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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백만 촛불 마이너

백만 촛불 마이너 

- 2017노동악법 철폐노동3 쟁취광화문 고공삭발단식농성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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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결정적인 봄이다라고 안간힘으로 외쳐보지만 사람 추린다는 소리에 휴무도 없이 출근한 공장 담벼락 안엔 어떤 꽃소식도 없었다 툭하면 영구퇴출’ 입에 달고 사는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 아가리를 박살내지도 못했다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도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탄핵을 고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명령을 하고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결정할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봉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계획할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혁명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청의 재하청인 내 삶은 하루하루가 폭력적이었다 자본주의가 요약되어 있었다

나는 외친다

차별은 폭력이다 

위계는 폭력이다 

억압은 폭력이다 

명령은 폭력이다 

조합주의는 폭력이다 

가부장제는 폭력이다 

민족주의는 폭력이다 

개량주의는 폭력이다 

관료주의는 폭력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의회제는 폭력이다 

 

촛불은 흐르고 흘러서 흐름 자체가 되는 것머물러 무대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난 촛불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 촛불이 멈춘 곳화려한 조명의 대형스크린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대형스피커로 꾸며진 무대가  눈엔 마치 명박산성 같았다 무대 앞에서 내 관심사였던 그대 표정을 결정적으로 잃어 버렸고 유독 주목하고 싶었던 그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잃고 그대를 데울 국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대를 오래도록 바라봐야 했다 고착 당했다

 

물론 촛불은 하나의 구호가 아니고 여럿의 삶이었다 노빠도문빠도어용도노사협조주의자도조합주의자도민족주의자도김일성주의자도가부장주의자도개량주의자도관료주의자도중도주의자도여성주의자도생태주의자도자율주의자도코뮤니스트도 함께 참여하고 함께 행진했다 촛불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계급투쟁의 소용돌이었다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정치적 경향들이 함께 지배질서를 잠시 정지시키는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이뤄냈지만 국가 앞에서 갑자기 온순해졌다 국가에 대한 분노가 이토록 순종적 일 수도 있다니내겐 참 기형적으로 보였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어떤 계획도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로 죽도록 일만 하다 죽어갈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노사협조주의자는 죽어라고 자본가계급에게 협력만을 할 것이고 조합주의자는 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계급을 배반할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성폭력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을 것이고 개량주의자들은 오늘도 투쟁 현장에 나타나서 선거가 다가오니 투쟁을 접자고 압력을 넣고 민주노총 깰 거냐고 협박하면서 계급화해의 정책들을 생산해낼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민족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파괴하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비판을 진압하며 자신의 명령을 완성할 것이다 또한 촛불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나와 그대는 표정을 잃고 목소리도 잃게  것이며 나를 대신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의 목소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것이다 

 

 

거리로 내쫒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촛불이 됐고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투쟁을 외쳤지만 백만 촛불 내내 발언권조차 얻지 못했다 촛불그 한 뼘의 빛조차 서러웠지만 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했던 투명한 맨몸들은 자립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사코 계급투쟁을 배제하려 했지만 자립적인 몸짓들은 선거를 넘어 (계급투쟁으로” 나아갔다 투명한 맨몸의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를 우선적으로 폐지했다 밀착되어 서로를 느끼고 그 몸의 언어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비우면서 그 곳에 배제하지 않는 힘평평하고 너른 마당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행동으로 비상했다 의회 없이도 운영되는 노동자민주주의였다 부재함으로 증명되는 삶은 끝났다 나와 그대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는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였다 모든 폭력에 맞선 가장 뛰어난 무장이었다  

 

 

詩 ㅣ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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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성웅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물으면서 전진한다식물성 투쟁의지 있다.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했으며현재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 모임, ‘해방글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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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파시즘과 반파시즘(자유민주주의)

파시즘과 반파시즘(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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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타난 부르주아의 대응책 중 하나다반대로 계급 투쟁이 체제의 안전성을 위협하지 않는다면파시즘은 발생하지도 않고 발생하더라도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파시즘은 급진화된 쁘띠부르주아의 전투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민족주의반유대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의 혼합물인 기이한 선전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었다대중의 모순은 세계가 변혁되기를 바라지만, 그 변혁이 착취와 억압처럼 갑자기 위에서 부여되기를 원했다는 데 있다파시즘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분명치 않은 자유를 분명히 나타내는 민족적 자유의 환상으로 대체시키고 대중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대중의 비합리성은 자유를 열망하면서도 자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나치즘은 모든 것이 위로부터 나오고 자신들이 체제를 변혁시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파시즘의 목적 중 하나는 프롤레타리아를 분쇄하고 전쟁에 동원하는 것이다노동계급의 투쟁을 미리 방지함으로써반대하려는 모든 시도를 분쇄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의 모든 부분을 국가 지배하에 종속시킴으로써파시즘은 자본 독재의 권위주의적인 형태임을 스스로 입증했다그리고 파시스트는 인종주의를 최극단으로 악화시켰다하지만 인종주의민족주의는 자본주의 탄생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연대를 분쇄시키는 역할을 해온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파시스트는 자본주의 관계의 바깥에 있지도 않고그것에 반대하지도 않고오히려 자본의 질서를 강화한다이러한 이유로코뮤니스트는 부르주아 지배의 다른 모든 형태와 같이 파시즘과 싸워야 한다.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자유민주주의의 방어를 위한 다양한 반()파시스트 동맹 및 캠페인은 대재앙이었다반파시즘의 핵심은 부르주아의 독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자유민주주의이다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정 발전단계에서 결합함으로써 성립되었다자유주의는 반봉건 부르주아 해방이데올로기로서 부르주아들이 쟁취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천부의 인권으로 선포하고국가권력 질서를 부르주아 권리 보장에 적합하도록 개편한 것이다이때 부르주아 권리의 핵심은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질서 속에서 부르주아적 개인의 영리 추구 자유다그리고 법치국가란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체제로서오직 이러한 부르주아적 개인의 대표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지는 국가이다반봉건투쟁 속에서 부르주아가 수립하려한 정치질서란 모든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사회 전체의 해방이 아니라 유산자들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결국 반파시즘은 민주주의적 환상을 통해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적인 국가로 데려가기 위한 반동적인 선전일 뿐이다반파시즘의 논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포장된 자본주의 국가를 방어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자유민주주의 방어라는 개념은 계급 중립적 기구로서 국가라는 신화의 승인옹호그리고 결국 굴복에 이른다그것은 국가의 강화국가 권력에 대한 종속과 자발적 활동에 대한 모든 가능성의 박탈을 의미한다이것은 프롤레타리아를 사슬로 국가에 붙들어 매고 부르주아 억압에 백기 투항하는 것을 의미한다그 결과 반()파시즘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계급투쟁은 실패를 거듭했다.

 

  반파시즘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완벽한 착취제도로써 노동계급의 귀와 눈을 멀게 하고 환청과 환상만 가져다 준다노동자에게 반파시즘 캠페인에서 말하는 민주주의가 대단히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오늘날 노동자들이 공산주의독재야만혼란폭력무질서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주장하는 캠페인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파괴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진정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반()파시스트의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이 단념된다면국가를 혁명적 목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국가를 미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그리고 혁명 포기의 실질적인 길로서반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는 만큼 파시즘일 수밖에 없다파시즘의 청산을 바라는 사람들은 반파시즘과 싸워야 하며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노동계급에게 파시스트의 출현과 그것의 공격에 대한 저항은 전적으로 불가피하다그러나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그러한 투쟁이 분명한 계급기반에 기초한다면 그 투쟁은 성공에 대한 전망이 될 수 있다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를 격파하기 위한 포괄적인 자본주의 모순 투쟁의 일부이어야 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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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성 상품화, 성 착취 그리고 자본주의 - n번방, 박사방 집단 성착취

성 상품화성 착취 그리고 자본주의

- n번방박사방 집단 성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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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상품화와 성폭력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상생활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성 상품화와 성폭력은 성차별을 전제로 행해지고 성차별은 사회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그럼에도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결 구도로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성차별의 사회구조적 배경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최근 n번방박사방 사건을 계기로 부르주아 언론은 성 착취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물론 부르주아 언론은 경제적 착취보다는 남성 가해자에 의한 여성 피해자 착취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그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하지만 이런 시각으로는 결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왜냐하면 이런 표피적 시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상품화와 성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밝히기보다 오히려 은폐하기 때문이다.

 

n번방박사방 성 착취 사건은 특정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히 남성만의 놀이문화 때문도 아니다이러한 설명은 성차별과 성 착취의 사회적 배경을 아주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다그리고 일부 남성들의 왜곡된 성 의식에 따른 성 착취에 대해 강력한 처벌로 재발을 방지하자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귀결될 뿐이다하지만 박사방에는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유료회원과 아르바이트로 유인된 피해자들 그리고 수십 명의 운영자들이 있었다이것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착취와 피착취 관계였음을 보여준다성차별은 엥겔스가 밝혔듯이 사회경제적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특히 성차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를 넘어 사회구조적인 성 착취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차별은 개별화된 가족에게 사회 재생산을 떠넘기는 것과 연관이 있다자본의 총체로서 국가는 여성 차별적인 성 역할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본이 부담해야 할 사회 재생산 비용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결국가족 내 육아/가사노동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노동 착취와 가사노동을 더 많이 부담하는 여성은 이처럼 이중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결국성 착취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노동은 상품을 창출하지 못하는 노동이다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와 가치를 지녀야 하며 가치는 교환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가족 내에서 행해지는 육아/가사노동은 교환되지 않기에 경제적으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육아/가사노동이 사회적 재생산과 밀접하고 중요한 노동임에도 개별 가족 단위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이러한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관점에서 가사노동은 아무리 엄청난 희생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이라 할지라도수많은 작은 노력이 모인 것이라 할지라도 생산적 노동이 아니다. ... 이것은 잔인하고 미친 소리로 들린다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잔인함과 광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성 착취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이다성 착취는 여성 억압과 소외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다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실질적인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한다이러한 주장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과 성 착취의 사회적 배경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이 남성이 아닌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아/가사노동을 여성이 더 많이 분담한다고 해서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구조 속에서 사회 재생산을 개별 가족 단위에 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문제이다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보았듯이 자본은 의료를 비롯한 사회적 공공부문도 철저하게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간주한다그렇기 때문에 육아/가사노동의 가치화는 더 철저하게 자본에 예속되고 오히려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육아/가사노동의 가치화가 아닌 육아/가사노동의 사회화만이 자본에 의한 이중착취를 근절시킬 수 있다노동이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이 되지 않는 사회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만 성 착취를 단절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 사회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따라서 코뮤니즘 사회는 여성 노동계급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남성 노동계급과의 연대 속에서만 건설이 가능하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고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

여성남성 노동계급 연대로 성 착취노동 착취 극복하고 코뮤니즘 사회 건설로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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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폭염이 점령한 오전 휴게 시간

용접하는 노동자도

전기하는 노동자도

배관하는 노동자도

지금

막 샤워하고 나온 사람들 같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통증 깊이 젖은 몸으로 세계를 볼 때가 가장 투명하다

 

 

다 견뎌 낸 시간이 다른 세계의 둥근 씨앗으로 맺혀 있다

 

 

둥근 씨앗의 비상은 싹틔우는 것이다

 

 詩 ㅣ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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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성웅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물으면서 전진한다』, 『식물성 투쟁의지』가 있다.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 모임, ‘해방글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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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로나19 팬데믹 : 자본주의 쇠퇴기 말기 증상

코로나19 팬데믹 자본주의 쇠퇴기 말기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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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병에 관한 첫 번째 기사의 끝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이 새로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스(SARS)의 경우처럼새로운 팬데믹이 되든아니면 계절성 호흡기질환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남든이 새로운 질병은 자본주의가 인류와 지구 생명체에 위협이 되었다는 또 하나의 경고이다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의학을 포함한 생산력의 엄청난 능력은 범죄적인 이윤 추구열악한 환경에 처한 도시로의 과도한 인구 집중이것이 초래하는 새로운 전염병의 발생 위험에 빠져 있다.“

 

오늘날이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심각한 결과로 경제적 쓰나미를 일으켰다제한된 지면 때문에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고앞으로 다른 기사에서 다룰 것이다여기에서는 이 전염병이 어떻게 자본주의 질병을 드러내는가의 분석에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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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로나19가 자본주의 해체의 표현임을 확인하였다!

 

2020년 3월 13일 가장 암울한 징조가 확인되었고세계보건기구(WHO)는 그것이 이미 모든 대륙의 117개 국가로 확산한 세계적 유행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감염자 수가 12만 명 이상이고팬데믹을 선언한 첫 주에 사망자 수가 4천 명을 넘었다중국 내부 문제로 시작된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열강(일본미국서유럽 등)에서 사회적 위기가 되었다이탈리아에서만 사망자가 2002~2003년에 사스-전염병으로 세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넘어섰다그리고 한 달 전 독재적인’ 중국 당국이 인민의 통제를 위해 시행한 가혹한 대책들보기를 들어 수백만 명의 격리(1), 그리고 질병 확산방지를 위한 싸움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모든 사람을 병원치료에서 배제하는 것과 같은 진정 사회진화론의 전형적인 정책들은 이제 모든 대륙 모든 해당국의 수많은 주요 도시에서 현안이 되었다.

 

부르주아 언론 매체는 코로나19를 일종의 재앙으로즉 새로운 자연’ 재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추천과 해명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그러나 이 재앙에 관해 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그것은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류에 대한 이미 늙고 낡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질식할 것 같은 독재의 결과이다.

 

혁명가들은 질병 진화에 관한 역학 연구나 예후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우리의 과제는 유물론에 근거하여 이러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불가피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인간 필요보다 착취와 이윤그리고 축적을 우선시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며다른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또한역사의 특정 시기에 엄청난 생산력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자본주의 생산 관계가 오늘날 생산력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우리는 또한혁명적 해결 없이 수십 년간 연장된 자본주의 쇠퇴기가 어떻게 하나의 새로운 단계즉 사회해체(2)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이 새로운 단계에 모든 파괴적인 경향은 더 강력하게 집중되고혼돈과 야만 그리고 최소한의 사회 결속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의 점진적인 붕괴를 가져와 지구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속에 사는 소수 맑스주의자들의 망상에 불과한가분명 그렇지 않다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가장 권위 있게 말하는 과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감염병 확산은 무엇보다도급속도로 진행된 환경 파괴로 인해 생존을 위해 인간 거주지로 접근한 동물에 의해 더 큰 감염(인수 전염병)을 일으키고동시에 수백만 명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과밀로 인해 감염병이 극적으로 상승한다고 주장한다코로나19에 대한 이전 기사(3)에서 이미 설명했듯이중국의 일부 의사들은 이미 2019년 12월부터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감염병에 대해 경고하려고 했지만국가는 세계 강국이라는 중국 자본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이를 검열하고 억압했다.

 

또한, ICC가 이러한 감염병 확산의 주요 동력 중 하나가 자본주의 특징 중 하나인 여러 국가 간의 정책 조정 부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한편이러한 조정 부족은 자본주의 특징 중 하나이긴 하지만체제 해체 단계에 놓인 국가와 자본가들의 경향성으로 모든 사회관계에 침투한 각자도생과 내적 태도에 의해 더욱 심해진다.

 

우리가 이 질병의 위험이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이 심각하게 악화한 상황에서 팬데믹이 발생한 것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사실은 점점 더 취약하고 결함이 있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 여러 국가의 정책을 규정하고 있다이는 시간이 흘러 팬데믹의 연장을 의미할지라도 새로운 사례 출현 발표를 지연시키는 경향이 있다그렇다면 수십 년간 인간 노동으로 축적된 지식과 기술 등등 자원의 상태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악화한 것은 해체에 이른 사회즉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전망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그리고 자본주의가 인류 미래에 관한 관심 부재를 명백하게 드러내면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어떻게 21세기에 세계 최강국들이 막을 수 없는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을까?

 

물론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있었다오늘날 부르주아 언론에서 보도하는 천연두홍역콜레라 또는 흑사병이 어떻게 수백만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보고서나 문헌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하지만이러한 사망 원인이 근본적으로물질적 조건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지식 면에서도 근본적으로 인류의 열악한 생활조건이었다는 것은 빠져 있다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물질적 결핍 단계를 극복하고 생산력 발전을 통해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인류가 진정으로 연합하고 해방될 수 있는 풍요로운 기반을 마련하는 역사적 가능성을 제기한다. 19세기즉 자본주의 팽창의 최고점을 고려해보면어떻게 건강과 질병이 더는 운명론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는지그리고 어떻게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 사이의 소통에서도 진보가 이루어졌는지어떻게 의학에서 과학적인 접근으로 진정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공중위생 개선 조치로부터 예방 백신 개발과 투입에 이르기까지의료 전문가의 교육에서 병원 설립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일상생활에 적용되었다세계 인구의 증가(10억에서 20억으로)와 특히 기대 수명 증가의(19세기 초 30~40세에서 1900년 50~65주요 원인은 과학과 위생의 진보 때문이었다하지만 이 중 어떠한 것도 부르주아지가 인민의 필요를 위해 이타심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맑스가 말했듯이 자본은 모든 구멍으로 피와 진흙을 토해내면서” 이 세상에 도달한다그러나 이러한 공포 속에서 자본의 목표는 임금 노예들이 새로운 생산 기술을 몇십 년간 습득하면서 획득한 지식을 통해 노동력으로부터 최대의 수익성을 달성하는 것상품 공급과 화물 운송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었다이 때문에 착취계급은 최소비용으로 노동자들의 노동 수명을 연장하고노동력이라는 상품 재생산을 보장하고생산성 향상을 통해 상대적인 잉여가치를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4) 이래 자본주의가 상승기에서 쇠퇴기로 역사적 시기가 변함으로써 바뀌게 되었다이러한 쇠퇴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함께 우리 혁명가들이 확인했다. 1918년경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인, 1918~19년의 이른바 스페인 독감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그 전염병을 통해서 드러난 것은 병원체의 독성 자체보다 오히려 훨씬 더 자본주의 쇠퇴기제국주의 전쟁의 특징적 (분쟁의 세계적 차원주요 국가의 민간인들에 끼친 전쟁의 영향 등사회 조건이 대유행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참호전 사망자 수의 두 배에 가까운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것이 그 재앙의 규모를 설명해 준다.

 

전쟁의 공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두 번째로 더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었다독가스의 사용과 같은 1차 제국주의 전쟁의 학살 행위는 두 세계대전 사이에는 잠시 줄어들었다하지만다시 2차 세계대전에서 생물학적 무기의 초기 사용(보기를 들어 영국은 탄저균을 실험했다), 독일과 일본에 의한 인체 실험나치 강제 수용소의 산업 살인그리고 최종적으로 전쟁 말의 미국에 의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탄의 투하 등 전쟁의 야만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은 평화의 시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자본주의 열강들이 1948년에 설립된 이른바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의 하나로 여기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민건강관리국)를 모델로 삼아서 보건 시스템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이러한 보건 시스템의 목적은 보편적인’ 건강관리를 보장하는 것무엇보다도 스페인 독감과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이었다이것이 인도주의적 자본주의이고노동자들에게는 승리였을까물론 아니다이러한 보건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전쟁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사망한 뒤 부족해진’ 상품인노동력 회복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보장하는 것그리고 재건작업 동안 전체 생산 공정을 확보하는 것에 있었다이는 투입된 구제책이 새로운 고통의 원천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보기를 들어 감염을 통제하기 위해 처방되는 항생제 요법이 자본주의의 생산성 요구를 고려해서 병가기간의 단축에 오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리고 이것은 감염에 대항해 싸울 약용 무기고를 결국 축소하는 이른바 슈퍼버그’, 세균의 내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이것은 또한자본주의 식품 기술이 빈곤층의 비만을 일으킬 정도까지의 사용되는 것은 노동자계급과 사회극빈층의 식습관 악화즉 피착취 계급의 재생산 비용 감소에 따른 비만 및 당뇨병과 같은 질병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리고 마찬가지로이 착취체제가 노동 인구에 미치는 점증하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약물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도 알 수 있다마약 성분의 광범위한 사용으로 이른바 아편 전염병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여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까지 그것은 미국 최대의 건강 문제였고그로 인해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인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문제들과 분리할 수 없다반대로그러한 문제들은 21세기 자본주의 보건의료 시스템과 같이 비인간적이고 상업화된 기계에 의존한다면 더욱 상황이 나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오늘날 질병의 기원은 인류의 지식이나 기술의 부족에 있지 않다마찬가지로역학에 대한 현재의 지식이면 새로운 감염병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보기를 들어질병을 발견한 지 2주 만에 연구소는 이미 코로나19의 원인이 된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었다인류가 극복해야 할 걸림돌은 소수 착취계급에 이익이 되고 질병과 싸움에 방해가 되는 생산양식에 사회가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백신 개발 경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공동의 협력 작업이 아니라 실제로는 실험실 사이 상업 전쟁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인간의 필요는 자본주의 정글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제품을 먼저 시장에 내놓고 그 이점을 이용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모든 자본가에게 중요한 유일한 것이다.

 

 

누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가? ‘무책임한’ 개인인가아니면 해체기 사회 체제의 압박인가?

 

최근 23차 국제 대회에서 ICC는 국제 상황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는데결의안에서 해체에 관한 우리의 테제를 다시 다루면서 그 내용의 타당성을 다시 확인했다:

 

“1990년 5월의 해체에 관한 논문은 사회 진화에서 자본주의가 이 마지막 존재 단계에 진입한 결과 발생하는 일련의 특성을 강조한다22차 대회가 채택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모든 특성의 악화를 보여준다.

 

• 3세계 국가의 기근 증가...;

 

• (위의) ‘3세계가 수억 명의 인구가 하수구의 쥐처럼 생존하는 거대한 빈민가로 변형된 것;

 

• 선진’ 국가 대도시 중심부에서도 동일한 현상의 발전...;

 

• 최근 우발적’ 재난 확산(...) 인간사회 및 경제에 대한 자연’ 재해의 점점 더 파괴적인 결과...;

 

• 엄청난 차원에 도달한 환경 악화 (해체에 관한 논문, 7)“.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징후들이 자본주의 사회 발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며이를 통해서만 주요한 사회적 사건 발생과 발전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코로나19 감염병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면자본주의 마지막 단계에서 특징적인 두 가지 요소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중국은 2002~2003년의 사스(SARS) 발생과 최근의 코로나19에서 볼 수 있듯이이번 감염병의 기원에 관한 단순한 지리적 배경만이 아니다이러한 정황적 요인을 넘어 세계 자본주의의 해체 단계에서 중국 자본주의 발전 특징과 현재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제국주의 블록의 변화(1972이후그리고 1989년 이러한 블록의 소멸 이후이른바 세계화의 주요 수혜자로서 중국은 미국의 지원을 이용하여단 몇 년 만에세계 무역과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제2의 세계 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정확히 이 때문에 중국 권력은 말기 자본주의의 모든 오명을 지니게 되었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노동력의 과도한 착취, ‘군사-민간 융합이라는 국가 프로그램과 같은 전쟁 경제의 무절제한 발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치명적인 환경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한편, ‘국가적 통일은 당의 정치 교육을 받는 대중에 대한 경찰의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사실중국은 전체 자본주의 체제에 일반화된 군국주의적 암()의 거대한 전이(轉移)일 뿐이다중국의 군수 생산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국방 예산은 20년 만에 6배 증가해서 2010년 이래 세계 2위의 자리에 올랐다.“

 

자본주의의 지속하는 강점으로 제시되는 중국의 이러한 발전은 사실은 쇠퇴의 주요 징후이다. 우리가 새로운 실크로드와 같은 화려한 이니셔티브를 통한 기술적 정복이나 전 세계로의 확장에 눈이 멀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수억 명의 노동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엄청난 과잉 착취 조건(장시간 노동저임금 등)과 극도로 열악한 주거식량그리고 생활환경에서 고통받는지게다가 점점 더 악화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보기를 들어이미 보잘것없는 1인당 의료비는 2.3% 감소했다. 또 다른 보기는 암시장에서 산 야생 동물 고기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식품 생산에서 위생 기준이 아주 낮거나 무시된다는 것이다지난 2년간 아프리카 돼지 독감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 중국에서 퍼져서 이 동물의 30%가 도살되고 돼지고기 가격이 70% 상승했다.

 

자본주의 해체의 영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두 번째 요소는 여러 국가 자본 사이에 존재했던 최소한의 조정마저도 약화하는 것이다맑스주의가 분석한 것처럼 자본주의가 마지못해 기울일 수 있는 최대 통일성이 민족 국가이기 때문에초제국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것이 세계가 제국주의 블록으로 나누어졌을 때유네스코에서 세계 보건기구(WHO)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의 자본 사이에서 최소한의 공통 관심사를 실현하려고 시도한 많은 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러나 자본주의 해체가 진행됨에 따라 최소한의 조정을 향한 이러한 경향은 악화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제23차 대회의 국제 상황에 대한 결의에서 우리가 분석한 바와 같이 “(제국주의적 경쟁의 요구뿐만 아니라위기 심화는 다자간 기구와 메커니즘을 심각하게 시험하고 있다.” (20).

 

이것은 보기를 들어 세계 보건기구(WHO)의 역할에서 볼 수 있다. 2002~2003년 사스 전염병에 직면한 국제적인 조정은 전 세계 실험실에서 발견된 몇 가지 연구 속도와 함께 현재 코로나19와 매우 유사한 가족전파 바이러스의 낮은 발생률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역할은 2009년 인플루엔자 전염병에 대한 WHO의 불균형한 대응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당시 WHO의 경보는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실험실에서 제조된 항바이러스 약물 타미플루의 대량 판매를 촉발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이후로 WHO는 최고의 권고를 하는 NGO의 역할에 거의 머물렀지만경쟁하는 여러 국가 자본에 자신의 권고를 따르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이 기구는 심지어 감염 기록에 대한 통계 기준을 통일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모든 국가 자본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각 국가에서 감염병의 영향을 숨기려는 시도에 문을 열어 놓았다. 이것은 감염병의 첫 징후를 숨기려 했던 중국에서뿐만 아니라미국 시민의 약 30%가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민간보험에 기반을 둔 의료보험 시스템의 약점을 숨기려던 미국에서도 발생했다진단 테스트 사용에 대한 기준의 이질성 또는 서로 다른 단계에서의 측정에 대한 프로토콜 사이의 차이는 의심 할 여지없이 전 세계적 유행병 확산을 억제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더 최악인 것은 각국의 자본들이 의료인들을 위한 보호 마스크나 방호복의 조달에 있어서 메르켈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보호주의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더 긴급한 필요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조치들이다.

 

 

자본주의 사회관계가 만들어내는 건강에 대한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부르주아 언론 매체의 선전은 수많은 국가에서 탈진(보건의료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물질적·기술적 자원 부족 등조짐을 보이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개별 시민의 책임을 보여 달라는 호소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우리가 여기서 비난하는 첫 번째 사실은 예견된 재앙의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재앙은 시민들의 무책임 때문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의료비 지출 감소보건의료 종사자의 일자리 및 병원과 의료 연구 지원을 위한 예산 삭감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보기를 들어우리가 피해야 할 이러한 붕괴에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는 연속된 예산 삭감으로 8,000개의 병상이 사라졌고중환자실은 유럽 평균보다 낮고상태가 좋지 않은 의료기를 보유하고 있다. (인공호흡기의 67%가 10년 이상 되었다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상황도 매우 비슷하다보편적인 보건의료 관리 모델로 제시되는 영국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보건의료 종사자 10만 명 이상이 사라져 지속적인 의료 질 저하가 있었다그리고 Brexit 이전의 모든 것!

 

그리고 더 많은 환자를 돌보고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생활과 노동조건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은 바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다그들은 점점 더 많은 인력 감소와 팬데믹의 결과 보건의료 서비스 붕괴라는 추가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의료진에게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강요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이 분야의 노동자들은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빈약한 자원이나마 투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우생학에 가까운 방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이탈리아 마취과 응급실 협회에서 발행한 지침에서 볼 수 있듯이이 상황을 전쟁의 상태로 특징지을 수 있다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자본의 논리가 초래한 인간의 필요에 대한 전쟁이며이 부문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비인도적 법칙을 적용해야 하기에 점점 더 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핵심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 모순의 폭발은 자본주의 쇠퇴기 말기 단계의 명백한 신호이다바이러스가 노화에 큰 영향을 미쳐 가장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듯이 보건의료 시스템은 인민의 필요가 아니라 위기와 쇠퇴의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라 수년간의 긴축과 관리로 크게 약화하였다가치 법칙을 조작하고 무엇보다 부채의 바다로 곤두박질치며 인위적 지원으로 유지해나가는 자본주의 경제도 마찬가지다이로 인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새롭고 혹독한 세계적 불황을 일으킬 정도로 무르고 약해졌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인류에 닥친 이 재앙의 희생자가 아니다그들은 계급의식과 계급연대를 발전시켜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는 잠재력과 역사적 능력을 갖춘 계급이기도 하다오직 코뮤니스트(공산주의혁명만이 분열과 경쟁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연대를 기반으로 한 관계로 대체할 수 있다생산노동인간 자원 및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함으로써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해야 한다.

 

Valerio,

2020년 3월 13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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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여행하는 것을 자제하고 집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이다그러나 어린이나 노인들의 돌봄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은 부족했고게다가 공장 작업은 이런 조치에 해당하지 않았다이처럼 선택적 격리와 국민에 대한 경찰력 동원 감시의 방식은 자본주의 국가 전체주의의 기능적 특징을 나타낸다.

 

2. 해체(decomposition)에 대한 테제그리고 ‘ICC 23차 대회의 국제상황에 대한 결의문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704/resolution-international-situation-2019-imperialist-conflicts-life-bourgeoisie

 

3.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10/more-evidence-capitalism-has-become-danger-humanity

 

 

4.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62, 163호 기사 참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립 100주년’ 기사

 

 

 

 번역 이형로

 

<원문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823/covid-19-pandemic-symptom-terminal-phase-capitalist-deca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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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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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계급적 본질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0일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 6.0% 상향조정, 1년 미만 보유한 주택을 파는 경우 양도소득세율 70%, 2년 미만 보유한 주택을 파는 경우 양도소득세율 60% 부과, 2주택 소유자의 경우 취득세율 8% 인상, 3주택 이상 소유자와 법인 12% 인상, 4년 단기임대 및 8년 아파트 장기 일반매입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

 

그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집값 안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생색내기용 여론전에 불과했다물론 그렇다고 7·10 대책이 투기 억제 및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투기와 거품 그리고 욕망으로 상징되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 하락은 부실채권 증가와 거품 붕괴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더불어 부동산 가격 폭락과 대량의 부실채권은 금융산업건설업과 관련한 제조업 전반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이것은 지금의 경제 위기를 더욱더 증폭시킬 것이다부르주아 권력인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런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값 상승을 막는 흉내만 냈다말로는 집값 억제를 떠들었지만실제 부동산정책은 집값 폭락을 막는데 맞춰져 있었다그 단적인 사례가 TV 토론회에 출현한 민주당 진성준의 기만적 태도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주택공급 확대라는 명목으로 재개발 규제 완화책까지 들먹이며 건설자본 이윤을 위해 건설 경기 부양책을 계속 발표했다용산 미니신도시 개발, 3기 신도시 개발 등을 발표하며 사실상 투기를 조장했다자본주의 소유 관계와 부르주아 정부의 주택공급 사례를 보면 이러한 건설 경기 부양책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그동안 정부는 주거난 해소보다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며 부동산 거품을 키워왔다.

 

디지털/그린 뉴딜에서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계급 본질은 부동산정책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노동자의 삶은 2008년 이후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와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게다가 노동자인민의 불만은 실질 임금상승률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택 가격으로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다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부르주아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자인민을 현혹할 수 있는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필요했다이것이 그동안 부동산정책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7·10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부르주아 정치쇼에 불과하다집값 억제를 위해 보유세를 비롯한 양도세취득세 세율을 올리면서도 아파트 공급 확대를 분명히 했다아파트 공급 확대는 자본에 개발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길만 열어줄 뿐 집값 억제와는 관련이 없다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이다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현실을 감추기 위해서 더 현실성 없는 고위정책 관료층과 국회의원에게 1가구 1주택의 퍼포먼스까지 진행하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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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문제 해결은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부르주아 정부의 저금리정책은 필연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고그 대부분은 대자본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자본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투자는 관심 밖이다이윤이든 지대든 자본에는 부가가치 증가만이 목적이다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을 폭등시켰다이처럼 부동산 가격 폭등의 배후에 작동하는 힘은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 위기와 이것이 유발하는 초저금리와 천문학적인 유동성 증가이다부동산 가격 폭등은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집값을 억제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정권의 몰락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겉으로는 갈지()’자 행보처럼 보이지만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한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 쇠퇴기심화하는 위기 때문에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자의 목을 죄어 올 것이다자본주의 쇠퇴기에 이윤율 하락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 위기라는 배경에서 부르주아의 계급적 선택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착취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7·10 대책은 집값 안정을 결코 해결할 수 없지만집값 안정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주거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자본주의 소유 관계는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 소유와 매매와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보장한다또한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될 뿐이다결국노동계급은 주택 가격 안정이 아니라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부르주아 정부의 집값 안정책이 얼마나 실효가 있는지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어떠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노동자인민에게는 1가구 1주택과 주거환경 개선은 현실화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냥 둔 채 주택 투기와 개발 이익에 대한 사적 취득을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환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국가가 이를 환수하여 양과 질을 담보로 한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 또한공상에 불과하다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총체로서 전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때문이다1) 따라서 노동자인민에게 양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가 폐지된 사회즉 인민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는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토지와 주택을 비롯하여 사유재산과 착취계급 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이 사라지며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모든 토지와 (거주 목적 이외의주택도 생산수단과 마찬가지로 몰수하여 평의회의 통제 아래 사회화시킨다이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된다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자인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자본주의적 복지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평등한 사회이다주택뿐 아니라 의료와 건강권교육권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개인의 행복 추구권2)이 처음으로 실현되는 사회이다코뮤니스트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와 무상 주거권 쟁취를 내걸고 근본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2020년 8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윤태상

 

 

<주>

 

 

1. 스웨덴의 연대 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 시장정책은 대기업에 큰 이윤을 가져다주었지만대기업은 세금을 적게 내려고 해외에 투자했다이에 따라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득 불평등은 증가했다그래서 나온 대안이 임노동자기금이다임노동자기금은 대자본의 초과이윤과 노동자 임금 일부를 헌납받아 대자본의 주식을 매입하여 노동조합이 대기업의 주인이 되면 대기업은 노동자시민을 위한 경영을 하리라고 전망했다하지만 자본의 거센 반발로 결국 폐기된다

 

2. 코뮤니스트 사회에서의 행복 추구권

코뮤니스트 혁명을 통해 모든 사람은 가장 광범위한 자유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개인의 행복을 최대한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모든 사람은 신체와 정신에 어떠한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사회에서 보편적인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물품을 얻고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노동할 권리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사회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주고일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필요와 개인적 의지에 따라 사회에서 이용 가능한 모든 교육 자원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모든 교육기관은 무상교육을 하고모든 사람은 평생교육의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와 건강권은 무상으로 제공하며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한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와 자연과 환경의 파괴를 막을 의무가 함께 있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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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평가와 트로츠키주의 비판]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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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트로츠키주의 기원

 

우리는 트로츠키주의 운동과 그들의 지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의 기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의 열렬한 주장은 트로츠키가 19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과 적군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1940년 스탈린주의의 순교자로서 얻은 위신에 그 근거가 있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유효한 비판은 그의 1917년 이전 멘셰비키의 과거를 밝혀내는 스탈린주의 방법과는 공통점도 없고,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론과 실천 모두에 그가 기여한 공헌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1905년 혁명에 대한 트로츠키의 분석과 소비에트의 출현은 트로츠키가 1917년 동안 레닌이 이해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을 명백하게 내다보았다.

 

그러나 정치적 운동으로서 트로츠키주의는, 비록 혁명과 함께 그 기간에 시작했다 해도, 근본적으로 그 이후 시기의 산물이다. 그 시기는 트로츠키주의가 통합적 부분이 되었던 반혁명의 시기이다.

 

유럽 혁명 기간 일어난 운동은 패배의 과정이었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트로츠키와 연합하여 일어났다. 헝가리에서 백색테러가 일어나고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는 과정이었으며, 독일의 부르주아지를 전복할 노동계급 일부의 노력은 1921년 3월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노동계급의 저항은 이 이후에도 분출되었지만(1923년 독일, 1926년 영국, 1927년 중국), 그들은 고립되었고 파편화된 상태였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4년간의 고립과 내전은 이전에 있었던 혁명적 노동자 계급의 실질적 제거로 귀결되었다. NEP(신경제정책)의 도입,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와의 통일전선 전략의 적용과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정치, 군사적 동맹 (1922년 독일과의 라팔로조약)은 모두 유럽 혁명의 실패가 러시아에서 반혁명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줬다.

 

트로츠키는 이 변질의 과정을 알아채지 못했기에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실 이 주요 설계자 중 하나였다. 1920년대 적군의 승리를 조직하고, 노동의 군사화가 러시아의 재건을 위한 규율을 지키기 위해 전 노동자 계급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이 바로 그였다. 1921년 10차 당 대회에서 노동자 반대파에 반대하여 당내 모든 분파를 금지하도록 한 사례를 보여준 것이 바로 트로츠키였다. 1922년 제국주의 독일과 비밀 군사동맹을 조직한 것도 트로츠키였다. 이후에 계속된 트로츠키의 이론과 실천이 과거의 오류와 단절되었다면,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실 1923년부터 계속, 트로츠키는 이 오류를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가 보여주는 것에 대한 그의 “반대” 분석으로써 그 후 이어지는 사상의 틀 속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좌익 반대파와 연합 반대파

 

1923년에 일어난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로 일컬어지는 것은 트로츠키와는 그저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트로츠키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반대파들은 물론 트로츠키의 「새로운 길」(New Course)이 막 등장했을 때 환영했지만 말이다. 이 반대파는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국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이념과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좌익 반대파가 끝났다는 간단한 이유다. 좌익 반대파는 1923년의 가위 위기(Scissors crisis) 기간 동안 일어났는데, 이 시기는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고 농작물 가격은 내려가 일어난 경제적 혼란기였다. 반대파는 당의 관료적 지도자들이(이 당시에는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스탈린, 부하린)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며 싸웠는데, - 즉시 그렇게 나타났다. 반대파에 따르면 NEP(신경제정책)의 시장경제는 작은 계획, 즉 농민에 대한 과세를 통한 느린 산업화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에게는 이것이 다음을 의미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 사회주의 기반의 중추로서의 국가산업의 발전”

(「새로운 길」(New Course), p.120)

 

당연히 반대파는 전 조직을 통제하지 않았으므로, 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했지만, 이 민주주의가 왜 견인차로 기능하는지를 산업화는 동떨어지게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다. 반대파는 외교 문제와 관계가 없었고, 1921년 이래로 어떤 정책 (통일전선 혹은 자본주의 국가와의 국교 회복)도 비판하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이 문제에 관해 썼지만, 그는 통일전선과 독일의 민족 볼셰비즘의 보증자로서, 외국에서는 당의 우파로 여겨졌다. 그동안 독일 당의 좌파 (매슬로우(Maslow), 피셔(Fischer), 텔만(Thaelman))는 지노비예프와 스탈린을 그들의 동맹으로 삼았다.

 

트로츠키의 1924년 「10월의 교훈」(1924)과 같은 외교 정책의 위험한 개입은, 1917년에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또한 1923년 독일에서 혁명적 기회를 잡는 것을 실패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서서히 권력의 압박을 받음에 따라, 트로츠키는 지노비예프를 이길 수 있는 수단으로 섹소니(Saxony)와 써린지아(Thuringia)의 통일전선 정부가 혁명을 일으키는 데 실패한 것을 포착했다. 이 시기에 트로츠키는 지노비예프를 스탈린보다 더 주요한 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통일전선 정책을 승인했었고,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 이른 여름, 독일에서 통화의 붕괴를 이르게 하는 진정한 계급적 운동이 있었을 때, 트로츠키는 정부를 전복하는 여러 시도에 맞서 나섰다.

 

“루르(Ruhr)에 대한 프랑스 침공은 혁명적이지 않다. ...피가 고갈된 유럽에서 혁명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린) 평화의 유지에 실로 관심이 있다.”1)

 

왜 그랬을까? 이때 트로츠키는 독일, 러시아 대 영국, 프랑스 동맹의 최고 중재자였다. 그런 정책은 독일 우파와의 동맹을 의미했고, 루르에 대한 프랑스 점령에 반대하는 것은 파시즘과 민족주의 세력과의 동맹을 의미했다. 이를 민족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며, 이는 좌익 반대파 지도자의 한 사람인 라덱(Radek)의 생각이었다. 트로츠키가 “혁명적”으로 전환되었던 것은 그의 권력으로부터 점진적인 몰락과 독일에서 친연합군 정권의 등장이었다.

 

정치적 강령의 빈곤과 실질적 부재와 함께 좌익 반대파는 노동계급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어떤 특정 순간에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조직은 그들 자신의 프롤레타리아적 지원이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대파는 반노동자 계급의 입장에 섰다고 알려졌으며, 또 대부분의 반대파는 1923년에 생활조건의 악화로 인해 일어난 대중파업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반대파는 노동계급보다 당 관료와 산업 경영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이 시기의 반대파가 그들의 편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당의 대중은 산업 노동자 계급이었다. 경제나 정치적 강령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했다.”2)

 

관료 당국은 좌익 반대파의 요구를 조금 들어주었지만, 13차 당 대회에서 반대파는 비난받고 1924년 초 그들은 사라졌다. 그런 반대파는 좌익이라는 별명을 받을 만했는데, 이는 반대라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그러나 1923년 당국과 반대파 사이의 투쟁에 관해 이야기했던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만 이야기하자.

 

“노동자들은 아마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뭐가 다르냐고 묻겠지만, 솔직히 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3)

 

이 간단한 프롤레타리아 문장이 좌익 반대파의 본질을 요약해 준 문장이다.

 

이 이후에 당내의 책략은(그 이후의 사건에 힘입어) 기괴한 모양을 그리게 된다. 스탈린이 1923년 트로츠키에 적대하여 지노비예프과 동맹을 맺었고, 그 이후 스탈린과 부하린이 지노비예프에 적대했으며,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암묵적인 동맹을 맺었는데, 이는 지노비예프가 여전히 주요한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25년 1월, 정치국이 전쟁사령관 자리에서 트로츠키를 축출했을 때,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예전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지노비예프가 그를 당에서 제명하고자 한 주장을 막았다. 이때는 이미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진행시켜 나간 때였다. 이에 반대하는 것이 트로츠키의 투쟁에서는 대부분이었던, 바로 그 이론 말이다. 1925년까지 이 유명한 투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주요한 적이 스탈린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변질의 지도자인 지노비예프였기 때문이다.

 

점차 스탈린-부하린 그룹이 권력투쟁의 정점에 서게 됨에 따라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레닌그라드 반대파를 만들었다. 트로츠키는 처음에는 무관심했으나 곧 지노비예프 그룹과 함께했다. 1926년 7월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크룹스카야와 그는 13인 선언(중앙위원회 위원)에 서명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연합 반대파 (United Opposition)를 형성하도록 했는데 1927년 12월까지 활동했다. 연합 반대파는 계획과 산업화의 요구를 떠안았고, 네프맨과 쿨락(Nepmen and Kulaks)과의 투쟁에 대한 요구도 책임졌다. 그들은 1921년 10차 대회에서부터 억압의 도구화된 당내 민주주의의 부활을 요구했다. 만약 연합 반대파들이 노동계급의 진정한 이해를 표현했다는 주장이 정당하다면, 1929년부터 1934년까지 스탈린에 의해 적용된 정책(반대파 대부분의 입장이었던 것)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벌어진 일에 대한 결론으로부터 간단히 유래한 것은 아니다. 1929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반대파는 그 이후 스탈린에게 기꺼이 항복했고, 심지어 프레오브라젠스키(Preobrazhensky)마저도 트로츠키의 지속적 반대는 정당화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4)

 

또다시 반대파는 노동자 계급의 유의미한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다시 한번 그 주요 힘은 그들이 비판하였으나 그 원칙은 의문시하지 않은 관료주의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마지막 타격은 트로츠키 본인에게 있었다. 스탈린의 좌익화(Left Turn)는 부하린의 우익과의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트로츠키에게 1928년의 이러한 배경 아래의 동맹을 제안한 이는, 그제야 당 내부 민주주의를 위한 목소리에 함께한 부하린이었다. 자주 부하린 우파에 반대하여 중앙주의자인 스탈린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낸 트로츠키가 이 기회주의자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추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1929년 1월 스탈린에 의해 추방당하고 신화창조의 시기가 진지하게 시작되었기에, 좌익 반대파에 대한 이것의 효과를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주>

1) 트로츠키, E.H.Carr의 「The Interregnum」에서 인용, 66쪽

2) Carr, 위의 책, 326쪽-327쪽

3) 「트로츠키주의 학술 저널 비판 4」(Troskyite academic journal Critique4)에서 인용, 44쪽

4) 「The Conscience of the Revolution, R.V.Daniels, 374쪽-375쪽

<출처> 트로츠키트로츠키주의트로츠키주의자」,  코뮤니스트 노동자 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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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평가와 트로츠키주의 비판] 1934년 '프랑스 전환'

1934년 '프랑스 전환(French 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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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에 국제 코뮤니스트 연맹(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으로 알려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운동은 트로츠키가 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전환점이라고 묘사했던 것을 수행했다. 그의 프랑스 섹션을 시작으로 트로츠키는 제2 인터내셔널의 당과 그와 유사한 조직에 가입하도록 그의 추종자들에게 재촉했다. 스탈린주의의 실패에 대한 트로츠키의 해결책은 사회민주주의로의 복귀였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이 1914년~1926년 시기에 싸워왔던 모든 것과의 단절이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세력을 지원하라는 뜻이었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한 구 노동조합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으며, 1917년 이후 혁명기에 코뮤니스트와 노동자들을 대량 학살로 이끌었던 이들에게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그 전술은 다른 섹션에 곧 퍼졌고, 미국, 영국, 스페인에서 눈에 띄게 그러했다. 몇 세대에 걸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치 조직들을 강화시킨 '입당주의'라는 생각은 명백히 '프랑스 전환'에서 탄생했다.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1934년 여름, 프랑스에 사는 트로츠키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아 결정적 전환을 하기로 결정했다. 1년 전,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좌익 분파의 동지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논쟁에서 관료적으로 축출되었다. 그들은 트로츠키와 그의 추종자들의 궤적을 예상했으며 그에 반대하여 논쟁을 벌였다. 잡지 「빌랑(Bilan)」에서 우리 동지들은 트로츠키 전략은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파도의 쇠퇴를 분석해 보려는 노력을 대신하려는 반동적 대용물이라고 논쟁했다. 1933년 9월의 글에서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좌익에 대한 트로츠키의 접근방식은 “2와 4분의 3 인터내셔널을 향한” 움직임으로 가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들은

 

   “트로츠키가 좌익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새로운 코뮤니스트당을 건설한다는 목적으로 공동 작업을 주창함으로써 엄청난 오류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로츠키주의자와는 대조적으로 좌익 분파의 접근은 명확히 물질적 기반이 없을 때, 대중정당을 만드는 조직적 전략을 세우기보다, 그 시기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분석 필요성의 문제를 제기하려 한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반혁명적 중도주의(Centrism)의 성공을 거스르지 못하고 패배한 대가로 1927년 고통받았다. 

 

   오늘날 인터내셔널의 처음 네 차례 당 대회에 기초하여 새로운 당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얘기하는 것은 역사를 1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그런 당 대회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며, 결국, 새로운 당을 그들의 고유한 역사적 환경 속에 위치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새로운 정당을 위치시켜야 하는 환경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행사로부터 얻은 경험에 의해, 그리고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의 경험에 의해 이미 정의되어 있었다. 처음 네 번의 당 대회는, 이 일에 관해서만은 매우 깊이 있는 조사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앞의 이야기를 종교적 교의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즉 레닌의 죽음, 혹은 트로츠키의 제거는 수많은 나라에서의 자본주의 승리의 원인이었고, 소련과 인터내셔널에서의 중도주의 승리의 원인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Bilan의 저자들은 사회민주주의를 바라는 트로츠키주의자의 시도는 결국 불명예스럽게 끝날 것을 알았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38년에나 스스로 알았던 그 점을 그들은 미리 내다보았다.

 

   “상황의 미성숙함(다른 말로, 역사적 시대의 이해 부족)은 이제 겨우 성장하는 2와 4분의 3 인터내셔널이 ILO [Trotskyists International Left Opposition(편집자)] 라는 딱지를 붙이는 정도일 것이라는 강력한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트로츠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프랑스 전환”과 제2 인터내셔널주의자와 자본의 다른 정당에 대한 방향전환은 통일전선 즉 혁명적 파도의 쇠락기(1920-1922) 동안 코민테른의 정책으로 발전된 정책의 좀 더 실제적인 적용이었다. 1930년대 동안, 스탈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 모두 비슷하게 그 위치에서 반혁명적 결론에 이르렀다.

 

   이 점에서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는 이탈리아 좌파의 프롤레타리아적 흐름이 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Bilan」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루비콘강을 건너 사회민주주의와 결합한 그와 그 파당에 맞서 무자비하고 용서 없는 투쟁을 이끌 필요가 있다.” (「Bilan」)

 

   1년 전, 스탈린은 공식적으로 소련을 도적의 무리 (den of robbers)(레닌), 즉 국제연맹에 가입시켜 경쟁하는 제국주의의 무대 위로 되돌려 보냈다. 그의 목적은 간단했다. 동쪽으로(Drang nach Osten) 라는 히틀러의 목적도 명확했다. 스탈린은 소련에 대한 공격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프랑스, 영국과의 동맹을 이루어내려 시도했다. 이에 대한 코민테른의 역할은 1935년 7차 당 대회를 열어, 1928년 이래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임시변통적 급진주의를 역사책에 위임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주의자를 민주주의의 친구로 명명할 뿐만 아니라 모든 자유주의자, 발본주의자, 혹은 서유럽의 반파시스트 정당까지도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통일전선은 이제 인민전선에서 그 극에 달했다. 이탈리아 분파의 대응은 코민테른과의 어떤 연결도, 심지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반대파적 코민테른과의 연결도 끊는 것이었다. 그리고 7차 당 대회는 존재하는 코뮤니스트당들의 묘비를 세우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통일전선의 오용이라고 규탄했으나 그가 인민전선의 근본적 기반, 즉 파시스트의 위협으로부터 소련의 방어라는 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혁명적 격변기 동안, 파시즘에 기반을 깔아준 세력이 바로 트로츠키가 그의 추종자들이 들어가도록 했던 - 사회주의당 - 명확히 바로 그런 조직이었다.

 

   히틀러의 출현 이후 반파시즘은 - 다른 말로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특정 부문에 대한 반대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측면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스페인, 중국, 그리고 궁극적으로 2차 대전 중에 전 세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자본가 권력의 전통적인 욕구를 숨기는 이데올로기였으며 그들이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를 그들의 군대로 내모는 것을 가능하게 한 이데올로기였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트로츠키는 소련의 방어라는 견지에서 이 십자군의 지원을 주장했다. 그의 살해 후 1년, 소련은 마침내 그들이 추구했던 것, 즉 서구 제국주의 권력과의 동맹(미국 민주주의의 수호를 포함한)을 이루어냈다. 

 

<출처> 트로츠키트로츠키주의트로츠키주의자」,  코뮤니스트 노동자 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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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계급투쟁 보고서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 그리고 재획득 2

계급투쟁 보고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그리고 재획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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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기가지지 못한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의 주()무대

 

  2018년 4우리의 국제 중앙 조직이 채택한 계급 세력의 균형에 관한 문서는 신뢰와 연대에 관한 예비 교육 문서(8)를 인용하면서, 1848년 이후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두 단계로 윤곽을 잡는다그 초점은 노동계급의 자신감 성장과 상실에 맞춰져 있는데이 문제는 계급 정체성의 문제와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노동계급은 자신의 존재와 이해관계에 대해 알 때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단계 동안 자율적인 계급으로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7-23년 혁명적 파도의 시기까지 확장해 나가면서 노동계급은 종종 피비린내 나는 패배로 고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연속적으로 자신감과 정치적사회적 통일을 발전시켰다이 역량의 가장 중요한 징후는 노동자들의 투쟁 그 자체에 더해 사회주의적 비전이론적인 역량그리고 정치적 혁명 조직을 발전시킨 것이었다이러한 몇십 년몇 세대의 축적 과정은 방해받았고심지어 반혁명으로 뒤집혔다오직 작은 혁명 소수만이 그 뒤의 몇십 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68반혁명을 끝내고 노동계급이 부활하면서 다시 한 번 이러한 경향을 뒤집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새롭고 패배의 경험이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세대의 자신감과 계급 연대에 대한 새로운 표현은 대부분 즉자적인 투쟁에 뿌리를 둔 채로 남아있었다그들은 반혁명 이전의사회주의적 비전과 정치적 형성계급 이론과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이론의 전수 등 그 정도의 기반이 없었다다른 말로 하자면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자신감과 적극적인 단결집단적인 전투는 유기적인 연속성의 단절로부터 고통받아온 전투의 측면에 속했다똑같이그들은 생생한 정치적사회적 연속성에 다른 무엇보다 의존했던 것만큼그들은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이것은 다시 계급과 혁명적 소수의 새로운 세대 고유의 취약점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첫 번째 혁명적 물결의 패배로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전에, 1914-18년의 세계대전은 그동안 노동조합과 정당을 건설하는 데 인고의 노력을 기울인 몇십 년의 상실을 의미했으며그 상실은 특히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이러한 배신에 반대했던 혁명가들 사이에서도오직 소수만이 계급이 이러한 조직을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 이후로 스탈린주의의 등장과 함께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은 전망에 대한 보고서에서 언급했던 가짜 정체성 건설의 토대가 되었다그러나 과거로부터의 이러한 끔찍한 부담이 혁명적 물결의 진행에 재앙과도 같은 충격 특히 통일 전선에 대한 이론과 실천으로 표현된 을 주었으나이 시기는 또한 대중 파업노동자 평의회의 형성그리고 제인터내셔널의 등장에 내재된 새로운 형식의 계급 정체성에 빛을 비춘 때이기도 했다맑스가 이미 언급했듯이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거나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발견한 계급 정체성은 실제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를 그저 명확히 한 것 이었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계급은 기존의 모든 제도 바깥에서 자신을 조직함으로써만이자본주의 사회에 안티테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이어지는 몇십 년 간의 반혁명은 탈취의 과정을 심화시켰다. 193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위기쇠퇴의 첫 번째 진정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다그러나 1914년 배신에 대한 반격을 위해 창설된 공산당은 어떤 나라에서는 그 악명높은 사회주의 이론을 지지하며 국제주의를 포기해버렸고인민전선을 통해 노동계급을 국가별로 해체시키고 전쟁을 준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심지어 스페인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을 간직하고 있던 아나키스트 조합조차도 이러한 새로운 배신에 굴복했다. 1939년 전쟁의 발발은 베르세시(Vercesi)가 주장하듯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실종”, 따라서 혁명을 위한 조직된 정치적 활동의 쓸모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자본이 생존하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실종은 불가능하다또한 혁명적 소수는 계급 내의 영원한 필요에 따른다그러나 그것은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공포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보다 교묘하게도 민주주의의 방어라는 기획에 통합시킴으로써 확실히 그 정치적 혼란에 새로운 단계를 의미했다그 과정은 트로츠키주의 반대파를 전쟁 준비로 빠르게 통합시키고그 좌익 분파를 해체시키는 것을 포함했다프롤레타리아트는 특정 국가들 무엇보다도 1943년 이탈리아 에서 전쟁 말기 자신을 드러내긴 했다그러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베르세시를 포함하여대부분의 기대와는 반대로이것은 반혁명 과정을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더욱 더한 전체주의적 형식을 띤 반혁명은 전후 번영 시기를 지배했고그동안 자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했다이 시기는 사회학자들이 소비자주의의 확산과 복지 국가의 발달의 결과로 노동 계급의 부르주아화’ 이론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그리고 실제로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이러한 두 측면이 중요하게 남아있었기에 노동계급이 자신을 혁명적 세력으로 재건설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중요성을 더해 주었다소비자주의는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개별 사유권의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했다복지국가주의는 종종 좌파 정당에 의해 소개되고 노동계급의 성취로 표현되었으나 자본주의 통제의 더욱 중요한 도구다그것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침식하고국가의 선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대이주(大移住)의 단계에서도 국가에 의한 노동자 조직은 건강주택과 다른 혜택들의 문제가 노동계급 내부의 이민자들과 분리를 희생양으로 삼는 잠재적인 요인이 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9)

 

1968년 이후 계급투쟁의 부활은 1980년 폴란드에서의 대중파업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통합되어 있다는 사상을 논박했고자신의 제도적 사슬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세력이라는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일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노동조합 바깥에서의 와일드캣 파업(비공인 파업), 대중 집회와 소환 가능한 파업 위원회투쟁의 확장을 향한 강력한 경향 대중파업의 태아이거나 실제 표현 -들은 노동자평의회의 전망을 새롭게 했다동시에 1950년 거의 멸종할 뻔했던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 새로운 세계 당을 미래에 건설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조건 의 작지만 중요한 부활을 위한 토대를 제공했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신뢰와 연대에 대한 문서가 주장하듯이, 68년 5월과 뒤이은 운동은 이론적 수준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문제는 제기하였으나전반적인 계급투쟁은 경제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자본주의와 정치적으로 대결하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없었다프롤레타리아트 부활의 한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 정체성마저 다 같이 잃어버릴 수도 있는 해체의 새로운 단계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체의 시기에서의 계급 정체성

 

  1980년대 말 이후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인식이 후퇴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서로 다른 차원들이 함께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각각의 차원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선자본주의 사회는 그 기반이 해체되기 시작했고노골적인 해체의 단계에 있으며몇십 년의 쇠퇴를 겪으며 더 이상의 진화가 가로막혀 있었는데이 자본주의 사회의 처음부터 주요한 특징이었던 사회적인 원자화가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지적하였듯,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든이 개인의 고립이라는 것이 좁은 자기 탐색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이것이 너무 부끄러움 없이 맨얼굴로 드러나 있어바로 여기 이 위대한 도시의 군중들처럼 그것을 자기-의식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인류가 각각 분리된 원칙과 분리된 목적을 갖고 있는 모나드로 산산이 해체되어 원자의 세계가 되는 과정이 바로 여기서 가장 극단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10)

 

이 사회의 마지막 단계에서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은 모든 수준에서 강화된다개인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에서부터 이런저런 주택 단지나 이웃 수준에서 활동하는 길거리 깡패들 간의 폭력적인 경쟁그리고 한정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 간의 광기어린 투쟁국제적 수준에서 국가와 준국가들 사이의 군비 경쟁 혼돈의 확장까지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던 제한된 정체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 탐색 원자화에 반대하는 반응이지만 또 다른 수준에서 원자화를 강화할 뿐이다 의 기반도 형성한다이 사회적 연대의 해체는 지속해서그리고 은밀하게 노동계급이 자신의 공통 이해로 단결할 가능성다른 말로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재형성 가능성에 대해 반대되는 극단으로 작동한다.

 

부르주아지 또한 당연하게도 똑같은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부르주아지가 가진 정치적 기구들에 대한 통제역량에 대해국가 간 관계 수준에서 안정적인 동맹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언급했다그러나 노동계급과는 달리 부르주아지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해체의 영향을 유리하게심지어 스스로를 강화하도록 뒤집을 수 있다보기를 들어 동유럽 블록의 몰락은 해체 심화되고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로 박차가 가해진 의 객관적인’ 과정의 중요한 예시였다그러나 이 블록이 형성된 것과 관련된 특수한 역사적 조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로 서유럽의 자본주의와는 명백하게 다른 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 으로 인해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모든 공격 - 1990년대 이후 계속 투쟁의 부침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계급의식에 대한 공격 을 할 수 있었다이미 68 투쟁의 물결 이후 저항의 관점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노동계급에 대해 공산주의의 죽음’ 선전은 계급의식의 본질적인 차원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러한 미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그러나 이러한 선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그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의 어떤 가능성도 끝났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계급투쟁과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까지도 주장한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위협에 대한 전투의 수단으로서 계급 정체성을 약화시킬 필요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해체의 시기에서의 계급 정체성 약화의 세 번째 차원은 이것이다이른바 노동계급이 위험에 처해 있고멸종위기종이라는 주장은지배계급이 체계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변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무엇보다도 낡아빠진 자본주의 중심지의 탈산업화의 과정의 잘못된 주장 아래 진행된 모든 것들 에 의해 강하게 지지된다는 것이다이 과정이란 당연히 이윤이 나지 않는 산업을 포기할 필요그리고 같은 상품을 보다 싼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지구의 다른 지역으로 자본을 옮기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과정에는 언제나 직접적으로 노동 계급에 반대하는 요인들이 있었다 보기를 들어영국의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가광산을 닫으면그것은 주요한 경제적 알바트로스를 없애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적 계급의 매우 전투적인 부분에 심각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이 된다는 것을 부르주아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물론 모든 산업을 극동 및 다른 지역으로 옮김으로써 부르주아지는 계급 전쟁에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부대를 만들게 되겠지만주요 자본주의의 중심에서의 산업 노동 계급은 거기에서 특별한 위험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노동계급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한정되지 않지만언제나 노동자 운동특히 과거의 대규모 혁명 투쟁의 바로 심장에 있었다 러시아 혁명에서의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독일 혁명에서 루르의 노동자들프랑스 68 대중파업에서 르노의 노동자들, 1980년 폴란드 조선노동자들이 이를 보여준다.

 

수많은 오랜 산업들의 문을 닫는 것과 더불어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 했다특히 영국과 같은 오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서비스 산업은 경제적 삶의 보다 중심 무대로 더더욱 나아갔다이 모델은 이른바 비정규직 경제(gig economy)’인데종업원들은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가 그들이 충분히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자신의 연봉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과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로 여기도록 촉구한다또다시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이윤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자신을 노동자착취 받는 계급의 일부로 볼 수 없도록 하는데 묶여있다.

 

포퓰리즘과 반포퓰리즘

 

  우리의 지난 2017년 4월 대회 이후 포퓰리스트의 급증은 계속되었다부르주아지의 가장 중심에 있는 분파들이 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프랑스에서 마크롱을 당선시킨다든지미국의 민주당과 국가안보 서비스의 일부가 협력하여 트럼프에 반대하는 저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포퓰리즘의 확산을 막는 방어막으로서의 독일의 안정성은 AfD가 선거에서 득세함으로써그리고 켐니츠(Chemnitz)와 같은 장소에서의 집단학살주의자들의 거리 시위의 발전으로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과 거의 마비된 상태는 심해졌다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서고동유럽에서 포퓰리스트 정부가 반대를 주장하면서 EU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었다카탈루냐 세력과 다른 민족주의에 의해 위협이 된 스페인의 통일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브라질에서는 볼사나로(Bolsanaro)의 승리는 강한 지도자” - 자신의 지배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테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가 득세하는 새로운 걸음이다마지막으로 프랑스 및 다른 지역에서의 노란 조끼” 현상은 포퓰리스트들이 선거 영역뿐만 아니라 거리 심지어 노동계급의 방법까지도 취하면서 몇몇 우려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규모 시위에 발을 들이미는 역량을 보여주었다이는 동시에 계급 정체성의 의미에 더한 혼란을 주는 효과가 있다.

 

민족주의적이고 외국인 혐오 가득한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고증거와 과학적 연구에 대해 경멸하며음모 이론을 조작하고그리고 파시스트 깡패들의 노골적인 폭력과의 거의 가려지지 않은 연관성을 보이는 포퓰리즘은 의심할 바 없이 쇠퇴의 순수한 결과물이며자본주의 계급이심지어 그들 자신의 언어로도계급 간의 역사적 교착상태에 직면하여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이다그러나 포퓰리즘이 사회적 쇠퇴의 산물로서 등장하고부르주아지 자신의 전체 정치적 경제적 기관에 대한 통제를 침식시키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여기서 다시 지배계급은 계급의식에 반대하는 영원한 전쟁에서 포퓰리즘이 창조해 낸 문제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그 위기의 효과에 반대하는 계급의 저항에 대한 관점이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 분파의 경우포률리스트 정치에 바로 휩쓸려 가서, “바보들의 사회주의의 새로운 형태에 빠져버려 왔음은 명백하다여기서 바보들의 사회주의란그들의 비참한 상황이 기독교인백인또는 민족주의 문화를 공격할 목적을 가진 사악한 엘리트들의 특공대인 이민자들과 난민들의 높아지는 물결 때문이라는 사상이다이러한 망상은 포퓰리즘 정당들과 자신을 마치 진정한 민중의” 호민관인 것처럼, “()엘리트주의” 세력이라고 표방하는 선동가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결합한다이러한 사상은 영향력 있는 소수가 대학살이나 테러를 저지르도록 할 수 있고그 영향력은 착취 받는 계급반민족적 음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주의 위기의 무자비한 충격에 의해 버려진” 계급의 일부라는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명백하게 방해한다.

 

그러나보르디가의 유명한 격언 파시즘의 최악의 결과물은 반파시즘이다를 상기해보면우리는 포퓰리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반대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독립적인그리고 좌우익을 포함한 모든 지배계급의 이해에 적대적인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을 침범했던 대학살의 분위기에 대한 유니우스 팸플릿의 시작 부분에서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키시네프의 공기는 ...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간 존엄을 반영하듯경찰관을 궁지로 몰아넣고 떠났다.” 미국에서는트럼프의 말도 안 되는 발표와 관행들이 똑같은 상황을 만들었고그로 인해 민주당자유주의 공화당대법원 판사들그리고 심지어 FBI와 CIA가 선한 사람들처럼 보인다영국에서는정치적 삶을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의 브렉시트 극단주의자들(Brextremists)" 깡패들이 비자금과 심지어 러시아 제국주의의 음모와의 연결되자그것은 미디어 일부의 공개적인 격려와 함께 대규모 브렉시트 반대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75만 명까지 런던 거리에 나와 두 번째 국민투표를 요구하도록 했다비록 종종 공손한 중간계급의 운동이라며 비웃음당하긴 하지만그러한 동원이 포퓰리스트들의 거짓말로 분노하지만 스스로 자유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좌익 분파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교육받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를 이끌어냈음은 의심할 바 없다.

 

요약하자면정치적인 논쟁 전체는 친또는 반-트럼프또는 반-브렉시트 등등으로 독점되는 경향이 있으며이러한 논쟁은 애국적이고 민주적인 이데올로기의 경계 속에서만 이루어진다트럼프의 부르주아적 반대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진정한 미국임을 자처하고 있으며무엇보다도 민주주의적 규범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현 행정부를 비판한다이와 비슷하게 영국에서는논쟁은 언제나 우리나라의 진정한 이해관계에 대한 것이며논쟁의 양측 모두 자신을 민주주의와 민중의 의지 편에 서 있다고 내세운다이 똑같은 양극화는 포퓰리즘의 등장으로 불타오른 문화 전쟁들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듯이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정체성 정치의 형태인데이런저런 국가나 민족 그룹의 배타적인 이해관계의 방어자를 자처하며그것은 모든 다른 형태의 정체성 정치와 상호 강화하는 전투에 돌입한다 도시 게토에 갇힌 불만에 가득 찬 젊은 프롤레타리아트 특정 계층들의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는데 기여한 이슬람 깡패들이 되었든 또는 급진적이고 젠더 이슈를 둘러싼 보다 왼쪽으로 기운 운동이든.... 이 양극화는 사회의 분해와 증대되는 분열의 진정한 표현이지만프롤레타리아트와 마주쳐서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자신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여주는데바로 이 양극화가 사회적 정치적 영역을 차지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영역에 대한 논쟁이나 행동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는 한 그러할 것이다.

 

<>

 

8. 국제평론, 111, 2001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신뢰와 연대에 대한 교육용 문서

 

9. 계급투쟁에 대한 결의안, ICC 22차 대회

 

10. ‘위대한 도시들이 제목인 장에서

 

 

<출처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3차 대회 보고서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707/report-class-struggle-formation-loss-and-re-conquest-proletarian-class-identity

 

번역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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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자본주의 기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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