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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와 녹색 자본주의의 신화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와 녹색 자본주의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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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가열자본주의의 산물

 

당사국 총회로 알려진 제28차 기후변화 정상회담(COP28)이 2023년 12월에 개최되었다이번 회담은 이전 27번의 그 어떤 회담보다 훨씬 더 희극적이었다세계는 지금 명백하게 재앙적인 기후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이 위기가 방치될 경우 문명이 붕괴하거나 심지어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될 수도 있지만우리의 지도자들은 이에 대처하는 행위가 자본의 수익성이나 축적을 위협한다면 이에 대해 그 어떤 진지한 조치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이전에 주요 자본주의 기업들특히 화석 연료 회사들은 지구 가열 과학이 거대한 사기라고 주장하기 위해 싱크탱크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으며정치인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것을 막고 사업을 평소처럼 진행하기 위하여 로비 단체에 수십억 달러를 더 투자했다이제 이 과학에 대해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기는 단체(flat-earth brigade)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에 이르자녹색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전략이 고안되었다근본적인 수준에서 녹색 자본주의는 많은 정부와 기업이 수년간 부정해 온 과학을 받아들이지만그 대신에 기후 위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이윤·축적·투기 분야를 개척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적인 정상 작동에 해당하는 것에 녹색의 후광을 퍼뜨리는 것이다아래에서는 최근에 등장한 녹색 자본주의의 거대한 작전에 대해서 검토해보려 한다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이미 발표되었지만, 28차 당사국 총회에서 우리의 통치자들이 다시 한번 무시하기로 결정한 과학적 증거를 살펴보려 한다.

 

주요 과학적 사실에 대한 간략한 업데이트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지구가 에너지를 우주로 방출하는 것을 막아 에너지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인간의 활동에 의한 에너지 가두기는 복사 강제력이라고 알려져 있다유엔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사이 패널’(IPCC)의 6차 보고서(AR6)에 제시된 최신 정보에 따르면 2005년과 2019년 사이에 이 효과가 약 70% 증가했음을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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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열에 의해 배출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흡수되고 있다그 결과 지구는 더 따뜻해져서 더 높은 온도에 도달해야 하는데그 온도에 이르러야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여 에너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유엔은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이루어진 모든 자발적인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로 인해 19세기 평균 기온보다 2~50(5.0의 오자로 보인다옮긴이)의 기온 상승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다. 2차 협약(파리 협정)에서 전 세계가 약속했으며 제28차 당사국 총회가 여전히 가능한 것처럼 행세했던 1.5라는 유명한 제한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자.(1차 기후 협약은 교토 의정서이며파리 협정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로 제한하기로 했다옮긴이매일 세계가 흡수하는 에너지의 양은 엄청나다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가 매일 사용하는 에너지의 8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실은 이 에너지의 90% 이상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와 극지방을 가열한다는 것이다.2) 지구 온도 상승은 매우 고르지 않으므로 현재 육상 기반 온도 상승으로는 흡수되는 에너지의 양을 알 수 없다.

 

<그래프 1>은 현재 배출되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과 현재 약속을 기준으로 향후 배출될 온실가스의 양그리고 세계가 1.50℃ 또는 2.0℃ 온난화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감축해야 하는 온실가스의 양에 대한 IPCC의 계산을 보여준다현재의 조치로는 이러한 제한된 온도 상승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분명하다.3) 이는 이러한 조치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이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기본 조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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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에너지기구(IEA)는 2021년에 새로운 석유와 가스 개발의 시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평균 기온 상승을 1.5로 유지하려면 세계 지도자들은 기존 채광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석유가스석탄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물론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많은 부문의 수익성을 감소시킬 것이며 따라서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미국과 유럽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5℃ 제한을 고수하겠다는 일반적 입장을 표명했지만, IEA의 경고는 슬그머니 무시해버렸다보기를 들면미국은 가스 생산량을 하루 114억 입방피트로석유 생산량을 하루 1,320만 배럴로 늘렸는데이는 둘 다 현재 전 세계 최대 규모이다.4) 영국은 북해의 새로운 유전에서 시추를 허가하고 새로운 탄광을 개발했다우리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설교하는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항상 핑계를 댄다최근에 내놓은 구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사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해마다 화석연료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왔다보기를 들면 IMF는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회사에 제공하는 보조금이 매년 1조 3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계산했다!5) 이에 비해유명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10년 동안 청정에너지에 4,000억 달러즉 연간 평균 4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6) IEA의 계산에 따르면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매년 청정에너지에 5조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7)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는 약속은 진지하지 않으며 오직 서류상으로만 그리고 자발적인 결의안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하다현재 대기 중 총 탄소 배출량의 절반가량이 지난 30년간 배출되었다.8) 이는 탄소의 절반가량이 IPCC와 COP 설립 이후에 배출되었음을 의미한다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파리 COP 때보다 6%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이다지구를 구하기 위한 우리 지도자들의 헌신은 이 정도이다!

 

2022년 IPCC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누적된 과학적 증거는 명백하다…… 전 세계적으로 협의된 선행 조치가 더 이상 지연된다면 …… 살기 적합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빠르게 닫히고 있는 짧은 기회의 창을 놓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연과 활동없이 일관해왔으며 이러한 상황이 곧 바뀔 것으로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당사국 총회(COP)

 

28차 당사국 총회는 세계 8위의 석유·가스 생산국인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으며, COP 의장인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는 국영석유회사(ADNOC)의 최고 경영자이다회의가 열리기 전에알 자베르가 모잠비크캐나다호주콜롬비아 등 다양한 국가와 석유·가스 거래를 하기 위해 이 회의를 이용할 계획임을 보여주는 문서가 유출되었다알 자베르는 또한 평균 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하는 파리 협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이번 회의는 이전 회의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업과 국가가 전시관을 갖추고 거래를 진행하는 대규모 무역 박람회로 변질되었다회의에는 8만 5천 명의 대표단이 등록되어 있었는데그 중, 2천 4백 명이 석유가스석탄 회사를 대표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2015년 파리 회의 이후 모든 COP가 보여준 것은 자발적인 제한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우리의 지도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최근 COP의 최종 합의는 또 하나의 자발적 협정이다대표 국가들과 50개 주요 석유회사는 시간을 확정하지 않은 미래의 언젠가 자발적으로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고 약속했다물론 석유와 가스 생산을 줄이겠다는 약속 같은 것은 없었다그 대신에 50개 석유 생산회사는 2030년까지 공장에서 메탄가스 화염 기둥을 중단하고 메탄 누출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이는 자발적인 것이었으며과학자들에 따르면 이 50개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전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이른바 또 다른 주요 성과는 120개국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치 용량을 3배로 늘려 11,000기가와트의 설치 용량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전문가들이 보기에 이것은 달성될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것이다이러한 서약에 대해 IEA가 내린 최종 결론은 모든 자발적 서약이 이행되더라도배출량 감소는 1.5℃ 제한의 파리 협약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감축량의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9) 유엔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체계로 인해 전 세계의 기온이 2.9℃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데이러한 기온 상승은 환경 재앙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전환점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부 국가들은 경제를 탈탄소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구하고 있지만아래에서 고찰하는 것처럼 보조금은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국제 수준보다 높은 이자율의 차관인 경우가 흔하다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국의 석유와 가스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 발전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화석연료 확산 방지 조약 구상(Fossil Fuel Non Proliferation Treaty Initiative)의 알렉스 라팔로위츠(Alex Rafalowicz) 이사는 다음과 같이 불만을 표명했다.

 

기후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위한 재정이나 기술 또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10)

 

EU 탄소 거래 시장은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하는 데 드는 비용을 71유로에서 66유로로 낮추면서 회의의 결과에 대해 간접적으로 견해를 밝혔는데,11)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장은 배출 비용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며 COP의 결과를 오염을 계속할 수 있는 청신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녹색 자본주의의 신화

 

녹색 자본주의는 사실 용어 모순이다자본주의는 자본의 지속적인 축적을 필요로 하며결국 자연 자원의 지속적인 착취와 고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인한 자연의 무한한 전유가 유한한 행성에 요구되고 있으며이는 자본주의가 녹색이든 아니든 필연적으로 파국을 초래한다. “월드카운트(The World Counts)”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의 연간 소비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폐기물을 흡수하려면 1.8개의 행성이 필요하다. 2030년에 이르면 2개의 행성이 필요할 것이다.12) 지구 파괴와 지구 가열은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지적 세력에 의해 더 이상 부정되지 않지만녹색 자본주의는 우리가 돌진하고 있는 재앙의 길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시장의 효과에 대한 순진한 믿음인데적절한 투입을 통해 기후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1991년 지구 온난화에 관한 논문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감에서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의 2006년 기후 변화의 경제학에 대한 스턴 보고서(Stern Review)에도 비슷한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이 보고서는 기후 변화를 극심한 시장 실패로 규정했는데 배출 비용이 금전적 비용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주장에 따르면외부 효과의 비용이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내부화될 필요가 있다가격이 올바르게 책정되면 시장은 기후 위기를 해결할 것이다.

 

물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절망적으로 비효율적인지 보여주었지만자본주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맑스가 지적했듯이이는 그저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란 사고에 반영된 지배적인 경제·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오늘날 자본주의 사상의 주류는 이른바 외부 효과를 화폐 상품으로 전환하여 가격을 책정하고이를 통해 시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전기 자동차히트펌프탄소 포집재생 에너지와 같은 기술 개선을 탄소 가격 책정배출량 상쇄 같은 조치들과 결합함으로써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COP 회의들에 영향을 미쳤다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녹색 자본주의의 첫 번째 계명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사회·경제적 관계를 보존하는 것이고두 번째 계명은 자본 축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2022년에 출판된 아드리엔 불러(Adrienne Buller)의 고래의 가치(The Value of a Whale)에서처럼 녹색 자본주의는 이미 도전을 받고 있다이 책의 부제는 녹색 자본주의의 환상으로녹색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신화를 훌륭하게 해체하고 있다불러는 미국 먼슬리리뷰 학파(US Monthly Review School)의 영향을 받았으며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와 사이토 코헤이(Kohei Saito) 같은 작가들이 개발한 대사 균열”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사이토 코헤이의 최근 책 「인류세의 자본론」(Capital in the Anthropocene)에 대해서는 우리의 웹사이트에서 논평한 바 있다.13) 물론 불러는 이 학파를 비판하는 저자들도 언급하고 있다하지만 불러의 책은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인류 공동 소유권을 지닌 대안적인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지만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불러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할지 모른다고 결론 내린다그런 세상은 코뮤니스트 세계처럼 들린다우리는 그것이 확실히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며더 나아가 그러한 세계는 사회 혁명이 자본주의를 파괴한 후에만 건설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불러의 책은 이 중 어느 것도 다루지 않고 녹색 자본주의 추종자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지배적인 신화를 상세히 폭로할 뿐이다.

 

자연과 고래

 

고래를 상품화하고 가격을 매긴 후 고래에 대한 투자를 촉구하고결국 고래를 투자 자금에 포함시키려는 IMF의 시도는 녹색 자본주의의 전체 신화에 대한 음울한 은유를 제공한다고래 한 마리당 200만 달러라는 IMF의 가격은 고래가 일생 동안 격리하는 이산화탄소의 양탄소 배출 가격으로 값을 매긴다과 고래가 유치하는 관광 비용을 기준으로 계산되었다그런 다음 IMF는 고래 개체수가 포경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경우에 전체 고래 개체수가 격리할 수 있는 총 탄소량을 계산했는데 이는 연간 17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다음 단계는 사람들이 고래 보존을 위한 기금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하는 일이었다이 모든 것의 배후에 놓인 기본 전제는 자연에는 가격이 부여되어야 하고탄소에는 가격이 부여되어야 하며이러한 것들은 시장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그 다음에 투자를 위한 펀드를 조성하고 거래하여이를 통해 선물과 파생상품이 창출되어 투기와 헤징(연계 매매)의 장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우스꽝스러운 특성은 그것이 고래는 물론 인간이 살고 있는 생물권(biosphere)의 나머지 부분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이는 해안으로 떠밀려온 많은 고래가 해양 엔진과 음파탐지기에 의해 귀가 먹고 중금속과 기타 독소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데이런 물질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바다에 쏟아 부은 것으로 독성 폐기물 처리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이 우화의 실제 순서는불러가 지켜보고 있던 실제 고래가 탄소를 격리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인 후 관광객이 지켜보는 동안에 선박의 프로펠러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불러에게 고래는 녹색 자본주의의 파수꾼으로서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파괴적인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기온과 날씨 패턴은 지구 가열의 가장 명백한 효과이지만고래의 우화가 보여주듯이 탄소 배출과 생물권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생태학적 위기도 심각하다스톡홀름 회복력 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er)는 지구 시스템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규정하는 프로세스인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ies: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침범해선 안 되는 영역들옮긴이)” 9개 중 6개를 이미 넘어섰다고 주장한다.14) 한계선을 넘으면 갑작스럽거나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환경 변화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그 한계선들은 우리가 속한 생태계와 사람들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임계값을 나타내며그것들은 지구가 지난 10,000년 동안 홀로세 간빙기 상태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그 한계선들은 복잡한 생물물리학적 지구 시스템 내에서 상호 연관된 과정들이다이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증대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그 대신에 한계선특히 기후와 생물 다양성 손실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과 실천의 핵심이다생물권의 변화는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꽃가루받이를 위해 의존하는 식물과 곤충의 멸종률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우리가 이러한 한계선을 계속 넘어선다면 세계는 인간이 가한 영향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과학자들이 인류세라고 명명한 새로운 지질 시대에 접어들(이미 진입했을 수도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인류는 자연의 일부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거의 전체 역사 동안 인류는 자연과 지속 가능한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지구를 지배하는 시기에 이르러서야 인간 활동이 그처럼 파괴적인 차원을 띠게 되면서현재의 환경 붕괴즉 지질학적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인류세라는 용어가 이를 포괄하는 규모의 붕괴로 이어지게 되었다이 새로운 시대의 발전은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새로운 대량 멸종 시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구 위험 한계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모든 경건한 COP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환경 파괴의 목록을 읽는 것은 우리를 암울하게 만든다한 가지 사례는 중요한 탄소 흡수원인 산림의 파괴이다. 2019년에는 영국 면적보다 더 넓은 3,600만 에이커의 산림이 벌채되었으며, 2020년에는 팬데믹 기간이었음에도 산림 파괴가 50% 더 증가했다석유 기업들은 1.5℃ 온난화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으로 브라질 크기만큼의 산림 상쇄를 필요로 하는 실행 불가능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녹색 자본주의 단체(green capitalist fraternity)가 극히 선호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교통수단을 전기 자동차로 전환하는 것이다. IEA는 2030년까지 2억 3천만 대의 전기 자동차가 도로를 달릴 것이라고 예상하지만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리튬니켈코발트카드뮴구리 등 광물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 배출량과 생물권 파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모든 광물의 추출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다음과 같다. 2002년과 2015년 사이에 광물 추출량이 53% 증가했는데이는 1900년 이후 전체 광물 추출량의 33%가 이 기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소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은 필요한 에너지 생산량을 증가시킨다녹색 자본주의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자연에 가격을 매기고 생물권 파괴의 해결을 시장의 힘에 맡기는 것을 해결책으로 간주한다한 연구팀은 1996년 생물권의 총 가치가 33조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더 최근에 이루어진 세계 경제 포럼의 조사에 따르면전 세계 GDP의 50%가 자연에 매우 또는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으며이로 인해 세계 생태계의 가치가 44조 달러로 증가했다고 한다불러가 말한 것처럼복잡하고 서로 연결된 생태계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말도 안 되며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물론 부르주아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을 가상적으로 자산으로 묶어 펀드를 만들어서 자본을 동원하고 이 펀드에서 거래투기파생상품 등을 허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이러한 펀드는 일반적으로 윤리사회지배구조(Ethical, Social and Governance: ESG) 펀드로 알려져 있으며 그 규모가 매우 커졌다.

 

ESG 펀드

 

이러한 펀드를 통해 금융 자본은 녹색 자본주의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축적할 수 있다. 2020년에는 1조 달러 이상이 이 펀드에 투자되었으며,15) 이 펀드의 자산 관리자들은 자본주의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구체화하고 있다거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 Rock)은 녹색 자본주의의 선도적인 금융 세력으로 부상했다또 다른 사례로 프랑스의 거대 은행인 BNP 파리바(BNP Paribas)는 생태계 복원 펀드를 출시했다. ESG 펀드는 자연의 영역을 거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ESG의 기본 이념은 자연의 공공재에 대한 지배권이 민간 자본에 넘겨져 투기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펀드는 기후 위기가 자본 가치에 미치는 재정적 영향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어떤 것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질문해야 할 것은이 펀드들이 배당금을 지급하는 잉여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고래를 보존하거나 숲을 보호한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이 펀드들이 동원하는 가치는 아마도 탄소세탄소 상쇄에 대한 지불 등을 통해 생산적인 경제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금융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전체의 수익성을 고갈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만물론 금융자본가들은 이익을 얻는다.

 

탄소세

 

탄소세는 녹색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이다탄소세는 탄소 배출량 1톤마다 금전적 가치를 매겨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기후 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을 이용하려는 최초의 시도 중 하나였다하지만 지금까지는 완전히 실패했다모든 소비자가 부담하는 정액세는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이런 종류의 과세의 결과는 부르주아지보다는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에너지에 지불하는 노동 계급에게 더 큰 불이익을 주고따라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사실이다. 2008년 EU가 채택한 또 다른 제도는 배출량 규제(cap and tax: 직역하면 상한과 세금옮긴이제도였다산업 또는 서비스에는 허용량이 주어지고 허용량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된다상한선은 정부가 설정하고 초과 이산화탄소에는 정부가 정한 세율로 세금을 부과한다상한에 의해 허용된 미사용 허용량은 탄소 시장에서 거래하거나 상쇄를 구매하여 상쇄할 수 있다이 제도를 통해 자본가 계급은 상한선과 세율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이 제도는 대규모 배출업체들이 너무 유리한 상한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거래하게 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대규모 배출업체들은 이 계획이 시작된 이래로 배출권을 거래하여 500억 유로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데이는 오염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오염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16) 현재 톤당 평균 가격은 40달러에서 80달러 사이지만 IMF에 따르면 2020년에는 평균 가격이 톤당 2달러였다이렇게 낮은 가격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인센티브를 감소시킨다일부 과학자들은 1.50를 달성하려면 가격이 톤당 14,300달러로 책정되어야 한다고 추정하는데이는 가격 책정 시스템 자체가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탄소 가격은 이윤을 유지하고 축적을 계속하려는 거대 자본의 욕구를 반영한다영국석유회사(BP), 엑손미국석유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는 모두 탄소 가격의 필요성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전 세계 주요 오염자가 5년 동안 추진했던 탄소 배출 방지 정책을 이제 와서 뒤집은 것은 이제 그 정책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생물권과 마찬가지로오염에 대한 권리를 설정하여 사고팔고 금융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투기 분야가 열리게 된다.

 

탄소 거래를 통해 창출된 상쇄 시장은 근본적으로 배출량 감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하지만 그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2021년에는 분명 10억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오염자가 숲이탄 습지그리고 유사한 탄소 흡수원을 구매하여 오염을 상쇄함으로써 탈탄소화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이 시장은 규제가 거의 없으며 산림을 벌채하지 거나 산림이 불에 타지 않도록 방화선을 치우는 것만 거래 가능한 상쇄로 취급할 수 있다예상할 수 있듯이오염자에게 상쇄를 거래하는 중개인 산업이 생겨나서산림이나 기타 흡수원을 보유한 국가로부터 상쇄 가격을 대폭 깍아버렸다보기를 들어이러한 상쇄를 통해 토탈(Total: 국제 석유자본옮긴이)은 1,700만 달러 규모의 가스 운송 선적을 탄소 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쇄로 인해 지구 남쪽에 있는 국가(빈곤 국가옮긴이)에서는 토지가 몰수되고단일 종 농장이 설립되고지역 사회가 이주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기금

 

수년 동안의 COP 회의들에서 부유한 국가들은 가난한 국가들이 녹색 에너지로 전환하고 경제를 탈()탄소화하는 것을 돕기 위해 1,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이것은 지구 북쪽(부유한 지역옮긴이)의 주요 국가들이 자선 사업으로 선보인 것이다하지만 1,000억 달러라는 목표액은 결코 달성되지 않았으며제공된 자금은 자선이 아니었다. 2021년에는 800억 달러가 조성되었지만, IMF의 계산에 따르면 이 기금의 80%가 대출이며 이 대출의 40%는 시장 이자율보다 높은 이자율이었다사실상 이것은 가난한 국가로부터 부유한 국가로 가치가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했다이는 부채값싼 노동력그리고 유기적 구성이 높은 자본과 낮은 자본 간의 무역을 통해 주변부 국가들에서 자본주의 핵심 국가들로 부를 이전하는 일반적인 과정의 일부이다농산물원자재광물 같은 주변국의 수출품은 노동력이 저렴하고 환경 비용이 포함되지 않아서 여전히 낮은 가격으로 남아 있다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8년 사이에 16개 저소득 국가에서 부유한 북부 경제권으로 연간 4,400억 달러가 유입되었다.17) 가난한 국가들이 새로운 자산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부채 상환을 통해 갚아야 하는 채무부담보다 훨씬 적다. 1980년대 이후 IMF는 자본 흐름의 자유화공공 자산 민영화규제 완화를 포함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대출 조건으로 부과해 왔다그 결과는 이들 국가를 북부(부유한 지역옮긴이자본에 개방하는 것이었으며, COP 기금은 기본적으로 이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본주의적 해결책은 없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생산 체제인 한 기후 위기나 그로 인한 생태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이 체제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이 체제는 이윤을 위해 생산하며이는 반드시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한다이것은 결국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되며이는 에너지 소비의 증가를 수반하여 탄소 배출환경 파괴그리고 지구가 보충할 수 없는 자원의 소비를 초래한다이것은 환경 붕괴의 지름길이며 새로운 대량 멸종 시대로 이끌고 있다자본가계급의 상당 부분은 이제 이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COP 회의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로를 바꿀 수 없다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의 논리에 갇혀 있다그들의 최근 대응 조치는 지구를 구할 만병통치약으로 녹색 자본주의의 미덕을 떠들썩하게 치켜세우는 것이다그러나 녹색 자본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이며 따라서 이 모든 문제의 연속일 뿐인데그 치어리더들은 이를 위장하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근본을 은폐하려고 한다우리는 녹색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가 어떻게 자본주의 관계를 보존하고 자본이 기후 위기를 통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본 축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는지를 보여주었다이것은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변부 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가치를 빨아들일 수 있게 하여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지만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이 전략을 계속하면 사회적 붕괴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세계의 많은 부분이 삶에 적합하지 않게 된다고 해도자본주의적 생산이윤축적은 계속될지 모르지만현재 수준의 문명이 존재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이 시점에 이르면 붕괴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더 고도의 생산 시스템만이 우리가 따르고 있는 파국적 과정을 되돌릴 수 있다이것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이 나누어진 사회이며권력을 장악한 자본가계급은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으면 자신들의 부와 특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자본주의를 전복하려면 사회혁명이 필요하다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다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의존하는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의 지위는 체제 전체를 전복할 수 있는 영향력을 그 계급에 제공한다집단적 생산자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의 상황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사회화된 글로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이를 통해 노동계급은 임금 노동국가화폐를 폐지하고 진정한 코뮤니스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18) 이것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우리는 온실가스를 없애고폐기물 생산을 없애고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한 세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전 세계 노동계급이 현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혁명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현재의 시급한 과제는 그러한 정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혁명적 전망」(Revolutionary Perspectives) 19호에서 썼듯이,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 생산 체제로 남아있는 한 지구 온난화와 싸우는 사람들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투쟁은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의 건설과 현 체제의 전복에 도움이 될 정치 조직을 설립하기 위한 투쟁이다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은 바로 이것을 이루고자 투쟁하고 있으며자본주의가 지구에 가하는 끔찍한 피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19)

 

CP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

1. ipcc.ch

2. See: Chris Rapley, Five Times Faster: Rethinking the Science, Economics, and Diplomacy of Climate Changeyoutube.com

3. ipcc.ch

4. Reported in Financial Times 5/12/2023.

5. Financial Times 3/12/2023.

6. mckinsey.com

7. irena.org – 2030-for-Successful-Energy-Transition.

8. Hannah Ritchie and Max Roser, CO2 and Greenhouse gas emissions. Quoted A. Buller in The Value of a Whale, p.188.

9. Financial Times 19/12/2023.

10. fossilfueltreaty.org

11. Financial Times 16/12/2023.

12. theworldcounts.com

13. leftcom.org

14. stockholmresilience.org.  6가지는 다음과 같다질소와 인 생화학적 과잉 유출담수 변화토지 시스템 변화생물권 보전이산화탄소 농도와 복사 강제력을 포함한 기후 변화신물질.

15. A. Buller, The Value of a Whale, p.152.

16. A. Buller, The Value of a Whale, p.60.

17. UNCTAD 9/12/2019. Quoted A. Buller, The Value of a Whale, p.199.

18. 이것은 임금 노동화폐착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한 유형이었던러시아에 존재했던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19. leftcom.org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2-01/cop28-and-the-myth-of-green-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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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좌파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지지는 자본주의 독약이다 - 삼키지 말자

좌파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지지는 자본주의 독약이다 삼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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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7일, 민간인에 대한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초토화 대응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한 위기에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인 자본의 좌파 단체가 동원되었다이들의 해결책은 약간 다른 방향에서 나왔지만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지지하면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운다는 점에서는 거의 같다이런 식으로 좌파가 지배계급을 위해 하는 '주요역할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끝없는 전쟁(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느끼는 진정한 혐오감을 은폐한다. '억압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구실로 노동자들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도록 끌어들인다이들은 민족주의나 '피억압자 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고 하지만그들의 근본적 입장은 노동자 운동의 기본 원칙인 국제주의즉 '노동자에게는 지켜야 할 나라가 없고, 국익도 없다'는 구호에 맞지 않는다코뮤니스트좌파는 이 전쟁에 대해 분명한 국제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양측을 모두 비판했고아나키즘 일부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코뮤니스트좌파와 같은 시도를 해왔다그러나 대부분 좌파는 교전 세력의 군사 파벌 뒤에 노동자를 동원하고 노동계급이 본질적으로 국제적으로 단결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자본주의 테러를 응원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SWP)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이미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WP)의 입장과 하마스와 그 잔학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1]에 대해 살펴봤지만이 단체의 규모와 상태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제국주의 전쟁과 폭력"(사회주의노동자, 23.12.4)이라는 기사에서 실제로 "자본주의 전쟁의 해결책은 어느 제국주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경쟁을 낳는 체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는 국제주의적 견해처럼 보이지만여기서 말하는 자본주의에 어떻게 '정면으로맞서야 하는가라는 임무는 과연 무엇일까? SWP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피억압 민족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의미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하마스의 살인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말하는 것이다! SWP가 제국주의 야망을 품은 지배계급을 지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60년대와 70년대 이후에는 현재 남아공[2]을 통치하고 있는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살인 깡패들을 지지했고, SWP가 '피억압자'라 부르는 대다수 사람이 빈곤과 비참함에 빠져 있는 베트남을 스탈린주의적 공포의 철권통치를 통해 지배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의 동남아시아 제국주의 책동에 완전히 편입된 베트콩을 지지한 바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SWP는 '피억압 인민'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하는 수많은 자본주의 살인 기구를 지지하고 연대와 지원을 요청해 왔다그러나 스스로 '()제국주의자'라고 칭하거나 SWP가 호명하는 이 세력들은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SWP는 소수 국가만이 제국주의이지만제국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고 모든 곳에 둥지를 틀며’[3]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 또는 피억압 민족’ 운동을 반드시 스스로 흡수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레닌의 제국주의민족해방 문제에 대한 과거 노동자 운동의 약점과 주저를 이용하거나 오히려 악용한다. SWP 속임수를 쓰기 때문에 전쟁과 경쟁을 낳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대항하려는 운동의 진영(프롤레타리아 운동일 수밖에 없는)에 속하지 않는다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살해와 여성의 강간을 '정당화'하는 하마스라는 전쟁기구에 대한 지원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오히려 SWP는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자본주의의 중요한 병사 모집 수단 중 하나이다하마스 군사 및 정치 세력(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반제국주의단체들)은 실제로 '()제국주의세력이 아니라 여느 민족해방 '운동'과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이 곳곳에 배치한 비밀 기관과 군사 자산을 이용해 만들어낸 자본주의 국가 세력이다그들은 스스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탄압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는 그들과 SWP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착취와 전쟁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을 벌이는 자본주의에 '맞서투쟁하지 않고 SWP는 가자지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우는 것은 이스라엘과 그 후원자들을 짓밟아제국주의를 타격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SWP의 '이스라엘 타격'은 반드시 이스라엘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도 포함한다최근 기사[4]에서 SWP는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배제억압소외를 통해 이익을 얻게 된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착취로 얻은 이익 일부를 확보하고 있다... 개인은 시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이스라엘 노동자들은 계급적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사회주의자들은 시오니즘 테러를 종식할 수 있는 힘을 찾아야 한다그 힘은 바로 팔레스타인의 저항지역 전체의 노동계급이며 이스라엘에 자금을 지원하고 무기를 제공하는 국가들에 대한 항의 운동이다"라고 말했다따라서 SWP의 논리에 따르면 암묵적으로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10월 7일의 학살[5]과 같은 '저항 행위'로 공격당하는 것이 정당화할 수 있다.

 

미묘하게 자본주의 테러를 응원

 

나름 독특하게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SWP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국제맑스주의경향(International Marxist Tendenc, 이하 IMT)[6]은 일반적으로 하마스를 이스라엘 하수인(오랫동안 가자지구를 분할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했다)으로 여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음을 지지한다. IMT는 "그리스 코뮤니스트당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필요한 논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트로츠키주의자스탈린주의자(둘 다 자본의 좌파에 속한다)인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서로 '동지애'가 넘쳐난다그리고 레닌과 제인터내셔널을 인용하는 등 진정한 '맑스주의단체임을 보여주려는 어설픈 언어 구사도 많지만, IMT는 SWP와 마찬가지로 결국 제국주의 요소를 지지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그리스 코뮤니스트당(KKE)을 동지적으로’ 비판한 후, ‘진정으로 맑스주의적 입장을 취하기 위하여 IMT는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이 팔레스타인 코뮤니스트 강령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KKE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회주의'와 '맑스주의'를 끝없이 외치면서도 '민족해방', 즉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승리할 때까지의 인티파다'가 자본주의 야만으로 추락이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단계라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IMT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행진하자"며 "세계 인티파다를 위해 대담하게 투쟁하자"라고 말한다일련의 민족주의 봉기를 통해 세계혁명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트로츠키주의가 제국주의 세계를 어떻게 지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전투적이었던 사회당(Socialist Party)은 두 단체에 비해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고제국주의에 대한 지지를 다양한 민주적 미사여구로 감추고 있다. 20년 전 1차 걸프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 단체는 "어떻게 하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멈추기 위한 운동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SWP의 '하마스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며 10월 이스라엘 공격에 대해 비판한다. ‘대신 사회주의 인티파다를 요구하는데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다 "좌파적형태의 전쟁일 뿐이다실제로 사회당은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동의한다"는 점에서 SWP와 맥락이 같은데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지지에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회당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해방을 위해 민주적으로 조직된 방어위원회(투쟁)’에 의해 운영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그들은 사회주의 이스라엘을 따라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SP 웹사이트).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한 지지를 빨간색으로 채색하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노동자자유동맹(AWL)은 전쟁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더 부드럽고’ 평화주의 어조를 취한다. 노동자자유동맹(이하 AWL)은 노동자 통제’, 국가 소유권,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지지하며평화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접근 방식은 SWP의 호전성만큼이나 프롤레타리아 의식에 위험하다. AWL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강령을 사회주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언어 왜곡을 하는 또 다른 그룹이다휴전과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지지하는 AWL은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 조치와 군사 원조 철회를 요구하지만미국 밖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큰 미국의 무기 저장고 중 하나를 갖고 있다는 것 외에 무기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이 단체는 "완전한 휴전평화두 개의 국가!"라는 웹사이트 제목의 기사에서 민주적으로 조직화하면 사회주의 이스라엘과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증가하는 평화 운동을 지지한다이러한 평화주의는 항상 지배계급의 손을 들어주었고제국주의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인류를 위한 전망을 더욱 희미하게 만들었다그리고 AWL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여전히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이라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위에서 좌파들이 제시하는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은 전적으로 상호보완적이며실제로 현재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내고 있는 전쟁 열풍의 일부이다. ‘민족해방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전쟁기구 엔진의 일부인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요소이다전쟁, ‘사회주의’, ‘맑스주의에 대한 좌파의 일반적인 혼동과는 별개로, SWP와 IMT 같은 단체는 더욱 구체적으로 노동계급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노동조합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SWP는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직장에서 진행하자"라며 일터에서 행동하는 날을 정하여 실행하려 한다. IMT는 전쟁기구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로 무기가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파업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며그러한 행동으로 시오니스트 전쟁 노력이 무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노동자를 부르주아지 민족주의 분파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러한 모든 시도에 맞서 노동계급은 무엇보다도 명확한 계급의식이 필요하다자본주의 전쟁특히 오늘날 확산하고 있는 규모의 전쟁에서 부르주아지는 항상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계급을 더 많이 공격하고노동계급이 더 많이 희생하도록 요구한다여기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지배계급과 그 국익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민족주의 또는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요구는 계급투쟁의 근본적인 목표(민족국가의 파괴)를 약화하는 역할을 한다.

 

바분(Baboon)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024년 1월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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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혁명」 398하마스 학살을 정당화하는 SWP

[2] 아래 링크된 기사에서 ANC의 계급적 성격을 설명한다세계혁명」 257남아공의 파업 물결, ANC와 노조에 맞서다.

[3] 제국주의의 근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니우스 팸플릿을 참조하라, marxists.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주의 노동자」 16.1.24

[5] 이스라엘 노동계급을 단순한 '정착민'으로 치부하는 이 생각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진영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은 결코 SWP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이에 대해서는 이후 글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6] 국제맑스주의경향은 1970년대 전투적 좌파에 뿌리를 둔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트로츠키주의 조직이다이 단체는 35개국에 존재하며영국 지부는 사회주의자 호소를 발행하고 있는데이 단체의 구호는 "끝까지 인티파다"이다여기서 '끝까지'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국민을 의미한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459/leftist-support-palestinian-nationalism-dose-capitalist-poison-dont-swallow-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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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레닌 사후 1세기...

레닌 사후 1세기...

레닌은 모든 코뮤니스트 투사에 모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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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지는 항상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 안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을 악의적이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왔다부르주아지는 우리 못지않게 이를 잘 알아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기억에서 그들을 지우기 위해 과거의 위대한 혁명가들의 투쟁과 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헌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끊임없이 자본주의와 대결하는 우리 계급의 근본적인 무기 중 하나는 계급의식이며이는 필연적으로 혁명 이론과 맑스주의 이론그리고 투쟁의 교훈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레닌이 사망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우리는 위대한 혁명가였던 레닌이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이론조직전략적으로 이바지한 부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공격이 예상된다.

 

레닌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왜곡

 

맑스가 대담하고 다소 파괴적인 철학자로 소개되지만그런데도 자본주의가 최악의 실패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라면레닌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없다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시도에 참여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자본주의 기반을 흔든 사건에 참여했다많은 저서에서 레닌은 이러한 근본적 경험에 대한 위대한 흔적을 남겼다레닌의 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미래 투쟁을 위해서 교훈이 될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하지만 10월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 형식에정치전략적으로 모두 결정적 공헌을 했다그는 오늘날 혁명에 꼭 필요한 무기인 토론과 성찰하는 방법이론 수립에 이바지했다.

 

레닌은 부르주아지가 언제나 배출하는 것과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혁명 투사로서 노동계급에 헌신했다이 부분에 대해서 부르주아지가 레닌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독재자반대자들을 무시하고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억압과 공포를 즐겼다고 제시하면서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한다이러한 방식으로 지배계급은 레닌과 스탈린 사이에 같은 노선이라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이 견해에 따르면 스탈린은 소련에 공포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레닌의 업적을 완성했고이는 레닌이 개인적으로 설계한 작업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는 뻔뻔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 외에도 레닌의 오류를 다른 모든 것무엇보다도 이러한 오류가 발생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토론과 해명 과정으로부터 고립시켜 레닌의 오류에 집착한다또한이는 세계혁명 운동의 패배라는 국제적 맥락에서 그들을 고립시켰고이로 인해 러시아혁명은 계속 진전되지 못하고 스탈린의 지배 아래서 단일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로 후퇴하게 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필두로 한 좌파가 특히 자본주의 주변국의 민족해방 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잠재력에 대해 심각한 착각과 왜곡을 했던 레닌의 오류('가장 약한 연결고리이론)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신비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좌파들은 민족주의 구호와 한 제국주의 진영을 다른 제국주의 진영에 대한 지지를 통해 프롤레타리아를 제국주의 분쟁의 총알받이가 되게 하려는 전쟁 선동을 펼치기 위하여 이러한 오류를 활용해왔고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이는 레닌이 아주 단호하게 방어했던 혁명과 국제주의 관점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자본의 집중이 코뮤니즘으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이라는 레닌의 신탁업과 대형 은행에 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다좌파들은 소비에트’ 경제와 소련에서 야만적 착취가 자본주의의 사례가 아니었다는 거짓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은행과 대기업의 국유화를 요구하고 그에 따른 코뮤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대로서 국가자본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레닌이 저지른 실수로 축소해서는 절대로 간단하게 레닌을 설명할 수 없다이는 그러한 실수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우선그들은 비판적 검토를 통해 노동자 운동을 위하여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레닌에 대해 부르주아지가 가증스럽게 그리는 초상화 앞에서 레닌을 완벽하고 모든 것을 아는 지도자로 설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레닌은 끈기조직에 대한 통찰력신념과 전술 면에서 존경을 받는 노동계급의 투사였다지난 세기 초에 혁명적 발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레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운동투쟁국제적 논쟁에서 일어나며이 당시에는 레닌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운동에 아무것도 공헌하지 못했다맑스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출현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행동하고 그 엄청난 업적을 달성할 수 없었고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조직 건설에 헌신하고 전투적 에너지를 쏟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조건에서만 혁명적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레닌이 짧은 생애 동안 조직정치이론전략적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에 근본적인 공헌을 하고 유산으로 남긴 것은 바로 이러한 특별한 역사적 조건에서였다.

 

전사투사

 

학술적 지식인과 달리 레닌은 무엇보다도 혁명적 투사였다침머발트 대회1)에서 레닌은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레닌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고하게 방어하고 1914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제인터내셔널의 붕괴에 맞서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유럽에서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국제주의의 불꽃을 살리기 위한 투쟁의 선봉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침머발트 대회에는 신념에 찬 국제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총알받이로 삼는 민족주의 광기에 맞서 싸우려는 레닌의 계획을 약화하고 평화주의 환상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다그러나 볼셰비키 대표단 내에서 레닌은 당시 프롤레타리아트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의에 참석한 다른 경향과 타협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침머발트 대회 후에도 평화주의와 평화주의가 조장하는 위험한 환상을 단호하게 비판함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계속해서 투쟁했다이러한 확고함이론적 연구와 논쟁의 대결을 통해 자기 입장을 강화하면서 자기 입장을 옹호하려는 결단력은 오늘날 모든 혁명적 투사에게 영감을 주는 핵심요소이다.

 

당 정신에 대한 방어

 

조직적인 측면에서 레닌은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를 뒤흔든 논쟁에서 큰 공헌을 했다.2) 레닌은 이미 1902년 당내 논쟁에 대한 기고문으로 발간한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던 경제주의적 전망에 반대하고 대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즉 혁명당의 전망을 내세우는 자기 입장을 개괄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멘셰비키가 옹호한 것처럼 혁명조직에 대한 느슨한 개념즉 '동조자'와 가끔 기여하는 자들의 집합체로 간주하는 것에 맞서 투쟁 정신에 이끌려 계급에 대한 헌신과 책임을 자각한 투사들의 정당이라는 자신의 전망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내에서 관철하기 위해 결단력 있게 투쟁한 것은 바로 2차 대회 때였다따라서 이 투쟁은 혁명당 성원은 개인적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동료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공동 이익즉 공동 이익의 표명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조직의 일원임을 명확히 하는 순간이었다노동자 운동이 '서클 정신'을 넘어 '당 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투쟁 덕분이었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볼셰비키 당은 전위 정당으로 조직되어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이질적 이데올로기의 침입에 맞서 싸우며 10월 봉기까지 러시아에서 투쟁의 발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우리는 내일의 당을 건설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이러한 원칙을 방어해야 한다.

 

레닌은 그의 저서 일보전진이보후퇴에서 제2차 대회의 투쟁을 돌아보며 인내끈기논증확신 등 이러한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을 페이지마다 보여준다그것은 부르주아지가 믿는 것처럼 권위주의위협배제와 같은 방법이 아니다레닌이 남긴 방대한 양의 글만 봐도 그가 혁명적 사상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인내심과 단호한 논증즉 강요가 아닌 설득의 원칙을 얼마나 잘 옹호하고 실천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혁명적 관점에 대한 방어

 

1903년 대회 이후 14년이 지난 1917년 4월에 레닌은 망명지에서 돌아와 시대의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 당을 장악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방법을 적용했다유명한 4월 테제3)는 볼셰비키 당이 부르주아 임시정부 방어에 매몰되지 않도록 강력하고 명확하며 설득력 있는 논거를 몇 문장으로 제시하고 제2의 혁명 단계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 글은 레닌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당을 위해 쓴 글이 아니라 당내에서 벌어진 토론에 대한 기고문으로레닌이 다수파를 설득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이 글에서 레닌은 대중 내에서 소수당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전략을 정의하며이를 위해서는 토론과 인내심 있는 선전이 필요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내심을 갖고 체계적으로끈질기게 설명하라". 이는 부르주아지가 계속해서 피에 굶주린 독재자로 묘사하는 모습이 아니라 레닌의 실제 모습이다...

 

레닌은 절대 강요하지 않고 항상 설득하려고 했다그러기 위해서는 탄탄한 논리를 개발해야 했고개인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 전체와 노동계급에 미래의 투쟁을 위한 무기로 전수하기 위해 이론적 숙달을 도모해야 했다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혁명 이론 없이 혁명운동은 없다." 특히 중요한 저작 국가와 혁명4)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레닌은 4월 테제에서 2월 봉기 이후 등장한 국가에 대해 경고하고 이러한 국가에 단호하게 대항하는 혁명적 동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9월에는 이 주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국가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 성과를 바탕으로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 국가와 혁명을 쓰기 시작했다국가와 혁명의 집필은 10월 봉기로 인해 중단되었고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다.

 

여기서도 레닌의 접근 방식이 드러난다부르주아지는 '천재성'과 '재능'에만 기반을 둔 타고난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좋아한다한편으로 레닌의 능력은 그가 방어하고 있었던 운동에 대한 깊은 헌신을 통해 설득한 덕분이었다그는 당내 권력을 이용하거나 배후에서 계략을 꾸며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기보다는 국가 문제에 대한 노동자 운동의 작업에 몰두하여 기존 국가기구를 단순히 인수하는 사회민주주의적 발상과의 단절에 찬성하고 이를 파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혁명가는 천재성만으로는 올바른 전략을 '발견'할 수 없으며상황의 위기와 계급 사이 힘의 균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올바른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1917년 7월에 이것을 보여주었다.5) 4월 볼셰비키 당은 2월혁명 이후 등장한 부르주아 국가에 맞서 노동계급을 이끌기 위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7월에는 페트로그라드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규모로 민정 통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즉 프롤레타리아트가 성급하게 봉기를 하도록 유발하여 특히 볼셰비키에 대한 무제한의 탄압을 펼칠 수 있는 함정을 파 놓으려고 했다.

 

그러한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확실히 러시아의 혁명적 동력을 결정적으로 약화했을 것이며, 10월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 시점에서 볼셰비키 당은 노동계급에 공격을 주도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으며 페트로그라드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준비되지 않았고 지금 봉기를 하면 전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였다.

 

당면한 시점에 제시할 구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결정하는 두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떤지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했지만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계급이 정부 전복을 열망하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신뢰를 얻는 것도 필요했다이러한 신뢰는 강압위협 또는 어떤 종류의 '민주적장치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 심오하게 잘 논증하는 방식과 계급을 이끌 수 있는 능력으로 획득한 것이다일련의 과정에서 레닌의 역할은 확실히 중요했다. 1903년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창당부터 침머발트와 1917년 4월 테제를 통해 볼셰비키 당이 혁명의 각 단계에 맞는 역할을 맡게 되고전체 프롤레타리아트에 코뮤니스트혁명의 진정한 등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인내하며 투쟁한 레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르주아지는 항상 레닌을 권력에 굶주린 책략가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한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할 것이다부르주아지는 이러한 관점에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혁명의 역사를 언제나 다시 쓸 수 있지만레닌의 삶과 업적은 이러한 조잡한 이념적 책략을 끊임없이 부정한다현재와 미래의 모든 혁명가에 레닌의 헌신맑스주의 이론과 방법 적용의 엄격함인류를 코뮤니즘으로 이끌 계급의 능력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레닌이 사망한 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코뮤니스트 투사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없이 풍부한 모범이 되고 있다.

 

GD

2024년 1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은 1900년대 초의 당 기관지 이스크라(불꽃)이다레닌은 언제나 혁명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1. 침머발트(1915-1917): 전쟁에서 혁명까지국제 평론」 44

2. 이번 글에선 이 투쟁을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볼셰비즘의 기원에 대해 작성했던 일련의 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자 한다: 1903-4: 볼셰비즘의 탄생국제 평론」 116, 1903-1904: 레닌에 대항하는 트로츠키국제 평론」 117, 1903-1904: 볼셰비즘의 탄생레닌과 룩셈부르크국제 평론」 118

3. 1917년 4월 테제프롤레타리아혁명의 간판국제 평론」 89

4. 레닌의 국가와 혁명」 맑스주의에 대한 놀라운 검증국제 평론」 91

5. 러시아혁명 이래 80: 7월의 날들과 당의 중요한 나날들국제 평론」 90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463/century-after-his-death-lenin-remains-example-all-communist-milit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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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 ]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혼돈의 시대'인가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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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우리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발행하는 혁명적 전망」 최신호(24)의 사설을 공유한다사설에는 매체의 기사를 소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이고국제주의 관점의 정치적 지향에 동의하기에 코뮤니스트에 싣는다.

 

이번 호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러시아 미사일이 소아과 병원을 공격했고이스라엘 폭탄이 가자지구 누세이라트(Nuseirat)에서 또 다른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 학교를 무너뜨리는 등선거로 정신이 없는 올해에도 전 세계 최소 50개국에서 전쟁이 계속해서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뉴스가 잇달아 들려왔다우크라이나의 '궤멸 작전'이나 가자지구의 참상은 황금 시간대에는 보도되지 않지만사선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비참함을 가져다준다보기를 들어 수단에서는 15개월 전부터 시작된 집권 세력 사이의 전쟁이 현지 및 타지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으로 계속되고 있다. 15,000명이 넘는 실제 사망자 수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공동묘지는 현재 가득 차 있다여기서 특히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곳은 보건소이다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몇 달 동안 60건의 공격으로 의료 서비스의 70%가 무력화되었다고 한다제국주의의 전면전은 '부수적 피해'를 허용하지 않는다그것은 다른 사람을 가변 자본과 불변 자본 모두에서 파괴하는 것이 운동의 목표인 치열한 싸움이다지난 2월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듯이세계는 이제 전쟁이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무자비한 자유경쟁을 의미하는 혼돈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그는 심지어 확고하게 정립된 메커니즘이 초강대국 관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냉전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다극 세계에서는 그러한 메커니즘이 사라졌다고 말하기까지 했다물론 그의 관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그의 해결책은 유엔이 평화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제국주의 사이 경쟁을 위한 또 다른 포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단순히 유엔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불과했다더욱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현재의 추세를 이해하려면 다른 곳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사회의 물질적 기반으로 접근해야 하며이는 경제 상황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유엔 사무총장보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을 의미한다그가 말하는 냉전 시대에는 '핵 대치'가 전면전을 막은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근본적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권을 차지한 두 강대국이 현상 유지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전쟁으로 인해 많은 가치가 파괴되었고 그 뒤에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이 이어졌다두 초강대국 모두 전면전을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았다. 1970년대 초호황이 끝나고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시도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이 일어나면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과 같은 조직이 탄생했다거의 50년 전 창립 이래로 우리는 자본주의 발전의 모든 변화와 전환의 물질적 토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으며이에 대한 기여로 이번 호에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에 대한 시리즈 5장을 게재한다.

 

이는 세계화가 발생한 이유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계 노동계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다.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 포드주의 시대의 오래된 대규모 공장들이 소규모 단위로 대체되었고심지어 독점 기업조차도 서비스를 보조 기업에 위탁하고 있다이 새로운 계급 구성은 혁명가들에게 더 큰 도전을 의미한다일부 이론은 사건에 의해 추월당했다노동자들이 단순히 생산 단위를 장악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생디칼리스트와 평의회 코뮤니스트들의 생각은 안톤 판네쿡에 관한 비평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힘을 잃었다하지만 판네쿡이 옳았던 한 가지는 바로 노동계급 해방의 열쇠는 노동자의 의식에 있다는 점이다자본주의는 단순히 초강력 투쟁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자본주의의 전복과 새로운 코뮤니스트 세계의 토대 구축은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강령을 중심으로 계급을 통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자본주의의 지속적인 환경 파괴로 인한 인류 생존에 대한 위협과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제국주의 전쟁이 일반화될 가능성을 고려할 때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이다판네쿡은 노동계급을 배신한 제인터내셔널과 제인터내셔널의 재앙을 겪으며 살았다. 1930년대 반()혁명 시기에 소련의 스탈린주의 정권이 국가 자본주의적 '맑스주의'가 화석화하면서 그는 ''이 계급의 혁명적 의식 발전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고 '자발성'을 점점 더 신뢰하게 되었다그는 노동계급의 근원적 투쟁이 혁명 사상의 발전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이러한 투쟁이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또한 평의회(소비에트자체가 종종 정당에 의해 구체화하기는 하지만이념 사이 투쟁의 장일 뿐이라고 보았다하지만당을 혁명 이전의 노동자 의식의 집단적 발산으로 보지는 않았다오늘날 우리는 노동계급이 투쟁의 역사를 통해 획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명확한 혁명 강령을 갖춘 조직화한 국제 정치기구가 체제 전복 투쟁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여기서 정부를 열망하는 정당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평의회의 임무이다러시아 노동자들이 역사적으로 발견한 대중사회를 운영하는 방법의 형태이며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이다우리는 여기서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라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오늘날 많은 트로츠키주의자가 받아들임)를 선전하는 노동자의 가짜 친구들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주적 투쟁을 방해하고 약화하기 위해 등장할 새로운 정치적 위험에 맞설 수 있는 인터내셔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이 틀 안에서 우리는 우선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모든 국가의 부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이 제국주의 세계전쟁 추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계적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과 협력하여 전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우리는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자본가들에게 항상 쉬운 선택이었으며이런 의미에서 더 큰 전쟁을 위한 준비는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준비 일부는 이념적이며이는 최근 유럽연합영국프랑스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반영되었는데유권자들의 '선택'은 군사적 대비를 강화하고 전 세계의 전쟁과 경제 위기의 희생자들이 '이질적인 가치'를 가져오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이번 선거에서 정체성 정치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의 부상으로 북아프리카나 프랑스의 다른 옛 식민지 출신 프랑스 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에 청신호가 켜졌다한때 홀로코스트를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일축할 정도로 반()유대주의자였던 르펜의 당은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이슬람주의에 맞서 싸우는 동료가 되었다영국에서는 배틀리(Batley), 듀스베리(Dewsbury) 등의 지역구에서 팔레스타인 민족 대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무슬림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었고수천 명의 백인 노동자들은 인종주의 개혁당에 표를 던졌다이러한 양극화는 수십 년 동안 지속한 자본주의 위기의 산물이며오늘날 영국 성인의 거의 절반인 2,030만 명이 생존을 위해 신용대출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서는 거의 3백만 명이 정기적으로 푸드뱅크를 이용하고 있다부유한 OECD 국가들 전반에서 실질 임금은 2021년 이후 하락했으며이는 1979년 이후 GDP 대비 임금이 오랫동안 하락한 것에 더해졌다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비참한 삶의 질이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추상적인 원인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다이민자나 무슬림유대인 등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게 얼마나 쉽고 저렴한 일인가?

 

하지만 계급 운동을 구축하는 데 있어 이것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판네쿡에 관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100년간의 반()혁명이 낳은 혁명 운동의 분열도 있다이는 스탈린주의자들처럼 '혁명적 패전주의'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명분으로 삼는 가짜 또는 선택적(파트타임국제주의자들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정치 조직화를 위한 모든 시도를 '사기'로 보는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의심의 유산을 남겼다(카마트의 말처럼). 올바른 국제주의적 입장을 취해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아레초(Arezzo) 회의에서 다른 모든 대표단은 일반화된 전쟁에 대한 우리의 우려가 과장되었다거나 노동계급이 전쟁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프라하에서 가장 큰 차이는 모범적인 행동(19세기의 '행동에 의한 선전')이 군국주의와 싸우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주로 아나키스트라고 해야 한다)과 자본주의를 중단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혁명적 소수를 넘어 더 넓은 노동계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우리와 같은 사람들사이의 차이였다우리의 과업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선전을 확산하는 것이며이는 나머지 노동계급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운동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정신과 이러한 동기로 우리는 더 광범위한 계급 저항을 향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공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다이번 호에 보도된 프라하 국제 모임과 아레초에서 열린 소규모 모임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참석했다.

 

더 넓은 계급을 위해 일하지 않고 정치 게임을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경고로우리는 정치적 위기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으로 이어진 자코모 마테오티(Giacomo Matteotti) 살해 100주년을 맞아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의 기사를 번역했다당시 코민테른이 그람시를 수장으로 세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은 반도 전역에서 들끓는 계급 운동을 소홀히 하고사회민주당 및 자유당과 함께 이른바 아벤티노(Aventine) 분리주의1) 라는 희극적인 의회 게임을 벌였다이에 따라 무솔리니는 몇 달간의 위기에서 살아남았고결국 1925년 1월 독재 정권을 선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안타깝게도 혁명적 관점」 이번 호의 준비 중에 우리의 동지 올리비에(Olivier)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어 다소 늦게 발간하게 되었다올리비에는 2년여 동안 전립선암을 앓았고생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프랑스 지부인 국제주의 혁명그룹(GRI)의 설립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다그의 정치적 삶 전반에서 보여준 헌신과 결단력용기와 존엄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GRI의 동지들과 그의 동반자 프랑수아즈( Françoise), 그리고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

 

2024년 7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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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엔 사진/셰리프 사르한 (CC BY-NC-ND 2.0), flickr.com

 

<역자 주>

아벤티노(Aventine) 분리주의는 1924년 6월 10일 자코모 마테오티(Giacomo Matteotti) 의원이 파시스트에 의해 살해된 이후, 1924~1925년에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사회당자유당인민당 등으로 구성된 의회 야당이 의회에서 탈퇴한 사건이다이 분리주의는 고대 로마의 아벤티노 분리주의에서 이름을 따왔다이 항의 행동(비폭력적 반대)으로 무솔리니와 그의 국가 파시스트당이 전권을 장악하고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독재 정권을 수립할 수 있었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8-10/an-age-of-chaos-or-of-deepening-capitalis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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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 자기 시대가 도래한 사상?

코뮤니즘자기 시대가 도래한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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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악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탈출구를 찾지 못하며투쟁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현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한 계급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레닌, 1910)

 

세계는 갈림길에 서 있다경제 위기전쟁으로의 질주생태 재앙사회 붕괴는 이미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파괴로 가득 찬 미래를 예고한다가자지구레바논수단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TV를 켜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소셜 미디어를 확인할 때마다 새로운 공포가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낙담하기 쉽다하지만 많은 사람이 묻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은 '대안은 무엇인가?'이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도전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며단순히 나쁜 개인이 저지른 잘못된 선택의 결과도 아니다이 모든 문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고 부르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 같은 나무의 가지이다근본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욕구 충족이 아닌 이윤 추구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인류가 국제적국가적심지어 대인관계 수준에서 내리는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이윤 동기이다물론 사회의 소수 일부 계층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갖는다재산토지를 가진 사람들즉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이 실질적인 권력의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나머지 사람들은 노동력을 팔 수 있을 뿐이며, 4~5년마다 투표를 통해 부자의 대표가 우리를 통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강압과 수탈에 의해 확립된 체제이며모든 수준에서 치열한 경쟁과 착취억압이 그 특징이다.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사회가 때로는 파국적인 방식으로 체제를 재생산하는 가짜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이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사회주의, ‘실제 존재하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근본적인 특징(임금노동화폐 및 상품 생산)은 그대로 존재했지만정부의 개입이 강화된 조건에서 유지되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모든 체제를 진정한 대안이 아닌 국가자본주의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나 코뮤니즘과 같은 용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 용어는 인류가 노동의 산물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하여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국가가 없고계급이 없고돈이 없는 사회를 예고한다그리고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계급의 대중 운동만이 이러한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

 

인간 사이의 관계가 착취와 억압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다우리는 자연과 서로 전쟁을 벌이며 살 필요가 없다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를 잘 알고 있다인류는 종으로서 약 30만 년 전에 출현했으며우리 존재의 대부분을 협력과 연대가 생존의 핵심인 국가가 없고계급이 없고돈이 없는 작은 사회에서 보냈다우리는 시대를 되돌릴 수 없고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인류는 모든 최신 기술과 사회적 발전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새롭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우리는 이것이 현재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현 체제 아래에서는 무엇보다도 이윤 추구가 가장 '합리적'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인간은 매일 협력과 연대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때때로 이러한 행동은 사회를 변혁하려는 혁명 운동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규모로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코뮤니즘 또는 사회주의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탄생한 진정한 계급 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맑스의 비유를 빌리자면계급 운동은 땅속을 파헤치고 파헤치다가 주기적으로만 표면에 나타나는 늙은 두더지와 같다때로는 너무 깊이 파고들어 자칭 혁명가들조차 희망을 잃거나 지름길을 찾기 시작하는데지배계급과 그 옹호자들은 계급투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기뻐한다그러나 계급 사회가 존재하는 한계급투쟁은 다른 장소다른 시기에 새로운 형태로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시적인 승리일 뿐이다.

 

한 세기가 넘도록 자본주의 체제는 전복될 시기가 무르익어 왔으며수십 년간 점점 더 부패해가고 있다오늘날의 제국주의 국가는 토마스 홉스의 환상이 어린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새로운 리바이어던1)”(부하린, 1915)과 같다그러나 그들은 이윤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선택지가 부족하다.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분석 방법으로 이해되는 맑스주의는 상품 사회에 대항하는 무기이다이를 통해 우여곡절과 갑작스러운 단절도 인류 역사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점차 그러한 시기에 가까워지고 있다문제는 노동계급이 진정한 사회 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아니면 역사가 전하는 잠자는 거인으로 남을 것인가이다.

 

 

다이즈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2024년 12

 

<역자 주>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출간한 책으로원제는 리바이어던즉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이다홉스는 사회계약을 통해 창출한 주권자를 지상의 절대자로 상정했다개인들은 신과 같은 주권자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주며 주권자는 이 넘겨받은 권리를 하나로 모아 행사한다홉스는 그렇게 등장한 절대주권자를 <구약성서>의 바다 괴물에 빗대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다이 리바이어던으로 홉스가 가리킨 것이 국가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의 체현자인 군주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1-04/communism-an-idea-whose-time-has-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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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이 주도하는 6월 항쟁, 제2의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전시키자!!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5/01/07 13:32
  • 수정일
    2025/01/07 13:34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6월 항쟁, 제2의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전시키자!!
-부르주아 민주항쟁을 뛰어넘는 노동계급의 대투쟁으로 여름을 뜨겁게 달구자-

 

 

 

<17년 전 글을 다시 게재하며>

2008년 가두투쟁(광우병 촛불) 이후 17년이 지난 오늘, 노동자 투쟁은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과 선거 전술에 갇혀 있지만, 2008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 투쟁과 연대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다양성은 투쟁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행동을 풍부하게 해주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는데 활력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미조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예비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지금 가열되고 있는 대중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 집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이 건강이나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총체적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서로 토론하는 적극적인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2025년 겨울 항쟁을 2017년 촛불 투쟁으로 되돌리는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중 앞에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가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길이,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여는 노동계급의 임무임을 전 세계 노동계급에게 당당하게 선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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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의 가두현장에서
 
2008년 5월31일 밤 11시부터 5월1일 새벽6시까지 나는 청와대 입구 큰길가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와 함께 있었다. 수많은 가두 현장에 참여했지만 그날의 경험은 지난 50년의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한국의 노동계급이 나아가야 할 거대한 투쟁의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1960년 4월19일 18세의 고등학생으로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여 이승만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역사의 현장에서, 그리고 1987년 강단 맑스주의자로서 6월 항쟁의 가두투쟁을 거쳐, 나는 48년 만에 다시 사회주의 활동가로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대중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5월31일의 촛불집회는 그 이전의 집회와 몇 가지 점에서 성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수천 명의 대학생들의 조직적 참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조직적 참여, 이랜드 비정규직 노조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가 있었고, 행진하는 시위대의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통일되었다. 또한 행진의 목표인 청와대를 향한 끈질긴 돌파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청와대 근처가 8시간 동안 ‘해방구’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본격적인 자본가 정권으로 등장한지 100일 만에, “이명박 퇴진”을 가두에서 공공연하게 외쳐대는 2008년 시위대의 모습은 놀랍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다양성과 창발성은 더욱 놀랍다. 하지만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가두투쟁의 한계와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정치투쟁의 한계를 한꺼번에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2. 가두투쟁과 대중의 계급적 성격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에서 대중이 외친 구호는 똑같다. “독재타도”와 “정권퇴진”이다.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이승만 정권 타도, 체육관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는 “호헌철폐” 요구, 그리고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쇠고기 협상을 한 이명박 퇴진 요구는 모두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의 적법성을 따지는 초보적 요구이다. 물론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촛불 대중의 요구는 단수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건강권을 넘어선 미국의 축산자본의 이해, 육류소비와 관련된 계급불평등이 복합적으로 연동되어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권의 문제로 보는 민족주의적 관점, 건강의 문제로만 보는 인권주의적 관점, 소통의 문제로 보는 민주주의적 관점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 머물러 있는 대중에게 만일 이명박 정권이 재협상을 포함한 획기적 민생대책을 내놓는다면, 촛불의 열기는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다양한 계층의 대중의 가두 투쟁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이다.
 
또 하나, 가두투쟁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의 한계는 그것이 철저하게 생산현장의 계급투쟁에 기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을 중심으로 한 4.19혁명은 부르주아정치세력에게 정권을 물려주었으나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투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5.16쿠데타 세력에게 무력으로 권력을 강탈당하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도 직선제라는 부르주아 선거의 환상에 민중의 폭발적 투쟁요구를 빠뜨림으로서 6.29 기만선언에 굴복하게 만든 뼈아픈 역사가 되었다.
 
5월에 시작하여 6월을 달구고 있는 촛불시위 역시 현장의 노동계급의 투쟁에 기반 하지 않고 있다. 수십만의 대중이 다양한 표현의 방식으로 그들의 요구를 펼친다하더라도, 그것이 “헌법 제1조”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80년대 운동가요를 함께 부르는 방식에 갇혀 있는 한 가두의 축제나 부르주아정치로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를 20년 전, 아니 5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87년 6월 항쟁의 한계를 극복하고 7,8,9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3.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노동계급의 투쟁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으나, 5.16쿠데타로 박정희 군부파시즘 체제가 한국자본주의 발전을 개발독재로 이끌었다. 군부 파시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었고, 세계자본주의의 재편과정에서 제3세계의 자본축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이 진행되었다. 섬유와 전자기기가 대표적 보기였고 공해산업인 비료, 화학, 정유 산업은 다른 축을 형성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박정희 체제의 경제 성장 전략은 노동계급을 유혈적으로 착취, 억압하는 반노동계급적 전략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철저한 탄압 속에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과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속에서 신음했다. 그러나 1960년에 200만이던 노동자는 1971년에 400만으로 두 배가 되었다. 노동탄압 속에서도 청계피복, 원풍모방, 동일 방직 등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이는 1970년대 여성중심의 민주노동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국가자본주의 국가 발전 과정의 일반적 경향처럼, 한국자본주의는 1970년대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조선, 종합제철, 섬유 화학 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2년에 43.9%, 1978년 55.2%로 늘었다. 중화학공업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그에 맞서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1971년 9월 한진상사 노동자 투쟁, 400여명의 KAL 방화사건, 1974년 9월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2,500명의 투쟁, 1980년 4월 사북탄광노동자 투쟁, 동국제강, 인천제철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85년 대우자동차 파업투쟁으로 이어져 87년 7,8,9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진다.
 
노동쟁의 건수를 보면 1969년 130건에서 1971년 1656건으로 급증했고, 1974년에는 666건에 이른다. 1970년대의 노동계급의 투쟁은 유신체제 아래에서 계급투쟁적 성격을 갖지 못하고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에 머무는 개량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오일 쇼크 이후 세계공황의 조건 속에서 한국경제는 1978년부터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공장가동률이 떨어졌으며 물가가 폭등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근로조건 개선, 체불임금 지급, 민주노조 건설과 노조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벌였고,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노동쟁의 건수는 1979년의 열배에 이르는 2,168건이나 되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도 1984년 대구 택시 노동자 투쟁, 대우어패럴 노조결성, 그리고 1985년 6월 구로동맹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최초의 지역 노동자 연대 파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4. 87년 6월 항쟁의 한계와 7,8,9 노동자 대투쟁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계급투쟁 없이 시민과 다중의 항쟁이 혁명을 이루어낸 적이 없다. 1987년을 말할 때 우리는 군부파시즘의 억압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승리를 말한다. 수많은 열사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 “군부독재 타도”의 구호는 직선제로의 직접선거를 통한 정치민주화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군부파시즘이 기반하고 있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전복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었다.
 
개발독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강력하게 형성시켜 온 거대한 노동계급이 살인적 억압 착취의 사슬을 끊고 권력의 주체로 나설때 만이 온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도 쟁취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부르주아 선거라는 정치 개혁을 통한 가두투쟁이 먼저 진행되었고, 바로 그것이 6월 항쟁으로이어 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87년 6월 전국의 가두를 달군 집회와 시위는 그 폭발적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부르주아 선거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인을 선택하는 길이 정치 민주화의 길이라는 환상에 휩싸이게 했다.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이 선행했을 때, 뒤 이은 정치투쟁의 올바른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6월 항쟁이 소부르주아가 주도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계급적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고 노동계급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전복의 혁명적 길을 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동안 투쟁해왔던 노동계급에게 정치적 공간을 열어 주었고, 투쟁의 확신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파업의 물결이 넘쳐 하루 40건이 되는 파업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3,327건을 기록하였다. 파업 참여 노동자는 122만 명에 이르렀는데, 노동자 10명 이상 중소사업체 333만 명의 37%, 노동자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가운데 75.5%가 파업에 참여했으며, 3개월 동안 파업 건수는 그 이전 10년 동안 일어난 전체 파업 건수의 2배를 넘었다. 파업이 일어난 사업장의 55%가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며, 1,162개의 새로운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대투쟁은 한국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였고, 그 주체는 그 이전시기 경공업 중심의 중소기업 여성노동자로부터 중화학공업 중심의 대기업 남성노동자라는 특성을 지녔으며, 그들의 요구는 인간적 대우, 임금인상, 민주노조 쟁취였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법 상의 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점거를 통한 파업농성을 한 뒤 협상을 요구하는 ‘불법파업’을 벌여 위력적인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조합원 대중의 참여와 결정에 따르는 총회 민주주의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투쟁과 함께하고 방향을 제시할 혁명적 정치세력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6월 항쟁의 성과를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빼앗김으로써 더 높은 단계로 계급투쟁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5. 현 정세에서의 노동계급의 대투쟁 방향
 
앞에서 보았듯이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에 보이는 가두투쟁과 부르주아 민주쟁취의 요구는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항상 현장에서의 노동계급의 대대적 투쟁에 앞서 부르주아 정치투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정권의 교체를 통해 솟구치는 노동계급의 권력 쟁취를 지연시키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르주아지에 종속시켰다. 4.19가 5.16 쿠데타에 의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고, 87년 6월 항쟁이 20년 넘게 부르주아 보수정치세력에게 노동자의 권력을 위임하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예기치 않은 대중의 가두투쟁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08년 전혀 다른 주객관적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의 폭발적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다.
 
첫째, 지금의 정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의 쟁취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던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40여년의 역사와 달리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파국적 위기에 직면한 대공황 직전의 시기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계급의 삶이 보다 가혹한 억압, 착취를 통해 비인간적인 야만으로 추락하는 정세이다. 한국 사회는 늦게나마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진전을 위한 투쟁의 성과를 어느 정도 보전한 채, 본격적으로 이명박이라는 자본가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계급투쟁을 희석시킨 민족주의 및 급진적 민주주의와 결별하면서, 노동계급의 생존과 승리를 위한 역사적 투쟁의 시기에 진입하였다.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인상, 물가폭등, 달러화 약세, 부동산 거품 등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의 징표이며 공공부문 사유화, 구조조정, 계급의 양극화는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려는 자본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쇠고기를 둘러싼 정세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총체적 위기가 모든 노동자의 삶의 영역에서 관철되는 복합적 정세이다.
 
둘째,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대중은 분명한 노동계급적 주체로 규정할 수는 없어도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절차의 복원만을 요구하는 소부르주아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중고생이나 대학생은 한국자본주의가 형성시킨 예비노동자이며 이명박에 불만을 품은 자영업자들의 소부르주아는 넓은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화되는 불안정한 실업예비군에 포함될 수 있다. 집회에 참여하는 대중들의 요구가 노동계급의 생존의 요구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다. 이미 이들의 가두투쟁은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고 상당부문의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태극기나 애국가 등으로 표현되는 순수한 애국주의도 노동계급의 총체적 삶의 요구를 통해 계급적 요구로 모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정세 조건에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모든 노동자는 생산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자본과 국가의 모든 조치에 맞서 총파업투쟁을 아래로부터 조직해야 한다. 총파업투쟁이 현장점거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과 유통을 중단시키고, 위력적인 가두 투쟁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과 공세적 대중투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둘째, 모든 미조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예비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지금 가열되고 있는 촛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촛불 집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이 건강이나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총체적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서로 토론하는 적극적인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총파업 이후 가두투쟁을 하는 조직된 노동자들과 함께 전 계급적 요구로 상승시켜야 한다.
 
셋째,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총파업과 대중투쟁이 아래로부터 힘 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 그를 극복하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적 전망과 대안을 대중에게 선전 선동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가 노동계급의 진정한 요구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 혁명정당의 부재가 보였던 과거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혁명정당 건설 투쟁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2008년 우리의 여름 항쟁이, 프랑스의 68투쟁, 69년의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처럼 전 세계 노동계급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8년 여름 항쟁을 87년 6월 항쟁으로 되돌리는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중 앞에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가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길이,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여는 노동계급의 임무임을 전 세계 노동계급에 당당하게 선포하자.

 

 

 
2008년 6월
                                                                                                           Left Communist Group(LCG) ㅣ오세철

*LCG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창립의 기초가 되었던 한국 최초의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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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강령)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코뮤니스트 사회
 
노동계급은 혁명계급이면서 낡은 체제에서 피착취계급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서 의존할 수 있는 특권이나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부르주아 국가기구나 제도에 의존해서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다수의 집단적 힘과 의지를 관철해낼 수 있는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지 않고서는 노동해방을 이루어낼 수 없다. 부르주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 앞에는, 낡은 생산관계의 지배가 새로운 것의 이해관계를 위해 파괴되는 과도기, 즉 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불가피하게 선행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새로운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계급적 목적을 정치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체제이며, 경제적 변혁을 수행하기 위해 착취계급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사회화 부문을 점진적으로 전체 생산부문으로 넓혀 나가는 사회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 노동자평의회는 노동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 계급 안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 가능한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평의회 체제에 의해 중앙(집중)화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포함한 코뮤니스트혁명 과정에서 혁명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 혁명당은 코뮤니즘의 필요성을 깨달은 가장 의식적인 노동계급을 재조직하고 전체 계급의식을 코뮤니스트 강령에 가깝도록 일반화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혁명당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로 거짓 선전되었던 국가의 당 독재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당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자평의회, 프롤레타리아 총회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권력을 가진다.
 
자본주의로부터 코뮤니즘으로의 이행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에도 비(非)착취계급과 계층은 여전히 존재하며,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내부적인 계급투쟁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아직, 생산수단은 전체로서 사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가체제인 노동자평의회에 속할 수밖에 없다. 계급이 폐지되기 전까지 생산수단은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계급이 독점할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전면적인 코뮤니스트 생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여전히 사회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이며, 부르주아지를 대신해 지배하는 노동계급이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의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그것을 부르주아 반(反)혁명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자, 코뮤니즘을 향한 경제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다. 소수 부르주아가 독점한 생산수단의 박탈은 고립된 개인들의 집단이 아닌 노동계급의 조직된 힘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렇게 조직된 힘이 노동자 반(半)국가의 기초를 형성할 것이다. 이렇듯 이행기 동안 노동계급은 사회의 유일한 혁명계급이기 때문에, 사회계급이 노동계급의 사회화된 부문으로 통합되어 점진적으로 소멸하면서 모든 사회계급이 폐지되고 국가 자체도 소멸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 내부에서의 특정한 부문이나 그룹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배제한다.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손에 있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파괴하기 위해, 그리고 내전 동안의 반혁명적 계급의 저항과 폭력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승리를 보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과 상관없는 노동계급 내부의 폭력은, 코뮤니즘을 건설하는 데 어떤 건설적인 것도 담당할 수 없다. 이러한 폭력 사용은 노동계급의 활동을 일탈시키고, 다른 노동 계층과의 관계를 왜곡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한 사회다. 평의회 체제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최고로 꽃피어 언론, 회합, 집단 의사결정의 자유가 최대로 실현된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참여만이 코뮤니스트 강령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반과 원동력을 줄 수 있다. 누구도 전체 노동계급의 자주적 활동 없이 코뮤니즘을 만들 수 없고, 누구도 코뮤니즘을 미리 준비해서 노동계급에 넘겨줄 수 없다. 서로에 맞서 분열되지 않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실천과 의식만이 수많은 오류를 정정하면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계급의 혁명과 권력 장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생겨난 보다 낮은 단계의 사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단계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부여되는, 즉 ‘각자의 노동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적 자본가를 소멸시킨 사회이며, 평등한 권리란 이런 사회와 노동자 사이에 적용되는 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낮은 단계를 거친 다음 단계는 코뮤니즘의 고유한 토대에만 의존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제로 하여 코뮤니즘으로 지향하는 보다 높은 단계이다. 이 단계는 개인의 분업에 근거한 노예적 종속이 소멸하고, 이와 함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이 소멸해야 가능하다. 이 단계는 노동이 단지 생존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삶의 욕구가 되는 시기다. 모든 개인의 다면적 발전과 함께 생산력 발전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는 시기다. 즉,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더욱 높은 코뮤니즘으로의 이행기에는 노동자평의회의 의식도 코뮤니스트 강령에 가깝게 발전해야 하며, 동시에 혁명당도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화 되어 국가가 완전한 소멸에 이르도록 준비해야 한다.
 
원시 공산제를 제외하고 모든 초기 사회는 계급으로 분화된 계급사회였다. 또한, 다른 모든 사회는 재산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코뮤니즘은 계급 없는 사회이다. 역사에서 코뮤니즘 이전 사회는 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에 기초해 있었다. 그것은 결핍의 사회였다. 또한, 과거의 모든 사회는 과거의 경제체제, 사회관계, 사상, 편견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 사회가 사유재산과 다른 사람의 노동 착취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예제나 봉건사회가 남겨 놓은 사회관계와 사상, 편견들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코뮤니즘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낡은 유산을 전혀 갖지 않은 사회이다.
 
사유재산과 착취, 계급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코뮤니즘에서는 가치법칙이 사라지며, 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 코뮤니즘은 전 지구적 사회이다. 국가적 경계와 분할은 사라지고 인간의 보편적 정체성과 창조성이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코뮤니즘은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 낡은 전통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이다. 계급과 계급 적대가 사라지면 국가는 필요 없게 된다. 코뮤니즘에서 국가는 소멸한다. 코뮤니즘은 국가 없는 사회다. 사회의 행정적 업무는 모든 구성원의 협력, 합의, 집단적 의사결정으로 처리될 것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에서 비로소 인간의 자유, 평등의 진정한 이상이 처음으로 실현된다.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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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 독재인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인가?
 
파리코뮨의 경험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제도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보여주었다. 부르주아 국가는 계급을 초월해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억압과 지배 기구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며,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조직화 기구로 대체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 평의회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추상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투쟁과 봉기의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평의회의 혁명성은 수백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기 계급의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평의회는 대의제와 수동성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자발적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 평의회는 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되고, 계급 안에서 선출되며 언제나 소환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다. 하지만 역사의 경험은 가장 완벽한 평의회 민주주의라도 그것만으로 코뮤니스트혁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에 앞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는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코뮤니스트 사회로의 이행기에 전 세계적인 규모로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종말을 준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코뮤니스트혁명 과정에서 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 당이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 당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로 거짓 선전되었던 스탈린주의 국가의 당 독재와 같이 혁명당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평의회로 구성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권력을 갖는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혁명을 실현하고, 모든 권력을 갖는 것이 우리의 강령이며,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다.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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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촛불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

대대적 촛불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
 
2017년 '촛불투쟁' 관련하여 투쟁의 주체와 계급의식을 중심으로 서술한 글인데, 2024년 '탄핵투쟁'과 비교할 필요가 있어 다시 게재한다.
(박근혜→윤석열, 촛불→응원봉, 50대→20~30대, 민중총궐기→남태령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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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대적 촛불투쟁의 배경
 
촛불투쟁이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면서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늘 감춰져 있었다. 바로 박근혜 정권 이전부터 곪아 터진 자본주의 위기가 문제의 본질이다.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본가정권은 자신들의 연명을 위해 모든 희생과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겼다. 이 때문에 분노는 언제든 계기만 주어지면 터져 나올 수 있었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었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었지만, 국정원 동원 부정선거 문제와 세월호 참사 책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과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세력의 권력 독점-남용 문제로 내부 균열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는 자신의 약점을 덮기 위해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지지층 결집만을 위한 독선적 통치로 일관해왔다. 집권 초기부터 공안탄압으로 시작하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 막았다. 다음에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인 민중총궐기를 국가폭력으로 막고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사경에 빠뜨려 끝내 사망에 이르게 했고,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하며 탄압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거칠 것 없이 공격에 매진하던 박근혜 정권은 내부 균열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 박근혜 게이트를 정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밀리기만 하던 저항 세력에게 촛불투쟁의 힘은 새로운 공간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재벌의 정경유착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과연봉제 반대, 사드 배치 반대 투쟁,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 등의 투쟁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절박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안은 차가운 농성장과 한편에 묻혀있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태로 ‘표현의 자유’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음에도 국가보안법 탄압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직 노동계급에 적대적인 체제가 건재하며,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투쟁 없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2. 촛불 투쟁의 주체와 의식
 
1) 조직노동자
 
조직노동자운동은 촛불항쟁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업 중이던 철도노동자들이 초기 동력을 형성했고, 평일 촛불의 경우 철도노동자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오롯이 끌고 갔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의 중심을 차지할 수 있었고, 촛불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백만의 대중이 거리에 모이는 동안에도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통해 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주도권을 쥐는데 주저했고,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실행한 총파업도 사실상 초라하게 끝나버렸다. 그러는 사이 ‘즉각 퇴진’을 외친 수백만 촛불항쟁의 정치적 주도권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탄핵' 중심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퇴진행동’ 내에서 시민단체와 야권연대 세력들은 야당과의 공조를 중요하게 부각했고, ‘즉각 퇴진’ 요구가 국회 탄핵과 특검, 헌재를 압박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투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대규모 집회에서 중심이 되어 왔다. 그만큼 조직력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초기에도 조직노동자들은 집회의 중심을 유지했고 거리행진에서도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후퇴를 거듭한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투쟁에서도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단체 참가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유력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거나 방해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 투쟁도 회피하거나 무력화시켰다. 또한, 크고 작은 노조를 가리지 않고 관성처럼 자리 잡은 어용세력과 조합주의자들은 계급적 원칙을 훼손하고 수많은 투쟁을 교란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촛불 집회의 위세에 조직노동자들은 자극받고 고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노동조합 투쟁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 사회적인 투쟁 물결에 자신이 가진 노동자 고유의 무기로 투쟁에 힘을 싣기보다는 형식적으로만 대응했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편하고 이익이 되는 ‘조직적 집회 참가자’의 길을 택했다. 조직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촛불투쟁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재벌(대자본)에 맞선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들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현안 해결을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집회에서 유의미한 동력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고유의 투쟁으로 촛불투쟁과 결합할 때 자본가 정권과 지배계급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거대한 촛불 뒤에 숨어 형식적으로만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그것에 만족했던 조직노동자 운동은 이제 탄핵 인용 결정 이후 대선 국면을 맞고 있다. 선거만큼 조직노동자들이 긴밀하게 움직이고 동원되는 운동은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투쟁보다 선거를 위한 조직이 되었다.
 
촛불투쟁이 만들어 준 반전의 기회를 자신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확산시켜 현안을 해결하는 무기로 삼기보다는, 적당한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선거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것에 관심이 쏠려있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자신의 위치에서 사소한 경제적 투쟁도 제대로 못 하는 세력은 사회적(혁명적) 투쟁에서도 발목을 잡는 역할만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적들에게 구걸하게 될 것이다.”
 
2) 자발적 참여자
 
연인원 1,000만 명의 촛불 집회 참가가 다수는 노동조합, 정당, 시민단체 등의 조직적 참가자가 아닌 개별 단위(가족, 친구, 혼자)로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개별 참가자들의 직업과 정치성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경제 위기와 사회적 안전에 대한 위협 상황이 계속되면서 (자기방어적인) 보수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었다. 또한, 비정규직-실업 문제에 직면한 20~30대의 참여가 광우병 촛불보다 줄어든 반면, 50세 이상의 참가가 늘었다. 이는 촛불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정치 성향을 넘어 현실에 대한 분노가 크고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조직화 된 세력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조직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 조직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대한 촛불 대중이 어느 정당이나 단체에 대규모로 가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촛불 대중의 가장 명료한 부분이 자신을 정치(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10여 차례 이상의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촛불투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촛불 대중의 분노가 ‘급진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시도조차 못하고 막혔지만, 촛불 집회에서 나타난 ‘저항 문화의 정서적 충격과 창의력’은 또 다른 투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촛불 대중 다수가 여전히 미조직-개별 참가자로 남아 있는 이유는 촛불 집회의 대형 무대와 긴장감 없는 행진으로 인해 집회 참가자들이 주체가 아닌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촛불투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제한 없이 넓혀야 한다. 거리, 일상, 지역, 공동체에서 다양한 형식과 열정적인 내용으로 수백, 수천, 수만 개의 토론 광장과 대중총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조직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 참여자들도 아직은 촛불 광장의 열린 정치와 직접 민주주의 요구를 일터, 생활공간, 지역 사회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토론과 투쟁을 통해, 크고 작은 권리를 찾고,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촛불투쟁이 아직 집회 참가자들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은 의미에서도 촛불투쟁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3. 촛불투쟁과 자극
 
역사적 투쟁과 자극
 
1871년 ‘파리코뮌’은 노동자 스스로 사회조직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도시구역에 따라 구성된 무장한 노동자들이 지키는 위원회가 지도자를 선출했으며 노동자 민병대를 창설했다. 이것이 최초의 ‘평의회’ 형태이다.
 
그리고 1905년 러시아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온 ‘대대적 파업’의 물결은 전대미문의 폭발이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깨고 나온 것이었다. 서로 다른 직업군들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즉각적인 요구들과 혁명투쟁 사이의 구분도 낡은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노동자 대중은 파리코뮌에 이어 스스로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를 탄생시킨다.
 
대대적 파업의 비밀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시 전인적인 인간으로 되려는 노력이다. 대대적 파업에서는 직업, 산업 부분, 국가 등의 구분이 없어진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고와 감정 사이에서) 이러한 분리들이 의문시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어떻게 웃고 노래했는지를 묘사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고, 밤이 되어도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개별화될 필요가 없도록 거리에 남아있었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깊은 집단적인 이상주의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혁명 시기의 폭풍 속에서 바로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청하는 신중한 가장에서, 혁명의 낭만주의자'로 변하고,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최고의 재산 즉, 자신의 목숨마저도 투쟁의 이상에 비해서는 하찮게 보인다."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는 1905년에 소비에트는 갑자기 자발적으로 출현한다. 소비에트의 본질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계획들, 토론들,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온 제안들, 모든 사건의 발전, 그리고 혁명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소비에트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면, '대규모 토론과 투쟁의 급격한 급진화'라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을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9월부터 대중 내부에 생겨난 주목할 만한 '의식의 성숙'은 토론에 대한 엄청난 욕구의 발전을 나타냈다. 공장, 대학, 지방으로 퍼진 격론은 9월 한 달 동안 발전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트레포프의 무한한 테러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대학 담장에서 생겨나고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대중들의 모임은 1905년 가을의 가장 놀라운 정치적 역설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복도, 강당 그리고 홀을 가득 채웠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곧장 대학으로 갔다. 블라디미르대학 강당에 모인 청중을 보고 깜짝 놀란 공식 전신기관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학생들 외에도 군중은 ‘다수의 관련 없는 모든 남녀, 중․고등학교 학생들, 도시 사립학교 학생들, 노동자들, 그리고 잡다한 무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 모임은 잡다한 무리가 아니라 '엄격한 규율과 성숙함을 유지하면서 질서 있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토론하고 심사숙고하는 집단적 그룹이었다.
 
소비에트 회의는 부르주아 의회 또는 탁상공론적인 학자들 내의 논쟁과는 정반대였다.
 
"소비에트 회의에는 대의제도의 궤양인 어떠한 과장과 허풍도 존재하지 않았다! 논의 중인 문제(파업의 확산 및 두마 앞으로 보낼 요구)는 전적으로 현실적이었고 토론은 간결하고, 활기차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누군가는 쥐꼬리만 한 매시간이 설명된다고 생각했다. 전체 회의에 엄격한 승인을 가진 의장은 미사여구로 흐르는 최소한의 흐름도 꼼꼼히 살폈다."
 
활기 넘치고 현실적이며 동시에 심오하고 구체적인 토론은 노동자들의 의식과 사회심리에 변화를 나타냈고, 이 두 가지의 발전에 있어서 강력한 요인이었다. 의식은 사회 정세와 그 전망에 대한, 대중 행동에서 생겨나는 진정한 힘에 대한, 그리고 동지와 적을 구분하고, 미래 세계의 목표를 정교히 하는 경로 설정의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인 이해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심리는 의식과 다르지만, 그것과 함께 실재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이 심리는 노동자의 도덕과 생활태도를, 그들의 확산하는 연대를, 그들의 다른 노동자들과의 공감을, 그들의 열린 마음 및 학습을 그리고 공동의 목적에 대한 그들의 이타적인 헌신을 나타내는 요인이다.
 
그리고 1905년의 ‘기억과 자극’은 1917년 소비에트가 모든 권력을 가지면서 러시아에서 재탄생한다. 러시아혁명의 자극과 1920년대 혁명적 물결은 독일과 헝가리에서 노동계급에 생동하는 힘과 넘치는 생각들을 강하게 분출하게 했다. 투쟁이 발전함과 동시에, 모든 장소에서 ‘노동자평의회’와 ‘노동자총회’가 나타났다.
 
1920년대 혁명적 물결 속에서는 계급의식의 뛰어나고, 실천적이고, 생동하는 특질이 확인되었다. 모든 곳에서 즉흥적 화합과 진실한 토론, 생각과 제안들의 무수한 교류가 발생했다. 어제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부과한 심각한 무지 속에 침체하여 있었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실천적인 지성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담함을 보여주는 연설자가 된다. 자본의 지배에 침묵하며 속박되어 있던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별안간 연설하기 시작하여, 모든 곳에서 수많은 생각과 사상들을 교환하고 정보를 모으며, 함께 정치 토론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도성과 창의력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정치적인 환경은 열정적인 음조를 띠고, 교류와 성찰을 위한 수많은 통로가 창조된다. 계급의식이 집단적이고 실천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암흑과도 같았던 기나긴 반(反)혁명의 시기가 지나가고, 1960년대 말 ‘프롤레타리아트’는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총파업과 그에 이은 전 세계에 걸친 노동자 투쟁의 폭발과 함께 역사의 무대 위에 재등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부활은 ‘상상력’의 해방과 함께 더 큰 자극이 되어 ‘급진적인 행동’과 ‘혁명적인 운동’에 새로운 세대를 낳았다. 1968년 프랑스와 1969년 이탈리아 노동자 집회의 특징인 ‘폭넓고 심도 있는 토론’ 문화를 만들었다.
 
1987년 한국의 6월항쟁은 그해 여름 노동자대투쟁에 영향을 주었다. 2011년 국제적인 차원의 ‘분노’ 물결은 ‘광장을 점거하자!’는 공통의 구호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광장’의 정치는 앞선 모든 ‘역사적 자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진정한 연대’, ‘대중총회’, ‘토론문화’로 재현되었다.
 
2011년 폭발적인 '진정한 연대'가 있었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설교하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보기를 들어, 마드리드에서는 체포된 사람들의 방면을 위하거나 경찰이 난민들을 체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들이 있었다. 또한,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미국에서는 주거지로부터의 강제이주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집회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는, 파업집회에서 다른 작업장들로 '파업파괴 저지단' 파견을 결정했고, 11월 2일 총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직원이나 학생을 처벌한 작업장이나 대학을 점거할 것을 결정했다. 이것은 비록 아주 간헐적이고 짧게 지속하였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에 의해 지지가 되고 보호된다는 느낌을 함께 느끼게 했다. 이는 불안감과 무방비 상태와 가망 없음이 지배적인 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위와 같은 혁명적 사건이 준 자극과 촛불투쟁이 준 영향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토론해야 할 것은 눈앞의 정세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촛불투쟁에서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촛불투쟁은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으로 막을 내렸고,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으로 마무리하려는 세력이 노동자 운동 내의 다수이다. 한편 촛불 정세를 무사히? 넘긴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촛불에 자극받아 보다 세련된 통치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계급투쟁을 잠재울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촛불투쟁 다음의 투쟁은 무엇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2017년 봄, 우리가 맞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해서 아직 한겨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은 악화했다. 실업은 점점 더 커져 일상이 되었고, 비정규직 확대는 이 사회를 점점 더 깊이 잠식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 조건도 기대할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마저 만연하다. 촛불투쟁은 이렇게 비참한 현실과 박근혜에 대한 분노가 결합한 결과이다.
 
이에 수십, 수백만의 분노한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과 함께 마음속으로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염원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러한 분노와 염원은 그동안의 수동성을 넘어 광장과 거리를 ‘거대한 인파’라는 물리력으로 점거했다. 광장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막혀있던 분노와 현재의 위기에 대한 문제들을 주장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수백만의 대중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의식’은 단상에 선 지도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거나 그의 지침을 따른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대적인 토론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러한 토론을 이끌어내는 투쟁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촛불투쟁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
 
역사적인 투쟁의 자극은 계급의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다수계급을 위한 다수의 의식적이고 독자적인 운동'이 그러했다. 의식적인 토론과 결정, 그리고 노동자 대중이 선출하고 대중에게 책임지는 독자적 운동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실현되었다. 이러한 노동자평의회는 현실 투쟁에서는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통제하는 아래로부터의 파업위원회, 노동자총회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촛불투쟁을 통해 자극해야 할 일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아무리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고 전투력이 약해졌어도, 노동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자본가계급에 밀려있는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것의 첫걸음은 생존권 투쟁의 전면화와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총파업 투쟁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탄핵 이후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정치광장을 열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광장을 통해 노동계급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고 행동하는 ‘직접행동’, ‘직접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동안 투쟁과 조직화 모두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빈민, 소수자들과 계급적으로 연대하여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총회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결합만이 계급 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이 체제는 박근혜와 같은 대표자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자본가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울 것이다. 그 배후에 ‘국가’라는 폭력기구가 환상(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주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질적인 지배자들’이 기대는 곳이 바로 국가기구이다. 그들은 한 몸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지키고 강화할수록 그들도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촛불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한 줌 안 되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불평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국가(통치)기구의 일부인 정부를 야당으로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배계급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해주고 노동계급에 불리한 ‘선거제도’로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수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해야 가능하다.
 
그 희망은 비록 지금 소수이긴 하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생산과 일상을 직접민주주의로 조직해,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즉 ‘자기 권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야 박근혜 파면이라는 작은 승리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탄핵당하고 감옥에 간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이다. 특히 노동계급의 생존현장과 일상에서는 아무것도 바꾸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투쟁에서 멈추지 않고 노동계급의 삶과 투쟁이 있는 모든 곳으로 투쟁을 확산시킨다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노동계급이 '자기 권력'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 자체로 첫 번째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는 촛불투쟁을 너무 과도하게 평가하거나 기대해도 안 되지만, 촛불투쟁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자극을 축소해도 안 된다. 우리는 촛불을 주도하지도 넘어서지도 못했지만, 냉철하고 끈질기게 촛불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대한 한 넓고 깊게 토론해야 한다. 토론의 결과는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투쟁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조직해야 한다. 오직 이러한 시도와 실천만이 전쟁과 야만의 체제인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 길은 험난하고 길어서 꾸준히 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2017년 3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ICP)│이형로
 
<출처 > 「코뮤니스트」 5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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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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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어떤 도시이든아무리 작은 도시라도사실은 둘로 나뉘는데하나는 가난한 도시다른 하나는 부유한 도시다이들은 서로 전쟁 중이다.” (플라톤그리스 철학자기원전 427-347)

 

민주주의'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유래하여 종종 서구 문명에 크게 기여했다고 알려졌다그러나 고대 그리스 사회는 대부분 노동을 노예에게 의존했고그들은 투표권이 없었다마찬가지로 대부분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여성도 투표에서 제외되었다어떤 문명어떤 민주주의를 위한 기여를 말하는가?

 

현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남성 보통선거권을 부여하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여성은 항상 나중이었다)에도 불구하고 의회민주주의 체제 아래 노동하는 사람들은 고대 아테네 노예처럼 핵심 의사결정에서 제외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대표로 선출한다부르주아 정당 사이 노선과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는 오늘날에도 다수 유권자는 지역/비례대표 후보의 당적에 따라 투표한다하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그들이 4년 뒤 우리에게 다시 표를 구하러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가 선출한 우리 국회의원을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무엇을 하는가보통 그들은 국회 표결에서 당리당략에 따라 자신이 속한 정당에 투표하거나때로는 당 결정에 반하여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기도 한다가끔 총리가 의원들을 굴복시키려 국회를 정회하기도 하고(영국), 대표단이 국회를 파행으로 이끄는 일에 의원을 동원하기도 한다(한국).

 

이렇게 국회의원은 자신을 선출해 준 유권자 뜻과는 상관없이 소속 정당과 자신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할 뿐 유권자의 요구를 위한 어떠한 활동도 없다이것이 대의제의 의미이다유권자들은 국회의원에게 유권자를 위해 일하도록 위임했지만그들이 일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일을 해도 다음 선거까지 그들을 바꿀 힘이 전혀 없다물론 국회가 모든 유권자에게 발언권과 결정권을 갖게 하는 근본 변혁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근본 변혁 방안이란공동체 전체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방안모든 사람에게 생존수단을 보장하는 방안이윤 대신 공동체를 위한 최선을 결정하는 방법이다다시 말해자본주의라는 이 부조리한 체제를 폐지하는 데 필요한 조치다따라서 부르주아 국회에서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조치이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가장 완벽한 방안

 

의회민주주의와 반대로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혁명 기간에 나타날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에서 모든 총회(집회)는 국회의원이 아닌 평의회 대표자를 선출한다평의회는 그들을 선출한 단위(공동체)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만약평의회에서 선출 단위(유권자)의 결정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대표자는 즉시 자신의 선출 단위로 돌아가서 결정을 변경하도록 설득하거나 다른 대표자로 교체된다각 공동체는 인원수에 비례하여 다수 평의회 대표자를 갖게 된다. 1905년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500명당 1명씩 대표자가 있었다.

 

각 공동체/지역은 소비에트/평의회/총회(원하는 대로 부르면 된다)를 선출하고 난 뒤더 넓은 지리 영역과 부문으로 확장하여 평의회 대표자를 선출한다이것은 혁명 과정에서 세계 소비에트(평의회)총회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확장하고 발전시켜야 한다소비에트총회는 (환경보호와 같은전 세계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지역 소비에트는 지역 서비스와 자원 배분을 다룬다.

 

부르주아 국회와 노동계급 평의회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직업(전문가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노동자민주주의 아래 노동자는 단지 투표를 위한 일회성 유권자가 아니라 주거공동체(협동조합), 직장위원회에서부터 스포츠협회와 예술평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풀뿌리 단체의 적극 참여자가 된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에서 나타난 소비에트는 그것이 성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다시 한번 소비에트가 확산하였고노동자민주주의가 실제로 몇 달 동안 존재했다(197년 11~1918년 3). 전 세계 노동계급은 러시아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관한 소식에서 영감을 받았다심지어 기차 승객들도 붐비는 열차에서 모든 승객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지속하지 않았다노동자민주주의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초로 성공한 노동자혁명이 한 나라에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4년간의 전쟁 끝에 노동자들은 흑사병과 같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게다가 소비에트 러시아는 14개국 군대에 의해 침략을 받았다러시아 노동계급은 고립된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없었다결국소비에트 권력은 이 불가능한 상황의 무게에 눌려 시들어갔다.

 

1920년대 중반 국제혁명 물결이 패배한 이래 노동계급에 이른바 사회주의코뮤니즘(공산주의)라는 용어보다 더 왜곡되고 남용된 것은 없다이전 동구권 스탈린주의 체제와 현재 중국쿠바북한과 같은 국가가 노동자국가나 코뮤니즘이라는 주장은 지배계급이 영구화시킨 가장 큰 거짓이다자본가들은 이렇게 반()혁명을 상징하는 일당(一黨)체제를 코뮤니즘이라고 즐겨 부른다이것은 매우 의도된 이데올로기 공세인데코뮤니즘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언젠가 노동계급이 자기 과업인 코뮤니스트혁명을 수행하고진정한 민주주의인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모든 생각을 불식시킨다.

 

현재 통치자들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있음을 잘 안다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가장 높은 부의 편중최근 40년간 소득감소와 생활 수준 하락 등을 겪고 나서 이러한 불만은 당연하다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제 통치자들은 무역외교금융에 관한 자신들 규칙마저 서서히 해체한다엄청난 규모의 부채는 사라지지 않고불평등이 너무 급속하게 증가하자혁명을 두려워하는 일부 억만장자가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할 지경이다한편에서는 포퓰리즘 게임을 한다그들은 자신들이 엘리트의 일부가 아닌 척하며 대중을 현혹한다그래서 극소수에게만 막대한 부를 창출해 주는 이기적 계급을 위한 진정한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한다이것은 명백한 사기극이다.

 

포퓰리스트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겨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그것을 위해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협박하고 실제 전쟁을 일으킨다그들이 자주 벌이는 이주민과의 전쟁이 아닐 때는 관세 전쟁환율 전쟁무역 전쟁제재 전쟁을 말한다그뿐만 아니라 그들 뒤에는 이미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총격전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말과 현실이 일상화된 바이든트럼프푸틴젤렌스키네타냐후(그리고 윤석열같은 통치자들은 자본주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전 세계 노동계급을 전쟁과 야만의 위험에 빠뜨렸다이러한 위험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투쟁뿐이다노동자민주주의의 기초인 노동계급 자기해방을 위한 실천과 투쟁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   (출처 : 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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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사기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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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강요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와 ‘국민’이라는 바로 그 용어를 의미 없게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착취계급은 막대한 부를 손에 쥐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정치 권력은 언론, TV 그리고 주류 소셜 미디어와 같은 이데올로기 지배 수단과 마찬가지로 착취계급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사회에서 ‘국민’은 이러한 계급 적대를 숨기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고,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의 권력독점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반면, 피착취계급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신들의 실질 요구를 관철하기 힘들다. 그동안 착취에 맞서 피착취계급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은 무력으로 진압되거나 회유와 협박으로 길들어 결국 국가에 편입되었다. 그것은 지난 100년 이상 동안 ‘노동자(진보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자본주의 초기와는 달리 노동자들은 대통령/의회/지방선거와 국민투표에서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 권장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계급이 아닌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으로 원자화된 ‘시민’으로서만 유권자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 부르주아 선거에서 투표하는 바로 그 행위는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의 부재(不在)에 따른 무력감의 표현이다.

 

또한, 선거에서의 이슈, 국회에서의 논쟁 주제는 우리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독점 아래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이익이 우리 이익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으며, 국가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타협할 수 없는 계급 적대를 감추는 거짓 공동체일 뿐이다. 게다가 부르주아 정당 사이의 논쟁에서 어떠한 선택도 자본주의 체제 위기가 초래한 생활 수준 하락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라는 종교

 

오늘날 민주주의와 국가는 칼 맑스가 처음으로 ‘인민의 아편’이라는 용어를 만든 시대의 종교처럼 되었다. 민주주의와 국가 이익은 부르주아 사회의 ‘영적(靈的) 향기’이며, “이 세계의 도덕적 재가(載可)이며, 이 세계의 장엄한 보충이요, 이 세계의 일반적 위안 근거이자 정당화 근거이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궁극적인 실체인 노동과 전쟁에서 요구하는 모든 희생에 대한 정당성을 민주주의와 국가를 가정(假定)하지 않고서는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향기’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대통령과 국회도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에 매우 나쁜 악취가 되었다. 맑스와 엥겔스 시대, 즉 자본주의 상승기에는 노동자 정당의 부르주아 의회 참가가 적합한 활동이었다. 왜냐하면, 의회는 지배계급 내부의 진보와 반동이 실제로 대립하는 장이었고,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지속적인 향상을 위해 싸울 조건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노동자 대표의 부패 위험성을 상시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단지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에 표를 모으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의회 맹신’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 지배계급 모든 분파는 똑같이 반동적이며, 생활 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의 여지는 전혀 없다. 그리고 전체로서의 전체주의 국가의 성장에 직면하여 의회 절차의 깊은 무기력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통령제든 의회제든, 부르주아 정치의 막다른 골목과 포퓰리즘 부상은, ‘엘리트’를 향한 가짜 비판과 함께, 많은 사람에게, 일을 해내는 사람, 즉 ‘독재자’의 통치 방식인 ‘비자유 민주주의’를 갖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급에게 여전히 또 다른 잘못된 선택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안

 

노동계급의 역사적 운동은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1871년 파리 코뮌은 이미 의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4년에서 5년에 한 번 지배계급의 어떤 구성원, 즉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잘못 대변하는지를 결정하는 대신” 노동자 집단은 별도 집회(총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그 집회의 대표들은 선출되고 위임받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소환되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소비에트나 노동자평의회는 공장과 다른 작업장의 노동자들 집회를 기반으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서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윤곽을 1871년 보다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1917~21년 전 세계 혁명운동 물결 속에서 노동자평의회는 의회(그리고 노동조합) 기구에 직접 반대하여 생겨났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이것을 매우 잘 이해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세계혁명의 운명이 결정될 독일에서, 우선 평의회를 합병하고, 평의회를 의회와 지방정부의 무력한 부속물로 만든 다음, 1919년 베를린에서처럼 평의회의 실질 권력을 회복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격렬하게 분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혁명, 피착취계급 해방에 치명적인 적(敵)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목표는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인민’ 아니 오히려 통일된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진정한 인간 공동체에서는 그리스인들이 ‘크라토스(kratos)’라고 부르는 힘, 지배, 통치가 어떤 종류의 국가나 정치 권력에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출처 : 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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