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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8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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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2/27
    비를 좋아하라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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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2/25
    공주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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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2/24
    yj를 정리하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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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2/23
    드라마를 찍네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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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2/22
    Y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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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2/22
    화풀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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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2/21
    기억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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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2/20
    good인 마음 아님 굳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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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2/19
    가야할 것 같은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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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오늘 부산 바다를 가보았다. 언니와 아침에 일어나서 김밥두줄을 사서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막상 떠날 때는 바다가 뭐라구 내가 이렇게 자꾸 가려고하나...생각했는데 해운대에 도착해서 바다를 봤을때의 감격이란!

 

 부산은 정말로 지방도, 관광지같은 모습도 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자 제일의 항구도시인 부산. 사실 많이 발달되있을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가서 서울과는 별 차이없는 그 모습에 조금은 실망을 했다. 지방의 고즈넉함을 기대했던가...

 

 해운대의 모습은 완연한 발달된 관광지였다. 외국의 해변 관광지들 처럼 바다의 모랫벌 뒤로는 빽빽한 고층의 호텔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렸을 때 인적이 드믄 섬을 찾아서 해수욕을 갖던 기억이 났다.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건, 사람들이 아직 많이 찾지 않아서 인지 정말 파랗고 예쁜 바다색이 찬란했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탁트이면서 바다에 왔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바다의 광활함이 나에게 밀려왔고 갈매기와 바다가 풍기는 그 내음새하며. 갈매기는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 사이를 가르며 날라다녔다. 귀여워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바다를 구경한 후 언니와 나는 배가 고파서 빕스에 들어갔다. 오늘 처음 가봤는데 정말 비쌌다.--;; 빕스에서 가격표를 보니 아웃백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ㅋㅋㅋ 샐러드바가 부페식으로  되있었고 음식 질도 좋아서 언니와 나는 좋아라하면서 먹었다.

 

 나는 산도 싫어하진 않는다. 단지 등산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산에가면 빨리 올라가야 끝난다는 생각에 주위의 경관은 보지도 않고 오르기에만 급급한 나의 방식때문이다. 그에비해 바다는 여기저기 볼 것 다 보고 느낄 수 있는거 다 느끼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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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좋아하라고.

'다시 비를 좋아하지 않겠니?'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듯 하다. 이상하다.  작년에  공부를 하면서 나는 비를 싫어하게 됐었다. 봄과 여름밤의 황홀함과 흥겨움을 기억해서 였을까 아님 막연히 어둠이 싫어서 였을까,  나는 어둠이 싫었고 그  어둠에 명확함까지 빼앗는 비는 더욱 싫었다. 비가 오면 자연스레 기운이 안 좋아졌고 우울해 지는 걸   막기 힘들었었다.

 

 내가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날마다 꼭 비가 내린다. 벌써 그게 세번째이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비를 좋아하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친구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좋기에 나는 그런날은 비과와도 관용으로 비를 내린 그 사람을 용서하곤 했다. 그런데 그게 우연적으로 세번이나 겹쳤다. 세번째 우연을 내 마음대로 필연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비를 다시 좋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에게 바다에 올때 어떤게 안 좋은지 몇가지를 말해주었다. 요금이 만원넘게 나오고, 고지가 높아지는 부분에선 기압차에 의한 귀멍멍 현상(?)이 나타나고 금요일 밤에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니까 길이 막히고 등등등... 이렇게 나쁜 점을 미리 말해준건 절대 그들에게 오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가면서 느낀 불편한점이나 나쁜점을 미리 말해주면 나중에 그 아이들이 올때 힘든걸 조금이나마 덜 느끼지 않을까 해서 였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지 미리 말해주면 그 아이들이 초행길일 때 느낄 부정적 인상이 좀 덜해서 다음에도 나를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친구들이 자꾸 오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할까봐 3월달에는 바쁠테니까 4월달에나 오라고 미리 선수를 쳤다.ㅋㅋ

내 말에 부담을 느끼거나 그럴 친구들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그 아이들이 힘들거나 하는 건 원치 않는다. 처음으로 대학을 접하면서 느낄 그들의 호기심과 두려움, 기대감은 나도  겪었던 것이기에 서로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였다.ㅋㅋ

 

 친구들에게 최근에 내각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나는 내가 집에서 생각했던 때보다 훨씬 간단하고 가볍게 말했는데도 분위기가 다운되서 내심 당황했다. 내 상황이 너무나 심각했던건지 아니면 그 아이들이 나의 문제와 고민에 충격을 받은건지는 모르겠지만...ㅎㅎ

 

 어제 약속에서는 한친구가 조금 늦게 왔다. 그 친구를 마중하러 내가 나갔었는데 그 친구가 나의 짧은 머리를 보고서 바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를 위로한건지 아님 그냥 반가운 인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나의 슬픔을 이해해준것 같아서 기뻤다. 히히 내가 머리를 자른것은 언니의 권유에서 였다. 언니가 머리를 자르면 조금이라도 더 기운이 날거라는 말에 나는  언니를 따라 미용실에 갔다.  그리고 싹둑싹둑 짤랐다.

 

 긴생머리여 안녕. 사실 너 땜에 나 조금 귀찮기도 했어.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두 나 너없이두 잘살수 있다~~!하하

 

아참! 어제 친구의 남자친구도 만났다. 교대를 다니는 아니였는데 점잖은 친구가 아닌  것 같은데 지쳐서 그런지 참 멋적어 하고 말이 없었다. 다음엔 카페 말고 술집이나 밥집에서 불러야지...--;;;  내가 그 아이한테 말해줬다. 'br이가요 mg씨 착하다고 그렇게 칭찬을 많이  했어요!!!'ㅋㅋ 친구가 시켜서 한 거였지만  분명 내 친구가 이말은 한 적이 있긴하다. 그 반대의 말도 간간히 해줬지만. 사실 친구랑 만나서 남친 칭찬만 한다면 그 얼마나 단팥빠진 호빵과 같은 대화가 되겠는가. 우리가 나중에 결혼을 하면 그 땐 만나서 남편들 흉을 보고 있으려나?하하 도대체 몇년뒤의 얘길 지금하는건지...

 

정리는 잘 안되지만 이젠 정리를 좀 해봐야지. 그냥 간단 명료하게. '나 어제 친구들 만나서 엄청 좋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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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다녀오다.

 오늘 동생 공부를 봐주기 위해 공주에 다녀왔다. 앞으로 동생 공부를 봐주기 힘들 것 같아서 동생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왔다. 동생의 공부를 더 봐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나에게 공주까지 책임지는 것은 너무 힘든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요즘에 자주 생각하는데 생각하는 것만으로 너무 힘들다는 느낌, 내가 지금 그걸 겪고 있어서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이 나를 울부짖게 한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친구들과의 슬픈일에도 눈물 흘리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던 내가. 요즘엔 내 마음의 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어두울 땐 길 가다가도 막운다. 크게 우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눈물을 막으려 하지 않고 그냥 걷는다. 오늘 밤도 그랬다.

 

 어제 오늘 오랫동안 차를 타면서 공지여의 '수도원 기행'을 읽었다.

그녀가 말했다.

젊었을 때 그렇게 절망스럽고 괴로웠던 이유는 열망을 갖고 자기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가능성을 점치다 겪게되었던 거라고. 꿈에 대한 정열이 없다면 겪지 못할 성격의 것이라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이 괴로움을 하루 빨리 떨쳐내고 힘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서 3,4월은 정말 죽을 작정으로 과외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공부도 놓고있어서는 안된다. 생각만으로 지쳐온다. 이게 나에게 가장 힘든 점이다. 예전엔 공부만 하면 얼마든지 괜찮은거였는데 지금은 그 부분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 지지 못할 거면 할 수도 없다는거. 성인이 되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겠지만 나에겐 너무 무거운 짐이다. 너무 무겁다...

 

 요즘 나에게 힘든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시련과 고통이 이렇게나 한꺼번에 올 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다. 내가 더 강해지고 굳건해지라는 누군가의 뜻일 거라 생각하려고 하다가도 힘들어서 어떻게, 왜 하고 묻는다. 

 

 어제 친구가 학교에 왔다갔냐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자퇴하는데 10분도 안걸리길래 굉장히 허무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1학기 막판에 친해진 친구였는데 내가 많이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 보다도 내게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준 친구였다. 공부할때 예상치고 못했던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고 계속 나를 아껴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힘이됐었다. 그 친구가 실망은 하겠지만은 배신감은 조금이나마 덜 들도록 말해주었다. '내가 1학기때 그렇게 웃으면서 기쁨을 함께 나눴던거 거 가식아니라고. 거짓말 아니라고. 나는 진심에서 너희들을 좋아해서 그런거였다고. 완전한 이해를 바라진 않지만 나 너무 미워하진 말아달라고. 만약 우리둘이 서로를 잊지않는다면 인연인이상 또 만나지 않겠냐고.'

 

 오늘도 외친다. 내가 느꼈던 나의 생명력을 발휘해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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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를 정리하며...

 오늘 자퇴서를 내고 왔다. 자퇴서를 낸다고 생각하니 결정한 순간부터 내기 전까지 얼마나 착잡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자퇴 서류를 모두 작성하고 나서 사무원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잠깐만요'라고 외치고선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바로 공중전화에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여쭤봤다.

"엄마, 저 지금 잘하는 거 맞죠? 내가 하고 싶은거 의산데...지금 내가하는거 맞아요?"

어젯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혹시나 실수하는게 아닐까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아빠가 접수를 끝내신 상태였다. 난, '그래...괜찮을거야.'하면서 나를 계속 위로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이 그 학교의 졸업식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앞으론 정말 보기 힘들지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행이라고 생각된것은 그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계속 숨기만한 내 자신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학교에서의 나는 검은 긴 생머리인 아이였기 때문에 짧은 머리의 나를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동아리의 사람들도 여러명 보았다.(나는 이 동아리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전혀 어색하진 않다. 나는 그 사람들은 사랑한 것이 맞다. 그 학교가 지금까지도 나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 동아리 때문이고 내가 그 곳을 계속 잊지 않을 이유 또한 그 동아리이기에.)

 

나오는 길에 밤을 새우며 술을 마셨던 여자 선배 한명을 보았다. 그 언니와는 아주 많이 친해지진 못했지만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 학교를 나오는 바람에 짧은 시간밖에는 가질 수 없었지만. 택시에 타고있었는데 창문을 열고 그 사람을 부르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망설이기만 하다 결국은 부르지 못했다. 학교가 거의 안보이게 될쯤 나는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퇴서내고 간다고. 원주 또 오겠다고. 너무나도 짧아서 였을까, 아님 나의 감정이 제대로 묻어나지 않아서 였을까. 그 언니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휴학을 하고서 이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내 친구에게 대학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그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배반감을 느꼈겠냐고.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나 정말 거기를 버리게 된거 가슴아프다고. 그 친구는 반년밖에 안 있었는데 나의 의미가 얼마나 크겠느냐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지금도 그 사람들에게의 죄책감이 완전히 가셔지지는 않는다. 내가 너무 그 사람들에게 솔직히 대했던 걸까...내가 괜히 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 것일까...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 어딘가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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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찍네찍어

 참...내가 살다살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지...

엄마 아빠가 나 몰래 추가 모집에 지원을 해 노셨다... 2명을 뽑는데 350명쯤 모여서 안되겠다 싶어 얘기를 안하셨단다. 어째 붙었는데도 기쁘지가 않다. 삼수 작정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처음엔 거긴 붙어도 안 보내신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나이도 있고 그냥 가라고 하신다. 솔직히 그리 가고 싶지 않다.  황당한 것은 내가 바라던 과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걸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내가 써놨지만 이런말 하는 내가 참 철없다. 우리 집 형편이 엄청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ㅠ)

 

 자퇴서 내는 것까진 좋은데 그 외 것들은 다 맘에 안든다. 아~~저번날 밤 아무 생각없이 집에 있었는데 학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부 다시한다고 할때부터 계속 태클이시더니 이번엔 어떻게 됐냐고 자꾸만 다그치시길래 안돌아갈거라고 했다. 원래 완전히 다 끝나기 전에는 암말 안하고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말 안하면 정말 화내실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말씀 드렸다. 학교로 복학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그 선밴 그 뒤로는 정말로 연락을 안한다. 내 결과가 정말 궁금하셨나...공부를 하면서도 정말 자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학교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몇몇의 사람들만을 믿고서 내키지 않는 곳에 내 미래를 맏기는 건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 학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게 나를 안심시킨다.--''

 

 엄마에게 블로그의 존재를 안 가르쳐 주려 했는데 엄마가 알아버렸다. 제발 정확한 주소는 계속 모르시길... 엄마가 알면 또 딴 곳으로 옮겨야 하는 불상사가...

 

그 학교를 현역 때 붙었다면 정 붙이고 계속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 곳엔 내 친구 형도 있고 또 국립대라서 돈이 싸다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점이다.--;;) 또 바다 옆이라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그치만 역시나 이런것들은 전에 대학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여기가면 분명히 공부 또 하겠다고 할텐데 엄마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참...

 

 자꾸만 예상치도 못한일이 생겨나니까 내 인생이 참 극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자만하지 말고 바닥을 맛보다 잠시 희망이 손에 쥐어지는 것 같기도하고... 또 그러다 보면 정말 겸손해야 겠구나...싶게 일이 생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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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

 작년에 공부하면서 내가 원주를 생각하며 눈물흘렸던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눈물흘린것 뿐만 아니라 그리움에 가슴 애린적도 많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서글픔과 그리움은 다시 그곳으로 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내가 떠날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미안하고 슬펐던 것이다. 공부하면서 주위 사람들한테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좋으면 돌아가지 왜 여기 있냐고... 그 당시 그들에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나는 그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사람이 내가 왜 휴학을 했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몰라서였겠지만. 난 원주와 조화가 잘 안된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가장 중요한 이류는 그곳에서의 나의 삶은 너무나 평탄했다는 것이다. 기분 나쁠 것도 특별히 없고 좋은 일도 특별히 없고.. 항상 so..so... 내 평생 그럽게 단조롭게 살아본 적이 없다.그리고 항상 아팠다. 여기저기...다 나았다 싶으면 다른 곳이 아프고 또 나았다 싶으면 다른데가 또 아프고...고등학교 3년내내 병치레 한 번 없었던 내가 그 반년동안 별의 별 고생을 다하면서 아팠었다. 엄청 죽을 병은 아니었지만 정상이 아니었던건 확실하다.

다시 앉아서 공부해야겠다. 일기쓰느라 40분이나 써버렸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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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풀이

 언제부턴가 답답할 때면 블로그에 일기를 쓰게 되었다. 원래 일기는 매일 아침이나 기분이 붕~할때 썼었는데...이게 뭔 짓인가 싶다.

 

 지금 또 화가났다. 작년엔 내가 조울증에 걸렸나 싶었다. 정말 정신병자처럼 기분이 엄청 좋았다 나빴다. 왜그렇게 기분이 오락가락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 좋을 때가 있었던건 기억난다.

 

 요즘은 잔잔함을 유지하다 놀라고 황당하고 짜증나고 답답한 때가 종종 생긴다. 작년 같은반에서 하나밖에 없던 동갑내기 친구가 이번엔 대학엔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서 축하해 줘야 하는데 내처지가 이래서 그런지 그녀석 앞에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축하한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 녀석이 첫번째가 아니라는 거다.ㅠ

 

 두번째이다 보니 안좋은 것은 딱 하나다. 나의 성과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세배가 됐다는 거. 공부할땐 이래저래 힘들어서 외롭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기분이 날아갈것 같았다. 잘 될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그놈의 자만심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린것이지만. 그런데 지금은 그놈의 관심이란 것이 나에게 엄청 부담이 된다.

 

 이렇게 되놓고 보니 나의 성격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점. 무작정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완전 긍정적 사고 방식에 빠져있던 나였는데 어째 이렇게 되버렸다. 계속 갈 거라고 생각했던 관계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것 같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놀라움과 기쁨을 찾았기 때문일까... 이런 이유로 지금 나에게 연락 주는 사람들이 정말 나를 걱정해서인지 아님 단순한 호기심에서 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생겨버렸다. 예전엔 그렇게도 잘 구별이 가더니만..

 

 이 상황을 점차적으로 계선시키기 위한 준비 단계로 내가 생각한것은 진심으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만 연락하고 지내자는 것이다. 나를 향한 마음이나 내가 향하는 마음이나 한결같고 따뜻한 사람들만... 그 다음 일은 점차 내가 바뀌어 가면서 생각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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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겠지...

 거의 다 잊어갈 쯤에 한번씩 기억나고 완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끔씩 잊어버린다. 누군가 그랬다. 생각나서 그리운게 아니라 그립기 때문에 생각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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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인 마음 아님 굳은 마음?

 오늘 신문에 안현수가 2관왕을 달성했다는 기사가 선수들의 감격스러운 표정과 함께 실렸다. 토리노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 뒤로 계속 신문을 봤었는데, 안현수 선수에 관한 기사가 나올때마다 오노의 얘기가 빠질때가 없다.

 처음엔 나도 '아싸 반칙왕 눌렀네~~'하면서 좋아했지만 오노 선수를 비하하는 여러 차례의 기사를 본 후에는 '그렇게도 억울했나...'싶다. 지금은 이렇게 국민들에게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미국에 대한 보상감 때문인가? 스크린 쿼터땜에 조금 일그러진 자존심 회복의 일환인가..--;; 그 스크린 쿼터란 것도 참 아쉽다. 정부의 스크린 쿼터에 대항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나와서 시위하는 것을 보고 외국 기자들은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스크린 쿼터에 대항해서 일인 시위하는 것보다도 저예산이지만 예술성이 뛰어난 한국 영화에 출연해주는 것이 오히려 한국 영화 발전에 득이되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거라는 것이다. 억대의 개런티와 출연료를 뒤로하고 그들이 '싼값'의 영화에 출연할지 물어보고 싶다. 물론 이 스크린 쿼터란 것이 우리 나라의 자체적 움직임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에 응한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는건 인정한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대한민국 국민의 자체적 의지로 했다면 얼마나 떳떳했을까. 우리는 작품으로 얼마든지 승부할 수 있으니 스크린 쿼터 없어도 상관없다라 외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남는 일들이다. 자랑스러움 속에서도 씁쓸함이, 억울함에서도 꿋꿋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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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가기 싫다는데두 엄마가 세번이나 권하셨다. 중국에 갔다오라구...세번다 싫다고 했다...집밖은 아무데도 나가기 싫은데 무슨 해외 여행이냐고...

 

 사실 엄마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뜻 밖이었다. 엄만 언니와 내가  밖으로 나가게 되는걸 좋아하시지 않으니까..어딜 간다구 해두 빨리 들어와야한다. 너 잘못되면 엄마가 어떻게 사냐며 밖에 나가서도 엄마 생각을 하며 빨리 가야되는데, 이제 가야겠다,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어떻하지...하는 생각을 놓지 못하게 하는 분이시니까.

 

 엄마의 그런 제안을 그렇게 뿌리쳐 버린게 지금에 와서야 후회가 된다...자유롭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런 곳에 가서 다 떨쳐내고 다 소리지르고 다 화내버리고... 내 마음에 징그럽게 얽혀 붙은 그런 생각들, 감정들 다 버리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오늘 한번 엄마에게 말해봐야겠다. 숨막혀서 안되겠다고, 내 정신병 완전히 치유 안된것 같다고, 엄마 딸이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은 좀 절박한 상태인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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