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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04
    가을, 그리고...(4)
    풀소리
  2. 2006/11/01
    머리염색(4)
    풀소리
  3. 2006/11/01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풀소리

가을, 그리고...

출퇴근 길목에 덕양산 행주산성이 있다는 건 내게 행운이다.

사철 계절의 변화를 늘 내게 보여주기도 하고, 퇴근길에 또는 출근길에 느닷없이 오르고 싶은 로망의 여지를 늘 주기 때문이다.

 

단풍이 한창인 덕양산 중턱


아침 출근길에 본 덕양산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퇴근길에 덕양산 행주산성으로 올랐다.

 

며칠 전부터 기상청은 오늘부터 비가 오고 추울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그러나 엷은 안개만 꼈을 뿐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는 일기예보를 멋지게 배반하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게 아마 지적 활동과 사색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18도 전후의 기온이리라.

 

하루 이틀 온화하고 화창하다고 해서 계절을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낙엽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이 산의 미래를, 그것도 가까운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그렇다. 이미 계절은 가을의 끄트머리, 겨울의 초입으로 접어들고 있다.

 

잎새를 거의 다 떨군 벗나무/ 이 산의, 나무들의 머지 않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물체와 색감이 지고 또 사라지는 것처럼 가을은, 그리고 겨울은 상실의 계절이기 쉽기 때문이다.

 

몇 년을 무난하고 덤덤하게 이 계절을 맞았던 난, 올 해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100일 치 쑥과 마늘을 짊어지고 토굴로 향하던 '곰 할머니'의 비장한 각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도 어쩜 쑥과 마늘을 짊어지고 깜깜한 망각의 토굴로 향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니, 벌써 향했는 지도 모르겠다. 11월 1일, 2일, 3일, 4일 ...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피의 절반은 바로 '곰 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니, 잘 하면 겨울잠을 자면서 100일을 버틸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카메라 배터리가 간당간당하여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결국 중간에 나갔다는...)

 

행주산성 출입문 밖에서 본 은행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이런 풍경이

 

조금만 올라오면 벌써 단풍이/ 요기쯤 올라오니 어떤 할아버지 한분 하시는 말씀. '지난 주 가본 내장산 보다 좋다!' - 내 얘기 아니니 책임은 못 짐.

 

토성 위로 난 산책 길

 

노란 잎새를 거의 떨군 엄나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칡꽃이 피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열매가...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 바다처럼 넓다. - 떠나고 싶은 유혹이...

보통 때는 막아놓기도 하는 중간 계곡, 계단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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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염색

성연아 아빠 머리염색할까?

응~. 해~.

너도 도와줄래?

알았어.

 

성연이의 약간의 도움을 받아가며 염색을 시작했다.

 

성연아. 너 아빠 머리 흰 거 챙피하지?

아니.

네 친구들한테 안 챙피해?

응. 아빠는 그래도 운영위원이잖아?

운영위원이면 안 챙피해?

응.

네 친구들도 아빠가 운영위원인 거 알아?

응.

 

말은 그렇게 해도 녀석은 아빠가 염색하니 좋은 게 틀림없다.

지난 10월 말 경 아이 학교 바자회에 참석했을 때 녀석은 마지못해 아빠를 찾는 느낌이었다.

자격지심일지 모르지만...

 

염색을 하고나니 무스를 바르고 머리를 납작하게 뒤로 넘긴 것 같았다.

아내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필시 '못 생긴 왜놈.'이라고 놀렸을 것이다.

문득 그 생각이 나 성연에게 물었다.

 

성연아 아빠가 못생긴 왜놈같아?

으악! 못생기긴 정말 못생겼다! 하하

 

그래도 좋은가보다.

이윽고 머리를 감고 나왔다.

그런 날 보고 성연이는 또 한번 자지러진다.

 

아니. 이건 사기야! 사기!

왜?

아빠는 40대잖아. 그런데 꼭 20대 같아.

정말?

응. 20대 대학생 같아.

그래? 하하

 

참 오랜만에 염색을 했다. 거의 2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난 염색하지 않은 내 흰 머리가 더 좋다. 

더욱이 두피가 민감하여 염색을 하고 나면 한 동안 고생을 한다.

이래저래 염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 9살로 초등학교 2학년인 성연이에겐 미안한 일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몸이 아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는데,

마침 성연이 친구들이 들이닥쳤다.

흰 머리만 내놓은 채 안방에 누워있는 날 보고 성연이 친구들이 '너네 할아버지니?' 하고 물었다.

성연이는 '아니야'라고 대꾸했지만 어찌 충격이 아니었으랴.

 

예닐곱살 되었을 때, 나랑 함께 머리를 깎으러 갔을 때 애기다.

 

아빠 염색도 하려고 하는 거지?

아니.

에이. 염색하려는 거 같은데.

아니야~.

 

아무래도 성연이는 아빠가 염색하였으면 했나보다.

 

성연아 아빠 염색했으면 좋겠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빠 맘대로 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난 염색을 했다.

그리고는 흐지부지...

 

이번엔 또 얼마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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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레일을 굽혀 만든 기둥에 철제 스레트를 얻고

플랫폼은 낡은 세멘트 블록 격자로 깔려 있었지..

기차가 오는 플랫폼 끝으로 가면

블록 사이로 풀들이 고개를 내밀곤 했지...

 

경원선 똥차가 출발하는 용산역

풀랫폼과, 녹슬은 철로, 녹이 묻어나는 침목과 자갈은

80년대 초반의 스무살 청춘 만큼이나

9월의 햇살 아래 메말라 있었다.

 

영혼은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가벼웠고,

촛점 잃은 눈길은 바람에 날리었다.

길잃은 발걸음은 문득 멎었고,

지친 눈길은 철로 사이에 멈췄다.

 

플라타너스.

 

녹 슬은 철로 사이 메마른 자갈 틈에

한뼘을 갓 넘은 키지만, 가지를 뻣친 게 해를 넘긴 듯

여전히 여름 햇살인 9월 하늘 아래

벌써 가을의 지친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지...

 

메마른 자갈 틈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조금 더 크면 기차에 쓸릴 터인데..

 

어떻게 목숨을 이어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눈길마저

돌이켜 보면

비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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