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역시나 밭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좀 더 좋은 밭을 얻어 보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으로 작년에 지었던 밭을 놓쳤던 게 일의 시작이었고 안 되겠다 싶어 생활정보지까지 뒤적거리다 장학리로, 사우동 솔밭으로, 정족리로, 송암동으로 연일 허탕을 치더니 종국엔 농지원부가 뭔지도 모르는 지금 밭주인을 겨우 겨우 만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보단 작물들이 꽤나 잘 자라는 것 같아 구할 때 가졌던 마음 졸임을 다 잊고 있으니 썩 나쁜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집은 춘천 서쪽 끝트머리에, 밭은 동쪽 끝트머리에 있답니다. 어찌..... 밭이 넓나요?>

 

작년에 농사를 지었던 밭은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거라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작은 밭을 구했거든요. 그때도 생활정보지에 내 놓은 광고를 보고 구했습니다. 연고라고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인데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시내에 아파트를 얻었기에 밭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봄농사 시작하기엔 좀 늦긴 했지만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밭을 구했으니 정말 다행이었죠.

 

<집을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순환도로에는 지금 경춘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랍니다> 

 

연일 장맛비가 계속 내리니 밭에 나가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습니다. 애초 한 낮 더위는 피해 새벽녘과 해질녘을 전후해 서너 시간씩만 일을 하기로 했던지라 지금처럼 비가 계속되면 다른 이들보다 일이 더 쌓이게 되지요. 하지만 고추 몇 주가 쓰러진 거 빼곤 큰 피해도 없고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해 무릎까지 풀이 난 곳만 빼면 크게 손 볼 곳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가끔씩 맑은 하늘이 보이거나 잔뜩 흐려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바로 자전거에 오릅니다. 틈날 때마다 김매기도 해주고, 지주대도 다시 묶어주고, 열무며, 알타리를 심을 곳도 손봐야 하니까요.

 

<공지교에서 대룡산을 바라본 보습입니다. 다리 아래로는 의암호로 흘러들어가는 공지천이 흐릅니다>

 

밭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있듯이 집 근처에 밭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은 거죠. 해서 밭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고 시간도 꽤나 걸린답니다. 차가 있다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을텐데, 자전거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찻길을 따라 때론 긴 오르막길도 넘어 가려니 그런 것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남들은 시간 내고 돈 내서 운동한다던데 뭐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래도 가끔 힘이 부칠 때면 집 뒤 조그만 산 하나만 넘으면 금방이었던 작년 밭이 떠오르긴 합니다.

 

<작년에 텃밭 농사를 지었던 곳은 이런 멋진 호숫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춘천하면, 중도와 아침 안개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정작 춘천으로 이사한 이후로도 여태 호수를 건너 둘러보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와도 거리가 꽤 멀고 교통편도 그리 좋지 않은데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왠지 모르게 처음 본 순간부터 꽤나 끌렸습니다. 베란다에서나마 뒷산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조그만 오솔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도서관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지천에서부터 의암호를 끼고 돌아 중도에를 건널 수 있는 배터까지 연결된 산책길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초기 도시계획 단계에서 각 교차로에 1호, 2호, 식으로 불렀던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남은 팔호광장입니다>

 

<팔호광장을 지나면 곧 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이 언덕만 아니었으면 밭에 가는 길이 꽤 수월할텐데.....>

 

올 해 얻은 밭에 가는 길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보기엔 우습기까지 하겠지만 도심을 가로질러 가야합니다. 다행히 시청을 중심으로 한 명동 한복판을 지나지는 않지만 남부시장과 운교사거리며, 팔호광장 등을 거쳐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춘천 서쪽 끄트머리에 밭은 동쪽 끄트머리에 있네요. 아무튼 이리 도심을 가로질러 가려니 도무지 밭에 가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게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는 괭이며 삽을, 앞 짐바구니에는 호미며 낫을 싣고는 밀짚모자를 쓴 채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참 멋대가리 없습니다. 그려.

 

그에 비해 작년에 얻었던 밭에 가는 길은 나름 농사짓는 폼을 잡을 수 있을만했더랬습니다. 집이 워낙 변두리에 있었던 터라 고개 하나만 넘으면 곧 산과 논과 밭이 흩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라치면 경운기도 ‘털털털털’ 다니고 소똥 냄새도 엔간히 났으니까요. 게다가 좀 전에도 얘기했던, 의암호에 자리 잡고 있는 중도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산책길이 집까지 연결돼 있었으니까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루걸러 200미리, 130미리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물이 아직도 빠지질 않고 있습니다. 또 고추도 몇 주 쓰러졌고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에 세워줬던 지주대도 흔들흔들하거든요. 게다가 모처럼만에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하는 바람에 또 이틀을 밭에 나가지 못했답니다. 그래 일이 많거든요. 아 참. 내일은 밭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자전거포에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시리 며칠 전부터 페달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게 기어도 뻑뻑하니 아무래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밭에 오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전거가 고장이라도 나면. 당장 걷고, 버스타고, 또 걷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이제 밭이 코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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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23:05 2009/07/28 23:05

   <춘천가는 기차는 청량리에서 출발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종종 성북역을 이용한답니다>

돌이켜보니 꽤나 춘천가는 기차를 탔었던 듯 한데. 정작 이사 오기 바로 전 해이던 재재작년에 잠시 다녀왔던 게 처음이었으니 춘천과의 인연이란 게 특별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누구 하나 마음을 나눌 이가 있기는커녕 딱히 알만한 이도 하나 없으니 대체 왜 춘천이란 이 낯선 곳으로 왔는지 아직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언제 그리 훌쩍 지났나 싶을 만큼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물론 때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짜증이 치솟을 때도 있었고 이유 없는 답답함에 싸우기도 하며 물갈이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애당초 춘천으로 가자, 정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대가 있는 도시들을 지도에 죽 표시해 놓고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비빌 언덕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며 골랐던 진주와 되려 그 반대 이유로 무작정 밀어붙인 춘천을 두고 한참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아직은 부모님들이 계시는 곳과 가까워야겠다, 는 생각에, 사과나무에 복숭아까지 심을 수 있을 만치 앞으로 농사지을 만한 곳으로 딱 좋게다, 싶어 춘천가는 기차를 타게 된 겁니다.

  

춘천과 처음 만났던 때, 작고 조용한 도시와 그 도시를 감싸고 있는 너른 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랬습니다. 또 청평사를 오르던 길에 소복히 쌓이던 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음에 담아둔 풍경이었고, 조금만 걸어도 금세 아파트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여전하답니다. 남들이 듣자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맘에 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들에서였고요.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도서관도 그렇고 강을 따라 걷다 가 만나게 되는 너른 둔치가 또 그렇기 맘에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요즘은 어찌된 게 서울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자주 가족들과 만나게 됩니다. 같이 살자 하고 한 집에 있은 후로 제사 때나 어버이날, 추석, 설 등 명절이외엔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었는데 말입니다. 거리상으로 그리고 시간상으로 따지자면야 서울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혹은 북쪽 끝으로 가는 게 춘천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훨씬 짧겠지만서도 다들 이리로 오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심지어 저 아래 김해에서도 벌써 세 번이나 다녀갔구요, 초대도 없었던 집들이에, 부러 찾아 온 친구도 여럿이랍니다.

 

올 초, 밭이 딸린 집을 구한다며 잠시 여기저기 쏘다녔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작년에 밭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었고 어차피 시골 가서 살 거면 이번 기회에 시내에서 벗어나자, 했던 겁니다. 그래 집을 내놓고는 생활정보지도 뒤적거리고 인터넷도 들락날락, 짬짬이 부동산까지 찾아다녔었는데. 그리 다니다보니 이런, 1년 가까이 춘천에 살면서도 이리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까. 나름 다닌다, 다닌다 했는데도 고작 집 주변만 맴돌았던 셈이었습니다.

 

 

<춘천가는 기차(위)와 차창 밖 풍경(아래)>

 

춘천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호수, 안개, 남이섬, 청평사, 중도, 위도....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헌데 김현철씨는 곡을 다 만들고 난 후에야 춘천엘 다녀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게 머 대수겠습니까.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춘천하면 아련한 무엇이 떠오르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춘천가는 기차, 타봤자 딱히 별 볼일 없더라, 해도 말입니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오면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조만간 사라지게 될 풍경이라고 하니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조만간 춘천가는 기차가 사라지게 됩니다. 에둘러 강을 끼고 산을 돌아 이 역, 저 역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그 기차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대체 무에 그리 바쁜 것인지. 산허리를 잘라내고 강바닥에 콘크리트를 밖아 그렇게 다리를 세워 기찻길을 곧게 펴고, 구석구석 추억이 묻어 있을 그 조그만 강변역들, 마석, 대성리, 강촌역도 다 허물고 새로 짓는답니다. 아직은 서울에 갈 일이 많은 지라 복선전철화되면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려해도, 글쎄요. 쉬이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한다, 해도 아직은 컴컴한 터널 속에서 책장만 넘기는 것보단 창밖으로 스쳐가는 들과 산에 한눈팔고 싶거든요. 그래, 요즘 서울 다녀오는 길이 무척 남다르답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도 곧 잊혀지게 될 많은 것들이 벌써부터 그리움으로 다가 오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다행인가요. 아무래도 아쉬움이 켜켜이 쌓이기 전, 춘천가는 기차 더 많이 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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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4:17 2009/07/10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