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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혁명>> 제1권 내용 중 또 한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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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영주로 왔을 땐 봄비가 닷새 동안 연이어 내렸다. 첫날엔 찬바람까지 불어, 밤이 들면서 봄비가 봄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맹자>>를 펼쳐 놓고 첫머리를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이 둘이 마루에 붙어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통통한 녀석은 앞으로 시중을 들 동자였고, 또 한 녀석은 동자의 종갑내기 사촌이었다. 둘은 한동네 친구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다. 내 이사를 도우려는 동자가 혹처럼 사촌을 달고 온 것이다. 이삿짐이라고 해야 지게 한 짐이 고작이었고 비까지 내려 두 녀석은 할 일이 없었다. 대낮부터 나란히 앉아 낄낄대다가 졸고 또 히죽거리던 녀석들이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내 눈은 서책에 머물렀으나 내 귀는 재잘대는 말다툼에 쏠렸다. 동자가 어깨에 날아와 앉은 눈송이를 손등으로 털며 물었다.
"비가 눈이 되는 게 힘들까, 눈이 비가 되는 게 힘들까?"
"눈이 비가 되는 게 백배는 힘들지, 당연히!"
두 달 먼저 태어난 사촌이 아는 체했다. 세상에서 그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
"왜"
"넌 달리다가 걷는 게 힘들어, 거다가 달리는 게 힘들어?"
"걷다가 달리는 거."
"눈은 천천히 내리잖아? 그러다가 녹아서 비가 되면 주루룩 빨리 떨어지니까 무척 힘들지. 비로 떨어지다가 눈으로 바뀌는 건, 느려지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아."
동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비가 눈으로 바뀔 때가 더 힘들지 않을까?"
"억지 부리지 마. 가을에 이르면 잎이 떨어지고 봄이 오면 얼음이 사라지는 것과 똑같아."
"비는 땅이 가까워지면 어디로 떨어질지 대충 알아. 지붕이면 지붕, 마당이면 마당! 하지만 눈은 흩날려. 지붕으로 내려오다가 실바람에 밀려 우물에 빠지고, 밭에 거의 닿았다가 강풍에 쓸려 언덕을 넘지. 회오리바람이라도 만나면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도 있어. 비일 때는 전혀 몰랐던 움직임이야.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다 받아들여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사촌은 턱을 들어 하늘을 살폈다. 어둠이 찾아들자 허공의 눈들도 차츰 희미해져 갔다. 나는 서책을 펼쳐 놓았으나 등잔을 밝히진 않았다. 지금은 두 녀석의 대화가 내겐 서책이었다. 이윽고 사촌이 답했다.
"눈이 비보다 떨어질 곳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은 맞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엔 더욱더 눈이 비로 바뀔 때가 힘들겠어."
"왜?"
"떨어질 곳을 마지막까지도 모른 채 자유롭게 눈으로 떠돌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고 오직 애래로만, 딱 한곳으로만 떨어지는 비를 상상해 봐. 얼마나 갑갑할까? 계속 비로만 내리던 녀석이랑 눈에서 비로 바뀐 녀석이랑 무척 다를 거야. 안 그래?"
동자가 잠시 생각한 후 사촌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맞아. 눈에서 비로 내리는 게 비에서 눈으로 내리는 것보다 훨씬 힘들겠네. 근데 나 배고파, 형!"
동자는 배가 고플 때만 사촌을 형이라고 불렀다. 사촌을 따라 저녁을 얻어먹으러 갔다. 비에서 눈으로 바뀐 오늘의 화두는 계속 내리고 있었으나 어둠이 짙어 보이지 않았다. 등불 없이 화두를 붙든 채 화두 곁에서 영주의 첫밤을 보냈다. 내 인생은 눈에서 비로 내릴까, 비에서 눈으로 내릴까.
(242~245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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