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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6
    전쟁같은 휴가(5)
    풀소리
  2. 2006/07/29
    스펀지와 성연(5)
    풀소리
  3. 2006/07/29
    향기 2(2)
    풀소리

전쟁같은 휴가

1.

어쨌든 다녀왔구나. 못 간 사람들도 많은데...



올 여름휴가도 처가가 있는 진주로 갔다. 지난 8월 1~3일.

아내는 성연이와 함께 전날 먼저 진주로 갔다. 난 다음날인 8월 1일 화정터미널에서 10시 버스를 타고 뒤따라갔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잔뜩 흐리고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았는데, 부천을 지나면서 구름도 별로 없고 햇살이 강하다.


한창 휴가철이라서인지 고속도로가 막히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사고차량과 다친 사람이 널브러져 있어 휴가 첫날부터 왠지 마음이 흉흉하다.


버스 안은 아이들이 가득이다. 내 주위로만 6명이 몰려 있어 떠들고, 장난치고, 도무지 잠잘 분위기가 아니다. 창문은 햇볕이 들어 커튼을 쳐야 했기에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도 없었고, 책을 들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는 끝이 없다. 심지어 휴가지인 진주에서도 빨리 내려와 달라고 성화다. 진주에는 내려가는 당일 투쟁 중인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 한 곳이 우리 노조로 조직변경을 하겠다고 한 날이어서, 나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이다.


‘저~, 휴가니까 급한 일 아니면 자체적으로 해결하세요.’

‘예...’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다.

 


삼천포 어시장 해물 좌판

 

2.

진주에 도착하니 아내는 처형네 가족과 삼천포에 다녀오자고 한다. 삼천포는 해물이 풍성하기도 하고, 마침 성연이 체험학습에 사진도 제출하여야 하므로 겸사겸사해서이다. 내가 아내가 기대한 시간보다 워낙 늦게 와 주변 구경도 못하고 곧바로 어시장으로 갔다.


(참고로 삼천포 인근에는 남해로 가는 멋진 다리가 놓여 있고, 남해 본 섬에 이르기까지 3-4개의 섬 주변 풍경도 참 아름답다. 고성 쪽으로는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유명한 상족암이 있고...)


문어 6마리 2만원, 전어 썰어서 2팩 가득 1만 5천원, 꼬막 한 자루 5천원, 도합 4만원에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푸짐하다. 역시 삼천포는 싸고, 싱싱하고, 푸짐하며, 바가지가 없다.


마침 지역 민주노총에서 내 사정을 고려해 다음날 만나자고 한다. 다행이다. 저녁을 먹고, 문어를 삶고, 전어를 풀고, 술상을 벌였다. 우리 가족, 처형네 가족, 처남네 가족, 푸짐한 술상에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해마다 여름휴가에 물놀이 가는 산청/ 멀리 튜브 타는 이가 아내다.

 


물놀이하는 아내와 성연

 

3.

다음날인 2일. 우리 가족과 처형네 가족은 매년 가는 산청 지리산 계곡에 좋은 자리를 잡겠다고 6시 30분에 출발했다. 난 오전 10시에 있는 신일교통지부 비상대책위원들과 회의가 있어 점심 때 가기로 하고 혼자 남았다.


회의를 마치니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다.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비상대책위원 전원이 모였고, 비로소 각자 할일이 생겼다는 느낌이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물속에서도 숨쉴 수 있는 장비를 쓰고 좋아하는 성연(위)과 수수미꾸리(아래)/ 이 녀석들이 갑자기 물뱀이 있다고 뛰쳐나와 가보니 수수미꾸리 떼가 보를 오르기 위해 몰려 있었다.

 

나는 시협 최희태 사무차장에게 가족들이 가 있는 산청 대원사 계곡으로 데려달라고 했다. 몇 번 만나면서 다른 이들보다 격이 없어진 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있는 곳은 의외로 한산했다. 그곳은 지리산 대원사 계곡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온 지점에 있는 관개용 보 밑이다. 물이 맑은 편이라 이맘때면 물놀이 하는 사람들, 옆에서 고기 굽고 술 마시는 사람들이 빼곡했었다.


‘일찍 온 보람이 없었네.’

‘우리 오니까 아무도 없었어.’

내 물음에 대한 아내의 답변이다.


4.

정말 그렇겠구나. 내가 도착했을 때에도 다른 이들이라야 한 가족밖에 없다. 최희태 차장은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가고 우리는 곧바로 점심상을 차렸다. 고기를 굽고, 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다. 이 녀석들은 발라준 썬크림도 무색하게 이미 아프리카 원주민이 되어 있다.


함께 간 동서와 술 한 잔 하고 있는데, 아내와 성연이가 자꾸 물로 들어오라고 한다. 못 이기는 척 가봤더니 정말 물이 맑다. 예년에도 맑았지만 최근에 내린 장마 덕에 더 맑은 것 같다.

 


물놀이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지리산 연봉/ 해가 막 넘어가고 있다.

 

가족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놀이에 신났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처갓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니 처남이 왔다. 처남과 이별주를 마시고, 기다리고 있는 진주시협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신일교통지부 투쟁관련 인사들이 모여 있는 횟집으로 가 또 한 잔.


다음날 한낮의 땡볕을 피해 5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휴가 끝이다. 전쟁같은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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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지와 성연

오늘은 모처럼 일찍 집에 오기도 했고,

아내와 성연이와 함께 TV를 보기도 했다.

 

프로그램 이름은 "스펀지"(?)로 포탈 검색창을 이용한 생소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검색 형식으로 맞추는 게임인 듯 싶다.

그 중 한 꼭지

 

'미국 북서부에는 (         )을 악마의 바늘이라고 한다.'

 

즉 (          ) 안에 들어갈 말을 찾는 것이다.

답은 '잠자리'였다. 우리 셋은 동시에 '엥~?' 했다.

 

때는 1800년대였다던가?

남매를 둔 엄마가 거실에 놔 둔 돈을 잃어버렸다.

남매는 방을 함께 썼는데, 잠들기 전에 엄마가 와

 

너희 엄마 돈 안 가져갔니?

아니요. 안 가져갔어요.

 

그런데 잠들기 전 뒤척이는데 동생이 보니 오빠 베개 밑에 돈이 있었다.

그래도 동생은 모른 척하고 잠들었다.

 

문제는 다음날.

동생이 깨고보니 오빠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동생은 오빠를 깨우다가 깜짝 놀란다.

오빠의 입과 눈이 바늘로 꿰매 있었다. (우리나라도 입을 꿰매버리겠다는 말이 있는데...)

 

겁이 많은 성연이는 눈이 둥그레져 슬며시 일어서서는 엄마 뒤로 숨는다.

아내는 놓치지 않고,

 

'성연. 너도 나쁜 일 했지.'

'미안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너 거짓말도 한 것 아냐?'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푸하하~~

 

그러나, 5분도 안 돼 성연이는 원위치.

말도 안 듣고, 엄마 아빠 괴롭히고...

 

지난 6월 북한산에서 아내와 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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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2

1.

어제 출근길. 버스에서 내리려고 출입문 쪽으로 옮겼는데, 앞에 선 여인에게서 쿠키 향이 났다. 특이하다.


향기. 난 그 중에서도 사람의 향기를 말하고자 한다. 낯선 이에게서 문득 느끼는 향수나 심지어 쿠키향이 아니라, 마음의 향기를 말이다.


이미 한번 쓴 바 있지만 막상 마음의 향기를 또 쓰려고 하니 두렵기도 하다. 시간이 풍족해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짧은 자투리 시간에 향기로운 이의 향내를 생생하게 살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다. 설령 짧은 인상기라도 남겨 놓는다면, 모아놓았다가 시간이 풍족해진 언젠가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된 ‘사람의 향기’를 쓸 날이 있을 터이니까 말이다.



 

2.

김행규.

독특한 이름의 주인공은 얼마 전까지 우리 노동조합 조직국장이었다. 노조에서 앞장 서 활동하다 1999년에 해고되었던 활동가이다.


그가 소속된 사업장은 작년 9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이 된 진주 삼성교통이다. 자주관리기업이란 노동자가 운영하는 회사다. 노동계와 학계에서 굉장히 주목받고 있는 자주관리기업은 실상 사업주가 온갖 알맹이를 다 빼먹고, 껍데기만 남은, 아니 빈껍데기에 빚만 잔뜩 남긴, 그야말로 미운 노동자들에게 ‘너희들이나 가져라’ 내던져줄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자주관리기업으로 바뀌기까지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린다. 사업주는 회사에서 빼먹을 대로 빼먹고, 기회만 있으면 내버릴 요량으로 회계를 조작해가며 회사가 넘어가더라도 자신이 챙길 몫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노동자 임금을 체불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 후유증으로 삼성교통은 지금도 약 절반이 신용불량이다. 노동탄압을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삼성교통의 경우 노조민주화가 된 1998년 이후 자주관리기업 쟁취 직전까지 노조를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지부장이 테러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사망직전까지 갔다가 오랜 시간 동안 식물인간인 상태로 지냈고, 회사가 노조를 노골적으로 탄압해 200명 가까운 조합원이 7명만 남은 적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온전히 몸으로 맞선 이가 김행규다.

 


늘 유머가 넘치는 김행규 국장. 밝아진 웃음이 반갑다.

 

3.

최근 들어 난 김행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농담을 즐기고, 투쟁 현장에서도 트롯트 스타일로 노동가를 부르며 흥을 돋구던 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작은 일에도 흥분하고,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여유 없이 허둥댔다.


내가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깊었으면 저렇게 변했을까 해서였다. 사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음을 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다.


그는 1999년 해고된 이후 겨우 70- 80만원의 상근비를 받으면서 최근까지 버텨왔다. 결혼을 일찍 해, 그의 큰 아이는 올해 고3이다. 아이에게 현장 노동자로 살자고 해왔지만, 아빠를 따르겠다던 아이는 고3이 되면서 무척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아이의 바람은 외면하기 힘든 무엇이다.


그는 이런 가정 상황 때문에도 복직을 결심했다. 사실 2004년도 단체교섭에서 노사는 2005년 1월 1일부터 김행규의 원직복직에 합의한 바 있다. 예전 사업주는 약속을 어기고 ‘복직’이 아닌 ‘재입사’를 요구해 복직이 미뤄졌었을 뿐이므로 자주관리기업을 쟁취한 이상 그를 복직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복직을 결심하고부터이다. 복직을 당연히 환영해야 할 동료들 중 상당수가 그의 복직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는 ‘본조 국장이 어떻게 복직할 수 있느냐’는 등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난 반대를 한 그들의 속내를 안다. 그가 복직할 경우 지부 내에서 세력판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겠지...

 

숨길 수 없는 내심을 숨기며 복직을 반대하자니 무리가 따랐다. 그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반대했다. 본조를 함께 엮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오랜 투쟁기간 동안 해고는 물론 유일하게 구속되었던 그의 과거 행적을 공직 출마 등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영웅적 행동으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

 


식당 골목 어귀에 잔뜩 열매를 맺은 마가 자라고 있다. 열매가 담장 너머 흙 위가 아니라 이쪽 시멘트 위에 떨어질지라도, 그래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라도, 가능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지... 우리도 그렇고...

 

4.

본조의 강력한 의지와 관리단의 이행으로 복직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 늘 여유 있는 모습은 허둥대는 모습으로, 넘치는 유머는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독설로 바꿨다.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멀리했고, 그럴수록 말수는 늘어갔다. 어느 날 지부에 가보니 그는 마침내 작은 섬이 되어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따끔한 충고 이전에 따뜻한 술 한 잔을 받아주고 싶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지난 25일 진주에서 그와 만나 술 한 잔 함께 했다. 표정은 많이 밝아져 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난 겨우 속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상처 받더라도 모질어지지는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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