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0 2012/11/19

1,000

from 말을 걸다 2012/11/19 13:18
1.
이제 추수도 얼추 다 끝나가겠군요. 올 핸 농사를 짓지 못했지만, 예년만 같았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터인데. 봄 철 농사도 고사리 손이 필요할 만큼 분주하겠지만. 짧은 해가 더 아쉬울 가을 역시,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겝니다. 이제 곧 김장 무와 배추를 거둬야겠고. 성큼 다가온 추위에 긴 겨울 준비를 해야 하는데다. 요즘은 1,000원만 있으면 손쉽게 종자회사나 농협 매장에서 사다 쓸 수 있긴 하지만. 내년 봄에 뿌릴 씨앗들도 튼실하고 빛깔 좋은 것들로 골라놔야 하니까요. 콩이며 팥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텃밭에서 길러먹는 쌈채소들까지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토종 종자가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 이런 풍경을 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도시 속 텃밭은 물론이고 환금작물로는 이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 고추만 해도, 매년 새로 모종을 사다 심는 게 당연하게 됐고. 이런 저런 돈이 되는 작물이든 그저 우리 식구 먹는 것이 됐든, 종묘상 가서 광택 나는 코팅된 씨앗 사다 심으니까요. 농촌에 젊은 사람 없고 농사지을 사람 없어 그리 됐다고들 얘기 하는 게 일견 맞을지 모르겠지만. 또 어딜 가도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맛을 내는 것에 손들이 가는 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에 토 달기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2.
5년 전이네요. 살던 곳, 일하는 던 곳을 떠나기로 했을 때 계획이란 걸 세웠지요. 4년 공부할 시간 동안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놓고 계획을 세웠으니 딱히 말한다면 계획이랄 것도 없고 돈 나갈 곳만 따진 것입니다. 들어오는 돈이야 퇴직금 받은 거 은행에 넣어놓고 받는 이자가 전부니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전세금 빼고 모아 놓은 돈 조금에 실업급여 6개월분과 퇴직금으로 얼추 계산해보니 4년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겨울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춘천으로 이사를 했겠지요. 하지만 계획이란 게, 그것도 생활비 짜 놓은 게 맘대로 되지 않는 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기도 하고. 씀씀이를 줄인다, 줄인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지출도 있고. 채 1년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계획을 따져보니. 아뿔싸, 이렇게 가다간 한 1,000만원은 모자라겠다 싶더군요. 그러니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괜히 서둘렀나 싶은 생각도 들고. 괜한 짜증에 티격태격 싸우기도 많이 싸웠던 것 같으니. 있는 사람들에겐 돈 1,000만원이 무에 그리 큰돈이냐 하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음 해부터 학교에서, 집에서 장학금도 받고 집도 조금 더 줄여가며 돈을 아끼지만 않았다면 어찌됐을까. 무사히 춘천을 떠났으니 망정이니. 1,000만원 때문에 어렵게 들어선 길을 다시 되돌릴 뻔 했으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3.
<광해>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지요. 올해만 벌써 도둑들에 이어 2번째니, 요즘은 1,000만 정도는 돼야 흥행한 영화라고 하는가, 봅니다. 독립영화로는 최단기간 3만 돌파니,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니 하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 겨우 7만을 넘겼다고 하는데. 하긴 일 년에 고작해야 열 손가락도 남을 만치 극장엘 가는, 올 해엔 독립영화 전용극장만 서너 번 간 게 전부인 사람도 떡하니 가서 봤으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모 영화감독이 “한 두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을 독점하고 있다. 동시대에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들. 여성 시나리오 작가 겸 단편영화 감독이 외롭게 자취방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일어나고, 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다고 한들. 우려는 잠깐이고 추세는 계속 될 듯싶습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편식 정도가 아니라 독식이라고 해도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뭐가 됐든, 한 번 우~ 하고 몰려가면 이도저도 안 보고 휩쓸려 가는 게 유행이라면. 똑같은 등산복 차림으로 줄지어 오르다 때 아닌 병목현상까지 일어나는 것까지. 유행도 참 별나고 가지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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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9 13:18 2012/11/19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