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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9/29 14:48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19세기 비유클리드기하학이 등장할 때까지,

아니 비유클리드기하학이 등장한 이후에도,

유클리드가 정리해놓은 기하학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의 주요 이론적 발현체였고,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리계의 핵심으로 배치시켜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였다.

그러했던 만큼 

알고보면 인간 사고의 결정체라든가 직관에 의거했다기보다 오히려 경험치의 발현이었고, 그 경험이 결코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혼란이란

세계관의 붕괴, 대재앙 그 자체였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적이고 변화와 흐름 자체에 집중하는 동양의 철학에 비해

정적이고 고정된 물체 자체에 집중하는 서양의 철학의 모든 특성을 부여받은 듯한 유클리드 기하학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깨어버리고 싶은 실체없는 거대한 '틀'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 [유클리드의 산책]은 르네 마그리트의 1955년 작품명이기도 하는데,

당시 마그리드는 유클리드의 평행선법칙을 원근법으로 가볍게 어겨주는 예술가적 표현으로, 규정된 상황과 세상의 체계에 대한 논리의 돌파을 보여주었다 한다.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기라도 하려는 듯 경계나 한계를 넘어서기나 hybrid, 기존 논리로 구분된 영역간의 관계나 교류에 대해 모색해보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손정은의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은 세이머스 히니의 시집 제목이라고 한다.

작가는 시집의 시구를 하얀 종이들에 분절하여 적어놓았는데, 관객이 무작위로 종이 하나를 뽑아든 순간 이미 그 시들은 더이상 시인의 그것이 아닌 관객만의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된다.

마치 진보블로그의 모든 글을 탐독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특정 블로거의 특정 포스트를 접하면서 개인이 변화할 수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 개인은 해당 포스트를 접했을 때나 블로그글 모두를 읽었을 때와는 분명 다른 개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전시회 설명글에도 있었지만 저 종이 하나하나가 마치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를 나타내는 듯 하다. 종이 하나를 집었을 때 머리 속을 퍼져나갈 오만가지 생각들이 마치 클릭하면 링크 따라 만날 수 있는 마구 펼쳐질 세상을 의미하기라도 하듯이.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기록 9]는 한국의 버려진 현수막을 중국, 파키스탄, 인도, 네팔 등지의 현지인들에게 자율적으로 활용하도록 건네고, 일정 기간 경과 후 쓰임새를 관찰한 것이다.

결과물은 사진에 담겨져 있으나 아래의 붉은 천은 작가가 입수한 모양이다. 꽤나 훌륭한 차양으로 변신한 모습 속에서 형태, 문양 등의 문화적 hybrid 를 체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

기와지붕 위에 이슬람문자 프린트가 있다면 보면서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이중근의 [super nature]는 위에서 바라보면 벌집 모양일 것 같은 공간 내부에 밀림의 사진과 산수화를 오버랩시킨 작품이다. 2미터가 넘을 것 같은 병풍들에 둘러쳐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보는 지점은 한 곳인데도 여러가지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박소연의 [Story Telling and Listening Series]는 특정 공간과 소품의 세팅과 주제(story)를 동참하는 관객들에게 부여하여 참여자들끼리 말하기와 듣기를 통한 정서 교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화면에 비춘 모습은 [어머니와 딸의 장소]라는 주제를 주고 '움'으로 끝나는 한글단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단어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다소 작위적, 또는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세팅과 행동규칙들이 때론 생각의 정돈과 집중을 유도하여 감정의 풍요를 유도할 수 있다.

 

김현숙의 [플라모델]시리즈들의 조각들은 매난국죽같은 전통적 코드를 현대의 기성품 생산문화(ㅋㅋ)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왠지, 진짜 조립해보고 싶다.

 

조덕현의 [in/finite 1Channel Projection]은 풍경을 찍은 영상과 거울을 통해 -사실은 한정되어 있으나- 무한한 화면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 작품을 만들 때 고고학적 방식으로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잘 섞는다는 작가가 택한 풍경도 가야금의 명인으로 알려진 우륵이 태어났다고 추정되는 신화의 장소이기도 한 거창군의 한 마을을 담고 있다.


 

 

윤영석의 [표본실A]는 복제양 둘리 성공에 충격을 받았다는 작가가 인간복제에 대한 공포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 계산된 수치들과 칩 모양의 돌기들이 생명에 대한 인간의 통제 욕구를 반영하는 듯 하다.

 

 

좀 약올리는 것 같지만, 이 전시... 9월 30일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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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4:48 2007/09/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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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7/09/26 08:47

한 가을 낮에 만난 길가의 조형물.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말하듯, 가고 싶고 되고 싶은 세상을 말하듯 눈길을 잡아 끌었으나,

그저 동아일보사의 홍보물이었을 따름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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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08:47 2007/09/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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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9/15 14:44

-생물,무생물 다 합쳐서- 내가 최근에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한 캐릭터는

애니메이션 [풍인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만2세만 넘어도 보기 힘들다가 4,50대되면서 종종 나타나기도 하는 항아리형 몸매,

코는 거의 안보이고 입도 희미한데 눈은 햄스터마냥 검은 자위 가득한 얼굴.

그런데 이 애니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면서 머리 속에 절로 떠오르는 말은 '섹시함'이었다.




인간이 가진 보는 능력의 얄팍함을 고려해보건대, 미의 척도란 진정 아~무짝에 쓸모없는 거다.

 

저 유연한 웨이브를 따라가다보면 그 어떤 통자 몸매라도 눈을 홀리는 곡선의 법칙을 발견해낼 것만 같다.

'하늘거린다'는 표현은 끊어질 듯 가는 개미 허리를 위한 지칭이 아니라 

캐릭터의 온몸에서 뻗어나오는 가벼움의 기운을 위한 말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쓸어올리며 짓는 옅은 미소에,

무심결 손을 뻗어 뺨을 어루 만질 것 같은 기분.


 

사람이 날고, 고양이가 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범한 일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보니 나 역시 함께 동화된다.

 

에너지도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세상에서,

어쩌면 누구나 바람의 흐름만 읽으면 바람을 타고 훨훨 나는 것이 환상만은 아닐런지도...

 

사람보다 먼저 바람의 흐름을 깨달은 애니 속 고양이들이

거대한 태풍을 타기 위해 서로의 몸을 연결하여 거대한 공 모양으로 하나가 되었듯이,

우리도 언젠가 바람에 몸을 맡겨 하늘에 오르게 되면

서로가 뭉쳐 거대한 태풍을 즐김의 대상으로 받아넘길 그 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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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5 14:44 2007/09/1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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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09/08 21:53

'오늘은 라디오마다 가을을 알리는 노래가 나왔었죠?' -> 그렇다.

'오랜만에 메일이나 핸드폰 문자가 아닌 편지를...'

 

오늘 MBC 뉴스 끝무렵 김주하 아나운서가 날린 멘트다.

 

아직도 메일과 문자, 또는 게시판, 블로그의 글은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감성계에 있어서 종이 편지의 아성은 영원히 깰 수 없는 그 무엇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식상한 멘트 중 하나일까?

 

우린 이미 온라인과 다감각매체를 보며 웃고 울고 기쁘고 슬퍼하지 않는가?

이 감정은 편지의 진한 농도를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인가?

 

가장 마지막 써본 편지는 고등학교때 남자친구에게 써본 게 끝인지라

편지가 그다지도 다른 매체를 누르는 막강한 농도의 감정선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다.

 

예전엔 막연히 '그러게'하고 맞장구 쳤던 것 같지만

편지 이외의 것들에 대해 이젠 너무 많이 쓴다고 괜히 가치 하락시킨 것 같다는 기분도 살짝 든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메일을 보낼 때, 문자를 날릴 때, 온라인에 글을 쓸 때도

때론

'이걸 보고 공감해주세요', '내 마음을 이렇게 담아요'라는 간절한 감정을 실었어야 했을 터인데,

때론

조금 가벼운, 조금 건조해도 무관할 것 같은 기분으로 무성의해져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팸문자와 스팸메일에 시달리다보니 그걸 전달하는 매체가 싫어졌을 지 몰라도,

어쩌다 그 사이 비집고 들어온 반가운 이의 소식은 언제나 기분 좋기 마련이다.

 

난 그냥 평소에 이미 생활화된 매체에 애정을 담뿍 쏟는 방향으로 진행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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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21:53 2007/09/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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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9/07 12:49

* 민중언론 참세상[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 展] 에 관련된 글.

 

사는 사람들에겐 팔레스타인이라 불리지만,

먼나라 사람들일수록 이스라엘이라 알고 있는 곳.

 

9미터의 돌벽에 둘러쌓여 도망도 못치고,

옆마을과 물건 사고파는 것도 안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히브리어로 40일이내에 나가라는 통보 편지 받으면 아무 말 못하고 나가야 하고,

하루 아침에 살던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열받는 마음에 닿지 않을 곳에서 돌이라도 던질라치면 반드시 닿을 총알로 보답하고,

매일 수시 검문과 이유없는 폭행, 구속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의 풍경을 뒷짐 진 한 아이가 무력하듯, 또는 관조하듯 바라보고 있다.

'한달라'(맛이 쓴 열매의 이름,'쓰라림'을 뜻함)라 불리는 이 아이는

살던 땅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났던 11살의 작가 자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아이는 때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는 데 지쳤는지,

살던 땅 그대로 두고 9미터 높이의 돌벽을 쌓고 외부와의 무역도 차단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UN이 이스라엘에게 '점령지에서 철수하라'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할 때조차

미국의 단단한 비호 속에 무너지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돌벽을 바라보기도 한다.

 

 

어느날 그 아이는

82년 레바논 침공 당시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에서 자행된 대학살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영원한 관찰자일 것 같은 그의 뒷짐은 약간의 변화를 맞이한다.

 

때론

 

예수와 함께 돌을 던지기도 하고

 

이스라엘에게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행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존, 정치의 문제 이외에도 민족 이데올로기, 문화적 배타성, 종교의 문제점까지도 신랄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 나지 알 알리는

이스라엘 뿐만아니라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표적이기도 했단다.

처음 그림을 봤을 때는 뭔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것들의 배치 정도로만 인식했었는데,

운 좋게 평화운동가 미니의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만화에 표현된 표상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오랜동안 살아오던 땅에서 유럽제국주의의 거짓 약속과 이스라엘의 폭압적 정책으로 쫓겨나면서도,

전세계로부터 - 내지는 몇몇 언론에 의해 - 이름 대신 '테러리스트'라는 영원히 벗겨지지 않을 것 같은 명칭을 부여받은 자들.

가감 없이 지켜보는 한달라를 역시 지켜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지 알 알리가 본질적으로 놓칠 수 없었던 '희망'은 그의 그림 속 꽃을 통해, 서서히 뒷짐을 풀기 시작한 한달라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깊었던 작품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돌을 던지는 모습.

종교에 대해서 정말 무식한 내가 몇개월 전 터키에 갔을 때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알라였고, 예수는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였다.

그러니 예수가 못박힌 손으로 돌을 던지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었겠지만, 이슬람교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면 엄청난 패러디쯤으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그림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상황을

단순히 종교 문제로, 정치 문제로, 외교 문제로, 내지는 그저 서로 싫은 사람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역사적 맥락을 느끼게 한다.

 

그저 모두들 사람답게 살 생각만 하면 안될까?

* 사진출처 : 평화박물관(http://www.peace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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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7 12:49 2007/09/0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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