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춘천이란 도시는 정말 작았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30여분이면 닿으니까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서 이 작은 도시에 적응하느라 조금은 시간이 걸렸답니다. 지금이야 몇몇 정류장에 버스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니 조금 낫긴 하지만. 처음 와서는 30분도 넘게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택시를 잡아타기도 했구요. 또 가끔은 그렇게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고작 10여분 후면 곧 내려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답니다. 이것 역시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 요즘은 버스를 기다리기보단 아예 걷거나, 혹은 조금 먼 곳은 으레 자전거를 끌고 나온답니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답게 자전거길도 호숫가에 있답니다. 오늘은 중도 뱃터에서부터 한 바퀴를 돌 거예요>

 

<이곳은 다행히 산책길과 분리돼 있긴 하지만요.

사실 지금 함께 하는 이 길은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어울리기에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중도 뱃터를 지나면 곧 공지천과 만나게 되지요>

 

사실 이 작은 도시, 춘천으로 오면서 이제 ‘교통지옥’이라는 말은 듣지 않겠거니 했습니다.  인도까지 점령한 자동차, 채 건너기도 전에 깜빡이는 신호등, 하염없이 미터기 숫자만 올리는 꽉 막힌 길 등등. 그런데 말이죠. 인구 25만의, 전에 살던 구로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뭔 차가 그리도 많은지요. 집 앞 호반도로만 해도 아침, 저녁으론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구요. 아파트마다 주차장은 항상 만차랍니다. 그래도 아직은 서울만큼은 아니니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엔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왼쪽으로 의암호 너머  중도가 보이구요(위), 햇볕에 일광욕 중인 고추가 길을 막아서기도 하네요(아래).>

 

일찍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터인데. 아무튼, 몇 달 전 강원대학교에서 ‘춘천 녹생성장 자전거로 달라자’라는 주제로 자전거 포럼이 있었는데요. ‘자전거 길은 녹색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기조발제(이상원,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뿐만 아니라 ‘도로신설에 따른 기존 국도의 자전거 시설로의 활용방안’(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춘선 폐철도를 활용한 자전거 도로 건설방안’(윤경구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주제발표 제목만 봐도 얼핏 알 수 있듯 최근의 자전거 열풍을 생활자전거로 이어가기보다는 레저, 문화, 관광 등 산업자전거로 가고 있어 조금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건 간에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에서 이렇게나마 자전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시작됐다는 데엔 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소양2교를 건너면 육림랜드와 인형극장을 만나게  되는데요. 혹, 이 길이 춘천댐까지 연결됐을라나요?>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새로 자전거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웬만한 곳은 30분이면 충분한데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속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농사를 배우려 왔으니 조만간 밭을 구해야겠고, 그리고 나면 아침, 저녁으로 밭엘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자전거만큼이나 기동성이 있으면서 간단히 짐받이에 박스하나만 달아도 꽤나 많은 짐을 쉽게 실을 수 있는 게. 자동차만큼이나 아니 것보다 더 싫은 오토바이 말곤 없었거든요.

 

 

 

 

 

 

 

   

 

 

 

 

한쪽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자전거등록제>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구요. 이제껏 자동차를 중심으로만 해서 세워졌던 교통정책에 이런저런 정책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보니 방향이야 어떻든 간에 바야흐로 자전거 시대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지금 얘기되고 있는 이런 논의들이 이 옛말에 딱 들어맞는다, 싶은 게.

 

<시내에 있는 유일한 자전거길입니다. 왼쪽 차도와 오른쪽 인도 사이에 안전턱도 보이네요>

 

 

<자전거 주차장입니다. 헌데 세워진 자전거가 한 대도 없네요. 너무 외진 곳에 만들어 둔 건 아닌지요> 

 

그래, 그렇게 자전거를 장만한 지 이제 일 년하고도 반. 이젠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거진 춘천 시내 주요 길뿐만 아니라 동네 골목길까지도 꿰차고 있으니 이만하면 이제 춘천시민이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춘천 곳곳을 다녔어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습니다. 밭에 가는 길이야 시내한복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심가를 통과해야 하기에 언감생심 자전거 도로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공지천만 해도, ‘마라톤 도시’라 할 만큼 달리기 하는 사람들에,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에, 그리고 자전거까지 하나의 길에 뒤엉켜서는. 그리고 말이죠. 동사무소에를 가든 대형마트를 가든 어찌 그리 자전거 세워 놓을 곳이 뵈지 않는 건가요. 또 구석에 처 밖아 둘라치면 공간이라도 넉넉해야지, 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태반이랍니다. 상황이 이러니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딱 알맞은, 적당한 크기의 이 도시에서 되레 자전거가 홀대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매대교에서 의암댐 가는 길을 따라 소양5교까지 갔다, 이제 돌아옵니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런 안내문이 붙었더군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에너지, 교통체증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추진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에 따라 주민들의 자전거 이용 실태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는 춘천시장 명의의 안내문 말입니다. 자전거 보유대수 및 이용도, 보관방법 등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모쪼록 시류에 편승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어설픈 정책을 만들지나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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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20:24 2009/09/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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