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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4
    버스노동자와 죽음...(2)
    풀소리
  2. 2006/09/12
    노사정 야합에 대한 성명(1)
    풀소리
  3. 2006/09/03
    [사퇴] 임동규 중앙당기위원장
    풀소리

버스노동자와 죽음...

뻐꾸기님의 [버스운전사의 직업병은 어떻게 예방해야 하나?] 에 관련된 글.

뻐꾸기님의 버스 현장에 관한 글을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들이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죽음에 관한 것이다..

 

내가 버스노조나 버스노조 민주화를 위한 단체에서 일한 것은 1990년 1월 전노협이 출범하던 날이다. 전날에는 눈이 참 많이 왔었지...

 

벌써 16년 째다. 여러 기억들이 있지만 주변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자본에 항거한 죽음. 과로로 인한 죽음. 억눌리고 짓밟히다 주변의 관심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

 

그 중 몇 사례만 얘기하면...

 

1. 과로로 인한 죽음(1)

 

서울 B사에 근무하던 50대 노동자의 죽음이다. 그 분은 자식들이 많아 어떻게 하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시내버스는 주 6일 근무를 할 때에도 대당 2.44명을 고용해야 한다. 보통 1대를 2명의 기사가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 하루 18시간을 절반씩 운행한다.

 

그런데 그분은 차 1대를 혼자서 운행했다. 우리는 반나절(9시간) 운행하는 것을 1개라고 호칭한다. 보통 월 26개가 만근이다. 그런데 이 양반은 보통 월 57개 전후를 한다. 그러니까 월 30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가끔씩 오전이나 오후에 한번씩 쉴 뿐이다.

 

난 이 사람을 직접 보지 못했다. 전해 들은 바로는 이 양반이 반 나절을 쉬고 일을 시작하면 얼굴이 하얀 게 아주 정상(?)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러다 일(하루 18시간씩 꼬박)을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검어졌다고 한다. 흑백 사진으로 날짜별로 찍어 늘어 놓으면 명도를 보정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다 얼굴이 까매질 즈음 한 나절을 쉰다고 한다. 그러고 다음에 일을 나오면 다시 얼굴이 하얘지고, 밝아지고...

 

그러다 어느날 반나절을 쉬기 위해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가 쓰러져 죽었다. 그분이 남긴 재산은 광명 하안동 임대아파트가 전부였다.

 

2. 과로로 인한 죽음(2)

 

90년대 후반 쯤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현장 동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료가 운전대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산재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당연히 산재를 받아야 한다. 난 제반 조치를 일러 두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정 필요하면 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그러나 다음날도 연락이 없었다. 너무 궁금해 다다음날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하는말..

 

'마,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신경쓰고 싶지 않아요.'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사실은 이랬다. 죽은 이는 40대 초반으로 몸이 건장했다고 한다. 트럭을 몰다 시내버스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시내버스 일이 너무 쉽다며 1달에 40개 이상씩 무리한 근무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운행나가려고 종점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준비하다 운전대를 잡고 죽은 것이라고 한다.

 

동료들이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산재나 장례를 상의하기 위해 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5시간 쯤 후에 나타난 부인은 몸에 딱 달라붙는 빽바지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나타났더란다.

 

알고보니 죽은이는 부인과 별거 상태였다고 한다. 운전기사들이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또는 동료 처지가 남다르지 않아서였는지 도무지 덧정이 떨어져 후속 수습을 하기 어렵웠다고 한다.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뒀다면서 40개씩 했으니 산재보상과 퇴직금이 얼마겠냐고...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그렇게 일만 하다 갔냐고... 한 마디를 했다.

 

 

3. 회사의 탄압에 의한 죽음.

 

서울 S사에 근무하고 있는 B형이 있었다. 그 양반은 풍모부터가 '양반'이었다. 서글서글하고,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참으로 좋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난 당연히 이분과 친했다. 건모형이랑 친한 것처럼...

 

그러던 96년인가 하는 어느 월요일 저녁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그 형이 죽었다고...

 

너무 놀라 달려가보니 오전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다 목이 뻐근하다고 하여 쉬는 것만으로 안 될 것 같아 병원에 갔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어 큰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죽었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죽음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산재조차 받지 못할까봐 안타까웠다. 그 형은 만근 이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적게 일을 했으면 했지 많이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일요일이 지정휴일인데, 하루 쉬고 나온 다음날 죽었다니 산재라도 옳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 형은 그 회사 노조 민주화운동의 핵심이었다. 버스 회사로서는 큰편에 속하는 그 회사로 볼 때 눈의 가시였다. 그래도 조합원들에게는 인기가 있어 회사와 어용노조의 견제 속에서도 대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해왔다.

 

회사에서 이 형에 대해 (무서워서였겠지만) 직접 탄압은 못하고, 그 형과 친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수법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불이익을 당했고, 이것이 그 형에게는 자신이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내게는 자기 고통을 별로 얘기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안 사실이 더 많았다.

 

죽은 다음날부터 우리는 여러명이 달라붙어 병원 의사 등을 만나 산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운동을 하다 노무사를 하던 후배가 또 한 축을 맡았다. 그 후배 하는 말이 상식과 달리 휴일 다음날이 산재가 더 많다는 것이다.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결국 산재를 받았다. 당시 돈으로 8천 5백만원 정도 받았다. 그리고 집이 있고 퇴직금이 있으니 형수가 좀 노력한다면 아이들 대학은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우리들은 조금은 안심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들려오는 소리... 그 형수가 젊은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나마 들을 수 없게 소식이 끊겼다...

 

---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그냥 여러 생각을 하면 분노도 분노지만 서럽기도 하다.

처지가 서럽고, 서러운 처지이기에 의식도 처지고, 배려도 처지고, 모든 게 처지는 게 서럽다.

노동조합을 통해 그 서러움을 풀어보고, 풀어주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게 힘들다.

 


천국을 가는 길을 인도하겠다는 교회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묘사한 고흐의 그림처럼,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도, 심지어 나도 노동자의 앞길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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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야합에 대한 성명

<노동부, 경총, 한국노총의 2006년 9월 11일 야합에 대한 성명>


노무현 정부, 자신이 없으면 정권을 내놓아라!

노동자 권익 팔아먹는 장사치집단 한국노총은 즉각 해체하라!


우리는 정부와 경총,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3년 유예에 대한 합의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짓밟고, 노동자들을 권력의 통제 아래 두려는 독재정권의 작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반민주적, 반민중적 선언으로 간주하여 강력히 규탄한다.


노무현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한 축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노총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너희들이 골방에서 이해를 주고받을 야합의 대상이란 말인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설립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노동자가 선택할 일이다. 헌법 제21조의 결사의 자유, 헌법 제33조의 단결권 보장은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 결성권이 헌법적 권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복수노조는 허용하고 자시고 할 것 없는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와 한국노총이 무슨 권리로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막는단 말인가. 독재정권을 넘어섰다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복수노조를 사실상 10년 동안 금지시켜 왔다.


노무현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10년 동안도 준비가 덜 됐단 말인가? 그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가지고도 10년 동안 준비를 못했단 말인가? 그렇게 무능하다면 당연히 정권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여정부란 말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차라리 노동자․민중 배제정권임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계승한 독재정권임을 선언하라!


노동자의 피땀을 팔아 장사하는 장사치 집단 한국노총은 더 이상 노동자들의 걸림돌이 되지 말고 즉각 해체하라.


한국노총은 노동조합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마라. 그대들이 야합한 경총이 누구인가. 노동자를 배제하고, 수탈하고,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악질적 입법을 일관되게 관철시키려 반 노동자․민중 집단인 사용자 집단이 아니더냐. 그러한 경총과 야합한 그대들은 누구인가? 사용자인가? 아님, 노동자인가? 노동자를 감시하고 억누르며 자본의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사용자의 개인가?


사용자집단 경총과 야합하여 오히려 정부를 윽박지르는 게 노동자의 대표조직이고 대표자란 말인가. 그러고도 희희낙락 “노동부 장관”이 되고 싶다고 공언하는 게 한국노총의 위원장이란 말인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민주노총에 대하여도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야합하는 자리에서 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였는가? 두 집단의 야합에 대해 내부 토론을 거쳐 의견을 주겠다고 왜 빌미를 주었는가? 노동자의 자기조직 결성권이 내부 토론을 거쳐야 결정할 사안이란 말인가? 진정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복수노조, 즉 노동자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결성 권리는 1,500만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요구이다. 복수노조 문제가 무노조 정책을 펴는 삼성재벌이나 포스코 그룹 노동자들의 문제인가? 그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작 절실한 노동자들은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약 1천만 노동자들이 최저 임금 수준에서 허덕이며 생존권을 위협받고, 고용을 위협받고 있으면서도 복수노조에 걸려 노동조합조차 결성하지 못해 기댈 언덕조차 없이 팽개쳐져 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진정한 아픔을, 이해를 대변한다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민주노총은 정부와 경총, 한국노총의 야합을 분쇄하는 투쟁에 적극 나서라!


2006년 9월 12일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버스복수노조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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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임동규 중앙당기위원장

“당일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충분한 후보검증 없이 임동규 중앙당기위원장을 인준한 고양시위원회 소속 중앙위원들의 공개사과를 결의해 주십시오.”


지난 8월 31일 있었던 지역위원회 운영위원회의에 올라온 안건 중 하나이다. 이 안건의 가결 또는 부결과 관계없이 난 중앙위원이 된다는 게 참으로 무거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중앙위원이라고 해도 당내 정보 접근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정보가 제한되기는 중앙 당직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때로는 그들이 밖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정보를 물어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중앙 당직자 중 핵심 정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파를 달리하는 다른 정파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난 주로 당권을 차지한 정파 외의 다른 정파 사람들을 통하여 정보를 구한다.


지난 중앙위원회에서 당기위원들을 뽑기 전에 많은 중앙위원들이 당기위원 후보의 경력 등을 보면서 불만을 표명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것처럼 결정적인 흠결이 있는지는 솔직히 난 몰랐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중앙위원들도 몰랐을 것으로 보였다.


어떤 중앙위원이 임동규 당기위원장 후보에게 지난 “황** 성폭력사건”에 대하여 예전에 제출했던 입장과 지금도 같은지 여부를 물었다. 위 성폭력사건이 당내 문제화 됐을 당시 임동규 당기위원장은 게시판을 통해 황**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제출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그 중앙위원의 물음에 임동규 후보는 ‘재능이 아까워 안타까웠다.’며 에둘러가려 했다. 어찌됐든 지금도 예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다른 중앙위원은 ‘과거는 그렇다 치고 당기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진보적 가치나 인권 감수성이 높아야 하므로 향후 성평등 교육 등 관련 교육을 이수할 용의가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여기에 대하여도 임 후보는 자신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다는 등 무예가 어떻고 칼이 어떻다는 등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보다 못한 선관위원장이 ‘관련교육 이수 용의 여부만 답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했음에도 장황한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난 이런 임 후보를 보면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더 짜증이 난 건 그런 사람을 후보로 내세운 누군가였다. 그 누군가가 나중에 알고 보니 김선동 사무총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거에 들어갔다. 당기위원 선출은 찬반투표가 아니고 찬성투표이다. 반대나 기권 의사는 찬성 칸에 기표를 하지 않는 방식이다.


투표 결과는 유효투표수 223표(과반투표수 : 112) 중 임동규 후보는 찬성 123표로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난 물론 반대의사를 가졌기 때문에 기표하지 않았다. 내 주변 중앙위원들 중 적어도 임 후보에게 기표했다는 분을 만나보지 못했다. 저렇게 인권 감수성도 떨어지고, 말뜻을 모르는지 아는지 동문서답만 하는 사람이 당기위원장이 된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기위원장 선출 이후에 터졌다. 누군가가 임동규 당기위원장이 열린우리당의 외곽조직이며, 차기 대선을 대비해 만든 ‘선진한국연대’라는 단체의 고문이라는 사실과, 그 단체 홈페이지에 임 위원장이 쓴 축하글을 민주노동당 중앙당 홈피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가 지난 대선 때 권영길 후보 사퇴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80명의 이른바 유력(?) 인사 중 한명이라는 것이다.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만약 임 위원장의 이런 이력이 당시 중앙위원회에서 밝혀졌다면 임 위원장이 당선되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자기편을 무조건 감싸는 사람들이라지만 그들만으로 과반은 안 되기 때문이다.


난 그렇다. 임 위원장 개인의 도덕적 흠결 여부는 판단 유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한 점 흠결이 없다고 하니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개인 임동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당기위원장 임동규라는 사실이다. 난 인권 감수성이 없는데다 나아가 열린우리당과 양다리를 거치는(그 분들은 이른바 ‘전선체’ 논의처럼 반 한나라당 전선을 위한 것,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함께 가야하는 것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당기위원장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 아님 최소한 선출기관인 중앙위원회에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만큼 차기 중앙위원회까지 직무를 정지시키고 차기 중앙위원회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해도 당원들은 성이 안 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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