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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순된 존재

좀전에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하면서 책을 읽다가

연구실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던 참이었다.

(연구실은 내 이름으로 된 연구실이 아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에

선정된 여러 선배들이 학교로부터 배정받은 연구실인데,

이 선배들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아서 자리 지킴이로 나와서

공부하는 곳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엄청 모여드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연구실이 속해 있는 문과대 건물에서 아이들의 한자 능력 검정 시험이 있는 것이었다. 교회 차량에서 내린 아이들은 교회 선생님(?, 요즘은 교회에서도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한자도 가르치는 모양인가?)이 나눠 주는 수험표를 들고 고사장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한자의 뜻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능력을 측정한다고 저 난리들인지... 학부모의 교육열(?)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좀더 좋은 곳에 취직을 해서 생존경쟁에 밀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란 오죽할까...

그런데도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안타깝고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사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그렇다고 사교육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집이라는 사회의 모든 영역(아이들에게는 학교와 집은 거의 대부분의 인간 관계를 맺는 곳이 아닌가 한다)에서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인간해방, 여성해방, 노동해방 등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인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또한 서글프고 자괴감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들이 앞으로 나의 밥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1월에 고3 수능이 끝나면 빛을 갚기 위해 돈을 벌러 이러한 사교육 시장으로 가야 하는 처지다.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 강사들이 적게는 기백만 원에서 기천만 원의 빛을 지고 살아서 어쩔 수 없이 사교육 시장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사교육 시장으로 안 나가려면 정규직 교수가 되는 길밖엔 없는데, 이게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 먹고사는 것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내 존재의 실존적(?) 모순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비단 나뿐만이 그러랴.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디서부터 이 모순의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인가?

 

이 모순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나의 업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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