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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혁명>> 제1권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서너 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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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문 밖에서부터 누렁이 한 마리가 쫓아왔다. 송아지만 하다. 돌아보면 무심한 척 딴청을 부렸지만, 이 길에 저와 나 둘뿐이니 바라는 것도 없이 따르진 않으리라. 내가 더디 걸으면 저도 더디 걸었고 내가 바삐 걸으면 저도 네 다리를 분주히 놀렸다. 멈추면 멈췄다. 50보보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고 100보보다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녀석이 혹시 내 엉덩이 살점이라도 물어뜯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완만한 언덕을 올랐다. 언덕바지에서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녀석을 눈을 끔뻑거리며 던질 테면 던져 보란 식으로 길 가운데 서 있있다. 졸졸 따라왔다는 이유만으로 개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지나치다. 녀석이 사람이라고 해도 돌팔매질을 할 것인가. 돌멩이를 내려놓고 언덕을 넘었다.
불그스름하던 기운이 점점 검어졌다. 산책을 접고 돌아갈까. 흘끔흘끔 고개를 돌려 누렁이를 곁눈질했다. 어둠에 젖은 누렁이는 황소보다도 크고 늑대보다도 사나워 보였다. 누런 빛깔에 담긴 착함, 둔함, 게으름은 사라졌다. 내리막길의 끝에서 누렁이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이 뛰면 나도 달리리라 결심했지만 호랑이를 만난 하룻강아지처럼 꼼짝달싹 못했다. 타닥타닥 흙을 차는 경쾌한 소리가 가까워졌고 밀려드는 후회도 그만큼 커졌다. 다섯 걸음 앞에서 누렁이는 뒷발을 밀며 뛰어올랐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누렁이는 내 어깨를 훌쩍 뛰어넘더니 도깨비처럼 나타난 동자에게 안겼다. 긴 혀로 동자의 뺨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비슷한 또래 아이가 둘 더 있었다. 바지를 무릎까지 접고 웃옷은 아예 벗어 어깨에 돌돌 말아 걸쳤다.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렁이가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단 말인가.
"네 녀석이 키우는 개냐?"
동자가 누렁이의 머리를 저만치 밀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동네를 떠도는 놈이에요."
누렁이가 거머리처럼 동자에게 들러붙었다. 침이 뚝뚝 동자의 벗은 목덜미에 떨어졌다. 다른 두 아이도 누렁이의 뒷다리와 꼬리를 붙잡고 흔들며 즐거워했다.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뒤엉켜 놀았다. 50보 이상 거리를 두고 나를 따르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주인도 아닌 너를 어찌 이렇듯 반기느냐?"
"찬 밥 반 덩이를 네댓 번 줬습니다요. 이래 봬도 기억력이 비상합니다. 한 번 거둬 준 사람에겐 꼬리를 치며 반깁지요. 나린 이 녀석에게 아무 것도 준 게 없나 봅니다요."
"무작정 쫓아만 오니, 왜 그런지 따질 틈도 없었고...."
변명 아닌 변명이 동자들의 비웃음에 묻혔다.
"무슨 일이든 꼭 그렇게 따져 봐야 압니까? 척 보면 불쌍하지 않습니까? 쫓아오는 이율 알았네 몰랐네 따질 일이 아닙지요. 누렁이는 걸음걸음 도움을 청했지만 나리가 듣질 않으신 겁니다."
"도움을 청했다고? 하면 너는 척 보고 알아차렸단 말이냐?"
"그럼요. 배를 곯아 본 이라면 어찌 모르겠어요. 똑같은 눈길로 날 쳐다보는데. 나린 간절히 도움을 청한 적이 없나 봅니다. 녀석의 눈에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셨다니. 오늘은 나리가 참 불쌍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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