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from 09년 만천리 2009/11/02 18:23

지주 뽑아내다(10월 26일/안개 후 맑음 9-19도)

 

오랜만에 안개다. 날이 쌀쌀할 땐 안개가 안 생겼는데 날이 푸근해지니 다시 안개가 낀 것이다. 안개가 오죽 짙게 끼었으면 점심때가 다 돼서야 겨우 해가 보인다. 어제만큼 해가 나온다면 한 이틀 고추를 바짝 말려 빻으려 했는데. 하루, 이틀 더 날씨를 봐야겠다.

 

오늘로 아래 밭에 심은 고구마는 모두 수확이 끝난다. 애초 사흘 정도 잡고 캐낼 생각이었는데. 위쪽 밭에 비하면 겨우 이틀 만에 다 캐냈으니 수확량으로 따져도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물론 씨알도 자잘한 것만 있을 뿐이다.

 

고구마를 다 캐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곧 점심때가 될 터이긴 하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와 배 속 사정은 여유가 있고. 고구마도 채 한 시간도 안 돼 다 캐냈으니. 해서 여름 내내 밥상을 풍성하게 해줬던 오이며, 호박 지주를 뽑아낸다. 주말에 중곡동 식구들이 온다고 하니 그때까진 고추 지주까지 다 뽑아야 한다. 그래야 차를 이용해 한 번에 다 나를 수 있으니.

 

어중간한 시간에 일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지주를 뽑아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점심때가 한 참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오이며, 호박 줄기에 달린 매듭을 일일이 잘라내야 하고, 지주에 칭칭 묶인 비닐 끈도 일일이 다 풀어내야 하고, 흙도 탈탈 털어내야 하기에, 그리고 혹여 땅에 떨어지거나 잡초에 숨은 끈은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서둘러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자전거에 오르니 한 시가 훌쩍 넘는다. 일할 땐 몰랐는데 시계를 보고나니 배가 고프다. 서둘러야지.   

 

열무김치(10월 27일/맑음 9-21도)

 

20도까지 올라가는 낮 기온만 놓고 보면 완연한(?) 봄이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탓에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고. 춘천에 온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어쩌겠나. 알아서 몸조심하는 수밖에.

 

올 봄에도 열무며 아욱 등을 심었는데 어찌하다보니 때를 놓쳐 맛을 못 봤다. 열심히 키우기만 한 셈인데. 올 가을엔 벌써 아욱된장국을 두, 서너 번 먹었고 오늘은 열무를 수확하니 바쁜 일이 없긴 없나보다.

 

열무를 두 줄만 뽑아내서 손질을 했는데도 둘이 먹긴 양이 수월치 않다. 아무래도 훌쩍 자란 놈들은 시래기로 만들어야겠고. 아욱은 웬만큼 크는 대로 때 놓치지 않고 따가 된장국에 넣어 먹어야겠다.

 

열무만 손질해 한 자루 싣고 돌아오려니 30분 넘게 자전거 타고 온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고추 두 이랑 지주를 뽑아낸다. 역시나 지주 뽑는 시간은 10분인데 끈 정리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암만 봐도 뭔 수를 내도 내야할 듯하다.   

 

도리깨(10월 28일/맑음 6-18도)

 

백 평 농사를 짓던 이천 평 농사를 짓던 있어야 할 건 있어야 한다던데. 이건 좀 비싼 거 아닌가 싶다. 도리깨 하나에 1만원, 2미터×3미터 바닥 천 하나에 1만 5천원인데. 다음에 또 오라며 2천원 깎아서 2만 3천원. 콩 농사 조금 지어서 2만 3천원 어치나 나오려나.

 

늦은 아침을 먹고 밭에 나가 바닥 천을 깔고 도리깨질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단 쉽진 않다. 바닥 천이 작아서인지. 도리깨질 한 번에 이리 저리 튀는 콩들이 바닥 천을 벗어나기 일쑤다. 요령이 없어서일지 모르겠지만서도 겨우 묶어 세워놓은 콩 두 단 털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무래도 내일부턴 뭔 수를 내야겠다.

 

그래도 털어 온 콩을 저녁 내내 돌아가며 골라내니 작년에 수확한 콩 양을 훌쩍 넘는다. 묶어 세워놓은 콩이 오늘 턴 것에 대략 20배는 될 터이니. 아무래도 이번 콩 수확도 성공이지 싶다.

 

* 도리깨 - 1만원 / 바닥 천 - 1만 3천원

 

콩 타작 - 둘째 날(10월 29일/맑음 6-22도)

 

생각보다 콩 터는 게 쉽지 않다. 일이 힘든 거 보단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다. 얼추 사나흘 도리깨로 타작하고 바람 부는 날 한 이틀 키질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론 어림도 없다.

 

모래 비가 오고나면 날씨가 추워질 거란 예보에 두 이랑 남은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도리깨를 잡고 있으니 아무래도 양이 많은 콩이 부담이 되나보다. 또 일요일 오후에 중곡동 식구들과 남은 고구마를 캐면 손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콩 타작에 나서게 한다. 하지만 두 시간이 넘게 일을 해도 겨우 반 자루니. 언제 다 털려나. 

 

다시 고구마 캐다 - 첫째 날(10월 30일/맑음 9-23도)

 

예정대로였다면 오늘 오후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과 또 일요일에 찾아오는 중곡동 식구들을 위해 고구마를 조금 남겨뒀었다. 멀리서 얼굴 보러, 밭 구경 하러 부러 오는데 고구마라도 캘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헌데.

 

내일 오후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고 나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온다고 한다. 비록 이틀 정도 새벽에 영하로 내려가는 거지만. 고구마에겐 치명적이기에 하는 수 없이 고구마를 캐내다. 그래도 중곡동 식구들을 위해서 조금은 남겨두는데. 어차피 혼자 캐내서 옮기려면 벅차기도 하기 때문에.

 

고구마를 두 자루 넘게 캐내고는 고추단도 다 뽑아내고, 옥수숫대도 베어내고, 고추끈도 정리한다. 콩은 이미 다 뽑아 말리고 있고 며칠 전엔 오이, 가지, 호박 지주도 뽑아냈으니. 밭이 휘휘하다. 이제 고추 뽑아내고, 콩 다 털고, 배추, 무 뽑아내면 올 농사 끝이다.

 

다시 고구마 캐다 - 둘째 날(10월 31일/흐린 후 비 10-16도)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가득한데. 서둘러 밭으로 나가 남은 고구마도 캐내고 열무며 아욱도 수확해야 할 텐데. 며칠 간 낮엔 밭일을 밤엔 밭에서 가져온 콩 고르기에 고추 닦기에 쉬지를 않았더니 몸이 무거워 꼼지락댄다.

 

겨우 10시가 조금 넘어 밭으로 나가 남은 고구마를 캐내고 나니 하늘이 거멓다. 모르긴 해도 30분 내에 비가 올 듯한데. 서둘러 자루에 고구마를 담고 자전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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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18:23 2009/11/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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