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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대통령의 축전을 대독하는 볼로딘 러시아 국가두마 의장. © 노동신문

▲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 노동신문
▲ 대성산혁명열사릉 참배. © 노동신문




친애하는 동지들과 벗들!
사랑하는 평양시민들과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
우리는 오늘 나라를 찾은 수천만의 환희로 무한히 격동하던 해방의 광장에서 80년전의 그 감격을 다시 안아보고있습니다.
우리 국가의 신생과 발전의 성스러운 행로를 높이 떠올리는 경축의 오늘은 인민의 운명전환을 안아온 불멸할 정신과 수십성상의 간고한 항쟁사와 함께 장장 80년을 이어온 새 조선의 력사가 어떻게 존엄과 영예의 절정에 자리매김할수 있었는가에 대한 시대의 조명이자 긍지높은 총화로 됩니다.
뜻깊은 이 자리에서 조국의 독립과 륭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애국렬사들에게 그분들이 물려준 자유와 번영의 터전에서 값높은 삶을 누려온 모든 후손들의 이름으로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
귀중하고 신성한 우리 조국에 열화의 사랑과 무한한 슬기를 드려 부강과 발전의 새시대를 창조해가는 전국의 인민들과 우리 무력의 전체 장병들에게 뜨거운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우리 인민의 해방위업에 더운 피를 바친 붉은군대 장병들의 전투적위훈을 경건히 추억하며 렬사들에게 숭엄한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서 우리 인민의 해방절을 두 나라의 공동의 명절로 경축하며 두터운 믿음과 우의의 마음을 함께 하고있는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동지와 우리 나라를 방문한 뱌체슬라브 월로진동지를 비롯한 로씨야의 귀중한 손님들, 친근한 로씨야의 전우들과 형제적인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동지들!
1945년 8월 15일은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자주적존엄을 되찾은 운명전환의 시발점이며 위대한 승리의 날입니다.
지난 세기들에 세계를 휩쓴 렬강들의 정복전쟁으로 하여 비참한 처지를 겪은 나라와 민족들이 많았지만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나라처럼 철저히 짓밟히고 깡그리 빼앗긴 수난의 나라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반만년력사에 가장 큰 치욕을 남기고 인민의 원한과 설음이 사무쳤던 망국사의 흐름을 멈춰세운것은 조국의 해방이였습니다.
우리가 조국해방의 사변을 식민지에서 독립국가에로의 전환을 맞은 경사로서만이 아니라 대를 두고 경건히 되새겨야 할 장거로 기념하는것은 여기에 조선인민의 고귀한 넋과 희생이 고여져있기때문입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는 조선인민의 수난의 력사인 동시에 애국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불의와 타협할줄 모르는 우리 인민이 피로써 써온 항거의 투쟁사로 기록되여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의 넋과 정신까지 완전히 말살하려고 인류사에 전무한 폭압과 악행을 들씌웠지만 우리 인민의 견결한 독립정신만은 꺾을수 없었으며 희생을 무릅쓰고 국권을 수복하려는 애국적반일투쟁은 한순간도 멈춤이 없었습니다.
아시아의 렬강으로 군림한 일본군국주의를 상대로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전개한 무장투쟁은 조국과 후손들의 운명을 떠메고 엄혹한 고난과 뼈아픈 희생의 고비들을 감내하여온 결사의 피어린 항전이였으며 자주적립장에 일관하여 이루어낸 항일혁명업적들은 조선인민이 개척한 자력독립로정의 뚜렷한 증명입니다.
결코 력사의 흐름이 만들어낸 사변이 아니라 전인민적인 항일력량이 희생을 불사하여 받들어올린 자주정신의 승리라는 여기에 우리 해방위업의 혁명적성격이 있고 정치적의의가 있습니다.
8월 15일과 함께 우리 인민은 잃었던 주권과 령토와 자원, 력사와 문화 그 모든것을 되찾고 비로소 자유와 운명개척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게 되였으며 민주주의적발전과 행복을 위한 위대한 창업의 길에 주인으로서 당당히 나서게 되였습니다.
지나온 80년처럼 마주한 력사의 장이 바뀌고 시대의 이름은 새롭게 씌여져도 우리 인민이 자기의 의지와 투쟁으로 안아온 8월 15일의 무게와 가치는 변할수도 덜어질수도 없는 절대적인것입니다.
동지들!
오늘 우리는 해방 80돐을 선렬들앞에, 조국과 후대들앞에 가장 떳떳하고 성스러운 자욱을 새겨온 무한한 긍지와 영광으로 맞이하고있습니다.
목숨바쳐 개척한 위대한 력사가 있다 해도 목숨걸고 지켜가는 계주가 없고 선렬들이 물려준 값비싼 전취물이 있다 해도 지켜가고 빛내이는 대대로의 투쟁이 없다면 그런 나라와 민족의 혈맥은 끊기우고말것이며 영예로운 추억을 할수 있는 권리마저도 잃게 될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조국해방절을 이처럼 성대히 경축할수 있는것은 선렬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는 이 땅우에 후세토록 강대하고 번영하는 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기꺼이 감당해낸 투쟁행정이 참으로 떳떳하기때문입니다.
8.15는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숙망이 실현된 승리의 날인 동시에 수난의 력사를 영영 끝장내기 위한 강국에로의 투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8.15를 분기점으로 하여 시작된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새로운 력사적사명은 첫걸음부터 기존의 관념과 공식을 초월하는 미증유의 개척과 반혁명에 명줄을 건 적대국들과의 중과부적인 고전을 동반하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의 사회발전을 역행시키려던 세력과 그 지반은 허물어졌지만 새로 독립한 나라들을 또다시 예속시키기 위한 침략전쟁과 분렬리간책동, 신식민주의정책의 일두에 나선 제국주의실체와 더불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영원히 고착시키려는 지배주의세력의 압력과 간섭은 우리앞에 헤아릴수 없는 도전과 난관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조선인민의 억센 자존심과 강인성앞에서 무기력하였습니다.
다시는 외세에게 유린당하지 않으려는 자주적신념은 폭제와 강권보다 강했으며 떳떳하고 행복한 생활을 창조하려는 애국의 열망과 노력은 고난과 시련을 이기였습니다.
그처럼 혹독한 년대와 년대들에 정치도 경제도 국방도 자기식으로 건설하여온 영광스러운 부국강병사에는 우리 국가건설과 활동의 불변의 원칙으로, 본령으로 되여온 자주로선의 생명력과 함께 목숨은 버릴지언정 자존은 버리지 않는 조선인민특유의 강인함이 력력히 새겨져있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리념과 제도를 수호하고 자기 조국을 강대하고 륭성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이 길에서 우리가 당한 아픔과 겪은 고난은 수백수천권의 책에도 다 담을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에게는 그것을 영광과 행복으로 추억할만큼 고귀한 투쟁의 보람과 이루어놓은 력사와 현실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습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삶과 그 앞날이 기약되여있는 정권을 자기들스스로가 세웠고 지켰으며 그 어떤 세력도 다치지 못하는 강대한 힘을 자기 손으로 받들어올리고 자기식대로 륭성과 번영을 건설해나가고있다는 이것이야말로 그 누구도 체감할수 없는 조선인민만의 긍지입니다.
바로 그 힘, 그 긍지와 더불어 우리 조국은 자주와 정의, 존엄과 평화를 굳건히 수호하는 강력한 보루로 키돋움하였으며 력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제국주의의 전횡과 강권을 누르고 인류의 해방위업에 무시할수 없는 공헌을 하고있습니다.
자기의 투쟁으로써, 자기의 힘과 슬기로써 조국강토우에 혁명선렬들의 념원과 그들의 청춘이 찬연히 살아 빛발치는 부강번영하는 나라를 건설하고 해방 80돐을 경축하는 우리 인민의 감격과 긍지는 끝이 없습니다.
조국해방 80돐은 우리 인민이 예속과 굴종을 불사른 자주독립의 터전우에 쌓아올린 조국번영의 기념비이며 투철한 자주의식과 불굴의 투쟁으로 조국의 지위와 명성을 새롭게 적어온 존엄과 영광의 분수령입니다.
동지들!
새 조선의 탄생이 기록된 력사의 그날로부터 장장 80돌기의 년륜을 되돌아보는 이 시각 다시금 사무쳐오는것은 위대한 우리 인민에 대한 더없는 경의심입니다.
우리의 기억속에는 각이한 년대와 시대에 전투적업적과 공훈으로 조국의 승리와 영예를 받들어올린 너무도 많은 이름들이 있고 우리의 심장속에는 꿈도 사랑도 청춘도 이 땅에 고이 묻은 너무도 많은 영웅들의 넋이 살아 높뛰고있습니다.
조국과 혁명을 위한 길에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고 귀한 자식들도 주저없이 내세우며 그 길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들딸들을 두었다면 그것을 슬픔이 아니라 영광으로 여기는 이 나라 인민의 특유의 강인성은 항일의 나날로부터 오늘까지 한점 흐려짐없이 장장 한세기를 이어 유전되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결코 항일혁명이라는 력사의 한 구간, 당대의 그 준엄하고 격렬했던 환경에서 발휘된 특별한 감정이나 충동이 아니라 자기 조국의 승리와 영광에 바쳐진 생을 가장 값있고 행복한 생으로 간주하는 우리 인민의 고결한 인생관, 조선인민의 위대성의 발현으로서 언제나 이어지고 반드시 물려받게 되여있는 피줄기와도 같은 정신이고 전통입니다.
이 불멸의 계승이야말로 조선인민의 제일의 우수성이고 위대성입니다.
력사와 현실은 어떤 사람들이 이 나라 정권을 고이고있으며 어떤 신념과 정신이 혁명의 계승성을 지켜가고있는가, 조선의 강대함이 어디에 연원을 두고있는가를 명명백백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인민대중은 그 본성으로 하여 정의롭고 힘있는 존재이지만 이 세상에 조선인민처럼 정의롭고 강인하며 자존심이 센 인민은 없습니다.
이런 인민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하며 그렇듯 애국적이고 그렇듯 자존심이 강한 인민이 건설하고 떠받드는 국가는 영원히 강대하고 불멸합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조국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변함없는 사랑과 굴할줄 모르는 강인함으로 자기 시대의 력사적사명과 의무에 무한히 충실한 우리 인민에게 숭고한 경의와 충심의 인사를 드리는바입니다.
동지들과 벗들!
조선의 해방을 위한 결전의 기록에는 세계반파쑈전쟁의 일선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붉은군대 장병들의 공적이 력력히 새겨져있으며 우리 인민은 로씨야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위훈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형제적인민의 민족해방투쟁을 지지성원한 로씨야인민의 정의로운 리념과 노력은 피로써 맺어지고 두터워지는 조로관계의 귀중한 유산으로 되고있습니다.
오늘 조로친선관계는 력사에 전무한 동맹관계로 발전되고있으며 신나치즘의 부활을 저지시키고 주권과 안전, 국제적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공동의 투쟁속에서 공고화되고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언제 어느때나 력사의 옳은 편에 서있었으며 오늘도 패권을 반대하고 공평과 정의를 요구하는 인류의 지향과 요구를 견결한 투쟁으로써 대변하고있습니다.
올해 인류는 전세계를 노예화하려던 파시즘을 격멸하고 그 범죄적만행에 종지부를 찍은 제2차 세계대전종결 80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국제무대에서는 참담한 파괴와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세계반파쑈전쟁과 민족해방투쟁의 결과를 지워버리고 역전시키려는 위험한 행위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있으며 주권국가들의 권리와 리익을 침탈하는 제국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만용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해지고있습니다.
력사를 두고 낱낱이 잃어온 정치적지배권을 재생해보려는 야망밑에 끊임없는 전쟁과 공갈정책으로 유럽과 아시아, 나아가서 전세계를 우경화, 일극화하려는 극히 횡포하고 무분별한 책동들을 분쇄하는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에 충실한 나라와 인민들이 기꺼이 떠메야 할 력사적임무이며 그것은 진보진영의 강력한 련대와 공동의 투쟁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조선과 로씨야는 지금 나라의 존엄과 주권,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투쟁의 한전호에서 또다시 정의의 력사를 창조하고있습니다.
숭고한 리념과 진정한 우의로 맺어지고 혁명을 피로써 지원하는 력사와 전통을 주추로 하고있는 조로단결의 힘은 무궁합니다.
우리 당과 정부는 앞으로도 자주와 정의를 위하여 시대와 력사가 부여한 사명에 충실할것이며 이 로정에서 형제적인 우리 두 나라 인민은 언제나 승리자의 거룩한 명성을 함께 할것입니다.
동지들!
위대한 인민이 세우고 가꾸어가는 이 나라는 력사의 준엄한 도전과 난관속에서도 륭성과 번영에로의 힘찬 전진을 계속하고있습니다.
강대하고 무궁번영하는 조국의 오늘과 래일을 위해 생을 묻은 선렬들앞에, 이 땅에서 대대손손 살아갈 후대들앞에 지닌 우리 세대의 임무는 참으로 무겁습니다.
위대한 강국을 위하여, 후손만대 길이 빛날 사랑하는 우리 국가의 무궁한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계속 굴함없이 우리앞의 도전들을 이겨나갑시다.
투쟁속에서 더욱 강해진 우리의 힘으로써, 우리 인민특유의 자존과 기질로써 내 조국을 더욱 위대하게 안아올립시다.
조선인민의 존엄과 영광의 위대한 력사는 천년만년 대를 이어 영원히 빛날것입니다.
위대한 조선인민 만세!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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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80년이 지났다. 그러나 “누가 조국을 해방시켰나?”라는 물음은 여전히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도 학교 교과서, 언론, 정치 담론 속에서는 ‘연합군의 승리’가 곧 해방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는 해방의 실체를 절반만 보여주는 시선이다. 진정한 해방은 그 땅에서 살고 싸운 우리 민족의 손으로 쟁취된 것이었고, 이를 되묻는 일은 단지 과거의 해석이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해방을 ‘선물’로 보는 시각은 우리 민족을 수동적인 역사 객체로 전락시킨다. 이 시선은 의도했든 아니든, 식민지 시절 우리 민족의 무장투쟁과 조직적 항쟁을 소외시키며, 외세의 개입을 모든 역사 변화의 중심으로 놓는다. 특히 미국의 원자폭탄과 일본의 항복을 기계적으로 연결한 광복 서사는, 일제가 한반도를 어떻게 통치했고, 우리 민족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조직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김일성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 한반도 각지에서 우리 민족이 주도한 전민항쟁, 국제 반파시즘 전선과의 연대 속에서 이룩된 자력해방의 전개과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세운 인민위원회와 자치조직을 인정하지 않고 해체하거나 탄압했다. 이 때문에 38선 이남에 주둔한 미군을 향해 “해방군인가?, 또 다른 점령군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해방은 일제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 스스로가 자신들의 삶과 질서를 새롭게 조직했는가에 달려 있다. 자위대와 인민위원회, 노동자·농민·청년·여성 조직 건설과 학교 운영, 공공시설 보호 활동은 모두 새로운 질서의 씨앗이었다.
해방의 의미는 단순히 8월 15일이라는 날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항쟁과 무장투쟁 그리고 해방을 바라는 전민족이 조직화된 결과였다. 해방이 ‘완성된 사건’이 아니라 ‘쟁취하는 과정’이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잊는 순간, 우리는 다시 외세 의존과 민족 분열을 관성적으로 대하는 오래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2025년 ‘광복 80돌’을 맞이하며 우리는 해방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그 정신은 지금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

1945년 8월 9일, 항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이 국경을 돌파하고 해방의 총공격을 개시했을 때, 이에 호응해 전민족이 들불처럼 봉기했다.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기도 전에, 이 땅의 민중은 무장을 들고 일본 통치기구를 분쇄하며 해방의 주체로 나섰다. 이는 우발적인 분노의 폭발이 아닌, 수년에 걸쳐 준비된 조직적 항쟁의 분출이었다.
조국광복회, 반일회, 반제동맹, 청년회, 농민조합, 여성동맹 등 독립운동조직들은 이미 각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이들은 항일유격대와 손잡고 적 통치기구를 해체하는 실질적 무장항쟁을 전개했다. 그 중심에는 “전민항쟁”이라는 전략적 지침이 있었다. 한반도 전역에 자위대, 보안대, 자치대, 적위대, 치안유지대 등 다양한 명칭의 무장조직을 결성했다.
①어랑: 패주하는 일본군을 섬멸하다
함경북도 어랑 지역에서는 8월 16일, 무장대가 편성되어 봉강의 면사무소를 접수하고 100여 명의 청년을 무장시켰다. 이 무장대는 나남에서 패주하던 일본군을 매복공격으로 타격했다. 퇴각 중이던 일본군은 어랑무장대의 강력한 사격에 사상자를 내고 산길로 도주했으나, 강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집단 투항했다. 이는 지역 무장조직이 일본 정규군을 격파한 상징적 승전 사례였다.
②길주: 철도파괴와 무기노획
길주 성천 일대에서는 8월 16일 조선인민혁명군의 부대가 백암을 해방하고 길주로 진격했다. 남계자치대는 적의 군용열차 퇴각 정보를 입수하고 역 선로전환기를 조작해 열차를 전복시켰다. 충돌과 함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인민혁명군은 28량 분량의 무기, 식량, 군수물자를 노획하거나 파괴했다. 이어 덕산면 민경대는 도목동 골짜기에 집결한 일제 패잔병을 기습해 전멸시켰다.
③성진·삼지연: 도심 내 저항 분쇄
8월 18일 성진 보안대는 일본군 잔당이 시내 고급요정에 집결한 사실을 파악하고 요정을 포위, 격전을 벌인 끝에 무장해제에 성공했다. 이어 성진경찰서를 습격해 악질 경찰들을 처단하였다. 삼지연 노동자돌격대는 8월 19일 퇴각하던 일본군을 매복 공격하여 10여 정의 기관총, 수백 정의 보총, 수천 발의 탄약을 노획하였다. 이들은 청진 전선으로 도주하려던 잔당을 완전히 격멸했다.
④평양: 항공부대까지 소탕한 대중의 힘
평양은 일본 관동군, 17방면군 등의 기계화부대가 집결한 핵심 지역이었다. 8월 16일 조국해방단을 중심으로 조직된 적위대가 일본군을 포위하고 무장을 해제했다. 8월 17일 평양역에서 열차로 도주하려던 일본군은 적위대에게 붙잡혔고, 이어 평천리 병기공장, 선교경찰서, 대동강역 등 주요 시설을 쟁취했다. 평양감옥도 점거되어 정치범으로 분류된 독립운동가 3,000여 명이 석방되었다.
전국 각지에서의 자치와 봉기
함흥, 혜산, 강계, 사리원, 신의주, 경성 등지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벌어졌다. 함흥과 원산을 포함한 함경남도 3개시와 16개 군, 129개 면 전역에는 8월 16일부터 31일 사이에 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신의주에서는 2만 명이 봉기하고, 삭주에서는 조국광복회가 중대광산을 접수했다. 안변에서는 반일청년회가 군청, 면사무소, 은행을 장악했고, 이천과 해주에서도 유사한 점령과 자치조직 결성이 이루어졌다.
항쟁과 권력 창출의 결합
이러한 전민항쟁은 단지 일본군에 대한 물리적 저항을 넘어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정치적 실천이었다. 경찰서와 면사무소, 신사, 우편국, 은행, 방송국 등 식민통치 기반을 파괴하고, 인민위원회를 세워 치안, 행정, 경제를 스스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무정부 상태의 해방’이 아닌, ‘조직화된 자력해방’이었다.
김일성 사령관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45년 8월에 우리나라에서 적 통치체계가 왜 그렇게 빨리 허물어졌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전민항쟁 조직들이 도처에서 들고 일어나 일본사람들이 틀고 앉아 있던 통치기관을 철저히 짓부수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3일부터 23일까지 단 열흘 사이에, 전국 1,000개소에서 반일시위와 무장봉기가 벌어졌다. 전민항쟁은 단지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작전 보조가 아니라, 해방의 실질적 동력이었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

1945년 8월 9일, 김일성 사령관은 조선인민혁명군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이는 1930년대부터 준비된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무장투쟁 전략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자력해방전이었다.
총공격은 다음 세 축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국경 돌파 작전. 둘째, 국내 소부대와 인민무장대의 배후타격. 셋째, 전민항쟁을 통한 해방지대의 구축이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된 전투방식이자,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략이기도 했다.
경흥요새 돌파작전은 자력해방의 첫 포성이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두만강을 건너 원정교 일대를 점령하고 일본군 주둔지를 타격했다. 이어 청학동의 101혼성연대를 격멸했고, 송진산·강팔령·어운동골짜기에서는 도주하는 잔당을 매복·소탕했다. 이 과정에서 청학반일회, 곰산노농무장대, 오봉반일동맹 등 민중조직도 합세했다.
훈춘 전선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련군, 동북항일연군이 연합해 대반령, 마유산 일대를 공격했다. 박광선 소부대가 일본군 진지를 정탐하고, 낙하조가 적 종심에 기습을 가했다. 특히 증산무장대는 적의 탄약고를 습격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여, 본진의 진격을 가능케 했다. 이 연합전은 국제연대 속에서도 조선인 주력군이 중심 역할을 수행한 사례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군사작전과 병행해 해방지대에서 인민위원회 수립과 자위대 조직을 직접 주도했다. 함경북도 회령·경성·무산 등에서는 군사해방 직후 바로 인민위원회가 수립되고, 지역 질서 유지가 실행되었다. 이처럼 군대와 정권 창출이 결합된 전략은 단순한 점령이 아닌, 해방 이후 질서를 준비하는 혁명적 총합이었다.
총공격의 전선은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간백산밀영, 국사봉, 백학산, 곰산 등 국내 20여 곳 이상의 비밀근거지에서 출발한 인민혁명군 소부대들은 각 도의 전선별 지휘계획에 따라 진입했고, 민중 항쟁조직과 협력하여 지역 점령을 넘어 행정기반까지 구축했다.
나아가 8월 13일~25일 사이 전국 1,000여 곳에서 무장봉기, 반일시위가 폭발했다. 함경남도의 경우, 8월 말까지 3개 시·16개 군·129개 면 전역에서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는 단일 조직이 아닌 각 지역 인민이 주도한 실질적 자치기구였다.
결국 김일성 사령관의 총공격 명령은 단순한 전투개시가 아닌, ‘우리 손으로 쟁취한 해방’의 집단적 실천이었다. 이는 미군정이 들어오기도 전에 이북 전역을 해방구로 전환시킨 결정적 분수령이자, 자력해방의 군사적·정치적 주도권을 동시에 확보한 사건이었다.

■ 육상작전: 국경 돌파와 요새 격파
① 경흥요새 돌파전
경흥은 일제가 ‘동해의 철통’이라 자부한 요충지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8월 9일 새벽, 원정교 일대에 화력을 집중하며 총공세를 시작했다. 전위부대는 기습과 돌격으로 일본군의 주요 방어진지를 무력화하고, 청학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송진산 전투와 강팔령 매복전이 이어졌고, 항일유격대는 도주하던 일본군 잔당을 어운동 골짜기에서 소멸시켰다. 그 지역 조국광복회는 무장대를 조직해 병참을 지원하고, 곧바로 인민위원회를 수립하여 질서를 장악했다.
② 훈춘·훈융 해방전
훈춘은 일본군과 만주국 잔존 세력이 집중된 국경 방어의 중심축이었다. 박광선 소부대를 포함한 혁명군 정예 병력은 남별리와 동흥진 요새에 대한 정밀 정찰 후, 대반령 진지를 공격했다. 마유산·월명산 일대에서는 낙하조가 적 후방을 교란했고, 정면공격대는 동시 돌입으로 주둔부대를 섬멸했다. 증산무장대는 적 탄약고를 폭파하고 보급선을 차단해 퇴로를 봉쇄했다. 이 작전은 3개국 연합의 성격을 지녔으나, 조선인민혁명군이 중심축이 되어 훈춘 전역을 해방시켰다.
③ 배후타격과 전민항쟁의 결합
간백산, 국사봉, 곰산, 백학산 등 국내 밀영에서 진입한 소부대는 각 도·군 단위의 조국광복회와 협력해 후방에서 통신소, 경찰서, 창고 등을 파괴했다. 항일유격대는 일본군의 이동로를 차단하고, 무장을 해제한 후 인민위원회를 세워 지역 자치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배후타격은 전방의 총공격과 동시에 이루어져, 일제의 군-행정 연계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해상작전: 연합상륙과 전략 항만 확보
① 웅기 상륙작전 (8월 11일)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는 8월 11일 함경북도 웅기항에 상륙하여 일본군이 방어에 집중하지 않은 틈을 타 기습점령에 성공했다. 만향고개 전투에서는 고지화된 적의 영구화점을 뚫기 위한 백병전이 전개되었고, 해안선 인근 일본군 후방기지들을 차례로 점령했다. 항일유격대는 내륙으로 진격하며 주요 행정거점을 장악했다.
② 나진 상륙작전 (8월 12일)
8월 12일, 나진항에 상륙하려던 조선인민혁명군과 소련군은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이미 나진인민무장대가 시내를 장악하고 헌병대, 경찰서, 통신소를 접수한 상태였다. 일본군은 일부 항복했고, 상륙은 무혈로 이루어졌다. 이 작전은 민중조직이 군사작전보다 앞서 전투 없는 해방을 실현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③ 청진 상륙작전 (8월 15일)
청진항은 일본군의 마지막 저항지였다. 8월 15일, 해방의 날. 조선인민혁명군과 소련 해군은 청진항 일대에 대대적 상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항복을 거부하며 고지와 항만 벙커를 사수했다. 해상과 시가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백 명의 소련 해병이 전사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청진무장대와 함께 적의 포진지를 점령하며 시내를 해방했고, 전투 종료 후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청진 전투는 해방의 날에 벌어진 유일한 격전이자, 가장 상징적인 자력해방 실천이었다.
이처럼 육상에서는 요새를 돌파하고 해방구를 확장하며, 해상에서는 전략 항만을 장악하고 적의 후방을 붕괴시켰다. 조선인민혁명군은 놀라운 조직성과 전략으로 일본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렸고,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국내 독립운동조직과의 협동을 통해 정치적 해방도 동시에 실현했다.
‘국경에서 울린 총성’은 단지 승전의 외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 식민의 족쇄를 끊고, 해방의 주체로 거듭난 자력해방의 선언이었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해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는 지금까지도 역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많은 이들이 해방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이라는 국제정세의 부산물로 간주한다. 이는 이른바 ‘타율해방론’이다.
반면,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장투쟁과 전민항쟁, 그리고 소련의 대일 참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 민족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해방을 쟁취했다는 ‘자력해방론’이다.
타율해방론은 대체로 원자폭탄 투하를 해방의 결정적 계기로 삼는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이 이에 굴복하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서사에는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 특히 무장투쟁의 역할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해방을 외부에 의해 ‘선사된 것’으로만 보는 이 시각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주체성과 투쟁의 정당성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정세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일본이 항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단지 원자폭탄의 물리적 파괴력에만 있지 않았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하였다. 동시에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 사령관의 지휘 아래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여, 회령·온성·나남·청진 등지의 일본군 통치기관을 실질적으로 붕괴시켰다. 이 작전은 단순한 게릴라전이 아닌, 정규전에 준하는 수준의 작전이었으며, 전략적으로도 소련군과 연계되어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북방의 공세에 크게 동요했다. 기존의 일본군 최고지도부는 소련군의 급속한 남하와 한반도 북부에서의 조선인민혁명군 진공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고, 이는 미국을 통해 조기 항복을 모색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소련에 항복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한반도 북부에서의 군사적 붕괴는 제국 일본에게 치명적인 전략적 타격이었다.
자력해방론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 김일성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혁명군은 단순히 일제에 맞선 무력 저항을 넘어, 해방 이후 사회체제까지 준비한 정치·군사 통합세력이었다. 이들은 국제 반파시즘 전선의 일원으로 중국 및 소련 공산당과 협력하며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한 연대를 실현해왔다. 따라서 자력해방론은 자주적 주체를 바탕으로 한 능동적 연대의 결실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해방은 결코 외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한반도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제국주의 일본의 계획을 실질적으로 붕괴시킨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무장투쟁이었고, 그 무게중심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각지에서 전개된 우리 민족의 봉기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해방의 주역은 누구인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은 분명 역사적 조건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해방을 설명하는 것은 진실의 절반만을 말하는 것이다. 해방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싸우고 피 흘리며 우리 민족이 쟁취한 역사였다. 바로 그 점에서, 자력해방은 자기만족을 위한 해석이 아니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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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말 제주 서남부 알뜨르 비행장에 늘어서 있는 일본군 무기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며 전략의 무게중심을 한반도로 옮기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에 식민지로만 간주되던 한반도는 이 시기 들어 ‘일본 본토’의 연장선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방어 전략을 넘어 ‘조선사수론’이라는 이름의 결사항전론으로 나타났다.
그 상징적 조치가 바로 17방면군 사령부의 한반도 설치였다. 1945년 4월, 일본은 이 부대를 조직하고 37만 병력을 한반도 전역에 배치했다. 평양에서 대전, 부산으로 이어지는 방어축이 형성되었고, 병참과 작전기지가 구축되었다. 특히 제주도는 태평양 전선의 미군 북상에 대비한 전략 요충지로 전환되며 비행장과 대규모 병력기지가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
이처럼 한반도는 일본의 ‘본토방위선’에 편입되며 열도와 같은 수준의 결전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전술상의 판단이 아니었다. 일제는 한반도를 제국 최후의 방어선이자, 천황제 체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간주한 것이다. 헌병과 경찰 병력은 치안유지 명목 하에 증강되었고, 우리 민족을 전시체제에 동원하기 위한 ‘황국신민’ 교육이 강화되었다. 한반도의 청년과 노동자들은 군사기지 건설과 전투지원에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이는 우리 민족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겼다.
이 시기 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병력과 군사시설의 규모는 단순한 식민지 통제를 넘는 것이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전략적 전방'으로 전환했고, 만약 미군이 상륙해올 경우 이곳에서 결사항전을 벌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제국의 마지막 발악이었으며, 한반도는 그들의 최후 결전지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실현되지 못했다. 8월 소련의 대일 참전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세,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전민족의 항쟁이 맞물리며 일본의 방어선은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한반도는 단지 ‘해방을 받은 땅’이 아니었다. 제국주의가 끝까지 움켜쥐려 했던 곳이자, 오히려 그 야망이 꺾인 역사적 전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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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광복 80돌을 맞아 1945년 8월 15일 그때를 돌아본다. 문득 해답을 찾지 못한 오래된 질문과 마주한다. “과연 누가 조국을 해방시켰나?”
대한민국 주류 역사관은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했고, 그 결과 우리 민족이 해방되었다는 구도를 유지해왔다. 즉, 해방은 미국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제국주의도 제 발로 물러나는 경우는 없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에서 연합군에 패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순순히 물러났을 리 없다.
해방은 항일무장투쟁과 전민항쟁을 전개한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쟁취한 역사적 성과다. 그렇기에 8.15는 한반도에서 일제가 패망하고 우리 민족이 항일전쟁에서 승리한 ‘전승절’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특집기획은 이러한 관점을 복원하는 시도다. ‘자력 해방’의 출발점은 항일무장투쟁의 최종 국면, 1945년 8월 9일 항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 시점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첫째, 8월 9일 총공격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둘째, 항일무장세력이 실제로 일제의 통치기구를 무력화하고 민중 권력을 수립한 구체적 사례들. 셋째,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일제의 탄압과 민중의 항거에 대해 알아본다. 도서 '현대조선의 탄생'(저자 박경순)을 참고했다.
1. 일본 본토 방어의 전초기지로 변한 한반도
2. 해방의 진실을 가린 ‘원자탄 신화’
3.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 자력해방전의 결정판
4. 일제의 통치기구를 분쇄한 전민항쟁
5. '누가 조국을 해방시켰나?'가 왜 중요한가
해방 80년을 맞아 ‘자력 해방론’을 재조명함으로서 잊힌 민중항쟁, 외면당한 항일무장투쟁, 지워진 승리의 역사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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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한국이 때아닌 때에 봄꿈을 꾸고 있다.
12일 한국의 대중 보도 수단들은 곧 열리게 되는 러미수뇌회담에서 미국 측에 보내는 우리의 의중이 전달될 가능성도 있다는 억측을 내놓았는데 바로 허황한 꿈을 꾸고 있다는 대표적 실례로 된다.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개꿈이 되고 억측도 지내 하다 나면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할 모순 당착투성이에 빠지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미국 측에 무슨 이유로 메시지를 전달하겠는가.
그릇된 억측을 흘리고 있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듣고 있는 세상을 향해 재삼 상기시킨다면 우리는 미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
나는 이미 조미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 관계가 정책에 반영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과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들 사이의 만남도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회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우리가 왜 관심이 없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이 우리가 남부 국경선에 설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하였다고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자고 한다.
최근 저들이 취하고 있는 그 무슨 《선의적 조치》와 《유화책》이 호응을 받고 있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조한관계가 《복원》이라도 되고 있는 듯한 여론을 조성해 보려 꾀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은 자기들이 대북 확성기들을 먼저 철거하자 우리도 일부 확성기들을 철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불필요하고 비용 드는 확성기》 철거와 같은 상호 간 조치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발언하였다.
얼마 전 한국합동참모본부도 국경선 부근에서 우리가 확성기를 철거하는 동향이 식별되었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가관은 군부의 발표를 받아 물고 한국의 당국자들과 전문가라는 것들이 줄줄이 나서서 《화답 조치》라느니, 《변화 감지》라느니, 《긍정적 호응》이라느니 하는 평을 달고 있는 것이다.
사실부터 밝힌다면 무근거한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조작 놀음이다.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또한 철거할 의향도 없다.
내가 보건대 한국의 현 정권은 윤석열 정권 때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들을 없애버리고는 그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평가받기를 기대하면서 누구의 호응을 유도해 보려는 것 같다.
합동군사훈련 문제 역시 조정이니, 연기이니 하면서 긴장 완화에 왼심이나 쓰는 것같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그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되며 헛수고로 될 뿐이다.
서울의 위정자들이 저들의 새로운 대조선 정책에 대해 미화분식하면서 여론을 퍼뜨리는 데는 목적이 있다.
우리의 호응을 유도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이고 설사 그것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저들의 《긴장 완화 노력》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정세 격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세간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타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잔꾀는 허망한 《개꿈》에 불과하며 전혀 우리의 관심을 사지 못한다.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
너절한 기만극은 이제 더는 인기가 없다.
서울의 대조선 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할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더러운 것에 면사포를 씌워도 악취는 나기 마련이며 제아무리 정의로운 척 시늉 내고 겉가죽에 분칠을 해도 적대적 흉심만은 가리울 수 없다.
오는 18일부터 시작되는 미한합동군사연습을 통해서도 다시금 한국의 적대적 실체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인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해 여러 차례 밝혀왔으며 이 결론적인 입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정당한 조치로 된다.
한국은 자국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 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해놓고 우리에 대한 핵선제타격에 초점을 맞춘 《미한핵협의그루빠》라는 것을 조작하고 정례적인 모의판을 벌려 놓고 있으며 각종 침략적 성격의 전쟁연습에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잠꼬대 같은 《비핵화》를 염불처럼 외우며 우리 국가의 헌법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세계가 직시하는 조한관계의 엄연한 실상이다.
항시적인 안전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위태하고 저열한 국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보다 선명해져야 하며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인 위협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 고착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거나 점치는 것은 사막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2025년 8월 14일 ,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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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동지와 전화대화를 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동지와 8월 12일 전화대화를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와 울라지미르 뿌찐동지는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시고 따뜻한 동지적분위기속에서 대화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가장 존경하는 울라지미르 뿌찐동지가 조국해방 80돐을 맞이하는 전체 조선인민에게 따뜻한 축하를 전해준데 대하여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조국해방 80돐을 맞게 되는 우리 전체 인민은 80년전 붉은군대 장병들이 세운 영웅적위훈에 대해 진정한 국제주의의 참된 귀감으로 경건히 추억하며 조선의 해방을 위해 희생된 쏘련군 렬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두 나라 국가수반들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사이에 체결된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의 협조관계가 더욱 심화발전되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앞으로의 협력강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시였다.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동지는 꾸르스크령토를 해방하는 과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제공한 지원과 조선인민군 군인들이 발휘한 용감성과 영웅주의, 희생정신을 다시금 높이 평가하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 국가와 군인들에 대한 뿌찐동지의 높은 평가에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하시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로간조약의 정신에 언제나 충실할것이며 앞으로도 로씨야지도부가 취하게 될 모든 조치들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할것이라는데 대하여 굳게 확언하시였다.
두 나라 국가수반들께서는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시였다.
김정은동지와 뿌찐동지는 앞으로의 접촉을 더욱 긴밀히 해나가기로 합의하시였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
비행기 두 대가 저공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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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연습 = 간접 침략
연습 중 언제 침략으로 바뀔지 모르기에 상대방은 긴장
8 . 18 침략연습 --> 조미대화 안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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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독트린 즉 원칙은 안 지켜져서
트럼프 철칙 : 영원히 , 세계 특히 동아시아와 인도를
직간접 , 핵 재래식 무기로 침략 안하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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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철칙 발표 --> 핵 재래식 무기 불 거론 조미대화 -->
조미러 협정 --> 의료협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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