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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6
    김이태 조합원 징계하던 날(4)
    손을 내밀어 우리

김이태 조합원 징계하던 날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김이태 조합원 징계 추진에 대한 성명서] 에 관련된 글.

 

23일,

김이태 조합원에 대한 징계위를 저지하러 건기연에 갔다가

어찌하여 징계위 참관하는 노조측 3명에 포함되고 말았다.

그 때의 메모를 더듬으며 끄적거려 봤다.

 

미디어충청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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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는 복권되어도 대운하는 복원 못할 것이니 그 책임은 누가 지랴-
 
김이태 박사.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첨단환경연구실 책임연구원. 20년 이상 상수, 하수, 생태, 수질관리, 환경영향평가 등 환경에 관한 전문가로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사람. 지난 5월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대운하 사업’이라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이명박 정부의 꼼수를 폭로한 사람. 이제 ‘김이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용기있는 과학기술자를 일컫는 보통명사이다. 그 김이태가 지난 23일 건기연에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정직’이라면 파면 다음 가는 중징계로서 직원의 신분은 유지하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일체의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
 
23일 밤 9시경, 건기연 지하 회의실 앞. 김이태에 대한 징계안건을 심의하려는 건기연 인사위원들이 전국공공연구노조 간부들과 건기연지부 조합원들에게 막혀 회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었다. 인사위원장은 마치 국회에서 배운 것처럼 선 채로 인사위원회 개최 선언과 정회 선언을 되풀이했다. 이 때 김이태가 그 현장에 나타났다. “제가 인사위원회에 응하겠습니다. 벌 받아야 할 것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고, 인사위원회는 원칙이니까 물리적으로 시간 끌어 봤자 전부 다 힘들고 그러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지만 물리적으로 막지는 막아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요청했다.
 
오후 4시부터 줄곧 회의장을 막고 있던 노동조합 간부들이 징계 강행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지만, 김이태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감사드립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살펴보십시오. 같은 사람이 일을 했는데 참여정부 때는 안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같은 연구진임에도 불구하고 대운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거 물리적으로 무조건 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그 정부 상황에 맞게 사는 분들한테는 내 의견을 밝히고 벌 받을 게 있으면 벌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김이태는 양심을 처벌하려는 저들의 재판정에 스스로 나섰다. 승진을 위한 인사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부서장들이 20-30%쯤 참여하던 건기연의 관례를 깨고 김이태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는 12명 전원이 부서장들이었으니 결과는 뻔했는데도 말이다. 징계 사유도 구차했다. 정부가 대운하와 관련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비밀리에 폐쇄적으로 추진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퍼뜨림으로써 정부의 신뢰를 저하시켰으니 직원으로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하나요, 대운하의 실현가능성을 미리 주관 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예단하여 연구원 개인의 의견을 일반인에게 알린 행위가 직무상 중요사항을 누설해서는 안되는 비밀엄수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두 번째 사유이다. 특히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지난 5월에 건기연측에서 공개적으로 보안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고, 이번 특별감사에서도 연구내용에 대한 보안사항을 유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밀엄수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인사위원들의 추궁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가 하는 연구 중에는 외부로 노출되면 엄청난 파장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 보고서에 따라서는 대외비로 하고, 회의 끝나면 소각하기도 하고, 내용을 빼버리는 것도 많다. 대부분 국익과 관련된 일이라서 우리 입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연구자의 정서이고 기본적인 자세라고 본다. 그러니까 김 박사는 연구원으로서 갖춰야 할 품위를 손상시킨 측면이 있다.” 명색이 부서장급 연구원이라는 인사위원의 발언이 이러하니, 스스로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고 실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심지어 “연구를 의뢰하는 사람의 요구에 맞추어서 우리의 지식을 총동원하는 것이 연구원의 역할이며, 그것이 어려우면 이러저러한 가정에서는 가능하다고, 전제를 달아서 맞추어주면 되는 것”이라고까지 하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반면 김이태의 답변은 시종일관 당당하고 떳떳했다. 우리 연구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문제점까지 지적하면서 보고서를 쓸 수 있었겠지만, 정부는 불과 1달 만에 모든 답을 제출하라고 했다. 답부터 주고 풀이과정을 쓰라고 하는 정부의 요구에 응했다면 모든 책임은 건기연이 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건기연은 4년 반만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고 계속 국민과 함께하는 긍지있는 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 관계자가 TV에 나와서 앞으로는 투명하게 하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김이태의 마지막 발언은 이렇게 끝난다. “저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인사위원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지만 아마 저처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지난 5월에 모두 8억 4천억원에 이르는 연구과제를 맡았던 김이태는 7천만원짜리 대운하 관련 과제를 ‘품위있게’ 수행하지 못한 죄로 앞으로 석달 동안 아무런 연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김이태에 대한 징계를 끝내자마자 정부는 29일부터 4대강 정비사업을 동시에 착공한다. 역사는 김이태를 복권하겠지만 과학기술자의 양심과 국민의 저항을 짓밟고 밀어붙인 대운하사업은 결코 복원이 쉽지 않을 터이니,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2008.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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