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자유로운 영혼

[코뮤니스트 17호] 그람시: 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

그람시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

photo_2021-01-02_12-31-19.jpg  

머리말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한 신화는 끝이 없다가장 큰 신화는 공장점거 운동의 영웅이자 신질서( L’Ordine Nuovo)의 창시자이며, 1921년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PCd'I)의 창설자라는 것이다이 신화를 바탕으로 전후 개량주의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PCI)의 이론가들은 그람시의 이론적 개념과 범주를 사용하여 '유로 코뮤니즘'을 정당화하거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실패한 시도로 러시아 블록에 대한 충성을 회피했다하지만이탈리아에 국한되거나 소련의 붕괴와 유로 코뮤니즘의 소멸로 사라지기는커녕그람시의 방대한 저서는 이제 전 세계 학술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언어학에서 인류학을 거쳐 정치학사회학, '교차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람시의 헤게모니 사상, '수동적 혁명', '현대 군주론', '진지전', '실천철학'은 객관적인 사회 현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회를 개인의 집합체로 환원시키는 탈()진리 시대에 번성하고 있다오래된 자본주의 중심지에서 산업 노동계급이 파괴된 후이 모든 생각은 노동당과 같은 이전에 계급에 기반을 둔 정치 조직의 재구성을 합리화하고 스페인의 포데모스나 그리스의 시리자 같은 자본주의 좌파의 새로운 포퓰리즘 운동에 기여하는 일에 이용되었다후자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에 관계없이그들은 대중의 노동계급 혁명이 가능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을 전복시키지 않고 국가의 역할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시위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가 선거 지원으로 지지받는 기존의 정치 체제 내에서 일련의 운동과 동맹을 통해 점진적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는 공통된 견해를 공유한다.

 

이전 시대에-자본주의의 현재 축적 위기의 첫 번째 단계에서 노동계급이 사장의 공격에 저항하도록 자극받았을 때 자본주의의 좌파 정치 현장에서 아이콘의 무언가가 된 것은 또 하나의 그람시였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를 거치면서 1920년 토리노 공장점거의 대변자였던 신질서의 그람시가 공장점거와 노동자 협동조합의 급증으로 노동계급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자 아나키스트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열정이 불타올랐다우리가 이탈리아 좌파의 전통에 익숙해지기도 전에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과 그 전신인 혁명적 전망(1970년대 초)의 첫 번째 과제 중 하나는 노동계급이 작업장을 장악함으로써 코뮤니즘을 창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항하고 자본가계급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단순히 앞과 뒤로 움직이는 국가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그람시와 동시대에 살았던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은 자신의 언어로 "10월 혁명의 불길로 촉발된 혁명적 시기를 공유했다." 그는 그람시가 신화든 아니든 당대의 노동계급에 남긴 유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맑스주의의 훼손과 코뮤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모호함그리고 정치적 계급투쟁의 본질에 대해서무솔리니 정권이 무너지고 '일두체'가 1943년 말에 혼란스러운 북부 이탈리아에서 나치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을 때데이먼은 노동계급의 혁명적인 정치 조직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었다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은 국가자본주의 러시아가 자본주의의 경쟁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일부임을 증명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설립되었다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미국이 지원하는 당파에 등록시켜 '민주적인 이탈리아'를 위해 '독일 나치'와 싸우는 대가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예우를 표시했다. (그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데이먼은 톨리아티 암살단의 표적이 되었는데 그의 동지인 마리오 아쿠아비바와 파우스토 아티와는 달리 살아남았다.) 물론 이 시기에 그람시는 사망했지만, PCI가 이탈리아 국가자본주의 정치경제 구조에 대한 완전한 수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은 주로 그의 사상과 점점 더 신화적인 인생 이야기였다. (실제로 1944년 러시아 망명지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 톨리아티의 '살레르노 전환'은 PCI를 국가 통합,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PCI 당파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사회주의를 위한 무장투쟁'을 포기했다이는 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을 점거하고 현상 유지로의 복귀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토리노밀라노제노바에서 무장한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에 다시 참여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영미 제국주의의 입맛에 맞았다.

 

PCI가 이탈리아 자본의 정치 체제 일부로서 전후 역할에 정착함에 따라데이먼은 1921년 리보르노에서 설립된 맑스주의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과 같은 혁명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을 고찰하고 있었다현재의 책은 데이먼이 수년에 걸쳐서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분석적이고 실제적인 맑스주의자로서 그람시의 단점에 대한 고찰의 산물이다책이 완성되기 전에 그는 사망했고 초안은 사후에야 발견되어 1982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구조가 느슨하다지식인의 역할그람시의 역사관에 대한 크로체(Croce)의 영향 등과 같은 주제 중 일부는 현대 독자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그람시의 글에서 계급역사의 비극적인 주인공그들의 경제적 이익사회적 관계의 복잡성진보와 쇠퇴의 역학관계는 단지 그림자로 표현되지만반면에 개성과 학문 그리고 개인에 관한 측면이 지배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데이먼의 관점은 맑스주의 이론의 진보가 단순히 영리한 개인의 추상적 비평의 산물이 아니라 계급적 신념을 변화시킨 누군가에 의해 종종 만들어진 노동계급의 경험과 지속적인 상호 관계의 일부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다. ("자본을  썼던  바로 그 사람이 코뮤니스트 선언과 노동자 인터내셔널 연설문도 작성했다.")

 

그람시의 초기 신질서」 시기(1919년 5월부터 1920년 가을까지)와 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화신으로 칭송되었던 대중 공장점거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데이먼은 그람시의 환상에 대해  전형적으로 관대하면서도 그들에게  공감하지는  않는다그는 역설적으로 코뮤니스트  지오반니 파로디(이탈리아 사회당(PSI)의 기권주의 분파선거 참여에 반대)는  "국가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고 기업가 아그넬리는 피아트의 사장으로 남아있는 동안 전무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패권적 역할을 위한 일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에 주목한다그러나 동시에 기존 국가 내에서 노동자 통제의 전후 PCI의 그림과는 달리 그는 그람시가 노동계급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기능으로 적어도 공장 위원회를 구상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1920년 11월 말 이몰라 협약이 체결될 즈음에 신질서」 그룹은 해체되었지만그는 그 흐름이 리보르노 이전의 정치 오리엔테이션 회의에 동등한 조건으로 참석했다고 관대하게 주장한다당시 정치적으로 고립된 그람시는 아마데오 보르디가가 '코뮤니스트-사회주의분파를 만들어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최대주의'와 근본적인 단절을 촉구하는 것을 지지했다그러나 그람시는 리보르노 대회에서 거의 일주일간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옛 토리노 그룹 중 오직 테라치니(Terracini)만이 강단에서 공장 평의회가 아닌 코뮤니스트 분파에 대해서 연설했다. (타스카와 톨리아티와 같은 그룹의 다른 주요 구성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PSI와의 분열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1919년에 설립된 코민테른의 규율)이 이탈리아당에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일어났다보다 근본적으로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어느 조직이 혁명당을 구성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을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었다새로운 코뮤니스트당을 위한 혁명적인 맑스주의의 틀을 만드는 것은 보르디가에게 달려 있었다그 당이 결성되었을 때고립된 볼셰비키당에 의한 코민테른의 지배는 이미 반()혁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데이먼은 왜 '리보르노 좌파가 너무 분열된것을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서 러시아가 그람시를 첫 번째로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그는 1922년 제4차 코민테른 대회 이후 모스크바에 남게 되었다보르디가가 1923년 감옥에서 석방된 후 집행부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맡는 것을 거부한 후 결국 그람시는 1924년 5월 당의 효과적인 지도자가 되었다그는 당시 모스크바의 책략으로 직책을 맡은 4명의 신입 회원 중 한 명인 톨리아티가 집행부에 포함되었다그런데도 원래 코뮤니스트당의 '볼셰비키'로서의 그람시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특히 자신의 개인적정치적 삶이 정책의 비참한 결과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데이먼에게 중요한 관심사였다이 사건은 그람시의 약점이 노동계급 내부의 혁명 정당으로서 PCd'I의 소멸과 반()혁명의 과정을 어떻게 촉진하고 돕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모든 혁명가에게 매우 중요하다사실 CWO는 마테오티(Matteott)의 위기 동안 PCd'I에 대한 그람시의 지도력과 조정 위원회의 강령에 관한 두 장의 영어 번역본을 이미 출판했는데,  이는 1926년 리옹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람시와 그의 모스크바 지지자들의 조작에 맞서는 전투에서 패배한 내용이었다. (설명 개요와 함께 이 팸플릿은 여전히 CWO 인터넷 주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학계나 대중적인 오락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1926년 말 무솔리니의 모든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 이후 그람시가 우스티카(Ustica)섬에서 그의 첫 정치적 망명 생활을 보낸 44일간의 유튜브 영화를 볼 수 있다. TV 시리즈 인스펙터 몬탈바노에서 파지오(Fazio)로 널리 알려진 페피노 마조타(Peppino Mazzotta)가 안토니오 그람시 역을 맡으면서이 영화는 '여론 형성자'로서 기획되었다망명한 동료 보르디가와 잠재적인 정치적 논의는 피하고 있다그들 중 누구보다 먼저 그곳에 있었고 빌라 데이먼(Villa Damen)으로 알려진 '사라센 타워'가 즉흥적인 잔치 학교의 장소가 된 데이먼은 언급되지 않았다이것은 사소한 하나의 보기이지만디지털 세계에서 변화하는 지적 풍토에 맞춰 그람시의 이미지가 지속해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그러나 데이먼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계급 정치 운동은 결코 일반적인 지적 풍토의 일부로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람시를 다시 읽는 것은 그의 가르침의 이름으로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것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의 그람시주의는 개인과 정치적 혼란을 가중하는 연쇄효과를 가진 세계적인 지적 집착이다. 21세기의 혁명가들은 거짓된 친구들을 인식하고 자본주의의 종식에 대한 열망을 국제주의 노동계급의 입장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노동계급 내부의 정치적 흐름으로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를 존속시키고 부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에 대한 이러한 개요가 출발점이다그리고 그 누구라도 이 책이 읽기에 쉽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9년 7

E. 레이너(E. Rayner)

 

 

 photo_2021-01-02_12-36-59.jpg

 

서문

 

그람시의 시간

 

그가 그럴 자격이 있든 없든, 10월 혁명의 불길에 의해 촉발된 혁명의 시대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람시의 운명을 분명히 부러워할 수 없다그의 개인적인 삶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받아들이고 혁명이론을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의 투사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이념적인 속임수의 수단으로 바꾼 당의 기구에 의해 이용되었다.

 

그의 삶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에 유난히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일부로 기억되지만특히 초기 전후의 경제적정치적 위기에 대한 혁명적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파시스트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있었던 코뮤니스트당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그람시의 희생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인들이 홍보하는 그람시는 그들의 정치적 이미지와 그들에게 어떤 오래된 헛소리도 흡수할 준비가 된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 무리 사이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름과 대의명분에 대한 그들의 필요에 맞게 조정되었다혐오감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그러한 필요성은 지난 20년간 책 시장을 포화시켰던 점령된 전기 작가와 논평가역사가와 지리학자문학 비평가심지어 함께하는 시인들을 대신했다이 점진적인 그람시에 대한 재구성은 그에게 가장 해로운 이데올로기적 프로필 중의 하나를 갖게 되었지만글을 쓰게 한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프로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람시를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서그가 가장 큰 정치적 성숙기에 도달한 시기를 공유하고 그 이후 그의 후기 저술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우리는 오직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그람시의 작품은 그의 해석 방식이 제공하는 도구나 그 자신의 목표 측면에서 볼 때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지도 않았고 맑스주의 사상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발적인 문제들과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절박함이 그에게 팽배해 있었지만그런데도 그람시는 마치 자신이 앞으로 심각하고 지속적인 실천적인 방법을 찾음으로써 그의 신체적인 장애를 보충하고 싶은 것처럼 열정적인 창의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이상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신화에 의해 생성된 철학 사이에서그람시는 분명히 전자에 해당했지만실제로는 교육취향 및 경향 면에서 후자로 기울어졌다어쩌면 그람시의 성격과 그 불완전성그의 이론적 방법의 단점과 정치적 계획의 경험주의에 대한 이 논쟁은 기회주의가 어떻게 계속해서 자신을 정당화할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어쨌든 "좌파지성주의의 해부학적 표에 있는 그람시의 이 놀라운 생체 해부는 맑스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방대한 가정과 관점들을 밝혀냈다여기서 빠르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1차 세계대전에 직면하여 그람시는 전쟁의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문제에 대한 혁명이론의 발전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부여한 레닌과 룩셈부르크와 달리 계급적 관점과 혁명 전략 측면에서 제국주의의 현상을 감지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1914년 10그람시는 일 그리도 델 포폴로 [인민의 외침]에 등장한 전쟁의 문제에 대한 그의 첫 번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작성했다.

 

"...역사를 사회의 다른 능동적수동적 세력에 대한 일종의 중단 없는 공격으로 구성된 자기 의지력 창조로 생각하고마지막 단절(혁명)을 위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준비하는 혁명가들은 '절대적 중립'이라는 잠정적 공식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중립'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솔리니를 파시즘의 논리적 서막인 혁명전쟁 이론으로 이끈 것은 이러한 "적극적이고 효과적인중립이었지만그것은 그람시를 혁명적 패전주의 이론이나 실천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더욱이 그람시가 자유에 대한 개념뿐만 아니라 크로체의 역사주의(정신의 창조로서의 역사)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념적인 용어 외의 어떤 것으로도 맑스주의를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실제로그람시는 10월혁명(라반티!(앞으로) 1918년 7월 25)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그람시는 "역사의 발전은 모든 기존 구도를 무너뜨리는 역사의 내재적 힘"이라고 하는 자유의 리듬에 의해 지배된다"라는 글을 작성했다."

 

그와 같은 관념론적 성향으로 인해 그는 평의회가 자본주의의 줄기 위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객관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지만혁명당 건설의 역사적 필연성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

 

우리가 리보르노 및 리옹 대회에서 처음으로 알았던 사람그리고 마테오티 살해에서부터 예외적인 법에 이르기까지 당을 주도했던 후기의 그람시는 훨씬 덜 독창적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자생주의와 개성의 역할

 

같은 과정의 순간으로서 당과 계급의 구별을 명확히 하기 위해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1902)에서 카우츠키의 사고에 대해 잘 언급한 것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그는 경제주의 및 자생성 경향에 대항하는 날카로운 반론을 정당화한다카우츠키는 "사회주의 의식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직접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서로 나란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제에서 일어난다현대 사회주의 의식은 심오한 과학적 이해에 기초할 수 있을 뿐이다사실 현대 경제 과학은 현대 기술과 함께 사회주의 생산을 위한 조건 중 하나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느 것도 만들 수 없다과학과 기술은 모두 현대의 사회적 과정에서 발생한다과학을 깍아내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식인들인데비록 현대 사회주의가 이 사회 계층의 일부 구성원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중 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일부 구성원들에게 그것을 전달했고프롤레타리아트는 조건이 허락하는 곳이면 어디든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에 도입했다따라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유입되는 요소이지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요소가 아니다."1)

 

이는 레닌이 확인시켜 준다.

 

"모든 국가의 역사는 노동계급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노동조합 의식즉 노동조합에 결합하고 고용주와 싸우고 정부가 필요한 노동법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만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사회주의 이론은 지식인들에 의해교육받은 대표자들에 의해 정교화된 철학적역사적경제적 이론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의 사회적 지위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맑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이었다같은 방식으로러시아에서 사회 민주주의의 이론적 원칙은 노동계급 운동의 자발적인 성장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발생했다그것은 혁명적 사회주의 지식인들 사이의 사상 발전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났다."2)

 

분명히 그 질문은 전형적인 반론처럼 극도로 광범위하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었다그러나 논쟁의 영지가 있는 진리는 항상 부분적인 진리일 뿐이므로 배제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더욱 보편적인 진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그들의 '궁극적인 의식'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주의 의식만을 정교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사회주의 의식을 전달하는 과학기술에 정통한 부르주아 지식인들 사이의 엄격한 구분으로 문제의 조건을 축소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이것은 결국 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근본적으로 이원적인 학문적 결론에 빠지게 될 것이다비록 그들이 서로 다른 전제로부터 생겨났지만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여전히 하나의 과정계급의 존재-의 두 가지 얽히고설킨 순간의 결과이다.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과정에서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인간의 힘이 그것에 내재하여 있지 않다면 사회적 과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사회적 갈등과 투쟁 상황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추진되는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비롯된다이것은 다양한 사회 범주들 사이의 분열 의식이 나타나고 결국 계급 적대감으로 결정되는 맥락이다.

 

이론적과학적 지식의 축적은 삶의 질이 점점 더 높아지는 지표로서 인간 지식의 광범위한 증가미각감수성새롭고 미지의 것에 대한 더 예민한 호기심에 대한 필요성 등의 일부이다한마디로사물의 연결고리는 인간 활동의 연결고리와 얽혀 있다사회주의는 아무리 영리한 공식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실험실 연구의 산물이 아니다그것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즉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고 그 자체 모순의 무게로 점차 성장해 온 세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다.

 

자본주의 자신의 경제 조직의 변증법이 사회주의적 결과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면이것은 평등과 자유에 대해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동경하는 인간의 목표이기도 하다보기를 들면맑스와 엥겔스 같은 과학자들이 자본주의 생산의 세계에 대한 비판을 심화시키고 있을 때이러한 부르주아지의 후예들은 부르주아지가 수십 년에 걸쳐 기술적 변화와 과학적 성과를 형성해 온 연구 도구를 이용했다자본주의 생산의 지원 아래 특히 동력의 엄청난 상승이 단순히 자본주의 때문으로 여겨야 하는지 아니면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만큼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 인간 노동에 의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우리가 맑스와 엥겔스의 공헌을 부르주아 출신 학자들의 작품으로 간주했다 하더라도그들의 신랄한 비판과 그들이 고찰하고 있었던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를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면우리는 극단적으로 진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한다'라는 것은 이러한 거장들의 중요한 업적을 과학적 측면과 더불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계급의 대의를 자신의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업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보수적 순응주의에 대항하여 가장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이며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발전을 위한 존재 이유를 인식한 사람들이다그들은 현대사에서 두 기본계급 사이의 억제할 수 없는 투쟁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계급의 의의를 설명하고 혁명적 전복 이론을 발전시켰다자본을 쓴 사람이 코뮤니스트 선언과 1차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연설문도 썼다하나는 다른 것과 분리될 수 없다기본적으로 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이탈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부르주아 문화의 규범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중단했지만노동이 더는 인간에게 부담이 아니라 그의 인격의 자유로운 표현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소외된 노동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맑스엥겔스그리고 후에 레닌과 함께 맑스주의와 연계된 사상가정치가지식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에 그 상황과 그 사명에 대한 의식을 도입하는임무를 갖고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의식의 형성 요소들은 노동계급에 역사적 모체를 가지고 있으며이는 다시 과학적 체계화의 실험실에서와 같이 일부 개인의 의식에 반영되어 있으며따라서 이러한 지식을 계급에 반환하여 그것이 점점 더 분명하고 뚜렷한 방식으로 "목표를 의식할 수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변증법적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그것은 또한 성격의 역할을 정의하는 방법인 것 같다자본주의 내부에서 성숙한 내재한 모순의 역사적 결과로써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생산과 분배그들의 비타협적인 과학적 분석은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적대적인 역할을 강조하도록 이끌었다무엇보다도그들은 혁명적으로 되기 위한 노동계급 사이에서 정치적 무장을 위한 성향을 추정하는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규정하는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계급에 충실하도록 그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을 했다.

 

우리는 반복한다유물론의 초기 논문은 인간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따라서 만약 실제로 이것이 사실이라면무엇보다도 그것은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이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정확하게 결정되는지 이해하는 것만 남게 된다이러한 부분에 관해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정 국가에서 특정한 사람이 확실한 시기에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순수한 우연이다하지만 그가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나쁜 것보다[tant bien que mal] 좋은 것이 더 많았던 것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결국그는 분명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나폴레옹(이 특별한 코르시카인)이 프랑스 공화국의 소모적인 전쟁이 요구하는 군사 독재자가 되어야만 했던 것은 우연의 문제였다하지만 나폴레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다른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이것은 그러한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발견되었다(시저(Caesar), 아우구스투스(Augustus), 크롬웰(Cromwell) )는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물론 맑스는 역사 유물론의 개념을 발견했지만티에리(Thierry), 미그넷(,Mignet) 귀조(Guizot) 같은 영국 역사학자들이 1850년까지 연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그리고 모건이 같은 개념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할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그래서 역사에서 다른 모든 그리고 명백한 사건들과 함께우리가 연구하는 분야가 경제에서 멀어질수록그리고 순수하고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우리는 그 발전 과정에서 오류가 더 많이 드러나고 그 곡선의 흐름이 지그재그로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완만한 추세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더 포괄적으로 취급되는 분야가 경제 발전 추세와 더 밀접하게 나란히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

 

"정신적 또는 사회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의 '성격'은 경제적 발전과 병행하는 인류의 지적 발전의 '평균적선을 외모가 막지 못하는 사건 중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4)

 

이 점에서 레닌의 입장은 훨씬 더 정확한 형태와 의미를 갖는다우리는 이미 레닌이 당대의 경제주의와 자생주의에 반대하여 노동조합주의와 노동계급이 자신의 힘만으로 상사들에 대항하여 수행하는 투쟁에 내재한 근본적으로 협동조합주의적인 위험에 대해 어떻게 경고했는지그리고 어떻게 사회민주주의와 그보다 더 준비된 간부들에게 사회주의 의식을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으로 유입시키는 임무를 맡겼는지를 이미 살펴보았다그리고 일방적이고 제한적인 해석즉 비()변증법적인 해석을 배제하기 위해그의 일반적인 접근법은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경향"이 저지르는 근본적인 오류는 자생성에 굴복하는 것과 대중의 자생성이 우리 사회민주당에 높은 수준의 의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대중의 자생성 급증과 운동의 확산이 클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정치적조직적 작업에 대한 요구는 더 광범위하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러시아 대중의 자발성 급증은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러한 거대한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었다이러한 준비 부족은 우리의 공통된 불행모든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불행이다대중의 급증은 끊임없이 계속 진행되고 확산하였다그것은 시작된 장소에서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역과 인구의 새로운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노동계급 운동의 영향으로 청소년 학생일반적으로 지식인심지어 농민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동요가 있었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그들의 "이론"과 활동 모두에서 이러한 급격한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그들은 전체 운동을 이끌 수 있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조직을 설립하는 데 실패했다."5)

 

진정한 사회주의자이자 혁명적 전위대의 임무에 대한 명확한 비전속에 레닌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이론적인 레닌뿐만 아니라 과학적 인간그의 나라와 노동 대중의 현실과 접촉하고 있는 ― 침략적인 독점자본주의가 부과한 기계들의 새로운 노예화에 직면하도록 밀어붙일 필요와 본능에 의해 러시아 문명이 경제적정치적 중도주의의 마지막 흔적들과 결별하는프롤레타리아트의 원인과 동일시하고오늘날 맑스주의의 이론적 정확성의 증거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혁명적 투사이기도 하다한마디로이는 맹목적인 직감과 비합리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투쟁에서 대중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은 투사이다이 경우 레닌은 집단적 열망의 구현으로서 이론강령과 구조 측면에서 그가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당과 하나이다무엇보다도 그들은 모두 그들이 대표하는 계급과 하나가 되어서당은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노동계급이 추구하는 가장 높고 완전한 "최종 목표에 대한 의식"을 표현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발전 수준이 어떠하든노동계급 자신에 대한 의식과 혁명적인 임무는 무엇보다도 전체 운동을 지휘할 수 있는 상설 조직의 대변인으로 인정받는 그러한 개인들에 의해 분명하게 표현된다.

 

<>

1)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참조

2) 앞에서 언급함

3) 엥겔스사회주의 학자, 1895

4) 플레하노프맑스주의의 근본 문제

5) 레닌앞의 책. (영어판 53: 9프로그래스 출판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photo_2021-01-06_12-27-25.jpg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더는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자모치(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871년은 파리코뮨의 해였고인터내셔널 내에서 바쿠닌의 음모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던 때였다. 17살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에서의 억압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취리히대학에서 몇몇 과목들(식물학수학경제학역사 및 법학 등등)을 수학했다. 1897년 그는 '폴란드의 산업발전'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1890년대에 이미 그는 폴란드 출신의 다른 동지들과 함께 제인터내셔널의 오래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했다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발달을 감지할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인터내셔널의 저항에 맞서폴란드의 민족자결권이 더는 의제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용기를 갖고 있었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로 이주하여 독일사회민주당(SPD)에 참여했다독일사회민주당 내부에 하나의 경향이 출현했는데 그 주요 대표자가 베른슈타인이었다그 경향은 자본주의가 다소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옹호했다사실상 베른슈타인은 운동의 목표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룩셈부르크는 그의 답변혁명이냐 개량이냐(1899)를 썼다그 시기 동안에 이미 그는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앞장섰다.

 

1903년 맑스주의의 침체와 진전이라는 글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의 죽음 이후 맑스주의 운동에서의 침체를 비탄하며 새로운 이론적 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맑스주의 자체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룩셈부르크는 1916년 옥중에서 쓴 ()비판의 끝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맑스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혁명적인 세계관이다이는 한번 유용했던 표식에 형식적으로 되는 것을 철저히 혐오하며자기비판이라는 정신적인 격렬한 울림에서그리고 정신적인 천둥·번개에서 생명력을 가장 잘 유지한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뒤이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대적 파업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룩셈부르크는 20세기 계급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 중의 하나였는데이제는 노동자들의 주도성이 특징적인 요소가 되고 계급투쟁은 노동조합이나 당 기구에 의해 계획” 될 수가 없다비록 룩셈부르크가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을 아직 이해하지는 않았지만대대적 파업당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러한 대중 활동을 강조했다계급투쟁의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을 노동조합과 증가하는 독일사회민주당 내부 인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꺾어버리려 했다노동조합 기구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당 내부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한 논쟁을 금지했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대적 파업에 관한 책 출판 후 계급 증오를 조장했다는 선고를 받고 2개월 동안 수감 되어야 했다독일사회민주당의 이전의 지도자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황으로서 알려진칼 카우츠키는 룩셈부르크의 과격한 노선에 점점 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이 시기 동안 룩셈부르크를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 독일사회민주당 안에 곤란을 유발하는 유대인”, “외국인”, 그리고 노처녀라고 비방하는 캠페인과 중상모략이 강화되었다.

 

1907년 점증하는 전쟁위협에 대응하여 조직된 제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레닌 그리고 마르코프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본주의 계급지배의 철폐를 촉진한다는 공통된 지향을 위해 투쟁했다. 1912년 자본의 축적에서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저작 속에 존재하는 한계와 모순을 용감하게 지목했었다그의 책은 아직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의 역할과 군국주의의 특수한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본을 제공한다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쓴 그 책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통찰을 제공한다.

 

1914년 8월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배반이 있자마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유니우스 팸플릿은 그래서 1890년대 이래 새로운 조건을 이해하려는 그의 투쟁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설명하고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도전을 설명하려는 그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1917년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면서 러시아에서 그때 막 시작된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의 분석을 제공했다.

 

룩셈부르크는 유니우스 팸플릿에서 1차 세계대전의 서곡이 되는 과정과 개량주의의 한계를 매우 훌륭하게 서술한다

 

"오늘날 전쟁 탄생의 역사는 1914년 7월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자연법칙의 필연성으로 한 가닥 한 가닥 짜인 제국주의 세계정치의 촘촘한 그물망이 5대륙을 감싸게 되는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이 그물망은 경제발달의 지각 심층에 뿌리를 두고 있는외부 가지들이 희미하게 동터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손짓하는 현상들의 엄청난 복합체이자광대함에 비해보면 죄과와 원죄의 개념방어와 공격의 개념이 공허하게 퇴색해버리는 그러한 현상들의 엄청난 복합체이다."

 

"사회민주주의 여성 운동의 지도자들은 병역을 위해 자본주의 여성 운동과 동맹을 맺었고 민족적 사마리아 작업을 위한 동원 이후 남아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배치했다사회주의 여성 운동은 당을 위한 선동 활동 대신 무료 급식소와 자문위원회에서 일했다()사회주의법 아래서 당에 반대를 표명했던 계엄 상태와 사회주의 언론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당은 선동을 확산하기 위해 의회선거를 활용했고대중에 대한 확고한 세력을 유지했다이 위기에독일의회와 주의회 선거 동안사회민주주의 운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위한 모든 선전과 교육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룩셈부르크가 1918년 11월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지배계급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노동계급에 반대한 그 당의 투쟁 표적을 룩셈부르크로 삼았다. 1918년 12월 베를린 노동자평의회에 그와 독일 노동계급의 가장 유명한 혁명가 중 하나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핑계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18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관해 행한 연설에서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혁명이 테러로 복귀할 수 없으며 노동계급 전체의 모든 에너지와 의식을 동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매우 교활한 적()에 대항한 재빠르고 쉬운 승리라는 당면(當面)주의적 환상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극소수 중의 하나였다결국그를 겨냥한 중상 비방 캠페인은 1919년 1월 그 극에 달했다. 1919년 1월 중엽 이른바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진압되고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학살된 뒤 룩셈부르크도 암살되었다지배계급은 당시 가장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혁명가 중 하나를 일소해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동지들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오늘날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합니다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사실로 만들며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더는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 1918)

 

로자 룩셈부르크와 민족문제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인터내셔널 좌파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그는 민족문제에서 레닌보다 더욱 명확했다그는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민족자결권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자본주의 쇠퇴민족주의제국주의 등에 대한 그의 교훈은 여전히 혁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그에게 자본주의 쇠퇴기의 민족전쟁은 더는 가능하지 않다그는 민족의 이익은 단지 대중을 오도하고그들의 숙적인 제국주의에 도움이 되도록 유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제사회주의는 동등한 권리와 더불어 자유롭고 독립적인 민족의 권리를 인정한다그러나 사회주의 자체로도 그러한 민족을 창출할 수 있고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가져올 수 있다이 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은 다른 모든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조건에 대한 사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혁신적적극적인 정책을 위한 이정표와 원동력과 같다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제국주의 세계정치가 민족의 삶의 안팎을 결정하고 규제하는 한전시든 평시든 민족자결권은 있을 수 없다현 제국주의 환경에서 민족방어전쟁은 있을 수 없다이러한 결정적 역사적 환경에 의존하고전 세계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국가의 관점에서 결정되는 모든 사회주의 정책은 사상누각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유니우스 팸플릿)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교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떤 억압받는 민족도 제국주의 또는 전쟁의 결과로써 주어진 국가에 의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지배계급이 권력 집단에서 그들의 지배적인 동료들과 한통속이 된 약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게임에서 한낱 말에 불과하며그들을 위한 도구로서 전쟁에서 혹사당한그리고 전후에 버려지고 자본주의 이해관계로 인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마찬가지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국제사회민주주의의 과업에 관한 지침)

 

자유로운 국가와 민족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존재할 수 없다그 자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흡수되어야 하며 세계시장에 참가해야 한다이것은 민족운동에서 발생한 신생국은 그 크기 또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제국주의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의 표현이자 자본주의 존립의 최후 국면의 표현인자본주의의 팽창주의적 제국주의는 경제적 흐름을 야기한다전 세계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탈바꿈시킨다모든 구시대적이고 전(자본주의적 생산형태와 사회는 일소된다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부와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대중을 임금 노예로 전환한다."

 

"제국주의는 국가의 어느 하나 또는 몇몇 국가의 창조물이 아니다제국주의는 전 세계적인 자본의 발전에서 성숙이라는 특정 단계의 산물이며국내에서도 국제적인 현상이자 그 모든 상호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그로부터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전체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유니우스 팸플릿)

 

"전 세계 노동자에게는 자본주의 정치적 세계지배의 가장 특색 있는 발현이자 자본주의 최종 단계에서 발생하는 제국주의라는 공동의 숙적이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국제사회민주주의의 과업에 관한 지침)

 

"처음으로 엄밀한 과학적 사상의 목표가 프롤레타리아트와 해방을 위한 길을 밝혀 주었다종파학파유토피아 및 다양한 국가에서 고립된 실험 대신에밧줄을 묶는 것과 같이 국가들을 단결시키는 한결같은 국제적인 이론적 기초가 발달하기 시작했다맑스주의 이론은 전 세계의 노동계급에 매일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확고한 목표이자 최종 목표로의 정도를 항상 나타낼 수 있는 나침반을 제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유니우스 팸플릿)

 

인터내셔널의 반역 이후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노동계급 투쟁을 이끌기 위한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설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노동계급의 목표와 이익에 대해 그릇된 일을 저질렀던 가장 중요한 국가들의 사회주의당 지도부의 반역 이후그리고 그들이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에서 부르주아 제국주의로 이동했던 퇴행 이후전 세계 제국주의에 맞서 혁명적 투쟁 행동을 이끌고 조직할 과업을 가진 새로운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창설은 사회주의에 가장 중요하다." (로자 룩셈부르크국제사회민주주의의 과업에 관한 지침)

 

전쟁 동안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인류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예전의 노동자당에 의한 이러한 배반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 정신의 본보기지칠 줄 모르는 결연함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론적-정치적 분석을 이뤄내는 역량의 한 본보기였다.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전개된 야만성과 당의 배반은 혁명가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그들 중의 일부는 침울함에 빠졌다독일의 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룩셈부르크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감옥에 있었다.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총 3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그러나 그의 결연함을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하려는 것이 수감의 의도였다면수감 된 후 그의 반응은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었다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책자본의 축적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대답으로 반비판을 썼다그는 전쟁발발 전 독일사회민주당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정치경제학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수감 중에 당 학교 교사로서 사용했던 초기의 강의 자료로 정치경제학입문을 썼다그리고 문학과 문화 문제도 다루었는데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서문을 작성했기도 했다그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러시아혁명에 관하여를 작성하고 러시아혁명에서 행해진 실수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최초의 몇몇 중요한 점을 발전시킨 것도 수감 중인 상태에서였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감옥에 갇힌 상태로 고통받았지만이것은 결코 그의 의지를 꺾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없었다그가 수감 중에 쓴 기록들이나 서신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그가 감옥 속에서 다룬 화제의 다양성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일련의 편지는 길들여질 수 없는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종종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하루를 보냅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에 직면하여 룩셈부르크는 스스로 가장 결연한 투쟁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용감한 정신을 유지했다그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인 노력과 다른 열정들(보기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식물학)을 추구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지원망을 통해서였다위장이 약해서 특별 식이요법이 필요했던 그는 감옥 밖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그의 저작들은 반복적으로 감옥 밖으로 밀반출했고이는 때때로 간수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수감 중에 룩셈부르크는 많은 동지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그들에게 충고를 주고 감옥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감옥을 둘러싼 어떤 벽도 그를 침묵시키고 그가 개인에게동지들에게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에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만큼 두껍지 않았다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감옥 밖에서도 '들릴 수있었다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약 천 명의 노동자들(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 감옥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집까지 동행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1919년 1월 15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그 이전 룩셈부르크는 1916년 재투옥되었으며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있었다룩셈부르크는 독일혁명이 시작했을 때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전후 1918년 11월 8룩셈부르크는 석방되자마자 독일혁명의 심장부베를린으로 달려갔다. 1918년 11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군화발로 짓밟았다. 1918년 12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을 창설했다집요한 추적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노동자 탄압 시기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룩셈부르크는 적기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떠나고 싶지 않았지만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벽보의 주제는 섬뜩했다.

 

평화일자리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년 1월 15일 밤베를린의 부촌 빌머스도르프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로 데려갔다범죄자들은 혁명가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재판이 열리지 못하도록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1919년 1월 15추운 겨울밤의 학살

 

따뜻하고 포근한 안개에 둘러싸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의식세계와는 달리 1919년 1월 15일의 밤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길이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었다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군용트럭의 화물칸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거친 폭음을 내며 어둠을 향해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병사 하나가 트럭 위에 올라탔다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그것을 통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룩셈부르크의 기력은 쇠잔해져 있었다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트럭에서 세찬 삭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중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잔인한 눈길을 룩셈부르크에게 돌려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마치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허술하게 만들어진 우리에서 피에 굶주린 짐승이 피를 찾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중위는 피스톨의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촛불은 꺼졌다로자 룩셈부르크는 산산이 부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운하와 동물원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엔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바로 옆의 운하에 멈춰서 있는 두세 명의 병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떠 있었다그곳으로 다가가서 급히 생각이 난 듯 차는 급정거 하였다병사들의 그림자가 한쪽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귀찮은 듯 다리 위에서 운하로 집어 던졌다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어둠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다삽시간에 어둠과 정적만이 감돌았다임무를 다했다는 듯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날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과 함께 전해졌다그가 선동한 군중의 광폭한 노여움에 의해 자기 죽음을 초래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그리고 시체는 무질서한 혼란의 와중에도 분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는 후에 나치 정권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몇 년 후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진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그리고 오히려 독일 국민을 비난했다.

 

이 독일 멍청이들은 무릎을 꿇고 노스케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거리와 광장은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1919년 1월 15일의 살인은 시작일 뿐이었다이후 몇 달 동안 노스케 치하의 수천 건의 살인의 시작이자 히틀러 시대의 수십 년 동안 수백만 건의 살인의 시작이었다그것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신호였다.

 

이러한 잔학행위의 90주년을 맞아 독일자유당은 베를린에 노스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친애하는 기민당 사무총장 포팔라는 노스케의 행동을 공화국의 용기 있는 방어라고 극찬했다. (2009년 1월 11일 베를린 신문 Tagesspiegel에서 인용)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혁명의 와중에()혁명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룩셈부르크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아니면 반혁명 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그 순간까지도 룩셈부르크는 대중을 신뢰하고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그리고 이렇게 썼다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모자랐습니다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습니다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는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입니다대중은 혁명의 최후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입니다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 일환이 되었습니다바로 그래서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입니다." (로테 파네, 1919.1.14.)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칼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 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 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되었다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한때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했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이었지만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배신과 학살로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결국 그들이 그곳에서 나치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한 것이다나치즘의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독일사회민주당은 과거 자신이 룩셈부르크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으로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 되는 운명을 겪었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독일사회민주당(SPD)과 독일코뮤니스트당(KPD), 노동조합에 전가했고독일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독일코뮤니스트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결국 세 곳 모두 결사 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룩셈부르크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 만다결국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룩셈부르크의 묘지는 해방되었고아직도 그의 저작과 사상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 중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운동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를 신성시하고그의 혁명적인 내용을 제거하고비하하고그리고 이 날카로운 혁명가를 무디게 하려고 그를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해서 룩셈부르크는 원래 모습이었던 전투적이고 모범적인 혁명가로 남아있어서는 안 되었다룩셈부르크는 일종의 평화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잘못 전해져두 번 살해되어야만 했다.

 

이 가증스러운 민주주의 선전은 스파르타쿠스 기관지 설립자인 르네 르페브레와 같은 인물들을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작을 한다나중에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집에서 완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머리말을 썼는데그것의 1946년 제목(로자 룩셈부르크는 절대 그 제목을 쓰지 않았다)인 독재에 반대하는 맑시즘은 혁명을 위한 투사를 볼셰비즘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묘사했는데역겨운 거짓말에 불과하다저작집」 서문에서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모든 위대한 맑스주의의 저명한 이론가들칼 카우츠키에밀 반데벨드루돌프 힐퍼딩칼 레너조지 플레하노프는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레닌의 전체주의적 교조가 맑스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반대된다고 비판했다.”

 

스탈린은 레닌을 박제화했으며 그의 사상을 끔찍한 교리로 왜곡했다. "피의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성인(聖人)이 되었다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빠르게 두 개의 새로운 타락하고 상호 보완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한쪽은 매력적인 룩셈부르크주의(민주주의)” 그리고 다른 쪽은 혐오스러운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 정말 동전의 양면 또는 오히려 같은 결과를 가져올 함정으로 향하는 두 입구다. "피에 굶주린볼셰비키를 거부하고 "평화주의자 로자로 묘사되는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철창 안의 사자를 존경하는 것과 같다.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이 사라진 후이 광대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은 다시 발굴되었고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부르주아지가 열광적으로 선언한 이른바 코뮤니즘의 죽음을 부양하기 위해 확대되었다여기에서 공식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가장 큰 거짓말로코뮤니즘과 스탈린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기를 목표로 했다그리고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 "스탈린의 정신적 아버지"인 레닌의 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비열한 선전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안 하든이 가짜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노동계급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후 유럽 전역과 세계 도처에 걸쳐 서점 및 가판대와 블로그포럼에서는 전투적인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다시 왜곡시키기 위해 새로운 가증스러운 선전이 유행했다. TV 프로그램에서부터 룩셈부르크는 다시 "여성"과 "평화"의 특성만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 “맑스주의자와 평화주의자라는 단어의 결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지배계급에 대항한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봉기와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하고 계급전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아동문학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이 룩셈부르크를 볼셰비키와 독재자” 레닌의 완고한 적()으로 묘사하면서 출판되었다.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그를 변환시키기 위한 룩셈부르크의 재조명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중독 사업이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사회가 아니라 더욱더 "민주적인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를 위한 이해관계는 민주적인 부르주아지를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미래가 없다는 논리로 가장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왜곡의 배후에는 코뮤니즘에 대한 불신과 혁명조직을 악마화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혁명가들은 살아생전에는 억압계급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고그들의 이론은 허위와 중상모략에 가득 찬 가장 야만적인 적의와 가장 표독스러운 증오 그리고 가장 파렴치한 구호로 대접을 받았다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변질되어 신성시되거나 결국에는 대부분 그들의 명성이 피억압계급을 회유하는 데 쓰이는 "위안"으로또는 후세에 기만하는 수단으로 숭배되는 등음모의 대상이 된다그와 동시에 그들의 혁명적 이론은 그 혁명적 본질을 빼앗기고혁명적 이론이 지니는 무기로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통속화되고 만다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맑스주의의 변조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레닌국가와 혁명, 1917)

 

지배계급의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였다비록 문명화된 야만인들스스로 민주주의자라 칭하는 이들이 유럽의 심장에서 룩셈부르크를 살해했다고 할지라도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열망의 원천그리고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제국주의 개념국가에 대한 질문 등에 대한 가르침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룩셈부르크는 여전히 계급전쟁에서 살아 있다혁명가들이 살해된 지 104년이 지난 지금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더욱더 강화되고 있지만룩셈부르크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나고 있다.

 

탄압받는 상황에서 자본의 질서에 관하여 쓴 마지막 글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를린은 질서를 되찾았다!” 비겁한 아첨꾼들아너희들의 질서는 모래성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내일혁명은 다시 일어나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고불타오르는 트럼펫 소리가 너희를 공포에 떨게 하며 증명할 것이다.

 

나는 그래왔고지금도 그러하며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24년 1월 15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맑스주의와 섹슈얼리티

맑스주의와 섹슈얼리티

photo_2019-01-08_13-09-42.jpg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핵심에 있는 모순들이 상부구조 차원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이데올로기·문화·언어·조직의 형태들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으며이전 생산양식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인간 활동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특히 자본주의적 모순이 격렬해지는 위기의 시기에섹슈얼리티는 공개적인 정치적 싸움터가 된다멀리서 확인할 필요도 없다. 4세대 페미니즘여성 파업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자들(TERFs),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들(incels) 같은 현상과 정체성성노동대리모가정 폭력성폭력성소수자 관련 분쟁들에서 대립과 적대가 명백하게 부각되고 있다부득이하게 많은 혁명가가 이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데특히 개인적 차원에서 그렇게 될 것이다그렇다면 맑스주의자가 그 모든 지저분한 차원에서 섹슈얼리티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은 단지 추상적인 피해망상이 아니다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다른 곳을 찾을 것이고자본의 우파 또는 좌파(둘 다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의 영향력 아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그래서 우리는 기본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충돌하는 권리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정당이 국가적 억압에 항의하고 저항해야 하는 의무는 어떤 특별한 국가의 권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데이것은 이를테면 남녀의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위한 투쟁이 부르주아 해방주의자들의 운동이 말하는 특별한 여성의 권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이 의무는 계급 체제와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적 지배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한마디로 사회주의의 기본 입장으로부터만 발생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민족 문제, 1909)

 

우파의 것이든 좌파의 것이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충돌하는 권리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적대관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여성의 권리 대 트랜스젠더의 권리세속적 권리 대 종교적 권리재산권 대 노동자의 권리 등 그 어떤 것이든 원칙은 동일하다즉 한쪽의 권리는 다른 한쪽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하며이 도덕적·법적인 체계 안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자유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개혁주의 또는 그들의 파생물들과 같은 부르주아 사고의 다양한 가닥은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지극단적인 경우그것은 사회의 이 부분 또는 저 부분의 근절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했다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질 것이다하지만 인권즉 원래는 인간(남성)의 권리(rights of man)’라고 알져진 것은 17~19세기에는 쇠퇴하는 봉건 질서에 맞서는 가장 혁명적인 개념이었다그러나 이는 국가와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특정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부상과 맞물려 있었다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점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분리에 기초한다이러한 분리의 권리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제한된 개인이 권리가 바로 자유권이다자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실제로 적용한 것이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 권리이다.” (칼 맑스,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1844)

 

맑스주자들로서 우리의 체계는 다르다우리는 상충하는 권리라는 것을 믿지 않으며합리적인 균형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맑스주의자에게 코뮤니즘은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해되는 권리는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권리의 세계는 국가군대경찰법률 시스템의 세계로 이 모든 것은 권리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제도들이다이 모든 제도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분리를 표현한다정의상 권리는 계급 사회를 의미하며계급 사회는 우리가 현대의 억압과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유물론적 관념

 

인권이 실제로 인간들 사이의 인위적인 적대관계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이제 우리는 역사적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체계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우선성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는 생물학적 결정론(보기를 들어 많은 스탈린주의자가 젠더 문제를 다룰 때 보여준 것처럼)과 동일하지 않다오히려 우리는 섹슈얼리티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간 활동으로 간주한다.

 

최근의 추정에 따르면 호모 속()은 최대 300만 년 전에 출현했고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에 출현했다최초의 원시적 성 분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일부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 시대(4만 년 전)로 거슬러 올라간다수렵 채집 사회는 협력과 상호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이 분업 자체가 아직은 남녀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이것이 신석기 시대(12,000년 전무렵 식량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다시 말해 농업의 발달로 전환되면서 바뀌었다정착지가 발달하고 노동 생산성이 증대하고 잉여가 전유됨과 동시에사유 재산이 생겨나면서 최초의 계급 사회가 탄생한다평등주의는 점차 남녀 간의 위계와 불평등한 관계로 대체된다.

 

인류 사회의 천년 역사를 통해 사랑은 단순한 생물학적 본능최상위 생물부터 최하등 생물까지 모든 생물에 내재된 번식 충동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정서적 측면을 획득하는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 발전해 왔다…… 역사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사회는 사랑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합법적인지(주어진 사회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정의하는 규범을 확립했다…… 부족 단계에서 사랑은 혈연적 애착(자매들과 형제들 사이의 사랑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되었다기독교 이전 시대의 고대 문화는 무엇보다도 사랑-우정을 제일로 쳤다봉건 세계는 결혼하지 않은 이성 간의 플라토닉한 궁정의 사랑을 이상화했다부르주아지는 일부일처제의 부부애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날개 달린 에로스를 위한 길, 1923)

 

분업과 재산 관계는 수천 년 동안 아시아적고대적봉건적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거치면서 크게 발전해 왔다이러한 생산양식은 (국가와 종교 단체 또는 사회 자체에 의해종종 잔인한 방식으로 자체적인 성 관련 법과 도덕을 강요했다당연히 이것은 의식적으로나 잠재의식적으로나 현대 섹슈얼리티의 모든 측면에 상처를 남겼다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성섹슈얼리티 또는 젠더에 기초한 차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자본주의는 가부장제우리는 이것을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사회를 부계 권력 아래의 가족 단위로 조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를 약화시켰지만가부장제를 완전히 종식하지는 못했다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유재산과 분업이 폐지된 사회만이 그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이것은 맑스주의자가 오늘날 성적 억압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미래 사회의 옹호자로서 우리는 입에 발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정치적으로 우리는 당대의 성적 적대관계의 사례들을 더 광범위한 자본주의 위기의 상황과 연결해야 한다.

 

혁명운동은 …… 자본주의의 경제적 해체가 초래한 가부장적 가족의 쇠퇴 과정을 완성할 것이다…… 정치적 반동 세력이 반동의 요인으로서 성적 억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 억압을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혁명 정당은 성적 반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회와 자본에 대한 이 반란을 지지해야 한다.” (빌헬름 라이히,성도덕의 출현」(The Imposition of Sexual Morality), 1932)

 

 

재무장한 에로스

 

자본의 좌파와 우파는 계급 사회를 어떻게 관리할지 따라서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그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땜질하면서 문제의 근원이 실제 놓여있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보존하려고 할 따름이다페미니즘과 그 이데올로기적 자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곤경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다고들 한다그러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자본주의를 훼손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으며사회주의 페미니스트조차도 페미니즘을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다시 말해 임금 노동화폐국가의 폐지가 아니라 부의 재분배와 복지 국가를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인류 전체가 나아갈 유일한 길은 착취당하는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국가의 족쇄를 벗어던지는 국제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이윤 욕구의 낡아빠진 압박에서 생산을 해방시키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에 전념하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을 창조하는 것이다생산수단을 공동 소유로 이전하는 것은 일부일처제 가족이 더는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의 최후의 수단은 코뮤니즘이 가부장적 태도를 사회에서 자동으로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이에 우리는 동의할 것이지만요점은 코뮤니스트 혁명 없이는 태도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어떠한 근거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CWO,여성과 코뮤니즘」, 1986)

 

새로운 사회의 청사진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지만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계급이 폐지되면 우리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동료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더는 상충하는 권리와 정체성의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이윤을 위한 경쟁 충동에도 얽매이지 않게 됨으로써미래 사회는 사람에 대한 통치를 사물에 대한 관리로 대체할 것이다상품 교환이나 편견이나 폭력보다는 사랑-동지애와 내적 연대가 성 관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곧 다가올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복 이후에 성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정돈될지 지금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주로 부정적인 특성을 띠며 대부분은 사라질 것에 한정되어 있다하지만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그것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을 때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 사람들이 출현하면그들은 오늘날은 누구나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의 개인적 관행에 대해 자신만의 관행을 따르고 그에 상응하는 여론을 형성할 것이다오직 그것뿐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의 기원, 1884)

 

혁명가들의 임무는 에로스를 사회생활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구성체에 따라 그를 재무장시키고동지적 연대라는 위대한 새로운 심리적 힘의 정신으로 성 관계를 교육하는 것이다.(콜론타이우리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수천 년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다혁명 과정이 끝나면 평등주의와 협력 노선을 따라 노동계급이 사회를 개조하는 과도기가 시작될 것이며더는 물질적 근거가 없는 가부장적 태도는 코뮤니즘이 현실화되면서 세월의 찌꺼기와 함께 휩쓸려갈 것이다.

 

다이즈바스(Dyjbas)

 

2020년 5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옮긴이ㅣ김종원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05-09/marxism-and-sexuality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발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발간
 
 
"현재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진보/좌파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 내부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계급투쟁의 미래는 노동계급이 노동조합과 자본의 좌파를 넘어 자신의 투쟁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조직하는 것에 달려있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 투쟁으로 나타나지만, 투쟁 물결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계급영역 내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인종주의, 민족주의 외피를 쓰고 대중의 심리와 의식을 왜곡시켜,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세계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강요하는 어떠한 희생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침략자든 방어자든 모든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과의 전쟁,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뿐이다.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 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코뮤니즘, 즉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차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 계급투쟁 역사와 노동계급의 길 
‣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코뮤니스트 사회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 제국주의 전쟁, 민족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주의 
‣ 노동조합과 노동자평의회 
‣ 자본의 좌파와 공동전선 
‣ 노동계급과 세계혁명당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관한 질문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 가격 :  1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천 복간 6호]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와 계급투쟁 전망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와 계급투쟁 전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어가며

 

경제 위기팬데믹기후 위기우크라이나 전쟁그리고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은 자본주의가 향하는 길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리 보여준다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가자 지구에서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프롤레타리아트에 폭탄과 총알의 홍수가 쏟아지고 있다.

 

국제 관계에서 부르주아지는 전쟁과 정복 정책을 대표하는데현 단계에서는 관세와 경제 전쟁 체제를 대표하는 반면프롤레타리아트는 보편적 평화 정책을 대표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민족 문제와 자율성, 1909)

 

계급 분열 사회의 결과이자 부르주아지가 발명한 최악의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라는 독()이 양측의 노동계급에 퍼져 서로 공격하고 죽이도록 강요하고 있다양측의 지배계급은 위기를 모면하거나 선거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성급한 결정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그들은 노동계급을 징집해 조국의 이름으로 같은 노동자를 죽이도록 내몰면서한편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대외 조약을 체결하고내적으로는 전쟁경제와 착취 체제 유지를 위한 폭력적 정책을 집행한다이에 맞서 노동계급이 벌이는 전쟁 반대 시위나 경제적 파업은 국가를 배신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즉시 진압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모든 전쟁은 더 큰 폭력의 전조이며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다시 학살이 벌어진 것은 수많은 분쟁 지역 중 하나가 터졌을 뿐이며또 다른 분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전쟁은 자본주의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진다기존 자본에 비해 잉여가치의 양이 감소할수록 이 쟁탈전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1914~1918년과 1939~1945년에는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이 있었고그 후로도 전쟁은 거의 모든 대륙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55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이전보다 약 1/3이 길어진 8~11년을 기록했다이에 따라 올해 초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1)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는 11개의 위기를 지적했다.2) 미얀마아이티콩고민주공화국아프리카의 뿔사헬아프가니스탄레바논시리아예멘남수단나이지리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라크중국인도대만 및 중국해와같이 더 심각한 다른 지역도 추가해야 한다이 중 여러 곳에서 국경 분쟁인종 청소공동체 간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이러한 전쟁은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경제 위기와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시작되며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1. 자본주의 위기

 

1960년대와 70년대 자본주의는 전 세계에서 강력한 계급투쟁의 물결을 경험했다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하면서 부르주아지의 운신 폭이 좁아지자모든 곳에서 경제와 산업의 합리화와 구조조정이 이어졌다레이거노믹스와 대처주의의 형태로 노동계급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 이후자본주의 국가들은 임금이 아주 낮은 국가로 기업을 이전했다한동안 이 정책은 세계화 발전의 하나로 이윤율 하락에 맞서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생산과 축적의 순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체제를 구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모르핀을 투여했다이 정책은 다시 한번 한계가 있었다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융 거품을 걷어내야 했다처음에는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통해 부채 상환에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인플레이션 정책은 통제할 수 없었다이에 따라 2022년 말부터 신용 긴축 정책이 시행되었고현재도 마찬가지이다체제에 산소를 공급하여 경제가 회복될 수 있게 해주던 제로 금리는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신용 긴축 정책으로 대체되었다그러나 이러한 신용 경색은 여러 국가(중국미국영국그리고 곧 프랑스)에서 파산과 부동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3)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다이에 따라 경제사회환경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심화하는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지만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50년 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실패했다오직 전쟁만이 살아 있는 자본과 죽은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이 새로운 순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자본주의는 이제 그 지점에 도달했다게다가 자본주의는 이미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와 생태파괴 등 다른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따라서 이러한 문제와 원자재 부족에 직면하여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길이 열리고 있다.

 

2.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길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 뒤에는 역사적으로 에너지(가스석유)와 전략적 해상 항로를 공급해 온 중동 지역에서의 더 큰 전쟁이 있다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중재로 인도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스라엘유럽 지역 사이의 상품 이동을 가속하기 위해 항구와 철도를 건설하고 개선하는 외교 협정체결 협상을 시작했다이 협정은 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합하여 군사적으로 더 가까워지고이는 미국의 오랜 적(이란과 다른 자본주의 국가(레바논시리아 등)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결국하마스의 공격으로 합의가 좌절되고 무기한 연기되었고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세계에서 권위와 영향력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잠시 물러났다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끔찍한 보복은 중동을 불안정과 전쟁의 시대로 몰아넣고 있다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계속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한다면 서안 지구에도 불이 붙고 헤즈볼라가 참전하고 이란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다이 지역 전체에 혼란이 확산하면 미국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실크로드가 이 지역을 통과하는 중국의 글로벌 야망에도 타격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공격이 도를 넘자 UN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 공격 완화’ 또는 중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하지만그들의 요구는 진정한 평화와는 관련이 없다러시아는 이미 20개월 전 우크라이나를 맹렬하게 공격했고, 1999년에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체첸에서 민간인 30만 명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데도 이 전쟁에서는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중국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더 큰 화염으로 위구르족을 말살하고 대만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동맹국들은 예멘 인구의 학살을 원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공세는 반대하고 있다터키는 쿠르드족을 몰살시키는 꿈을 꾸면서도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고 있다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오늘날 이스라엘과 같은 주장과 방법으로 전쟁을 벌였다이렇게 부르주아 국가 대부분은 전범이다크든 작든강하든 약하든호전적이든 온건하든그들 모두는 실제로 세계 무대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으며모두 노동계급을 총알받이로 여긴다.

 

평화를 위한 부르주아 국가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목소리는 그들의 해결책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두 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믿게 만든다하지만팔레스타인 자치 정부하마스파타는 이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고 있다다른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 국가도 노동자를 착취하고대중을 억압하고전쟁에 나설 것이다지구상에는 이미 195개의 독립 및 자치’ 국가가 존재하며이들은 모두 합쳐서 연간 2,000억 달러 이상을 국방에 지출한다그리고 이 예산은 내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터키-쿠르드족중국대만세르비아-코소보/알바니아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주요 제국주의 열강은 군사 전략과 경제 자원을 위한 전 세계에 대한 영향력 행사하기 위해 작은 국가들을 택하고 있다그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원자재는 분쟁의 핵심인데원자재(희토류 등)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원자재가 풍부한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을 통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이러한 원자재 확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해양과 극지방 근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아프리카에서 연이은 군사 쿠데타는 '후원자'에 의해 부를 착취당하는 최약소 국가들이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사헬(Sahel)의 거의 전 지역이 군사 정권의 통제하에 있으며이들은 러시아 정부의 장려로 반()에코와스(ECOWAS) 블록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미 바그너 그룹을 통해 이 지역에 군사적 거점을 구축한 러시아는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최빈국 6개국에 5만 톤의 무상 곡물과 230억 달러 규모의 부채 탕감을 약속하며 아프리카를 견인하려는 공세를 크게 강화했다프랑스와 미국이 니제르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고니제르의 우라늄 광산은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에 우라늄의 20%를 공급하기 때문에 서방이 싸움 없이 지역 재편을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강대국 간의 동맹을 재건하고 러시아중국이란 등 '제재 대상국'의 반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수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많이 공격했다아직 제국주의 블록의 재건은 윤곽이 나타나지 않았지만주요 구성 요소를 볼 수 있다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성공했고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4) 중국을 둘러싼 다른 블록은 아직 확실하게 통합되지 않았으며현재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공고히 하고,5) 서방 블록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방어하려고 한다브릭스(BRICs) 그룹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아르헨티나를 포함하도록 성장했다이로써 브릭스 회원국은 5개국에서 11개국으로 늘어난다중국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자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유일한 공통점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이 지배하는 국제 질서와는 별개의 또 다른 국제 질서를 제안하려는 야망이다.

 

또 다른 징후는 무역 전쟁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에 따르면 2022년에 3,000개의 새로운 무역 및 관세 장벽이 세워졌으며(2019년의 3), 이는 전 세계 GDP의 7% 감소를 의미한다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주도하고 있으며특히 중국 기술을 약화하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여름 미국은 2024년까지 미국 투자자들이 AI, 양자 컴퓨팅심지어 반도체 등 특정 분야의 주요 부문에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공포했다프랑스는 중국 전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EU를 압박하고 있다.

 

한편 남중국해에서는 분쟁이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지난 5년 동안 미국과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해 점점 더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으며양국은 본토의 침공에 대비해 대규모 훈련과 전쟁게임을 실시했다나토가 즉각적인 살상 책임을 현지인에게 떠넘길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달리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이 처음부터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며그 결과 전 세계적인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위기와 이윤 추구 경쟁으로 인해 제국주의 대립과 전 세계적인 분쟁이 확대되는 것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징후 중의 하나이다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볼 뿐인데도자본주의는 매일 전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그것은 전쟁이 순수한 광기나 어리석은 정치인군부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현재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즉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와 파괴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딘 시기임을 보여준다따라서 적대적인 국가들이 자국 자본의 특정 이익을 지키기 위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 체제가 유지되는 한지배계급 사이의 게임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3. 전쟁과 노동계급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부르주아지는 위험을 관리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제국주의 세력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무기와 탄약을 다시 개발해야 한다.6)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율을 높이면서 전쟁을 향한 길로 계속 나아간다이를 위해 소부르주아와 중산층을 프롤레타리아화하면서 공격한다자본은 이들 계층이 누렸던 '이윤'을 빼앗아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로 고용함으로써 국가 경제를 운영하기 위해 축적된 돈을 다시 한번 빼낼 수 있다이렇게 부르주아지는 전쟁경제 강화를 위해 노동계급을 더 폭력적이면서도 세밀하게 공격한다이미 우크라이나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반격과 생활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노동자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반발하는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는데이러한 대응은 전쟁보다는 경제 상황(임금 미지급)에 대한 반발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세 번째 방사능 영향 구역을 폐지하고 체르노빌 참사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보장(특히 우대 연금학교 어린이 무료 급식 및 기타 수당)을 폐지하려고 한다지난 7월 4주민들은 지토미르(Zhytomyr) 지역의 오브루흐(Ovruch)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우라늄 광석을 추출하는 키로보그라드(Kirovograd) 지역의 노보코스티얀티니브스카( Novokostyantynivska)광산에서도 파업이 발생했다이 광산은 유럽에서 가장 큰 우라늄 채굴 센터이다. 7월 17일부터 광산 노동자들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이 광산에는 약 65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이 중 200명이 군대에 동원되어 있다. 7월 15일에는 여러 공립병원의 의료진이 크리비리(Kryvyi Rih) 시의회에서 우리의 임금!’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그리고 최전선에서는 6월 25바흐무트에서 31 돌격 여단의 두 대대가 전투를 거부했다형법 336조에 따른 동원 회피에 대한 유죄 판결 건수는 연초보다는 덜하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탈주자 수는 20만 명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에서도 비슷하다작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투를 거부 한 약 300명의 러시아 징집병이 루한스크(Luhansk)주 자이체보(Zaitsevo)의 지하실에 구금되었다그곳에서 그들은 위협을 받고음식을 먹지 못하고, ‘돼지라고 불렸으며화장실에 갈 수도 씻을 수 없었으며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5월 17일에는 울리야노프스크(Ulyanovsk)에 있는 UAZ 자동차 공장에서 수십 명의 노동자가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는 정보가 유출되었다가장 격렬한 대립은 5월 24최전선 근처에서 벌어졌다전직 수감자 39명이 리시찬스크(이른바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에 있는 '스톰Z' 훈련 캠프에서 탈옥했다로스토프(Rostov) 지역의 법 집행 기관은 탈주자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수배 통지를 받았다. 5월 27일에는 도네츠크(Donetsk) 지역의 솔레다르(Soledar) 인근 러시아 군부대에서 7명의 무장 탈영병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우크라이나 참모총장의 3월 22일 자작전 요약에 따르면 해병대 155여단에서는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약 220명의 군인이 전쟁 작전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임금 미지급으로 인한 파업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전쟁이 길어질수록 두 나라에서는 탈영뿐 아니라 임금을 둘러싼 더 많은 사회적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이것은 전쟁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전쟁 경제 강화로 인한 긴축과 제한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방향을 요구하고 있다그것은 지배계급이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계급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과 전쟁이 격화될수록 노동계급은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계급투쟁의 전망

 

지난 50년 동안 노동자 투쟁이 쇠퇴한 이후노동계급의 힘은 약화하고 분열되고 전투력을 잃었다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아직은 노동조합의 틀과 부르주아지의 통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하지만노동자들의 불만은 그러한 투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불만이 커지는 만큼 투쟁의 잠재력도 증대된다.

 

1년 전 영국에서 분노의 여름이라는 투쟁이 일어났다영국 노동자들은 이제그만!’을 외치며 30년 이상의 침체와 체념을 딛고 다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이 외침은 국경을 넘어 들려왔다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도 분노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중국한국호주에서도 여름부터 파업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작년 가을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 개혁안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교통교육보건 부문을 하나로 모아 시위를 벌였다프랑스에서는 임금 문제를 둘러싼 시위가 다시 시작되었다스페인에서도 사립 교육 부문 파업공교육 부문 파업바스크 공공 부문 전체 파업연금 수급자들의 시위 등 분노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이러한 투쟁에 직면하여 스페인 언론은 또 다른 뜨거운 가을을 예상하기 시작했다독일에서도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이 증가하고 있다지난봄 철도 노동자와 공항 직원들이 직장을 떠났다도이치반(Deutsche Bahn)에서는 무기한 파업이 계획되었고그 결과 월 410유로의 급여 인상 합의가 이루어졌다.

 

중국도 공장에서의 시위와 파업이 증가하고 있다. 2023년 1분기 동안 2022년 마지막 분기보다 10, 2022년 전체 기간보다 2배 많은 108건의 시위운동이 있었다.7) 이러한 시위는 주로 전자제품의류장난감자동차 등 수출 산업에 집중되어 있다시리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의 격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생계비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남부 지역에서 대규모로 재개되었다. 7월에는 케냐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미국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을 확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현재 파업의 물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 모든 파업을 통해 미국 프롤레타리아트는 민간 부문 노동자들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유럽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는데민간 기업 노동자들은 실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착취 조건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싸울 수밖에 없다미래는 모든 부문에서 함께 단결하여 싸우는 전투력에 달려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세계 노동계급의 불만이 높아지고 전투력을 회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물론현재의 계급투쟁은 연대는 확실히 커졌지만투쟁이 서로 분리되어 진행되는 큰 약점도 드러냈다파업이 동시에 일어나고때로는 거리에 함께 모여 있을 수도 있지만노동자들은 실제로 함께 싸우고 있지 않다노동자들은 단결하지 않았고하나의 투쟁에서 하나의 사회적 힘으로 조직되지도 않았다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생활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이 일어나고 있지만노동조합 주도의 투쟁과 노동자 스스로 조직하고 통제하는 투쟁은 극명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의 물결은 이를 잘 보여준다. '3' 자동차 공장에서 파업이 시작되었을 때파업은 '지정된세 개의 공장으로 제한되었다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하고 분열시키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이었다이 세 공장을 지정한 것은 미국의 주요 노조 중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UAW)였다의도적으로 파업을 노조 인력의 10%로 제한하면서파업에 대한 열망을 강력한 단결과 대규모로!’라는 거짓 외침으로 잠재우려고 한 것은 UAW이다맥 트럭(볼보 트럭노동자들이 투쟁에서 '3'에 합류하려고 했을 때파업 종료를 위한 합의서에 서둘러 서명한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을 흩트리고 있다프랑스에서도 수백만 명이 거리에 모이는 시위에서 노동조합은 전체 조합원이 함께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행렬을 나누어 기업별로 행진하게 만들어노동자들이 어떤 모임이나 토론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나이지리아의 양대 노조는 정부가 공무원 급여 인상과 최저 임금의 소폭 인상경유 인하가스 버스 구매를 통해 이미 비싼 대중교통을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이라고 발표한 후예정되었던 무기한 총파업을 취소했다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급격한 인플레이션(25%)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 조치로 노동자들을 급격하게 빈곤하게 만들고급여에서 대량 소득을 회사특히 석유 산업의 이윤으로 이전하는 긴장된 상황을 정부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그리스호주나이지리아한국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이러한 조직적인 분열을 막고 진정으로 단결하려면노동조합의 지침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통제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일부는 새롭게 깨어나고 있다몇 달 전 프랑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부하고 전쟁경제라는 명목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거부하는 구호가 나왔다. "전쟁에 쓸 돈도무기에 쓸 돈도임금에 쓸 돈도연금에 쓸 돈도 없다." 그리스에서는 9월 21일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행동의 날시위대가 이번 공격과 올여름 그리스를 황폐화한 '자연적재난을 연계했다그들은 아직 소수이지만생활수준 하락에 맞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광범위한 성찰에 참여하고 있다이러한 투쟁이 확산한다면 전쟁과 야만으로 향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노동계급의 세계가 충돌하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나오며

 

세계 경제 위기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과 빈곤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지구를 황폐화하고 기후 재앙을 일으킬 것이며모든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첨예화되는 제국주의 대립과 이윤 추구 경쟁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에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생활수준을 강요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매일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러시아와 서구의 가증스러운 죽음의 도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이제 더 큰 학살의 대재앙이 중동으로 번졌다팔레스타인 지역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가자 지구에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하층계급은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국제기구에서 보내는 부스러기이른바 인도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적대 진영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이 지역은 끊임없는 내전 상태에 놓여 있었고그 결과 양측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폭력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일상적인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극한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은 먼 목표처럼 보인다.

 

상황이 암울할수록 원칙이 없는 정치세력은 행동에 대한 의지가 더욱 절실해지고일종의 정치적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어느 한 편을 지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흔들린다그러한 압박이 심해지면 지금의 투쟁으로 즉시 실현할 수 없고대중의식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하지만노동계급이 방어해야 할가장 중요한 원칙마저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다. 1914년 제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는 지금의 사회민주주의자본의 좌파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경제적 공격에 맞서 싸우는 것과 제국주의 전쟁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연결하지 못했다그들 대다수는 압박이 심해지자전쟁 참전을 찬성해 결국 제국주의 진영의 편에 서게 되었다훗날 침머발트 좌파로 불리는 소수만이 노동계급 전체의 국제적 이익을 위해 국제주의 원칙을 방어하면서 남아 있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는 구호는 1차 세계대전의 대학살 기간에 볼셰비키의 구호가 되었고결국 노동계급에 반향을 일으켜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모든 전투 군대의 봉기그리고 중심 국가의 혁명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국제적인 계급투쟁뿐이다평화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킨다역사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효과적인 반대가 단순한 평화주의 형태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1917년 러시아 노동계급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한 데 이어 독일 노동계급의 혁명적 봉기는 마침내 1차 세계대전을 끝나게 했다혁명과 내전의 위협으로 인해 유럽의 열강들은 마침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학살을 멈춘 것이다하지만결국 자본주의는 살아남았고그로부터 겨우 한 세대 후노동계급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 속에서 다시 한번 수천만 명이 학살당했다노동계급은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는 국제주의 원칙은 모든 곳모든 상황에서 노동계급 국제연대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대재앙의 상황에서 더욱 절박한 국면이 다가온다 해도 대대적인 계급투쟁이 즉시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하지만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기에 세계의 노동자들은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긴축과 착취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의 계급전쟁이다노동계급은 항상 군사적 또는 경제적으로 전쟁의 희생자이다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의 제단에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노동계급은 생활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연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중단했다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화폐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바로 코뮤니즘이다아직은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계급 고유의 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이제 세계 노동계급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감을 되찾고오랜 기간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을 열고 있다세계의 노동계급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 연대하고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반대와 생활수준에 대한 투쟁을 연결하는 것은 자본주의 착취 기반에 대한 타격의 시작이 될 것이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전쟁을 멈추자!

 

2023년 11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ㅣ이형로

 

 

<>

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10210180653078

2) https://unric.org/fr/onze-crises-et-conflits-qui-perdurent-le-monde-en-2023/

3)

https://www.lemonde.fr/en/economy/article/2023/08/29/world-economy-shows-signs-of-slowdown_6114400_19.html

4) https://www.bbc.com/korean/news-58542440

5)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86380.html

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8225&ref=D

7)

https://clb.org.hk/en/content/surge-manufacturing-protests-china-deserves-international-attention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천」 복간 6호가 나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천」 복간 6호

 


□ 권두언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 오세철 

 

□ 특집: 전쟁과 제국주의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와 계급투쟁 전망  / 이형로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과 "다극 세계질서": 스탈린주의 당들의 다극 제국주의 옹호론 비판  / 홍수천 

 

□ 번역
노동자 통제  / 김종원 
러시아혁명 이후 30년  / 정 인

 

□ 이미지에 담긴 작은 역사(4)
일본식민주의와 군사문화의 장면들(1): 예비병정과 남자교련  / 최규진 

 

□ 사실연 지상강좌
노동자를 위한 정치학(6)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배성인 
과학으로 읽는 자본론(6) 자본주의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유 장기이윤율저하법칙  / 김진업
노동자를 위한 회계(6) 자본가의 몫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 한형성 

 

"이른바 사회주의 붕괴 이후 30여 년 동안의 역사에 우리가 얻은 교훈은 남한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증폭된 모순과 격화되는 계급투쟁을 노동자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와 실천이 절실하다. 우리가 보았던 세상과 그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폐절시키고 자유로운 인간이 연합하는 코뮤니스트 사회건설이라는 혁명적 맑스주의자의 전망과 역사적 과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아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심각하게 경험한 팬데믹, 기후 위기, 일반화된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등이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고 있다."  (권두언 중에서)

 

발행 : 사회실천연구소
가격 : 15,000원

 

구입문의 :  sopractice@daum.net
전 화 : 070-4178-1073
팩 스 : 02-749-107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환상에서 현실로의 하강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환상에서 현실로의 하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황이 여전히 유동적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발언, 메모, 평가를 결정한다.

 

한쪽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다른 한쪽은 유대 국가의 보초병이 둘러싸고 있는 반투스탄(Bantustan)1)의 주민들을 향해 공중 포격이 가해졌다. 언론은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혐오하지만, 가자지구에 대한 시온주의자들의 최신식 군사 장비, 즉 속담에 나오는 인간 도살장의 기술을 가질 권리를 열렬히 옹호하는 인도주의자들 앞에 마이크를 들이댄다.

 

이스라엘 장관 갈란트(Yoav Gallant)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365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갇혀 있는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동물’이라고 부른다. 진실은 다음과 같다. 갈란트와 공범들은 실제로 동물 수준보다 낮은 사람들인데,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에게 결코 백린탄을 떨어뜨린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의 동물들이다.

 

하마스는 10월 7일 열광적인 행사에서 260명을 살해하며 이번 사태에 불을 지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가 비군사적 목표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바로 같은 이유로, 프랑스 식민지 정부,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FLN), 군사비밀조직(Organisation de l'armée secrète; OAS)이 알제리 밥엘우에드(Bab-el-Oued)의 유럽 프롤레타리아 출신 노동자들과 아랍인, 카바일(Kabyle)인 등을 분열시키기 위해 암살과 테러를 자행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교전국의 목표는 피착취자들 사이의 우애를 종식시키거나 방해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영구적으로 해체하고 다양한 자본주의 분파의 선동에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극심한 인종적 적대감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식민지 프롤레타리아트와 유대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세워진 경계선을 따르지 않는 목소리에 대한 보복, 침묵(또는 물리적 청산)을 조장하고, 의식을 오염시켜 아랍인과 유대인 노동자들은 각자의 착취자들과 다양한 무장 폭력집단에 더욱 깊은 속박에 놓이게 된다. 이는 고전적인 반란군의 전략이며, 경쟁자 부르주아 갱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식민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을 진압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지난 7월 가자지구에서 프롤레타리아 시위에 대한 탄압은 하마스 경찰이 이스라엘 경찰보다 경찰봉을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G. 무니스(Munis)는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스페인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ETA),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했다. "다른 많은 사기꾼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해방군(여기서는 하마스)이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중앙집권화하여 그들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알제리에서도 몇 가지 구체적인 유사점이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민족 투쟁'이 끝날 무렵, 알제리에서 유럽인(주로 이탈리아, 스페인, 몰타 등)과 아랍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남아 있던 우애와 유대감에 최종 타격을 주기 위해 군사비밀조직(OAS)은 카바일의 시인이자 교사였던 물루드 페라운(Mouloud Feraoun)을 그의 유럽 및 알제리 동료들과 함께 살해했다. 그는 민족해방전선(FLN)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모국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도 글을 썼고, 유럽과 알제리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기 때문에 그를 죽임으로써 OAS는 그가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생각했던 알제의 이민자, 유럽 프롤레타리아들과 아랍, 카바일, 베르베르(Amazigh)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우애를 제거했다. FLN은 또한 알제리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전쟁의 첫 단계에서 유럽인보다 더 많은 알제리인을 죽였다...) FLN 지도자들은 "무장 세력의 방향을 돌리려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에게 부르주아(화해) 정신을 심어주라"는 명령을 내렸다.2) 위에 설명한 목표에 따라 FLN은 알제리 유럽 유학생들이 모이는 카페를 표적으로 삼아 알제리인들에 대한 학살을 유발하고, 알제리인들을 FLN의 품으로 몰아넣고, 훗날의 신화와는 달리, 한때 많았던 다양한 국적의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유대를 끊어버렸다.

 

"1962년 2월 24일, 민족해방전선(FLN)이 밥엘우에드(Bab-el-Oued)의 택시기사를 살해한 후, 피에누아르(pied noir)3) 폭도들이 무슬림 노동자들을 막다른 골목에 가두고 때리고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슬림 노동자들이 유럽 지역으로의 입국을 거부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분리’가 도시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4)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한 동지는 이 전략이 여러 환경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70년대 북아일랜드에서 무분별한 폭력으로 비난받았던 마이애미 쇼 밴드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노동계급이자 ‘비정치적’인 록 음악가로 구성된 밴드였는데, 관광버스가 멈추고 공연이 끝난 후 끌려가 살해당했다. 모두가 그 살인을 비난한 이유는 그들이 분쟁과 무관했고, 가톨릭과 개신교 음악가들로 구성되었으며, 양쪽 공동체 모두 그들의 연주를 들으러 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바로 그들이 경쟁자 종파/민족 집단 중 하나에 의해 살해된 이유이다. 그들은 종파적 폭력보다는 우정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살아있는 증거였으며, 양쪽의 프롤레타리아가 콘서트에서 ‘우애’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2년 봄, 일부 피에누아르가 알제리를 집단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학살당했다. 그러나 피에누아르를 학살했던 그 총은 곧 알제리 프롤레타리아에게 겨누어졌고, 이들은 FLN의 권력 장악을 진정한 승리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본의 노동 착취를 주도하는 식민지 정부를 대체하기 위해 경쟁하는 동안, FLN의 총구는 피에누아르와 마찬가지로 알제리 프롤레타리아에게도 겨누어졌다.

 

관측통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침공이 '팔레스타인 해방'으로 규정될 수 있는 '봉기'라고 말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환호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눈을 가리고 총을 겨누며 세계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민족 투쟁'에 내모는 자본주의 국가와 그 지역 후원자들의 책략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노천 감옥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상대로 새로운 징벌적 원정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냉소적인 도박에 환호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배후(국제적 차원에서)가 분명해지고 있다. 이란 통치자들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정상화'를 방해하고 그 정상화로 인한 지정학적 결과를 침몰시키기 위해 이번 침공을 승인했다. 왜냐하면, 이슬람 공화국은 양국 정상화가 자신들을 더 고립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항모전단을 지중해 동부로 이동시키고 있다. 중동은 다시 한번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을 끌어들이며 또 다른 화약고가 되고 있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현실은 팔레스타인의 억압자 중 일부, 즉 아랍 프롤레타리아에 총을 겨누고 카타르의 호화로운 숙소에서 화려한 지정학적 계획을 실행하는 하마스 지도자 하니야(Ismail Hanieh)와 군사령관 데이프(Mohammad Deif)에 대한 좌파의 ‘연대’라는 순진한 표현으로 계속 가려지고 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을 통해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꽁무니 국가(지하에 안전하게 가려져 있음)의 실제 군사 시설에 닿지 않는 폭탄은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Khamenei)의 유명한 움마(ummah; 이슬람 공동제)의 최하층에 거주하는 불행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데 그치고 있다.

 

또 다른 동지는 네게브(Negev)에서 벌어진 학살을 두고 모호하게 말하는 다른 연체동물 종의 인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살인들은 과거의 범죄 때문에 '더 정당하다'는 생각과, 따라서 비난할 가치가 적다는 생각은 분명히 주술적인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옛날부터 부르주아 혁명과 새로운 착취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수법이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투쟁이 자연스럽게 취하려는 대중 형태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점수 정산(누군가에게 행한 나쁜 일을 피해자가 기억하여 그에 대한 대가로 나쁜 일을 하게 됨)'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혁명가들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정착민'이기 때문에 좋은 표적이며, 아슈켈론(Ashkelon)의 바르질라이(Barzilai) 병원이 '정착민'을 치료하기 때문에 로켓의 좋은 표적이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혁명가들은 "우리는 로켓에 맞아 숨진 정착민들의 죽음에 무관심하다"고 세상에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역겹고 가식적인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수많은 유대인 노동자들을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무관심에 대한 정당화를 거부한다. 혁명가들은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하는데, 이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공격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이유, 즉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때문이다... 살아남아 10월 7일의 이야기를 전하는 생존자 중에는 ‘정착민’(유대인)뿐만 아니라 아랍인도 있다! 하마스의 총알은 그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35세의 파트마 알틀라카트(Fatma Altlakat)는 모샤브 미바팀(Moshav Mivathim)으로 일하러 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남편, 어린 딸, 가자지구에서 온 다른 두 명의 노동자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아라라 위원회(베두인)의 수장 나이프 아부 아라르(Naif Abu Arar)는 Ynet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파트마의 남편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쏘지 마세요, 우리는 아랍인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테러리스트들은 그의 어깨에 총을 쏘고 파트마와 두 명의 가자 노동자를 죽였다.”5)

 

앞서 말했듯이 '무의미한 공격'의 효과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피에누아르와 아랍인, 베르베르인 사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연대를 무너뜨린다. 그들은 계급이나 다른 기반에 대한 연대를 붕괴시킨다. 그들은 식민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민족적, 국가주의적 기반 위에 두고 자율적, 계급주의적 기반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9/11’을 만들어 유대인 프롤레타리아를 유대 국가에 예속시켰다. 하마스는 유대 국가에 반(反)파시스트('이슬람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떠올려 보자) 성전을 효과적으로 선물했다. 이전 십자군 전쟁이 도쿄와 함부르크 폭격6)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10월 7일의 잔혹 행위를 라파(Rafah)와 칸 유니스(Khan Yunis) 폭격의 정당화로 삼는 십자군 전쟁이다. 하마스는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의 시체로 그 땅을 채워놓음으로써 최근 불거진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차질없이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도쿄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쿄 시가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함부르크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

 

모든 '해방 단체'는 자본주의 조직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은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부속물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우스카디(Euzkadi) 부르주아지가 '민족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페인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ETA)의 자본주의적 자격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자본주의 세력으로서의 자격은 '동지적' 부르주아지의 지지가 없을 때, 특히 부재할 때 유효하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완고하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의 창설은 무장 세력의 몫이며 목표이다. 이슬람주의자들과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은 국가 혁명이 먼 훗날 승리하면 경제의 대부분을 민간 부문에 맡기거나 국영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적’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자본주의 행정을 지지하고, 자율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행동의 아주 작은 부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국제주의 계급 강령의 확산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대결은 일반화된 전쟁을 예고하는 경쟁에 뛰어든 거대 제국주의 세력들의 계략과 돌이킬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총알받이가 되어서 얻을 것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세력이 자신들의 착취를 관리할지 결정하는 분쟁에서, 환상에서 현실로 내려가는 것이 매우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2023년 10월 12일

Y.I.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

 

<주>

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백인 정권이 흑인들을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설립한 자치령 및 괴뢰국들의 통칭 <편집자>

2. 앨리스터 혼(Alistair Horne), 「야만적인 평화 전쟁: 알제리 1954-1962」. 뉴욕 리뷰 북스, 2006, 135쪽.

3. 피에누아르(Pieds–noirs; 프랑스어 '검은 발')는 1830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 통치 기간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및 기타 유럽계 사람들이다. 1830년 6월 18일 프랑스 침공부터 독립까지 알제리는 행정상 프랑스의 일부였다. 유럽인 인구는 단순히 알제리인 또는 콜론(식민지 주민)이라고 불리는 반면, 알제리의 무슬림 사람들은 아랍인, 무슬림 또는 원주민이라고 불렸다. 피에누아르라는 용어는 1962년 알제리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알제리 전쟁 동안 피에누아르의 대다수는 충성파였으며, 알제리의 프랑스 식민 통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으며 FLN 및 Mouvement national algérien과 같은 알제리 민족주의 단체에 반대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Pied-Noir) <편집자>

4. 같은 책, 516쪽.

5. "우리는 그가 영웅이며 '많은 시민을 구했다'는 말을 들었다. 살해당한 가족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Ynet, 2023년 10월 8일, https://www.ynet.co.il/news/article/bkm0kvgbp

6. 도쿄 대공습은 일본 본토 공습 작전의 하나로 미군이 태평양 전쟁 시기 자행한 폭격으로, 1945년 3월 9일에서 10일 사이에 대량의 네이팜탄을 이용하여 전략 폭격을 감행했던 사건이다. 이 공습으로 도쿄 중심부로부터 41 km2에 달하는 지역이 파괴되어 약 1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함부르크 폭격은 영국과 미국 공군이 자행한 폭격으로, 1943년 7월 24일부터 8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지속된 가뭄과 폭염이 더해져 폭격 순간 불폭풍까지 발생하면서 총 사상자 수는 사망자 34,000명, 부상자 125,000명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자>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10-12/the-descent-from-fantasy-to-reality-in-the-arab-israeli-conflic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자본주의가 끓는점에 도달하다

자본주의가 끓는점에 도달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가 몇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이 회의는 의심할 것도 없이 공허한 약속과 막연한 변화의 구호만을 만들어 내며 이전 회의의 역사적 실패를 이어갈 것이다.

 

2023년 7월 6일은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가 섭씨 17.08도로 기록상으로 가장 무더운 7월의 날이었다그러나 이 기록은 단지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2023년 7월은 이전의 최고 기록이었던 섭씨 16.8°C를 넘어서 기록상으로 가장 무더운 달이 되었다현재의 추세로 볼 때, 2027년까지 지구 온도는 섭씨 1.5도 넘게 오를 것이 예상되며이 수치를 넘어서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폭염과 기근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자본주의의 유일한 원동력은 이윤을 가능한 한 빠르게 늘리는 것이며이러한 자본주의적 성장이 낳는 죽음과 고통은 단순히 사업을 위한 비용일 뿐이다기후변화협약 회의들에서 나타난 모호한 희망들은지금까지 반복해서 보여주었듯이우리의 작은 삶은 자본의 확장에 직면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어떤 답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기록적으로 무더운 여름에 더 무서운 것은 해수면 온도이다. 2023년 8월 4해수면 온도는 섭씨 20.96도를 기록하며 2016년부터 기록한 이전 기록을 깼다전례가 없었던 해수면 온도의 급작스러운 상승은 이전의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지금과 같이 유지되는 한 내년에도 쉽게이전 기록을 넘어설 것이며앞으로도 매년 기록 경신은 계속될 것이다.

 

인류와 자연에 대한 대재앙

 

바다 온도가 1도 증가하면 해수면은 2.3m 상승하고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이동해야 할 위험에 놓인다. 2050년까지 12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때문에 강제적으로 이주해야 할 것이 예상된다지난 40년 동안 EU 내에서는 홍수 때문에 5,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해수면의 온도 상승은 강수량과 폭풍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홍수는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인류가 마주한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현재 전 세계적으로 18억 1천만 명의 사람들이 홍수 위험에 놓일 것이라 예상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만 아니라우리가 의존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의존하는 자연에도 엄청난 위험을 준다또 다른 연구 결과는 해수면 상승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10,000개 이상의 섬이 늪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이 섬들 가운데 많은 섬이 그 섬들의 면적에 비례해 세계의 식물과 야생 동물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보기를 들어프랑스의 섬들은 지구 표면의 0.08%만을 차지하지만식물의 1.4%, 연체동물의 3%, 어류의 2%, 조류의 0.6% 등을 포함하고 있다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섬들 모두가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위험에 놓여 있다이 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자연과 야생 동물들도 우리 인류처럼 심각한 위험에 빠져있다.

 

우리는 올해 이란에서 발생했던 2일간의 셧다운을 초래한 기록적 폭염지난 50년 동안 극단적인 기후로 인한 약 200만 명의 사망미국캐나다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의 증가한 산불로 인한 인류와 자연에 대한 파괴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모두 멸종될 수도 있는 수백만 종에 관한 이야기 등을 소재로 몇 권의 책도 쓸 수 있다이러한 끝나지 않는 목록들은 지구가 위험 속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그리고 만약 이러한 추세가 지속한다면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본질적인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려는 경향으로 인해서 이러한 추세가 지속한다면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폭풍의 중심에 있는 노동계급

 

모든 사람이 이 상황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지배계급은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단을 갖고 있다생태학적 위기의 직격탄을 맞게 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노동계급과 농촌의 빈곤층이다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참을 수 없는 무게와 그로 인한 결과가 우리의 어깨 위에 무겁게 놓인다면이 체제를 변화시킬 힘도 우리에게 있다이제는 족쇄를 벗어 던지고이 체제를 역사의 길가로 던져 버리고인류가 자연과 인간들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화해시킨 사회인 코뮤니스트 사회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이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9월 4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9-04/capitalism-reaches-its-boiling-poin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7호]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가?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날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인공지능(AI)”이라는 것은 실제로 인간의 지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AI는 막대한 데이터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위한 시스템들의 집합으로모델을 설정하고 조절하고 대조하고 일련의 목표를 설정하여 올바른” 해답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이다.

 

번역의 경우를 보기로 들면, AI는 번역자가 하는 식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AI는 우선 텍스트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다른 언어의 문법과 어휘를 적용하여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그것은 그저 수많은 번역문을 분석한 것에 기초해서, X라는 언어로 된 문장은 Y라는 언어의 또 다른 문장에 상응할 것이라고 통계적으로 예측하려 할 따름이다.

 

GTP 같은 프로그램처럼, AI는 사용자들과 웹브라우저들 사이의 수많은 대화와 상호작용을 샅샅이 찾아낸 후에 질문을 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받기를 기대하는(또는 적어도 기대할 수 있는것을 예측한다.

 

“AI 혁명은 무엇을 낳았는가?

 

이러한 시스템들이 이용한 절차는 15년 이상 진화되었는데그것은 연구의 진전 덕분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대규모 데이터 센터들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탓에 처리 속도와 능력이 향상되어 데이터가 잘 정리된 덕분이다대규모 온라인 서비스로 일제히 출자된 거대한 컴퓨터 농장들(computer farms)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신경망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 AI는 거대한 자본 집중화의 산물로 발전한 것으로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에서 투자할 곳을 찾던 대규모 자본은 인터넷을 그 최종 목적지로 선택했다.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지금과 같은 전쟁 직전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고미국이 한국과 대만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을 견인하는 전략을 사용하도록 부추긴 이른바 AI의 스푸트니크(Sputnik: 옛 소련에서 쏘아 올린 최초의 인공위성순간이라는 것이 구글이 계발한 바둑 게임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AI 서비스 계발에서 미국 쪽 선봉장인 OpenAI 컨소시엄ChatGPT의 창조자이 피터 틸(Peter Thiel) 같은 투자자들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발의로 시작하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AI의 급속한 발전의 뒷면에는 거대한 자본금일류 회사들과 전문가들과 더불어 한때 인터넷과 온라인 서비스 옮겨갔던 자본금이 있다.

 

AI가 실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AI의 발전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본 것다시 말해 생산의 사회화라는 일반적 경향이 자본의 배치와 축적에 종속되는 현상의 제2악장이다.

 

각각의 AI 이면에는 많은 시간의 극도로 불안정한 노동이 있다특히 언어 자료다시 말해 텍스트들대화들행동 데이터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선택보통 그 자체로는 계산되지 않으며지불되지 않은수많은 사회적 노동 시간을 포함하는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뒤에서 보게 될 것처럼생산을 사회화할 필요성과 그 경향을 협소한 자본주의적 관계의 한계 안에 제한하려는 것은 강제적이고 극도로 모순적인 시도이다.

 

실제로 AI 산업의 출현은 그 이전에 거대 인터넷 독점회사들이 출현할 때처럼이 사회화 경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한계점에 도달한다는 것을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기계에 대한 생각이 변형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다시 말해 공공연하게 기계는 사회적 노동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임금 노동의 필요성을 더 이상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 되고 있으며그리하여 임금 노동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것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AI는 어쨌든 기계이며컴퓨터 네트워크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간 뇌의 기관들이다따라서 대상화된 지식의 힘이다고정 자본의 발전은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생산력이 되었는지를그리고 사회적 삶의 과정의 조건들이 어느 정도까지 일반적인 지성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것에 부합하여 변형되었는지를 보여준다사회적 생산 능력이 지식의 형태로뿐 아니라사회적 실천의 직접적인 기관으로서 실생활 과정의 형태로 생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칼 맑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그룬트리세), 1857-1858)

 

이게 무슨 말일까? AI와 같은 기술 발전을 허용하는 유형 생산의 사회화는 즉각적인 목표로서 임금 노동과 상품화와 결핍으로부터 사회를 해방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그리고 같은 이유로이러한 기술들이 체제 안에서 확대하는 모순의 유형은 인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불가피하고도 긴급하게 만든다.

 

거대 자본이 AI에 크게 도박을 건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연속 출간물 코뮤니즘에서는(In Communism...)에서 보았듯이생산의 사회화는 노동 생산성(그리고 자원)을 배가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필수적인 엔진이다.

 

자본은 이것을 실현하지만그 기회를 축적이라는 협소한 틀 안에서 이해하고단 한 명의 노동자도 없이 거대 인프라를 수익성 있게 만들거나 섬유산업 같은 분야에서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눈앞의 가능성만을 누린다.

 

부르주아지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하는 것은 노동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다.

 

산업계에서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의 훈련 시간을 단축하여 그들을 그저 기계의 보조자가 되도록 만들 생각을 한다서비스 분야에서는 프롤레타리아화를 완료하여 전문직 종사자들(쁘띠부르주아지)을 봉급을 받는 법인 구조 속으로 흡수하고 점점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다의사거대 회사의 하급 변호사가치가 거의 없는 코드 프로그래머임상실험이나 여타 기업 소재의 작가텔레마케터투자 자문가나 디자이너가 여기에 속하는데이 직업들은 점점 더 표준화된 직업에서 생산형 AI들에 의해 바로 대체되는 직업으로 변화될 것이다.

 

AI와 더불어 증대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

 

 

일반 구조: AI에 도달한 자본주의는 이미 반동적이며 그것을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생산의 관점에 보면, AI를 적용한다는 것은 노동의 물질적 생산성의 증대를 의미한다다시 말해 어떤 서비스의 특정한 양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 시간이 전반적으로 감소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는 물질적 생산성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윤의 측면에서 노동 생산성사회적 평균 노동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윤을 산출할 수 있는가이다그것은 더 많이 생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더 많이 판매하는 것도 의미한다(그와 같은 기술 변화 이후에 임금이 총생산의 가치에서 더욱 적은 비율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던 19세기에는 세계 시장과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팽창하면서 이러한 모순이 해결되었는데이는 국제적 생산을 재조직하고 증가시켜서평균 노동일의 감소뿐 아니라 노동자의 소비 능력 향상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다시 말해 진보.

 

하지만 세계 시장이 모든 방면에서 마지막 모퉁이에 도달하면서 쇠퇴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맑스가 임금 요구안의 한정된 토대라고 부른 것을 확장할 방법이 없다.

 

물질적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기술들을 통합함으로써 기업들은 더 많은 생산물을 흡수할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그래서 전체적으로 기업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총산출물을 증가시키지 않고 단지 고용 노동을 감소시킴으로써 이윤을 증가시킨다.

 

새로운 시장을 차지하려는 충동이 증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그 반대이다그것은 증대한다하지만 그러한 시장은 이미 민족 자본이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들이다민족 자본은 그곳에서 소유주 역할을 하며 상업적 팽창을 위한 정확히 동일한 충동과 욕구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따라서 축적을 향해 나아가는 각각의 단계는 민족 자본들 사이의 제국주의적 긴장들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경쟁은 곧 평화로운 가격 승부이기를 그만두고 전쟁까지 나아가지는 않을지라도 무역 전쟁통화 전쟁제재 …… 그리고 군사적 압박이라는 전략적 게임이 되고 만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오늘날의 거대한 기술적 개선은 진보즉 생산자들 자신의 더욱 완전한 인간적 발전이 아니라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실업과 궁핍을 낳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 심한 고통과 죽음으로 밀고 나아가는 군사적 긴장을 낳는다.

 

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 본 AI의 모순

 

지배계급은 자본주의적 성장(축적)이 요구하는 것과 인간 발전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게다가 지배계급은 필요하다면 재산 형태를 기괴하게 변형시킴으로써 시장의 가장자리에서 생길 수도 있는 풍족함을 최소한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배계급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모순이 그 자체로 취하는 형태이다즉 AI의 잠재적인 생산성 증대가 그 체제 자체가 생산하는 유효 수요 증가의 결핍을 지나치게 빠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부르주아지는 사업에 AI를 이용하여 일자리를 감소시킴으로써 기꺼이 이윤을 향상한다하지만 AI의 사용이 일반화되면 같은 이유로 수요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 이를 우려한다.

 

보기를 들면, AI의 충격에 대한 논쟁이 처음에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보편적 기본 소득을 확립하는 것에 관한 관심을 부활시켰다이러한 제안은 잠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후에 또다시 잊히고 말았는데그런 제안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은 로봇화가 실업에 미치는 효과를 경감시키지 않을 것이다생산에 대한 여타의 기술적 개선과 마찬가지로 로봇화는 더 많은 생산물을 배치할 충분한 시장이 없다면 실업을 초래한다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그것이 바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이며모든 재분배 체계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기본 소득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거나 소득을 현저하게 증대시킬 수는 없다.

 

로봇화 경향은 계속될 뿐 아니라수출 경쟁력을 증대시키기 위하여무역 전쟁의 시나리오 속에서 훨씬 더 강화될 것이며 훨씬 더 많은 실업을 일으킬 것이다.

(Universal Basic Income, 6/5/2018)

 

결국 탈출구는 언제나 똑같다온갖 수단을 통해 제국주의적 경쟁자들의 기술 발전특히 AI의 발전을 억제하려고 함으로써 전쟁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필요하다면 이러한 기술을 전쟁 무기로 전환하는 것제국주의 권력이 더 강력할수록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미국에서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이들은 군사 우주 경쟁에 AI를 적용하는 데 있어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이다.

 

자본주의와 인간의 삶 사이에 대립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풍요를 낳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도구가 대량 학살과 파괴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도덕성에 대한 통계적 종합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차별과 원자화로 향해 나아가는 경향

 

언론 매체는 그들의 전형적인 근시안으로 AI의 편향됨특히 생성형 AI들과 챗-연계 AI들에서을 마치 그것이 그것들의 주요 문제인 것처럼 강조해 왔다의심할 여지 없이대화형 AI에 의해 사용된 대다수 텍스트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성차별과 인종주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면그 AI는 정확히 같은 편견을 지닌 채 대화에 대한 올바른 반응을 계산할 것이다그리고 사후의 교정AI가 흑인이나 여성에 대해 농담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은 체제가 생산하는 차별 놀이가 어느 정도까지 널리 퍼져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이바지할 따름일 것이다그것이 안달루시아 사람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언급이나 남성에 대한 모욕적인 농담을 삭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은 더욱 진지하다그들은 이미 관리 기구와 취약계층을 원조하는 정책 비용이것들은 이제 기본 서비스의 보편성을 약화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작용하고 있다의 축소를 계산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지역 수준에서 먼저 시험하던 미국에서, AI는 그러한 결정이 체제 자체에 의해 육성된 계급 차별과 인종주의를 어느 정도나 재생산하는지를 드러냈다그것이 EU 입법자들이 AI가 재생산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도덕적 메시지에 대해 경고를 날린 이유이다.

 

자동화된 억압

 

이것이 단지 초현대적 판타지는 아니다인간의 통제가 없는 치명적이고 자율적인 군사·경찰 장비는 제지할 수 없는 소형 무기 산업의 선도자이다완전히 자동화되고 자율적인 무기 시스템은 시리아 전쟁에서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지역적인 유혈 전투를 악화시킴으로써 치사율을 증대시킨 것으로 보고되었다.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의 로봇 개들에서부터 인도의 로봇 감시병들과 이스라엘의 무장 장갑차들에 이르기까지, “자동 방어” 체계는 전쟁 상태를 넘어설 정도로 국가로부터 점증하는 투자를 받고 있으며 민간인들에 대한 억압을 자동화하는 쪽으로 더욱더 근접하고 있다.

 

개인의 행동에 대한 전체주의적 통제

 

그중에서도 특히전체주의와 AI의 결합이 낳은 직접적인 산물인 중국의 사회 신용 제도애초에 미국과 유럽의 전체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았다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시장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 그들이 서양이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경쟁자들을 만들어냈다보기를 들면 남한은 팬데믹으로 감금되었던 시기에 AI의 성능을 시험했으며 카타르는 월드컵을 극단적으로 AI가 유도하는 전체주의적 통제의 실시간 예증으로 전환했다.

 

미국에서 구글과 아마존은 …… 노동 규약과 절차에 대해 갈수록 만연하는 AI 감시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그리고 때때론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처럼), 작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상 행동을 감시함으로써 이 기술들을 한 단계 더 밀고 나오고 있다.

 

타락하고 미신적인 보편적 문화

 

최근 몇 달 동안 우리는 챗GPT가 끼친 사회적 충격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기 시작했다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여론 산업의 대중매체들은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일 뿐 아니라 불분명한 교육 자료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구글은 검색 엔진의 대답을 변형시키기 위하여 코드 레드를 발동한다는 사실그 회사의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인다면우리는 다양한 결과의 목록을 받는 대신에 위키피디아의 글과 거의 동등한 표현을 얻는 시점에 도달할 것이다.

 

구글에 의해 조정된 정보와 지식에 대한 관계가 체제 자체에 의해 생산된 이데올로기·선전·도취에 대한 저항을 약화해서 전쟁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약화하는 지점에 이르게 한다면앞으로는 신념에 대한 동질성을 추진하는 수준중세 기독교 세계 이래로 알려진 바가 없는 것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다.

 

중국이 AI를 이용한 디지털 복제품으로 변덕스러운 인플루언서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사회적 통제의 자동 장치가 사회적 자동 장치즉 기계로 작동하는 부르주아지의 유토피아를 언급하는 것이라면지배계급이 보기에 이데올로기적 AI들은 사회 기계(social machine)의 영혼잘 통제되면거대한 인간 (가혹한조직이 순조롭게 움직이도록 할 것이다.

 

자동 장치의 영혼에 대한 이러한 부르주아지 특유의 사상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이번 여름에 구글은 인공지능 분야의 수장을 해고했는데GPT에 해당하는 그 회사의 작품그가 작업하고 있는이 어린아이와 동등한 지각과 감각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매체의 반응은 전혀 조롱 조가 아니었다문제의 엔지니어가 잘못 알고 있을지라도 이 프로그램들이 지적인 존재가 되리라는 것은우리가 AI라고 부르는 것의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당연시 여겼다.

 

우리는 여기서 단지 매체의 통계적 통설의 미신에 사로잡힌 혼동이나 신격화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라는 말의 거대한 판본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다참고용 신문들이 이미지 형태의 통계적 예측과 예술을 혼동할 때우리는 체제의 타락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현상을 넘어섰다우리는 지배계급의 문화한때 이것은 보편적인 문학과 음악의 출현을 진보를 생산하는 지배계급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적 지표로 만들었다가 야만적으로 퇴화하는 첫 단계와 직면하고 있다.

 

AI로부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 AI는 생산의 사회화와 노동 생산성 증대에 도움이 되는 통계적 분석 기술이며따라서 인류를 위해 거대한 해방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틀에서한편으로 AI는 노동자들의 실업-기술빈곤 …… 그리고 제국주의적 긴장을 추동하여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모순을 증폭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자동 전쟁 장치와 무기에 AI의 적용은 자본주의와 인간의 삶 사이의 대립을 증대시킨다풍부함을 창조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도구가 대량 파괴와 살상의 도구가 된다.

군국주의와의 논리적 연속성 속에서 AI는 사회적 통제와 억압의 전체주의적 발전의 극단적 형태우리가 미국 국경지대의 무장 통제와 중국(신장 지구의 사례가 가장 중요하다)에서 볼 수 있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하지만 AI의 충격은 그 이상인데모든 사회적 삶에 스며들어 정보와 지식을 통해 지배적인 문화와 사람들의 관계 전반을 그리고 특히 노동자들의 관계를 퇴보시킨다.

 

2023-01-03

코뮤니아(Communia)

 

 

<출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7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파리 공개회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 파리 공개회의

 

 

 

우리는 국제적 규모로그리고 주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주도로 설립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위원회의 모든 첫 번째 대차대조표를 지금 여기서 작성할 수는 없다우리는 파리 외에도 후자는 우리 주도로그리고 혁명적 노동자 그룹 성원을 포함한 다른 동지들의 주도로 몬트리올과 토론토 위원회[1]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위원회 활동은 주로 온타리오주 학교에서 피켓 시위를 중심으로 한 거리 시위나 파업 시 전단을 통한 개입과 이를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기 위한 공개회의를 조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영국미국이탈리아튀르키예(터키)에서 시작된 경험을 추가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호소가 시작되자마자 프랑스에 있는 성원들과 우리는 실제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난 6월 파리와 다른 몇몇 도시에서 열린 시위에서 전단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첫 번째 개입을 하였다. 12월 2일에 열린 첫 번째 공개회의 목적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동학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역량과 의지를 다시 결집하는 것이었다약 30명이 참석했으며그중 일부는 정치적 경향과 조직의 성원이었다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대규모 대표단 외에도 국제주의적 견해를 표명하는 「CNT-AIT」 성원, 「물질과 혁명」(Matière et révolution)의 성원자주적인 젊은이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는 「로빈 굿펠로우」(Robin goodfellow), 그리고 ASAP 혁명[2] 신문을 발행하는 그룹이 참석했고개별적으로 십여 명의 동지들이 참석했다그들 중 일부는 자신을 '코뮤니스트좌파 지지자'다른 사람들은 CGT 노조원 또는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로 소개했다.[3] 전체 회의 - ICC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입이 발언 순서와 의제를 존중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음을 즉시 언급하고자 한다. [4]

 

ICT 동지들과 함께 우리는 토론을 두 부분으로 나누기로 했다첫 번째는 역사적 상황과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역학에 관한 것이고두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시작된 새로운 국제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관련하여 위원회가 해야 할 일과 제안에 관한 것이었다이러한 조직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 즉각적으로 어떤 개입을 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었다본질적으로 토론의 이러한 부분은 제기된 다른 질문은 여기서는 제쳐두고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첫 번째 단계라는 우리가 공유하는 분석에 기초한 ICT 동지의 발표와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ICC의 첫 번째 개입 사이에 초점을 맞췄다이 위원회는 의심할 여지 없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분명한 표현이라고 인사하는 과정에서 표명한 후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옹호했다그것은 전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선언[5]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추상적 긍정으로 간주하며이를 옹호하거나 언급하지도 않았다그것은 바로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에 대한 이 문제즉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의 필요성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이 상황에 따라국가와 대륙시점에 따라각 부르주아지가 '자신의프롤레타리아트에 부과하려고 하는 조건시기근거에 따라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계급 대립의 조건과 근거는 같지 않다현재 서유럽[6]과 다른 대륙 간에는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방어가 확실히 최소한의 것이라면 이는 현재 상황에서는 충분하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위원회를 설립함으로써 소수의 혁명가와 전투적 프롤레타리아가 재편되고행동하며각각의 특정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

 

토론의 두 번째 부분은 주로 두 가지 질문즉 제시된 위원회의 역할과 성격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이는 ICT의 한 동지가 소개했고, IGCL(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의 한 위원이 토론토와 몬트리올 위원회의 활동과 개입에 관한 발표를 했다몇몇 연사들은 이러한 위원회의 성격에 대해 "그것은 새로운 정치조직인가?"와 같은 질문을 했다.물질과 혁명의 성원처럼 다른 사람들도 오해하는 경우가 있었다그는 소비에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ICT의 호소를 비판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대부분의 정치적 대립은 ICC의 두 번째 개입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이는 우리가 투쟁위원회로 간주하는 이러한 위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이전에는 "의심할 여지 없는 국제주의자"라며 이 계획을 지지했지만이번에는 "행동주의자이자 좌파"라고 비난했다이 단체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 적이 없으며단 한 번의 전쟁 반대 시위도 조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ICT에 대한 비난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전쟁 반대 위원회 설립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없기에 허풍"이라고 주장했다청중의 일부가 그것에 답변했다는 것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당신은 확실히 누가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준비할 수 있는지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 위해 노동자 파업에 참여한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당신은 그들이 노동조합원이거나 좌파라는 이유로 함께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을 배제하는가?" 우리 입장에서우리는 ICC 대표단에 투쟁위원회에 대한 ICC의 역사적 위치를 상기시켜야 했다. 그 자체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설정된 것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그것은 노동계급이 공개적 투쟁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에 소수의 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 및 혁명가들이 함께 모여 공장이든 지역이든 국가든여러 가지 상황과 부르주아지의 정확한 요구나 공격 앞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 최선의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위원회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나키스트 성원의 개입이었다러시아 탈영병에 대한 물질적 지원이나 "하르키우(Karkhiv)의 국제주의자들과의 연대 캠페인"[7]에 대한 첫 번째 개입을 강조한 후그는 시위에서 선전과 선동을 수행하고 전단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모든 표현을 수행하는 데 동의한다고 언급했다많은 참가자가 위원회를 위한 이러한 제안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였다따라서 청중의 일부가 위원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기초와 일반화된 자본의 전쟁으로 나아가는 틀 안에서이다이후 회의에서 위원회를 확대하고 구체적으로 개입할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했다.

 

2022년 12

RL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CGL)

 

<>

[1] 혁명인가 전쟁인가」 22호 참조 http://igcl.org/No-War-But-the-Class-War-809

[2] https://asaprevolution.net/

[3]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그들 중 일부를 잊고 있다우리는 주로 정치적 논쟁과 대립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람들을 언급한 것이다의장은 그들에게 개입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고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그들은 회의장을 떠났다.

[5]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59/joint-statement-groups-international-communist-left-about-war-ukraine

[6] 마크롱이 결정한 전쟁 경제의 발전독일의 대규모 재무장(2,000억 유로)은 필연적으로 보기를 들면 프랑스와 독일 부르주아 공격의 조건과 속도를 정할 것이다.

[7] http://nowar.solidarite.online/blog

 

 

<출처>
http://igcl.org/Public-Meeting-in-Paris-of-the-No-849

 

 

<참고할 기사>

Report on NWBCW Paris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2-02/report-on-nwbcw-pari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