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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

역사소설 <<혁명>> 제2권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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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자신의 생애를 한꺼번에 털어놓는 것은 어리석다. 단 하루만 지나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떠오른다. 삶을 한 줄로 꿰는 것은, 그 사람의 복잡다단함을 한두 문장으로 줄이는 것만큼이나 한심하다. 나 정도전을 누구라고 단정 짓는 말들이 많지만, 언제든 나는 그 말들의 바깥에서 내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보여 줄 수 있다.

 

내가 이야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관되게 펼쳐진 회고담을 의심할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의 건너뜀, 무관함과 유관함, 생략과 확장의 순간을 나는 아낀다. 한 인간의 다양함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각각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판 위로 올려야 한다. 정도전이란 인간을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소리로만 취한다면 이야기들 중 대다수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특히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부끄러움은 오로지 나에게로 향하는 법.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더 많이 부끄럽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병풍 그림자처럼 깔려 오는 탓이다. 사과하고 싶지만 상대가 이미 곁에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일을 기억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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