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다, 해 넘어 겨우 당도한 곳 위태(2012년 7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준비는 많이 했다. 배낭도 새로 사고 등산화도 사고. 한 짝이 있었지만 스틱도 하나 더 주문하고, 혹시나 몰라 손전등까지 함께 주문했으니. 둘레길 전제 지도는 물론이고, 구간별 지도도 일일이 프린트하고. 것도 모자라 바우길을 걸으면서 유용하게 쓴 GPS를 가져가기 위해 둘레길 트랙까지 구했으니. 휴가철과 겹치는 것 같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일주일치  예약까지 한 민박은 출발 열흘 전에 마쳤고. 이만하면 다 준비됐다, 싶었다. 그리고.....
 
 
 
 
 
 
 
 
 
 
 
 
 
 
 
 
 
어제 기차에서만도 꼬박 8시간이 넘게 걸려서 온 하동읍에서. 내일부터 고생 많이 할 터이니 오늘부터 힘 빼지 마라며, 터미널에서부터 손수 차로 민박집까지 데리고 와주신 주인아저씨. 반찬이 너무 많이 남아 죄송한 마음까지 들게 진수성찬을 차려주신 주인 아주머니. 언제와도 푸근함으로 맞아주는 지리산만큼이나 푸근한 인심에 탁, 그만 마음을 놓았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하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 삼화실 게스트하우스를 지나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오르막길. 며칠을 고민고민하다 반대로 걷는 게 햇볕을 덜 받겠다 싶었는데, 이거 웬걸.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는데도 계속 얼굴로 비치는 해. 겨우 8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바람 한 점 없는 푹푹 찌는 날씨.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떼들까지. 겨우겨우 첫 고개, 느닷없이 나는 오줌냄새에 오줌을 지릴 만치 높아 오줌고개라 부르고 싶은 존티고개를 넘어가는데. 이거 만만치가 않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다.
 
 
 
 
 
 
 
 
 
 
 
 
 
 
 
 
고개를 넘어 만난 첫 마을, 상존티마을 정자에서 잠시 땀을 훔치고. 관점마을을 지나서는 작은 고개를 또 넘기도 했지만, 이제 해도 등 뒤로 넘어가고 길도 평탄한 하니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또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다, 싶은 화월마을 당산 벚나무 아래에선 달게 쪽잠도 자고. 때 맞춰 밥도 먹었지만.
 
두 번이나 바꿔가며 가져간 돗자리가 햇빛을 고스란히 반사시키는 바람에. 하동호 아래 축구장 나무그늘에서 두 시간 넘게 쉬는 동안 통구이가 되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길을 나섰는데. 제일 더운 때 하동댐을 기어오르는 셈이니. 둘레길 휴게소에 도착하니 더위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난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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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시간 넘게 그늘에서 쉬다 길을 나섰지만. 다시 만난 고개 초입에서 거의 무더위에 실신하다시피. 가니 되돌아가니 실랑이를 하다 겨우 출발. 지나는 길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대나무 숲과 계곡물이 번갈아 나오며 몸을 호사롭게 하지만. 연신 흐르는 땀 때문에 머리와 목에 물을 퍼부어도 역부족.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 궁항마을을 지나면서 지기 시작한 해가 오율마을에 이르니 어둑어둑, GPS는 전원이 나가고. 겨우겨우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몸은 천근만근, 민박집은 통 보이질 않는다. 분명 아까 전화했을 때 40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겨우 포장길에 내려서니 저만치서 자동차 불빛이 보이는데,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발이 후들후들하다. 다행히 든든한 정돌이가 앞장을 서고, 도착한 민박집에서 찬 물에 씻고 밥을 먹으니 쪼매 살 것 같다. 허나 아저씨 얘기론 오늘 밤 달이 지고나면 별빛이 쏟아질 거라는데.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고. 겨우 해 넘어 당도한 곳, 위태에서 혼절하듯 잠에 빠지고 만다. 내일 예약했던 마을 체험관이 빵꾸가 나 일정을 바꿔야 하는데도..... 아무래도 많이 준비한 거는 죄다 자잘한 것들이고, 정작 준비해야 할 것은 하지 못한 듯. 튼튼한 몸, 일주일 내리 산을 타야 한다는 각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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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13:59 2012/09/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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