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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아리랑

2년쯤 전인가....

건설노조에서 일하는 후배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시를 보내왔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은 노동자도, 국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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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아리랑

                              이강범(미장공)


식당을 뒤엎던 날
소처럼 물만 먹고 사냐고
얼굴만 알고 지낸
김씨 이씨 하나같이
식판을 던지고
개떼같이 몰려드는 기사들
멱살을 잡고
하이바를 내 던지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더니
병아리 발 씻고 지나가던 미역국이
돼지가 목욕을 하고
반찬이 울긋불긋해졌다

식당을 뒤엎던 날
두부김치에 소주잔을 비우며
맨날 이렇게 살거냐고
일만 잘하면 장땡이냐고
서로를 쳐다보며
벌겋게 취해 오르는 얼굴로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현장을 뒤엎을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세상을 뒤엎을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맨날 식당만 뒤엎냐고
빈 소주를 움켜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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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그늘(진흥투쟁에 부쳐...)

━ 1 ━

몸에 익은 망치질 하나로
질긴 삶을 연장시키며 살아왔다

야금 야금 갉아먹고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돈내기에
안전교육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날품팔이 일용직
땀에 젖은 옷을 벗어 짜내며 툭툭 털고 다시
일에 매달려야 했던 3개월
힘든 주차장 공사 끝내고 나면
손해 본 일당의 얼마간이라도 보전 받을 줄 알았는데
연장 보따리 싸라고 한다.

그랬다 우리는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일당에 목숨을 걸고
보따리를 싸라고 하면 해고 통지도 없이 잘려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돈내기 강제 도급에
인생마저 팔아넘길 수 없었다
직접고용 일당보전, 원청사무실 점거 농성할 때만 해도
얼마간의 돈을 받고 농성장을 몰래 빠져 나가던
농성 이탈자들의 무거운 그늘을 보면서
8월의 그늘은 건설 노동자의 무거운 삶의 한 평생이었다.



━ 2 ━

농성장의 밤이 깊어지면서 불안도 깊어졌다
공권력을 요청하겠다는 원청사 노조 위원장의 악담이
서늘한 기운으로 무겁게 마음을 짓눌렸다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전화에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벌릴 수 없었다

까짓것 잃을 것도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회사 놈들이 들여보내는 대체인력 투입 앞에
이제까지 고생했던 일터를 빼앗길 수 없다는 오기도 생겼다

어디에 간들 일자리 하나야 못 찾을까 싶지만
하루 일당의 문제도 일자리 보전의 문제보다
저주받은 노가다의 운명을 한 번쯤 엎어 버리고 싶었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인간이면서 인간답게 살아보지 못했던
지난 십수 년간의 삶이 이대로 물러서고 나면
다른 현장에서 또 당하겠구나 싶었다.

━ 3 ━

그랬다.
이 현장 엎어봐야 뭐가 변하겠는가 싶었지만
우리가 떠나고 나면 또 다른 형틀 목수가 들어와 일을 하고
건물이야 올라가겠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더 이상은 물러설 수도 없고 빼앗길 것도 없는
그래서 불안한 것도 패배할 것도 없었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어색하기만 했던 동지라는 말이
형제를 부르듯 정답게 들렸고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동지의 얼굴에서
어깨를 쓰다듬으며 격려하는 말 속에서 확인되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8월의 그늘은 소중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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