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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은 자본가계급과 정부가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벌이는 모든 전쟁에 반대합니다우리의 입장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선택은 분명하고 일관되어야 한다고 했던 이전 세대 혁명가들의 유산입니다.

 

100년 전 코뮤니스트들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기 위해 모였습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대회는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물결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켰습니다우리는 미국 사회주의노동당」 보리스 라인슈타인이 한 말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 시대에 자본주의 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방어전에서도 자국 정부를 지지할 정당한 이유가 없습니다프롤레타리아트가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전쟁은 단 하나뿐입니다그것은 사회적 전쟁사회 혁명입니다.”

 

지난 1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과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ACG)이 개최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모임 요청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모임에서는 상황에 대한 논의와 앞으로 실천계획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논의한 후참가조직이 지지하고 그들 매체에 발표할 수 있는 성명서 초안을 작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은 이 자리에서 초안을 작성하도록 위임받았습니다여기에 100년 전에 채택한 우리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옛 동지들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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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

 

세계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심화되는 위기로 우리를 전쟁이 만연한 세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오늘날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전쟁이 우리 노동자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반면지배계급의 다른 무리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대부분 전쟁은 제국주의 강대국의 고객(의존국사이에 벌어집니다그것은 무역전쟁 개시와 함께 더 넓은 세계분쟁의 전조인 제국주의 대리전입니다전쟁으로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입니다그것은 몇몇 미치광이 또는 나쁜 자본가 대표들 때문이 아니며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 입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 지지자들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세계적 생산 체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모두의 요구를 직접 충족시키기 위한 공동 소유에 기반을 둔 체제를 지향합니다이것은 세계적인 노동자평의회 체제를 통해 노동자계급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될 것입니다이윤을 위한 생산과 민족국가 체제는 없어질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의한 지구 파괴는 중단되어 복원으로 뒤바뀔 것이고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조직하고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과 그것을 성취할 방법에 대한 생각을 확산시켜야 합니다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이 과업을 위해 혁명가로 구성된 국제적인 정치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의 필수적인 출발점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고지배계급이 요구하는 전쟁을 포함한 그들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모든 전쟁은 자본 일부분의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입니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은 지배계급 한 부분뿐만 아니라 가난질병재난에 의해 서서히 또는 전쟁에 의해 빠른 속도로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죽음파괴 그리고 비참함을 가져다주는 완전히 부패한 체제에 맞서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습니다이른바 민족해방이나 반제국주의’ 전쟁은 단지 위장된 제국주의 전쟁일 뿐입니다우리는 의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처럼 거짓 혁명의 늪에서 기생하는 자본의 좌파에 있는 어떤 지배계급 꼭두각시들과도 공동전선을 만들지 않습니다그들은 모두 지배계급 체제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평화와 전쟁에서 모두 그 체제를 지지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부르주아 전쟁 도발과 긴축정책에 맞서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전면화시키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은 위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에 가입하여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을 위한 계급투쟁에 참여하여 선전물 제작 배포 운반에 함께 할 것을 요청합니다.

 

조직에 가입하거나더 토론하거나메일링리스트에 추가하거나전쟁이 아닌 계급전쟁(NWBCW)그룹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다음으로 연락하십시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  email: uk@leftcom.org, website: leftcom.org

또는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ACG) :  email: info@anarchistcommunism.org, website: anarchistcommunism.org

 

2019년 3월 26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03-26/no-war-but-the-class-war-nwb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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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네쿡 - 노동자평의회] 현장점거

현장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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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건으로 더 향상된 노동조건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투쟁이 출현했다그것은 바로 현장점거이다이는 대체로 연좌파업이라고 불리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작업을 멈추기는 하지만 공장을 떠나지는 않는다연좌파업은 이론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이론은 단지 후에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줄 수 있을 뿐이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에서 실업은 너무 일반화되었고 지속적이었기에 직장을 가진 일부의 특권자들과 실업 대중 간의 일종의 계급 적대로 전개될 정도가 되었다그리고 임금삭감에 대항한 정규적인 파업은 불가능해졌다왜냐하면 파업노동자에 의해 텅 빈 작업장은 작업장 밖에 있는 대중으로 즉시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더 나쁜 노동조건 하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작업장을 점거함으로써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붙박여 있는 것과 결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현장점거가 벌어지자 연좌파업은 보다 발전된 투쟁 형태의 표현으로서 더 자세히 고찰해볼 가치가 있는 특성을 보여주었다그것은 더욱 견고한 단결의 형태를 증명했다이전의 파업 형태에서 노동 공동체는 작업장을 떠나면 해체되어버렸다즉 노동자들은 거리와 집으로 흩어져버렸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느슨한 개개인으로 분리되었다하나의 몸체로서 토론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거리와 광장 같은 회의 장소에 집결해야 했다그러나 종종 경찰과 당국은 이를 방해하고 심지어는 금지하려고 애를 썼다이에 노동자들은 법률적 목적을 위한 합법적 수단을 통해 싸우려는 의식을 통해 자신이 그러한 공간을 사용할 권리를 요구했다노동조합 활동의 합법성은 대중 의견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커져가는 대자본의 권력이 국가 당국을 능가함으로써 모든 공회장과 광장마저도 자신들이 점유하려고 할 때 이러한 합법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며만약 노동자들이 싸우려면 그러한 공간을 점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했다미국에서 모든 대규모 파업은 일반적으로 거리와 회의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경찰과의 계속된 투쟁을 동반했다작업장이라는 적당한 장소에 모일 수 있는 권리를 얻음으로써 연좌파업은 앞서와 같이 노동자들이 집회 장소를 두고 골치를 썩을 필요로부터 해방시켜줬다동시에 이러한 파업은 파업파괴자들이 파업노동자의 장소에 침입하기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참으로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이는 완강한 투쟁을 필요로 하였다작업장의 소유자로서의 자본가들은 파업노동자에 의한 현장점거를 그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그리고 이러한 법률적 판단을 통해 그들은 경찰에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청했다마치 파업이 형식적 법률과 충돌하는 것처럼실제로 엄격한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현장점거는 형식적 법률과 충돌한다그리고 사실 고용자들은 규칙적으로 자신의 투쟁 무기로 이러한 공식적 법률에 호소했고 법률은 파업노동자들을 계약 위반자라는 오명을 씌우고 고용주에게는 작업장에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권리를 부여했다하지만 파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법률적 논리에 맞서 파업은 투쟁 형태로 지속되었고 발전해갔다.

 

  실제로 형식적 법률은 자본주의의 내적 현실을 표현해주지 않으며 단지 중간계급과 법률적 견해의 유착이라는 자본주의 외적 형식만을 표현해줄 뿐이다자본주의 실제는 평등하게 계약하는 개개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투쟁하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노동자의 권력이 너무 작아 공식적 법률에 대한 중간계급의 견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계약 파괴자로서의 파업노동자들은 해고되어 다른 사람들로 대체되었다그러나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그러한 장소를 획득하게 되자새롭고 진실한 법률적 착상이 나타났다예컨대 파업은 위반이나 중지가 아니라 단지 노동조건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노동계약을 일시적으로 보류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법률가들은 이러한 관점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사회는 이를 실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현장점거가 필요하거나 노동자들이 이를 수행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투쟁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주장되었다자본가들과 법률가들은 현장점거를 소유권의 침해라고 떠들어댔다그러나 노동자에게 현장점거는 재산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그들의 소유권의 효과를 보류시키는 것일 뿐이었다즉 현장점거는 현장을 탈취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단지 자본가에 의한 처분권을 순간적으로 보류시킨 것일 뿐이었다싸움이 해결된 이후에는 자본가는 주인이 될 것이고 예전처럼 논의의 여지가 없는 소유자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현장점거는 그 자체 이상의 무엇이다즉 지평선에서 비치기 시작하는 여명처럼 희미한 미래의 발전 모습이 떠올랐다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줬다그들은 현장조직으로써 견고한 상호결속이 나타났고자연적인 통일체는 단일 개별자로 용해되지 않았다여기서 노동자들은 작업장과 자신의 친밀한 연관을 의식하게 되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이제 그들이 해고될 때까지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명령하는 그러한 사람의 건물이 아니었다노동자에게 기계가 있는 작업장은 그들이 운용하는 생산적 기구이자 단지 그들의 노동에 의해 사회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만들어내는 기관이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즉 작업장은 작업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작업장의 법적 소유자들주주들에게보다는 노동자에게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었다공장에서 노동자는 그곳이 그들의 삶그들의 생산적 노동의 중심이자 공장을 살아있는 기관사회의 총체의 요소로 만들어주는 집합체로서의 노동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키워갔다이때 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가 전적으로 생산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인류의 부를 소비하고 남용하며 전 지구를 황폐화시키면서 명령만 하는 자본가 같은 무가치한 외부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막연한 감각이 생겨났다. 그리고 힘든 투쟁을 거치면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작업장이 조직화 및 공동행동의 단위로서그리고 아마도 그 기반이자 본거지 및 힘의 중심이자 투쟁의 목표로서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노동자와 작업장의 자연적인 관계와 비교할 때 자본의 명령은 인위적이고 외적인 지배로서 나타나며아직은 강력하기는 하지만허공으로 사라져버릴 그런 것일 뿐이었다반면 성장하는 노동자의 장악력은 땅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이처럼 현장점거에서 작업장이 노동자의 소유가 되고작업장 모두가 조화로운 단위를 형성하며작업장을 통해 해방을 위한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식의 성장 속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의 단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안톤 판네쿡노동자평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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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쿠바 국가자본주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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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쿠바 국회에 사유재산 존중토지 상속권 유지외국인 투자 인정 등이 포함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같은 해 12월 통과 되었다처음 개정안에는 공산주의가 삭제되었지만 마지막에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한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개헌 국민투표는 2019년 2월 24일에 실시되었으며투표 참가자 784만여 명 중 681만여 명에 해당하는 86.85%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물론 이 개헌은 쿠바 혁명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었고쿠바가 초국적 투자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헌법적 표현에 불과하다그동안 쿠바의 고립은 미국이 유지하는 경제 블록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증폭되어 왔다.

 

쿠바는 최근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 정부 위기로 보건서비스 및 문맹 퇴치 활동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 80년대 소련 위기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도 쿠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이에 쿠바 정부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쿠바 헌법 개정은 새로운 걸 가져오지 않는다자본 투자자 집단 모집과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한 과정 또는 조치만을 조정할 뿐이다호메로 아코스타 국가평의회 서기는 기회주의자나 거짓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원칙의 틀 안에서 전면적인 개혁에 직면해 있다"라면서 쿠바가 "사회주의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며헌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예정된 변화를 의원들에게 먼저 보여 주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그들이 "시장 법칙의 객관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쿠바의 국가 자본주의는 민간 기업가에 대한 과세로 재정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다그것은 민간 기업(국가 또는 초국가적투자 상품 수요를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입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이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화폐 재통일 및 통화 평가 절하를 위한 배급 카드를 제거하는 경로를 설명해준다쿠바 경제에 숨겨져 있거나 묻혀있는 민간 상업 활동은 점점 더 강력하게 번창하고 있다이것은 쿠바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이 "더 새롭고 기능적인 유형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부르던 것이다국가는 수십 년 동안 "애물단지(white elephants)"였던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고 국제 시장 모든 경쟁력에서 벗어난 제품으로 인해 파산한 성장가능성 없는 회사들을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른바 "좌파"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쿠바의 자본주의로 복귀"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그러나 사실 자본주의가 결코 쿠바를 떠난 적이 없다자본 축적은 국가에 의해 중앙 집중화되었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쿠바가 그렇게 많이 선전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늘날 쿠바 부르주아 정부는 국가자본주의를 개혁할 뿐이며경제 정책은 자본주의 세계 위기 영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월 20달러월 10달러의 연금에 맞닥뜨린 봉급생활자들의 요구는 구체화되고머지않아 정치 투쟁으로 변할 것이다쿠바에서도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 혁명 목표를 재발견하고 계급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당(The Communist Party)」 12호,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참고자료>

 

쿠바카스트로체 게바라그리고 억압

 

1931-33년 임시 대통령 쎄스페데스에 쿠데타를 일으킨 바티스타는 1940년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1952년 다시 쿠데타로 집권한 뒤지방 인민사회당의 지지를 받았다쿠바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도시와 농촌 사이에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1958년 하바나에는 성매매 여성이 11,500명에 달했으며 부패가 극심했다.

 

멕시코에서 7월 26일 운동(M-26)이라는 게릴라를 결성한 카스트로는 1958년 11월 7일 체 게바라와 함께 하바나로 진군하여 1959년 1월 8일 수도에 입성한다. 5개월 동안 바티스타 지지자 6백여 명이 처형되었는데광장에서 로마식 공개 처형으로 이루어져 전체주의적 테러의 양상을 띠었다혁명 직후 카스트로는 뉴욕 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에 관심이 없다승리 후에 고향 마을로 가서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1976년까지 대통령령으로 지배했으며 정적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었고혁명 동지들을 교체했고, 1976년 소련 모델의 헌법을 제정했다.

 

노동자는 억압받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1962년 8월 설탕 노조 지도자인 살바도르가 체포되고, 12년 동안 수감되었다교육과 예술 분야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지속되었는데, 1961년 9월 17일 131명의 신부가 국외로 추방되었다산업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체 게바라는 쿠바에 소련 모델을 이식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혁명의 숭앙자였다. 1960년 쿠바에 노동수용소를 창설한 사람은 카스트로가 아니라 체 게바라였으며 새로운 인간의 숭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쿠바 청년을 군사화한 기술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쿠바 혁명의 주력부대인 게릴라와 그 지도자인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신화를 벗겨볼 필요가 있다게릴라 부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며 그들이 내건 맑스주의는 그들이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반()양키저항의 편리한 덮개에 불과하다이 게릴라 그룹은 결코 농민 봉기의 표현이 아니었고노동계급의 봉기는 더더욱 아니었다그것은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가 다른 분파를 전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군사적 표현이었다카스트로의 게릴라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어떤 민중봉기도 없었다피착취계급과 빈민은 권력을 쥔 새로운 주인에게 환호할 뿐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바티스타 군대의 약한 저항에 대항하여 게바라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로 카스트로를 무색하게 할 만큼의 용맹스러운 게릴라처럼 보였다. ‘혁명 법정을 통해 이른바 민중적 정의를 실현하면서 체는 우리는 총살했고아직도 총살시키고 있으며 필요한 한 계속해서 총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이는 무력에 의해 다른 분파를 제압하는 부르주아지 분파의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카스트로 민족주의 정권은 재빨리 자격을 갖춘 공산주의로 치장했다다른 말로 하면 카스트로 정권은 소련이 이끄는 제국주의 진영으로 나아갔다주요 군사요원과 민간인이 있고 동구 블록 국가의 비밀 활동이 있는 섬 쿠바의 스탈린주의화는 1962년 미사일 위기로 그 정점에 달했다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데 여기서 그는 아낌없이 소련을 찬양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사상의 자유가 지배하는 곳”, “자유의 모국이라고그는 또한 모든 사람이 열정에 차 있고 모든 사람이 근무시간을 넘어 일하는특별한’ 북한과 마오의 중국을 찬양하고 이어서 동구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가 특별하다그들의 삶의 체제발전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삶과 발전 체제를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추켜세웠다.

 

체 게바라에게서 소련과 그 블록은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진영이었고, ‘하나여러 개의 베트남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국제주의적” 표어가 아니라 러시아 블록에 우호적인 민족주의적 슬로건일 뿐이었으며미국에 대한 증오였다. “민족해방은 인민의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이념적 신비화였다노동계급이나 다른 피착취계급 어느 것도 이러한 전쟁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었다워싱턴의 비밀활동과 각종 마피아가 통제하는 부패한 바티스타 독재로부터 스탈린주의 블록으로 넘어간 쿠바는 민족해방투쟁의 비극적인 축약되었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어하는 국제주의 정도를 벗어난 쿠바의 길은 부르주아 방법인 테러와 국가 자본주의다시 말해 자본주의 착취의 가장 잔인하고 전체주의적인 표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주의와 다른 변동(마오주의로부터 카스트로주의까지)의 공통적 특징 중의 하나는 대중의 뇌 속에 의식을 주입하는 지식인이 이끄는 혁명의 주체를 신화적 빈농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이다이러한 사이비 혁명가들의 저술 속에서 누구도 계급 권력기관인 소비에트를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어떠한 참조도 발견할 수 없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중은 주장하는 것처럼 양떼처럼 행동하는 … 같은 유형의 요소의 합이 아니다지도자들기본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주저하지 않고 따르는 것은 옳다.” 피상적으로 보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다대중은 비길 데 없는 열정과 규율로 정부가 정한 과업을경제문화국방스포츠 분야에서 수행한다 … 일반적으로는 주도권은 피델로부터혁명적 지도부로부터 나온다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민에게 설명된다.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1965)

 

쿠바에서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주요기관 중의 하나는 놀랍게도 노동조합이다쿠바노동조합총연맹(CTC)은 이미 미국식의 노동조합이었으며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부패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었다쿠바 지도부는 이들은 1960년에 관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모형에 기반을 둔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으로 재빨리 전환시켰다카스트로 정권의 첫 번째 결정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책임을 지게하고 회사에서 파업 금지를 강제하는 것이었다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미제국주의 반대와 쿠바 인민의 방어로 정당화되었다쿠바에 있는 미국회사에서 임금 삭감에 대항하는 파업 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카스트로 정권의 지도자들은 파업 노동자를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게바라는 다른 누구보다 더 과감한 민족주의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지도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아직도 카스트로주의라는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열대지역 변종의 대표이기도 하다.

 

볼리바르 혁명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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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스트 노동자 선언

2019 메이데이코뮤니스트 노동자 선언

 

촛불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

 

자본에 맞서거짓 평화에 맞서 계급전쟁을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노동존중을 내걸었던 자본가 정부가 가면을 벗어던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공약(公約)은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거짓임이 드러났다.

 

같은 자본가 정권으로 적폐청산의 대상이자 노동탄압의 상징이었던 이전 정권과 경쟁하듯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박근혜와 함께 처벌받고 청산되어야 마땅한 재벌과 자본가 단체들은 언제 우리가 자본가 세상에서 고개 숙이고 숨죽이며 살았냐면서 반격에 나서고 있다그들은 어느새 한 몸이 되어 더는 물러설 곳도 추락할 곳도 없는 노동자들을 향해 비열한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친자본 정책 전환은 본질적으로 보수 세력과 자본가계급의 압력이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 정부의 본색을 드러낸 것 뿐이다노동존중은 애초 관심조차 없었기에 정책을 전환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러한 거짓선전을 할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의 기반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이었고여기에는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포섭된 다수의 노동자가 존재한다이러한 세력은 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인 위기 상황에서 개량의 물적 토대가 제한적이고첨예한 계급대립 상황에서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지배계급 편에서 노동자계급을 포섭하는 데 주력한다.

 

지금은 조직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이 약해져 있고계급 내부 분열이 공고화되었기 때문에노동자들을 최대한 밀어붙여 양보를 얻어낼 것이다이것은 희생과 양보의 크기를 두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면서 포섭해나가는 자본의 전형적인 위기 전가 방법이다여기서 위기 유포(희생 강요)와 사회적 타협(경사노위)은 상호보완성을 가진 자본가계급의 유용한 무기다이에 맞선 노동자의 무기는 투쟁을 강화하는 것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사회적 타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노동자에게 절대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쟁 회피의 다른 말인‘ 교섭과 투쟁 병행’ 노선은 단결과 투쟁의 힘을 무너뜨려 결국 타협에 매달리게 할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탄생에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심화시킨 치명적인 위기를 떠안고 출발했다하지만현 정부가 어떠한 특별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그것이 노동존중의 가면을 쓰던적폐청산의 가면을 쓰던한반도 평화의 가면을 쓰던그 해결책을 기존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아야 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미가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체제 보장/한반도 평화/제국주의 세력 개편은 평화의 문제, ‘민족의 문제, ‘체제의 문제로 포장되어 있지만실제로는 경쟁하고 대립하는 지배계급 내부의 사활을 건 싸움이다따라서 시간도내용도절차도 모두 그들의 방식대로 진행되며오직 노동자계급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에서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여기서 노동자계급이 국제적이고 독자적인 관점을 갖지 않는다면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지배계급 간의 전쟁에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과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지배계급이 주도하는 평화는 계급전쟁을 종식하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번영은 이윤 획득과 계급 불평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일 뿐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갈수록 깊어지는 위기를 다음 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구걸하게 될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다위기를 극복하는 것도노동자계급의 힘을 되찾는 것도자본가 정부와 촛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촛불 이전에 더 잘 싸웠다독재정권에서도노동자 투쟁이 불법일 때도 훨씬 잘 싸웠다노동자의 방식으로노동자의 자리에서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해서 투쟁했기 때문이다조합주의와 관료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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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다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을 지속해서 공격할 뿐 아니라 생태파괴를 통해 지구 생명체의 미래까지 점점 더 위협해가고 있다또한그것은 우리를 전쟁과 야만으로 이끌고 있다오늘날 60여 개가 넘는 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전쟁은 노동자계급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지만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이러한 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가짜 사회주의·사민주의 진보좌파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부상을 촉진하면서 노동자들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자본주의는 이제 인류에게 평화롭고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오히려 부르주아지는 수천만의 프롤레타리아가 서로 학살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인류의 생존 고통이 커지는 동안 그들은 치명적인 무기 생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다자본주의 존재는 노동자계급과 인류의 생존그리고 이 지구 자체의 존립과도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그것은 몇몇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며지도자의 선택 문제를 넘어선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 이다.

 

노동자의 주적은 부르주아 국가에 있다그 적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이다하지만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고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는 모든 국가민족정치 세력 또한 우리의 적이다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모든 민족주의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여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는 것이다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계급전쟁뿐이다.

 

모든 착취와 억압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를 위해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조직할 때이다.

이제는 계급전쟁을 강화하고 전면화할 코뮤니스트당으로 집결해야 한다.

 

자본에 맞서

자본가 정권에 맞서

제국주의 전쟁과 거짓 평화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전쟁계급전쟁을!

코뮤니스트당 건설을!

 

 

2019년 메이데이

투쟁하는 코뮤니스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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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4주기 : 마지막 거리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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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선생 4주기

     

    기억과 추모

     

     2015년 6월 26일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 

     

    제가 런던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을 때 박사 논문이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이에요. 지금 상황과 딱 맞는 얘기이에요. 맑스는 ‘자본주의가 언제 망할까?’ 에 대해, 공황이 주기적으로 자꾸 발생해서 자본주의가 형편없는 경제체제, 사회체제, 정치체제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질 때 결국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이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자본주의가 경기가 좋을 때는 자본주의의 나쁜 면(진짜 속성)이 잘 안 나타나는 데 지금 이렇게 불황이 오고 공황이 오고 이럴 때는 ‘자본주의는 이런 사회구나’라고 분명히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확신하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사실 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이렇게 어려울 때 우리 노동자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본가들도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 세계 시장이 자꾸 좁아지니까 자기들도 어떤 식으로든 탈출해야 하는데 탈출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러니 서로가 싸움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가 하는 것 봐요. 엉터리 짓만 자꾸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자본가들도 그런 식의 엉터리 짓만 하다가 스스로 망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주)재능교육 여기도 정신이 빠진 거죠. 이 단계까지 누구한테 손을 벌리고 누구한테 동정을 사든가 방법이 하나도 없다고요.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고 돈을 가지고 권력을 사고 권력에 영향을 주고 뇌물을 주고 정치적으로도 막강하죠. 금방 알잖아요. 경찰이 와서 자본가들 말만 듣죠. 그것은 법원에도 다 마찬가지예요. 법원에 가면 돈이 있으면 전부 무죄가 되는 판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싸워 왔지만 조금만 더 싸우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자본가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가들이 이처럼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하면서 점점 더 자기들의 적대세력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박근혜 그 형편없는 사람이 자꾸 악수 두는 것 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노동자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임금수준을 낮춥니다. 노동자는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먹고 살 수 없다고 가만히 죽을 수는 없죠. 저항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면 자본가계급과 기존의 세력들은 이것을 극복하려 노동자계급과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고 조직되지 못하게 압박을 가하고 억압을 가합니다. 그게 사실 히틀러와 같은 파쇼정권입니다. 파쇼가 그런 데서 나온 겁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1933년 대공황이 일어난 때입니다. 자본가들이 자기의 힘으로는 해결을 못 하니까 그런 히틀러와 같은 깡패를 대통령에 앉히고 총통에 앉히고 이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죠. 지금 다른 나라도 똑같아요.

     

    미국에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 된다고 선거운동 했을 때는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흑인이 대통령 되는 게 처음 있는 일이고 그때는 오바마가 말도 참 잘했죠. 그러면서 부시가 하는 정책은 전부 다 거꾸로 하겠다고 했죠. 전쟁 종식시키겠다! 민주주의 하겠다! 빈부격차 없애겠다! 이런 소리 다 했다고요. 그런데 대통령 딱 되니까 마음이 확 달라졌죠.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 무슨 얘기냐 하면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 자기 혼자 똑똑해도 소용없습니다. 사회 전체를 자본가계급이 잡고 있으면 대통령이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사실 오바마는 진보적 색채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아니 띨 수도 없죠. 자본가계급에 계속 밀려가고 있습니다. 전쟁을 끝냈습니까? 전쟁을 계속하고 있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민주정부를 세워서 모든 사람 잘살게 한다고? 무얼 잘 살게 해. 전부 거짓말이죠. 나는 오바마나 박근혜나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가 대통령 되려고 선거 운동할 때 ‘경제민주화’가 어떻고, ‘복지’가 어떻고 말을 얼마나 잘했나요? 금방 대통령 되자 전부 없어졌잖아요! 사기꾼들이예요! 원래 사기꾼들이예요! 거기에다가 사태를 점점 악화를 시키죠. 세월호도 그렇죠. 메르스도 그렇죠. 형편없는 정부라고요……

     

    여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정부를 타도해야 하는데 이런 정부가 사실은 타도가 잘 안 되는 것이 미국도 마찬가지죠. 미국도 한 번 보세요. 부시 정부 때 중앙정보부 세력이 엄청나게 커서 다른 나라 가서 전부 정보를 조작해서 그 정보 가지고 여러 사람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반대가 나고 데모도 심해지면 그때는 전화나 이메일을 도청하여 무슨 약점이 없나 찾아내서는 미리 잡아서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이 단계가 미국으로서 참 문제가 많은 것이 미국이 베트남전쟁이 끝난 것이 1975년에요. 베트남 전쟁에서 지죠. 미국이 진다고요! 세계에서 그렇게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군사적으로 부강하고 이런 나라가 어떻게 해서 베트남에서 가서 베트콩하고 호지명한테 지느냐고요. 돈 많고 무기 많고 그렇다 해도 질 수 있다는 것이 금방 나타나는 것이에요. 지금 이라크도 마찬가지죠. 이라크군하고 미군이 가서 IS군하고 싸우고 있는데 이라크군이든 미군이든 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무기가 전부 IS군으로 넘어가잖아요.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고요. 이런 식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 나아가요.

     

    또 하나 제가 볼 때는 우크라이나가 말이 안 되는 것이 우크라이나 지금 쿠데타를 한 놈들이 뭐냐면 옛날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 놈들에게 무기 주고 돈 주고 그전에 소련이랑 가까운 친러 세력 대통령 쫓아내잖아요.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죠. 기존의 세력이 자기들의 양심도 없고 정치적으로 세력도 잃어가고 이데올로기로써 남을 설득 못 하는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굉장히 커요. 이걸 알아야 해요. 경제적으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투자가 안 되는 것이죠. 큰 기업들이 이윤이 나면 원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투자를 해야지요. 새로운 기계 도입하고 규모를 확대하고 노동자 고용하고 기술 개발하고……, 이런 식으로 해야지 그 기업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원료도 사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아서 생활필수품 사서 이러면 경제가 자꾸 확대되는 거예요. 원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경제를 잡고 있는 사람은 자본가죠. 자본가가 투자를 안 하면 시장이 꽉 막히는 거예요. 투자를 안 하면 시장이 막히면 상품이 안 팔리면 경제가 죽는 거예요.

     

    자본가들이 백억 이윤이 나왔으면 그중에서 50%를 무엇을 하느냐면 자기회사 주식을 산다고요. 자기회사 주식을 왜 사냐면 주식을 사면 주식 가격이 올라가잖아요. 주식가격이 올라가면 그 회사의 주주들이든지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팔면 큰 이윤을 얻고 주식가격이 올라가니까 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전부 또 그 주식 살려고 오니까 그 주가는 자꾸 올라간다고요. 지금 자기 회사의 주식 사는데 이윤의 50%를 쓴다고요. 그래서 주식값이 자꾸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건데. 주식가격이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회사가 바뀌는 게 뭐가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든지 주식을 투기하는 사람들만 자꾸 배를 불린다고, 주식 투기하고, 주식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은 전부가 비생산적인 사람들이예요. 아무것도 생산 안 한다고 먹고 노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에게 재산이 그곳으로 전부 간다고요.

     

    그래서 알다시피 10년 전부터 보면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얘기하는데 빈부 격차가 심한 것 중에서 돈을 가장 잘 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주식에 투자하고 은행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새로운 세상에는 놀고먹는 썩어빠진 놈들, 투기꾼 전부 없애야 해요. 방향은 그렇게 갑니다.

     

    그다음 40%가 어디로 가느냐면 40%를 떼서 주주한테 배당을 많이 해요. 투자가가 자기 회사 주식 사지 않으면 자기회사 주주들에 배당 많이 준다고, 배당 많이 주면 밖으로 다른 사람들은 ‘저 회사가 잘 되니까 배당을 많이 주는구나.’ 그러면서 그 회사 주식을 많이 사려고 하죠. 그러면 자꾸 주식값이 올라간다고요. 공황이 시작된 게 보통 2008년이라고 하는데. 2008년에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고 주식 값이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데 2009년 중반쯤 되면 주식값이 바닥을 넘어 자꾸 승승장구한다고요. 그래서 자본가들 얘기하는 것은 ‘아!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살아나긴 뭐가 살아납니까? 주식값만 자꾸 올라가면 뭐해요. 여러분이랑 아무 관계없는 데. 돈 좀 있다는 중산층들은 주식가격 올라간다고 해서 주식 사서 홀딱 망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진다는 걸 알아야 돼요.

     

    나머지 이윤이 난 10%를 가지고 새로운 기계 도입하고 노동자 고용한다고 하는데 10%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고요. 지금은 이렇게 보면 돼요. 지금 기업들이 임금도 낮아지고 일을 무자비하게 많이 시켜 이윤을 엄청나게 얻습니다. 이윤이 많이 났는데도 그것이 생산적으로 공장을 확대한다든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준다든지 교육을 한다든지 새로운 기계를 가져온다든지 이런 데는 한 푼도 안 쓰고 노는 사람들, 쓸데없는 사람들, 필요 없는 사람들만 자꾸 부유하게 한다고요. 사회가 망할 징조가 딱 되어있는 것에요. 아시겠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지금 그런 상황이 유럽에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 1980년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이에요. 신자유주의라는 게 뭐냐면 자본가들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면 그래서 자본가가 잘살면 보통 사람들도 거기에서 나오는 국물, ‘국물 먹고 보통 사람들도 잘살 수 있다.’ 그런 주장인데. 말이 안 되는 주장 이예요. 그 사람들이 새로운 생산을 해야지. 생산을! 일자리를 만들어야 내야 소득을 만들어내야지. 지금 이렇게 해서 무슨 국물이 생기냐고요.

     

    그리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리스도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절에 정부가 긴축해서 일하는 사람 수 줄이고, 그 사람들 임금 깎고, 못사는 사람들한테 돈 주는 것 그거 깎고, 자꾸 깎아 버리면 시장이 확 망하는 거예요. 시장이 죽어가는 데 뭘 할 수 있겠어요. 이번 연초에 그것에 반대해서 좌파연합이 집권했습니다. 집권했으면 유럽의 독일, 영국, 프랑스 많이 있잖아요. 그 나라들이 그리스를 도와줘 경기가 나아지도록 해야 할 건데 그걸 완전히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리스 잘못 하다가는 국가 부도나고 그럼 유로존에서 또 EU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자꾸 만들려고 궁지에 몰아가는 거예요. 지금 이 상황이 절대적으로 호전될 기미가 하나도 없고 전쟁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나토에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많이 보내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 있다. 자꾸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러시아하고 전쟁하겠습니까? 전쟁하면 자기들이 다 죽지요. 러시아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유럽 다 죽고 미국 다 죽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을 우리나라 같은 이런 데에 일으키려고 해요. 자기들은 아무 손해도 없이 전쟁하는 사람들한테 무기나 팔아먹고 이렇게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 봐요. 군인이라는 놈들이 전부 부정과 부패로 가짜배기 무기로 돈 먹고 이런 놈들이 어디 있어요. 뻔히 알잖아요. 북한이 엄청나게 개발한 것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엉터리 무기를 자꾸 사 와서 자기 주머닛돈만 벌려고 하니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요. 대통령이라는 사람 머리가 없어요. 그렇게 하면 북한이랑 전쟁하지 말고 ‘우리끼리 잘 지내자!’ 이렇게 해야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돈을 국방비에 엄청나게 쳐다 넣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박근혜 들어오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졌다고요. 국가재정 규모자체도 굉장히 줄어들고 돈 자체가 서민들에게 쓰이는 것, 교육에 쓴다든지 기술개발에 쓴다든지 문화에 쓴다든지 노동문제 쓰든지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무슨 사건이 일어나던지 세월호, 메르스 보다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정신을 차려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내가 2, 3년 전에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은 소련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 맑스가 원래 이야기한 거예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란 어떤 사회냐면 여러분들이 이 회사를 전부 차지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돼서 여러분들이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서 집단적인 이성을 통해서 이 회사를 바로 운영하는 나가는 것. 모든 회사가 그런 식으로 된다면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사라지는 거예요. 사라진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물적, 인적 자원으로도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거예요.

     

    자꾸 그런 얘기하잖아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2만 달러예요. 2만 달러면 1인당 2천만 원이예요. 모든 사람이 갓난아기, 노인까지 합쳐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면 1년에 2천만 원을 쓸 수가 있다는 거예요. 한 가족이 4명이라고 하면 한 가족이 8천만 원을 쓸 수 있다. 12개월로 나누면 660만 원 되더라고. 4인 가족이 세금 다 떼고 순소득으로 한 달에 660만 원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정도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라고요. 한 달에 660만 원을 순소득으로 세금 다 제하고 받는 사람이 그리 많아요? 없지요. 나도 안 돼요. 처음부터 소득분배가 엄청나게 불균등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소득만 균등하게 해도 모두가 살 수 있고, 자살 안 할 수 있고, 굶어 죽는다는 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박정희 이후부터 굉장히 우리 노동자계급이 희생했는데, 지금 엄청나게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낸 건데. 그게 언제까지 계속 갈수 있냐고요. 계속 안 가기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이 회사의 주인이고, 자본가계급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는 그 체제를 없애야 해요. 그 체제를 없애지 않으면 어찌할 수가 없어요. 이 사람들이 주인이니까 건물을 가지고 있고, 기계를 가지고 있고, 돈을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고, 우리한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몇 시간 일해라. 너희는 비정규직이다 자꾸 이러는 거예요.

     

    자본가들의 재산이 늘어난 것은 결국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 이예요.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한 그 덕으로 돈을 자꾸 버는 거예요. 이제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갖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맑스가 생각한 아이디어예요. 기본적 아이디어.

     

    모든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내가 이것을 강의하고 강연할 때도 많이 이야기하고 학교에서도 많이 얘기하는데. 이게 그럴듯하잖아요. 왜 그러냐면 우리의 경험이 가르쳐준다고요. 거기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자꾸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자꾸 얘기해요. 사민주의가 뭐냐면, 좀 사람이 양심적이고 그래서 그 사람이 법도 굉장히 공정한 법을 만들어 내고 경찰도 공정하고, 정보기관도 공정하고, 법원도 공정하고, 깨끗한 사람이 들어오면 소득분배를 공정히 하면 모두 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느냐? 자꾸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게 엉터리예요! 그게 안 된다고요. 자본가계급이 재산을 가지고 있는 한 소유주가 그놈인 한 안 되는 거예요.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주어야 하는데 안 내주잖아요. 삼성 전부 그런 거예요.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잖아요. 삼성은 자기 멋대로 한다고요. 그놈들 없애야 하잖아요. 없애려면 맑스가 얘기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그런 상태의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노예로 살아간다고요. 맑스가 ‘자본주의에서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들은 임금노예다.’ 이랬어요. 임금에 딱 매여 있잖아요. 임금 못 받으면 죽잖아요. 그게 임금노예야. 자유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임금노예 상태에도 벗어나서 공장을 전부 차지하고, 함께 경영을 하고 모두가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일할 마음이 확 나는 거야. 자율적으로 능동적으로 엄청나게 일을 해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 같이 하는 일이니까 피곤하지도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모쪼록 여러분 투쟁이 그리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수행,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 

     

     

     

    *2015년 6월 26일 재능교육투쟁 거리 강연은 김수행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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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4주기 : 기억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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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선생 4주기

    기억과 추모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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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민족해방전쟁의 불가능성

  •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민족해방전쟁의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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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지금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즉 우리가 전쟁 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치더라도, 전쟁이 일단 일어난 마당에 적이 나라를 침략한 마당에 그러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어 적에게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독일인을 러시아인에게, 프랑스인과 벨기에인을 독일인에게, 세르비아인을 오스트리아인에게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사회주의의 원칙인 민족자결권은 각 민족이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지킬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말하지 않았던가? 제 집이 불타고 있으면, 방화범을 가려내는 것보다는 우선 그 불을 꺼야하지 않는가? “불타고 있는 집”이라는 주장은 여기 저기에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태도에서 큰 역할을 했다. 중립국가들에서도 그것은 학설을 만들었다. 즉, 네덜란드로 넘어가서는, 배에 물이 새고 있으면 우선 그 구멍을 막아야하지 않는가?라고.

     

    확실히, 외부의 적에 항복하는 민족은 내부의 적에 항복하는 당만큼이나 수치스럽다. 그런데 “불타고 있는 집”의 소방관들은 단지 한 가지를 잊었다.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조국 방어는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의 명령 아래 포탄받이 역할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먼저 그러한 “침략”과 관련해서, 이것이 정말 마치 대단한 마법사가 축출하고 마비시켜버린 마냥 나라 안의 모든 계급투쟁이 그 앞에서는 꼼짝없이 사라져버릴 정도의 그런 공포의 화신이란 말인가? 부르주아 애국주의와 계엄령의 경찰이론에 따르면, 모든 계급투쟁은 국방이라는 이해관계로 볼 때 하나의 범죄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의 방어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약화시키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아우성에 공식적인 사회민주당은 위축되었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의 현대 역사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침략은 지금 그려지듯 그러한 공포중의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적”에 대항해 우선적으로 활용되는 효과적 수단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부르봉왕가와 귀족들이 자코뱅에 대항해 그러한 침략을 나라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오스트리아의 교권 국가적 반혁명이 1849년 로마에 대항해 프랑스의 침략을, 부다페스트에 대항해 러시아의 침략을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프랑스에서 “질서의 당”이 1850년 국민회의를 길들이기 위해 코사크인의 침입을 가지고 위협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1871년 5월 18일 쥘 파브르, 티에르등과 비스마르크 사이에 체결된 그 유명한 조약을 통해서, 포로가 된 보나파르트 군대를 석방하고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코뮌 진압을 직접 지원한다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던가? 45년 전에 칼 맑스에게는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민족전쟁”은 속임수임을 폭로하기에 이러한 역사적 경험만으로도 충분했다.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파리코뮨의 몰락에 대한 그의 연설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는 엄청난 전쟁이 있은 뒤 승리한 군대와 패배한 군대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를 격퇴하기 위해 연합한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은 비스마르크가 믿는 것과는 달리, 부상하는 새로운 사회를 최종적으로 억눌렀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철저한 파편화를 증명한다. 낡은 사회가 여전히 행할 수 있던 최대로 영웅적인 도약은 민족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오직 계급투쟁을 밀어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계급투쟁이 내전으로 불붙자마자 한켠으로 비켜서 버리는 순전한 정부의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계급투쟁은 이제 더 이상은 어느 한 민족국가의 군복 아래에 자체를 숨길 수가 없다. 민족국가 정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항해서는 하나이다!”i[강조 –R.L.]

     

    침략과 계급투쟁은 그래서 부르주아 역사에서는, 공식적인 전설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대립항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수단이자 표현이다. 지배계급에게 있어 침략이 계급투쟁에 대항한 효과적 수단이라면, 떠오르는 계급에게는 항상 가장 첨예한 계급투쟁이 침략에 대항한 최선의 수단임이 증명되었다. 근대의 문턱에 이미, 도시들의 수많은 내적 변화와 대외적인 적대관계로 점철된 도시의 역사, 특히 이탈리아 도시들, 호엔스타우펜왕가ii에 대항해 100여 년 동안 싸웠던 밀라노, 플로렌스의 역사는 이를 보여주었다. 내부적인 계급투쟁의 위력과 격렬함 때문에 외부에 대항한 그 공동체의 방어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한 투쟁의 존재가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충돌에 저항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고 막강한 불꽃을 제공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고전적인 예는 프랑스대혁명이다. 1793년 프랑스에서는 그 심장인 파리가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때 연합된 유럽의 해일에 직면한 프랑스와 파리는 사방으로부터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가는 위험과 적의 침략에 맞서 전례없는 투쟁으로 위대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적들의 새로운 연합에 맞서 마르지 않는 투쟁의지의 새로운 기적으로써 타격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은 거대한 계급대립 상태에서 사회 내부 역량들이 무제한적으로 방출된 덕분이었다. 오늘날 한 세기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적들의 세계에 맞서 그러한 대립의 가장 첨예한 표현만이, 파리 민중의 독재와 그 가차없는 과격함만이 갓 태어난 부르주아 사회를 방어하고 공고히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단과 역량을 국가의 지반으로 다져낼 수 있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왕조의 계략, 귀족들의 매국적 음모, 승려계급의 획책, 방데봉기iii, 장군들의 배신, 60개의 현과 지방수도들의 저항에 맞서, 그리고 유럽 왕당파연맹의 연합군대와 전함에 맞서. 수 백년이 증명하듯이 민중의 자의식, 희생정신과 도의적 역량을 흔들어 일깨우는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항해 나라를 지키는 최선의 보호와 방어는 계엄령이 아니라 가차없는 계급투쟁이다.

     

    그와 동일한 비극적인 오류가 사회민주당이 민족자결권을 이 전쟁에서 그들 태도의 근거로 거론할 때 일어났다. 사회주의는 각 민족에게 독립과 자유의 권리, 지속적인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러한 민족자결권의 표현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진정한 조롱일 것이다. 이 나라들 가운데 어느 나라에서 지금까지 민족이 그 나라의 국가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현존의 형식과 조건을 결정했는가?

     

    독일민족의 자결권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라 주장하든 간에, 1848년 민주주의자들이,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선구자인 맑스, 엥겔스 그리고 라살레가, 베벨과 리프크네히트가 예고하고 옹호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는 대독일 단일공화국iv이다. 이러한 이상을 놓고 3월의 투사들은 비엔나와 베를린의 바리케이트 위에서 피흘렸고, 이 강령의 실현을 위해 맑스와 엥겔스는 1848년 프로이센이 러시아 차르와 전쟁을 하도록 강제하려 했다. 이 민족 강령의 성취를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조직화된 부패 더미”, 즉 합스부르크왕정의 해체였고, 프로이센 군사정권의 폐지와 독일 내의 20 여개에 해당하는 난장이 왕국의 폐지였다. 독일혁명의 실패로, 즉 독일 부르주아지가 그 자신의 민주주의적 이상을 배반함으로써 비스마르크의 통치가 초래되었고, 자칭 독일제국이라는, 하나의 프로이센식 투구아래 20 여개의 작은 나라를 거느린 대프로이센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독일은 3월 혁명의 무덤 위해, 독일민족의 자결권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터키의 유지라는 목적 이외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지와 프로이센 군사왕정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번 전쟁은 3월의 희생자들과 독일의 민족강령을 다시 매장하는 것이다. 1848년 애국자들의 상속자인 사회민주당이 “민족자결권”이라는 깃발을 손에 들고 이 전쟁에 나서는 것은 정말 역사의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니면 설마 지구상의 네 지역에 식민지를 소유하고 두 지역에서 식민지 만행을 저지른 제3 공화국이 프랑스민족의 “자결권”의 표현이란 말인가? 아니면 인도를 소유하고 남아프리카에서 500만 유색인 인구에 대한 100만 백인의 지배체제를 가진 대영제국이 그렇단 말인가? 아니면 터키가, 차르제국이 그렇단 말인가? 식민지의 주인 종족이 인류이고, 지배계급이 민족이라고 보는 부르주아 정치가들이나 이러한 식민지 소유국가에서 대해 일종의 “민족자결권”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민족이 그 국가적 존재를 다른 민족들의 노예화에 기초한다면, 이 말의 사회주의적 의미에서는 어떤 자유로운 민족국가도 없다. 왜냐하면 식민지 민족도 그 국가의 민족에 속하고 그 국가의 구성요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평등한 민족에게 그 권리를 인정하는데, 오직 국제 사회주의만이 그러한 민족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사회주의가 있고서야 민족의 자결권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 구호도 다른 모든 구호와 마찬가지로 기성세력의 성스러운 약속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이고 변화를 유발하며 능동적인 정치를 위한 일종의 지표이자 자극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존속하는 한, 특히 제국주의적 세계정치가 국가들의 내적, 외적 삶을 결정하고 형성하는 한, 민족자결권은 평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전쟁 시기에도 그 실행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오늘날의 제국주의적 환경에서 민족방어전쟁이란 도대체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결정적인 역사적 환경을 도외시하며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나라의 고립된 관점에 따라 좌우되는 모든 사회주의 정치는 이미 사상누각인 것이다.

     

    우리는 독일이 그 적대자들과 오늘 이렇게 충돌하게 된 배경을 이미 제시해 보았다. 이때, 현 전쟁의 원래 추동력과 내적 연관을 더 자세히 조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우리당의 제국의회 원내분파와 우리당 언론의 입장표명에서 독일의 존립, 자유와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독일 제국주의가 자체의 세계정치적 목표를 통해 지난 몇 십 년동안 준비해온 그리고 1914년 여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외교가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초래한 예방적인 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이 확고하게 포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대전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정치에 대해 갖는 이 전쟁의 의미를 전반적으로 평가함에 있어 공격과 방어의 문제, 즉 “책임자”를 찾아내는 문제는 완전히 사소한 것이다. 자기방어가 독일에게 가장 덜 그럴듯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면, 프랑스와 영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방어”하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 지위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정치적 지위, 독일이라는 도전자의 공격으로 위협당한 제국주의적 소유자로서의 오랜 지위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주의의 침략이 세계 대화재를 확실히 점화했다면, 그것에 덧붙여 프랑스 제국주의는 모로코를 집어 삼킴으로써 그리고 영국 제국주의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랍지역을 약탈하려 함으로써 그리고 인도에서의 강제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모든 방책들을 통해서, 러시아 제국주의는 콘스탄티노플을 겨눈 발칸정책을 통해서 연료를 한조각 한조각 끌어 모아 쌓아올렸다. 군사적 무장경쟁이 그러한 재앙의 발발에 추동력으로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것들은 모든 국가들의 경쟁이었다. 그리고 독일이 1870년 비스마르크의 정책을 통해 유럽의 경쟁적인 군무장에 초석을 놓았다면, 프랑스의 정책은 그 이전 제2 제국의 정책을 통해 장려되었고 그 뒤에는 제 3공화국의 군사적 식민주의적 모험정책에 의해,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팽창에 의해 지원되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특히, 프랑스정부와 전체 국민은 1914년 6월에 전쟁 의도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민족방어”의 환상에 빠져들어갔다. 조레스는 전쟁 전야에 브뤼셀의 민중의 집에서 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 “프랑스에서는 오늘날 모두가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조건없이 평화에 찬성한다”고 증언했다. 그 사실은 완전히 맞고, 그래서 그 범죄적 전쟁이 자신의 나라에 강요되었을 때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느낀 분노를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세계전쟁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의 전쟁이 탄생한 역사는 1914년 7월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필연성으로 한 가닥, 한 가닥 짜여진 제국주의 세계정치의 촘촘한 그물망이 5대륙을 감싸게 된 그 몇 십년을 거슬러 오라간다. 이 그물망은 그 뿌리를 경제발달의 지각 저 깊은 곳에 두고 있고 그 외부의 가지들은 어슴프레하게 동터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손짓하는 현상들의 엄청난 복합체이다.

     

    제국주의 정치는 어떤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 발전에서 특정 성숙도의 산물이다. 그것은 국내에서부터도 국제적인 현상이자 그 모든 상호관계들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그로부터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분할될 수 없는 전체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오늘날 전쟁에서의 “민족방어”의 문제가 평가될 수 있다. 민족국가, 민족적 통합과 독립, 그것은 지난 세기 중부 유럽 부르주아 대국의 성립에 쓰인 이데올리기적 간판이었다. 자본주의는 작은 나라들의 난립을, 경제 정치적 분립을 견딜 수 없다.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되도록 거대하고 내적으로 폐쇄된 영역을 필요로 하며, 사회의 욕구들을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상승시키고 현대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메커니즘이 기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정신문화를 요구한다. 자본주의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세계경제로 완전히 성장할 수 있기 전에는 한 국가의 닫힌 국경 안에서 그러한 폐쇄적 영역을 만드려 했다. 이러한 기획은 봉건적 중세로부터 넘겨받은 정치적 민족적 체스판 위에서 오직 혁명적 방법으로만 실행될 수 있었기에 프랑스에서만 대혁명 안에서 실현되었다. 유럽의 기타 지역에서는, 부르주아 혁명 일반이 그러하듯 도중에 짜집기가 되어버렸다. 독일제국, 지금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터키의 오늘날까지의 존속, 러시아제국 그리고 대영제국은 그 점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들이다. 민족적 강령은 상승하려 애쓰는, 국가 내에서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 부르주아 계급지배가 중부 유럽 대국들 안에서 진정으로 자리잡고 그 안에서 필요한 도구들과 조건들을 창출해 낼 때까지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제국주의는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 강령에 있어 민족적 연관성을 전혀 참작하지 않고 국경 너머로 팽창함으로써, 그러한 낡은 부르주아-민주주의적 강령을 무덤 속에 완전히 파묻어버렸다. 민족의 문구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내용, 그것의 기능은 정반대로 전도되었다. 즉, 그것은 이제 제국주의적 노력의 빈약한 구실로서만, 제국주의적 경쟁의 투쟁구호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민중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포탄받이의 역할로 동원될 수 있는 유일하게 최후의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현재 자본주의 정치의 전반적 경향은 이때 막강하고 우세한 법칙으로서 개별 국가의 정치를 지배한다. 경제적 경쟁이 개별 기업가의 생산조건을 강제적으로 결정하는 듯이.

     

    잠시, 사회민주당의 정책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 “민족전쟁”이라는 허상을 점검해 보기 위해서, 오늘날의 국가 중 어느 하나의 경우 전쟁이 그 출발점에서 실제로 순수하게 민족방어전쟁으로서 시작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그렇게 해서 특히 군사적 성공은 타 지역의 점령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획득에 관심을 둔 매우 영향력 있는 자본주의 그룹이 존재하는 경우, 전쟁이 진행됨과 더불어 팽창의 탐욕이 일깨워지고, 전쟁 시작 당시에는 맹아로만 존재하거나 수면상태에 있던 제국주의의 경향은 전쟁 진행과 더불어 스스로 마치 온실 속에서처럼 성장하여 그 전쟁의 성격, 목적 및 결과를 결정하게 된다. 게다가, 지난 몇 십 년 이래 국가의 정치적 관계를 지배하는 군국주의 국가 사이의 동맹체제로 인해, 모든 교전국은 전쟁의 진행과 더불어 처음에는 순수한 방어의 측면에서 나선 동맹국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그 전쟁에 연루되고, 이로써 불가피하게 세계정치의 제국주의권과 접촉하게 되며 새로운 제국주의권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 영국은 일본을 끌어들였고, 전쟁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확대하여 중국의 운명을 현안으로 만들었으며, 일본과 미국 사이의 경쟁, 영국과 일본 사이의 경쟁을 부추겼고, 장래의 충돌에 새로운 연료를 쌓았다. 그렇게 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 터키를 전쟁에 끌어 들였고, 이로써 콘스탄티노플문제, 전체 발칸의 문제, 근동아시아의 문제가 청산을 위해 직접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세계대전은 이미 그 원인과 출발점에서 제국주의적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이러한 결과들이 초래된 이상 지금의 조건 아래서 그것은 완전히 기계적으로,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적 세계분할과정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음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 전쟁은 거의 그 첫 순간부터 이미 그러한 분할과정으로 되어버렸다. 맞서 투쟁하는 진영 사이의 역량의 끊임없이 흔들리는 균형으로 인해, 그러한 각 진영은 순수하게 군사적인 관점에서라도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대립 발생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중립국들도 격렬한 민족적- 및 국가적 이권찾기를 통해 고삐에 매어 둘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루마니아에서, 그리스와 불가리아에서, 한편으로 독일-오스트리아가, 다른 한편으로 영국-러시아가 한 “제안”을 보라. 이른바 그 “민족방어전쟁”은 매우 의외적으로 작용하여 심지어는 관여되지 않는 국가에서도 소유상태와 권력관계를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방향은 명백하게 팽창하는 쪽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 전쟁이 비록 “민족방어전쟁”으로 시작되었다하여도, 각 교전국이 상대편의 식민지를 점령하거나 적어도 그 안에서 소요를 유발하려 함으로써 순수하게 군사적인 견지에서라도 그 식민지들이 전쟁에 함께 이끌려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들 수 있다. 영국이 독일식민지를 징발한 것 그리고 독일이 영국식민지와 프랑스식민지에서 “성스러운 전쟁”을 불붙이려던 시도를 한번 보라. 바로 이러한 사실 자체는 동시에 오늘날의 그 어떤 전쟁도 자동적으로 제국주의적 세계대화재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당의 제국의회 의원과 편집진의 머리 속에 아른거리는 소박하고 유덕한 애국적인 방어전쟁이라는 개념 자체는 순전한 허구로서, 전체에 대한 그리고 그 세계적 연관성에 대한 그 어떤 역사적 이해도 결여하고 있다. 전쟁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이른바 지도적인 정치가의 엄숙한 선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의 정직한 의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회와 그사회의 군사조직 각각의 역사적 상태이다.

     

    순수한 “민족방어전쟁”이라는 도식은 첫눈에 아마도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 알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위스는 하필이면 민족국가가 아니고 게다가 오늘날 국가의 전형도 아니다. 그 “중립적인” 현존과 풍부한 민병대 자체는 주변을 둘러싼 군사대국의 잠재적 전쟁상태의 부정적인 열매에 불과하고 그 나라가 그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동안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한 중립성이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어떻게 순식간에 짓밟히는 지를 벨기에의 운명이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약소국의 상황을 보게 된다. “민족전쟁”의 예를 보여주는 정말 고전적인 표본은 바로 오늘날의 세르비아이다. 만약 어느 국가가 모든 외적 형식적인 특징을 통틀어서 민족방어권을 가진다면 그것이 곧 세르비아이다. 오스트리아에 의한 합병으로 민족적 통일성이 끝장나고, 오스트리아에 의해 전쟁을 강제당한 채 세르비아는 어느 면으로 보나 자기 민족의 존립과 자유와 문화를 걸고 진정한 민족방어전쟁을 하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 원내분파가 그들의 입장표명과 더불어 정당했다고 친다면, 베오그라드 의회에서 전쟁에 반대해 항의하고 전쟁차관을 거부했던 세르비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말로 자기 나라의 생사의 이해관계에 대한 배반자들이 되는 셈이다. 사실 세르비아의 랍췌비취와 카츨레로비취는 국제사회주의의 역사에 황금글씨로 자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진정한 연관에 대한 예리한 역사적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자신의 민족의 계몽에 가장 훌륭한 공헌을 했다. 세르비아는 물론 형식적으로만 민족방어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왕가와 지배계급의 경향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국경에 구애됨이 없는 팽창을 지향하고 이를 통해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세르비아의 그 경향은 알바니아해안을 향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세르비아는 알바니아의 등 뒤에서 이탈리아와 진정 제국주의적 경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는 세르비아의 외부에서, 즉 강대국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의 배후에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세르비아 자체는 세계정치라는 커다란 체스게임에서 체스말의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커다란 연관성과 전반적인 세계정치적 배경을 도외시하고 세르비아에서의 전쟁을 판단하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자체만 분리해서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젊은 발칸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아주 정당하게 민족국가라는 오래된 민주주의적 강령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발칸을 제국주의적 세계정치의 초점이자 경쟁지역으로 만든 실제적인 역사적 연관성 속에서는 발칸전쟁들도 객관적으로 전반적 대결의 파편 하나에 불과하며, 치명적인 필연성으로 오늘의 세계대전을 초래한 사건들의 불운한 사슬 중 하나의 연결고리에 불과할 뿐이다. 국제 사회민주당 역시 발칸전쟁에 대한 어떤 도덕적 정치적 동조로 결연히 거부하고 그 전쟁의 진정한 외양을 폭로한 점에 대해 바젤에서 발칸 사회주의자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 사회민주당은 그 당시 이미 오늘날 전쟁에서 독일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갖게될 태도를 미리 심판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작은 국가들은, 예를 들어 네덜란드도 그 발칸국가들과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 “배에 물이 새면, 무엇보다 먼저 새는 곳을 막을 궁리를 해야 한다.” 작은 네덜란드에서 이 순수한 민족방어, 나라의 존재와 독립의 방어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 수 있겠는가? 홀란드 민족의 그리고 그 지배계급 자체의 의도를 놓고 보면, 물론 순수한 민족방어가 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 인식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어느 한 나라의 주관적 의도에 따라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치적 상황의 총체적인 복합체에서 국제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한다. 네덜란드도 원하든 원치 않든 오늘날 세계정치와 외교라는 톱니바퀴 전체에서 작은 톱니 하나에 불과하다. 이점은 네덜란드가 이 세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실제로 휘말려 들어간다면 당장 분명해질 것이다. 네덜란드가 전쟁을 치른다면 저절로 그것의 현재 소유물의 유지를 지향하게 될 것이고, 북해연안의 플랑드르민족의 방어와 민족독립성은 구체적으로 동인도제도에 있는 말레이에 대한 그 자체의 지배권과 착취권을 방어하는 것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즉, 네덜란드의 군사주의는 의지할 데 없이 혼자서는 세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호두껍질처럼 산산조각나고 말 것이다. 네덜란드는 또한 원하든 원치 않든 투쟁하는 대국들의 공범의 하나가 될 것이고, 이러한 측면으로도 순수하게 제국주의적 경향들의 담지체이자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오늘날 제국주의의 역사적 환경은 다시 각국들에서 전쟁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오늘날에 민족방어전쟁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카우츠키도 몇 년 전인 1907년 라이프치히에서 그의 팸플릿 『애국주의와 사회민주당』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애국주의가 두개의 완전히 다른 것이고, 바로 정반대의 현상이라면, 그래도 그 두 종류의 애국주의가 심지어 하나의 전쟁에서 공동으로 작용하도록 함께 흘러들어갈 수 있을 그런 상황이 존재한다.

     

    한 민족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적 독립과 자주성에 있어, 다른 민족에 의한 어떤 종류의 억압과 착취라도 극복하고 방지하는 데서 똑같은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한 노력들로부터 싹트는 민족투쟁이 일어났을 때 항상 프롤레타리아트의 애국주의는 부르주아지의 애국주의와 합치되었다. …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세력이 된 이래, 즉 국가에 더 큰 동요가 일어날 때마다 지배계급에게 위험스런 그러한 세력이 된 이래에는, 1871년 파리코뮨과 러시아-터키 전쟁 뒤 러시아 테러리즘이 보여주듯이 전쟁 끝에 혁명발생의 위협이 있게 된 뒤에는, 전혀 자립적이지도 통일되지도 않은 또는 충분히 그렇지 않은 그러한 나라의 부르주아지 마저도 그들의 민족적 목표가 정부의 전복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다면 그 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민족의 자립과 위대함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혁명을 증오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폴란드의 자립을 포기했고, 이미 한 세대 전에 멸망에 들어서는 듯 보였던 오스트리아와 터키 같이 케케묵은 국가구조가 존속하도록 했다.

     

    이렇게 유럽의 문명화된 지역에서 민족투쟁은 혁명이나 전쟁의 원인이길 멈추었다. 그곳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나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그러한 민족문제는 앞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뒤에야 해결될 수 있다. 그때에는 그러한 문제들이 국제적인 연대 덕분에, 오늘날의 착취와 억압사회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제로 투쟁이 일어날 때 더 이상 그런 문제에 전념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온 힘을 다해 다른 문제를 다뤄야 한다.” (12-14쪽)

     

    “그 동안에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와 부르주아 애국주의가 제 민족의 자유의 방어를 위해 단결하게 될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든다.”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차리즘과 단결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약화되었기에 서유럽의 자유에 더 이상의 위험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르주아 애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가 단결할 수 있을, 민족 자유의 방어를 위한 전쟁은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다.”(15/16쪽) [강조-R. L.]

     

    “아직 19세기에만 해도 몇몇 자유주의적 민족이 그 이웃에 맞서 전쟁으로써 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러한 대립이 이제 중단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오늘날의 군사주의가 중요한 민족 이해의 쟁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윤의 쟁취를 위해 적용됨을 보았다. 정작, 그 누구로 부터도 위협받지 않는 자기 민족의 독립성과 신성불가침의 확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이윤의 촉진에 기여하는 해외정복의 강화와 확장을 위해서. 오늘날 국가의 대립은 프롤레타리아 애국주의가 가장 결연히 맞싸워야할 그러한 전쟁을 더 이상 초래할 수 없다.” (23쪽) [강조 – R. L.]

     

    그 모든 것들로부터, 오늘의 이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실천 행동과 관련해서 도대체 어떤 결론이 얻어질 수 있는가? 이 당은 설마,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라서, 이 국가가 사회주의적 민족자결권과 민족적 이상v에 부합하지 않아서, 그래서 우리는 이와 무관하고 그러므로 적에게 나라를 희생시킨다고 선언해야 했을 것인가? 수동적으로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사회민주당과 같은 그러한 혁명당의 행동 지침이 될 수 없다. 지배계급의 지휘 아래 기존의 계급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아니라, 그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마다 지배계급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회초리를 때리는, 그 위기를 그것 자체 이상으로 몰아가는 독립적 계급정치를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로서 사회민주당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전쟁에 민족방어라는 허구적인 외투를 입혀주는 대신에 바로 그 민족의 자결권과 민족방어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때이다. 그것들을 제국주의전쟁에 맞서 혁명의 지렛대로 이용해야 한다. 민족방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민족이 방어를 스스로의 손으로 담당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민병이다. 이는 국민 가운데 모든 성인남자의 즉각적인 무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전쟁과 평화에 대해 민중이 결정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더 나아가서는 모든 정치적 권리박탈의 즉각적인 폐지를 의미한다. 최대의 정치적 자유가 민족방어의 기초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한 민족방어대책을 선언하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민주당의 첫 번째 과제였다. 40여 년 동안 우리는 민중과 지배계급에게, 조국을 진정으로 방어하고 패배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민병뿐임을 증명해왔다. 그리고 이제 첫 번째의 커다란 시험대에 오른 지금, 우리는 국방을 완전히 자명하다는 듯이 상비군들의 손에, 지배계급의 회초리 아래 있는 포탄받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우리의 제국의회의원들은 조국의 진정한 방어에 대한 ‘열렬한 희망’과 더불어 이러한 포탄받이를 전쟁터까지 동행했다. 그럼으로써, 프로이센의 왕립 상비군이 국가의 가장 위급한 순간에 그 진정한 구원자라고 그냥 인정해 버림으로써 우리의 정치 강령의 축인 민병을 그들은 깨끗이 희생시켜버렸다. 우리가 40년 동안 해온 민병에 대한 선동의 실제적인 의미를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다. 그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교조적-유토피아적 변덕으로 만들어버렸으면서도 확실히 이의원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깨닫지도 못했다.1*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거장은 조국방어를 다르게 이해했다. 1871년 프롤레타리아트가 프로이센 점령하의 파리에서 무기를 손에 들자, 맑스는 그 행동에 열광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낡은 정부 권력의 중심이자 소재지, 그리고 동시에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중심인 파리가, 그 파리가, 제국 체제로부터 넘겨받은 낡은 정부권력을 재건하고 영구화하려는 티에르와 그의 건달호족의 시도에 대항해 무장봉기를 했다. 파리는 오직 점령의 결과로 군대가 없어지고 그 대신 주로 노동자로 이뤄진 민중군이 창설되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이제 하나의 지속적인 제도 속에 변화시켜야 했다. 코뮌의 첫 번째 법령은 상비군을 금지하고 이를 무장한 민중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뮨이 프랑스 사회의 모든 건강한 인자의 진정한 대표자였다면, 그래서 진정한 민족정부였다면, 그래서 그것은 동시에 노동자정부로서, 노동해방의 용감한 선구자로서 그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국제적이었다. 2개의 프랑스지방을 독일에 합병한 프로이센 군대의 눈앞에서 코뮌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프랑스에 합병했다.”(인터내셔널대회 연설)vi [강조 - R.L.]

     

    그리고 우리의 노련한 거장들은 오늘의 이 전쟁과 같은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던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92년, 큰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맡을 정치의 윤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와 프랑스가 독일을 침략하는 그런 전쟁은 독일에게 생사가 걸린 투쟁일 것이고, 그 민족적 존재는 오직 혁명적 조처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부는 강제되지 않는 한 혁명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정부가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거나, 비상시에는 심지어 이 정부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당, 즉 사회민주당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가 1793년에 우리에게 보여준 위대한 모범을 잊지 않았다. 1793년의 10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차르의 정복욕과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국수주의적 조급함이 독일사회주의자들의 의기양양하지만 평화스런 전진을 가로막는다면, 이들은, 확신해도 좋다, 오늘날의 독일프롤레타리아들도 100년 전 프랑스의 상퀼로트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그리고 1893년도1793년에 필적될 수 있을 것임을 전세계에 증명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면 콘스탕씨의 병사들이 독일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라마르세예즈vii의 가사로써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뭐라고, 이 낯선 군대가 우리에게 비열한

     

    폭력을 우리 집 안에서 행사한다고?viii

     

    요컨대, 평화는 약 10년 안에 독일사회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한다. 전쟁은 2년이나 3년 안에 그 당의 승리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완전한 폐허를 초래할 것이다, 적어도 15년에서 20년에 걸친 폐허를.”ix[강조 - R.L.]

     

    이 글을 쓸 때 엥겔스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옛날의 그 차르제국을 눈앞에 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뒤 거대한 러시아혁명x을 경험했다. 게다가 그는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공격에 직면한 침략당한 독일의 진정한 국가방어전쟁을 생각했다. 진정한 투사들이 그 발전속도를 대부분 과대평가하곤 했듯이, 그는 결국 독일에서 상황의 성숙과 사회혁명에 대한 전망을 과대평가했다. 그의 상세한 설명으로부터 특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엥겔스가 사회민주당 정치의 의미에서 국가방어를 프로이센-융커체제의 군사정부와 그 총사령탑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자코뱅주의자들의 모범을 따른 혁명적 행동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큰 역사적 위기에서 자신의 나라를 방어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 제국의회분파의 중요한 실책은 바로, 그것이 1914년 8월 4일에 “우리는 우리 조국을 위험의 순간에 외면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말을 부인한데 있다. 그것은 가장 최대의 위험의 순간에 조국을 외면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조국에 대한 제일의 책무는,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의 진정한 배경을 보여주는 것, 이 범죄가 조국을 뒤덮는데 사용된 애국주의적이고 외교적인 거짓말의 직조물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독일민족에게 승리는 패배만큼이나 불운한 것이라고 큰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 것, 계엄령을 통한 조국의 결박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 민중이 즉각적으로 무장할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결정할 필요성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민중대표가 정부를 주의 깊게 통제하고, 민중이 민중대표를 통제하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전쟁기간동안 민중대표 상임회의를 힘차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민중만이 자기 나라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정치적 권리박탈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와 터키, 즉 유럽반동을 유지하려는 전쟁의 제국주의적 강령에 대항해, 1848년의 애국주의자와 민주주의자들의 오래된 진정한 민족강령을, 맑스와 엥겔스와 라쌀레의 강령을, 대독일 단일공화국의 구호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그 나라에 내세워야 했을, 진정 민족적이고 진정 진보적이었을 그 깃발이었다. 독일의 최상의 전통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정치와도 일치했을 깃발이었다.

     

    세계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순간은 결연한 정치적 실행, 포괄적이고 대규모의 입장표명, 나라의 탁월한 방향설정을 명백히 요구했고, 이를 제시할 소명을 가진 것은 오직 사회민주당뿐이었다. 그러기는 커녕 그 순간에 발언했던 노동자계급 의회대표들의 처참하고 전례는 패배가 결과되었다. 사회민주당은 그 지도자들 덕분에 틀린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정책도 펼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관을 가진 특별한 계급당으로서 완전히 스스로를 배제해 버렸고, 나라를 아무 저항 없이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의 불운에 그리고 내부에서는 군홧발 독재의 끔찍한 불운에 희생시켜버렸으며, 게다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말았다. 제국의회 원내분파의 선언은 국방을 위한 수단만을 승인했다고 말하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은 거부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정반대가 진실이다. 이러한 ‘방어’를 위한, 즉 군사왕정의 군대가 자행하는 이러한 제국주의적 인류 학살을 위한 수단은 사회민주당이 승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민주당의 손에 전혀 달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수당으로서 이것은 부르주아 제국의회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빈틈없는 다수에 대립해 있었다. 자발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사회민주당의 제국의회 원내분파는 오직 한가지만을 성취했다. 그것은 전쟁에서 전국민의 단합의 과시, 당쟁중지의 선언, 즉 계급투쟁의 중단, 전쟁에서 사회민주당의 반대정치의 해체, 그러니까 전쟁에 대한 도덕적인 동반책임이었다. 그 수단을 자발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이 전쟁수행에 민주주의적 조국방어라는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조국방어의 진정한 조건들과 과제들과 관련해 대중을 오도하도록 지원하고 확증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제국의회의원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제국주의 전쟁 진영으로 가도록 만든 조국의 이해관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연대 사이의 그 중대한 딜레마, 그 비극적인 대립은 순수한 환상이자, 부르주아-민족주의의 허구이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의 계급이해와 국가이해들 사이에는 평화 시와 마찬가지도 전쟁 시에도 완전한 조화가 존재한다. 즉, 양자 모두는 계급투쟁을 정력적으로 전개할 것과 사회민주적 강령을 강력하게 대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당은 전쟁 반대를, 그 요구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했을까? 대대적 파업xi을 선언해야 했을까? 아니면 병사들의 복무거부를 권유해야 했을까? 보통은 이렇게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한 질문에 긍정으로 답하는 것은 당이,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혁명을 만들 것이다’고 결정하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혁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대한 민중운동들이 당관할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기술적 처방으로 획책되는 것도 아니다. 작은 음모자 서클은 어느 특정일 특정 시간에 쿠데타를 ‘준비할’ 수 있고, 몇 십 명의 추종자들에게 필요한 순간에 ‘개시’ 신호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적 순간에 대중운동은 그와 같은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이끌어질 수 없다. ‘가장 잘 준비된’ 대대적 파업이라도 경우에 따라서 당장, 당 수뇌부가 그것에 ‘신호’를 내리면, 한심하게 실패하거나 시작되자마자 무너질 수 있다. 큰 민중시위와 대대적 파업이 그 어떤 형식이든 실제로 발생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수많은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심리적 요인들이다. 계급대립 각각의 긴장이며, 대중의 계몽수준이고 그 투쟁기운의 성숙도이다. 그런데 그러한 성숙도는 전혀 예측될 수 없고 그 어떤 당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잘 규율 잡힌 당이 평화 시에 ‘관할 부서’의 박자에 맞춰 깔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잘한 과시적 행동과 역사의 대위기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이다. 역사적 순간은 항상 그에 상응한 민중운동 형태를 요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전에는 몰랐던 투쟁수단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당의 지시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민중의 병기고를 정리하고 풍부하게 한다.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이 계급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로서 제공했어야 하는 것은 기술적 성격의 한심한 지시나 처방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과제와 이해관계에 관한 정치적 구호, 정치적 명료함이었다. 러시아혁명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대중운동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그 발생을 명령하고 또 그 비용을 계산하여 치른다는 의미에서 대대적 파업을 지도하는 것이 그 혁명시기 자체라면, 그렇다면 그 대신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그것을 지도하는 것은 사회민주당과 그 지도기관의 몫으로 돌아온다. 사회민주당은 대대적 파업의 기술적인 측면 때문에, 그 메커니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대신 혁명시기의 한가운데에서 정치적 지도를 떠안을 사명이 있다. 투쟁에 구호와 방향을 제공하는 것, 그 어느 시기, 그 어느 순간에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하는, 막 방출되기 시작한 그리고 활동하는 세력의 총합이 실현될 수 있도록 또 어떤 투쟁 위치에서도 그 결연함이나 강도에 있어 사회민주당의 전술이 결코 실제의 권력관계보다 수준 이하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계보다 훨씬 더 앞서감이 표현되도록 그렇게 정치투쟁의 전술을 세우는 것, 이것이 대대적 파업 시기에 ‘지도xii’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지도는 어느 정도는 저절로 기술적인 지도로 변화된다. 사회민주당의 일관되고 결연하며 전진을 도모하는 전술은 대중 속에서 안정감과 자신감과 투쟁기운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동요하고 허약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과소평가하는 것에 기반을 둔 전술은 대중을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첫 번째 경우에는 대대적 파업이 ‘저절로’ 그리고 항상 ‘제때에’ 일어나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이와 달리 지도부가 대대적 파업을 직접 권유하는 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xiii

     

    행동의 외적이고 기술적인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치적인 내용이 문제라는 점은, 예를 들어 의회 연단은, 만약 사회민주당 대리자들이 이러한 위기에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와 임무와 요구사항을 소리 높혀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서 활용하기만 했다면, 유일하고 자유로우며 계속 경청되고 국제적으로 주목될 수 있는 위치로 민중을 일깨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잘 보여준다.

     

    사회민주당의 이러한 구호에 대해 대중이 그들의 행동을 통해 무게를 실어주었을까? 아무도 그점에 대해 성급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 의회의원들은 전쟁차관을 승인하기 전에 프로이센-독일군대의 장군들로부터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패배는 배제되어 있다는 이상한 확약을 사전에 받아두지 않고도 ‘맹신하며’ 자신을 전쟁에 끌어들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가? 군대에게 해당되는 것은 혁명군대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사전에 승리의 확신을 요구하지 않고도 전투가 있는 곳에서는 전투에 임한다. 최악의 경우는 당의 목소리에 가시적인 작용이 전혀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 최대의 박해는, 1870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에게 그랬듯이, 아마도 우리 당의 용감한 태도에 대한 포상일 것이다. 1895년 이그나츠 아우어는 세당기념식에 관한 그의 연설에서 말하기를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당은 어떤 위험도 개의치 않고 자체의 원칙을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만약 이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끝장일 것이다!”xiv

     

    노장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언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흐름이 엄청난 나이아가라폭포의 속도와 힘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정말로 작은 일이 아니다.

     

    나이든 동지들에게는 아직도 가장 깊은 ‘민족 치욕’의 해인 1878년의 사회주의자 사냥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때 수 백만의 사람들은 사회민주당원들을 1870년에  조국배반자이자 철천지원수로 여겨졌던 것처럼 이제 살인자와 야비한 범죄자로 보았다. ‘인심’의 그런 폭발들은 그 엄청난 자연력으로써 당황시키고, 마비시키며, 우울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다. 더 높은 힘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떤 의혹도 배제된 진정 거대한 힘 앞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반대자도 없이. 그것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이 사람들 속에, 공기 속에, 도처에 존재한다.

     

    그러나 1878년의 폭발은 그 강도나 격렬함에 있어서 1870년의 그것과 전혀 비교될 수가 없었다. 닥치는 대로 내리치고 깨부수는 인간 격정의 이러한 대폭풍 뿐만 아니라, 게다가 완전하고 가장 무서운 활동을 수행하는 군사주의의 무시무시한 도구들, 그리고 접촉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회전하는 강철톱니바퀴 사이의 우리들, 우리 둘레를 빙빙 돌며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강철 팔 사이의 우리. 그러한 풀려난 유령의 자연력 외에도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완성된 살인기술 메커니즘. 그리고 모든 것이 가장 난폭하게 작동했다. 모든 보일러가 터질 듯이 가열되어 있었다. 이때 개별적인 힘이, 개별적인 의지가 어디에 있는가? 특히 한 줌의 소수에 불가하고 민중 자체에 그 어떤 확고한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당은 겨우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필요한 조직이 갖춰지기도 전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시험에 빠졌었다. 사회주의자 몰이사냥이 일어났을 때는, 즉 우리의 적에게는 치욕의 해이자 사회민주당에게는 영광의 해였던 그해에는, 우리는 이미 폭넓게 가지를 친 매우 강력한 당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든든한 배경을 가졌다는 의식으로 힘을 얻었고 이성을 가진 자라면 그 누구도 당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다.

     

    이렇듯 그때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했는가? 해야될 일은 해야만 했다. 그때에는, 이를 악물고 당당히 맞서자고 말했다.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여하튼, 베벨과 나는… 한순간도 그 경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퇴각할 수 없었고, 의연히 제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올 테면 와봐라 하고.”xv

     

    그렇게 그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그때 적들로 가득 찬 세상에 맞서 그들이 동원했던 그 도덕적 힘으로 독일사회민주당은 40년을 살아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되었을 텐데. 처음에는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명예가 구제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 참호 속에서 밤낮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흐릿한 정신적 혼란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일생에 가장 충실한 것이었던, 국제적이고 민족해방적인 사회민주당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섬광을 담고 죽어갔을 거라는 것 외에는. 그러나 우리당의 용감한 목소리는 국수주의적 도취에 대한 그리고 군중의 몰지각에 대한 강력한 제동기로 작용하여 계몽된 민중이 그러한 혼망에 빠지지 않도록 막았을 것이고, 제국주의가 민중을 중독시키고 우둔하게 만드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사회민주당에 대항한 바로 그 십자군원정이 민중을 가장 빨리 깨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쟁이 계속 진행되면서 끊임없는 잔혹한 대량학살에 대한 참회가 모든 나라에서 커질수록, 전쟁의 제국주의적 말발굽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피에 굶주린 투기꾼의 장바닥 같은 소란이 더 염치없어질수록 그 만큼 모든 생동적인 사람들, 진솔한 사람들, 인간적인 사람들, 진보적인 사람들이 사회민주당의 깃발 주위로 모여들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사회민주당은 그 전반적인 소용돌이, 붕괴와 파멸 속에서 마치 거세게 출렁이는 바다 위의 바위처럼 인터내셔널의 드높은 등대로 남아 있었을 테고, 그것을 향해 곧 모든 다른 노동자 당도 방향을 잡았을 텐데. 독일사회민주당이 1914년 8월 4일까지 전체 프롤레타리아 세계에서 향유했던 거대한 도덕적 권위는 이러한 전반적인 혼미 속에서도 단기간에 변화를 초래했을 텐데. 그렇게 해서 평화기운과 민중의 평화에로의 압력이 모든 나라들에서 떠올랐을 것이고, 대량학살의 종식이 가속되고, 희생자 수가 감소되었을 텐데. 그렇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의 등대지기로 인류의 해방자로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라쌀레의 제자들로서 부끄럽지 않았을 애국적인 일일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독일사회민주당의 위기 [유니우스 팸플릿]」(Die Krise der Sozialdemokratie [Junius-Broschu're]), 1915년 4월)

     

    <주>

     

    1* 뮌헨의 당 기관지는 8월 6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민주당 제국의회 원내분파가 지금 한 목소리로 전쟁차관을 승인한 것, 독일제국의 방어를 위해 나선 모든 이들에게 승리의 열렬한 염원을 함께 빌어준 것은, 그렇게 해서 그것은 일종의 ‘전술적인 행보(taktischer Zug)’가 아니었다. 그것은 파렴치한 침략에 맞선 국방의지보다는 오히려 계급지배의 표현처럼 보였던 체제 대신에 민중군대(Volksheer)을 국방을 위해 내세울 준비가 되어 있던 한 당의 태도에서 나오는 전적으로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보였던 이라니!! –『새시대』에서는 심지어 오늘의 전쟁을 곧바로 ‘민족전쟁(Volkskrieg)’으로, 상비군을 ‘민중군대(Volksheer)’로 승격시켰다(1914년 8월/9월의 제 20호와 23호를 참조.) – 사회민주당의 군사저술가 휴고 슐츠는 1914년 8월 24일의 전쟁보도에서, 합스부르크 군대 안에 ‘살아’ 있다는 ‘강력한 민병정신(Milzengeist)’에 대해 칭찬했다!

     

     

    29.6.-Soldatenmissbrauch_Der-Wahre-Jacob_Sozialdemokratie1914-712x1024.jpg

    i Karl Marx, “Der Bürgerkrieg in Frankreich,”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17, S.360/361

     

    ii Hohenstaufen

     

    iii Vendée 봉기, 프랑스대혁명당시 프랑스의 방데지역에서 왕당파와 카톨릭 승녀의 주도 하에 농민이 일어킨 반혁명봉기. 혁명정부에 의해 유혈진압되었다.

     

    iv Die einige großdeutsche Republik

     

    v nationale Ideal (민족적 이상), 원저에는 ideale Nation(이상적 민족)으로 되어 있다.

     

    vi Karl Marx, “Der Bürgerkrieg in Frankreich(프랑스 내전),”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17, S.338, 346

     

    vii La Marseillaise 프랑스 국가

     

    viii Quoi, ces cohortes étrangères

    Feraient la loi dans nos foyers!

    Wie, soll dies fremde Heer uns schnöde

    Gewalt antun am eignen Herd?

     

    ix Friedrich Engels,“Der Sozialismus in Deutschland(독일에서의 사회주의),” in :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Werke, Bd. 22, S.255/256

     

    x 1905년의 러시아혁명을 말함

     

    xi Massenstreik

     

    xii Leitung

     

    xiii R. Luxemburg, Massenstreik, Partei und Gewerkschaften(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Hamburg 1907. In: Rosa Luxemburg Gesammelte Werke, Bd.2, Berlin 1972, S.133/134

     

    xiv I. Auer: Sedanfeier und Sozialdemokratie, S.6

     

    xv W. Liebknecht: Der Hochverratsprozeß wider Liebknecht, Bebel, Hepner vor dem Schwurgericht in Leipzig vom 11. bis 26. März 1872(1872년 3월 11일부터 26일까지 라이프치히 배심재판소에서 이뤄진 리프크네히트, 베벨 헤프너에 대한 대반역죄 재판), Berlin 1894, S.8~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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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민족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민족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미-중 제국주의 패권 다툼과 직접 연결되었듯이한반도(동아시아혁명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성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따라서 민족문제민족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입장은 무엇보다 명확하고 단호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체제라서 자본주의 타도는 한 국가한 지역의 혁명으로는 불가능하며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국제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민족 또는 국가별로 분열시키고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난다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 노동자계급에게 자신을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다시 말해 부르주아 중 한 편 또는 제국주의의 다른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화하는 제국주의 대결 속에서아직도 민족독립(민족자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자들에 맞선 코뮤니스트 투쟁 구호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혁명적 패전주의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것’ 이다.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격돌과 전쟁에 대한 노동자계급 태도도 마찬가지다모든 민족주의를 거부하고제국주의 전쟁과 평화주의 환상을 동시에 반대하며노동자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을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여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아래는 민족주의제국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가진 국제조직(ICC, ICT)의 문서이며국제적 수준에서 우리와 원칙을 같이하기에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 공통의 입장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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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민족해방신화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를 그들의’ 조국과 동일시하도록 노력한다대대로 우리는 일자리” 위험에 처해 있고만약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자리를 잃는다는 말을 들어왔다정확히 똑같은 메시지가 전 세계 노동자에 강요된다.

 

전쟁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육할 것과 우리 계급의 형제자매를 학살할 것을 강요한다민족이란 관념은 부르주아 지배를 위한 결정적인 버팀목이다민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특징을 위장하며 마치 기존의 질서가 사람들의 공동 이익 표현인 듯이 나타난다민족주의는 항상 자신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항복을 의미한다제국주의 시대에특정한 민족 발전 가능성’ 및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과업이라는 개념은 사실무근이며 모든 의미에서 반동적이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흔히 이러한 투쟁은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은 많은 국가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기에 사실이다하지만 이 소수는 그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의 살육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이러한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다르다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성공적인 독립투쟁’ 이후새롭게 해방된 국가’ 조차 세계 경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 요구의 외부에서 발전할 수 없다우리는 맑스가 어느 정도 독립투쟁을 지지했고또한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웠다고 한없이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계적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답하고자 한다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새로운 기술 및 기계를 만드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창기에 글을 썼다이러한 배경에서맑스와 엥겔스는 봉건적이고 전()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의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자본주의의 상승 국면에서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위한 여지가 여전히 있었고그와 더불어자본주의의 미래에 무덤을 파는 역할을 할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위한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독립을 위한 여지는 제한된 경계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그것은 레닌이 아니라이 사실(제국주의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도 불구하고)을 더욱 잘 이해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이후 계속된 자본주의 발전은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입장의 정확성이 더 분명해졌다레닌은 식민지 국가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토대를 동요시키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결과로서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탈식민지화는 경제 강대국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많은 경우에오래된 식민지 독립은 미국이 오래된 식민지 강대국을 이겼던 것처럼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투쟁 결과였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정치소개)

 

 

민족해방의 반혁명적 신화

 

민족해방과 새로운 민족국가 형성은 결코 프롤레타리아의 특정 과제가 아니었다지난 세기 혁명가들이 특정한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했을 때그것은 단지 부르주아 운동에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 자명했고그런 만큼 그들은 이러한 운동을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그들이 이러한 운동을 지지한 이유는민족국가가자본주의 상승기에는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가장 적합한 틀을 표현했기 때문이고()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제한적인 잔재 파괴를 통한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 세계수준의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조건 성숙 과정에서 한 걸음 진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진입과 더불어민족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전체와 더불어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틀이 되어버렸다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국가마저도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오늘 상황에서신생국가의 법률상 성립은 어떠한 진정한 진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제국주의 블록으로 분할된 세계에서 각각의 민족해방투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실상은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이때 노동자와 농민은 강제로 참여하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든 상관없이 단지 총알받이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이는그것이 제국주의의 뿌리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동시에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그리고 이러한 분쟁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국가는 스스로 제국주의적으로 되어야만 하는데그 이유는 쇠퇴기에는 어떤 국가도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제국주의적 정치를 펼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족해방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은 단지 하나의 제국주의 지배자를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로 대치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특히 이른바 신생의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훨씬 더 국유화된 자본을 통한 착취의 강화체계화 및 군국주의화를 의미한다체제의 야만성 표현으로서국가자본은 해방된 민족국가를 일종의 거대한 강제수용소로 전환한다여러 단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이른바 제삼 세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러한 투쟁은 계급투쟁을 위한 어떤 발판도 제공하지 않는다이러한 투쟁은 항상 그 민족 자본을 위해 노동자를 애국적인’ 신비화 이름으로 동원함으로써이러한 국가에서 종종 매우 격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일종의 차단기로 작용한다지난 50년간의 역사는, ‘민족해방투쟁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주장과는 달리선진국에서도 후진국에서도 노동자의 투쟁에서 동인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전자도 후자도 그러한 투쟁을 통해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으며노동자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어떤 한 진영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충돌 속에서이러한 투쟁을 무조건’ 또는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든 입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국수주의자들의 행동만큼이나 범죄적이다그래서 그것은 코뮤니스트 활동과는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국제코뮤니스트 흐름」  강령)

 

 

제국주의

 

예전 소련과 그 동맹국은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을 구성했다그 블록의 몰락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 경쟁 산물인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명백한 전환점을 기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축적 과정에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지구적 위기로 자본 집적과 집중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말하자면 모든 국가가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부분이 되고 그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했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약한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 정책이 아니다그것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부 지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이 과정은 어떠한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지에 어떠한 민족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토착 부르주아지는 국제 자본가계급의 부분이며 전통적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인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에 걸려든다.

 

지구적 전쟁재건위기라는 지긋지긋한 순환을 가진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자 더 높은 문명형식(코뮤니즘)의 가능성이 역사적 의제로 제기되었다이는 1차 세계대전의 유혈과 폐허에서 나온 유럽과 세계 혁명 물결의 첫 부분으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1917년 10월 혁명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그러나 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그들 자신의’ 국민국가를 지지해서 프롤레타리아 상호 살육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후 봉기가 분출하는 동안 사회주의 이름으로 혁명을 철저히 억압한 제인터내셔널 대다수 당의 파산으로도 극적으로 입증했다오늘날 우리는 10월 혁명 이전 시기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과 이후 정치조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강화되는 동안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또는 절대왕정에 저항하는 운동은 유럽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결집하는 틀을 제공했으며이는 나중에 거대한 노동조합과 당 조직의 형성을 촉진했다이러한 기관에서 노동계급은 현존하는 부르주아 사회정치 관계의 틀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독자적인 계급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동시에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이 인정을 받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생활의 확립된 부분이 되었다주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결코 맑스주의 정치적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사회주의당은 맑스가 예측했던 혁명이 구체화하지 않은 채 미래 어느 날 성취될 먼 목표로 남았다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그들이 목표로 투쟁해야 할 빛나는 미래로 남았지만실천에서 그들의 전술을 규정한 전략 목표는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점점 더 의회선거, 8시간 노동단결의 자유 등이 되었다.

 

1914년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와 하나 되면서 노동계급 운동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했다이는 코뮤니스트들을 제인터내셔널(1889-1914) 동안 대중운동을 지배했던 사이비 개량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나뉘어 떨어져 나왔다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코민테른의 창설은 맑스주의 원리의 승리를 보여주었다이제 코뮤니스트 활동은 오로지 새로운 사회 건설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강령)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오로지 방어할 어떤 국가적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은 운동으로만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운동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모든 전쟁에서직접 전선의 군인으로서 또는 민간인으로서또는 국가적인 이해를 위해 더 힘들게 일하고 덜 먹도록 요구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서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전쟁의 단순히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다1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은 1917~18년의 대대적 파업과 봉기였다오직 혁명 물결이 좌절되었을 때자본주의는 제2의 세계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그리고 1960년대 말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했을 때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사실현재 충돌이 지금의 형식을 띠는 주요 이유는자본주의가 오늘날 거대 자본주의 권력 사이의 공개적인 충돌로 노동자계급을 용병으로 만들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우리를 착취하는 체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자본주의가 전쟁 속으로 질주하는 바로 그 근원경제적 번영을 전개할 수 없는 무능력그것의 위기 은 증가한 착취실업 및 사회적 비용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에 대한 끝없는 공격을 가한다전쟁을 향한 행진은 이러한 공격을 더욱 가속할 것이고피착취계급에 훨씬 더 큰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그래서 경제 위기에 대항한 불가피한 투쟁은 또한 전쟁에 대항한 투쟁이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단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것은 공격적이고 혁명적인 투쟁전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계급전쟁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그 투쟁만이 자본주의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제국주의 전쟁과 국경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인류를 이끌 수 있다.

 

착취자들과 어떠한 연대도 반대한다그들이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그들의 국적이 어디이거나 상관없이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연대를 위하여!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평화주의 환상들에 대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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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관점

 

자본주의의 전복은 하룻밤에 완료될 수 없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한 국가 혹은 영토에서 지배계급을 전복하자마자코뮤니즘을 향한 이행기는 시작된다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극복하고 파괴하는데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데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향한 첫발을 시작하는 데 정치권력을 사용해야 한다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한 혁명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하지만 국제적인 체제로서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될 수밖에 없다사회주의는 단 하나의 국가 혹은 영토에서 건설될 수 없다이른바 노동자국가’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선 정치적 범주이다그런데도 노동자국가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노동일의 단축의료 및 교육제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개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직접생산을 시도할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대책은 사회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자본가들이 위기를 어느 정도까지 다루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 지형에 유지하고 고립시키는 한그들의 지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전 세계 자본주의 상품생산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가치법칙의 강권은 유지된다고립된 파업 또는 공장점거가 한시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환경에 적대적인 노동자국가는 장기간 생존할 수 없다세계 자본주의가 군사적 수단으로 혁명적 실험을 파괴할 것인지세계 자본주의가 혁명적 실험을 엄청난 경제적 압력 아래에 둘 것인지아니면 두 가지 모두 인지이다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체제(볼셰비키 러시아에 관한 것으로서)는 자본주의의 환경 아래서 부르주아 국가와 경쟁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이것은 머잖아 자본의 축적을 두고 경쟁적인 투쟁을 하고 어떠한 사회주의의 전망도 차단한다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체제 및 코뮤니스트 세계당 최고의 우선 과제는 국제적으로 혁명 확장과 강화이다오직 자본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타도할 때만이 사회주의를 향한 진정한 단계에 착수할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정치소개)

 

 

정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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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민족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민족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자 입장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미-중 제국주의 패권 다툼과 직접 연결되었듯이한반도(동아시아혁명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성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따라서 민족문제민족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입장은 무엇보다 명확하고 단호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체제라서 자본주의 타도는 한 국가한 지역의 혁명으로는 불가능하며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국제적인 노동자계급 투쟁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민족 또는 국가별로 분열시키고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난다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 노동자계급에게 자신을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다시 말해 부르주아 중 한 편 또는 제국주의의 다른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화하는 제국주의 대결 속에서아직도 민족독립(민족자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자들에 맞선 코뮤니스트 투쟁 구호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혁명가들이 제기한 혁명적 패전주의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것’ 이다.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격돌과 전쟁에 대한 노동자계급 태도도 마찬가지다모든 민족주의를 거부하고제국주의 전쟁과 평화주의 환상을 동시에 반대하며노동자계급끼리 서로 죽이는 지배계급 간의 전쟁을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여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아래는 민족주의제국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가진 국제조직(ICC, ICT)의 문서이며국제적 수준에서 우리와 원칙을 같이하기에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 공통의 입장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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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민족해방신화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를 그들의’ 조국과 동일시하도록 노력한다대대로 우리는 일자리” 위험에 처해 있고만약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자리를 잃는다는 말을 들어왔다정확히 똑같은 메시지가 전 세계 노동자에 강요된다.

 

전쟁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육할 것과 우리 계급의 형제자매를 학살할 것을 강요한다민족이란 관념은 부르주아 지배를 위한 결정적인 버팀목이다민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특징을 위장하며 마치 기존의 질서가 사람들의 공동 이익 표현인 듯이 나타난다민족주의는 항상 자신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항복을 의미한다제국주의 시대에특정한 민족 발전 가능성’ 및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과업이라는 개념은 사실무근이며 모든 의미에서 반동적이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흔히 이러한 투쟁은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은 많은 국가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기에 사실이다하지만 이 소수는 그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의 살육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이러한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다르다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성공적인 독립투쟁’ 이후새롭게 해방된 국가’ 조차 세계 경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철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 요구의 외부에서 발전할 수 없다우리는 맑스가 어느 정도 독립투쟁을 지지했고또한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웠다고 한없이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계적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답하고자 한다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새로운 기술 및 기계를 만드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창기에 글을 썼다이러한 배경에서맑스와 엥겔스는 봉건적이고 전()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의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자본주의의 상승 국면에서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위한 여지가 여전히 있었고그와 더불어자본주의의 미래에 무덤을 파는 역할을 할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위한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독립을 위한 여지는 제한된 경계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그것은 레닌이 아니라이 사실(제국주의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도 불구하고)을 더욱 잘 이해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0세기 초 이후 계속된 자본주의 발전은 민족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 입장의 정확성이 더 분명해졌다레닌은 식민지 국가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토대를 동요시키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결과로서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탈식민지화는 경제 강대국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많은 경우에오래된 식민지 독립은 미국이 오래된 식민지 강대국을 이겼던 것처럼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투쟁 결과였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정치소개)

 

 

민족해방의 반혁명적 신화

 

민족해방과 새로운 민족국가 형성은 결코 프롤레타리아의 특정 과제가 아니었다지난 세기 혁명가들이 특정한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했을 때그것은 단지 부르주아 운동에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 자명했고그런 만큼 그들은 이러한 운동을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그들이 이러한 운동을 지지한 이유는민족국가가자본주의 상승기에는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가장 적합한 틀을 표현했기 때문이고()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제한적인 잔재 파괴를 통한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 세계수준의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조건 성숙 과정에서 한 걸음 진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진입과 더불어민족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전체와 더불어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틀이 되어버렸다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국가마저도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오늘 상황에서신생국가의 법률상 성립은 어떠한 진정한 진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제국주의 블록으로 분할된 세계에서 각각의 민족해방투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실상은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이때 노동자와 농민은 강제로 참여하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든 상관없이 단지 총알받이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이는그것이 제국주의의 뿌리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동시에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그리고 이러한 분쟁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국가는 스스로 제국주의적으로 되어야만 하는데그 이유는 쇠퇴기에는 어떤 국가도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제국주의적 정치를 펼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족해방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은 단지 하나의 제국주의 지배자를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로 대치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특히 이른바 신생의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훨씬 더 국유화된 자본을 통한 착취의 강화체계화 및 군국주의화를 의미한다체제의 야만성 표현으로서국가자본은 해방된 민족국가를 일종의 거대한 강제수용소로 전환한다여러 단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이른바 제삼 세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러한 투쟁은 계급투쟁을 위한 어떤 발판도 제공하지 않는다이러한 투쟁은 항상 그 민족 자본을 위해 노동자를 애국적인’ 신비화 이름으로 동원함으로써이러한 국가에서 종종 매우 격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일종의 차단기로 작용한다지난 50년간의 역사는, ‘민족해방투쟁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주장과는 달리선진국에서도 후진국에서도 노동자의 투쟁에서 동인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전자도 후자도 그러한 투쟁을 통해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으며노동자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어떤 한 진영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충돌 속에서이러한 투쟁을 무조건’ 또는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모든 입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국수주의자들의 행동만큼이나 범죄적이다그래서 그것은 코뮤니스트 활동과는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국제코뮤니스트 흐름」  강령)

 

 

제국주의

 

예전 소련과 그 동맹국은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을 구성했다그 블록의 몰락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 경쟁 산물인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명백한 전환점을 기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축적 과정에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지구적 위기로 자본 집적과 집중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말하자면 모든 국가가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부분이 되고 그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했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약한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 정책이 아니다그것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부 지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이 과정은 어떠한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지에 어떠한 민족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토착 부르주아지는 국제 자본가계급의 부분이며 전통적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인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에 걸려든다.

 

지구적 전쟁재건위기라는 지긋지긋한 순환을 가진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자 더 높은 문명형식(코뮤니즘)의 가능성이 역사적 의제로 제기되었다이는 1차 세계대전의 유혈과 폐허에서 나온 유럽과 세계 혁명 물결의 첫 부분으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1917년 10월 혁명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그러나 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그들 자신의’ 국민국가를 지지해서 프롤레타리아 상호 살육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후 봉기가 분출하는 동안 사회주의 이름으로 혁명을 철저히 억압한 제인터내셔널 대다수 당의 파산으로도 극적으로 입증했다오늘날 우리는 10월 혁명 이전 시기의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과 이후 정치조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강화되는 동안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또는 절대왕정에 저항하는 운동은 유럽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결집하는 틀을 제공했으며이는 나중에 거대한 노동조합과 당 조직의 형성을 촉진했다이러한 기관에서 노동계급은 현존하는 부르주아 사회정치 관계의 틀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독자적인 계급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동시에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이 인정을 받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생활의 확립된 부분이 되었다주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결코 맑스주의 정치적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사회주의당은 맑스가 예측했던 혁명이 구체화하지 않은 채 미래 어느 날 성취될 먼 목표로 남았다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그들이 목표로 투쟁해야 할 빛나는 미래로 남았지만실천에서 그들의 전술을 규정한 전략 목표는 권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점점 더 의회선거, 8시간 노동단결의 자유 등이 되었다.

 

1914년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와 하나 되면서 노동계급 운동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했다이는 코뮤니스트들을 제인터내셔널(1889-1914) 동안 대중운동을 지배했던 사이비 개량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나뉘어 떨어져 나왔다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코민테른의 창설은 맑스주의 원리의 승리를 보여주었다이제 코뮤니스트 활동은 오로지 새로운 사회 건설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국제코뮤니스트 경향」  강령)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오로지 방어할 어떤 국가적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은 운동으로만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운동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모든 전쟁에서직접 전선의 군인으로서 또는 민간인으로서또는 국가적인 이해를 위해 더 힘들게 일하고 덜 먹도록 요구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서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전쟁의 단순히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다1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은 1917~18년의 대대적 파업과 봉기였다오직 혁명 물결이 좌절되었을 때자본주의는 제2의 세계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그리고 1960년대 말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했을 때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사실현재 충돌이 지금의 형식을 띠는 주요 이유는자본주의가 오늘날 거대 자본주의 권력 사이의 공개적인 충돌로 노동자계급을 용병으로 만들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우리를 착취하는 체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자본주의가 전쟁 속으로 질주하는 바로 그 근원경제적 번영을 전개할 수 없는 무능력그것의 위기 은 증가한 착취실업 및 사회적 비용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에 대한 끝없는 공격을 가한다전쟁을 향한 행진은 이러한 공격을 더욱 가속할 것이고피착취계급에 훨씬 더 큰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그래서 경제 위기에 대항한 불가피한 투쟁은 또한 전쟁에 대항한 투쟁이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단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것은 공격적이고 혁명적인 투쟁전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계급전쟁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그 투쟁만이 자본주의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제국주의 전쟁과 국경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하나의 세계 공동체로 인류를 이끌 수 있다.

 

착취자들과 어떠한 연대도 반대한다그들이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그들의 국적이 어디이거나 상관없이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연대를 위하여!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평화주의 환상들에 대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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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관점

 

자본주의의 전복은 하룻밤에 완료될 수 없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한 국가 혹은 영토에서 지배계급을 전복하자마자코뮤니즘을 향한 이행기는 시작된다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극복하고 파괴하는데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데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향한 첫발을 시작하는 데 정치권력을 사용해야 한다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한 혁명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하지만 국제적인 체제로서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싸우고 극복될 수밖에 없다사회주의는 단 하나의 국가 혹은 영토에서 건설될 수 없다이른바 노동자국가’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선 정치적 범주이다그런데도 노동자국가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노동일의 단축의료 및 교육제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개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직접생산을 시도할 것이다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대책은 사회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자본가들이 위기를 어느 정도까지 다루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 지형에 유지하고 고립시키는 한그들의 지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전 세계 자본주의 상품생산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가치법칙의 강권은 유지된다고립된 파업 또는 공장점거가 한시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환경에 적대적인 노동자국가는 장기간 생존할 수 없다세계 자본주의가 군사적 수단으로 혁명적 실험을 파괴할 것인지세계 자본주의가 혁명적 실험을 엄청난 경제적 압력 아래에 둘 것인지아니면 두 가지 모두 인지이다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체제(볼셰비키 러시아에 관한 것으로서)는 자본주의의 환경 아래서 부르주아 국가와 경쟁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이것은 머잖아 자본의 축적을 두고 경쟁적인 투쟁을 하고 어떠한 사회주의의 전망도 차단한다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체제 및 코뮤니스트 세계당 최고의 우선 과제는 국제적으로 혁명 확장과 강화이다오직 자본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타도할 때만이 사회주의를 향한 진정한 단계에 착수할 수 있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정치소개)

 

 

정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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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의 2년 반

  •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의 

    2년 반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단상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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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이 글은 문재인 정부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글은 아니다. 더 본격적인 분석과 비판 그리고 우리 운동(코뮤니스트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둘, 이 글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청과 중앙청 등지에서 시위했던 고등학교 3학년 그 시절부터 2019년인 지금까지 59년 동안 군부독재이건 부르주아정권이건 역대정권의 퇴진이나 타도를 위한 투쟁을 회고하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셋, 이 글은 또한 이른바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함께한 운동세력(학생운동, 민중운동, 지식인운동, 문화운동, 시민운동 등)에 대한 광범위한 관찰을 기반으로 정리한 몇 가지 단상임을 밝힌다.

     

    넷,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분석틀을 진보-보수 또는 좌-우로 구분하는 방법은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틀 자체가 부르주아 분석 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맑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보수나 좌-우는 자본주의 체제 동전의 양면이며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정권은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권력이지 진보 또는 좌에 위치한 권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제 단상의 범주를 이데올로기(코뮤니즘), 경제(자본주의) 그리고 정치(자유주의, 민족주의)로 나누고 문재인 정부의 2년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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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촛불이 매개 되어 10년의 이른바 ‘적폐’가 정권교체의 문을 열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다양한 형태의 제국주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국가와 민족도 자유로울 수가 없고 남과 북도 예외일 수 없다. 남, 북, 미 그리고 세계의 공통화두는 평화와 번영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글과 말을 보면 이 두 마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평화는 계급전쟁을 종식시키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번영은 이윤과 계급불평등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일 뿐이다. 갈라진 남, 북이 표면적이고 가시적 적대를 넘어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 부분 집합으로 나아가는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를 상상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어도 이 과정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통합과정일 수밖에 없다.

     

    여섯, 이렇게 볼 때 북한은 개혁, 개방을 통해 점진적으로 국가자본주의로 공고해지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연합, 연대할 것이다. 아직도 사회주의 건설을 말하는 형용모순이 존재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삼척동자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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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이 효과는 남쪽의 우리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직도 보수주의 부르주아들이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특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력을 ‘좌파’, ‘빨갱이’,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이념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러한 대립이 허위이며 지금이 그런 대립을 주장할 마지막 기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두 가지 형태의 부르주아 세력은 자본주의의 양면이며 보완적 관계임을 깨닫게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이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혁명적 실천이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념적 재편 과정에서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존재했던 ‘진보’, ‘자유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 등의 개념이 정리되면서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이념과 실천이 성숙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덟,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태도와 정책은 ‘비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노동’에 가깝다. 노동, 자본, 국가의 통합구조를 안착시키려는 시도가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미완성이기는 하나 장기적으로는 형성될 전망이다.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적대와 대립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기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가 국가이고 부르주아지와 동맹하는 계급이다. 여기에 노동계급마저 부르주아지 편에 선다면 그 기구는 부르주아지의 단일기구이다. 계급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반민주주의 국가임을 문 정부 스스로 천명하고 있다.

     

    아홉, 경제정책의 구체적 모습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법제화에서 드러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은 이 착취체제와 이를 규정하는 법을 반대하고 없애려는 투쟁을 몇 백 년 해오고 있다. 메이데이가 노동시간의 단축 투쟁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원칙을 계층사이의 이해로 조정하고 노동시간을 변형근로제로 후퇴시키는 문정부의 모습을 보며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자들은 어떠했는가? 반노동으로 나아가는 정부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집권한 지 1년이 되자 그 실체가 드러났고 노동계급은 정권퇴진운동을 벌였다. 어느 정권도 예외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노동자는 어디 있는가? 노동운동은 여전히 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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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마지막으로 정치권력의 행태를 짚어보자. 부르주아 정치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삼권 분립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영역의 분리, 기능의 독립성으로 체제의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고 보는 견해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골격이다. 코뮤니스트는 이러한 분리를 반대하고 평의회에 기반을 둔 대중(노동자, 병사 등)과 지역의 선출된 권력을 프롤레타리아 민주권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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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를 둘러싼 부르주아 정치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여야를 불문하고 자유주의, 보수주의를 불문하고 그 권력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386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민주화운동세력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독재와 싸운세력으로 우리사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에 공헌한 세력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세력은 앞으로 부르주아 의회에 진출할 예비세력으로 그들의 전임자들과 유사하다.

     

    이들의 부류는 대학, 언론, 사법부, 노동 등에 몸담았다가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동질성을 기반으로 부르주아지의 사적, 개인적 인간관계로 문재인 정부에 가담했다고 본다. 이들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보수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부르주아지에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2년 동안 청와대, 정부, 의회, 법원, 언론기관 등에서 보이는 이른바 엘리트(교수, 판사, 정부관료, 청와대, 언론가, 시민운동 활동가, 노동조합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를 떠받드는 소부르주아 세력의 실체이다.

     

    앞으로 2년 반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이 보수주의 부르주아 세력과 언제, 어디서나 연대하고 연합할 수 있는 세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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