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5장. 조화의 달성(16세기 초 : 토스카나와 로마) 2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 1449-94) ▼

- “콰트로첸트 말엽 피렌체의 지도적인 화가의 한 사람이었으며,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다.” (303쪽)

- 콰트로첸트 시기의 다른 화가들처럼 성경 이야기(전통)와 현실의 조화를 꾀한 화가이다. 고촐리에 비견된다 할 수 있다.

- “그는 성경 이야기를 마치 그의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를 중심으로 하는 피렌체의 부유한 시민들 사이에서 방금 일어난 사람인 것처럼 재미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였다.” (303쪽)

- “도판 195(<성모의 탄생>)는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묘사한 그림으로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의 친척들이 찾아와서 그녀에게 축하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여기서 15세기 말의 한 화려한 저택의 내부와 상류사회 숙녀들의 의례적인 방문 장면을 보게 된다. 기를란다요는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과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303쪽)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ounarroti : 1475-1564) ▼

- “16세기(친퀘첸토) 이탈리아 미술을 그렇게 빛나게 한 두 번째 피렌체 미술가는 미켈란젤로였다.” (303쪽)

- “레오나르도와 마찬가지로 ……시체를 해부하고 모델을 보고 직접 소묘하며 인체의 비밀을 모두 알 때까지 인체 해부학에 관한 나름대로의 연구를 계속했다.” (304쪽)

- “그러나 인간을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매혹적인 수수께끼 중의 하나로 본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미켈란젤로는 이 하나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분투 노력하였다. 그의 집중력과 기억력은 대단히 탁월했으므로 얼마 안 가서 그리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자세나 동작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304쪽)

- 미켈란젤로가 “30살이 될 무렵” “피렌체 시는 영광스럽게도 그와 레오나르도에게 시의회의 대회의실 벽면에 피렌체 시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304-5쪽)

 

 

▲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

- 도판 197, 198(<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을 살펴보자. 이 천장화에서 “미켈란젤로가 후대에게 제시해 준 항상 새롭고 풍요로운 착상들, 그리고 모든 세부를 묘사하는 정확한 솜씨와 그 비전의 장대함을 인류에게 천재의 능력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개념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307쪽)

- 이것을 헤르메티시즘이 가지고 있는 범신론적 성격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신분제 질서로 꽉 짜여진 중세로부터 다양한 개인의 생존과 자유를 보장하는 근대로의 열망을 잘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 곰브리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작업조차도 늘 새로운 형상들을 창조하려는 그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듯이 그는 이 그림들 사이의 경계에 또 다시 수많은 인물상들을 그려 넣었다.” “이들 놀라운 인물상들은 미켈란젤로가 어떤 자세이든지, 어떤 각도에서든지 인체를 능수능란하게 그리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 준다.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이 젊은 운동선수들은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몸을 틀어 돌리고 있으나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308쪽)

 

 

▲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중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 ▼

- 도판 199(<시스티나 천장화 중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를 보면,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모든 세부를 얼마나 세심하게 연구하였으며 소묘를 통해 각 인물상들을 얼마나 주의깊게 준비했는지 잘 알고 있다.” (310쪽)

 

 

▲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

- 도판 200(<아담의 창조>)은 도판 198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중앙 부분에 있는 것이다.

- 이 그림을 보면 헤르메티시즘을 단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아담과 The One의 손가락으로 연결되어 있음은 인간의 세계(지상계)와 신의 세계(천상계)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두 세계가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The One이 “인간답게 힘차고 아름다우며” “의연하고 힘차”게 나타난 것으로 알 수 있다. 물론 The One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두 세계가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범신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

- 도판 201(<죽어가는 노예>)은 도판 200(p.312, <아담의 창조>)와 대비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에서 힘찬 젊은이의 아름다운 육체 속으로 생명이 불어 넣어지는 순간을 묘사한 반면에 <죽어가는 노예>에서는 생명력이 막 꺼지려 하고 육체가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는 순간을 선택했다.” (310-2쪽)

- 그런데 이 두 그림은 삶과 죽음의 단순한 단절과 대비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시기로 보면, 중세 봉건 체제의 쇠퇴와 해체, 그리고 새로운 근대의 부상이라는 단절과 그 단절을 통한 역사의 연속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이 역사적 시기와 맞물려서 미켈란젤로 자신의 미술가로서의 지위에 관한 단절과 연속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 <죽어가는 노예> : 중세 봉건제의 쇠퇴와 해체 ; 중세 기독교와 교황청의 시녀로서의 미술가로서 자신의 부정.

- <아담의 창조> : 새로운 근대의 부상 ; 중세 기독교와 교황청 그리고 신학으로부터 독립한 미술가로서의 새로운 삶.

- 이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를 곰브리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는 존경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성질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사기도 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대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퍽 의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미술가의 지위는 그가 젊은 시절에 의식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실제로 그는 77세 때에 한 이탈리아 인이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이라고 편지를 썼다고 해서 그 편지를 받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이라고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그에게 전하시오. 왜냐하면 여기서 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통하고 있으니까…… 나는 공방을 경영하고 있는 화가나 조각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내가 교황들에게 봉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소.”” (313쪽)

 

 

▲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1446-1523) ▼

- 페루지노는 “소위 ‘움브리아 파’의 지도자”로서 “감미롭고 경건한 화풍의 제단화를” 그리던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315쪽) 그리고 라파엘로 산티의 스승이기도 했다.

- “그(페루지노)의 성공적인 작품들 중에는 그가 전체적인 화면의 균형을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깊이를 묘사하는 방법과 인물들이 거칠고 딱딱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레오나르도의 스푸마토를 구사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이 있다. (315쪽)

- 그 작품이 도판 202(<성 베르나르두스에게 나타난 성모>)이다. 그런데 페루지노가 이 작품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얻기 위해서 희생시킨 것이 있다. 즉 콰트로첸토의 거장들이 그처럼 정열적인 애착을 가지고 추구했던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이다.” (315쪽)

 

 

▲ 라파엘로 산티(Raffaello Santi : 1483-1520) ▼

- 도판 203(<대공(大公)의 성모>)을 살펴보자. 이 그림에서 “우리는 라파엘로가 페루지노의 인물 유형의 조용한 아름다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의 어딘가 공허한 듯한 규칙성과 제자의 그림에서 보이는 충만한 생명력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입체감 있게 묘사되어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성모의 얼굴, 자연스럽게 늘어트려진 옷자락 속에 싸인 육체의 볼륨,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확고하고 애정 어린 자세 등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의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약간만 변경해도 그것이 전체의 균형을 깨트리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도에는 긴장감이라든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 그림은 마치 이것 이외의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없으며 태초부터 그렇게 존재했었던 것 같이 보인다.” (316쪽)

 

 

▲ 라파엘로의 <요정 갈라테아> ▼

- 이 그림은 일단 신플라톤주의의 경향 중에서도 플라톤의 이데아의 대립 구조를 각 인물들의 구성 배치에 적용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대립 구조는 선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데아들이 대립 쌍을 이루며 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는 선의 이데아에 비견된다. 그리고 화살을 갈라테아의 가슴에 겨냥하고 있는 세 명의 큐피드와 헤엄치고 있는 큐피드는 모두 4인데 각각이 대립 쌍을 이루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있는 바다의 신 두 쌍이 있고 조개껍질을 불고 있는 해신(바다의 신) 2이 있다. 큐피드들과 해신들은 서로 대립 쌍을 이루고 있는 이데아들에 비견될 수 있다.

-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플라이우올로의 걸작(p.263, 도판 171)에서 보았다. 그러나 라파엘로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그의 해결 방법은 오히려 딱딱하고 둔해 보인다.” (319쪽)

- “라파엘로는 이전 세대의 화가들이 이룩하려고 그처럼 노력했던 것, 즉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물들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구성해 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319쪽)

- 다른 한편 “라파엘로의 그림에는 당대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린 인물들의 완전한 아름다움이다.” (319쪽)

- 이러한 아름다움이 대단히 가설적이며 이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라파엘로는 그의 스승 페루지노와 마찬가지로 콰트로첸토의 그처럼 많은 미술가들의 야망이었던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이다.” (319쪽)

- 인물 묘사에 대한 이러한 가설적이며 이상적인 방신의 대단히 뉴턴의 가설(예를 들면 힘, 중력 같은 것)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를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뉴턴은 <과학 연구에 가장 좋고 안전한 방법은 사물의 성질을 부지런히 조사하고 실험에 의해 결정한 다음, 그것을 설명할 이론(가설)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라파엘로도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이나 인물화를 많이 관찰했을 것이고, 그러한 관찰로부터 자신의 이상적인 완벽한 인물 모델을 생각해 만들어 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엘로가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도판 206(<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을 살펴보자. “머리가 약간 부풀어오른 근시안인 교황의 초상에는 이상화된 것이 하나도 없다.” (320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