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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7/20
    메모 19.
    곰탱이
  2. 2022/07/20
    메모 18.
    곰탱이

메모 19.

생산자 즉 노동자와 생산물의 구별이 생산자와 생산물을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나온

소외(자본, 화폐, 상품의 물신성)의 극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맑스가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생산자와 생산물의 관계는 물자체와 현상 사이의 관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생산자는 생산물과의 관계에서 초월론적 존재이다. 

즉 노동자계급은 생산물의 주체로서 물 자체이다. 

타자를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은 노동자의 생산물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은 노동자를 생산물로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산 주체로 대하라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생산물의 소비와 소비를 위한 노동을 통해 새로운 주체로 자신을 생산하고 규정한다. 

노동자계급은 새롭게 생산되고 규정되어야 하는 물자체와 물자체의 관계, 

즉 실천적 주체와 실천적 주체의 관계이며 타자의 타자성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 관계가 연대의 관계이다. 

이는 맑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교육하는 자도 변화된다고 말한 것과 직접 연결된다. 

또한 이것이 거꾸로 서 있는 헤겔의 변증법을 바로 잡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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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18.

맑스에게서 소외의 극복은 관조를 넘어서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칸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아직 규정되지 않은 것을 규졍해야 함이라는 

실천을 통해서 규정되는 것으로 만드는 생산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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