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자유로운 영혼

「코뮤니스트」 2025년 21호가 나왔습니다.

photo_2019-01-10_00-36-21.jpg
 
「코뮤니스트」 2025년 21호
 
 
 
차례
 
「코뮤니스트」 21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2025년 조기대선: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 윤석열 파면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의 시작!  
▸ 자유민주주의는 파시즘, 극우의 뿌리  
▸ 코뮤니즘: 자기 시대가 도래한 사상?  
▸ 정권이 무너지고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 위기는 계속된다 
▸ 자본주의 위기와 무질서에 맞서 계급투쟁을 강화하자!  
▸ 세계정세에 대한 국제주의자 성명  
▸ 성해방, 계급철폐, 국가폐지  
▸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  
 
□ 계급투쟁
▸ 졸속 합의 직권 조인 대학노조 관료들의 어용 행위를 규탄한다!  
▸ 위기의 대학들: 싸움이 시작된다  
 
□ 문화
▸ 그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  
▸ 도끼 -투표에 대하여  
▸ 꿈  
 
□ 특집. 파시즘, 반(反)파시즘, 포퓰리즘
▸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反)파시즘  
▸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 AfD에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 파시즘에 대항하는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  
 
□ 특집, 트럼프 2기와 세계정세
▸ 트럼프와 새로운 황금기  
▸ 트럼프 2.0: 자본주의 혼돈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발걸음  
▸ 그가 승리한 이유와 앞으로 하게 될 일  
▸ 트럼프의 선거 승리에 대한 성명  
▸ 트럼프 백악관 입성으로 무엇이 변화할 것인가?  
 
□ 국제
▸ 2025년 독일 총선: 인종차별과 비인간성의 경연  
▸ 벨기에: 부르주아 긴축 계획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  
▸ 스웨덴 계급투쟁: 노동조합에 대한 분노와 불만  
▸ 시리아 정권 교체: 제국주의 만화경의 또 다른 전환  
▸ 2030년 세계 지배는 중원 제국이 될 것인가, 미국 제국이 될 것인가?  
 
□ 역사
▸ "장엄한 서막” - 1905년 러시아혁명 (1부)  
 
□ 이론
▸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6부  
 
□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
▸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4)   
 
ⓒⓞⓜⓜⓤⓝⓘⓢⓣ ⓒⓞⓜⓜⓤⓝⓘⓢⓣ ⓒⓞⓜⓜⓤⓝⓘⓢⓣ ⓒⓞⓜⓜⓤⓝⓘⓢⓣ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노동자민주주의가 대안이다!
 
 
□ 가격 :  2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21호는 4월 30일 '세계노동절 청년학생 전야제'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 배포/판매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5년 조기대선: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2025년 조기대선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르주아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

 

12.3 비상계엄 선포 후 123일 만인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되었고, 6월 3일에는 조기대선이 치러진다윤석열이 물러가고 대선이 다가왔지만우리에게 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세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윤석열 자본가정권은 그동안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민중에 일방적으로 위기를 떠넘기는 데에만 몰두했다그 결과물가는 폭등하고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가계부채는 늘어 생활 수준이 계속 악화했고이제는 생계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하지만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민중의 삶과는 무관하게 부르주아(자본가정치세력은 자신들이 차린 조기대선 운동장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

 

친위쿠데타 수괴인 윤석열 무리는 국면이 바뀌어 세력이 약화했지만여전히 극우 세력과 국민의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그가 구성한 자본가 정부는 지난 3년과 같은 기조로 대선 때까지 이 나라를 통치할 것이다설령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형식적으로 윤석열과 단절한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달라지지는 않는다그들은 경제성장애국주의반공 이데올로기 등으로 노동자민중을 무참히 탄압하고 죽이고 착취했던 이승만-박정희-박근혜-이명박의 충실한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한편집권 가능성이 가장 큰 이재명의 민주당은 내란에 맞서 싸웠지만노동계급의 입장에서 그들은 자본의 편에서 정리해고제비정규직 제도 등 반()노동 법·제도를 마련하고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을 강화한 장본인이다민주당은 집권이 가까워지자, ‘보수’ 표방에 이어 경제 기조를 공정에서 성장으로 바꾸며 자본에 먼저 손을 내밀고,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더욱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자본가정당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위기 상황을 끝내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안정화하는 과정이라서누가 대통령이 되든 노동자민증의 삶을 개선할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자본주의 체제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윤석열과 같은 통치자를 갈아치울 수 있고이 체제의 모든 제도권 정당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따라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자본가정당인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무너뜨리고다수 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가능하다.

 

대통령 선거는 자본의 경쟁 영역

 

그런데 이러한 부르주아(자본가선거 서커스에 진보정당’ ‘사회대전환의 이름으로 참여하여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던 세력과 함께하는 이들도 많다. (민주당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협력해 온 진보당은 민주노총 내 다수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부르주아 정치에 속해있다더욱이 그들이 내세우는 사회대전환’, ‘체제전환’ 등은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와 고통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그들은 노동자 정치를 노동계급의 영역인 일터와 투쟁의 현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표 구걸하는 것을 선거 투쟁으로 미화해왔다하지만 오늘날의 선거는 자본주의 미디어가 선거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고강력한 힘으로 다수의 노동자민중을 자본의 경쟁 영역으로 끌어들인다이러한 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거대한 물량 공세 앞에 작은 선전의 효과도 초라해진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만 강화할 뿐이다부르주아 선거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투표하든 노동계급의 요구가 아닌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만이 승리한다따라서 노동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물도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없다그동안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에 기대었던 투쟁이 어떠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투쟁으로 지켜내지 못한 권리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지는지를 수없이 경험해 왔다지금 필요한 것은 보수 양당과의 선거 경쟁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이다.

 

선거 거부를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

 

부르주아 선거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해 주는 제도라서이 체제를 전복하거나 착취와 억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부르주아 선거는 누가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국가를 통치할지 결정하는 제도일 뿐이다, (국회와 헌재가 윤석열을 내란 혐의로 탄핵하고 파면했지만자본주의 국가와 체제를 넘어서려는 노동계급 권력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고 이용당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선거 거부로는 부족하다우리는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계급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가 통제하는 직접민주주의

 

노동자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우리의 삶과 투쟁에 직접 도움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다노동자민주주의는 선출자를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고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노동계급은 위대한 투쟁의 역사에서 파업위원회대중총회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는데이곳에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특히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수백만수천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과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1905년에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실제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했다전 세계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었다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자주적으로 투쟁을 조절-통합하고 자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냈다일단 선출되고 나면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국회의원과 달리노동자의 대표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위임받은 내용에 반드시 따라야 하며, (헌재가 아닌유권자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이를 위해 각 대표와 함께 대체 대표를 선출했고탄압 시기에는 대표가 체포되었을 때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노동자 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계급의식이 발전하여 세계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면세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더 나아가 계급투쟁이 혁명적 절정에 이르고마침내 지배계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노동계급은 자신의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여 생산과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이때 비로소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기 권력을 갖게 되며사회는 계급 철폐와 인간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고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민주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노동자민주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는 단지 투표를 위한 일회성 유권자가 아니다일터의 노동자평의회만이 아니라 주거-공동체 평의회소비자 평의회학생평의회스포츠-취미평의회와 예술평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풀뿌리 조직의 적극 참여자가 되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조선소의 주인은 전체 조선산업 노동자가 되고자동자 회사는 자동차산업 노동자가호텔은 호텔산업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운영할 것이다장애인 이동권은 지자체와 공사 관료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운수산업 노동자장애인승객이 평의회 협의회를 구성해 전()사회적으로 보장해 나가고장애인 탈시설도 장애인 당사자와 지역평의회주거 평의회사회서비스 평의회 등이 협의하여 안전하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지역공동체 삶을 보장해 나갈 것이다이렇게 노동자민주주의는 전문 정치인소수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이다,

 

선거가 아닌 대중총회파업위원회

 

노동자민주주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이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중총회>는 모든 노동자와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열려있는 투쟁의 공간으로대중총회 참여자들이 토론을 통해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식이다대중총회에서는 흩어져 있던 노동자의 개별적인 요구를 모으고 집중하여 공동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작업장/업종/부분을 넘어 진정한 계급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파업위원회>는 파업 투쟁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모든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고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대표단을 선출해파업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이다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파업 투쟁만이 관료주의조합주의를 넘어 계급투쟁을 확산할 수 있다.

 

노동자 정치는 투표소나 선거 운동이 아니라 바로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와 같이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노동자민주주의는 자본가정당이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 실현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최근의 무역전쟁)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그동안 세계 지배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다그 결과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이제 세계 자본주의는 정치경제사회환경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세계 지배계급은 점점 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트럼프의 미제국주의는 경쟁국을 희생시키는 것은 물론 동맹국에도 위기를 떠넘기려 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고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뿐이다아직은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계급 고유의 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이제 한국 노동자들도 함께 일어나야 한다.

 

심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 속에서 치르는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기본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그동안 참고 당하기만 했던 노동자들이 더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지 말고과감하게 나서야 한다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선거주의조합주의관료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다가올 조기대선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선거에 끼어들어 이용당하지 말고계급의 요구를 내걸고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를 건설해 투쟁하자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면서 파업을 위한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대중총회파업위원회 건설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혁명을 통한 노동자민주주의 챙취!

 

2025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NWBCW KORE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10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3"

photo_2019-01-11_13-57-03.jpg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10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3"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5년 4월 19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 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강좌 주제■
 
▶ 인터내셔널의 타락과 반()혁명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
▶ 맑스주의 연속성과 오늘날 코뮤니스트좌파의 원칙

 
■토론 주제■
 
  사회대개혁–사회대전환–체제전환 등에서 누락시킨 ‘이행기’에 관하여
▶ 소련, 중국,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였나? 국가자본주의인가?
▶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성명] 윤석열 파면은 자본가 정권 타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의 시작!

윤석열 파면은 자본가 정권 타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의 시작!
 
photo_2019-01-02_14-33-13.jpg
 
친위쿠데타의 수괴이자 한국 자본가 정권 최고 통치자인 윤석열이 파면되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후 123일만의 파면 선고였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하고 국민 신임을 배신했다면서 전원일치로 파면했다. 
 
노동자민중에게 윤석열 정권 2년 반과 친위쿠데타 이후 123일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 길고 고통스러웠다. 선출되지 않은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가 시간을 지연하며 판결하는 동안, 극우세력이 준동했고 윤석열은 석방되었으며, 생존권 위기에 처해있던 노동자민중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 주권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노동자민중의 권리로 윤석열을 직접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거리 투쟁과 밤샘 투쟁이 있었다. 광장의 투쟁 열기는 커져갔지만, 노동계급의 강력한 무기인 총파업 투쟁은 벌이지 못했다. 말벌 동지들의 헌신적인 연대는 빛났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고공농성을 택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계급적 연대가 절실하다. 오랜 기간 후퇴를 거듭한 조직노동자 운동은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도 노동계급의 영역(현장)에서 "총파업 조직화-생존권 투쟁 전면화"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야당과 함께 한 거리 투쟁에 집중했다.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고 새로운 야당 자본가정권이 들어선다고 노동자의 삶과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조기 대선은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맞게 쿠데타 상황을 종식하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안정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번에도 파면 이후 대통령 선거에 매몰된다면, 과거 촛불 투쟁처럼 자본가 정치세력에 이용당하며 실망과 좌절만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는 시민으로서 응원봉과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영역에서 총파업으로 생산을 멈추고 현장과 거리와 광장에서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2025년 봄, 우리가 맞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하다.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기 전부터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은 파탄에 직면했었다. 경제위기, 제국주의 전쟁, 기후위기, 팬데믹, 그리고 윤석열 정권 3년과 12.3 친위쿠데타의 경험은 야만의 자본주의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유일한 목표가 코뮤니스트혁명임을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자본주의 전복과 코뮤니스트혁명으로 향하는 길에 우회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윤석열 정권의 무게에 눌려 후퇴하고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 세력은 이제라도 반격에 나서야 한다. 자본가계급의 한쪽 분파인 민주당과의 협력은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고 '사회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고쳐 쓰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위기와 참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인 것을 가리고 건강한 자본주의 환상을 퍼뜨린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자본가 정당과의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고,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계급적 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우리의 투쟁은 생산현장과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이 있는 모든 곳으로 확대해야 한다.
-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완전한 정치사상의 자유 쟁취와 노동계급의 자기 권력 쟁취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아직 작은 승리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자기 권력'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 자체로 첫 번째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2025년 4월 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5년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

2025년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
 
photo_2019-01-02_12-51-42.jpg
 
또 다른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 또 다른 계급전쟁에 대한 호소! 여성 프롤레타리아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킨 지 108년이 지났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보기를 들어, 여성이 주도하는 분야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주요 투쟁에 주목해 보자.
 
뉴욕시에서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가정 간병 노동자들은 법적 허점으로 인해 최대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등 혹독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에 맞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시청과 SEIU 노조에 항의하는 단식 투쟁을 벌였다.
 
퀘벡에서 보육 노동자들은 올해 저임금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일 예정인데, 이 부문은 이미 열악한 환경을 겪고 있으며, 이번 파업은 2022년 파업의 재연이다. 이번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예산이 배정된 탓에 “당신들을 위한 돈이 없다”는 정부의 답변이 돌아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모든 분야에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이윤을 위해 무자비하게 착취당하는 계급의 일원인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제2의' 임금 노동자로 지정되어 임금이 저하되고 '불필요한'(종종 가장 잔인한 빈곤을 감수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상황을 경험한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괴롭힘과 다른 공격도 감내해야 한다. 그동안 얻어낸 모든 것들은 후퇴했고, 최근의 사건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를 여실히 드러냈다. 앤드루 테이트(Andrew Tate) 쓰레기 사건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악마화까지, 공개적인 성(性)차별주의가 증가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성폭행에 반대하는 개혁적인 외침이었던 #미투조차도 쿠오모(Cuomo) 스캔들과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이 치명타를 입으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38%(최소)는 말할 것도 없다!
 
여성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격은 노동계급에 대한 더 큰 공격의 일부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 즉 점점 더 많은 자본이 축적될수록 이윤율이 급락하는 경향은 노동계급에 대한 극단적인 압박과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추진으로 이어진다. 북미 전역의 노동자들이 수십 년에 걸친 생활 수준의 하락에 직면하면서 악랄한 성차별주의와 세계 분쟁이 확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가 “중국의 영향력”을 이유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의 합병을 위협하고, 이주 계급 동료의 납치가 만연하고, 여성혐오와 트랜스포비아가 공공연하게 주장되면서 노동계급 전체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총탄, 퇴거와 성폭력, 작업 속도 증가와 미사일, 불안정성과 대량 학살 사이에서 전체 노동계급은 맞서 싸워야 한다.
 
여성혐오, 트랜스포비아, 빈곤, 약탈, 학살을 영원히 없애려면, 프롤레타리아가 하나의 계급 운동으로 단결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세계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없애야 한다. 우리 계급의 한 부분에 대한 공격은 계급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지와의 계급전쟁에서 계급 동료들과 단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계급은 억압과 계급 내의 모든 성차별주의(성별이든, 성적이든, 다른 것이든)와 싸워야 하며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임금노동자라는 단일 계급으로 우리의 투쟁을 통해, 가족이 더는 경제 단위가 될 수 없고 제국주의 전쟁이 선사시대의 발자취가 될, 계급 없는 미래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이 부르주아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는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굶주린 여성 프롤레타리아가 러시아 차르를 무너뜨린 것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유일한 혁명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원으로서였다. 오늘날 우리는 노동계급이 위험할 정도로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이 너무 오랫동안 지배해 온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한편, 가장 강력한 도구인 혁명정당은 눈에 띄게 부재하다. 모든 부문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그런 정당을 만드는 것이 바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목표이다. 
 
2025년 3월 8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 & 계급투쟁 (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 & Klasbatalo)
 
 
<출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단]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혁명을 통한 노동자민주주의 쟁취!

photo_2019-01-12_12-53-00.jpg
photo_2019-01-12_12-53-00 (2).jpg
 
[1면]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정권 타도!

자본주의 체제는 또 다른 윤석열식 쿠데타를 불러온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이 자행한 기습적인 비상계엄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탄핵소추안 가결, 국무총리 탄핵, 내란주동자 구속과 기소, 윤석열 체포와 구속, 국가기관(경호처, 검찰, 군부, 국무회의 등)의 노골적인 수사 방해, 극우세력의 준동과 폭동, 그리고 윤석열 탄핵 재판 과정은 아직도 친위 쿠데타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탄핵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과 전국적으로 벌어진 탄핵 촉구 집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윤석열 방어와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와 옹호에 나서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모순적 논리를 적용하더라도 윤석열의 파면과 형사처벌이 당연하지만, 윤석열 옹호 세력의 거센 반발은 막강하다. 이는 정권의 무능과 개인-가족 비리 폭로로 궁지에 몰려 일으킨 친위 쿠데타를 이제는 우파 결집과 지배계급 내부 지지 확산을 목표로, 공세적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의 준동 배경에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따른 빈부격차, 사회적 생존환경의 악화 등이 있다. 이러한 극우세력은 가짜뉴스와 차별, 혐오 선동으로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투쟁의 방향을 돌리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이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추악한 지배계급의 권력투쟁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노동계급에 전쟁을 선포하고, 노조 탄압, 부자 감세, 대기업 규제 완화, 민영화 추진, 복지 축소 등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이것은 윤석열이 구속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배계급은 탄핵 국면에서도 공통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反)노동-친(親)자본 정책뿐만 아니라 각종 혐오와 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 노동계급에는 고통과 희생을 안겨주고 자본에는 최대한의 이윤추구를 보장하는 체제를 강요한다. 
 
이 체제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에서도 쿠데타를 반대하는 민주 정부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국가폭력으로 잔인하게 짓밟았다. 그동안의 모든 자본가정권은 정치·경제적 위기 때마다 ‘국익’을 내세우며 노동자민중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면서 위기를 전가했다. 따라서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한다면,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격과 제2, 제3의 쿠데타는 계속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총파업으로 생산을 멈추고 거리와 광장으로
 
이번 친위 쿠데타에 따른 탄핵-퇴진 투쟁은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대대적인 촛불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몰락의 길을 택한 윤석열의 폭주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과 자기 권력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퇴진 촛불 투쟁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노동자 운동은 계속 후퇴하여 윤석열 정권의 전방위적 공격에 맞서 방어 투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동계급의 영역(현장)에서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반격의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선언적인 윤석열 퇴진만을 외치면서 야당의 투쟁 일정에 맞춰 집회를 배치하고 행동을 제한했다. 하지만,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날로 악화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를 폭발시켜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총파업과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번에도 윤석열 탄핵 투쟁에만 매몰된다면, 과거 촛불 투쟁처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제는 시민으로서 응원봉과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영역에서 총파업으로 생산을 멈추고 거리와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지금의 탄핵 절차는 노동자민중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탄핵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노동자의 삶도 개선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필요에 따라 윤석열과 같은 통치자를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고, 이 체제의 모든 정당과 정권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은 위기 때마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정권을 교체해 왔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지배계급의 일부인 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고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노동개악, 노동탄압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윤석열도, (미래의) 이재명도 자본가정권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수 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가능하다.
 
 
[2면] 혁명을 통한 노동자민주주의 쟁취!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동자가 생산과 사회를 통제하는 사회 
 
과거 박근혜 탄핵부터 지금의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선출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다.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소수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차 폐지한다. 이것이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러한 노동자민주주의를 통해서만 다수가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노동자 스스로 생산과 일상을 조절할 수 있다. 노동자민주주의는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의 다수가 참여하는 정치 광장(노동자 총회, 노동자평의회)에서 탄생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린 토론과 민주적 결정, 직접행동, 계급적 연대로 확장된다. 윤석열에게 분노한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탄핵-정권교체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권력과 민주주의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노동자권력이냐, 자본가독재냐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속하는 경제위기와 전쟁, 기후 위기, 팬데믹 등을 겪는 동안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세계의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 더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며 위기를 전가해 왔고, 대외적으로는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점점 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전쟁과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이윤추구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 윤석열 정권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의 필요로 탄생했고, 누가 당선되든 다음 정권도 노동계급에 위기를 전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의 한 편이 아니라 '노동자권력이냐
자본가독재냐', '혁명이냐 전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을
 
윤석열 정권은 실질적인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퇴진' 이후에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그동안 자본가정권이 강요한 모든 굴욕과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장에서 특별연장 근로제도 추진과 ‘민간주도 경제’, ‘자본규제 대폭 완화’, ‘신성장동력 창출’, ‘적극적 세일즈 외교’, ‘한미동맹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정권교체가 눈앞에 다가오자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자본가정당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자본가 정당과의 야권연대를 철저히 끊어내야 한다. 조합주의,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자본가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노동자 총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자본가정권이 아무리 자주 바뀌고 덜 나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위기, 전쟁 위기, 착취와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쟁과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뿐이다.
 
생존권 투쟁 전면화! 
아래로부터의 파업위원회 건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혁명을 통한 노동자민주주의 챙취!
 
2025년 2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20호] 프랑스: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프랑스: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photo_2019-01-04_00-17-48.jpg

중도좌파와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인 신(新)인민전선은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에 있는 우리 동지들이 발표한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축하할 일이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제 발등을 찍은’ 이후, 언론은 선거 전략으로 칼럼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치인들은 오래된 레시피를 모두 요리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는 특히 혐오스러운 선거 찌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극우파는 여당이 민주주의와 파시즘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년간 무르익도록 도와온 열매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권에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국민연합(RN)은 최근 연금 개혁을 폐지하겠다는 약속과 같이 선동성 선전을 부추긴 몇 가지 사회적 조치들을 뒤로 미루고 충실한 정부 관리 정당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적 엄격성, 경쟁, 국가 주권, 외국인 박해... 이 모든 문제는 RN을 이전 집권당의 합법적인 후손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마크롱의 강압으로 형성된 연정은 이미 2022년 이후로 해체 과정에 있었으며, 이제 해체되었다. 그들 자신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분열된 다수당 정도겠지만, 그 해체의 타격은 부르주아지에게 어떤 종류의 정치적 일관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크롱이 극우지대를 노리고, 반(反)이민 선언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난민에 대한 사냥이 유럽 전체에서 행해져 해협과 지중해를 거대한 묘지로 변화시키고, 또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이주증명서가 없는 이들이 쫒기고 체포되고 있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극우에 대한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해체라는 이 음울한 희극들 말이다.

인민전선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

정치적 스펙트럼의 반대편에는, 1936년 인민전선의 뼈대 위에서 조직들의 카르텔이 재형성되었는데, 그 구성원들은 올랑드 전 대통령부터 노동총연맹(CGT)과 반(反)자본주의신당(NPA)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당(PS)이나 프랑스 코뮤니스트당(PCF) 같이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이 정당들은 길고도 무거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이 역사를 그들이 흔드는 반(反)파시스트 투쟁의 깃발 뒤에 숨겨두려 하고 있다. 이들은 “반(反)자본주의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의 현존을 통해 민주주의적 질서를 유지할 노동조합들과 다양한 조직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그들의 선전은 완전히 냉소적으로 RN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계급이 온갖 종류의 책략들을 통해 경험한 이 조직들의 파란만장한 과거에 대해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놔두자! 역사에 따르면 파시즘이 권력을 잡기 전에 먼저 패배와 사기가 저하되는 시기를 경험하며 이를 준비한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사례를 보면 노동자 운동이 실패하고 후퇴하는 시기에 좌파 개량주의 정당들이 부르주아 진영으로 이동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 사회당(PSI)이 파시스트 갱단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자기방어 계획을 진압하면서 붉은 2년(Biennio Rosso)의 강력한 파업 물결을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에서는 전쟁 중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신성연합'에 가담한 후 제국의 패망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1919년 노동자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국제주의에 헌신한 수많은 투사들을 제거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준군사 부대에 의존했고, 이 부대에서 나치 돌격대를 모집하였다.

1930년대 동안, 반(反)파시즘의 지형에서 수행된 투쟁들은 그들이 겨눈 적에 제대로 대항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못 지나간다”(”No pasaran”)고 그들이 말했지만, 그들은 모두 똑같이 지나갔다.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에 있었던 아나키스트들과 통합맑스주의노동자당(POUM)의 반파시스트 투쟁은 비슷하게 재앙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들이 공화파와 스탈린주의자들에 지원한 것은 인민전선의 갑작스러운 전향으로 이어졌고, 인민전선은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전선에 있는 군대, 특히 아나키스트들에게 무기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전선을 방해한 후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코뮌을 분쇄함으로써 투쟁을 진압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인민전선의 역할은 항상 프롤레타리아를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블룸(Blum)이 이끈 첫 번째 인민전선 정부가 유급 휴가와 주 40시간 근무를 허용함으로써 강력한 파업 물결의 힘을 활용했지만, 달라디에(Daladier)의 두 번째 정부는 파업을 불법화하고 탄압하며 전쟁 경제를 수립했다. 그리고 1936년 인민전선의 선거에서 페탱(Pétain) 원수에게 전권을 부여한 것은 바로 이 의회였다. 이런 식으로 좌파 정당들은 다음 세계대전의 조건이 구체화되는 동안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스탈린이 프랑스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와 승인'을 선언한 후, PCF는 애국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열성적인 정당이 되었고, 그 결과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의 의식을 흐리게 하고 그들의 전투성을 저해했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 좌익 분파의 기관지 빌랑(Bilan, 대차대조표)을 발행한 혁명가들은 반(反)파시즘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한 쪽(권위주의)에 맞서 다른 쪽(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오류에 대해 널리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비판과 선견지명은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분리는 파시즘의 임박한 위협에 초점을 맞춘 이 정책에 영감을 준다: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을 방어하는 투쟁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으로 대체하고,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시스트 조직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꾸고, 프롤레타리아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파업을 거부하고 '모두'를 방어하기 위한 일반적인 조건을 만든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 행동을 반파시스트 블록으로 대체하고, 한마디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사회로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가속화한다. 따라서 프랑스의 상황이 당이나 노동조합을 억압하지 않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고립시키고 무력화할 수 있는 국가로 개혁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경우, 파시즘과 자본주의를 분리하는 것은 파시즘의 위협에 대한 모든 외침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의 대의를 받아들이게 하고, 대중이 미래의 전쟁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함께 모이게 될 지형을 수용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1)

우리 계급의 경험은 자본주의의 공격을 투표를 통해 지연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정부는 아무리 절대적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가 처한 상황, 특히 경제적 필요의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좋은 방식, 나쁜 방식, 그저 그런 방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 발전과 그에 따른 정치적, 법적 결과를 가속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2) 현 시대에서 이러한 발전은 축적 과정의 고갈과 경제, 제국주의, 환경, 사회 등 여러 위기의 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리스의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사례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이 다면적인 위기의 영향을 완화하겠다고 주장하는 모든 정당은 내일 그 도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노동계급의 관심을 교착 상태에 대한 양극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노동계급이 자기 생활 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 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정확히 부합한다. 선거 운동과는 달리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역사적 이해관계에 기반해 행동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의 하향 나선(좋지 않은 상황이 더 좋지 않게 돌아가게 되는 것)을 멈추고 자본주의가 야만으로 추락하는 데 기반을 둔 사회적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투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이 계급의 힘은 첫째로 그 숫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둘째로 그 단결력과 정치적, 사회적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후자는 노동계급 자신의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힘은 집단적 이성에 달려 있으며, 당연히 직선적으로 전진하지도 않고 후퇴하지도 않지만, 최후통첩의 지배력 하에서도, 자본주의적 관리에 참여하는 이러저러한 정당을 '비판적' 또는 다른 형태로 지지함으로써도 결코 전진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는 개별 시민으로서 투표소에 나감으로써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실제 운동과 투쟁을 이끌기 위해 개입하는 혁명적 조직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계급적 일관성을 이미 상실하게 될 것이다.

언론은 신인민전선의 사회 정책에 대한 우려를 퍼뜨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부르주아지를 놀라게 할 만한 내용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은지 220년이 넘은 지금, 그들은 정치적 사기극의 달인이 되었다. 그들이 종말론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이 에피소드도 그들이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퐁 다르콜(Pont d'Arcole)의 영웅인 '작은 상병'을 찾았던 것을 잊지 말자. 후자는 그들의 허수아비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이미 의문을 제기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여러분, 우리는 이 선거가 우릴 위하여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체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이 모든 것을 거부하자! 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적들에게 투표하지 말자, 그들은 모두 우리를 착취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여러분, 우리는 선거가 끝나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그들의 모호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반대로 위기가 계속 커질 것이기에 우리의 생활 수준이 계속 공격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투쟁에 우리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선거 전략에 대응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 공감하는 동지들과 투사 여러분에게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어려운 일에 다시 뭉치고, 접촉하고, 참여하기를 요청한다.

국제주의혁명그룹(Groupe révolutionnaire internationaliste)
2024년 6월 29일
 

<주>

영상 Braveheart (CC BY-SA 4.0), en.wikipedia.org

(1) archivesautonomies.org

(2) Engels to Danielson, June 18, 1892, in Marx and Engels Correspondence: marxists.o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서평 :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를 읽고

서평 저항의 축제해방의 불꽃시위를 읽고

 

 

저항의 축제해방의 불꽃시위는 역사학 연구소와 함께하는 역사서당에서 2017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강좌 중에서 국내적으로는 농민항쟁에서 촛불 집회까지국제적으로는 파리코뮌에서 68혁명까지 송찬섭 씨를 비롯한 9명의 필자가 저술한 책이다.

 

국내에 대한 시위문화에 대해서는 1862년 농민항쟁과 시위문화에 대해서는 송찬섭 씨가동학 농민군의 저항문화는 김양식 씨가, 3·1운동들불처럼 번진 만세 소리는 김정인 씨가, 4월 혁명과 6·3항쟁의 학생 시위문화에 대해서는 오제연 씨가도시의 새로움정치의 새로움: 2008년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남영호 씨가 저술했다.

 

또한외국의 시위문화에 대해서는 파리코뮌과 공동체적 인간의 자유는 김종원 씨가혁명의 거리광장의 정치시위문화로 보는 러시아혁명에 대해서는 황동하 씨가이미지의 투쟁스페인 내전기 공화 진영의 혁명과 선전 포스터는 이원근 씨가, 68혁명과 시위문화저항으로서의 축제축제로서의 저항은 정대성 씨가 저술했다.

 

시위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다음과 같다.

 

1. 계급적 관점에서 저술되지 않았다처음 시위를 읽기 전에는 광장정치에 관해 쓴 책인 줄 알았다그러나 파리코뮌과 공동체적 인간의 자유를 제외한 대부분 글이 광장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광장의 정치는 계급 관점에서 저술하여야 하는데대부분 글이 계급적 관점보다는 민족적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2. 시위가 해방의 불꽃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장 항쟁이 다루어져야 하는데국내적으로는 3.1운동 이후의 무장 항쟁이나 광주 민중항쟁,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등을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3. 성공 직전까지 갔지만, 1991년 붕괴한 러시아혁명그리고 이데올로기선전전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지원병들로 조직된 국제여단 등 모든 면에서 공화파가 우세했음에도 패배로 끝난 스페인 내전기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68혁명 등이 왜 실패로 끝났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재욱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ICC 내 소수파의 정치적 딜레마

ICC 내 소수파의 정치적 딜레마

 

 

이 문제가 마무리되면서,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는 지금까지는 불어로만 존재했던 페르디난드(Ferdinand)의 문서 ’ICC 24차 대회의 국제적 결의에 대한 이견‘1)을 출판한다회의 종료 시점으로 2년이 흘렀다첫째이전에 슈타인클로퍼(Steinklopfer)가 익명으로 출판한 문서에 덧붙인 것으로특히 제국주의 양극화 및 일반화된 전쟁 경향에 반대한다얼핏 보아 이러한 내부적 경향에서 기대할 것이 거의 없다또한이것은 프레임에 대한 의문 제기를 명확히 제약한다해체의 도그마다자세히 보면 이 해체’ 원고는 프로레타리아트의 결정적 패배로 향하는 막다른 길로 마무리 짓는다혁명가들에게 혁명적 입장을 전파하고우선적인 질적이론적 작업현 경향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제를 남기면서. (더 강조하자면내부로 향하는 길이다그것이 아니면원칙들에 대한 권위의 보존일까?

 

그러함에도본 원고가 ICC가 채택한 이상적 방식을 줄곧 분명히 비판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혹적인 일이다그것은 해체를 상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며이에 관한 모든 사실을 축소 시킨다모든 것이 해체 산물이다또한그렇기에모든 성장은 헛되고거짓되다더욱이그것은 알게 모르게 인간관계도덕성문화사회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가모든 것이 동질적으로 해체. (...) 우리의 전통적’ 견해와 현실 사이의 모순에 함축된 것들은 너무나 급진적이다.” 또한자신의 흥을 망치지 않기 위해심지어 우리는 이렇게 주장해 왔다. ‘해체 기간을 이해하는 것은 도식적이며, (...) 맑스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추가로 강조하면간단히 말해 그것은 단지 ICC가 맑스주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하는 IGCL-경찰과 기생주의만이 아니다.

 

우리 영원한 낙관주의자들이여이러한 내부의 경향에 체념하지 말자비록 그것이 보다 쪽으로 치우친 것처럼 보일지라도함께 도와주자여러 동지의 노력을 모아해체 프레임 작업의 금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자또한이전에 슈타인클로퍼에게 답했듯이것 안에서 우리가 ICC 내 이른바 다수의 입장에 동의하기 때문에여러분의 주장 해체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이것이 이전의 슈타인클로퍼에 대한 답변이다.

 

만약 여러분이 정치적 일관성을 지니고자 한다면폭력적인 내부적 투쟁과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슈타인클로퍼는 ICC 내에서 이러한 유형의 상황을 총괄하는 음악을 알고 있다그는 2001과 2002년 내부적 위기의 시기바이올린이었다또한페르디난드에 대한 답변을 한 편의 곡(의심이 든다면)으로 드러낸다페르디난드는 조직의 분석에 의문을 던지는 음흉한 수업을 지녔으며, (해체프레임에 동의한다는 공식적 표현에도알고 보면 실제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먹구름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거짓 논증)을 남긴다.

 

해체에 대한 사소한 내부 의문은 사실상 분파와 개인 권력과 같은 조직적‘ 이해관계를 제시하므로 이에 따른 정치적 투쟁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결국, 해체이론은 1990년대특히 2000년대 ICC 내부에서 시행되었던 파벌()조직적 기생주의스탈린주의식 관행의 심리화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에도 사용된다이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과거의 충격적인 조직적 관행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여러분의 입장이 이러한 이론에 모순되고여러분이 이전에 동의한 다수가 이미 제기한 비난들이 여러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어떤 코뮤니스트 투쟁가도현재는 오류로 여겨지는 과거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자기 입장을 변경하고그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 것도배신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그것은 여러분의 코뮤니스트적 확신헌신적 투쟁에 대한 충성심의 문제인 것이다지나간 투표행위의 비명에 오늘날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는 건전형적인 스탈린주의적 관행이다그것은 코뮤니스트 투쟁가로서도개인으로서도투쟁가를 망가뜨린다.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CGL)

2023년 9월 10

 

<>

1) https://fr.internationalism.org/content/11141/divergences-resolution-situation-internationale-du-24e-congres-du-cci 

https://fr.internationalism.org/content/11146/reponse-a-ferdinand-divergences-resolution-situation-internationale-du-24e-congres-du.

 

<출처>

https://igcl.org/Political-Dilemma-of-the-ICC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해체에 관한 테제 최신 안 (2023)

해체에 관한 테제 최신 안 (2023)

 

icc.JPG

 

 

ICC는 1990년 5월 1989년 말 동구 제국주의 블록 붕괴와 이후의 세계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제시하는 자본주의 쇠퇴의 궁극적인 단계인 해체라는 제목의 테제를 채택했다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테제의 중심적 내용은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쇠퇴가 사회의 일반적인 해체가 지배되는 새로운 진화 단계에 진입했다. 2017년 제22차 대회에서 오늘날의 해체에 관한 보고서(2017년 5)’라는 제목의 문서를 채택함으로써우리 조직은 1990년 문서를 업데이트하여 제시된 측면이 어느 정도 검증 또는 증폭되었거나 반박의 여지가 있거나 보완되어야 하는지 등 테제의 본질적인 요점이 현재 상황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첫 번째 문서가 작성된 지 27년 후에 작성된 두 번째 문서는 1990년에 채택된 분석이 완전히 검증되었음을 보여주었다동시에 이 2017년 문서는 1990년 문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그 당시 제시된 상을 보완하고 중요한 의미인 세계 상황의 측면즉 전쟁기근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난민 수의 폭발적 증가와 지배계급의 정치 생활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혐오 포퓰리즘의 확산을 다루었다.

 

오늘날, ICC는 1990년과 2017년 텍스트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후자의 경우 25년 후가 아니라 6년 후이다왜냐하면지난 기간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해체 징후의 놀라운 가속화와 증폭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앙적이고 가속화되는 세계정세의 전개는 세계 유수의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의 관심을 피할 수 없었다다수의 전문가’(2022년 1,200)의 분석에 기초하고 이 지도자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 - WEF)에서 매년 발표되는 세계 위기 보고서’(GLR)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10년의 첫해는 인류 역사에서 특히 파괴적인 시기를 예고했다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새로운 정상으로의 복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해 빠르게 중단되었고일련의 새로운 식량과 에너지의 위기를 초래하여 수십 년의 발전이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를 촉발했다.

 

2023년이 시작되면서 세계는 완전히 새롭고 섬뜩하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련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우리는 인플레이션생계비 위기무역 전쟁신흥 시장으로부터의 자본 유출광범위한 사회 불안지정학적 대립 및 핵전쟁의 망령과 같은 "오래된위험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이 세대의 사업 지도자와 공공 정책 입안자들 중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이는 지속 불가능한 부채 수준저성장의 새로운 시대낮은 세계 투자와 탈세계화수십 년의 진보 이후 인류 발전의 감소신속하고 제약 없는 이중 사용(민간 및 군사기술의 개발그리고 세계적 위험 환경의 비교적 새로운 심화로 증폭되고 있다, 1.5°C 세계로의 전환을 위한 점점 더 줄어드는 창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과 야망의 증가이들은 함께 모여 향후 10년 동안 고유하고 불확실하며 격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 요약, 6)

 

일반적으로정부 성명이든 주류 언론이든지배계급은 세계정세의 극단적인 심각성을 경시하려고 한다하지만 매년 열리는 다보스 포럼에서처럼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이거나 혼잣말을 할 때는 일정한 명쾌함을 피할 수 없다중요한 것은 이 보고서의 놀라운 결과가 주류 언론에 거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들의 근본적인 임무는 국민특히 착취당하는 사람에게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재앙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계획된 선전 기관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그 이유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완전한 역사적 파산을 그들로부터 숨기기 위해서다.

 

실제로 202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제시된 보고서에 담긴 연구 결과는 2022년 10월 ICC가 채택한 '자본주의 해체의 가속화는 인류 멸망의 문제를 공공연하게 제기한다'는 제목의 본문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실제로, ICC의 분석이 정보에 가장 정통한 지배층의 "전문가"의 분석보다 앞서게 된 것은 몇 달이 아니라, 2022년 10월 문서에서 이루어진 관찰이 1980년대 말에 이미 제시한 예측의 놀라운 확인에 불과해서수십 년이 지난 후이다특히 우리의 해체에 관한 테제에서코뮤니스트들이 자본주의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재앙적인 경향에 대한 예측에서 부르주아 전문가에 대해 일정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지배계급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그것을 이용하는 계급으로부터만 근본적인 현실을 숨길 수 있다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사회프롤레타리아트를 약화하는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이전의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영원하지 않다과거의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인류를 미리 파괴하지 않는다면역사적으로 특정 순간에 허용한 생산력의 발전에 상응하는 또 다른 우월한 생산양식으로 대체될 운명이다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의 핵심에 있는 상품 관계를 폐지하는 생산양식으로생산자의 착취로 인해 더는 특권층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것이다부르주아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모순을 일반적으로 명확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정확히 그 자체의 소멸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 자본」 2판의 후기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움직임에 내재한 모순은 현대 산업이 통과하는 주기의 변화와 보편적 위기가 정점인 실용적 부르주아에 가장 인상적이다그 위기는 아직 예비 단계에 있지만다시 한번 다가오고 있으며그 연극의 보편성과 행동의 강렬함으로 인해 새로우면서도 거룩한 프로이센 독일 제국의 버섯 같은 신생국들의 머릿속에도 변증법을 북돋을 것이다."

 

ICC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즉 쇠퇴의 궁극적인 단계로의 진입을 선언하며 해체에 관한 테제를 채택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 체제의 모순과 사회의 일반적인 해체인 실용적 부르주아가 특징인특히 부시 대통령의 눈에는 스탈린 정권과 소련’ 블록의 붕괴로 시작된 영광스러운 새로운 전망즉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황홀해했다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된 움직임에 직면하여, 19세기와 같은 순환적 위기의 형태가 아니라경제의 영구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의 형태로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이 같은 실용적 부르주아는 약간의 변증법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체에 관한 테제의 업데이트는 2023년 세계 위기 보고서에 포함된 분석과 예측뿐만 아니라 2022년 10월 문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이는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이것은 지배계급의 매우 정통한 기관들이 확인한 사항이다실제로는 역사적으로 체제의 파산을 인정하는 것이다계급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분석에 대해서 사용하는 것은 ICC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사실 혁명가들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와 행정 기관이 사회를 감독하려고 필요로 수집하는 데이터와 통계를 수집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에 관한 연구를 구체화한 것은 분명히 비판적인 눈으로 이러한 종류의 데이터를 부분적으로 분석한 것을 기초로 했다그리고 맑스는특히 자본에서종종 영국 의회에서 질의한 내용의 파란 노트를 사용했다부르주아 계급의 전문가에 의해 생성된 분석 및 예측과 관련하여특히 자본주의가 인간의 진보와 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최고 또는 유일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에 해당할 때사실 데이터보다 훨씬 더 비판적일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러한 분석과 예측이 이 체제가 처한 파국적 교착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라면이는 분명히 체제에 대한 변명으로 작용할 수 없지만우리 자신의 분석과 예측을 뒷받침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분석과 예측에 의존하는 것이 유용하고 중요하다.

 

 

1. 2020년대는 자본주의 해체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다 (생략)

 

 

2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맑스주의 방법

 

이 보고서의 일부는 현실을 파악하는 맑스주의적 방법의 일련의 전개에 의해 보강되었다대회에 제출된 버전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밑바탕에 깔려 있다이를 추가한 목적은 프롤레타리아 정치 환경 대부분의 구성 요소특히 데이먼주의와 보르디가주의가 옹호하는 저속한 버전에 맞서 맑스주의적 유물론 개념을 옹호하기 위한 대중적 토론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일반적으로 PPM1) 그룹은 해체 분석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이러한 분석을 반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프랑스에서 르 프롤레타리아트(Le Prolétaire)를 출판하는 보르디가주의 그룹이다그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포퓰리즘의 부상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해체 분석(프랑스어로 잘 알려져 있고 논란이 많은’ (fameuse et fumuse)것 과의 연관성)에 대한 두 개의 글을 인용했다.

 

”‘국제혁명은 이른바 '해체'의 뿌리를 설명한다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주요 적대 계급이 현재 자신의 관점(세계대전 또는 혁명)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일시적 봉쇄'라는 상황이 발생하고 사회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매일 착취 조건이 악화하고 생활 조건이 악화하는 것을 보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계급이 부르주아지를 차단하고 부르주아지가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뻐할 것이다." (LP 523)

 

"따라서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으로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과 영국이나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사회가 야만으로 나아감에'에 따라 야기된 '포퓰리즘'의 신비로운 질병의 산물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이러한 발전(부르주아 정치인 일부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극우의 진보를 추가할 수 있음)은 내부나 외부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의 필요성에 대응하는 기능이 있다국제 수준에서 경제적정치적 불확실성이 누적된 상황에서, '선거 지형에서 부르주아 정치 기구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상실하는 결과로 정치 게임을 방해하지않는다." (LP 530)

 

르 프롤레타리아트는 포퓰리즘이 진정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통제 속에 현실적인’ 정책에 해당한다고 믿는다최근 몇 년간 영국 브렉시트의 자멸적인 경제 정책은 이 그룹이 잠시 멈춰서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르 프롤레타르는 분석의 핵심즉 1968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회복의 결과로 발생한 계급 사이 단절 상황(PPM 전체처럼 인정하지 않았다)과 부르주아지가 3차 세계대전의 자본주의적 해결을 위해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없었던 무능력을 다루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사실 이러한 오해의 이면에는 역사적 과정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과 거부감이 있는데이는 1945년 이탈리아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서 나온 모든 그룹과의 의견 불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1945, 1968, 1989년 등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계급투쟁, '지금은 숨겨져 있고 이제 열려 있는역사적 역할에 대한 부정은 이 모든 그룹의 맑스주의적 정체성에 큰 의문을 품게 한다.

 

해체 기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세계정세의 발전에서 계급 사이의 투쟁이 수행하는 일체의 역사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다시 말해서 이는 맑스주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 무대에서 공공연하게 존재감을 느끼는 예외적인 순간즉 노동계급의 역량이 모두에게 명백할 때만 계급투쟁의 결정적인 요소를 인식하는 것이는 이탈리아 좌파의 선구자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과 그 모든 그룹이 전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보여주고 있다.2)

 

부르주아지가 패배의 시기든 후퇴의 시기든 혁명의 시기든 항상 모든 시대에 노동계급의 성향을 고려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은 그해 6월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반란이 유혈 진압된 후 18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 맑스주의가 이를 잘 알려주고 있다엥겔스가 항상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을 세계 사건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던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은 1848년 사건 이후 부르주아지가 패배한 노동계급을 역사의 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이러한 인식은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 쿠데타의 배후에 있는 지배계급과 부르주아지의 공화당 분파를 탄압한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3)

 

그러나 선구자들은 1859년 서문에서 맑스가 그랬던 것처럼4) '경제적 생산 조건의 물질적 변화'와 '인간이 이러한 갈등을 의식하고 싸우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구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세계사 발전에서 계급투쟁의 중요한 요소에 대한 인식은 제인터내셔널(1889~1914) 정당의 기회주의적 쇠퇴와 이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1919~1927)의 기회주의적 쇠퇴에서 무시되었다. 1917년 10월혁명의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어 맑스주의 방법의 근본적인 부분을 다시 확립한 것은 망명 중인 이탈리아 좌파 빌랑(1928~1939)이 크게 기여했다.

 

"계급은 그 존재와 소멸을 모두 경제적 메커니즘에 빚지고 있지만승리하기 위해서는 ... 생산력의 진화로 선택되었음에도 오랫동안 구()계급의 포로로 남아있을 위험이 있는 정치적유기적 구성을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어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저항하기 위해 역사적 진화의 과정을 중단하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5)

 

그러나 계급투쟁이 수행한 결정적이고 중단 없는 역할은 빌랑의 공헌을 무시한 이탈리아 좌파의 선구자들에게 닫혀 있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본주의의 본질도 그들을 지나쳐 버린다.

 

역사에서 생산양식의 상승과 하강

 

1945년 당의 또 다른 계승자인 계급투쟁의 결정적 역할에 대한 경멸을 공유하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BRP)은 또한 비()맑스주의적이고 관념적 이론으로 묘사되는 세계 자본주의 해체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무지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소련의 붕괴 후에 ICC는 갑자기 이러한 붕괴가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도달한 새로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는데이를 '해체'라고 불렀다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ICC에 종교적 근본주의부터 동유럽 붕괴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에 이르기까지 나쁜 것은 거의 모든 것이 혼돈과 해체의 표현일 뿐이다이는 맑스주의의 영역을 완전히 포기한 것과 같다고 우리는 생각한다자본주의의 쇠퇴 국면의 초기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제국주의 질서 그 자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 이윤률의 전반적인 하락으로 주기적으로 야기되는 자본과 상품의 과잉 생산은 경제위기와 모순을 초래하고그 결과 제국주의 전쟁을 초래한다충분한 자본이 평가절하되고(전쟁을 통해생산수단이 파괴되는 순간새로운 생산 주기가 시작될 수 있다. 1973년 이래로우리는 그러한 위기의 마지막 단계에 있었고새로운 축적 사이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6)

 

ICT 동지들이(1989년 동유럽 붕괴 이후 우리가 갑자기 해체에 대한 분석을 모자에서 꺼냈다고 생각하는) 1990년 기본 문서를 읽어보았는지 궁금하다서문에서 우리는 매우 분명하게 말한 바 있다.

 

"동구권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ICC는 이미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강조했다(보기국제 평론」 57호 참조).”

 

또한 나쁜 것은 거의 모든 것이 ... 단순히 혼돈과 해체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피상적이다그리고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핵심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그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자본주의 쇠퇴기의 초기 전쟁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질서 그 자체의 결과라는 것이다대단한 발견이다우리는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지만그들이 묻고 있고 그들이 묻지 않는 질문은 오늘날 제국주의 질서가 어떤 일반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구성되는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ICT 성원들은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 시작될 수 있을 만큼 지속해서 자본을 파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는 세계 경제의 건전성에 도움이 된다이 메시지는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주의 세계의 전망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표명한 부르주아지의 경제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실맑스주의 접근법과의 단절을 우리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기본 문서를 다시 읽고(또는 읽음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사실과 세계 상황의 진화가 우리 분석의 타당성을 날마다 확인시켜 준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부분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에 확고하게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이 방법이나 1990년대 논문의 맑스나 엥겔스의 인용문에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해체에 대한 분석을 거부하면서 ICT는 맑스의 서문에 요약된 역사적 유물론의 맑스주의 방법의 또 다른 축(그런데 ICC 강령의 첫 번째 요점에 반복됨)에 대한 논쟁의 도끼를 무디게 함으로써 관점에 따라 자신을 구별하거나 당황스럽게 만든다인류 역사의 모든 사회 형성에서 생산관계즉 그로부터 발생하는 경쟁 계급의 이해와 행동을 결정하는 관계는 항상 상승하는 역사적 단계에서는 생산력 발전의 요인으로이후 하강하는 단계에서는 같은 힘의 부정적 족쇄로 변모하여 사회 혁명의 필요성을 야기한다그러나 한 세기에 걸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으로서 쇠퇴의 시기는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ICT는 간주한다.

 

ICT는 '자본주의의 쇠퇴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이 시기가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나 그로 인한 제국주의 전쟁의 전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자본주의의 상승기에는 일반적으로 호황과 불황으로 알려진 생산의 주기가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의 중심축이었다이 시기의 제한적인 전쟁은 1871년 독일의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처럼 국가 통합을 통해 이러한 발전을 가속화하거나 식민지 정복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파괴그리고 그 여파는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파멸과 생산양식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ICT는 19세기의 건강한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학관계는 영원하다고 본다. ICT는 생산의 주기는 단지 그 규모가 커졌을 뿐이라고 간주한다그리고 이것은 제3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자본주의 생산의 새로운 사이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부조리한 생각으로 이어진다.7) 부르주아지조차도 자신의 시스템에 대한 관점에 대해 그렇게 어리석게 낙관적이지 않으며 직면한 파국적 파산의 시대에 대해 더 많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ICT는 '경제적으로 유물론적'일지 모르지만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생산관계의 발전을 분석하는 맑스주의적 의미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노동자 운동의 세 가지 기본 저작인 맑스의 자본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의 축적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우리는 연구 주제에 대한 역사적 접근 방식을 찾을 수 있다맑스는 이미 당대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로자 룩셈부르크는 초기 다양한 작가들이 축적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했는지 연구하고 레닌은 국가에 대한 질문에서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역사적 접근 방식에서 조사 대상인 현실이 태초부터 존재해 온 정적이고 무형의 것이 아니라연속성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변화와 파열의 요소를 지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핵심이다. 1990년 테제는 사회 일반의 역사자본주의의 역사특히 이 체제 쇠퇴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역사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접근 방식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보다 구체적으로그들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쇠퇴와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 사이의 유사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후자 내에서 붕괴 단계 발생의 핵심적 차이점을 강조한다.

 

"과거 사회에서는 낡은 생산관계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관계가 사회 내에서 낡은 생산관계와 함께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코뮤니스트 사회는 사회적 쇠퇴의 영향과 정도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었던 반면자본주의만을 따르는 것은 그 안에서 전혀 발전할 수 없으며따라서 사회의 재생은 부르주아 계급의 폭력적 전복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근절하지 않고는 아예 불가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ICT의 역사적 유물론은 '축적의 순환'이라는 같은 문구로 모든 사건전쟁모든 시대를 설명할 수 있다이러한 신화적 유물론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념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저속한 유물론이 만들어 낸 틈새는 관념론적 접착제로 메꿔져야 한다프롤레타리아트 혁명 투쟁의 현실적 조건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 정당'이라는 관념적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출현하고 건설되는 코뮤니스트당이 아니라 기회주의적 열풍에 의해 어느 시대에나 부풀려질 수 있는 신화적 정당이다.

 

역사 유물론의 변증법적 구성 요소

 

따라서 이탈리아 좌파의 선구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해체 시기의 존재를 비난하면서 맑스주의 역사적 유물론 방법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축을 제거해야만 했다첫째자본주의의 역사는 이전의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역사이며둘째경제 법칙의 결정적 역할은 생산양식의 역사적 진화와 함께 발전한다.

 

맑스주의 방법의 다른 두 가지 측면에는 잊힌 세 번째 요구사항이 내포되어 있는데바로 레닌이 제1차 세계대전 중 이 문제에 관한 연구에서 변증법의 본질로 묘사한 반대의 통일성에 따라 인간 사회의 발전을 포함한 모든 현상의 변증법적 진화를 인식한다는 것이다선구자는 발전을 반복과 증가 또는 감소의 관점에서만 보지만맑스주의는 역사적 필연성(유물론적 결정론)이 모순적인 상호 작용 방식으로 표현되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뀔 수 있고 필연성이 우연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이해한다.

 

맑스주의에서 사회 형성의 상부구조즉 정치적법적이데올로기적 조직은 주어진 경제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되며 후자에 의해 결정된다선구자들은 이 정도는 이해했다그러나 이 상부구조가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즉 원리는 아니더라도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엥겔스는 생애 말년 1890년대에 당시 선구자들의 저속한 유물론에 대한 일련의 편지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해야 했다오늘날 자본주의 상부구조의 붕괴가 시스템의 경제 기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엥겔스의 편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정치법학철학종교문학예술 등의 발전은 경제 발전에 기초한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에게 그리고 경제적 기반에도 영향을 미친다경제적 위치가 원인이 되어 단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다른 모든 것은 수동적인 효과만 가지고 있다경제적 필요성에 기초한 상호 작용이 있으며궁극적으로 항상 이를 스스로 입증한다.” (엥겔스가 보르헤스에게, 1894년 1월 25)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인 그 해체 기간에서 부패한 상부구조가 경제 기반 시설에 미치는 소급효과는 코로나 대유행의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으로 점점 더 강조되고 있으며유럽의 기후 변화와 제국주의 전쟁이 보르디가와 데이먼의 맹목적인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분명하게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8)

 

맑스는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자본에서 사용한 방법을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그는 이 방법에 대해 독일어판 책의 서문에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했을 뿐이다특히 우리의 분석이 맑스주의적이지 않다’, ‘관념적이라는 PPM(그리고 더 나아가 기생주의)의 어리석은 비난에 직면하여맑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의 추가적인 요소와 관련한 1990년 테제가 접근하는 방식의 충실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으며그중 몇 가지 요소를 상기할 수 있다.

 

양에서 질로의 변환

 

이것은 1990년 문서에서 자주 반복되는 개념이다해체의 징후는 자본주의의 쇠퇴 속에 존재할 수 있지만오늘날 이러한 징후의 축적은 사회생활의 '전환적-파열'의 증거이며해체가 결정적 요소가 되는 자본주의 쇠퇴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음을 예고한다이러한 맑스주의 변증법의 구성 요소는 사회적 사실에 국한되지 않는다엥겔스가 지적했듯이보기를 들어엥겔스는 반 뒤링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마멜루크 두 명이 프랑스인 세 명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했다. ... 1,000명의 프랑스군은 항상 1,500명의 마멜루크를 쓰러뜨렸다.’라는 말을 인용한 이유는 많은 수의 전투원이 참여할 때 효과가 나타나는 규율 때문이다특히 반 뒤링과 자연의 변증법에서 그것은 모든 분야에서 발견될 수 있고더욱이 다른 사상가들이 이미 감지한 현상이다엥겔스는 또한 이 법칙이 과학 분야에서 완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현재의 역사적 상황과 전체 일련의 재앙적인 사실의 배가에 관한 한양을 질로 변환하는 이 법칙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맑스주의 변증법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대부분의 학문적 전문가의 입장에서 정상이다). 그러나 전체 PPM은 현재 역사의 각 재앙적인 징후에 관해 구체적이고 고립된 원인을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각각이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특정 상황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할 수도 있지만사회생활의 다양한 구성 요소는 생산양식과 관계그리고 그 진화에 의해 결국’(엥겔스가 1890년 9월 21일 블로흐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지배되는 총체성 안에서 결정된다이것이 현 상황의 주요 현상 중 하나다처음에는 독립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이미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다양한 해체의 징후들이 이제는 일종의 연쇄 반응’, ‘회오리바람으로 서로에게 점점 더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이는 우리(그리고 다보스의 "전문가들")가 목격하고 있는 가속화를 역사에 부여하고 있다.

 

미래의 결정적 역할

 

마지막으로 맑스주의 역사적 변증법에서 운동과 변혁의 본질적인 측면을 차용하는 것은 우리가 해체를 분석할 때 중심적 개념의 핵심이다.

 

"어떤 생산양식도 그것이 지배하는 사회 전체에 대한 관점을 제시할 수 없다면 생존발전유지사회적 결속을 보장할 수 없다특히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생산양식인 자본주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테제 5)

 

그리고 현재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두 주요 계급 중 어느 쪽도 그러한 관점을 사회에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를 관념론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념적 질서의 현상즉 사회에 대한 비전의 부재가 사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유물론은 이미 맑스가 증명한 바와 같이 포이어 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비판한 저속한 유물론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의 시각에서 생산력은 자율적으로 발전한다그리고 생산력의 발전만이 생산관계와 계급 사이의 관계 변화를 좌우한다이들에 따르면 제도와 이데올로기즉 상부구조는 기존의 생산관계를 정당화하고 보존하는 한 그 자리를 유지한다따라서 사상인간의 도덕성심지어 역사적 과정에서의 정치적 개입과 같은 요소는 배제된다.

 

역사 유물론에는 경제적 요인 외에도 자연적 부와 맥락의 요소와 같은 다른 요인들이 포함된다생산력에는 기계나 기술 그 이상의 것이 포함된다여기에는 지식노하우경험이 포함된다사실 업무 절차를 가능하게 하거나 방해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협력과 연합의 형태는 그 자체로 생산적인 힘이며 경제 변화와 발전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변증법주의자'9)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혁명 투쟁의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의 차이를 부정한다이들은 계급의 힘이 당면한 경제적 이익을 단순히 방어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이러한 이해관계를 실현하고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들은 노동계급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분열시키며 무장해제 시키는 투쟁의 계급적 본질을 모호하게 만드는 세력을 무시한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구체적인 상황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그리고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 이익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며 자본주의 체제에 안정성을 부여해야 하는 이데올로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맑스가 코뮤니스트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객관적주관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첫 번째 조건은 세계 인구를 위해 아주 풍요롭게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다두 번째 조건은 계급의식이 충분하게 발전해야 한다이것은 약한 고리의 문제와 의식으로 표현된 필수적인 역사 경험에 대한 우리의 분석으로 돌아간다.

 

기계적 결정론자는 사회적 맥락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배제한다그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노동자들의 투쟁은 순수한 반사적 반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이는 혁명은 이미 일어난 것처럼 확실하다는 보르디가의 생각에서 잘 드러나는 근본적으로 운명론적인 관점이다이러한 관점은 수동적인 복종즉 경제 발전의 자동적 효과를 기다리는 복종으로 이어진다결국 코뮤니스트 선언의 첫 문장과 모순되는 변화의 근본 조건으로서 계급투쟁의 여지가 없다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포이어 바흐에 대한 세 번째 테제는 우리에게 역사적 유물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다음과 같이 결정론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인간은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며따라서 변화된 인간은 다른 환경과 변화된 교육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원칙으로 인해 환경이 인간에 의해 정확하게 변화되고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따라서 이 원칙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중 하나가 사회 위에 군림하게 된다. (보기를 들면 로버트 오언). 상황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우연은 혁명적 실천으로만 계획되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류사회의 삶에서 미래의 중요성

 

우리를 비판하는 자들은 이것을 관념론의 관점으로 볼 가능성이 크지만우리는 맑스주의 변증법이 사회의 진화와 운동에서 미래의 궁극적인 영역으로 귀속된다고 생각한다역사적 과정의 세 순간과거현재그리고 미래 중에서동력의 근본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것은 후자이다.

 

인류 역사에서 미래의 역할은 기본이다아프리카에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출발한 최초의 인류태평양을 정복하기 위해 호주에서 출발한 원주민들은 새로운 생계 수단을 위해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대부분 종교와 마찬가지로 출산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그리고 우리의 반대자들은 좋은 경제적‘ 사례를 필요로 하므로우리는 자본주의의 기능에서 두 가지를 인용할 수 있다자본가가 투자할 때그것은 과거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마찬가지로자본주의 메커니즘에서 그러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신용은 미래와의 계약에 불과하다.

 

미래의 역할은 더 일반적으로 맑스와 맑스주의 문서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이 역할은 잘 알려진 자본의 다음 구절에 제대로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출발점은 인간의 전유물 형태로 일하는 것이다거미는 직조공과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고벌은 자신의 집을 만들어 많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한다하지만 최악의 건축가와 최고의 벌의 차이점은 건축가가 현실에 건축하기 전에 상상 속에서 자기 건물을 짓는 것이다모든 노동 과정이 끝날 때우리는 시작 당시 노동자의 상상 속에 이미 존재했던 결과를 얻는다그는 그가 일하는 자료에 형태 변화를 줄 뿐만 아니라그의 방식에 규칙을 부여하고의지에 복종해야 하는 자신의 목적을 깨닫게 된다."

 

분명히사회에서 미래의 필수적인 이러한 역할은 노동자들의 운동에 훨씬 더 근본적이다그들의 현재 투쟁은 미래의 코뮤니스트 혁명의 관점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19세기의 사회혁명(프롤레타리아혁명)은 과거로부터 시를 끌어낼 수 없고 오직 미래에서 만 시를 끌어낼 수 있다.” (맑스루이 보나파르트의 18브루 마이어)

"노동조합은 자본이 잠식해 들어오는 것에 저항하는 중심 조직으로서 유용하게 작용한다그들은 자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자마자 부분적으로 그들의 목적에 실패한다기존 체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조직적인 힘을 노동계급의 결정적인 해방즉 임금 노동의 결정적인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는 대신이 체제의 영향에 대한 사소한 전쟁에 자신을 제한하는 순간 목표를 완전히 놓치게 된다." (맑스임금가격 및 이윤)

 

"최종 목표는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아무것도 아니다운동이 전부이다. (베른스타인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사회주의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와 구별하는 결정적 요소이며노동자 운동에 자본주의 체제를 구하기 위해 그것을 덧씌우는 헛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정권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만드는 유일한 요소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사회 개혁인가 혁명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레닌)

 

그리고 바로 오늘날의 사회가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제공할 수 있는 이 근본적인 요소즉 미래전망(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는)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지고 스스로 썩고 있다.

 

 

3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관점

 

WEF 2023 보고서는 중대한 정책 변화나 투자 없이는‘ 훨씬 더 악화할 현재 2030년대 세계 상황의 심각성을 설득력 있게 경고하고 있다동시에 세계 질서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요 다자간 메커니즘의 광범위한 마비와 비효율성을 보여주고‘, ’과학적으로 필요한 것과 정치적으로 편한 것 사이의 괴리를 지적한다상황은 절망적이며 현재 사회는 파괴의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이는 2022년 10월에 발표한 글의 제목을 확인시켜 준다. ’자본주의 해체의 가속화는 인류의 파괴라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다는 제목은 1990년 테제에 이미 포함된 예후를 완전히 확인해 준다.

 

동시에 이 보고서는 '신흥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선진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 '전 세계 정치 체제에 실존적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 불안'에 대한 전망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WEF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지에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위험'과 '세계 질서'에 대한 위협이라는 부정적인 범주에 속한다그러나 WEF의 예측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계속해서 부르주아 질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우리의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부르주아지 전체와 마찬가지로 WEF는 다양한 유형의 사회 불안을 구별하지 않는다이 모든 것이 무질서와 혼돈의 요소다보기를 들어 아랍의 봄‘ 경우와 같은 일부 운동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실제로 부르주아지가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부르주아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불안의 사례 중에는 사회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권력의 전복을 예고하는 것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도 WEF는 1990년의 테제와 2022년 10월의 문서를 보기로 든다전자의 문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모든 어려움에도 게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는 생각즉 오늘날 역사적 관점은 완전히 열려 있다는 생각을 다루고 있다. (테제 17).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동유럽의 붕괴가 프롤레타리아 의식에 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계급은 투쟁의 지형에서 큰 패배를 겪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그렇기 때문에 전투성은 사실상 그대로 남아 있다더욱이 이것은 최종 분석에서 세계 상황의 결과를 결정할 요소이며자본주의 위기의 냉혹한 악화로 인해 계급투쟁과 의식의 발전을 필수적으로 자극하게 되며사회적 부패에 의해 증류된 독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의 전제 조건이다왜냐하면해체의 영향에 대항하는 부분적 투쟁에서 계급의 통일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그런데도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에 대항하는 투쟁은 계급적 세력의 발전과 단결의 기초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같은 글).

 

게다가,

 

"본질적으로 상부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붕괴와 달리 경제위기는 상부구조가 놓인 토대를 직접 공격한다이런 의미에서 경제위기는 사회를 공격하고 있는 모든 야만성을 드러내어 프롤레타리아트가 시스템의 특정 측면을 개선하려고 하기보다는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필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같은 글)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우리는 붕괴의 무게(특히 스탈린주의의 붕괴)와 그로 인한 오랜 침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여전히 역사의 무대에 존재하며특히 영국과 1864년 프랑스(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불과 얼마 전!) IWA 설립의 기원이 된 두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서 입증된 것처럼 다시 투쟁을 재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해체 양상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그 의식(포퓰리즘계급협조주의민주주의 환상의 무게)에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면오늘날 우리는 직접적인 경제적 공격만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적 지형에서 자신을 동원할 수 있게 하며현재 진행되고 있고 더욱 심화할 이러한 공격이 국제적 규모에서 노동자 투쟁의 중대한 발전을 위한 조건을 만든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따라서 우리는 2022년 10월 본문에 쓰인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21세기의 20년대는 역사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인류의 파괴라는 관점이 자본주의 해체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과거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다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영국에서 전투적 투쟁으로 보여준 바와 같이 다른 부르주아지의 공격이 배가되고 모든 결과를 초래하는 세계 경제 위기의 타격에 맞서 생활 조건을 방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것이다이러한 첫 단계는 종종 주저하고 약점으로 가득 차 있지만노동계급이 코뮤니스트 관점을 추동할 수 있는 역사적 능력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따라서 인류의 멸망이냐코뮤니스트 혁명이냐라는 두 가지 대안적 관점은 전 세계적으로 서로 대립할 것이며비록 후자의 대안이 아직 멀고 엄청난 걸림돌에 직면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야 할 길은 매우 멀고도 험난하다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가 그 길에 설치하는 모든 함정에 맞서야 할 것이며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의식을 영구적으로 방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로 인해 중독된 이데올로기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연대와 집단행동은 '1위를 찾으라'는 원자화에 직면해 있다.

·조직의 필요성은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를 형성하는 관계의 붕괴즉 사회적 해체에 직면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미래와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절망과 허무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약화한다.

·의식명료함일관성 있고 통일된 사고이론에 대한 취향은 우리 시대의 특징인 환상마약종파신비주의생각의 거부 또는 파괴로 비행하는 동안 진전을 이루기가 어렵다. (테제 13)

 

1990년 테제는 이러한 어려움을 강조한다특히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해체의 위험과 그 영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테제 15)

 

"사실 우리는 1970년대의 상황과는 달리 현재의 시대는 더는 노동계급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제국주의 전쟁만으로 사회가 파멸의 위협을 받는 한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하는 것만으로도 파멸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었다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이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고착화에 의존했던 제국주의 전쟁과 달리사회 해체는 노동계급을 통제하지 않고도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노동자들의 투쟁이 경제 붕괴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이 체제 내에서 해체를 막을 힘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해체로 인한 위협은 세계대전보다 더 먼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세계대전의 조건이 존재한다면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대조적으로 훨씬 더 교묘하다위기의 영향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는 충분하지 않으며오직 코뮤니스트 혁명만이 해체의 위협을 종식할 수 있다" (테제 16)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해체의 극심한 가속화는 부르주아지의 가장 명석한 부문의 눈에도 인류의 파괴에 대한 관점을 점점 더 위협적으로 만드는 이 분석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그리고 코뮤니스트 혁명만이 해체의 파괴적인 역학과 점점 더 해로운 영향을 종식할 수 있기에 이것은 자본주의 전복으로 이어지는 경로의 어려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성취해야 할 임무가 상당히 많은 경로이다특히 반()혁명과 다양한 해체의 징후특히 이른바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은 계급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또한프롤레타리아트가 과거의 경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다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며이는 또한 근본적인 작업이다이는 코뮤니스트 전위의 근본적인 책임이다이는 한 세기 반이 넘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교훈을 전체 계급이 다시 활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해야 할 어려움은 모든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전복되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맑스 이후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기간 노동계급이 수행해야 하는 많은 과제가 있음을 자주 주장해 왔으며이는 "필요의 통치에서 자유의 통치로 넘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혁명과 비교 할 수 없는 임무다그리고 혁명이 성취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그 임무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자본주의는 날마다 지구를 조금씩 더 파괴하고결과적으로 코뮤니즘의 물질적 조건을 파괴한다더욱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이미 초래된 모든 종류의 파괴를 증가시키는 끔찍한 내전이 뒤따를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달성해야 할 사회 재건의 과제는 전후 첫 번째 혁명기에 권력을 장악했을 때 달성해야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의 파괴가 이미 상당히 컸다면그것은 전쟁과 관련된 국가에만 영향을 미쳤고특히 주요 산업 강국인 미국이 이러한 파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세계 경제 재건이 가능했다그러나 오늘날 죽어가는 자본주의로 인해 모든 종류의 파괴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전 지구가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노동계급이 전 세계적으로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코뮤니즘 수립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자본주의는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을 허용함으로써 코뮤니즘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냈지만이 체제의 쇠퇴와 해체는 이러한 조건을 약화해 완전히 황폐해지고 구제할 수 없는 지구를 프롤레타리아트에 떠넘길 수 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코뮤니즘으로 가는 길에서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짚어주는 것은 혁명가들의 책임이다그들의 역할은 노동계급이 절망하지 않도록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맑스가 말했듯이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진실은 혁명적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 재건이라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많은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20세기와 21세기 20년 동안 과학과 기술이 이룩한 엄청난 진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WEF 보고서는 이러한 발전을 이중 용도(민간 및 군사기술이라고 한다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하면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며오늘날 군사 분야가 기술 발전의 혜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다른 많은 비생산적 지출과 함께이는 상당한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법칙에 갇혀 있던 생산력의 전례 없는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다군사비와 비생산적 지출의 막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다양한 경제 부문과 국가 부문 사이의 경쟁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낭비와 생산력의 현저한 활용 부족(프로그램 노후화대량 실업교육 시스템의 부재 또는 결핍 등)도 제거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환-재건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 자산은 기술적이거나 엄밀히 말해 경제적인 요소가 아닐 것이다그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와의 대결부르주아지와의 내전 기간 매우 높은 수준의 의식조직 및 연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이는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도전에 맞서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생활의 기본 요소인 미래지금은 부재한 미래의 핵심이 발밑에서 썩어가는 미래에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UN은 지난 10월에 발간된 불확실한 시대불안정한 삶이라는 제목의 2021/2022 인간 개발 보고서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불확실성 콤플렉스'가 등장하고 있다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불안정한 행성 압력과 인류세의 불평등그러한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전면적인 사회 변화 추구광범위하고 심화한 양극화 등 세 가지 변동성과 상호 작용하는 가닥이다

 

세계 위기세계 금융 위기진행 중인 세계 기후 위기 및 코로나19 대유행다가오는 세계 식량 위기 등이 누적되었다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제력이 무엇이든 간에안정과 번영을 위해 의존하던 규범과 제도가 오늘날의 불확실성 콤플렉스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잔소리가 있다." (개요, 15-16)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유엔 보고서는 WEF 보고서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7세기에 시작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에 접어들었고이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며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무엇보다 그것은 사회에 점점 더 스며드는 '미래가 없다'는 깊은 절망감(이를 '불확실성 콤플렉스'라 부른다)을 강조한다.

 

정확히 말하면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인류 사회에 잃어버린 미래를 돌려준다는 사실은 노동계급이 40년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사막 속 방황하는세기를 거쳐 마침내 코뮤니즘의 '약속된 땅'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에 강력한 요인이 될 것이다.

 

<>

1) 프롤레타리아 정치 환경(PPM):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코뮤니스트좌파와 이러한 전통의 비타협적 국제주의에서 파생된 단체.

2) 1945년 당의 모든 후예가 1930년대 망명한 이탈리아 좌파 빌랑의 혁명적 이론 작업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간결성을 위해 '선구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 "그들은 공화정이 정치적 통치를 완성했지만동시에 사회적 토대를 약화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피지배계급과 대면하고 중재 없이왕정에 의해 은폐되지 않고그들 자신과 군주제와의 이차적 갈등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릴 가능성도 없이 그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그것은 그들이 자기 계급 통치의 순수한 조건에 마주했을 때 움츠러들게 하고 완결성이 떨어지고 조금 발달했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위험이 덜했던 이전 형태의 통치로 복귀를 갈망하게 하는 나약한 느낌이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이탈리아 좌파의 선구자들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의 해체 이론을 비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맑스를 비웃어야 할 것이다.

4) 맑스주의적 방법의 가장 간결한 표현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해 기여'한 서문.

5) ’혁명의 원리무기‘ (빌랑」 5) 1934

6) (’맑스주의 또는 관념론 - ICC와 우리의 차이점‘)

7) 자본의 삶의 이러한 질적(단순한 양적 변화가 아닌근본적인 변화는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되었다"금융 자본에 대한 정치권력의 절대적 종속이 인류를 제국주의적 학살로 이끌었다면이러한 학살은 금융 자본이 국가를 위에서부터 밑바닥까지 군사화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군사화하여 총과 피 없이는 더는 필수적인 경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 경제 자유주의가 그토록 반대했던 경제생활의 국유화는 당연한 결과다자유 경쟁뿐만 아니라 신용노동조합 및 기타 자본주의 문어와 같은 단순한 지배로의 복귀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ICT의 동지들은 이 문서를 모르거나 CI의 이러한 기본 입장에 동의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8) 맑스주의 방법에 관한 엥겔스의 또 다른 편지는 이 제자들이 반드시 봐야 할 내용인 것 같다"이 모든 신사에게 부족한 것은 변증법이다그들이 보는 것은 여기서는 원인저기서는 결과뿐이다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형이상학적 정반대가 위기 상황에서만 존재하고거대한 전체 과정은 상호 작용의 형태로 발전하여 경제 운동이 가장 강력하고 일차적이며 결정적인 매우 불평등한 힘을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 발전한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보지 못한다그들은 여기서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그들에게 헤겔은 존재한 적이 없다." (엥겔스가 콘라드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 1890년 10월 27)

9) 우리는 맑스주의적객관적변증법에 대한 근본적인 통일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모든 것에서 모순만을 발견하는 혼란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아나키즘과 모더니즘의 공허하고 주관적인 변증법과 구별해야 한다이들의 특징은 공황의 일부 현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공황의 궁극적인 원인과 논리적 틀을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실패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객관적인 역사적 변증법은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여 개인 의견의 자유를 교조적으로 보존하려는 그들의 주된 집착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혐오스러운 이론이다경제적 요소를모두 알게 된다면 똑같이 중요한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들의 변증법은 주관적이고 비()역사적이며 이탈리아 좌파의 선구자들처럼 사건의 궤적을 파악할 수 없다.

 

국제 평론(International Review) 170

2023. 07. 16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377/update-theses-decomposition-202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