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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10/31 21:41

진보블로그 여기저기에 쫘~악 깔린 복사판 덧글과 트랙백들...

 

딱히 뭐라할 수는 없으면서 약간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런 거 넘 오랜만이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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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  2007/10/31  

http://www.vop.co.kr/new/news_view.html?serial=89958
이명박 후보는 국민성공시대, 정동영 후보는 가족행복시대를 말합니다.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면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웠군요.
권영길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모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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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보적입니까? from:맞짱(mazzang) 공식 블로그 /2007/10/30
안녕하세요? 논쟁과 소통이 있는 메타블로그 맞짱입니다. 맞짱에 대해서 궁금하시죠? - 맞짱은 어떤 곳이죠? 맞짱은 진보적 논쟁, 토론을 지향하는 메타블로그 입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자기 블로그에서 멤돌고 있는 진보적 블로거들의 논쟁공간이자 안식처로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 맞짱에서는 뭘 하나요? 맞짱의 주된 컨텐츠는 말 그대로 '맞짱 논쟁'입니다. '블로그 vs 블로그' 라는 이름의 컨텐츠 이지요. 주제를 정해놓고 찬반 토론을 벌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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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21:41 2007/10/3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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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10/29 13:27

아는 이가 극찬을 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스토리도 알려주지 않았다.

동네 방네 벨소리가 영화 속 삽입음악들로 바뀌어가고 있단다.

 

그래서 오랜만에 부푼 기대를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

 

 

포털을 뒤지다보니 어느 블로거가 '음악 하나는 최고로 잘 만든 것 같다'라고 썼는데,

'음악 하나 잘 만든 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명확한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 '영화 또한 그러했다'고 포괄적 동의를 해주는 건 아니다.

영화적 기법이 딸려서냐고? 그 반대같다.

 

분명 거친 화면, 튈 것 없는 장면들인데, 인공조미료 냄새가 풀풀 난다.

음악이 주인공을, 그들의 감정이입을, 스토리를 다 잡아먹어버린 느낌이다.

음악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감정은 영화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과잉되어 스크린 위에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이걸 누구나 흔히 깨닫는 멜로의 한 코드로 감싸 해소하려하니

나중에는 저 어설퍼보이는 화면조차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구나에게 익숙한 향수를 통째로 뒤집어 쓴 느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뮤직비디오 10편 쯤 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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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13:27 2007/10/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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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통신|융합 - 2007/10/25 21:45

* 참세상에 쓴 글

 

MS제국의 철옹성, 마침내 균열

[기자의 눈] 유럽 반독점 분쟁에서 MS의 굴복이 시사하는 바

 

한국에서 컴퓨터를 사게 되면 대개 기본으로 깔리는 소프트웨어들이 정해져있다. 당신이 컴퓨터에 관한한 대한민국 1%쯤 되는 매니아가 아니라면, 윈도우즈 비스타(Windows Vista) 나 윈도우즈 엑스피(Windows XP)라는 운영체제에 윈도우즈 익스플로러(Explorer)와 미디어플레이어(Media Player)가 세쌍둥이마냥 컴퓨터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MS)라는 하나의 기업이 PC 운영체제 시장의 99%이상을 장악함으로써 민중이 인터넷과 영상을 볼 도구 선택의 권리까지 침해해가는 동안, 거대 독점 세력에 대응하여 우리 사회가 선택한 무관심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지난 22일 유럽연합(Europe Union, EU)은 MS사가 시장 지배를 통해 경쟁을 제한한 점에 대해 시인하고 EU가 2004년 제시한 독점금지 명령을 이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사건은 1998년 MS의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SunMicroSystems, Sun)사가 MS사의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 미공개와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끼워팔기로 인한 경쟁 방해에 대해 EU에 제소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EU과 MS사의 반독점 분쟁은 9년을 끌어온 끝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명령의 주요 내용은 그동안 MS가 윈도우즈 소스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타사의 윈도우즈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을 제한했던 관행을 깨고 저렴한 가격의 수수료만으로 별도의 특허권 확보 없이 소스 정보에 대한 접근과 사용을 제공하도록 한 점이다. 또한 타사가 MS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경우 지불했던 특허비용을 매출의 5.95%에서 0.4%로 크게 낮추었다.


더불어 MS사는 비상업용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해 비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누구나 복제, 재배포할 권리를 인정할 계획이다.


사실 Sun사가 처음 끼워팔기 규제를 제기했을 당시에는 이 정도의 조치만으로 MS의 독점력을 약화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의 내용을 보면 MS가 보유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일정 정도의 제재와 개입을 가하는 수준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후 EU가 조사 중인 구글이나 인텔, 아도비같은 거대 정보기술업체에 대해서도 반독점 정책 적용과 기업들의 보다 수평적 자율 경쟁체제 구축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 자본의 독점은 곧 가격 결정권을 자본에게 이양함으로써 파생되는 민생 경제의 종속화를 의미하며, 더불어 특정 기술들이 생활화되면서 우리의 삶에 침투하여 삶의 습관과 문화를 변경, 왜곡시키는 중독현상과 직결된다. 그들이 제공하는 미디어플레이어로 영상과 음악을 듣는 사이 MS사가 제공하는 화면을 소비하게 되고, 익스플로러의 모양새에 익숙해지면서 MS가 추가하는 버튼의 의도나 가져가는 나의 개인정보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EU에 비해 훨씬 타협적인 미국조차도 윈도우즈의 폭압적 시장 점유율에 대해 몇몇 주 정부의 검찰총장들이 나서서 MS 감시기간 연장을 주장하며 공익 차원에서 심대한 문제라고 개탄하고 있다. 반독점 정책을 뿌리내려 민중의 권리를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FTA를 통한 지적재산권 강화와 이로 인한 독점 강화의 앞길을 터주고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에 경찰병력을 지원하는 우리 사회의 무능한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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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21:45 2007/10/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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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10/21 14:41

* 밝은집 님의 한국현대사진의 풍경 에 관련된 글

 

한국 현대 사진계 원로, 중견, 신진들의 사진을 총망라해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별로 3섹터로 나뉜 전시의 구획은 3세대간 구분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피사체와 카메라에 대한 작가의 위치같기도 하다.

 

희한하게도 실제 피사체와의 물리적 거리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원로에서 신진으로 갈수록

피사체는 사람-자연-사물(또는 투영되는 사회)로,

피사체와의 거리는 다가옴에서 멀어짐으로,

카메라와의 거리는 도구에서 친구로 변하는 느낌이다.

 

 

1.

1880년대 사진이 도입된 이후 1960년대 프로사진가 개념이 정착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는 1세대들의 사진에서는 대체로 피사체 내부까지 꿰뚫어 사진이라는 정지화면에 담아내고자하는 엄청난 욕망이 느껴진다.

 

육명심 [백민-강원도 강릉](1983)

 

 




주명덕 [논산](1971)

 

심지어 극히 거리감을 두고 싶은 피사체에게조차 바라봄의 거리에 대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거리감 개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병통치가 아닌- 가벼운 두통을 동반할만큼 피사체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하게끔 유도해낸다.

 

황규태 [만병통치](2000)

 

 

 

2.

중견 집단들은 사진전을 안착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요인도 많겠지만- 사진의 크기가 커지면서 화면 안에 자연이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혹여 사람이 주요 피사체라 하더라도 주변화하거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묻어나는 피사체에 대한 거리는

피사체의 중심이 사람에서 자연으로 옮겨지면서 보다 드넓은 시야를 선사하는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

 

민병현 [SNOWLAND.SL165](2006)

 

배병우 [소나무](1992)

b

 

김아타 [ON-AIR Project 056-1](2004)

 

 

 

3.

중견 작가들이 새로이 확장시킨 피사체가 자연이라면,

신진 작가들이 새로이 확장시킨 피사체는 사회다.

물론 1세대도 인물이 있으니 주변의 사회를 담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파생된 공간을 담은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신진들은 사회 자체가 핵심 피사체로써 사람이나 사물, 간혹 자연이 그 공간안에 배치되어진 느낌이다.

때론 작가가 아닌 카메라가 원하는 대로 찍은 것 아닐까 싶은 사진도 있다. 그만큼 사물을 대한 감정의 깊이가 달라짐을 느끼게 한다.

 

김옥선 [Alex and Eric](2004)

 

 

아래 사진은 너무 작게 축소되어 놓칠 부분이 있는데,

실제 이 사진을 보게 되면 전화박스 바닥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작은 병정인형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승우 [Real World II](2006)


 

대체로 감정 투여의 대상을 사람과 자연까지 봐준다 하더라도 사물로 확장시키는 건 이상한 거부감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물과 그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이 사회이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다보면 사물에 대한 '바라보기'는 당연한 결과치다.

 

확실히 상대를 꿰뚫어 표현하고싶고 관계 맺고 싶은 욕망이 21세기가 된 우리들에게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지금의 시대에 대뇌의 명령을 무시하고 간뇌의 감성을 증폭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조금씩 사회가 할퀴고 간 상처를 품고 있는 일종의 정신병자들이며, 소외라는 현상의 핵심 대상들이다.

따라서 뭣 모르고 상대방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을 풀가동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오면 - 물론 계속 제정신이 아니면 상관없을 것 같은데- 상대방이 요구하는 감정의 홍수에 휩쓸려버리게 된다.

실제 요즘은 누구를 만나든 마치 정신과 상담 치료를 원하는 사람마냥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듣는 지를, 관계의 진정성을 잊은 존재들 같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조금씩 감정의 경계선을 긋는다. 

동시에 생존 전략 차원에서 사회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진실,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진리를 찾고자 한다.

 

 

* 사진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현대사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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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14:41 2007/10/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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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10/14 12:16

나의 '서커스'에 대한 인상은 정지화면이다.


누군가 몸을 꺾든, 코끼리의 발을 올리게 하든, 어떠한 묘기를 보여주는 과정 후반에는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잠시간의 정지 장면이 연출된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이 순간적 적막에 긴장감을 느끼며 '서커스'의 전부 내지는 백미인양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커스는 환상적이고 화려한 무대와 사람들이 펼치는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사진에 담아내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 서커스는 역동성의 발현이 아니라 흡사 발현된 역동성의 박제, 내지는 동(動)을 품은 정(靜)의 숨겨진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왠지 사라져가는 문화로써의 서커스에 대한 아련함까지 겹쳐지는 감정으로...

 

로나 비트너(Rhona Bitner)가 담은 서커스의 모습은 내가 받은 느낌을 그대로 옮겨준 것 같은 정적인 미의 극치다. 

검은 바탕에서 오로지 서커스를 펼치는 주인공들만 존재하는 것 같은 사진들은 상당히 동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고요와 테잎 늘어진 동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서커스에선 동물들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라 문(Sarah Moon)의 [앵무새]는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붉은 바탕과 검은 링에 너무나 그림같은 앵무새를 표현하고 있다.

 

반면 발타자르 부르카르트(Balthasar Burkhard)의 [사자]는 125*197cm의 거대한 화면에 멍하니 입 벌린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인 나머지,

서커스단에 갇힌 속박감, 자유가 박탈된 자의 비존재감,

서커스 자체가 갖는 우울한 느낌 등을 한꺼번에 표현해주는 것 같다.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가 찍은 크리스텐 멕메나미(Kristen Mac Menamy)의 사진들은 이미 과장된 서커스에 대한 이미지를 한번 더 과장시키는 듯한 느낌이다.

인물과 공이라는 사물의 배치는 과도한 소형화나 대형화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3차원적 공간감을 무너뜨린다.

 

 

올리비에 르뷔파(Olivier Rebufa)의 [조종]은 줄을 잡고 있는 사람과 줄에 매달린 인형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사진이 주는 인상은 오히려 줄과 무관하게 무대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인형이고, 인간이야말로 위태로운 줄에 매달려 상황에 휩쓸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도식화된 관계들이 변화 또는 역전되고, 흡사 액자 구조의 문학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위대한 서커스]라는 전시 제목을 들었을 때 속으로 생각한 감상 포인트는 '화려함, 역동성, 고독감'정도가 아니었나 싶었다.

확실히 부합하는 작품이 없지 않다.

아련한 과거에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면도 있고, 피에로의 고독과 카리스마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히 화려함이나 역동성보다는 정적인 아름다움,

고독감보다는 세상에 대한 관조나 이중삼중으로 가려진 풍자 등으로 읽히는 것들이 많다.

 

정(靜)에 숨은 동(動)보다 더욱 광대한 열정과 고요함이 만들어가는 느리고 작은 변화.

 

* 사진출처 : 대림미술관(http://www.daelim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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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4 12:16 2007/10/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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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7/10/14 11:16

batblue 님의 말대로 흙 많고 굴곡 많아 뛰거나 걷기 좋은 공원.

간만에 산책 좀 가봤슴다.

그런데 확실히 핸드폰 카메라는 색이 안예뻐. 담번에 디카 가지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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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4 11:16 2007/10/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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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10/03 16:51

* 해멍님의 [전시회 다녀왔다]

민중언론 참세상[참세상 기자들이 추천하는 명절 보내기 비법!] 에 관련된 글.

이 가을, 일민미술관에서 세 작가에게 '미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중 한명인 전영찬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림의 진화를 시도중.

 

작품들 중 하나의 제목이자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인 'Inside Out'은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분류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이상해'서 라든가 '당신이 독특해'서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답한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 하나하나가 때론 비범하거나 때론 비참한 반전들을 준비하고는,

그 이질감에 대해

1) 별거 아니니 크게 놀라지 말라고 토닥거리면서

2) 원인은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속삭인다.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1) 별거 아니니 크게 놀라지 말라고 토닥거리기

 

예를 들면 이런 건데,

[Falling]이란 작품은 침통한 감정으로 빌딩 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두팔을 들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화면이 상하 역전되면서 자살자 이외의 모든 이들을 -화면에선 아래가 된- '하늘'로 떨어뜨린다. 그 모습을 본 자살자는 자신을 자살로 몰아넣은 사회인들을 바라보며 크게 웃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하늘로 떨어졌던 사람들이 -화면 위가 된- 바닥으로 다시 올라오면서 두팔로 걷기 시작한다.

아래인 땅에서 두발로 걷던 모든 이들은 이제 위가 땅이 된 곳에서 두 팔로 걷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는 자 없이 또다시 일상의 쳇바퀴는 돌기 시작한다.

 

[Identity Crisis]에서는 바나나로 원숭이를 약올리면서 폭력을 일삼는 아이와 그 아이의 약을 올리려고 아이스크림으로 꼬시는 원숭이가 나온다.

그리고 아이가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못이겨 원숭이를 따라 들어간 동물들의 세계는 어른들이 모든 동물들을 연기하는 인간의 세계였다.

사실 여기까지면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나 설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여기서 또한번, '원숭이들이 아이를 징벌하려는 순간 밝혀지는 아이의 진실'이라는 반전을 준비한다.

 

[Identity Crisis]

 

 

2) 원인은 사회구조적 문제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는 고양이와 쥐가 조금만 움직여도 균형을 잃고 바다에 빠질 쪽배 안에서 감격의 포옹을 통해 배의 전복을 막을 중도(中道)를 찾아간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고양이의 먹이사냥은 약자와 강자 사이의 중도란 결코 평등한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더불어,과연 고양이와 쥐가 가장 행복했던 그날의 그 순간은 언제였을지, 남은 고양이는 내내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Show]라는 작품에서는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장면을 보는 아이, 그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그 엄마를 지켜보는 아빠, 그리고 그 아빠를 도청하고 있는 정부기관, 그들을 내려다보는 외계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면에 잡힌다. 이를 통해 관음증에 사로잡힌 건 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라는 사실이 조망된다.

 

 

5천만 또는 전세계인 모두 '나는 극히 정상'이라고 외치고 속으로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시대,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덕분에 우린 겉으로는 원숭이를 약올리던 아이가 쓰고 있던 가면을 쓰거나, 서로의 관음증을 숨기기 급급하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예외없이 누구나 소외되고 갑갑함을 느낀다.

구조에 어긋나는 것들에 자꾸 '이상하다'는 딱지를 붙이면서, 딱지가 많아질수록 격리, 거세시켜버리는 것은 세상이고 사회일 뿐이다.

격리와 거세의 두려움으로 사람을 호령하는 세상에 우리의 딱지를!

 

 

* 그림 출처 : 일민미술관(http://www.ilm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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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3 16:51 2007/10/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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