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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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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6
    늦가을, 쓸쓸함(3)
    풀소리
  2. 2007/10/27
    광장시장(7)
    풀소리
  3. 2007/10/23
    사막에 빠지다.(6)
    풀소리

늦가을, 쓸쓸함

죽어가는 걸 바라본다는 건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한 시대가 죽어가고 있고,

또 한 시대가 꿈틀거리고 있다.

 

아팠지만, 찬란했던

암울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의심치 않았던

우리들의 젊음과 함께 꽃피었던 시대는

활짝 핀 넓은 꽃밭조차 만들지 못한 채, 열매도 맺지 못한 채

굵은 서릿발 내리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권이 예고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다가올 또 한 시대인가 보다.

 

환호하는 대중은 무엇에 대해 열광하는가.

뒷골목에서 쓴 웃음을 짖는 흩어진 대중은 또 무엇을 안타까워하는가.

 

철도파업.

명백히 패배한 싸움이다.

엄길용 위원장 말대로 무엇이 우리를 패배하게 했는지

차분히, 그리고 엄혹하게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조직을 살리기 위해선 빠르고, 명쾌한 진단이 필요하다.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겐 명쾌한 분석을 할 만큼의 지혜도, 용기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아쉬움은 참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정리하는 건 시간의 몫으로 남겨둔다.

 

절망이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난 오늘 절망한다.

 

다만,

'내일'도, '전망'도, 시간의 몫으로 남겨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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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광장시장은

종로5가에 있는 굉장히 오래된 시장이다.

 

지난 주말에 광장시장에 갔었는데,

그곳에 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지나쳐 다니기는 했지만, 시장 안으로 들어간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인 것 같다.

 

그곳에서 술 한잔 마셨다.

정말 싸고, 푸짐하고, 맛있더라...

 

 


 


광장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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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빠지다.

내가 사막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쯤 되었을 것이다.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쯤이다.

그해 박상우는 '사하라'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후 대세인 듯 쏟아져나온 후일담 소설의 시작이었다.

 

그때 쯤 이른바 '조직'들은 공안탄압에 의해 거의 붕괴되었고,

소비에트 붕괴와 함께 전망을 잃은 활동가들은 대부분 조직 재건의 길에서 이탈했다.

 

그래도 노동탄압과 공안탄압은 여전했고,

거리의 데모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 거리의 데모는 어쩐지 이전보단 맥이 빠진 것이었다.

여전히 높이 일렁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스러질 운명에 기세를 잃어버린, 폭풍우 지난 다음에도 관성처럼 일고 있는, 바다의 파도처럼 말이다.

 

사하라는 이런 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사막풍경

 

시위가 있는 현장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길 바에 앉은 두 남녀는

아련히 들려오는, 한 때 그들 삶의 일부였던, 시위대의 구호 외치는 소리와 최루탄 쏘는 소리가

마치 "축제의 밤에 터져 오르는 폭죽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듯,

익숙한 현실에서 한 발 비껴 있었고, 또 다른 피안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피안을 찾기보단 숨고 싶었고,

스러저가는 자신의 열정과 반대로 "태양이 이글거리고, 한낮 내내 불기둥 같은 복사열이 피어오르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바로 사하라.

열정, 그러나 너무나 낮선, 그래서 현실이 아닌 그곳, 사하라.

그때부터 난 사막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하라에 가고싶어했다.

 

나는 한번도 사막에 가보지 못했지만, 말로 표현 못할 황량함이 있을 것 같은 곳,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기조차 벅찬, 너무나 큰 외로움이 있을 것 같은 곳,

그래서 그곳에 다녀오면 현실의 외로움 따위는 하찮아지고,

온갖 유혹으로 혼탁해진 영혼은 좀 더 맑아질 것 같았다.

 

.

.

.

 

요즈음 다시 사막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독일인 누군가가 쓴 '최후의 베드윈'인지 '마지막 베드윈'인지 재미없는 체험기를 꾸역꾸역 읽고,

요즘은 그 책보단 훨씬 재밌지만, 그래도 조금 따분한 테오도로 모노의 '낙타여행'을 읽고 있다.

 

테오도로 모노의 '낙타여행'

 

지난 일요일에는 산에 가자는 친구의 청도 거절하고, 집에서 놀자는 아내와 성연이의 청도 거절하고, 피곤하여 쉬고싶은 욕망도 뿌리치고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BBC에서 만든 다큐 '모래의 바다 사막'도 보고, 다우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사막의 세계'를 DVD로 봤다.

다큐는 역시 BBC가 잘 만드는 것 같다. 이어서 본 MBC의 '대사하라'를 시시해서 못보게 만들 정도였다.

 

황량한 사막에도 비가 온다.

비가 온 다음에 사막은 초원으로, 꽃밭으로 변한다.

두메양귀비로 보이는 노란 꽃들로 끝없이 뒤덮힌 아리조나 사막...

놀랍다.

알제리 사막에는 비가 오면 빨강 개양귀비가 끝없이 피어나고,

그 사이로 듬성듬성 보랏빛 엉겅퀴가 피어난다고 하는데...

 

그러나 곧, 꽃들을 이고 있는 그곳 땅조차 멀지 않아 잊어버리고 말, 짧은 연극은 막을 내리고,

다시, 본래 그 모습이랄 수 있는, 황량한 사막으로 돌아간다.

 

테오도로 모노는 말한다.

"사하라는 냉혹한 곳이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도 사하라를 닮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고통도 묵묵히 견뎌낼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질 것이다."

 

....

정 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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