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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대하여...

오늘 비가 오고 바람도 좀 불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뭐 마음이 좀 거시기하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선배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불혹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불혹이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40대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불혹에 관한 이러한 뜻이 적절한 것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그 선배와 내가 얻은 공통의 결론이었다.

그 결론인즉슨, 불혹이란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유혹해 줄 사람과 별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선배는 혼자서 산을 갔다온 후에 혼자서 어디에선가 술을 먹고 있을 것이며, 나는 여기서 이렇게 불질을 하고 있다.

 

40대에는 왜 서로서로가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40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 일찍 늙어 버려서 쉰 내가 풀풀 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어서일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무한한 적대적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

1등이 되어야 한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약육강식의 생존 양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생존 양식을 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니까 남에게 어쨌거나 약점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유혹해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가부장적 조직에서는 이 정도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 말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었을 때와 같이 아프다고 말하게 되면, 겉으로야 네가 많이 아프구나

하겠지만 돌아서서는 나잇살 먹어서도 아직 철딱서니가 없다고 소문나기 십상이다.

그러면 은근하게 사람들에게 따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아픔이라는 것이 남의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아픔을 잊고자 하는데 그 아픔을 기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싫어서일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아픔은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자꾸 외로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권력을 가졌다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불혹이란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 생각엔 수다를 떨어야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외로움, 우울증을 낳는 병원균이라 생각한다.

 

지금 그 선배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떨어보자.

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시민이지 않는가*^^*..

지금 책가방을 싼다.

 

불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불혹에 대한 투쟁 승리!

 

반 불혹 집회로!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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