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59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02
    개학 2주차
    풀소리
  2. 2006/08/30
    민주노동당 중앙으로부터 인정받다.(7)
    풀소리
  3. 2006/08/28
    무산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언저리에서...
    풀소리

개학 2주차

 

성연이랑 나는 아직도 방학이 끝났다는 거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아침이면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이불을 끌어안고 비비적거리다 시간에 쫒겨서 겨우 일어난다.


오늘 아침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불 속에서 뭉개고 있는데 남편이 혹 놀토인지 확인한다.

더는 어쩌지 못해 일어나는데 자는 줄 알았던 성연이의 한마디.


- 엄마. 아빠는 학교에 안다녀서 우리가 얼마나 힘든 줄 몰라서 그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노동당 중앙으로부터 인정받다.

요즈음 민주노동당은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로 난리다.

당원인 내게 벌써 몇 번의 전화와 문자가 왔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노동부문 최고위원은 민주노총이 단수 추천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민주노총이라면, 민주노총이 그동안 해 온 일부 골통 짓과 등치시키는 열혈 당원들은 무조건 싫어하는데, 더욱이 ‘관행’이라는 말에 더 흥분하는 것 같다.


사실 ‘관행’이든 ‘추천’이든 ‘지명’이든 단순히 제도 문제이겠는가? 운용하는 사람 또는 그들의 마인드가 중요한 게지...


이번에 노동부문 최고위원은 이영희라는 사람이다. 지난 울산 재보궐선거 패배 등을 책임지고 사퇴한 1기 최고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 되었다. 아뿔싸,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라면 노동부문 최고위원 후보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이번에 단수 추천되었고, 민주노동당은 단 한명의 최고위원을 더 뽑기 위해 텔레마케팅 회사에 용역을 주고 3천만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영희씨가 당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과연 그런가? 당내 일부 무조건적 추종세력을 빼면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이다.


난 민주노동당 3년차 중앙위원으로 회의에서 그를 많이 봐왔다. 에피소드 하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중앙위원회에서 어떤 안건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김해경 대표를 비롯하여 당황하고 있을 때 우리의 기대주이자 얼떨리우스인 이영희 선수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중앙위원 여러분. 이거 논란 벌일 필요 없어요. 이거 안건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사위가 조용해졌다. 이윽고 반론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결국 안건은 당연히 성립할 뿐만 아니라 안건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다.


사실 이영희씨가 안건이 성립하니 안 하니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중앙위원회에 올리는 안건은 최고위원회에서 성안되는 것이고, 이영희씨가 최고위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제출한 안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뭐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가져온 양 만면의 웃을 짓는 이영희 선수... 그는 사실 지난 1기 지도부의 지탄의 중심이었다. 그 상세한 이유는 뒤에...


어찌됐든 난 이번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를 보이코트 하기로 결심했다. 민주노총이 당원들, 조합원들의 정서를 좀 알았으면 해서이다. 마치 경상도(이제는 서울 경기도 마찬가지가 되었지만) 한나라당이면 말뚝을 꽂아도 당선되는 것처럼 자신들 언저리 사람이면 흠결이 있든 어쨌든 누구나 된다는 독선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잘 아는 당직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노조 소속 당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라고 지시를 받았단다. ‘최○○ 처장한테 부탁하세요.’ 했더니, ‘그 사람은 씨도 안 먹혀요.’ 했단다. 어쨌든 중앙당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뿌듯했다는.. ㅋ


포기하기는 민주노총 중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 투표 독려차 들린 민주노총 간부는 내게 당원이 많은 어떤 지부만 가리켜 투표를 독려해달라고 한다. 내가 투표하지 않은 것을 뻔히 알 터인데도...

 



물론 나도 동의한다.

 

첫째, 이영희 후보는 지난 번 울산북구 재보궐 선거 이후 당의 전반적 문제에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사퇴한 1기 최고위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위원 중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정치적 책임은 공동으로 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의 정치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관행’에 따라 찬반투표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최고위원으로 다시 들어가려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저는 같은 이유로 2기 지도부에 다시 출마했던 1기 최고위원들(주대환, 박인숙 후보)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백의종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의 반성과 쇄신을 위한 과정과 결의의 확인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지요. 그러나 이영희 후보의 경우 1기 시절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과 진단조차 없다는 점에서 분노마저 느낍니다.


둘째, 이른바 자질론을 주요한 이유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영희 후보는 이러한 점에서 자격 미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기 최고위원 때에도 이영희 후보는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하는 에피소드를 수차례나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4년 11월경 정책위원회에서 본을 만든 조세개혁안에 대하여 (이영희 후보를 포함한) 최고위원 일부가 국민감정을 이유로 브레이크를 걸어 혼선을 빚은 것과, 2005년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운동본부장을 맡은 후 9월 분회장수련회에서 무상의료 운동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상의료 로드맵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음을 폭로하여 거기에 참석한 분회장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준 것을 말합니다. 담당 최고위원이 뭘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에게 무엇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당 최고위원회에 해당하는 십수인에 들어갈만한 사람이 그다지도 없는 것일까요? 좀 거칠게 말해서, 그렇잖아도 위기에 처해있다는 당에 무능한 최고위원을 또 한명 추가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셋째, 그러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정치위원장이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을 맡는 것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는 이 행태에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비를 3천만원이나 들여 당원 직선으로 ‘선거’는 무엇 때문에 하겠습니까?


이영희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투쟁 등 노동 사업이 급한데도 “당에 노동부문 최고위원도 없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민주노총에서는 적절한 인물을 정치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뒤늦은 노동부문 보궐선거에 참여해줄 것을 당원들에게 설득력있게 호소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관행이라니요? 이러한 점에서 저는 민주노총이 당을 너무 경경히 본다는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넷째, 지금 이영희 후보가 공약으로 제출한 주장들의 부적절함의 문제입니다. 대표적으로 레이버투데이의 인터뷰에 나와 있는 '민중참여경선제를 통한 대선후보 선출' 주장이 그렇습니다. "한달 정도의 당비만 받고 투표권을 준다면 당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투표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5천원, 1만원씩만 걷어도, 선거공영제를 통한 경선이 가능할 것이다". 민중참여경선제를 하지 않아서 투표율이 낮은 건가요? 게다가 내놓은 공약 대부분이 당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있어 뜬금없다고 느껴질 지경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산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언저리에서...

1. 산책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보다. 새벽 일찍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 않고 억지로 눈을 다시 붙였다. 몸을 생각해서다. 밖에는 충주호수로 연결되는 삼탄강이 흐르고, 뒤로는 옥녀봉이 자리 잡은 충주 리조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 행동이 달라지기는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깨는 순간 이리저리 주변 산책을 다녔을 터인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인 충주리조트 옆에 있는 하천리 마을



뒤척거리다 일어나 씻고 나오니 정윤광 위원장님이 피티체조를 하고 계신다. 팔굽혀펴기를 하시는 것이 20대 젊은이 못지않다. 상대적으로 젊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몸을 가진 난 민망하여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니 8시 정각이 되어야 아침을 먹을 수 있단다. 이왕 함께 나온 김에 이런 저런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밥을 먹고 나서는 아예 산책을 갔다. 9시에 있을 예정인 운수노조(추) 운영위원회까지는 30분이 남았기 때문이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훠이훠이 옆 마을까지 함께 갔다 왔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산책이고 대담이었다. 내용은 치열해도 말이다.


2. 전통은 또 다시 깨지고...


전날 밤 운수노동자들의 전통이 또 한 번 깨졌다. 전통이 당연히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 집행부에서는 보기에도 넉넉하게 술을 준비했다. 그것도 종류를 다양하게 하여서 말이다.


밤 10시가 넘어 시작한 술자리. 자리가 비좁아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올 정도로 성황이었다. ‘성황’이 ‘쇠퇴’의 전주곡임은 술자리에서도 적용되는가? 열 댓 명의 택시 대표자들은 아예 다른 방에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윽고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요즈음 민주노총 내에 어용시비에 휘말리는 모 연맹 위원장이 다른 연맹 위원장 두 명과 함께 왔다. 그들이 오면서 화제는 자연스레 그들 중심이 되었다. 그들이 손님이니까...


갑자기 화제는 운수노동자의 단결과 산별노조 건설이 아니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또는 ‘거기 사는 아줌마’로 바뀌었다.


처음에 손님대접하려고 억지로 참는 이들 중,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둘씩 자리를 떴다. 난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나하고 술 한 잔 하겠다고 찾아온 류재운 애니메이션 위원장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그는 다 알다시피 민주노총 내에서도 원칙주의자이고, 대단히 전투적이기 때문이다.


류재운의 얼굴이 찡그러지는 걸 보는 순간 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잠자리로...


다음날 ‘술방(?)’을 치우러 올라가니 1.8L 피티 8개, 소주 6병, 팩소주 10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마 내가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술자리가 파했나보다. 하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술맛이 나겠는가.

 


하천리 사과밭 풍경

 

3. 칡꽃


오전 10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다. 정시에 도착하는 모범을 보이자고 우르르 몰려갔다. 별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사실 전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걱정했다. 보건의료노조 교섭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조합원 총회 등으로 대의원들이 참석하기 어려울 것이고, 공무원노조도 정부의 탄압으로 어려움이 있다.


난 자리를 잡은 뒤에 아예 밖으로 나왔다. 장내 정리를 하기 위해 끝없이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있을 것이고, 하여간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본 대회는 시간이 좀 지나서나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아침에 정윤광 위원장님과 함께 갔던 길로 산책을 떠났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그것은 이성의 저항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서서히 제압하는 몽롱한 유혹이다. 유혹에 저항하지만 점점 무장해제당하는 이성이 짙은 안개 속 같은 알 수 없는 혼미한 쾌락으로 빠져드는 몸뚱아리를 힘겹게 움켜잡아도 패배는 명백하게 예정돼있다. 패배한 이성은 마지막 탄식을 하며 소멸되어간다. 아~!


내가 칡꽃의 향을 느낄 때의 감성이다. 몽롱한 달콤함. 그 꽃의 향기를 언젠가 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표현을 매우 독특하다고 했고...


칡꽃의 향기를 제대로 맡으려면 한여름 햇볕이 왕성이 내리쬐는 오후 2시쯤이 제격이다. 이때쯤이면 작열하는 태양에 광합성은 최고로 왕성해진다. 광합성이 얼마나 왕성한지 뿌리와 줄기가 미쳐 땅속 물기를 충분히 대주지 못할 정도다. 헐떡이며 거친 숨을 토해내는 잎새들은 축축 늘어지고, 그 숨 속에는 향기가 있어 이때에는 칡꽃뿐만 아니라 칡 잎새와 줄기 모두에서 칡꽃향이 나온다.


여름, 특히 지금쯤 차를 타고 산길을 간다면 에어콘을 끄고 차창을 열어 보자. 문득 문득 알 수없는 향기가 스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칡꽃 향기일 것이다.


난 길을 걷다가 칡꽃 향기에 취해 주변을 들러보니 칡덩굴이 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아스팔트길 위로까지 여기저기 뻗어있다. 꽃은 보이지 않지만 잎이나 줄기를 들춰보면 그 속에 보랏빛 꽃송이가 숨어 있겠지. 그러나 굳이 찾아보고 싶진 않다. 거기에 있음을 안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칡향에 빠져 사진도 못 찍었군...

 


잔대꽃/ 돌아오는 길 옆 여러 포기가 있었다. 꽃이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4. 하천리


충주리조트 바로 옆 동네이름이 하천리다. 개울이 있는 동네라는 뜻은 아니고, 샘 천(泉)자를 쓰더라.


 

사실 정윤광 위원장과 산책을 할 때 멀리 보이는 큰 산소가 눈에 띄었고, 그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재차 산책길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 산소의 주인은 성균관 전적(典籍)을 지낸 홍공(洪公)이다. 비석에 그렇게만 나와 있다. 봉직랑(奉直郞) 홍공(洪公), 공인(恭人) 안동 권씨 합묘다.

 

성균관 전적 홍공(洪公)의 무덤


‘성균관 전적’은 정6품 문관직으로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거치는 자리이다. 이런 시골에서 성균관 전적을 지냈으면 당시에는 인근에서 대단했을 것이다. 뭐 정6품 자리가 별거야 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조선시대를 연구해보면 문관이 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문벌이 있는 소수 가문을 빼고 말이다. 우의정으로 관직을 마감한 남인의 거두 미수 허목도 62세에 정6품직인 사헌부 지평으로 출사하였던 사실로도 그 직책이 만만치 않은 자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천리에는 TV에서나 볼 것 같은 펜션형 주택들이 여러 채 있다. 밭들은 거의가 사과 과수원이고, 주택들은 과수원 사이에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다. 촌로에게 물어보니 외지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5. 정토사지


대의원대회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멀리 마을 끝 언덕에 특이한 정자가 하나 있다. 전통 양식이 아니라서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정자 안에 커다란 비석이 있다. 심봤다.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와 보호각

 

팻말 등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대단히 장대한 게 멀리서 보아도 뭔가 대단한 것 같았다. 가까이 가보니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이다. 비의 몸체만도 3M가 넘는 대작으로 비 받침의 거북은 여의주를 물고 있고, 머릿돌은 용 조각이 되어 있다. 비 전문에는 글자가 빽빽하다. 글을 지은이는 최언위(崔彦爲)다. 최언위는 고려 태조 때 사람이니 상당히 오래된 비석이다. 고려(高麗) 태조(太祖) 26년(943) 법경대사(法鏡大師)의 공덕(功德)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니 1천년이 넘었다. 비석 조각은 특이하게 승려 4명이 하였다고 한다.

 


몸체만도 3m가 넘는 대작이다. 곳곳에 총탄자국이 있다. 이 시골 땅에도 한국전쟁의 흔적이 있다. 전쟁은 없어야겠다. 정말로.. 영원히...

 

글씨도 상당히 힘이 있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글씨를 쓴 이는 구족달이다. 구족달(仇足達)은 요즈음 경향신문에 연재되어 소개된 우리나라 명필들 중 한 사람이다.

 


비의 머릿돌과 받침돌/ 승려 4명이 법경대사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6. 무산된 대의원대회


허위허위 돌아오니 대의원대회장이 술렁이고 있었다. 성원에 150명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조금 있으니 조준호 위원장이 나와 대의원들에게 대대 성원을 채우지 못한 데 대하여 사과를 하면서 대회 무산을 선포했다.


한 동지가 고함을 치며 항의하였지만, 다른 이들은 항의조차 하지 않고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의원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될 것인가. 무기력한 민주노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투쟁을 할 수도 없고, 내부 어용세력을 도려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혁신’을 외친다. 누가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정윤광 위원장과의 아침 대담이 생각났다. 혁신은 정말 혁신하려고 나서는 사람, 조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전진이든 해방연대든 기존의 방식을 벗어던지고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조합원들에게 분명히 하고, 당당하게 심판받아야 한다고. 비록 단 한명의 최고위원, 단 한명의 임원을 배출하지 못해도 말이다. 그래야만 조합원들이, 당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