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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빛과 색채(16세기 초 :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16장. 빛과 색채(16세기 초 :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 16세기 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미술의 특징 ▼

- 이 시기 이곳의 미술의 특징은 원근법과 맞먹는 빛의 명암을 사용하고 그 빛의 명암을 색채 구성으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 빛의 명암을 처음 사용한 화가는 곰브리치가 마사초의 후계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꼽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도판 170, p.261)이다. 피에로는 빛을 “인물들의 형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원근법과 대등한 중요성을” (260쪽) 지닌 것으로 사용하였다.

- 이 시기 이곳의 화가들은 아마도 남부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인 피에로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그러한 피에로의 영향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빛을 인물들의 구성과 배치의 조화와 통일성의 원리, 수단으로까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것은 베네치아의 지형적․기후적 특성과 연관 있어 보인다. “사물의 예리한 윤곽을 희미하게 만들고 휘황찬란한 빛 속에 사물의 색채들을 뒤섞이게 하는 환초로 둘러싸인 해변의 분위기가 이 도시의 화가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의 화가들이 해 왔던 거보다 더 신중하고 민감하게 색채를 사용했는지 모른다.” (325쪽)

- 이탈리아 남부 “피렌체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색채보다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그림이 색채 면에서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한 그림 속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형태들을 하나의 통일된 구성으로 결합시키는 데 색채를 주된 수단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던 화가는 매우 드물었다. 그들은 채색하기 전에 원근법이나 구도로써 그러한 통일된 구성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326쪽)

 

 

▲ 야코포 산소비노(Jacopo Sansovino : 1486-1570) ▼

- 산 마르코(San Marco) 성당 도서관(도판 207)을 지은 피렌체의 건축가가 바로 산소비노이다. “그는 자신의 양식과 작품을 그 도시 특유의 분위기, 즉 환초로 둘러싸인 해변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화려한 베네치아의 밝은 빛에 어울리도록 완벽하게 적응시켰다.” (325쪽)

 

 

▲ 위대한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 1431?-1516) ▼

- 도판 208(<성모와 성인들>)을 살펴보자.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326쪽)

- “벨리니는 그림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고 이 단순한 대칭적인 구도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성모와 성인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 신성함과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사실적이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변화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는 페루지노(p.314, 도판 202)가 어느 정도 그랬던 것과는 달리 살아 있는 인물의 다양성과 개성을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페루지노의 인물 못지않게 보다 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세계, 즉 이 그림을 꽉 채우고 있는 충만한 따뜻함과 초자연적인 빛이 스며든 세계에 소속된 사람들 같이 보인다.” (329쪽)

 

 

▲ 조르조네(Giorgione : 1478?-1510) ▼

- “조반니가 보여준 모범”처럼 “색채와 빛을 행복하게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 “영역에서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이룩했던 사람이다. 이 미술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그의 진작(眞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겨우 다섯 점밖에 되지 않는다.” (329쪽)

- 도판 209(<폭풍우>)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분명히 화면 전체에 스며 있는 빛과 공기에 의해서 하나의 전체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뇌우의 섬뜩한 빛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또한 이 그림이 그 시초일 듯싶은데, 그림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무대가 되는 풍경이 이제는 단순한 배경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풍경은 그 나름대로 그림의 진정한 주제가 되고 있다.” “사물과 인물을 나중에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땅, 나무, 빛, 공기, 구름 등의 자연과 인간을 그들의 도시나 다리들과 더불어 모두 하나로 생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거의 원근법의 창안과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이었다. 이제부터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회화는 그 자체의 비밀스런 법칙과 방안을 갖는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329-331쪽)

 

 

▲ 티치아노(Tiziano : 1485?-1576) ▼

- 조르조네의 이 위대한 발견(자연과 인간을 모두 하나로 생각해서 그림의 소재가 되는 모든 것들이 제각각의 진정한 주제가 되도록 하는 회화 기법)의 모든 결실을 얻은 화가로서 “모든 베네치아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티치아노였다. (331쪽)

- 티치아노의 “물감을 다루는 솜씨는” “그(티치아노)로 하여금 전통적인 구도의 모든 규칙을 무시하게 했으며 파괴한 듯이 보이는 통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색채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331쪽)

- 도판 210(<성모와 성인들과 페사로 일가>)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조반이 벨리니의 그림 <성모와 성인들>(도판 208, p.327)보다 불과 약 15년 뒤에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에서처럼 성모 마리아를 그림의 중앙에 두고 시중 드는 두 성인을 대칭되게 배치한 것이 아니라 성모를 그림의 중심에서 이동시켰으며 두 성인을 이 장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거의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331쪽)

- 이것은 다가올 근대사회의 특성, 즉 개개인이 모두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된다는 근대사회의 이념인 자유(인물들의 자유로운 배치)와 평등(인물들 누구나 이 장면에 능동적으로 참여, “권위의 상징”인 “열쇠”가 “성모의 왕좌 아래의 계단에” 놓여 있음(331쪽)-이는 범신론의 특성이기도 함)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사람들은 “처음에” 이 “그림이 한 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 예기치 않는 구도는 전체적인 조화를 깨트림 없이 오히려 그림을 생기 있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티치아노가 빛과 공기와 색채로써 이 장면을 통일시켰기에 가능하였다.” (332쪽)

- “단순한 깃발 하나를 가지고 성모의 모습과 대칭을 이루게 한” 것은 역사적․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부르주아가 정치적으로 교황청에 대적할 만큼 성장하였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332쪽)

- 도판 212, 213(<젊은 영국인>)을 살펴보자. “티치아노가 당대에 그처럼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초상화 때문이었다.” “이 그림에는 레오나르도의 <모나 리자>(도판 193, p.301)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세밀한 입체감의 묘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무명의 젊은 영국인은 모나 리자처럼 신비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꿈에 잠긴 듯한 눈동자는…… 영혼이 담긴 강렬한 표정으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같다(도판 213).” (333-334쪽)

-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은 도판 214(<교황 바오로 3세와 알렉산드로 파르네세, 그의 동생 오타비오 파르네세>)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그림은” “티치아노가 황제 카를 5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를 떠나 독일로 그의 초상을 그리러 갔기 때문에”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되었다.” (335-337쪽)

 

 

▲ 코레조(Correggio)라 불리운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 : 1489?-1534) ▼

- 코레조는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16세기 초기의 이탈리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과감한 혁신가로 평가”되었다. (337쪽)

- “아마도 그는 북부 이탈리아의 인근 도시들에서 레오나르도 제자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그의 명암법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후대의 여러 유파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완전히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명암법에 관한 것이었다.” (337쪽)

- 도판 215(<거룩한 밤>)를 살펴보자. “왼쪽의 복잡한 장면에 대응하는 군상(群像)들이 오른쪽에는 없으므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성모와 아기 예수에게 빛을 던져 강조함으로써 전체 그림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코레조는 색과 빛을 사용하여 형태에 균형을 주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발견을 티치아노보다 더욱 잘 활용하였다.” (337쪽)

- “코레조 이후 세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수세기 동안 그처럼 반복해서 모방한 이 화가의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가 교회의 천장과 둥근 지붕에 그림을 그리는 장식이다.” (337-339쪽)

- 이 장식의 대표적인 작품이 도판 217(<성모의 승천>)이다. 코레조는 “아래의 본당에 있는 신도들에게 천장이 열려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곧장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빛의 효과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그의 능숙한 기술로 인해 그는 햇빛을 가득 받은 구름으로 천장을 채우고 그 구름들 사이로 천사들의 무리가 다리를 아래로 늘어트린 채 빙빙 떠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339쪽)

- 도판 216(<성모의 승천 : 파르바 대성당으 천장화를 위한 습작>)을 보면 “코레조가 단지 몇 번의 분필 자국만으로 그처럼 넘쳐흐르는 빛을 암시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단순하 회화 수단을 구사했는지를 알게 된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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