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③ 나눠서 걷는 사천둑방길: 여우비 맞으며 사천에서 해살이마을까지(2012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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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사천(沙川)은 모래가 많은 냇물이 흐른다해 모래내라고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천진리 해변가 모래만 해도 예전만 못하고. 사천천(沙川川)가도 여기저기 아스팔트로 포장된 반듯한 둑방과 보(洑)들로 그 이름이 무색하다. 지금이야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간판들로 한과로 유명한 마을이구나 싶지만, 그것도.
 
‘호당 농가소득이 인근 전업농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다 부채마저 없는, 고소득 마을’로 바뀐 터라. 또 강릉 시내와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길을 내고 호사스런 집들을 지어 대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덩치가 산만하고 소리 하나로도 기를 팍 꺾게 만드는 개들이 심심찮게 많다. 해서 조용히 걷기엔 그닥 좋지만은 않다.     
 
또 둑방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구불구불 모래톱을 만들며 흘러가는 물 대신, 철마다 흐드러진 꽃을 피워내는 보드라운 흙 대신. 반듯하게 흐르는 강물에, 아스팔트로 발라진 둑방이라 걷는 맛은 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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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쪽으로는 깨끗한 바다가, 뒤로는 준엄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마을 뒷산, 사천천 양쪽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사이로 난 농로와 둑방길을 번갈아 걸으며,  
 
하평마을은 강릉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해안 농촌마을이다. 강릉 곳곳에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듯. 이곳 역시 허 남매의 외가인 애일당(愛日堂) 김참판이 살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이 마을에서는 음력 2월 초엿새 좀생이날* 저녁이면 마을 주민들이 다리에 모여 횃불을 들고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빌며 다리밟기를 했다. 이런 횃불놀이, 불놀이, 다리밟기는 다른 지방과 다를 바가 없긴 한 것이지만 좀생이날에 행하는 것은 이 마을이 유일하다.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으로 종교적이면서도 놀이적인 것들이 어우러진 하평답교놀이는 횃불, 솔문 같은 것들을 태워 황덕불을 해놓고는 밤을 새워가며 축제를 즐긴다.
 
는, <사천둑방길>이 끝나는 곳. 아니 거꾸로 걸으면 시작하는 곳에서 만나는, 하평마을과 답교놀이 얘기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사기막리 마을은 200년 전 사기 막사발을 만들던 움막이 많아 ‘사그막’ 또는 ‘사기막’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지금도 가마터와 사기그릇 잔흔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빚은 사기 막사발은 ‘옛날 서민들의 마음을 담은 밥그릇이 되기도 했고, 애환을 달래줄 술잔이 되기도 했으며, 그윽한 향기를 담은 찻잔이 되기도 했다.’
 
해살이라는 이름은 요즘은 희귀식물이 된 창포가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볕이 들기만 하면 잘 자란다 하여 "해살이풀" 이라고도 하고 여러 증상에 도움을 주는 약초로 아픈 것의 해답이 된다 하여 "해답이풀" 이라 불리기도 한 것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는, 명주군왕릉에서 산을 넘어 처음 만나는. 반대로 걸으면서 그것도 나눠 걷느라 오늘은 여기까지다, 멈춰 선. 해살이마을과 ‘사기막’ 얘기를 찾아간다면. 아무리 천천히 둘러보며 걷는다 해도 세 시간이면 넉넉할 만큼 짧은 길이라도, 걷는 재미만큼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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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처음 길을 나설 땐 등 뒤가 따가우리만치 해가 쨍쨍 떴는데. 농로에서, 둑방에서 두어 차례 여우비를 맞으며 걷다가. 허기질 때쯤 나타난 막국수집에서 목도 축이고 배도 채우고.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해도 뉘엿뉘엿.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담아둔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많이 남으니. 내처 명주군왕릉까지 걸어 볼까, 싶기도 하다.  

 
* 좀생이날은 음력으로 이월 초엿새 날이다. 이날 서쪽 하늘에 모여 있는 작은 별들을 보고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는데, 이 별들을 좀생이라 부르기 때문에 좀생이날이라고 한다.
 
* 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4구간 사천둑방길을 또 거꾸로 걸었다. 사천 해변에서 해살이마을까지 약 12km.
 
* 가고, 오고
지난 번 여행과 마찬가지.
 
* 잠잘 곳
사천 해변에는 잠잘 곳이 많으나 해살이마을, 명주군왕릉까진 식당만 몇 개 있을 뿐이고 숙박할 곳이 없다. 다만 걸어서 한 기간 거리에 저렴한 가격에 아침까지 먹을 수 있는 바우길 게스트 하우스가 있긴 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서고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하고, 또 시간보다 미리미리 정류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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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2 17:59 2012/12/22 17:59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② 주문진 가는 길? 사천항 가는 길!(2012년 5월 27일)

 

태백을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날씨도 몸도. 기차가 동해를 지나 바닷가와 나란히 달릴 때쯤. 몸살기가 도는 가 싶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느니 괜찮겠거니 싶었는데. 정동진을 지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더구나 덩달아 몸도 으실으실. 따뜻한 걸 먹으면 좀 나아질까, 없는 걸 겨우 찾아 마셔 봐도 그 때뿐. 다 허사다. 이까지 아프니. 아무리 오늘 걸을 길이 길지 않고, 해변가 마을들을 걷는다고 해도. 날씨에 몸까지 이러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강릉역 앞 안내소에서 일하시는 분 얘기론 소나기고 양도 많지 않을 거라니. 일단은 주문진으로 향한다.

 
아들바위는 지난번에도 구경을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돌에 도착하니 비는 오질 않지만. 걸어야 할 거리와 시간에 딱 맞춰 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감기 기운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늘 그렀듯 언젠가 다시 오겠지, 라는 말을 해보지만. 그때뿐인 걸 알아서인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되돌아서기엔 몸이 못 따라간다. 정말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로 몸이라도 추슬러야한다. 그래야 오늘 걸을 길, 바우길 두 번째 걷기,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사천항 가는 길을 걸을 수 있기에.
 
바우길 12구간은 길 이름이 보여주듯 주문진이 도착점이다. 하지만 고성에서부터 7번 국도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는 중이라. 오늘은 주문진 가는 길이 아니라 사천항 가는 길이 됐다. 원래부터 길을 만들 때부터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염두에 둔 덕에 이정표도 잘 돼 있으니 걱정은 없고. 또 연휴에 몰려든 사람들로 복작복작한 주문진보다야 여유로운 사천항이 끝내는 곳으로는 더 적당할 것 같으니. 꼭 정해진 방향으로만 걷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겠다. 더구나 이어지는 4구간도 또 반대로 걸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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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우길 12구간은 사천항에서 주문진으로 간다해서 주문진 가는길이란 이름이 있다>

 

뜨끈한 매운탕에 밥을 먹고 나니 한결 몸이 좋아진다. 덩달아 먹구름 사이로 통 보이질 않던 해도 고개를 내미니, 이제 슬슬 걸어볼까. 헌데 이런, 조금 걷다 보니 이번엔 오뉴월 해치곤 따가운 해가 등 뒤에서 비춘다. 다행히 짐을 가볍게 싸 가져왔고. 또 아직은 해가 짧은 탓에 금세 햇살이 잦아들겠거니 싶지만. 그래도 따가운 해를 피해 커피도 마시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놀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신리하교를 건너 접어든 동네 뒷산 길. 푹신푹신한 솔잎이 잔뜩 깔려 있고. 지나는 작은 마을이며 숨바꼭질 하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바다를 보니.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수월하다. 아픈 몸을 참고 온 거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도 일단 가보자, 며 온 것이. 참 잘했다, 싶고. 아무래도 이 바우길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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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하면 ‘감자바우’가 떠오른다. 둥글둥글하면서 제멋대로인 모양.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는 감자와 바우(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르킨다)처럼. 개성이 서로 뚜렷하다는 걸 표현하는 것인지, 그저 감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편하게 붙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벌써 5년씩이나, 아직은 낯선 강원도에, 춘천과 태백에서 살고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말이다. 강원도 하면 ‘감자바우’요, ‘감자바우’하면 강원도라는 말은 따질 말이 아닌 듯하다. 그만큼 친근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말이니.

 
바우길은 이런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많이 닮았다. 우선 동네 골목길을 돌아 뒷산으로 올라 돌아가는 길이 많다. 또 푸근한 인심과 웃음을 볼 수 있는 집들을 끼고 걸으니 친근하지 않을 수 없다. 숲길에 들어서도 고개만 돌리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닷길을 걸으면서도 늘 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이만큼이나 강원도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친근하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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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간부터 죽 이어서 걸어도 좋고 마음 내키는 대로 숲길과 계곡길을 걷다, 심심할 쯤 하루 종일 바닷길을 걸을 수도 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산꼭대기 등줄기만을 밟고 걷는 길, 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길, 바다에서 바다를 따라 걷는 길, 바다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산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를 밟듯 걷는 길, 바다와 숲길을 번갈아 걷는 길’이 바우길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람과 함께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고 파란 바다가 보일락 말락, 한 고개 넘으면 보였다 또 한 고개를 넘으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숲길에서 내려오니 이번엔 탁 트인 바닷길인데, 이건 또 그냥 바닷길이 아니다. 작은 어촌마을 길을, 해송 숲길을 걸으니 마냥 바다만 보고 걷는 건 아닌 셈. 길가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 차들이 있지만 거기서 한 발 빗겨나니 이런 한적 길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티격태격 이 말이 맞니 저 말이 맞니 하며 걸으니. 여기가 서해바다인가 싶게 빨간 노을이 등 뒤에 있다. 멀리 지나온 주문진이, 오르락내리락 동네 뒷산이 보일 때 쯤.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주문진에서 사천항으로 가는 길, 끝이 보인다. 내처 5구간 강릉 바다 호수길을 따라 경포대까지도 걷고 싶은 마음도 들고. 다음 걷기를 위해 4구간 사천 둑방길을 따라 7번 국도가 보이는 길까지 걷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때맞춰 강릉까지 가는 버스도 있고. 아슬아슬하겠지만 태백 가는 버스 타기 전, 저녁 먹을 시간도 있을 법 하니. 오늘 하루 참 잘 걸었다, 다독이고 버스에 오르니. 금세 해가 지고 가로등 불이 환하게 켜진다. 
 
* 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을 반대로 걸었다. 약 12km.
 
* 가고, 오고
지난 번 여행과 마찬가지.
 
* 잠잘 곳
당분간은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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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3:29 2012/10/30 13:29

평창이 결국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을 했네요. 미국도 못해본 ‘스포츠 그랜드슬램’이라느니, ‘득표기록도 새지평’이라느니, 난리도 아닙니다. 뭐, 두 번이나 실패한 끝에 이룬 것이니 호들갑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겠다, 싶었지만.

 
4대강 삽질 이어 치적 자랑할 거리 하나 더 만들러 더반까지 날아간 2MB. 새구두를 사 놓고도 끝내 그 구두를 신을 수 없었던 한 노동자와 반드시 살아서 그 노동자의 영혼을 안고 내려오겠다는 또 한 노동자를 크레인에 꽁꽁 묶어놓은 재벌그룹 회장. 각종 편법과 탈법으로 상상도 못할 부를 쌓으면서도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되레 ‘사면’이라는 이름으로 법 위에 올라 서 있는 재벌그룹 회장. 늙은 노동자에게 수십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제기해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던 재벌그룹 회장. 희희낙락((喜喜樂樂), 신문이며 텔레비전을 장악한 꼴들을 모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밉니다.
 
이번 참에 낙후된 강원도가 발전할 기회를 맞았다느니, 외국인 투자 유치에 관광 수입이 얼마가 될 거라느니. 몇 조 원에서 수십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떠벌리며 경제유발 효과를 얘기하는데요. G20 정상회의가 420조원이었다고 떠벌리는 판이니 수십조 원은 그냥 막 나오나 봅니다만.
 
평창과 경쟁했던 프랑스 안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반대위원회까지 만들어 격렬히 반대했던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랬던 걸까요. 하기야 4년 전 감자밭이었던 곳을 밀어내고 이자만 하루에도 몇 억 원에 이르는 적자 덩어리를 만들어 놓는 짓거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곳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터일 것입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낙후된 곳이 발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찬성하고. 반대도 아니, 그저 ‘못마땅’만 해도 차관이라는 사람까지 나서서 ‘우리 국민 아니다’라며 집단 따돌림을 하는데 어데 귀에나 들어오겠습니까.
 
유치 이전서부터 들썩였던 부동산 얘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또 주식시장도 호혜주가 어디니, 하며 급 관심이구요. 겪어봐서 알겠지만 단물은 이미 다 빠졌을 터인데 막차라도 타보라고 호객질인 셈이지요. 아니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밤새 기다리다 끝내 환호작약한 사람들이 있기에 더 그럴 수 있겠습니다.
 
고속전철에 복선전철, 고속도로가 2개. 산림유전자보호구역에도 스키장을. 강원도 재정상황은 제쳐놓고 국가채무만 봐도 2020년엔 1천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대체 무슨 돈이 있어 이 생난리일까요. 뭐, 온난화를 부추기는 이런 짓거리들 때문에 다행히 2018년에도 눈은 펑펑 오겠습니다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보고 느낄 수 있겠다 싶어 강원도로 가자, 했던 4년 전 생각이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또 노동탄압 올림픽이나 인권탄압 올림픽, 뭐 이런 게 있다면 5관왕, 8관왕 정도는 우습게 차지할 위인들이 잔뜩 인상 구기는 걸 보고 싶었던 마음이. 밤늦은 시간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보게 한 이유이건만,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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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11:59 2011/07/13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