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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열정적인 활동가 로렌 골드너(Loren Goldner)를 추모하며

열정적인 활동가 로렌 골드너(Loren Goldner)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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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골드너가 지난 4월 12일 세상을 떠났다그는 한국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코뮤니스트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많은 활동가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했다그는 2006년 한국에서 개최된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에 참여했고코뮤니스트좌파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공개강연회(자본주의좌익공산주의와 계급투쟁)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미국 뉴욕의 한국 영사관 앞에서 한국 노동투사 (사노련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 피켓 시위를 벌이는 등 국제연대에도 적극적이었다. 2012년 이후에는 한국의 코뮤니스트좌파와 의미 있는 교류를 하지는 못했지만(그의 관심사와 소통 범위는 너무 넓어서 이른바 자본의 좌파나 맑스주의에서 이탈한 이들과도 자주 교류했다), 우리는 그의 활동과 저술을 계속 주시하고 참고해 왔다.

 

우리는 로렌 골드너를 추모하며국제주의자 전망의 추모글과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작성한 글을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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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골드너를 추모하며

 

로렌 골드너 동지가 4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위대한 투쟁가의 상실이며 그의 죽음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로렌의 정치 인생은 60년대 버클리 대학 재학 중 연좌 농성과 반전 폭동으로 체포되면서 시작되었다이러한 맥락에서 로렌은 급진주의에 빠져 마오주의스탈린주의신좌파에 대한 비판을 찾아 맑스주의를 받아들였다한동안 그는 독립 사회주의자 클럽에 가입했는데이 클럽은 나중에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국제사회주의자(IS)가 되었다하지만 그 전에 로렌은 버클리와 ISC를 떠나 초좌파의 전통에 매료되어 정기적으로 유럽을 여행하기 시작했다유럽에서 그는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Socialisme o Barbarie),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international), 불변성(Invariance) , 장 바로(Jean Barrot), 프롤레타리아(Le Prolétaire) 및 망명 중인 이탈리아 좌파의 다른 요소들과 친숙해졌다로렌의 정치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소련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생각과 결정적으로 단절하고그가 받아들여야 할 국제주의적 지향과 역사적 연결고리를 제공한 앙리 시몽(Henri Simon)과 만남이었다.

 

1970년대에 로렌은 뉴욕에 정착했다뉴욕에서 그는 아르바이트하며 좌파 서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맑스를 읽으며스스로 정치적 고립을 선언하며 살았다이곳에서 그는 첫 번째 중요한 저서인 미국 노동계급의 재구성을 출간했다.

 

80년대에 로렌은 케임브리지로 이주하여 하버드에서 사서로 일하게 된다그는 코뮤니스트좌파에 동조하는 다른 사람들과 계속 교류하며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로렌은 많은 정치 서클에서 활동했지만어떤 조직과도 연계하지 않았으며그 대신 "시류에 반하는 글쓰기"를 선호했다그는 종파를 초월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그는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나중에 온라인에서 함께 모이는 것을 좋아했다건강이 악화할 때까지 수년간 운영한 '멜트다운(Meltdown)' 목록과 같은 여러 온라인 토론 목록을 만들었다.

 

로렌의 가장 큰 관심사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주기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90년대에는 아시아에 관심을 보였다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장 투쟁을 따라 인도중국일본한국을 여행하며 경제 위기와 의제 자본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았고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노동계급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집필하기도 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로렌은 반란자 노트(Insurgent Notes) 창립에 참여했고노동계급 운동을 추적하고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키며 맑스 읽기 그룹을 이끌고 중국어를 배웠다. 2017년 로렌은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로렌은 많은 자질을 갖고 있었다뛰어난 언어학자였고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성과 겸손함을 겸비했으며모든 것에 대해 열정이 있었고 호기심이 많았으며누구에게나 항상 질문이 많았다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과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헌신으로 그는 전투적으로 되었고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그는 터키로 여행했고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이집트에서 살았으며스페인 남부에서 로마 공동체와 함께 살았다이탈리아에서는 보르디가를 영어권 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로렌은 가는 곳마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친절한 친구이자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계혁명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오만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열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국제주의자 전망의 친구이자 동지였다그가 그리울 것이다.

 

국제주의자 전망(IP)

2024년 4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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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중동 전쟁 이해하기의 함정

중동 전쟁 이해하기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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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양쪽의 끔찍한 이미지는 시청자가 입장을 정하게 해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전쟁을 하는 양쪽 진영의 전쟁 선전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ㆍ축제 참석자가자지구 로켓포의 희생자납치된 사람들이 키부침(kibbutzim)에서 학살당한 사진.

ㆍ가자지구 폭격으로 인한 병원구급차학교주택가에 있는 희생자 사진

 

이러한 사진을 보고서 인간이 느끼는 첫 번째 반응은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반응은 공격자나 방어자에 의한 역습으로 대체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반격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 부여는 가족 및 부족 관계로 조직된 농경 사회에서 행해졌던 복수의 도덕성에서 시작되었다노동자와 자본가의 이익 공동체로서의 '국'이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전쟁의 명분으로 이러한 복수의 도덕성에 성공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현재 전쟁에서 양쪽 진영이 모두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다.

 

"누가 전쟁을 시작했나?"라는 질문과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누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침략자와 피해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누가 전쟁을 시작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양쪽 모두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팔레스타인이 침략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반복해서 추방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추방되어 약 2,000년 동안 '홀로코스트'무법자로 살아왔다." 전쟁의 명분은 민족주의의 독설로 쓰인 한 민족의 역사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이제 '식민주의'와 '민족 해방 투쟁', 한 민족의 구성원들에 대한 학살이 다른 민족의 구성원들에 대한 학살보다 더 나쁘다고 얘기하는 '집단 학살이야기도 등장한다학살의 규모를 측정하여 이후의 학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아니며 슬픔은 저마다 고유하다파편으로 인한 상처의 고통은 폭격으로 온 가족이 사망한 사람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다두 경우 모두 전쟁 선전으로 복수심에 호소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이는 ‘국과 조국을 내세워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복수에 의존하는자신이 더 높은 도덕적 지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의 실체가 아니라 전쟁의 실제 모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분명히 도덕의 영역즉 오래전에 사라졌지만민족주의 세뇌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회 형태에 기반을 둔 도덕의 영역에 속해 있다우리는 100년 넘게 전 지구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진보 없이 노동과 자본의 생산 관계를 강요해 온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반대로 식민주의 정책에 의해 세계 시장이 형성되면서 전쟁은 제국주의 열강과 크고 작은 국가들이 동맹을 맺어 제국주의 블록으로 뭉쳐 직간접적으로(대리인을 통해서로 싸우는 전쟁으로 바뀌었다이러한 전쟁에서 민족주의는 국가를 중심으로 전체 국민을 단결시키고전쟁을 위해 노동계급을 더욱 압박하고 억압하며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으로 계급 이익을 방어하는 것을 방해하는 수단이다노동계급의 도덕성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간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계급의 이해관계에 기초한다현재 중동 전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분석에 대한 글은 "노동계급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참조하라. (https://leftdis.wordpress.com/2023/10/26/the-working-class-and-the-war-israel-palestine/)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함정은 본질적으로 양측의 민족주의 복수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제국주의 사이 전쟁이 지속할수록 무의미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열망은 사람들의 일부에서 더 많이 일어나게 된다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이러한 열망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국가에서 가장 쉽게 나타나는데이는 시민의 자유와도 비슷하다.

 

아랍어권 또는 이슬람권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때로는 몇 세대 전에차별을 통해 민족 정서를 갖게 된 이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민족과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덧붙이자면이는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노동자들을 시오니스트가 되게 한 바로 그 기제이다그 결과 여러 유럽연합 국가와 미국캐나다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일부의 사람들이 침략자로 낙인찍힌 승리한 당사자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부와 관계없이 패배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을 주요 피해자로 여기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뉴욕 중앙역 복도에서 유대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된 전쟁은 "나의 전쟁이 아니다"라는 독특한 구호를 내걸고 연좌 농성을 벌였다많은 시위대가 체포되었고이는 미국 시민 자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이 사건에 이어 서구의 여러 도시에서 농성이 이어졌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게 되었는데현지 언론은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지난 주말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전국적인 기후에 대한 시위에서 친팔레스타인 발언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내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이제 남은 것은 프랑스유럽연합미국카타르등의 국가가 어떻게든 폭력을 멈출 것이라는 희망뿐이다. '평화'는 여전히 너무 먼 곳에 있다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적 휴전', '전투 휴전', '정전등 누군가의 승리와 누군가의 패배를 향한 전쟁의 단계에 불과한 일련의 계급 질서에 불과하다정부 지도자들과 의회 정당은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을 군사적경제적이념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위선적인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공교롭게도 미국이 제국주의 이익을 확보하는 하나 또는 다른 '단계적 완화'와 '중재'를 찬성한다고 말한다노동계급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미국과 네타냐후 진영이 부분적으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이러한 점은 EU 내 충성도를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TV 대담 테이블의 모든 가짜 토론과 소셜미디어의 모든 선동은 대중에게 두 전쟁 정당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고 망치질한다이는 미래의 전쟁나아가 중국과 미국 사이의 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의도된 행동도 어느 한쪽의 선택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항만노조의 전쟁 물자 적재 거부는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이 아닌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이유만으로 전쟁 중인 이스라엘 측을 겨냥한 행동이다우크라이나 탈영병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탈영병 등도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다중요한 것은 무기 수송 방해와 탈영병에 대한 지원은 이스라엘에 반대하여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당사자 모두를 대상으로 명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안타깝게도 항만노조의 활동은 종종 후자에 해당한다이러한 '행동'에 반영되는 '의식'의 의미는 '식민지배자이스라엘과 '제국주의'(미국)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이란중국러시아)에 대한 지지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따라서 혁명적 소수의 반전 선전과 행동은 모든 교전 국가와 그들을 지원하는 초강대국의 제국주의 목표를 폭로하는 데 명백히 기반을 두어야 한다따라서 혁명적 소수는 전선 양쪽의 프롤레타리아트로 향해 연대해야 하며세계 자본의 모든 분파의 공격에 맞서 국제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혁명적 투쟁 발전의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물론 국제주의 입장은 노동계급이 친팔레스타인과 친이스라엘로 나뉘는 잘못된 분열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가 될 것이다.

 

혁명적 소수가 주장하는 혁명적 패전주의는 전쟁 지역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무엇보다도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지만간접적으로(대리인전쟁을 지원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데올로기적 지배더 많은 착취를 강요하는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유럽과 미국에서 전쟁의 한쪽을 지지하는 위의 '전쟁 반대 투쟁'은 전쟁 양측이 모두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적 목표에 봉사하고 있으며둘 다 반()프롤레타리아적 이며 노동계급의 유일한 대응은 자본의 모든 분파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원칙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노동계급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은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계급 관계를 바탕으로 노동계급 투쟁이 전쟁을 종식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와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계급투쟁에서 출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할 수 있지만현실에 기초해 보면 다양한 부르주아적 '해결책'도 마찬가지다물론 가장 '급진적해결책은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 또는 모든 유대인을 멸망시키는 것이지만이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다. '두 국가해법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중 하나이다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하나의 국가'라는 해법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된 상호 증오뿐만 아니라 억압과 착취 세력을 보존하는 각 국가의 분할 및 정복 정책으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다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세계를 계속 지배하는 한지금의 전쟁에 이어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중동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주요 쟁점은 계급투쟁이다편의상 여기 있는 사람은 누구도 모든 국가와 전선 양쪽에서 자본과 국가가 의료 및 기타 서비스를 삭감하고 사람들을 억압하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강화하면서 착취를 강화하는 등 노동계급을 상대로 계급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계급투쟁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한쪽에서는 가자지구헤즈볼라이란중국과 러시아에서 장악한 지역다른 한쪽에서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주변 서방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에 투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노동계급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라는 기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 그럴 수 없다'이다노동자들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을 계속해야 할 뿐만 아니라그것이 자신의 부르주아지와 국가의 패배로 이어질지라도즉 혁명적 패전주의로 이어질지라도 투쟁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을 포기하면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가자지구의 지하 공장과 이스라엘의 지상 공장에서 무기를 생산하느라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친 채 상호 폭격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가리 찢기게 될 것이다.

 

ㆍ그렇게 되면 가자지구의 여성이스라엘의 예비군뉴욕의 유대인(센트럴역 농성)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를 진압하고모든 생산 방해 행위를 처벌하며탈영병을 군대로 압송해야 한다.

ㆍ그리고 이란의 철강 노동자들은 '그들정권이 미사일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1)

ㆍ그리고 전쟁 경제에 점점 더 많이 관여하는 서방 무기 산업과 제조업 부문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프레도 코르보(FC)

2023년 11월 17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성된 기사를 기반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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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은 이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아야톨라 정권과 러시아는 중국 주변에서 형성되고 있는 블록 일부다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하고, 하마스에 미사일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레바논(헤즈볼라), 시리아이라크 등지에서 다양한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이란의 좌파 부르주아의 지하 저항 단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정권과 같은...중동 분쟁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을 지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항상 미국 편에 서는 우파 부르주아 계열의 지지자들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아야톨라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부르주아들이 정권 전복의 전주곡으로 여겼던 차도르 시위(중산층이 주도당시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중산층 시위의 구호를 따르지 않자 이기적이고 비겁하다거나 경제주의자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았다.

이제 이란의 노동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정권이나 우파 또는 좌파 부르주아 저항 세력과 달리노동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진행될 수도 있는 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전쟁에서 선택할 수 있는 편이 없다노동자들은 계급 이익을 옹호하고 이란의 모든 부르주아 분파에 대항하는 투쟁을 이란 국가에 대한 공세적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을 종식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3/11/17/traps-in-understanding-the-war-in-the-middle-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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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좌익과 우익의 전쟁광들

좌익과 우익의 전쟁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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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선진화된 군대 중 하나가 무방비 상태의 밀폐된 도시 지역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모습을 전 세계가 공포에 떨며 지켜보고 있다이 광기를 멈춰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요구와 분노가 확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많은 좌파는 전쟁을 멈추기보다 하마스 편에 서서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무고한 사람에 대한 폭력이 대의를 위해 행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시하기를 원한다과연 그럴까?

 

하마스 옹호자들은 하마스 군대는 식민지 권력에 대항해 일어선 토착 자유 투사이며, 식민지 전쟁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분쟁은 필연적으로 양측 모두 무고한 희생자를 낳는 잔인한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그들은 투쟁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 투사'들의 몫이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특히 백인이고 식민지를 보유했던 국가에 살고 있다면 더 그렇게 주장한다. ‘그들’ 국가의 과거 또는 현재 행동에 대한 수치심은 ()식민지’ 투쟁의 전술과 목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그들은 "저항 세력에게 도덕적 교훈을 제공할 수 있는위치에 있지 않다.

 

다른 쪽의 옹호자인 시온주의자들도 똑같은 논리를 사용한다과거 유럽에서 유대인 박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시온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삼가게 된다홀로코스트가 있었고 나크바(Naqba)가 있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잔인함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가하는 잔혹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러분 관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피부색이나 태어난 나라가 아니다.

 

나는 1976년 좌파 친구들과 함께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Pol Pot’s Khmer Rouge)를 비판해서는 안 되며우리는 유럽에 사는 백인이기 때문에 비판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던 토론이 생각난다그들에 따르면 크메르루즈는 자유의 투사였고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미 제국주의 지지를 의미했다물론 오늘날에는 아무도 폴 포트의 킬링필드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물론크메르루즈는 대부분 자국민을 학살했기 때문에 반대할 수도 있겠다맞다하지만 하마스도 마찬가지다.

 

국제주의자 전망(IP)이 자본주의 죽음의 세계에서 주장했듯이하마스는 10월 7일의 행동이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사망과 파괴를 초래할 것을 알고 있었으며그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다고 냉정하게 판단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하마스의 권력욕 때문에 수천 명의 동료가 희생된 것에 대해 분노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여전히 인간적인가?

 

하마스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을까?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와 같은 '자유의 투사'가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을까누구로부터의 해방이고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일까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주민들이 이슬람주의 하마스 국가에 살면 자유로워질까?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무엇을 의미할까?

 

목표와 방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반대파를 투옥하고 고문하고민간인을 살해하고어린이와 노인을 인질로 잡는 등 하마스가 하는 모든 행위는시민의 자유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강력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하마스의 목표를 보여준다지난여름 가자지구에서는 많은 사회적 시위가 있었다. 물전기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하마스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전년도(특히, 2019년 3)에 비해 시위를 덜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10월 7일의 대규모 하마스 공격은 그 더운 여름에 이어 발생했다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하마스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실추된 위신을 회복하고자 했다이 행동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팔레스타인 전문가 에밀리오 미나시안(Emilio Minassian)은 팔레스타인의 무력함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수하고 싶은 이중적 분노의 논리를 낳는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가보다 더 나쁘거나 더 잔인하지는 않다그들은 모두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비슷한 논리로 행동하고 있다하지만 각자의 방법이 다른 만큼 전술과 전략도 다르다이는 비대칭적인 분쟁이다따라서 그들의 잔인함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한 쪽은 참수를 하고 다른 한 쪽은 융단폭격을 한다둘 다 공포를 심는 것이 주요 목표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다우리 시대에는 공포가 정치적 무기로 점점 더 보편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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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에도 인민’ 이 주인인 나라는 없다모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주인에게 속해 있다인구 대다수를 굶주림과 권력의 부재에서 해방시킨 민족 '해방투쟁의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모든 투쟁은 자본주의 주체 사이의 투쟁이었으며 좌파는 항상 어느 한쪽을 지지했다.

 

가자지구 응징을 집단으로 반대하는 것이 하마스 지지라고 믿는 좌파 단체들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북베트남 스탈린주의 국가에 대한 지지라고 믿었다그 전쟁에서 200만 명이 사망했다베트남은 승리했다이제 베트남은 자신을 해방’ 시킨 국가의 후발 상업 및 군사 파트너가 된 경찰국가가 되었다베트남 노동자들은 이제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공장에서 중국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저귀를 차고 일한다이제 베트남 사람들은 하노이에서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펩시를 마실 수도 있는선택의 자유가 있긴 하다.

 

민족 '해방'의 목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그렇게 하면 너무 멀리 갈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 체제가 더 좋았다는 의미는 아니다식민지 멍에에서 해방된 대부분 국가에서 대다수 사람이 매우 불행하게 사는 것은 민족 해방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방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그러나 그것은 민족투쟁이 사실상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는 부르주아 투쟁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반대로특히 현시대에 민족투쟁은 걸림돌이 된다인종 차별이 내재한 식민지 체제가 철폐된 것은 좋은 일이다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종식과 같은 부인할 수 없는 진전이 있었음에도 그 한계를 봐야 한다이 나라는 빈부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실업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파업 참가자들을 기관총으로 쓰러뜨리고불법체류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등 진정한 자유를 위한 투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터너와 베이컨

 

하마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거론하는 또 다른 예는 터너(Turner)봉기다냇 터너(Nat Turner)는 1831년 버지니아에서 유혈 봉기를 주도한 노예였다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백인을 죽이는 것이었다가족 전체가 학살당했다이 학살은 10월 7일 하마스 학살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저지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프란츠 파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압제자에게 대항하는 식민지 사람들의 폭력"이다.

 

그렇게 되면 터너와 하마스는 자신의 의지도주체성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벽이 테니스공을 반사하듯 받은 폭력을 반사하는 자동화 장치에 불과하다마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하지만 인종이나 민족 전쟁으로 전개되지 않는 억압에 맞선 봉기의 사례도 있다미국의 첫 번째 주요 봉기는 1676~1677년에 일어난 베이컨 봉기다이 영화에서 가난한 백인과 흑인 노예들은 버지니아의 식민 정부에 맞서 함께 싸웠다그들은 당시 수도였던 제임스타운을 점령했다영국에서 원정군이 도착한 후에야 봉기를 진압할 수 있었다.

 

흑인 노예와 백인 프롤레타리아는 이해관계가 같았다도덕적 측면을 제쳐두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부분으로 베이컨 봉기를 이상화하고 싶지는 않다베이컨과 함께 싸운 노예들은 터너를 따르는 노예들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지능적인 투쟁 방법즉 피부색이나 종교보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회 계급에 기반을 둔 동맹을 선택했음이 분명하다식민지 권력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베이컨의 봉기는 식민지 권력에 공황상태를 초래했다힘없는 백인과 흑인이 다시 힘을 합쳐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예제의 인종적 특성을 강화하고 백인과 흑인 간의 접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인종 분리주의(apartheid) 제도인 버지니아 노예법이 도입되었다.

 

흑인 노예들은 백인 노동계급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해방될 수 없었고오늘날 미국의 흑인 프롤레타리아트도 이러한 인종을 넘어서는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지원 없이는 스스로 해방될 수 없다그리고 그들은 터너처럼 최대한 많은 유대인을 살해해서는 이를 실현할 수 없다베이컨 봉기 이후 권력자들이 백인과 흑인을 갈라놓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던 것처럼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권력을 장악한 시오니스트와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서로 대립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프롤레타리아가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반()식민지 전쟁인가?

 

이스라엘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원래 살고 있던 거주민 대부분이 쫓겨난 땅에 대부분 유럽의 백인들이 정착하면서 탄생한 국가이다각기 다른 해의 지도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두 나라의 성장과 원주민의 영토가 축소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원주민 추방은 계속되고 있다이는 최근의 강경 우파 네타냐후 정부 하의 서안 지구에서 가속화되었으며현재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정착민들과 함께 광신적인 군대처럼 과도하게 추진되고 있다미국이 인디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오니스트 국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호구역에 가두어 두려고 한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영토를 확장하는 식민지 권력이 아니라 이미 영토를 확보한 국가이다국가가 하는 일은 그들을 분리해서 국가의 지배를 보장할 수 있는 다른 구역으로 밀어 넣어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술은 비슷할 수 있지만식민지 전쟁은 아니다하지만미나시안(Minassian)이 지적했듯이 다음과 같은 유럽 식민주의와 이데올로기적 유사성도 있다.

 

"이스라엘은 인종적 기준에 따라 노동자를 '동물화'하여 문명 세계와 문명 이전 세계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유럽의 논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이 논리에 따라 가자 지구의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있다가자 지구의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즉 이 지역에서 인간 집단을 구분하는 위계를 상기시키기 위해 다른 정치적 목적 없이 폭탄에 의해 매몰되고 있다개가 물면 무리를 향해 총을 쏘게 된다." 그는 "문명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유동적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인다그들은 이스라엘-유대인 시민권이 있었고 스스로 활동하고 있다아랍계 유대인(미즈라히)이나 에티오피아계(팔라샤)는 오랫동안 울타리의 반대편에 있었으며 다른 원주민을 달래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원주민을 보조하는 군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전쟁은 토착 사회 상류층 관료들이 이끄는 토착민과 국가를 통제하고 국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 세력 사이의 전쟁이다미나시안은 두 나라 사이의 투쟁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며그런 의미에서 이 분쟁은 식민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사실상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도시들은 빈곤한 변두리 지역으로하나의 국가하나의 경제를 구성하고 있다가자지구 사람들 역시 이스라엘 화폐이스라엘 제품이스라엘 신분증을 사용하고 있다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는 똑같이 전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서안지구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스라엘과 식민지에서 일한다그들은 종종 히브리어를 사용한다미나시안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는 서안지구의 한 난민 캠프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저녁 내내 들은 적이 있었는데그들은 이스라엘 수도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인종분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즉 건설 발주자는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점령지에서 노동자 모집은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감독관은 아랍어를 구사하는 세파르드(Sephardic) 유대인 등 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그리고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이주 프롤레타리아들도 있다태국인중국인아프리카인 등 미등록 이민자로서 실제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이 그룹은 서로 섞일 수 없으며각 그룹은 생산 관계에서 고유한 지위와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은 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당시 팔레스타인의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한 덕분에 경제가 성장하고 고도로 발전한 국가가 되었다그러나 1980년대에는 1983년 주식 시장 폭락, 1984년 445%의 인플레이션기록적인 국제수지 적자 등 급격한 성장세가 주춤했었다그 후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러시아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이주가 이루어졌다이러한 전개로 인해 이제 이스라엘 산업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전보다 훨씬 덜 필요로 하게 되었다팔레스타인 실업률이 치솟게 되었다이스라엘은 첨단기술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었지만다른 선두주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용할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있다이런 측면에서 미나시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경제를 세계 경제의 축소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특정 지역에 가두어 두고 현지 하청업체에 관리권을 넘기는 분리 정책이었다.

 

"이 거대한 울타리민족-종교적으로 유용한 프롤레타리아와 잉여 프롤레타리아를 분리하는 이 작업은 평화 과정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며실제로는 불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외부화되는 과정이었다"라고 미나시안은 말한다따라서 식민지 분쟁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토착민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축적의 중심지 특유의 비율로 잉여 프롤레타리아 인구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이스라엘에서 노동 계약을 맺은 모든 노동자 외에 팔레스타인이 관할하는 폐쇄된 대규모 교외 지역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일하는 또 다른 노동자가 있다이들은 거의 5백만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텔아비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갇혀 매일 노동력을 팔아 생활하고 있으며우리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가자지구는 서안지구의 도시나 난민 캠프보다 이스라엘 경제의 쓰레기통과도 같은 곳이다이스라엘의 청년 실업률은 70%를 넘어섰다(현재 침공 전). 이러한 남아도는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재정적 도움을 받아 극빈층으로 살아가고 있다이 돈은 하부 조직인 하마스와 이른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분배되며이들은 주로 '질서'를 유지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젊은이들을 강제로 군대에 입대시키고 다른 준군사조직을 제압하는 등 다른 국가 기능도 수행한다하부조직들은 환멸을 느낀 팔레스타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실추된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동시에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항하여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미나시안에 따르면우리는 하마스의 전략에 대한 해석을 찾아야 한다하마스는 스스로 "불명예스러운 존재"가 되려고 한다이것은 해방 투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역 분쟁이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내부 역학 관계는 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미국과 그 도전자들 간의 지정학적 분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대부분의 유럽 식민지 체제가 종식되면서 탈식민지화의 물결과 함께 이루어졌다둘 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 세계 권력이 이동하면서 발생한 결과이다강력한 무기를 갖춘 미국 군대를 보유한 군사화된 백인 식민지는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계획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석유 자원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미국에 이스라엘의 중요성도 커졌다처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틀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하는 일을 결정한다이러한 의미에서도 식민지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사이 분쟁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인 "자본주의 죽음의 세계"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란에 대항하는 강력한 친미 동맹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정책도 중요한 요소였다이란은 미국이 IDF를 지원하듯이 하마스(보다 온건한 정치세력은 카타르가 자금을 지원함)의 군부를 지원하고 있다전쟁에 사용된 돈과 무기는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조달되었다사상자만 지역 사람들이다.

 

그 글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에 대한 관점의 부재와 그 위기가 심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강조한 바 있다구조적 위기는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으며 현재의 균형을 흔들고 있다군비 지출과 군사 분쟁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우크라이나아프리카카라바그그리고 현재 가자에서 얼어붙은 전선이 녹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새로운 분쟁이 아니라 기존 분쟁이 갑자기 고조되는 상황이다앞으로 몇 년 동안 더 많은 화약고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력 중 쓸모없는 부분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가 자본주의 세계 질서에서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이스라엘이 그러한 부분에서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미나시안에 따르면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쟁이 아니라 중심지역 축적 블록의 일부인 민주적이고 문명화된 국가가 전면전에 상응하는 군사적 수단으로 남아도는 프롤레타리아를 통제하는 것"이다그는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수천 명의 죽음은 "다가올 자본주의 위기의 끔찍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전쟁의 역할이 커지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군인과 '자유의 투사'를 존경하고대량 학살에 박수치거나 눈감고조국을 위한 죽음과 파괴를 정상으로 여기며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패자가 되는 분쟁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법을 배우는 시대이다.

 

해방은 전쟁과 공격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부색이나 신앙과 관계없이 함께하는 노동자의 공동 이익에 대한 연대와 의식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이를 실현하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그들의 발전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진정한 해방을 방해한다무엇보다도 민족주의민족-종교적 또는 인종적 이유로 사람들을 분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따라서 팔레스타인 국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팔레스타인은 강에서 바다까지 해방될 것이다"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전쟁을 멈추라는 요구가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다전쟁에서 싸우는 대신 전쟁을 멈추는 것지금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할 사안이다지금 당장 휴전하라이제 인질들을 석방하라이제 가자 지구 봉쇄를 해제하라서안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당장 멈추어라()유대주의도이슬람 혐오도 반대한다고통도유혈도 이제 그만하면 됐다()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연대를 구축하자!

 

샌더(Sanderr)

2023년 11월 15

국제주의자 전망(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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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internationalistperspective.org/warmongers-left-and-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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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4강>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4강>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4년 7월 20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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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침머발트 선언문(1915년)

침머발트 선언문(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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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동자여!

 

1년 이상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전장에는 수백만 구의 시체가 널려 있고수백만 명이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유럽은 거대한 도살장과 같다여러 세대에 걸친 노동으로 이룩한 문명 전체가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자부심이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야만이 승리하여 이를 자축하고 있다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한 진실과 관계없이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전쟁이 각국의 자본가계급이 전 세계의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착취하여 이윤에 대한 탐욕을 채우려는 제국주의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나 정치적으로 약한 국가는 강대국에 예속하고강대국은 전쟁을 이용해 자신들의 착취적 이익에 따라 유혈과 철권으로 세계 지도를 다시 만들려고 한다벨기에폴란드발칸 반도 국가아르메니아와 같은 민족과 국가 전체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분할되어 병합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전쟁의 원동력이 완전히 악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이 세계 재앙의 본질을 대중의 인식에서 감춰왔던 장막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민중이 흘린 피에서 전쟁 수익이라는 붉은 금을 만들어 내는 모든 국가의 자본가들은이 전쟁이 조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는 거짓말이다실제로 그들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함께 자국민의 자유를 파괴의 현장에 묻어버리고 있다승자와 패자 모두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짓누를 새로운 족쇄새로운 사슬새로운 짐이 생겨나고 있다전쟁이 발발했을 때 생활 수준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실제로는 빈곤과 궁핍실업과 인플레이션영양실조와 전염병이 발생했다전쟁 비용을 지불하는데 사회 개혁의 성과를 훼손하고 모든 진전을 방해하며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진하게 할 것이다.

 

지적도덕적 황폐화경제적 재앙정치적 반작용 등 국가 사이의 끔찍한 분쟁이 불러온 폐해다.

 

따라서 전쟁은 노동 대중의 이익역사적 발전의 환경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동의 존재라는 인간의 첫 번째 조건과도 화해 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세력손에 운명을 쥐고 있는 국가군주제 및 공화당 정부비밀 외교방대한 사용자 조직중산층 정당자본주의 언론교회이 모든 세력은 그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사회 질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착취당하고권리를 박탈당하고멸시받던 여러분은 전쟁 발발 당시 형제이자 동지로서 인정받다가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제 군국주의가 여러분을 손상하고상처입히고타락시키고파괴했을 때지배자들은 여러분에게 이익목표이상을 포기할 것을한마디로 "국가 휴전"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여러분은 자신의 견해감정고통을 표현할 수 없으며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투쟁할 수 없다언론은 재갈을 물리고정치적 권리와 자유는 짓밟히고 있다이처럼 철권통치를 하는 군부 독재 정권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유럽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으며감히 그렇게 할 수도 없다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노동계급은 군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해 왔다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내 및 국제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제국주의 결과로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해가는 전쟁의 위협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슈투트가르트코펜하겐바젤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길을 결정하는 데 참여했던 우리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계급 조직은 전쟁 발발 이후 그에 따른 의무를 무시했다그들의 대표들은 노동자에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에 해당하는 노동계급 투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그들은 전쟁을 계속한 지배계급의 공로를 인정하는 투표를 했다그들은 매우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그들의 정부에 의지했다그들은 언론과 특사를 통해 각국 정부 정책에 대한 중립국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그들은 국가의 휴전 준수를 위해 사회주의 장관들을 정부에 인질로 바쳤으며따라서 이 전쟁과 그 목표방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정당들이 개별적으로 실패한 것처럼모든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을 대표했던 국제사회주의서기국(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도 실패했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이비록 그 일부가 제1차 세계대전의 국가적 공황에 희생되지 않았거나 공황을 극복하고 일어선 곳에서도국가 학살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지금도 모든 나라에서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동시에 벌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함께 만났다우리는 사회주의당노동조합 또는 그 소수파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루마니아불가리아스웨덴노르웨이네덜란드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을 대표한다착취계급과의 국가적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계급 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서 있다우리는 국제 관계의 끊어진 유대를 새롭게 연결하고 노동계급을 재조직하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모였다.

 

이 투쟁은 또한 자유형제애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우리의 임무는 합병이나 전쟁 배상금이 없는 즉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그러한 평화는 국가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사상이 척결될 때만 실현될 수 있다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점령당한 국가에 대한 강제 편입이 없어야 한다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합병은 안 되며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더욱 견딜 수 없는 강제적 경제 결합도 용납될 수 없다.

 

조직 노동자들이여!

 

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당신은 지배계급에 봉사하기 위해 에너지용기용감함을 발휘했다이제 자신의 대의를 위해사회주의의 신성한 목표를 위해피억압 국가와 노예 계급의 구원을 위해화해할 수 없는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여러분의 임무다.

 

모든 힘을 다해 이러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교전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이다피비린내 나는 야만과의 싸움에서 모든 효과적인 수단으로 형제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립국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자 의무다.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시급하고이보다 더 귀중하며이보다 더 숭고한 임무는 없었으며공동으로 이를 완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국가 사이 평화 구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너무 크지 않으며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니다.

 

일하는 남자와 여자어머니와 아버지홀어미와 고아다친 사람과 장애인!

 

전쟁으로 인해 또는 전쟁의 결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외친다국경 너머연기가 자욱한 전장 너머황폐해진 도시와 마을에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 의 이름으로

 

독일 대표단조지 르데부르(George Ledebour), 아돌프 호프만(Adolph Hoffman)

프랑스 대표단 : A. 부르데론(A. Bourderon), A. 메르하임(A. Merrheim)

이탈리아 대표단 : G.E. 모딜리아니(G.E. Modigliani), 콘사니노 라자리(Consanino Lazzari)

러시아 대표단: N. 레닌(N. Lenin), 폴 액셀로드(Paul Axelrod), M. 보브로프(M. Bobrov)

폴란드 대표단세인트 라핀스키(St. Lapinski), A. 바르샤바키(A. Warski), Cz. (야곱하네키(Cz. (Jacob) Hanecki)

사회주의 연맹: (루마니아 대표단) G. 라코프스키(G. Rakovsky) (불가리아 대표단바실 콜라로프(Vasil Kolarov)

스웨덴 및 노르웨이 대표단: Z. 호글룬드(Z. Hoglund), 투레 네르만(Ture Nerman)

네덜란드 대표단: H. 롤랜드 홀스트(H. Roland Holst)

스위스 대표단로버트 그림(Robert Grimm)

 

1915년 9

 

 

1915년 9월 스위스에서 침머발트(전쟁 반대회의가 열렸다비록 42명의 대표만이 참석했지만(트로츠키에 따르면 4명의 지도자가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이 회의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인인터내셔널의 토대를 마련했다.

 

 

좌파의 선언

 

서명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선언문은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선언문에는 공개적인 기회주의나 급진적 문구 속에 숨어 있는 기회주의즉 인터내셔널 붕괴의 주요 원인뿐만 아니라 그 붕괴를 지속하려는 기회주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선언문에는 전쟁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 언론과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직면하게 한 과제에 관해 분명한 맑스주의적 입장을 계속 옹호할 것이다우리는 이 선언문을 투쟁에 관한 요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한다그리고 투쟁에서 우리는 인터내셔널의 다른 부문과 함께 나란히 행진하기를 열망한다우리는 이번 선언문을 공식 절차에 포함할 것을 요청한다.

 

서명: N. 레닌(N. Lenin), G. 지노비예프(G. Zinoviev), 라덱(,Radek) 네르만(Nerman) 호글룬드(Hoglund), 윈터(Winter)

 

 

 

<관련 글> 침머발트 좌파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까지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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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

헤르만 호르터 (Herman Gorter)

 

 

나는 이 편지를 러시아의 바르샤바로의 승리의 진격 동안에 썼다는 것을 레닌 동지와 여러분그리고 독자에게 밝힌다또한나는 여러분과 독자들에게 많은 반복에 대하여 사과하고 싶다대부분 국가에서 좌파의 전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이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목 차

 

1. 소개

2. 노동조합의 문제

3. 의회주의

4.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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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개

 

사랑하는 레닌 동지!

 

나는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습니다. 동지의 다른 많은 저작에서처럼 소책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나는 확실히 많은 다른 동지들처럼감사하고 있습니다나에게도 역시 확실하게 서식하던 이러한 「유아적 무질서」의 많은 흔적과 많은 싹이 고쳐졌고확실하게 더 고쳐질 것입니다그리고 동지가 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머릿속에 야기된 혼동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완전히 옳습니다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혁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갑작스럽게그리고 매우 다르게일어났습니다그리고 동지의 문서는 나에게즉 과거보다 더 많이전술의 모든 문제에서 그리고 혁명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출현하는 것 같은 현실실제적인 계급관계에 의존한다는 나의 판단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동지의 소책자를 읽었을 때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습니다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내가 동지가 비판한 좌익을 더는 지지하지 않아야 하는지그리고 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이나 영국의 야당을 위하여 더는 기사를 쓰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이를 거절해야 했습니다.

 

잘못된 근거

 

이러한 내 입장은 모순적인 것처럼 보입니다하지만레닌 동지모순은 소책자의 출발점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동지가 믿는 것처럼러시아와 서유럽 혁명의 일치성에 대하여서유럽 혁명의 조건들말하자면 계급관계에 대하여 올바르지 않게 판단하였고이에 따라 동지는 좌파반대파가 성장하는 토대를 잘못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동지의 출발점을 수용한다면 소책자는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출발점을 거부하면모든 소책자는 오류입니다모든 동지의 옳지 않은부분적으로 옳지 않고부분적으로 확실히 완전히 오류인판단은 특히 독일과 영국의 좌파운동에 대한 비난에 이르게 했습니다그리고 나는위의 좌파운동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알고 있듯이모든 점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그들을 확실하게 방어하기로 했습니다또한나는 동지의 저술에 대해 좌파 방어를 위해 대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믿습니다이러한 좌파에 대한 방어는 좌파가 생성된 토대를 보여주고여기 서유럽에서그리고 현 단계에서 그들의 정당함과 우수성을 증명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특히 러시아에서 서유럽의 혁명에 대하여 지배적인 왜곡된 생각을 극복하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서유럽에서의 전술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전술도 서유럽 혁명에 의존하고 있어서 위에서 말한 양자 모두 중요합니다이러한 내 생각을 모스크바 회의에 참여해서 말하고 싶었지만그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반박

 

우선 동지들과 독자의 판단을 기만할 수도 있는 동지의 두 가지 소견을 반박하고자 합니다동지는 독일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지도자 독재', '대중 독재', '위로부터 또는 아래로부터등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소리를 하며 비웃고 조롱합니다위의 서술에 대하여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하지만 동지의 조롱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안타깝게도 서유럽에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많습니다서유럽에는 여전히 많은 나라에 제인터내셔널 유형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여전히 올바른 지도자대중을 지배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 지도자를 찾고 있으며이러한 지도자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이 아래로부터즉 대중 자신의 독재를 통해 집행되기를 원합니다만약 나에게 등산 안내자가 있는데나를 절벽으로 안내한다면오히려 등산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올바른 지도자를 찾게 되면 우리는 지도자를 더는 찾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대중 위에서 지배하지 않고대중을 배반하지 않는 지도자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독일과 영국의 좌파는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계급과 대중을 아우르는 하나로 통합된 전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두 번째 설명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우리는 동지의 이러한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하지만 문제는 대중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육성하는 것입니다이것은 대중정당노동조합이 내부적으로 가장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 집중화도 마찬가지로 유효합니다하지만 올바른 지도자가 있을 때까지는 우리는 그들이 옳다고 믿습니다코뮤니즘 실현에 가장 근접한 두 나라 독일과 영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이러한 투쟁은 동지의 비웃음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동지는 우리를 조롱함으로써 제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 요소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스파르타쿠스동맹과 영국사회주의당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의 코뮤니스트당 내 요소들이 대중과 지도자에 대한 모든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무의미하고 유치하다라고 강요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이 문구를 통해 그들은 지도자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을 피하고 또 피하고 싶어 합니다강철같은 규율과 중앙집중이라는 문구를 통해 그들은 반대파를 짓밟습니다그리고 동지는 이러한 기회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동지서유럽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그리고 시작 단계에서는 지배자보다 투사를 격려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었습니다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동지의 소책자에 동의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와 서유럽의 다른 점

 

거의 모든 글이 우리가 감탄과 찬사를 하게 한 동지의 팸플릿소책자 그리고 서적을 읽으면서 우리 서유럽의 맑스주의자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더 자세한 설명을 찾으려고 애썼으며이런 설명을 찾지 못하면 마지못해그러나 의구심을 갖고 그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이것은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에 대한 동지의 설명이었습니다그것은 자주아주 흔하게 발생합니다그리고 동지는 항상 이 두 범주를 전 세계의 혁명적 요소로 말합니다그리고 내가 읽은 그 어디에서도 러시아(및 동유럽의 다른 몇몇 국가)와 서유럽(독일프랑스영국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스칸디나비아 국가심지어 이탈리아까지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에 대한 명확하고 솔직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그러나 노동조합주의와 의회주의 전술에 대한 동지의 개념과 서유럽의 이른바 좌파 전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주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동지도 나만큼이나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지만적어도 내가 동지의 글을 읽고 판단하건대 서유럽 전술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이러한 결론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으며따라서 이러한 서유럽 전술에 대한 귀하의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그리고 서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러한 동지의 문구가 모든 코뮤니스트당맑스주의자들조차도 아무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합니다모든 코뮤니스트 신문잡지 및 소책자와 모든 대중 집회를 통해 판단하게 되면 서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의 봉기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러시아와 서유럽의 커다란 차이점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으며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판단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빈농의 많은 도움으로 러시아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의 우리도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서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으며전체 전술은 이러한 표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빈농이 결정적인 요소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사실이 아닙니다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일반적으로 혁명적 요소로서 빈농의 중요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작아지게 됩니다아시아중국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면 이 계급이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고러시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실제로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며폴란드와 남동부 및 중부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여전히 혁명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이 계급의 태도는 혁명에 대해 더욱 적대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약 700만에서 800만 명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있었습니다그러나 빈농의 수는 약 2,5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수치 오류를 용서 바랍니다이 편지는 모든 속도로 발송되어야 하므로 기억에서 인용해야 합니다케렌스키가 빈농에게 토지를 주는 데 실패했을 때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머지않아동지를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서유럽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내가 언급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그런 종류의 조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종종 끔찍하지만러시아만큼 비참하지는 않습니다빈농은 농부나 소유자로서 얼마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그들은 훌륭한 교통수단 덕분에 종종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생활은 다소 향상되었습니다이제전쟁 중에는 물론 전쟁 이후에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식료품 수입은 매우 제한적인 필수품입니다따라서 정기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지원을 받습니다자본주의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한자본주의는 이들을 유지할 것입니다동지의 나라에서 빈농의 상황은 매우 비참합니다그러므로 동지와 함께 빈농은 정치적혁명적 강령을 갖고 있었고사회 혁명가들과 함께 정치적혁명적 정당을 조직했습니다우리에게는 그런 빈농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게다가러시아에는 분할해야 할 엄청난 양의 토지대규모 영지왕실 토지국유지수도원이 소유한 영지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서유럽의 코뮤니스트는 빈농에게 무엇을 제공하여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농민에게 제공할 것이 없다

 

독일은 전쟁 전 400만에서 500만 명의 빈농(최대 2헥타르)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실제 대규모 산업(100헥타르 이상)에 고용된 인원은 800~90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만약 코뮤니스트가 이 모든 것을 분배한다면 빈농은 여전히 빈농으로 남게 될 것이고 700만 또는 800만 명의 현장 노동자 역시 자신의 몫을 주장할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은 대규모 산업2)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분배할 수도 없습니다.

 

이 수치는 서유럽에는 빈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보여주며따라서 보조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 수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코뮤니스트는몇몇 상대적인 작은 토지를 제외하면빈농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왜냐하면중소농민의 토지는 확실하게 소유권을 몰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프랑스의 400~500만 명의 빈농도 매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그리고 두 스칸디나비아 국가3)도 유사합니다서유럽 대부분 지역은 중소농민이 지배적입니다그리고 이탈리아에서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10~20만 명 정도의 빈농이 있는 영국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빈농이 코뮤니즘 아래에서 소작료나 저당 이자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 역시 그들을 견인할 수 없습니다빈농은 코뮤니즘에서 내전시장의 소멸과 황폐화를 보고 있습니다서유럽에서의 빈농은지금 독일의 위기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위기즉 지금까지 존재하였던 모든 끔찍함을 넘어서는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한 자본주의 편에 설 것입니다.4)

 

산업노동자는 홀로 서 있다

 

서유럽 노동자는 모두 홀로 서 있습니다중하위 계급의 극히 일부만이 그들을 도와줄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은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노동자는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러시아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마도레닌 동지는 러시아도 역시 같은 경우라고 말할 것입니다러시아에서도 역시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혁명 후에야 비로소 빈농이 결합했습니다이것은 사실이지만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레닌 동지는 농민이 확실하게 그리고 빠르게 동지 편에 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동지는 케렌스키가 농민에게 토지를 제공할 의사도 제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동지는 농민이 케렌스키를 더 오랫동안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동지는 바로 몇 달 후에 농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 수 있는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마법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반면에 우리는 서유럽 전역의 빈농이 당분간 자본주의의 편에 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독일에서는 지원받을 수 있는 빈농이 많지 않지만동지는 아직 부르주아지 편에 서 있는 수백 만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독일에서 러시아 빈농의 위치를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게 될 것이고지원하러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이 표현도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엄청난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 농민은 자본주의가 패배한 후에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했지만아직 자본주의 편에 서 있는 독일 노동자들이 코뮤니스트 대열에 합류하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혁명은 오랜 세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에 참담했으며 승리 후에도 지금도 참담합니다그러나 실제 혁명 당시에는 쉬웠고 이것은 농민들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입니다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혁명은 쉬웠고이후에도 쉬울 것입니다그러나 실제 혁명의 도래는 끔찍할 것입니다아마도 다른 어떤 혁명보다 더 끔찍할 것입니다왜냐하면동지의 나라에서는 봉건주의중세심지어 야만과 마찬가지로 약하고 겨우 뿌리를 내린 자본주의였지만여기 서구에서는 강하고 널리 조직되어 뿌리를 깊이 내렸고얕고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계층을 제외하고는 항상 가장 강한 편에 서는 농민뿐만 아니라 중하층 역시 마지막까지 자본주의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빈농의 도움 덕분에 승리하였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여기서유럽그리고 세계의 곳곳에서는 고려해야 합니다하지만 서유럽에서 노동자가 홀로 서 있다는 것도 러시아에서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홀로 서 있다

 

바로 이것이 완전히 진실이며우리의 전술은 이러한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이러한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전술은 오류이며 프롤레타리아트를 끔찍한 패배로 이끌 것입니다.

 

서유럽의 빈농은 아무런 강령도 없고 땅을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뮤니즘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사실임이 현실로 증명되었습니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이 문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서유럽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적이며따라서 농민이 코뮤니즘을 지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빈농이 코뮤니즘을 얻을 수 있는 지역적 여건이 조성된 다른 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모든 것이 무너지는 혁명의 시기에 우리 편에 서는 빈농이 없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빈농에게 지속적인 선동을 해야 합니다그러나 우리의 전술은 혁명의 시작과 진행 과정에서 채택되어야 합니다내가 의미하는 것은 일반적 추세즉 일반적 경향입니다그리고 우리의 전술은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5)

 

이로부터 우선 서유럽에서 진정한 혁명즉 자본주의의 전복과 코뮤니즘 수립 및 영구적 제도는 당분간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충분히 강한 나라즉 빈농의 도움이 불가능한 독일영국이탈리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선전조직화투쟁을 통해서만 혁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러시아독일영국 등 큰 나라에서는 혁명을 통해 경제 상황이 크게 흔들리고 부르주아지가 충분히 약해졌을 때만 혁명 자체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절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러시아 군대의 도움인도의 봉기끔찍한 위기 등)에 우리 전술을 기반으로 할 수 없다는 데 당신도 동의할 것입니다.

 

동지빈농의 중요성에 관한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귀하의 첫 번째 큰 실수이며모스크바 집행부와 인터내셔널 집행부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전술과 관련하여서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다는 사실즉 다른 계급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우선 대중에 대한 요구가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혁명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두 번째는 지도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작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대중프롤레타리아는 전쟁 중에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눈앞에서 농민이 곧 자기편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독일 프롤레타리아는 먼저 독일 전체 자본주의 및 모든 계급이 반대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이미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실제 노동자 수는 7,000만 인구 중 1,900~ 2,000만 명에 달했지만그들은 다른 모든 계급에 맞서 홀로 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6) 그들은 러시아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자본주의에 맞서고 있으며그들은 비무장 상태입니다러시아는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모든 독일 프롤레타리아모든 개인에게 혁명은 러시아에서 필요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와 희생정신을 요구합니다이것은 독일의 경제적 계급관계의 결과이지 혁명적 낭만주의자나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온 이론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전체 계급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혁명에 투신하지 않으면 혁명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우리의 전술을 결정할 때 외부의 힘보기를 들어 러시아의 도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에 당신은 다시 한번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거의 무장하지 않은 채 홀로도움 없이밀접하게 결합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독일의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의식적인 투사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이는 모든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대다수가 의식 있고 확고한 투사로진정한 코뮤니스트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러시아보다 이곳에서 절대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상대적 의미에서도 훨씬 더 위대해져야 합니다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이는 어떤 지식인이나 시인의 꿈이나 표현이 아니라말 그대로 현실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계급의 의미가 커질수록상대적으로지도자의 의미는 작아집니다이는 최고의 지도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최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그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이는 대중에 비해 지도자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인구 1억 6천만 명의 나라에서 700~800만 명의 도움으로 승리해야 했던 동지의 경우에 지도자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게 컸을 겁니다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술의 문제입니다동지동지가 했던 것처럼그토록 방대한 땅에서 적은 병력으로그러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자의 전술이 필수적입니다동지가 소수의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을 때결정적인 순간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빈농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동지의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어떤가요아무리 영리한 전술을 구사하고 명석하고 천재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독일에서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항하는 냉혹한 계급 적대감이 존재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힘과 수적 우위를 통해 스스로 판도를 뒤집어야 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힘규모를 통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하지만 독일에서는 적이 매우 폭력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보다 훨씬 더 잘 조직되었기 때문에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은 특별히 자신들의 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다윗이 골리앗을 반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소유 계급에 반대했습니다다윗은 작았지만아주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독일영국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거인이 다른 거인을 상대하듯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있습니다그들에게는 단지 힘이 문제입니다육체의 힘그리고 특별히 정신력의 문제입니다.

 

레닌 동지독일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그들은 모두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이것은 이 혁명이 애초에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고 웅장한 일이며코뮤니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독일 상황은 서유럽 어느 곳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홀로 서 있으므로 전체 서유럽과 비슷합니다.

 

대중 및 노동자 혁명세계 최초로 노동자 대중만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대중만의 혁명은 그것이 좋거나 아름답거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경제 및 계급관계가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

 

 

요컨대문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읽기 위해 서유럽과 러시아혁명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비교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영국령 인도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전체 인구의 0.5%만이 산업 프롤레타리아이며 80%가 소농이라고 가정할 때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으로 연합한 정치적사회적으로 더 잘 훈련된 프롤레타리아의 주도 아래 혁명이 일어나야 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중국이나 인도 노동자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통해 승리했으니 이제 동지들도 혁명을 위해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러시아 노동자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지들이여이는 불가능합니다우리나라는 여러분의 나라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가 발전했습니다우리는 인구의 절반은 아니지만 3%가 산업 프롤레타리아입니다우리의 자본주의는 여러분의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해서 우리는 동지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러시아와 서유럽의 차이로부터 이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1. 만약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 또는 당신을 추종하는 서유럽스파르타쿠스동맹의 기회주의적 코뮤니스트 또는 영국 코뮤니스트당이 지도자냐 대중이냐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우리가 아직도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이 문제가 동지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오류입니다.

 

 

2. 동지가 우리에게 말할 때 "지도자 와 대중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우리는 그러한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이 우리와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3. 코뮤니스트당에 강철같이 강한 규율과 절대적으로 군사화된 중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강철 같은 규율과 강력한 중앙집중을 추구하고 있어서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이 문제가 동지와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잘못된 말입니다.

 

4.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우리는 러시아에서(보기를 들면코르닐로프 공격이나 다른 사건 이후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했다거나이러저러한 시기에 의회에 진출했다거나노동조합에 남았다거나그러므로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도 똑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이 모든 것은 전혀 의미가 없으며어떤 식으로든 적용될 필요도 없고적용될 수도 없습니다투쟁과 혁명에서 서유럽 계급관계는 러시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5. 러시아에서 훌륭했던 전술보기를 들어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기서 빈농이 곧 프롤레타리아트에 합류할 것이라는 확신즉 프롤레타리아트가 홀로 서 있지 않다는 확신에 기초한 전술을 우리에게 강요하려 할 때동지가 규정하고 그것에 따르는 전술은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파멸과 아주 끔찍한 패배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6. 동지와 모스크바 집행부또는 스파르타쿠스동맹 중앙위원회나 BSP와 같은 서유럽 기회주의 세력이 우리에게 기회주의 전술(기회주의는 항상 프롤레타리아트를 배반하는 외부 요소의 지원을 구한다)을 따르도록 강요하려 한다면동지의 잘못입니다.

 

서유럽에서 전술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기반은 다음과 같습니다프롤레타리아가 홀로 서 있고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대중의 중요성이 더 크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독일에 있을 때 라덱(Radek), 모스크바 집행부도동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동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 독일 코뮤니스트당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8)의 코뮤니스트당모스크바가 임명한 암스테르담 위원회의 대다수 전술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초 위에 그들은 무엇보다도 대중 전체와 개인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혁명적 투사가 될 수 있도록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교육하고, (이론만이 아니라 특히 실천을 통해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렸으며외국의 도움이나 지도자에게 거의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볼프하임(Wolffheim)과 라우펜베르크(Laufenberg)와 같이 운동의 첫 단계에서 불가피한 사적인 발언사소한 문제 및 변명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정당과 동지들이 취한 견해는 매우 올바르며 동지의 반대는 전적으로 오류입니다.9)

 

만약 동유럽에서부터 서부로 이동하면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경제적인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경제적 경계는 발트해 연안에서 지중해까지단치히(Danzig)에서 베니스(Venice)까지 이어집니다이 선은 두 세계를 서로 분리합니다이 선의 서쪽은 산업상업 및 금융자본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최고로 발달한 은행자본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

 

농업 자본조차도 이러한 자본의 지배를 받거나 결합하도록 강요받습니다이 자본은 매우 잘 조직화하여 있으며세계에서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국가 정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제적 경계선의 동쪽은 집적화된 산업상업운송 그리고 은행자본의 엄청난 발전도 이들의 패권도이것의 결과인 견고한 근대국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쪽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이 동쪽의 전술과 같다면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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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기를 들어국가와 혁명에서 동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67"농민이 존재하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대다수 농민은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으며따라서 '값싼정부 전복을 갈망한다프롤레타리아트는 이것을 실행에 옮길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이 코뮤니즘을 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모스크바 농업 테제도 이를 인정한다.

3) 나는 스웨덴과 스페인에 대한 통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

4) 나는 세계혁명이라는 소책자에서 러시아와 서유럽의 이러한 차이점을 강조했다독일혁명의 전개는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매우 낙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이탈리아에서는 빈농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5) 동지는 소인배들처럼 상대의 주장을 너무 단정적으로 받아들여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위에서 한 나의 발언은 후자를 위한 것입니다.

6) 물론 전쟁 전 수치를 사용해야 했고마지막 인구 조사(1,909이후 프롤레타리아의 증가를 그 이전 수치에 비례하도록 했다.

7) 나는 이 다른 숫자 관계(독일은 2천 만에서 7천 만!)를 통해 대중과 지도자의 중요성대중과 당지도자 사이의 관계그리고 혁명의 과정과 마무리 단계에서도 러시아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8) 적어도 지금까지는.

9) 이 논쟁에서 대부분 반대파의 공적인 목소리가 아닌 사적인 목소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gorter/1920/open-lett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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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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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은 부르주아 총선일이었다이날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거부하는 이들이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를 열었다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코뮤니스트 정치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부문과 연령대의 동지들이 참여하여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서는 진정한 노동계급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최근 몇 년 동안 인류가 심각하게 경험한 감염병 대유행기후위기생태파괴일반화된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은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심화하였고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대유행에 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장기간 지속해 온 위기 속에서 격렬해지는 제국주의 대립과 이윤추구 경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고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습니다이러한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며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따라서 세계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혁명이냐제국주의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습니다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이른바 진보-좌파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 내부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입니다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 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그들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에 노동자’ 이름을 팔아 참여해 선거 환상을 퍼트려 왔습니다하지만, ‘전쟁이냐 혁명이냐라는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혁명적 의도와 관계없이 단지 죽어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분들과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코뮤니스트 정치'를 소개하고자본주의 쇠퇴와 전쟁의 시대코뮤니스트 혁명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제안)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는 위와 같은 취지로 개최했고이날은 특별히 선거 당일이었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강좌를 시작했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노동자 정당 집권인가노동계급이 직접 통제하는 노동자평의회-자기 권력인가.

 

노동자 투쟁을 약화하고 부르주아 정치에 의탁하는 진보좌파 정치인가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과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인가,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개혁하는 체제 전환인가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착취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코뮤니스트혁명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에서부터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과 코뮤니스트혁명을 이해해야 한다첫 강좌에서는 근본적 질문으로 코뮤니즘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가능한가와 구체적 실천으로 코뮤니즘을 향한 투쟁코뮤니스트 정치에 관해 연속으로 강좌를 진행했다강좌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코뮤니즘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가능한가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그러나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왜 그런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연설할 때마다 자유평화번영을 외치고 있다그가 말하는 미래는 거꾸로 착취전쟁쇠퇴와 종말이기 때문이다말하는 사람의 사상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먼저 자기 입장과 나는 누구인가를 밝히고 말을 시작해야 한다알기 쉬운 정치이념으로 보수주의자유주의발본주의(맑스주의)로 구분한다면 나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 구도를 거부하는 발본주의자다이 설명은 인류 역사를 설명하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자유를 외치는 윤석열은 어떤 자유인가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무엇을 향한 자유인가따져야 한다.

 

제목을 뒤집어 보면 평등해야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가 된다인류의 역사가 계급사회의 역사였기 때문에 계급 사이의 불평등과 투쟁은 필연적이었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한 맑스의 사상이론과 혁명적 실천을 아는 길이 배움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세철)

 

여전히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혁명적 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 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혁명적 계급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과제계급투쟁(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해야 한다그런데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는 과정이기 때문에점진적으로 단련되며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과정 일 수밖에 없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하려면 코뮤니즘과 코뮤니스트혁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또한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과정과 노동계급 자기 권력에 관해 이해해야 하며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구분하고혁명을 주도할 계급조직인 혁명당과 노동자평의회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운동의 최종목표를 인식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코뮤니즘에 맞서 사상투쟁을 하면서 계급의식과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코뮤니스트 정치는 위와 같이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밝히고노동자 운동의 당면문제를 해결하면서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투쟁의 정치이다.” (이형로)

 

많이 늦었지만세계혁명국제주의코뮤니즘맑스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눌 강좌와 토론이 시작되었다부르주아 이데올로기자본의 좌파에 맞선 사상투쟁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혁명적 실천이 절실한 시기에 [코뮤니스트 강좌]가 계급투쟁의 새로운 주체들에 기준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강좌는 5월 15일에 자본주의 위기와 대안 사회라는 주제로 열린다.

 

 

 

▶강좌 신청 및 문의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  communistleft@gmail.com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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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의과대학 증원 찬반의 허구

의과대학 증원 찬반의 허구

자본의 이익 수단이 아닌 노동자·인민의 필요에 의한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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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윤석열 정권은 지난 2월 공공의료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총선용으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의대 증원안 발표 이후 의사 집단과 정부 사이 강경한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로 다가왔다총선에서 참패한 윤정권은 증원 규모를 절반 수준까지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의사 집단은 원점 재검토 혹은 1년 유예 등을 주장하며 기존 태도를 고수했다.

 

정부는 의사 수만 늘리면 필수 의료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의사 집단은 대학교수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맞서고 있다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지역·과목별 불균형은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인력 배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이윤이 지배하는 의료시장에서 의료수가 인상은 이미 실패했지만결국 건강보험 의료수가 인상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정권과 의사 집단은 명목상 공공의 건강권을 운운하지만기득권 유지가 핵심이다.

 

의사 수 부족은 총인원 부족도 있지만자본주의 시장 법칙에 충실한 의료시장도 중요한 이유이다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공공 의료체계 확립이다그 주장에 따르면 시장 질서에 기반을 둔 의료공급체계에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의료자본의 이윤만을 늘릴 뿐이라서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시장 경쟁 질서의료산업에서의 영리 추구 행위를 그대로 두고서는 의료인력의 합리적·계획적 배치란 불가능하다고 한다따라서 전면적 공공 의료체계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저출생으로 지방 소멸이 현실화한 한국에서 각종 의료공백은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여론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이는 의사 수 부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특히필수 의료부문과 지역에서 의사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그 이유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마저도 자본주의 이윤추구 대상이며자본주의 시장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의료시장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근본적인 대안은 이윤추구 수단이 아닌 오로지 노동자·인민의 건강이 유일한 치료의 목적이 되는 의료행위이다이것은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며자본주의적 시장 질서에서는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 없다따라서 현시점에서 노동자·인민의 건강권 투쟁은 생명과 건강마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는 의료시장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폭로하고공공의료 강화뿐 아니라 무상 공공의료를 위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근본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2. 의대 증원 찬반 속에 감춰진 쟁점

 

의대 증원은 지역 사이의료의 종류기관별 의료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자·인민의 의료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총선 표심의사 집단은 기득권 지키기로 흘러가면서 시장 법칙에 매몰된 보건의료의 실태를 교묘히 숨기고 있다.

 

① 이윤 중심의 의료시장과 공공의료 붕괴

 

한국의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2년 말 기준 전체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기관은 5.2%에 불과하며병상 수의사 인력도 모두 OECD 국가 중 꼴찌이다심지어 민간보험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21.3%와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지난 팬데믹 당시 5.2%에 불과한 공공의료기관이 감염병 전담병원을 담당하고 입원환자의 81.7%를 진료했다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그리고 공공의료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제대로 지켜지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윤석열 정권집권 후 보건의료 부문에서공공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정부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지방 의료원에 6개월의 회복기 손실보상금 외에 아무런 지원 조치도 하지 않았다또한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 설립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와 실손보험 확대를 야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 의료영리 플랫폼을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추진건강관리를 산업화하는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시범사업', 개인 건강정보와 보건의료 데이터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플랫폼’,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 폐지 등 보건의료 영리화를 위한 정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가 증가할수록 보건의료의 영리화는 가속화된다

 

팬데믹 상황에서 보았듯이 보건의료의 붕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이것은 보건의료를 인민의 건강권이 아니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삼아온 자본의 논리 때문이다보건의료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산물이며 팬데믹은 단지 그러한 상황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의대 증원은 보건의료 영리화 정책의 일부이다수도권에서만 8~9개 대학병원이 2027~2028년 개원을 목표로 500~1,000병상 규모의 총 10개소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도 대학병원들이 500~1,5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광주과학기술원 등에서는 바이오·헬스산업에 필요한 의과학자들을 위한 의과대학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의대 증원이 필수 의료지역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 시장화바이오·헬스산업 등의 이윤 증대를 위한 인력 공급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윤석열 정권은 앞에서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의대 증원을 주장하지만뒤에서는 그 어떤 정권보다도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환자 정보를 민간 의료 보험사에 넘겨 상품화할 길을 터주기 위해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코로나19 시기 절대다수의 환자를 맡은 공공의료기관은 적자로 고사 직전인데도 예산을 터무니없이 삭감했지만민간재벌 대형병원에는 온갖 구실을 붙여서 매년 수천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3. 자본주의에서 공공의료의 한계를 넘어서

 

자본주의에서는 건강과 생명마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며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비롯한 모든 의료행위도 예외가 없다윤석열 정권 이전 민주당 정권에서도다른 나라 정부에서도세계 지배계급의 국제기구에서도 건강은 시장이고 돈벌이 수단이다우리는 왜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는가바로 자본주의의 법칙 때문이다이 법칙은 모든 국가 야망의 무게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쟁을 반영하며분산되고 혼란스러운 방법으로만 이루어지는 보편화한 경쟁이윤의 법칙을 통해서만 사회가 기능하도록 한다같은 방법으로 자본주의는 보건의료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예방 수단과 연구 예산을 저지하고지연시키고방해하고중지해왔다효과적인 백신 발견에 필수 불가결한 자원 집중그리고 정보 공유에 대해 자본주의 기능과 그 법칙은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OECD 국가에서는 의료시장을 규제한다그러나 국가에 의한 규제는 크게 보면 자본의 일반적 이익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의사들이 국가규제에 저항한다고 의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자본에 의한 의료시장과 의사에 대한 직접적 지배로 전환된다미국은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보험사와 기업이 의료를 규제하기 위해 나서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대학병원들이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 성장하고 삼성·현대 등 재벌까지 의료 산업에 뛰어들 정도로 자본 축적이 고도화되었다그런데도 이들 병원은 소수의 전문의만 고용한 채 전체 인력의 40% 가까이 임시직인 전공의로 유지해 인건비를 절약해 왔다그 이익은 고스란히 의료자본과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 비용을 절약한 정부와 일부 의사에게 돌아갔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에서 공공의료 확충은 국가와 자본이 존재하는 이윤 중심의 의료체계를 대신할 수 없다그런데도 공공의료 확충은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자본은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겼듯이건강과 생명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의료영리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공공의료 확충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진실은 의료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 집단 사이 대립이다이 대립에서 노동자·인민은 누구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인민의 건강권에 기반을 둔 실질적인 공공의료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노동계급과 환자의 건강권 투쟁은 자본주의와 착취기반에 대한 도전이자 자신들의 기득권에만 혈안이 된 의사 집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4. 나오며

 

현시점에서 시급하고 절실한 공공의료 강화 투쟁이 필요하지만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상 공공의료의 실현이다그것은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노동자·인민의 필요에 의한 의료건강을 우선하는 의료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인류와 지구를 괴롭히는 수많은 고통에서 모두를 벗어나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기적의 치료법이 아니다코뮤니스트 치료법은 다르게 작동한다그것은 인류를 이윤 노예에서 해방하는 것이다우선 자유롭게 연합한 인간이 더는 소수의 이윤을 위해 생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한다면질병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방법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인간과 사회의 관심사가 이윤추구에서 인간의 행복으로 바뀐다면지금과 같은 유해한 생산은 즉시 중단되고오염된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훨씬 많은 자원이 사용될 것이다코뮤니즘 아래에서 인류는 자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이고모든 결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GDP, 제국주의 권력 다툼경제 성장 따위에 대해서는 더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치료제가 근본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왜냐하면그것은 경제와 사회관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물든 낡은 사고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오늘날 우리 지구와 인류는 자본주의 질병으로 인해 너무 심각하게 병들었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건의료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의료체계 반대!

이윤추구가 아닌 노동자·인민 건강을 위한 무상의료로!

건강과 생명을 위한 의료는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다!

 

 

2024년 4월 25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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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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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부르주아 선거가 끝났다이번 선거 결과는 부르주아 정치 관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패배-야권의 승리이지만노동계급 입장에서는 누가 이기든 기대할 게 전혀 없는 '자본주의 승리'이다.

 

지난 수십 년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도 노동자 투쟁과 자기조직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는 투표를 통한 '정권 심판론'에 갇혔다윤석열 집권 2년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물가 폭등실질임금 하락노동조합 탄압복지 후퇴로 생활 조건이 계속 악화하고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총선용으로 기획된 의대 증원 카드의 실패 등으로 안전한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은 노동자 투쟁-반격의 수준에 따라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면서 계급투쟁 부활과 정체성 회복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부르주아 선거는 철저하게 계급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하고 지배 권력을 재편하는 목적에 맞게 작동했고노동계급의 분노는 또 다른 부르주아 분파를 지지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총선에서 두 번 연속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이끌던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었다이들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 같지만사회주의나 코뮤니즘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에 속한다그러면서도 보수주의가 기반을 두고 있는 부르주아지에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이들의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비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노동을 꾸준히 유지한 자본가 정권이었다.

 

선거 이후 자본가 정권의 경찰은 한국옵티칼 결의대회서 금속노조 조합원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17명을 연행했고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서 국가 폭력을 행사하는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결국부르주아 선거는 착취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일상의 계급투쟁에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본질에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이미 오래전 파산한 진보좌파 정치세력을 부르주아 정치에 더욱더 종속하게 하였다그동안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서 자본의 좌파 역할을 하던 정의당이 몰락하고그들을 대신해 민족주의-조합주의 정치세력인 진보당이 민주당과 손잡고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한편태생적으로 의회주의가 지배하는 노동당은 원칙 없는 후보 전술로 노동자 운동 내부에 선거주의만을 강화했다후보를 내세워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투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조급성이 후보 중심의 전술을 강제하고위로부터의 공동전선심지어 부르주아 세력과의 선거연합(위성정당을 반대한 정의당도 부르주아 정당)을 허용하고결국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며 표를 구걸하는 선거주의로 귀결되었다더욱이 국가보안법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코뮤니스트 정치를 전면화해야 함에도다시 과거를 반복하며부르주아 시민단체 수준의 요구를 공약이라고 내걸고노동자 투쟁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개입이야말로노동계급 정치를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키는 행위이다.

 

선거 이후 이른바 진보좌파사회주의 단체 대부분은 선거 득표 분석선거용 이합집산 비판, (아전인수식정권심판론 분석진보정당 및 노동자 정치세력화 몰락 등을 이야기하지만정작 중요한 선거주의 폐해와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에 대해서는 반성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하지만자본주의 쇠퇴기인 지금은 부르주아 선거제도(민주주의)가 노동자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으로 고착화하여 체제 위기 극복의 필수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거부하고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는 관점에서 선거에 접근해야 한다지난 수십 년간 노동계급을 속인 낡은 선거주의’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노동계급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낡은 운동과의 단절 속에서만 새로운 운동과 주체를 창출할 수 있다.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 쇼는 끝났다선거는 짧지만자본주의 위기는 길고 더욱 깊어지고 있다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계급투쟁을 이끌 노동계급 정치의 부재이다노동자들은 '정권심판'의 환상을 넘어서야 한다노동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투표나 야권연대를 통해 얻을 수 없다노동계급의 대대적인 투쟁 없이 정권심판 열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선거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투쟁에 나서야 한다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노동계급의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에 청원하는 곳이 아니라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선거주의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노총의 정치·총선방침을 근본적으로 반대해왔다진정한 노동계급 정치를 위해 선거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노동자 민주주의 실현계급적 연대 강화를 통한 노동계급 자기조직화를 호소해 왔다선거 이전에도선거 이후에도 노동계급의 과제는 변함없다.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자본가계급의 공격을 멈출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본권과 생존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현재의 모든 위기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경제위기전쟁과 학살생태 파괴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단절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위기 전가-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2024년 4월 25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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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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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3강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토대"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6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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