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흐르는 공지천, 모래톱도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대체 며칠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돌덩이들을 잔뜩 싫은 덤프트럭들 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또 실어오기 무섭게 여기저기 내려놓고. 포클레인은 이 돌들을 집어 강변에 쌓느라. 이거야 원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오릅니다. 그리고 곧 겨울이니 서둘러 공사를 마쳐야 하겠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해 해 진 후에까지도 들려오는 소리에. 또 며칠 전 주말엔 아름드리나무들을 잘라내느라 전기톱을 쓰는 바람에.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2.

혹시 청계천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떤 이들은 천만이 넘게 사는 대도시에 이만한 하천이 없다며, 복원된 하천을 찬탄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1급수 물고기 연어가 발견됐다, 줄납자루니 각시붕어니 하는 이름도 첨 듣는 토종 물고기가 발견됐다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세면으로 발라진 둑을 보고 있자면. 조개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살고, 섬진강에서 사는 물고기 날아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짧은 머리론 통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게다가 이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어느 도시, 어느 강변엘 가도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하천들을 보자니. 이게 도대체 무슨 유행인지 짧은 머리로 또 통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3.

대체 무슨 공사를 하는 건지 하도 궁금해서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천’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 이런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더군요.

 

  ○ 춘천시의 도심하천인 공지천이 내년 여름이면 예전과는 다른 생태, 친수하천으로 되돌아온다.

  ○ 춘천시는 지난 6월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 1지구 공사를 준공한데 이어 이달 중 2지구 공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 1지구는 학곡리 공지천이 시작되는 지점~퇴계천 합류점까지 2.2km 구간으로 호안 정비와 함께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 4.2km가 개설돼 현재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 2지구는 퇴계천 합류지점~공지천교 간 3.4km로 호안정비와 자전거도로 개설(2.7km) 공사가 이뤄진다.

  ○ 현재는 둔치 한 쪽만 산책로가 있으나 둔치 양쪽에 산책로가 추가로 개설돼 돌다리로 연결된다.

  ○ 남춘천교~효자교 구간에는 홍수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제방이 낮은 곳은 석축을 높이는 공사가 이뤄진다.

  ○ 생태계 복원을 위해 물가와 둔치가 만나는 경계에 나무로 짜여진 틀에 돌을 넣어 수생물과 물고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생방틀이 설치된다.

  ○ 시는 당초 내년 말까지 전 구간을 준공키로 했으나 국비 지원 등이 순조롭게 이뤄지면서 내년 6월말까지 조기에 사업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공지천 상류인 춘천한방병원 맞은편에 조성되는 생태공원 3곳(6천㎡)도 내년 6월 2지구 공사와 함께 준공된다.

  ○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은 국비 등 250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2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그제야 저 공사 소음이 뭐 때문인지 확실히 알 것 같더군요. 퇴계천 합류지점에서 공지천간 호안 정비와 자전거 도로 개설 공사, 바로 2지구 공사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사업명이 분명 생태하천 정비 사업이라고 돼있던데.

 

4.

요즘은 공지천 자전거 도로 겸 산책로엔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어폰을 낀 젊은이들로부터 나이 드신 노부부까지. 때론 위태위태하기도 하지만 나름 걷는 사람과 자전거가 공존하는. 시민 음악회도 열리기도 하고,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공지천은 ‘밤에 피는 장미’일 뿐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해가 떠 있는 시간엔 말입니다. 통 사람들 보기가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맞습니다. 해를 피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게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얼 저렇게 파내고, 쌓고 있는 걸까요>

 

그나마 아파트 뒤 베란다로 보이는 곳엔 꽤나 큰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버드나무에 아카시아, 그리고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땡볕을 가려줄 나무들이 말입니다. 헌데 이 무신 생태하천 공사인지. 그 나무들을 모조리 - 정확히 딱 한 그루만 잘라내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이만하면 ‘모조리’이지요 - 베어내 버렸더군요.

 

있던 나무 다 잘라내고 멀쩡한 땅 포클레인으로 뒤집고 돌 쌓는 것이. 그리해서 ‘물가와 둔치가 만나는 경계에 나무로 짠 틀에 돌을 넣어 수생물과 물고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생방틀’을 만드는 게. 뭔 ‘생태계 복원’인지요. 뭐, 그래도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 부어줘야 하는 청계천보다야 낫겠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5.

언제부터였나요. 어딜 가나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둔치에 똑같은 자전거 도로. 똑같은 운동시설, 나무 하나 없는 똑같은 생태하천이 생겨난 것이. 가만 생각해보면, 2MB이 대통령이 된 데에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일등공신이었다고 하면, 과장된 말이 아니겠지요. 아닐 겁니다. 그래야만 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하천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걸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 않나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엊그제 저녁 뉴스를 보니 ‘청계천+20프로젝트’에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고 있는 약사천 복원사업이 우수 사업으로 사례발표까지 했다고 합니다. 뭐, 콘크리트로 덮여있던 하천을 되살린다고 한다는 데야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만. 한강에 청계천에 이제 공지천 공사 모습까지 보고 있으려니, 심히 걱정되는 게. 그래요. 한낮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 http://www.chuncheon.go.kr/open_content/open_content_02.asp?MCode=20302 

 **  보도자료에 첨부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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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2:45 2010/10/27 22:45

40여년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춘천이란 도시는 정말 작았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30여분이면 닿으니까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서 이 작은 도시에 적응하느라 조금은 시간이 걸렸답니다. 지금이야 몇몇 정류장에 버스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니 조금 낫긴 하지만. 처음 와서는 30분도 넘게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택시를 잡아타기도 했구요. 또 가끔은 그렇게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고작 10여분 후면 곧 내려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답니다. 이것 역시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 요즘은 버스를 기다리기보단 아예 걷거나, 혹은 조금 먼 곳은 으레 자전거를 끌고 나온답니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답게 자전거길도 호숫가에 있답니다. 오늘은 중도 뱃터에서부터 한 바퀴를 돌 거예요>

 

<이곳은 다행히 산책길과 분리돼 있긴 하지만요.

사실 지금 함께 하는 이 길은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어울리기에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중도 뱃터를 지나면 곧 공지천과 만나게 되지요>

 

사실 이 작은 도시, 춘천으로 오면서 이제 ‘교통지옥’이라는 말은 듣지 않겠거니 했습니다.  인도까지 점령한 자동차, 채 건너기도 전에 깜빡이는 신호등, 하염없이 미터기 숫자만 올리는 꽉 막힌 길 등등. 그런데 말이죠. 인구 25만의, 전에 살던 구로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뭔 차가 그리도 많은지요. 집 앞 호반도로만 해도 아침, 저녁으론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구요. 아파트마다 주차장은 항상 만차랍니다. 그래도 아직은 서울만큼은 아니니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엔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왼쪽으로 의암호 너머  중도가 보이구요(위), 햇볕에 일광욕 중인 고추가 길을 막아서기도 하네요(아래).>

 

일찍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터인데. 아무튼, 몇 달 전 강원대학교에서 ‘춘천 녹생성장 자전거로 달라자’라는 주제로 자전거 포럼이 있었는데요. ‘자전거 길은 녹색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기조발제(이상원,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뿐만 아니라 ‘도로신설에 따른 기존 국도의 자전거 시설로의 활용방안’(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춘선 폐철도를 활용한 자전거 도로 건설방안’(윤경구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주제발표 제목만 봐도 얼핏 알 수 있듯 최근의 자전거 열풍을 생활자전거로 이어가기보다는 레저, 문화, 관광 등 산업자전거로 가고 있어 조금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건 간에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에서 이렇게나마 자전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시작됐다는 데엔 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소양2교를 건너면 육림랜드와 인형극장을 만나게  되는데요. 혹, 이 길이 춘천댐까지 연결됐을라나요?>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새로 자전거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웬만한 곳은 30분이면 충분한데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속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농사를 배우려 왔으니 조만간 밭을 구해야겠고, 그리고 나면 아침, 저녁으로 밭엘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자전거만큼이나 기동성이 있으면서 간단히 짐받이에 박스하나만 달아도 꽤나 많은 짐을 쉽게 실을 수 있는 게. 자동차만큼이나 아니 것보다 더 싫은 오토바이 말곤 없었거든요.

 

 

 

 

 

 

 

   

 

 

 

 

한쪽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자전거등록제>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구요. 이제껏 자동차를 중심으로만 해서 세워졌던 교통정책에 이런저런 정책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보니 방향이야 어떻든 간에 바야흐로 자전거 시대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지금 얘기되고 있는 이런 논의들이 이 옛말에 딱 들어맞는다, 싶은 게.

 

<시내에 있는 유일한 자전거길입니다. 왼쪽 차도와 오른쪽 인도 사이에 안전턱도 보이네요>

 

 

<자전거 주차장입니다. 헌데 세워진 자전거가 한 대도 없네요. 너무 외진 곳에 만들어 둔 건 아닌지요> 

 

그래, 그렇게 자전거를 장만한 지 이제 일 년하고도 반. 이젠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거진 춘천 시내 주요 길뿐만 아니라 동네 골목길까지도 꿰차고 있으니 이만하면 이제 춘천시민이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춘천 곳곳을 다녔어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습니다. 밭에 가는 길이야 시내한복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심가를 통과해야 하기에 언감생심 자전거 도로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공지천만 해도, ‘마라톤 도시’라 할 만큼 달리기 하는 사람들에,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에, 그리고 자전거까지 하나의 길에 뒤엉켜서는. 그리고 말이죠. 동사무소에를 가든 대형마트를 가든 어찌 그리 자전거 세워 놓을 곳이 뵈지 않는 건가요. 또 구석에 처 밖아 둘라치면 공간이라도 넉넉해야지, 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태반이랍니다. 상황이 이러니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딱 알맞은, 적당한 크기의 이 도시에서 되레 자전거가 홀대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매대교에서 의암댐 가는 길을 따라 소양5교까지 갔다, 이제 돌아옵니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런 안내문이 붙었더군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에너지, 교통체증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추진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에 따라 주민들의 자전거 이용 실태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는 춘천시장 명의의 안내문 말입니다. 자전거 보유대수 및 이용도, 보관방법 등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모쪼록 시류에 편승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어설픈 정책을 만들지나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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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20:24 2009/09/23 20:24

올 초, 역시나 밭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좀 더 좋은 밭을 얻어 보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으로 작년에 지었던 밭을 놓쳤던 게 일의 시작이었고 안 되겠다 싶어 생활정보지까지 뒤적거리다 장학리로, 사우동 솔밭으로, 정족리로, 송암동으로 연일 허탕을 치더니 종국엔 농지원부가 뭔지도 모르는 지금 밭주인을 겨우 겨우 만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보단 작물들이 꽤나 잘 자라는 것 같아 구할 때 가졌던 마음 졸임을 다 잊고 있으니 썩 나쁜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집은 춘천 서쪽 끝트머리에, 밭은 동쪽 끝트머리에 있답니다. 어찌..... 밭이 넓나요?>

 

작년에 농사를 지었던 밭은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거라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작은 밭을 구했거든요. 그때도 생활정보지에 내 놓은 광고를 보고 구했습니다. 연고라고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인데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시내에 아파트를 얻었기에 밭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봄농사 시작하기엔 좀 늦긴 했지만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밭을 구했으니 정말 다행이었죠.

 

<집을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순환도로에는 지금 경춘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랍니다> 

 

연일 장맛비가 계속 내리니 밭에 나가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습니다. 애초 한 낮 더위는 피해 새벽녘과 해질녘을 전후해 서너 시간씩만 일을 하기로 했던지라 지금처럼 비가 계속되면 다른 이들보다 일이 더 쌓이게 되지요. 하지만 고추 몇 주가 쓰러진 거 빼곤 큰 피해도 없고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해 무릎까지 풀이 난 곳만 빼면 크게 손 볼 곳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가끔씩 맑은 하늘이 보이거나 잔뜩 흐려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바로 자전거에 오릅니다. 틈날 때마다 김매기도 해주고, 지주대도 다시 묶어주고, 열무며, 알타리를 심을 곳도 손봐야 하니까요.

 

<공지교에서 대룡산을 바라본 보습입니다. 다리 아래로는 의암호로 흘러들어가는 공지천이 흐릅니다>

 

밭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있듯이 집 근처에 밭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은 거죠. 해서 밭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고 시간도 꽤나 걸린답니다. 차가 있다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을텐데, 자전거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찻길을 따라 때론 긴 오르막길도 넘어 가려니 그런 것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남들은 시간 내고 돈 내서 운동한다던데 뭐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래도 가끔 힘이 부칠 때면 집 뒤 조그만 산 하나만 넘으면 금방이었던 작년 밭이 떠오르긴 합니다.

 

<작년에 텃밭 농사를 지었던 곳은 이런 멋진 호숫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춘천하면, 중도와 아침 안개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정작 춘천으로 이사한 이후로도 여태 호수를 건너 둘러보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와도 거리가 꽤 멀고 교통편도 그리 좋지 않은데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왠지 모르게 처음 본 순간부터 꽤나 끌렸습니다. 베란다에서나마 뒷산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조그만 오솔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도서관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지천에서부터 의암호를 끼고 돌아 중도에를 건널 수 있는 배터까지 연결된 산책길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초기 도시계획 단계에서 각 교차로에 1호, 2호, 식으로 불렀던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남은 팔호광장입니다>

 

<팔호광장을 지나면 곧 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이 언덕만 아니었으면 밭에 가는 길이 꽤 수월할텐데.....>

 

올 해 얻은 밭에 가는 길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보기엔 우습기까지 하겠지만 도심을 가로질러 가야합니다. 다행히 시청을 중심으로 한 명동 한복판을 지나지는 않지만 남부시장과 운교사거리며, 팔호광장 등을 거쳐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춘천 서쪽 끄트머리에 밭은 동쪽 끄트머리에 있네요. 아무튼 이리 도심을 가로질러 가려니 도무지 밭에 가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게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는 괭이며 삽을, 앞 짐바구니에는 호미며 낫을 싣고는 밀짚모자를 쓴 채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참 멋대가리 없습니다. 그려.

 

그에 비해 작년에 얻었던 밭에 가는 길은 나름 농사짓는 폼을 잡을 수 있을만했더랬습니다. 집이 워낙 변두리에 있었던 터라 고개 하나만 넘으면 곧 산과 논과 밭이 흩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라치면 경운기도 ‘털털털털’ 다니고 소똥 냄새도 엔간히 났으니까요. 게다가 좀 전에도 얘기했던, 의암호에 자리 잡고 있는 중도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산책길이 집까지 연결돼 있었으니까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루걸러 200미리, 130미리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물이 아직도 빠지질 않고 있습니다. 또 고추도 몇 주 쓰러졌고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에 세워줬던 지주대도 흔들흔들하거든요. 게다가 모처럼만에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하는 바람에 또 이틀을 밭에 나가지 못했답니다. 그래 일이 많거든요. 아 참. 내일은 밭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자전거포에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시리 며칠 전부터 페달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게 기어도 뻑뻑하니 아무래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밭에 오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전거가 고장이라도 나면. 당장 걷고, 버스타고, 또 걷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이제 밭이 코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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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23:05 2009/07/28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