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자라는 콩(6월 22일/무더움 21-29도)

 

이제 6월 말인데 벌써부터 폭염이다. 엊그제 비가 오고 나니 더 더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 급기야 어제 밤에는 기온이 20도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낮엔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다. 이 정도면 한여름 날씨가 아니고 뭔가.

 

한차례 비가 왔으니 작물들도 많이 자랐겠지만 풀들도 함께 쑥쑥 올라왔을 거라 생각되니 아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불볕더위에 감히 나갈 생각을 못하다 해가 한 숨 잦아들 때쯤 겨우 자전거에 오른다.

 

이런. 아니나 다를까. 토마토며, 호박, 오이는 비가 오기 전에 한 번씩 지주끈을 더 해줬는데도 벌써 웃자랐는데. 미처 다 풀을 잡아주지 못했던 콩밭에 풀들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 게 아닌가. 이건 콩보다도 더 자란 꼴이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이 풀들 잡느라 시간 다 보내게 생겼다.

 

자전거 펑크(6월 23일/무더움 16-30도)

 

며칠 전부터 이유 없이 자전거 앞바퀴에 바람이 슬슬 빠지더니 집을 나선지 500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타어이가 쭈글쭈글해졌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구멍이 난 듯하다. 결국 자전거점까지 끌고 가서 다시 30분을 기다린 후 펑크 난 곳을 때우고 나니 이런, 해가 뉘엿뉘엿. 서둘러 밭에 나가보지만 잠깐 콩 밭에 풀 뽑고 나니 벌써 어두워진다.

 

                               

    <풀과 자라는 콩(왼쪽)과 풀을 잡아준 콩(오른쪽), 잘 보면 풀과 자라는 콩들이 더 키가 크다. 이유가?>

 

치커리, 호박(6월 24일/무더움 16-30도)

 

작년과 달리 채소를 꽤 많이 심었더니 요즘 밥상이 풍성하다. 오이, 상추는 진즉에 수확을 했고 근대며, 아욱, 알타리, 열무 등이 곧 먹을 수 있을만치 자라고 있다.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한 대파만 제외하면 아직까지 채소 농사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첫 호박을 수확하고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치커리도 한 봉지 가득 담는다.

 

폭염과 장마(6월 25일/무더움 17-29도)

 

남부지방은 폭염주의보란다. 35도를 넘나든다. 밤까지 열대야가 이어지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중이다. 다행히 춘천은 그만큼은 아니다. 물론 낮에는 3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르지만 한참 때를 피하면 아직은 일할 만하다. 또 해가 뜨기 전 후, 그리고 해지기 전, 후엔 금세 선선한 바람도 불고 기온이 떨어져 일하기 좋다. 한마디로 요즘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는 특징이 있는 춘천 날씨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며칠간 계속 콩 밭 김매기에 매달리고 있는데도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돌아서면 이쪽에 풀이 자라고 이쪽 풀매고 나면 저쪽에 풀이 자라고. 그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내는 줄기 작물 손봐주랴, 고추끈 묶어주랴 없는 듯 있는 듯 일이 밀리기 때문이다.

 

예전엔 무더위가 있기 전에 장마전선이 많은 비를 뿌렸지만 요즘은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 오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무더위가 먼저 오고 장마가 나중에 오는 것 같다. 해서 요즘이 한참 김매기를 할 때인데 드문드문 많은 비도 오면서 기온은 갑자가 높아져 일하기가 어중간하다. 물론 한 낮 무더위만 피하면 아직은 일하기 좋은 날씨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밭 모양새를 보니 아침에 시간을 좀 내야겠다.

 

끝없는 김매기(6월 26일/무더움 17-29도)

 

옛말에 소농은 풀을 보고도 안 매고, 중농은 풀을 보아야 매고, 대농은 풀이 나기 전에 맨다고 한다. 또 거친 두벌이 꼼꼼 애벌보다 낫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 밭 모양새를 보면 어찌 그리 이 말들이 꼭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뭐하느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풀이 한참 자라기 시작해서야 겨우 호미를 잡은 데다 성격 탓인지 꼼꼼히 풀을 잡아가느라 속도도 느려 이쪽 풀을 매고 있으면 저쪽에서 풀이 자라고, 저쪽 풀을 매고 있으면 또 이쪽 풀이 자라고 있어 끝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남부지방 쪽에 머물러 있어 풀 잡을 시간이 아주 없진 않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주말에도 풀 뽑으러 나와야겠다. 대충 콩 밭은 정리가 되가는데 먼저 매줬던 감자, 옥수수, 고구마 심어놓은 곳에 풀이 무릎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거, 제초제 뿌려버려요” (6월 28일/무더움 20-31도)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 밤부터 장맛비가 온다고 하니 마음이 급하다. 고랑에 무릎까지 올라온 풀들을 다 잡지는 못할망정 대충 낫질이라도 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또 김매느라 신경을 못 썼던 고추들도 지주대며 지주끈이 튼튼한지 손봐줘야 하고, 여전히 풀 속에 파묻혀 있다시피 하고 있는 콩들도 호미질을 해줘야 한다.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러나 안개 때문에 그러나 5시가 넘어 해가 떠도 공기가 눅눅하다. 덕분에 호미질 30분, 낫질 30분 만에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었다. 목도 축일 겸 잠깐 손에서 호미를 놓고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목소리를 높인다.

 

“거, 제초제 뿌려버려요. 풀 어찌 다 잡으려고?”

 

올해엔 어찌 제초제 소리 안 듣나 했는데 간만에 일찍 나온 오늘이 딱 그날인가보다. 뭐라 대꾸할 기운도 없고 또 대꾸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작년에 경험했기에 그냥 씩 한 번 웃고 만다. 아저씨도 더 말을 않고 그냥 물끄러미 내 모양을 보고 가던 길을 가신다. 그런데 저 아저씨 어디서 봤더라?

 

8시가 조금 넘자 벌써 햇볕이 따갑다. 마음 같아서는 콩 밭에 난 풀을 조금 더 뽑아주고 싶지만 이미 속옷까지 다 젖은 터라 힘이 부친다. 몰라보게 부쩍 자란 고추에서 풋고추 한 봉지 가득, 매일 밥상에 오르고 있는 오이도 몇 개 따니 땀 흘린 보람을 느낀다. 아무래도 이 맛에 농사짓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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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5:31 2009/06/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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