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전부터 사람 많은 휴가철엔 어딜 다니지 않았기도 했지만. 작년부턴 한여름을 어찌 보내야 하는 게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 된 후론. 올 여름엔 또 어찌 보내야하나 고민고만하다. 가까운 모루도서관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제쳐놓고. 명색이 국립대학교인 강릉원주대 도서관을 찾아낸 후, 바로 여기다 싶어. 더위 피하러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때마다 해먹어야 하는 밥도 싼 값에 해결하고, 에어컨 설정온도가 27-28도이긴 해도 집보단 훨씬 시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공간에 책 속에 파묻혀 있으니, 이거야 말로 제대로 된 피서가 아닐까요.
 
그날도 아침부터 내리쬐는 해를 피해가며 도서관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도 그렀고 그 전날도 그랬을 게 틀림없는데. 눈에 보이질 않던 송충이가 그날따라 발밑으로, 조금 과장해서 발 옮길 틈도 없이 빽빽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보니 헉, 꽤나 많은 송충이들이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에 짓이겨 죽어 있는 게 아닙니까. 하자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 마음 참 간사한 게, 나무 그늘이라고 벗었던 모자를 얼른 집어 쓴 거 아닙니까. 아무튼 저 만치 버스는 오는데 발을 어디로 떼야 할 지 모르겠고, 가만 보니 바람에 떨어지는 송충이들도 있는데. 혹여 이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연신 모자와 옷을 털어대고.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요.
 
매미나방 애벌레는 등에 노란 줄무늬가 특징인 우리 토종 벌레랍니다. 생긴 게 색깔만 다르지 송충이와 비슷한데. 요놈들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출몰해 사람들이 놀래 신고를 많이 하는데요, 올 해도 여기저기서 나타나긴 했나봅니다. 하지만 유충 때를 지나 성충이 되면 크게 나무에 피해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유충이라도 자연생태계에 특별히 유해하지 않다고 하는데. 일단 출몰만 했다하면 어떻게든 눈에 안 보이게 해달라는 말들이 많아서인지 서둘러 방역에 나서곤 합니다. 단지 징그럽다는 거 말곤 딱히 죽여야 할 이유도 없고. 죽은 시체들 때문에 바위나 의자에 앉지를 못한다는 것 빼곤 치워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날 본 벌레가 송충이인지 매미나방 애벌레들처럼 다른 애벌레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겉모양만 봐선 다르다고 하는 말만 듣는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도로 주변에 소나무 대신 플라타너스가 죽 심어져 있는 걸로 봐선 송충이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송충이도 다른 낙엽송을 먹는다고 하니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어쨌든 방제 덕택인지 요즘엔 보기 힘들었던 송충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니 놀라기도 했는데. 거의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란 게 고작. 여긴 약 치지 않나 보군, 이었으니. 그게 송충이인지 애벌레인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저 징그러운 해충일 뿐인 것이었겠지요.
 
언제부턴가 우린 벌레 한 마리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년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방역차를 불러내고. 집집마다 뿌리는 것도 모자라 빛으로 유인해 태워 죽이는 것까지 설치하지요.  단지 생긴 게 징그럽다는 이유로. 또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대고 불태우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애벌레와 송충이는 어김없이 내년에도 다시 나탈 겁니다. 모기와 파리, 쥐, 바퀴벌레가 결코 박멸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다만 독성은 강해지고, 내성은 커질 뿐입니다. 결국 새들마저 외면하게 될 애벌레와 송충이들은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만들 것이고. 자연생태계는 그 균형을 잃게 될 겁니다. 벌레와 함께 그 많던 새들도 보이질 않잖아요.
 
비가 오고 나면 길에 온통 지렁이가 꿈틀댑니다. 날이 더워진다 싶으면 송충이가 출몰하구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모기가 극성이고 가로등 밑으로 나방들이 몰려듭니다. 하지만 딴 데서는 보기 힘든 참새 떼가 날아드는 모습도 볼 수 있구요.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아침, 저녁으로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도 함께 들을 수도 있답니다. 맞습니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여긴 먹을 게 참 많거든요. 그래서요.
 
내년 여름, 송충이가 우수수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도서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재미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됩니다. 까짓 송충이가 대수겠습니까.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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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14:11 2013/09/06 14:11

  <저 문을 나서면 곧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아침나절에 첫물고추를 따왔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얘기에 서둘러 나갔는데도 밭에 도착한 지 삼십분 남짓 됐을까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고작 한 이랑밖에 일을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수확한 고추가 무려 7.3kg이나 된답니다. 첫물고추가 이 정도니 올 고추 농사, 잘 된 듯싶네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데, 따가운 햇볕과 적당한 바람, 아무래도 하늘이 많이 도와줘야겠지요.

 

디지털시대입니다. 버스를 타도, 길을 걷다가도 손 안에 자그마한 단말기로 영화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니 말입니다. 하기야 지금은 뭐, 이런 모습이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은 그래도 가끔은 이 작은 기계로 책까지 읽는 걸 보고 있자면 놀라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는 하지만 무릇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써는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이었던가요. 60돌을 맞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가장 큰 화두가 전자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성장세였다고 하니 조만간 열에 넷, 다섯은 종이책 대신 디지털기기를 들여다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엔 밭보단 도서관에 가려했었습니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저녁을 먹고 난 후나 졸음이 몰려오는 주말 오후쯤엔 으레 산책삼아 길을 나서 도서관에 들르곤 했었는데 지난주엔 무에 그리 바쁜 일이 많았는지 그러지를 못했거든요. 헌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밭엘 먼저 들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긴 했지만 아직은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고 빗줄기도 굵지 않아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섭니다.

 

     

  <문을 지나면 갈림길인데요, 왼쪽은 제철 야생화가 오른쪽은 자작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자책은 대부분 ‘플래시 애니메이션’, ‘XML', 'PDF', 'iBOOK' 파일 형태로 제공된다고 하지요. 종이책에 비해 40-50% 수준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느 때고 다운 받아 편하게 읽을 수가 있으니 사실 매력덩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서 더욱 많은 정보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저자와 독자들 간에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독서환경과 출판문화에 평등과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어찌 보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방식의 읽기는 당연한 결과인 듯싶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책을 가까이 하고 비록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서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야 되려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이 읽기의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는 있을까요.   

 

                                                                                                                              <한여름에도 시원한 오솔길입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면 답답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제철 한껏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며, 개미초가 반겨주는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 가는 길은 굳이 책을 보러 가지 않더라도 그저 산책삼아 걷기에도 제격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선 발걸음은 늘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으로 향하고는 하는데요. 아마도 그곳에서 풍겨오는, 오래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각사각, 고요함 속에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또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거기에다 발돋움을 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에서 꺼내든 오래된 책 표지에 내려앉은 먼지들이며, 누군가 옮겨 적으려 끼어놓은 작은 종잇조각들을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이 생겨나곤 한답니다. 또 때론 따뜻한 햇볕을 한가득 받으며 창가에 책을 베개 삼아 쪽잠을 자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와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눈과 책을 번갈아 마주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이는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읽기가 갖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 싶습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습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 김재호가 쓴 멕시코 여행기 <멕시코 일요일 2시>, 한길사에서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 이렇게 세 권을 말입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10년도 전에 읽었기는 한데 하도 오래돼놔서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 다시 읽어보려 꺼내들었구요. 1년에 한 권씩 모두 15년에 걸쳐 15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1년에 한 권씩만이라도 읽어볼까 해서 <로마인 이야기 1>을 빌렸답니다. 마지막으로 김재호씨의 책 <멕시코 일요일 2시>는 화장실에서 쉬엄쉬엄 읽기에 딱 좋을 것 같아 보였구요. 아무튼 그렇게 세 권의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이런. 아까 집을 나왔을 때 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곳에 따라 집중호우도 있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올려나 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지난 번 장맛비에 고추 몇 주를 뽑아내기도 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간만에 비오는 오솔길도 걸었고 재밌는 책도 세 권이나 빌렸으니. 이만하면 도서관 가는 길, 좋지 아니한가요.

 

<이제 도서관에 다와갑니다>

 

<누군가 급히 들어갔나 봅니다. 도서관 앞 의자에 종이컵만이 홀로 비를 다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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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19:32 2009/08/12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