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라면 좀체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곧잘 챙겨보는 몇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소소한 일상이나 혹은 곧 사라지게 될 어떤 모습들을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일상, 그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이날 방송도 그랬다. 낮에 잠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시립도서관에서 최종규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빌려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헌 책방 나들이를 하다 잠깐 텔레비전을 켰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화면에 잡힌 것이다. 반갑기 그지없다.

                                                                                                                                          

 

“고르다 보면 꼭 한권씩 눈에 띄는 책이 있거든요. 그럼 그걸 사면 소중하죠. 밥을 안 먹어도 그걸 사면 배부르고요.” ‘책갈피 사이 인생이 머무는 풍경-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다큐멘터리 3일’

 

낯선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이럴까. 돌이켜보면 꼭 일 년 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춘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낙성대며, 신림동이며, 신촌, 청계천, 서대문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나섰던 모습이 겹쳐진다. 거리상으로야 100k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래도 서울 출타는커녕 일부러라도 헌책방에 오기는 어려울 듯싶어 마음에 담아두려 부러 시간을 냈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낙성대 전철역, 그리고 [흙서점].

 

“<흙서점>은 책방이 썩 넓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밭(분야) 책을 많이 꽂아 둘 수는 없지만, 좁은 자리에 놓는다고 해도 그 밭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고 해요. 꽤나 많은 책이 들락거리기에 찾을 만한 책은 웬만큼 찾고 즐길 수 있답니다. 자리는 찾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책은 많으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p.246

 

책표지 안쪽을 보니 ‘2008.3.5 낙성대 흙서점’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꼬박 1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첫 느낌은 책의 제목 때문인지 여행 책인 양 싶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옮겼는데 적장 지은이는 낯설다. 질베르 시누에. 내 기억으론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고작 ‘Y2K’로밖에 남지 않은, 새천년, 새시기의 첫 해에 쓰였고, 우리나라엔 한 해 뒤인 2001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초판본이어서인지 책장도 조금은 누렇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에 읽었던 이가 남겨둔 밑줄을 빼면 새 책이나 다름없는데다 여느 책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손에 잘 잡힌다. 다만 파리 교외 깡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 않아 오래도록 책을 붙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자기들의 특허권 옹호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은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약값을 정해 놓고 있다. 약이 상업화되려면 시장이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주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빨리. 제약회사들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증권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게 할 시장들만 선정할 뿐이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92 '수요일-루시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네.

 

“리틀톤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미 출생 인종, 신체적 특징, 즉 눈과 머리의 색깔, 신장, 혈액형 등에 따라 난세포 또는 정액을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이 존재한다. 그밖에 제공자들의 건강 상태와 병치레 경력, 지능지수, 교육 수준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다. 벌써 그 ‘목록’들은 국립 수정 등기소의 목록처럼 인터넷 망에 올라 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145. 토요일-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하여.

 

종종 새것 보다 오래된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애주가에게 묵은 술이 깊은 맛을 주고, 1,000만 화소에서 맛볼 수 없는 기다림을 필름 카메라가 줄 때가 그렇다. 막 택배로 도착한 새 책이 내는 잉크냄새보다는 도서관에서 혹은 헌책방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윤에 쫓겨, 오로지 지배의 대상이 대어 죽어가는 자연, 산업국들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파괴,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오래된 질문들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만큼 쉽게, 깨끗이 잊힐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보거’는 머리가 세 개고 꼬리는 뱀의 꼬리를 닮은 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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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22:40 2009/05/25 22:40

콩밭 만들기(5월 18일/맑고 바람 많음 7-24도)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오일 일하고 이틀 놀게 됐다. 지난주엔 주말 내내 비가 와서 쉬었고, 엊그제는 토요일만 비가 왔는데 그냥 일요일까지 놀았다. 급한 건 대충 다 심어놨고 이제 콩과 깨만 심으면 되기에 늑장을 부리는 셈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한낮에도 그다지 햇볕이 따갑지 않아 일하기엔 좋은 날씨다. 드넓은 콩밭 만들기엔 딱이다. 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콩밭 만드느라 괭이질이다. 잠깐잠깐 싹이 나왔나 살펴보고 또 잠깐잠깐 잡초도 제거하지만 주된 일은 괭이질이다.

 

깨 심다(5월 19일/맑음 11-27도)

 

생각지도 않게 봄비가 자주 온다. 남들보다는 다소 늦게 이것저것 심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물뜨랴, 심으랴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다. 그나마 다행이다. 모래 또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깨와 콩을 심기로 했다. 해서 오늘은 아침엔 참깨를 오후엔 들깨를 심는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깨알만한(?) 참깨며, 들깨를 심었더니 손목도 저리고 무릎도 아프다.

 

콩 세알을 심는 농부(5월 20일/흐림 13-27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밭에 콩을 심었어요.

손자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한 알을 묻었어요.

할아버지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묻었어요.

손자는 이상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죠.

"할아버지, 왜 아깝게 한 구멍에 세알씩 넣으세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심으며 말했어요.

"얘야, 한 알은 땅에서 사는 벌레가 먹고

한 알은 하늘에 사는 새가 먹고

마지막 한 알은 싹이 나서 우리가 먹는 것이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둘 혹은 셋이었다면 한나절, 아니 두서너 시간이면 끝날 일을 혼자하려니 하루 종일이다. 한 사람이 구멍 파고 지나가면 뒤에 사람은 콩 넣고 덮고 하면 빠를 텐데 저만큼 구멍 파고 되돌아와 콩 넣고 덮고 하니 일이 더딜 수밖에. 또 지루하면 바꿔서 구멍 파고 콩 넣고 하면 되는데 이건 잠깐 그늘에 쉬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 힘도 들고 지루하기도 하고, 어제에 이어 연일 호미질이니 손목도 저리고, 고랑사이를 쭈그리고 다니니 무릎도 아프고, 비 소식만 아니면 쉬엄쉬엄할 터인데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해 넘어갈 때까지 일하고서야 겨우 준비해간 콩을 모두 심을 수 있다.

 

물 고인 밭(5월 22일/맑은 후 흐림 14-24도)

 

밭 한편에 물이 차서 빠지지 않고 있다. 큰일이다. 지난주 이틀에 걸쳐 많은 비가 왔을 땐 괜찮았는데 어찌된 게 어제 하루 내린 비로 물이 찬 거다. 뭐가 문제일까. 아침나절 느긋하게 나오면서 고추 지주대로 쓸 대나무끝단만 몇 개만 가져와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삽은커녕 괭이도 챙겨오지 않은 거다. 결국 멍하니 물 고인 밭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오늘 중으로 어떻게 하든 대충이라도 배수로를 정비해둬야 한다. 다행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해는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서둘러 삽이며 괭이를 챙겨들고 밭으로 나가 물 빠질 길을 만드는데 이거야말로 임시방편이다. 아무래도 내일 비 그치고 나면 다시 물 고인 곳을 보아가며 배수로를 파야겠다.

 

마실돌이(5월 23일-24일/흐림 15-19도, 맑음 15-26도)

 

전업으로 농사만 짓는 이들에게 욕 들어 먹기 딱 맞는 소리겠지만 처음부터 할 수 있는 한 주중에만 일하고 주말에는 쉬기로 했다. 겨울 내 별 일 없어 놀기도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짓는 때에도 일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 쉬이 지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기도 하고 짧지만 여행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어제와 오늘은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 잠깐씩 마실돌이겸 대나무끝단 여남은 개씩만 밖아 두고 왔다. 또 틈틈이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 밭 제초작업만 조금씩 했다.

 

 

  <며칠 전부터 싹이 나기 시작한 채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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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16:01 2009/05/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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