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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Volver)

(지금 인터내셔널가 모음을 듣고 있다.

올릴 수 있어서 같이 들으면 좋으련만...

인터내셔널가와 영화 <귀향>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

 

어제 밤 늦게(?, 8시50분 시작) 씨네 큐브에서 여친과 둘이서 이 영화를 보았다.

감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인데, 이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다.

아니다. <그녀에게>라는 영화를 시디로 본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시디 찾아서 다시 봐야겠다.

 

늦게 영화 보고 나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내가 본 영화의 느낌을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이 영화 <귀향>은 <안토니아스 라인>과 좀 비슷하게

여성의 연대, 주체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안토니아스 라인>과 <귀향>은 가부장제의 살인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양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화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새로운 삶의 양식은 바로 여성의 연대, 주체로서의 여성의 삶을 통해

보편적인 유적 인간의 삶이 진실로 가능한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보편적인 유적 인간의 삶은 개별적이고 부수적인 삶의 영역을 보편적인 삶의

영역으로, 사회적인 삶의 영역으로 만드는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귀향>에서 유령으로서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딸 라이문다와 쏠레,

그리고 라이문다의 딸 파울라, 그리고 아우구스티나와 다른 여성들... 

이들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언제나 개별적이고 부차적인 존재로

언제나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가부장제의 상징인 남편(아버지)을 살해(?)함으로써

가부장제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초를 마련한다.

그 기초는 여성의 연대, 주체로서의 여성이다.

 

그런데 여성의 연대, 주체로서의 여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귀향>에서는 바로 <모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귀향>에서 모성은 가부장제에서 신비화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간, 즉 보편적인 유적 인간을 생산해 내는

여성노동의 현실적이고 역사적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모성을 지닌 여성은 그 자체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을 생산해 내는 보편성과 유적 인간 본성을 자기 자신 속에

가지고서 현실화시키는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주체라고 생각한다.

 

<귀향>에서 어머니, 라이문다와 쏠레, 파울라, 아우구스티나 등의 여성들은

바로 자기 자신 안의 보편성과 유적 인간 본성을 가부장을 살해하고 공범이

되는 과정 속에서 서로 확인한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서로에게서 인간임을 확증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그들에게는 어떠한 일도 개별적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동체적인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고 생각해 본 것을 내 맘대로 적어 보았다.

어쩜 또 오바하고 있는 걸까^^...

 

덧글>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느낌과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여러 여성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성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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