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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13
    난(蘭)을 얻다.(2)
    풀소리
  2. 2006/12/12
    할머니(3)
    풀소리
  3. 2006/11/23
    아직은 가을이다(4)
    풀소리

난(蘭)을 얻다.

풀소리님의 [할머니] 에 관련된 글.

지난 월요일 처할머니 장례식을 치르면서 점심을 먹고 산길을 산책하다가 난(蘭)을 발견했다.

 

사실 야생란을 발견한 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몇 년 전 홍성에 있는 오서산에서 탐스런 난을 발견한 적이 있다. 오서산은 난의 거의 북한계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 난은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뒷산에도 흔했는데, 요즘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곳이 고향인 선배님 말씀에 난 욕심을 부릴 수 없어 그냥 두고 왔다.

 

이번 처할머니를 모신 산은 경남 하동으로 난이 흔한 곳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캐왔다.

 

처할머니 산소 근처에서 캐온 난(蘭)/ 가운데 희게 솟아나는 게 꽃대다.

 

난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대부분의 멘트는

'이거 거의 잔디 수준의 흔한 거네..'

말하자면 배 아픈 수준이랄까! ㅎ

주변에서 놀리는 말을 하면 할수록 이 난에 대하여 애착이 갔다.

 

난을 키우시는 작은 어머님이 보시더니 '꽃대도 나오네' 하신다.

그러고 보니 정말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어제 늦도록 힘든, 아니 어이없는 회의를 한 탓인지 기력이 없다.

몸살도 나고...

 

곰곰히 생각하다 하루 셨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지만...

쉬는 김에 힘을 내 화분을 사고, 난 화분에 넣는 자갈(정확한 명칭 모름)을 샀다.

난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인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 화분에 담았다.

 

잘 컷으면 좋겠다.

자신은 없지만 잘 키워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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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지난 토요일 회의 도중 아내의 갑작스런 전화에 회의 중임만 간단히 알리고 끊자, 곧바로 문자가 왔다. 처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혹시 추울지 몰라서), 아내와 성연이 나 이렇게 진주로 향했다.

 


할머니 영정

 

처할머니. 향년 98세(만으로 97세), 이름은 김정혜시다.

98세가 얼마나 많은 나인지는 나너 할 것 없이 잘 가늠이 안 될 거다. 마치 억만장자의 재산규모가 가늠이 안 되듯이 말이다.


98세를 좀 더 실감나게 알아보자. 정확히 할머니는1909년생이시다. 일본의 반식민지 상태지만 순종황제가 아직은 황제자리에 있던 때이다. 그 이후로 한일병합과 여러 전쟁, 해방, 군정, 한국전쟁, 이승만 집권, 4.19, 5.16 ... 그 다음은 우리도 대부분 아는 것이니 생략하고...

 


할머니 하관식. 후손들이 흙 한 삽씩 관 위에 뿌렸다. 나도 한 삽...

 

그 시절에 ‘정혜’라는 이름을 지으셨다니 할머니의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들은 센스가 있으셨던 것 같다.

내가 결혼했을 때 할머니는 이미 89세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젊어서 유난히 총명하셨을 거란 느낌은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98세로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이 흐트러지시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이재에도 남다르셔서 집안의 부를 크게 부흥시키시기도 하셨단다. 물론 처갓집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재산이 대부분 없어졌다지만 말이다.

 


다음날인 일요일 난 요 녀석들 담당. 게임만 하는 요놈들을 데리고 진주성으로...

 

98세에 돌아가셨다지만 부모를 잃은 산 사람들의 슬픔은 똑같은가보다. 교회식이라 문상할 때 절하는 것조차 거절하는데도, 통곡을 멈추지 않는 분들이 여럿이었다.


할머니는 막내 손녀딸인 아내를 유난히 사랑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내는 덤덤한 표정이다. 그렇다고 슬픔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음과 부재(不在)에 대한 슬픔은 가슴 속 저 밑에 잠복하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몰려올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날씨가 포근해서인지, 온난화 탓인지 진주성내 모든 개나리가 이렇듯 꽃을 피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부터 당일 아침까지 비가 내려 날이 몹시 추워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참 포근했다. 장지가 있는 하동 양보면은 참으로 밝고, 온순한 산과 들이 펼쳐져 있었다. 온순하고 밝은 풍경처럼, 할머니가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가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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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가을이다

계절이 간다는 건, 특히 가을이 간다는 건 참 쓸쓸한 것 같다.

텅빈 들판이, 무표정한 산하가, 맑은 공기 속에선 맑은 대로,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더욱더 황량하다.

 

내 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덕양산 행주산성도 마치 땅거미질무렵 서쪽 산처럼 빠르게 빛을 잃어가더니 이제는 윤기 있는 색감을 모두 잃어버렸다.

 

오늘 아침 아파트를 나서는 순간 밝은 빛이 내 곁을 스쳤다. 붉거나 노란 빛이 절정인 단풍이다. 마치 '아직은 가을이 다 간 건 아니에요' 하고 외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 출근길 자유로변 한강공원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외진 여의도 샛강공원이라도 잠시 들려볼 짬이 있을 지 모르겠다.

집회 앞뒤로 한번 짬을 내볼까나...

 

 

오늘 아침 집앞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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