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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19
    박하사탕 (영상예술의 이해 레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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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5/15
    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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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5/14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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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5/08
    떨리는 가슴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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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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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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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4/21
    (논술)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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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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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4/14
    [작문] 결혼 적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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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4/13
    웃찾사 웃음의 비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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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 모니터링

 

<떨리는 가슴> 모니터링

지훈

 

1. 기획


드라마 <떨리는 가슴>은 6명의 연출가와 작가가 6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드라마 한편씩 만들어 가는 새로운 방식의 창작을 시도하였다. 등장인물과 그 관계는 전체 드라마에서 동일하나, 각 편마다 포커스가 되는 인물이 바뀌고, 추가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화 사랑은 배두나를 주인공으로 이혼녀의 사랑을. 2화 기쁨에서는 하리수를 주인공으로 트렌스젠더의 삶을. 3화 슬픔에서는 딸 보미의 첫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초등학생의 첫사랑을. 4화 바람에서는 김창완을 통해서 40대 중년 남성의 사랑을. 5화 외출에서는 배종옥의 사랑을 통해서 중년 여성의 옛사랑과 현재의 사랑. 6화 행복에서는 종옥과 두나의 예전 어머니인 김수미를 등장시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구성방식은 매우 획기적이며, 신선하다. 기존의 주말드라마에서처럼 몇 달동안 지속적으로 지켜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매 회만 보더라도 충분히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작가와 연출가의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또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보여주면서 장편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지속성이라는 장편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큰 매력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드라마 제작이 많이 도입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할 것이다.


2. 주제 및 내용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기존의 주말 연속극은 20대 혹은 30대 남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떨리는 가슴>은 이러한 관계 설정의 식상함을 너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2회 기쁨 편에서는 트렌스젠더라는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실제 트렌스젠더 하리수가 과감히 연기함으로써 신선함과 사실감, 진실성을 담보하였다. 또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음으로써 사회의 공익에 앞장서야하는 방송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트렌스젠더라는 특수한 상황만이 아니라 초등학생, 이혼녀, 40대 중년 남,여 등의 이야기들 역시 매 회의 주제로 삼으면서 주말 저녁의 가족 시청시간대에 맞게 대부분의 시청자 연령대에 맞추는 것 역시 매우 좋은 시도였다. 드라마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문을 열고 나서면 주위에서 볼 수 있음직한 이야기들이어서 현실감이 있었고 또 보편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들이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담담하게 드라마를 전개시키나가는 것이 주말드라마로서 적절하였다. 특히 40대 중년 남여의 외도 이야기의 경우에는 매우 심각하고 부도덕하게 빠지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무겁지 않으면서도 동조하기 쉬운 터치로 그려나갔다. 사실 중년 남여라고 해서 사랑이 없겠는가? 감정이 없겠는가? 한 사람만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지닌 것이 당연함에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내적 규범으로 ‘그러지 말아야 함’을 강제해왔다.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사회적 인식의 차원에서 억누르고, 이를 벗어나는 경우에 있어서 벌을 내리는 행위였다. 그러나 <떨리는 가슴>은 존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묘사하는 ‘쿨’함을 지니면서 표현하기에, 무겁지 않게, 또 가볍지 않게 이해되도록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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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DMB 시대

 

얼마 전에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사인 IHQ 매각을 두고, SKT사와 KT사가 경쟁을 벌인 바 있다. 휴대전화사업자인 두 회사의 IHQ 매각 경쟁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이는 DMB 시대가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는 앞으로의 매체 문화를 크게 바꾸어놓은 차세대 방송이다. 기존의 고정된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어서서 이제는 휴대폰으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다. 이제는 영화와 TV 방송을 보고, 실시간 뉴스를 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보급률과 신세대들의 휴대폰 친화력을 고려해보았을 때, DMB 산업 시장은 매우 거대하며 최고의 보물창고인 것이다. 


DMB 산업의 성패는 컨덴츠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거리가 얼마나 풍부하냐에 따라서 소비자는 매체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KT와 KT의 IHQ매각 경쟁은 컨덴츠 확보 경쟁으로써 당연한 행보이다. 일본의 SONY사의 할리우드 거대 영화 기업인 콜롬비아 사와 MGM 매각 소식 역시 컨덴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휴대폰 사업자들에게는 컨덴츠 확보가 중요하듯이 각 방송사는 컨덴츠 개발이 중요하다. 기존의 방송을 그대로 매체이동을 시키는 식의 전략은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 매체에 따라서 적합한 문화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와 TV 방송은 각각 스크린과 브라운관 그리고 극장과 가정이라는 상이한 매체에 적합하게 다르게 정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DMB 컨덴츠는 휴대폰이라는 매체에 적합하게 발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거대 산업인 DMB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각 방송사는 휴대폰 방송에 적합한 컨덴츠 개발을 시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DMB 컨덴츠는 휴대폰에 적합하게 만들어 져야한다. 휴대폰 화면은 TV보다도 작다. 그리고 휴대폰은 이동중이거나 혹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곳 등의 상대적으로 불안정된 상황에서 이용된다. 또한 언제든지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다. 이러한 휴대폰에 걸맞게 DMB  컨덴츠는 구성되어야 한다.


우선 보다 클로저업 된 화면 구성을 많이 포함시켜야 한다. 멀리서 잡은 롱샷은 작은 휴대폰에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어려우며, 표현전달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사건의 전개는 빨라야 한다. 조용한 집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중할 수 있는 주기도 짧아짐이 당연하다. 조금만 지루하면 언제든지 집중은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는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짧은 컷들을 이용한 빠른 사건 전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보통 한 시간의 기본 단위로 구성되어있는 방송보다는 30분 단위의 짧은 구성이 더 적합하다. 대중교통 이용자는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1,20분 정도의 시간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한 시간의 편성은 매우 부적합하다. 그렇기에 조금 더 짧은 편성 시간으로 방송을 맞추어야만 시청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DMB는 당장 내년에 시행될 방송 문화의 획기적인 변화이다. 이는 문화향유의 엄청난 혁명이자, 문화 시장의 금광이다. 이러한 DMB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체에 적합한 컨덴츠 개발이 필수적이다. 기존 방송의 매체 전환은 국제적인 DMB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는 안일한 사고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매체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컨덴츠 개발에 조금 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는 각 방송사의  수익 확보이자 동시에 국가 경쟁력과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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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며...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며..


지난 3월 2일 국회 본의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소식에 많은 한국 여성계와 여러 진보 단체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호주제는 1957년 제정된 이래로, 그것에 대한 폐지가 한국 여성 운동계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만큼 호주제 폐지는 현재까지의 한국여성운동사에서 가장 큰 성과로 기록해도 좋을 만큼, 매우 의미 있는 결실이다. 이로써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이 직장 및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의 영역에 까지 크게 확산될 수 있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 또 법적으로 남녀가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져 있는 모순적인 구조를 깨뜨리면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주제는 1957년에 제정되고 그 다음해 2월에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호주 즉 가장은 남성이 우선적으로 승계하게 되어있다. 또 여성은 결혼을 하게 되면, 호적을 파서 남편의 호적에 입적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호주제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호주제는 근원 자체가 남녀의 차별을 당연시 하고 있다. 이는 여성에게 억압적인 제도임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남성에게 조차 필요 이상의 짐을 안겨주는 제도이다.

여성은 호주제 때문에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결혼의 시작에서부터 남편에게 종속되어야 했다. 집안의 가장은 남성으로 못박혀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에서 결혼을 했더라도 가정의 주인은 남편이 되었다. 만일 남편이 죽는다 하더라도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자신이 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호주가 되어야 했다. 또 어머니가 이혼 후 자녀들을 데리고 재혼을 하였을 때는 성이 다른 가족을 구성해야 했고,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 만일 이것이 견딜 수 없다면 다시 계부의 성으로 아이의 성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은 늘 낮은 곳에 위치하면서 남편과 아들을 떠받들면서 살아야 함을 국가에서 깔끔히 정리해서 문서로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호주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이 호주제의 수혜자는 아니다. 호주제의 영향 하에서 자란 남성은 가정을 꾸리고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매우 당연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열심히 놀았던 남성들도 군대 제대를 계기로 열심히 호주가 되기를 준비한다. 학점을 올리고, 취업준비를 하고, 조금씩 번 돈을 모으면서 가정을 준비한다. 또 가정을 이룬 후에도 ‘내 가족은 내가 먹여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아침 일찍 출근, 밤에는 야근, 주말에도 출근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가장의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역시 호주제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남성이 가장이 되고 가정의 생계 책임자가 되는 것을 법적으로 임명한 것이 바로 호주제이다.

이처럼 호주제는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조차 억압적인 제도이다.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도 맞지 않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2위이다. 이는 재혼가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제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성을 쓰는 가족을 대표적 가족 형태로 제시하면서 변화되는 가족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자녀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 하지만 자녀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성을 자유롭게 따르고,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가정이 많게 된다면 성이 다른 부자가 놀림감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호주제의 폐지는 지금까지 살펴본 많은 모순과 차별들을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호주제가 사라진다고 해서, 일순간에 남녀의 차별이 사라진 평등의 사회가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규정된 차등적인 남녀의 위치를 동등하게 놓는 것은 평등한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여성이 맞닥뜨린 억압적인 구조만큼, 남성들도 필요 이상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은 남성들에게 그만큼의 짐을 덜어낼 수 있게 해준다. 또 구시대적인 호주제를 폐지함으로 인해 하나로만 고집되어온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제도를 수용할 수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현대의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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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결혼 적령기

 

오늘도 야근이다. 지난 주에도 3일이나 야근했는데, 월요일부터 야근이군. 남들은 주5일제 근무다. 주말 웰빙 보내기다로 떠들썩하지만, 나에겐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휴일은 하루뿐이다.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보다. 하지만 내 주위 친구들은 모두 나와 비슷하다.

25살에 늦은 군입대를 기점으로 내 인생은 남들보다 2, 3년씩 늦은 시계바늘로 움직여간다. 29살에 취업을 하고, 지금은 35살이지만 겨우 회사 6년차다. 물론 적은 봉급으로 살다보니 아직 내 소유의 집도 없다. 여자친구 역시 남들에 비해서 늦게 생겼다. 회사 입사와 비슷한 시기에 만난 여자친구는 마음씨 착하고, 깔끔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아마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여자친구일 것이다.

여자친구는 올해 겨우 나이 앞에 3자를 붙여보았다. 그러니 나와는 5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성화다. 여자친구 역시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은근히 많은 압박을 받나보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만난 여자친구의 얼굴이 그리 밝지는 않다.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자신의 여동생이 결혼할 남자를 집에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서로 이야기하기가 싫은 것이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 나와 여자친구 모두 별로 할 생각이 없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집도 가까워서 보고 싶을 땐 항상 본다. 그리고 직장 생활도 바뻐서 지금 정도의 거리감에 서로 불만이 없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너와 내’가 아니라 ‘남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보다 더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걱정인 사람들이 많다. “나이들어 결혼하면 임신이 잘안된다”, “늦은 출산으로 얻은 아이는 머리가 안좋다”, “나이먹고 웨딩드레스 입으면 흉하다” 등의 적령기 타령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혼할 때가 되었나보다. 결혼 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남들도 이런 식으로 결혼하는가보다. 어릴 적 결혼과 사랑에 대한 환상은 정말 환상이다. 처음한 밥은 뜨겁고 윤기가 나지만, 전기밥솥에 오래 꽂아두면 마르고 비틀어져 누렇고 딱딱해지듯이 결혼과 사랑도 그런가 보다.

그래!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로 하는구나. 지금까지 그 쉬운 공식하나를 외우지 못하고 살았구나. 3일의 야근이 지나고, 남들 노는 토요일의 근무가 지난 다음, 일요일에는 여자친구와 조용히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야겠다. 그리고 비싸지 않은 선물과 함께 부드러운 프로포즈를 해야겠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이, 남들이 정해준 나의 적령기의 의무를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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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 웃음의 비밀

 

1. 웃찾사는 해체적인 방식으로 웃음을 창조한다.



  다른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나 '폭소클럽' 혹은 '코미디 하우스'는 전형적인 웃음의 방식이다. 5년 전 혹은 10년 전의 개그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의 사회에 맞는 소재와 화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개콘 꼭지 중에 신동작그만, 조폭개그(이름이 생각이 안남;;), 봉숭아 학당 등이 그러하고, 폭소클럽의 도울강의(지금은 없지만), 믹스콘서트 등이 그러하다. 예전보다 조금 세련되고 깔끔하다는 느낌외에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더욱 지저분해진 면도 있다.)


 하지만 웃찾사의 웃음방식을 살펴보자. 웃찾사는 오히려 예전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웃음을 전달하고 있다.

  '윤택'은 말도 안되게 느린 반응속도를 가진 인물이다. 물론 걸음걸이와 말투,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비정상적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또 '희한하네' 꼭지에서는 모두가 단기 기억 상실증을 가진 인물이다. '택시비 얼마예요?', '오천원이요' '택시비 얼마냐니깐요?' '이천원이요~' '예~ 여기 오천원 드렸습니다.' ㅋㅋ 이런 방식으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간다.

  특히 '그때 그때 달라요'에서는 매우 특색있게 나타난다. 이들은 문자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영어 문장 몇 가지를 적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소리나는 대로 읽고, 그리고 서로에게 미쳤다고 소리지른다. 또 극 진행중에 자기들 마음대로 웃기도 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갑자기 무대를 한바퀴 돌기도 한다. 음... 그러니깐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즉 웃찾사의 이야기 전달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상의 대화와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대화법, 생활방식을 해체시켜 놓은 것이다. 개콘이나 폭소클럽이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면서 웃기려고 한다면, 이들은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 뿐이다.

  그러므로 이미 익숙하고 몸에 베어있는 사고의 잣대를 가지고 웃찾사를 보는 이들에게 웃찾사는 재미있을 리 없다. 오히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 행동들로 난무한 웃찾사를 보면서 '언제 웃어야할지? 뭐가 웃긴건지? 쟤네들 왜 저러고 있는 건지?'하는 생경감 만을 받을 것이다.



2. 웃찾사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만화를 어릴 적 부터 보고 자란 이들은 지금 이 땅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이 잡아도 30대 중반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만화를 보며 자란 이는 20대 후반까지일 것이다. 그래서 만화란 젊고 어린 이들에게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 윗세대에게는 매우 어색한 매체일 것이다. 이 만화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을 때는 그나마 누구에게나 적응할 만한 매체이지만, 만일 만화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부터 생성되게 된다면 만화에 익숙치 못한 세대들은 적응불가능일 것이다.


   웃찾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만화캐릭터같다. 가끔씩은 정말 코스프레(만화 캐릭터 따라하기)를 한 배우들이 나온 것 같다. 윤택, 귀염둥이의 종규와 형은, 그때 그때 달라요의 미친소와 김대발 조교 모두 행색이 매우 만화적이다. 물론 행동도 만화적이다.

  ‘그때 그때 달라요’에서 미친 소는 갑자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다. 이유 없다. 그냥 만화(특히 엽기만화)를 보다보면, 이상한 캐릭터들이 갑자기 나타난다던지 소리를 지른다던지, 뛰어다니는 등의 행동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2004년 최고의 캐릭터인 리마리오를 보라. 얘기를 하다가 음악이 나오면 갑자기 의미도 없는 춤을 춘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진행한다.

  ‘귀염둥이’에서 종규는 여자친구인 형은을 멜로디에 맞추어서 ‘귀엽고 깜찍하고 예쁘고 상큼하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우리 귀염둥이’라고 묘사한다. 음.. 지극히 만화적이다. 이에 못지않게 형은은 종규의 행동에 ‘오빠 미워요~ 나 삐졌어~’하면서 뿡뿡뿡 춤을 추며 무대를 돌아다닌다. ‘오! 이런!’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모습에 만화에 익숙치 않은 세대의 사람들은 정말 어이가 없을 것이다. 왜 갑자기 춤을 출까? 왜 저기서 뛰어다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젊은 아이들이 웃찾사를 보면서 웃으면서 따라하고 있을 때, 그 아이들까지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이들이 주위에 넘쳐나게 되면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상한가?’ 이상하진 않다. 다를 뿐이다.



3. 웃찾사는 감각적이다.


  매우 감각적이다. 신세대 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최첨단 유행어들을 쏟아내며 통하는 사람들만 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쨌든 로보캅’을 보면 예전에도 항상 있어왔던 콩트이다. 하지만 그 속도감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트박스의 속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탄성이 나오게 한다. 또 효과음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로보캅의 땐스 실력도 여느 땐스 가수 못지 않다.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는 콩트이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도 감각적인 것이다.

  또 예전의 소나기 강호동을 흉내 내면서 개그하는 ‘행님아’ 꼭지를 보라. 예전 강호동을 똑같이 흉내내면서, 그 속도는 아마 두 배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말 뿐만이 아니라 강호동 흉내를 내는 신형의 몸동작도 무척이나 빠르다.

  ‘알까리나 뉴스’는 입심 좋은 개그우먼이 중동어의 느낌이 나는 말들 중간 중간에 한국어를 섞어가며 피가 터져라 속사포처럼 말들을 뱉어낸다. 중간 중간엔 욕도 섞여있다.

  또 ‘뭐야!’ 그리고 ‘그런거야!’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정말 복잡하다. A가 B에게 얘기하는데 갑자기 C가 이야기하고, 또 분명 C가 이야기할 타이밍인데 A가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어디서 이야기가 터져나올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다.

  또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국적 불명의 “파”를 날려대고, “귀밥 봐라”, “그런거야”, “뭐야”를 반복한다. 웃찾사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웃찾사는 매우 빠르고 감각적이다. 신세대 적이다. 신세대는 예전 세대에 비해서 생각하는 판단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단다. 이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또 예전에 비해서 훨씬 빠르고 감각적임을 예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즉 신세대 감수성에 맞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방식이지만, 그 윗세대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4. 결론 : 웃찾사를 즐기려면...



  생각하지 마라. 이해하려고도 하지마라. 생각과 이해는 이미 기존의 생각과 잣대를 개그를 판단하는 과정이 개입된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웃찾사는 해체적이다. 기존의 틀과 전형을 부수고 만화적인 방식으로 감각적으로 웃음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생각이나 판단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냥 쉽게 만화 한편 보는 것이다. 만화를 보는데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 판단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웃찾사는 한편의 엽기만화를 사람이 몸으로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그냥 웃어라. 혹은 그냥 웃기 싫다면 보지 않음 된다. 하지만 웃찾사를 보게 되었다면 아무런 생각말고 판단말고 그 곳에 몸을 실어보아라~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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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미스다이어리 모니터링

  올드미스 다이어리 프로그램 모니터링 <한국여성민우회가 제기한 두 가지 비판점에 대한 생각> 올미다 제작진의 기회의도에도 이미 세상과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체되어 그려진 TV 드라마 속의 여성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변화된 여성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함이 올미다의 기획의도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그렇지 못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1. 변화하는 여성상을 반영 못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시트콤

  2. 주인공들의 인생 최대의 목표가 여전히 결혼, 결혼지상주의

 

  이에 대한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방송, 그 중에서도 드라마에 대한 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삶의 반영인가? 혹은 이상적인 삶의 모델이 되어야하나? 나는 물론 이 두 가지의 절충을 생각하고 있다. 삶의 결정이라는 것이 항상 여러 가지 대립상황의 절충과 타협이듯이, 이 두 가지는 분명히 함께 존재하여야 한다.

 

  드라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야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 곁의 이야기, 옆집 아줌마, 아저씨, 친구, 동생들의 이야기 같은, 있음직한 스토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방송 및 공연이 그렇듯이 대표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모든 모습을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보니 특정 성격유형들의 대표적 인물들을 설정하여 현실을 나타내야한다. ‘현실의 극화’라는 과정에서 우리는 드라마의 허구성이라는 불순물이 개입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항상 불치병을 앓고 죽고, 남자들은 잘생기고 돈많은 재벌 2세이고....벌써 한숨이 나온다... 뭐... 절대로 내 주위에는 이런 사람없다. 그러므로 공감도 없다... 글을 쓰고 있는데 벌써 한숨이 나온다... 흠.. 그러니 드라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야한다.

 

  하지만 무조건 현실만을 나타내라고 할 수는 없다. 첫째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현실 그대로의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매일 보는 현실을 굳이 왜 또 TV로 보겠는가? 나라도 안보겠다. 또 현실은 너무 징글징글하다. 둘째로 문화 창조자 입장에서 대중에게 끼칠 영향력을 고려해서 드라마를 통해서 삶을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의무가 있다. 힘들고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그 속에서의 살아가는 희망과 즐거움 등을 잘 찾아내어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고, 이로 하여금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즐거워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창조자의 의무가 아닐까?(결코 이 말이 삶을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생성하라~ 라는 얘기가 아니다. 징글징글한 사회라도 잘 찾아보면 항상 즐거움이 있는 법이니, 이를 잘 찾으라는 이야기이다.)

 

 이쯤 되면 내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상이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 그렇다면 올드미스다이어리(이하 올미다)를 살펴보자. 우선 올미다에 대한 감상이다. 재밌게 보았다. 음.. 억지스럽지도 않고, 정말 친근한 이야기였다. 있을 법한 인물 설정에 있을 법한 해프닝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

  특히 개인적으로는 할머니들의 일상 이야기가 정말 공감이 갔다. 음.. 포카리 000 음료수의 뚜껑을 어찌 따야할지 난감해하고, 센서로 작동하는 변기의 물을 어찌 내려야 할지 난감해하는 모습에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 수세식 좌변기를 접했을 때, 어떻게 볼일을 봐야할지 난감해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올미다 자체의 흐름이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면구성도 어색하고, 중간 중간 섞이는 효과음도 어색했다. 이는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효과(기교)를 되도록 쓰지 않았기에, 효과나 기교에 익숙한 우리에게 가끔의 효과가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진솔하고 친근한 이야기가 부담없이 전개되어지고 억지스럽지 않아서 매우 편안한 드라마, 혹은 시트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비판에 대해서 역시 충분히 공감하는 편이다. 드라마와 시트콤이 이상향적인 모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근거있는 비판에 대해서는 충분한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용과 함께 적절한 선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올드미스라는 계층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이 어쩌면 개인에게는 민감한 ‘노처녀’의 이야기를 하나의 유희꺼리로 만들 위험도 있는 것이다. 또 조금이라도 잘못 그려졌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받고 살고 있는 이 땅의 노처녀들에게 또 하나의 가시덤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음... 작년에 결혼한 함께 살았던 나의 이모를 보면서 노처녀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드라마에서는 결혼에 목매달고, 인생 최대의 목표가 결혼이고 등의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내가 아직 20대 중반의 남성이고, 또 올미다를 자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올미다 제작진이 한국여성민우회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개선을 시도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 올미다에게 칭찬하고 싶은 것은, 비판의 목소리를 숨기기 보다는 토론방을 개설하고 시청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점이다.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고려하는 모습이 앞으로 만들어가야할 방송 문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게시판이 KBS내의 올미다 꼭지에 있어서 올미다 애청자들만이 주로 방문하는 한계 혹은 계획적인 의도는 조금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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