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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선거전술'과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강령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선거전술'과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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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주의의 덫 : 현재의 의회주의 덫에는 선거참여, 후보전술 자체가 포함되어 있다>

 

 

 코민테른과 의회전술, 그리고 의회전술에서의 혁명적 전통

 

'선거전술' 문제는 일찍이 코민테른 시절부터 볼셰비키와 공산주의좌파 사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레닌과 호르터의 논쟁, 트로츠키와 보르디가의 '혁명적 의회전술' 과 '보이콧전술'등으로 알려져 있는 선거전술문제는, 흔히 알려진 대로 ‘부르주아 의회를 통한 혁명 전략의 부정’이나‘부르주아 의회(선거)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본질이 아니다.

 

이것의 본질은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과,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일정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의 혁명적공산주의자들의 반의회적 혁명 전략이 대립한 결과이다. 당시의 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계급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의회를 이용하기 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기를 들어, 유럽 공산주의 좌파 중 레닌의 노선을 가장 원칙적으로 지지했던 이탈리아의 보르디가는 코민테른에서 트로츠키의 '의회 전술'에 반대해 '보이콧 전술'을 주장한 반면, 레닌이 지지했던 유럽의 공산당들과 의회에 진출한 공산주의자들은 호르터의 경고대로 기회주의 세력의 본질을 드러내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에 투항했다.

 

이와 같이 코민테른 시기의 의회전술은 그야말로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발전수준에서 국가나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 정세적인 측면에서도 계급투쟁이 혁명적으로 고양되었던 시기와 퇴조기와 반혁명의 상황에 처해있던 정세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혁명적 원칙을 도출해내야 할 문제였지, 짧은 시기 정세의 주도권 장악이나 사회주의의 대중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단기적 전술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문제는 퇴조기, 반혁명의 시기에도 대중성과 대중적 영향력을 포기 하지 않고 '사회민주주의로의 복귀'까지 하면서 살아남은 트로츠키주의 흐름들이다. 이들이 반동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 대중들에게 혁명적 소수로 남아 혁명적 원칙을 방어하면서 계급투쟁의 부활과 계급의식의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마지막 착각이었던‘늘 대중과 접촉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 대중들과 함께 하고자, 원칙을 버리고 우경화되면서까지 생존하려했던 전술들이다. 그 정점에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나 적합한 '의회참여' '입당전술'을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 있으며, 이제는 도를 넘어 시대나 정세와 관계없이 낡은 선거전술을 '원칙'으로 박제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80년이나 지나버린, 쇠퇴하는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반화 된 현재까지 이와 같은 의회전술을 가능한 모든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트로츠키의 성과와 과오 모두를 계승하는 위험한 운동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혁명적 소수로써 맑스주의 전통을 이어온 공산주의 좌파들과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들은 대중적 의회전술이 아닌'반의회적 혁명노선'을 고수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쇠퇴의 단계(현상)가 뚜렷해진 1980~9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의회전술의 이용자체가 혁명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강령에서 부터 명확히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와 '의회주의 환상'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고유영역에서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이 상반된 두 흐름은 현실에서도 부르주아 정치의 좌익을 구성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정당)들과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혁명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주의, 공산주의 정치조직으로 나뉘어, 지도력 획득을 통한 계급대중의 전취를 위한 운동과, 계급투쟁에의 공헌과 계급의식의 혁명적 발전을 위한 운동으로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의회전술의 강령적 사례와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

 

그렇다면 위의 두가지 경향을 대표하면서 현존하는 정치조직들이 의회전술을 강령에 담아내는 방식과 원칙들, 그리고 실천은 무었인가?

 

아래의 사례들은 현존하는 정치조직들이 채택하고 있는 강령에 나타난 의회전술에 관한 원칙들에 대한 비교 분석이다.

 

 

1. 4인터내셔널을 위한 공산주의자 조직>(COFI)의 정치적 결의 (2003년)

 

“일부 공산당, 사회민주당, 노동당에 대한 참여와 선거에서의 비판적 지지는 그들이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기층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전술이다. 이것은 노동자 대중들이 그 당들을 공공연한 부르주아 당들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라고 여길 때, 그리고 그것이 그 당들의 배신을 폭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때 사용되는 전술이다. 우리는 그 당들이 선거에서 영구적인 지지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의 기구라는 관점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 또는 스탈린주의 당에 대한 장기간의 입당 전술을 거부하며, 장기간의 통일전선도 거부한다. 그러한 두 가지 전술은 결국 전략이 됨으로써 전위 정당의 형성을 가로막게 된다.”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전략으로서 선거주의를 거부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개량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대중화할 기회를 잡기 위하여 부르주아 선거에 선전, 후보, 비판적 지지 전술들을 갖고 개입해야 한다. 레닌주의자들은 대중들이 그들의 의지를 실행할 진정으로 혁명적인 대안적 수단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선거에 대한 보이콧을 거부한다.”

 

정통 트로츠키주의(제4인터 재건)를 전면에 내세운 조직의 강령인데, 선거전술을 강령에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이 강령의 특징으로는 트로츠키의 입장에 충실하기 위해 입당전술, 비판적 지지전술 모두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혁명 전략으로서의 선거주의는 원칙적으로 거부한다고 하면서, 선거주의의 반대인 보이콧 전술 또한 혁명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혁명 전략은 선거가 아닌 보이콧을 기본으로 하는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혁명인데, 일상적인 전술은 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주의를 알려내는 것이라면서, 전략과 전술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즉, 부르주아 의회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과 거부와 실질적 타격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혁명적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부르주아 선거에 적극 개입하여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경쟁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르주아 선거에서는 나쁜것과 좀 더 나은것이 존재할 뿐, 혁명적인것은 존재하지 않은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결과이다. 이는 자본주의 쇠퇴가 전면화 된 시기, 일반적인 투표거부 현상과 부르주아 지배도구로써의 의회주의 환상에 대한 분쇄의 절대적 필요성을 자신들의 조직확장과 사회주의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덮어버린 결과이다.

 

 

2. 국제공산주의흐름(ICC)의 강령 (1976년)

 

“자본주의 체제가 그 쇠퇴기에 진입하면서, 의회는 개혁을 위한 도구이기를 멈춰버렸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그것의 11차 회의에서 표현했듯이:

 

"정치적 생활의 중점은 의회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궁극적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그 이후부터 의회가 수행할 수 있던 유일한 역할, 즉 그것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것은, 신비화의 도구로서의 그것의 역할이다. 이렇게 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의회를 어떤 형식으로든 이용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했다. 노동자계급은 모든 정치적 기능을 잃어버린 하나의 기관으로부터 불가능해져버린 어떤 개혁도 획득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근본적인 과제가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들 및 그와 더불어 의회를 파괴하는 것에 놓여 있는 이때,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보통선거권의 잔해 위에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재들 위에 그 자신의 독재를 건축해야하는 지금, 의회와 선거 캠페인에의 참여는 - 그것의 대변자들에 의해 추구되는 의도들과는 무관하게 - 단지 죽어 가는 육체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결과 시킬 뿐이다.”

 

“혁명적인 의원들"이 참여한다고들 하는 "내부로부터의 의회 파괴"의 전략은 그러한 시도를 수행했던 정치적 조직들의 부패 및 그것의 자본주의에 의한 흡수 이외의 어떤 다른 결과도 확실히 보여주지 않았다”

 

“끝으로,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의회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의 자립적인 활동을 대가로 하여 정치적 정당들의 음모들을 조장하는 전문가들의 문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직접적인 가능성이 아니었던 시기에는 그러한 단점들이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결정적인 장해물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지금 역사의 주요 관심사에 놓여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유일한 과제가 바로 낡은 사회질서의 전복 및 하나의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제는 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혁명적 의회주의’의 초기 전술들이 주로 노동자계급과 그것의 조직들에 대한 과거의 무게와 영향의 한 표현이었다면, 지금 그러한 전술들의 무서운 결과들은, 그 전술들이 이제 계급 내부에서 단지 반혁명적인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혁명적 의회주의"를 대변하는 그러한 흐름들은, 의회주의를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의 한 도구로 제시하는 그러한 흐름들과 더불어 지금은 부르주아 진영의 결정적인 부분들이다”

 

맑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연맹, 3개의 인터내셔널 그리고 타락해가는 제 3 인터내셔널로 부터 분리해 나왔던 공산주의 좌파와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 공산주의 분파들의 연속적인 공헌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ICC의 강령이다. ICC의 의회전술에 대한 강령은, '혁명적 의회주의'를 대변하는 흐름들(트로츠키, 스탈린주의 분파들)을 부르주아 진영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코민테른과 제4인터내셔널 이후 이들의 정치노선의 우경화, 그리고 혁명운동과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현재의 역할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준 사실 규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혁명적 의회전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ICC의 강령에는 의회전술 대신 보이콧 전술을 사용하자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 제시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시기에 부르주아 정치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세력에게 결정적인 장애물일 뿐이라서 그러한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적 상황과 과제가 자본주의의 개혁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타도와 공산주의의 건설이라는 직접적 목표가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계급투쟁이 대대적으로 분출할 때 의회주의 환상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계급투쟁이 혁명적으로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선거시기부터 의회주의 환상을 걷어내는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의회제도에 대한 직접적 타격이 가능하기 위해서 혁명세력은 노동자계급에게 수동성을 조장하는 의회전술을 무력화시키고 반드시 노동자계급 고유의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우리 정책의 강령적 기초 -프랑스 <노동자 투쟁> (2003년)

 

“노동자들의 권력은 부르주아 국가와 정반대가 될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겉으로 가장 민주적인 옷을 걸치는 경우에도 부르주아 소유권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방어한다는 근본적인 역할 때문에 독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처음부터 모든 부르주아 체제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경우보다도 더 민주적일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 체제에서는 선거제도라는 덮개 아래서 거대 기업이 자신의 고유한 독재를 강요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스스로 소멸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에 의해 대체되도록 설계된 형태의 정치권력이 될 것이다.”

 

“노동자 계급 속에 갖고 있는 우리의 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공들이 선거에서 몇 번 있었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과제는 여전히 20년 또는 30년 전과 같다. 우리의 선거 영향력이 별 것 아니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혁명 정당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나라 민중들 또는 특히 프랑스의 억압받는 민중들을 지지하는 많은 시위들에 참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선거에 나서는 것을 하나의 의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활동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 건설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에 종속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트로츠키계열 합법정당의 강령이다. 국제주의 공산주의자 연합 (International Communist Union, ICU)은 우리에게 LO라고 알려져 있는 노동자 투쟁(Lutte Ouvrière)을 중심으로 한 그룹으로, 한국에서는 노건투 흐름의 일부와 친화적이다.

 

이들의 강령 또한 앞에서는 부르주아 선거제도를 반대하면서도, 뒤에서는 선거개입을 공산주의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앞서 말한 대로 트로츠키주의의 일관된 전술 원칙이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선거참여 정당 중 가장 왼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혁명적 공산주의자들(ICC를 비롯한 10여개의 반의회주의 혁명 조직들)로부터는 여전히 '부르주아의 좌익' 또는 '선거주의 세력'으로 규정받고 있다.

 

참고로 유럽이나 북미지역 같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최대치? 로 전면화 된 국가들에서는 '혁명세력' vs '체제 내(합법) 세력'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강령의 내용을 따지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혁명세력이라 자처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들은 오히려 선거참여 여부를 그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선거 참여, 개입 세력은 극좌파로 인식할 뿐 혁명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음)

 

한국의 다함께와 같은 반자본주의 조직이 과거 민노당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IS사건이후 조직보존을 위한 선거참여, 의회주의 정당 참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즉 합법정당으로의 입당전술, 선거참여는 한편으로 공안기관과 국가보안법 등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해주고, 한편으로는 손쉽게 선거공간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강으로 대중들에게 사회주의의 내용을 알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끊임없이 우경화와 제도화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회전술은 이런 흐름의 조직들이 일정정도 규모가 커진 다음에는 조직유지를 위해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라는 것이다.

 

의회전술에서는 '노동자들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정당과 단절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정세의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라는 논리로 이 모든 것이 합리화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입당전술, 선거전술을 사용해 온 지난 수십 년 간, 노동자들이 조직과 자금을 댄 노동자당들은 부르주아 정치의 한축이 되었으며, 선거 참여 속에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회주의를 강화하는 선거시스템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고, 정세의 주도권은 항상 부르주아의 정치일정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4. 혁명당 국제서기국(IBRP -현재는 ICT), 1997

 

“자본주의 지배의 보편적 성격은 보편적 혁명 전략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은 모든 나라 공산주의당의 기본 원리다. 특수한 상황에서의 차이, 더 구체적으로 전 세계에 대한 부르주아 지배의 사회·정치적 형식의 다양성은 서로 다른 전술적 접근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조직의 전술은 항상 보편적 혁명 강령의 기초 위에서 규정될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고, 그것은 현재의 제국주의 시대에 되풀이 될 수 없다. 어떤 초보적 자유를 위한 요구가 혁명 선동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공산주의당 전술은 국가의 전복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자유가 의회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릴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 백치병’(맑스)의 환상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무화과 이파리일 뿐이다.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 국가관료, 그 보안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의회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환상을 준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지에게 쓸모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의회선거에 반대한다.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이 표현과 조직의 완전한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가 당에 달려있다.”

 

ICC강령과 같이 반의회주의 혁명 노선을 갖고 있는 ICT의 강령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강령은 IBRP가 만들어질 당시에 세계혁명당 건설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국제주의 원칙과 세계혁명의 보편적 혁명 전략을 내세운 기준강령(혁명당 서기국의 역할)을 채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선거전술에 대한 원칙도 특정국가의 상황이나 정세판단이 아닌 국제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단호하게 부르주아 영역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영역에서 투쟁하라는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즉, 보이콧 전술도 선거전술 이라기보다는 혁명세력과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선거를 당연히 거부하는 기본입장일 뿐이고, 오히려 노동자(계급)투쟁의 영역에서 고유의 전술을 적극적으로 펼치라는 이야기이다.

 

 

5. 더 나은 세상 이란 노동자-공산주의 당 강령

 

“자본주의 사회, 시장에 기초한 사회,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자발적이고 동등한 계약을 맺는 ‘자유로운’ 행위자들로 묘사되는 곳에서는, 투표권, 의회, 선거제도가 부르주아지의 계급 재배를 위한 정당성을 획득하는 주요한 형태들이다. 겉보기에 국가는 국민의 직접적인 투표에 의해 형성된, 국민 모두에 의한 정치적 통치 도구다. 확실히, 역사적 견지에서 보면, 투표권과 의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시민권을 증진하기 위한 투쟁에서 얻은 중요한 수확이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체제에서 사는 것이 군사 또는 독재 체제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참을 만하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들이 현대 국가의 계급 본성을 숨길 수는 없다. 가장 선진적이고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의회 제도에서조차 노동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정책과 활동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거의 없다. 의회 제도는 상대적으로 덜 공개적이고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총선거를 통해 지배 계급의 상이한 부분들 사이에서 정부의 위치가 교체되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의 정치·경제적 삶에 대한 전체 부르주아지의 의문의 여지없는 지배를 보증해주었다. 의회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이란 공산주의당의 경우에는 원칙적인 의회민주주의의 반대를 표현했을 뿐, 선거전술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는 이들이 트로츠키주의 영향력 하에 있지 않음을 나타내주면서도, 한편으로 적극적인 선거거부를 표명하지 않은 점은 인터내셔널의(국제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란이라는 일국내의 공산주의당을 표명하는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강령은 최소한 전략과 전술이 모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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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 :  부르주아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것은 현 자본주의 위기가 의회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나가며

 

이상과 같이 '선거전술'문제는 강령상의 문제임이 확인되었고, 원칙문제에서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 선거에서의 '선거개입' 과 '선거거부'라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조직과 앞으로 건설될 혁명당은 '선거전술' 문제를 강령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강령을 타협의 산물이 아닌 실천의 지침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혁명과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이라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혁명적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임무임을 명심하고, 반의회적 혁명전통을 실천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차이를 덮어 일시적으로 현재를 유지하는 것은 100여년 혁명적 공산주의의 전통에서 멀어지는 길 뿐이다. 사상투쟁을 회피하거나 두려워말고, 더욱 원칙적으로 혁명적으로! 국제주의, 혁명적 공산주의,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넓은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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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거역하는 노동조합

혁명을 거역하는 노동조합

                                           - G.무니스

 

 

Unions against revolution - G. Munis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두 가지 사이에 가장 명료하게 유기적, 기능적인 구분을 가정한다고 할지라도, 그 둘 사이에 모순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떠한 반동적인 개념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적 조직인 노동조합과 이데올로기 기구인 정치적 정당사이의 상호소통, 동의와 협력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그리고 다른 한쪽이 그 한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러한 진술은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에 의해 검증되고, 이성에 의해 증명된다기보다는 오래된,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나온다. : 모든 관념이나 정치적 행동은 경제적 기반으로부터 나오는데 이는 통제하고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정치학과 경제학 사이의 상호침투를 시험 할 것이며, 노동조합이 현재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노조를 평가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방어적인 조직으로써 처음 나타났던 노조들은 인간이하의 노동환경에 직면했고, 오래된 친목단체나 회사의 확장으로써의 산업적 측면에서 그들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노조는 그들의 열망에 기반 해서 개량주의 수준에까지도 도달하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이며 경제적인 분석을 이용하자면, 개량주의는 혁명적인 행동에 대한 요구 없이 법적인 발전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조합들에게는 발전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물음은 전혀 없었으며 더군다나 사회주의에 대한 물음조차 없었다. 노조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좀 더 참을만하고 덜 굴욕적인 노동환경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왔듯이, 자본에 좀더 적합한 노동환경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노조들은, 혁명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노동계급의식을 가지며 오늘날의 노조들의 왜곡된 계급의식, 타락과는 대비되는 건전한 구성을 가진 조직이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소위 혁명적 조합주의(생디칼리즘)가 나타났다. 이는 상황에 맞는 취사선택 이론이었으며 , 맑시스트 개념으로부터 나온 소위 무정부주의적 정치주의와 오래된 노동조합부터 만들어진 엄격한 경제적 주장을 압도한다. 가장 위대한 흐름의 시기와 이러한 형태의 조합주의의 공세가 개량주의의 정점과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에 역설은 없다.

 

 소렐과 베른슈타인은 동시대인인데다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렐이 생디칼리즘에서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 반해, 베른슈타인과 그의 경향은 의회주의 안에서, 심지어 자본축적의 필요성 안에서 사회주의 사회에 대항하는 확실하고 조화로운 발전의 행복한 기계장치를 추구했다. 실제로 혁명적인 생디카리즘과 개량주의는 부르주아계급의  무서운 경제적 욕망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 기간 안에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개화가능성의 절정과 엄청난 크기의 자유의 부여, 좌파에 기대는 (그들의 이상적-경제적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1914년의 정치적 파산은 생디칼리스트들,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진행될 수 있었다. 비록 스페인의 군사적 중립이 프랑수의 C.G.T. 의 항복의 문서와 자세에 대해 자비를 베풀었지만 스페인의 C.N.T 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그것의 파산은 1936년과 1939년 사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에 일어났다.

 

 노동조합의 수치적인 증가와 사회적 힘은 1914년 이후 계속적으로 증가했으며, 프랑스와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만약 그들의 수치로 인한 힘이 지난 몇 년간 심각하게 줄어들었다면 그들의 중요성은 점차로 커져왔다. 노동조합들에게 1914년의 참사는 그들 자신의 것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이야기 되어져왔다. 이것은 그때까지 자본주의가 노조를 파괴적인 힘으로 두려워했고 노조가 할 수 있는 협력적인 역할을(아마도 영국을 제외하고는)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공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지배”라는 수많은 경험들은 자본가들이 만족할만한 효과에 의해 그들을 만족시켜왔다. “노동자들의 지배”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켜왔고, 공장의 공정과정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산출을 증가시키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특별히 자본주의적인 총체인)조국의 방어자로서 뿐만 아니라 착취의 구조 그 자체 안에서의 효과적인 부역자로서 눈에 띄었다. 그것은 그들의 부를 만들었고 그들에 대한 의심되지 않는 지평으로서 열렸다.(?) 그러나 이는 노조가 그들의 결정적인 방향을 정했던 국제노동운동사안에서의 (여러 가지 이유로)매우 중요한 기점이었던 1936년과 1937년 사이의 일 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굳건한 기둥의 하나가 되어가는 데 대해 고마워하는 성질을 보여주었다.

 

 20년의 시간이 러시아와 스페인의 혁명을 분리 시켰고, 이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공격의 폭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많은 나라 안에서의 부단한 공격에 의해 주목받는 공격이었다. 스탈린 관료주의가 국가자본주의의 건설을 완성하고 스페인 혁명이 최고조로 달한 그 순간, 스탈린주의자들은 모든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을 총과  온갖 중상모략, 비방을 통해 제거했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조직적인 요소들과 타락한 모든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결정적인 방법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국제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 스페인에서 ‘러시아지배 공산당’은 그 자신의 보존의 요구에 의해 질질 끌려 다녔고, 이는 원칙적으로 반혁명적인 경찰력이었음이 밝혀졌다.  1936년 7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대를 파괴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반란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다행히도) 헛되이 끝났다. 1937년 5월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를 기관총으로 쏘려했는데 프롤레타이라는 C.P.의 반동적인 경찰에 대항해 반항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물리치고 무장해제 시켰으며 혁명을 부숴버렸다.  1936년에 군대가 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스탈린주의는 10개월 후 이룩하였다.

 

 처음에 모스크바는 그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반혁명적인 힘으로서 직접적으로 행동했다. 현재까지 이사건의 엄청난 반동적인 결과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서 이야기하는 세계의 중요한 모든 행동들의 원천이었다 : 히틀러-스탈린 협정과 두 번째의 “위대한 전쟁”으로부터 “평화로운 공존”의 정책과 독일, 폴란드, 헝가리에서와 같은 반란까지. 후자는 1937년 5월의 스페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36년 7월 폭동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 것이었는데 이는 프랑코의 군대 안에서 스탈린의 군대와 경찰이 함께 했다. 헝가리에서의 Imre Nagy와 그의 동료들은 1936년 스페인의 ‘대중 전선’과 같았다. : 혁명적인 격변기의 부산물이지만 혁명의 핵심은 아니었다.

 

 노조가 자본의 보조적 기관으로서 그들을 명백히 했던 잠재적 특성을 드러냈던 1936년 즈음은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을 위해서 (영국과 미국의 노조의 예를 제외하고)노조 안에서 큰 흐름을 성취해낸 것이 스탈린주의라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험론은 러시아의 반혁명적 경험주의 안에서 보다 높은 정치적 표현을 찾아냈으며 그것을 고무시켰고 동시에 완벽하게 했다.  이들 두 가지 요소는 좀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서 섞이고 병합되었다.  현재 이러한 환경은 다소간 완결된 형태로 존재한다. : 현 상태에서 “후퇴한” 나라를 포함하여 각각의 국가를 따져 봤을 때 이것은 독립된 하나의 경우가 아닌 세계체제전체의 일부분으로서 그것은 자본주의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파업할 권리에 대하여 좀 더 굳건하다고 자부하며, 그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진 서구를 살펴볼 것이다. 실상 이러한 권리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그들의 대표, 즉 노조가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노동자 자신들에 의해 일어나는 파업은 그것을 파괴하려는 노조나 국가와의 제휴를 맞이하게 된다- 종종 노동자들의 직접적 패배에 의해서 혹은 노동자들에게 중재안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1936년의 프랑스의 혁명적 파업이 공산당(토레즈:“누군가는 파업을 끝내는 법을 알아야한다.”)과 사회주의 정당(Blum 정부와 경찰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명령받았다.)에 의해(파업이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에 반대하기 때문에) 실패한 이후로, 거의 모든 나라는 파업이 노조에 의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파업은 노조에게 위임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항상 파업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넘어서, 계급투쟁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 자본과 노동의 일상적 관계 안에서 노조는 둘 사이의 완충장치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노동자로의 메신저로서의, 노동자를 자본의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을 돕는 앞잡이로서 나타난다. 노조에 의해 독점되어버린, 자본에 대한 노동의 모든 투쟁의 표현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린다.

 

 우리는 위에서 한 논증의 말들이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라는 것만을 상기해야만 한다. 공장위원회 뿐 만 아니라 매장, 상점 혹은 직업적 영역의 대표들은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들의 선출방식이 선거라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자유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그들은 노조를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누군가를 선출하는데 자유롭지 못하다. : 유명한 영국 상점의 지배인들이 산별노조의 동의를 원한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적으로 노조는 노동계급을 대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그들 자신들을 대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국가나 고용주들과의 협상을 하기위해, 그들의 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노조 아닌 다른 기관을 만들 권리는 더더군다나 없다. 노동계급의 권리와 노조의 권리는 명백하게 둘로 나뉘며 상호 모순적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과 공장위원회, 상점대표사이의 대립-잠재적인 형태로 늘 상 존재하는 대립-은 고용주와의 대립이 있을 때마다 첨예해지고 투쟁이 광범위해지면 직접적인 대립으로 변한다. 지난 20년간 이름 있을 만한 모든 파업은 노조의 의지에 반하고 공장안에서의 대표자들을 포위해야만 했다. : 노동자들 자신들은 파업위원회를 선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된 공장위원회나 파업위원회는 매번 노조지도자들에 의해 그들 스스로 설득당하도록 허락했고 자본은 우위를 점했다.

 

 단체 노동협약의 목적은 다양한 영역에서 고용주의 횡포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 노동조건과 근무시간, 착취의 강도(시간당 생산성), 범주에 따른 임금범위(상하관계), 고용과 해고, 정치적 권리, 발언의 자유와 공장안에서의 위원회, 공장규정 등등. 그러나 (법 아래에서 유일하게 협상하고 그것에 서명할 수 있는)노조의 손안에서의 단체협약은 보통 자본에 대한, 특이하게는 노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종속을 위한 무서운 제도가 되었다. 사실, 현재 노조는 부분적으로 혹은 종합적으로 착취의 대리인이 되었다. 사실 클로즈드 샵(조합원만을 고용하는 사업소)의 경우를 제외하고 해고와 고용은 거의 자본의 자비에 위임되어있으며 이것은 노동자들의 보증된 노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단순하게 말해서 노조에게 파산의 권리를 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래 글에서 동구의 노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게 될 최악의 종류의 반동적인 경제적 탄압이다.

 

 노동계약은 임금의 차이와 노동자들 간의 범주적 ,기술적 기능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에 노동계급의 서로 반대되는 그룹으로의 위계적 분화를 찬성하고 장려한다. 노조는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에 대한 작은 블록을 형성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본성 때문에, 본능적으로 위계적 기초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분화를 돕는다. 위계적인 노동관계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분화의 필요성과 그로인한 최상위층의 이해로부터의  소외의 필요성은 자본만큼이나 노조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한 세기 동안 노동운동은 그 자신안의 위계적 관계에 대항하여 싸워왔고, 넓은 영역에서 그 물적 기반을 제한하면서 위계질서에 찬성하는 편견을 깨부쉈다. 지난 몇 십년동안 노조와 그들의 정치적 격려자들은 폭넓게 위계적 적대감을 재구축하고 노동 영역의 숫자를 늘리는 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위계적 노동관계가 자연스럽거나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단체 협약의 본래적 이상이, 자본이 완전한 억압을 기대하는 동안 그것의 전횡을 억제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그들은 자본주의의 기능적 요구에 부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제하는 거의 완벽한 방법을 구성한다. 단체협약에서 협상과 서명을 하는데 노조는 생산수단을 독점한 그룹의 필수적인 일부처럼 행동한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많은 수의 노조는 회사 안에서 그들의 구성원을 착취하는 중요한 주주이다. :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가장 큰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개념 안에서 노조를 착취의 수익자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노조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계획을 끌어내는데 실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곳에서 이러한 권리를 찾는다.

 

 계급투쟁의 현장인 작업장, 특히 큰 공장은 가장 혁명적인 노동자들에게 영구적이며 원대한 실질적, 이데올로기적 활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노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빈번하게 단체협약은 어떤 노동계급의 활동에 서 필수불가결한 모임과 토론뿐만 아니라 공장안에서의 정치적 선전과 활동을 금지할 것을 규정한다. 여러 해 동안 노조는 고용주들과 함께 음모를 꾸며왔는데, 그때마다 혁명적인 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해고는 현재 단체협약의 조항으로 합법화되거나 은밀히 인정되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조항은 모든 공장에서 고용주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의해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노조와 그들의 정치적 고무자들은 혁명적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진압할 필요가 있다면 경찰로써 행동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이탈리아에서 스탈린주의 노조의 지도자들은 고용주들에게 경고 없이 혹은 보상 없이 전단지나 어떤 형태의 선동문구를 살포하는 죄가 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공장법규는 노동자들의 생각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만큼 대부분의 반항적인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는 것을 제한하게 하여 그들을 조용하게 했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의 상황역시 러시아나 스페인에서의 상황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본과 노조기구의 집중성 있는 행동에 감사하면서, 노동계급은 스스로 작업장에서조차 비밀스러운 행동을 줄였으며 작업장은 학대받고 착취 받는 공간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정치적 자유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 자유는 현재의 고용주-노조라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의 실제적인 측면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자유는 처음부터 미래의 혁명적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포함한다. 오늘날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전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들에 대한 정통성 있는 반감을 통해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종종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우리는 공산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경제적 영역 안에서 노동계급의 상황은 결코 오늘날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4시간 혹은 5시간 노동에 의해 오래전에 바뀌었어야 하는 8시간 노동은 현재 종이위에만 존재한다. 많은 나라에서 기준시간 이상의 과다노동에 대한 거부는 곧바로 해고로 직결된다. 심사숙고하여 낮게 유지되고 있었던, 생산성 등에 기초한 소위 “기본급(러시아어로 norm)”과 보상금, 보너스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까지 일하는 것을 수용하게 강요할 뿐 아니라 가장 나쁜 노동(성과급이라는) 모든 형태의 노동조건을 새롭게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일당, 시급을 폐지하였다. 이러한 발단이래로 노동운동은 가장 오래된 모든 형태의 이러한 착취를 끝내는데 노력해왔는데 이러한 착취는 노동자들을 육체적으로 지치게 하고 지적으로 우매하게 만든다.

 

  유럽 대부분에서 이러한 성과급방식의 노동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2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어떤 종류의 성과급을 받아들이는 것이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성과급은 자본이 이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노조에 의한 사기극을 통해서 다시 규칙이 되었다. :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노조와 자본의 궁극적 친화성을 확인한다. 시간당, 개인당 생산성이라는 착취의 가장 깊은 면에 대하여 유념할 때 프롤레타리아는 끔직한 상황으로 그 자신이 강요받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으로부터 산출되는 생산성은 매일 엄청난 비율로 증가한다. 먼저, 기술적 혁신은 노동자들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어떠한 창조적인 개입으로부터 분리해내고 그의 움직임을 부차적이 것으로 측정하며 노동자들을 기계의 리듬에 맞게 종속된 살아있는 로봇이 되게 한다. 그다음, 흉악하고 불쾌한 올가미는 사람들을 동일한 도구로 동일한 시간동안 끝없이 일하게 강요한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기업에서의 훈련은 대변을 보거나 담뱃불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일에 대한 가장 작은 소홀함조차 감소시킨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각의 개인으로부터 산출된 생산물은 막대한 것이며, 따라서 같은 비율의 노동자의 정신적, 육체적 소모이다.

 

 이러한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을 현대사회와 그 일부분인 노조의 사악함 위에 놓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생산과 분배사이의 현재적 관계를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간단히 말해 혁명을 만들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의문점을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구권전체의 모델인 러시아에서 노조가 무엇을 나타내는가와 그것을 넘어선 많은 나라에서 조차 무엇을 흉내 내야만 했는지를 봐야만 한다.

 

 서구에서의 노조의 반동적인 일과 프롤레타리아 상황의 악화에 대하여 언급되어온 모든 것들은 러시아 세계에 대해서는 더욱 사실이다. 스탈린의 방패아래서 러시아의 국가 자본주의가 설립된 이래로 예전의 모든 부르주아 세계는 그것으로부터 착취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것들은 경찰진압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과 자본사이의 특별한 관계와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우리스스로를 한정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일반적으로 모든 곳에서 오랫동안 ,노조가 노동 계급 안에서 자본의 보조적인 힘이었다면, 노조에게 매우강한 힘을 주고 그들에게 매혹적인 예를 제공함으로써 스탈린주의의 반혁명은 노조의 본질적 운명을 폭로해왔다. 1936년 이후로 서구에서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를 약화시키고 그것의 구체화를 강화하는 거의 모든 수단은 스탈린주의 러시아 안에서 그 모델을 찾았다.

 

 정치적 권리와 공장 안팎에서 모임을 개최할 권리에 대한 완전한 억압 ; 고용주에 의해 강요된 초과노동이나 공식적 노동에 대한 부적합한 기본급(norm) ; 고용주의 결정에 따른 징계수단이나 벌금, 고용주는 또한 공장 법규를 명령한다. ; 시간동작연구와 무수히 많은 통제, 일한 분량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노동, 기술적 “자격”과 임금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내에서의 위계적 분화 ; 오직 자본에게만 이익이 되는 단체협약, 생산자들의 손해로 향하는 끝없는 생산성의 증가, 법에 의한 혹은 실제적인 파업금지 ; 짧게 말해, 서구에서 노조조직을 점점 더 부정적인 조직으로 이행하게 하는 모든 것은 1930년대 러시아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조에게 영향을 주었다.

 

 적어도 러시아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이라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은 , 기득권층과 피착취계층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은 다른 범주간의 노동자들의  질적 차이처럼 다른 곳의 불평등보다 더욱 컸다. 자본주의의 원인이자 동시에 효과인 기득권층과 피착취계층 사이의 불평등은, 그것이 노조의 전망과 발전에 영향을 줄때에만 우리와 관계된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이러한 불평등이 노동자들에 의한 자본의 몰수에 대한 필요성을 높이며, 이는 모든 법체계와 공식적 정당을 포함한 현재의 국가 기관을 완전히 파괴하는 반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순간에 대한 언급은 충분하다.

 

 다른 어떤 부르주아지보다도 스탈린식 관료주의는 노동 주기의 가속화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직업분류로 프롤레타리아를 인도하는 것에 의해 착취를 증대하는 방법을 안다. 생산을 “촉진”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방식은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윤의 동질성을 이질적인 즉각적 이윤의 다양성으로 치환시키는데 이는 일반적 혁명 활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인 것이다. 한 번 더 말하자며, 러시아 노조와 정치적 “장애물”은 그들의 서구식 상대방을 제압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 우두머리는 노동을 하고 있는 그들의 동료에 대한 착취로부터 가장 무시무시한 이익을 얻는다. : 스타하노프주의자들은 “기본급”을 능가하며 그들의 팀 안의 노동자들의 숫자 비율에 따른 보너스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임금이 보통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부터 증대되는 것을 보며 그러므로 이 착취를 증가시키게 된다. 스타하노프주의자들은 그러므로, (임금이 고정된) 서구의 우두머리들 보다 더 분명하게, 노동에서 그들의 동료들의 적으로 변한다.

 

 러시아에서의 모든 것은 그것의 반대로 변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서 놀랄 것은 없다. 한때 혁명이 자본주의 독재국가인  반혁명에게 길을 내어주었을 때, 그 반혁명은 스스로를 선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칭하며 사회주의자로써 가장 부패된 모습과 전통적 자본주의의 원칙을 보여 준다-실제로는 강요한다.1939년 통과된 노동법은 말한다. :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임금을 특징화시키는 기본적 특징은 전문노동자와 비전문노동자사이의 임금에 서열화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보수로써 소부르주아의 서열화는 사회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수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는 그치지 않고 서열화와 싸웠다. 

 

 수년 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은 맑스 사상의 충실한 표현으로써 임금노동을 통한 산업발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반대로 맑시즘은 임금노동의 폐지와 사회의 경제적 서열화의 폐지, 모든 개인적 요구의 무제한적 만족의 폐지, 개인적 집단적 만족에 필수불가결한 위대한 자유의 폐지를 확립했다. 우리가 만약 그것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 혁명적인 어떤 것도 현재의 역사적 고비에 실현될 수 없다.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안에서의 임금차이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직접시장관계에 의해 성립된 조건이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임금격차는 헌법에 의해, 원칙이라는 상태를 확보했으며 결국 이것에 대한 투쟁은 범죄가 된다. 부르주아가 ‘재산권’(사실상 재산은 우리가 재산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과 반대로 밝혀지는데 노동의 도구나 생산의 수단이 아니라 물질적 소비와 각각의 인간들의 정신적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이라는 거룩한 핑계를 통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인간 대 인간의 사회적 관계로 인정하지 않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전통적 관계는, 러시아에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럽고 잠재된 관계로 전이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계급이나 한계가 있는 범주대신에 우리는 재능이나 특별한 기능에 기반 한 법에 의하여 한정된 계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부에 기반 한 한정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 대신에 중요한 것이고, 보다 나쁜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대한 생물학적 정당화의 기미가 있다는 것이다. 

 

Grandizo Munis (스페인) 

1912-1989

처음엔 볼셰비키-레닌주의자( Bolshevik-Leninista)였지만 이후  스페인의 좌익 반대파가 되었고, 나중엔 트로츠키의 아내  Natalia Sedova와 함께 좌익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좌익공산주의 역사에서도 소개되는 Fermento Obrera Revolucionario (FOR)그룹을 주도합니다.

 

-무니스의 저서로는

  The Bourgeois State in Crisis, 5 April 1937

  The Road to Victory Begins with the Revolutionary Front of the Proletariat, 5 April 1937

  The Bolshevik-Leninists of Spain Demand Your Aid in the Struggle for the Social Revolution, 29 May 1937

  The Programme of the Spanish Bolshevik-Leninists, September 1937

  Spain One Year After Franco's Victory, August 1940

  Franco’s Dilemma, February 1941

  Who Are Hitler’s Agents in Russia?, November 1941

  Observations on the Guerrillas, March 1944

  The Future of the Soviet Union And The Victories of the Red Army, October 1944

  A Correction, March 1945

  Defense of the Soviet Union and Revolutionary Tactics, March 1945  

    

                                                                                                                                                                                                           

Unions against revolution - G. Munis

 

A critique of trade and syndicalist unions from a communist perspective by G. Munis.

 

No contradiction can exist between the economic and the political aspects of a revolutionary conception, even supposing the clearest organic and functional demarcation between them. The same is true for any reactionary conception. Hence the present inter-penetration, the agreement and collaboration between unions - economic organs - and political parties - ideological organs - gives us the key to understanding both, from whichever side one looks at the matter. This statement proceeds from an old and unalterable principle, more than proven by reason and verified by men in the course of a thousand years' experience: every idea or political action arises from an economic foundation which then plays both a controlling and determining role. In the course of this work we will examine, under different aspects, the inter-penetration of politics and economics and evaluate unions by taking a look at how they presently function.

Unions first appeared as defensive organs of the working class, faced with subhuman conditions of work, presenting themselves, on the industrial plane, as extensions of the old brotherhoods and corporations. On the basis of their aspirations unions do not even reach the level of reformism. Reformism, utilizing ideological and economic analyses, claims to demonstrate that, by means of capitalist democracy, it would be possible to attain socialism through a legal evolution and without any need for revolutionary acts. For unions there was never a question of either evolution or revolution, still less of socialism. Unions go no further than attempting to obtain, for the exploited worker, conditions of labor which are less intolerable and less humiliating, but also, as time has demonstrated, more profitable for capital. In spite of this limitation the early unions were organs which, if not revolutionary, at least had a working class spirit and a sound composition compared to the corruption and false class character of today's unions.

At the end of the 19th and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 so-called revolutionary unionism (syndicalism) appeared. This was an eclectic doctrine adapted to the situation then prevailing, drawn from the Marxist conception, the so-called a-politicism of anarchism, and the strictly economic claims made by the old trade unions. There is no paradox in the fact that the period of the greatest influence and the strongest thrust of this type of unionism coincided with the apogee of reformism.

Sorel and Bernstein, besides being contemporaries, had more points in common than differences. While Sorel offered, in syndicalism, the panacea to the problems of historical development, Bernstein and his tendency saw in parliamentarism, and even in the necessities of capital accumulation, the happy mechanism of a certain and harmonious evolution towards socialist society. In reality revolutionary syndicalism and reformism were united by the same bonds to the formidable economic drive of the bourgeoisie. This was the period in which the bourgeoisie attained the zenith of its civilizing possibilities, granting the greatest amount of liberty and illusions to those who, without completely escaping its ideo-economic complex, leaned to the left. For this reason the political bankruptcy of 1914 would carry with it the syndicalists and reformists. Even the Spanish C.N.T. was not an exception, although the military neutrality of Spain spared it the capitulatory phrases and attitudes of the French C.G.T.; its particular bankruptcy, as we will see later, took place at the moment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in 1936-1939.

The numerical strength and the social weight of the unions has' grown continually since 1914 and if in some countries, like France, their numerical strength has considerable diminished in the course of the last few years their importance has continued to grow. It has been said that the disaster of 1914 was necessary for the unions to really come into their own. This is because until that time capitalism feared the unions as a destructive force and had not yet seen - except perhaps in England - the collaborative role that unions could play.But since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numerous experiences of ''worker's control'' in the factories have surprised the capitalists by their satisfactory effects. ''Worker's control'' has attenuated the struggle of workers against capital, facilitating the operation of the factories and above all increasing output. The unions stood out not only as defenders of the fatherland - that specifically capitalist entity - but as effective collaborators in the mmechanism of exploitation itself. That made their fortune and opened as yet unsuspected horizons to them. However, it was during the years 1936-1937-years which for many reasons were a very important landmark in the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workers' movement that the unions took on their definitive orientation. In this period they displayed the qualities thanks to which they have become one of the most solid pillars of capitalist society.

Twenty years separated the Russian and the Spanish revolutions, which were the first and the last explosions of the same offensive of the world proletariat against capitalism, an offensive marked by incessant attacks in many other countries. Meanwhile the Stalinist bureaucracy had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state capitalism and just at the moment when the Spanish revolution was in full swing the Stalinists got rid of all those who were really communists with guns and slander. This was to modify in a decisive manner all the organic factors of the class struggle and corrupt all the ideological factors. For a long time Russian intervention in the international workers' movement had been negative; in Spain the Russian-controlled Communist Party, dragged along by the requirements of its own preservation, turned out to be the principal counterrevolutionary police force. In July 1936 it attempted-happily in vain to prevent the uprising of the proletariat which destroyed the army throughout most of the country. In May 1937 this same Communist Party would machine gun the proletariat, which was revolting against the C.P.'s reactionary policies, defeat it, disarm it and crush the revolution. What the military had failed to do in 1936, Stalinism accomplished 10 months later.

For the first time Moscow acted, outside its own territory, directly as a counter-revolutionary force. Up to now there has been no real appreciation of the immense reactionary consequences of this event. Yet this was the source of all the acts of world importance which followed: from the Hitler-Stalin pact and the second "great war" till the policy of "peaceful coexistence" and uprisings such as those in Fast Germany, Poland and Hungary. The latter must be situated, not on the level of the revolt of the Spanish proletariat of May 1937, but at the most on the same level as the July 1936 insurrection, this time with the Stalinist army and police in place of Franco's army. Imre Nagy and his friends were in Hungary what the popular front was in Spain in 1936: the by-product of a revolutionary upheaval but not the core of the revolution.

It is significant that it was around 1936 that the unions revealed all their latent characteristics, incontestably manifesting themselves as auxiliary organs of capital. That in such a development it was Stalinism which won for itself the greatest influence in the unions - with the exception of the English and American trade unions - is quite natural. The economic empiricism of capitalism found in Russian counter-revolutionary empiricism a higher political expression, one which inspired it and perfected it at the same time. Both of these elements were mixed and merged to create a more favorable milieu. Now this milieu exists under a more or less completed form: it is nothing other than capitalism at its present stage, taking each country, including the "backward" ones, not as an isolated case but as part of the world system.

We will look at the Western bloc which prides itself on its democracy and more concretely on its right to strike. In reality this right is given not to the workers but to the representatives which the law recognizes them as having: the unions. Every strike launched by the workers themselves has to face a coalition of state and unions which seeks to smash it-sometimes by the direct defeat of the workers, sometimes by making the workers accept arbitration. Since the French revolutionary strike of 1936 was smashed by the Communist party (Thorez: "One must know how to end a strike") and the Socialist party together (the Blum government and police commanded by "socialists") almost every country has known strikes led to defeat by the unions because they ran counter to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interests. Thus, the strike has been in fact and in law taken over by the unions. But that is not all. Beyond the always exceptional situation of a strike, in the day-to-day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r-which is where the class struggle is forged-the unions appear not only as buffers between the two camps, but as messengers from capital to labor and as agents who help to adapt labor to the requirements of capital. All the natural manifestations of the struggle of labor against capital, once monopolized by the unions, are turned against the worker for the benefit of capital.

We have only to recall certain facts to see that the above line of reasoning is undeniable. Factory committees1 as well as delegates from departments, shops or occupational categories are not the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workers, whatever may be the mode of their election, depending on the country. They represent the unions, within which workers are not free to elect anyone they want: even the famous British shop stewards need the assent of the trade unions. In most countries the law has decided that the unions which it recognizes represent the working class. The workers therefore no longer have the right to represent themselves as they see fit, still less to create organs other than unions in order to direct their struggles and to deal with the employers or the state. The rights of the working class and the rights of the unions are manifestly two distinct and contradictory things. Because of this the opposition between the workers and the factory committees or departmental delegates-an opposition which is always present in a latent form-sharpens whenever there is a conflict with the employer and becomes a direct encounter if the struggle broadens. In the course of the last twenty years every strike which deserves the name has had to be called against the will of the unions and by outflanking its representatives in the factories; the workers themselves have had to elect strike committees. However, every time that these strike committees or factory assemblies, elected by the workers, have allowed themselves to be influenced by the union leaders, capital has gained the upper hand.

The goal of collective labor contracts was to limit the arbitrariness of the employers in various areas: working conditions and the length of the working day, intensivity of exploitation (hourly productivity), wage range by category (hierarchical relations), hiring and layoffs, political rights, freedom of speech and assembly within the factories, factory regulations, etc. However, collective contracts have become, in the hands of the unions, who alone under the law have the right to negotiate and sign them, a formidable instrument for the subjugation of the proletariat to capital in general and to the unions in particular. Indeed, unions have become, at present, partially or totally, agents of exploitation. Layoffs and hiring are most often entrusted to the mercy of capital, except in the case of closed shops, which far from guaranteeing work for the laborers, simply grants the right of adjudication to the unions. This is reactionary economic coercion of the worst sort, as we will see below when we discuss unions in the Eastern zone.

Labor contracts sanction and encourage the division of the working class into hierarchical groups opposed to one another because of differences in wages and the prejudices attached to the category and technical function of the worker. The unions instinctively, by their very nature, contribute to the division of the proletariat on a hierarchical basis, except for which the proletariat would form a compact bloc against capital. The necessity of dividing the proletariat through hierarchical work relations, and of thus alienating it from its highest interest, is as important for the unions as it is for capital. For a century the workers' movement fought against hierarchical relations within its midst, and in large part it destroyed prejudices in favor of hierarchy while limiting its material bases. In the course of the last few decades the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succeeded in largely re-establishing hierarchical prejudices and greatly increasing the number of work categories. Most workers today, even the worst off, think that hierarchical work relations are natural and ''just.''

Lastly, if the original idea of collective contracts was to put a curb on the arbitrariness of capital while awaiting its complete suppression, today they constitute an almost perfect way to regulate the capitalist system in accordance with its functional requirements. In negotiating and signing collective contracts the unions behave as if they were an integral part of the groups who monopolize the means of produc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in other countries, many unions are important shareholders in the companies which exploit their own members; which, far from prefiguring a socialist society, transforms the union into a beneficiary of exploitation in the fullest economic and ideological sense of the term. Where the unions do not actually participate in drawing up plans for the exploitation of the workers they seek this right.

The work place, the large factories in particular, which are the scene of the class struggle, afford the most revolutionary workers a permanent and far-reaching practical and ideological activity. But this activity is made impossible by the unions. Frequently collective contracts stipulate that political propaganda and activity within the factory are prohibited, not to speak of discussions and meetings which are indispensable to any working class activity. For many years the unions have conspired with the employers every time there was a question of dismissing revolutionary workers. Such dismissals are now legitimized by a written clause in collective contracts or surreptitiously acknowledged, since they are covered by the rules made by the employers in all the factories. The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undertaken the task of acting as policemen against those who distribute revolutionary literature, when necessary beating them up. In Italy, the Stalinist union leaders have granted to the employers the right to fire, without notice or compensation, workers guilty of distributing literature or any type of agitation.2 In France, most of the factory rules permit as much and the restrictions on thought go so far that even the most rebellious workers are afraid to express themselves and so keep quiet. The situation is no better in Germany, England or the U.S., no more than in Russia or Spain. Thus, thanks to the convergent action of capital and the union organisations, the working class finds itself reduced to clandestinity even at the work place, which is where it is exploited and fucked over.

The proletariat must recover its political freedom, which is impossible without throwing the present employer-union legal framework overboard. The complete freedom of people with respect to the exercise of their labor contains, in embryo, the future revolutionary democracy and communism. We say communism because those who today call themselves communists are not communists at all and through legitimate revulsion towards them, those who really are communists often avoid claiming the name.

In the strictly economic domain the situation of the working class was never worse than it is today. Everything said to the contrary is so much bullshit. The eight-hour day, which should have been replaced long ago by a four or five hour day, now exists only on paper. In many countries the refusal to work overtime is an immediate cause for dismissal. Everywhere the introduction of so-called "basepay" (norm in Russia) which is deliberately kept low, and rewards and bonuses based on productivity, etc., not only forces the worker to accept, "of his own accord," working days of ten to twelve hours but in fact abolishes daily or hourly wages by imposing anew the vilest of all types of labor: piece-work. Since its inception the workers movement has endeavored to put an end to this oldest of all forms of exploitation, which physically exhausts the worker and dulls him intellectually.

It succeeded in eliminating piece-work in most of Europe. Even twenty years ago most workers considered it demeaning to accept piece-work of any kind. Today, however, piece-work is again the rule, less because capital has imposed it than through the deceit of the unions: in fact we have here a proof of the ultimate affinity of unions and capital.

With respect to the most profound aspect of exploitation,productivity per person and hour, the proletariat finds itself forced into a terrible situation. The production that is extracted from it each day increases at an enormous rate. First, technical innovations take away from the worker any creative intervention in his labor, measure his movements to the second and transform him into a living robot subjected to the same rhythm as the machines. Then, time studies, that atrocious and repugnant snare, force people to work over and over with the same tools and during uniform periods of time. Finally, the discipline of each enterprise reduces to a minimum the slightest suspicious of work even the lighting of a cigarette or taking a shit. The output that is extracted from each person by these means is enormous and so, in the same proportion, is the worker's physical and psychic exhaustion.

To mention this problem is to put one's finger on the evil of modern society and of the unions which are part of it. Moreover, there is no way to resolve these problems without overthrowing the present relation3 betwee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in short, without making the revolution. But in order to treat this question properly it is necessary to first of all see what unions represent in Russia which is the model that the whole Eastern bloc, and even many countries beyond it, must imitate.

Everything that has been said about the reactionary work of unions and the deterioration of the proletarian condition in the West is even more true for the Russian world. Ever since, under Stalin's aegis, state capitalism was established in Russia, the whole of the old bourgeois world has been learning lessons in exploitation from it. These pertain to police repression too, but here we will limit ourselves to speaking about the specific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r and the role of the unions. Thus, if unions in general have, everywhere and for a long time, been a complementary force to capital within the working class,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by giving unions a very strong push in this direction and by providing them with a tempting example, has disclosed the intrinsic destiny of unions. Almost all the measures which, since 1936, have aggravated the exploitation of the proletariat in the West and heightened its objectification, have their model in Stalinist Russia.

The complete suppression of political rights and the right to hold meetings inside or outside the factory; overtime imposed by the employer or the inadequate base pay (norm) for the official working day; fines and disciplinary measures at the discretion of the employer, who also dictates the factory rules; time studies and innumerable controls, piecework, hierarchical divisions within the proletariat based on wages and technical "qualifications"; collective contracts which only benefit capital, continuous increase of productivity to the detriment of the producers, prohibition of strikes in fact or by law; in short, everything which in the West transforms the union organizations into more and more negative institutions received a strong impetus from the Russia of the 1930's and was to inspire capital and unions throughout the world.

It is well known, at least by those who are familiar with the situation in Russia, that economic inequality between the privileged and the exploited is greater there than anyplace else, as are the me qualities between different categories of workers. Inequality between the privileged and the exploited, which is at the same time the cause and the effect of capitalism, only concerns us in this essay as it affects the evolution and the prospects of the unions. It is sufficient to note for the moment that this inequality raises in Russia, as in every other country, the necessity for the expropriation of capital by the workers, which is impossible without an insurrection which completely demolishes the present governmental apparatus including the official party and the whole body of law.

Better than any bourgeoisie, the Stalinist bureaucracy knows how to intensify exploitation by accelerating the rhythm of labor and by introducing into the proletariat the greatest possible number of job categories. The traditional means for capitalism to "stimulate" production is to substitute for the homogeneous historical interest of the proletariat a multiplicity of heterogeneous immediate interests, which are so many obstacles to a common revolutionary activity. Once again the Russian union and political "natchalniks"4 have outdone their Western counterparts.5 In Russia the worker foremen receive a direct profit from the exploitation of their comrades in labor: the Stakhanovists receive a bonus which is proportional to the surpassing of the "norm" and to the number of workers in their team. Thus they see their wages increase by the exploitation of the common workers and are therefore led to intensify this exploitation. The Stakhanovists are therefore, still more clearly than foremen in the West (with their fixed salaries), turned into the enemies of their comrades in labor.

There is nothing astonishing in all this, since everything in Russia has been turned into its opposite. Once the revolution gave way to the counter-revolution, a capitalist dictatorship, which demagogically calls itself a proletarian dictatorship, presents - in reality imposes - as socialist the most rotten features and principles of traditional capitalism. The labor law, approved in 1939, says: The basic feature which characterizes wages in the capitalist countries is the levelling of wages between specialised and non-specialized workers. In the remuneration of labor, petit-bourgeois levelling is the worst enemy of socialism. For many years Marxism-Leninism has unceasingly fought against levelling.

For many years the Stalinists have tried to take people in by presenting industrial development through wage labor as the loyal expression of Marxist thought. Marxism, on the contrary, establishes as its objective the abolition of wage labor, and the economic levelling of society, the unlimited satisfaction of all individual needs and the greatest freedom and liberty, which is indispensable to any personal or collective fulfillment. If we do not aim at that, nothing revolutionary can be done in the present historical juncture. In the old capitalist countries wage differences within the proletariat are a condition established by the direct market relation between capital and labor. In Russia these wage differences have, by constitutional law, acquired the status of a principle and consequently it is a crime to fight against them. The traditional relation between capital and labor, which the bourgeoisie never justified as a social relation of man to man but only through the subterfuge of the sacred right of property" which in reality is turned against it when we consider as property, not the means of production or instruments of labor but everything which is necessary to the material consumption and the full psychic development of each person-is transformed in Russia into a natural and permanent relation between people having different abilities. Thus, instead of social classes or categories delimited in fact by wealth we have classes delimited by law on the basis of their talents and special functions. Nonetheless delimitation in fact on the basis of wealth takes on importance instead of losing it, Worse still the whole thing smacks of a biological justification for the exploitation of man by man.

Let us further point out that the principle object of the labor contracts imposed by the Russian unions is to put the working class at the mercy of capital, even juridically, "by guaranteeing the fulfilment and over-fulfillment of the state production plan for the given establishment."6 It is a question of extracting higher and higher rates of production from labor: The main stipulation of the contracted obligation must be an increased demand from every worker. Without strengthening labor discipline and without ruthless struggle against the violators of state and labor discipline -grabbers and loafers there can be no real fulfillment of obligations laid down in the collective agreement.7

The very word contract is a mark of servitude for the working class. Whether collective or individual, verbal or written, "free" or imposed, the labor contract is the legal symbol of its condition as a wage-slave class, to use Marx's term. This fact in itself is sufficient to expose the lies of the Russian exploiters. In a truly socialist economy neither capital nor wage labor would exist, and consequently the labor contract (the agreement for the utilization of the labor force) would disappear with the disappearance of the contracting parties. In a socialist economy, the means of production would cease to be capital and human labor power would cease to be a commodity for sale. United in one economic and social entity, they would be as free from any contractual obligations as an individual is toward himself. By its very existence, the Russian labor contract places itself within the framework of the social bonds characteristic of capitalism. But it is the ''innovations'' of the Russian system, particularly the completely overt way the unions assume the role of slave-drivers towards the workers, that reveal the ominous contours of a society in decline whose despots seem to be more capable than anyone else of checking proletarian resistance.

In effect, these contracts, whose main point is to extract the highest productivity possible from each worker, are drawn up by the unions and, after the formality of government approval, it is the unions duty to insure servility through promises of higher pay, by the use of threats or by turning over to legal prosecution those workers who do not go along with the demands of production. It is through union channels that the Russian government punishes, as if it were a crime, the struggle to work less and earn more (''The Right to be Lazy')8 which the world revolutionary movement has always considered to be a just claim of the working class and a progressive demand.

Thus in the eyes of the Russian workers the unions appear as the organization immediately responsible for their exploitation and for the cruelties characteristic of the counter-revolution. A great number of convincing documents (enough to fill several volumes) testify to this effect. It is impossible to list all of them here. One of the greatest weaknesses of the revolutionary movement, perhaps the cause of its limited support today, is the fact that it did not protest these ignominies. For the purposes of this article however it is enough to recall certain typically reactionary features of the Russian system: the laws forbidding workers to change jobs without the permission of the plant manager - laws which have long since been eliminated in older capitalist countries; laws establishing wages proportionate to the productivity of each individual worker (piece rates) not to mention bonuses for political servility; laws which punish absenteeism, lateness and other "disciplinary" infractions by fines, suspensions, firings and forced labor; laws which transform everything which revolutionary thought considers an outrage into something honourable and profitable; in short, all the laws which crush the proletariat as nowhere else are in Russia the direct work of the unions. This legislation is both proposed and carried out by the unions. Furthermore, the forced labor camps-' 're-education'' according to official jesuitry-the burial ground of workers and especially revolutionaries, the method deliberately chosen to lower wages and to be able to claim that unemployment is non-existent, are also "institutions" created on the initiative of the unions who share the advantages of this system with the state and with its essential instrument: the police.

One can argue that the Russian unions, as everyone knows, do not really act on their own initiative. But their repudiation by the workers is no less absolute. International experience indicates that unions in their structure and function vis-a'-vis the working class, always contained propitious elements for their transformation into a cog in the most centralized and absolute capitalist system.

Certainly the Russian unions blindly obey the orders of the government; they are only its vulgar instruments. But their own leaders are integrated into the highest levels of the Party and the state and thus become both "co-managers" ("co-owners") of an impersonal capital and at the same time "worker" leaders. Never could a company union dream of a more complete subjugation of the workers.

In Russia today the unions' function is part and parcel of the exploitative function of capital itself. The union is at the same time boss, foreman and policeman. In each factory it represents along with managers and technicians-all of whom are distinguished members of the union and of the "Communist " cell the same thing as Hitler's confidential councils (Vertrauenstrat). Furthermore, the complete intermixing of capital and Party-State has erased all trace of any union autonomy or protest activity. No one has to teach Russian workers this fact; they have cruelly suffered its consequences for many long years.

In the trajectory of Russian society, there is a definite break between the Soviet period and the period of the unions. Soviets were organizations which represented the workers, carried out their orders and those of the revolution. The unions on the other hand, are organizations of control over the workers executing the orders of the counter-revolution. The Soviets were paralyzed and finally disbanded while unions gained in importance and prerogatives as the bureaucracy increasingly revealed its counter-revolutionary nature. The proletariat was repressed to such an extent that today its subjection is nowhere as great as in Russia. Certainly it is not the unions alone which inspired the counter-revolution. They themselves are part of a whole series of bourgeois ideas and interests, vestiges from the tsarist period; its main basis was the high administrative bureaucracy, both technical and political, whose numbers and privileges have monstrously expanded. But in their turn the unions~mr if one prefers, their high-level leaders form an inseparable part of the whole category of state capitalists who rule the enormous corporation falsely called the "Soviet Union."

The interpenetration of the unions and the Russian counter-revolutionary bureaucracy was neither artificially imposed by the latter nor was it an accident. It is the spontaneous result of the intrinsic nature of unions from which the government assassinated or purged'' certain union leaders along with former revolutionaries.

The government eliminated them not for their union activities but for their communist attitude, either real or imagined. Because of their adaptive powers, the unions conformed perfectly to the specific aims and routine functioning of the counter-revolution. To understand this clearly, it suffices to examine the nature of unions.

Unions are totally inconceivable without the existence of wage-labor, which in turn presupposes the existence of capital. As long as capital is held by individual owners engaged in competition and represented by many individuals and parties in the government, unions are at least able to bargain for an improvement in the conditions of labor exploitation. Their function is to regularize the sale of labor power, a function which has become indispensable to the modern capitalist system. From this fact comes their importance as complementary structures of the state, if not part of the state itself, everywhere in the world today. But this very function, which in the past allowed unions to at least serve as instruments of the working class was also a narrowness indicating their limitations and reactionary future. Their existence as an organization is entirely dependent on the continued existence of the labor/capital duality. They would be immediately eliminated by the destruction of this duality. However, they can side with capital as much as they choose without destroying this duality. On the contrary, they become increasingly indispensable to the maintenance of the capitalist system. As a result, the more gigantic and anonymous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the more the unions take the side of capital and consider their role to be directly determined by the great "national" interest. Even Stalinist union leaders in the West, agents of Russian imperialism, are careful to present their union policies as an element of national welfare. They are not lying; their only future is to establish themselves as the firmest bastion of statified capital.

All unions without exception are in the process of changing from the stage of ''free competition'' between the supply and demand of labor power between the working class and the bourgeois into the stage of the control of the supply by the demand: that is, the control of workers by monopolistic or state capital. In most cases the unions already participate, directly or indirectly, in the profits of capitalism or else they sense the opportunity to do so.9 In Russia this evolution was completed with the counter-revolutionary transformation of the country in general. The law bestows on the unions all power over the working class without leaving the smallest possibility for workers, collectively or individually to discuss, accept or reject the conditions of their exploitation. All working conditions-even what the workers should think -are directly dictated by the unions in the name of capital. As always, economics and politics intertwine and end up united in the most strict absolutism.

The historical examples of a truly working-class unionism were all the results of revolutionaries' activities and belong to an age (which ended with the Spanish Revolution) which allowed a certain margin for the class struggle within capitalism. But today revolutionaries who stubbornly persist in regarding unions as any sort of advantage for the future of socialism are condemning themselves to ineffectiveness or worse: betrayal. The past struggles of French, Spanish, or Italian syndicalism were the rest of the activity of revolutionary tendencies, either marxist or anarchist. The Spanish CNT would have been nothing without the FAI (Iberian Anarchist Federation) and it is the FAI itself which must be held responsible for the reactionary alliance with Stalinism during the Civil War. The year 1936 marks the bankruptcy of Spanish syndicalism comparable (in all ways) to the bankruptcy of the French CGT in 1914. Not only did the FAI-CNT voluntarily submit to Stalinism (a submission presented, as usual, in the interests of "national welfare") but it established an alliance with the leaders of the reformist UGT, an alliance which would have meant, in explicit enough terms, state capitalism. The CNT will never pick itself up after such a fall. Any revolutionary group coming from these roots must seek other horizons.

The collectivist experiences in Spain were only syndicalist by default. This movement was set off by the impetus of revolutionary militants and by highly radicalized sections of the masses; the unions found themselves faced with a fait accompli. The same can be said of the uprising against the military on July 19, 1936 and of the magnificent insurrection of May, 1937. When, after revolutionary action, the unions intervene and take over, the entire process is reversed: the activity of the proletariat and the participation of revolutionaries recedes and retreats-the prelude to defeat. In the same vein, the experiences of the strike in Nantes10 in 1956 should be remembered. The strike, the work of several revolutionary militants in the local union, was betrayed by the national union. Hundreds of similar examples can be found in any country in the world. Attempts to give unions a revolutionary content, through the use of internal oppositional caucuses or even by creating completely new unions, are doomed to failure. The only result of such "tactics" is to demoralize the revolutionary experience of those who attempt it or to turn them into simple bureaucrats. Unions bring to bear all the powerful, deformative forces of capitalist society which constantly eat away at men, changing and destroying even the best of them. There is about as much possibility of "changing" unions in a revolutionary direction as there is of "changing" capitalist society in general; unions use men for their own particular ends but men will never be able to make unions serve a revolutionary goal; they must destroy them.

Attempts to "change" unions are futile even from a practical point of view. In most countries workers are no longer in unions. Even if they still carry a union card in their pocket, whether voluntarily or because the law forces them to do so, the suspicion and disgust they feel for unions is no less strong. In countries which have had the most extensive experience with unions, workers have recourse to unions only if they feel that their "rights" under capitalist law are being flagrantly violated. This is a tedious formality but necessary, on the same level as going to the police when something is stolen. But everyone knows it is useless to go to unions to get something outside the limits of capitalist "law" because unions are a part of that law. Consequently, we see, in many cases, a decline in the number of union members and a general desertion from union meetings by the majority of workers. Unions, having a bureaucratic and legal life of their own, merely use the working class as a docile mass to manipulate in order to Increase their own power as a legal institution in our society. Unions and working people have completely different daily lives and motivations. Any ''tactical" work within unions, even if guided by the purest intentions, will impede the self-activity of the exploited class, destroying their fighting spirit and barring the way to revolutionary activity.

Lenin and Trotsky's position on revolutionary work within unions is entirely outside the realm of today's realities. Their position explicitly supposes that the proletariat, otherwise inexperienced and unorganized and full of illusions, meets in the unions where freedom of speech would permit revolutionaries to expose the opportunist leadership and thereby spread revolutionary ideas.11 In addition to the argument citing the prevalence of workers' illusions about unions, the key premise of the Leninist tactic was the fact that unions were considered as ideologically reformist and therefore supposedly interested in wresting concessions from the declining society by playing left-wing to the "liberal democrats" of an earlier age. These conditions no longer exist and those who continue to gear their activity towards them are acting in vain. Fifty times the proletariat has tried the experience of unions and of the parties which dominate them and they have changed in an undeniably reactionary direction. To act towards them as though they were still reformist is a ridiculous expression of today's opportunism.

The most solid basis for a revolutionary critique of unions concerns not tactical or contingent considerations but the question of principle and strategy. These questions had not been taken into account by Lenin and Trotsky probably because the changes in unions had not clearly developed until the last few decades. The fact is that unions and their political inspirers have been completely assimilated by the capitalist world, not as part of the "democratic wing" of the bourgeoisie but as henchmen for the exploitative society and for the new needs of the counter-revolution. The polemic between Lenin, Trotsky and Tomsky on the union question, which occurred before the sinister shadow of the Stalinist police had ravaged revolutionary thought, finds its synthesis after long periods of trial and error, in the political conclusions of this article.

There are still revolutionaries who refuse to see the problem and repeat like a credo: "since th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still exist, we do not see how today one can deny their utility." At the same time they postpone the elimination of unions until the moment when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f bourgeois society disappear,'' that is, when the separation between workers and instruments of production has disappeared.12 This is more sententious subterfuge than reasoned argument. In a sense this argument can be used against itself. If when we speak of conditions which have given rise to unions, we mean the purchase of human labor power by the monopolizers of the means of production, or in a more general way, the characteristic relations of capitalist society as a whole, then it is clear that unions are part of this whole network of relations and that unions continue to exist with it and for it. From this point of view, to attribute a useful function to unions in the revolutionary process is as unthinkable as seeing revolutionary potential in the stock market. Unions are as much a part of capitalist value production as the stock market, even if we examine only the aspects of the dealing and contracting of wage labor, aspects which are not unconnected to the values quoted on the stock market.

In addition to thes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conditions of a historically more limited nature must be dealt with. In the period of capitalist ascendancy, free competition, including free competition in the labor market, permitted workers to benefit from the greatest number of advantages compatible with the system. The regulation and administration of these advantages constituted the fundamental raison d 'etre of unions. However, with the system's transformation into giant trusts and state capitalism, the unions, which it nourished, naturally began to play a reactionary role. They could not continue to maintain their function without adapting themselves to changing market conditions now no longer free but controlled and despotic, indeed malthusian since it prevents the realization of human and economic potential.

Thus in a strict sense the conditions which gave rise to unions no longer exist; they died at the same time as that which justified the existence of capitalism as a historically progressive social form. Unfortunately it is the revolutionaries who are way behind in recognizing the facts and drawing the logical conclusions.

The reasoning of Programma Communista which offers the best theoretical justification for all tendencies (including anarchism) still clinging to an oppositional or revolutionary unionism, is in fact completely mistaken. Their reasoning is very dangerous especially in the event of a victorious revolution. The subterfuge of putting off the disappearance of unions until the obliteration of all traces of capitalism - until the advent of full communism - would give unions a harmful monopoly over the proletariat in the transitional period. Far from bringing society closer to communism, this would raise still another obstacle, and not a minor one, promoting the growth of state capitalism as it did in Russia. Bordiga 's analysis links the disappearance of unions to the disappearance of violence within the Society, meaning in fact the disappearance of the state. However, the withering away of the state and of all social violence can only be a consequence of a Preceeding disappearance of the exploitation of labor, wage labor to be exact. Unions are in complete contradiction to such a transformation, both in terms of interest and principle.

A century ago Karl Marx reproached unions for restricting their demands to questions of money, hours of work, etc., while they ignored the issue of the abolition of wage labor, the key to the destruction of capitalism. Today, Marx would be treated as a petty-bourgeois egalitarian by the men of Moscow and as a crazy ultra-leftist by those who believe they can reform unions. Marx did not see the elimination of unions as part of the far-distant future, well after the revolution, but as concomitant with the revolution or even its cause. He believed that already in his lifetime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disposed of sufficient material means to tackle the problem of revolution. We, revolutionaries of today, are able to add that unions stand in the way of every aim of social revolution because they have become an indispensable cog in the machinery of the exploitation of man by man. Their role in the present economy is comparable to that of the guilds in the age of small-scale manufacture - with this difference however: guilds proved unable to adapt to large-scale industry whereas unions adapt perfectly to the most resolute type of capitalism, the statified form. Unions will be destroyed only by the victory of the revolution; more precisely their destruction is a pre-condition for this victory, without which the unions will continue to grow into a huge coercive apparatus complementary to the state capitalist machine. That is the greatest counter-revolutionary danger of our time. If humanity proves unable to face this problem in the West as well as in the Stalinist East, it will witness the most ominous era of our history.

After the revolution, all workers (without need of any union affiliation whatsoever) must decide on the economic questions posed by society's progress towards communism. No organization, whether a union or a party can be identified wit the society as a whole or invested with its attributes. The existence of differing ideological currents (based on the foundations of the revolution) all competing for a majority will only further insure the possibility of direct participation of all in social decisions. But a union-style management of the economy will necessarily prove anti-democratic and stifling; it would exclude non-members and impose itself on everyone. Of course ideologies can degenerate or betray but only through the spread and growth of revolutionary ideas can man win his freedom. Even today the proletariat's immediate demands elude union formulations. Faced with exploitation heightened by technology, forced overtime, piecework, speed-up, etc., it is essential to demand a reduction of the work day to a maximum of five to six hours without reduction of wages or bonuses. On such a basis, demands for constantly decreasing work schedules in inverse proportion to technological progress are urgently neeeded. This is the way to challenge today's crushing work day and to prefigure a reorganisation of socially necessary work by eliminating the enormous amounts of waste production in industry as well as in the government and administrative bureaucracies.

The necessary complement to this demand is the refusal to go along with any increase in production, whether caused by improvements in machinery or by speed-up, unless the working class benefits; the working class represents the interests of society as a whole. This is an unlimited demand, not only against capitalism and its threats of constant war, but as an idea of the kind of considerations which would govern a future revolutionary society; underlying this demand is the necessity for the destruction of the present system.

Politically, workers must impose complete freedom at the point of production the rejection of all rules which have not been decided upon by workers' delegates democratically elected and approved in general assembly. In the case of problems or conflicts, workers' committees, elected outside of all union structures, are revocable at any time. Any agreement with management must have the consent of the interested parties themselves and not the unions even if they claim to represent the majority. Finally, co-ordination among the different workers' committees would prepare the way for the demand, as an immediately realizable objective, for workers' control of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 careful study of the problems which face the working class today would only reinforce these conclusions. The three types of problems, which encompass all the others, amply demonstrate the reactionary conservatism of unions and the fact that it is impossible for the workers to make a move ahead without coming up against them. Without getting rid of them, the proletariat will never get out of its present difficulties and will never have a revolutionary perspective.

The future of unions is indisputably linked with that of capitalism and not the revolution. Their ability to adjust to the reac-tionary transformation of society was largely overlooked by even the most far-seeing revolutionaries. An exception must be made for an almost unknown theoretician, Daniel DeLeon, whose thoughts on this subject have proven visionary. From 1905 DeLeon saw that unions and the "official" workers' parties harbored serious counter-revolutionary dangers. The work in which he succinctly expressed his ideas deserves the attention of all revolutionaries.13

DeLeon's judgments are excellent historical analyses which he expresses with revolutionary passion. On the basis of international experience, particularly with the British and American trade unions and their respective labor leaders, he predicts that the victory of these organizations would kill any social revolution.

The present labor leaders represent a disguised position, a strategic point and a force sustaining capitalism and their true nature cannot but produce a disastrous de-moralization of the working class.

He compares the labor leaders and their organizations with the leaders of the plebs in Rome. Just as the pleb leaders used the plebeians to acquire the rights and privileges of the patrician class without giving anything more than crumbs to the dispossessed masses, modern labor leaders and their organizations use the proletariat to consolidate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position within the capitalist system of exploitation.

Like the leaders of the plebs,labor leaders are practical men as they boast; they do not live on visions or chase rainbows. Like the pleb leaders, labor leaders do not see any alternative to the existing social system, and they aim to put out the flame that devours the working class. Like the plebeian leaders of Rome, today's labor leaders, if we do not counteract them . ..they will nullify all the possibilities which our age offers: they will divert the important and powerful actions of the masses until they lose the name of action.

The aptness of the comparison between the leaders of the Roman plebs and our union (and party) bureaucrats is even clearer if we examine the role of the so-called plebeian party in Roman history. This party, born in the time of the Tarquins, supposedly in irreconcilable opposition to the patrician ruling classes, enjoyed its greatest influence during the Republican period. Its power did not serve the true plebs, the poor masses, either slave' or free, but worked to the benefit of a privileged minority which represented the plebs in name only and belonged to the plebeian class only by the accident of Roman legal definition. Caesar and Augustus, the founders of Empire, constantly used the trick of referring to themselves as originally "plebs" or "on the pleb side." Their victory, the high point of the party of the pleb leaders, destroyed forever all possibility of revolution in Rome. The plebeian usurpers replaced by and large the old patrician class. They did not open the way to a new or superior type of Society but merely prolonged the decadence of the ancient world over which they presided in its final stage.

Despite the great structural and ideological differences between Greco-Roman civilization and capitalist civilization, the analogy between the role of the pleb leaders and today's labor leaders is close Whether they call themselves apolitical, Communist or Socialist they have substituted for the principle contradiction of capitalism that which can only disappear with its destruction-another unessential contradiction inscribed within the functional necessities of capitalism and for which the ''Solution'' makes them indispensable to the exclusion of any revolutionary intervention of the worker’s.

The bourgeoisie and the proletariat are the human profile, the anthropomorphic image of the social contradictions between capital and wage labor. This contradiction is unresolvable except with the abolition of capital-an act which must Simultaneously abolish wage labor itself. Here ends capitalism and begins the social revolution: a new, unlimited horizon of a new civilization.

The Spirit of the so-called labor leaders as well as their organizations are absolutely incompatible with the solution of this contradiction. They attempt to resolve only a secondary contradiction within the framework of exploitation- that is, the anarchy of private capitalism with its cyclical crises which calls for an ordered plan of production and a severe regimentation of manpower, the unemployed included. In this way, the interests of the labor leaders coincide with that of big capital which every day demands more economic regulation, more concentration. In other words, that which they perceive and want to change are the difficulties which the System encounters on the road to one huge monopoly, not at all the difficulties which the system as a whole poses for the forward march of humanity towards communism. With the concentration of all the means of production in a huge state monopoly, labor-upon which depends consumption, liberty, culture, the whole life of human beings-appears as an element which is as subordinate to the exigencies of the plan as iron ore, leather or any other raw material. The elimination of the bourgeoisie does not in any way mean the elimination of capital or the proletariat. Capital is an economic function, not a proprietary function; in becoming an anonymous function it completes its oppression of man and bars his march to communism with new counter-revolutionary force. The use of the purely anthropomorphic representation of the contradiction between capital and wage labor (bourgeoisie and proletariat) gives the union and party leaders the opportunity to present the elimination of private capital as the elimination of capital in general and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management as the solution of social contradictions. They know from the experiences of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and from Yankee and British trade unions that the more complete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the bigger the share of profits for them to pocket.

The most menacing aspect of this tendency of the labor leaders is that it coincides with the law of capitalist concentration and with the development of material and ideological coercion which is its consequence. But they are really dangerous only because of the passivity of the proletariat, whom the revolutionaries, attached to the old ideas and tactics, do not know how to stir into action. Chained to the old formulae, they are cursed with sterility. But a careful look around suffices to realize that the human necessity of a total transformation challenges capitalism itself and the labor leaders, a challenge which will open an unlimited field to revolutionary action.

Humanity does not need technocratic plans in order to produce plans which are used for exploitation and war. The crisis which our civilization is living through will not find its solution until all of production is oriented towards consumption without regard to selling. All individuals by their very existence must be able to utilize the material and spiritual resources of the society. The marketing of one or the other leads to the dissatisfaction of the immense majority, the impossibility of individual fulfiflmnt and the venality of culture. Only the elimination of individual proprietors and the giant trusts will lead to the elimination of the proletariat: the class which does not consume but lives only on its salary. Thus it is wage labor which must be eliminated. In this way capital will necessarily be abolished as an economic function along with the exploiters, be they bourgeois or bureaucrats. Any plan for production must be established with regard to the non-mercantile needs of human consumption, with all that these words imply of political and cultural liberty. The true anthropomorphic aspect of the problem is the abolition of wage labor which will give to man the possibility of determining his own destiny. By substituting for this the idea of simply eliminating the bourgeoisie (and by putting themselves in its place) union leaders offer us a series of fetishes-the economic plan in place of God, father and judge of man with the big union and party bureaucrats playing the role of the priesthood.

Revolutionaries must expel from the factories and professional organizations all the union representatives; and all the Thorez', the Nennis and the Reuthers of all countries, with the Vatican crouching behind the Christian unions, will be paralyzed. The working class will have regained its freedom of thought and action and will be able to transform society from top to bottom. It will have gained the strength to wrest humanity from the mire of degradation.

  • 1. Here Munis is referring to organs which are part and parcel of the union apparatus and not autonomous factory committees.
  • 2. A worker reading l'Unita, the Stalinist newspaper, inside the factory is dismissed with out a hearing, with the agreement of the Stalinist leaders who have co-signed this clause.
  • 3. between instruments of labor and wage labor
  • 4. A pejorative term applied by the people to the present rulers
  • 5. During the honeymoon of Russo-American relations, towards the end of World War II, the heads of the Yankee monopolies (including among others, Johnston, then President of the Chamber of Commerce) having been invited by Moscow to visit its industrial enterprises, lavishly praised the methods of "Soviet" exploitation that the American workers, or so they complained, prevented them from applying.
  • 6. Trud, the official Russian trade union paper, Feb.19, 1947, cited by Solomon M. Schwarz, Labor in the Soviet Union, London 1952, p.280.
  • 7. Ibid. The 1917 revolution called for the disappearance of wage labor and capital. That is why a reformist critic, Zagorsky,, defined the economy of the revolutionary epoch as "an enormous charity program. Beginning with the N.E.P. (New Economic Policy), there clearly began a movement in the opposite direction, which acquired the character of state capitalism with the Stalinist counter-revolution. Up to that point contracts were individual even if they were not written down. The systemization of collective contracts runs parallel to the establishment of a state capitalism which seeks stability and permanence.
  • 8. "Le droit I' la paresse," Paul Lafargue, 1898.
  • 9. possible exceptions to this trend do not fundamentally weaken the above argumen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exceptions" are not to be found in underdeveloped countries but more likely in the older countries of Europe. In underdeveloped countries, where unions are or seem to be new developments, they voluntarily accept being in the service of the bourgeoisie or the state. Often different unions in the same trade engage in cut-throat competition to offer their manpower to the bosses at the cheapest rate.
  • 10. One of the most significant strikes in France during the 50's.
  • 11. Lenin, Left-wing Communism 1920.
  • 12. The Italian political tendency of Bordiga whose arguments we combat here (IL Programma Communista, May 26, 1960) defends the conservative union tactic from the most revolutionary point of view. But many Trotskyist and anarchist groups (if not all) fall into the same error with an opportunist flavor. Even those who claim to be against the unions, like "Socialisme ou Barbarie," in fact fall into the same old routine practices.
  • 13. Two Pages From Roman History. 1. PIeb Leaders and Labor Leaders, II. the Warning of the Gracchi (New York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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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야 트로츠키- 제4인터내셔널과의 결별 선언 (트로츠키주의 우파에게2)

 

나탈리야 트로츠키(Natalya Trotsky)- 제4인터내셔널과의 결별 선언

 

나탈리아 셰도바 트로츠키

 

멕시코, DF. 1951년 5월9일

 

 

 

동지들,

여러분들은 내가 여러분들과 과거 5, 6년 동안, 전쟁이 끝나기 이전부터 그 이후로 계속,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근래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취한 입장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일찍이 저지른 오류를 수정하는 대신 그것들을 끝까지 관철시키고 심화시켜왔음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선택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거나 개인적 항의자로 남아있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제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현해야만 합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발걸음은 무덤과 같았고, 제게는 중대하고 어려운 것이었으며, 저는 오직 진심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게 깊은 고통을 줬던 문제에 대한 크나큰 심사수고와 망설임 끝에,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여러분의 수준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마지막 행동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것에 익숙하지 않은 동지들에게만 간단히 되풀이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차이만 언급하고 그들과 관련 있거나 그로부터 도출되는 일상 정책 문제에 대한 차이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낡고 오래된 도식화 탓에, 여러분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를 계속 노동자 국가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폭력적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에 대한 싸움이 시작된 후, 매년, L.D 트로츠키는 정권이 우경화되고 있으며, 그것은 지체된 세계혁명의 상황, 그리고 러시아의 모든 정치적 입장이 관료주의에 포획된 상황 하에서 그러하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다시, 그는 러시아에서의 스탈린주의의 강화가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키게 했고, 전제적 특권적 귀족사회의 승리로 이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조류가 계속된다면, 혁명이 자본주의의 종말과 부흥에 이르러서야 성취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불운하게도 그것은 새롭고, 기대하지 않은 형태로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계에는 그렇게 사회주의의 신뢰할만한 이념과 그 담지자가, 야만적으로 사냥당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혁명이 스탈린주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은 모든 이에게 명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형언할 수조차 없는 이러한 체제 하에서 러시아는 아직도 노동자 국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는 이를 사회주의에 대한 타격이라고 봅니다. 스탈린주의와 스탈린주의 국가는 노동자 국가나 사회주의와는 어떤 공통점도 없습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최악의, 최고로 위험한 적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전쟁 동안, 그리고 그 이후 스탈린주의가 지배를 확립한 동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노동자 국가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스탈린주의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전쟁 이후, 심지어 전쟁이 끝나기 전에도,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혁명적 대중운동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차지한 것은 대중이 아니었고,  그들의 투쟁으로 건설된 국가는 노동자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획득한 것은 스탈린주의 반혁명 세력이었으며, 그것은 노동대중과 그들의 혁명적 투쟁, 그리고 혁명적 열망들을 질식시킴으로써 크레믈린의 가신들에게 이들 국가를 넘겨 버렸습니다.

 

스탈린주의 관료주의가 이런 국가들에서 노동자 국가를 세웠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여러분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 끔찍한 잘못을 노동자 전위에 선전함으로써, 여러분은 사회주의 혁명의 세계 당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를 제4인터내셔널에서 부정합니다. 과거에는, 우리는 언제나 그 용어가 어떤 의미에서이건 스탈린주의를 반혁명적 세력으로 취급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그러합니다.

 

1932년 그리고 1933년, 스탈린주의자들은 염치없는 히틀러주의와의 협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파시즘의 지배 이후, 그리고 그들 통해 사회주의가 오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는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정신없는 오직 인간성을 잃은 짐승들은 이런 방식으로 논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비록 혁명적 목적이 여러분들에게 생기를 준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유럽에서 승리한 전제적 스탈린주의의 반동이 마침내 사회주의로 가는 길 중 하나라고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이 관점은 결국 우리 운동에 의해 견지되고, 제가 끊임없이 공유하고자 하는 가장 심오한 신념과 타협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정권 문제에 있어서 저는 여러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혁명가들의, 심지어는 민주주의자들의 동조와 지원은, 유고슬라비아 주민들을 속박시켜 그들 나라를 가신으로 만들려는 모스크바의 전략에 대해, 확고한 저항을 하는 바로 그 유고슬라비아 주민들에게 가야 합니다. 모든 이익들은 유고슬라비아 정권이 인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승인으로 얻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모든 압박은 우리 운동의 전통과 원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티토주의 관료주의의 변명할 수 없는 이상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관료주의는 그저 새로운 형태의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의 모조일 뿐입니다. 이것은 GPU(소련의 국가정치보안부. 나중에 KGB로 바뀌었다)의 사상과 정치와 윤리에 길들여졌습니다. 그 정권은 스탈린 정권과 근본적인 면에서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유고슬라브 인민의 혁명적 리더십이 이 관료주의로부터 발전된다거나, 그에 저항하는 투쟁의 과정이라고 믿거나 혹은 가르치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을 지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저질렀던 전쟁에 대한 입장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3차 세계대전은 가장 어려운 문제, 가장 복잡한 상황, 막중한 결정을 해야 할 혁명운동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직 가장 진지하고 가장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서 입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의 모든 사건을 접하면서, 여러분들은 스탈린주의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모든 운동을 주창하고 서약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은 고통 받는 한국 인민들이 견뎌내는 전쟁에서 스탈린주의 군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여러분들에게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트로츠키는 정치국에서 스탈린이 던진 불명예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정권을 위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이 1927년이었습니다. 23년이나 지난 오늘날, 스탈린은 사회주의 조국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주의 독재로 인민들을 노예화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대체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이미 한반도에서 방어하고 있는 전쟁을 방어하기 위하여 제안하는 국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자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그와의 싸움을 반복했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분들의 비판과 싸움은 그 가치를 잃었으며, 스탈린주의 국가의 방어라는 여러분들의 입장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어떤 결과도 낼 수 있습니다.  누구든 이 야만적인 억압의 정권을 방어하려는 자들은, 그 동기에 관계없이 사회주의와 국제주의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SWP의 최근 대회로부터 제게 온 메시지에서, 여러분들은 트로츠키의 생각이 여러분들의 안내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전 이글을 읽으며 매우 비통한 심정이었음을 밝힙니다. 위에서 썼던 것에서 여러분들이 보셨듯이, 저는 여러분들의 정치에서 그의 사상을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상에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혁명,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해방 뿐이라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도바 트로츠키의 편지에 대하여  -공산주의 노동자 조직(CWO)

 

 

트로츠키의 미망인인 나탈리야가 트로츠키주의의 운동과 결별할 때 발표한 상명을 우리는 재발간한다. 그녀는 그들이 스탈린주의에 대해 면책권을 주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확실한 포기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그녀가 언급한 두 가지 결정적 요소는 동유럽 모스크바 지배의 국가들을 변형된 노동자 국가의 범주에 넣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결정과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의 스탈린주의자들을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지원한 것이다.

 

셰도바 트로츠키의 편지는 공산주의 노동자 조직(CWO)과 혁명당 국제서기국(IBRP *CWO는 IBRP의 한축으로 영국의 섹션이다)이 충실한 국제주의 흐름의 전통과 매우 다른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비록 그녀가 명확하게 스탈린주의 국가가 노동자 국가가 아님은 지적했지만, 트로츠키주의의 환상의 근원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매우 간단하게도 그 뿌리는 트로츠키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1927년 트로츠키가 사회주의자 조국을 지원하기로 선언한 것은 그가 러시아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분파투쟁 동안 스탈린주의에게 일찍이 줬던 면죄부를 표현해준다. 셰도바의 반파시즘에 대한 은연중의 지지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1930년대의 통일전선주의의 지지는, 명확하게, 셰도바가 트로츠키주의의 반혁명적 입장의 근원을 폭로하기 위한 충분히 심도 있는 비판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기록에 접촉하러 오는 이들에게 숨기길 바라는 역사적 기록에 보태기 위해 그 편지가 재출간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 문서는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혁명적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동떨어져 진행해 온 그 거리를 결론적으로 보여준다. 그 성명이 쓰인 이후 반세기동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더욱 더 반혁명의 궤도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이 편지에서 언급한 SWP는 그 시기 제4인터내셔널의 미국 섹션인 당으로 스스로를 제4인터내셔널에 동조하는 섹션으로 기술하면서 미국 법에 동조했다. 1980년대 동안 그들은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치어리더가 되기 위해 트로츠키주의자 사이에서 더 많은 분열을 초래했다. 셰도바 트로츠키의 초기 성명 직전 몇 년간 영국의 트로츠키 운동내의 수많은 분열중의 하나였던 같은 이름의 영국 기반조직인 SWP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주의의 반파시즘에 대하여  -CWO

 

국제주의자들에게, 파시즘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의 패배에 따른 심각한 위기의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한 대가의 일부다. 그러나 결코 20세기 부르주아 민주주의(대도시 지역 국가들에서의 제국주의 지배가 선호한 형태)가 제국주의 형성보다 덜한 작은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민주주의적 형태 둘 다에 대한 역사적 해결책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이다. 트로츠키주의자를 위한 것이 아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예를 들면 훨씬 더 많은 흑인들이 민주주의 영국 국가의 손에 죽어가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며 별것 아닌 파시스트 조직의 역할을 강조하려 할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다른 좌파 동맹과 함께 혼란의 병기고 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반파시즘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싸워왔다.

 

반파시즘은 단지 노동자계급 속에 널리 퍼진, 많은 다른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있는 혼란속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을 2차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넣은 가장 강력한 유일한 이데올로기 도구였다. 스페인 내전동안에 기반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체계적으로 그들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독일 주도의 축에 맞서 민주주의 진영에서 싸우도록 준비시켰다. 공시적인 공산당 리더십은 (1939년 9월~1941년 5월의 히틀러-스탈린 조약 동안) 그들의 외부 그리고 스탈린의 위대한 애국전쟁 동안 앵글로-러시안-아메리칸 제국주의 동맹을 외부에서 지원하는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을 메우는 것이었다.

 

반파시즘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병기고에서 여전히 중요한 무기로 남아있다. 독재자에 저항하는 투쟁은 이라크에 반대하는 전쟁 지원을 유발시키는데 이용되었다. 클린턴과 블레어의 밀로세비치의 세르비아 정부를 비난하는 긴 연설은 제국주의의 민주적 반파시즘 용어의 많은 특징들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린 이미 어떻게 현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전쟁 기간 중에도 하나 또는 다른 부르주아 분파를 지원하기 위해 선거를 하는지 보았다. 반파시즘 논리의 이용은, 그들의 더 큰 부르주아 형제분파들이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로 내몰도록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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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우파에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오늘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분파가 수십여개로 많은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중요 구성요소 자체에 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의 불모지였던 한국같은 짧은 역사를 가진 곳에서 조차,  그들은 5개 이상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 같은 당 지향적 조직간의 일부 트로츠키 경향 사이에서도 리비아 사태를 두고 서로간에 적대적인 경향(카다피의 무조건적 방어 주장과,  제국주의 물리력을 빌려서라도 카다피를  우선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드러내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치명적 한계가 역사적으로 극복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계승될 것임을 보여준다.

 

 

2. 그리고  이들의 우파가 분파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실제로는 부르주아 정치기구의 좌익을 의미한다. 이들이 말로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쳐대면서도, 타도해야 할 대상인 부르주아 정치기구(그것이 노동자 당이건, 사회민주주의 당이건)에 입당전술을 펼치면서 기생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에 치명적 장애물이다. (물론 혁명적 트로츠키주의자들 안에서도 일부는 여전히 명백한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에 기생한 운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를 위한  조직적 전망과 장기적 계급투쟁에의 결합이 아니라, 이들의 시시때때로 변하며 임기 응변적인 반정립운동은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스스로 자신들을 조직하는 자기조직화의 기본을 잃어버리게 했다.  과거 스탈린주의가 없었더라면 트로츠키 이후의 트로츠키주의가 성립 가능했을지 여전히 의문인 것은, 한국의 현실운동에서도 그들이 벌이는 다른 운동에 대한 반정립운동의 형태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해방을 대표하지 않고 새로운 지배자가 될 국가자본주의자들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질서를 대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당(그것의 변종들 -김일성주의등 포함하여)의 좌익으로 기능하며, 이 당들이 혁명적인 정치적 입장으로 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이 당들이 노동자계급의 눈에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다함께가 개입한 민노당은 다함께에 의해 혁명적으로 진화했거나,  노동자당원들의 의식이 진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백하게 퇴보했거나,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세력들과 한지붕아래 동거함으로 인해 김일성주의 같은 반혁명적 조류들을   혁명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3.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지도력이 부족할 뿐이라는 트로츠키의 선언을 맹종함으로써, 그들은 혁명 정당의 부활을 위한 실제조건을 깨닫는 데 실패한다. 이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투쟁과, 당 강령의 명확화에 대한 객관적 필요 속에 있다. 이러한 기초적인 조건들을 인지할 수 없었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취한 혁명적 교훈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지 않고서는 , 그들의 역사적 궁지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트로츠키를 외우고, 맹종할것이 아니라,  트로츠키 근본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폐기하고,  절반이상을 버리고 도려내서  그 노선의 10%만 남더라도 혁명적인 전통만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맑스주의 정통으로 가는 길이자,  혁명적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  부르주아 이데롤로기에 조종당하지 않고 스탈린주의에 목졸림 당하지 않은 새롭게  소생하는 젊은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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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 2

러시아 좌익 공산주의 :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2)

국제 평론 2010년 11월 143호, 국제공산주의흐름(ICC)

 

 

 

 우리는 「선언(강령)」의 첫 번째 부분을 국제 평론 지난 호에 실었다. 되짚어보면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은 이 강령을 작성했고, 제3 인터내셔널의 당과 러시아에서의 소비에트 권력의 기회주의적 타락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한 좌익 세력들로 구성된, 소위 좌익 공산주의의 일부를 형성했다.

 

 아래 게재된 이 문서의 앞으로의 두 장은 기회주의적인 통일 전선 정책과 노동자 정부 슬로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강령은 역사적인 시기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읽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반동적일 뿐인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들과의 동맹 정책을 무효화하고 헛된 것으로 만들었다. 이와 유사하게, 반역자로 드러난 사회 민주주의와 같은 조직들과의 동맹들도 프롤레타리아트를 약화시키는 것일 뿐이었다. 나아가 「강령」은 새로운 시대에서 개혁을 위한 투쟁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 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났기 때문에 그 변화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그런 혁명가들조차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관점을 갖추기 힘들었다. 이것은 「노동자 그룹」도 마찬가지여서, 개혁을 위한 투쟁과 자본의 영구적인 잠식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방어적 경제 투쟁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들은 방어적 경제 투쟁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정치적‧경제적 투쟁이 전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연대 없이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라 믿었다.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해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 직면하여, 내전이 끝난 후에도 「강령」은 지도자에게 “당신은 어떻게 사회 경제의 엄청난 조직화 문제를 프롤레타리아트 없이 해결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때, 굳건하고 명확하게 답하고 있다.

 

 

 

● 사회주의 통일 전선

 

 이 문제의 본질적인 내용을 보기 전에, 지노비예프 동지의 통일 전선에 대한 테제가 러시아에서 토론되고, 받아들여진 상황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21년 12월 19-21일에, RCP(러시아 공산당)의 12차 당대회가 있었고, 이 때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언론에 발표되거나 당 모임에서 토론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대회에서, 발표된 테제에 대해 조잡한 공격은 있었으나 곧 잠잠해졌고, 당대회는 즉시 거수로 이 테제를 승인하게 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이러한 배경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첫 째, 통일 전선 전술은 매우 서둘러, 거의 “군대처럼” 이뤄졌다는 점, 둘 째, 러시아에서 이것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졌다는 점이다.

 

 볼셰비키는 코민테른1) 내에서 이 전술의 발기인이었다. 그들은 외국 동지들에게 우리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고, 그것은 통일 전선 때문임을 명확히 했다. 또한 통일 전선은 러시아 안에 모든 혁명 전 시기의 경험들과, 특히 볼셰비키의 멘셰비키에 맞선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었다고 설득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동지들은 단순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도 그들의 부르주아지에게 승리하길 원했다. 이제 그들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통일 전선 전술 탓으로 승리했다고 납득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레닌 동지가 이 단순한 이야기를 믿어버린 이들을 심각하게 비난했지만, 그는 누구도 그가 이러한 특별한 단어에 붙들려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 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 때 볼셰비키는 독재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운동을 지지했다.

 “a)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짜리즘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이든, 단지 반대파일 뿐이든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

 

 b)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을 반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부르주아 해방 운동의 제한적이고 부적절한 성격이 스스로 드러날 때마다 그 정체를 밝혀야만 한다.”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 노동당」 2차 당대회 결의문, ‘자유주의자에 대한 태도’, 1903년 8월)

 

 1905년 4월 열린 3차 당대회 결의문은 동지들에게 두 가지 지점을 지적하며 권고했다.

 

 1) 노동자들에게, 많은 지주층과 제조업자들로 대표되는 온건 자유주의자들부터 “해방 연합(Emancipation Union)”과 다양한 자유주의 전문직 그룹들로 알려진 급진적 경향들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 경향이,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반혁명적, 반 프롤레타리아 본질을 갖고 있음을 설명할 것.

 

 2) 노동자 운동을 되돌리려는 일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시도에 저항해 싸우고,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다양한 그룹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것. 1898년 이후 사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 전선은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째, 1901년, 사회 민주주의는 현재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진보적인 운동들”을 지지했다.

 둘 째, 1903년, 그들은 “부르주아 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를 인식했다.

 셋 째, 1905년 4월, 그들은 “동지들로 하여금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경향의 반혁명적, 반 프롤레타리아적 본질과 그 영향력을 비판”하고 그들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영향에 대해 정력적으로 싸웠다.

 

 부르주아지를 지원하는 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1905년 이전 특정 시기 볼셰비키가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을 형성했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러시아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하는 “혁명가”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가?

 

 1905년 9월, “Boulyguine 두마”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대회는 이 두마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했다. “인민의 대표라는 이러한 환상으로, 독재는 노동 운동이 지쳐감에 따라 성장하고 질서를 열망한 부르주아지의 많은 요소들을 부추겼다. 그들의 이해와 지원을 약속하면서,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운동을 박살내려 했다.”

 

 볼셰비키가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RSDLP) 통일 대회에서 제안한 결의안은 볼셰비키 정책 변화의 비밀을 드러내 준다. 부르주아지를 지원하던 정책이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 정책으로 변화한 것이다. “거대한 자본가와 지주들의 계급들이 독재에 대해 반대하다가 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얼마나 재빨리 독재와 연합하게 되었는지 볼 수 있다.” “민주주의 혁명 시기의 노동자 계급의 주요 임무는 그 혁명의 완수”였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이 혁명의 완수를 원하는 당과의 “통일 전선”을 형성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볼셰비키는 카데츠의 우익과 했던 협정을 폐기하고, 그 좌익인 「사회주의 혁명가당」, 「인민 사회주의자들」과 「트루도빅스」(Trudoviks)와의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 혁명의 지속적인 진전을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 볼계비키의 전술은 옳았는가? 10월 혁명의 적극적인 투사들 사이에 이러한 전술의 시비에 대해 논쟁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므로 1906년에서 1917년까지 볼셰비키가 「제헌 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임시 혁명 정부」의 형성으로 완수된 민주주의 혁명의 지속적인 진행을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옹호했다고 본다.

 

 아무도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였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 멘셰비키, 인민주의자들과 트루도빅스들과 실질적으로 단결하면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제안하고, 그에 따랐다.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볼셰비키의 전술은 무엇이었는가?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도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필요로 하는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혁명가당」을 “모호한 사회주의 표현을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로 여긴다. 그것은 혁명 동안,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을 통해 확인되어 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로서, 이 당은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을 위한 투쟁에서 실질적인 임무를 떠맡을 수 없었다. 대신에 그들은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투쟁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돌리려 했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리고 그들은 그러했다) 봉기한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끌 전략은 사회주의 통일 전선일 리가 없다. 오히려 부르주아지 분파와 그들의 혼란스런 사회주의 용어들을 상관하지 않는 피튀기는 전투만이 승리로 이끌 전략일 것이다. 오직 이러한 전투만이 승리를 가져올 것이며, 승리는 반드시 그런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승리했다. 사회주의 혁명가당, 인민주의자들과 멘셰비키들과의 동맹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맞서 싸움으로써 승리했다.

 

 10월이 다가왔을 때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2), 멘셰비키3)의 사회주의적 수사들로부터 노동자 대중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멘셰비키와의 분리에 성공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 분파와의 통일 전선으로 취급하기 힘든 이러한 분리로부터 그들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1) 특정 역사적 순간,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은 1905년 이전의 러시아에 존재했던 상황과 유사한 조건의 지역에서 형성될 수 있다.

 2) 1906년과 1917년 사이의 러시아와 다소 유사한 상황의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위한 직접적인 투쟁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을 폐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를 쓰는 부르주아 분파”- 그 당시로서는 제2 인터내셔널의 모든 정당들이 해당될 것이다 -가 결정적인 순간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계 자본주의 착취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가진 모든 혁명적 인자들의 단결을 위해서는, 그들이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KAPD), 「네덜란드 공산주의 노동자당」과 「제4 인터내셔널」4)에 속한 다른 정당들과의 동맹이 필수적이다. 모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은 그들을 투옥했던 모든 세력들-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 제2 1/2 인터내셔널5)과 그들의 “모호한 사회주의적 용어”- 로부터 스스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세계 혁명의 승리는 부르주아의 사회주의 캐리커쳐로부터의 원칙적인 분리와 그들에 대항하는 멈추지 않는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쇼비니스트들은 부르주아지의 하인들로서,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적들을 지휘했는데, 특히 오늘날, 자본가들과 연결되어, 그들의 나라에서, 해외에서 무장한 억압자가 되었다. (볼셰비키의 강령과 비교해 보라) 이것이 코민테른의 최고 위원회의 테제에 의해 지지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의 진실이다. 실제로는 기회주의적 전술이었던 것이다. 자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행해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무장 억압을 수행한 적들과의 합동 전술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 명백히 대립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남아있기 위해, 우리는 부르주아지와 그 사회주의자 하인들에 대항하는 “통일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 통일 전선” 전술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원되는 독재에 대항하여 일어날 때, 부르주아 민주 혁명을 목표로 할 때 그 혁명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도 반대하는 독재에 대해 싸울 때, 부르주아지와의 “통일 전선” 전술을 따라야 한다.

 

 코민테른이 모든 국가들의 공산당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쓸 것을 요구한 것은 각 나라의 조건에 상응하도록 해결책을 내놓는 현실적 임무를 방해하고, 의심할 바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혁명적 운동들에 해를 끼쳤다.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집행위원회의 테제에 대하여

 

 이 테제는 프라우다(Pravda)에 게재되었는데, “이론가들”이 “사회주의 통일 전선”의 아이디어를 단 두 단어의 표현으로 이해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통일 전선”. 1917년 러시아에서는 모든 나라들에서, 특히 샤이데만, 노스케를 비롯한 사회적 배신자들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모든 이들이 안다. 볼셰비키의 당원들은 거의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곳에서 외쳤다. “이 노동자 계급의 배신자들아! 우리는 너희들을 전신주에 목 매달 것이다. 너희들은 모든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수장시켜 죽인 그 피의 욕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너희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암살했다. 베를린의 거리에서, 너희들의 폭력적인 행동 덕에 착취와 자본주의 억압에 반대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붉은 피가 흐른다. 너희들은 베르사유 평화의 저자들이지만 그것을 매번 배신함으로써, 너희들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셀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우리는 공산주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제안하는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노스케, 샤이데만, 반데벨드, 브란팅 등과의 연합전선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통일 전선은 일방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위장될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 들이다. 테제는 단순히 “사회주의 통일 전선”으로 명명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통일 전선에 대한, 그리고 제2 인터내셔널에 속한 노동자들, 「2와 1/2 인터내셔널」과 암스테르담, 유사하게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 조직에 속한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테제”라고 이름 붙여졌다. 왜 이렇게 장황한가? 여러분은 오래지 않은 시간 전에 우리를 제2 인터내셔널의 장례식에 초대한 지노비예프 동지가 이제는 우리를 제2 인터내셔널과의 결혼 축하연에 초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장황한 제목을 달아야 했는가 그 이유이다. 사실 이 테제는 노동자와의 협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과 2와 1/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과의 협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중앙 위원회에 앉아있는 반데벨데, 브란팅, 샤이데만, 노스케 등에 의해 대표되는 당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협정이 이뤄지는 것은 그들과 함께이다. 누가 세 개의 인터내셔널의 대회를 위해 베를린에 가겠는가? 공산주의 인터네셔널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신뢰를 누구에게 줘야 하는가? 벨스(Wels)파에게, 반데벨테(Vandervelde) 파에게 

 

 그러나 KAPD와 협정을 맺으려 시도한 적이 있던가? 지노비예프 동지가 대부분의 훌륭한 프롤레타리아적 인물들이 있다고 인정한 그곳과? 없다. 그리고 KAPD는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다.

 

 지노비예프 동지의 이 테제의 목적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제2 인터내셔널의 혼합이 아니라고 확인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해, 그는 조직적 자율성의 필요를 일깨워준다. “제2 인터내셔널과 2 1/2 인터내셔널과 이러저러한 협정들을 맺은 각 공산당의 위치는 절대적 자율성과 총체적 독립성이 설명해준다.”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에 있어서 자기 규율을 스스로 강제하지만, 그들은 노동자 조직의 정치에 대한 예외없는 권리와 가능성을 - 실천의 전후에, 가능하다면 실천하는 가운데 - 유지해야 한다. “자본주의 전선에 대항하는 실천적인 행동에서의 모든 노동자 조직의 최고 수위의 단결”이라는 슬로건을 지지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1921년 러시아 공산당 대회에서 제출된 코민테른 중앙위원회의 테제를 보라)

 

 1906년 이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에서는 위의 코민테른의 테제에서 인용된, 가능한 최대한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두 분파가 있었다.

 

 협상에서의 규율, 당 내 활동에서의 판단의 자율성은 공식적으로 RCP의 규정에 인정되어 있었다. 다수가 정한 것은 해야만 하며, 개인은 비판의 권리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명령된 것은 해야만 하지만, 그것이 세계 혁명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분노했다면, 실천 이전에, 와중에, 그리고 이후에 자유롭게 그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율적 행동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Vandervelde가 베르사유 조약에 사인하고, 스스로 타협했을 때와 같다)

 

 이러한 같은 테제들에서, 집행위원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신하는 것임이 분명한 노동자 정부의 슬로건을 제안했다. 노동자의 정부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당의 정수인 중앙 위원회로 구성된 정부이다. 이러한 테제의 이상적인 실현은 사회주의자인 에버트(Ebert)가 대통령인, 그의 승인과 함께 정부가 형성된 독일에서 일어났다. 이 공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공산주의자들은 스웨덴의 브란팅과 독일의 에버트와 같은 사회주의자 수상, 대통령을 지지하는 투표를 해야만 한다.

 

 코민테른의 의장, 지노비예프 동지는 사회민주당의 중앙위원회, 에버트, 노스케, 샤이데만을 만나 주먹을 쥐고 외쳤다. “노동 계급의 배신자, 변절자!” 그들은 친절하게 미소 짓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들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했다. 우린 당신을 교수대에 목매달 것이다.” 그들은 그를 향해 더욱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지노비예프 동지는 그들에게 통일 전선을 제시하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 정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그는 교수대를 수상의 자리와 바꾸어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노스케, 에버트, 샤이데만, 등등은 노동자 집회에 가서 코민테른이 자신들을 사면했으며, 교수대 대신 수상 자리를 제안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조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수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6) 그들은 모든 노동 계급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실현의 가능성이 오직 자신들과의 단결에 있지, 그들과의 대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덧붙인다. 이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를 예전에 교수형에 처해 무덤에 묻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선의로 그들을 용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상호 사면인 셈이다.

 

 코민테른은 제2인터내셔널에 그 정치적 성실함의 증거를 보여주었고, 정치적 열등함의 증거를 받았다. 실제 이 변화의 기원은 무엇인가? 지노비예프 동지는 어떻게 에버트, 샤이데만, 노스케에게 교수대 대신 수상 자리를 권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장송곡을 불렀는데, 이제 그들은 삶에 키스를 한다. 왜 그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가? 우리는 정말 그 부활을 보고 그 주장을 들어야 하는가?

 

 지노비예프의 테제는 이러한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답한다. “세계 경제 위기는 더더욱 첨예해지고, 실업은 늘어만 간다. 자본은 공세로 나아가고, 교묘하게 작전행동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조건은 손상되었다.” 그러므로 계급 전쟁은 피할 수 없고, 노동 계급은 더욱 왼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개량주의적 환상은 파괴되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전위의 용기를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샤이데만과의 통일 전선은 구성되어야 한다. 극악무도한! 결론은 전제와 일관되지 않다!

 

 우리는 지노비예프가 그의 테제에서 통일 전선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웠던 주장들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객관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노비예프 동지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우리는 단결을 위한 노동 계급의 투쟁을 안다. 샤이데만과의 통일 전선을 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단결할 수 있는가?” 자신의 계급의 이해와 세계 혁명에 대해 생소하지 않은, 모든 의식 있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 계급은 “통일 전선”을 주장할 필요가 생겼을 때에만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가? 노동 계급이 정치 투쟁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노동자와 함께 한 이라면 누구나 모든 노동자를 괴롭히는 의심을 알고 있다. 왜 멘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당, 볼셰비키, Trudoviks(인민주의자) 들은 서로 싸우는가? 모두가 민중을 위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는가? 모든 노동자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계급으로서 조직화해야 하고, 그 외 모든 계급들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우리의 쁘띠 부르주아적 편견들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호의적인 상황에 있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우리는 노동 계급이 국제적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대항하는 무장 투쟁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확실히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세계 노동 계급은 제2 인터내셔널과 2와 1/2 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자들이 반혁명의 선두에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주의의 배신자들과의 통일 전선에 대한 선전들은 어떤 뉘앙스에 상관없이 그들도 역시 사회주의를 위해 부르주아지와 싸우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직 공개적이고 용기있는, 내전을 옹호하고 노동계급에 의한 정치 권력의 획득을 옹호하는 선전들만이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노동 계급이 그 자신의 물질적 법적 권리를 파업과 의회를 통해 개량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이것은 밝혀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투쟁은 권력 투쟁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전을 통해, 많은 경우 파업을 자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아직 옛날 개량주의적 환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와 파업 동안 연대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운동은 노동자들을 노예 상태, 착취와 갈증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의 굳은 살 박힌 손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지노비예프 동지의 연대 결정은 통일 전선 전술을 정당화 했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시대”라는 관념을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그것은 현재, 사회 혁명이 시대의 화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 혁명의 시대는 장기적 관점에서 혁명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줬다. 지노비예프는 우리가 현실에 발을 딛고 노동 대중을 끌어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1903년에서 1917년까지 다른 방식으로 단결함으로써 대중들을 설득했고,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우리의 승리로 끝맺었다. 이것이 왜 그가 에버트, 샤이데만, 씨에(Cie)를 극복하라고 하며 그들과 싸우지 말고 단결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기간이 장기든 단기든, 그 기간이 어느 정도든 여기서 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쟁은 천사의 성별에 대한 수도사들의 논쟁이나 대머리가 되려면 몇 개의 머리카락이 없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혁명의 시대”라는 개념을 정의하고자 한다.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물질적 생산력이 발전하여 소유권과 양립할 수 없게 된 상태이다. 사회 혁명이 필연적인 것이 되는 물질적 조건이 있는가? 그렇다. 무엇이 부족한가? 주체, 인적 조건이 부족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 계급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러한 혁명의 필요를 실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미 이를 이뤄낸 선진 노동자들, 다시 말해 전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공장 폐쇄, 파업, 급박한 전쟁, 생활조건의 추락 등) 내전을 옹호하는 선전을 통해 전투를 요구하고, 이러한 즉각적 투쟁에 대해 노동 계급을 준비시키고 조직해야 한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했다고, 그것이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넌센스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대항하는 치열한 싸움을 통해 부르주아지와 지주들에게 승리했다.

 

 통일 전선 전술의 필요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는 승리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분석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통일 전선을 통해 진군했지만, 그것은 우리와 멘셰비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이 같은 위원회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통일 전선 전술이 같은 기관에 앉아있는 것이라면, 강제 노동의 우두머리들과 죄인들 또한 통일 전선에 포함된다.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우리 공산당은 의회에 앉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모든 대표들과 함께 통일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동지는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에게, 다소 의심스런, 볼계비키, 멘셰비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의 소위 통일 전선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볼셰비키가 1917년 8월 「사회 혁명적 케렌스키」가 소환한 “전-의회”나 사회주의자에 의해 주도된 임시 정부(유용한 교훈이었던)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밝혀야만 한다.

 

 우리는 볼셰비키가 부르주아지와 통일 전선을 꾸렸던 시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인가? 1905년 전이다. 그렇다. 볼셰비키는 사회주의자들과의 통일 전선을 옹호했다. 이것은 언제인가? 1917년 전이다. 1917년, 노동계급의 권력을 위해 싸울 때,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가당 좌익에서부터 모든 종류의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적 집단과 함께 무기를 들고 소위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통일 전선을 형성한 멘셰비키와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지주들과 싸웠다. 1917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있는, “사회 혁명의 시대” 최전선에 나섰다. 1917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전술은 뒤이은 나날들의 교훈을 설명해 준다. 부르주아지 분파들,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멘셰비키의의 격렬한 저항에 권력을 쟁취한 노동 계급은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것은 이 전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개량주의적 환상을 제거”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제2인터내셔널이나 2와 1/2 인터내셔널과의 통일 전선이 아니라 그들과의 전쟁일 것이다. 이것이 세계 사회 혁명의 슬로건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쥔(노동자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

 

 이미 사회주의의 공격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계급이 된 모든 나라들에서는 각 시기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각각의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 과정의 모든 단계에 유효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같은 단계에 대한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그렇게 오래지 않은) 투쟁의 역사를 기억해 본다면, 적과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다른 과정들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다.

 

 1906년과 그 후 몇 년동안은, “세 개의 기둥”이 있었다. 8시간 노동, 토지의 소유, 그리고 민주 공화국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기둥은 언론과 집회, 파업,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1917년 2월에는 어떠했는가? “독재 정치는 끝났다! 제헌 의회 만세!” 이것이 볼셰비키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4-5월, 모든 것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회, 언론의 자유는 있었지만 토지의 소유는 그대로였고, 노동자들은 권력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볼셰비키는 다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이 시기,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시도들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언론, 집회, 결사, 파업, 양심의 자유 만세! 토지를 몰수하라! 생산의 노동자 통제! 평화! 빵! 자유! 내전 만세!”

 

 그리고 10월의 승리.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았다. 국가 억압의 오랜 작동원리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해방의 새로운 작동원리가 노동자, 군인 대표 평의회 속에 구조화되었다.

 

 이 시기에 와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언론, 결사의 자유는 주장되어야 했던 것일가? 군국주의자부터 멘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당이 내전을 지지하도록 허락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지배계급으로서 내전을 옹호하는 동지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반대하는 어떤 내전에 대한 조직된 선전도 착취자, 억압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반혁명적 행위였다. 선전이 더욱 “사회주의”적일수록, 더욱 해악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이러한 선전들에 대한 가장 엄격하고 무자비한 제거”가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착취자들의 저항을 억압할 수 있고, 스스로 조직하여 유일하게 권력을 쥐며, 모든 자본주의 정부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국가를 건설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나타났다. 이들에게 부여된 새로운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 경제를 조직하고 가능한 한 많은 물질을 창조하는 것. 그리고 이 임무는 권력의 쟁취와 착취자들의 억압 만큼이나 엄청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권려의 쟁취와 착취자에 대한 억압은 그것 자체로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로의 길은, 자본주의보다,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지배와 억압 하에서보다 더 나은 삶과 자유로의 길은 그것 자체로 목표였다.

 

 이전의 억압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조직의 형태와 실천의 수단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우리가 자원이 부족하다는 관점에서, 제국주의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끔찍한 황폐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 계급과 동맹 그룹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주의 사회의 매력적인 힘들을 보여주기 위해 물품을 창조하는 임무가 우리에게 부과되었다. 더 이상 부르주아지, 경찰과 다른 기생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인이 되고 자유로우며, 모든 가치, 모든 상품, 모든 노동이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그리고 굴욕받던 자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은 굶주림의 왕국이 아니며 오히려 전에 없던 풍요의 왕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남겨진 임무이며, 선행된 것들을 능가해야할 임무이다.

 

 그렇다. 첫 번째 두 임무, 권력을 쟁취하고 억압자들의 저항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앞선 이들을 뛰어넘었고(이것은 지주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들의 강한 오를 설명한다) 그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세 번째 목표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노동자들은 질문해야 한다. 왜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가? 끝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우리 운명을 누가 결정하는가? 어떤 조직이 그것을 할 것인가?

 

 최고의 구세주는 없다.

 

 신도, 카이사르도, 호민관도 아니다.

 

 생산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라!

 

 공통의 구권을 선포하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된 의지를 대표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빼앗은 (국유화된), 그에 속한 거대한 계층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속한 산업 조직 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평의회는 무엇인가? 그들은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 다시 말해 “농장과 공장에서의 국가 권력의 핵심”을 조금이라도 닮았는가? 그들은 단결된 의지를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평의회를 닮기는 했는가? 지금의 평의회는 그 의미와 산업 기반을 잃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압제자에 대한 저항과 그들의 파괴를 향한 목표에의 관심을 동원했던 오랜 내전은 연기되고 모든 다른 업무들을 제거하고 - 프롤레타리아트가 눈치채기도 전에 - 그 조직, 평의회를 변화시켰다. 공장의 노동자 대표의 평의회는 죽었다. 노동자 대표 평의회 만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보편적으로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언론의 자유에 대해 격렬한 내전과 노예 감독자의 봉기 때와 유사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권력을 차지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를 끔찍한 적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되어, 이제 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스스로 엄청난 생산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하고 생산과 전체 나라를 지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부르주아지는 확실히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가 권력을 방어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언론의 자유를, 자신의 피를 흘리지 않고 논할 것인가?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는 무엇인가? 신인가 미신인가?

 

 우리는 우리를 위한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복종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민주주의, 절대적인 자유, 물적 숭배나 우상,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따위는 없다.

 

 민주주의는 전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모든 나라의 반혁명,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멘셰비키 등을 의미하는 미신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계급적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

 

 1917년 이전, 모든 시민의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진보적인 요구였다. 1917년에는,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쟁취하여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과 농민들의 조직화와 선전에 썼다. 부르주아지를 이길 수 있는 조직을 만든 후, 우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나아가 권력을 쟁취했다. 부르주아지가 언론의 자유를 우리를 반대하는 내전을 일으키는데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적 계급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러시아의 부르주아지의 저항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언론의 자유를 주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다수 노동자의 지원으로, 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프롤레타리아에게 말하도록 허락할 수 있지 않은가?

 

 1917년 이전과 1917년의 언론의 자유, 그리고 1918년에서 20년까지의 것과 1921년에서 1922년까지의 문제에 대한 우리 당의 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소비에트 권력의 적들이 이 자유를 소비에트를 전복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 자유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이들이 혁명 과정의 같은 단계에 있다면 유용하고 필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은 있지만 농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쟁과 경제적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소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춥고 배고픈 채로 피흘리며 지쳐 있다. 여기서는 그 자유가 소비에트 권력을 전복시키는 길의 첨단으로 몰고 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프롤레타리아트에 더해 러시아에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대다수의 농민들이 간신히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이 농민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반혁명 군대를 형성하는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없다. 우리가 노동자들을 농민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조금이라도 먹이기라도 하면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이 마음이 올바른 공산주의자들의 추론이다.

 

 우리들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 없이 사회 경제의 조직화라는 엄청난 임무를 해결할 것인가? 당신은 언제나 예, 아멘이라고 이야기하는 신의 어린양인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당신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조용히 있어라. 저항하지도, 생각하지도 마라. 왜냐하면 우리가 노동자와 농민들 중에서 용기 있는 이들에게 권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당신들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쓰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면 당신은 어느날 갑자기 사회주의 천국에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이야기하는 것은 개인, 영웅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계급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회색 대중과 그들의 평범한 생각들(적어도 지도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은 우리의 영웅들, 공산주의 공무원들이 공산주의 천국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재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웅을 믿지 않으며 모든 프롤레타리아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 우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지치고, 배고프고, 춥고, 기진맥진해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있는 문제는 어떤 계급도, 어떤 특수한 그룹도 우리를 대신해 풀어줄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당신이 우리들에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임무를 지식인들,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풀어줄 것이라고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을 당신에게 맡기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보여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쳤고, 따라서 그 무엇을 알 필요도, 결정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은 절대 옳지 않다.

 

 만약 1918년에서 20년까지 러시아의 상황이 달랐다면, 우리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 또한 달랐을 것이다.

 

 올바른 마음의 공산주의자 동지인 당신이 부르주아지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다면, 좋다. 그러나 문제는 손을 드는 것은 당신이고, 그들의 갈비뼈를 부수고 한 바가지의 피를 쏟아내도록 하는 것은 우리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 노동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볼셰비키, 아나키스트, 사회주의 혁명가당, 그리고 다른 이들(이러한 당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들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이들) 속에 노동 계급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들을 공산주의에 연결시키는가? 부르주아 “카데츠”(헌정 민주주의자들), 교수들, 변호사들, 의사들과의 협상은 없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처방이 있을 뿐이다. 몽둥이. 그러나 노동 계급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그들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 지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폭력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법과 행진의 진로를 명확히 함으로써.

 

 그렇다. 법은 법이지만 모두를 위한 법은 아니다. 마지막 당대회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에 대한 논쟁에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에는 180개의 부르주아지 출판사가 있었고, 지노비예프의 선언에 따라, 이들과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90% 열린 이데올로기적 설득력으로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가? 지노비예프는 우리 중 일부를 설득하려하는지 안다. 부르주아지가 누리는 자유의 10분의 1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노동자 동지들이여, 당신을 무엇을 생각하는가? 전혀 나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1906년에서 1917년까지 첫 번째 전술, 1917년 10월까지 두 번째, 1917년 10월에서 1920년 후반까지 세 번째, 그리고 1921년 초부터 네 번째... [...]

 

 

각주

1) 편집자 주 ; 코민테른. 제3인터내셔널의 러시아 이름이다.

 

2) 편집자 주 ; 사회적 혁명가당 좌익. 이들은 소비에트에 우호적이었고, 사회주의 혁명가당으로부터 1917년 9월, 분리되어 나왔다.

 

3) 1917년 10월 25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110명의 멘셰비키 대표들은 소수였고(673명 중), 10월 혁명의 비준의 순간, “볼셰비키 쿠데타”라며 이를 비난하며 자리를 떠났다.

 

4) 편집자 주 ; KAI(공산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는 1922년에서 24년동안, KAPD의 제안에 의해 설립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제4 인터내셔널과 혼돈하지 않길 바란다.

 

5) 편집자 주 ; 사회주의 당 국제 연합(the International Union of Socialist parties)의 별명은 제2와 1/2 인터내셔널이었다. “왜냐하면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사이에 자신을 위치 지었기 때문이다.” 레닌의 글, ‘베를린에서의 제3 인터내셔널의 대표들’이 수록된 알프레드 로즈머(Alfred Rosmer)의 책, 「레닌의 모스크바」(Lenin’s Moscow)에서 이러한 재편성에 대한 비판을 보라(Pluto Press, 1971).

 

6) 편집자 주 ; 여기, 그리고 이 글의 다른 곳에서 [...]은 우리가 번역하지 못한 짧은 문구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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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 1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1)

「국제평론」 2010년 8월 142호, 국제공산주의흐름(ICC)

 

 

 

 

 우리는 여기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 노동자 그룹」의 선언(강령)을 펴낸다. 이들은 가장 유명한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종종 “미아스니코프(Miasnikov) 그룹”(미주1을 보라)으로 불린다. 이 그룹은 소위 좌익 공산주의1)의 일부로, 그들은 한 편으로 러시아의 다른 그룹들과 기반을 공유하며, 또 다른 한 편으로 세계, 특히 유럽의 다른 그룹들과 기반을 공유한다. 이 경향은 그들의 기원을 제3인터내셔널의 당과 러시아의 소비에트 권력의 기회주의적 타락에 대한 반응에서도 찾는다. 그들은 좌익 경향 속에서의 프롤레타리아적 대응을 대표하며, 과거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의 발전에 직면했던 이들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우리의 서론

 

 1918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2) 안에서부터 좌익 분파가 등장했는데, 이는 볼셰비키의 정치3)에 대한 의견차이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볼셰비키주의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계급의 생생한 표현이었으며, 노동계급은 그 자신의 실천에 대해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혁명적 분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이에 저항하는 당 내부의 타락한 목소리가 제시될 때마다, 볼셰비키주의의 원래의 강령에 대한 배신을 비판하기 위해 당 내부에서 분파들이 생기거나 해체되었다. 스탈린주의가 당을 무덤에 파묻고 나서야 이러한 분파들의 끊임없는 발생은 멈췄다. 러시아 좌익 공산주의는 모두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주의의 본질을 부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칭송하며, 좌익 공산주의를 비난하고, 박해하고, 그리고 몰살시키려 할 때에도, 좌익 공산주의는 혁명의 영웅적 시기의 볼셰비키주의의 연속성을 방어했다.

 

 레닌이 그의 정치적 삶으로부터 물러난 것은 볼셰비키의 공개적 위기를 촉진한 한 요소였다. 한 편에서는 스탈린과 지노비예프, 카멘예프에 의한 “삼두 정치”의 형성 과정에서 관료적 분파가 당 내에서의 권력을 확고히 했다. 이 연합의 주요 유대는 트로츠키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불안정했다. 트로츠키는 그 동안 상당한 우유부단함에도 불구하고 당 내에서 공공연히 반대파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볼셰비키 정권은 경제와 사회에서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1923년 여름, 신경제정책(NEP)의 도입에 의한 “시장 경제”의 명백한 첫 번째 위기가 전체 경제의 균형을 위협했다. NEP가 1921년의 위기로 귀결된 전시 공산주의의 과도한 국가 집중을 되돌리기 위해 소개된 것이었던 것만큼, 이제는 경제의 자유화가 러시아를 자본주의 생산의 좀 더 고전적인 위기에 노출시켰음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과 “보통”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임금 삭감, 해고 정책과 같은 정부의 대응은 이미 궁핍해질 대로 궁핍해져 있던 노동계급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1923년 8-9월, 동시적인 파업의 발발은 주요 산업 중심지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현상 유지에 관심이 있었던 삼두체제는 NEP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왕도로 보기 시작했다. 이 관점은 특히 부하린에 의해 이론화되었는데, 부하린은 당의 극좌에서 우익으로 전향했으며, 스탈린 이전에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에 의한 “달팽이 걸음”으로 일국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다른 한 편, 트로츠키는 국가의 경제적 위기에 대해 더 강화된 국가 집중과 계획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의 지도적인 그룹 안에서부터 나온 첫 번째 명확한 발언은 「46인의 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Poliburo(정치국)에 1923년 10월 제출된 것이다. 「46」은 트로츠키와 가까웠던 피아타코브(Piatakov), 프레오브라진스키(Preobrazhinsky)와 같은 인물들과 사프라노브(Sapranov), 스밀노프(V Smirnov), 그리고 오신스키(Ossinski)와 같은 민주 집중 그룹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트로츠키의 서명이 없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분파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분파는 1921년 이후 금지되었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앙 위원회에 보낸 공개적인 편지는 1923년 11월 프라우다에, 그리고 그의 팸플릿 「새 길」(New Course)에도 실렸고, 이것은 46과 비슷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를 반대파의 중요인물로 명백히 위치짓게 해 주었다. 

 

 「46인의 강령」은 최초에는 정권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강령은 지배적인 계층의 실용주의적 경향과 NEP를 불변의 원칙으로 끌어 올리려는 경향에 대한 반대로서 더욱 강력한 국가 계획을 위한 몽둥이 역할을 맡았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트로츠키를 둘러싼 좌익 반대파가 견지한 주제였지, 그 힘이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당의 내적 생명을 질식시키는 것에 대해 제기한 긴급한 경고였다.4)

 

 동시에, 강령은 “병적인” 반대파로 불리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물론 강령은 그 단어를 당 내 위기의 표현으로 보았지만 말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미아스니코프와 보그다노프의 「노동자의 진실」(Workers' Truth) 주위의 노동자 그룹의 경향에 대한 것이었다. 곧 트로츠키도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그들의 분석이 너무 극단적이라거나, 동시에 당의 병적인 상태의 표현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을 거부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그룹들을 제거하기 위해 억압적인 방법으로 협력하는 것에 대해서도 내켜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그룹들이 “병적인” 현상들로 해체될 리는 없다. 「노동자의 진실」 그룹이 패배주의, 심지어 멘셰비즘으로 나아가는 특정 경향을 표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 내에서의 대부분의 경향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러시아에서의 국가 자본주의의 부흥에 대한 통찰은 10월 혁명을 다소 진보적인 부르주아 혁명으로 바라보며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에 의해 약화되었다.5)

 

 이것은 미아스니코프, 쿠즈네쵸프(Kuznetsov), 그리고 모이셰프(Moiseev)와 같은 오랜 볼셰비키들에 의해 지도되는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이 그룹은 13차 볼셰비키 총회 직후 1923년 4-5월에 그 선언(강령)을 배포함으로써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 문서를 검토하는 것은 그 그룹의 진지함, 그 정치적인 깊이와 전망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문서에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제 혁명의 후퇴, 그 귀결로서 노동 계급에 의한 방어적인 투쟁의 필요를 깨닫지 못한 “공격의 이론(theory of the offensive)”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1921년을 후퇴로 보지만 그로부터 많은 기회주의적인 결론들을 이끌어 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분석의 동전의 뒷면이다. 더욱이, 이 선언(강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에서 더 이상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임금 상승을 위한 투쟁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의 강점은 그 약점을 압도한다.

 

 첫 째, 우선 단호한 국제주의다. 「콜론타이의 노동자 반대 그룹」과는 반대로 그 분석에 러시아 지역주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강령의 전체 서론 부분은 국제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세계 혁명의 지연에 따른 러시아 혁명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러시아 혁명의 구원은 오직 세계 혁명의 부활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그 자신을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계 군대의 군인으로, 그의 계급 조직을 이 군대의 연대(regiment)로 보도록 배웠다. 10월 혁명의 운명에 대해 염려스런 질문을 제기할 때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러시아 국경 너머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지만 아직 혁명이 발발하지 않은 곳을 응시한다.”

 

 둘 째, 이 강령은 「통일 전선」과 「노동자 정부」의 슬로건이라는 기회주의적 정책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우리는 여기서도 깊은 국제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것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그룹의 입장은 분파주의도 아니고 - 다른 공산주의 조직들(독일의 KPD와 KAPD과 같은) 사이의 혁명적 통일의 필요를 긍정한다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사회민주주의 배신자들과의 연합을 요구하면서, 볼셰비키가 러시아 혁명에서 통일 전선 전술을 사용한 것처럼 그 방법을 계승했다는 겉치례의 논의에도 반대한다. “봉기한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끄는 전술은 통일 전선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부르주아 분파와 그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용어에 반대하는 유혈낭자하고 타협하지 않는 싸움만이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사회주의 혁명가들, 인민주의자들, 그리고 멘셰비키와의 연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이뤄진다. 통일 전선 전술을 폐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 부르주아 분파 - 이 시기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다 - 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 째, 소비에트가 직면한 위험에 대한 해석이 강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 과두정치로 교체”하려는 위협이 그 위험으로 지적된다. 강령은 관료 엘리트의 증가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공민권 박탈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며, 공장 위원회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에트를 복구시켜 경제와 국가의 지도력을 접수할 것을 요구한다.6) 「노동자 그룹」에게 있어서는 노동자의 민주주의의 부활은 관료주의의 부흥에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노동자의 점검」(Workers' Inspection)을 통해 흔듦으로서 새로운 전진이 있다는 레닌의 생각을 관료주의적 수단을 통해 관료주의를 통제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거부한 것이었다.

 

 넷 째, 강령은 막중한 책임을 표현하고 있다. KAPD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1924년 발표한 「강령」에 대해 비판적 주석을 덧붙이는데, 이는 러시아 혁명과 코민테른의 죽음에 대한 독일 좌파의 성급한 판단을 표현한다. 이에 반해 「노동자의 그룹」은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이 명백히 승리했다거나 코민테른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성급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1923년의 “커즌 위기(Curzon crisis)”는 영국이 러시아에 전쟁 선포를 한 것이었는데, 이 동안 「노동자의 그룹」의 구성원들은 전쟁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을 방어하는데 헌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서는 10월 혁명과 볼셰비키의 경험으로부터 단절했다는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사실 그 자신의 역할에 대한 앞서 언급한 의견은 이탈리아 망명 좌파에 의해 상술된 좌익 분파의 견해와 매우 닮아있다. 이 강령은 독립적으로, 심지어 비밀스럽게 스스로를 조직해야 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으나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라는 그 이름과 그 강령의 내용은 모두 그 스스로를 볼셰비키 당의 강령과 규칙의 연속선상에 위치 짓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강령은 당 내의 모든 건강한 구성원들, 리더부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진실」, 「노동자 반대파」, 그리고 「민주 집중파」와 같은 다른 반대 그룹에게서도 그룹을 재편성하고 당과 혁명의 재건을 위한 단호한 투쟁을 수행하자고 호소한다. 그리고 많은 측면에서 이것은 “46”이라는 당내 주도적인 분파가 그 자신에 의해 “우선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요약하자면, 「노동자 그룹」의 프로젝트 안에 어떠한 병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이 「노동자 그룹」은 계급에 어떤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분파 따위가 아니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의 그 구성원이 약 200명에 달하고,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을 일관적으로 지지했다. 따라서 1923년 여름과 가을에 걸친 비공인파업(wildcat strikes)에서도 적극적인 정치적 개입을 추구했다. 사실 당 기구가 이들을 최대로 억압하려 했던 데에는 당 내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그룹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미아스니코프가 예견했듯이, “그가 탈출하려는 동안”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까지도 있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살아남았고, 투옥된 뒤 추방되었지만, 외국에서 20년동안 혁명 활동을 계속 했다. 러시아 안에서의 「그룹」은 대대적 체포에 의해 다소 절룩거렸고, 그것은 20년대 후반 감옥에 갇힌 안테 실리가(Ante Ciliga)가 다룬 소중한 글 「러시아의 수수께끼」(Russian Enigma)에서 반대파에 대해 설명한 것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며 “극좌” 반대파 운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최초의 억압은 진실로 불길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공산주의 그룹이 볼셰비키 정권 아래에서 직접적인 국가 폭력에 고통받았다는 첫 번째 공공연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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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산당 노동자 그룹 선언(강령)

Manifesto of the Workers' Group of the Russian Communist Party

 

● 서문

 

 자기 계급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투쟁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모든 의식 있는 노동자는 우리의 혁명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그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각각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운명에 깊히 연관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상업의 발전은 문명화된 세계의 국가들 사이의 깊은 관계를 만든다”,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는 옛 사회민주주의의 강령을 아직도 읽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는 스스로를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계 군대의 병사로, 그의 계급 조직을 이 군대의 연대 조직으로 여기도록 배운다. 10월 혁명의 운명에 대한 염려스런 질문을 제기할 때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러시아 국경 너머의, 혁명이 무르익었지만 아직 발발하지 않은 곳을 응시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이 현재 주어진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불평하거나 또는 그의 머리를 숙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러시아 노동자가 그 자신의 나라를 보았을 때, 그는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였고, NEP(신경제정책)의 가장 힘든 시련을 떠안았지만, 그들 앞에 NEP의 잘 사육된 영웅들이 서 있음을 본다. 그들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러시아 노동자는 동요하여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윽고 가장 쓰디쓴 생각에 이른다. 노동자는 제국주의 전쟁과 내전의 모든 무게를 어깨에 지고 왔다. 노동자는 러시아의 신문에서 이 투쟁에서 피를 흘린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빵과 물로 궁핍하게 살아간다. 다른 한 편 타인들, 그리고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비참함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이들은 사치와 호화스러움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대체 어딜 향해 가고 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로 “신경제정책”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로 변해버렸는가?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현장의 노동자에게 제기되었을 때, 그는 과거와 현재를 이을 연결을 찾아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이러한 쓰디쓰고 교훈적 경험들 속에서, 노동자는 복잡하게 얽혀 풀리지 않는 역사적 사건들의 그물망 속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 닿는 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돕고 싶고, 가능하다면 그에게 승리를 향한 길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신성하거나 오류가 없는 마법사나 예언자인 척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과 필요한 정정을 요구한다.

 

● 세계의 공산주의자 동지들에게!

 

 현재 선진국과 특히 그 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생산력은 이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굳은 살 가득한 손에 권력을 쥐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공산주의 혁명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인류는 끊임없는 부르주아 민족 전쟁에 관계되어 야만에 삼켜지고 그 자신의 피 웅덩이에 빠져 죽거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계급 사이, 인간 사이, 국가 사이의 전쟁을 완전히 끝장내어, 노동과 번영의, 평화의 깃발을 심는, 둘 중 하나의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군비 경쟁,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항공 함대의 신속한 강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혹독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죽을 것이다. 마을, 공장, 기업,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힘겨운 노동을 통해 창조한 모든 부가 파괴될 것이다.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다. 각 나라에서 더 빨리 부르주아지를 물리칠수록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빨리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시킬 것이다.

 착취와 억압, 그리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는 임금을 높이거나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쟁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투쟁은 과거에는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투쟁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부르주아지와 가지각색의 모든 유형의 억압자들은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지극히 만족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본질적인 임무인 부르주아지와 그 착취 정권에 대항하는 투쟁으로부터 떨어뜨려놓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복종과 폭력에 대해 최소한의 저항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사소한 요구들만을 제안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특정 순간,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직면했을 때 부르주아지의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 노동자 대중은 그 억압자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나 만약 같은 일이 그들의 이해에 맞는 것처럼, 사회주의 용어로 치장되어 제시된다면, 노동 계급은 그 언어에 현혹되어, 배신자들을 신뢰하고 그 힘을 쓸데없는 싸움에 낭비한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나 「사회주의자들」이나,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별로 다른 놈들이 아니다.

 공산주의자 전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계급 동지들의 머릿속에서 모든 지독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획득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부르주아 찌꺼기들을 태워버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문제와 노동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와 한 패거리인 이들을 따라왔던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하고, 파업하기 시작할 때, 외부에 서서 그들을 경멸적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그들과 함께 그들의 투쟁 속에 있으면서, 이 투쟁이 오직 부르주아지만을 살찌울 뿐이라고 끊임없이 설명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진실된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정직한 혁명의 신발을 더럽히는 의미가 될지라도 때로는 똥 무더기 위에 서야만 할 때(선거에 입후보한다든가)도 있는 것이다.

 확실히, 모든 것은 각 나라의 힘의 균형에 달려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선거에 나가거나 파업에 참여할 것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정이 똑같지는 않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감을 얻기 위한 모든 방법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근본적인 원칙을 양보하고 망각하거나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거부해야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의 성공에 대한 관심이 진짜 해법을 포기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며, 우리를 대중들을 지도할 수 없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따라하면서 끝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끌려 다니게 된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남들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혁명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발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미성숙함의 탓으로 돌리거나 다음과 같이 말하며 변명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혁명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게다가 매우 강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우리와 함께 행동하지 않은데도 우리가 우리의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킨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와 그에 봉사하는 이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부르주아지와 사회적 배신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로부터 멀리 도망쳐 프랑스나 벨기에로 도망칠 것이고, 푸앵카레와 그 동료들에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에게 「베르사유」 조약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며, 그들에게 라인 지방과 루르 지방을 주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이 러시아 부르주아지나 그 사회민주주의 동맹들이 했었고, 또 미래에 반복할 행동을 똑같이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푸앵카레는 독일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구원하고, 동시에 소비에트 러시아를 전 세계의 도둑들로부터 구원하는 그런 사업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푸앵카레와 그 동료들에게는 불행히도 군대를 구성한 노동자 농민들은 그 사업이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해 독일 부르주아지와 그 동맹자들을 돕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의 총구를 주인들, 다시 말해 푸앵카레를 향해 돌릴 것이다. 푸앵카레는 자기 자신과 프랑스 부르주아지를 지키기 위해 그의 군대를 부를 것이고, 불쌍한 독일 부르주아지와 그 사회주의 동맹들을 그들의 운명에 내버려 둘 것이다. 이것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베르사유 조약을 깬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푸앵카레는 「라인」과 「루르」로부터 추격을 받아, 인민의 자기 결정권 원칙에 입각하여 합병이나 배상금 없는 평화를 공포할 것이다. 푸앵카레에게 「쿠노」와 파시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평의회에 의해 운영되는 독일은 등이 휘도록 열심히 일할 것이다.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면, 당신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지 말고 그것을 써야 한다.

 

 독일 혁명을 위협하는 다른 위험도 있다. 그것은 세력의 분산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 혁명의 이해에 따르면, 모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단결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노동계급의 적에 대한 결정적인 단절과 무자비한 전투 없이 상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운동을 군사적으로 억압했던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적 배신자들에게 이와 같은 승리는 공산주의 혁명의 목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진 모든 세력들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이것이 왜 우리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 조직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제3 인터내셔널에 속한 다른 정당들 사이에서 진실된 혁명적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마지막 결정적인 전투를 위해 힘을 모으라고 호소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제3 인터내셔널의 정당들 모두에게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터내셔널에 가입되지 않았지만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특정 정당들에게도 전투와 승리를 위해 통일 전선을 구성하자고 호소하기 위해, 「제4 공산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1)의 정당들에 대한 우리의 소신을 밝혔다. 

 

 첫 번째 단계가 가까워졌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산주의의 원칙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직에 기반하여 부르주아지와 열심히 그들을 비호해 온 모든 종류의 추종자들과 그 아류들(사회주의 혁명가당, 멘셰비키 등)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독일 프롤레타리아보다 훨씬 약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부르주아지들이 이끌어온 모든 공격들, 부르주아지와 지주들, 그리고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된 모든 공격들을 물리쳤다.

 

 이제 서유럽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모아 권력 투쟁을 시작할 때이다. 소비에트 러시아, 10월 혁명, 그리고 세계 혁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눈을 감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현재 소련은 매우 힘든 시기이다. 엄청난 결핍과 그 무게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들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핍은 러시아 노동자 계급과 세계 노동자 운동의 약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는 한 쪽에서는 NEP의 관료주의적 퇴보 경향, 다른 한 쪽에서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를 내외부에서 위협하는 경향에 대해 아직 맞서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10월 혁명의 승리가 모든 위협으로부터 방어되는 데에 관심이 있다. 러시아와 같은 나라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기지로서 존재하는 것이 이미 승리를 보증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국제 프롤레타리아 군대 - 모든 국가의 공산주의자들 - 의 전위는 소비에트 러시아와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의 군대(볼셰비키)가 겪은 결핍과 고통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는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의견을 단호하게 표현해야 한다.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이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는, 우리가 소비에트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반대해서 이야기한 것들을 악용할 사회적 배신자들과 악당들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포는 전혀 근거가 없다. 우리의 적이 공개되어 있든, 숨겨져 있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 하는 우리들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재앙을 일으키는 주체로 언제나 그대로 존재한다. 이로부터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문제와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논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뿌리 뽑을 조치도 취하지 않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스스로 사회적 배신자들이 테러를 저지르도록 버려둔다면, 우리가 계속 침묵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10월 혁명이 더 이상 승리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배신자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며, 국제적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운동에게는 죽음의 일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시작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배신자들의 의견에 직면하여 공포에 떠는 일이 없이, 인터내셔널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총체성에 대해 결정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국제적 운동과 러시아 운동의 약점으로 그 실패가 설명될 수 있음을 보았다. 다른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그들 나라에서의 혁명이나 적어도 하나 둘의 선진국에서의 혁명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러시아 노동자 계급이 10월 혁명의 승리로부터 차지한 위치를,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봉기하여 그들의 적을 패배시키는 시점까지 보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러시아 노동 계급은 제국주의 전쟁, 내전과 기근으로 약해져 강력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위협이 되는 위험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 적확하게 투쟁을 준비할 수 있다. 이 경험은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움으로 그것을 계승할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 전역에서 경고하고 호소해 왔다. 러시아 공산당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편에서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함께 모여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10월 혁명의 승리가 직면할 운명에 대해 분명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에 앞서 깨달을 것이다. 투쟁은 어렵다. 우리의 활동은 지하활동에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는 비공개적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선언」은 러시아에서 출간될 수 없다. 우리는 비합법적으로 선언을 복사하고 유포한다. 우리 그룹에 속한다고 의심이 되는 동지들은 당과 조합에서 제명되며, 체포되고 추방되며 해체된다.

 

 러시아 공산당 12차 당대회에서, 지노비예프 동지는 당과 소비에트 관료의 승인 아래 노동계급으로부터의 비판을 질식시키는 새로운 규칙을 공표했다. “러시아 공산당의 리더십에 대한 모든 비판은, 좌우를 막론하고 멘셰비키주의다.”(12차 대회에서의 그의 연설을 참고하라) 그것은 만약 리더십이 공산주의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에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누군가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는 당과 노동조합에서 배제되어 GPU(체카)에게 넘겨질 것임을 의미했다. 러시아 공산당의 중앙 위원회는 그 스스로를 로마의 교황처럼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어떤 비판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걱정들, 러시아 노동자들이 10월 혁명의 승리가 직면할 운명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것들은 반혁명으로 선언된다. 우리, 「러시아 공산당의 노동자 그룹」은 모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서 소련이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소비에트 권력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그리고 러시아 노동계급의 10월의 승리가 자본주의 과두제로 변형되고 있다는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 소비에트의 권력을 되돌리려는 시도들을 막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이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를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의 지도 그룹이 우리의 10월 혁명에 대한 고려가 불법이고 반혁명적이라고 선언한다면, 모든 국가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과 제3 인터내셔널에 충실한 동지들은 동지들이 알고 있는 우리의 「선언」에 기초하여 스스로 결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동지들, 10월 혁명을 위협하는 이 모든 위험들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동지를 보고 있다. 동지가 회의에서 우리의 강령에 대해 논쟁하길 바라고 동지의 대표가 제3 인터내셔널의 5차 당대회에서 당내 분파에 대해, 러시아 공산당의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지들, 우리의 선언을 토론하고 혁명을 만들어라. 이해하라 동지들, 이것은 당신이 완전하고 늘 고통받는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이 10월 혁명의 성과를 보존하는 것을 돕는 것임을. 우리의 10월 혁명은 세계 혁명의 일부이다.

 

노동 동지들에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10월 혁명의 승리 만세!

 

세계 혁명 만세!

 

***

미주1 : 선언의 앞 두 파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의 성격”, “계급 투쟁의 변증법”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여기 공포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우리의 책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은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주의 선언에서 명시적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역사의 관점과, 계급투쟁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우리에게는 그 당시 「노동자 그룹」이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직면한 역사적 시기에 대해 한 분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곧바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 혁명에서의 사울과 바울

 

 의식 있는 노동자들은 혁명을 통해 어떻게 다른 계급들이 “기적적으로”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하는지 보았다. 그것은 평화의 선동가에서 내전의 선동가로, 그 역으로의 변화이기도 하다. 최근 15-20년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 사회주의 혁명가당과 멘셰비키를 보라. 성직자들과 지주들 사이에서 누가 1917년 이전의 내전을 지지했는가? 아무도 아니다. 보편적 평화와 은총(state of grace)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은 인민들이 내전을 지지 선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쳐넣고 쏴 죽이고 목매달아 죽였다. 10월 이후에는? 누가 그만한 열정으로 내전을 지지 옹호 했는가? 똑같은 기독교의 독실한 아이들이었다. 성직자, 지주, 그리고 공무원들.

 

 「헌정 민주주의자들」(Constitutional Democrats)로 대표되는 부르주아지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내전의 전사들이 아니었던가? 비보르크의 폭동을 기억하라. 임시 정부의 최고 행정관이었던 밀류코프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우리은 우리 손에 붉은 깃발을 쥐었다. 이 붉은 깃발은 오직 우리의 시체를 밟고서만이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이다. 그는 두마 앞에서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붉은 깃발은 우리의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우리는 1905년 이전에는 부르주아지가 내전에 호의적이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917년, “평화, 평화, 사회의 모든 계급의 연합 : 이것이 국가의 구원이다!”고 악의를 갖고 공표했던 임시정부 깃발 아래에서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 카데츠였다. 그러나 10월 이후에는 어떠했는가? 오늘날 누가 광신도와 같이 계속해서 부르짖는가?: “소비에트를 무너뜨려라. 볼셰비키, 전쟁, 내전을 그만둬라! 이것이 국가의 구원이다!” 이들이 지금 갈채를 받고 있는 똑같은 선량한 주인들과 “혁명적” 코훌쩍이들이다.

 

 사회주의 혁명가당은 어떤가? 그들은 한때 플레베(Plehve),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Grand Duke Serge Alexandrovich), 보그다노비치(Bogdanovich)와 구 정권의 기둥들을 암살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러한 폭력적 혁명가들은 1917년 임시 정부 아래에서 연합과 시민 평화를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들은 요구했다! 10월 이후에는? 그들은 여전히 평화를 사랑했나?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시 폭력의 인간으로, 그러나 이번에는 반동적으로, 레닌에 반대하여 그러했다. 그들은 이제 내전을 외친다.

 

 멘셰비키들은? 그들은 1908년 이전에는 무장 봉기의 옹호자들이었으며, 1908년에서 1917년까지는 8시간 노동, 토지의 징발, 민주 공화국의 옹호자로서 독재에 저항하여 단체를 조직할 권리와 합법적인 투쟁을 쟁취하기 위한 일종의 “계급 연합”에 함께 했었다. 그들은 독재정권의 전복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전쟁 동안에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국자들이었고, 심지어 “국제주의자”이기까지 했다. 1917년 10월 이전, 그들은 시민 평화를 지지했다. 그러나 10월 이후, 군국주의자들, 카데츠와 사회주의 혁명가당처럼 내전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러시아에만 국한된 현상인가? 아니다. 중세 봉건주의를 전복하기 전 영국, 프랑스, 독일 부르주아지 등은 내전을 옹호하고 이끌었다. 봉건주의가 먼지가 되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은 후, 그들은 시민 평화의 옹호자가 되었으며, 특히 전력을 다해서 싸웠던, 새롭게 권력을 쟁취하고자 등장한 노동계급에 대해서 그러했다.

 

 이제 어디 부르주아지가 내전에 호의적인지 보라. 어디에도 없다! 모든 곳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를 제외하고서는 평화와 사랑을 선전한다. 이러한 태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취하는 순간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그대로 시민 평화의 옹호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들은 평화와 단합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곧 내전을 옹호하는 폭력적인 선동가가 될 것이며, 그 전쟁을 끝까지 수행할 것이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여, 우리들은 여전히 이 법칙의 예외인가?

 

 전혀 아니다.

 

 또 다시 1917년으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노동자 평의회의 대표자들은 내전의 핵심이 되었을까? 그랬다. 그들은 나아가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부르주아지, 지주, 성직자와 그 외 평의회에 적대적인 이들에게 함께 봉기하기를 원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와 그 크고 작은 모든 동맹들이 저항없이 복종하길 바랬을까? 그렇다. 그들은 그것을 원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므로 권력을 쥐기 전에 내전을 옹호했고, 그 승리 이후에 내전이 아니라 시민 평화를 옹호했다.

 

 이 모든 변혁에서 역사적인 관성이 충분히 있었음은 진실이다. 군국주의자들에서 멘셰비키들, 사회주의 혁명가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소비에트 권력에 대항해 내전을 지휘하던 시기에조차 그것은 “시민 평화”의 슬로건 아래 있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트는 평화를 원했다. 그러나 다시 전쟁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1921년, 러시아 공산당의 중앙 위원회의 순환 중 하나에서도 이러한 불가해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내전에 대한 슬로건은 심지어 1921년에도 강한 혁명적 정신의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관점을 흔들지 못하는 단지 역사적인 경우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최근의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에 의해 쟁취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시민 평화를 옹호한다면, 모든 솔직한 프롤레타리아들은 유혈낭자하고, 폭력적인, 세계 부르주아에 저항하는 시민 전쟁의 슬로건 아래 굳게 단결해야만 할 것이다.

 

 노동 계급은 실제로 부르주아 국가에서의 착취 계층이 요구하는 시민 - 보편적 평화, 은총이 얼마나 병적인지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 내일 이 부르주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게 되면, 지주에서부터 제2, 2 1/2 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오늘날의 평화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 저항하는 내전을 일으킬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전력을 다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모든 국가에서의 유혈낭자하고 무자비한 내전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태풍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여 권력을 잡은 모든 곳에는 더욱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시민적, 보편적 평화, 은총을 선전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지주들, 멘셰비키들, 사회주의 혁명가당은 자본주의 억압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 시민 평화를 옹호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차지한 모든 곳에서 더욱 잔인하고 유혈낭자한 내전을 옹호할 것이다.

 

오늘날의 주요한 책무

 

 모든 나라들에서의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그 생산력을 파괴하는 요소가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대전과 뒤따른 모든 사건들, 베르사유 조약, 배상금 문제, 제노바, 헤이그, 로잔, 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에 의한 루르 점령, 대규모 실업에 더해 끝나지 않는 파업의 물결은 자본주의 착취의 마지막 시간이 도달했고, 징발자였던 자들이 이제 몰수당해야 할 때가 왔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임무는 자본주의가 던져놓은 야만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이 임무는 임금 상승, 8시간 노동, 부분적인 양보 등 자본주의가 선사해 줄 수 있는 것들로는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를 결정적인 권력 투쟁을 목표로 하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옹호하는 선전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활 수준에 진정한 개선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악의적인 선전이다.

 

 선진 노동자들은 파업에 참여해야 하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 지도해야 한다. 그들은 이 길을 따라가면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실질적인 요구를 제안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확고히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길,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이 모든 자본에 대한 분쟁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투쟁에 대한 관점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할 수 있다면, 이것이 거부될 리가 없다.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생존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운동의 우두머리가 되어 용감하고 단정적이며, 실질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이해할만한 요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모든 파업, 모든 싸움이 정치적인 권력을 차지하고, 착취자들을 몰수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함을 증명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여기 모든 나라에서 온 공산주의자들은 의회에 대해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일을 해보려 할 것이 아니라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이러한 의회가 파괴될 수 있도록 선전하고 작업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임금, 시간에 대한 파업의 필요가 있는 곳에, 우리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이 진정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서는 안된다. 대신 우리는 이러한 환상을 깨부셔야 하고 각 투쟁을 마지막 투쟁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의식화의 준비로써 이용해야 한다. 한때는 8시간 노동 요구가 혁명적이었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현안이 된 모든 나라들에서 그 요구는 더 이상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통일 전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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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국제 평론에 게재될 선언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사회주의 통일 전선

○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은 국가(노동자 민주주의)에서의 통일 전선에 대한 의문

○ 민족 문제

○ 신 경제 정책(NEP)

○ 신경제정책과 농촌

○ 신경제정책과 정치

○ 신경제정책과 산업 관리

 

 미주

1. 가브리엘 미아스니코프(Gabriel Miasnikov)는 우랄 출신의 노동자로 1921년 볼셰비키 당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때는 결정적인 10차 당대회 직후로, 그는 “군국주의자들부터 아나키스트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언론의 자유”(Carr, 「The Interregnum」에서 인용)를 요구했다. 레닌이 이러한 주장을 단념시키기 위해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22년 초기 당으로부터 축출되었다. 1923년 3월,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노동자 그룹」 창설에 동참했으며, 그들은 RCP 12차 대회에 배포된 이 「선언」을 출간했다. 그룹은 당 내에서, 비당원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합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 파업의 물결 속에서 대중 파업을 요구하고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을 정치화하려고 시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파업에서의 그들의 활동은 GPU가 그들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하는데 충분했다. 주도적인 동지들의 체포가 잇따랐고, 이는 그룹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축소된 규모로 1930년 초반까지 그들의 지하 활동을 수행했다. 그 이후 미아스니코프의 인생사는 다음과 같다. ; 1923년에서 1927년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옥이나 지하 활동을 위한 망명 생활로 보냈다. 1927년 러시아에서 탈출한 그는 페르시아, 터키로 도망 다녔고, 그곳에서 역시 수감생활을 하다가 결국 1930년 프랑스에 정착했다. 이 시기동안 그는 여전히 러시아에서의 그의 그룹을 조직하려 했다. 전쟁 후, 그는 스탈린에게 그가 소련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다. 그가 그의 나라로 돌아간 날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없다. 왜냐하면 군사 법정에 의한 비밀 심판으로 인해 그는 1945년 11월 16일,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주)

1) 우리의 글 “좌익 공산주의와 맑스주의의 연속성”을 보라.

   http://en.internationalism.org/the-communist-left

2) ICC는 이미 영어와 러시아어로 「러시아 공산주의 좌파」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러시아에서의 좌익 공산주의의 상이한 표현에 대한 연구에 기여한다. 현재 프랑스어 판이 준비중이다. 영어 판은 「노동자 그룹」의 강령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당시 새로운 완벽한 강령이 러시아에서 발견되었다. 오늘 우리가 펴내는 판은 원래 프랑스 어로 쓰여진 가장 최신의 것이며 미래의 프랑스어 개정판에 포함될 것이다.

3) 「국제평론」 8, 9호에 실린 우리의 글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 좌파」를 읽을 것.

4) “중앙 위원회의 이런저런 결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당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이런저런 의심을 품었고,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오류, 불규칙성, 무질서들을 기록해 두었지만, 그것을 당의 회의에서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를 두려워했으며,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현재 지방 위원회와 RCP의 중앙 위원회의 구성원을 추천하고 선택하는 것은 당도 아니고, 그 대중도 아니다. 반대로, 당의 서기 위계는 전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정도로 집행 위원회(executive assemblies)가 될 회의와 총회의 구성원들을 전에 없을 정도로 뽑았다... 새로 만들어진 자리는 정권이 당 내의 분파의 독재라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분파적 정권은 폐지되어야 하며, 우선 첫째로 그것을 만든 이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동지적인 통일과 당내 민주주의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5) 「국제평론」 8, 9호의 “러시아의 좌익 공산주의” 참조.

 

6) 그러나 선언(강령)은 또한 노동조합이 경제를 관리하는 중앙집중적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방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자 반대파」의 옛날 입장은 1921년 미아스니코프가 비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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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2)

[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2)

미첼, 「빌랑」 38호. 1936년 12월 - 1937년 1월 「국제평론」134호, 2008. 가을. 25-28쪽

 

 

 

 우리 견해에 따르면 당과 대중과의 관계를 조건지우는 경제 행정의 몇 가지 규범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강화하는 기초를 검토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어떠한 생산체제도 확대 재생산 기초, 즉, 부의 축적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유형은 외부적 형식과  표명으로보다는 그 사회적 내용, 생산의 동기, 즉, 계급관계로 표현된다. 역사의 진화 속에서 내부적이고 외부적 두 가지 과정은 항상적 모순 속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력의 진보가 그 반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조건의 퇴행을 발생시키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사이, 그리고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지 않고, 필연적으로 축적과 경쟁으로 박차가 가해진다는 것을 보았다. 맑스는 이러한 대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그러나 물질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한 중요성을 지닌다.”(자본, 10장)

 

 잉여노동이 불가피하다는, 모든 사회 유형에서 검증된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문제는 잉여노동의 소유와 파괴 양식, 총잉여노동과 그 기간, 이 총잉여노동과 총노동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축적의 리듬에 집중되어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우리는 맑스의 다른 언급을 제시할 수 있다. “사회의 진정한 부와 재생산과정의 지속적 확대의 가능성은 잉여노동의 기간에 담겨 있지 않고 생산성과 이 생산성이 작동하도록 하는 유리한 조건에 달려있다”(자본, 14장). 그리고 맑스는 “자유의 영역”의 출현을 위한 기본조건은 노동일의 감소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은 프롤레타리아 경제의 진화에서 각인되어야 하는 경향을 이해하게 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성장을 “사회주의”의 절대적 증거로 보는 개념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개념은 중도주의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도 방어한 개념이다. “자유주의는 소비에트 체제의 엄청난 진보, 즉 사회주의의 헤아릴 수 없는 이점의 구체적 증거들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에 의해 쫓겨난 계급들의 경제학자들은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산업 발전의 리듬에 대해 완전한 침묵으로 넘기고 있다”(계급투쟁, 1930년, 6월). (Lutte de classes, June 1930)

 

 우리는 이 장의 서두에서 “리듬”의 문제가 트로츠키와 그의 반대파의 선입견의 중심에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에 덧붙여 그 리듬을 가속화하지 않고 생산의 “동기”를 수정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사명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제적 규모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리듬”의 요인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현재 소련에서 일어나는 생산의 리듬은 가장 선진된 자본주의 기술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에 가져올 공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비를 향한 생산의 재지향

 

 최초의 경제 과업으로서 소비의 필요에 맞추기 위한 생산 동기의 변화 필요성을 우리가 제기할 때 우리는 분명히 혁명의 즉각적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인 바와 같이 이행기의 경제는 어떠한 경제적 자동주의도 발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권리”의 생존은 착취의 사회적 관계의 존재를 의미하고 노동력은 아직도 어느정도 상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직을 통한 당면한 요구를 위한 노동자 투쟁으로 고무된 당 정치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발전시킨 노동과 노동력 사이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다른 말로 자본축적을 위한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경제적 강화를 촉진시키는, 순수하게 사회적 목적을 위한 노동력의 “프롤레타리아적” 사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생산의 조직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문제가 되는 경제를 지배하는 구체적 물질적 조건에 대해, 그들의 요구에 상응하는 생산의 세부 조직을 발전시키면서 무엇보다 대중의 요구에 의해 고무되어야 한다.

 

 정련화된 경제 강령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틀 안에 있고 국제 계급투쟁과 연결되어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소비를 발전시키는 과업에 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강령이 직간접으로 “민족 사회주의”의 형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적” 성격을 취한다면, 잉여노동의 증가하는 부분은 미래에 국제 분업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기업의 건설에 흡수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건설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방어하는 수단을 생산하는데 복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에서 벌어졌음을 살펴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물질적 상황의 개선은 첫째로 노동 생산성에 달려 있고, 이는 또한 생산력의 기술적 수준과 축적에 달려 있음은 확실하다. 둘째로, 그것은 노동 과정 내의 조직과 규율에 상응하는 노동의 산출물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존재하는 기본 요소는 축적의 구체적 결과가 축적 “그 자체”를 위해 인간의 목적지로부터 이탈했다는 특성에 있다. 노동 생산성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되지 않고 자본으로 전환된다.

 

 문제가 소비 확대를 목표로 한 정책을 주창하며 해결될 수 없음을 숨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한 세대, 몇 세대를 희생시키면서 공업화와 성장의 가속화를 밀고 나가는 것에 반대하는 주요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희생을 중도주의1)는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역사적 이해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목적(러시아의 실재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지만)이라도 “희생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힘을 구성할 수 없다. 민족국가적 목표의 최면 아래에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멀어져 갈 뿐이다.

 

 우리가 발전시킨 국제주의적 고려를 기반으로 논의를 계속하자면 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임무가 근본적임을 (우리가 추상으로 빠지길 원하지 않는 한) 증명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지구적 영역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역할을 올바르게 보여준 「빌랑」의 동지들은 그 문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유별나게 제한하고 있다.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영역2)은 착취계급에게는 본질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활동에서는 보조적 문제, 세부적 문제일 뿐이다”(「빌랑」, 612쪽). 우리는 다시 강조한다. 강령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세계 정치에 의해 결정되고 제한되지만 이것이 확립되고 나서야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비라는 가공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지나친 조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그 소비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단순한 요인”으로서 그 역할을 조건화시킨다.

 

 우리 견해로는 「빌랑」의 동지들이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관리의 형식과 이행기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 사이의 구별을 하지 못하는 또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3) “주어진 국가와 국제적 계급투쟁에서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러한 사회주의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지만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구체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정책이다. 이행기에는 계급은 존재하지만 필요에 기반한 생산을 향한 새로운 경제적 경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생산의 동기유발이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는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그 요구에 대한 생산기구를 적응시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에 동기유발이 달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생활조건의 개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노동과정의 더 나은 조직을 통한, 총 사회적 노동, 생산량의 증가의 결과이든, 또는 강력한 생산수단의 사용의 덕으로 노동 생산성의 증가를 통한 결과이든 간에, 생산능력의 발전의 결과인 것이다.

 

사회노동에 관하여, 노동자수가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노동력 사용의 길이강도에 의해 주어진다고 우리는 말했다. 이 두 요인은 더 큰 생산성의 결과로서의 노동력의 저하된 가치에 연관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부과된 착취율을 결정한다.

 

 자본주의 정책과 달리, 생산력을 증진시키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책은, 자본주의 형식에서 절대적 잉여가치를 구성하는 사회적 노동의 강도의 길이로부터 나오는 잉여노동에 기반할 수 없다. 반대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존재와 일치하는 노동의 리듬과 기간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 영역에서 사용가능한 총 노동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급속하게 없어지더라도, 그것은 낭비되는 사회활동의 제거에 대한 합리적 노동의 조직화에 기반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 축적은 그 본질적 원천을 높은 기술수준을 통한 활용가능한 노동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다음의 대안을 제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일한 총생산물(또는 사용가치)이 소비된 총 노동력의 감소를 결정하거나, 그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면(또는 심지어 그것이 기술 발전 수준에 따라 감소하더라도) 분배되는 생산물의 양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상대적 잉여노동(엄격하게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상대적인)은 더 큰 소비에 완벽하게 조응하며 진정한 임금 인상에 조응하지, 자본주의에서처럼 가공적이지 않다.

 생산원가에 대한 경쟁보다 자본주의 관리를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관리의 우월성은 이러한 생산성의 새로운 사용에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기반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가 이미 지적한 형태로 불가피하게 패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구적 방식에서(그리고 더 이상 문화적 위기를 통해서 뿐만이 아닌)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맞서게 되는 쇠퇴의 위기 속으로 자본주의를 몰아넣는 것은 노동생산성의 발전이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의 무한함에 의해 극복되지만 만족되지 않은 엄청난 요구에 의해 자멸하게 된다.

 

 이행기에서 노동생산성은 “각각의 필요에 따른” 공식에 상응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그것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충분하게 사용할 가능성은 사회적 문제의 모든 것을 뒤집는다. 맑스는 이미 그것이 이론적 최대치에 미치지 못하지만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기본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정책이 기술 발전을 자본의 이해에 따라 유용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인,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기반하여 이러한 가치 이상으로 더욱 상승시킨다는 전제 하에, 생산물과 그 가치 사이의 자본주의적 적대를 줄이고 억누르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기술 발전을 동반한 기본적 축적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면, 상대적 잉여 노동의 일부는 직접 노동자에게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축적의 리듬과 축적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측정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어떤 자의적인 요소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과업을 규정하는 원칙적 기반 위에서 배제될 것이다.

 

 

축적 리듬의 결정

 

 더구나 축적률의 결정은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의 견해(그들의 저작 116쪽)에서와 같이 경제적 집권주의에 근거하지, 그들 기업의 생산자의 결정에 근거하지 않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해법의 실천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후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기 때문이다. “축적율은 개별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질 수 없고 의무적 규범에 대한 결정은 기업 평의회 총회의 몫이다”. 이러한 정식화는 일종의 위장된 중앙집권주의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가 이를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에 적용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의 억압이 생산수단의 집산화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주장하는 중도주의의 거짓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소련의 경제적 과정은 아무리 전혀 다른 기반으로부터 시작되더라도,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동일한 출구를 향해 나아가며 끝나는, 자본주의 경제의 경제적 과정과 같다. 두 가지 모두 노동 계급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잉여가치의 증가하는 추출에 기반하여 펼쳐졌다. 소련에서는 사회적 측면이나 생산관계에서가 아니지만 노동과정이 내용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스타카노비즘”의 형식을 취한 노동의 강화를 통해 획득된,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추동이 있었다.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적 개선이나 생산력 발전과 연결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재산분배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상대적 참여는 증가하지 않고 감소했다. 이는 가장 번영한 시기에도 자본주의 체제가 항상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우리는 노동자에게 가는 절대적 몫의 실질적 성장이 있는 정도를 확립할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더구나 소련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양질의 노동자에 대한 자격 없는 노동자(농민의 엄청난 보유로부터 오는)를 대체하는 임금삭감의 정책을 실천한다.

 

 이러한 엄청난 잉여가치의 양이 어떻게 응결되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상당 부분이 관료적 “계급”에게 간다는 쉬운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집합적 재산으로 남아있는 거대한 생산 기구의 존재에 의해 그릇됨이 입증되었고, 그에 비하면 소고기, 자동차와 관료의 휴양처가 아주 작은 수치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조사뿐만 아니라 공식 통계는 생산수단의 생산(기구, 건물, 공공사업 등)과 “관료주의”와 노동자, 농민 대중을 위한 소비재 사이의 엄청난 불비례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관료주의가 경제를 결정하고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계급임이 사실이었다면, 잉여가치가 사유재산이 아닌 집합적 부로 상당부분 전환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모순은 이러한 부가 소련 공동체 내에 남아있지만 분배되는 방식에서 그 반대가 되는지를 발견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다. 잉여가치의 주요 부분이 자본가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법적 견해로 오직 사유재산인 상품의 형식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주목하자. 그 차이는 소련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성격을 취하지 않는데 있다. 이 두 가지 진화의 과정은 서로 다른 기원으로부터 출발한다. 소련에서는 이것이 경제적 적대로부터 나오지 않지만, 정치적 적대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분열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민족 사회주의” 방어라는 깃발 아래에서,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기제로서 통합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발전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진화는 부르주아 경제의 쇠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두 가지 사회적 발전은 전쟁 경제의 건설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소련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전쟁기계를 만든 것을 자랑한다.) 우리가 볼 때 이는 “러시아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이다. 이는 10월 혁명의 패배가 왜 러시아 내의 계급 관계의 전복으로부터 오지 않고 국제적 전쟁에서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혁명보다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계급투쟁의 진로를 지향한 정책을 검토해 보자.

 

 

전쟁 경제를 위해 봉사한 러시아 노동자의 착취

 

 이미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몇몇 동지들에게는 러시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적이지 않았고, 그 반동적 진화 과정은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계급의식의 수준에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였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또한 후진국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맑스가 파리 꼬뮨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숙명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는데 우리 스스로를 한정하고자 한다. 파리 꼬뮨이 권력 장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미성숙을 나타냈지만, 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엄청난 중요성을 보았고 그것으로부터 1917년 볼셰비키를 고무시킨 구체적 교훈을 이끌어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미래 혁명이 10월 혁명의 복사판일 것이라는 것을 이 혁명으로부터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가치”(「좌익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때의 의미를 상기하는, 10월 혁명의 기본적 특성이 이들 혁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적 무기를 벼리고, 그 과오를 피하면서 마침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하기 위해 역사를 해석한다. 결정적 승리를 하게 한 위치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놓은 조건들을 찾는 것은 역사유물론의 건설에 새로운 주춧돌을 추가하면서 맑스주의 조사 방법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 번째 혁명적 파고의 후퇴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 고립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에 소련의 진화의 결정적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이은 사건들을 만든 해석에서,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자본주의의 진화에 대한 그릇된 전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안정화”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일국 사회주의론”을 발생시켰고 이어서 소련의 “방어” 정책을 가져왔다.

 

 구체적 목적으로서의 세계 혁명이 배후로 사라진 반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도구, 즉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하여 그 국가를 방어하는 세력이 되었다. 부하린이 1925년에 세계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세계 혁명이 개입에 맞서고 새로운 전쟁에 맞서는 유일한 보증이므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처럼 “개입에 맞서는 보증”의 이론을 펼쳤는데, 코민테른은 그것을 더 이상 세계 혁명의 이해가 아닌 소련의 특수한 이해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보증”은 더 이상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결되어 추구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관계의 성격과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 사회주의”의 방어를 위한 지지의 지점으로만 남았다.

 

 「신경제정책」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특히 농민 사이에 자본주의적 야망의 상당한 재연을 가져왔지만, 불가피한 퇴행을 위한 특수한 영역을 제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중도주의」아래에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본 빈농(smychka)과의 동맹은 목표가 되었고 동시에 중농과 쿨락과의 연대가 만들어졌다.

 

 「빌랑」의 동지들의 견해와 반대로 우리는 러시아의 경제적 진화를 세계 혁명의 경로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레닌이 「신경제정책」에서 주장했다는 선언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레닌에게 「신경제정책」은 국제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 까지의 일시적 유예의 정책이었고, “붙들기” 정책이었다. “우리가 수년간 지속된 정책을 채택할 때, 우리는 국제 혁명, 그 발전의 신속성과 조건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독재가 무너지지 않고 자본주의 세력에게 양보하는 일종의 경제적 균형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를 건설하는 목적과 적과의 계급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의미로 레닌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문서에 기반하여 “일국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반면에 “트로츠키주의” 러시아 반대파는 핵심 투쟁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소비에트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는 견해를 높이 사고 있다. 1927년에 소련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동시에 코민테른은 중국 혁명의 분쇄를 관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계급 위치로부터 찢어내고 그들을 소련 방어의 전선에 내몰았다. 이에 기초하여 반대파는 전쟁을 위한 “사회주의 기지”로 소련을 준비하는데 관여한다. 이러한 입장은 이론적으로 전쟁 경제(5개년 계획)를 건설하기 위하여 러시아 노동자들의 착취를 인정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경제를 준비하지만” 예산 등은 전쟁에 대한 입장으로 극대화하면서 소련이 “전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평화를 위한 투쟁”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발표한다. 그리고 공업화의 문제는 방어에 필요한 기술적 차원을 보증하는데 결정적이라고 말한다.(반대파 입장)

 

 이어 트로츠키는 그의 「영구 혁명」에서 대중의 생활 표준을 높이지만 공업화 체제를 가능한 빠른 속도로 진행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 위협”이 소련에 맞서는 성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전선으로의 통합으로부터 옴을 알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공업화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더 나은 존재를 보증하지 않고 제국주의 전쟁을 준비하는 목적을 가진 가장 공포스런 착취임을 알고 있다.

 

 다음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건설”에 그 기초를 두지 않고 국제적 내전의 연장에 기반한다는 전제하에, 문화적 미성숙과 경제적 부족함과 독립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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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1)

[이행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1)

미첼, 「빌랑」37호 1936년 11-12월[「국제평론」 132호, 2008년 봄 호]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한 치의 의심 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혁명은 위로부터 밑에까지 자본주의국가를 파괴했고 부르주아 지배를 처음으로 완전하게 이룩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파리 꼬뮨은 단지 이러한 독재를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었을 뿐이다.1)) 맑스주의자가 이를 진보적 경험(그 후의 반혁명에도 불구하고)으로, 프롤레타리아와 인류 전체의 해방으로 이끈 길로의 한 걸음으로 분석해야 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물질적, 정치적 조건

 

 이 거대한 사건이 쌓은 상당량의 자료로부터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분명한 지향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연구의 상태를 전제할 때 아직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한 이론적 의미, 역사적 실재로부터의 특정한 맑스주의 영역과의 대면은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제기한 복잡한 문제가 부르주아 사회의 보편성과 그 법칙 그리고 국제계급 투쟁의 지배에 기초한 일련의 원칙에 긴밀하게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기본적 결론에 도달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첫 번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기대와 반대로 가장 부유한 나라,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발전한 나라, 사회주의를 위해 “무르익은”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본주의의 반봉건 후진지역에서 일어났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혁명의 최선의 조건은 물질적 부족이 사회갈등을 다루는 지배계층의 능력부족에 상응하는 상황과 함께 간다는 두 번째 결론에 도달한다. 다른 말로 정치적 요인은 물질적 요인을 압도했다. 새로운 사회의 출현에 필요한 조건에 대한 맑스의 테제와 모순되는 것과 달리 이러한 긍정은 이 연구의 첫 번째 장애서 우리가 이 요인에 따르는 중요한 의미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결론으로부터의 추론인 세 번째 결론은 공산주의의 서장으로서의 사회주의 건설 이라는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문제는 하나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될 수 없지만 세계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패배에 근거하여 적어도 부르주아 지배의 중심인 선진국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의 지배를 수립한 후 특정한 경제적 과업을 수행할 뿐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회주의 건설은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세계 혁명의 발전 과정 속에 통합될 때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할지라도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파괴 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말로 그 자신의 경제에 관하여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업은 국제적 계급투쟁의 필요에 종속된다.

 

 모든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이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거부했지만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정치적 기준보다 경제적이고 문화적 기준을 보면서, 그리고 어떤 종류의 한 국가의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이 부여하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사회주의의 건설의 양식에 본질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번째 실천적 경험이 아직 사회주의라는 의미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를 흐트러뜨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본질적 교훈은 분명하다. 우리가 우선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더라도 러시아 혁명은 경제 건설 강령에 대한 매우 엄격한 한계가 있는, 잠정적으로 고립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역사적 필요성을 지닌 가장 악화된 형식이다.

 

 

세력의 지구적 균형은 사회주의 건설의 리듬과 양식을 결정한다.

 

 “일국 사회주의”의 거부는 모든 생산영역을 포괄하고, 가장 변화하는 도구에 부응하여 통합 경제를 건설하여 다른 비슷한 경제에 병치시켜 세계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생산 발전을 향한 경제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기껏해야 그것은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각각의 국민경제를 발전시키는, 세계 혁명의 승리 이후의 문제이다. (자본주의는 국제 분업을 통하여 매우 불완전한 방식으로 이를 실현했던 것이 사실이다.) 혁명 운동의 지체라는 덜 유리한 전망과 함께(1921년 러시아 상황) 그것은 전 세계 계급투쟁의 리듬에 프롤레타리아 경제의 과정을 적응시키는 문제이지만,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혁명적 봉기를 준거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지배를 강화한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목적이 통합 사회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세계 사회주의 경제의 요소를 준비하는 것으로 명확하게 말했지만 위와 같은 기본적 노선을 자주 놓쳤다.

 

 사실 소비에트 경제 발전의 분석에서 트로츠키는 경제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의존한다는 올바른 전제로부터 시작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세계 자본주의 사이의 경제적 수준에서의 “대결”인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많이,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할 때 그 우월성이 증명되는 것이 맞지만, 그러한 역사적 증명은 프롤레타리아 경제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사이의 충돌의 결과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 사이의 치열한 투쟁 이후 세계 경제에서 일어난 기나긴 과정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경제적 경쟁의 기반 위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생산의 사회적 내용의 변혁을 가로막는 노동착취라는 자본주의 방식에 불가피하게 종속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의 우월성은 노동 생산성의 무한정한 확장의 결과로서의 더욱 “싸게” 생산하는 능력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생산과 소비 사이의 자본주의 모순의 소멸을 통해서만 그 우월성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트로츠키는 분명히 “세계 자본과의 경제적 경주”같은 기준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중도주의의 이론적 무기를 내세웠다. 즉 “결정적 요인으로서 발전의 유혹”, “발전율 사이의 비교”, “전쟁 전 수준의 기준” 등등 모두는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기”에 대한 중도주의 슬로건을 빼다 닮았다. 이는 중도주의 정책의 직접적 결과이지만, 러시아 노동자 참상 위에서 이루어진 기괴한 공업화가 왜 러시아의 “트로츠키주의” 반대파의 “타고난” 자식인지의 이유이다. 이러한 트로츠키의 입장은 국제적 혁명 투쟁의 후퇴 이후 자본주의의 진화를 추적한 전망의 결과이다. 따라서 신경제정책(NEP)이후 진화한 소비에트 경제에 대한 그의 모든 분석은 국제적 정치 요인으로부터 고의로 발췌하고 있다. “가능한 한 많이 그들의 순간적 접점 속에서 모든 요인들을 고려하면서 당면 시기의 실제적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시기를 위한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두드러진“ 요소, 다시말해 무엇보다 정치적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 하다.”(자본주의를 향하느냐 아니면 사회주의를 향하느냐?) 이처럼 임의적인 분석 방법은 자연스럽게 소비에트 경제를 계급세력의 세계적 균형의 진화의 함수로 보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관리의 문제를 검토하게 만든다.

 

 NEP 이후 레닌이 “누가 이길 것인가”라고 제기한 문제는 그가 애초에 놓았던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엄격한 경제적 영역으로 바뀌어졌다. 강조점은 판매가격을 낮춤으로써 세계 시장 가격에 맞출 필요성에 두어졌다.(실제로는 노동의 지불부분, 즉 임금의 삭감으로 나타났다.)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피할 수 없는 악으로서의 노동력 착취로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아야 하고, 반대로 자본주의 내용을 담는 이러한 요소를 경제과정의 결정적 요소로 만드는 고도의 착취수준을 제재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전투로 볼 때, 사회주의 경제(즉 소련)의 생산물로 세계 시장에서 자본주의 생산을 “능가하는” 전쟁을 상상하는 그 순간부터, 일국 사회주의의 생각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세계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미래에 대해 편안하게 확신할 수 있음이 명백하다.

 여기에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중요한 두 단계에 대한 이론적이고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나는 “전시 공산주의”이고 두 번째는 신경제정책이다. 전시 공산주의는 내전이라는 극단적 사회적 긴장에 해당되고, 신경제정책은 무장투쟁의 종료와 세계 혁명의 퇴조 상황에 해당된다.

 

 

 

전시 공산주의와 신경제정책

 

 상황적 국면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사회적 현상이 문제가 되는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수준과 함께 강도와 리듬을 지키면서 다른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검토는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그러므로 이행기에 이들의 정확한 위상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 유형의 “전시 공산주의”는 “정상적”인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특징은 아니다. 그것은 미리 확립된 강령의 산물이 아니었고 무장한 계급투쟁의 항거할 수 없는 압력이 부여한 정치적 필요였다. 이론은 부르주아지를 정치적으로 분쇄할 필요성에 잠정적으로 양보해야 했다. 이는 경제가 정치에 복속되어야하는 이유였지만 생산과 교역의 몰락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실제로는 “전시 공산주의” 정책은 점점 더 혁명을 위한 강령에서 볼셰비키가 발전시킨 이론적 전제와 충돌했는데 그것은 강령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이유”(노동자 통제, 은행의 국유화, 국가 자본주의)의 성과라는 매우 절제된 성격이 부르주아지가 무장저항을 일으키도록 고무시켰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국유화의 법령이 단순히 성문화한 몰수를 대대적으로 가속시키면서 대응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수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예상하면서 이러한 경제적 “급진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실제로 1921년 봄, 볼셰비키는 노동자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의도하지 안은 시도가 실패했음을 인식해야 했다. “전시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근을 피하고 투사들은 먹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경제적 기구의 강제 동원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진정한 사회주의적 내용이 없는 평등한 소비의 “공산주의”였다. 농업 잉여물을 징발하는 방법은 현저한 생산 감소를 가져올 뿐이었고, 임금 상승은 노동 생산성의 하락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상황이 부여한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 중앙집권주의는 합리적 중앙집중주의의 진정한 불구화였다. 교환의 질식(암시장의 성행이 수반한)과 화폐의 실질적 소멸(현물 지급과 자유 용역)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는 내전의 산물이었고, 실질적 경제생활의 몰락이었다. 그 조치들은 역사적 조건을 고려한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수단이 아니었다. 요약하면,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시 공산주의”의 의미를 심각하게 변경시키지 못했을지라도 발전의 특정단계를 고도로 발전된 국가에서의 승리한 혁명이 “뛰어넘게” 함으로써 상당하게 약화시켰던 경제적 궁핍화를 통하여 계급의 적을 분쇄하는 대가를 치렀다.

 

 맑스주의자는 내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에 선행하든, 수반하든, 뒤따라오든 간에 경제 수준을 잠정적으로 떨어뜨릴 것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수준이 제국주의 전쟁 동안 얼마나 많이 떨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진국에서 유기적으로 약한 부르주아지의 급속한 정치적 박탈은, 이 부르주아지가 아직 넓은 사회적 계층으로부터 힘을 끌어 모을 능력을 가졌다면 (러시아에서는 문화수준이 낮고 정치적 경험이 없는 광범위한 농민이 있었다.) 새로운 권력을 해체할 목적인 장기간의 투쟁이 뒤따른다. 동시에 부르주아지가 정치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강력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 승리는 치열하고 폭력적이며 물질적으로 참담한 내전이라는 다소 긴 시기가 선행되기 보다는 바로 뒤따를 것이 가능하다. (반면, 혁명 이후의 “전시 공산주의”의 단계는 그런 나라들에서 상당히 일시적일 수 있다.)

 

 절대적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전시 공산주의”에 대한 잔인한 반대에 놓인 「신경제정책」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유” 시장, “자유” 소생산, 그리고 화폐로의 회귀를 통한 자본주의로의 심각한 후퇴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후퇴”는 우리가 그 뒤에 있는 실제적 경제 조건을 검토하면 진정한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말로 「신경제정책」(그 두드러진 국면,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적 요소와 독립적인)은 이행 경제의 진화를 위한 “정상적” 조건의 재확립으로 보아야 한다. 내전의 불가항력 이후에 따라온 「신경제정책」이 그를 넘어서서 잘 나아갔을 지라도, 그것은 러시아에게는 볼셰비키의 초기의 강령으로의 회귀였다.

 

 요약하면 「신경제정책」은 그 상황적 요인과 분리할 때, 어떤 다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야할 경제 행정의 형식이다.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가능성이 모든 자본주의적 범주와 형식의 사전 철폐(맑스주의가 아닌 관념론으로부터 도출된 생각)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행정이 부르주아 예속의 특정한 표현의 불가피하지만 잠시 동안 생존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결론이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역사적 조건에 걸맞는 경제 정책의 추구가 국제 혁명의 하강과 기근과 노동자․ 농민의 총체적 탈진에 의한 내적 곤궁의 시기로부터 나온, 가장 중압적이고 위협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음은 사실이다. 이는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특성이 러시아의 「신경제정책」의 보편적 중요성을 가리게 한 이유이다.

 

 사건의 압력 아래에서 「신경제정책」은 효과적으로 방어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복종의 결과가 아니었다. 즉 그것은 부르주아지와의 어떠한 정치적 타협도 포함하지 않았지만 경제의 진보적 진화를 위한 출발점을 배우려는 단순한 경제적 후퇴였다. 실제로 계급 전쟁은 무장투쟁의 영역으로부터 경제 투쟁의 영역으로 스스로를 위치지음으로써, 덜 잔인하고 더욱 함정에 빠지지만 가공할 다른 형식으로 취함으로써, 전체가 약화될 운명에 놓이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본질적인 것은 국제 투쟁의 변화와 연관되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강화하는 것이다. 이행기의 보편적 수용에서 「신경제정책」은 이행 경제 그 자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견고한 계급 노선 위에서 유지되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적의 도구를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남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활동이다. 오로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우리는 소비에트 국가의 진화를 분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제 강령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제 강령에 부과된 역사적 한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요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 째, 자본주의에 의해 이미 “사회화”된 생산수단과 교환의 집산화. 둘 째, 결정적으로 중요한 경제적 무기로서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의한 대외 무역의 독점화. 셋 째, 경제의 구조적 특성과 전 세계 사회주의 분업에서 요청되지만 경제 사회적 수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지위를 강화시키는 구체적 기능에 기초한, 생산력의 생산과 분배를 위한 계획. 넷 째, 해외무역의 독점에 기초하고, 생산수단과 부족한 소비의 대상을 획득할 목적으로 하며, 세계 시장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고 그 시장 속에 프롤레타리아 경제를 통합하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침과 함께, 기본적 생산계획에 종속되어야 하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과의 연계를 위한 계획이 그것이다.

 

 이러한 강령의 진보와 실현은 어느 정도 생산력 발전의 수준과 노동자 대중의 문화적 수준에 달려 있지만, 본질적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힘, 그 권력의 견고함, 국내 및 국제 수준의 세력 균형이다. 일정하게 상호 침투하는 물질적, 문화적, 정치적 요인 사이의 어떠한 단절이 결코 없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되풀이 말하지만, 보기를 들어 사회적 부의 몰수 양식을 다룰 때, 집산화가 자본주의 확립을 위해 봉건적 재산의 폐절이 있었던 것처럼 사회주의 확립을 위해 필요한 법적수단이지만, 그것은 자동적으로 생산의 변혁을 가져오지 않는다. 엥겔스는 집단 재산 소유를 사회적 만능약으로 보는 경향에 반대하여 우리에게 경계하도록 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그러나 주식 회사로의 전화도, 국가 소유로의 전화도, 생산력의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주식 회사의 경우에 이것은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명백하다. 그리고 현대 국가 역시 부르주아 사회가 노동자나 개별 자본가의 침해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일반적인 외적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직일 뿐이다. 그 형태가 어떠하건 간에 현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의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이다. 현대 국가가 생산력들을 더 많이 자기의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 총자본가로 되며, 국민들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 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 자본 관계는 폐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정점에서 그 자본 관계는 전도된다. 생산력들의 국가 소유가 충돌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해결의 형식적 수단, 해결의 칼자루는 그 안에 숨겨져 있다.”(반위링론)임을 그는 보여주었다. 덧붙여 그는 사회세력을 모든 사람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생산수단을 “전제적 주인으로부터 온순한 하인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생산력에 작용하는 사회 세력의 본질기능을 이해하는데 그 해법이 있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권력만이 이러한 집합적 의지를 결정하고 재산의 사회적 성격이 변환되어 그 계급적 성격을 잃게 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분명하다.

 

 집산화의 법적 효과는 후진적 경제 구조에 의해 제한받고 이는 정치적 요인이 더욱 결정적이게 만든다.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과 위험한 계급 분화로 이끌 수 있는 엄청나게 많은 요인들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만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위해 국가를 장악하게 한 유일한 정책, 즉 매우 강력한 계급 정책을 통해 이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농업 문제와 함께 소규모 산업 문제는,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남긴 무거운 유산, 법령으로 제거될 수 없는 유산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핵심 쟁점을 구성한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영국을 제외하고)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제기된 중심 문제는 상품의 소생산자와 소농에 반대하는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이며 이 사회 계층을 폭력으로 몰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사실 생산의 몰수는 이미 “사회화”된 기업에 관련하여 경제적으로 실현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낮은 원가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없고 시장 수단을 통한 통제 밖에 없는 개별 기업의 경우는 아니다. 이것이 개별 노동과 집합 노동 사이의 이행의 초점이다. 나아가 “사회주의”, 자본주의, 또는 전(前)자본주의라는 유일하게 경쟁에만 바탕을 두고 진화하는, 반대되는 사회관계에 기초한 순수한 생산 유형의 병렬체로, 프롤레타리아 경제를 추상적 방식으로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단화되는 것은 사회주의적이 되고 소부르주아와 농업 부문은 불가피하게 “사회주의”의 층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부하린으로부터 나온 중도주의의 테제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산의 각 영역은 다소간 자본주의의 기원의 흔적이 있고, 병렬이 아니라 계급 투쟁의 압력 아래에서 서로 싸우고, 내전시기보다 덜 잔인하더라도 매우 치열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모순된 요소들의 상호 침투이다. 이 싸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스스로 집합화된 산업을 기반으로 이미 정치적으로 극복된 자본주의의 모든 사회․ 경제적 세력을 완전히 폐지할 때까지 통제하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토지와 생산수단을 국유화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기구의 활동에 대한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웠고 믿는 결정적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모든 과정은 변증법적으로 계속되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강화하는 조건 위에서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해 그 과정을 나아가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농업 문제

 

 농업 문제는 분명히 혁명 이후 제기된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부르주아지 사이의 관계라는 복잡한 문제의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우리가 권력을 잡은 가장 유리한 조건 아래인 서구에서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러한 거대한 과업의 수천의 복잡한 어려움이라는 최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전,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매우 올바르게 지적했다.

 

 이는 그 기본적인 노선에서조차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현안이 아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요소인 토지의 완전한 국유화와 농업과 산업의 융합을 제기하는 정도로 제한하려 한다.

 

 첫 번째(완전한 국유화)는 대규모 생산수단의 집산화와 함께 권력 장악 이후 즉각 수행될 수 있는 완벽하게 실현가능한 법적 조치이다. 반면 두 번째(농업과 산업의 융합)는 세계적 사회주의 조직의 결과로서, 경제를 통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 둘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국유화가 농업과 산업의 융합을 조건지우며 결과적으로 농업의 사회화로 나아가는, 시간적으로 교차할 수 있을 뿐인 행위이다. 토지의 국유화나 토지의 사적 소유의 철폐는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적 조치가 아니다. 사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이며 부르주아 민주 혁명의 마지막 행위이다.

 

 토지의 평등한 향유와 함께 혁명의 가장 극단적인 혁명 단계를 구성하지만, 레닌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자본주의 관점에서 가장 완벽한 기초이며 동시에 사회주의로의 도정을 위한 가장 충분한 기초인 농업체이다.” 볼셰비키의 농업 강령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러시아 혁명」)의 약점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첫 째, 그녀는 “농민에 의한 토지의 즉각적 장악과 분배”가 사회주의 사회와 공통점이 전혀 없지만(우리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불가피한 이행단계를 나타냄을 인식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이것이 “대규모 토지 소유권을 분쇄하고 농민과 혁명 정부를 즉각적으로 묶는 두 가지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짧고, 단순하며 명확한 공식이었다”고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정부를 강화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그것은 훌륭한 전술적 조치였다”고 인정하지만. 두 번째로 그녀는 「사회주의 혁명당」으로부터 볼셰비키가 취한 “농민에게 토지를”이라는 구호가 토지의 사적 소유라는 통합적 억압의 기초 위에서 적용되었음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반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것을 대토지 소유로부터 수많은 소규모 개별 농민 소유로서의 경로로 보았다. 토지 분할이 대규모 기술적으로 발전된 착취로 확장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체로서의 농업 경제의 주요 요소가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소브코제스”(sovkezes)의 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가 그 자신의 농업 강령을 도출하는데 분명히 더 나아간 조치로 연결되었던 토지의 통합적 몰수에 대해서 아무 말 없었다는 것을 내친걸음에 말하도록 하자. 그녀는 다만 대규모나 중규모 토지의 국유만을 예측했을 뿐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룩셈부르크는 토지 분할이 사라지지 않고 “농민 사이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계급 적대를 촉진시킬 것이다”는 사실을 비난함으로써 토지 분할의 부정적 측면(필요악)을 드러내는데 스스로를 가두었다. 물론 농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반(半)프롤레타리아 농민을 끌어냄으로써 스스로를 강화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농촌에서의 그 승리를 보증하는 사회적 전제를 형성한 계급투쟁의 발전이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의심할 여지없이 농업 문제의 이러한 정치적 국면과, 정치적 지배와 대규모 공업의 소유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하는 기본적 역할을 과소평가 했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극도로 복잡한 상황에 부딪쳤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농의 극도의 분산 때문에 국유화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우리는 토지의 집단화가 반드시 그에 부속된 생산 수단의 국유로 나아가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러시아에서 92%가 농민의 사적 소유로 남았고, 8%만이 생산 수단의 국유화가 되었다. 반대로 산업에서는 철도의 97%, 중공업의 99%를 포함하여 생산력의 89%가 집단화되었다. (1925년 상황)

 농업 기구가 전체 장비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엄청난 농민 대중을 전제로 할 때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을 위한 유리한 기반을 형성했다. 그리고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발전을 유지하고 재흡수하는 중심적 방법은 대규모 공업화된 농업의 조직화 뿐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는 공업화의 보편적 문제에 종속되었고, 이어서 선진국의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원조라는 문제에 종속되었다. 죽느냐 아니면 소농에게 도구와 소비재를 공급하느냐라는 곤경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는 가능한 한 농업 생산과 공업 생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는 국제 혁명 투쟁에 연결시킨다는 전망을 가지고 도시와 농촌에서 계급투쟁에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집단적 생산을 만들려는 전제조건으로 소규모 생산을 제거하려고도 했지만, 농민 자본가에 맞서는 투쟁을 하기 위해 소농과 동맹을 맺었다. 그것은 분명히 농촌 마을에 관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여된 모순적 과업이었다.

 

 레닌에게 이러한 동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부분이 일어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를 방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농민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의 독자적 정책을 발전시켜 그들을 집합적 노동의 과정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무능력과 경제․ 사회적 상황 때문에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농민의 소부르주아적 주저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전제조건이었다. 소생산자를 “폐지”시키는 것은 그들을 폭력적으로 분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지만, 레닌이 1918년에 말한 것처럼 “토지의 평등한 향유가 소생산자가 관련된 한 가장 높은 이상으로까지 끌어올린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이상적” 자본주의를 향한 진전을 돕는 것이고, 농민은 그들 스스로 이 테제의 결함을 느끼고 집합적 경작을 넘어설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3년 동안의 끔찍한 내전 기간 동안 실험적 방법이 러시아 농민에게 “사회주의” 의식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백군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의 토지를 방어하도록 농민이 도왔다면, 이는 그들의 경제적 궁핍의 대가였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의한 치명적인 징발이었다.

 

 그리고 「신경제정책」은 보다 정상적인 경험의 영역을 재구축하고, “자유와 자본주의”를 되찾았지만, 이는 무엇보다 물품세로 “쿨락이 그 전에 밀어붙일 수 없었던 곳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고 레닌이 말하도록 한, 농업 자본가의 편을 든, 거대한 몸값이었다. 경제기구(국가 조직과 당)에 대한 재생하는 부르주아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었던 중도주의의 지도력 아래에서, 중농은 스스로를 부유하게 하고 빈농과 프롤레타리아트와 단절하도록 고무되었다. 완벽한 논리적인 우연의 일치가 일어났다. 프롤레타리아 봉기 10년 후 부르주아 요소를 향한 세력 균형의 이동은 그 실현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예치치 못한 착취 수준에 의존한, 5개년 계획의 도입과 맞아떨어졌다.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관계라는 복잡한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 실패는 오토 바우어나 카우츠키 아류가 주장한 바와 같이 부르주아 혁명 만이 의제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고, 경제적, 정치적 승리를 보증할 수 있었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행정의 원칙으로 볼셰비키가 스스로를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농업 문제의 중요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획득에 공헌했다. 이 문제에 대한 코민테른 2차 대회의 테제가 더 이상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었고, 특히 “농민에게 토지를”이라는 구호가 재검토되어야하고 그 의미에서 제한적임을 덧붙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파리 코뮨에 대한 맑스의 저작에 영감을 얻고 그 후 레닌이 발전시킨 것에서 맑스주의자는 사회 진화의 필요하고 진보적 형식으로서의 중앙집권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적 중앙집권주의 사이의 명확한 구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첫 번째 중앙집권주의에 기초했지만, 두 번째의 부르주아 국가의 중앙집권주의의 파괴를 위해 싸웠다. 그들이 과학적으로 무정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반박했던 유물론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러시아 혁명은 죽어 묻혔던 것처럼 보였던 이러한 논쟁 속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경제적․ 사회적 중앙집권주의가 폐지되지 않고 노동 대중에 의한 “자주적 결정”의 테제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에서 소련의 반혁명적 진화의 기원을 보는 수많은 비판들이 있다. 이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의식이 이행기를 훌쩍 넘어서야 했다는 것을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동시에 가치, 시장, 임금 차이, 기타 자본주의의 흔적에 대한 즉각적 억압에 대한 요구가 있다. 다른 말로, 절대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중앙집권주의의 두 가지 의미 사이의 혼돈이 있고, 이행기를 항해하는 방식으로 정교하든 하지 않든 간에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전형적인 무정부주의로의 회귀가 있다. 권위의 원칙에 자율성의 원칙으로 반대하는 것은 추상이다. 1873년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역사적 진화와 생산의 과정에 연결된 두 가지 매우 상대적 용어가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정치적 중앙집권주의

 

 원시 공산주의로부터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로 가다가, 문명화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진화에 근거해서, 자본주의적 “카르텔주의”와 “트러스트화”는 원시적인 사회적 자율성을 밀쳐버리고, 권위가 지속되지만 “생산조건이 그것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한” 엄격한 한계를 유지하는 체제에 의해 준비될지라도 실제로는 “무정부적인” 조직형식인 “사물의 관리”를 위한 기초를 놓는다(엥겔스). 본질적인 것은 유토피아적 방식으로 단계를 뛰어넘으려거나, 이름만 바꿈으로서 집권주의의 본질과 권위의 원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보려는 것이 아니다. 보기를 들어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은 이러한 분석이 예상하는 사회적 실재와 이론적 편의에 근거한 분석을 피하지 않았다. (앞에 인용한 그들의 연구를 참조할 것)

 

 러시아 경험에 있어서 중앙집권주의에 의한 그들의 비판은 경제에 대한 관료적 독재를 발생시킨 “전시 공산주의” 시기에만 유독 관련시킨 사실에 의해 “더 쉽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는 그 뒤의 신경제정책은 폭넓은 경제적 “분권주의”를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볼셰비키가 “최고 경제위원회”로 시장을 대체하여 시장을 억압하기를 원했고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는 독재로 전환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논쟁거리다. 따라서 네덜란드 동지들에게는 내전의 필요성의 결과로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극도로 집권화되고 단순화된 경제적, 정치적 기구를 부과해야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적 계급을 근절시켰지만 독재의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보였다. 불행하게도 네덜란드 동지들은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이 문제의 정치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동시에 집권주의 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을 거부하고 뛰어넘음으로써 그들은 말의 의미를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본 것은 실천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하나의 관심일 뿐인 이행기가 아니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였기 때문이다. “경제생활의 모든 흐름이 흐르지만 생산을 지시하거나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를 결정할 권리가 없는 경제적 중심에 기초한 일반적 사회회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롭고 동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에서 경제생활의 통제는 인물이나 기구로부터 나오지 않고 경제생활의 실질적 경로의 공적인 등록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생산이 재생산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다른 말로 “경제생활은 평균 사회적 노동시간을 통해 스스로 통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식화로는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전혀 진전이 없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기된 시급한 문제는 공산주의 사회를 규제하는 메카니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이끄는 길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동지들이 즉각적 해법, 즉 억압적 형식만 취할 수 있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 집권주의가 아니라 “일반 경제법칙”을 통해 생산을 조정하는 기업 조직에게 관리를 이전하는 것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 착취의 폐지(따라서 계급의 폐지)는 사회 행정에의 대중의 끊임없는 참여와 성장을 포함하는 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과 생산물을 처분할 수 있는 기업 위원회의 권리를 포함한다는 전제 하에, 생산 수단의 집단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 자신의 모순을 포함하는 정식화라는 사실은 별개로 해도, 사회 집단 사이의 제한적이고 분산된 집단화(주주들의 사회는 집단화의 부분적 형식이다)로 통합적 집단화(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의 재산)를 반대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몰수라는 또 하나의 법적 해결에 대한 법적 해결(기업의 처분권)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부르주아지의 몰수는 단순히 사회 변혁의 초기 조건이며 (완전한 집단화가 즉각적으로 실현가능하지 않더라도) 계급투쟁은 혁명 전이라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결정적 방향타를 쥐게하는 정치적 기반 위에서 계속될 것이다.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의 분석은 틀림없이 맑스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이 사라질 때까지, 즉, 세계 자본주의가 사라질 때까지 국가의 “천벌”을 견디도록 강제된다는 기본적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필요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국가 기능이 아직 잠정적으로 집권화와 혼합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억압기구의 파괴 이후에 일어나고 노동대중의 문화수준의 발전과 책임지는 능력과 반드시 반대되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 역사적, 정치적 조건의 실질적 맥락에서 이러한 발전에 대한 해법을 찾는 대신에,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은 유토피아적이고 퇴행적인, “부르주아 권리”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공식화에서 찾으려 했다. 더 나아가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 행정의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문화적”으로 준비될 수 없다면(그리고 이러한 실재는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프롤레타리아트 뿐만 아니라 가장 선진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적용된다) 공장과 생산의 “처분권”의 정확한 사용은 무엇인가?

 

 러시아 노동자는 효과적으로 공장을 그들 수중에 넣었고, 관리할 수 없었다. 이것이 자본가들을 몰수하고 권력을 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서구 자본주의를 배울 때까지 그리고 영국 노동자나 독일 노동자의 문화를 습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1917년의 러시아 노동자보다 서구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 행정이라는 거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서구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폐해 많은 분위기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특히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서만 온전하게 나타나는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통합적” 사회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회의식을 집중시키는 것은 당이었고, 당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그럴 수 있었다.) 다른 말로 (당은 완전히 효과적인 해결책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혁명 전 뿐만 아니라 혁명 후(무엇보다 후)에 사회 투쟁의 불꽃 속에서 해법을 정교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지 않고 이러한 거대한 과업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대중의 능동적이고 자라나는 협력 없이는 적들의 먹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행정”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초석이다. 그러나 역사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그들, 예속 없이, 상사 없이, 회계 없이는 할 수 없는 그들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할 것인가 아니면 혁명은 없을 것이다. (레닌, 「국가와 혁명」)

 

 

 

맑스주의 분석에서 이행기와 국가의 이중성

 

 이행기 국가를 다루는 장에서 우리는 이미 국가가 사회의 계급 분화에 기원하고 있음을 상기시킨 바 있다. 원시 공산주의에서는 국가가 없었다. 국가는 계급 착취를 일으키는 주체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 구체적인 특성을 보존하고 기본적 성격을 바꿀 수 없다. 다시 말해 억압적이고 강제적이며 부패하는 유기체로서의 국가이기를 멈출 수 없다. 역사적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은 국가의 기능이다. 노예 주인의 도구가 되는 대신 봉건 지주,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도구가 되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특권을 보존하는 완벽한 도구이다. 이것은 자신의 국가에 의해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착취 계급의 부상과 함께 사회에서 발전하는 새로운 특권에 의해 위협받는다. 뒤따르는 정치혁명은 이미 진행된 경제 구조의 변혁의 법적 결과였고 낡은 계급을 지배하는 새로운 착취 형식의 승리였다. 이것은 옛 체제 내에서 세워지고 공고화된 물질적 조건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혁명 계급이 그 자신의 생산 양식을 조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불신의 기반 없이 적응하고 완전하게 하려했던 이유이다. 세계적 규모에서 지배하기 위해 역사에서 최초이며, 그 국가가 역사에서 세워진 모든 억압 수단의 가장 압축적 형식인 부르주아 계급에게는 더욱 그렇다. 부르주아지와 국가 사이에는 적대가 없고, 밀접하고 파괴 불가능한 연결이 존재한다. 이러한 연대는 국경에 제지되지 않는다. 그 뿌리가 국제 자본주의 체제에 있기 때문에 국경도 넘는다.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창설로 지배 계급과 국가 사이의 역사적 관계는 수정된다.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위에 세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도구임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는 물질적 기반이 부르주아 사회 안에 놓였던 사회적 특권의 보존을 목표로 하지 않고 모든 특권의 파괴를 목표로 한다. 새로운 국가는 소수를 지배하는 다수라는 새로운 지배 관계, 즉 새로운 법적 관계(집합적 소유)를 표현한다. 반면에 새로운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환경의 영향 아래 남아 있기 때문에 (혁명에서의 동시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 “부르주아 권리”의 대표이다. 이는 아직 사회 경제적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 수중에 있다. 여기에 이행기 국가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착취 계급에 맞서는 무기로서 그 “강력한” 측면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착취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착취를 폐절하는 유기체로서 “약한” 측면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새로운 국가는 본질적으로, 정의 그대로 자본주의 특권을 끌어내는 축의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 어떠한 적대도 없지만, 프롤레타리아트와 이행기 국가 사이에는 적대가 생겨나는 이유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는 이행기 국가가 매우 쉽게 국제 계급투쟁에서 반혁명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부정적 효과가 있다. 확립된 사회계급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이행기 국가가 프롤레타리아 성격을 유지할 때라도 그렇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의 활동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통제를 행사하고 자신의 구체적 이해를 방어해야하는 당의 계급정치와 대중조직(노동조합, 평의회 등)이라는 경계하는 존재를 통해 잠재적 모순의 발전에 맞서 버틸 수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그들을 발생시킨 필요성, 다시 말해 오직 계급투쟁이 사라질 때에만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전적으로 맑스주의의 가르침에 따라 고무된다. 왜냐하면 이행기 국가 내의 프롤레타리아 “해독제”의 의미는 이미 우리가 지적한 대로 맑스와 엥겔스 뿐만 아니라 레닌이 방어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의 능동적 존재는 노동자에 봉사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유지하고 노동자에 적대로 되돌리는 것을 막는 조건이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모순적 이중성을 부정하는 것은 이행기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반면에 몇몇 동지들은 이 시기에 노동자 조직과 국가 사이에는 오직 동일시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기를 들어 헤놀트(Hennault)동지의 “러시아 국가의 본질과 진화”, 「빌랑」, 1121쪽) 네덜란드의 국제주의자들은 이보다 더 나아가고 있다. “노동시간은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의 척도이고 모든 분배는 모든 ”정치“의 밖에 있다. 노동조합은 공산주의에서 어떤 기능도 없으며 삶의 조건의 개량을 위한 투쟁은 끝이 날 것이다.”(그들의 글, 115쪽)

 

 중도주의 또한 소비에트 국가가 노동자 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제기한 어떠한 요구도 “그들의” 국가에 대한 적대의 행위가 될 수 있고, 국가기제에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가 전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앞에서의 고려지점에 근거해서 소비에트 국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적대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 성격을 유지했다고 우리가 말한다면, 실재와 전혀 공통점도 없고 소련의 방어를 거부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거부하는 미묘한 구별점인가? 아니다. 이러한 명제는 무엇보다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유물론의 견해로부터 정당화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와 국가 사이의 동일성을 거부하고 국가의 성격과 기능 사이의 어떠한 혼동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사실에 의해 러시아 혁명의 진화에 대해 우리가 도출한 결론이 그 전제에서 손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국가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본주의 국가임을 보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관료국가라고 말하고 러시아 국가가 역사에서 원천적으로 지배계급이고 새로운 생산양식과 착취와 연결된다고 발견한 것이 더 나은 것인가? 사실 그러한 설명은 맑스주의 유물론에 등을 돌리게 된다.

 

 관료제가 어떤 사회체제의 기능에서도 필수불가결한 도구였지만, 그 스스로 착취계급으로 변환된 사회 계층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회 내에 막강한 관료제의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개인으로서를 제외하면 생산에 작용하는 계급들과 혼합되지는 않았다. 「자본」에서 맑스는 인도의 식민화를 검토하면서, 관료제가 「동인도회사」의 외양으로 나타났음을 보였고, 동인도회사는 생산이 아닌 유통과의 경제적 연관을 가졌는데,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을 도시 자본주의의 편에서 행사했다고 말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계급에 대한 과학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견지한다면 러시아 관료주의가 계급도 아니고 지배계급보다 못한 것인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바깥의 생산에 대한 어떠한 특수한 권리도 가지지 않고, 러시아에서의 집산화가 그 기본에서 아직 존재한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그렇다. 러시아 관료주의가 사회적 노동의 상당부문을 소비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기생의 유형이지 계급 착취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에서 사회관계가 노동자에 대한 거대한 착취를 나타내지만, 이는 집단이나 개인의 재산권의 행사로부터 나오지 않고 전체적인 경제·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나오고, 관료주의가 원인이 아니라 단지 표현이며, 우리 견해로는 이차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화는 무엇보다 러시아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적 세력의 추동력을 봉쇄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준 중도주의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사회적 문맥의 독창성은 전례없는 역사적 상황에서 놓여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세게 내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존재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는 국가기구에 대한, 그리고 당 기구, 이어서 당 정치에 대한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압력의 비중에 따라 성장한다.

 

 이러한 착취가 노동자로부터 약탈한 잉여노동으로부터 사는 관료적 계급의 존재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대중 속에서 정치적·교육적 역할을 지속하기 보다는 스스로 국가에 통합되는 당에 대한 적들의 영향력을 통해서임을 설명할 필요는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 이후의 제3인터내셔널」에서) 더욱더 당에 가해지는 압력의 계급적 성격과 부르주아 지식인, 소부르주아지, 쿨락, 그리고 당 관료주의로부터 가해지는 이러한 압력 사이의 연결고리에 주목했으며, 이러한 모든 세력을 통해 작동하는 세계 부르주아지의 압력도 중시하고 있다. 이것이 관료주의의 뿌리와 정치적 타락의 세균이 당과 국가의 상호침투의 사회 현상 뿐만 아니라 유리하지 않은 국제적 상황에서 추구되는 이유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권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전시공산주의”나, 프롤레타리아 경제를 위한 타협이나 정상적인 체제의 표현이었던 「신경제정책」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바린(Souvarine)은 그의 책 「볼셰비즘에 대한 개관」("Apercu sur le bolshevisme")에서 당이 전체 국가기구 위에서 기계같은 철권을 휘둘렀다고 주장하면서 당과 국가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역전시켰다. 그는 러시아 혁명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떠한 미리 계획된 의도와 기획 없이, 보편적 문화 결핍, 지친 대중의 무관심, 그리고 혼란을 극복하려는 볼셰비키의 노력이라는 3중 효과를 통해, 수혜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체제의 변혁”(245쪽)이라고.

 

 그러나 만일 혁명가들이 맑스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숙명주의, 즉 물질적 조건의 “미성숙”과 대중의 문화적 무능력으로부터 도출된 숙명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거부한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역사적, 객관적 조건이 그 당시 존재했고, 지금도 세계적 규모에서 존재하는데, 이는 맑스주의 관점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유일한 타당한 기준이다.) 그들은 정치적 요소인 당, 즉 역사적 필요성의 수준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인 당이라는 중심적 쟁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혁명에서 당 권위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식은 독재적 형식임을 결론내려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당 독재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적대의 유형을 제기함으로써 다시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이든 식민지처럼 후진된 나라든 간에 당의 독재는 이행기의 불가피한 표현임을. 맑스주의자의 기본적 임무는 러시아 혁명의 거대한 경험에 기초해서 이러한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어떻게 세계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숙명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에 조그만 진전이라도 없다면, 문제의 엄청난 복잡성 속에서 연약한 혁명적 핵심의 고통스런 고립이라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기된 본질적 문제는 당과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이며 이러한 맥락 안에서 당의 조직화 양식과 그 내적 삶의 문제가 있다.

 

 「빌랑」의 동지들이 당의 두 가지 활동에 대한 그들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다. 그들은 혁명 준비의 기본으로서 (볼셰비키당 역사가 보여주듯이) 당대의 분파투쟁과 대중조직 내의 투쟁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 형식이 혁명 후 사라지는가, 급진적으로 변혁되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 상황은 계급투쟁이 최소한도로 약화되지는 않지만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조직 방법이나 공식이라도 경향과 분파의 성장을 통해 당내에서의 반향으로부터 계급투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도주의의 “단일주의(monolithism)” 같은 러시아의 트로츠키 반대파의 “모든 것을 희생한 통일”은 역사적 실재에 정면으로 대들었다. 반대로 분파의 인식은 매우 변증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긍정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적절한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빌랑」의 동지들은 몇몇 보석같은 문구가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아직 더 검토해야 할 것은 분파투쟁과 그에 따른 강령 사이의 적대가 어떻게 동질적인 지도력과 혁명 규율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이다. 같은 방식으로 노동조합조직 내의 분파의 자유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단일당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는가를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계속)             

 

 <번역 -LCG Oh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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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공산주의자 선언 - 고타 강령 비판 by ICT

1875년 공산주의자 선언 - 고타 강령 비판

 

「혁명적 전망」, 2005, 37호, 국제공산주의경향

 

 

 우리는 여기 한 명의 지지자가 마르크스의 1875년 고타강령 비판을 검토한 글을 게재한다. 이 글은 임노동을 자본주의의 근간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비판을 보면서, 그렇다면 공산주의에서의 노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른바 비인간적인, 자유가 없는, 소외된 노동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에서부터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 “삶에 대한 선언으로서의, 따라서 삶의 향유로서의 노동”에 대한 지적에 이르는 마르크스의 방법을 묘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악이 존재하는 한 계속 남아있을 마르크스의 업적의 지속적인 힘의 비밀을 발견한다.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마르크스의 업적의 타당성은 러시아 블록 붕괴 이후 그 타당성을 상실했다고 믿었던 자본주의 계급을 초조하게 하고 당황하게 한다.

 

비판

 마르크스는 그의 작업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쓰일 이론적 무기고를 만드는 작업의 일부라고 본 혁명가였다. 고타 강령 비판이 쓰여졌을 당시 공개가 금지되었던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고타 강령은 1875년 5월, 「독일사회민주당」 창당의 기반으로 승인되었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이후로 16년 후, 그가 죽은 지 8년만인 1891년에야 출간되었다. 이것은 그 다음 세기 동안 그의 저작과 사상의 일부가 왜곡되고 은폐되는 서막에 불과했다. 이 짧은 글은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널리 유포된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에 대해 논박한다. 원래의 것과 완전히 대립될 때까지 왜곡된 마르크스의 두 가지 주요 개념은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의 본질과 공산주의 사회 그 자체이다.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 알려진 “비판적인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와 각각의 추종자들은 모두 공산주의에서의 노동을 국가를 위한 임노동으로, 공산주의 자체는 국가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의 본질적인 성격이라고 보았던 삶과 인간성의 성취로서의 노동,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로서의 공산주의와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 첨부된 편지에서 “…우리의 입장은 모두 강령의 원칙과 별개이며, 전혀 다른 것이다”고 쓰고 있다. “나의 임무는 당을 타락시키는 강령에 대해 외교적인 침묵으로라도 승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반대하는 것이다.” 고타 강령의 저자는 바로 그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였다! 리프크네히트와 새로운 당의 지도자들에게는 단결은 강령 자체의 세부항목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창당 대회에서 강령의 오류를 수정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아우구스트 베벨은 1910년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런던의 두 늙은이들과 동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재치있는 계획, 숙련된 전술로 보았던 것들을 그들은 나약함과 무책임한 순종으로 여겼다. 궁극적으로, 통합의 사실만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비판」은 「공산주의자 선언」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같은 목적을 갖고 쓰여졌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명쾌하고 직접적인 언급이다. 그의 삶의 막바지에 「고타 강령」의 맹목적인 국가주의적 교의를 파괴하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비판」은 다음과 같은 요약된 논의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적인 요소, 그것에 반하는 것으로서의 생산양식의 혁명적인 변형, 그리고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존재하는 사회적 질서를 극복하도록 운명지어진,  강조체로 쓰여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대략적인 묘사1)가 그것이다.

 

 「고타 강령」은 “노동은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다”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 또한 사용가치의 원천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그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통찰 중 하나를 방어한다. 상품의 두 가지 본질, 사용가치(왜 우리가 대상을 원하는가)와 교환가치(그 대상은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생산 체계의 바로 뿌리에서부터 생산의 목적 사이의 충돌이 있음을 밝혀준다.2) 부는 사물의 축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가치의 덩어리로서도 존재한다: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화폐나 화폐가치로 실현된다.

 

 자연은 인간의 “비유기적인 삶”이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노동은 자연 없이, 감각적인 외부 세계 없이는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그룬트뤼세)

 

 노동이 사용가치, 즉 물질적 부를 창조하는 한, 부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 사용가치는 언제나 자연적인 토대를 갖는다. 노동은 인간의 자연적 조건, 다시말해 사회적 형태와 독립적인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적 교환 조건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인간과 자연의 물질적 교환의 조건은, 인간 존재의 영속적인 자연적 조건이며, 따라서 그 모든 사회적 형식에 평등하게 공통적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존재의 모든 형식과 독립적이다. (「자본」, 1권)

 

 마르크스의 관심은 가치(사물의 집합이라기보다 원장에 기재된 숫자의 집합)로서의 부는 부의 독특하고 근대적인 개념이라는 데 있다. 가치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 체제의 창조물이며, 그것은 “공평한 분배”만을 요구할 뿐인 「독일노동당」이 완전히 잃어버린 지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근대 운동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자본주의와의 타협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두 가지 성격에 대해 폭로하면서 「자본」을 시작한다. 왜 우리 사회에서 상품은 두 가지 형식, 유용한 상품과 가치있는 상품의 형식을 가지는가? 이것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결코 대답할 수 없었던 주요한 두 개의 질문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자본주의가 발생했는가’이다. 상품에는 두 가지 형식의 부가 있다는 것이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직면한 이 새로운 사회적 게임은 생산 체계의 뿌리에서 비롯된 몇 가지 종류의 문제 위에 성립한다.

 

 10년 전, 마르크스는 “그 자신의 즉각적인 사용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는 생산물을 만들지만 상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노동 뿐만 아니라 사회적 노동”이라고 주장한다(임금, 가격, 그리고 이윤). 또한, 마르크스에게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이러한 유형의 노동은 사회적 노동인데, 왜냐하면

1. 이 노동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에 종속되어 있다.

2. 이 노동은 사회적으로 결정된 평균 노동(시간)이다.

3. 이 노동은 특정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되어있다.

 

 생산자들은 상품의 교환을 통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의 특별한 성격을 강조한다.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노동의 조건은 노동의 사회적 결정요인 또는 사회적 노동의 결정요인이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사회적이다. [이 상황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를 위해 노동하고 특수 노동이 그 반대인 추상적인 일반 노동[과] 그 형식, 사회적 노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교환의 한계라는 조건 속에서만 드러나는 특수한 사회적 성격이다.(정치경제학 비판)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노동

 

 자본주의가 끝난 이후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마르크스는 그 사회에서의 노동은 단순한 삶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첫 번째 필요”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노동 분업이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폐지되어야만 하는 노동의 분업은 인간을 그 “노예화시키는 복종” 상태로 몰아넣는 분업이다. 1844년 마르크스는 두 종류의 노동을 구분했다.

 

 첫 번째 노동은 “인간 존재로서 생산하는” 사회로, 생산수단으로서의 사적 소유가 없는 상황에서의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며, 따라서 삶의 향유”이며 여기서 삶은 “자신의 특수성이 지지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노동은 “진실된, 적극적인 재산”이다.

 

 두 번째 노동은 사적 소유 아래에 있는 노동이며 “삶의 소외”이다. “그것은 … 필요의 충족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외부에 있는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강제 노동이며 …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것이다.” 이러한 노동은 “자기 소외”이다.

 

 그러므로 소외된 노동자는 … 생산물과 생산을 소유하고서, 생산하지 않는 자들에 의한 지배를 만들어낸다. 노동자와 노동의 관계는 자본가의 노동과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 그러므로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생산물, 결과,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가 정치경제학에서 소외된 삶, 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이끌어낸 것은 사적 소유의 운동의 결과였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 개념의 분석은, 사적소유가 소외된 노동의 이유, 원인으로 보인다고 해도, 오히려 그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에, 이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소유는 소외된 노동을 만들어낼 수 없다. 노동이 소유의 형태로 전유될 수 있게 되기 전에, 노동은 우선 소외된 노동의 형식이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물의 소유 관계는 좀 더 근본적인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 사적 소유의 법적인 형태는 소외된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전제한다.3)

 

 시몬 클라크(Simon Clarke)는 이를 잘 설명한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 필요의 본질적인 사회적 관계는 사물 사이의 관계라는 소외된 형태로 나타나며, 타인에 대한 나의 사회적 의존은 나의 사물에 대한 의존이라는 소외된 형태로 나타난다. 교환의 확장과 노동의 분업과 함께, 노동의 활동은 소외된 활동이 되는데, 이것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이 노동자의 필요와 아무런 고유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그/그녀가 특정한 형태의 활동을 할 필요나, 특정한 생산물 또는 타인의 그 생산물에 대한 필요의 인식에 반응해서 특정한 대상을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단순히 다른 생산물에 대한 생산물의 교환을 위해 생산하며, 살기 위해 생산한다. 그러므로 생산물은 무차별한 사물로써 노동을 지배한다.4)

 

 [여기서] 나의 개성은 내 활동을 내가 증오하고 나에게 고통인 만큼 나에게 소외된다. 활동은 나의 내적 필요가 아니라 외적 필요에 의해서만 부과된 활동의 외형일 뿐이다. (Paris Notebooks)

 

 1년 후,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활동이 “그 자신의 인간적 삶의 자유로운 표현”이 아니라, “소외된 그의 권력을 자본에 팔아넘기는 것”이라는 것을 목격한 마르크스는 “[이] 노동은 사적 소유에 의해 조건 지어지고 다시 사적소유를 만드는, 자유롭지 못하고, 비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인 활동”이라고 쓰고, 그 후 “사적 소유의 폐지는 [소외된] 노동의 철폐로써 인식될 때 현실이 된다”(신성가족)고 썼다. “개인적 차원에서 자연을 전유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생산은 한정된 사회적 형식에 의해 조정된다.”(정치경제학 비판) 이제 노동의 사회적 차원을 고려해 보자. 이제 질문은 노동 과정이 “노예 관리자의 무자비한 채찍 아래 작동하는지, 아니면 자본가의 걱정스런 시선 아래 작동하는지”와 연관되게 된다.5)

 

 이 두 가지 형식의 노동은 계급 사회에서 작동하는 지배적인 노동의 형식이다. 계급 사회에 걸쳐, 노동은, 전(前)자본주의의 “인격적 의존” 아래 직접적으로 강제된 노동이든, 또는 자본주의 상품 사회에서의 “물질적인 의존” 아래 소외된 노동이든, 개인에게 강제된 활동이었다.(그룬트뤼세) 그런 노동은 노동자를 “노동하는 동물”(잉여가치 이론)으로 환원시켰다. 노동의 분업은 지금까지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인간 존재 자체의 활동이 인간 존재를 낯선 것, 반대 권력이 되도록 지배한다”(독일 이데올로기). 이 노동의 형식은 공산주의 사회에 존재하게 될 인간 존재의 “자유로운 개성”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관념에 따르면 노동은 “자유의 희생”이었고, 마르크스는 노동은 “노예제, 농노제, 그리고 임금 노동의 역사적인 형식”이며 언제나 “불쾌한,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었다. 노동은 아직 “노동이 매력적이고 개인의 자기-실현을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을 창조하지 못했다. 노동은 노동이 외부로부터 부과되지 않을 때, “자유의 활동”, 자기-실현, 실제로 “진실된 자유”로 여겨질 수 있다(그룬트뤼세).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 전에 그의 저작들에서 노동의 분업과 노동 자체의 “철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강제된 다른 형식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철폐되어야 하는 형태의 노동이다. 노동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는 “자기 (긍정) 활동”으로 변형되어, 삶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의 “주요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된다.

 

 임노동

 

 마르크스는 「고타강령」의 임금에 대한 제한적인 개념을 공격하면서 자본주의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냈다. 마르크스는 두 가지 지점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임금의 철칙”이다. 고타 강령은 임금은 언제나 생존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엥겔스가 주장하길 “마르크스가 [나로부터] 선택하고, 라쌀레가 우리에게 빌려간”, 1840년대의 마르크스의 입장이었다. 마르크스는 이 입장을 포기한다. 대신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노동자의 필요는 상대적이고, “도덕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를 포함한다고 강조한다. 유사하게, 마르크스는 미출간된 「Resultate」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예의 최저임금은 일정한 정도, 그의 노동과 독립적으로 나타난다. 자유로운 노동자에게, 그의 노동력의 가치와 상응하는 평균 임금의 가치는 그 자신의 노동과 독립적인 물리적 필요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한계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상품들의 가치처럼 이 가치는 계급에게 다소 일정한 평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당면한 현실에서는 그 최소보다 항상 높거나 항상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개별 노동자는 없다.

 

마르크스에게는 실질적인 임금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노동자들의 “절대적 빈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노동은 노동자의 “절대적 가난”을 의미한다. 「고타 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노동력[은] … 가난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부로부터의 총체적인 배제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가난이다.”

 

 마르크스가 임금에 대해 이야기한 두 번째 지점은 부르주아 정치 경제학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나 가치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임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노동력의 가치나 가격의 감춰진 형식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한 임금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개념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은 한꺼번에 폐기되었다. 그것은 임노동자가 그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그가 자본가를 위해 특정 시간동안 무상으로 일하는 한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모든 자본주의 생산체계는 노동시간의 연장이나 생산력의 발전,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한 부불노동의 기간 연장을 중심으로 순환한다. 그리고 임노동 체계는 노예 체계이며, 실제로 이 노예제는 노동자가 더 높은 임금을 받든, 더 낮은 임금을 받든,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는 정도와 같은 정도로 더욱 심각해진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 1권에 쓴 것(가치의 변형에 대하여: 노동력의 가격이 임금으로)을 다시 이야기한다. 그는 자본 1권에서 노동력의 가치와 가격 사이의 구분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계 역사가 임금의 비밀을 풀기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는 마르크스 자신의 성취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그가 「고타 강령」이 그의 결론으로부터 타락한 것에 대해 분노한 이유다. “그리고 우리 당에서 이러한 이해가 더더욱 기반을 획득한 후, 어떤 이들은 라쌀레가 임금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라쌀레의 교의로 돌아갔다.” 임금은 보상과 다르다! 로마 군대의 군인들은 돈을 정기적으로 받고 소금과 같은 추가적인 혜택을 받았고, 따라서 그것은 봉급(salary)이었다. 그들은 자본을 위해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wage)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본에 대한 임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늘날 변호사 회사로부터 봉급(salary)을 받는 동업자도 아니었다.

 

 임노동자는 그의 삶을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그것은 특정 시간을 자본가를 위해 무상으로 일하는 한 그러하다.

 

 자본과 임금은 거울 개념이다. 물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장은 규범적인 사회적 조직화의 형식이다. 병원과 학교는 공장이 운영되는 것과 같이 운영된다. 공장의 지불 체계인 임금은 규범적인 것이 되어, 임노동의 진정한 본질을 가린다. 무엇보다도, 임노동을 생산하는 상품은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이다.:

 

개별 노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적 노동으로 오직 그 소외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6)

 

 「고타 강령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혁명적 변혁의 시대”의 끝에, 계급들과 더불어 국가 자체를 끝장낼 것을 요구한다. 「프랑스 내전」에서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꼬뮨은 근대적 국가 권력을 파괴하였는데, 중세 꼬뮨의 재생산으로 잘못 여겨져 왔다; [그것은] 작은 국가들의 연방으로 쪼개려는 시도로 착각되어 왔다; 국가 권력에 적대하는 꼬뮨의 반대는 과도한 중앙집권화에 저항하는 고대 투쟁의 과장된 형태로 잘못 여겨져 왔다.

 그 진정한 비밀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 정부였고, 착취 계급에 반대한 투쟁의 산물이었고 …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이루어내는데서 마침내 발견한 정치형식이었다. 생산자의 정치적인 지배는 그의 사회적 노예제도의 영속화와 함께 공존할 수 없다. 꼬뮨은 그러므로 계급들, 따라서 계급 지배의 존재가 기반한 경제적 기초를 제거하는 지렛대로 작동해야 한다. 노동이 해방되면, 모든 인간은 노동자가 되며, 그리고 생산적인 노동은 계급 특성이 되는 것을 멈출 것이다.

 ... 꼬뮨은 다수가 소수의 부를 위해 일하게 하는 계급 특성을 철폐하려고 했다. 꼬뮨은 착취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꼬뮨은 생산, 토지, 그리고 자본의 수단, 다시 말해 이제 주요하게 노예화와 노동력 착취의 수단을 자유롭고 연합된 노동의 단순한 도구로 변형시킴으로써 개인 소유를 진실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산주의, “불가능한” 공산주의이다!7)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전진할 가능성이었으며, 부르주아 지배의 실질적인 대안이었다. 그 대안은 직접적으로 선출되고 소환 가능한 대표들로 구성된 평의회 시스템을 통한 노동자 자신의 직접적인 정부였다.

 

 물론, 꼬뮨은 프랑스 국가의 손에 유혈낭자하게 패배함에 따라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분배의 영역에 “부르주아 권리”가 얼마나 남아있든, 그것을 집행할 국가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마르크스는 구성원에게 노동 교환권 뿐만 아니라 생산의 분야들 사이에서 사회적 총 노동시간을 분배하는 사회를 그렸다. 그는 파리 꼬뮨의 초기에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를 그의 시각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통제로부터의 개인의 분리 위에 건설된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장악함으로써 지배하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을 창조한다. 개별 소유자가 마이크로소프트, 씨티뱅크, Land Securities나 영국 정부로 불리든 간에, 그들은 사회적 잉여(소외된 노동)를 획득하기 위해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종종 잘못 이해된다. 코르쉬(Korsch)조차 다음과 같이 썼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현재와 미래의 ‘사회’와 (현재와 미래의) ‘국가’ 사이의 진정한 이론적이고 실질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명확화했다.8)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제도의 폐지이다. 그것은 국가(민주적 노동자 조직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임노동과 자본(협동조합과 사회적으로 지시되는 노동을 위해)

 

(번역 LCG Kim)l

 

 

1) Paresh Chattopadhyay: 해방의 선언: 마르크스의 ‘미주’ 125년 이후,

   http://libcom.org/library/manifesto-emancipation-paresh-chattopadhyay

2) Scott Meikel: 마르크스는 경제학자였는가?

3) Collected Works, Volume 3, p.271-2, 274-5, 278, 279, 270-80.

4) Clarke, S. (1991): 「Marx, Marginalism and Modern Socilogy: From Adam Smith to Max Weber」. London: Palgrave Macmillan.

5) 1962a: 198-99

6) 칼 마르크스, 「잉여가치 이론」, 2권, London 1969, 504쪽

7)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1/civil-war-france/index.htm

8) Karl Korsch: Marxism and Philosophy,

   http://http://www.marxists.org/archive/korsch/1923/marxism-philosophy.htm

 


 

The Communist Manifesto of 1875 -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We are publishing below a text written by one of our sympathisers examining Marx’s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of 1875. The text looks at Marx’s critique of wage labour, which forms the basis of capitalism, and gives his insights into what labour will be like under communism. The text illustrates Marx’s method which is to proceed from a ruthless criticism of what exists, namely inhuman, unfree, alienated labour and points to the possibility of a better world, “labour as the manifestation of life and therefore enjoyment of life.” In this we see the secret of the continuing power of Marx’s work which will endure as long as the evils of capitalist society. The relevance of Marx’s work to today both worries and baffles the capitalist class who thought his relevance had been destroyed by the collapse of the Russian bloc.

 

 

The Critique

 

Marx was a revolutionary who saw his work as forming part of the theoretical arsenal which could be used in the struggle to build a better world. It is significant that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was suppressed at the time it was written. The Gotha Programme was accepted as the basis of the creation of the German Social Democratic Party in May 1875. Marx’s criticisms were only published 16 years later in 1891, eight years after his death. This was a prelude to the distortion and suppression of sections of his writings and thought which followed in the next century. The present short text refutes interpretations of Marx which were given widespread currency under firstly, the Social Democracy of the Second International, and secondly, under Stalinism. Two key elements which have been distorted until they are totally contrary to Marx’s own conception are the nature of labour under communist society, and communist society itself. Social democracy, together with Stalinism and “critical Stalinism” namely Trotskyism, Maoism and their respective camp followers, see labour under communism as wage labour for the state. Communism itself, they see as state capitalism. Such notions stand in direct contradiction to labour as fulfilment of life and humanity and communism as a free union of individuals which Marx saw as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communism.”… our position is altogether remote from the said programme of principle and we have nothing to do with it” Marx wrote in a letter accompanying his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Marx continued “It is my duty not to give recognition, even by diplomatic silence, to what in my opinion is a thoroughly objectionable programme that demoralises the Party”. The author of the Gotha Programme was a certain Wilhelm Liebknecht! To Liebknecht and the leaders of the new party, unity was considered to be more important than the details of the Programme itself. August Bebel, who tried and failed to correct some of the program’s errors at the foundation congress, wrote in his 1910 memoirs: “It was no easy task to agree with the two old men in London. What we saw as clever calculation, adept tactics, they saw as weakness and irresponsible complaisance; ultimately, the fact of the unification was the main point.”

 

The Critique is not as well-known as The Communist Manifesto, but it has the same purpose. It is a clear and direct statement of Marx’s communism. Written near the end of his life in order to demolish the state-doting doctrines of the Gotha Programme, it contains a condensed discussion of…

 

the essential elements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ts revolutionary transformation into its opposite and a rough portrayal, in a few bold strokes, of what Marx had called in Capital the “union of free individuals” destined to succeed the existing social order. (1)

 

 

The Gotha Programme begins with the claim that “Labour is the source of wealth and all culture”. No, says Marx, “Labour is not the source of all wealth. Nature is just as much the source of use values”. Here Marx defends one of the few insights that he claimed to be his very own, the two-fold nature of the commodity, the distinction between use value (why we want an article) and exchange value (what an article is worth on the market). These reveal that there is a conflict about the purpose of production at the very root of the production system. (2) Wealth exists as an accumulation of things, but also as a mass of value: in developed capitalism, of course, value is realised in money or money’s worth.

 

Nature is the “non-organic life” of the human and the human as “a part of nature.” The labourer can create nothing without nature, without the sensuous external world.

 

(Grundrisse)

 

-

 

It is false to say that labour in so far as it creates use values, that is material wealth, is the unique source of the latter… The use value always has a natural substratum. Labour is the natural condition of the human, the condition of material exchange between human and nature, independent of all social forms.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

 

the global condition of material exchange between the human and nature, an everlasting natural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and thus independent of all forms of this existence, rather equally common to all its social forms.

 

(Capital, Volume I)

 

Marx’s concern is that wealth as value (a set of numbers in a ledger rather than a set of things) is a distinct and modern conception of wealth. Value is the creation of new social system of capitalism, a point entirely lost to the German Workers’ Party which just demanded “a fair distribution”. This is the same compromise with capitalism we see in Social Democracy and in liberal modern movements.

 

Marx begins Capital with this revelation of the two-fold nature of the commodity. Why do commodity goods in our society have two forms, useful goods and valuable goods? This is one of the two key questions the classical economists never asked. The other is ‘How did capitalism arise?’ To see that it is a puzzle that there are two forms of wealth in the commodity is to see that capitalism is not the natural order. This new social game we are forced to play stands on some kind of problem at the root of the production system.

 

Ten years earlier, Marx argued that “a man who produces an article for his own immediate use, consumes it himself, creates a product but not a commodity,” and that “to produce a commodity” it is “not only Labour but Social Labour” that is relevant (_Wages, Price and Profi_t). Also, according to Marx it is not labour as such but “socially necessary labour (time) ” that produces commodities. This type of labour is social labour because it is:

 

1.subordinated to the social division of labour;

2.it is socially determined average labour (time), and

3.it is destined to satisfy certain social wants.

Producers enter into social contact through the exchange of commodities. Marx stresses the specific character of this labour.

 

The conditions of labour positing exchange value are social determinants of labour or determinants of social labour, but social… in a particular way. This is a specific kind of sociality. [It is a situation in which] each one labours for oneself and the particular labour has to appear as it’s opposite, abstract general labour, [and] in this form, social labour. [It has this] specific social character only within the limits of exchang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Labour in communist society

 

What will labour be like after capitalism has ended? Marx stresses that labour in that society would not simply be a means of life but would itself become life’s “first need.” Not every division of labour would be abolished. What must be abolished is the division of labour which puts individuals under its “enslaving subordination”. In 1844 Marx distinguished between two types of labour.

 

The first is labour in the absence of private property in the means of production where “we produce as human beings.” Here labour is a “free manifestation of life and therefore enjoyment of life,” where the “particularity of my life is affirmed.” Here labour is “true, active property.”

 

The second is labour carried on under private property, the “alienation of life”. “It is… not the satisfaction of a need; it is merely a means to satisfy needs external to it”. It is, therefore, “forced labour… not his own, but someone else’s”. This is labour as “self-estrangement”.

 

Thus through estranged labour man… creates the domination of the person who does not produce over production and over the product… The relationship of the worker to labour creates the relation to it of the capitalist… Private property is thus the product, the result, the necessary consequence, of alienated labour.

True, it is as a result of the movement of private property that we have obtained the concept of alienated labour (of alienated life) in political economy. But analysis of this concept shows that though private property appears to be the reason, the cause of alienated labour, it is rather its consequence… Later this relationship becomes reciprocal. Thus property cannot create alienated labour. Before labour can be appropriated in the form of property it must first take the form of alienated labour. Thus the proprietorial relation between a person and a thing expresses a more fundamental social relation between people. The legal form of private property presupposes the social relation of alienated labour. (3)

 

 

Simon Clarke explains this well:

 

the essential social relationship between people, their mutual need for one another, appears in the alienated form of a relation between things and my social dependence on the other person appears in the alienated form of my dependence on things. With the extension of exchange and the division of labour the activity of labour becomes an alienated activity, for the thing that the labourer produces has no inherent connection with the needs of the labourer: the labourer does not produce the particular object because it responds either to his or her need to engage in a particular form of activity, or to a need for that particular product, or to a recognition of the need of another for that product. The labourer produces simply in order to exchange the product for another product, in order to earn a living. Thus the product as an indifferent thing comes to dominate labour. (4)

 

 

[Here] my individuality is to such an extent alienated that this activity is hated by me and is a torment. It is only an appearance of activity imposed only by an external necessity and not by an inner need.

 

(Paris Notebooks)

 

One year later, Marx observes that the labourer’s activity is not “a free manifestation of his human life,” it is rather a “bartering away, an alienation of his powers to capital.” Marx writes that “[this] labour is an unfree, inhuman, unsocial activity conditioned by and creating private property” and then adds that “the abolition of private property only becomes a reality if it is conceived as the abolition of [alienated] labour” (The Holy Family). All production, considered as “appropriation of nature from the side of the individual… is mediated by definite social forms”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Now consider labour’s social dimension. The question becomes relevant re whether the labour process operates “under the brutal lash of the slave supervision or the anxious eye of the capitalist”. (5)

 

These two forms of labour are the dominant types of labour that has operated in class societies. Throughout class society labour has been an activity forced on the individual — either as directly forced labour under “personal dependence” as in pre-capitalism or as alienated labour under “material dependence” in commodity capitalist society (Grundrisse). Such labour has reduced the labourer into a “labouring animal” (Theories of Surplus Value). The division of labour so far has been involuntary. The “human being’s own activity dominates the human being as an alien, opposite power” (German Ideology). This form of labour is quite different from the human being’s “free individuality” as it will exist in communism. Referring to Adam Smith’s idea of labour being a “sacrifice of freedom” Marx says that labour “in its historical forms of slavery, serfdom and wage labour” always appears “repulsive, forced from outside”. “Labour has not yet created the “subjective and objective conditions in which labour would be attractive and self-realising for the individual”. Labour can be seen as an “activity of freedom”, as self-realizing and indeed as “real freedom” when labour is not imposed from outside (Grundrisse). When Marx speaks of the “abolition” of the division of labour and labour itself in his writings prior to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it is with reference to the different forms of labour which are forced upon the worker. This is the type of labour which has to be abolished. Labour, transformed into a “self (affirming) activity” becomes not only a means of life but also life’s “prime need” in the higher phase of communism.

 

 

Wage labour

 

Marx exposes the true nature of capitalism in his attack on the Gotha Programme’s limited conception of the wage. Marx makes two points. The first concerns the “iron law of wages”. The Programme claims that wages will always remain at subsistence level. This was Marx’s position in the 1840s, about which Engels claimed, “Marx had adopted it [from me] and Lassalle had borrowed it from us.” Marx abandoned this position. Instead, Marx emphasised in Capital that the needs of the labourer were relative, and included “a moral and historical element”. Similarly, in the unpublished Resultate Marx wrote:

 

The minimum wage of the slave appears as a constant magnitude, independent of his labour. For the free labourer this value of his labour power and the corresponding average wage are not predestined by the limits determined by his sheer physical needs, independently of his own labour. It is here like the value of all commodities, a more or less constant average for the class; but it does not exist in this immediate reality for the individual labourer whose wage may stay above or below this minimum.

 

 

Marx has no subsistence theory of wages, but he does speak of the “absolute impoverishment” of the labourers under capitalism. Wage labour signifies the “absolute poverty” of the labourer. In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Marx says “labour power [is]… absolute poverty not as penury but as total exclusion from the objective wealth”.

 

The second point that Marx makes on the wage clearly shows his fundamental difference with bourgeois political economy.

 

Marx argues that the wage is not what it appears to be, the value or price of labour. It is a masked form of the value or price of labour power. “Thereby,” writes Marx,

 

the whole hitherto existing bourgeois conception of wage as well as the criticism directed against it was once and for all thrown overboard and it was clearly shown that the wage labourer is permitted to work for his living, that is to live in so far as he works gratis a certain time for the capitalist; that the whole capitalist system of production revolves around the prolongation of this unpaid labour through the extension of the working day or through the development of productivity, intensity of labour etc. and that the system of wage labour is a system of slavery and, indeed, a slavery which becomes more severe to the same extent as the social productive powers develop, whether the labourer receives a higher or a lower wage.

 

 

Marx restates here what he had written in Capital, Volume I (“On the transformation of value, the price of labour power into wages”). There he had shown the distinction between the value and price of labour power. He added there that it had taken a long time for the world history to decipher the secret of wage, which was Marx’s own achievement. This is why he is so angry that the Gotha Programme backslides from his result: “And after this understanding has gained more and more ground in our party, some return to Lassalle’s dogma although they must have known that Lassalle did not know what wages were”. Wages are not the same as remuneration! Roman army soldiers were given regular money payments and additional benefits, such as salt (hence salary.) They did not earn a wage as they did not work for capital. They were not wage workers for capital. Neither is a partner in a contemporary solicitors’ firm who receives a salary.

 

The wage labourer is permitted to work for his living… in so far as he works gratis a certain time for the capitalist.

 

 

Capital and wages are mirror concepts. Of course, in advanced capitalism the factory is the form of social organisation that has become normative. Hospitals and schools are run just as thought they were factories. The pay arrangement of the factory, wages, has become normative, too, hiding the real nature of wage labour. Above all, commodity producing wage labour is abstract social labour:

 

individual labour must present itself as abstract, general social labour only through its alienation. (6)

 

 

In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Marx demands the end of the state itself along with the classes at the end of the “revolutionary transformation period”. In The Civil War in France, Marx argued:

 

[The] Commune, which breaks with the modern state power, has been mistaken for a reproduction of the medieval Communes; [it] has been mistaken for an attempt to break up into the federation of small states; the antagonism of the Commune against the state power has been mistaken for an exaggerated form of the ancient struggle against over-centralization.

Its true secret was this: It was essentially a working class government, the product of the struggle of the producing against the appropriating class, the political form at last discovered under which to work out the economical emancipation of labour… The political rule of the producer cannot co-exist with the perpetuation of his social slavery. The Commune was therefore to serve as a lever for uprooting the economical foundation upon which rests the existence of classes, and therefore of class rule. With labour emancipated, every man becomes a working man, and productive labour ceases to be a class attribute.

… the Commune intended to abolish that class property which makes the labour of the many the wealth of the few. It aimed at the expropriation of the expropriators. It wanted to make individual property a truth by transforming the means of production, land, and capital, now chiefly the means of enslaving and exploiting labour, into mere instruments of free and associated labour. But this is communism, “impossible” communism! (7)

 

 

This might have been the beginning of the new society. This was the possibility of a way forward, a practical alternative to bourgeois rule. That alternative was direct government by workers themselves through a system of councils composed of directly elected and recallable delegates.

 

Of course, it was not as the Commune crashed to a bloody defeat at the hands of the French state. But Marx could see that, whatever “bourgeois right” remains in the sphere of distribution, it did not require a state to enforce it. Marx envisaged society itself distributing not only the labour tokens among its members, but also the total social labour time among the branches of production. That became his vision because that is what he saw beginning in Paris. The point is, what is capitalism? It is built on the separation of individuals from society’s control. They can then dominate it by seizing the means of production, thus creating the class of workers. Whether the individual owners are called Microsoft, Citibank, LandSecurities or the British Government, they are there to seize the social surplus (alienated labour).

 

Marx’s communism is often misunderstood. Even Korsch wrote:

 

Marx here fundamentally clarifies the real theoretical and pract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present and future ‘society’ and the (present and future) ‘State’. (8)

 

 

The only way forward is the abolition of the key institutions of capitalist society: the state (to be replaced by democratic workers bodies) and wage labour and capital (by co-operative and socially directed labour).

 

―R

(1) Paresh Chattopadhyay: A Manifesto of Emancipation: Marx’s ‘Marginal Notes’ 125 Years Later .

 

(2) Scott Meikle: Was Marx an Economist? .

 

(3) Collected Works, Volume 3, pp271-2, 273, 274-5, 278, 279, 279-80.

 

(4) Clarke, S. (1991): Marx, Marginalism and Modern Sociology: From Adam Smith to Max Weber, London: Palgrave Macmillan.

 

(5) 1962a: 198-99.

 

(6) K Marx, Theories of Surplus Value, Volume 2, London 1969, p504.

 

(7) marxists.org .

 

(8) Karl Korsch: Marxism and Philosophy, marxists.org .

 

 

<출처>   Revolutionary Perspectives #37  2005-11-01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5-11-01/the-communist-manifesto-of-1875-the-critique-of-the-gotha-progra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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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s on parasitism (운동의 기생층에 대한 이론)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기생충(패러사이티즘)같은 부류들(종파주의, 개인주의, 기회주의, 모험주의, 반역주의)의 찬란한 역사와 그 전통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경고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철퇴!

 

 

Theses on parasitism

 

 

 

1) Throughout its history, the workers’ movement has had to deal with the penetration into its ranks of alien ideologies, coming either from the ruling class or from the petty bourgeoisie. This penetration has taken a number of forms within working class organisations. Among the most widespread and best-known we can point to:

 

  • sectarianism
  • individualism
  • opportunism
  • adventurism
  • putschism

 

2) Sectarianism is the typical expression of a petty bourgeois conception of organisation. It reflects the petty-bourgeois mindset of wanting to be king of your own little castle, and it manifests itself in the tendency to place the particular interests and concepts of one organisation above those of the movement as a whole. In the sectarian vision, the organisation is “all alone in the world” and it displays a regal disdain towards all the other organisations that belong to the proletarian camp, seen as “rivals” or even “enemies”. As it feels threatened by the latter, the sectarian organisation in general refuses to engage in debate and polemic with them. It prefers to take refuge in its “splendid isolation”, acting as though the others did not exist, or else obstinately putting forward what distinguishes itself from the others without taking into account what it has in common with them.

 

 

3) Individualism can also derive from petty bourgeois influences, or from directly bourgeois ones. From the ruling class it takes up the official ideology which sees individuals as the subject of history, which glorifies the “self-made man” and justifies the “struggle of each against all”. However, it is above all through the vehicle of the petty bourgeoisie that it penetrates into the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t, particularly through newly proletarianised elements coming from strata like the peasantry and the artisans (this was notably the case last century) or from the intellectual and student milieu (this has been especially true since the historic resurgence of the working class at the end of the 60s). Individualism expresses itself mainly through the tendency :

  • to see the organisation not as a collective whole but as a sum of individuals in which relations between persons take precedence over political and statutory relations;
  • to advance one’s own “desires” and “interests” as opposed to the needs of the organisation;
  • consequently, to resist the discipline necessary within the organisation;
  • to look for “personal realisation” through militant activity;
  • to adopt an attitude of constantly contesting the central organs, which are accused of trying to crush individuality; the complementary attitude is that of looking for “promotion” through gaining a place in these organs;
  • more generally, to adhere to an élitist view of the organisation in which you aspire to be one of the “first class militants” while developing a contemptuous attitude to those seen as “second class militants”.

 

4) Opportunism, which has historically constituted the most serious danger for the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t, is another expression of the penetration of petty bourgeois ideology. One of its motor-forces is impatience, which expresses the viewpoint of a social stratum doomed to impotence, having no future on the scale of history. Its other motor is the tendency to try to conciliate between the interests and positions of the two major classes in society, the proletariat and the bourgeoisie. From this starting point, opportunism distinguishes itself by the fact that it tends to sacrifice the general and historic interests of the proletariat to the illusion of immediate and circumstantial “successes”. But since for the working class there is no opposition between its struggle inside capitalism and its historical combat for the abolition of the system, the politics of opportunism in the end lead to sacrificing the immediate interests of the proletariat as well, in particular by pushing the class to compromise with the interests and positions of the bourgeoisie. In the final analysis, at crucial historical moments, such as imperialist war and proletarian revolution, opportunist political currents are led to join the enemy camp, as was the case with the majority of the Socialist parties during World War I, and with the Communist parties on the eve of World War II.

 

 

5) Adventurism (or putschism[1]) presents itself as the opposite of opportunism. Under cover of “intransigence” and “radicalism” it declares itself to be ready at all times to launch the attack on the bourgeoisie, to enter into the “decisive” combat when the conditions for such a combat don’t yet exist for the proletariat. And in so doing it does not hesitate to qualify as opportunist and conciliationist, even as “traitorous”, the authentically proletarian and marxist current which is concerned to prevent the working class from being drawn into a struggle which would be lost in advance. In reality, deriving from the same source as opportunism - petty bourgeois impatience - it has frequently converged with the latter. History is rich in examples in which opportunist currents have supported putschist currents or have been converted to putschist radicalism. Thus, at the beginning of the century, the right wing of German Social Democracy, against the opposition of its left wing represented notably by Rosa Luxemburg, gave its support to the Russian Socialist-Revolutionaries, who were adepts of terrorism. Similarly, in January 1919, when even Rosa Luxemburg had pronounced against an insurrection by the Berlin workers, following the provocation by the Social Democratic government, the Independents, who had only just left this government themselves, rushed into an insurrection which ended in a massacre of thousands of workers, including the main communist leaders.

 

 

6) The combat against the penetration of bourgeois and petty bourgeois ideology into the organisations of the class, as well as against its different manifestations, is a permanent responsibility for revolutionaries. In fact, it can even be said that it is the main combat which the authentically proletarian and revolutionary currents have had to wage within the organisations of the class, to the extent that it is much more difficult than the direct fight against the declared and official forces of the bourgeoisie. The fight against sects and sectarianism was one of the first waged by Marx and Engels, particularly within the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IWA). Similarly, the fight against individualism, notably in the form of anarchism, mobilised not only the latter but also the marxist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particularly Luxemburg and Lenin). The combat against opportunism has certainly been the most constant and systematic carried out by the revolutionary current since its origins:

  • against Lassallean “state socialism” in the 1860s and 1870s;
  • against all the Bernstein-type revisionists and reformists at the turn of the century;
  • against Menshevism;
  • against Kautsky’s centrism on immediately before, during, and after World War I;
  • against the degeneration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and the Communist parties throughout the 20s and at the beginning of the 30s;
  • against the degeneration of the Trotskyist current during the 1930s.

The fight against putschism has not been as constant a necessity as the struggle against opportunism. However, it has been waged since the first steps of the workers’ movement (against the immediatist Willich-Schapper tendency in the Communist League, against the Bakuninist adventures over the Lyon “Commune” in 1870 and the civil war in Spain in 1873). Similarly, it was particularly important during the revolutionary wave of 1917-23: in particular, it was largely the Bolsheviks’ ability to carry out this struggle in July 1917 that allowed the October revolution to take place.

 

 

7) The preceding examples show that the impact of these different manifestations of the penetration of alien ideologies depends closely on:

  • the historic period;
  • the moment in th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 the responsibilities of the class in this or that circumstance.

For example, one of the most important expressions of the penetration of petty bourgeois ideology, and the one most explicitly fought against, opportunism, even if it is a permanent feature in the history of the workers’ movement, found its terrain par excellence in the partie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during a period:

  • in which illusions in conciliation with the bourgeoisie flourished because of the prosperity of capitalism and the real advances in the living conditions of the working class;
  • in which the existence of mass parties gave credence to the idea that mere pressure from these parties could gradually lead capitalism to transform itself into socialism.

Similarly, the penetration of opportunism into the parties of the Third International was strongly determined by the ebb in the revolutionary wave. This encouraged the idea that it was possible to gain an audience in the working masses by making concessions to their illusions on questions like parliamentarism, trade unionism or the nature of the “Socialist” parties.

 

The importance of the historic moment to the different type of penetration of alien ideologies into the class is revealed even more clearly when it comes to sectarianism. This was particularly significant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workers’ movement, when the proletariat was only just emerging from the artisans and journeymen’s societies with their rituals and trade secrets. Again, it went through a major revival in the depth of the counter-revolution with the Bordigist current, which saw withdrawing into its shell as an (obviously false) way of protecting itself from the threat of opportunism.

 

 

8) The phenomenon of political parasitism, which to a large extent is also the result of the penetration of alien ideologies into the working class, has not been accorded, within the history of the workers’ movement, the same amount of attention as other phenomena such as opportunism. This has been the case because parasitism has only significantly affected proletarian organisations in very specific moments in history. Opportunism, for example, constitutes a constant menace for proletarian organisations and it expresses itself above all when the latter are going through their greatest phases of development. By contrast, parasitism does not basically manifest itself at the time of the most important movements of the class. On the contrary, it is in a period of immaturity of the movement when the organisations of the class still have a weak impact and not very strong traditions that parasitism finds its most fertile soil. This is linked to the very nature of parasitism, which, to be effective, has to relate to elements looking for class positions but who find it hard to distinguish real revolutionary organisations from currents whose only reason for existing is to live at the expense of the former, to sabotage their activities, indeed to destroy them. At the same time, the phenomenon of parasitism, again by its nature, does not appear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development of the organisations of the class but when they have already been constituted and have proved that they really defend proletarian interests. These are indeed the elements which we find in the first historic manifestation of political parasitism, the Alliance of Socialist Democracy, which sought to sabotage the combat of the IWA and to destroy it.

 

 

9) It was Marx and Engels who first identified the threat of parasitism to proletarian organisations:

 

It is high time to put an end, once and for all, to the internal conflicts provoked daily in our Association by the presence of this parasitic body. These quarrels only serve to waste energies which should be used to fight against the bourgeois regime. By paralysing the activity of the International against the enemies of the working class, the Alliance admirably serves the bourgeoisies and the governments" (Engels, “The General Council to all the members of the International” - a warning against Bakunin’s Alliance).

 

Thus the notion of political parasitism is not at all an “ICC invention”. It was the IWA which was the first to be confronted with this threat against the proletarian movement, which it identified and fought. It was the IWA, beginning with Marx and Engels, who already characterised the parasites as politicised elements who, while claiming to adhere to the programme and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t, concentrated their efforts on the combat not against the ruling class but against the organisations of the revolutionary class. The essence of their activity was to denigrate and manoeuvre against the communist camp, even if they claimed to belong to it and to serve it [2]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the class struggle, we are confronted with a secret conspiracy at the heart of the working class whose aim is to destroy not the existing regime of exploitation, but the very Association which represents the bitterest enemy of this regime” (Engels, Report to the Hague Congress on the Alliance).

 

 

10) To the extent that the workers’ movement, in the shape of the IWA, possesses a rich experience of struggle against parasitism, it is of the utmost importance, if we are to face up to the present-day parasitic offensives and arm ourselves against them, to recall the principal lessons of this past struggle. These lessons concern a whole series of aspects:

  • the moment of parasitism’s appearance;
  • its specificities with regard to other dangers facing proletarian organisations;
  • its recruiting ground;
  • its methods;
  • the most effective means of fighting it.

In fact, as we shall see, on all these aspects there is a striking similarity between the situation facing the proletarian milieu today and the one confronted by the IWA.

 

11) Although it affected a working class which was still historically inexperienced, parasitism only appears historically as an enemy of the workers’ movement when the latter has reached a certain level of maturity, having gone beyond the infantile sectarian stage.

 

The first phase of the struggle of the proletariat was characterised by the movement of the sects. This was justified in a period in which the proletariat had not developed sufficiently to act as a class” (Marx/Engels).

It was the appearance of marxism, the maturation of proletarian class consciousness and the capacity of the class and its vanguard to organise the struggle which set the workers’ movement on a healthy foundation:

 

From this moment on, when the movement of the working class had become a reality, the fantastic utopias were called upon to disappear....because the place of these utopias had been taken by a clear understanding of the historical conditions of this movement and because the forces of a combat organisation of the working class were more and more being gathered together” (Marx, first draft of The Civil War in France).

 

In fact, parasitism appeared historically in response to the foundation of the First International, which Engels described as “the means to progressively dissolve and absorb all the different little sects” (Engels, letter to Kelly/Vischnevetsky).

 

In other words, the International was the instrument that obliged the different components of the workers’ movement to embark upon a collective and public process of clarification, and to submit to a unified, impersonal, proletarian organisational discipline. It was in resistance to this international “dissolution and absorption” of all these non-proletarian programmatic and organisational particularities and autonomies that parasitism first declared war on the revolutionary movement:

 

The sects, which at the beginning had been a lever to the movement, became an obstacle to as soon as they were no longer on the order of the day; they then became reactionary. The proof of this is the sects in France and Britain, and recently the Lassalleans in Germany, where after years of supporting the organisation of the proletariat, they have become mere instruments of the police” (Marx/Engels, The so-called split in the International).

 

 

12) It is this dynamic framework of analysis developed by the First International that explains why the present period, that of the 80s and above all of the 90s, has witnessed a development of parasitism unprecedented since the time of the Alliance and the Lassallean current. For today we are confronted with all sorts of informal regroupments, often acting in the shadows, claiming to belong to the camp of the communist left, but actually devoting their energies to fighting the existing marxist organisations rather than the bourgeois regime. As in the time of Marx and Engels, the function of this reactionary parasitic wave is to sabotage the development of open debate and proletarian clarification, and to prevent the establishment of rules of behaviour that link all members of the proletarian camp. The existence:

  • of an international marxist current like the ICC, which rejects sectarianism and monolithism;
  • of public polemics between revolutionary organisations;
  • of the current debate about marxist organisational principles and the defence of the revolutionary milieu;
  • of new revolutionary elements searching for the real marxist organisational and programmatic traditions,

are among the most important elements presently provoking the hatred and offensive of political parasitism.

 

As we saw with the experience of the IWA, it is only in periods when the workers’ movement leaves behind a stage of basic immaturity and reaches a qualitatively superior level, a specifically communist level, that parasitism becomes its main opponent. In the current period, this immaturity is not the product of the youth of the workers’ movement as a whole, as in the days of the IWA, but is above all the result of the 50 years of counter-revolution which followed the defeat of the revolutionary wave of 1917-23. Today, it is this break in organic continuity with the traditions of past generations of revolutionaries which above all else explains why there is such a weight of petty bourgeois anti-organisational reflexes and behaviour among so many of the elements who lay claim to marxism and the communist left.

 

 

13) There are a whole series of similarities between the conditions and characteristics of the emergence of parasitism in the days of the IWA, and of parasitism today. However, we should also note an important difference between the two periods: last century, parasitism largely took the form of a structured and centralised organisation within the class’ organisation, whereas today its form is essentially that of little groups, or even of “non-organised” elements (though the two often work together). This difference does not call into question the fundamental identity of the parasitic phenomenon in the two periods, which can be explained essentially by the following facts:

  • the Alliance developed in part on the basis of the vestiges of the sects of the preceding period: it adopted their structure, tightly centralised around a “prophet”, and their taste for clandestine organisation; by contrast, one of the bases for today’s parasitism is the remnants of the student rebellion which weighed on the historic recovery of proletarian struggle at the end of the 1960s, and especially in 1968, along with all its baggage of individualism and calling into question organisation and centralisation, which supposedly “stifled individuals”; [3]
  • while the IWA existed, there was only one organisation that regrouped the whole proletarian movement, and the currents whose aim was to destroy it, while still claiming to be fighting the same struggle against the bourgeoisie, had to act within it; by contrast, at a moment in history where the elements who represent the revolutionary struggle of the working class are dispersed in the different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n milieu, each parasitic group can put itself forward as representing another “component” of the milieu, along with the other groups.

In this sense, it is important to say clearly that the present dispersal of the proletarian political milieu, and any sectarian behaviour which prevents or hinders an effort towards the regroupment of fraternal debate between its different components, plays into the hands of parasitism.

 

14) Marxism, following the experience of the IWA, has pointed out the differences between parasitism and the other manifestations of the penetration of alien ideologies into the organisations of the class. For example, opportunism, even if it can initially manifest itself in an organisational form (as in the case of the Mensheviks in 1903) fundamentally attacks the programme of the proletarian organisation. Parasitism, on the other hand, if it is to carry out its role, does not a priori attack the programme. It carries out its activity essentially on the organisational terrain, even if, in order to “recruit”, it is often led to put into question certain aspects of the programme. Thus at the Basle Congress of 1869, we saw Bakunin launch his battle cry of “the abolition of the right of inheritance”, because he knew that he could gather numerous delegates around this empty, demagogic demand, given that many illusions existed on this question in the International. But his real aim in doing so was to overturn the General Council influenced by Marx, and which fought against this demand, in order to constitute a General Council devoted to himself.[4] Because parasitism directly attacks the organisational structure of proletarian formations, it represents, when historical conditions permit its appearance, a much more immediate danger than opportunism. These two expressions of the penetration of alien ideologies are a mortal danger for proletarian organisations. Opportunism leads to their death as instruments of the working class through their passage into the bourgeois camp, but to the extent that opportunism above all attacks the programme, it only reaches this end through a whole process in which the revolutionary current, the left, is able to develop within the organisation a struggle for the defence of the programme.[5] By contrast, to the extent that it is the organisation itself, as a structure, which is threatened by parasitism, this leaves the proletarian current much less time to organise its defence. The example of the IWA is significant in this respect: the whole of the struggle against the Alliance lasted no more than 4 years, between 1868 when Bakunin entered the International and 1872 when he was expelled at the Hague Congress. This simply underlines one thing: the necessity for the proletarian current to attack parasitism head on, not to wait until its already done its worst before launching the fight against it.

 

 

15) As we have seen, it is important to distinguish parasitism from other expressions of the class’ penetration by alien ideologies. However, one of parasitism’s characteristics is that it uses these other expressions. This springs from parasitism’s origins, which are also the result of the penetration of alien influences, but also from the fact that its approach - whose aim, in the final analysis, is the destruction of proletarian organisations - is not encumbered with principles or scruples. As we have seen, within the IWA and the workers’ movement of the day, the Alliance was distinguished by its ability to make use of the remnants of sectarianism, to use an opportunist approach (on the question of the right of inheritance, for example), and to launch into completely adventurist undertakings (the Lyon “Commune”, and the civil war of 1873 in Spain). Similarly, it was strongly founded on the individualism of a proletariat which had barely emerged from the artisan and peasant classes (especially in Spain and the Swiss Jura). The same characteristics are also to be found in parasitism today. We have already mentioned the role of individualism in the formation of parasitism, but it is worth pointing out that all the splits from the ICC which have since formed parasitic groups (GCI, CBG, EFICC), have been based on a sectarian approach, splitting prematurely and refusing to take the debate to a clear conclusion. Similarly, opportunism was one of the marks of the GCI, which accused the ICC (when still a “tendency” within the organisation) of not imposing sufficiently rigorous conditions on new candidates, only to turn to the most unprincipled recruitment, even modifying its programme to accommodate the fashionable leftist mystifications of the day (such as “Third Worldism”). The same opportunism was demonstrated by the CBG and the EFICC at the beginning of the 1990s, when they entered an incredible round of bargaining, in an attempt to begin a process of regroupment. Finally, as far as adventurism-putschism is concerned, it is remarkable that, even if we leave aside the GCI’s softness for terrorism, all these groups have systematically plunged head first into the traps that the bourgeoisie lays for the class, calling on the workers to develop their struggle when the ground had been mined in advance by the ruling class and the unions, particularly, for example, during the autumn of 1995 in France.

 

 

16) The experience of the IWA has revealed the difference that can exist between parasitism and the swamp (even if the latter term was not used at the time). Marxism defines the swamp as a political zone divided between the positions of the working class, and those of the bourgeoisie and petty-bourgeoisie. Such areas can emerge as a first step in a process of coming to consciousness by sectors of the class, or of breaking from bourgeois positions. They can also contain the remnants of currents which at a certain point did express a real effort by the class to come to consciousness, but which have proved unable to evolve with the new conditions and experience of the proletarian struggle. The groups of the swamp can rarely maintain a stable existence. Torn between the positions of the proletariat, and those of other classes, they either fully adopt the positions of the proletariat, or go over to those of the bourgeoisie, or end up split between the two. Such a process of decantation is generally given greater impetus by the great events that confront the working class (in the 20th century, these have been essentially imperialist war and proletarian revolution), and the general direction of this decantation is largely dependent on the evolution of the balance of forces between bourgeoisie and proletariat. Faced with these currents, the attitude adopted by the left of the workers’ movement has never been to consider these groups completely lost for the workers’ movement, but to give an impetus to the clarification within them, to allow the clearest elements to join the combat while firmly denouncing those who go over to the enemy class.

 

 

17) Within the IWA, there existed alongside the vanguard marxist current, currents which we could define as belonging to the swamp. Such was the case, for example, with certain Proudhonist currents which in the first part of the 19th century had formed a real vanguard of the French proletariat. By the time of the struggle against the parasitic Alliance, these groups were no longer a vanguard. Nonetheless, despite their confusions they were capable of participating in the struggle to save the International, notably during the Hague Congress. The attitude of the marxist current towards them was quite different from its attitude towards the Alliance. There was never any question of excluding them. On the contrary, it was important to involve them in the struggle against the Alliance, not only because of their weight within the International, but also because the struggle itself was an experience which could help these currents to greater clarity. In practice, this combat confirmed the existence of a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swamp and parasitism: where as the former is traversed by a proletarian life which allows its best elements to join the revolutionary current, the latter’s fundamental vocation is to destroy the class organisation, and it is completely unable to evolve in this direction, even if some individuals who have been deceived by parasitism may be able to do so.

 

Today, it is equally important to distinguish between the currents of the swamp[6] and the parasitic currents. The groups of the proletarian milieu must try to help the former evolve towards marxist positions, and provoke a political clarification within them. Towards the latter, they must exercise the greatest severity, and denounce the sordid role that they play to the great profit of the bourgeoisie. This is all the more important, in that the confusions of the currents in the swamp are particularly vulnerable to the attacks of parasitism (particularly given their reticence towards organisation, as in the case of those that come from councilism).

 

 

18) Every penetration of alien ideology into proletarian organisations plays the game of the enemy class. This is particularly evident when it comes to parasitism whose aim is the destruction of these organisations (whether this is openly avowed or not). Here again, the IWA was particularly clear in affirming that even if he was not an agent of the capitalist state, Bakunin served the interests of the state far better than any agent could have done. This does not at all signify that parasitism in itself represents a sector of the political apparatus of the ruling class like the bourgeois currents of the extreme left like Trotskyism today. In fact, in the eyes of Marx and Engels, even the best known parasites of their day, Bakunin and Lassalle, were not seen as political representatives of the bourgeois class. This analysis derived from their understanding that parasitism as such does not constitute a fraction of the bourgeoisie, having neither a programme or orientation for the national capital, nor a particular place in the state organs for controlling the struggle of the working class. This said, bearing in mind what a service parasitism renders to the bourgeoisie, the latter accords it a particular solicitude. This expresses itself in three main forms:

  • a political support to the activities of parasitism; thus, the European bourgeois press took up the cause of the Alliance and Bakunin in their conflict with the General Council;
  • infiltration and manoeuvres of state agents within parasitic currents; thus, the Lyon section of the Alliance was clearly led by two Bonapartist agents, Richard and Blanc;
  • the direct creation by sectors of the bourgeoisie of political currents whose vocation is to parasite on the proletarian organisation: thus the Mazzinists joined the International at its foundation while the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led by the Bonapartist agent Vogt) was, as Marx put it, “formed in opposition to the International” and tried, in 1868, to “ally” itself with it.

Here it should be noted that while the majority of parasitic currents advertise a proletarian programme, the latter is not indispensable for an organisation in carrying out the functions of political parasitism, which is not distinguished by the positions it defends but by its destructive attitude towards the real organisations of the working class.

 

 

19) In the present period, when proletarian organisations don’t have the notoriety that the IWA had in its day, official bourgeois propaganda does not on the whole concern itself with providing support to the parasitic groups and elements (which in any case would have the disadvantage of discrediting them in front of the elements who are searching for communist positions). It should however be noted that in the bourgeois campaigns around “negationism” specifically aimed at the communist left, an important place is reserved for groups like the ex-Mouvement Communiste, La Banquise, etc, who are presented as representatives of the communist left, when in fact they have a strong parasitic colouring.

 

On the other hand, it was indeed a state agent, Chénier,[7] who played a key role in the formation within the ICC of a “secret tendency” which, having provoked the loss of half the section in Britain, gave rise to one of the most typical parasitic grouplets, the CBG. Neither should we exclude the possibility that certain elements who were at the origin of the 1978 split from the ICC which gave rise to the GCI were also agents of the state or leftist organisations (as some of those who seceded at the time now think).

 

Finally, the efforts of bourgeois currents to infiltrate the proletarian milieu and carry out a parasitic function there can be seen clearly with the activities of the Spanish leftist group Hilo Rojo (which for years had been trying to get into the good books of the proletarian milieu before launching an all-out attack on it), or those of the OCI (an Italian leftist group certain of whose elements have come from Bordigism and which today presents itself as the “true heir” of this current).

 

 

20) The penetration of state agents into the parasitic circles is obviously facilitated by the very nature of parasitism, whose fundamental calling is to combat the real proletarian organisations. Indeed, the fact that parasitism recruits among those elements who reject the discipline of a class organisation, who have nothing but contempt for its statutory functioning, who rejoice in informalism and personal loyalties rather than loyalty to the organisation, leaves the door of the parasitic milieu wide open to infiltration of this type. These doors are equally wide open to those involuntary auxiliaries of the capitalist state, the adventurers, those declassed elements who seek to place the workers’ movement in the service of their own ambitions, of their quest for a notoriety and power denied to them by bourgeois society. In the IWA, the example of Bakunin is obviously the best known in this regard. Marx and his comrades never claimed that Bakunin was a direct agent of the state. But this didn’t stop them from identifying and denouncing not only the services he involuntarily rendered to the ruling class, but also the approach and class origins of adventurers within proletarian organisations and the role they play as leaders of parasitism. Thus, with regard to the actions of Bakunin’s secret Alliance within the IWA, they wrote that the “declassed elements” had been able “to infiltrate it and establish secret organisations at its very heart”. The same approach was taken up by Bebel in the case of Schweitzer, the leader of the Lassallean parasitic current: “he joined the movement as soon as he saw that there was no future for him within the bourgeoisie, that for him, whose mode of life had declassed him very early on, the only hope was to play a role in the workers’ movement in keeping with his ambition and his capacities” (Bebel: Autobiography).

 

 

21) This being said, even if parasitic currents are often led by declassed adventurers (when not by direct state agents), they do not only recruit in this category. We can also find there elements who at the outset are animated by a revolutionary will and who don’t set out to destroy the organisation but who:

  • impregnated by petty bourgeois ideology, impatient, individualist, elitist, preferring affinity relations to political relations;
  • “disappointed” by the working class which doesn’t move ahead quickly enough for them;
  • finding it hard to put up with organisational discipline, frustrated at not finding in militant activity the “satisfaction” they hoped for or the “posts” they aspired to,

end up developing a deep hostility towards the proletarian organisation, even if this hostility is masked by “militant” pretensions.

 

In the IWA, a certain number of members of the General Council, such as Eccarius, Jung and Hales, fall into this category.

 

Moreover, parasitism is capable of recruiting sincere and militant proletarian elements who, affected by petty bourgeois weaknesses or through lack of experience, allow themselves to be deceived or manipulated by openly anti-proletarian elements. In the IWA, this was typically the case with most of the workers who were part of the Alliance in Spain.

 

 

22) As far as the ICC is concerned, most of the splits which led to the formation of parasitic groups were very clearly made up of elements animated by the petty bourgeois approach described above. The impetus given by intellectuals seeking “recognition”, frustrated by not receiving it from the organisation, impatience because they did not manage to convince other militants of the “correctness” of their positions or at the slow pace of the development of the class struggle, sensitivity to criticisms of their positions or their behaviour, the rejection of centralisation which they felt to be “Stalinism”, were the motive force behind the formation of the “tendencies” which led to the formation of more or less ephemeral parasitic groups, and to the desertions which fuelled informal parasitism. In succession, the 1979 “tendency” which gave birth to the “Groupe Communiste Internationaliste”, the Chénier tendency, one of whose avatars was the defunct “Communist Bulletin Group”, the McIntosh-JA-ML “tendency” (largely made up of members of the central organ of the ICC) which gave rise to the EFICC, (now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are typical illustrations of this phenomenon. In these episodes it could also be seen that elements who undoubtedly had proletarian concerns allowed themselves to be led astray by personal loyalty towards the leading members of these “tendencies” which were not really tendencies but clans as the ICC has already defined them. The fact that all these parasitic splits from our organisation first appeared in the form of internal clans is obviously no accident. In reality, there is a great similarity between the organisational behaviour that lies at the basis of the formation of clans and those which fuel parasitism: individualism, statutory frameworks seen as a constraint, frustration with militant activity, loyalty towards personalities to the detriment of loyalty towards the organisation, the influence of “gurus” (elements seeking to have a personal hold over other militants).

 

In fact, what the formation of clans already represents - the destruction of the organisational tissue - finds its ultimate expression in parasitism: the will to destroy proletarian organisations themselves.[8]

 

 

23) The heterogeneity which is one of the marks of parasitism, since it counts in its ranks both relatively sincere elements and those animated by a hatred of the proletarian organisation, even political adventurers or direct state agents, makes it the terrain par excellence for the secret policies of those elements who are most hostile to proletarian concerns, enabling them to drag the more sincere elements behind them. The presence of these “sincere” elements, especially those who have dedicated real efforts towards the construction of the organisation, is actually one of the preconditions for the success of parasitism since its lends credit and authority to its false “proletarian” passport (just as trade unionism needs its “sincere and devoted” militants in order to carry out its role). At the same time, parasitism, and its leading elements, can only establish control over a large part of their troops by hiding their real aims. Thus, the Alliance in the IWA was made up of several circles around “citizen B”, and there were secret statutes reserved for the “initiated”. “The Alliance divides its members into two castes, the initiated and the non-initiated, aristocrats and plebeians, the latter being condemned to be directed by the former via an organisation whose very existence is unknown to them” (Engels, Report on the Alliance). Today, parasitism acts in the same way and it is rare for the parasitic groups, and particularly the adventurers or frustrated intellectuals who animate them, to openly parade their programmme. In this sense, “Mouvement Communiste”,[9] which clearly says that the left communist milieu has to be destroyed, is both a caricature of parasitism and a mouthpiece for its real underlying aims.

 

 

24) The methods used by the First International and the Eisenachers against parasitism have served as a model for those used by the ICC today. In the public documents of the congresses, in the press, in open meetings and even in parliament, the manoeuvres of parasitism were denounced. Again and again, it was shown that it was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who stood behind these attacks and that their goal was the destruction of marxism. The work of the Hague Congress as well as Bebel’s famous speeches against the secret politics of Bismarck and Schweitzer revealed the capacity of the workers’ movement to give a global explanation for these manoeuvres while denouncing them in an extremely concrete manner. Among the most important reasons given by the First International for publishing the revelations about Bakunin, we can point above all to the following:

  • openly unmasking them is the only way to rid the workers’ movement of such methods. Only if all the members of the organisation became conscious of these questions would it be possible to prevent such things happening in the future;
  • it was necessary to publicly denounce Bakunin’s Alliance in order to dissuade those who were using the same methods. Marx and Engels knew quite well that other parasites were still carrying out secret activities inside and outside the organisation, such as the adepts of Pyat;
  • only a public debate could break Bakunin’s control over many of his victims and encourage them to speak out. To this end, Bakunin’s methods of manipulation were revealed above all by the publication of the Revolutionary Catechism;
  • a public denunciation was indispensable to prevent the International being associated with such practices. Thus, the decision to expel Bakunin from the International was taken after the arrival of the news about the Nechayev affair, with the danger that it would be used against the International;
  • the lessons of this struggle had a historical importance, not only for the International but for the future of the workers’ movement. It was in this spirit that years later Bebel devoted 80 pages of his autobiography to the struggle against Lassalle and Schweitzer.

But at the centre of this policy lay the necessity to unmask political adventurers like Bakunin and Schweitzer.

It cannot be emphasized often enough that such an attitude characterised Marx’s whole political life, as we can see in his denunciation of the acolytes of Lord Palmerston or Herr Vogt. He understood very well that sweeping such affairs under the carpet could only benefit the ruling class.

 

 

25) It is this great tradition that the ICC is continuing with its articles on its own internal struggles, its polemics against parasitism, the public announcement of the unanimous exclusion of one of its members by the 11th international congress, the publication of articles on freemasonry, etc. In particular, the ICC’s defence of the tradition of the court of honour in the case of elements who have lost the confidence of revolutionary organisations, in order to defend the milieu as a whole: all this partakes of exactly the same spirit as that of the Hague Congress and the commissions of inquiry of the workers’ parties in Russia towards people suspected of being agents provocateurs.

 

The storm of protest and accusations broadcast by the bourgeois press following the publication of the principal results of the inquiry into the Alliance shows that it is this rigorous method of public denunciation that scares the bourgeoisie more than anything else. Similarly, the way that the opportunist leadership of the Second International, in the years prior to 1914, systematically ignored the famous chapter “Marx against Bakunin” in the history of the workers’ movement shows the same fear on the part of all defenders of petty bourgeois organisational conceptions.

 

26) Towards the petty bourgeois infantry of parasitism, the policy of the workers’ movement has been to make it disappear from the political scene. Here the denunciation of the absurdity of the positions and political activities of the parasites plays an important role. Thus Engels, in his celebrated article “The Bakuninists at work” (during the civil war in Spain) backed up and completed the revelations on the organisational behaviour of the Alliance.

 

Today, the ICC has adopted the same policy by fighting against the adepts of the different organised and “unorganised” centres of the parasitic network.

 

With regard to the more or less proletarian elements, more or less taken in by parasitism, the policy of marxism has always been quite different. It has always been to drive a wedge between these elements and the parasitic leadership which is directed and encouraged by the bourgeoisie, showing that the first are the victims of the second. The aim of this policy is always to isolate the parasitic leadership by drawing the victims away from its sphere of influence. Towards these “victims”, marxism has always denounced their attitude and their activities while at the same time struggling to revive their confidence in the organisation and the milieu. The work of Engels and Lafargue towards the Spanish section of the First International is a perfect concretisation of this.

 

The ICC has also followed this tradition by organising confrontations with parasitism in order to win back the elements who have been deceived. Bebel and Liebknecht’s denunication of Schweitzer as an agent of Bismarck at a mass meeting of the Lassallean party at Wuppertal is a well known example of this attitude.

 

 

27) The fact that the tradition of struggle against parasitism has been lost since the great combats within the IWA, owing to:

  • the fact that parasitism did not represent a major danger for proletarian organisations after the IWA;
  • the length and depth of the counter-revolution.

This constitutes a major weakness for the proletarian political milieu faced with the parasitic offensive. This danger is all the more serious as a result of the ideological pressure of the decomposition of capitalism, a pressure which, as the ICC has shown, facilitates the penetration of the most extreme forms of petty bourgeois ideology and creates an ideal terrain for the growth of parasitism.[10] It is thus a very important responsibility of the proletarian milieu to engage itself in a determined combat against this scourge. To a certain extent, the capacity of revolutionary currents to identify and combat parasitism will be an indication of their capacity to combat the other dangers which weigh on the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t, particularly the most permanent danger, opportunism.

 

In fact, to the extent that opportunism and parasitism both come from the same source (the penetration of petty bourgeois ideology) and represent an attack against the principles of proletarian organisation (programmatic principles for the first, organisational principles for the second), it is quite natural for them to tolerate each other and to converge. Thus it was not at all a paradox that in the IWA we saw the “anti-statist” Bakuninists hand in hand with the “statist” Lassalleans (who represented a variety of opportunism). One of the consequences of this is that it is basically up to the left currents of proletarian organisations to wage the combat against parasitism. In the IWA, it was directly Marx and Engels and their tendency who assumed the fight against the Alliance. It was no accident that the main documents produced during this combat bore their signature (the circular of 5 March 1872, The so-called split in the International was written by Marx and Engels; the 1873 report on “The Alliance for Socialist Democracy and the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by Marx, Engels, Lafargue and Utin).

 

What was valid in the time of the IWA remains valid today. The struggle against parasitism constitutes one of the essential responsibilities of the communist left and is part of the tradition of its bitter struggles against opportunism. Today it is one of the basic components in the preparation of the party of tomorrow, and in fact is one of the determining factors both of the moment when the party can arise and its capacity to play its role in the decisive battles of the proletariat.

 

 

 

Footnotes
 

[1] It is obviously necessary to distinguish the two meanings that can be given to the term “adventurism”. On the one hand, there is the adventurism of certain declassed elements, political adventurers, who have failed to play a role within the ruling class. Realising that the proletariat is called to occupy a vital place in society’s life and in history, they try to win a recognition from the working class, or from its organisations, which will allow them to play that personal role which the bourgeoisie has refused them. The aim of these elements in turning towards the class struggle is not to put themselves in its service, but on the contrary to put the struggle in the service of their ambition. They seek notoriety by “going to the proletariat”, as others do by travelling round the world. On the other hand, the term adventurism also describes a political attitude which consists of launching into ill-considered action when the minimal condition for success - a sufficient maturity within the class - does not exist. Such an attitude may come from political adventurers looking for thrills, but it can just as well be adopted by utterly sincere workers and militants, devoted and disinterested, but lacking in political judgement, or eaten up with impatience.

 

[2] Marx and Engels where not alone in identifying and describing political parasitism. For example,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 great marxist theoretician like Antonio Labriola adopted the same analysis of parasitism: “In this first type of our present parties [he is writing here about the Communist League], in what we might call the first cell of our complex, elastic, and highly developed organism, there existed not only a consciousness of the mission to be accomplished by, but also the only appropriate forms and methods of association of, the first beginners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This was no longer a sect: that form was already outmoded. The immediate and fantastic domination of the individual had been done away with. The organisation was dominated by a discipline, whose source lay in experience and necessity, and in the doctrine which must be precisely the conscious reflection of this necessity. The same was true of the International, which only appeared authoritarian to those who tried and failed to impose their own authority on it. The same must and will be true in all the workers parties: and wherever this characteristic is not or cannot yet gain influence, a still elementary and confused proletarian agitation will engender nothing but illusions and a pretext for intrigues. And where this is not the case, then it will be a sect where the fanatic rubs shoulders with the madmen and the spy; it will be a repeat of the International Brotherhood, which latched on to the International like a parasite and discredited it (...) or else it will be a group of declassed and petty bourgeois malcontents who spend their time speculating about socialism, as they would about any other term politically in fashion” (Essai sur la conception matérialiste de l’histoire).

 

[3] This phenomenon was of course reinforced by the weight of councilism which, as the ICC has pointed out, is the price that the workers’ movement has paid, and will pay, for the grip of Stalinism during the period of counter-revolution.

 

[4] This of course is why, at this congress, Bakunin’s friends supported the decision to strengthen substantially the powers of the Central Council. Later, they were to demand that these did not go any further than the role of a “letter box”.

 

[5] The history of the workers’ movement has seen many of these long struggles undertaken by the Left. Amongst the most important, we can cite:

  • Rosa Luxemburg against Bernstein’s revisionism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 Lenin against the Mensheviks from 1903 onwards;
  • Luxemburg and Pannekoek against Kautsky on the question of the mass strike (1908-1911);
  • Luxemburg and Lenin in defence of internationalism (congresses of Stuttgart in 1907, Basle in 1912);
  • Pannekoek, Gorter, Bordiga, and all the militants on the left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not to mention Trotsky, up to a point), against the International’s degeneration.

[6] In our own epoch, the swamp is represented notably by the variations on the councilist current (like those which emerged with the class struggle at the end of the 1960s, and which will probably reappear in future periods of class struggle), by remnants of the past like the De Leonists in the Anglo-Saxon countries, or by elements breaking from leftism.

 

[7] There is no proof that Chénier was an agent of the state security services. By contrast, his rapid rise, immediately after his exclusion from the ICC, within the state administration, and above all within the apparatus of the Socialist Party (in government at the time), demonstrates that he must have been already been working for this apparatus of the bourgeoisie while he was still presenting himself as a “revolutionary”.

 

[8] In response to the ICC’s analyses and concerns over parasitism, we are often told that the phenomenon only concerns our own organisation, whether as a target or as a “supplier”, through splits, of the parasitic milieu. It is true that today, the ICC is parasitism’s main target, which is explained easily enough by the fact that it is the largest and most widespread organisation of the proletarian movement. It consequently provokes the greatest hatred from the enemies of this movement, which never miss an occasion to stir up hostility towards it on the part of other proletarian organisations. Another reason for this “privilege” of the ICC is the fact precisely that our organisation has suffered the most splits leading to the creation of parasitic groups. We can suggest several explanations for this phenomenon.

 

Firstly, of all the organisations of the proletarian political milieu which have survived the 30 years since 1968, the ICC is the only new one, since all the others already existed at the time. Consequently, our organisation suffered from a greater weight of the circle spirit, which is the breeding ground for clans and parasitism. Moreover, the other organisations had already undergone a “natural selection” before the class’ historic resurgence, which had eliminated all the adventurers, semi-adventurers, and intellectuals in search of an audience, who lacked the patience to undertake an obscure labour in little organisations with a negligible impact on the working class. At the moment of the proletarian resurgence, this kind of element judged it easier to “rise” in a new organisation in the process of formation, than in an older organisation where the “places were already taken”.

 

Secondly, there is generally a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equally numerous) splits that have affected the Bordigist milieu (which was the most developed internationally until the end of the 1970s), and those which have affected the ICC. In the Bordigist organisations, which claim officially to be monolithic, splits are usually the result of the impossibility of developing political disagreements within the organisation, and do not therefore necessarily have a parasitic dynamic. By contrast, the splits within the ICC were not the result of monolithism or sectarianism, since our organisation has always allowed, indeed encouraged, debate and confrontation within it: the collective desertions were the result of impatience, individualist frustrations, a clan approach, and therefore bore within themselves a parasitic spirit and dynamic.

 

This being said, we should point out that the ICC is far from being parasitism’s only target. For example, the denigration by Hilo Rojo and “Mouvement Communiste” are aimed at the entire communist left. Similarly, the special target of the OCI is the Bordigist Current. Finally, even when the parasitic groups focus their attacks on the ICC and spare, or even flatter, the other groups of the proletarian political milieu (as was the case with the CBG, and as Échanges et Mouvement does continuously), this is generally designed to increase the divisions between the groups - something that the ICC has always been the first to fight.

 

[9] A group consisting of ex-members of the ICC who had belonged to the GCI, and of old transfers from leftism, not to be confused with the “Mouvement Communiste” of the 1970s, which was one of the apostles of modernism.

 

[10] At the outset, ideological decomposition obviously affects the capitalist class first and foremost, and then the petty-bourgeois strata which have no real autonomy. We can even say that the latter identify particularly well with decomposition, in that their own situation, their lack of any future, matches the major cause of ideological decomposition: the absence of any perspective in the immediate for society as a whole. Only the proletariat bears within itself a perspective for humanity, and in this sense it also has the greatest capacity for resistance to this decomposition. However, it is not completely spared, notably because it rubs shoulders with the petty-bourgeoisie which is decomposition’s principle vehicle. The different elements which constitute the strength of the proletariat directly confront the various facets of this ideological decomposition:

  • collective action, solidarity, confront atomisation, the spirit of “every man for himself” and “look after number one”;
  • the need for organisation confronts social decomposition, the destruction of the relationships which form the foundations of society;
  • confidence in the future and in its own strength is constantly undermined by the general despair that invades the whole of society, by nihilism, by the ideology of “no future”;
  • consciousness, lucidity, coherence and unified thought, the taste for theory, must make their difficult way through a society escaping into chimeras, into drugs, sects, mysticism, the destruction of thought which characterises our epoch” (International Review no.62, “Decomposition, the final phase of capitalist decadence”, point 13).

Clearly, the behaviour typical of parasitism - pettiness, the false solidarity of the clan, hatred for organisation, mistrust, slander - is nourished by today’s social decomposition. According to the proverb, the most beautiful flowers grow from manure. Science teaches that many parasitic organisms like it just as well. And in its own domain, political parasitism follows the laws of biology, making its honey from society’s putref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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