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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계급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

벨 훅스의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와 관련해서는

이미 염둥님께서 자세하게 내용을 잘 소개하셔서 쓸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그래서 아주 간략하게 독후감 정도의 글로 대신할까 한다.

 

벨 훅스는 노동 계급과의 연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고 노동 계급과의 연대가 아주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흑인사회에 만연한 물신숭배가 이전의 흑인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이런 파괴에 의해 흑인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마약에 물들어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최고 관심사가 연봉이 많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노동 계급과 연대할 수 있으며, 또한 단순히 노동 계급과 연대한다고 해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기가 거론되는 시점에서?!

 

이 두 개의 문제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결국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직접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노동 계급은 어떤 시스템으로 자신을 재생산하며,

또한 새롭게 생산하는 것인가?

이는 성별 분업화되어 있는 가부장제 시스템을 노동 계급 자기 생산의 기초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서 단순히 노동 계급과 연대한다는 것은 착취와 관련한 상당한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 계급인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는 노력을 집단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집단적 노력은 착취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체'인

코뮌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벨 훅스는 이런 코뮌을 이전의 흑인공동체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흑인 공동체,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서로의 인격을 존중했던 공동체...

과연 이러한 흑인 공동체의 상이 오늘날 가능한 상일 수 있을까?

만일 가능하다면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 세대의 노동 계급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노동 계급은 자본의 무한한 적대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도권 공교육과

더불어 사교육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서 자신의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는 노동 계급 공동체 자체 내에서의 대안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각 대학을  노동 계급의 자녀들의 대안 교육의 거점으로 확보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대학생들을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자치 조직의

도우미의 역할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어렸을 때 각자 자기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던 것처럼 각 자치 조직은

자기보다 한 단계 어린 자치 조직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대학의 학생운동은 이제 새롭게 다음 노동 계급 생산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코뮌을 서서히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중언부언 말이 많아졌다.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대안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뱀다리 : 왜 책 제목을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뽑았을까?

원제목은 [Where we stand : Class matters](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 문제는 계급이다)인데 말이다.

'계급'이라는 용어가 진부하다고 여겨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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