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귀농(歸農)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새로운 돈 벌이를 위해 하는 것이든.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한 것이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지자체가 귀농 지원 사업들을 합니다. 빈집 찾아주기, 정착 지원금 지원, 농지 구입 지원 등등. 어떤 곳에서는 꽤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상반기에만 150세대 300여 가구를 정착시킨 곳도 있으니까요. WTO와 FTA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인데요. 왜 지금, 귀농일까요? 혹 텔레비전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억대 농부(農副)들 때문일까요?. 아님 농사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일까요?
 
농업전문가이면서 농사꾼인 글쓴이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소농(小農)이야말로 인류 생존의 기초인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본래의 자연인 ‘무위자연’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이 소농들이야말로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는 것이지요.  끊임없이 땅을 갈고 유기물을 넣으며 표토를 지키는, 비록 그것들이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에 뿌리를 내린 이후 가장 많은 풍요를 가져다 줬다고 칭송받는 근대화는 어떻습니까요. 맞습니다. ‘대우주의 의지’를 묵묵히 대행해왔던, 지구를 지켜왔고 지켜나갈 소농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혹하게 말이지요. 규모 확대와 단위 면적당 수확량 증가라는 ‘자본주의적 발전’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소농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환경일 터인데 말입니다. 규모 확대와 단위 면적당 수확량 증가라는 ‘자본주의적 발전’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요하는 상황들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부러운 일이지요. 물론 그것이 예전 소농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겸업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아니요. 귀농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방법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 관심 있게 봐야합니다. 지금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인 만큼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금욕적 삶을 강요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부부 중 한 사람은 고정적인 수입이 있거나 자급적 소농이더라도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겸업농가라면 오래도록 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펴낸 녹색평론사 대표는 편집자 후기에 ‘문명사회의 지속적인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로 소농의 존재를 되살리느냐 마느냐를 얘기합니다. ‘문명사회’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하나 이 말을 지구와 인간으로 바꾼다면 글을 쓴 쓰노 유킨도가 가진 고민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농을 ‘환경위기’나 ‘식량문제’로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기초인 땅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보는 것 말입니다. 더불어 편집자는 저자가 소개했던 일화 속에서 소농과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소농은 참다운 의미에서 민주주의 초석이 된다는, 흔히 간과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지요. 사실 정확하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았거든요. 하지만 대략적인 뜻은 책을 다 읽은 사람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굳이 더 설명하지 않더라도 좋을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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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20:49 2013/07/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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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말을 걸다 2012/11/19 13:18
1.
이제 추수도 얼추 다 끝나가겠군요. 올 핸 농사를 짓지 못했지만, 예년만 같았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터인데. 봄 철 농사도 고사리 손이 필요할 만큼 분주하겠지만. 짧은 해가 더 아쉬울 가을 역시,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겝니다. 이제 곧 김장 무와 배추를 거둬야겠고. 성큼 다가온 추위에 긴 겨울 준비를 해야 하는데다. 요즘은 1,000원만 있으면 손쉽게 종자회사나 농협 매장에서 사다 쓸 수 있긴 하지만. 내년 봄에 뿌릴 씨앗들도 튼실하고 빛깔 좋은 것들로 골라놔야 하니까요. 콩이며 팥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텃밭에서 길러먹는 쌈채소들까지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토종 종자가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 이런 풍경을 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도시 속 텃밭은 물론이고 환금작물로는 이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 고추만 해도, 매년 새로 모종을 사다 심는 게 당연하게 됐고. 이런 저런 돈이 되는 작물이든 그저 우리 식구 먹는 것이 됐든, 종묘상 가서 광택 나는 코팅된 씨앗 사다 심으니까요. 농촌에 젊은 사람 없고 농사지을 사람 없어 그리 됐다고들 얘기 하는 게 일견 맞을지 모르겠지만. 또 어딜 가도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맛을 내는 것에 손들이 가는 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에 토 달기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2.
5년 전이네요. 살던 곳, 일하는 던 곳을 떠나기로 했을 때 계획이란 걸 세웠지요. 4년 공부할 시간 동안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놓고 계획을 세웠으니 딱히 말한다면 계획이랄 것도 없고 돈 나갈 곳만 따진 것입니다. 들어오는 돈이야 퇴직금 받은 거 은행에 넣어놓고 받는 이자가 전부니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전세금 빼고 모아 놓은 돈 조금에 실업급여 6개월분과 퇴직금으로 얼추 계산해보니 4년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겨울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춘천으로 이사를 했겠지요. 하지만 계획이란 게, 그것도 생활비 짜 놓은 게 맘대로 되지 않는 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기도 하고. 씀씀이를 줄인다, 줄인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지출도 있고. 채 1년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계획을 따져보니. 아뿔싸, 이렇게 가다간 한 1,000만원은 모자라겠다 싶더군요. 그러니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괜히 서둘렀나 싶은 생각도 들고. 괜한 짜증에 티격태격 싸우기도 많이 싸웠던 것 같으니. 있는 사람들에겐 돈 1,000만원이 무에 그리 큰돈이냐 하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음 해부터 학교에서, 집에서 장학금도 받고 집도 조금 더 줄여가며 돈을 아끼지만 않았다면 어찌됐을까. 무사히 춘천을 떠났으니 망정이니. 1,000만원 때문에 어렵게 들어선 길을 다시 되돌릴 뻔 했으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3.
<광해>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지요. 올해만 벌써 도둑들에 이어 2번째니, 요즘은 1,000만 정도는 돼야 흥행한 영화라고 하는가, 봅니다. 독립영화로는 최단기간 3만 돌파니,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니 하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 겨우 7만을 넘겼다고 하는데. 하긴 일 년에 고작해야 열 손가락도 남을 만치 극장엘 가는, 올 해엔 독립영화 전용극장만 서너 번 간 게 전부인 사람도 떡하니 가서 봤으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모 영화감독이 “한 두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을 독점하고 있다. 동시대에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들. 여성 시나리오 작가 겸 단편영화 감독이 외롭게 자취방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일어나고, 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다고 한들. 우려는 잠깐이고 추세는 계속 될 듯싶습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편식 정도가 아니라 독식이라고 해도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뭐가 됐든, 한 번 우~ 하고 몰려가면 이도저도 안 보고 휩쓸려 가는 게 유행이라면. 똑같은 등산복 차림으로 줄지어 오르다 때 아닌 병목현상까지 일어나는 것까지. 유행도 참 별나고 가지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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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9 13:18 2012/11/19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