버리는 것은 우리가 전쟁을 진정으로 종식할 수 있는 다른 사회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다국제주의자들은 국제주의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그렇지 않으면현재의 체제가 해결점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끌어낼 수 있는 기준점이 없을 것이다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뿌리는 소련의 붕괴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이 종식된 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결과적으로는 임시적 안정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분쟁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새로운 장을 열 뿐이다인류를 민족국가로 분열시키는 것 – 이윤시장자원영토 따위를 위해 경쟁하는 – 전쟁을 공고히 하며수백만 명의 인류가 고통받는 와중에도 민족주의 번창이 지속하도록 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틀이다.

 

전망

 

단기적으로 우리는 모든 곳의 노동자들이 국가와 나라를 위해 더욱 많은 희생을 치르도록 요구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지금까지 발생했던 저항은 대부분 조합 단체의 힘 내부에 존재했으며그것은 노동자 노동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그것을 판매하고 협상할 뿐이다현재에 휘둘리는 모든 국가의 깃발 사이에서 국제주의자들은 현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파업과 저항은 적어도 국제주의자들이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질 연못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더욱이지난 몇 해에 걸쳐 새로운 세대 노동자들이 국제주의자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 수십 년간에 걸친 계급의 후퇴에도희망의 횃불이 전해져 내려온다만약 그것이 아니라면이러한 일련의 모임 경험새로운 접근의 등장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접촉이 생겨나고 오래된 접촉이 다시 떠오르는 일련의 회의 경험은 지금이 절망하거나 고립된 채로 후퇴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4년 3월 18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3-18/cwo-public-meetings-on-internationalism-a-balance-sh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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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8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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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8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2"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5년 2월 8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 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강좌 주제■
 
▶ 제2 인터내셔널 - 사민주의의 배신과 ‘좌파분파’의 출현
▶ 제3 인터내셔널 -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건설을 위한 좌파의 투쟁
 
 
***************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과 닮은 오늘날 자본의 좌파"
 
- (부르주아 권력 재편기) '개량적 요구'인가, '혁명적 전망'인가
- (계급이 아닌 시민) '민주주의 투쟁'인가, (노동계급 고유의) '아래로부터의 대대적 파업'인가
- 지배계급의 한 편을 드는 '민족(조국)방어 투쟁'인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계급전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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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9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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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9주기 추모제


○ 박일수 열사 21주기 묘역참배와 합동으로 진행
○ 일시|2025년 2월 8일(토) 오전 11시
○ 장소|솥발산열사묘역(하북면 삼덕로 288)
○ 문의|010-5135-7957         
○ 참가신청| bit.ly/윤웅태9주기
○ 직접 참석 못하셔도 위 링크에서 윤웅태 동지를 기억하는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윤웅태동지정신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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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태동지 글>


만덕5지구와 개발동맹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176438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평의회운동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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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토론회]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계급 투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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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토론회]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계급 투쟁을 위하여!
 
 
<조건 > 
- 자본주의 위기(윤석열정권 위기)와  노동자 운동 후퇴 속에서 
  대중투쟁에 기초하지 않은 친위 쿠데타-탄핵-조기 대선 정세 
 
- 부르주아 정치 일정에 따른 권력 투쟁 단기 정세 (12월~5월)
 
 
■ 1차 토론회
 
일시 : 2025년 1월 23일(목) 오후 7시
 
 
<토론 주제>
1. 극우 세력 등장 배경과 실체
2. 반(反)파시즘-인민전선 (야권 연대) 비판
3. 극우 및 내란 세력(국힘) 청산 투쟁의 한계와 노동계급 투쟁(생존권 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 전망
 
주최 :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  참가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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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反)파시즘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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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918년 11월은 독일혁명이 시작된 해이다.1) 독일 수병들이 시작한 계급투쟁은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종식했다이것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민주당과 같은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 세력과의 동맹이 아니라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유일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다()파시즘은 자본가계급의 자유주의 세력과의 동맹이며이것이 바로 파시즘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독일혁명 이후 106년이 지난 지금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중동 전쟁중국에 대한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흔히 '파시스트'로 불리는 독재 정권이 오히려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를 근거로 정당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한국에서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고바이든은 '민주주의수호를 우크라이나 무장의 정당성으로 삼았고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파시스트군사 작전으로 묘사했다이스라엘은 종종 파시스트로 묘사되는 이슬람 독재와 싸우는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처한다실제로 이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며자신의 적을 파시스트로 묘사하는 것은 적나라한 제국주의 분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위장이다.

 

영국에서는 최근 포퓰리즘 정당인 '개혁당(Reform)'이 부상하고 있는데이 역시 '파시스트'로 불리고 있다좌파는 2024년의 폭동2)이 파시즘이 실제로 활동하는 사례이므로 파시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폭동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국민 소득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년 넘게 감소하고 있다노동자들이 의료 서비스학교사회 복지연금 등에 지불하는 사회적 임금은 모두 감소하고 있으며공공 서비스 회사는 노동계급의 돈을 국제 시장에서 투기하는 데 사용하고강과 해안이 하수로 오염되는 동안 노동자들은 더 높은 요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이러한 위기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일부를 망가뜨리고 있으며이 모든 것을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 탓으로 돌리는 영국독립당(UKIP)이나 개혁당 같은 정당을 지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한국의 극우는 중국과 북한-종북좌파 탓으로 돌림)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분명히 우리에게 빈곤과 엄청난 불평등야만적인 전쟁을 가져온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이다이 모든 것을 이민자와 난민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첫째는 실제 상황을 위장하는 수단이고둘째는 노동계급이 진짜 적()인 자본가계급과 싸우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따라서 (극우폭동은 자본가계급에 도움이 된다.3)

 

자본가계급은 한편으로는 임금을 낮추기 위해 값싼 노동력으로 이민자를 원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진짜 적이 아닌 노동자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에위기의 책임을 이민자에게 돌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자본주의 정치 기구인 좌파의 반응은 어떠한가?

 

노동조합스탈린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자본가계급의 우익과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 여단의 돌격대에 대항하는 행진과 집회를 통해 반파시즘을 기반으로 그들의 세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즉 파시스트에 맞선 동원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그 이론적 정당성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 정치 세력 중 덜 나쁜 세력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좌파의 정치적 조상들은 1920년대 초부터 파시즘이 노동계급을 분쇄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이며, '민주주의'와 '파시즘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관계는 공생 관계이다둘 다 동등하게 싸워야 한다.

 

반파시즘의 논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수호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민주적 부르주아지가 무솔리니의 길을 닦았고독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 노스케와 샤이데만이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가는 피의 길을 닦았으며바이마르 부르주아지가 나치를 집권하게 했다착취당하는 계급에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파시즘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르주아지의 어떤 분파를 지지하기 위한 동원은 단지 잘못된 전략이 아니라 치명적이고 반()혁명적인 전략이다스탈린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타락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이 1930년대에 지지했고오늘날 다시 지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전략이다역사는 이 전략이 어떻게 수십만 명의 프롤레타리아를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도 자본가계급의 권력은 굳건히 유지하게 했는지 보여준다가장 노골적인 보기는 스페인 내전이었다하지만 우리는 또한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의 동원 호소가 반파시즘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혁명적 패전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제국주의 전쟁에서 반파시즘을 기반으로 하는 동원은 혁명적 패전주의와는 정반대이다.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코뮤니스트좌파는 노동계급에 관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사이의 잘못된 정치적 구분을 명백히 거부한다두 가지 모두 자본가계급이 상황에 따라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민주적 방법이 더는 통하지 않을 때 그들은 파시즘을 사용할 것이다.

 

파시즘은 부르주아지 자신이 부르주아 강령을 수행하기 위해 권력을 잡은 소부르주아지 운동이다.

 

이에 대한 가장 명확한 보기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두 나라 모두 제국주의적 목표가 1차 세계대전 후의 합의로 좌절되었고 전쟁 후 위기로 인해 소부르주아지가 파멸했다고 생각한 국가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대표하던 지올리티(Giolitti)가 파시스트 부대에 자유로운 통치를 허용하여 전후 노동계급을 공격할 수 있게 했다이것은 1922년 이른바 '로마 행진이전에 일어났다로마 행진 이후 이탈리아 자본가계급은 무솔리니 정부를 지지했다피아트의 아그넬리(Agnelli), 피렐리(Pirelli), 베니(Benni), 안살도(Ansaldo) 무솔리니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지지한 자본가들의 이름은 마치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유명 인사들처럼 나열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10년 후 히틀러는 민주적 바이마르 정부의 힌덴부르크(Hindenburg) 수상으로부터 정부를 구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이탈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치는 보글러(Vogler,), 티센(Thyssen), 스틴스(Stinnes), 펑크(Funk), 크루프(Krupp) 등과 같은 독일 부르주아지 핵심 부분의 자금과 지원을 받았다.

 

일단 권력을 잡은 파시즘은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고 민주주의적 제약을 제거하는 강력한 국가를 통해 운영한다법령으로 통치하고노동자의 정치 및 산업 조직을 분쇄하며이탈리아 유격대나치 돌격대(SA) 또는 이후의 친위대(SS)와 같은 준군사 조직을 이용해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착취에 복종하도록 강요한다동원 구호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구호이며자본주의의 모든 문제점은 부당한 조약유대인이민자다른 인종 등 자본주의 자체 외부의 요인에 대한 비난으로 돌린다.

 

이탈리아에서 반파시즘을 정당화한 자는 그람시였다.

 

보르디가가 이끌던 시기에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은 위에서 설명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했다파시즘은 부르주아지 전체가 노동계급을 패배시키기 위해 채택한 무기로 간주했다이러한 입장의 결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지의 민주적 부문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자본주의 분파들 사이에는 덜 나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 결과당은 계급에 기반을 두지 않고 민주주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반()파시스트 여단인 '인민 자경대(Arditi del Popolo)'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 정당에 대한 파시즘의 공격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우리는 노동자와 그들의 정치 및 산업 조직에 대한 노동계급의 조직적인 방어를 지지한다실제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당원들은 파시스트 부대에 대한 보호를 조직했다보기를 들어파시스트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을 설립하는 데 이바지한 동지 중 한 명인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져 파시스트 중 한 명이 사망했다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에는 브루노 포르티차리(Bruno Fortichiari) 같은 좌파 전사들이 조직한 독립적인 전투 그룹과 지하 조직이 있었다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반()자본주의에 기초하여 파시스트 부대에 맞서 자신을 방어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파시즘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1923년 코민테른이 설치하고 그람시가 이끄는 새로운 지도부에 의해 바뀌었다그람시는 파시즘은 남부의 부르주아 이전 봉건 질서가 북부의 부르주아지 반동 세력과 결합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부르주아 혁명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적 부르주아 세력과 노동자 정치 조직 사이의 동맹이 가능했다이는 코민테른이 1923년 독일에서 재앙을 초래한 '노동자 정부'와 '통일전선'을 지지한 정책의 연장선이었다이 모든 혼란은 무솔리니 독재 정권의 공고화로 이어졌다이를 촉발한 실제 사건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1924년 마테오티(Matteotti) 사회당 부대변인이 파시스트 부대에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이다.4)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파시스트들은 위기를 느꼈다또한노동계급 사이에서 불만이 끓어오르던 시기이기도 했다그람시는 대대적 파업의 형태로 계급투쟁을 촉구하는 대신 의회 내 부르주아 야당과 연합하여 이른바 '아벤티노 분리'5)를 통해 연합 야당을 의회 밖으로 이끌었다의회 보이콧은 6개월 동안 지속되었고무솔리니 독재 정권은 공고화되었다. 2년 후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은 금지되었고모든 주요 멤버가 투옥되었다.

 

스페인에서 반파시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르주아 정부에 합류했다.

 

스페인 내전은 반파시즘이 노동계급에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다.6) 노동자 정당인 스페인 아나키스트스탈린주의자맑스주의통합노동자당(POUM)은 자본가계급의 반파시즘 분파만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부에 들어가 민주적 부르주아지와 함께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 정부가 선출되었다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킨 2월부터 7월까지 113건의 총파업과 228건의 지역 파업이 발생했다노동계급은 반란을 일으킬 준비가 된 상태였다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노동자들은 대대적 파업을 벌여 쿠데타를 무산시켰다쿠데타의 초기 실패 이후 혼란의 시기가 있었고 국가 권력은 무너졌다이 중요한 시점에 국가 권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야 했다계급투쟁은 계속되어야 했고 프랑코 군대에 있던 징집병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져야 했다노동자평의회가 건설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했다대신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카탈루냐 지방 정부의 대통령인 제너럴리타트(Generalitat)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허풍을 떨었고그들은 회원들에게 파시즘의 패배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말라며총파업을 철회했다이후 아나키스트들과 POUM은 카탈루냐 정부에 합류했다카탈루냐의 부르주아 권력은 반파시즘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구원받은 셈이었다카탈루냐 정부에 합류한 지 두 달 후 아나키스트들은 마드리드 정부에 합류했다.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부르주아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참여는 소련 제국주의의 핵심이 되었다이는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세계 대회에서 공식화되었다그 이면에는 제국주의 독일의 위협에 맞서 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과 동맹을 맺으려는 소련의 시도가 있었다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대의가 프롤레타리아혁명보다 우선시되었다.

 

군사 전선은 스페인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로 판명되었다그들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 전쟁의 최전선을 대표했다스페인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과 반파시스트 전선을 형성하는 대신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채택하고 계급에 기반을 둔 우애를 선언하고 공화주의자들과 프랑코 세력 모두에 반대해야 했다.

 

스페인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은 훨씬 더 파괴적인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다스페인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병의 구호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였다스탈린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 지지자들은 어느 제국주의 진영을 지지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민주적 부르주아 세력인 인민전선 지지자들을 결집했다전쟁의 결과는 최전선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대규모 학살점령지에서의 대량 학살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도시와 기반 시설 파괴였다계급을 기반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정치 세력은 1943년에 결성된 이탈리아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이었으며이 당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정치적 조상이기도 하다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전쟁을 양측 모두의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비난하고반대편 병사들 사이의 탈영과 우애즉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을 촉구했다.7) 이들은 반파시스트 투쟁도 마찬가지로 비난했다그 결과 스탈린주의자들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을 게슈타포의 대리인으로 비난하고 사형수 명단에 올렸으며 실제로 일부 동지들을 암살했다.8) 이것은 반파시즘이 부르주아지가 반파시즘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악랄함을 은폐하는 또 다른 보기이다.

 

영국에서는 초기 파시스트 운동이 발생하고 사라졌다가 다른 이름으로 부활했다이들의 힘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1960년대 후반, 1930년대 영국 파시스트 연합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었던 국민전선은 아마도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영국 국민당이나 영국 운동(British Movement)과 같은 다른 단체들은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최근에는 토미 로빈슨 여단이 특히 반()이슬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자본주의 좌파는 반파시즘이라는 대의를 중심으로 트로츠키주의자노동조합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들로 구성된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이러한 운동에 대항했다. 1970년대 후반의 반()나치연맹이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일 것이다오늘날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자'가 그 뒤를 잇고 있다이러한 운동은 주로 좌파 애니메이터를 위한 모집 전선이다사실 영국 부르주아지들은 노동계급 착취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파시즘이 필요하지 않다이러한 운동은 현 시기에는 부르주아 정치의 주변부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러나 반파시즘은 논리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반파시즘 조직은 경제 위기가 심화하여 파시스트 정치 세력이 집권에 가까워질 경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노동자를 모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민전선을 대표한다.

 

노동계급의 역사는 반파시즘이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세력이며오늘날에도 이러한 목적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독재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규모의 동원은 미래의 세계대전에서 싸울 노동계급을 모집하는 데 사용될 이념적 전선이 그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론

 

누군가가 파시즘이 소부르주아지에 어필하는 이유를 물었다이에 관한 토론에서 우리는 경제 위기로 인해 이들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할까 봐 두려워한 결과라고 말했다이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그중에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담당자가 있었고그는 이것이 현재의 해체단계의 결과라고 주장했다현재와 1920~30년대의 유사성에 대한 질문에 관해 ICC는 오늘날의 노동계급은 1920년대의 패배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현재 상황은 유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우리는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이 낮은 시기에 있고 현재는 파시즘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파시즘의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부르주아지는 계급투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파시즘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최근의 폭동과 이에 맞선 시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인종주의적 공격에 대한 반대가 (정치적으로 제한적이지만연대의 긍정적인 표현이며노동계급의 모습에 대한 제한된 프레임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노동계급이 자기 역할에 관한 의식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이 질문은 계급의식에 대한 확장된 토론으로 이어졌다우리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 질문을 어떻게 제기했는지 설명하고 동지들에게 이 주제에 관한 팸플릿을 소개했다우리는 아직 소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계급투쟁이 되살아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우리는 다른 국제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노동계급 투쟁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계급이 겪고 있는 긴축을 제국주의 전쟁 추진과 연결하려는 조치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구성한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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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괄호(  )는 역자

 

1. 100년 후독일혁명의 교훈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8-11-09/a-hundred-years-on-lessons-of-the-german-revolution

 

2. (역자 주) 2024년 영국 폭동은 2024년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영국에서 전개된 극우 반()이민 시위 폭동이다이는 7월 29일 중서부 도시 사우스포트에서 세 명의 어린이가 살해된 사건의 가해자가 무슬림이자 망명 신청자라는 거짓 주장이 유포되어 촉발되었다이 사건은 2011년 폭동 이후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회적 불안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9월 1일 기준 폭동 관련자 1,280명이 체포되었고 약 800건이 기소되었다.

 

3. 영국 폭동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인종주의적 권리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8-11/uk-riots-racist-right-in-the-service-of-capitalism

 

4. 자코모 마테오티(Giacomo Matteotti) 살인 사건: 100년 후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8-29/the-murder-of-giacomo-matteotti-100-years-on

 

5. (역자 주아벤티노 분리는 1924년 6월 10일 파시스트에 의해 의원 자코모 마테오티가 살해된 후주로 이탈리아 사회당이탈리아 자유당이탈리아 인민당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으로 구성된 의회 야당이 1924~25년에 하원에서 탈퇴한 사건이다이 분리주의는 고대 로마의 아벤티노(Aventine) 분리주의에서 이름을 따왔다이 항의 행위는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국가 파시스트당이 전권을 장악하고 이탈리아에 일당 독재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예고했다국가 파시스트당에 반대하는 데 실패했고, 2년 후 하원은 123명의 아벤티노 의원이 직위를 상실했다고 판결했다그 후 몇 년 동안 많은 아벤티노’ 의원이 추방되거나 투옥되었다.

 

6. 스페인 1934-39: 노동계급 투쟁에서 제국주의 전쟁까지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1-09-01/spain-1934-39-from-working-class-struggle-to-imperialist-war

 

7. 1944년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 선언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6-03-01/the-1944-manifesto-of-the-internationalist-communist-left

 

8. 파우스토 아띠(Fausto Atti)와 마리오 아쿠아비바(Mario Acquaviva) 살인 사건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7-28/the-murders-of-fausto-atti-and-mario-acquaviva

 

 

2024년 12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4년 11월 9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은 런던에서 반()파시즘을 주제로 공개회의를 개최했다발제와 토론에서 나온 내용을 여기에 게시한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12-13/anti-fascism-against-the-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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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라덱의 제국주의에 관한 테제(1915)

라덱의 제국주의에 관한 테제(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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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현재 일으키고 있는 전쟁과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제국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 이해는 한 세기가 넘는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그중 많은 부분이 우리보다 앞서 온 혁명가들에게 빚지고 있으며이러한 취지로 1차 세계대전 중에 작성된 아랫글을 번역하게 되었다.

 

이 테제는 원래 1915년 9월경에 작성되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왕국 사회민주주의(SDKPiL)의 '로즈라모프시(rozłamowcy)' 분파(1) 기관지인 가제타 로봇니차(Gazeta Robotnicza : 노동자 기관지)에 게재되었다칼 라덱(Karl Radek), 미치스와프 브론스키-바르샤프스키(Mieczysław Broński-Warszawski), 와디스와프 슈타인-크라제프스키(Władysław Stein-Krajewski)가 서명했다. 1916년 4월에는 안톤 판네쿡(Anton Pannekoek)과 헨리에트 롤랜드 홀스트(Henriette Roland Holst)가 편집하여 침머발트 좌파 독일어 신문인 보르보테(Vorbote : 헤럴드)에 실렸다이 글을 읽은 레닌은 1916년 10월에 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는 장문의 비평문을 발표했다.(2) 그 결과 보르보테는 다시 출간되지 않았다가제타 로보트니차의 테제는 1976년에 영어로 번역된 적이 있지만우리는 온라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따라서 폴란드어 원본과 독일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하여 번역하기로 했다.

 

이 문서를 1915년 11월 니콜라이 부하린이 초안을 작성하고 게오르기 퍄타코프(Georgy Pyatakov)와 예브게니아 보쉬(Yevgenia Bosch)가 공동 서명한 민족 자결권에 관한 테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3) 그러나 이 두 테제가 서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레닌은 부하린 테제에 서명한 퍄타코프와 보쉬에게 불만을 품고 이 모든 것을 라덱의 영향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고읽지 않았으며 공부하지도 않았다그들은 라덱의 말을 두세 번 듣고(그는 오래된 "폴란드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서명했다.” (1916년 3레닌이 A.G. 쉴랴프니코프에게 보낸 편지)

 

물론 오래된 '폴란드병은 민족 자결권에 대한 반대였다이 입장은 1880년대 루드비크 바린스키(Ludwik Waryński)와 그의 '프롤레타리아트당이 처음 발전시켰고그 후 로자 룩셈부르크와 SDKPiL이 받아들였다.(4) 라덱브뢴스키크라제프스키 모두 세기가 바뀌면서 사회주의 정치에 입문한 젊은 세대의 일원이었다그들은 SDKPiL에 가입하여 1905년 혁명에 참여했다탄압에 직면한 그들은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치적 인맥을 넓혔다브론스키와 크라예프스키가 레닌 및 볼셰비키와 긴밀하게 협력을 시작하는 동안 라덱은 독일에서 판네쿡과 브레멘 좌파에 합류했다이미 1912년에 라덱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독일당의 지적 활동은 ... 자본주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 사회주의는 당의 광범위한 서클에서 '현재의쟁점이 아니기 때문에 제국주의적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안으로 간주되지 않는다사회주의는 제국주의 전쟁 선동에 대항하는 구호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답을 찾는다.” (라덱제국주의에 맞선 우리의 투쟁, 1912년 5)

 

라덱과 주변 사람들에게 "대중 투쟁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제국주의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뿐만 아니라 반동 세력과 노동계급 사이 경제적정치적 분쟁은 언제든지 공이 굴러가듯 일어날 수 있다". 2년 후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공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라덱브론스키크라예프스키는 안전한 피난처인 스위스로 돌아와서 가제타 로봇니차를 계속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국제주의자였던 이들이 침머발트 좌파에 합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월혁명이 일어나자 모두 볼셰비키의 편에 섰다. 1916년 6월 크라예프스키가 바르샤바로 돌아왔을 때 라덱과 브론스키는 취리히에서 페트로그라드로 가는 악명 높은 기차 여행에서 레닌과 함께 있었다.(5) 이후 라덱브론스키크라예프스키는 폴란드와 독일에서 코뮤니스트당이 설립되는 과정에 이바지했고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러시아 당에서 활동했다그러나 그 무렵 그들은 민족 문제에 관한 이전 입장을 포기했다(특히 라덱은 1923년 '국가 볼셰비즘'의 옹호자가 되는 등 끔찍한 행보를 보였다). 궁극적으로 반()스탈린주의 반대파에게 다양한 경로로 참여해야 했던 그들은 모두 숙청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전후로 민족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했으며심지어는 레닌(레닌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915년 테제는 당시 그들의 견해를 가장 완벽하게 드러낸 것으로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필자들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시대에 접어들었으며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가 더는 자본주의의 연장이나 확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했다이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는 민족 문제에 대한 맑스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 더는 적절하지 않다민족 억압에 대한 해결책은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고 낡은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체에 대항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에 달려 있다이들은 민족 자결권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제국주의 시대에는 실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국가가 더는 정치 경제적 단위의 성격을 갖지 않는)에도 적용될 수 없는 권리인 타락한 제인터내셔널의 유산으로 간주한다실제로 이 슬로건이 어떻게 사회혁명적 관점을 대체하고 노동계급 운동 내에서 분열로 이어지는지 경고한다그 결과는 오늘날 민족이라는 개념이 많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계급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음을 알 수 있다.(여전히 후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혁명적 소수일 뿐이다).

 

이 테제가 모호한 여지를 남기고 제인터내셔널 언어의 흔적을 보여주는 부분은 민주적 권리’ 또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정치적 조건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관련된 부분이다필자들이 지적했듯이 당면한 요구를 위한 투쟁은 혁명적 관점과 연결될 필요가 있지만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이것이 코뮤니스트 강령을 최소와 최대’ 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6) 사실 러시아혁명은 테제 저자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차르주의 폐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 결과로 이루어졌고전후 혁명적 물결은 처음에는 '무르익은서구가 아니라 '저발전동구에서 촉발되었다. (여전히 제인터내셔널에 남아 있는 개혁주의 영향 아래 있고 더 강력한 자본가계급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집권할 수 없었던 곳에서)

 

그런데도 이 테제는 국제주의 전통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후반부에서는 '억압받는 국가'의 혁명적 성원이 어떻게 민족 자결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준다.

 

디즈바스와 틴코트카 (Dyjbas and Tinkotka)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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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1년 룩셈부르크와 요기헤스가 이끄는 베를린 당 중앙을 지지하는 '자르조도프시(zarządowcy)'등과 중앙과 개인적전술적조직적 이견이 있고 볼셰비키에 더 가까운 '로쟈모프시(rozłamowcy)'로 SDKPiL이 분열되었다이 분열은 훗날 라덱이 당의 재산을 훔친 혐의로 기소되어 1912년 당 중앙으로부터 추방당한 이른바 '라덱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레닌과 판네쿡 등이 라덱의 편에 섰다). 그러나 두 분파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전쟁혁명민족 문제에 관한 입장이었고결국 1916년 11월에 SDKPiL이 재결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 레닌자결권에 관한 토론 요약, marxists.org

(3) 서론에 나와 있지만부하린의 테제는 1915년 코뮤니스트」 지에 실린 적이 없지만여기에서 볼 수 있다: libcom.org

(4) 바린스키와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는 왼쪽 참조: leftcom.org

(5) 라덱은 러시아 입국이 거부되어 스톡홀름에서 내려야 했지만.

(6) 민주 혁명 과거의 강령(PDF로 제공참조: files.libco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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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민족 억압에 관한 가제타 로봇니차(Gazeta Robotnicza)의 테제

 

1915년 9월 9~10일 가제타 로보트니차 편집위원회에서 채택, 1916년 1월 25호 가제타 로보트니차에 게재보르보테, 1916년 4월 2호에서 재발행

 

I. 민족 억압과 국제 사회민주주의

 

1. 제국주의는 금융 자본이 민족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해외 원자재 및 식량 공급원투자 및 시장을 정복하고유럽에서조차 주민의 국적을 고려하지 않고인접해 있고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지역까지 합병하여 더 큰 국가기구를 만드는 경향을 보여준다제국주의는 국가 사이 모순을 심화시켜 공격과 방어의 필요성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후자의 경향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지원받는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및 대륙을 합병하는 경향이 있는데이는 역사적지리적 이유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통치하는 다민족 국가에서만 존재했던 민족 억압이 증가하고 일반화되었음을 의미한다.

 

2. 이러한 민족 억압은 노동계급 이익과 모순된다민족적 억압 기관인 바로 그 제국주의 관료집단은 자국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적으로 억압하는 세력이 되며투쟁하는 지배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피억압 민족에 대항하는 투쟁에 사용되는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따라서 억압받는 민족의 노동계급에 관한 한민족적 억압은 그들의 조직적 자유를 감소시키고 사회적 수준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자국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연대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계급투쟁을 제한한다손과 발이 묶이고 민족주의로 정치적으로 타락한 피억압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무력한 착취의 대상이 되어(임금을 낮추고 파업을 중단함으로써억압 민족 노동자의 위험한 경쟁자가 된다.

 

승리한 국가는 외국 영토를 자국 영토로 강제로 편입함으로써 새로운 전쟁의 장을 만든다패전국은 영토가 경제적군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또는 민족의 복수라는 구호가 패전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에 영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사회민주당은 제국주의의 합병 정책과 그 결과로 발생하는 민족 억압 정책에 전력을 다해 반대해야 한다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식민지 획득이 필요하다는 제국주의의 주장에 대해 사회민주당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서부 유럽에서도 이미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전환할 때가 왔으며사회주의 국가는 저개발 국가에 무관심한 사회 원조를 제공할 수 있기에 사회주의에는 식민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그리고 현재 완전히 실현 가능한 임무는 자본주의 연장이나 확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복이다유럽에서 승리한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 안보그리고 평화 안보를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사회민주주의는 합병은 모순을 악화시킬 뿐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답한다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회민주주의는 민족 억압에 기반을 둔 평화를 만드는 데 관여할 수 없다만약 사회민주주의가 그러한 평화를 지지한다면이는 지배국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억압국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틈이 생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지배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합병을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 정책에 책임이 있고그 정책을 계속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반면 피지배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국 부르주아지와 단결함으로써 지배국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적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따라서 국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국제적으로 투쟁하는 대신 프롤레타리아트의 분열과 정신적 타락이 일어날 것이다그리고 일상적인 이익과 사회주의를 위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완전히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4. 합병에 반대하는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출발점피억압 민족을 폭력적으로 점령하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 출발점은 제국주의 시대에 외국을 억압하고 약탈하는 자국 부르주아지 권리에 해당하는 조국에 대한 모든 방어를 거부하는 것이다사회민주주의 투쟁은 민족 억압을 지배국 프롤레타리아트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하고정치적 분리를 위한 선동 자유를 포함하여 피억압 민족을 위한 모든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구성되는데민주주의 원칙은 어떤 형태로든 힘보다는 사상을 통해 싸워야 한다는 그러한 선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제국주의 억압 정책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거부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이에 맞서 싸우는 사회민주주의는 결코 유럽에 새로운 국경 지대를 만들거나 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진 국경 지대를 다시 만드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자본주의가 독자적 국가 없이 발전한 지역에서역사적 발전은 독립 국가가 생산력 발전과 사회주의 구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이 결코 아님을 보여주었다제국주의 수레바퀴가 이미 형성된 자본주의 국가가 굴러가는 곳에서 제국주의 억압의 잔인한 형태로 자본주의 세계 정치적경제적 집중이 이루어지고 사회주의로 가는 기반을 닦는다사회민주주의는 민족적경제적 억압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이렇게 집약된 결과에 기초하여 피억압 민족과 억압 민족의 노동자 대중을 제국주의를 통해 인류를 사회주의로 인도함으로써 경제적 착취와 함께 민족 억압을 타도할 수 있는 단결된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의 타도를 낡은 형태로의 회귀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과 재건이 아니라 "국경은 없어져야 한다!"라는 호소로 생각할 수 있다면이미 경제적 관계가 무르익은 사회주의 길을 닦기 위해이 과제는 또한 "식민지는 없어져야 한다!"라는 요구를 제기하게 되고이는 제국주의 민족 억압에 대한 우리 투쟁을 상징하게 된다.

 

식민지는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자본에 새로운 이윤을 획득하게 하는 원천이다실제로 자본주의는 원주민 군대를 만들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상대로 현재 경쟁국과 세계 전쟁에서 활용하는 것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을 그들에게 끌어내려고도 한다프롤레타리아트만이 혁명적 투쟁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식민지 확장에 대해 국제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결코 사회제국주의자들 주장처럼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야만으로 퇴행을 의미하지 않는다수년 동안 동방의 가장 중요한 국가들(터키중국인도)에서 자본주의보다 앞서 있는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임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르주아적 요소가 눈에 띄게 성장했다유럽 자본주의의 식민지 확장 포기를 요구하고유럽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젊은 식민지 부르주아지 투쟁을 활용하여 유럽의 혁명적 위기를 심화시킴으로써 사회민주주의는 유럽 밖에서도 사회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는 순간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유럽 및 국내 자본에 대항하는 식민국가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지원하고식민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구적 이익을 위해서는 자국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식민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5. 자본주의의 지형에서 제국주의를 노동자 이익을 위해 재편하거나 군사화를 종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제국주의의 민족 억압 경향을 제거하거나 민족 자결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그렇기에 민족 억압에 대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에 억압받는 대중을 해방하기 위한 사회민주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지배를 파괴하기 위한 사회혁명적 투쟁이어야 한다자본주의 사유재산을 폐지해야만 노동계급은 계급 지배의 일부에 불과한 국가 억압의 동기도 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주의 사회는 억압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국가에 모든 필요를 공동으로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고 모든 시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임무를 결정할 자유를 부여할 것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대중 투쟁의 광범위한 흐름에서 민족적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의 방향은 제국주의 시대의 혁명적 결과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사슬을 부수는 사회주의 혁명기를 준비하기 때문에 이 투쟁을 불확실한 시기로 연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억압 인민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II. 이른바 민족 자결권

 

자결권이 공식적으로 계승된 것은 제인터내셔널에서였다인터내셔널에서 이 개념은 모호한 역할을 했는데한편으로는 모든 민족적 예속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는 것이었고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민주주의가 조국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개별 국가와 관련된 질문의 경우구체적인 내용과 발전 경향에 대한 검토를 피하기 위해 활용되었다세계대전에서 조국 방어 정책의 결과는 제국주의 시대에 이 공식의 반()혁명적 성격을 완전히 명확하게 보여주지만민족 억압에 대한 우리의 투쟁을 분명히 하기 위한 공식으로서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성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혼란스럽게 여긴다제국주의 억압 경향에 대해 날카롭게 표현하면서 반대하고 있기에 일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보기러시아)는 이를 우리의 혁명적 선동에 필요한 도구로 간주한다우리는 그들이 자결권이라는 슬로건을 담은 선전을 통해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적 목표를 충분히 이해하지만이 공식이 제국주의에 대한 우리의 투쟁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결권은 실현될 수 없다.

 

현대 민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에 대한 부르주아지 독재라는 정치적-문화적 형태를 띠고 있다계급으로 나뉜 민족은 공동 관심사도 없고 어떤 공동 의지도 없다. ‘국가적’ 정책은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다이것은 개별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존재와 절대 모순되지 않는다자본의 대중에 대한 경제적 지배와 영향력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관(교회학교언론)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가공하여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의지를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다수 인민에게 강요하고 자본주의 의지를 인민 의지처럼 보이게 한다이것이 바로 현대 민주주의다민족 사이의 관계에서 더 강한 부르주아지 또는 여러 국가 그룹으로 구성된 연합의 이익이 현재 세상을 지배한다자본은 확장을 원하는 지역에서 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을 확보할 때까지 확장을 미룰 수 없기에 수십 년이 걸리고그러한 평화 확장은 종종 다른 자본주의 집단의 상반된 의지에 저항을 받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외국 영토를 합병하는 문제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형태가 제거되고 폭력 규칙이 공개적으로 적용된다여기서 국민투표는 폭력 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공개적인 기만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따라서 이른바 자결권이 요구하는 것처럼 국경을 변경하는 문제에서 민족의 의지가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 지형에서는 실제로 불가능하다.

 

민족의 개별 부분이 이 국가에 속할지 저 국가에 속할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한자본은 국가 경계의 결정을 결코 국민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는 유토피아적일 뿐만 아니라 예외적이고 비민주적이다특정 나라의 대중이 국경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이는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닌 국가 전체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실제로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이 있는 경우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보기를 들어프랑스가 알자스-로렌[당시 엘사스-로트링겐]을 합병함으로써(독일 제국으로 돌아가려는 그곳 주민들이 희망하는 것처럼독일이 프랑스에 보복당할 위험이 있다면즉 독일이 새로운 전쟁으로 프랑스를 위협한다면단순히 알자스 주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에 발언권도 없이 이러한 모든 결과를 프랑스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 자결권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

 

이른바 자결권은 사회주의 아래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열망을 표현하는 말로도 사용된다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우리는 사회주의가 모든 민족적 억압을 폐지할 것을 알고 있다왜냐하면사회주의는 그 원인이 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폐지할 것이기 때문이다사회주의 사회에서 민족이 정치-경제적 단위의 성격을 띨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도 없다사회주의 문화권의 영토 분할이 존재하는 한그러한 분할은 생산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기에 문화 및 언어 단위의 성격만 가질 수 있으며따라서 이 분할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히 개별 민족의 권한이 아니라 ("자결권"이 요구하는 대로관심 있는 모든 시민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사회주의에 '자결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사회주의 공동체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3. 자기 결정권 개념 사용의 전술적 결과

 

모든 유토피아적 구호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성격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퍼뜨리고 민족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그릇된 길로 이끈다이 구호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않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모순으로 파편화된 자본주의의 군사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자신 운명이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대신자본주의가 약소국 국익에 적응할 수 있다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이런 식으로 이 구호는 설파하는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대전에 이르게 된다는 가장 중요한 결과인 사회 혁명적 관점을 국가 개량주의적 관점으로 대체하게 된다.

 

민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피억압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 강령에서 이 구호는 사회제국주의자들에게 국가 억압에 대한 우리 투쟁을 역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감상주의로 제시할 기회를 제공하고따라서 사회민주주의 강령의 과학적 토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신뢰를 약화할 기회를 제공한다실제로 이는 억압받는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달리 자신들은 이미 운명에 대한 자결권을 갖고 있으며따라서 민족의 다른 부분과 함께 자신들의 '공동이익과 의지를 옹호할 의무가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그러나 자결권이라는 구호가 사회혁명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즉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이끄는 것으로 선동적으로 사용된다면(사회주의 사회의 특정 민족 집단이 일반적인 공동의 이익에 대해 자율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그것은 부적절하다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는 이미 가능하지만사회혁명적 계급투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술적 이해관계는 우리 투쟁의 모든 부분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중심사상으로서 사회주의사회혁명이라는 분명하고 희석되지 않은 구호를 뚜렷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4. 역사적 관점에서 문제점 평가

 

맑스가 아일랜드의 해방과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했지만동시에 체코남부 슬라브 등의 독립운동에 반대했기 때문에 18481871년 기간의 민족 문제에 대한 맑스의 입장을 언급하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다오히려 맑스 입장은 추상적인 '권리'를 통해 구체적인 문제에 관한 입장을 공식화하는 것이 맑스주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우리의 테제에서 보여주었듯이 모든 민족적 억압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의 부정적 입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지배계급에 대한 어떤 지원과도 결과적으로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모든 구체적인 민족 문제(알자스-로렌폴란드발칸 문제)는 전체 제국주의 시대의 틀 안에서 이 문제 자체의 구체적인 발전 경향에 기초할 때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결권을 정식화하는 데에 반대하는 맑스주의적 입장을 프루동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프루동주의는 민족적 문제를 부정하고 계급투쟁이 아닌 소부르주아적 결속을 통해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이른바 자결권에 반대하는 맑스주의자들은 민족 문제를 부정하지 않으며 사회주의가 승리할 때까지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을 연기하는 것을 거부한다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프루동주의로 비난받을 수는 없지만자결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방법론은 민주주의 개념을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특징이 있다.

 

5.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와 이른바 자결권 문제

 

폴란드 사회민주주의당은 1893년 폴란드의 경제 발전 경향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폴란드 문제에 관한 입장을 정했다. 1905/06년 혁명이나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명한 사회 계층이 없었다는 점에서 폴란드 역사에서 그 후 20년은 이러한 분석을 확실하게 입증했다. 1896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자결권 슬로건이 제기되었을 때 SDKPiL은 폴란드 독립을 위한 투쟁을 기치에 새긴 폴란드 사회애국주의자들의 구체적인 슬로건과 관련된 입장을 취하지 않기 위해 이를 거부했다.

 

자결권이라는 구호가 사회적 애국주의의 방패막이로 변질하자 폴란드 사회민주주의 대표들은 1903년 강령에 이 구호의 채택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어쨌든 이런 일이 발생했지만한편으로는 사회애국주의에 맞서 우리가 결정적으로 승리함으로써 RSDLP 강령이 이러한 측면을 초래할 위험이 줄어들었고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대중 투쟁으로 인해 의견 차이에도 모든 계급이 함께 모이는 것이 필요했던 1906년에 SDKPiL이 당 전체에 합류하게 되었다더욱이 이러한 강령 핵심은 혁명 기간 러시아 사회민주당 선동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당의 중앙 기관에 우리 대표들이 있었으며선동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혁명 시기에 러시아에서 민족 문제는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그 결과 사회민주주의 입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을 광범위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이 테제에서 일반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정립하고 발전시켰다우리는 1915년 9월 특별 결의안에서 폴란드 문제에 이 입장을 적용했는데이 결의안을 여기에 첨부하여 억압받는 민족 노동자 사이에서 사회혁명적 관점의 선동이 어떻게 수행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III. 폴란드 문제와 사회민주주의

 

1. 세계대전 중 재산 소유 계급 태도는 자본주의 발전이 폴란드 자본주의 이해관계를 서로 대립하는 부분으로 나누고 이를 분리된 세력의 이해관계에 묶어 놓았다는 SDKPiL의 주장이 진실임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었다이러한 독립 투쟁의 무덤은 폴란드 부르주아지들 사이에서 독립이라는 구호를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그들의 전체 전쟁 계획은 한쪽 또는 다른 제국주의 진영의 군사적 폭력에 의해 실현될 뿐만 아니라심지어 폴란드 영토를 그 안에 통합함으로써 제국주의 진영중 하나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폴란드 부르주아지의 모든 전쟁계획은 폴란드 독립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민족국가를 건설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증명했다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모든 국가가 합병과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을 통해 국경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모든 분할[오스트리아독일러시아]에서 폴란드 부르주아지 태도는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국가의 이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고독립에 대한 열망에 대한 SDKPiL의 입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폴란드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 독립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었다이는 분할된 국가들과 폴란드 세 부분 모두 자본주의 통일을 기반으로 생겼으며 다른 모든 민족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국가 틀에서 민주주의경제 상황 개선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수행했다그들은 기존의 국가 경계가 아니라 계급과 민족 억압 기관으로서 국가 성격을 파괴하려고 노력했다오늘날 세계 전쟁 경험에 비추어 볼 때민족적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수단으로 독립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가장 간단한 기초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이 구호는 새로운 제국주의 강대국즉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억압하는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그러한 계획의 유일한 결과는 계급의식 약화국가 모순 심화프롤레타리아트 세력 분열새로운 전쟁 위험을 증폭시킬 것이다.

 

2. 제국주의 국가 중 하나 또는 제국주의 국가 연합의 통치 아래 폴란드 영토를 통일하는 계획즉 폴란드 오스트리아-러시아계가 작성한 것과 같은 계획은 폴란드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제국주의 전리품 중 더 높은 비율을 확보하기 위해 분할 강대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분할 하려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폴란드 땅을 통합하려는 경향은 국가 영토 확장이 필요한 전략적일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차례로 발생시킨다폴란드와 분할 국가들에서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지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폴란드 땅의 통일은 강대국 또는 연합한 강대국 통치 아래 제국주의 정책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는 일반적특히 경제적 이해관계 모두 폴란드 땅을 완전히 예속시킬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토에서 민주주의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이익과 연결된 민족 문제의 유일한 측면인 자유로운 사회 발전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통일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없다.

 

전쟁이 폴란드 영토를 승전국과 소속된 하나의 기관으로 통일할 것인지는 전쟁의 군사적 결과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외교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전쟁으로 인해서 역시 새로운 합병과 폴란드 지도가 새롭게 분할되어 폴란드 땅이 쪼개지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실제로 이러한 새로운 분열과 이로 인한 시장관습 및 법적 조건의 변화가 발생하여 폴란드의 자본주의 발전과 의회 폴란드의 사회주의 운동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는 과장된 것이다폴란드의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발전 수준은 이미 새로운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생산력을 창출했으며폴란드 한 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약화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로 상쇄된다그러나 이러한 적응의 필요성으로 장기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할 것이며그 피해는 고스란히 프롤레타리아트에 돌아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독립적인 완충 지대를 만들자는 생각과 관련이 있는데이는 공교롭게도 작고 힘없는 집단에는 공허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실제로 이러한 구상은 하나 또는 다른 초강대국 블록의 군사 식민지군사 및 경제적 이익 거점외국 자본을 착취하는 영역미래 전쟁에서 전쟁이 일어날 장소가 될 작은 폴란드 식민지국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3. 이로부터 경제적문화적정치적 프롤레타리아트 이해관계가 폴란드 부르주아지 전쟁계획에 관한 모든 지지를 거부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기존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변하지 않아야 하며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전쟁계획을 위해 이를 포기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정당화할 실질적인 효용이 없는 그러한 계획에 대한 지지는 독립적인 계급 행동을 포기하고 전쟁 기간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궁극적으로 이는 앞으로 수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 전술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반면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현시대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폴란드 프롤레타리아트에 분할된 권력이 계급 억압뿐만 아니라 국가 억압의 기관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분할된 국가의 국경 방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폴란드의 새로운 분할이 일어날 때 프롤레타리아트에 발생하는 위에서 강조한 모든 위험에 눈을 감지 말고제국주의의 다른 모든 위험이 사회주의 승리 없이는 사라질 수 없는 것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틀 안에서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4. 이는 전쟁이 제기한 일반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고제국주의 시대에 폴란드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족-문화적 이익이 결실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쟁의 새로운 위험과 부담민족 억압의 새로운 위험으로부터 해방될 사회주의 도래를 팔짱 끼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제국주의는 사회주의적 생산 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발전 단계의 자본주의 정책이다전쟁으로 인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희생세금 부담 증가정치적 반발노동조건 악화 등 전쟁의 모든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이끌 것이며이는 다가오는 역사적 시대를 완성할 것이다전쟁에 맞선 투쟁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도살장으로 보내고민족을 여러 가닥으로 쪼개고민족적 요구를 짓밟고대중을 우매한 소처럼 취급하는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 프롤레타리아에게 보여주고이러한 사람들의 희생강대국 간의 자의적 국가 분할민족 억압의 강화에 저항함으로써 우리는 혁명적 투쟁을 할 수 있도록그리고 프롤레타리아가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정치적 위기가 심화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전쟁 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든아니면 이러한 투쟁이 나중에 일어날 것인지에 관계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분리주의 정책(현상 유지 방어하나의 권력 아래 통일을 위한 투쟁)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폴란드 독립이라는 헛된 꿈을 좇지 않을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의 결과(희생경제적 피해합병민족 억압)에 대한 항의를 제국주의 원인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전환할 것이다폴란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혁명을 위한 의식적인 투쟁무엇보다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특히 분할 강대국 프롤레타리아트와 연대하여 이 투쟁을 수행할 것이다이러한 사회 혁명적 투쟁은 러시아의 차르주의 폐지와 같은 자본주의 틀 안에서 정치적 조건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나 지역지방 및 국가 자치권 확대와 같은 민족적 자유를 위한 투쟁을 배제하지 않는다오히려 혁명적 관점은 즉각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열정을 강화해야 하는데사회혁명만이 계급적-민족적 억압을 완전히 철폐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의식이 계급투쟁을 약화하는 모든 정치적 타협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제타 로보트니차(Gazeta Robotnicza) 편집위원회

칼 라덱미치스와프 브론스키-바르샤프스키그리고 와디스와프 스타인-크라제프스키(Karl Radek, Mieczysław Broński-Warszawski and Władysław Stein-Krajewski)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10-29/radek-s-theses-on-imperialism-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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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생계비 위기 = 자본주의 위기

생계비 위기 자본주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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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삭감불안정한 일자리무너지는 보건 서비스학교 교육의 붕괴인플레이션광범위한 빈곤과 나라 전체가 겪고 있는 박탈감 등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물론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다양당 모두 너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자신들의 주변에 재난이 쌓이고 있는데도 바보 같은 문화 전쟁 문제로 경쟁하기를 선호하고 있다수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기꾼들은 공금으로 주머니를 불리며 오물을 우리 수로에 버리고 있고수십 년 동안 방치해 온 탓에 학교는 문자 그대로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으며이제는 기본적인 상품들도 비싸져 살 여유가 없게 되었다이러한 붕괴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이러한 붕괴를 주도하는 것은 무엇일까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임금으로 생계비를 사용하는 노동계급은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을 살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고생산 현장에서 노동계급에서 최대한 많은 가치를 창출하려는 자본가계급에 의존한다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받는 임금과 노동자가 일하는 동안 창출한 가치의 차이에서 자본가의 이윤이 나온다따라서 사장과 정부는 항상 노동계급에 분배되는 부의 비중-이는 임금의료 서비스 혜택교육 또는 기간 시설 등의 형태를 가진다-을 최대한 줄여서 이윤을 늘리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보기를 들어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 수준은 불필요한 사치로 취급되는 반면에, ‘산업 안정화라는 말은 노동자의 생활에 새로운 공격이 밀려온다는 것을 의미한다장시간 노동저임금노동 강도의 증가 그리고 노동조건과 생활 조건은 점점 더 악화해 간다노동자가 집에서 매일 창출된 가치를 소비하는 시간은 사장을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줄어들게 된다.

 

모든 산업은 일정 이윤율 이하로 떨어지면 버려지는 것이 공정한 게임으로 여겨진다최근 윌코(Wilko)의 사례처럼버려진 기업들의 부품은 빼앗기고 노동자는 해고당하고 있다자본은 우리가 개인적인 삶에서 가능한 한 적은 금액으로 만족하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주정부 재원을 샅샅이 뒤져 학교병원주택으로 자금을 갈취하고 있다여러분이 가는 공적 공간 어디든지 가릴 것 없이 점점 상업화되어 가고 있으며이전에는 신성불가침이었던 국가기관들이 파멸 직전에 있다.

 

생활 조건과 실질 임금의 하락은 무능이나 탐욕 때문이 아니라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을 추가적으로 빼앗기기 때문이며애초에 노동자가 자기 노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겼기 때문에 가능해졌다자본은 노동이 필요하고자본은 노동계급의 착취를 통해서만 유지하고 성장하지만노동은 자본이 필요 없다만약 세계의 노동계급이 이윤 대신에 필요를 위해 산업을 통제하고 생산한다면노동계급은 자기 삶을 집어삼키는 무의미하고 잔인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화석 연료 시설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다에 버려지는 운명으로 만들기보다는우리는 자본에 의해 낭비되는 엄청난 생산 능력을 자본이 고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의약품식량주택이 부족한 것은 과거의 일이 될 수 있다하지만 우리가 사장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일하는 한의약품식량주택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품이 될 것이다전 세계에서 고조되고 있는 곤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분명히 더 악화할 것이다노동계급이 자본에 의해 자기 삶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노동계급은 자기 요구를 해야 하고노동자로서 이 썩어가는 체제에 맞서 자기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

 

2023년 11월 18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11-18/cost-of-living-crisis-capitalis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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