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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운동의 과거·현재·미래 : 「코뮤니스트」 1~3호

[창간호를 내며진보좌파의 불안한 허상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시대와 공간계급투쟁이 어울려 역사가 되지만역사가 또한 시대정신과 계급 주체를 불러낸다우리는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폭발했고전 세계는 대공황이다역사적 시각에서 본다면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수술대 위에 올랐다수술대 위에 오른 자본주의를 집도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달려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맑스의 언급을 기억하자.

 

미국 월가 점거 투쟁에 이어최근 유럽의 긴축 반대 투쟁은 그 기세가 맹렬하다계급투쟁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스스로 변화하면서자신의 계급의식을 획득한다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역사는 지금 진행 중이다요컨대 자본주의는 국내외 계급 관계세계 질서를 재편하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역사적 시기에대선을 앞두고 서구 사민주의 베끼기에 급급한 개혁주의 진보· 좌파 세력이 이합집산으로 모인다더구나 97년 국민승리21 종이정당처럼임시 선거용 가설정당까지 등장했다이쯤 되면 선거 중독 당이다여기에 최소한 노동자계급정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우리는 코뮤니스트(Communist) 정치 운동을 이제 시작한다.

 

<코뮤니스트창간호 특집 기획에서 오세철은 대통령 선거 정세를 맞이하면서무엇보다 92년 민중후보 사회주의 강령 투쟁’ 취지를 언급하면서현 시기 사회주의 정치 실종을 말한다대중의 직접행동을 요구한다편집부 명의 글은 그간 사회주의 정치운동 평가와 전망코뮤니스트의 역할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한다코뮤니스 정치원칙을 세우자는 이형로의 글은 역사적인 소련 사회의 경험스탈린주의코민테른의 타락을 분석하고 공산주의 운동과 혁명운동의 원칙을 주장한다특히 현 시기 쟁점이 되는 노동자정당공동전선을 비판하고혁명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독일 공산주의 좌파와 이탈리아 공산당-국제공산당 교훈에서 남궁원과 이형로는 타락한 코민테른에 맞선 독일 좌파이탈리아 당 경험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룬다국제공산주의경향 번역 글은 당과 계급의 분석을 위한 의식의 문제를 다뤘다.

 

계급투쟁 소식은 민주노총의 하반기 총파업이 소리 없이 사라진 가운데쌍용 자동차 등 투쟁사업장의 공동투쟁을 일지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임경일은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는 형식적인 민노총 투쟁보다 현장 투쟁의 목소리를 값지게 대변한다성승욱은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은 장애인 예산 확보 및 확대를 위한 투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며자본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장애의 계급적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계기로 파악한다.

 

<코뮤니스트>는 세계 노동자 투쟁국제 정세와 기획 논쟁을 강화할 생각이다첫 시도로 유럽 긴축반대 투쟁의 핵심에 서 있는 스페인 문제를 다뤘다스페인 국민당 정부의 노동계급 생활 조건에 관한 무자비한 공격을 비판하고 투쟁을 진척시키고 제안하기 위한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상황 분석을 실었다기획번역/논쟁으로 논문 형식의 글로북한 문제와 자본주의 쇠퇴레닌의 <좌익공산주의유아적 무질서배신자들의 비난>을 실었다특히 자본주의 쇠퇴 문제는 계속 연재할 번역할 생각이다.

 

문화 예술은 임성용 시인과 조성웅 시인의 기고 글을 받았다임성용은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놓은 공고한 질서의 전복을 꿈꾸는 프롤레타리아 노동문학의 의의에 대해서조성웅은 계급 문학을 사수하는 노동자들의 공간인 해방글터 상황과 작지만 소중한 시도인 시와 노래의 새로운 공동체 시간’ 글을 보내왔다.

 

서평은 자본주의 위기와 함께 극우 보수 민족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이때파시즘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골랐다비교해서 읽고 싶은 책이지만 선뜻 다가서기 힘든데현철민은 이념과 역사적 현실을 비교하면서자신의 생각을 전해주고 있다.

 

좌익공산주의 역사와 인물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공산주의 좌파 역사 문헌과 인물을 앞으로 계속 소개 번역할 생각이다남궁원은 세계혁명을 둘러싸고 레닌과 대립했던 유럽 좌익공산주의자인 호르터의 주장과 당시 인터내셔널 건설을 둘러싼 논쟁 글을 번역 소개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출범하면서, ‘코뮤니스트’ 창간호를 발간한다우리는 이 책을 사서 읽는 동지들을 단순한 구매자로 생각하지 않는다역사의 시대에 서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로 생각한다동지들의 적극적인 비판적 문제의식을 기대한다우리는 항상 열려있고동지들과 토론하기를 원한다.

 

애매모호한 진보 좌파노동 정치에 대한 허상을 깨고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위해!“

 

 

2012년 10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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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호 목차

 

■ 창간 특집 코뮤니스트 운동을 위하여

서론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 오세철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 편집부

코뮤니스트 조직의 정치원칙을 세우며 | 이형로

독일 혁명과 좌익공산주의 | 남궁원

이탈리아 당 운동 역사 | 이형로

의식의 문제계급 토론을 위한 기초 | 국제공산주의경향

 

■ 계급투쟁

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가 | 성승욱

투쟁사업장 공동행동 투쟁 | 임경일

 

■ 국제 정세

스페인에서 긴축 | 국제공산주의흐름

 

■ 기획/논쟁

북한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종착된 봉건적 주체주의 | 오세철

[기획번역1] 자본주의 쇠퇴 논쟁:

대공항은 혁명가에게 자본주의의 쇠토를 입증시킨다 | 국제공산주의흐름

[기획번역2] 좌익 공산주의유아적 무질서배신자들의 비난 | 국제공산당

 

■ 문화 예술

문학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 임성용

시와 노래의 새로운 공동체 시간을 위해 | 조성웅

 

■ 좌익공산주의 역사와 인물

우리는 왜 4차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필요한가| 호르터

 

■ 서평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와 히틀러 <나의 투쟁|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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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호를 내면서

 

지난해 10월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출범을 하면서,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여기서 독자적인 사상노선은 <코뮤니스트>지 편집 방향인 좌익공산주의를 뜻한다.

 

창간호가 나간 이후 우리는 글이 어렵다는 충고를 들었다이것은 무엇보다그간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좌파 역사사상이론생소한 조직 명칭에서 오는 불가피한 점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수술대 위에 오른 자본주의 쇠퇴 상황에서과거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면서어떠한 사상 이론이 필요한가를 계속 문제제기하면서 발전시키려 한다분명 의욕은 앞서지만부족한 점이 많다창간호에서 밝혔듯이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지들이 역사의 시대에 서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로 생각하며 비판적 문제의식을 기대한다.

 

창간호에 이어 6개월 만에 2호를 발행한다.

 

특집 글에서 오세철은 최근까지 자본주의 위기와 쇠퇴 논쟁 역사를 개괄하면서자본주의 위기 역사를 쇠퇴의 마지막 단계로 보는 근거와 함께 한국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방향을 모색한다이형로는 대선 결과를 단순한 표 분석이 아니라선거 이전과 선거 이후 계급의식변화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좌파 정치세력 입장을 비판한다공산주의 운동 전면화를 주장한다.

 

정세 글에서 정현철은 노동운동 위기를 노동자 민주주의 측면에서 제기한다노조집행부와 대의원 장악자발적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는 노조 상층기구와 의사결정구조 등을 비판한다시급한 것은직접 민주주의에 기초한 노동자민주주의’ 관점과 실천이다신정현은 경기도 이천 LCD 제조업체 하이디스 자본의 구조조정과 자본철수공장폐쇄 협박에 맞서공세적인 공장점거 투쟁과 자발적인 평조합원 투쟁을 강조한다.

 

국제동향은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좌익공산주의 계열인 국제공산주의좌파의 분파(FICL), 국제주의 전망(IP)의 분석을 번역해서 실었다. FICL은 아프리카 말리에서 프랑스 군사 개입을 둘러싸고주요 제국주의 세력사이에 이해관계와 대립을 다룬다. IP는 아랍의 봄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 ‘점거운동’(Occupy Movement)의 역동성과 약점을 비교 분석하면서발본적 변혁 전망의 중요성을 명확히 한다단편적이지만국제정세와 국제 계급투쟁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기획연재번역 글은 국제공산주의흐름(ICC) <국제주의평론>에 연재되고 있는 자본주의 쇠퇴 논쟁을 옮겼다이 글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번영과 위기쇠퇴 원인을 둘러싼 혁명가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논쟁을 볼 수 있는데좌익공산주의 틀에서 보면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매틱으로 이어지는 정치경제학적 논쟁이다. ICC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자본주의 잉여가치 실현 문제)을 주요 방법론으로 채택하면서자본주의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자본주의 쇠퇴가 종착역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앞으로 자본주의 쇠퇴 논쟁 글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문화예술은 5년 넘게 거리에서 원직복직 쟁취노조탄압에 맞선 재능교육 노동자 투쟁을 형상화한 임성용 시인의 만행! 1,934’ 시를 실었다.

 

좌익공산주의 역사와 인물은 독일에서 1920년대와 1930년대 걸쳐 좌익공산주의자로 활약한 칼 코르쉬 소개와 혁명적 코뮌 글을 싣는다책 소개로는 좌익공산주의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민주당의 위기(일명 유니우스 팸플릿)>와 막스 갈로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소개한다유니우스 팸플릿은 빛나는 전망 출판사에서 올 하반기에 출간할 예정인데국제공산주의흐름이 쓴 서문을 먼저 소개한다.

 

또 한 권의 <코뮤니스트>를 낸다하나하나가 산고의 과정이다동지들의 애정을 바란다.

 

2013년 4

 

 

 

2호 목차

 

 

 

■ 기획특집

 

‣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오세철

‣ [대선평가와 정치운동 전망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이형로

 

 

■ 정세

 

‣ 노동자연대와 노동자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정현철

‣ 노동자가 공장의 주인임을 선언하자! (다국적 자본의 자본철수에 맞서 투쟁하는 하이디스 노동자들신정현

 

 

■ 국제

 

‣ 아프리카 말리에서 전쟁 국제공산주의좌파의 분파 (옮긴이 김명수)

‣ 계급투쟁에 대한 공헌 |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옮긴이 성승욱)

 

 

■ 기획번역

 

‣ 자본주의 쇠퇴 논쟁 : 40년의 공공연한 위기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

자본주의 쇠퇴가 종착역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국제공산주의흐름 (옮긴이 오세철)

 

 

■ 인물소개

 

‣ 좌익공산주의 역사와 인물 혁명적 코뮌 칼 코르쉬 남궁원

 

 

■ 문화예술

 

‣ 만행! 1,934일 임성용

 

 

■ 책소개

 

‣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민주당의 위기 (일명 유니우스 팸플릿국제공산주의흐름

‣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고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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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3호를 내면서

 

먼저 초여름에 내기로 했던 3호를 여름이 다 갈 무렵에야 발행한 것은 우리에게 큰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에서부터 코뮤니스트의 기획에서 출판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오던 남궁원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지난 4월 14일 귀가 중 불의의 추락 사고를 당해 경희대 의료원에서 생사를 다투던 동지가 많은 사람들의 소생 기원에도 7월 4일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남궁원 동지가 20여 년에 걸쳐 걸어온 길은 한국사회에서 보기 드문 코뮤니스트 혁명가의 길 그것이었다가장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살아왔던 그는 늘 외로웠을지도 모른다하지만그가 병상에서 사투를 벌인 80여 일과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는 순간까지 수많은 동지들과 친구들이 곁을 지켰다아픔의 시간이었지만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가꾸던 시간이 더욱 길었기에그가 남겨준 모든 것을 코뮤니스트 운동에 담아 산 자들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

 

이번 호는 故 남궁원 동지 추모특집으로 만들었다모두에게 아픔의 시간이었지만코뮤니스트를 만드는 동안 모두가 남궁원 동지가 되어 함께 만들었다.

 

추모특집은 남궁원 동지가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코뮤니스트의 길을 글과 그림과 시로 담았다그리고 남궁원 동지의 공산주의 출판운동에 대한 공헌을 기리고자 동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빛나는 전망의 책을 소개했다.

 

3호의 특집은 후퇴하는 민주주의 속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전망을 밝히고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혁명조직의 구조'를 다뤘다노조를 넘어선 운동을 전망하면서 평의회 운동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실현을 주장하는 글과 국제적인 코뮤니스트 조직의 예를 들면서 혁명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소개평가하는 글을 실었다민주집중제를 넘어선 국제적인 규모의 중앙화 문제와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의 경로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코뮤니스트 조직의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정리한 글을 외부기고 받아 실었다.

 

정세와 계급투쟁은 국제주의 조직으로써 국내의 계급투쟁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 상황을 국내상황과 동일하게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국제적인 수준에서 기사를 실었다.

 

기획연재번역 글은 1, 2호와 같이 '자본주의 쇠퇴논쟁글과 레닌의 좌익공산주의유아적 무질서배신자들의 비난을 실었다그리고 민족주의 비판 글이 연재로 추가되었다.

 

이번 호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글과 내용을 실었다글의 깊이와 관계없이 모든 글에 동지들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믿기에 자세한 소개와 설명은 생략했다무겁지만 정독을 부탁한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코뮤니스트를 별이라 부르지 않는다우상과 상징을 스스로 만들지도 않는다하늘 위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늘 아래로부터 어둠을 헤쳐 나가기 때문이다남궁원 동지는 아마도 이 말만을 남기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동지들이 가야 할 길을 가기를"

 

2013년 8월 17

코뮤니스트를 만드는 사람들

 

 

3호 목차

 

 

■ 故 남궁원 동지 추모 특집

 

‣ 안녕남궁원!

‣ 추모시 임성용

‣ 남궁원 동지를 추억하는 시인의 일기 조성웅

‣ 남궁원 동지가 걸어온 고집스럽던 그 길목에 한편의 이야기 윤문호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오세철

‣ 덩치만큼이나 오지랖 넉넉하고 푸근했던 사내 이승찬

‣ 사랑… 백영화

 

 

■ 故 남궁원 동지의 공산주의 출판 활동

 

‣ 세계혁명평의회노동조합

‣ 좌익공산주의

‣ 노동자평의회와 공산주의 길

‣ 다시 혁명을 말한다

‣ 학문예술혁명의 사중주

 

 

■ 특집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혁명조직의 구조

 

‣ 노조를 넘어선 새로운 운동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대하여 이형로 · 정현철

‣ 혁명가조직 구조와 기능 이형로

‣ 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이정인

 

 

■ 정세와 계급투쟁

 

‣ 재능지부 문제 새로운 의사 결정 구조를 위하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거리시위와 계급 권력 D.Valerian (옮긴이 김명수)

‣ 노동조합과 코뮤니스트 성승욱 · 이형로

‣ 만덕5지구와 개발동맹들 윤웅태

‣ 인터뷰영상활동가 김수목 동지 김수목

 

 

■ 기획번역 연재

 

‣ 기획번역1.파국의 시대 국제공산주의흐름 (옮긴이 오세철)

‣ 기획번역2.좌익공산주의유아적 무질서배신자들의 비난(2) 국제공산당

‣ 기획번역3.민족주의는 계급투쟁의 치명적인 독이다국제주의자목소리 (옮긴이 성승욱)

 

 

■ 인물소개

 

‣ 헤르만 호르터를 추모하며 | H.칸느 메이예르 (옮긴이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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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7주기 추모식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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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잊지 않고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7주기 추모식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남궁원 동지 추모식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라 

험난한 코뮤니스트의 길을 걸었던 남궁원 동지를 기억하고 

코뮤니스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짐과 확인의 자리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원칙적으로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을 위해 꾸준히 실천하고 투쟁하겠습니다.

 

 

 

2020년 7월 4일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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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최후가 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은 아름답게 빛납니다

강제로 강요된 죽음은 억울하고 잔혹합니다

예기치 않게 뜻밖에 찾아온 이별은 허망하고 슬픕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남궁원 동지의 육성이 들려옵니다

그의 말들이 한줄 한줄 육필의 문장으로 변합니다

-자본주의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코뮤니즘은 단지 좋은 이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적 필요성입니다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의 위기에 영원히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위기 속에 프롤레타리아가 더 이상 비참하게 살 수 없어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노예제와 봉건제가 있었고

착취와 소외가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코뮤니즘을 실현하지 않으면

세계와 계급의 공멸이라는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이건 최대의 희생자는 늘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에게 자본주의의 경제붕괴는

혁명을 향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지금, 바로 이러한 무질서를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우리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매우 훌륭합니다

전쟁과 실업, 경제파탄과 물가상승, 전세대란, 해고, 자살, 금융 디폴트

도탄을 밟고 일순간에 일어서는 폭동이야말로

이미 준비된 파국입니다

계급투쟁의 결과를 다시 쓰기 위한 또다른 역사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그 보편적인 최후의 지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말합니다

살아서도 말하고 죽어서도 말합니다

저는 노동자혁명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젠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詩 ㅣ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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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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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 때문에 고통받는다이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계급과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지불하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모순이다노동자계급은 생산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자기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상품으로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모든 인류를 풍요롭게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하지만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모든 이윤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절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은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 자신들이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그런데 전체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은자본주의 고유의 경쟁으로 인해 판매할 시장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과잉생산을 불러온다과잉생산은 경제 위기와 공황을 심화시키고 넓히면서 사회의 물적인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노동자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부를 집단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생산과정에서 결합된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전유하고 있다이러한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사적 전유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노동자로부터 더욱더 많은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착취 관계를 나타내주며이것은 계급투쟁을 위한 기반이다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자신을 방어할 어떤 특권도 갖지 않는 노동자계급은 모든 특권모든 사적 소유를 폐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족쇄로부터 생산력을 해방시키고전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생산양식인 코뮤니스트(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다.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자본주의가 더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춘 채 퇴행하는 사회체제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쇠퇴의 시기에 진입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최고최후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시대쇠퇴하는 자본주의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역사적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은 자본주의의 역사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 모두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볼셰비키 그룹스파르타쿠스 그룹브레멘 좌익 그룹 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시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몰락의 시기임과 부르주아(자본주의국가기구 파괴와 노동자계급에 의한 즉각적인 권력 장악의 필요를 강조하며 전쟁과 혁명의 시대임을 천명했다.

 

 자본주의는 1914년 이후 1945년의 파괴의 시기를 거쳐,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다. 1914년 이후의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했다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이를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두 번의 세계대전불황의 10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 세계체계의 재편성(마셜 플랜, IMF 세계은행그리고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다이러한 재구성은 1966년 경기후퇴,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턴 우즈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실제로 전후의 상승은 1960년대 중반에 끝났지만, 1970년대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신용 팽창 때문에 1970년대까지 지속하였다하지만 전후 붐을 이용한 역동성은 여기서 끝나게 된다자본주의 시스템은 1970년대 초반 이후에는 세계적인 규모로 역동적인 균형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만성적인 위기 상태에 들어갔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윤율 하락 경향과 잉여가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포화의 한계 법칙이 결합되어 자본주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만성화시킨다. 1970년대 초반 이후의 만성적인 위기 상태는 해소되지 못했고 이 위기의 근원인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이 1980년대-2007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 동안 누적가중되면서 마침내 오늘날 세계공황으로 폭발하였다또한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과정은 국지적지역적 갈등강대국들에 의한 경찰 행위기근과 생태적 파괴 등으로 인류의 생존에 파멸적 위협과 재앙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살아있는 한인류는 그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이 죽어가는 체제가 부과하는 파국의 증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이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파국 속에서 전쟁이냐혁명이냐의 선택이 오로지 노동자계급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코뮤니즘을 실현할 물질적 조건은 이미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았다코뮤니즘은 오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혁명의 결과로서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적 쇠퇴의 새로운 국면이 코뮤니스트 혁명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킨 것을 넘어혁명의 주체를 공격하고 새로운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있다이렇게 역사는 코뮤니즘을 절실하게 요구하지만단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코뮤니스트 혁명이 모든 순간에 구체적인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오랜 기간의 반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 속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수차례 패배했고계급의식과 조직화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계급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버렸다수많은 패배와 후퇴파괴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부활이냐더 깊은 침체냐의 기로에 서 있다쇠퇴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국면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노동자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와 파국의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스스로 무장 없이계급의식과 전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한 대응으로 준비되지 않은 적대 계급과의 격전을 벌인다면또다시 처참한 패배와 나아가 계급 분쇄의 기나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의 압박 속에서 투쟁과 조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오히려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을 전망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한 걸음도 발전시킬 수 없으며새로운 가능성 또한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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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1919년 3월에 창설되었다그 당시 아주 극소수의 코뮤니스트당이 이미 존재했다(러시아네덜란드독일폴란드그리고 몇몇 주목받지 않던 다른 나라에서의 코뮤니스트당). 하지만 그 당시 최초의 (그리고 그렇게 선언한) ‘좌파’ 분파가 주요한 당 내부에서즉 러시아 코뮤니스트당(1918년 3월 RSDLP 제 7차 대회에서 코뮤니스트라는 이름을 채택했음내부에서 출현했다. 1918년 초 이 경향은 코뮤니스트(Kommunist)라는 신문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오신스키(Ossinsky), 부하린(Bukharin), 라덱(Radek) 및 스미르노프(Smirnov)가 주도했다이 분파가 당의 공식적인 방향과는 달리 가진 주요한 불일치점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k-Litovsk)에서의 협상을 두고서였다. ‘좌파코뮤니스트는 그 협상에 반대하고 다른 나라로 혁명을 무력적으로 수출하는 혁명전쟁을 권고했다그러나 동시에이 분파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권위적인 방법을 비판했고 노동자 대중이 광범위하게 권력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이러한 비판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행한 비판과 유사하다(그의 팸플릿을 참조 바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협정의 승인은 이 분파의 종말을 선언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린은 당의 우익의 대표자가 되었지만오신스키와 같은 이 분파의 몇몇 인자들은 그 뒤에 출현한 좌파 분파에 가담하게 된다그래서 서유럽에서는 앞으로 코뮤니스트당을 출현시키게 될사회당 내부의 몇몇 분파들이 아직 형성되기 전에 (보르디가가 주도한 기권분파는 1918년 12월에 가서 형성된다이미 러시아혁명가들은 자국의 코뮤니스트당에 영향을 미치는 일탈에 대항해 (분명히 매우 혼란스러운 방식이긴 하지만투쟁을 개시했다여기서 (이 현상을 지금 여기서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주목할 만한 점은 20세기 초 수 년 동안 러시아혁명가들이 다음과 같이 일련의 모든 주요한 문제에 있어서 선봉에 있었다는 것이다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제 2차 대회에서 볼셰비키 분파의 형성,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 선명한 입장침머발트에서 좌파를 주도한 것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 필요성의 인식, 1918년 3월 최초의 코뮤니스트당의 건설그리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에 대한 자극과 정치적 방향설정 등에서.

 

 

  그리고 이러한 조숙함은 코뮤니스트당 내부에서의 분파의 형성에서도 발견된다사실상권력을 잡게 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코뮤니스트당으로서 그것의 특별한 역할로 인해서러시아당은 (명백히전 세계적인 혁명 물결의 패배와 더불어당이 부패하면서 주요 인자에 대한 압력을즉 당의 국가로의 융합을 겪는 최초의 당이기도 했다그렇게 프롤레타리아당의 이러한 퇴행 과정에 직면해서 비록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일찍 저항의 형식을 시작했다.

 

 

  그때 이후 러시아당에서 상당수의 다른 좌파” 경향이 출현했다.

 

 

  - 1919년 오신스키와 사프로노프(Sapronov)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은 산업에서 개인적 권위에 대항해 싸웠고 국가기구의 부문화와 관료주의적 억압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서 집합적 또는 우의적인 원칙을 옹호했다.(우의의 원칙과 개인적 권위에 관한 테제).

 

 

  - 또한 1919년에 많은 수의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 구성원이 군사적 반대파에 참여했는데이 파는 적군(Red Army)을 전통적인 부르주아 군대의 범주에 따라 변형시키려는 경향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1919년 3월에 잠시 구성되었었다.

 

 

  내전 동안 당 정책에 관한 비판은 새로운 체제에 대한 백군(White Armies)의 위협 때문에 그 빈도가 더 낮게 표면화되었지만내전이 백군에 대한 적군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그러한 비판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 1921년 초10회 전당대회와 노동조합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을 계기로, ‘노동자 반대파가 형성되었고철강노동자인 쉴리아프니코프(Shliapnikov)와 메드베데프(Medvedev), 그리고 특히강령을 작성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가 주도했다혁명적 생디칼리스트처럼 이 반대파는 국가의 관료제 대신에 노동조합에 경제의 관리를 맡기기를 원했다(7). 바로 이 전당대회(크론슈타트봉기 동안에 개최된)에서 채택된 결정으로 분파가 금지된 이후 노동자 반대파는 해체되고 콜론타이는 나중에 스탈린(Stalin)의 충실한 추종자가 된다.

 

 

  - 1921년 가을에 노동자의 진리그룹이 결성되었는데주요 구성원은 지식인 그리고 주요 조직가인 보그다노프(Bogdanov)처럼 프롤레타리아문화(Proletkult)’의 추종자들이었다다른 반대파 경향과 함께 이 그룹은 당과 국가의 관료화를 비난했지만동시에 반()-멘셰비키적 입장을 취했는데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건이 러시아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점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 위에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점(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평의회주의 경향의 입장이 된다)에서 그러했다.

 

 

  - 1922~23년에 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는데주도자는 우랄지방의 노동자 미아스니코프(Miasnikov)였다그는 10차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왕당파에서 아나키스트까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함으로써 1921년 볼셰비키당 안에서 두각을 드러냈었다이 문제에 관해 논쟁하려던 레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아스니코프는 요구의 철회를 거부했고 결국 1922년초 당에서 축출되었다그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다른 투쟁가들과 함께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 볼세비키)의 노동자그룹을 창설했고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의 12차 대회에서 그룹의 선언문이 배포되었다이 그룹은 당의 노동자 사이에서 불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의 파업 물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 같다당시 이 그룹은 대대적인 시위를 요구했고 일차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시도했다이 시위에서 그룹의 활동으로 인해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는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미아스니코프를 포함한 그룹의 주도자들은 수감되었다하지만 그룹의 활동은 (망명 중 뿐만 아니라러시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192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이때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파리로 망명했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입장에 가까운 입장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L´Ouvrière Communiste)의 간행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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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미아스니코프(사진 중앙), 「노동자그룹」은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종종 “미아스니코프 그룹”으로 불린다.

 

  볼셰비키당의 퇴행에 맞서 투쟁을 벌인 모든 경향 중에서 확실히 노동자그룹(Workers´ Group:WG)이 가장 정치적으로 명확했다그것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에 매우 가까웠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이 그룹의 문건을 출판하고 그들과 접촉을 유지했다.) 특히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혁명의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었다이점에서 그들은 (당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민주주의의 문제에 그리고 경제의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었던 다른 그룹의 경우와는 상반되었다그들은 계속해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I)의 첫 4번의 대회를 참조점으로 삼는 트로츠키주의 경향과는 달리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제3차 및 4차 대회의 통일전선(United Front) 정책을 거부했다하지만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좌익과 노동자그룹(WG)의 인자 사이에 (특히 망명 중에토론이 있었다

 

 

 

  노동자그룹(WG)은 일관되게 하나의 분파처럼 활동했던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출현한 아마도 유일한 경향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스탈린이 혁명가에 대해 시작한 (그리고 차르의 탄압보다 훨씬 더했던혹독한 탄압은 이들의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2차 세계대전 이후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예상대로 그는 즉시 실종되었고코뮤니스트좌파의 미약한 역량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고 말았다.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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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 사회주의 외교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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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칼 리프크네히트의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개는 코뮤니스트」 9호에 실려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는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의 글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년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주제와 대상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오늘날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코뮤니스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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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용인하지도 않는다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국제주의적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다음과 같다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등등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통찰력의지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정도에 달려있다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도덕적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교육을 비교해보라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서로 대응하고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즉 혁명적 과업이다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이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이는 그것들이 단지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그것은 [범위에서국제적이어야 한다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년 4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옮긴이 ㅣ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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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출처비타협(INTRANSIGENCE)」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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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당대 가장 탁월하고 열렬한 코뮤니스트였던 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되자많은 사람들이 케테 콜비츠에게 추모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케테 콜비츠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고 마음을 바꿔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Gedenkblatt fur Karl Liebknecht)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뛰어난 혁명가를 잃은 슬픔이 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분노로 다가왔지만평화주의자인 예술가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아래는 당시의 심정을 담은 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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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

 

  부끄럽다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거짓말부패왜곡 즉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그렇지 않은가?    

 (1920케테 콜비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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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ethe Kollwitz German school. Portrait of Karl Liebknecht, Engr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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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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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5년 와츠, 1992년 LA, 2014년 퍼거슨로드니 킹마이클 브라운샌드라 블랜드타밀 라이스.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사건은 역사적체계적 문제에 또 하나의 추가 사항이다흑인 프롤레타리아트는 백인보다 2배의 실업률(1950년대 이후 이 수치가 유지되고 있다)로 고통받는 데 더해불공평하게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그로 인한 사망자 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계급은 다시 한번이 엄혹한 시기에도 투쟁성을 보여준다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은 연대하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거리로 나와 국가 탄압에 맞서 저항했다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020년과 마찬가지로 1965년에도경찰의 살인과살인을 유발한 왜곡된 사회적 질서에 대항한 계급의 저항이 있었다투쟁은 계속된다.

 

2. 미국에서 흑인 노동계급은 경찰 만행에 불공평하게 영향을 받지만그들의 억압은 궁극적으로 계급 지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는 매년 경찰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수백 명의 흑인 중 한 명일뿐이다비록 이러한 제도적 폭력 행위들은 인종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되지만경찰력이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방어하는 국가의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노동계급 내의 다른 하부집단들 안에서 인종적 역동성과 각 집단이 직면한 고유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자본가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 공유하는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인종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은 미니애폴리스와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흑인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저항해야 한다모든 인종의 노동자들은 해방을 위한 자신의 투쟁에서 계급의 전선을 따라 조직해야 한다이는 노동계급의 한 부분에 대한 공격이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3.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 칼 맑스, 1870

 

노동계급 내의 인종주의적국수주의적 사상들에 대해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사실, 1870년 영국또는 2020년 미국의 사업주들에게 인종주의는 근본적으로 분할지배 전략이다자본가들은 그들의 반동적인 선동가들이 백인 노동자들의 귀를 동료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사업주와 정부와 동일시하라고 말하는 국수주의적 사상으로 가득 채우며 즐거워한다. “마지막 고용첫 번째 해고라는 주제 아래흑인 노동계급은 극단적인 불안정으로 내몰려왔다그동안 백인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의 함정에 속아왔다그들 계급의 일부가 극단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에서그들은 이제 자본가들이 제안할 수 있는 삭감된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4. 크든 작든사업은 사업이다.

 

지난 세기소부르주아지는 공동체 의식을 자극하는 부부 경영”(영세 자영업개념을 이용해왔다이것은 특히 경제 위기 시기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다소기업은 언제나 착취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부르주아적 이상을 열망해왔다소수민 소유의 사업체들은 특히 미국에 와 새 출발을 하는 근면 성실한 이민자들로 묘사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을 대표한다이 성공적인 신데렐라”(자수성가이야기는 그들의 노동자 착취를 정당화하는 무기다미니애폴리스 시위 동안의 소상공인들이 보인 폭력적인 반응은 소부르주아지들이 항상 자신의 계급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소수민들이 소유한 사업을 지지하는 “POC 연대를 빙자해 시위하면서 경찰을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착취의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계급 부역자들의 시도이다그 대신 노동자들은 계급을 중심으로 조직해야 한다.

 

5. 자본가계급과 국가에 저항하는 과거 투쟁에서노동자들은 더 큰 운동과 연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미니애폴리스의 버스 기사들은 체포된 시위대를 이송하는 경찰을 돕기를 거부했다도시 전역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력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시위대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조치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우리는 미니애폴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의 거부를 촉진하고시위대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는 국가의 모든 책동에 저항해야 한다아마존(Amazon)과 인스타카트(Instacart)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필수업무 종사 노동자들은 시위대와 연대하는 파업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더욱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모든 산업과 부문에서의 조직화는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노동계급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6. 경찰의 만행은 오직 경찰의 폐지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경찰이 파렴치한 살인을 저질렀을 때이러한 살인을 멈추기 위한 다양한 개혁이 제안되곤 한다바디캠이 되었든추가적인 훈련또는 공동체 감시가 되었든그 목표는 경찰을 보호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민들을 위협하고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이러한 접근법의 문제는 경찰력은 자본을 대신하여 위협하고 살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경찰이 더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뿐이다.

 

7. 도시 반란은 세계혁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계급의 몇몇 부분들이 맞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동안질서가 회복되고 억압 구조가 재건됨에 따라 몇 주 후에는 점점 이 시위가 잠잠해져 갈 것이다자본가와 그들 용병들의 권력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그것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세계혁명당이 필요하다노동계급 손에 있는 그러한 당은 인종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억압된 분노를 노동자 권력과 코뮤니즘의 건설로 이끄는 도구가 될 것이다.

 

 

비타협 국제주의자 노동자 그룹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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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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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상 최초로 계급투쟁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혁명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창설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여전히 혁명적 소수는 세계혁명을 꿈꾸고 있다하지만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00년 전과 다르게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전쟁긴축환경파괴증가하는 빈곤에 맞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오히려 분열되고 해체된 상태로 생존의 위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의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건설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밝히는 것으로 대신한다.

 

미래의 세계혁명당은 (국가별당의 연합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인 당이어야 하고당 건설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의식과 투쟁력의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당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정치적 강령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따라서 필자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세력이 세계혁뎡당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쇠퇴기 계급투쟁과 정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단일한 국제적 혁명 조직을 의미한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혁명조직들(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과 조직)은 아직 계급투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세계혁명을 위해 자신들이 존재하고 그 역할을 현실에서 수행하는 것을 혁명운동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의 코뮤니스트는 과거와 다르게 계급투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과정을 현실에서 전개되는 그대로 이론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들의 분석은 여전히 아주 일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대대적인 노동자 투쟁의 경험이나 계급투쟁과의 직접적인 접촉도 부족하다과거의 혁명조직으로부터 오랫동안 단절된 상황에서, 100년 전 혁명가에게는 당연했던 것이 오늘날의 코뮤니스트에게 전설처럼 다가오고과거의 일상적인 실천과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은 오늘날에는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발상처럼 보인다코뮤니스트의 적극적인 역할계급과 코뮤니스트와의 관계계급투쟁의 개입 등에 대해 과거 코뮤니스트들은 구체적으로 논쟁하고 실천에 옮겼다하지만지금은 실천과 이론(논쟁모두에서 부족하다오늘날 이러한 혁명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이야말로 세계혁명당 건설의 전제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혁명당 건설의 이론적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세계혁명당 건설의 전제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 세계혁명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국제 코뮤니스트당(공산당)인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의 교훈으로부터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물론 그 이전의 인터내셔널과 혁명운동의 흐름에서도 교훈을 찾아야 하고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서도 물질적 조건을 찾아야 한다.

 

이글은 3개의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연합 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889-1914,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1919-1928)의 교훈그리고 1920년대에 타락해가는 제인터내셔널로부터 분리해 나왔던 코뮤니스트좌파의 분파투쟁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전망하는 글이다따라서 과거 인터내셔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비교하면서 발전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노동자계급에게 당(혁명조직)은 무엇이었나?

 

세계 혁명당 건설의 전제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혁명조직)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 개념은 노동자운동의 경험(코뮤니스트동맹국제노동자협회인터내셔널의 당코뮤니스트당)을 통해 이론적 실천적으로 조금씩 정련되어 나아갔지만결정적인 개념은 코민테른 시기까지 혼란이 계속되었다보기를 들어 1920~1921년 코민테른의 당에 대한 테제와 이론들은 1917년 볼셰비키의 실천을 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졸렬한 모방이나 변형에 불과했다이러한 혼란은 심지어 코민테른의 타락에 반대하여 투쟁한 좌익 분파마저도 명료화하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했다이것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전망하는 글에서 코민테른의 테제를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당은 무엇이었나당과 계급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필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투쟁혁명과 관련된조직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목적이 다른 두 가지 조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하나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단일)조직으로 전체 노동자를 공동의 투쟁으로 결집시키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다른 하나는 당과 같은 정치조직으로 이 조직의 목적은 계급의식의 발전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의 혁명적 본성과 목표를 인식해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역사적 조건 변화와 함께 자신도 변화하면서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지라도항상 존재했다.

 

먼저 대중조직의 진화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19세기 동안에는 노동자계급의 출현과 상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여러 형태의 대중조직이 발달하게 된다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었지만실업이나 병환 시의 상호부조를 위한 친목회인 노동자협회그리고 스포츠클럽이나 문화협회와 같은 모임까지 발달했는데이들은 노동자 대중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계급투쟁의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계급조직의 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05, 1917년의 러시아혁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 시기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첨예화되었다이제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조건 방어만이 아니라프롤레타리아계급과 인류 자체의 파멸을 초래할 제국주의 전쟁이냐아니면 세계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코뮤니즘의 건설이냐라는 역사적 선택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력을 향한 혁명 투쟁에는 부적절할 것으로 판명되었다대신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새로운 대중(단일)조직을 창조했다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옹호하기 위한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과 자본주의 질서의 전복을 위한 조직으로써 노동자소비에트를 만들어낸 것이다자본주의가 상승기에서 쇠퇴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대중조직도 변화한 것이다노동자의 대중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치조직의 형태와 역할도 물질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화했다.

 

1. 코뮤니스트동맹인터내셔널 시기의 ’ 개념

 

자본주의 초기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진 개별적인 계급으로 자각하지만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처음으로 독립된 행동체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당시 노동자계급이 만들어 낸 정치조직은 아주 작고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했다하지만그들은 즉자적인 계급투쟁을 넘어 노동자계급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었고이러한 경향의 가장 분명하고 역사적인 표현이 코뮤니스트동맹(Communist League)이었다.

 

근대 자본주의가 동틀 무렵인 19세기의 전반부에는 여전히 형성 단계에 있던 노동자계급은 지역적이고 고립적인 투쟁을 벌였고교조적인 학파종파 그리고 연맹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다코뮤니스트동맹은 이 시기의 가장 선진적인 표현이었던 한편동시에 그들의 선언문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시기를 예고했다.” (프롤레타리아계급당의 본질과 역할Internationalisme」 38, Gauche Commune de France(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1948년 10)

 

그 이후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되는 시기이다이 시기는 노동자계급이 쁘띠부르주아계급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던 시기이자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다양한 새로운 조직 형태를 실험했던 시기이다이 시기 최고의 표현은 파업하는 동안 파업파괴자들의 수입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이 설립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 Association, IWA)이다국제노동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그룹의 헌신적인 혁명가들이 (인민을 위해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점이다블랑키와 바쿠닌과 같은 인물과 그룹이 갖고 있던 이러한 시각에 반대해 제인터내셔널은 1864년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이 쟁취해야 한다.” 선언했다.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유럽 주요 나라에서 사회적 정치적 투쟁의 무대 위에 효과적으로 등장한 것에 해당한다그래서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모든 조직화된 역량을계급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함께 결집했다인터내셔널은 경제적교육적정치적 그리고 이론적인 노동자 투쟁의 모든 흐름과 모든 우발적 측면 두 가지 모두를 함께 모이게 했다그것은 모든 다양성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단일 조직의 최고점이었다. (같은 글)

 

불법조직이었던 코뮤니스트동맹은 여전히 종파의 시기에 활동했다하지만국제노동자협회(IWA)의 임무는 바로이러한 종파를 넘어서서 유럽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결집과 그들의 의식에 내재한 수많은 혼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물론 제인터내셔널은 이질적인 구성(노동조합협동조합선동그룹 등)으로 인해 제인터내셔널의 당이 가졌던 근대적인 의미의 당은 아니었다.

 

인터내셔널은 임금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적 정치투쟁 사이 분화의 시기를 나타냈다자본주의사회가 완전히 꽃핀 이 시기에 제인터내셔널은 개혁 투쟁의 조직이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확인을 위한 정치적 정복의 조직이었던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이고 혁명적 사명의 이론적 기초를 명확히 하고 정련함으로써 계급의 이데올로기적인 구분에서 더 높은 단계를 나타냈다.” (같은 글)

 

위와 같이 계급의 대중조직(노동조합)과 정치조직(사이의 구분은 제인터내셔널에서 분명하게 이루어졌다이러한 구분은 제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창립될 당시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최초로 역사의 현안으로 된 순간에 더욱더 분명해졌다새로운 인터내셔널에 있어서 계급의 대중조직은 더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자평의회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코뮤니스트동맹에서 코뮤니스트당까지 다양한 조직 사이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그들은 계급투쟁의 진로에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그런 의미에서는 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코뮤니스트동맹이 민주주의 운동의 좌익으로서 활동했던 혁명 시기(1848~1849)에 영향력은 여전히 미약했지만국제노동자협회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고무엇보다도 제인터내셔널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대중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2. 인터내셔널의 ’ 개념

 

인터내셔널은 1871년의 파리 코뮨의 패배와 이에 뒤이은 반동의 물결에 따라 사라졌다코뮤니스트동맹이 해체되었을 때미래의 새로운 당을 향한 가교 역할을 할 어떤 형식적 조직도 남아있지 않았었다하지만국제노동자협회가 사라졌을 때인터내셔널 창립의 기원이 될 조직이 남아있었는데독일의 사회당이 그중 하나였다.

 

당시 사회당은 혁명적 전망이 멀어진 시기에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특히 독일에서영향력을 얻었다대부분 노동자의 의식이 혁명적이지 않던 시기에 사회당이 얻은 영향력은그들의 강령 안에 사회주의의 전망을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의 개혁이라는 최소강령을 옹호했다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이들은 노동조합의 임무를 강조하고 당이 의회의 임무에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1902년에 벌써 카우츠키는 점진적인 운동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일한 임무는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가하는 것뿐이었다권력 쟁취는 더는 노동자 스스로가 부르주아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 ‘노동자들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당의 책무로서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맑스주의가 이렇게 완전히 왜곡됨으로써또 다른 왜곡이 나타났다프롤레타리아트당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필수적인 분파로 간주되지 않았다대신에 당은 통치 기구가 되었고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적으로 당을 신뢰하며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당에 위임해야만 했다.

 

이렇게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가 탄생하고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이끄는경제적 활동과 그들의 (의회 대중정당에 위임된정치적 활동 사이의 점점 더 날카로운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이것은 노동자 투쟁의 최종 목적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사회민주주의는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을 내세웠지만노동자계급의 대중 정치 기관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정치 기구는 당이었다만약 국가가 프롤레타리아당의 통제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면권력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 조직되고수행되며지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이었다이러한 책무를 위해특히 개량을 위한 투쟁을 이끌기 위해당은 대중적이고극도로 규율 잡히고 위계적인 조직이어야 했다부르주아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이 이렇게 사회민주주의의 발상에 심각하게 남게 된 것이다.

 

3.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당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혁명을 독립적인 정치적 당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내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투쟁의 목적은 정치권력의 장악이다정치권력은 오직 당에 의해서만 장악되고조직되고지도될 수 있다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당의 역할에 대한 테제, *필자 강조)

 

코민테른 2차 대회는 당의 역할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했다이 입장은 특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시기 대다수 혁명가의 입장이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 안에서 단호하게 행동했지만처음부터 노동자를 대신해서 권력을 차지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당노동자계급국가 사이 관계의 본질과 당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혼란이 존재했다. 1918년부터 계속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은 볼셰비키당이 정상에 앉아있는 국가기구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되어 왔다권력 장악 후볼셰비키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기관(소비에트)과 갈등하게 되고, ‘통치’ 당의 면모를 드러냈다이렇게 당의 권력이 소비에트 권력을 대체하는 것은 1920년대 초 트로츠키의 저작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에서도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리는 소비에트 독재를 당 독재로 대체했다고 여러 번 비난받았다그러나 소비에트 독재는 오직 당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고 완전히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당의 이론적 전망의 명확함과 그 강력한 혁명조직 바로 그 덕분에당은 소비에트가 볼품없는 노동자의 의회로부터 노동자들이 우위를 갖는 기관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제공했다노동자계급의 권력을 당의 권력이 이렇게 대체하는 것에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사실상대체란 전혀 없다.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표현한다역사가 그러한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당대의 질서가 되도록 만든 시기에코뮤니스트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 1920, 트로츠키, *필자 강조)

 

일단 당과 국가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언된 대표자가 되고 나자그들은 절대 틀릴 수가 없었고전체 노동자계급에 맞서게 될지라도심지어 학살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옳았다그 순간부터사회주의 자체는 당과 국가의 과업이 되어버렸다그때부터 러시아 국가는 소비에트를 파괴하기 시작했고이는 혁명의 힘을 파괴하고 반혁명으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했다.

독일 혁명가들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해 전적으로 명확하지는 않았다코뮤니스트들은 대체로 노동자평의회를 권력 장악을 위한 기관으로 보았다. 1920년까지 모든 경우에서코민테른은 혁명에서권력의 실천에서 평의회(소비에트)의 탁월한 역할을 강조했다그러나 어떤 코뮤니스트도어떤 혁명적 조직도지역 소비에트(이행기 국가의 토대)와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이의 혼란 또한 존재했다.

 

이러한 심각한 혼란과 함께코민테른은 통일전선의 개념대중 정당을 통해 최소 강령을 보호한다는 생각노동조합 과업의 필요성혁명적 의회주의 입장 등을 발전시켜갔다코민테른은 혁명적 물결의 퇴조에 저항하며 코뮤니스트 원칙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오히려 더욱더 이러한 후퇴에 전념하고 이러한 실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전술과 원칙 사이의 차이는 제인터내셔널의 안에서 그랬던 만큼이나 커졌다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기보다코민테른은 더욱 러시아 국가의 대변자가 되었고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선택했을 때 조종을 울렸다코민테른이 옹호한 이러한 테제들은 단지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를 옹호하기 위해서 제출되었을 뿐이었다바로 그 지점부터 볼셰비키당은 반혁명의 가장 유순한 도구가 되었다.

 

 

노동자운동에서 분파의 역사와 좌익분파의 투쟁

 

1. 인터내셔널의 배신과 분파의 출현

 

19세기 동안 맑스와 엥겔스가 이룩한 거대한 이론적 성취의 상속자들은 제인터내셔널의 좌파였다. 20세기 초이들 사회민주주의의 좌파는 건강하게 제인터내셔널의 테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이들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를 인식하고 그 시기에 비추어 혁명가들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그들의 첫 번째 행동은 베른슈타인카우츠키와 그 동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제 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이라는 궁극적인 목적 사이의 분리에 집중되었다.

레닌은사회민주주의당의 일부로서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을 보지 못했던 '멘셰비키에 반대하여’ 맹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또한그는 대중 정당이라는 사회민주주의적 개념을 버렸다레닌에게 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경제적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변환시킬 소수 전위 정당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제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이고 반혁명적 일탈에 대해 반대했다룩셈부르크는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의 통일을 주장했고방어적인 투쟁은 오직 권력 쟁취를 위한 최종적 정치 투쟁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좌파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의해 의제가 된 코뮤니스트 혁명의 필요성을 단언했다이들은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제인터내셔널과 노동조합을 결정적으로 삼켜버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반대하여 1915년 침머발트에서그리고 1916년 키엔탈에서 단호하게 일어났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진전은 대부분의 국제주의자들이 함께 모여서 독립적인 좌파를 조직했다는 것이다침머발트를 떠나기 전에 그들은 레닌지노비에프와 라덱으로 구성된 침버발트 좌파 서기국을 설립했다. 1916년 전쟁으로 인한 위기와 레닌이 예측한 위기는 유럽 전역에서 첨예화되었다사회민주당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침머발트 다수와 좌파 사이의 큰 차이는 균열이 되었다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난 후 레닌은 침머발트의 늪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좌파로만 구성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을 즉시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침머발트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까지코뮤니스트」 9이형로)

 

인터내셔널의 반동적 퇴행 속에서 최초로 진정한 분파가 출현했다최초의 분파는 볼셰비키분파로서,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대회 이후 처음에는 조직에 관한 문제를 놓고 그다음에는러시아와 같이 반봉건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임무와 관련된 전술 문제를 놓고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을 벌였다. 1917년까지는 볼셰비키분파와 멘셰비키분파가 서로 독자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수행하긴 했어도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당즉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ussian 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에 속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트리뷴을 중심으로 발전한 맑스주의 경향이 1907년부터 네덜란드사회민주노동자당(Dutch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 내부에서 비슷한 작업에 관여했다이 경향은 당내의 기회주의적 기류에 대항해 싸웠고, 1909년 3월 새로운 당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을 결성하게 된다. 1918년 11월 사회민주당은 네덜란드 코뮤니스트당(Communsit Party of the Netherlands)이라는 당명을 (독일 코뮤니스트당의 창립 이전에채택한다.

 

인터내셔널의 내부 분파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세 번째 경향은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립하게 된다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해서 만장일치로 전쟁차관을 통과시킨 1914년 8월 4일 저녁국제주의자 투쟁가들은 당내에서 이러한 지도부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로자 룩셈부르크의 거처에 모인다. 1914~1915년 겨울부터 불법 전단지가 유포되었다불법이라는 조건 하에서 탄압에 노출된 채, ‘스파르타쿠스그룹(Spartakusgruppe)’을 그다음엔 스파르타쿠스동맹(Spartakusbund)’을 이름으로 채택한 극히 작은 그룹은 전쟁과 정부에 반대한 투쟁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의 우파와 중앙파에 대항한 투쟁을 벌였다스파르타쿠스 멤버들이 혼자는 아니었다다른 그룹특히 함부르크와 브레멘에서의 다른 그룹은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멤버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국제주의적 정책을 옹호했다이러한 다른 경향은 1918년 12월 31독일 코뮤니스트당의 창립 순간에 함께 결집하지만새로운 당의 근간을 이룬 것은 명백하게 스파르타쿠스동맹 멤버들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좌파분파가 러시아네덜란드독일에서 보다 약간 뒤늦게 형성되었다이 분파는 나폴리에서 보르디가(Bordiga)와 그의 동지들이 1918년 12월부터 간행한 신문, ‘소비에트(Il Soviet)’를 중심으로 한 기권주의자 분파(Abstentionist Fraction)’이었는데공식적으로는 1919년 10월 이탈리아사회당(Italian Socialist Pary)의 당대회에서 한 분파를 이루었다. 1920년 10월 밀라노에서 통합코뮤니스트분파가 결성되었다투라티의 우익을 배제하고 코뮤니스트당을 건설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내놓았고코민테른의 제2차 대회의 결정에 따라서 선거 보이콧을 포기한다. 1920년 12월 이몰라(Imola)대회에서 분열 원칙이 결정되었고, 1921년 1월 21일에 시작된 리보르노(Livorno)대회에서 소수는 대회를 떠나서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Communist Party of Italy)으로 정착하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한 지부가 될 것을 결정한다.

 

2.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좌익분파의 투쟁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1919년 3월에 창설되었다인터내셔널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세기에 진입했음을 선언했다역사상 처음으로 제인터내셔널은 하나의 먼 전망으로서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긴급한 그리고 실천적인 필요성으로서노동자의 권력 장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프롤레타리아계급의 하나의 세계적으로 집중화된 정치조직의 건설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코민테른은 너무 늦게 창설되었고국제 혁명의 물결은 패배하고 쇠퇴했으며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고립되었다이러한 고립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퇴행에서 결정적 요인이었다이러한 사태 때문에 코민테른은 기회주의의 성장에 저항할 수 없었다반대로 코민테른은 죽었다.

 

코민테른을 평가할 때우리는 그것이 국제코뮤니스트당이었다고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그것의 실질적 퇴행 때문에 그것을 부르주아 조직으로만 보려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낼 수도 없다트로츠키주의는 초기 4차 대회를 계승해야 한다고 무비판적으로 주장한다창립대회가 제인터내셔널과 단절했던 지점에서그 후속 대회는 퇴행했다는 점을 그들은 결코 보지 못했다. 1차 대회는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분리했다그런데 3차 대회는 그에 반대해 통일전선’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진영으로 결정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인식한 후인데도코민테른은 3차 대회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사민주의당과의 동맹정책은 1930년대에 트로츠키주의가 입당주의’ 정책을 채택하게 했다입당주의란 곧 코민테른 1차 대회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사회민주주의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미 1920년대에 코민테른 내부에서 이러한 퇴행에 맞서 투쟁하려는 새로운 좌파가 만들어졌다그들은 특히 이탈리아네덜란드 그리고 독일 좌파였다. 1920년대 동안 배제된 이러한 좌익 분파들은 코민테른과 혁명적 물결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 죽어가는 코민테른과 미래의 당’ 사이에서 연속성을 보증할 정치투쟁을 지속했다.”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창설International Review」 57,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코민테른 안에서 이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전투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가장 암흑의 시기즉 1920년대 말에 시작한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끔찍했던 반혁명의 시기 동안 싸웠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이러한 반혁명의 상황 속에서노동자운동의 강력한 쇠퇴기 속에서 코민테른의 좌파 혁명가는 잊지 못할 투쟁을 수행했다이 점을 상기 하면서 코민테른 내부의 좌익분파의 투쟁을 살펴보겠다.

 

러시아 좌익분파의 투쟁

 

1918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안에서부터 좌익 분파가 등장했는데이는 볼셰비키의 정치에 대한 의견 차이의 표현이었다이것은 그 자체로 볼셰비키주의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증거이다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생생한 표현이었으며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실천에 대해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다볼셰비키는 혁명적 분파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이에 저항하는 당 내부의 타락한 목소리가 제시될 때마다볼셰비키주의의 원래의 강령에 대한 배신을 비판하기 위해 당 내부에서 분파들이 생기거나 해체되었다스탈린주의가 당을 무덤에 묻고 나서야 이러한 분파의 발생은 멈추었다당시 러시아의 코뮤니스트좌파는 모두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당 내부 분파 중 가장 선명했던 노동자그룹은 1922~23년에 결성되었다그룹을 주도한 것은 우랄지방의 노동자 미아스니코프(Miasnikov)였는데그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다른 투쟁가들과 함께 러시아코뮤니스트당의 노동자그룹을 창설했고 당의 12차 대회에서 그룹의 선언문을 배포했다이 그룹은 당과 노동자 사이에서 불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의 파업 물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당시 이 그룹은 대대적인 시위를 요구했고일차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시도했다이 시위로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는 당에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고미아스니코프를 포함한 그룹의 주도자들은 수감되었다하지만 그룹의 활동은 1920년대 말까지 불법적인 방법으로 계속되었다이때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해서 파리로 망명했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입장에 가까운 입장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L´Ouvrière Communiste)의 간행에 참여한다.

볼셰비키당의 퇴행에 맞서 투쟁을 벌인 모든 경향 중에서 노동자그룹이 가장 정치적으로 명확했다특히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혁명의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었다이 점에서 그들은 (당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민주주의의 문제와 경제 관리에 중점을 두었던 다른 그룹과는 상반되었다그들은 계속해서 코민테른의 첫 4번의 대회를 참조점으로 삼는 트로츠키주의 경향과는 달리 코민테른의 제3차 및 4차 대회의 통일전선 정책을 거부했다그럼에도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좌익과 노동자그룹의 인자 사이에 (특히 망명 중에토론이 있었다.

노동자그룹은 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일관되게 하나의 분파처럼 활동했던 유일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스탈린의 혹독한 탄압은 혁명가들이 이들의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2차 세계대전 이후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예상대로 그는 즉시 실종되었고코뮤니스트좌파의 미약한 역량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고 말았다.

 

코민테른 5차 대회 이후 시기는 코뮤니스트당의 지속적 볼셰비키화와 코민테른 우선회로 특징지어졌다당 대회에서의 논쟁 밖에서 노동자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레닌이 정치 활동을 포기하게 만든 이래 코민테른과 소련코뮤니스트당을 이끈 3두 체제(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가 1925년 말 와해된 것이었다. 1929년 봄 소련코뮤니스트당 15차 당 대회 준비를 위해트로츠키의 최초의 반대파와 지노비예프카메네프크룹스카야가 합세한 통일반대파가 결성되었다이러한 새로운 반대파 결성에 스탈린은 억압을 강화했다게페우는 지도자를 당에서 축출함으로써 반대파의 지역조직을 폐쇄했다. 1927년 10월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는 소련코뮤니스트당 중앙위에서 축출되었다지노비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항복은 러시아 좌파가 투쟁을 계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모욕위협당으로부터의 추방도 노동계급의 진정한 투사를 막을 수 없었다연속되는 새로운 타격에도 불구하고반대파 성원과 그 대표인 라코프스키는 계속되는 투항과 소련에서의 트로츠키의 추방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투쟁을 계속했다함정협박암살에도 불구하고 라코프스키와 반대파 중핵은 1934년까지 조직화된 투쟁을 지속했다그들 대부분은 진영 내에서 저항을 계속했다라코프스키가 투쟁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지노비예프와 그 추종자들이 했던 부끄러운 방식이 아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다른 나라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와는 다른 형태를 취했지만이들도 아주 일찍부터 코민테른 내부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노동자운동은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두 나라에서 혁명적 맑스주의 경향사이의 관계 측면에서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판네쿡호르터 및 얀 아펠과 같은 혁명가들로 대표된다그들은 처음부터 독일 노동자계급의 혁명 투쟁의 열기 속에서 단련되어 반동적인 차리즘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독일혁명의 사회민주주의적 사형집행인과 그들의 노동조합 심복에 대항했다이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러시아와 독일에서의 혁명으로 나타난 시대변화의 여러 의미를 가장 먼저 파악하게 된다노동자계급 이해의 옹호를 위한 의회의 이용 불가능성사회민주주의의 배반과 반동적 본질노동조합이 자본주의 국가의 옹호자이자 제국주의 전쟁의 신병모집하사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새로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와 같은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독일·네덜란드 좌파의 투쟁은 혁명 물결의 퇴조와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실패와 함께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이들은 정치조직 자체의 문제와 역사적 진로(계급 간의 힘의 균형)의 문제에 있어서 취약했다이들의 최종적인 실패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 힘의 균형의 진화에 대해 명확한 전망을 혁명가들이 가질 필요가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1921년 7월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지도부는 호르터의 지원을 받으며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의 모든 연결을 단절하고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 Kommunistische Arbeiterinternationale : KAI)’의 창설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호르터와 그의 지지자들의 오류는하나의 국제적인 좌파코뮤니스트 경향으로 재편성될 수 있는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이 코민테른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을 때 인위적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KAI)을 선언한 것이었다이 실수는 독일혁명 운동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1921년 즈음 세계혁명의 퇴조는 유럽에서 명백했고 이러한 퇴조로 인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설은 거의 불가능했다그 경로가 여전히 혁명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위기라는 이론을 가진 호르터와 에쎈 경향의 KAI 선언에는 특정 논리가 존재했다그러나 그들의 전제가 틀렸다.” (독일과 네덜란드좌파, Philippe Bourrinet, *필자 강조)

 

이후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일부는 1930년대 동안러시아에서의 혁명의 패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결정적인 문제와 직면하여볼셰비키당이 국가자본주의의 기관으로 변형된 것을 혁명 패배의 결과이기보다는 원인이라고 잘못 파악했다그래서 불가피하게 당의 반혁명적 본질을 이론화하고 노동자평의회를 현시기에 유일하게 가능한 프롤레타리아조직 형태로 간주했다결국, ‘평의회주의’ 경향으로 된 그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자신의 무용성을 이론화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이탈리아 좌파의 투쟁과 교훈

 

독일·네덜란드 좌파와는 반대로 이탈리아 좌파는 전쟁 동안 그리고 코민테른의 창설까지는 볼셰비키의 특징과 같은 비타협성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이들에게는 원칙에 대해 타협하고 원칙을 흐리게 만들어 혁명을 향한 지름길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가치도 없었고그러한 지름길은 패배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사실상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의 선두에 있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비타협성은 1920년 계급투쟁의 패배에 뒤이어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파시즘의 등장을 대항해 모범적으로 표현했다실천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비타협성은 파시스트의 위협에 직면해서 (진보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부르주아의 어떤 당과도 동맹을 맺는 것을 완전히 거부한 점에서 나타났다프롤레타리아계급은 오직 자신의 영역에서경제파업과 자기방어를 위한 노동자민병대의 조직을 통해서만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이론적인 수준에서 보르디가는 파시스트 현상에 대한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남아있는최초의 진지한 분석을 했다그는 이 분석을 코민테른 제4차 대회의 대표단에 제시하며 코민테른의 분석을 거부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의 산물도 아니고 부르주아 지주의 산물도 아니었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겪은 패배의 산물로서그 패배는 우유부단한 쁘띠-부르주아 계층이 파시스트 반동 세력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

파시즘은 봉건적’ 반동이 아니었다그것은 밀라노와 같이 모든 산업대도시에서 최초로 생겨났다. (...)

파시즘은 민주주의와 상반되지 않았다이것은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의 권력을 더 이상 방어할 수 없을’ 때 그것을 필수 불가결하게 보완했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이러한 비타협성은 통일전선정책사회당과 그 부수체에 대한 관대정책과 관련해서도 표현했는데보르디가는 노동자의 정부라는 구호는 코뮤니즘의 정치강령을즉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를 위해 투쟁하도록 대중을 준비할 필요성을 사실상 부정한다.” 고 비판했다또한비타협성은 1924년 7월 코민테른 5차대회에서 추진된 코뮤니스트당(CP)의 볼셰비키화정책에 반대한 것에서도 표현되었다.

보르디가는 1926년 2월부터 3월까지 코민테른의 제6대 확대 행정위원회 동안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그는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적 표류를 비난했고분파의 역사는 레닌의 역사이고 분파는 병도 아니고 병의 증상도 아니라 기회주의적 영향에 맞선 방어” 반응임을 시인하면서 이 문제가 당장의 사안이 될 것으로는 내다보지 않으면서 분파의 문제를 언급했다.

 

1927년부터 이탈리아 좌파의 투쟁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의 망명지에서 계속되었다이탈리아를 떠날 수 없었던 활동가는 감옥에 있거나 보르디가처럼 섬에 갇혀 있었다좌파는 활동가 다수가 축출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코뮤니스트당과 코민테른 내에서 싸웠다그들의 기본목적은 퇴행을 향한 피할 수 없는 경로를 바로잡기 위해 이들 조직 내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탈리아 좌파의 교훈은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코뮤니스트 소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운명의 한 표현으로서 영구적으로 존재한다그러나 소수가 노동자계급의 즉각적인 투쟁에 갖는 영향력은 그것의 수준과 노동자 대중 의식성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공개적이고 점점 더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시기에 만이 소수는 영향력을 갖기를 바랄 수 있다오직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코뮤니스트 소수는 하나의 당으로서 표현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프롤레타리아 투쟁이 역사적으로 퇴조하고 반혁명이 승리하는 그러한 시기에 혁명적 입장이 중요성을 띠고 계급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다그런 시기에는 유일하게 가능하지만극히 중요한 일은 바로 분파의 일이다즉 계급 역량의 균형이 또다시 코뮤니스트 입장이 프롤레타리아계급 전체에게 영향력을 갖도록 가능하게 만들 그때를 대비해 미래의 당 건설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다.”

 

좌파 분파는 프롤레타리아당이 기회주의의 영향으로다시 말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그 당에 침투함으로써 퇴행되어갈 때 형성된다혁명적 강령을 지지하는 분파의 책무는 당내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된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다그 분파가 성공한다면 그것의 원칙이 승리하고 당이 구출될 것이고그렇지 않으면 당은 퇴행을 계속하여 무기와 짐을 모두 넘겨주고 결국 부르주아 진영 안으로 전향하게 된다프롤레타리아당이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하지만이러한 전향의 가장 중요한 징후의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정치생활이 당 안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좌파 분파의 책무는 당을 바로잡을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당 내부에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다바로 이렇게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좌파 경향은 코민테른의 당을 떠나지 않았지만그런 당은 종종 야비한 술책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제명했다프롤레타리아당이 일단 자본주의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면 회귀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그러면 프롤레타리아계급은 혁명을 향한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당을 건설해야 하고분파의 역할은 적에게로 넘어가 버린 낡은 당과 미래의 당 사이에 놓인 가교가 되는 것으로미래의 당을 위해 강령적 기초를 세워야 하고당의 골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이 일단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면 당 안에는 어떤 프롤레타리아적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분파와 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International Review」 90,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필자 강조)

 

이후 이탈리아 좌파의 이론적 발전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떠나서 프랑스와 벨기에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스탈린주의화된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에서 축출된 채 그들은 미래의 당을 위한 이론적 틀을 준비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의 패배로부터 교훈을 배운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1933년 빌랑(Bilan)그룹을 형성했다빌랑은 러시아혁명의 변질에 대한 분석과 미래의 이행기의 문제에 대한 탐구경제 위기와 자본주의 쇠퇴의 토대에 대한 작업을 수행했다빌랑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당과 분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었다빌랑은 당을 계급의식의 능동적 인자이자 동시에 계급 전체 내에서의 의식 발전의 표현으로서 파악했다빌랑이 혁명은 당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을 때이것은 혁명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당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의 건설 자체가 혁명 문제를 제기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 전체의 능력의 표현이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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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당의 본질과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건설을 위한 준비

 

이상과 같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당 개념과 분파투쟁에 대해 코뮤니스트좌파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당에 대한 잘못된 개념은 역사적으로 혁명가들을 짓눌렀던 사회민주주의적 사고의 무게와 국제 노동자계급의 일반적인 정치적 미성숙함’ 때문이었다노동자계급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혼란은 노동자계급이 충분히 강하고 혁명적 운동이 고조될 때 구체적인 투쟁의 경험으로만 극복할 수 있지만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세계 노동자들의 힘이 강하지 못했고혁명운동의 퇴조 속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의 실천은 고립되었다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소수라도 노동자계급 전체의 활동을 대체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제 미래의 세계혁명당 건설의 이론적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필자는 당의 본질과 역할’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당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의 본질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필자는 계급투쟁의 교훈과 계급의식의 발전에서 당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그것은 과거 코민테른의 오류를 넘어섰던 빌랑과 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를 계승한 관점과 같다.

 

당은 계급투쟁의 진화를 따르고 역사의 각각의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유기체로서 특정한 형식에 조응한다. 19세기 전반에는 국지적 투쟁교리 학파정차동맹의 출현이었는데가장 발전된 표현이 코뮤니스트 동맹그리고 코뮤니스트 선언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나타났다인터내셔널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유럽 주요 국가에서 사회·정치적 투쟁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고 노동계급의 단일조직으로서 정점을 찍었으며 제인터내셔널에서는 임금 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정치투쟁의 분화로 나아갔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와 쇠퇴의 시기를 열었으며 코민테른에서는 투사의 철칙이라는 조직적 수단을 통해 대응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혁명이 조직 문제를 포함하지만조직의 문제는 아니다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넓은 대중 속에서의 의식의 성숙이라는 이념적 문제이다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도 어떤 당도 계급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들의 과업이다.’

 

당은 지시와 집행의 조직이 아니다이 기능은 계급의 단일조직에 속한다.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시기에 당은 전체주의 체제의 단일 당이 아니다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당은 국가와 구분된다.” (프롤레타리아계급당의 본질과 역할Internationalisme」 38, Gauche Commune de France(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1948년 10)

 

필자는 미래 당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미래의 당은 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노동자평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은 오직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이다하지만 당은 계급의 의식과 조직의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미래의 당은 국제적이다노동자 권력은 세계적 기초 위에서만 쟁취할 수 있다따라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국가별 정당이나 그룹의 연합이 아니라 세계적 기초 위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당의 건설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의식과 투쟁력의 발달에 의존하기 때문에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혁명적 소수(분파)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당을 건설할 분파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과 같이 계급이 후퇴하고 혁명가들이 극소수로 존재하는 시기에는 과거 좌익분파의 역할보다 훨씬 어렵고 장기적인 임무가 코뮤니스트에게 주어져 있다과거의 분파는 당 내부에서 (또는 당 건설 과정에서혁명적 원칙을 방어했고당이 회복하기 어려워졌을 때 신속히 새로운 당을 건설하는 역할을 했다또한 인터내셔널의 역사에서는 배신-타락하는 인터내셔널에 맞서 국제적 분파를 형성하여 투쟁했다지금의 코뮤니스트 분파는 내부 투쟁할 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또한과거 좌익분파의 후예를 포함하여 혁명세력은 아주 작은 경향으로 산산이 흩어져 국제적으로 혁명 역량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 코뮤니스트 그룹(분파)의 핵심 역할은 세계에 존재하는 취약한 코뮤니스트 세력을 재편하는 것이며국제적인 계급투쟁에 코뮤니스트들이 분산되어 개입하는 것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다그것의 시작은 (이미 산발적으로 하고 있지만국제대회의 개최와 국제적 공동행동이다이것은 제국주의 전쟁과 제2인터내셔널을 배신에 맞서 투쟁했던 침머발트좌파의 정신과 맞닿아 있고이러한 재규합의 결과로 국제적인 코뮤니스트 분파가 건설되어야 만이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다음은 아직 당은 아니지만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한 일관된 국제적인 조직의 중심(서기국)을 구축하는 것이다이를 통해 세계혁명()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혁명 그룹인자조직의 출현을 고무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적 에너지를 규합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이것만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세계 부르주아 계급의 공격에 맞서 혁명가들이 국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과 노동자 투쟁의 명확한 전망을 밝힐 수 있다.

 

그다음은 비로소 한 단계 진전한 분파의 역할일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필자는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을 위해 침머발트좌파와 같이 혁명가들이 재규합하고 개입할 것을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날 점증하는 착취와 가난에 직면해 프롤레타리아트는 다음과 같은 침머발트좌파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채택해야 한다.

경제 전쟁에서 부르주아지와는 어떠한 신성한 동맹도 없다

민족 경제를 구하기 위한 어떤 희생도 반대한다!

계급투쟁 만세!

경제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

 

 

<참고문헌>

 

좌익공산주의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 2008, 오세철

The Dutch and German Communist Left (190068), 1988 and 2008, Philippe Bourrinet

The Italian Communist Left 1926-45, 1992,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Communist Organisations and Class Consciousness,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Class Consciousness and Revolutionary Organisation, 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Internationalisme」 38, 1948, Gauche Commune de France

International Review」 29, 57, 90, 153, 156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The Role and Structure of the Revolutionary Organisation, 1978, 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

Terrorism and Communism, 1920, Leon Trotsky

Trotsky and the origins of trotskyism, 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실천」 2007년 11월호사회실천연구소

코뮤니스트」 7, 8, 9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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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실천 복간 3호」 사회실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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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민테른과 4차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

  •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코민테른과 4차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

  •  

    (Kommunistische Arbeiterinternationale : K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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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코뮤니스트 노동자 인터내셔널  :  평의회 인터내셔널인가,  지도부 인터내셔널인가?  (1922년, 코뮤니스트노동자당 발간)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이 창설될 당시 좌파의 입장이 대다수를 이루었다노동조합 문제에 있어서는독일코뮤니스트당의 강령을 작성하고 당 대회에서 제시했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매우 명확하고 범주적이었다.

 

“[노동조합은더 이상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확고한 옹호 기관이다결과적으로 그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 노동조합의 파괴 투쟁을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우리 모두는 이점에 동의한다.”

 

한편의회 문제에 있어서 당 대회는 당시 곧 있게 될 선거의 참여라는 스파르타쿠스동맹(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요기헤스 등)의 입장을 거부했다이 투사들이 암살된 후 새로운 지도부(레비<Levi>, 브란들러<Brandler>)는 노동조합 문제와 관련해서 처음에는 좌파(대다수로 남아있던)에 양보를 하는 듯 보였다하지만 1919년 8월 독일코뮤니스트당의 프랑크푸르트 대회부터독립사회민주당과의 친교 회복을 원했던 레비는 의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내에서의 활동을 선택했다그리고 그는 10월의 하이델베르크 대회에서는 계략을 써서 반노동조합 반의회주의적인 좌익 대다수를 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제명된 투쟁가들 대다수는 승복하기를 거부했다그들은 당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내부에서 거대한 권위를 갖고 있으면서 암스테르담 서기국의 건설을 추진하던 네덜란드 좌파 투쟁가(특히 호르터와 판네쿡)의 확고한 지지를 받았던 인터내셔널에 의해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활동을 조화시키고 조정하는 일에 임명되었다.

 

그 뒤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1920년 4월 제명된 투쟁가들은그 해 2월의 독일코뮤니스트당 대회가 그들의 재입당을 거부했던 것그리고 3월 13일에서 17일 사이에 있었던 발생한 카프-구테타 동안 독일사회민주당을 향해 당이 보였던 유화적인 태도에 직면해서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ommunistische Arbeiterpartei Deutschlands; KAPD)을 창설하게 된다그들의 접근법은 (노동조합과 의회문제에 관하여 그리고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적 전환의 거부에 관한 좌파의 테제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국제대회를 2월에 조직했던 암스테르담 서기국의 지원으로 강화되었다여기서 특히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의 일면은 영국의 코뮤니스트들이 노동당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표현되었었다.

 

새로운 당은 네덜란드코뮤니스당(CPN)의 좌파 소수(호르터와 판네쿡에 의해 주도된)의 지지를 받아 강화되었는데이 좌파 소수는 자체의 신문에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을 실었다그렇다고 해서 판네쿡이 (1920년 7월 5일자 편지에서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을 비판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그는 특히 (혁명적 생디칼리즘에의 그 어떤 타협에 대해서도 경고하면서) ‘유니언(Unionen)’에 관한 당의 입장을무엇보다도 당의 기초 단위 안에그가 괴물 같은 탈선으로 여긴 민족적 볼셰비키경향이 존재하는 점을 비판했다이 순간세계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직면한 모든 결정적인 문제들(노동조합의회사회당에 대한 태도러시아혁명의 본질 등등)에 있어서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다수에게 영감을 불러 넣었던 네덜란드좌파(그리고 특히 판네쿡)가 노동자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8월 1일에서 4일 사이에 개최된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대회는 이러한 지향에 찬성을 선언했고 그 순간에 민족적 볼셰비키는 당을 떠났다그리고 몇 달 후 연방주의자 인자들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이 코민테른에 참여하는 것에 적대적으로 되었다이 부분에 있어서 판네쿡호르터 및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코민테른에 남아서 인터내셔널의 점증하는 기회주의적 편향에 대항해 투쟁할 결심이었다이런 이유로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1920년 10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차 코민테른 대회에 참석을 위해 2얀 아펠(Jan Appel)과 프란츠 융(Franz Jung)으로 된 대표단을 러시아로 파견했다.

 

한편 이들로부터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다른 2명으로 된 대표단을 다시 파견했는데그 중 한 명이 오토 륄레였다그러나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고통받고 있던 재앙적인 상황과 정부기구의 관료주의화 과정에 직면한 그들은비록 그 대회에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표결에 참여하도록 위임되었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불참할 것을 결심했다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레닌은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Left 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를 작성했다이 팸플릿 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레닌이 코뮤니즘 안에서 좌파 교조주의의 실수는 우파 교조주의의 그것보다 천 배나 덜 위험하고 덜 중요하다.” 라고 썼다는 것이다.

 

한편에는 코민테른과 볼셰비키의 입장에서그리고 다른 한편에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입장 양쪽 모두에서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을 인터내셔널에 합류시키고 독일코뮤니스트당 안으로 수용할 진정한 의지가 있었지만이 가능성은 1920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이 재편되어 독립사회민주당의 좌파와 함께 독일통합코뮤니스트당(Vereingte 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 VKPD)을 형성함으로써 불가능하게 되었다그 재편 과정을 코민테른의 모든 좌파 경향은 반대했었다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동감하는 당의 지위를 획득해서 코민테른의 행정위원회에 상설 대표를 가졌고, 1921년 6월 개최된 제 3차 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러한 협력은 특히 (독일통합코뮤니스트당이 부추긴 모험적인 공격이었던 ) ‘3월 행동’ 이후 그리고 크론슈타트 반란의 진압(좌파는 처음에는 소련 정부의 선동에 따라 이 반란이 진정 백군 측의 작업이라고 믿고 진압을 지지했었다)으로 인해 심하게 악화되었다동시에네덜란드코뮤니스트당(CPN)의 우파 지도부(네덜란드의 레비<Levi>라고 불린 윈쿱<Wijnkoop>)은 모스크바의 지원을 받아서 당 규율에 위배는 방식으로 좌익 투쟁가들을 제명하는 정책을 펼쳤다결국 그해 9월 이렇게 제명된 투쟁가들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을 모델로 해서 새로운 당네덜란드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N)을 창설하게 된다.

 

코민테른의 제3차 대회에서 채택된 통일전선(United Front) 정책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이 독일통합코뮤니스트당으로 통합될 최후통첩이 제출되면서 단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1921년 7월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지도부는 호르터의 지원을 받으며코민테른의 모든 연결을 단절하고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 Kommunistische Arbeiterinternationale : KAI)’의 창설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요구는 9월에 계획된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대회보다 두 달 먼저 제기되었다그것은 분명히 성급한 결정이었다. 9월 대회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설에 대해 토론이 있었고(베를린의 투쟁가들 그리고 특히 얀 아펠은 그 안건에 반대했지만대회는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정보국의 설치를 결정했다이 서기국은 1922년 4월에 가서야 창립대회가 열리게 될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마치 이미 창립된 것처럼 행동했다그와 동시에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한편으로는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에 적대적이었던 베를린 경향(Berlin tendency)’ 다수파와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을 놓고 벌이는 투쟁을 거부했던) ‘에쎈 경향(Essen tendency)’으로 분열되었다.

 

오직 에쎈 경향만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KAI)의 강령을 작성한 호르터와 함께 그 창립대회에 참여했다참여한 그룹은 수적으로 적었고 매우 한정적인 역량만을 대표했다에쎈 경향 외에네덜란드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N), 불가리아 코뮤니스트좌파영국 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의 코뮤니스트노동자당(Communist Workers´ Party: CWP), 오스트리아의 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이 참여했는데이를 두고 베를린의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포템킨마을(과장된 겉치레)’이라 묘사했다.

 

결국 이 잔류파 인터내셔널은 구성요소들이 없어지거나 차츰 뒤로 물러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에쎈 경향은 여러 번의 분열을 겪었다네덜란드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처음에는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창설에 적대적이었던 베를린 경향에 우호적인 한 경향의 출현 때문에그런 다음에는 정치 원칙보다는 파벌 대립에 기반을 둔 내부적인 충돌에 의해 분리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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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이런 유감스럽고 극적인 실패를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코민테른(CI) 창설의 발판 역할을 했었던 혁명 물결의 썰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르터와 그의 지지자들의 오류는하나의 국제적인 좌파코뮤니스트 경향으로 재편성될 수 있는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이 코민테른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을 때 인위적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KAI)을 선언한 것이었다이 실수는 독일 혁명운동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 1921년 즈음 세계혁명의 퇴조는 유럽에서 명백했고 이러한 퇴조로 인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설은 거의 불가능했다그 경로가 여전히 혁명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위기라는 이론을 가진 호르터와 에쎈 경향의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KAI) 선언에는 특정 논리가 존재했다그러나 그들의 전제가 틀렸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독일과 네덜란드좌파(The German and Dutch Left)5, 4.d)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과 네덜란드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N)의 최종적인 실패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 힘의 균형의 진화에 대해 가능한 선명한 전망을 혁명가들이 가질 필요가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독일-네덜란드좌파가 그렇게 지체된 이후에라도 혁명 물결의 퇴조를 의식하게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호르터는 그가 사망하는 날 저녁에 쓴 마지막 글에서 자신의 실수를 파악하고 동지들에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런 오류로부터 교훈을 얻도록 격려했다.” (같은 책)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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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조국,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다

조국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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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가 말하는 공정성?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에도 여름부터 이어져 온 조국 사태는 끝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오히려 지난 몇 달은 서막에 불과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부르주아 분파 내 권력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검찰에 대한 여당의 견제조국 사퇴 및 반()문재인 집회 대 검찰 개혁 집회고위공직자비리수사(공수처찬반 대립으로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

 

조국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간 불평등을 공정성으로 덮으려는 지배계급의 행태와 부르주아 관료제의 실체부르주아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조국은 기자회견에서 위법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조국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역시 위법은 없었고 오히려 사법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내세웠다반면 또 다른 부르주아정당과 부르주아 관료조직(검찰)은 조국 임명 전후 연일 사모펀드 의혹웅동학원 의혹조국 딸의 진학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조국의 위선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사법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호명한 조국의 행태는 부와 지위를 세습하려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사법개혁의 대상인 검찰이든 수사권 독립의 혜택을 얻게 될 경찰이든 본질적으로 친자본적이고노동자 억압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또한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부르주아 정치인(가족 포함)들의 각종 의혹은 이제 더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이다노동자에게 이러한 사법개혁은 부르주아만의 게임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기회와 과정과 결과의 공정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그렇다면 부르주아 정당들이 공정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 물음 속에는 당연히 기회과정결과에서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는 논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이러한 전제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배한다는 부르주아의 허구가 재생산되고그것은 이데올로기로 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다하지만 자본주의 탄생 자체가 폭력적으로 인민을 생산수단에서 분리시켜 무산자를 양산하면서 이른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졌다당연히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기회와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조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조국 딸은 고등학생 때 의대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의대 교수와 함께 논문을 작성해 제저자가 되었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자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상상 너머의 현실이다즉 공정성은 계급 간 불평등을 덮으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일 뿐이다부르주아 공정성의 범위에 노동자는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부르주아의 공정성은 결국 노동자들 스스로 무능력을 체화시킴과 동시에 노동자의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단결과 연대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물리게 한다이렇게 해서 부르주아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으로 단결된 노동자계급이 아닌 개별적 노동자로 포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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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부르주아 민주주의 그리고 부르주아 관료제

 

자본의 탄생 자체가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강제적 권력의 뒷받침 없이 자본주의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사회적 지배-피지배 관계를 유지시키는 강권적 권력은 법적-제도적으로 자립화된 국가에 의해 독점되는 형태로서 나타난다그리하여 국가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관료층이 존재하게 된다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지배를 행하는 사회층 전체로 이루어졌고국가 관료층은 지배계급의 중요한 정치적 분파를 구성한다또한 부르주아 관료들은 한 사회구성체의 총체적인 재생산을 총괄하는 정치적 지배층으로자신의 존속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에 고유한 특수이익을 지닌 지배계급의 한 분파로서 사회의 경제적 지배층의 이익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신의 이익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사법개혁이 마치 공정한 국가정의로운 국가의 밑거름인양 떠들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철저하게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한다즉 사법개혁의 본질은 계급 지배의 정당성을 공고하게 할 부르주아의 철옹성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사법기구도 친자본적 반노동자적 억압 기구일 뿐이다.

 

자유주의의 기원은 부르주아가 봉건제적 질서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사적 소유권 보장과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성립되었다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에 의해 차별받는다유산계급만이 자유와 평등이 적용되었다프롤레타리아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기점으로 차별적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따라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확립하려는 계급적 이념이고민주주의는 신분 질서에 대항한 정치영역에서의 투쟁으로 성립되었다이는 부르주아에게 자유주의 내에서 민주주의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했다그래서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면서 부르주아의 권리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자유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과 노동자계급의 타협된 정치 기제를 제도화하였다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의 대응은 존 스튜어트 밀의 민주주의론에서 잘 나타난다밀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사회교육의 필요성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사회 환경의 조성을 제시했다그러나 그의 교육론은 교육을 받은 자만이 통치에 참여할 수 있다즉 우매한 인민 대중의 통치는 개인의 자유와 자발성개성을 억압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이처럼 부르주아에게 위험한 민주주의를 제한하기 위해 밀은 대의제차등대표제를 제안하였다이런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고자 평등을 자유와 조화라는 개념으로 변화 시켜 자유민주주의로 결합하였다.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발달에 힘입어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로 형성해 왔다이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 보호와 대중에 대한 무시와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특히 20세기 이후에는 대표 선출 기제나 절차로서만 파악하는 것으로 변했다그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자유와 경쟁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기회조건의 불평등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이해를 옹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하의 국가기구는 철저히 부르주아의 부와 지위를 재생산하고 프롤레타리아의 권리를 배제시키는 부르주아 독재에 불과하다결국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정치적 패배주의만을 조장하며 경제적 불평등을 무시하고 있다그래서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는 지금 제기되어야 할 현안이다.

 

이에 대해 맑스는 불공평의 근원인 자본주의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맑스의 이러한 분석은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한 현실 제도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점과 민주주의가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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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평의회 권력과 관료제

 

물론 노동자평의회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기 이후의 사회에서 가능하지만결론을 대신하여 부르주아 관료제와 대비되는 노동자평의회의 권력과 관료제로 갈음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새로운 노동자(프롤레타리아)국가의 계급적인 목적을 정치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체제이며경제적 변혁을 수행하기 위해 착취계급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사회화 부문을 점진적으로 전체 생산 부문으로 넓혀 나가는 사회이다프롤레타리아계급 독재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트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계급 안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 가능한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평의회 체제에 의해 중앙화(집중)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가장 먼저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관료제를 폐지하고 직접 권력에 참여한다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통치 기간 만들어졌던 모든 국가기구(의회행정사법부), 그리고 선출과 소환에 기반을 두지 않은 모든 관료제를 폐지한다.

 

 

노동자평의회 권력은 입법과 행정의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직접 권력이며노동자평의회만이 생산수단과 군대(무기)의 통제권을 갖는다노동자국가의 모든 행정기구는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여 감독하고 통제한다노동자평의회와 노동자 국가의 기구에서는 모든 서열과 직계호명을 철폐한다노동자계급에 의해 언제든지 선출되거나 소환될 수 있는 직위에 선출된 사람은 노동자의 평균 급여보다 높지 않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공공 업무 영역에서의 모든 특권과 차별은 즉시 철폐하며노동자 자기해방을 위한 정책과 개인에 대한 존중을 극대화하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시킨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평의회(노동자평의회지역평의회대표평의회)를 선출하고 소환할 권리를 가지며평의회 의원으로 입후보할 권리를 갖는다모든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는 평의회에서 표현되는데이것은 비()노동자계급도 마찬가지다노동자계급은 평의회에서 제안하고토론하고평의회의 승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한다.

 

대표평의회는 각 평의회에서 파견하여 중앙화된 계획과 정책을 집행하고모든 평의회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기관이다대표평의회는 어떠한 위임받지 않은 권한도 갖지 않으며파견한 단위에서 즉각 소환할 수 있는 평의회의 일부이다.

 

이렇게 평의회 체제는 낡고 부패한 부르주아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로 대체한 사회 자체이다평의회 체제에서는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가 최고로 꽃피어 언론회합집단 의사결정의 자유가 최대로 이루어진다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권력 참여만이 코뮤니스트 강령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반과 원동력을 줄 수 있다누구도 전체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활동 없이 코뮤니즘(공산주의)을 만들 수 없고누구도 코뮤니즘을 미리 준비해서 노동자계급에게 넘겨줄 수 없다서로에 맞서 분열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실천과 의식만이 어떠한 오류라도 정정하면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로 나갈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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